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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중3 김현서 자매의 성령 받은 간증

    [성도간증]중3 김현서 자매의 성령 받은 간증

    할렐루야! 동부교회 김현서 자매가 학생부 영은회때 성령을 받은 간증을 인터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이 성도님들에게도 함께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Q. 성령 받기 전에는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아주 어렸을 때는 성령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나도 언젠가는 받겠지’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성령을 받고 싶은 마음도 더욱 커져갔습니다.

    Q. 중3 수련회에 가기 전에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사실 중3 수련회를 갈 때는 4박 5일 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수련회를 다녀오니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고, 뜻깊은 시간이 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Q. 중3 수련회에 다녀온 후 느낀 점이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중3 수련회에서 박필선 목자님의 순교지를 다녀왔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등산이 힘들기는 했지만, 올라가면서 박필선 목자님께서 이 길을 걸어가셨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신기했고 저도 순교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Q. 영은회에 참석하기 전에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영은회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 성령을 꼭 받고 싶기는 했지만, 저번 영은회처럼 그냥 지나갈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성령을 받을 것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습니다.

    Q. 영은회에서 기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나요?

    처음에는 평소처럼 회개기도도 하고 감사기도도 하며 성령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때마다 ‘내가 진짜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어서 정말로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기도를 했었는데 이번 영은회때 더욱 진심으로 믿고 싶어서, 이번에 못 받더라도 하나님은 나에게 반드시 성령을 주실것이라고 확신하며 믿고 간절히 기도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성령을 받았습니다.

    Q. 성령을 받은 순간은 언제였고, 그때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들었나요?

    처음 성령을 받은 것을 느꼈을 때는 찬양기도회 시간이었습니다. 딱히 다른 생각은 모르겠고, 그냥 ‘성령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이 떨리면서 방언이 같이 나왔고 마음에 따뜻한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찬양기도회가 끝난 후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이 충만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그 말을 듣고 더 기뻤습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정말 많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기도회 시간에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Q. 성령을 받고 나서 예배나 기도할 때 달라진 점이 있나요?

    성령을 받기 전에는 무엇이든 먼저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안 될때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작은 일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께 감사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성령을 받은 후에 방언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진짜 존재하시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은 경험을 통해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야고보서 1:6-7) 성령 받은 후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제 마음에 더욱 와닿았습니다. 앞으로도 성령 받은 경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진1–중3수련회 참가모습   사진2–영은회 조별모임   사진3–성령받고 폐회식때 모습>

  • [성도 간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조*화 자매)

    [성도 간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조*화 자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 71)

    저는 9살 때부터 오빠를 따라 참예수교회 쌍치기도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부모님께서 생계를 위해 참예수교회 남원교회 근처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시게 되면서 가족 모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을 영은회 때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을 받아 방언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깨워 새벽기도에 데리고 다니시던 기억도 아직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저를 의상실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여성복을 만드는 곳에서 의아하게도 남자 기술자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 옷 만드는 일은 모두 수작업이었고, 맞춤옷 한 벌을 완성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밤샘 작업이 이어지는 날도 많았고, 한 달에 한두 번 쉬기도 어려웠고 토요일에 일하는 것이 다반사였던 상황이라 점점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큰아이가 다섯 살, 둘째가 태어난 뒤에 생활고 속에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녔고 실직의 기간도 많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친정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큰 도시로 가면 살아갈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에 남편을 먼저 서울로 보내고, 자리가 잡히면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울 생활은 역시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월세방 한 칸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어린 둘째를 업고 주인집 포장마차에서 홀서빙과 주방 심부름을 했습니다. 남편은 월급 대신 옷으로 가져오면 제가 그것을 팔아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지만, 월세조차 제때 내지 못할 만큼 형편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한 패션회사를 소개받게 되었고, 안정된 직장이라는 말에 ‘1~2년만 맞벌이를 하며 자리를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큰딸은 여덟 살, 아들은 네 살로 한창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였습니다.

    종암동 집에서 압구정동 회사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매일 출근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점점 늦게 귀가하기 시작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생활의 무게와 외로움 속에서 괴롭고 힘든 일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삶의 돌파구가 안 보이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 낙심해 있을 때 문득 남원교회 영은회에서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을 떠올리며 힘을 내보기도 했지만 제 인생은 꼬인 실타래처럼 점점 더 엉켜 갔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아무런 소망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11월에 안양에 살고 있던 오빠가 안양교회로 나오라고 계속 연락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알겠다며 대답했지만 교회를 나오라는 잦은 연락에 내 형편을 모르고 교회만 나오라고 하는 것 같아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바쁘고 나중에 시간되면 가겠다고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은 건강검진을 받자고 제안했고 이때 받은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 초기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안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죽음 앞에 서게 된 저는 남편에게 교회를 나가야겠다고 말을 하였고 남편도 큰 반대가 없었기에 다시 하나님을 찾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육신의 병까지 생기자 삶의 깊은 회의가 들었고 하나님께 돌아가고 간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안산 고려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시흥 딸 집에서 요양하며 안양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아, 이곳이 내가 와야 할 곳이구나. 이곳이 나의 피난처구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은혜가 넘쳤고, 찬양이 너무 좋아 저도 모르게 계속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지친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위로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딸집에서 2주를 지냈을 무렵 남편이 찾아와 서울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남편과의 불화가 여전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남편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워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으로 가야했습니다.

    서울 집에서 안양교회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안식일 오전 예배만이라도 드리기 위해 교회를 오갔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 집으로 다시 서둘러 돌아가야 했지만,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사람들처럼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셨고, 예배 시간에 들리는 말씀은 꼭 제게만 주시는 말씀처럼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은 계속 교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찬양과 말씀이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붙들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오가던 어느 날, 2008년 설명절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간단히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찬양을 흥얼거리고 있었고, 쇼파에 앉아 있던 남편이 갑자기 조상 제사를 지내자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교회에 다니게 되었으니 앞으로 제사는 지내지 않겠어요.” 평소의 저라면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때는 두렵기보다 이상할 만큼 담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고백은 제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용기와 믿음을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결국 저는 아들과 함께 빈몸으로 집을 나와 안양으로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남편과의 불화는 계속되었고 큰 다툼을 겪으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 아들은 더 이상 집에 들어가지 말자고 하여 결국 안양의 오빠 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수술 후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일을 해야 했지만, 안양에는 제가 할 수 있는 패션 관련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약 6개월 정도 교복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안식일 예배를 지켜야 했기에 늘 시간에 쫓기며 생활했습니다. 교복철이 지나 일이 끊기면 구직 자리를 안내하는 신문을 들고 하루하루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용직 가사도우미, 식당 아르바이트, 입주청소 회사 등 여러 일을 전전하면서도 어떻게든 안식일만은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이후 공공근로에 참여하며 주 5일 근무를 하게 되었고, 국비지원으로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농협 구내식당 조리사로 일하며 조금씩 삶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교회 송년행사인 작은 불꽃 선물을 사기 위해 기독교 백화점에 가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둘러보던 중 작은 액자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액자에는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 말씀 앞에서 저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밀려와 한참을 서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결국 그 액자를 집으로 가져와 매일같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졌고, 세상에서 겪던 고통과 문제들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말씀은 제 인생의 등이 되어 주었습니다. 캄캄했던 길을 비추며 다시 앞으로 걸어갈 힘을 주셨고, 저는 말씀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지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점점 커져 갔습니다. 그래서 예배와 안식일 행사, 성경공부와 기도회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안산 고려대병원으로 정기검진을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혼자 병원에 가는 처량한 상황에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이 찬양이 떠오름과 동시에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저를 꼭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한참을 혼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경청하며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저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이 되어 아무도 없는 빈 방에 홀로 앉아 목놓아 울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미움과 상처도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무렵 전도된 딸도 어려운 고난이 있었지만 가족 모두 세례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딸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2013년 11월쯤이었습니다. 깊이 잠들어 있던 새벽, 갑자기 오른쪽 귀에 마이크를 댄 것처럼 아주 크고 또렷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너무도 생생한 음성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만져보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캄캄한 새벽이었고, 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무지하고 연약한 저에게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찾아와 주셨고, 그 순간 저는 주님의 임재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제 안의 무너진 마음과 연약한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이제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럴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암도 2012년 2월 완치 판정을 받게 되었고, 2014년에는 교회 가까운 곳에 작은 집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늘 마음 졸이며 기도하던 소망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딸네 가족 네 식구 모두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으며, 한때 “엄마는 교회에 미쳤어”라고 말하며 신앙에서 멀어졌던 아들도 최근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절망 속에 있던 제게 소망을 주신 분, 슬픔 가운데 있던 제게 기쁨을 허락하신 분, 상처투성이였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분은 오직 주님이셨습니다. 쓰러져 있던 제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셨고, 메마른 광야 같은 제 삶의 길을 치료하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길지 않은 남은 삶이지만 늘 깨어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저의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어,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비추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인도해 주신 분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간증]어디서든 함께하시는 하나님(동부교회 나타샤 자매)

    [성도간증]어디서든 함께하시는 하나님(동부교회 나타샤 자매)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3월에 동부교회로 전입한 나타샤 세라피나입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출신입니다. 어렸을 때는 자카르타 사만후디 참예수교회(TJC)에 다녔지만, 그 이후 탄중 두렌 참예수교회( TJC)로 옮겼습니다. 현재는 한국 고려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이 교회 신자였기 때문에 유아 세례를 받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초등학교 4학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때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할렐루야”라는 단어가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로 바뀌었습니다.

    제 삶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저에게 가장 좋은 길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올바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이사야 55장 8절 말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가장 좋은 것들을 예비해 두셨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홍콩에서 학부 과정을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되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홍콩에서 2년반동안 지냈었습니다. 혼자 해외에서 생활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신앙적으로 더욱 깊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제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언제나 저와 함께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저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저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대화하며 그분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제가 항상 마음에 새겼던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6장 33-34절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니라 오늘 하루의 괴로움은 오늘로 족하니라”

    한국에 와서 저는 신앙이 상당히 성장했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한국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바쁘고 요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지쳤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안식일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휴식의 시간이며, 그분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 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도 저는 형제자매들로부터 큰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어울리고, 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습니다. 저는 공동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앙 여정에서 우리는 혼자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필요할 때, 길을 잃었을 때 서로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예배시간에 항상 들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는 것뿐 아니라, 굳건한 교회 공동체를 갖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깨달음과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동부교회에서 (나타샤 자매 – 왼쪽에서 두번째)

    대방교회에서 (맨 앞줄 청바지 입은 자매)

    강남교회에서 (맨 앞줄 아이보리색 바지)

  • [성도간증]대전에서 보낸 5주의 은혜(동부교회 김현빈형제)

    [성도간증]대전에서 보낸 5주의 은혜(동부교회 김현빈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어머니 품에서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있기까지의 신앙성장 과정과, 지난 고3 겨울방학때  5주 이상 대전에서 지내며 느낀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신앙

    저는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 신앙의 틀이 굳게 잡혀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덕분에 하나님 안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믿음의 집안이기에 더욱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에는 스스로의 신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밥 먹으라고 하면 먹고, 자라고 하면 자고, 교회 가자고 하면 교회를 따라가는 삶이었습니다. 딱 한 가지, 공부하라고 하셔도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초등학교 졸업 직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삶이 달라졌습니다. 학교도, 교회도 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예배드리면서도 신앙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그동안 교회와 함께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아동부 때부터 꾸준히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선생님들과  말씀을 묵상했던 시간들이 코로나 기간 동안 신앙을 유지하게 해주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속에서

    코로나 기간동안 오히려 믿음이 바로 세워졌습니다. 믿음을 잃기 쉬운 상황이었지만, 저의 예배 태도와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예배는 현장 예배와 확연히 달랐습니다.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예배 태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유튜브로 저녁 예배, 안식일 오전 예배, 줌으로 청년부 예배를 드릴 때 집중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로 예배드릴 때 더욱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의 성장

    그 이후 본격적으로 신앙이 성장했습니다. 찬양 인도도 하고, 자기 전 매일 기도하고 성경 읽는 습관도 중학생 때 세워졌습니다. 말씀도 더욱 집중해서 듣고, 성경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성경 읽고 알아가는 것이 새롭고 즐겁습니다.

    왜 그때부터 신앙이 성장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순간들은 많았는데,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게 된 정확한 순간은 하나님께서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주도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은 신앙에 대해 알아가고 배우는 시기였다면 고등학교 때는 쌓아온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였습니다. 학원에서는 시험기간마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했지만, 그것이 예배를 대신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친구들의 질문 속에서

    친구들은 종교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족속을 모두 죽이라고 한 것은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 성인이 되면 술을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인데 왜 마시지 않느냐? 아이러니하게도 종교가 없는 친구들은 제가 종교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데, 꼭 일반 교회를 다니는 친구들이 “성경에 그런 말이 어디 있냐?”,  “나도 마시는데 넌 왜 안 마시냐?”, “음식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대답할 말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게 되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신앙 지식도 쌓아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과 하나님의 인도

    고등학교 때는 선택을 정말 많이 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신기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길과 마주하게 하셨습니다. 이것만큼은 아니었으면 좋겠고 정말 못 하겠다고 생각했던 선택지와 정면으로 부딪히게 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그런 과정 속에서 저를 단련하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이끄셨던 것 같습니다. 생활 속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여러 방법으로 저를 깨우치시는 하나님이심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수능도 치고 대학교에도 합격했습니다. 더 이상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삶에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겪게 되는 시기라는 신호 같았습니다.

     

    대전에서 보낸 5주

    참예수교회 고등학교 3학년들은 12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 교회 행사를 정말 많이 다닙니다. 대학부 영은회, 단기신학, 고3수련회, 학생부 영은회, 그리고 교사훈련학교까지 거의 5주가 넘는 시간 동안 대전에서 지내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집보다 대전교회에 더 오래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부 영은회는 대학생들이 참석하는 영은회이고, 단기신학은 2주 동안 성경을 깊이 배울 수 있는 짧은 신학 체험입니다. 또 고3수련회는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고등학교 3학년들이 앞으로의 신앙을 잘 지켜가기 위해 참석하는 수련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생부 영은회는 중고등학생들이 참석하는 영은회이고, 교사훈련학교는 앞으로 교사로 사역하게 될 대학생들을 위해 준비된 행사입니다.

    이 행사들에 계속 참여했습니다. 느낀 점이 있다면 우선 교회 밥이 정말 맛있었습니다. 행사 기간 동안 먹었던 식사들이 모두 맛있어서 힘내어 하나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전교회의 아침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단기신학에는 새벽기도회가 있는데, 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면 동이 틉니다. 그때 창밖 풍경이 매일 장관이었습니다. 사실 5주 동안 일정을 이어가려면 많이 피곤하기도 한데, 풍경을 보며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또래의 소중함

    또 느낀 점은 또래가 정말 귀중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동안 봐왔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한 명 한 명이 정말 반가웠습니다.

    또래는 가장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친구들이면서 동시에 함께 교회를 섬기는 동역자이고,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 같은 존재들입니다. 행사 기간 동안 또래들에게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물론 모든 친구들이 다 함께한 것은 아닙니다. 오지 못한 친구들의 얼굴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들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3수련회때 만난 친구들의 숫자가 나중에는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라 실제 여러 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위해 정말 노력하고 기도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의 다짐

    이번 행사는 하나님께서 지쳐 있던 저를 위해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시험공부와 입시 준비로 바쁘고 지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온전히 신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힘을 얻었고,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은 정말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새해도 대전에서 맞이한 저는 성인이 되었고 대학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기도 해야 하는 시기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하게 될지, 어디로 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다른 대학부 청년들도 비슷한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도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대학부 청년들과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간증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 [성도간증] 말씀의 중요성을 깨달은 군생활(김도윤 형제)

    [성도간증] 말씀의 중요성을 깨달은 군생활(김도윤 형제)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건강하게 전역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과,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기다려주신 목자님 이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길고 긴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습니다. 한편으론 후련하지만 전우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생활을 돌아보니 힘들었던 시간도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군대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입대전, 두려움 대신 주신 평안

    입대 당시 훈련병 관련 사건 사고로 뉴스가 떠들썩했습니다. 나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요셉과 같은 성경 인물들을 말해주시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디서든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어느 순간 불안함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입대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말씀들이 군생활 전체를 지탱해 준 큰 힘이었습니다.

    2. 훈련소와 철원 전방 부대에서 경험한 보호하심

    입대날부터 철원 신교대로 가는 날까지도 긴장은 되었지만 비교적 안정된 마음으로 갔고 훈련소에서 부모님이 떠나는 순간까지 걱정 끼치고 싶지않아 좋은 마음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생활관에 배치받아 조용히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얼음 상태였는데 그 어색함과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반대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중학교 때부터 지내온 동반입대 친구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친구 한 명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었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많은 형들이 팔굽혀펴기와 달리기 정도 해두면 좋을 거라고 해서 평소 맨몸운동을 열심히 해놓아서 그런지, 훈련때 좋은 성적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훈련병에 관한 사고 뉴스 영향인지 얼차려도 없었고 수류탄도 연습용만 사용했습니다. 시설도 좋았고 조교와 간부님도 훈련병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처음엔 담당 조교 얼굴을 보고 무서울거 같았는데 오히려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고 칭찬도 많이 해주고 웃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좋은 지도자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3. 사람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신다

    저희 부대는 부조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인정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훈련은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니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대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임했고 간부들 눈에 열심히 하는 병사로 기억돼 포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선임이 된 저는 솔선수범하려 했고 말년엔 소대에서 가장 우수한 군인으로 불렸습니다. 그때마다 교회의 많은 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구나를 느꼈습니다. 휴가 때 교회에 꼭 출석하는 것으로 보답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고 감사하게 휴가도 많이 받아서 교회에 많이 갈 수 있었습니다.

    4.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다

    그런데 항상 잘한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말년이 되자 자유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게을러지고 신앙도 느슨해졌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니 하나님과도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한 후임이 있었는데 나는 저렇게 되지말아야지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하나님 앞에서 제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분대장으로 있을때 신병으로 들어온 또 다른 후임이 있었는데 간부는 나에게 그 후임이 행군 하다가 뒤처지면 네가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했고 저는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괜찮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후임이 뒤처지는 상황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계속 뒤처지니 점점 답답하고 걱정까지 되었습니다. 힘든 훈련이 앞으로도 많은데 벌써부터 뒤처지면 어떡하나 하며 간부에게 얘기했더니 간부님은 “너도 처음엔 못하지 않았냐. 분대장은 그런 후임을 감당하는 자리다”고 하시는 말에 크게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신앙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나 자신을 보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 나 자신의 신앙도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 생활 속에서 깨달은 말씀의 중요성

    군교회에 가보니  찬양은 열심히 하지만 말씀이 시작되자  바로 핸드폰을 하며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저역시 말년이 되면서 전도의 열정이 식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군 생활 초중반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근무를 설 때나 생활관에서 잠깐이라도 성경 말씀 들려주며 전도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세상에 물들어 가는 제 모습을 보며 말씀과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점점 하나님과 멀어졌고 결국 제 힘으로는 신앙을 지킬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6. 마무리 고백

    군생활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입니다. 사람들에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말씀이 없는 삶은 온전할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군대에서 경험한 감사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기억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할렐루야.

  •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할렐루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시간을 형제자매님들과 나눌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교회에서 온 Mercedes Lai, 세디스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2개 학기 동안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올해 6월, 저는 뉴캐슬 교회의 자매 4명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대만에서 열리는 IYF에 참석하기로 이미 계획되어 있었고, 그 전에 한국에서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금요일 밤 예배는 강남교회에서, 안식일은 동부교회에 참석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처음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성도님들을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도 계속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서부터 매주 RE(종교교육) 수업을 들었고, 매년 열리는 전국 학생 영은회에도 참석했습니다.

    2016년, 처음 참석했던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에든버러 교회였고, 뉴캐슬 학생들이 모두 금식을 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뉴캐슬 형제자매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지만, 저와 두 형제는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을 직접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후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셨을 때, 저는 너무 큰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매들이 함께 울며 기뻐해주던 따뜻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제 신앙 여정엔 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지만, 그때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와 동역자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던 그때가 제 신앙이 가장 강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환경 속에서 제 마음은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많이 자랐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청소년기였던 저는 세상도 교회도 잘 알지 못한 순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교회 생활의 일상이 무너지고,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했던 그때, 집중도 안 되고 예배가 점점 형식적으로 느껴지면서 제 믿음은 약해져 갔습니다. 2022년에는 막내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단부터 임종까지, 저는 제 자신과도 멀어졌고 정작 하나님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시기 이후, 저는 제가 믿고 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마음속엔 설명되지 않은 질문들이 쌓여 ‘구름’처럼 남아 믿음을 막았고,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교회 성도들과도 멀어졌고, 여러 감정이 겹쳐져 신앙은 최저점을 찍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힘들어졌고, 의무감 때문에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제 부족한 믿음을 보고 혹시 누가 속으로 비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도 저는 ‘가야 하니까 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에 온 이후에는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의무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찾고, 흐려진 신앙을 회복하고 싶어서 교회에 가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전처럼 불안함 없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고, 작년보다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한국에서의 교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낯선 나라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조금 웃기지만요. 그래도 동부교회에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교회가 제 신앙 여정의 한 부분이 되어서 참 기쁩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지내다가, 한국의 규모가 조금 더 작은 교회에 오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언어 장벽과 통역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성도님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성격이 많이 내성적이고, 뉴캐슬 교회와 달리 동부교회에 또래 청년이 적다 보니 처음엔 많이 낯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신 성도님들의 친절과 사랑을 감사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언어는 어렵지만, 같은 믿음 안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또 기도 가운데서도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들리는 방언기도의 익숙한 소리는 제 마음에 큰 평안을 줍니다.

    동부교회에서 가장 감사한 기억 중 하나는 성도님들의 넓은 마음뿐 아니라 정말 맛있는 음식입니다. 저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매주 직접 준비해 주시는 따뜻한 한국 가정식을 먹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준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 위로가 됩니다.

    한국에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여러 기회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참 감사드립니다. 봄 학기에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번 학기가 끝나고 함께했던 친구들이 떠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봄 학기가 되면 다시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이 간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국에서 남은 시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흐려진 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길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세디스 드림

    세디스 자매가 6월에 친구들과 동부교회 방문하여 청년부와 찍은 사진.  앞줄 맨 오른쪽에서 네번째 자매가 세디스 자매입니다. 

  • [성도 간증]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은 큰 기쁨(천안교회 소만수 형제)

    [성도 간증]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은 큰 기쁨(천안교회 소만수 형제)

    온 가족이 함께 구원 받은 큰 기쁨

    천안교회 소만수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참예수교회를 알게 된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직장생활 한 지역이 안산, 광주, 정읍, 천안이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참예수교회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안산지역으로 취업했을 때부터 참예수교회 이야기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산에 계시던 고모님, 지금은 돌아가신 소감사 집사님의 권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교회에 관심이 없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답만 하고 직장생활에 충실하면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다른 지역 정읍으로 회사를 이직하면서 위의 형님인 전주교회의 소남기 형제(집사)님과 고모님의 권유로 제일 먼저 전주에 있는 참예수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형님은 저에게도 같이 신앙생활을 권면하셨고 또 부산의 고모님께서도 저에게 신앙생활을 계속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제가 신앙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계속 거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두 분은 계속 포기하지 않고 권면을 하셨고 제가 직장 관계로 다른 지역으로 옮길 때마다 그 지역에 있는 참예수교회를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안산에 있을 때와 전라도에 있는 광주에 있을 때도 교회가 있다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광주에 있을 때 마지못해 교회를 1번 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여 천안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도 계속 권면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원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 1번, 쌍용동 진주빌딩에 교회가 있을 때 2번 정도 흉내를 내듯이 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권면을 하시니 인사차 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이 흐르고 교회와는 많이 멀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23년 봄에 형님인 소남기 집사님이 천안에 영은전도대회가 있으니 한 번 같이 가보자고 권면을 하셨습니다. 사실은 그동안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형님이 하도 가자고 하니 인사차 한번 가보자고 해서 출석을 하였고 갈 때는 혼자 가지 않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현 6학년) 막내딸 연서와 함께 교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왔을 때 좀 신기한 것은 연서가 너무 적응도 잘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교회에 머무는 동안에 스마트폰도 만지지 않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다음 주에도 또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 주에 출석했는데 여전히 연서는 너무 적응을 잘했고 저 또한 성도님들이 너무 마음을 평안하게 대해주시고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3번째 교회에 출석하면서 제 입으로 이번에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를 화평반분들과 대화하면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출석한 그 기간에 목자님께서는 안식일에 십계명을 설교해 주셨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둘째 계명인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때야 비로소 왜 형님이 제사를 드리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 안식일 예배 후에 ‘말씀 잘 들었습니다’라며 인사를 했습니다. 아마도 목자님께서는 제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그때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는 마음에 큰 찔림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형님이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 때문에 형님을 많이 미워했었거든요. 그런데 미워하는 것도 살인하는 것이라는 말씀에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후 분반 예배 시간에 그동안 형님을 미워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며 많이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번째 교회에 출석하는 날 안식일 오전 예배 때 갑자기 김반석 장로님과 김미영 자매님이 안수기도를 권하셨고 당황한 저는 제 마음이 좀 정리되면 그때 안수를 받겠다고 사양을 했습니다. 그런데 김반석 장로님은 계속 안수를 권하셨고 할 수 없이 따라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사실 성령이 무엇인지 왜 받아야 하는지 또 성령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안수를 받은 것입니다. 그다음 주 안식일에 여전히 김반석 장로님은 안수를 권하셨고 이제는 저도 당연히 안수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순순히 따라 나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안수를 받은 지 3번째 되는 안식일에 안수기도를 받을 때 몸에 이상을 느꼈습니다. 무엇인가 뜨거워지는 느낌과 더불어 몸에 진동이 오고 입에서는 제가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아마 이때 성령의 감동이 오기 시작한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사실을 목자님이 아시고 그날부터 구도자 교육을 하기로 했었는데 구도자 교육이 끝나고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몸에 진동이 오고 방언이 터졌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 목자님께서는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고 2층 화평반실로 내려가니 모든 신도들이 기뻐하며 축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오후 분반 예배가 끝난 후에는 성령 받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교회에서는 케이크를 준비해서 많은 신도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 더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자며 회당으로 내려가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온몸이 더욱 뜨거워졌고 성령의 감동으로 눈물도 나고 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에는 목자님께서 성령 받은 소감을 한마디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때까지 제가 제대로 성경 공부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받은 성령이 성령인지도 모르고 소감을 말할 때와 밴드 글에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경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너무나도 일찍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렇게 성령을 받기 전부터 가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원래 아내는 본인뿐만 아니라 제가 교회 가는 것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제가 교회에 한 두 번 출석할 때는 그러려니 하며 자신처럼 이제 더 이상 교회를 안가겠지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가더니 이제는 매주 토요일이면 교회를 가는 저를 보고 매우 실망스러워했고 섭섭해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와 교회에 출석하는 문제로 갈등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갈등은 한 달 이상 지속되었고 결국은 아내가 교회를 가지 말라고 완강하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너무 당황하였고 결국 이로 인해서 2주간 교회를 못 가게 되었습니다.

    2023년 8월 12일 안식일에 예배 참석은 못하고 마음이 속상해서 아이들 방에서 누워 있었습니다. 아내가 이야기 좀 하자며 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을 때 너무 눈물이 나서 펑펑 울었고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지만 저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단단해진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나가자며 가까운 저수지로 이동해서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회를 못 나가는 기간 동안에 힘들어하는 저를 보고 아내는 마음이 변했는지 연서는 데리고 가지 말고 당신 혼자만 나가라고 말을 했습니다. 연서를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이 아쉬웠지만 다시 교회를 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안식일 전날 저녁에 아내가 갑자기 자기도 교회를 따라오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를 다니겠다는 것은 아니고 도대체 우리 남편이 그토록 교회에 빠진 것이 궁금하기도 했고 남편 없이 집에 있느니 차라리 남편과 함께 교회에 있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대신에 자신이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니 너무 자신을 환대할 필요도 없고 예배는 드릴 생각이 없으니 그리 알라고도 했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온다는 것을 교회에 미리 귀띔을 했었고 아내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도 신도들에게 설명을 했기 때문에 아내가 교회에 도착했을 때 모든 분들이 차분하면서도 반갑게 아내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내는 그동안에 몇 번의 교회 출석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을 보면서 마음이 열렸는지 놀랍게도 아내는 교회에 와서 순순히 예배에 참석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예배에 참석하게 되자 곤란한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예배 시간에 연서가 안수기도를 받으러 나가는 모습을 보고 안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안수기도를 받게 했다며 매우 화가 나서 이제부터는 연서는 절대로 교회 데리고 오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원래 교회를 따라올 때 오전만 있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렇게 오전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8월 27일 세례식 날이 다가왔습니다. 사실은 아내와의 갈등으로 저는 세례식 이야기도 못 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점점 세례식 날짜는 다가오고 형님 내외분께서 천안에 온다고 하여 아내에게 세례식 날짜를 어렵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세례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막상 세례식 날이 되니 아내는 세례식도 따라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이들까지 데리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의 한 번밖에 없는 세례식 날이니만큼 가서 아빠를 축하해주자고 하면서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세례받는 날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는 기쁨도 컸지만 또 아내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와서 축하해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고 그날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전주에서 형님 내외분께서 전날부터 오셔서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저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해서 세례와 성령을 받고 천국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형님과 형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왜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그토록 빨리 성령을 주셨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내와의 갈등으로 교회 출석이 어려워졌을 때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어쩌면 교회 출석을 중단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성령의 선물을 일찍 허락하신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식이 끝나고 여전히 아내는 교회를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마음이 점점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제 아내에게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의 모습에 제 아내도 점점 마음이 열리게 된 것 같습니다. 더욱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전주 형수님께서는 제 아내의 마음을 다독여 주면서 믿음의 길로 잘 인도를 해주셨습니다. 지금은 아내와 3자녀 모두 세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두 딸은 하나님께서 귀한 성령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아내와 두 딸은 교회에 잘 출석하고 있고 신앙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저희 아들 경완이만 아직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들 경완이에게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올해 저희 가정은 저희 자녀들의 믿음과 신앙 성장을 위해 교회 옆으로 이사까지 결심하게 되어 현재 대우타워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가까워서 저희 가정은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또 저와 저희 가족들을 사랑으로 대해주신 천안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만수 형제님 가정 & 소남기 집사님 가정>

    <소만수 형제님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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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대학부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고 간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를 준비하면서 받은 은혜와 영은회를 참가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그냥 참석할 때와 달리 저에게 맡겨진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찬양 인도였습니다.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청주 교회에서도 찬양 인도를 할 때는 떨리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대전 교회에서 그리고 청주 교회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 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떨리게 되었습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게 되면 저의 옆에서 함께 찬양할 싱어들과 반주자 그리고 ppt를 넘겨줄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청주 교회 대학부들에게 이 역할을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주 교회 대학부들은 싫다는 말 없이 알겠다는 답변으로 즉각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순종하여 준 청주교회 대학부에게 고마웠습니다. 이제는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해야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를 주제로 성막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제와 관련된 멘트와 찬양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생각 중에 있었습니다. 말할 멘트와 찬양할 곡들이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대학부 영은회에서만 하는 사전 교재를 하며 세한 목자님께서 성막에 대한 설교를 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세한 목자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와 설교를 참고하며 사전교재를 하였고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묵상이 저의 멘트가 되었고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멘트와 곡을 정했다면 이제는 연습할 차례였습니다. 연습을 할 때에 대학부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찬양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한 번 더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찬양 인도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의 또래 친구들이 제가 찬양한다는 것을 듣고 제에게 와서 격려의 말과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들 중에 ‘그냥 하나님께 찬양하면 된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연약한 저는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만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고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들의 기도와 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긴장하기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고 맡았을 때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고 아주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맡겨진 일에 즉각 순종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대학부 영은회는 저의 두 번째 대학부 영은회였습니다. 첫 번째 대학부 영은회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이번 영은회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은회 주제는 거룩이었습니다. 개회 예배 때 거룩은 구별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세상을 쫓는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쫓고 추구해야 거룩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개회 예배를 들음 이번 영은회는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며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목자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변화된 예배에 대한 인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저의 예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인 저희는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인식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의식하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했기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번제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저의 일부만 드리는 것이 아닌 저의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중 하나는 정결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구별하기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며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듣는 것과 보는 것을 구별하여 거룩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심으로써 세상에서 구별하시고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지만 그것에 비해 저는 하나님께 너무 소홀하다고 느꼈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이 특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는 성막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막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성막 가까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하늘나라의 백성인 저희도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천안에 가게 되면서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살고 싶었기에 천안에서 살게 된 것에 아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막에 대해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서는 비슷한 나이에 형제들끼리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는 좋은 점이 있었고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쉽다고 여겨졌던 것이 이렇게 변화하였습니다. 천안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의를 듣고 조별 학습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별 학습 시간에는 서로의 묵상을 나눕니다. 묵상을 나눌 때 고민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말씀으로 답변해 주고 고민을 해결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교제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은회를 갔다 온 후 저녁 예배 설교 때 목자님께서는 영적 장애가 치유되기 위해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배우고 느낀고 다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실 저는 영은회를 갔다 온 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고 게을러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간증을 기회 삼아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다짐함으로써 더욱 성장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김진명 형제 

  • [성도 간증]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

    [성도 간증]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

    천안교회 김명현 형제가 중3수련회를 갔다 오고 나서 작성한 소감문입니다.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중3)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2025 중3 수련회 소감하겠습니다. 나는 중3 수련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설렘보다 걱정이 더 컸다. 왜냐면 중3 수련회를 하는 기간과 방학식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학업보다 교회 행사를 우선으로 하기로 다짐했었기 때문에 중3 수련회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 후, 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중3 수련회에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도를 먼저 했기 때문에 중3 수련회에 갈수 있었던 것 같다.(감사주😄) 중3 수련회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으로 가기 전에 기도를 깜빡하고 갔는데, 모자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어딜 가든 항상 기도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3수련회때 각자 맡을 역할을 제비뽑기 하고있을때, 우리조 조장님이 내가 안마핑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안마핑이 되어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런 작은 것에도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였다. 중3 수련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3번째 강의 시간 중 들은 말씀이다. (사실 레프팅을 하고 나서 듣는 강의라 많이 졸렸지만 말씀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뒤로 나가서 들었었다.) 어떤 말씀이었냐면 박필선 목자님의 순교였다. 박필선 목자님은 그 당시 김천세무서의 계장으로 일하시다가 부산으로 과장 승진발령을 받았는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원해서 희생과 헌신의 길을 택하셨고, 빨치산들에게 잡혀가 죽임을 당하시던 그 순간에도 전도하셨다. 그리고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순교를 택하셨다. 그래서 순례의 길을 걸을 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잘 다져진 등산로도 가기 힘든데, 이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빨치산들에게 끌려가시며 어떤 생각으로 올라가시고,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의 순교 덕분에 지금 참예수교회가 이렇게 흥왕하고, 발전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말씀은 홍여호수아라는 분이 7년(?)만에 어느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가 다른 교회로 바뀌어 있었고, “왜 진리를 버렸냐?”라고 물어보셨는데, 대답은 “우리가 버린게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버린거다”라고 했다고, 일꾼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일꾼이 없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내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전도하기, 교회에 처음 오는 친구에게 말 걸어주기, 혼자 있는 친구에게 말 걸어주기 등 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중3 수련회는 ‘성령과 함께 떠나는 TJC 역사 여행’ 이라는 주제로 참예수교회 역사를 알아가는 수련회였는데 사실 TJC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이번 수련회를 통해 왜 알아가야 하는지, 어떠한 역사가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서 학업을 포기한게 처음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하나님을 우선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더더욱 타락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해주고, 믿음의 동역자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수련회의 마지막 날에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 앞에 나가서 소감을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려져서 당황했고, 정말 내가 맞나? 잘못 읽으신거 아닌가? 내가 잘못 들었나?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말했던 것 같다. 뭐라고 말했냐면 “또래중 1/3이 떨어져 나간다고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 또래는 떨어져 나가는 사람 없이 모두 진리 안에서 자라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말씀 중에서 장바나바가 교만해지고, 자신이 참예수교회 창립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타락하여서 중화 참예수교회를 설립했다는 말씀, 박창환씨를 예를 들면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고, 믿음은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과 또래 중 통계적으로 1/3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씀이 그때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회 영상을 보는데 영상 마지막에 참예수교회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런 믿음의 선조의 모습을 닮아가며 믿음을 이어갈 증인이 되어 거룩한 주의 나라를 세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정을 소화하는데 계속 ‘같이 걸어가기’라는 찬양이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우리 10또래들이 계속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주 가신 그길로 다같이 함께 가는 모습이보이고 ‘주와 함께, 주의 뜻대로’라는 가사처럼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예수님이 알려주신 그 길로 다니는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 일정에 언제나 함께하시고, 동행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 우리 모두 이 참예수교회 안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가고, 지어져가는 10또래가 되자!!! 아멘.

  •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참예수교회로 개종하다

    서도교회 고 장달순(영명: 장안나) 집사님이 저희 친정 작은 어머니에요. 저를 임신했을때까지 장로교회를 다니셨고 제가 태어나서 몇 살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예수교회로 개종을 하셨어요. 제가 살던 곳이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라는 곳인데 작은 어머니 계실때 교회가 세워졌어요. 돌아가신 허야곱 장로님이  시댁 작은 아버지인데 작은 어머니랑 교회에서 심방 다니셨던 것이 생각이 나요.

    아버지는 제가 7세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도 아마 교회를 다니셨을 거에요.

    저의 친언니는 고 권묘남씨인데 어릴 때 저랑 같이 믿었어요. 교회 다니다 보니 제사라든지 그런 걸 몰랐어요. 항상 어머니가 교회 가시니까 어려서부터 열심히 다녔고 엄마 옆에 앉아서 예배 드렸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다

    그때는 영은회를 1년에 한 번씩 한게 아니라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3년에 한 번씩 했어요. 전체 영은회였어요. 14살 영은회때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 받고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았어요. 제 친구들은 저보다 일찍 성령을 받아서 다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저는 그날 한꺼번에 다 받았어요. 세례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 늦게 받았어요.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 간 언니집에서 많이 지냈거든요. 형부가 군대 가 계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영은회 참석을 못할 때도 있었어요. 제 친구 황남옥 자매라고 지금 강남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그날 같이 세례를 받았어요. 성령도 같이 받고요.  세례를 주신 목자님은 누군지 생각이 안나요.

    교회 앞에 물이 있는데 세례받기가 좋았어요.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고 방언이 나오더라고요. 그당시 우리 또래들이 상당히 많았었어요. 지금 서도교회 이정을 장로님이 나보다 한 살 어려요. 같이 컸어요. 근데 저보다 성령을 미리 받았어요. 세례식 끝나고 교회로 와서 다 함께 또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고 그치지를 않았어요.  방언이 나오면서 좋은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구요.

    성령 받은 후 황남옥이라는 친구집이 노봉 교회에서 오리쯤 되는데 밤에 그 친구랑 산길을 둘이 손잡고 찬송 부르면서 가고 새벽에 또 기도하러 노봉 교회까지 오고 그랬어요. 어떤 찬송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그 친구랑 그렇게 찬송부르며 새벽기도하러 갔던 일이 생각이 나요. 교회 다니면 성경도 순서대로 노래로 배우잖아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그걸 외워놓으니까 성경 찾기가 좀 쉬웠어요

    ♣작은어머니에 대한 추억

    제 기억으로는 노봉교회(서도교회 전신)에는 저희 작은어머니가 유필순 집사님과 사택에서 살고 우리집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우리 집에 가마솥이 있으니까 교인들 밥도 우리 집에서 하기도 했어요.

    저희 작은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우리 강아지 강아지!” 그랬어요. 제가 성령 받았을 때도 “아이고 내 강아지 성령 받았네!”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지요. 작은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자주 함께 잤어요. 교회 와서 자면 새벽에 작은 어머니가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다 큰 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하시며 “내 새끼 일어나! 일어나! 기도하자. 엄마랑 기도하자.” 하셨어요. 새벽에 일어난 저는 작은 어머니처럼 기도를 오래 하진 못했어요. 작은어머니는 하루 2시간씩 아침에 일어나시면 성령으로 기도하셔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내일이 토요일이면 오늘 금요일 아침에 밥 먹고 나면 토요일 오전 예배 끝날 때까지 금식기도를 했어요. 그때는 오전 예배만 드렸잖아요.

    금식 기도도 작은어머니 따라서 하게 되는 거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 오래 하시고 기도 시작하기 전에 “너는 조금만 하고 가서 자라.” 그러면 저는 “그래 나 조금만 하고 잘게!” 작은엄마는 보통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셔서 저를 깨워요. 교회에 괘종시계가 딩딩 치잖아요. 작은 어머니는 6시 될 때까지 기도하셔요. 그러고 기도 끝나면 “성경 읽자! 몇구절만 성경 읽자.” 그러면 또 같이 성경 읽고…

    저는 작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했어요. 작은 어머니가 자손이 없어요. 그래서 조카딸들한테 엄청 잘했어요. 저는 오빠 하나에 딸 다섯으로 6남매에요. 근데 작은 어머니가 다 그렇게 예뻐했어요. 어딜 다녀 오시면 신발도 사다 주시고 옷도 사다 주시고 ….

    작은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작은엄마는 34세쯤 혼자 되셨대요. 과부로 사시면서 조카들에게 사랑을 쏟으시고 교회 열심히 봉사하신 분이죠. 세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불쌍하지요. 시집 와서 남편 여의고 자식도 하나 없고 그렇게 혼자 사셨잖아요. 나중에 돌아가실 무렵에는 저희오빠집에 와서 지내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영석이와 영근이가 오빠의 자녀들이에요. 제 조카들도 지금 교회를 안나오고 있어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이사하다

    15살 되던 11월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오빠가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장동으로 이사했어요. 고 고정희 모친이 저희 오빠의 아내이니까 올케에요. 옛날에는 차편도 불편하니까 마장동에서 철둑가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 다녔죠. 제가 저희 어머니 손잡고 모시고 다녔어요. 어머니가 앞을 잘 못보셨어요. 살다가 중간에 눈이 어두워지셨어요. 그런데 안식일마다 교회를 열심히 못 간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마다 못 갔던 것 같아요. 그무렵 큰언니가 퇴계원으로 이사를 왔어요. 저는 언니랑 나이 차이가 10년이에요. 저는 조카들을 돌봐주면서 언니 집에서 지냈어요. 조카들이 어리니까 언니도 저도 교회를 자주 못갔어요. 회기동 교회 정은진 목자님이 가끔 심방을 오셨어요. 그리고 교회를 한 번씩 갈때는 조카를 업고 다녔어요. 이강분 자매 동생 이명숙 조카를 포대기로 업고 갔어요. 어떨때는 오빠네 집에서 하루 저녁 자고 토요일 날 명숙이를 업고 교회를 갔어요.

    ♣믿음결혼을 하다

    시골에 형부가 계시는데 저에게 시골 가서 뭐 좀 배우라고 내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산지 얼마 안되어 작은 어머니한테로 가서 작은집에 가서 지냈어요. 우리집 아저씨가 총각때 객지 생활을 하다가 군대 가고 제대후 집으로 좀 와 있어서 전주교회를 다녔나봐요. 그때 작은어머니와 안면이 있었는데, 어느날 대구를 갔는데 대구 기차 역전에서 우리 집 아저씨를 알아 봤대요. 어려서 봤으니까 얼굴이 남아있으니 알아본 거예요. 그때 인연이 되어 저를 소개시켜 주었어요. 그렇게 저는 믿음 결혼을 하게 된 거지요. 결혼식은 서도교회에서 했어요. 김디모데 목자님이 주례를 보셨어요. 그 당시는 나이가 어리니까 아무 생각 없었던거 같아요. 신혼 살림은 전주에서 시작했어요.

    ♣시댁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마음 내려놓기

    남편의 어머니는 계모였고 남편과 잦은 갈등이 있었어요. 시어머니랑 남편이 싸우는걸 보면 저는 자리를 피했어요. 이런 일들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한동안 소화를 못시켰어요. 시어머니랑 같이 살 수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 왔어요. 오빠네 집으로 와서 3개월 살았을 거예요. 방을 얻어서 나갈 때까지 교회를 못나갔어요. 항상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은 있었지만 결혼후 현실적인 생활이 신앙생활을 가로막았어요.

    저는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라고 늘 생활신조처럼 생각하고 살았어요. 교회를 다닐때도 ‘이 사람 때문에 나 교회 못 나가.’ 그런 마음이 전혀 없고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잘해야 된다. 저 사람이 나한테 불쾌한 말을 해도 내가 안 들은 것 같이 생각하면 되지.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렇게 말을 해?’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남하고 말다툼을 해 본적이 거의 없어요. 내가 배려를 해서 그런지, 받아들여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왜 그래?”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는거 같아요. 우리 집 아저씨와도 싸울 일이 있으면 말을 안했어요.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싸움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말 안하고 그걸 속으로 다 삭히느라 그런지 소화가 어느 날부터 안 되고 밥을 먹으면 체해서 구토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증상이 없어졌어요. 속이 편해졌어요. 자녀들이 다 장성하고 신경 쓸일이 적어지니 괜찮아진거 같아요. 교회는 결혼하고 3년 정도 못나간거 같아요.

    ♣자녀를 낳다

    제가 딸을 22살에 낳았는데 딸 낳기 전쯤 다시 교회를 나갔어요. 두 달된 딸을 세례를 바쳤어요. 제가 교회를 어려서 다녔던 믿음이 있어서인지 교회를 항상 가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살았어요. 어렵게 살면서도 딸을 정월 초에 낳았는데 낳은지 20일쯤 되어서 세례를 바쳤어요. 굉장히 작은 갓난아기 핏덩어리를 세례를 바쳤어요. 세례바치고 아기를 안고 물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둘째 용환이는 조금 커서 3살쯤 돼서 세례 받았어요. 셋째 정환이가 못 받았어요. 정환이를 29세에 낳았는데 그때 살기는 어렵지는 않았었는데 무슨일 때문인지 교회를 좀 못 다녔어요.  교회를 다녔으면 세례 바쳤을 거에요.

    큰딸 은순이가 시집을 갔는데 시댁이 워낙 불교가 심하니까 신앙생활을 못했어요. 어릴 때 중학교 다닐 때까지 교회 다녔을 거에요. 혜영 사모님이랑 잘 알아요. 같이 교회 다녔어요. 제가 집에서 조금씩 부업을 했는데 셋이 학교 다니니까, 직장을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를 못나간거 같아요.

    ♣신앙을 회복하다

    몸은 못가도 마음은 항상 교회에 있었어요. 부천에 살았는데 양봉도 목자님이 거기까지 심방을 와주셨어요. 두내외분이 오셨어요. 그날 직장 쉬는 날 오셨더라고요. 심방 예배때 405장을 부르는데 마음이 많이 움직이더라고요.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이 찬양은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되었어요. 교회를 갈 수가 없었는데 제 쉬는 날 심방 오시고 전화를 자주 해주셨어요. 그러다보니 제 신앙이 점차 회복되어 간 거 같아요.

    목자님이 전화도 자주 하시고 어려서부터 우리 작은어머니 밑에서 커서 믿음이 있어서인지, 항상 ‘내가 교회를 가야지, 나 교회 안 나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살기 어렵고 입는것도 여의치 않아서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던거 같아요. 언니가 교회를 더 잘 다니면서 교회 소식을 저한테 많이 전해줬어요. 언니는 저보다 열심히 더 다니셨어요.

    ♣친정어머니에 대한 추억

    저의 성격은 친정어머니 닮은거 같아요. 모든 걸 다 삭히고 참고 인내했던거 같아요. 어머니랑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어머니는 옛날 얘기 같은 걸 잘해 주셨어요. 누가 집에 뭐 팔러 오면 어머니는우리 올케한테 “그 아지매~ 물에 밥 한 숟가락 말아서 먹여서 보내라. 내 집에 온 사람 그냥 보내는 거 아니다.” 하셨어요. 밥 꼭 챙겨주라 하고 시골에 살 때도 장사하러 오는 사람 있으면 우리 집에 다 재워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다 자고 갈 줄 알았어요.

    ♣서도교회 나들이

    한 3년 전쯤에 동부교회에서 목자님과  한나반, 다니엘반이 서도교회, 남원교회, 전주교회로 나들이 간적 있었는데 한가지 후회되는게 있더라고요. 옛날 서도교회를 뜯었더라고요. (우리 작은어머니 당시 지은 노봉교회) 옛날에는 흙집이었잖아요. 그게 흙집인데 그걸 다 뜯었더라고요. 건물 지을때 상량 올린다고 그러잖아요. 가운데 나무에 교회 지은 년도가 아마 써 있었을텐데 나무 뜯은 걸 쌓아놨는데 상량을 보고 왔더라면 몇 년도에 지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쉬움이 좀 남더라고요. 그때는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후회되더라고요.

    ♣나의 신앙생활

    예전에는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안 가면 마음이 답답하고 교회 안가서 어떡하나? 다음에 교회가면 기도를 뭐라고 하나? 이런 마음이 있었으나 요즘은 몸이 아프니까 안수기도를 좀 받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안수기도 받으면 눈물이 너무 나와서 받을 수가 없어요. 눈물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나와요. 눈물 나오면 좀 힘드니까, 마음이 울컥하고 기도하면 눈물이 나고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러는 거겠지! 믿음이 강하면 그러지 않겠지! 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요.

    제가 어릴 때 외운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그 구절이 항상 머릿속에 담아있어요. 어렸을 때는 한 4~5번만 외우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그래요. 올해 내가 81살이잖아요. 저는 앞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다가 그냥 많이 안 아프고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어요.  많이 아프면 애들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하고 저녁에 잘 때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제가 7개월을 교회를 못 나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유튜브로 예배는 드렸어요. 아들이 아이패드를 사주어서 저녁에는 유튜브로 예배하고 있답니다.

    ♣큰딸 은순이

    제가 요즘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음이 제대로 안 걸어 지거든요. 예전에는 계단 80개는 손도 안 잡고 올라갔는데 지금 1개도 못 올라가요. 제가 딸과 함께 걷다가 딸에게  “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나 이렇게 니 손잡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냐.” 그랬더니 딸이  “엄마 희망사항이지 뭐.” 하길래 “그렇게 말하지마! 그렇게 될른지 몰라. 그렇게 얘기해야지.” 했어요. 우리 딸도 참예수교회에서 학생때까지 신앙생활 했기때문에 항상 마음은 있더라고요. 참예수교회가 참 좋았는데…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큰아들 용환이

    가끔 용환이한테 “어떻게 내가 죽을 때 유언을 해야 교회로 올 건가?” 그렇게 얘길하면 “엄마는 참~ 내가 가게 되면 가는데 뭐 그렇게 말을 해.” 영은회가 돌아오는데 용환이가 이달 말일까지 엄청 바빠서 엄마집도 못온다고 하네요. 건강 지켜가면서 일을 해야 할텐데……교회 동욱형제와 같은 나이면서 생일도 똑같은데 우리 아들은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어서 가끔 애가 타서 아들에게 “나 살아있을 때 교회 가는것을 좀 볼 수 있을라나, 없을라나.” 하며 말을 붙이곤 하지요.

    ♣작은아들 정환이

    작은 아들은 내 성격을 좀 닮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나는 좀 뭐든지 다독이고 누르는 성격이거든요. 정환이한테 신앙적인 말을 하면서 “너는 내 말 듣냐? 내 말 한 번에 들어본 적이 있냐?” 그러면 아들은 “ 내가 엄마 말 안 듣고 누구 말 듣고 컸어요? 엄마 말 듣고 여태 크고 장가 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했지. 엄마 말 잘 들었지. 어디다 써놓질 않아서 보여주질 못하겠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우리 아들딸에게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나쁘면 다 나쁜 거야. 형제를 잘 챙기고 형제 의좋게 살아라.” 라고 해서 그런지 의좋은 모습 보면 감사해요. 아이들 어릴때 맘대로 못 먹이고 항상 안쓰럽기도 했지만 야단치지 않고 기를 정도로 착했어요. 자녀들이 착하게 커줘서 사춘기라는 걸 모르고 컸어요. 부모 속을 안썩이고 말 잘 듣고 순순하게 잘 커준 자식들이 고마워요.  지금도  3남매가 의좋게 사는 모습이 감사해요.

    지금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신앙생활 할 날이 오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부군 살아생전 함께 찍은 사진*아드님이 사 주신 아이패드로 성경도 보시고 유튜브 설교도 들으신다고 하심 *교회 활동 모습 / 해마다 성경 통독 하시고 사진 찍으신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