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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_이원일 자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전에 간증했던 내용과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들을 추려내고, 추가적인 내용을 더하여, 제 삶을 통해서, 저를 부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큰 사랑으로 저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자리에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다만 북한에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남으로 오신 외할아버지와 기도를 많이 길게 하시던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나마 알고는 지냈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떤 연유에서인지 동네 교회의 성경 학교도 가보고, 친구 따라서 성당도 몇 년 다녔습니다. 그 뒤에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 일로 인하여 부모님께서 의견 차이를 보이시며 저의 성당 출석은 깔끔히 끝나게 되었지요. 말 잘 듣는 큰 딸이었던 저는 ‘최악만 아니면 되지 ’라는 신념으로 10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명확한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보통의 학생들과 다름없는 상태로, 꾸준히 학교만 다녔습니다. 주변에서 보이는 사건 사고 없이 평안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항상 돌보아 주시고 계셨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가까운 사람이 삶을 한탄하면서 저에게 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나는 지저분한 물에서 사는데 당신은 1급수 아니 생수에서 살고 있다’ 라고 말이죠.

     

    대학 2학년 여름,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 사람이 지금의 남편입니다. 알게 된 지 한 달 즈음이 지났을 때,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게 어떻겠냐 하면서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하더라구요..^_^(과연 그 약속은 어찌 되었을까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면서 그 순간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얼마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도서관의 종교서적 서가에서 여러 가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은 인터넷 보다는 책이 정보검색의 1순위였지요) 안식일 관련된 책들과 기독교의 역사관련 서적들을 보면서 ‘안식일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정도의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에 삼육대학교 근처에 살면서 들었던 제7일 안식일교라는 이름도 기억해 냈고, 주일 개념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 졌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적립하고 드디어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눠 보려는데, 흔히들 말하는 안식교도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참예수교회라고 알려주더라고요… 이건 뭐지?? 하면서 다시 뒤져보았습니다. 성과는 없었습니다. 2002년 말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에 여러 가지가 올라오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엘리사 목자님의 설교 몇 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영상들이 저에게는 예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엉터리는 아니다’ 하는 마음으로 참예수교회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2003년 7월 어느 안식일 오전, 제일 가까웠던 동부교회로 무작정 전화하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젊은 아가씨가 알지도 못하는 곳을 제 발로 혼자 찾아 갔네요.

     

    통화하신 분이 예배당 앞에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보통의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진형제는 저에게 방언기도에 대해 한 번도 언급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 시작 전의 기도시간에 저는 어찌 해야할 지 모르고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말씀이 끝나고 나서 찬양 한 뒤에 다시 기도가 시작되자, 저는 예배당을 빠져나와서 건물 1층 문을 나서야만 출입 할 수 있는, 외부로 출입문이 나있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신기한 일은 화장실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2층의 기도소리가 저에게는 악기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영롱한 핸드벨이나 큰 실로폰의 높은음을 쉬지 않고 울리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이 내용을 간증하며 ‘천상의 음악’이라고 감히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부러움과 신기함으로 교회에 출석했고, 다음 해에는 양봉도 목자님의 세례관련 설교를 주의 깊게 듣게 되었습니다. 출석이 거듭되면서 입술이 움직임을 느끼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례가 먼저라는 지식이 저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주의 어느 날 수업 후 빈 강의실에서 교회에 전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세례 받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주 안식일 예배 후에 봉고차를 타고 밀리는 길을 다녀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이어리를 찾아보면 2004년 4월 3일 16시 20분이라고 시간까지 쓰여 있었는데, 그날인 것 같습니다. 날짜와 시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뀐 저의 기도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예수님께서 피 한방울의 일부라도 저를 위해 흘려 주셨습니까?’라는 물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세례 후 예배당 앞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저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생각과 ‘저를 위해 피 흘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라는 기도가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인공조명의 위치가 절묘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이마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환한 빛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남자친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세례성령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기본적인 새신자 신앙교육이나 세례 전 교육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부족한 지식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꽉 차여있지 않아도 자녀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세례를 받고서 얼마 지났을 때인지 기억은 못하지만, 아마도 오래지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낮잠이었는지 밤잠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누군가가 벽과 붙어 있는 옷장 윗부분의 구석진 곳에서 저를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오싹하다기 보다는 그냥 무서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를 알지도 못했던 때였지요. 자세를 바꾸어 보아도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을 뜨면 눈앞에서 엄청난 얼굴이 저를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기에 눈도 감은채로 마음을 굳게 먹고 주기도문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성당에서도 노래로 외웠고, 빈칸 채우기 시험을 봐가면서 외웠고요, 동네 교회 성경학교 다닐 때도 외웠고, 동부교회 출석하면서도 매번 읊었던 주기도문이었지요. 그런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그 무언가가 저의 기도를 따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런 기도쯤은 나도 알고 있다’는 조롱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동시에 너무나 두려웠구요. 그래서 누운자세 그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선언하고, 방언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만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기도하다가 잠들고 말았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외워서 읊기만 했던 저에게,,, 진정성이 없는 기도문의 암송은 그 어떤 의미도 없음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셨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 초, 저희는 약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출가 외인이라며,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이제 그집 식구이니 교회 따라 나갈 생각을 해라!! 마음 편히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저희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2006년 3월에 식을 올리고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이었지만 저는 바다구경으로 두 번 가본 게 전부였던 지역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걱정과는 다르게 바로 옆 동네에도 성도님들이 계셨고, 가족처럼 살뜰히 돌봐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가 아버지 따라 신랑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이사하면서 울어본 적은 두 번뿐인데요(한번은 초3가을부터 초5 6월까지 살던 수원을 떠날 때였고) 그중 한번이, 겨우 1년 출석한 부산교회를 떠나던 날이었지요.

     

    [전국 유람 시작합니다] 그렇게 부산을 떠나 (성남으로 이사가서)분당 3년, (충주에서 살면서)원주교회로 1년, 다시 (성남기지 안으로 이사가서) 분당 1년, (송파구에 살며)강남 2년, (일산초입에 살면서)대방 2년, (계룡으로 이사하여)대전교회 2년, 그리고 다시 대방 1년, 이렇게 돌고 돌면서 가사와 육아에 매인 삶을 살아가며 2019년도에 도착한 곳이 안양교회였습니다. 신도회 시간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 참여 해본 첫 해였습니다. 수많은 세상의 이야기를 하며 경쟁하듯 대화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감사를 나누고 평안을 구하며 같이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임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속상함도 나누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저는 ‘최악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불행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하며 살았었죠. ‘기도를 통해 고통이 줄어들고 기도하는 와중에 고난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며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져버렸답니다.) 그런데 2019년 어느 날 혼자 집에서 찬송을 드리다말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물을 감추지 않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왜 우냐’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판단하기 전에, 주님께서 저를 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답을 해보았습니다. ‘감사해서요.’ …..불행하지 않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고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행복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도], 코로나로 온 나라가 힘들기 시작했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불안 속에서 요동하지 않으며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많은 노력을 했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6월 9일, 그 불안의 상황이 저희 집에 들어왔습니다. 저녁에 신랑이 확진을 받고난 뒤에, 저는 집안에서 몇 걸음 걷다가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나머지 세 식구가 집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효원형제를 데리고 가야할 구급차는 오지 않았고, 저희 세 명의 검사 결과는 아주 빠르게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음성이고 저만 양성이 나왔기에 새로운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이들만 남겨야 하는데 어찌 하면 좋으냐’ 보건소에 물어보았는데요, 아침마다 도시락을 문 앞에 갖다 놓을테니 데워 먹게 하라고 하는 전화기 너머의 말이 어찌나 야속하게만 들리던지요. 음성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집에 올 수 없으며, 입고 간 옷도 다 폐기 할 것이고 들고 간 것도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제외하고는 들고 나올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당장은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기고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에 입을 옷은 병원에서 택배로 받으라는 이야기와, 돌아올 때는 택시를 비롯한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니 가족들이 데리러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걱정에 걱정을 더해주기만 하던 그들의 이야기로 머리가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증상도 없었는데 말이죠. 계속 무너지며 무릎을 꿇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함께 퇴원 할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그게 쉽겠느냐며 절망이 튀어나올 정도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 이모가 바로 와줄 수 있다고 했고 저희 부부는 아이들 이모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저희가 나선 뒤에 방역팀이 집 구석구석에 소독액을 뿌리고 갔고, 3학년과 1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용감히 이모를 기다렸습니다.

     

    안양에서 파주병원까지 저와 효원형제는 같은 구급차에 실려서 이송되었습니다. 병실이 남은 곳은 거기뿐이고, 구급차는 많이 남지 않으니 한번에 이동시키려는 그들의 계산덕분에 저희는 꽁꽁 싸여서 실려다니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목자님과 사모님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님들은 단순히 위로만 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고 나올 옷을 싸놓으면 가지고 가겠다, 택배로 보내주겠다, 차몰고 데리러 갈꺼니 걱정마라. 거기 자주 가는 동네라서 다 안다 등등, 그 많은 이야기들은 구체적이었고 현실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를 안정시킨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키울 테니 어서 낫고 퇴원해라’ 여기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들 걱정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었구나 하고 말이죠.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은 성도의 손을 통해 자녀들을 보살피시는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었죠. 안양에서 살던 두 번째 집은 창문 밖으로 임시검사소에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사람마다 일정 개수 씩 구매할 수 있게 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집이었습니다. 또한 감사하게도, 뛰어 놀기에 적합한 넓직한 공원이 바로 옆에 있었고,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하여 산길에 걸어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에 보이는 장점들을 하나하나 나열해가며 감사하면서 무너지지 말아야겠다며 스스로를 애써 붙들어 매던 제 마음은, 확진과 동시에 그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쉴 새 없이 크게 요동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굳게 붙들어주셨습니다.

     

    [병원 이야기 해드릴께요] 입원실은 3인실로 개조한 5인 입원실이었습니다. 링거하나 없이 두 명의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이 전부였지요. 음식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겨 묶인 봉지채로 각 자리에 놓아졌고, 2일에 한 번 씩 보호장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소독액을 눈앞에서 뿌리며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음압기계의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두통이 생길 정도였고, 창문의 모든 틈은 테이프로 막아져 있어서 산소가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남성 입원실로, 저는 여성 입원실로. 구급차에서 내려서 줄을 따라 걸어가며 저희는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졌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화로 통화해야 했습니다. 동선에 대한 확인과 보고를 반복하며 보건소 직원들과 통화하느라 하루 이상 꼬박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상태가 안 좋으면 병실 전화기나 핸드폰의 카톡을 통해 간호사실에 알릴 수 있었고 며칠 간격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의사가 들어와서 문진을 하고 상태(?상황?)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자꾸만 가빠지는 호흡을 가라앉히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저는 집안일로부터 해방되어 길어져버린 하루를 보내기 위한 나름의 계획을 짜야 했습니다. 3회의 식사 전에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적고 사진 찍어서 간호사에게 알려주기, 식사 후 양치 꼭하기, 땀나게 맨손체조, 이어폰으로 소리 최고로 해놓고 말씀듣기, 성경읽기, 음압기 소리에 묻혀서 기도하기, 중간중간 마다 아이들이랑 통화하기 등등,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밀려있던 통독은 욥기를 읽을 차례였고 시편까지 읽고 퇴원했습니다. 저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배웠습니다. 아무 방해 없이 말씀을 읽고 듣고 할 수 있게 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계시록도 처음부터 하나씩 듣기 시작했고, 다 끝내지는 못했으나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때 드디어 저는 참예수교회가 늦은 비 성령으로 세워진 참교회임을, 말씀으로 온전히 집중하여 배울 수 있는 첫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를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찬양합니다. 입원한지 며칠 지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밤중에 침대 위에서 창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위에 커다란 검은 물체가 저를 노려보며 저를 향해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준비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적으로 요동하거나 하는 전단계가 없었기에 맥락없이 갑자기 보이는 형상이었지요. 시커멓고 뿔이 두 개 달린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무릎꿇고 성령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지요. 잠시 후에 보니 그 형상은 사라지고 그냥 물탱크만 보이더라구요…

     

    당시, 전국의 교회가 모두 함께 저희 가족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셨습니다. 청주도 함께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6월 23일, 아이들은 격리해제를 위한 검사를 받았고 초조한 하루가 지난 뒤,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24일), 정부는 입퇴원에 관련해서 지침을 변경했습니다. 큰 증상이 없으면, 양성판정후 재검사 없이 14일 이후에는 퇴원 조치하는 내용이 생긴거죠. 저희는 그 병원에서 첫 대상자가 되어 26일 오전에 퇴원 통보를 받았습니다. 감염력이 없는 정도이니 일상생활은 해도 되지만 사람 많은 곳은 당분간 가지 말라는 이해가 안되는 보건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퇴원을 시켜주는 의사도 두 달은 자가격리 상태로 살라고 하더라구요. 의사간호사들의 우려를 뒷통수로 느끼며 병원을 나선 저희는 같은 택시를 타고 같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입원 날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지요. 게다가 양성판정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둘 다 음성판정을 받았지요. 그래서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저희 아이들도 돌보아 주셨습니다. 반찬과 반찬 재료는 물론 간식과 놀 거리와 손편지까지,,, 저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받으면 꼭 갚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저는, 이런 사랑들을 어찌 갚을까 고민하며 몇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퇴원하면 떡 내면 된다’ ‘우리한테 갚지말아라 하늘에 보물 좀 쌓아보자’ ‘앞으로 잘 살면 되는거다’ ‘교회에 봉사하면 되는거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또 사랑을 적립 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봐주시는 이유를 모르던 저는,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직전 날이 되어서야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으시고 택하신 사람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돌봐 주시고 계셨던 것이었지요.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냈었습니다. ‘제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의 주권자이심을,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이죠…. 이때의 제 고백은 시작에 불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눈으로 보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거든요..

     

    코로나 입퇴원을 마무리 하고는 [다시 전국유람 시작합니다] 몇 달 후 원주로 이동했습니다. 예배출석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안양교회 소속으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신도회 모임도 줌으로 유지 했습니다. 멀리 있어도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지침들이 바뀌었죠… 2021년 가을영은회 즈음해서부터 원주교회에 출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으로만 뵙던 김세한 목자님을 직접 뵈니 참으로 반가웠지요) 그해 연말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다시 계룡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약 2달, 출석 예배에 목말라 있던 저희는 예배가 아니어도 종종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정~말 많이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가 함께 기도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본 기억도 있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구요. 천사였을까요? 다른 성도님 이셨을까요? 누구였든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일이잖아요. 교회는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자녀들과 교제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귀중한 두 달여의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도 12월 부터는 대전교회를 출석했습니다. (대전으로 나간 초기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간청했지요. ‘내 양을 먹이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양이요?’라고 했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교회가 건축 중이었기에 총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가 알지 못하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자금의 투명한 흐름과 목회자의 발령시스템을 꼭 이야기하고, 그것을 원활하게 하는 총회 조직이 있음을 자랑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대전을 언급했었지만, 사실 저는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총회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총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저는 신학원의 존재를 볼 수 있었고 여러 목자님들과 외국에서 오시는 강사님들이 열심으로 교육하심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목자님들도 연수를 받으시고 (목자장로)회의를 통해 굵직한 이야기도 오가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음…… 목자 연수회 때는 화요일 예배에서 목자님들의 특별찬송이 있곤 했는데요. ‘행복’이라는 곡을 다 같이 부르실 때는 그 수고와 감동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구요 ‘십자가 군병되어서’를 부르실 때는 마블 어벤저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어휴~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또 여러 종류의 영은회와 세미나를 통해 일반 성도들도 배움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임원들도 모여서 함께 배우고 익혀서 하나의 모습으로 각 지교회가 달려 나가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많은 봉사와 노력과 기도가 있음 또한 보았습니다. 여러 헌신을 통해 한 세대 한 세대 전해져 내려가는 우리의 신앙을 보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적재적소에서 많은 성도들을 사용하시며 그 귀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12월 27일, 새로 지은 대전교회에서는 대학 영은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마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도 여기 계실텐데요, 그날은 화요일 이었고, 저는 연합예배의 찬양인도를 해야 했기에 부담이 컸지요. 기존에는 검정색 찬송가에서만 찬양을 골랐었는데 그 날은 새찬양에서 ‘기대’라는 곡을 살짝 끼워 넣었습니다. 대전교회 성도님들의 절반이상이 모르시는 곡일 수도 있었으나, 저는 대학부의 절반이 그 곡을 알고 있기를 바랬지요. 모르더라도 함께 불러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이 ‘주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가리’ 하며 찬양을 하는 상황이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감!!!동!!!이었어요. 여러 지역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수님 한분만 바란다고 고백을 하는데, 각 지역에서 각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의 지교회들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달 후, 2023년도 2월 말, 저희는 이곳 청주로 이사 왔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경북지역으로 가게 되면 약 40분을 달려서 안동교회로 가야했습니다. 계룡에서 대전교회를 오가는 길보다는 편하지 않아 보였기에 저녁예배 참석이 가능한 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지요. 만약 서해안 쪽으로 가게 되면 100km를 달려서 장항서부로 가야 했는데, 진형제는 이정도 거리의 교회에 휴가를 내지 않고서는 갈 수 없었고 저 역시도 혼자 그 길을 오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디로 보내 주실지는 모르지만,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곳에 순종하며 가기로 하고 쓰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교회와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청주로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해야 할 주님의 일이 있기에 보내셨다고도 생각합니다. 새로운 간증 내용이 추가되어 또 다른 교회에 가면, 지금 보다 더욱 풍성한 간증시간을 갖게 하시려고 이곳에 보내셨음을 확신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고 명령하신 것을 각 위치에서 전심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할 수 있음을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효원형제는 성경을 무척 열심히 읽었고 그 전과 비교했을 때 기도를 아주 많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심하고 체중조절을 하여 성공했고, 교회가야 하니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진형제는 각 교회별로 올라와있는 예배동영상을 통하여 말씀듣기를 지속했고 어느 순간이 지나고 보니 저희 두 사람은 성경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도 그런 모습은 지속되었고 목자님들께 질문하기도 하면서 하나님께로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추석 명절에 남원 할머니를 뵈면서 남쪽의 교회들의 일부를 방문 했었습니다. 남원 서도 삼계 전주… 각 교회를 방문하고 몇 가정과 계획 없던 만남을 갖게 되니 마음이 또 어찌나 꽉 차던지요.. 함께 눈물로 기도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성장하는 남편의 모습과 남편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저를 가르치시고 기르시는 중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10대 동안에 교회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20대에 교회를 나오긴 했지만 대학부 영은회 조차도 참여하지 않았기에 배움이 짧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성장기 동안에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과 사랑과 선행으로 교제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면서 지내온, 지내고 있는, 지내게 될 성도님들이 참 부럽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천천히 가르쳐 주시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저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구나’ 생각하지요. 그곳에서 제가 듣고 보며 배울 일이 있을 것이고,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어디로 보내시든지 절대 외롭게 지내도록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정신없이 이사 다니면서도 가까운 교회에서 하나 된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매번 감사드립니다. 영적으로 의지할 분이 계심과 동시에 이 나라 어딜 가든, 친정식구들보다도 빨리 닿을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 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어디에 간다 해도, 신랑보다 교회식구들을 더 의지할 것 같습니다. 성도 중 누군가가,, 혹여나,, 우주인이 되어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면 좀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죠?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 공간에도 세계 성도들 중의 한 명을 주님께서 꼭 보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된 복음을 전파하고 그 진리를 더욱 연구하고 굳건히 유지하며 전승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에서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하기 때문임을 고백하며 저의 긴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성장기에 있는, 저희 가족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이원일 자매

  • [성도 간증] 주님만을 찬양하리_이예지 자매

    [성도 간증] 주님만을 찬양하리_이예지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2023년도 하계 학생부 영은회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번 영은회를 온전히 참석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영은회를 마치고 난 후 일상으로 돌아간 저의 모습은 영은회 때 받은 은혜와 감동을 잊어버린 채 다시 세상의 즐거움을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더 바빠진 학업을 핑계로 교회 사역에 소홀해지며 또한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신앙이 약해진 채로 영은회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는 ‘반석 위에 세운 하나님의 교회’라는 주제로 기본 신앙 1부터 5까지 배우게 되었는데 모태신앙이지만 아직도 기본이 잘 갖추어지지 않다고 느껴서 이번에 꼭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점들이 많아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더욱 배울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관에 대해서 배울 때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교회는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며 ‘부르심을 받아 나온 회중’이라는 뜻입니다. 모태신앙이라서 그런지, 교회라는 곳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교회에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음부의 권세로부터 이기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교회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번 영은회에서는 같은 또래 친구들과 신앙에 대해 서로의 고민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험한 세상 속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공감하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걸어갈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닌 같이 생각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음에 든든하며 저에게 믿음의 동역자를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또한, 전주교회 성도님들과 연합 예배를 드릴 때 학생부들이 특별 찬양을 했는데 많은 성도님들 앞에서 찬양을 부르는 것이 정말 많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찬양 발표를 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며 찬양을 부르는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세요. 또한 오직 하나님만이 저의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찬양을 기쁘게 받아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앞으로 나가서 찬양을 불렀는데 떨리는 감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영은회 때 받은 감동을 찬양으로 전주교회 성도님들께 전해드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환하게 웃으면서 찬양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뵙는 성도님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면서 정말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영은회 기간 동안,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많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의 길은 좁고 험하지만 세상과는 다른 그 길을 걷겠다고 고백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사실 평소에 기도를 할 때 항상 ‘~해주세요’ 라고만 부탁을 드렸었는데 이번에는 하나님과 대화하듯이 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지난 저의 삶은 감사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바빴고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신앙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하나님을 애써 외면했는데 하나님은 어찌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붙잡으시나요?” 라고 하나님께 여쭈어보며 지난 저의 모습을 회상하며 후회와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 드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다른 길로 돌아서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저의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정말 무슨 일이든지 순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인도하여 주세요. 또한 제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저를 사용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은회 때 ‘예수의 길’ 이라는 찬양을 찬양 기도회 때 처음 듣게 되었는데, 가사를 묵상하자마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 큰 깨달음을 준 찬양을 청주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가사를 조금 가져와 봤습니다. “안개 속에서 주님을 보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그곳에서 손 내미셔서 나를 붙드네, 길 잃고 쓰러져가던 그곳에서 주 말씀하시네 내 손 잡으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 나 그 길을 보네 주 예비하신 곳 다른 길로 돌아서지 않으리” 이런 찬양입니다. 저는 이 찬양을 듣고 세상의 유혹 가운데 넘어졌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런 저를 일으켜 세워주셨고 저에게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이번 영은회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저는 또 세상의 유혹 가운데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넘어지는 순간, 금방 다시 일어나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예비해두신 길을 걸어 나가고 싶습니다. 세상의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닌 하늘의 소망을 두는 자가 되겠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작성 : 이예지 자매

  • [성도간증] 나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 (천안교회 김병일 형제)

    [성도간증] 나를 변화시켜주신 하나님 (천안교회 김병일 형제)

    천안교회 김병일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재작년, 그러니까 2021년 연말에 장모님이신 이순복 모친께서 천안으로 이사를 오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제가 교회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장모님이 천안에 오시기 전부터 저와 제 가정을 위해서 늘 기도한다는 사실은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 부분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했지만 한 번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는데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천안으로 장모님께서 이사를 오신 뒤에는 늘 교회출석을 권면하셨지만 사업상 바쁘기도 하고 사실은 신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별 관심없이 그렇게 한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2022년 12월 31일 토요일에 천안교회 송년식사모임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서 가족들에게 계속 권면을 받았기 때문에 더이상 뿌리칠 수가 없어서 그날은 식사하고 인사라도 드리고 오자고 하면서 아내와 같이 식사모임을 참석을 했습니다.

     식사모임에 가서 받은 첫 느낌은 신도들이 처음 만난 저를 모두 한 가족처럼 대해주었고 모든 신도들이 서로 가족처럼 지내는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 교회 가서 차 한 잔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쑥쓰러움을 타는 성격이라 거절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따라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동안에 목자님을 비롯해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이 얼마나 좋고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야기 해 주실 때 아내인 최귀미 자매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최귀미 자매는 당시 손주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많이 힘들고 지쳐있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최귀미 자매가 교회를 나오는 것이 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대화를 나누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대부분의 자녀들이 너무나 잘 자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목자님께서 계속 아내인 최귀미 자매를 설득해달라고 상 밑으로 목자님에게 손짓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그날 대화를 나누면서 손주들과 함께 교회를 출석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바로 아들 김지현과 손주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할머님의 뜻을 받들어서 신앙생활을 시작해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인 최귀미 자매가 이 뜻을 장모님이신 이순복 모친님께 전화를 드리자 장모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감격해했습니다. 심지어 장모님께서는 유언으로 딸에게 써놓으셨던 편지를 읽어주시면서까지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하게도 2023년 첫주부터 저의 부부와 그리고 보아, 건우 이렇게 4가족과 평소 손주처럼 돌보던 서현이까지 교회 출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 개인적으로는 참예수교회 출석은 처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교회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고 예배와 기도 모든 것들이 그저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교회를 출석한 이래로 항상 말씀을 드렸지만 참예수교회는 가족처럼 너무 좋은 분위기가 느껴졌고 모든 성도님들이 다 천사처럼 보여서 너무 좋았습니다.

     교회 출석을 시작한 지 얼마 후에 목자님께서 구도자 교육을 해야한다고 해서 부담스럽긴 했지만 이것도 신앙생활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참석을 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생소한 저를 위해서 목자님께서는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구도자 교육을 받는 동안에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감동도 받았고 나도 예수님을 잘 믿어서 천국을 가야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출석하고부터 집에서 드리던 제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원래 아내가 힘들어하기도 했고 또 교회를 다니면서 제사를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 출석을 시작한 지 3개월 정도 지날 무렵에 안식일 오전예배 시간에 장모님께서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하셨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안수기도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한 3번 정도 안수기도를 받을 때쯤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날이 4월 1일이었는데요. 안식일 오전예배 시간에 안수기도를 받을 때 온 몸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땀과 눈물이 갑자기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입에서도 미미하지만 이상한 소리도 냈던 것 같습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도 되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화평반 신도들에게 이야기를 하니 모든 분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으신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사실은 원래 그날은 오전예배만 드리고 월요일에 있을 공사의 자재를 준비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혼자만 안식일에 먼저 빠져나간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해서 오후에도 남게 되었습니다. 화평반들과 분반예배를 드리고 담소를 나누는 중에 화평반실에 목자님이 들어오셔서 지금부터는 자비반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다들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목자님이 김병일 형제님도 성경공부 참석하시죠라고 하셔서 얼떨결에 네 알겠습니다 하고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참석하는 자비반 성경공부시간이었지만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목자님께서 안수기도를 특별히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중국에서 오신 교포신도도 그 자리에 있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오전에 제가 성령의 감동이 있었다고 들으시고 특별히 안수기도를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하는데 갑자기 손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입에서 저도 모르게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부터는 제 의지와 상관없이 충만하게 기도를 했고 온 몸이 열기로 뜨거웠고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채 충만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뒤에 목자님께서는 제가 성령을 받으셨다고 선언을 해주셨고 그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오열을 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저는 원래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 아니고 참 강한 사람이다라고 믿고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성령을 받을 때뿐 아니라 사실은 그 뒤로 계속 교회올 때마다 눈물이 계속 납니다. 아마도 성령을 받은 감동도 컸고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해주시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날 교회에서는 성령 받은 것을 축하해주시기 위해 이미 집에 가 계시던 장모님을 비롯해서 온 가족을 교회로 다시 불렀고 케잌을 준비해서 온 성도님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습니다. 장모님은 너무 기분이 좋으셨는지 춤까지 추실 정도셨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성령을 받고 제가 40여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은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담배를 너무 좋아했고 그래서 건강 때문에 몇번이나 끊으려고 했어도 의지대로 잘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령을 받고 나서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 것입니다. 제 의지로 담배를 끊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담배를 끊도록 도와주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드디어 5월 14일에 전 성도님들이 축하해주시는 가운데 세례를 받았습니다. 평소에 남들이 세례 받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정작 제가 세례를 받고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 자체가 저에게는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을 하면 눈물이 납니다.

     지금까지 참예수교회를 출석하면서 성도님들께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교회생활을 하는 것이 인생의 큰 낙이 되었고 세상의 그 어떤 즐거움보다 큰 기쁨을 교회에 올 때마다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천국가는 그날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성도님들은 저에게는 모두가 천사이십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지금까지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신 가족들과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것으로 간증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할렐루야!

    <김병일 형제와 손녀 김보아 자매>

    김병일 형제 간증 유튜브영상

  • [성도간증] 낚시배와 브레이크 라인

    [성도간증] 낚시배와 브레이크 라인

    백남리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부터 저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은혜의 간증을 하겠습니다.

    ▶ 첫 번째 간증 : 낚시배 이야기

    제 아들인 재웅이가 낚시를 좋아해서 재웅 아빠가 한국에 들어오면 가끔 속초 동명항을 갑니다. 그 날도 낚시를 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일어나 우리 가족 셋만 타고 출발하는 낚시배를 예약하였습니다.

    저는 출발전에 기도하기 위해서 “잠시 화장실좀 갔다 올께요” 하고 공중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그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장소가 적당하지 않았지만  진심을 다하여 짧은 기도를 드렸고 든든한 마음과 설레는 마음으로 가자미를 잡기 위해서 배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런데 출발 후 5분도 되지 않았는데 배가 갑자기 멈추었고 선장님이 배 아래로 왔다 갔다 하시더니 조타실(엔진이 있는 곳)에 물이 차서 배가 가라앉게 생겼다고 하셨습니다. 주중에는 고기를 잡는 고깃배이고 주말에는 낚시꾼들을 대상으로 30년을 배를 탔는데 이런 일은 난생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셨고 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해양경찰에 급히 신고하였고 바로 해양경찰이 와서 사고조사를 하면서 조타실에서 물을 퍼내는데 대형 고무 물통 2개에 물이 가득 찼고 결국 고깃배는 인양하여 엔진을 완전히 교체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선장님은 미안해 하시면서 전액 환불을 해주셨고 우리 가족은 가자미를 잡기 위해서 다른  배를 타고 다시 낚시를 하러 출발했습니다. 배를 타고 가면서 방금전에 화장실에 가서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 셋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 하니 앞이 깜깜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를 지켜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후 저는 눈을 뜨고 기도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기도 드리고,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그 마음을 크게 보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두 번째 간증 : 브레이크 라인 이야기

    지난 가을 금요일 아침 일찍 일을 마치고 다음 장소로  일하기 위해 이동하려고 출차를 하는데 마침 반대쪽에서도 주차를 하려고 올라오는 차가 있어 저는 자연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내리막길로 주차장을 빠져나왔고 평지로 내려와 바로 앞에 방지턱이 있어 살짝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쑥~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어 이건 뭐지? 난생처음 경험한 일인지라 느낌이 이상했고 평지에서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자 확실히 내 차에 문제가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사이에 차는 왕복 6차선으로 합류했고 이대로 직진하다가는 신호등은 완전히 무시하고 큰일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상등을 켜고 바로 보이는 사거리에서 무조건 좌회전을 해서 한적한 언덕길로 올라갔습니다. 놀랜가슴을 부여잡고 보험사를 부를까 했는데 아무래도 주정차 딱지 구역이라서 안될것같아 다시 놀랜가슴으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내리막길로 다시 차를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50미터 앞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할머니 두분이 느릿느릿하게 건너고 계셨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의 인생이 너무나도 억울하게 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순간 이상황을 냉철하게 생각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겼고 “내리막과 미끄러운 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지 말고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려가라는 재웅이 아빠의 말을 생각나게 해주셨고” 그렇게 했더니 다행히 조금은 천천히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할머니 두 분은 아직도 겨우겨우 횡단보도 끝을 향해 이동중이였고 저의 차는 간신히 할머니들을 피해 우회전을 해서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여 보험사에 신고를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멈추질 않습니다 하고 신고했더니 20분 뒤에 견인차가 왔습니다. 아~ 내 차를 끌고 가기 위해서 왔고 차에 큰 문제가 있구나 확신을 했습니다.

    견인차 아저씨가 저의 차를 살펴 보시더니 왼쪽 타이어에 기름이 새네요 하셨고 브레이크 라인이 끊어진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생처음 견인차를 타게 되었고 조금전 있었던 일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반대쪽에 올라오는 차가 있었는데 다행히 부딪히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고 평지에 내려와 방지턱을 넘는 순간 브레이크를 밟을때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카센터에 가서 브레이크 라인을 교체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건을 저에게 경험하게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저를 주야로 살피시고 계심을 각인시켜 주셨습니다. 한순간의 사고는 예측 불허지만 하나님 의지하고 섬기는 것은 나의 마음이 중심이 되고, 내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님과사모님을 따라서 심방을 하다 보면 대상자 분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가 다 있더군요. 남편이 반대를 해서, 부인이 반대를 해서, 아들이, 딸이 반대를 해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저 역시 이방 결혼하여 아직도 그런 가정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와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확고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수없이 인내하시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으로 감싸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성도간증]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천안교회 이찬우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하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였다. 학교에서는 다른 세상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입에 욕을 달고 살았고, 두려움 때문에 식사 전에 기도를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또한 예배시간에 항상 지각을 했으며 야간자율학습 때문에 학교를 빠지는 것에 대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만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을 정도의 미지근한 신앙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진로를 결정해야하는 시기가 왔다. 대학을 진학하고 과를 정해야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고3이 되기까지 나는 하고 싶은게 없었다. 그러던 중 고은쌤과 상담을 하게 되었고 체육교사로 진로를 정하게 되었다. 내 성적에서 가능한 교사 직업이었고 나 역시도 이 진로가 마음에 들었다.

     체육교사로 진로를 정한 이유에는 형의 영향이 있었다. 형은 기타를 전공하며 들인 돈과 시간과 노력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다고 포기했다. 물론 그런 모습은 믿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에 맞는, 안식일을 잘 지킬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공무원 아니면 교사를 하자는 마음가짐을 먹었고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체육입시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체육교육과는 성적도 어느 정도 나와야 했기 때문에 나는 수능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게 되었다. 수능 전까지는 일주일에 3번씩 학원에 가서 운동을 했고,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학교에 남아서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이 당시에 처음으로 우리 교회에서 생긴 문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3들을 위해 밤마다 모여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이었지만, 가끔씩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능 당일이 되었고, 나는 수능을 망치고 말았다. 가채점을 한 나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고 학원 선생님께 큰일이 났다고 전화 드렸다. 학원에서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가장 먼저 권한 것은 재수하는 것이었다. 실기 점수로 부족한 수능점수를 만회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들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재수하는 것을 반대하셔서 무산되었다. 두 번째 방법은 강원도에 있는 사범대를 가는 것이었다. 타 지역의 사범대에 비해 성적 커트라인이 낮았기 때문에 나도 충분히 지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엄마께서 신앙생활을 이유로 반대하셨다. 그래서 나는 그냥 더 열심히 해서 실기 성적을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 측에 사정을 말해 학교 대신 체육학원을 가는 시즌이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9시에 학원에 가서 밤 9시까지 운동을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이때만큼 힘들고 이때만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다. 중간에 나는 손목 골절을 당했지만, 깁스를 하고 학원에 가서 운동을 할 만큼 열심히 했다. 그리고 수능을 망치게 된 것은 내가 기도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밤에 학원이 끝나면,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가서 기도에 참여했다. 정말로 기도를 많이 했다. 실기 성적을 올리기가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이 해주셔야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실기 당일이 되었다. 나는 아침부터 실기 시험을 보는 중간까지도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그토록 무언가를 바라본 적이 없었을 만큼 나는 간절히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기 성적은 그 자리에서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내가 불합격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공무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버스 안에서는 학원 친구들이 자신들의 실기 성적을 얘기하며 떠들고 있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공무원 시험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 저녁에 집에 도착해 부모님께 대학을 가지 않고 공무원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화를 많이 내셨다. 내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이 결정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더 이상의 방법이 없어진 나는 결국 현실을 도피하기로 했다.

     집에서 나와서 나는 친구들을 불러 피시방에 갔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서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고, 어느덧 늦은 밤이 되어버렸다.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 가출을 하기로 결심했다. 대부분 찜질방에서 자고 낮에는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내가 가출한 동안에 나에게 많이 연락했지만, 그 내용은 나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그 때는 학생부 영은회를 가는 주였고, 엄마는 나에게 빨리 와서 영은회를 참석하라고 계속 연락하셨다. 나는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이제는 돈도 없고 너무 추워서 결국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집에 들어가겠지만, 영은회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영은회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안식일에도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영은회 출발하는 안식일까지 들어가지 않으면, 영은회를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들어온 집에는 초은이와 경석이가 있었다. 영은회를 참석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엄마가 부른 것이었다. 초은이는 입시 때문에 영은회 중간부터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 때 나도 같이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초은이가 영은회에 가는 날 아침에, 엄마는 나에게 영은회를 가라고 소리 지르며 내 짐을 대신 싸주셨다. 그리고 집사님께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했고 경석이도 간다면서 나를 설득했다. 나는 정말로 억지로 차에 타게 되었다. 그런데 차에는 경석이가 없었고 엄마에게 속았다는 마음에 매우 화가 났다.

     이미 차는 전주로 향하고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이런 마음으로 영은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이때부터 이미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주에 도착한 이후에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나는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도망을 쳤다. 도망은 쳤지만, 어떻게 할지를 몰라서 그냥 나는 어떤 산 위에 올라가 벤치에 한 시간 정도 앉아있었다. 날씨는 너무 추웠고 나는 일단 천안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터미널을 간 후에 천안 가는 버스를 탔다. 그 사이 집사님께 소식을 들은 엄마는 영은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좋으니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천안에 도착한 후에 집에 가는 버스인 12번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12번 버스가 없었다. 알고 보니 타는 곳에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일부 버스 정류장이 바뀌게 된 것이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그냥 아무 버스나 타고 가기 시작했다. 아는 곳이 나오면 내리기로 생각했지만 점점 이상한 데로 가게 되었다. 결국 버스가 모여서 쉬는 곳까지 도착한 나는 그 곳에서 혼자 내리게 되었다. 그 날은 눈이 엄청 오는 날이었고 주위에는 온통 도로밖에 없었다. 나는 일단 걸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걷다보니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그래서 거기로 가서 택시를 타든 버스를 타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이 많이 왔기에 아파트 단지로 가는 길이 잘 보이지 않았고 주위를 살피던 중 하천에 돌다리를 건너가는 길을 발견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아파트를 가고자 언덕을 내려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눈에 미끄러져 넘어졌고 손으로는 가시나무를 짚고 말았다. 손에서는 피가 흘렀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수 없었다. 내가 넘어질 때 마귀의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웃음소리를 듣고 나는 뒤를 돌아봤지만 사람은커녕 새 한 마리도 지나가지 않았다. 집에 들어갈 마음이 없었지만, 나는 무서운 마음에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 후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교회의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전화가 엄청나게 와 있었다. 이를 모두 무시했고, 신기한 체험은 했지만 여전히 내 신앙은 밑바닥이었다.

     아직 내 마음이 강퍅한 가운데, 총회 행사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바로 고3수련회였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나를 더욱 강하게 설득했다. 나는 친구들의 전화를 모두 무시했다는 것과 강퍅한 마음 때문에 가기 싫었지만, 결국 억지로 참석하게 되었다. 고3수련회에 가서 들은 첫 강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내용이었다. 어떤 형제가 공무원이 되었는데 지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려고 다시 시험을 보았고 붙은 것을 자랑했다고 했다. 그런데 목자님께서는 그것이 불쌍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인데 그것이 불쌍하다는 목자님의 말씀이 이해가 안됐다. 경쟁하지 말라는 강의를 시작으로 나는 요셉의 삶이 어떠했는지 고3수련회를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세상에서 경쟁하며 살아가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고3수련회는 그동안의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조금은 똑바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대학입시의 「다」 군에 썼던 일반 4년제 컴퓨터공학에 합격하게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진학할 대학교와 전공할 과를 선택한 이유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 「다」 군에는 체육교육과를 쓸 수가 없으니까 그냥 아무거나 넣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너무 자퇴가 하고 싶었다. 오고 싶지 않은 학교였던 것도 있지만, 수업에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하루는 무슨 프로그램을 짜라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친구들 것을 베끼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퇴하는 것은 부모님이 반대하실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에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공무원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에 공무원 교재를 펴서 공부했고 수업도 가기 싫으면 그냥 안 갔다. 여전히 난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른 채 내 계획만을 세우기에 바빴다.

     대학에 들어가면 빼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술 문제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신앙에 다시 적신호가 들어온 것은 바로 술 때문이었다. 신앙 안에서 술에 대한 조언을 들으면 항상 처음이 중요하다고, 처음에 인식을 확실히 박아둬야 한다고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첫 개강파티에서 거부하지 못하고 술을 마셨다. 그 후에도 나는 술자리에 많이 갔고, 나와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선배가 있어 항상 옆에 나를 앉히고 술을 마시게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뿐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과 삶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학기가 끝이 나고 나는 내 기도제목을 내가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임을 밝히는 것으로 정했다. 기독교인임을 밝히고 술을 마시지 않고 기도할 때도 당당한 모습이 되는 것이 내 소망이었다. 방학동안 이 기도제목을 놓고 계속 기도했고,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개강파티 날이 잡혔다. 개강파티 전 날, 날 좋아하는 선배에게 개강 파티 날에 자기 옆에 앉으라고 카톡이 왔다. 나는 두려웠다. 기도는 했지만, 여전히 나는 소심하고 연약했고 또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를 것 같았다.

     개강파티 당일이 되었고 선배들이 술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내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되었다. 선배들과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나는 기독교인이라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미 많은 술자리에서 술을 먹었던 나였기에 이 말을 하자, 나는 많은 욕을 먹었다. 그러나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술을 마시지 않았고 밥 먹을 때도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겁 많은 내가 기독교인임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시고 용기를 주셨기 때문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점점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인도해주시는 분이신지 내 안에 증거를 쌓아갔다. 그래서 원하지 않던 대학, 원하지 않던 과였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하자고 결심하게 되었다.

     당시에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역을 주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격 없고 능력 없는 사람인데 하나님께서는 왜 나를 세우시고 사용하려 하실까? 나에게 있어 큰 의문이었다. 자기 신앙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내가 어떻게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감사보다는 원망만 했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감사하는 찬양인도를 할 수 있는가?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셨기에 부족한 내가 쓰임 받을 수 있도록 나를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셨다. 교사훈련학교와 단기신학을 통해서 교사는 어떤 직분이며 찬양은 어떤 것인지 배우게 되었다. 마귀의 음성을 들었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모태신앙으로 듣기만 한 하나님은 그저 머리로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거치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육신적으로 보면, 나는 실패한 사람이었다. 수능을 망쳤을 때, 실기를 못 봤을 때, 대학에서 불합격 통지가 왔을 때, 부모님이 내 의견에 반대 했을 때 나는 언제나 실패한 사람이었고 내 모든 노력은 헛수고였다. 그래서 내 기도는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그 걸음을 걸으셨고 아무도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나사로를 치유하셨다. 내 계획은 실패한 것이 맞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생각지 못한, 나의 계획을 훨씬 초월하여 나를 만들어가고 계셨다. 내가 영은회에 가지 않고 도망쳤을 때, 버스 정류장이 바뀌어 있던 것, 내가 모르는 곳에 내리고 넘어져서 마귀의 웃음소리를 들은 것, 일반 4년제 컴퓨터공학에 입학한 모든 게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나를 인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너무 끈질긴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배워온 나이지만, 나는 그것을 잊고 그 사랑을 거부했다. 안식일을 범하였고 영은회에서 도망쳤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 예배를 소홀히 여겼고 세상 사람과 같이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아오라고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고3을 위한 기도를 만들어주신 것도, 엄마가 영은회에 참석하라고 하신 것도, 교회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나한테 전화한 것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짖음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다. 변화하고 성장한 내 모습이 그것의 결실이며 증거이다. 그래서 또한 하나님은 나에게, 끈질긴 사랑의 하나님이다.

     고등학교 때의 일을 쓰는 것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당시의 일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린다. 아직도 하나님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지만, 여전히 내 삶에 역사해주심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내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멘.

  • [성도간증] 태풍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강남교회 허민욱 형제)

    태풍 속에서 지켜주신 하나님

    강남교회 허민욱

     

    지난 5월 우리 가족(4명)은 괌으로 여행 중, 한국 뉴스에도 크게 보도된 바 있던 태풍(마와르)을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인간의 연약함과 일상의 감사함에 나누고자 합니다.

     

    아내가 모아두었던 항공 마일리지가 올해 6월말에 일부 소멸된다는 소식에 우리 가족은 6월이 가기 전 5.20(토)저녁부터 24(수)까지 4박5일 일정의 괌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획한 4박5일 일정은 ‘태풍’이라는 변수를 만나 9박 10일의 일정이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시작 전부터 남달랐습니다. 여행전날 아내는 자전거 낙상사고로 턱을 다쳐 턱을 꿰매는 수술을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상처소독을 위해 방문한 병원에서 물에 절대 들어가선 안 된다는 당부를 들었습니다.

     

    물놀이를 위해 괌에 가는데 아내가 물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아내는 괜찮다며 담담했습니다. 소독 후 빨리 교회에 예배드리러 가기 위해 집에 왔더니 집에서 기다리던 첫째 예안이는 아프다며 울고 있었습니다. 아픈 적이 별로 없던 예안이었기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내는 턱과 손, 팔이 다치고 예안이는 열이 나고…이제와 생각해보면 이번 여행의 경고는 아니었을지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 지불한 경비와 일정을 고려했을 때 이미 계획한 여행을 포기할 수 없어 아이의 해열제를 넉넉하게 챙기고 괜찮겠거니 하며 여행을 떠났습니다. 물론, 태풍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이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부랴부랴 공항으로 출발하여 한국시간으로 자정에 괌에 도착했습니다. 첫째 날은 아름다운 경치를 둘러보기 위한 투어를, 다음날부터는 바닷가 앞에 위치한 호텔에 투숙하며 마음껏 수영하는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은 하나하나 어그러져 갔습니다. 여행 둘째 날, 둘째 유겸이도 고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고열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여행 내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계획했던 투어는 예상치 못한 지역행사로 차가 엄청 막혀 계획한 곳 중 1군데만 겨우 구경을 했습니다. 다음 날 계획한 돌고래 투어는 선착장으로 가는 버스의 고장으로 시간을 지체했고, 90프로이상의 확률로 볼 수 있다는 돌고래도 보지 못했습니다. 여행 중에 예상치 못한 ‘불행’이 계속 생겼습니다.

     

    돌고래투어를 마치고 22일(월) 바닷가에 위치한 숙소에 체크인을 할 무렵 수요일로 예정된 항공편이 결항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간신히 귀국일정을 앞당겨 23일(화) 오후 5시 귀국편으로 예약변경에 성공했지만, 24일(수) 상륙할 태풍으로 인해 23일(화) 아침부터 괌은 외출자제 명령이 발효됐고, 23일 귀국편 모두 결항처리 됐습니다. 괌에서 25일, 26일, 27일, 28일, 29일 등 수없이 귀국편 예약변경을 시도했으나 우리는 태풍으로 인해 결국 6일 더 체류하며 30일(화) 자정에 입국하게 됩니다.

     

    괌에 상륙하게 된 태풍은 현지에서도 60여년만의 태풍이었다고 합니다. 태풍 당일의 공포도 상당했지만 태풍의 영향은 그 이후에도 막대했습니다. 태풍으로 숙소의 물과 전기 공급이 끊어졌고 공항의 활주로 및 기계장치의 파손으로 1주일간 공항은 폐쇄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3천명의 한국 관광객들이 괌에 발이 묶였습니다.

     

    괌에서 경험한 태풍은 일상의 많은 것들을 바꿨습니다. 태풍은 단 하루 지나갔을 뿐인데 자연은 비참하게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물과 전기를 찾아 떠도는 유랑민(?)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물이 끊어지자 당장 씻을 수 없고 화장실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는 불편함이 발생했습니다. 에어컨이 가동 안 되니 더운 날씨로 인한 습함, 찝찝함으로 씻고 싶어도 참아야 했고, 화장실을 가고 싶을 때는 물이 나오는 건물을 수소문하여 돌아다녔습니다.

     

    또한, 전기가 끊어지자 15층에 투숙하던 우리 가족은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시로 1층까지 오가는 과정에서 계단을 이용하여 왕복해야 했고, 핸드폰 충전을 위해 전기가 공급되는 호텔을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또한, 전기를 통한 빛의 공급이 차단되자 야맹증이 있던 저는 아내를 의지하여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어둠 속을 돌아다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속에서 단지 태풍이 하루 지나갔을 뿐이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았던 문명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었고 그 속에서 익숙해진 편리함을 찾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유랑하는 저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공포로 다가왔던 태풍을 통해 하나님의 크심을 생각해보는 한편 편리함이라는 울타리 속에 익숙해진 채 편리한 문명을 좇는 저의 모습을 보았다고 할까요?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 일상의 삶 속에서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오던 물, 전기 그리고 인터넷이 제한된 채 6일을 괌에서 체류하는 동안 불편함과 불안함이 있었지만 또한 편리한 생활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던 제 모습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그러한 불편하고 불안한 상황 속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떠한 원망의 말도 하지 아니하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해 나가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여행 시작 전, 후로 계속된, 소위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원망과 짜증보다는 이보다 더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없다며 농담을 던지는 가운데 태풍을 만난 후 일상의 편리함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적응했습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 고열에 시달렸던 아이들은 짧은 시간 내 컨디션을 회복하여 태풍 후 매일같이 바닷가에 나가서 모래놀이와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수영장에서 물을 수시로 길어 나르고 빨래 등 힘쓰는 일에 애쓰고, 아내는 계속하여 최신 상황과 정보를 업데이트하여 제공해 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첫째가 여행 떠나는 날 아팠기 때문에 충분히 한국에서 챙겨간 약으로 여행 중 아이들이 아파도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습한 날씨로 인해 고열 발생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약이 부족하여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여행 초기에 이틀 정도의 열감기만 있었고, 면역력이 생겼는지 체류하는 가운데 습한 날씨에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희가 머무르는 숙소는 시설이 썩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태풍으로 인한 전기, 물이 차단되는 상황에 최적화된 곳이었습니다. 일부 호텔은 연장이 안 된다고 투숙객을 내좇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가 묵은 곳은 귀국까지 연장을 해줬습니다. 태풍으로 식당과 상점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호텔에서 기본 쌀밥을 메인으로 하루 3끼 도시락을 귀국까지 제공해줘서 다른 관광객처럼 식당을 찾아 헤매거나 아이 밥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방 안에는 기본적으로 정수기가 있어서 생수를 구하러 애쓸 필요도 없었고, 각 층마다 제빙기, 전자레인지가 있고 공동 시설에 세탁기, 건조기가 있어서 전기가 한시적으로 들어올 때면 밀린 빨래를 하고 도시락이 질릴 때면 취향에 맞는 음식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셨다고 생각합니다.

     

    60년 만에 찾아온 태풍을 괌에서 만났지만, 그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크심과 물질의 익숙함 속에 살아가는 나를 보게 하시고, 어려움 속에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주셔서 이 삶을 살아가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성도 간증] 하나님 주신 최고의 선물_이솔지 자매, 변지율 형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성령은 참예수교회의 10대 신앙에도 ‘천국기업을 얻는 보증’이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 간구해야 하고 성령 충만을 위해 항상 말씀과 기도로 채우고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이번 2023년도에 그런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이자 선물인 성령을 받은 두 친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성령’을 받은 두 친구의 간증을 통해 모든 성도님들과 은혜를 나누려합니다.

    이솔지 자매(18세)

    Q1. 성령을 받은 소감은?

    항상 상상으로만 성령 받는 것을 생각했는데 성령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뭔가 얼떨떨하면서 믿기지 않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Q2.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했나요? (기도과정 또는 기도제목)

    학생부 영은회에서 받았는데, 당시 기도회가 한번 남아있던 상황이라 더욱 간절하게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제가 최고의 선물을 받고 갈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Q3.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

    성령을 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령을 의지해서 살아가야겠고, 더욱 기도에 힘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변지율 형제(17세)

    Q1. 성령을 받은 소감은?

    ‘너무 기쁘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쁩니다. 성령을 받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기도를 하면 할수록 제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실감나고 믿겨졌습니다.

     

    Q2.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했나요? (기도과정 또는 기도제목)

    학생부 영은회에서 아침에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간절히 기도하고 제가 낼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큰 소리로 기도했고 다른 생각하지 않으려고 오직 성령을 받을 생각만 가지고 눈을 뜨지 않으려 노력하며 기도했습니다.

     

    Q3.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

    성령을 받았으니까 앞으로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매일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실천해서 성령을 힘입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지 않고 주시기만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음으로 끝이 아니라 아직 남은 구원의 여정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런 여정을 걸어갈 때 힘을 주고 도움을 줍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포기하지 말고 더욱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주시기 위해 예비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에 게으르지 않고 말씀을 읽는 영성관리에 힘을 쓰고, 성령을 힘입어 세상을 살아갈 때 내 기준이 아닌 성령이 기준이 되는,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간증]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천안교회 유정아 자매)

    [성도간증]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천안교회 유정아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희 가족 구성원은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저까지 3명입니다. 잦은 업무로 인해 바쁘셨던 아버지였기에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할머니는 저의 엄마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이모할머니(대방교회 서정임)께서는 할머니를 전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주말에도 일을 나가시거나, 일이 없는 날에는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셨고, 남은 저는 할머니와 시장 구경을 가거나 할머니들의 수다 모임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유일한 친구였던 할머니가 없자 토요일은 제게 너무나도 심심했습니다. 하루는 심심한 나머지 ‘그냥 한 번만 따라갔다 와볼까?’라는 생각에 할머니께 나도 데려가라, 따라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모할머니를 만나 셋이 함께 천안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천안교회에 대한 첫인상은 엄청난 환영이었습니다. 교회에 도착한 뒤부터 집으로 갈 때까지 엄청난 환대와 기쁨으로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고, 다음주 안식일이 찾아왔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빈둥거리며 누워있는 저에게 “정아, 교회 갈 준비 안 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했습니다. 그냥 딱 한 번만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당연하단 듯 준비하라는 할머니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왜 그랬는지 저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교회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다음주에도, 또 그 다음주에도.. 교회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에 다니게 됩니다. 사실 저의 성격은 줏대 없이 누군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그냥 흘러가듯 사는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심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2018년 8월 2일 할머니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하나님께로 가셨고, 남겨진 아버지는 절망을 표했습니다. 한 편으로는 저에게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끼셨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눈물이 많으면서 왜 할머니의 장례식엔 울지 않냐며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선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고, 가장이 아님에도 가장처럼 늘 가족을 챙겨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장례식장에 얼굴도 비추지 않았던 몇 명의 가족들과, 어려서부터 저를 키우시고 보살펴주셨던 할머니인데 그에 비해 울지 않는 저에게 많은 서운함을 느끼셨던 것입니다. 물론 저도 당시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프긴 하였지만, 그보다는 하나님께서 안전히 잘 데려가셨으리라는 생각으로, 안도와 평안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슬픔보단 평안의 마음이 클 수 있었던 이유는 기도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에 할머니에 비해 기도 생활이 좋지 않았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또 매일 밤 자기전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시는 할머니와 달리, 저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마치 ‘나는 이렇게 기도 안 하니까 안심하세요’라는 둥 아버지 앞에서는 기도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당시엔 저까지 성령으로 기도해버리면 늦둥이에 외동인 저를 망쳤다며 안 그래도 심했던 핍박이 더 심해질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인도하실지 모르는 일인데, 하나님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또, 그래서인지 기도 습관이 들지 않았고, 까먹는 날도 종종 있었습니다. 무튼, 할머니께서 편찮으신 뒤로 일어날 힘과 기도할 힘조차 없으셔서 이전보다는 기도를 많이 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또, 날로 악화되어서 나중엔 거의 못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갑자기 조급함과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워 계신 할머니 앞에서 성령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할머니와 같은 방, 하나의 침대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왜인지 잠도 잘 들지 않았고 새벽 2시쯤 물을 마시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 할머니께서 숨을 쉬시는지 확인하였습니다. 원래 같으면 한 번 깰수록 더 깊이, 더 오래 잠이 들었을 텐데 그날은 잤다 깨었다를 반복하였고 할머니의 상황을 연신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할머니께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만약 제가 평소처럼 깊이 잠이 들었다면 저는 아침에 해가 밝아서야 할머니의 상황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하나님께서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평안한 마음과 하나님께서 안전히 잘 데려가셨으리라는 믿음이 들었을까 싶습니다.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허나 아버지는 믿음이 없으셨기에 이게 다 교회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에 다니는 저의 모습을 극도로 싫어하셨고 슬퍼하셨습니다. 영은회의 시작을 알리는 영은회 엽서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적도 있고, 그 밖에도 직접적으로 싫음을 표현하셨습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는 원래도 교회, 특히 방언 소리를 싫어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리에 민감하고, 잠귀도 밝고, 업무로 인해 지쳐서 피곤한 아버지의 귀에 할머니께서는 매일 저녁 성령으로 기도하시고 주무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도 이해는 갔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핍박이 심한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년도 코로나로 인해 아버지의 교회에 대한 핍박이 이제는 더 이상 핍박이 아니라, 교회에 가지 말라는 통보로 바뀌었습니다. 코로나가 뉴스로 보도된 날 이후로 저는 교회에 가지 못하였고, 몸이 멀어지니 마음도 멀어진 건지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하나님보다 사람을 보러 교회에 갔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멀어지고 저는 저의 욕심을 채우기에 바빴습니다. 이전에 목자님께서 아버지의 교회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유해지기 위해선 교회 생활에도 열심을 다 해야 하지만, 지금 내가 세상에서 맡겨진 일(학생)에 대해서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처음엔 열심히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학업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성적이 점점 좋아질수록 나의 욕심은 커져만 갔고, 이젠 더 이상 아버지를 위함보단 나를 위함이 되어버렸습니다. 공부의 습관도 처음엔 문제집을 풀기 전과 후에, 하나님께 기도하며 능력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이후엔 점점 귀찮아하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10초 정도 되는 시간 동안만 기도하거나 그마저도 하지 않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는 처음엔 교회와 가깝다며 좋아했지만, 나중엔 교회 언니 오빠들을 만날까 조마조마한 적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언니 오빠들과 선생님이 언제나, 저를 포기하지 않고 시간 내서 만나러 학교 앞까지 와주고 계속해서 심방과 편지를 써주었다는 것입니다. 만나서 안부를 묻고, 가끔은 따끔한 권면도 그 당시에와 지금 모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써주신 편지들을 꺼내서 읽어보면 당시의 제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교회와 학교가 가까웠던 것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죄에 대한 생각도 커져만 갔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 하나하나 의미부여를 하며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동아리인 공채반에 들어가면서 토요일에도 학교를 나와 강의를 듣고 자습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퇴출이었습니다. 매주 안식일에 교회가 아닌 학교를 선택하는 제 모습을 보며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의 발걸음은 학교로 향했습니다. 세속적인 욕심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저는 피부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치 여드름의 개수가 내 죄의 개수라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시달렸고 주기도문을 할 때에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와 같이 죄에 관한 내용에서는 더 온 마음을 다해 기도드렸습니다. 성경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율법주의적인 행동을 보였습니다. 죄책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마음인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그 죄책감으로 인해 하나님과 더 멀어지는 것임을 알면서도 죄책감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율법을 모두 지키며 살아간다는 바리새인이라 해도 사랑은 실천할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다 지킬 수 없음을 이제는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외식하는 자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 부족함을 계속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고 사모한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고 하나님께 메달린다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이전보다 나은 거룩함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참 감사한 것은, 제가 그렇게 방황하던 와중에도 매일 성경읽기와 기도하기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의 사랑과 권면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제가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기도는 기도라 칭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매우 짧고 형식적인 기도였습니다. 가끔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성경 읽기도 묵상은커녕 그냥 읽는 것 조차도 힘들어했고, 자기 전에 누워서 혹은 소위 랩을 하듯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 채 읽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형식적인 기도와 말씀 읽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형식적으로 말씀을 읽는데, 그냥 또 아무생각 없이 읽었음에도 말씀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열처녀의 비유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미련한 5명의 처녀들을 보며 ‘이건 나다.‘라는 생각과 함께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교회로 가야지, 이제는 돌아가야지, 이제는 그만해야지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렸듯 세상을 향한 욕심과 부모님의 기대, 그리고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부담감이 쌓여 계속해서 저를 망설여지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귀가 심어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선 저의 그동안의 이런 생각들이 무색할 정도로 말씀 하나만으로 저를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위대하고 힘 있는지를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형식적이더라도 말씀 읽기와 기도가 습관화 되어야 함을, 그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도들과 눈물이 있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바쁜 와중에도 매일같이 새벽기도에 참석하며 기도해준 친구, 피곤한 와중에도 멀리 사는 저를 위해, 영은회에 더 오래 참석하게 하기 위해 차량 운행 해주시는 선생님과 성도님 등등..!! 정말 많은 성도님들을 보며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젠, 그 받은 사랑을 나도 전하고 실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끝으로, 제가 슬픔보단 평안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를 아버지도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실 저희 아버지께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자존심이나 세상적인 것들을 선망하는 모습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모습을 상상할 땐, 저에겐 영화같은 이야기,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요리 솜씨가 있으신 아버지가 주방에서 봉사하는 모습도 상상해봅니다. 이렇게 소망하며, 계속해서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다가도 중간에 한 번씩 소홀해지거나 지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이를 위해 ’분명 하나님의 때가 있을 것인데, 그보다 더 빨리 허락하여 주시고 싶을 만큼 간절히 기도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더 간절히,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계속해서 구한다면 곧 이루시리라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여 주세요.

     

     

    지금까지,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오실 때까지 깨닫고, 사모하며 살기를

    내가 죽고 그가 사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살전 5:24)

  • [성도간증]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공관택 형제)

    [성도간증]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공관택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하기 앞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부족한 능력을 가졌지만 합격을 하게 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저라는 사람을 스스로 돌아보면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은 ‘제가 신학에 합격하게 된 것은 정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간증은 저를 신학 지원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 인생에 정말 많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있었지만 오늘 간증은 이 신학 지원과 관련된 것 혹은 그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것들 위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원래 신학 지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믿음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사실 신학 지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굉장히 억압받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신앙을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은 공감하실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일예배와 안식일에 교회를 빠지는 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부터 시작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분위기 속에서 자라다 보니까 교회에서만큼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보이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께서 저를 보시면 밝게 웃으시면서 ‘관택이는 나중에 목자님이 돼야겠구나!’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제 마음의 중심을 알기 때문에, 나름 신앙에 대한 열심을 가진 이후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의 인식이 ‘저 사람은 신학을 하려고 하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거야’라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신학은 안해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참 신기한 점은 저는 신학을 절대 지원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신학 지원을 준비하면서 제 삶을 돌아본 결과 가장 크게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제 삶을 신학 지원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제 삶의 어떤 부분을 돌아보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사건은 제가 5살에서 6살 시절 대방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안식일 오전 말씀을 마치고 기도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한창 탱탱볼을 가지고 노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이제 옆에 계셨던 어머니를 졸라서 아직 예배가 안 끝났는데 나가서 놀고 싶다고 옆에서 자꾸 찡얼대니까 어머니가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교회 앞 도로에서 탱탱볼을 던지며 놀다가 이 탱탱볼을 쫓아 도로 가운데로 뛰어들었고 트럭에 치여 날아가 머리부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차에 치인 제 모습을 보시고 제가 바보가 될 거라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10일 정도 입원하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말씀드리면 부모님께서 이 사건을 계기로 예배 시간 엄수와 예배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가르치게 되셨다는 점과 다른 한 가지는 제가 무사히 낫게 되면 꼭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 이후로 제가 자라는 환경이 신앙 안에서 바른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다음은 시간이 조금 지나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성령을 받았던 일입니다. 성령을 받은 기억은 모두가 특별하지만 저에게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을 굉장히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장흥진 목자님이 거제교회 목자님으로 부임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특별 기도회를 하셨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은 날도 기도회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을 때 몸에 번개를 맞은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으며 성령을 굉장히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기도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막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온몸이 떨리는 진동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만하게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두번째는 제가 성령을 받을 당시 눈을 감은 상태에서 딱 한 장면만 계속 반복해서 보였는데 저희 어머니가 얼굴 볼살이 살짝 패인 상태로 피골이 상접한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는 하지만 그런 얼굴로 굉장히 힘든데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그 장면이 계속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사실 이 장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겪는 일(아버지의 교통사고)을 그때 미리 알려주신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중, 고등학생 시절 있었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진로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요 중학생때부터 지금까지도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라따뚜이’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한 생쥐가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는 영화인데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와 요리사의 꿈을 이루는 생쥐를 보며 저도 요리사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잘한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큰 기대를 가지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는데요 절대 안 된다 반대를 하셨습니다. 이유는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운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한 번쯤은 고민하실 줄 알았는데 바로 단칼에 거절을 당하니까 정말 섭섭했습니다. 이때부터 학교성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니까 공부를 해야 될 의욕도 없어졌고 막바지에는 학생부 영은회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까지 신앙생활에도 공부에도 그렇다고 무언가 다른 진로를 찾는 것에도 의욕이 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동시에 이때부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는데 똑바로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면 진짜 심했을 때는 하룻 밤 사이에도 몇 번씩 눌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옆으로 누워서 자야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심했는데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도 오랜 기간 동안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요셉 목사님이 부임하셨을 때 상담을 받고 제가 겪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새벽 기도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 신앙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새벽 기도를 하면서 함께 기도한 성도님들과 눈을 감은 상태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세계라는 게 정말로 있구나라는 것을 이 시기에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기도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찾고 요리에 대한 진로는 취미로 놓고, 제 향후 진로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위눌림에 대한 내용은 뒷 내용에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이과에 가야 취업이 잘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고 요셉 목자님과의 상담을 따라서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기계공학과 입학 이후 전공을 듣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수업만 듣고 시험기간에 살짝 몰아서 공부하면 반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까지는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저는 나름대로 공부머리가 있고 공부를 제대로 하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역학과 대학수학 쪽의 과목들은 자신감이 완전히 꺾일 정도로 성적이 안 나왔습니다. 저는 이 시간이 제 마음의 교만함을 꺾어주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부모님께서 저에게 신학 지원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신학을 지원하면 무조건 붙을 것이고 꼼짝없이 목자님을 해야 되는데 목자님은 하기 싫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때 공부해도 제 마음대로 안되는 대학 시절을 통해 겸손한 마음을 가르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군 생활 중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8년 5월 14일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실려가실 때 한 번 저희 옆을 지나갔는데 얼굴이 너무 퉁퉁 부어있어서 가족 모두가 못 알아봤습니다. 이후 나중에 한 번 더 지나갈 때 그때 보고 아버지인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수술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아버지의 몰골을 봤는데요 얼굴에 멍이 없는 곳이 없고 머리가 사람 머리가 이렇게 부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 크게 부어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후부터 보호자 대기실에서 보낸 3일은 저한테 괴로움으로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국어 문학 작품을 보면 가슴이 메인다라는 표현을 보며 이게 무슨 느낌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때 무슨 느낌인지 알았습니다. 가슴속 한가운데가 걸레처럼 짜이는 듯한 느낌이 나고 뭔가 항상 걸려 있는 것처럼 물을 마셔도 밥을 먹어도 잘 안 넘어갑니다. 눈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진짜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곳을 찾다가 찾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 칸에 들어가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엔 뭘 구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냥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요 이 기간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똑같이 화장실 칸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아무런 근거도 그냥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을 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냥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때 저는 즉시 알았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음이 분명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제 삶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전역 이후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계획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지금의 생활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땠을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죽어가는 모습으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고 진심으로 제가 아플 수 있다면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나와 사람들을 보시는 마음과 시선에 대해 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쓰임이 신학이라면 신학 지원을 해야겠다고 이때 결심했습니다.

     

    장종규 목자님께서 저에게 2020년도에 신학 지원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님이 신학 권유를 해주시기 이전에 신학 권유를 처음으로 해주셨던 분이 어머니였기 때문에 먼저 신학 지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고 어머니는 저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관택아, 너는 눈치가 없고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좀 하고 신학 지원을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이번 19기가 아니라 다음이나 그 다음 지원을 목표로 우선 대학을 먼저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한 뒤 신학을 지원하기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넘어가는 중에 아버지가 퇴원을 해서 집에 오셨습니다. 사고 직후와 비교하면 많이 회복되었지만 숨 쉬는 것 이외에는 전부 가족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이기에 휴학을 하고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간병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결과 휴학 기간 동안 공부를 해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1년 9월부터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책임감과 의지를 굳게 가진 덕분인지 성적이 빠르게 만들어지면서 이대로 유지하면 6월 지방직 시험에 합격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1년 12월에서 22년 1월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 아버지가 결석 때문에 잠깐 입원한 응급실에서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전체적으로 악화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자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맞는 건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 장종규 목자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목자님은 저희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막힌다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가 제가 19기에 바로 신학 지원을 안 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 부드럽게 돌려서 말씀하시던 목자님이 바로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니까 당시 저는 그 말씀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도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 신학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와 한 약속이 생각나 한번 어머니의 뒤로 숨었습니다. ‘어머니가 사회생활을 하고 신학 지원 하길 원하셔서 저 혼자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말씀드렸더니 목자님이 바로 어머니께 연락하셔서 저와 함께 부르신 뒤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자님이 아주 강력하게 어머니까지 설득하시고 나서 저는 꼼짝없이 이제 신학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확신은 없었습니다. 꼭 지금 신학 지원을 해야 될까 정말 지금 신학 지원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맞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저에게 신학 지원에 대한 믿음을 더하게 해 주셨습니다. 신학 지원을 확정짓고 나서부터 학생때부터 눌리던 가위에 전혀 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가위 때문에 잠자리가 굉장히 예민해서 보통 눈을 감고 잠들 때까지 최소 30분은 정신이 깨어 있는 채로 누워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심 이후로는 누웠다 하면 잠들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새벽기도 생활을 하면서 가위에 눌리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주기적으로 가위는 눌렸었는데 이 이후로는 전혀 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을 푹 자기 시작한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다 22년 10월 아버지가 누워 계시기 때문에 법적인 처리를 대신 할 수 있도록 하는 성년후견개시 심판 청구라는 제도를 신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법원에 저를 후견인으로 인정해 아버지의 법적인 의사 표현을 제가 대신하도록 신청하는 서류를 제출했는데 후견인이 되면 주기적으로 법원에 가서 당사자의 재산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보고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 서류를 제출하기 전날이랑 제출하고 온 날 이틀 연속으로 가위에 눌렸습니다. 그래서 그때 알았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가위에 눌리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구나 그렇다면 지금은 왜 가위에 눌렸을지를 생각해본 결과 그때 제가 한창 신학지원서를 작성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아무래도 저를 후견인으로 신청해서 가위에 눌리는 것 같으니 후견인을 바꾸는게 좋겠다 말씀드렸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전혀 가위에 눌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바램이었던 사회생활도 좋은 기회를 얻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학지원을 위해 신앙과정을 정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통해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믿음의 가정에서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신앙적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조차 없게끔 여러 가지 체험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학 지원하는 데 있어서 얽매이지 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지원하도록 두시지 않고 지금 지원해야 된다고 강력하게 알려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알고 나니까 도저히 신학 지원에 대한 제 뜻이 어떤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지금 저를 둘러싼 상황들을 고려한다면 저는 신학 지원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버지가 집에 여전히 누워 계시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경제적인 것보다 아버지를 돌보는 간병 일이 굉장히 힘들고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신학 지원을 한 이유는 제 인생을 하나님께서 올해 신학 지원으로 이끌어주신 것처럼 저희 가정 또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지원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아직도 가끔씩 의심이 마음에 쌓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때면 기도할 때도 믿음 없는 기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 신학 못합니다. 꼭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제가 정말 하나님만 믿고 신학을 지원 했으니까 책임져주세요’ 라고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하셔서 신학 지원의 길로 인도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도 제 눈앞의 현실은 막막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이 길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간증을 읽는 성도님들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 [성도 간증] 아동부 영은회를 다녀와서_청주 교회 아동부

    아동부 영은회를 다녀온 아동부 친구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간증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맑은 신앙심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4학년 최준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동부 영은회는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설레었지만, 기대하는 마음이 더 많았습니다. 이번 영은회 주제는 “우리는 이렇게 믿어요” 였습니다. 이번 영은회 때 5대 교리를 배웠습니다. 첫날에는 개회 찬양, 개회 예배, 조별 활동했고, 이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조별 활동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잘 때는 아직까진 친한 사람이 승유 형밖에 없어서 승유 형과 잤습니다.

    둘째 날 아침에는 조별 기도회를 했는데, 선생님이 기도 제목을 생각하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는 아빠 생각하니까 울컥했습니다. 조별 기도회를 마치고 아침 식사하는데 너무 맛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찬양도 하고 저녁도 먹고 잘 시간이 되었을 때는 내일이 마지막이어서 아쉽다고 생각하고 잤습니다.

    셋째 날 조별 기도회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 마지막 강의를 들었습니다. 마지막 강의에 안식일의 한자가 나왔습니다. 편안할 안, 쉴 식, 날 일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다음 마지막 조별 학습을 했습니다. 계속해서 친구들과 노니까 익숙해졌습니다. 그다음 시간은 시험/소감문이었습니다. 시험이 어려운 줄 알았는데 잘 풀려서 자신 있게 풀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별 활동했는데 친구들과 헤어지려니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일정을 맞추고 집으로 온 다음 엄마께 영은회 때 있었던 일을 말씀해드렸습니다. 4학년 때도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으로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6학년 최의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영은회 주제는 “우리는 이렇게 믿어요” 였습니다. 세례, 성령, 세족례, 성찬례, 안식일 이렇게 5대 교리에 대해 배웠습니다.

    대면 아동부 영은회는 처음이라서 영은회에 가기 전에 전주교회에 가서 적응을 못 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선영이와 같은 조가 되어서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번 영은회에는 강의가 연속 2번이라서 졸리기도 했지만 다섯 번의 강의를 듣는 동안 한 번도 졸지 않고 집중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저는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으시는 아빠의 반대로 교회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예배드릴 때도 있는데 앞으로는 그런 상황이라도 온라인 예배 때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별 기도회 때는 이번 영은회의 제 목표인 아빠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 조의 성령 못 받은 친구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 30분이 정말 빨리 갔습니다. 또 조별 활동과 조별 학습 때는 조에서 모르는 친구들이 많아 첫 조별 활동 때는 많이 어색했었는데 마지막 조별 활동 때는 헤어지기 아쉬울 정도로 친해졌습니다. 그래도 조별 활동과 조별 학습하면서 조금씩 친해져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자 매우 아쉬웠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평소 제 기도 습관, 예배 습관을 반성할 수 있었고 앞으로는 기도와 예배 때 좋지 않은 습관들은 하나하나 고치며 더욱 열심히 교회 생활하는 제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영은회였습니다.

    이것은 영은회를 다녀와서 엄마께 들은 이야기인데 영은회가 시작되기 전 조별 선생님이 집으로 엽서를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늦게 도착 되어서, 우리가 안식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출발한 뒤에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을 때 엄마의 카톡으로 2장의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보낸 사람은 아빠였고, 내용은 선생님들의 엽서였습니다. 엄마가 왜 이사진을 보냈는지 아빠에게 물어보니까, 아빠는 선생님이 정성 들여 쓴 편지를 저와 제 동생이 얼른 봤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아빠의 교회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느껴 기분이 좋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5학년 이승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아동부 영은회를 안전하게 다녀오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2년 동안 코로나로 영은회를 참석하지 못해 이번이 처음 참석하는 아동부 영은회여서 출발할 때 떨리면서도 기대가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는 ‘우리는 이렇게 믿어요’라는 주제로 오대 교리인 세례, 성령, 세족례, 성찬례, 안식일을 배웠습니다.

    오대 교리 중 첫 번째인 세례에 대해서 배웠는데요.

    강의 때 목자님께서 세례와 침례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물으셨고 세례는 의미를 강조하는 말이고 침례는 방법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를 받는 이유는 죄를 씻어야 예수님과 연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에 대해 배웠을 때 세례를 받으면 죄 씻음을 받지만, 몸 안에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어서 성령을 받아야 죄를 다스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강의 시간에는 성령에 대해 배웠습니다.

    목자님께서 성령은 무엇이냐고 물으시며,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왜 받아야 하냐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걸 증거해주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증거는 방언(영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어서 꼭 성령 받고 싶었습니다.

    세 번째 강의 시간에는 세족례에 대해 배웠습니다.

    세족례는 발을 씻는 성례입니다. 예수님이 주는 천국의 유업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세족례가 주는 교훈인 사랑, 성결, 겸손과 봉사, 용서를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 번째 강의 때는 성찬례를 배웠습니다.

    성찬례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해, 예수님과 연합하기 위해서, 마지막 날에 부활하기 위해서 행함을 배웠습니다.

    성찬례를 행할 때는 한 개의 누룩 없는 떡과 포도즙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고 포도즙은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성찬례에 참여한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 강의 시간에는 안식일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안식일은 교회에 와서 영적으로 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 중에 제일 먼저 명령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은 복을 받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하나님께서 오락을 금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안식일은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동부 영은회 둘째 날 기도회 시간에 윤석원 목자님께서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목자님은 초등학교 때 성령만 간구했었는데 갑자기 예수님께 너무 죄송하다는 생각에 회개하였고 그때 성령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저를 생각해보니 윤석원 목자님과 같이 성령만 간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기 전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영은회 분반 친구들과 청주교회 아동부들이 성령을 받고,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손에 떨리기 시작하고, 입에서 ‘할렐루야’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내가 일부러 이상한 말을 하나?’라고 생각해서 ‘할렐루야’라고 또박또박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이상한 말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령을 주셨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 시간은 끝나고 김세한 목자님이 기도할 때 어떠냐고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저는 손이 떨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빠르게 지나 셋째 날 조별 기도회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이 저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다며 조별 기도회 시간 때 목자님들이 안수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이때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저는 성령을 받은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시길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몸이 더 떨리고 방언 소리가 더 크게 났습니다. 저는 그럴수록 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안수 기도가 끝난 후 조별 장소에 가서도 조별에서 친구들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기도회 때 꼭 받을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영은회 마지막 기도회를 마친 후 제가 성령을 받았지만 충만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목자님께서는 동생과 제가 같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 몸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좀 더 기도를 열심히 하고 성령이 충만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이상 간증 마칩니다.

    4학년 이온유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아동부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 아동부 영은회를 처음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설레었습니다.

    전주교회에 도착해 보니 3학년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3학년 또래가 많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남부지역에 3학년 친구들이 많아서 좋았고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이번 아동부 영은회 주제는 “우리는 이렇게 믿어요”였습니다.

    개회 예배 때 김승도 목자님께서 “터 위에 세우심을 입으라.”라는 제목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김승도 목자님께서 질문하셨습니다. 참예수교회의 복음은 누구를 통하여 전해졌습니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위 바울, 장 바나바, 장 영생을 통해 전해졌다고 하셨습니다. 또 안식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안식일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일요일부터 5대 교리에 대해 배웠습니다.

    윤석원 목자님께서 5대 교리는 10대 기본신앙 중 세례와 성령, 세족례, 성찬례, 안식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중에 세례에 대해 배웠습니다.

    세례란 죄를 씻는 성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셨고 세례는 성경에서 말하는 방법대로 받아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아야 하고, 흐르는 물에서 온몸이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하고,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침 그날 안식일 아동부 예배 때 배웠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참예수교회의 세례 방법이 옳고 다른 교회의 세례 방법은 틀리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제가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다음 성령에 대해 배웠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한다고 하셨고 하나님께선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천국의 기업을 보증하신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욕심과 싸워 이길 수 있게 도와준다고 하셨고 성령을 받은 증거는 방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세족례에 대해 배웠습니다.

    세족례란 발을 씻는 성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을 맺게 한다고 말씀해주셨고, 세례를 받은 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 씻음을 받는다고 하셨고, 겸손히 봉사해야 하고, 진심으로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성찬례에 대해 배웠습니다.

    성찬례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떡과 포도즙을 나누어 먹는 성례라고 하셨습니다.

    성찬례는 왜 해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기 위해 행한다고 하셨고, 예수님과 연합하기 위해 행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아동부 영은회 기간 기도회가 7번 있었습니다. 기도회 시간이 빨리 지나갔고, 평소보다 더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목자님께서 성령을 받으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셔서 더욱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찬양기도회 때 동영상을 봤는데,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생각 못 했었습니다. 그래서 찬양기도회 때 예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기도할 때도 감사함을 계속 생각났습니다.

    마지막 날 기도회가 끝나고 조별 활동으로 이동하는데, 윤석원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올라가서 저와 친구가 선생님께 성령을 받았다고 하니 선생님께서 축하한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케이크를 사야겠다고 했는데 마침 케이크가 와서 같이 축하 파티했습니다. 집에 와서 가족들과 같이 한 번 더 기도했는데 성령 기도가 나왔습니다. 가족들이 축하한다고 했고 목자님도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새벽기도를 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6학년 황선영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영은회를 잘 마치고 참석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대면 남부 영은회는 처음이어서 긴장이 되었었습니다. 그렇지만 가서 반겨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조금 긴장이 풀렸습니다.

    개회 예배가 다 끝나고 성령 못 받은 사람들은 나와서 기도를 했는데 기도 시간이 짧게 느껴졌습니다.

    그다음 조별 활동 시간에 새로운 친구들이랑 어색해서 말도 안 해보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저녁 취침 시간에 5학년 친구들끼리 모여서 잤는데 처음에는 어색했었지만, 점점 가면서 친해졌습니다.

    두 번째 날 김세한 목자님 강의 시간에 너무 졸렸는데 목자님이 제 이름을 불러주신 덕분에 잠이 화들짝 깨었습니다. 목자님 감사합니다!

    찬양기도회가 있었는데 다른 날 때보다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날 마지막 조별 활동이라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폐회하는데 성령을 못 받아서 너무 아쉬웠지만, 조별 기도회 때 선생님이 영은 회 때만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에 청주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은회 가는 것에 긴장을 했었는데 집으로 돌아갈 때는 아쉬움이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5학년 노필리아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번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이번 영은회에서 감사한 일들이 참 많았는데요 크게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영은회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을 어색함 없이 잘 사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낯가림이 심하여 영은회 전날 밤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감사하게도 같은 조가 된 친구들도 밝고 선생님들도 친절하셔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조별 친구들 뿐 아니라 같은 방에 잠을 자게 된 친구들도 모두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지윤이가 영은회에 함께 오지 못했던 건데요, 즐거운 활동을 할 때면 더욱 지윤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내년에는 꼭 함께 영은회에 올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두 번째로는 찬양기도회 시간이었습니다. 찬양을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들도 모두 재미있었고 새로운 찬양도 배울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 찬양기도회 시간에는 다른 시간보다 더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몸이 뜨거워지고 기도 소리가 배나 커졌습니다. 아마도 성령이 더 충만했던 거 같습니다. 또 기도 시간에 성령의 감동이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성령 받았을 때 기억이 떠오르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강의 중간에 목자님들이 해주신 여러 간증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간증이 기억에 남습니다. 윤석원 목자님께서도 어릴 때 간절히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셨다고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많은 죄를 대신 지셨는데 나는 나의 원하는 것만 말씀드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께 죄송하다는 기도를 드렸더니 성령을 충만히 내려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의 잘못을 겸손히 돌아봐야 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2학년 때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만 늘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목자님들의 간증을 통해 그동안의 나의 기도 자세와 마음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수령자 발표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다 성령을 받진 못했지만, 기다란 기도 방석 두 개에 꽉 찬 인원이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같은 조 친구인 박하이가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조별 축하도 해주었고, 더 감동적이었던 때는 승유 온유가 성령을 받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정말 놀랍고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못 받은 아동부가 빨리 성령을 받아서 천국에 함께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4학년 진태은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전주 교회로 아동부 영은회를 갔습니다. 첫날 밤부터 신나게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뛰어놀았습니다. 강의 시간에는 5대 교의에 대해 배웠는데, 세례, 성령, 세족례, 성찬례 안식일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필기도 열심히 했지만 자유 시간이 되면 배운 것을 잊어버리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둘째 날 밤에는 손을 다쳐 피가 철철 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나의 이런 행동들이 자랑스러울까? 하고 말입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하나님과 성경을 생각하며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6학년 진태호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23년 2월 26일 대전교회 아동부 동생들과 함께 전주에서 열리는 아동부 영은회를 참석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등록하고 조금 놀다가 개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자아이들과 자는 곳으로 이동해 짐 정리 후 씻고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는데 원래 기상 시간보다 아이들이 다들 일찍 일어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을 먹고 씻고 연속해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기도회와 조별 학습을 한 후 점심을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강의와 조별 학습 기도회 등 많은 일정을 마치고 잠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여러 행사와 폐회 시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 중점적으로 배운 것은 세례, 성령, 세족례, 성찬례, 안식일입니다.

    세례에 대해 배울 때 얼마 전 성령을 받은 동생을 생각하며 나도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더 열심히 기도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저도 성령을 받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언젠가 가장 좋은 때에 내게도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다해 기도하며 그날을 기다립니다.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