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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2024. 4. 30. 화요일 밤 간증회(이명철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한 구절 읽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성도님들께 안부인사

    할렐루야 동부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제가 오늘 교회를 오며 헤아려보니, 오늘이 저희 부부가 동부교회로 전입온 지 2개월이 되는 날이더라구요. 먼저 그간 저희가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많은 은혜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저희가 동부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번 시간, 제가 드리는 간증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면_ 좋겠습니다.

    제가 동부교회에 출석하면서 받은 몇 가지 첫 인상이 있습니다. 우선 목자님 사모님 인상이 굉장히 좋으시고, 성도님들의 마음이 따뜻하시다는 것 외에, 젊은 청년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향방을 결정하는 순간에 있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 그리고 참고가 될 수 있는 저의 경험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목회자의 식구로 교회에 살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세밀하게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꼬마 시절 동부교회에도 있었지만 그 이후 전주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였는데요, 그 때 교회에 자주 와서 기도를 하는, 교회 전체적인 차원의 기도 운동이 있었습니다. 전주교회 2층 예배당 입구 옆 게시판에 아주 큼지막한 표_ 희망자에 한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쓴 다음, 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 칸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너무 예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각 가정에서 기도를 하여도 표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기억을 하는데요, 그 큰 기도표 맨 위에 ‘주님, 저 왔어요’ 라는 큰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이름 칸에 동그라미를 꾸준히 표시해야겠다는 동기 외에도, 다른 친구들은 다 성령을 받았는데 교회에 살고 평일 예배까지 출석하는 제가 성령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이 속상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겨울 영은회가 끝나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가 혼자 기도를 하고 다시 사택으로 내려와 씻고 밥 먹고 학교를 가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초등부 영은회가 보통 며칠이니까, 그것의 스무 배, 그러니까 한 달 정도 이렇게 기도하면 주시겠지.. 그런데 쉽게 안 주시더라구요.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두 달, 세 달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전주교회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 예배당이 매우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새벽 아침에 예배당에 올라가면 한 쪽 창에서 햇살이 빗금치듯이 들어오구요. 그 햇살에 비쳐 흩날리는 입자들이 반짝입니다. 바로 옆 산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오고.. 그 곳에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그 게시판의 팻말처럼, 주님 저 왔어요. 하면, 그래 왔니, 내 아들아. 비록 지금 당장 제게 성령을 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하며 그 고요한 햇살 속에서 저를 품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나님의 사랑를 느끼며 기도를 하다보니, 새벽에 예배당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내심 기대까지 되었고, 하루 하루 하나님께서 저의 매일을 깊이 동행해주신다는 느낌을 난생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초부터 시작한 기도는, 수개월 더 드린 끝에 그 해 가을, 하나님께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진로를 인도해주시다

    기다리던 끝에 성령이란 선물을 받았으니, 그럼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교회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에 봉사를 하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제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현재 내가 학생이니, 주어진 현재의 활동,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 중 하나 일 수 있겠다..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전주에 공부를 열심히 시키던 학교 중 하나라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참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교회 안에 공부를 잘하시는 형들이 있어서 그 형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 자발적으로 앉아있는 우리 청년들처럼, 그 형들도 평일 예배, 안식일 예배를 온전히 다 드리고, 예배가 끝나고 어디론가 가더라구요. 그래서 집에 갔나보다 하고 근처 독서실에 가보니, 벌써 거기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구요. 입시가 치열했던 그 시기에, 서울도 아닌 전주 일반인문고교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 그리고 공부를 하며 결과적으로 모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최선을 다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절대 손해는 보게 하시지 않는구나라는 간접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대방교회로 부임하시면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전학간 학교가 OO포 고등학교였습니다. 학교가 공부를 잘 못해서 똥포 고등학교로 불렸는데요, 심지어 첫 해 담임 선생님이 제게 전학을 권유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제 어머니가 제게 무언가 가져다 주실 것이 있어서 제게 방해가 될까봐, 제게 말씀하시지 않고 학교에 살짝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실 뒷 문에서 저 말고 다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야간 자율 학습도 있었는데, 참여한 학생이 저를 포함해 고등학교 1~3학년까지 전교에서 2명이었고, 끝까지 매일 꾸준히 참여한 학생은 저 1명이었습니다. 분명 저 말고도 각 가정이나 학원에서 성실히 공부를 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교회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거든요. 텅 빈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불안할 때, 힘이 들 때, 언제든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고 찬양했습니다. 평일 예배도 참석하였습니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일독하는 게 먼저라는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성경통독도 고3때 처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까이 있게 해주신 은혜에, 저 또한 전주에서 보았던 그 형들과 같은 방식으로 신앙생활과 공부를 성실히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일상에 저를 지탱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주변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적성과 형편에 부합하는 학교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를 지원할 때, 학과도 정하잖아요. 당시 주변에서 세상적으로 유망한 이런 저런 학과들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도 가운데, 직업을 위해 학과를 택하기보다, 제가 여러모로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구할 수 있겠다 싶은 전공을 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두에 저희가 읽었던 잠언 말씀구절에 뒤이어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잠 8:19)

    오늘날을,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가성비의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그간 공부한 것에 비해 더 많은 인정과 수익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제 장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리라는 평안과 담대함을 얻고 싶었습니다. 방금 읽었던 구절처럼, 이 땅의 정금이나 천은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실 상급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살고 싶었습니다. 임용시험에 합격해야만 하나님 은혜, 불합격이면 무조건 내 부족함이라기보다, 하나님을 구하며 현실의 시험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과정- 돌아보면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군(軍) 복무로 인도해주시다

    그런데 남자는 대학교를 진학해도, 또 군대라는 관문이 있잖아요. 그 때만 해도 군대에서 여러 안전 사고 등 들리는 뉴스들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무언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잘 다니지 못하는 부분이 제일 우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어떤 분이 군대를 가신다고 교회에서 환송회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를 또, 그리고 그 다음달에 또, 생각보다 자주 오시더라구요. 그래서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니, 대학교를 다니며 훈련을 받고 이후 임관하는, 학군장교라는 제도가 있더라구요. 아, 이거라면 내가 군복무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지금보다 제가 그 때 더 체격이 왜소했고 체력이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취업난에 더불어 학군장교 경쟁률도 상당하여 제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 유년시절, 성령을 구하며 하나님을 찾던 제 마음을 다시 떠오르게 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제게 신앙적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혼자 공원에 뛰어가 시험 종목들을 연습하는 준비를 1년여 정도 한 끝에 학군장교에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강원도 전방이나 교통이 불편한 산지 부대에 배치받은 동기들과 달리, 오직 저만 인천교회에 대중교통 20분이면 갈 수 있는 부대로 배치받게 해주셨습니다. 장교도 밤을 새우는 평일 근무, 종일 근무하는 주말 근무를 서야하는데요, 군 간부들이 제일 기피하는 근무 요일 중 하나가 토요일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근무하고 이튿날 일요일을 쉬면 주말이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제 막 들어온 막내 초임 장교임에도, 일요일, 공휴일에 근무를 더 서는 대신,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전역할 때까지 토요일 근무를 제외시켜주시는 상관을 만나게 해주셔서 군 복무 기간 동안 안식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에 있어서 제가 가장 바라던, 안식일을 지키는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국으로 인도해주시다

    제가 미국에서 몇 년이라도 공부하고자 했던 동기도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 생활을 더 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군 전역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동부에서 열리는 단기 신학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많은 목자님들, 신앙의 선배님들, 청년들을 통해 제 신앙이 더 발전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조금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앙과 제 전공에 힘을 써서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더 나은 그릇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하며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원이 휴직을 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휴직을 할 수 있는 규정이 비교적 완화되었고, 그것을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제게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본래 젊은 남자 선생님을 보내는 것을 잘 추천하지 않지만, 그간 학교에서 근무한 태도와 실적을 고려하였을 때 한 해라도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서 추가적인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믿고 먼저 추천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교육청의 최종 면접 심사 때도 면접관분들 중, 과거 교육청 주관 행사 때 저를 눈여겨 보셨던 장학사님이 계셨습니다. 인사 규정이 바뀐 후 제가 최초 지원자였음에도,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저를 보내주시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상황적 인도하심 가운데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많이 멀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가는 길에 교회 형제, 성도님들께서 차를 함께 태워주셨는데, 참 감사하면서도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교회에 봉사하고 싶었지만 저로 하여금 먼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그 분들과 가까워진 이후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한국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착실히 했다 해도, 그리고 인접 뉴욕 교회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신앙생활을 해서 그간 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하여도, 출석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과 임원들이 직접 신앙생활을 함께하며 제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저를 지켜보고 직접 검증하는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교회 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와, 교회 생활관에 들어와 교회를 위해 봉사해주지 않겠냐고 먼저 물어오셨습니다. 이미 한 명의 형제가 있지만, 교회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여 제가 들어와 같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의하셨습니다. 제가 미국 교회에서 충분히 덕을 끼치며 잘 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서는 학교 기숙사에 그대로 남아 지내는 것이 어떨까_ 하셨지만 저는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감사했습니다. 먼저 교회 임원분들께서 저를 인터뷰하시고, 그 간의 제 신앙생활의 태도와 왜 들어오려 하는 것이며, 어떻게 봉사할지 등의 대답 내용을 가지고 다시 직무임원회의를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교회를 섬길 기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사랑과 신중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각 나라와 교회 실정을 고려하여, 본교 목자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그리고 현재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들처럼,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성업에 힘쓰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남은 기간을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에 봉사하며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분들을 통해 신앙의 여러 모습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제가 홀몸에, 휴직을 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 신분이었고, 그것도 교회에 거주하며 봉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 참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출석하던 교회가 대전 총회와 같이 많은 교회 행사가 주최되는 곳이었고 현재는 미국 총회의 교육센터로 다시금 거듭나는 중에 있습니다. 그 교회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며 미국 청년 및 성도로서 할 수 있는 행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전반적인 미국 생활과 학업을 인도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덤 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기 전 하나님께 가장 바라고 구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마음을 함께 구할 수 있도록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다

    그렇게 교회에 머물며 집중적인 신앙의 수련 기간을 거치는 동안, 제 자신의 밑바닥이 더욱 적나라하게 깨달아졌습니다. 말세를 향해 가는 세상 속에, 제 자신은 너무도 연약했고, 제 신앙을 홀로 지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간 목자님들께 배운대로, 제가 배우자에 관해 기도한 두어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요, 그 중 가장 큰 하나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와 함께 어디든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 환경의 변화 뿐 아니라 신앙적 도전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 자신에 비교해보았을 때 훌륭하신 자매님들이 많았습니다. 예의상의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누군가와 꼭 비교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무얼 바라기 전에, 제 자신부터가 제 기도 제목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적 성숙과 용기, 그리고 책임감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상대 자매에게도 저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제 현재 현실적 상태에 대해 기대게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한 명의 피조물이자 인간이었기에, 누가 되었든 결혼 전 제가 어떠한 약속을 하거나, 소문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상황적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제 부족한 신앙적·인품적 됨됨이 때문에, 배우자 기도로 정확히 10년이 채워지는 시점에 지금의 자매를 아내로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신앙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그냥 평상적인 기도가 아닌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 갈수록 아내에 대한 제 사랑이 깊어지는 가운데, 저희를 신부로 사랑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점점 더 체험하고 있음에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변함없이 인도해주시는 은혜

    앞서 저희가 불렀던 찬양 499장(저 장미꽃 위의 이슬)처럼, 미국의 예배당 새벽 아침에도 전주교회와 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에서 햇살이 빗금치듯 들어옵니다. 흩날리는 입자들이 햇살에 빛나고, 바로 옆 창문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들어옵니다. 예배당 밖에서 사슴들이 풀을 뜯고 안에서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20년 전 전주의 예배당에서 한 소년을 안아주시던 당신은, 먼 타국에서도 저와 함께 동행해주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제 소망과 기도들을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구할 때에, 제 앞의 현실을 극복할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 교회 앞 잔디밭에 죽은 나무가 있었는데요, 그간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제 사비로 한 그루- 향기나는 작은 묘목을 심어드릴 수 있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교회 앞 마당에 심어드린 그 작은 나무는 올해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전 회기동 교회로 돌아와_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개인적인 일을 통해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배우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당신의 애타는 부르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당신께서 간절히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서두에 읽었던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성도님 여러분,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는, 저희에게 훌륭한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 안에서 지금처럼 함께 화목하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 신앙의 여정에 함께 하기를 겸손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은혜와 감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아멘.

    3월에 전입한 이명철 형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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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저는 동부교회 김동녀라고 합니다. (1936년생) 어릴때 경북 안동 풍산읍에 살았습니다. 문경새재 넘어오면 자그마한 풍북국민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에 입학을 하였어요.

    어릴 적 학업에 대한 열망이 크다

     8살 입학식날 큰 외삼촌이 “동녀야, 학교 가서 나이와 성을 물어보면 일본말로 대답해야 한다. 나이는 핫사이데스, 이름은 가네야마도우조라고 대답해라.”  저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마음 속으로 가네야마도우조, 핫사이데스를 속으로 계속 되내었어요. 학교에 가서 외운대로 큰 소리로 대답을 잘 했어요. 그런데 1년 다니다 가정 형편이 안좋아서 이사를 하면서 학교를 못다녔어요. 종이도 없고 연필도 딱 한자루 있던걸 아껴 썼고 다 쓰면,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씨도 쓰고 1,2,3,4도 써보았어요. 그러던 중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서 풍산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다시 1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세종대왕 한글 1회래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으니 우리글을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8살, 15살, 20살도 1학년이에요. 장가 간 사람도 2명이나 있었어요. 저는 1년을 공부하다 와서 그런지 공부가 쉬웠어요. 선생님은 “얘는 수학을 잘하네.” 하시며 나중에 2학년은 건너뛰고 3학년으로 올려 주었어요. 그 당시 공부 잘하는 사람은 1반, 중간은 2반, 공부 못하는 사람이 3반이었어요. 저에게 수학은 좀 쉬웠어요. 그런데 저희집은 너무 가난하고 먹을 거리가 없어서 한때는 굶고 한때는 나물밥 먹는 형편이라서 또다시 학교를 못다니게 되었어요. 학교 가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다시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쓰고, 물가에 가서 모래에 쓰고 당시 종이 색깔이 신문보다 까맸어요. 종이에 가갸거겨고교를 쓰며…… 종이가 너널너덜 할때까지 썼어요. 점으로만 표시하는 아래아라는 글자도 있었어요. 공부를 중단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제 시대 1년, 세종대왕 한글 나오고 1년! 이렇게 2년은 완전히 다녔어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다

    아버지는 저를 부잣집에 시집 보낸다며 21살에 30리 되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보냈어요. 저희 외가쪽으로 연관이 되는 집안이었어요. 시집 식구가 16명이에요. 시할머니, 시어머니, 맏동서 가정, 시누이 2명, 시동생 3명, 저희 부부까지 7남매에요. 매일 분주히 일하고 베를 짜고 가족이 많다 보니 보리쌀을 가마솥에 거의 차게 넣어도 다 소비가 되었어요. 부자라 해도 쌀은 어른들만 좀 먹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고봉밥으로 먹었지요. 일을 해야 하니 분가를 못한 채 10년을 살았어요. 어느날 가까운 곳에 빈 집이 나서 남편이 저와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분가를 했어요.  처음 분가하고 살림이 조금 어려워서 낮에는 시댁에 가서 일 해주고 쌀을 받아왔어요. 하루는 시댁가서 밤 10시쯤 설거지 끝내고 오니 남편이 없어요. 동네에 아는 집들을 찾아가 보았어요. 동네가 다 윤씨 일가에요. 점방 뒷집에 가보니 그 집에 사는 분이 남편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돈을 대줄테니 나락을 사서 차에 실어서 정미소에 가서 찧어서 쌀로 팔면 괜찮을거 같다. 다 일가이니 잘 될거다.”  하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은 나락 장사를 시작했고 1년을 하니까 너무 잘 되어 그 돈으로 땅을 3마지기를 샀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윤씨 일가다 보니 나락을 높게 달아도 몇 바가지씩 더 넣어주면서 “아지매하고 아재하고는 살아야 된다. 마당에 가마니를 쟁여두면 쥐도 먹고 닭도 먹으니까 축 나는거 보충해야 된다 ” 하며 나락을 많이 퍼넣어 줬어요. 나락이 많아서 길에 길게 쟁여뒀는데도 아무도 훔쳐가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남편은 8톤짜리 큰 차를 불러서 수십가마니를 실어 나르며 일을 하였어요. 나중에는 논 8마지기 네모 반듯한 걸 샀어요.

    서울에 올라오게 되다.

    시동생이 캐나다에 이민가려고 보유하고 있던 기름집을 처분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어요. 남편은 급하게 집안 어른에게 전화해서 논 8마지기를 팔고 시동생의 가게를 인수 받아서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아들이 군대를 갔어요. 군대 간 뒤에 보니 찬송가랑 성경을 많이 사놓고 갔더라고요.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이제는 신학을 한다고 해요. 저는 아들이 사놓은 찬송가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니까 그냥 읽었어요. 찬송가를 읽으니까 눈물이 자꾸 나왔어요. 나는 속으로 아들 따라서 하나님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엄마가 안믿으면 아들이 어디에 가서 전도를 할까 그런 마음도 들었어요. 얼른 하나님을 찾고 싶었어요. 저는 장사가 싫었어요. 장사하면서 아무리 선한 사람도 물건을 팔 때 좋은거 좋다 나쁜거 나쁘다 그렇게 못하잖아요. 좋지 않아도 손님이 물건 좋아요? 하면 네 좋아요 그렇게 말해야 하고….거짓말하는 것이 싫더라고요. 장사 그만두면 얼른 하나님 집부터 찾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부교회 이름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어디 있나 찾아봐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 장사하기 싫어요. 장사 좀 안 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몇 년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시장을 뜯는다 하더라고요. 아주 신기했어요. “아 잘 되었다.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장사 치울 생각하니, 속으로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한집 두집 시장 뜯는다고 가게를 나가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그런데 남편이 말을 안해요. 며칠 후  “누구는 나갔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기름가게 고추가게를 고물상에 주면 너무 쌀 것이고 어디 누가 새로 차리는 사람을 찾아보고 주면 돈을 더 받을 건데 한번 찾아보죠!” 해도 남편은 아무 말도 안해요.

    시간이 흘러 다 나가고 3집 정도 남았어요. 마음이 타들어 갔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가야 겠네요.” 그때서야 남편은 입을 열었어요. 애들 용돈도 줘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니 가게를 그만 둘순 없고 남편의 복덕방으로 옮긴다는 거에요. 그리고 남편의 복덕방은 차고에다 우선 하겠다는 거에요. 저는 남편에게 복덕방은 상봉터미널 앞이고, 38-2 버스 종점인데 고추가게, 기름가게가 잘 되겠냐며 먼지가 많아 물건도 내놓지도 못할텐데 그만 이번 기회에 치우자고 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 사이 아들은 신학을 마친 후 안동 참예수교회에 발령이 났어요.

    가게를 옮기다

    가게를 옮겨놓고 보니 고추 가마니가 한가득이에요. 38-2 종점이니 사람이 버스에서 꾸역꾸역 내려요. 그 당시 상봉터미널에서 강원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고추가게&기름가게가 생겼네? 여기 무슨 장사가 되나?” 하며 다들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지나가요. 저는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서 문을 닫아 놓고(문은 유리에요) 돌아앉아서 고추 꽁다리만 땄어요.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내가 이럴때가 아니고 하나님 찾아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닌데…..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분이 들어오더니 “아, 여기 고추가게 잘 들어왔네! 기름가게 잘 들어왔네 하시며 “아줌마! 고추를 사고 싶은데 아주 좋은 것도 말고 아주 나쁜 것도 말고 좀 섞어서 20근씩 달아주세요.” 하며 큰 가게를 운영하는데 하루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도 많이 쓰니 대달라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은 대병으로 2개씩 쓴대요. 그 옆가게도 우리 물건을 써서 두 집이 단골이 되었어요. 조금 작게 하는 가게 4집도 단골이 되어 시장에서 장사할때보다 마진이 나아요. 아주 좋은 물건도 아니고 아주 나쁜 물건도 아니니, 장사하는 제 맘이 편하더라고요. 고추는 꽁다리만 따주면 가져갔어요.

    안동에 내려갈 일이 생기다

    그러던중 시골 큰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골을 가야하니 단골집에 물건을 많이 갖다주고 내려 갔어요. 3일장을 치르고 친인척들 모두 다 돌아가고 저도 올라가려고 생각하니 그냥 올라가면 내가 언제나 세례를 받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 윤목자가 안동교회 있으니 세례를 받고 가야겠다.’ 남편과 같이 가면 세례를 못 받게 할거 같아서 시어머니에게 “저는 오늘 서울 올라 가야해요.” 했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올라간다는 저의 말에 삼우제나 지내고 올라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올라가야 돼요. 애들 밥도 해줘야 되고 장사도 해야 되고 올라가야 돼요.” 버스가 하루에 두 대밖에 안다니는데 밤 10시여서 저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가방을 싸들고 지금까지 부모 말을 거역해 본적도 없고 거짓말도 안 해봤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어머니 말이 귀에 안 들어 오고 가방 들고 달아나듯 나갔어요. 신작로로 차 타려고 나오니 금방 차가 왔고, 안동 삼거리에서 내려서 안동 참예수교회를 찾으려고 올라갔어요. 예전부터 안동교회는 꼭대기에 있다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간판이 안 보여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참예수교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고 또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로 옆에 있잖아요!” 하더라고요. 교회 간판이 아주 작아서 눈에 안보였어요. 마침 교회는 영은회를 하고 있었고 점심식사를 막 시작하려던 때였어요. 아들 윤목자가 어떻게 오셨냐고 반가워 놀라며 물었어요. 큰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러 내려왔는데 아버지랑 같이 다니면 세례도 못받고 서울 올라갈거 같아서 혼자 교회로 왔다고 하니 “아이고 그래요. 그러면 세례받고 가셔요.” 했어요. 영은회 마지막날 손자랑 같이 받았는데 그 손자가 윤석원 목자에요. 윤석원 목자 아기때 제가 같이 낙동강에 가서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받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다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찌나 기쁜지 몰라요. 기차 창문 내다보니 산에 나무들이 나를 보고 웃는거 같고 춤을 추며 좋아하는거 같아요. 나도 손을 흔들어 주고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차를 타고 오는데 왜 그렇게 좋은지 몰라요. 차를 타면 차멀미를 해서 차도 잘 못타는데 그날은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고 차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지나가며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거 같고 세상이 너무 달라보이고 이제는 서울 올라가서 하나님 집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가게일을 하면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를 하고 싶었어요. 기도도 할 줄도 모르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례를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어요. 밤에도 기도하고 찬송가도 매일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텔레비전에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와!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놓고 좋았더라 하신거구나! 참 신기하고도 신기하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넓은 땅에 사는 동물이 정말 신기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저렇게 만드셨을까? 이 동물은 참 사납고 저 동물은 무섭게도 만드셨네! 하나님이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안식일에 가게 문을 닫고 교회를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가까운 교회를 찾다

    안식일이 되었어요. 아침을 일찍 해먹고 단골집에 배달을 해주고 교회를 찾아나섰어요. 전농동 어디에 있다는데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에게 물으니 17번을 타면 전농동 사거리에 간대요. 운전수 뒷자리에 탄후 어렵게 내렸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참예수교회 간판이 안 보여요. 이리저리 다니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그때는 전화도 없었어요. 전농동 사거리 근처에 있다는 말만 듣고 찾아간 거지요. 간판이 크질 않았어요. 도착하니 아침 9시였는데 그 당시 허수진 목자님 가정이 시무할때였는데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하시며 아침을 같이 드시자고 하셨는데 저는 먹고 왔다고 했어요. 교회를 처음 찾는거라서 일찍 나섰다고 설명해 드렸어요. 교회오니 하나님 집을 찾은 기쁨에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성령을 받다

    저는 가게일을 하면서 고추자루 뒤에서도 기도하고 기름솥 뒤에서도 기도했어요. 항상 기도했어요. 하루는 가게에서 고추 꽁다리 자르다가 기름솥 뒤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며칠후에 교회에서 기도할때 안수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안수를 받았는데 성령을 받았어요. 세례받고 두 달만에 성령을 받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안식일에 문닫고 교회 다니다

    가게 하면서 단골집에만 팔아도 시장에 있을때보다 마진이 나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거 같아요. 단골집에는 안식일 전날 물건을 대주고 안식일엔 문을 닫고 교회 예배하러 갔어요. 월 화 수 목 금은 계속 장사하고 토요일은 가게문 닫고 오전예배 드리고 칼국수 점심 맛있게 먹고 돌아왔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가게를 그만둔지 오래되었어요. 성경을 몰랐을때는 찬송가를 많이 읽고 성경은 시편 1편 정도만 마음에 와 닿았었는데 지금은 성경 암송도 많이 하고 성경이 참 좋아요. 작년에 눈도 아프고 어지럽고 해서 그때 잠깐 성경책을 못 읽어봤고 너무 부끄러워서 올해는 작정하고 읽어보는데 너무 좋아요. 예레미야 51장 15절, 창세기 2장 3절, 요한복음 17장 11절, 빌립보서 2장 6절~8절, 요한복음 14장 26절, 디모데전서 2장 4절, 요한복음 3장 17절, 히브리서 7장 3절, 갈라디아 4장 6절, 사도행전 4장 12절, 로마서 8장 16절 등 성경구절 다 좋아요. 찬송도 492장, 544장, 28장, 253장, 455장, 338장, 405장, 363장, 204장, 460장, 363장, 168장 등 모두 다 좋아요.

    소망이 생기다

    제가 이제는 이렇게 다 늙었는데 꿈이 있다면 육신이 죽어서 낙원에가고, 예수님 재림할때 부활하여 천국가는 것이 꿈이에요. 세상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저의 안 믿는 자녀들이랑 손주들이 내가 살았을 때 믿는 걸 봤으면 너무 좋겠어요. 내가 죽은 뒤에라도 꼭 믿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날 불러주셨듯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였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이 지금은 믿지만 옛날에 믿지 않을 때는 교회를 싫어했어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어릴 때 학교다니며 숫자와 글씨를 알게 해주셔서 찬송가와 성경책을 읽을수 있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집에 오면 늘 사랑이 있고 교회오면 너무나 좋아요. 요한일서 5장 20절 말씀처럼 지각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저를 붙들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한일서 5장 20절. 

    아래 사진은 김동녀 모친께서  찬양도 하시고 부군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 [성도 간증] 하나님의 인도하심 (천안교회 김해이즐 자매)

    [성도 간증] 하나님의 인도하심 (천안교회 김해이즐 자매)

    하나님의 인도하심

    천안교회 김해이즐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필리핀의 남부지역에 있는 다바오라는 지역 출신입니다. 그 지역 인구의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저는 3남매 중의 첫째였고 그래서 저희 가족은 부모님 포함하여 모두 5명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가 어렸을 때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빠짐없이 저희를 성당에 데려가셨고, 모든 미사 일정에 참여하셨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은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9살 때 갑자기 어머니께서 새벽에 하혈을 많이 하셔서 급히 병원에 실려 가셨습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3일 만에 어머니께서는 안타깝게도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30세였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어린 우리들을 두고 엄마를 데려가셨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엄마가 곁에 없어서 아직은 어린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저희 셋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힘든 일을 가리지 않고 여러 종류의 일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어린 시절에 엄마가 곁에 없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지만,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저희는 매사에 올바르고, 신앙적으로는 경건하게 그리고 저희가 가진 것에 항상 감사하며 자랄 수 있었습니다.

    2013년 8월에 저는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29살 무렵에 저는 병원의 원무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원의 아는 사람을 통해서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아는 사람의 여동생의 남편이 한국인이고 제 남편과는 직장 동료였습니다. 저희는 몇 달 동안의 장거리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제가 있는 필리핀 마닐라로 와서 저와 결혼할 때까지 머물렀고, 결혼 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달 후 저의 비자가 발급되어, 저도 한국에 들어와 남편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땐 겨울이었습니다. 한국의 날씨, 장소, 언어, 사람들, 음식, 문화, 종교까지 모든 것이 저에게는 낯설었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당진시에 살았습니다. 당진에는 필리핀에서 시집온 아는 사람도 같이 살았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아는 사람이 교회를 가자고 해서 한두 번 간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는 이단으로 알려진 하나님의 교회였습니다. 이 사실을 남편이 알고 걱정이 되어 몇 달 후에 이곳 천안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천안에 이사를 온 후에 남편은 저에게 천안교회의 이동구 집사님과 김미영 자매님을 소개시켜 주셨고, 두 분께서는 저희를 점심 식사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남편이 기독교인인 것은 알았지만 참예수교회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처음 왔을 때 성도분들께서 마치 저를 가족처럼 반겨주시고 환영해 주셨습니다.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는 이미 계획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은 저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첫해에 저는 첫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임신 기간 동안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공부했습니다. 한글을 알아듣고, 말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한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을 따라 안식일에 참예수교회에 가는 것은 저에게는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제 믿음을 다시 시험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안식일에 예배에 참석했을 때 성도분들이 중얼거리는 소리로 기도하는 것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라서 그런지 너무 낯설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다니는 교회이기에 어쩔 수 없이 남편이 교회 가는 날이면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큰 아이 지은이를 낳고 나서는 남편이 하는 말이 이번에 나도 지은이와 같이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필리핀의 성당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또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의아스럽게 생각을 했지만 세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날은 봄철이라 춥지도 않고 날씨도 좋았습니다. 교회는 천막을 몇 개 세우고 세례식 진행 중 앉을 수 있는 돗자리를 펼쳤습니다. 저희가 세례 받는 모습을 보기 위해 성도님들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고 너무 떨렸습니다. 그날 물이 너무 차가울 줄 알았는데 물에 들어갈 때 저는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물에서 나올 때 제가 드디어 참 세례를 받았고, 죄사함과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을 선물로 받았다는 생각에 감동과 감사함이 넘쳤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는 지속적으로 성경공부와 분반을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 배웠습니다. 참예수교회 성도분들은 안식일을 준수하고, 세례와 성령, 세족례를 받으며, 일 년에 두 차례 성찬례를 통해 누룩 없는 떡과 순수한 포도즙을 나눴습니다.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해서 간증하겠습니다. 목자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후 안수기도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도 분들의 기도 소리도 함께 들렸습니다. 기도를 계속하다 보니 갑자기 저의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머리 위로 안수하는 목자님의 손이 느껴지고 제 몸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저의 기도하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목자님은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항상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여정이었습니다. 안식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제 믿음을 온전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또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는 문제와 도전에 마주치지만, 기도를 통해 불가능한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과 함께라면 가능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에도 저는 참예수교회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성경공부와 교육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참예수교회의 성도가 된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두 딸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믿음 안에서 잘 자라고 있는 두 아이를 볼 때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지은이와 지아가 믿음 안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모든 선생님들과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참으로 믿음의 힘은 강력합니다. 앞으로 저와 우리 가족들을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모든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해이즐 자매 가족 사진>

    김해이즐 자매 간증 유튜브 영상

  •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얼마 전 제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성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마음이 뜨거워져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알리고 전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영은전도대회에도 초대하고 설교 말씀도 보내드리고 만날 때마다 권면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부모님들은 더욱더 거리를 두셨습니다.

    저희들의 권면이 부담스러우셨는지 한동안 얼굴도 뵙지 못하고서야 너무 성급하게 마음이 앞섰던 게 아니었나 반성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전략을 바꿔(?) 아예 교회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역으로 질문도 하시는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너희 교회에서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 옳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고 가족 전도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화면으로 너희들 잘 지내는 것 보고 있다고 하셔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청주 교회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설교며 특별 찬양 발표며 간증이며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싫으면 그림자도 꼴보기 싫다는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신다니 저에겐 긍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는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대만 참예수교회 방문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대만에 가는데, 부모님도 언젠가 꼭 같이 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다녀오고 나서도 대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곳의 성도님들께 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 굉장히 귀 기울여 들어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했습니다. “마침 오늘 저녁(금요일)에 예배가 있는데 장항서부교회로 함께 가서 예배 드리면 안 될까요?”하고 말이죠~ 저는 무뚝뚝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순간 당황하시다가 “그러지 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감사주!!

    저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고 뒤늦게 무슨 일이냐며 어머님이 오셨지만 이미 아버지가 약속하셨으니 무르시면 안 된다고 우겼습니다. 어머님도 웃으시며 그러자고 하셨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뒤 장항서부교회로 향했습니다. 군산인 아버지 댁에서 장항서부교회는 차로 20분 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또 마침 그 때 윤석원 목자님께서 장항으로 이사를 오신 날이었고 첫 설교를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복이다> 라는 말씀이었고 이미 ‘복’이신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우리 자체가 복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니 믿는 성도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닌 “새해 복이 되십시오”라고 인사하자고 하셨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께서 저에게 “새해에도 복이 되렴.” 하고 인사해 주셨고 저도 화답했습니다. 예배가 어떠셨냐는 질문에 “젊은 목자님께서 말씀을 명료하게 잘 하신다.”라며 칭찬하셨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린 기념사진을 깜박했어요, 기념으로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라고 하니 아버지께서 못 이기는 척 “그럼 돌아가서 찍든가.”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너 이거 너희 교회 월말 발자취 영상에 올릴 거지? 하셨고요. 진정 구독자가 맞으시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당장 참예수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으신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내가 잊고 있을 때에도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셨다는 생각에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 손을 꼭 잡으며 우리 더 열심히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성도님들께서도 함께 기도 부탁드리고 저처럼 전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언젠가 이뤄질 기도 응답의 소망을 품고 열심히 전진하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감사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성도간증] 대학부 단기신학 간증

    [성도간증] 대학부 단기신학 간증

     

     

    윤*원 형제

     군대에 있었던 작년 1월쯤이었습니다. 상병 중반 넘어가면서 저에게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크게 할 일이 없어지자 일상생활의 패턴은 무너졌습니다. 안식일에 온라인 예배조차 드리지 못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지는 삶을 살았고 그런 상황은 전역을 하고 대학부 영은회에 가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영은회 말씀은 생소했고 전처럼 이해되지 않아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때 무너진 신앙을 깨달았습니다. 영은회 주제 말씀부터 이해하려고 집중했습니다. 단기신학에서는 더 나아가 신앙 성장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기신학을 마친 후 교회 사역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부족함으로 부담을 느끼고 꺼려했던 교회 사역에 부족한만큼이라도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서부교회 아동부 영은회에 처음으로 집행 교사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다음의 말은 영은회 발표 시간에 했던 다짐입니다. ‘나 윤양원은 다시 세움 받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올해 대부분을 군대에 있었다는 핑계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했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하나님께로부터 열심히 주님을 따를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주께 다시 세움 받아 나아가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장*헌 형제

     대학부 영은회, 단기신학, 아동부 영은회 등의 교회 행사 일정을 함께하며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 싱가포르에서는 신앙생활을 편하게 했었습니다. 한국에 와서는 교회 행사를 참여하게 되었고 근 약 5주간의 연이은 행사 준비와 참여, 뒤이은 모든 개인, 일요일 교회 일정까지 쉼 없이 병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천국의 상급을 소망하며 기쁨과 묵묵함으로 모든 일정을 소화하려고 했습니다. 누적된 피로는 곧 처음 겪어보는 통증과 구토를 겪게 했고 구내염으로 밥을 넘기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웠습니다. 수면까지 부족해지며 회복이 더뎌졌습니다. ‘거절할까? 쉬고 싶다..’ 약해진 건강 상태는 ‘나’에게 집중된 생각들로 마음을 방해하기 시작했지만 하나님께선 이내 말씀을 통해 답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 또한 은혜이며 내가 아닌 주님이 일하시고 계심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온전히 순종하며 고난에도 감사하는 주님의 종이 되기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장*은 자매

     단기신학을 통해 말씀의 갈급함을 회복하고 싶었습니다. 2주라는 시간은 절대 짧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는 힘들었지만 1년차 과정으로 구약성경 각 권의 내용과 전체적인 흐름을 배운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단기신학을 참여하며 받은 은혜를 나눕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복된 삶으로 이끄시는 귀한 것임을 매 순간 온전히 깨달으며 순종으로 받을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두 번째로 요셉의 삶을 묵상하며 특히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늘 함께한 사람이었고 그 또한 하나님을 항상 바라며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의 삶은 형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내 삶의 기준이 됨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제 삶 앞에 놓여진 고난과 역경 속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다짐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삶의 시간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한*희 자매

    2년차 과정에 참여하며 기억에 남는 말씀을 나눕니다.

    사무엘상의 ‘에벤에셀’의 의미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무엘상의 에벤에셀은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패배와 수치의 장소이고 다른 한 곳은 승리와 구원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미스바 대성회를 통해 진정으로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는 패배했던 이스라엘을 승리와 회복으로 이끄셨습니다.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의미를 기억하며 진정한 회개로 회복되는 신앙을 다짐했습니다.

    ‘부득이함’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인성과 지성을 겸비한 사울왕이 점차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 첫번째 이유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울은 한 전쟁에 앞서서 제사장 사무엘이 오지 않자 조급함에 스스로 번제를 드리고 ‘어쩔 수 없다’며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행하는 모습을 원하십니다. 죄를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느헤미야/에스라 과목을 공부할 때입니다. 무너진 성전이 재건되며 많은 어려움과 방해가 있었는데 이에 16년동안이나 재건이 중단된 일이 있었습니다. 끝없는 막막함의 시간 동안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힘을 얻었고, 결국 성전은 완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틀림없이 성취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강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바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그 고난이 곧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자신이 불완전하여도 온전케 해주실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믿으라 하셨습니다. 저를 완전하게 하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말씀에 고난을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단기신학을 하기 전, 스스로의 힘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의무적이고 버겁게만 느끼던 중이었습니다. 단기신학을 통해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뤄지며 고난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말씀과 예배를 귀중히 여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끝나고 한 강사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확실한 것은 주 안에 있는 기쁨은 초월적이라는 거야.’ 나의 깊은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고, 내 삶의 고난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더 큰 것이거든’ 많은 말씀으로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윤*희 자매

     올바른 신앙과 전도를 위한 깊이 있는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단기신학 1년차 과정을 참여하며 받은 은혜의 말씀을 나눕니다.

     창세기의 믿음의 조상들과 함께하신 하나님을 확인할 때는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느껴졌습니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강의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은 더욱 곁에 계심을 느꼈습니다. 출애굽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구출하심의 은혜를 뒤로하고 만나를 보고 감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얼마못가 불평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이내 당연한 것이 되었습니다. 기분과 감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져버린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못느끼는 것은 자신이 달라진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늘 변함없으셨습니다.

     민수기를 배우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룩’이라고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민수기의 나실인은 거룩하게 살기를 자원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기를 자원해야 하며 지금의 세대야말로 정결과 거룩이 필요한 때라고 더욱 강조해주셨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보는 사람들과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두 시선으로 나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말씀에 확신을 가진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전도서를 배웠을 때입니다. 전도서의 중심 주제는 ‘허무함’이었습니다. 평소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달을 때면 공허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삶은 모든 것이 헛되지만, 하나님께서 주인되신 삶은 그 어떤 삶보다 값지며 결코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신약개론에서 배운 내용을 나눕니다. 사람에게는 선을 행할 능력이 전혀 없으며 선한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절대 스스로 무엇을 이룰 수 없는 존재라고 얘기해주신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말씀안의 자유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라는 말씀대로 자유를 얻은 삶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히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기쁨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삶에 대한 마땅한 기쁨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황에 따른 원망과 불평,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은 불신앙이었습니다.

     사복음서를 배우면서 마가의 ‘제자도’(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자세)도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 자신의 뜻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 자신을 부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 둘째. 고난이 올 때 기도하는 사람. 셋째. 어떤 불리한 상황에도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사람. 마지막으로 ‘말씀’은 ‘로고스’와 ‘레마’로 나뉜다고 해주신 내용입니다. 로고스는 평소 읽는 말씀이고, 레마는 실천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말씀 그 자체인 로고스로 머물러 있지만 실천 할 때에야 비로소 그 말씀은 레마로 머물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배운 말씀들을 지식의 나열로 끝내지 않고 행함으로 이룰 것을 다짐했습니다.

     대학교로 인해 서부교회와 집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은혜 아래 저를 돌보아주실 하나님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담대한 마음으로 온전히 삶의 길을 걷기를 소망합니다.

  •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성도간증]한국&일본 생활중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간증 준비하면서 함께 나눌 찬양이 생각이 났는데 가사 묵상하시면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찬송가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어려워 낙심 될 때에 주 너를 지키리
    위험한 일을 당할 때 주 너를 지키리

    너 쓸것 미리 아시고 주 너를 지키리
    구하는 것을 주시며 주 너를 지키리

    어려운 시험 당해도 주 너를 지키리
    구주의 품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제 이름은 곽이안입니다. 2001년 대만에서 건강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셨는데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지은 이유는 제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50세였고, 어머니는 38세, 첫째 언니는 11살,  둘째 언니는 9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지어주셨고 저는 사랑 가득한 가정에서 몸도 마음도 영도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태어나서 3개월 만에 세례를 받았고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다른 아기들과 같이 여러 번 다친 적이 있어요. 자전거 타다가 벼랑에 떨어지거나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적이 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들이 쌓여서 자라났습니다.

    간증은 고등학교 때부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제일 중요한 게  공부, 진로 정하는 거죠.  저는 진로를 계획하면서 대중 매체와 관련된 전공과 외국어 관련된 전공,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중학교 때부터 한국 음식과 한국 음악을 좋아해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대충 매체 산업 시장이 비교적 넓고 인지도도 높아서 겸사겸사 한국 유학을 마음 먹게 되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있는 대학교를 신청하려면 고등학교 성적, 한국어 능력 시험 성적, 다른 필수 조건 자격 요건들이 필요한데요.  고 3때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대만의 첫 번째 수능 시험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만은 수능 시험을 두 번 봐요. 입학은 9월이에요. 그래서 9월부터 1학기이고  2월부터는 2학기 이렇게 되어 있어요.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해서 첫 번째 수능시험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포기하려면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해요. 사인을 받으러 저희 아버지한테 갔어요. 근데 저의 잘못이 뭐냐면 아버지한테 시험 포기 하겠다는 걸 미리 말씀 안 드렸거든요. 아버지는 엄청 반대하셨고 화를 내셨어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저를 옹호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저 때문에 싸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거 보고  많이 놀랐어요. 왜냐면, 제가 18살까지 살면서 저희 부모님 싸우시는 거 처음 봤거든요. 많이 놀랐고 너무 죄송했습니다. 결국 저희 아버지께서 적극적으로 찬성 해주지는 않으셨지만 한국대학교  떨어지면 책임을 제가 지는 것을 조건으로  알아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를 계기로 하나님께 제발 대학교 합격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며  열심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책임을 잘 져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이때가 2020년이였어요.

    2020년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코로나 때문에 제가 한국으로 못 갈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대만에서는  수능시험 두 번 본다고 했는데,  불안한 마음에  두 번째 수능시험을 준비했습니다. 3개월 전부터 3년 동안 배웠던 내용을  열심히 공부해서 2020년 7월에 두 번째 수능 시험을 봤습니다. 감사하게도 대만의 타이난 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를 합격했어요.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있었고, 성균관대 입학을 했습니다. 합격했던 대만 예대는 혹시 몰라서 2년 동안 휴학으로 처리했다가 나중에 자퇴를 신청했어요.

    한국에 와서 코로나 때문에 2년 동안 온라인 수업만 듣고 아쉽게도 한국의 대학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3학년에 올라가서 아버지의 바램과 내 자신도 경험을 쌓기 위해 교환학생을 지원해서 작년에 일본을 가게 됐습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서 학교와 교회에  다니면서 알바도 하면서 1년 동안 살았어요. 도쿄에 있는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생활은  한국과 다른거 별로 없어요. 수업은 많이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일본에 갔을 때는 일본어를 잘 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잘 하지 못한 것처럼 일본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수업은 많이 어려웠고 좋은 성적은 못 받은 것 같지만 학교생활은 잘  마쳤습니다. 수업 없는 날에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사장님은 대만을 무척 좋아하시고  알바하는 친구들은 한국 대학을 참 좋아해요. 그래서 손님이 별로 없는 날에는 사장님이랑  알바하는 친구들이 수다도 떨고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어요. 도쿄 교회로 갔는데 사실 도쿄 교회는 도쿄 안에 없어요. 도쿄를 서울시로 비유하자면 도쿄 교회는 약간 외곽인 경기도 쪽이라고 보면 돼요.  제가 살던 곳에서 대충 한 시간 반 정도 거리였습니다. 이렇게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립니다. 도쿄 교회는 엄청 크지는 않아요. 성도님들 70프로는 대만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고 나머지 30프로는 일본 사람입니다. 안식일 오전 오후 예배 이렇게 있고 아동부와 학생부 분반은 매주 있지만 대학부 사청부 분반은 격주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기서 맡은 사역은 없었지만 아기들을 돌보고 같이 놀아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 총회가 다른 지역에도 교회를 새로 세운다는 목표가 있어요. 한가지 예로 들면  도쿄 교회 출석 성도들 중에서 오오야마라는 지역 근처에서 살고 계신 성도님들이 꽤 많아요. 그 근처 성도님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주민센터 같은 데에서  집회를 하고 예배드리고 있어서 오오야마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건물을 이미 확보하고 헌금을 모금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이렇게 살다 보니 느낀점은 일본에서  전도가 쉽지 않다고 깨달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은 신토라는 고여 중 종교가 있어요. 제가 알고 있는 그런 유명한 신사들은 다 그들의 종교를 위한 것이에요. 그래서 기독교나 참예수교의 전파가  쉽지 않습니다.  일본 참예수교회의 원활한 전도와 새 교회 헌당을 위해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성도님들도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본생활은 제가 과거에도 여행한 적 있어서 적응이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건들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이에요. 작년 7월 대만에서  뉴스가 나왔어요. 그 뉴스는 어떤 건물 창문에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가 떨어져서 어떤 여자가  맞아서 죽었다는 뉴스였어요. 그 여자는 제 고등학교 친구에요. 제가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그날 알바하던 날이었어요.  알바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이 소식을 알게 되었고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어요. 제 친구가 이런 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지금 생각해도 실감이 안 나요. 멀리 있다보니 장례식도 가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위로해 주시고 슬픈 마음이 잘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8월 달에 여름방학 때 잠깐 대만에 갔었어요.  비행기 타기 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며칠 동안 계속 열이 나서 더위를 먹었나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비행기 타기  며칠 전에 친구랑 일본에서 불꽃 축제 갔었어요. 7월 말  더운 날에  친구랑 거의 10시간 동안 유카타를 입고 밖에서 다녔어요. 그것 때문에 더위를 먹은 줄 알았거든요. 근데 대만에 가서 약 먹어도 열이 안 떨어지고  작은 의원에서 받았던  해열제를 먹어도 안 떨어져서 어머니가 큰 병원 데려가셨습니다. 의사 선생님한테 제 증상을 말하고 혈액 검사를 해 보니까 간 수치가 이상하게 높았어요. 보통 간 수치는 원래 40~50 이하가 정상인데 제가 그때 약 500~600 나왔어요. 그래서 계속 열이 났던 거에요. 응급실로 가서 수액을 맞았고 감염성 단핵구증 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어디서 어떻게 걸렸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다행히도 그날은 수액 맞고 열이 떨어져서 입원은 안 했어요. 근데 뒤에 며칠 동안 계속 열나고 해열제 먹고 또 열나고 해열제 먹었습니다. 잠도 못 자고 입맛이 하나도 없어서  음식 보기만 해도 토하고 싶은 느낌이 들어요. 모처럼 대만 가서 그리웠던  음식들을 못 먹었어요. 하루 종일 경구 영양식 한 캔씩 먹었어요. 그때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가족들이랑 같이 잠자기 전에도 기도하고, 저희 타이페이 교회 주보에 제 이름이 올라갔어요. 교회 성도님들도  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1주일 지나서 나아졌습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6절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이 구절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이렇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무사히 한국에 돌아와서 이렇게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베드로전서 5: 7)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할렐루야!

    아기였을때 가족사진

    최근 가족사진 (왼쪽에서 4번째가 이안 자매)

    청년부 암송대회에서 우수상 받는 모습

    일본 교환학생으로 떠나기전 공항에서 목자님 내외분과 생활관 청년부와 함께

    일본 아오야마 카쿠인 대학교 앞에서 엄마와 함께

    일본 도쿄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일본 알바했던 카페에서 특별활동 

     

    일본 오카야마


    일본 도쿄 메구로천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 [성도간증] 비빔밥 맛집, 알고보니 진리의 맛집! (천안교회 장동혁 형제)

    [성도간증] 비빔밥 맛집, 알고보니 진리의 맛집! (천안교회 장동혁 형제)

    천안교회 장동혁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고향이 천안이고 3남매의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초, 중, 고 시절을 천안에서 보낼만큼 천안 토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지내는 중에 고2때로 기억을 합니다. 이남찬 신학생과 같은 반이 되었고 당시 학생들이 즐기던 게임을 같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남찬 신학생(현재 전도자)이 갑자기 본인이 평소 이루고자 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자퇴를 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2년여 정도의 기간은 더 이상 이남찬 신학생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이남찬 신학생이 나타났고 친구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21살쯤 되었을 때입니다. 이때 이남찬 신학생이 교회 이야기를 자주 한 바람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남찬 신학생이 맛있는 비빔밥 맛집이 있으니 한번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좋다고 하며 따라 나셨는데요. 알고 보니 그 비빔밥 맛집은 바로 진주빌딩 4층에 있는 참예수교회였던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제가 참예수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정식으로 참석하게 된 날 저는 깜짝 놀랄만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방언기도였던 것입니다. 사실 이남찬 신학생은 사전에 방언기도에 대해서 전혀 사전에 설명이 없었는데요. 나중에 이남찬 신학생은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보고 체험해보라고 이야기를 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때 방언기도를 듣고 솔직히 정말 무섭고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러한 저를 위해 목자님께서는 친절하게 성경으로 성령의 역사와 방언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교회를 계속 다니다 보면 이 교회가 참교회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의심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출석한 지 두 달 정도 되었을 무렵 장로교회를 다니시는 이모님께서 제가 참예수교회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것 같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모님께서는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시고 바로 이단이라며 저의 어머니에게 참예수교회를 나가면 큰일 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께 말하지 않고 몰래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신 저의 어머님은 천안교회 홈페이지를 들어와 보시고 깜짝 놀랄만한 사진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제 사진이 천안교회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결국 어머님의 완강한 반대로 더 이상 교회 출석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예수교회를 조금씩 알아가던 중이었는데 어머님의 반대로 갑자기 못 나가게 되어 너무 아쉽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8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8년 기간 동안에 이남찬 신학생은 자주 연락을 해주었었고 때로는 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는 등 저에 대한 관심을 계속 보여주었습니다. 제 마음이 돌이키기를 기다려준 것이지요. 저는 비록 8년 동안 교회를 출석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제가 독립해서 따로 생활을 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꼭 교회를 다시 출석할 생각은 있었습니다.

    드디어 2022년 8월에 L.H 행복주택에 당첨이 되어 꿈에 그리던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그러니까 2023년 5월에 천안교회 봄 영은전도대회 마지막 저녁예배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날 천안교회 봄 세례식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저는 그 세례식 영상을 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죄를 많이 짓고 살았는데 나도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세례 받으신 분들이 제 눈에는 정말 죄가 하나도 없이 깨끗해진 흰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반면에 저는 정말 죄가 너무 많아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나도 저분들처럼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아 깨끗한 흰옷을 입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이남찬 신학생에게 말하자 이남찬 신학생은 깜짝 놀라면서 사실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이기에 영적으로 흰옷을 입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나도 빨리 세례를 받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날의 세례식 영상이 나에게는 정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인 것이지요.

    그래서 영은회가 끝나고 교회 출석을 열심히 했습니다. 교회 올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항상 나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들려주시는 것처럼 느껴져서 너무 좋았습니다. 또한 그로 인해서 감동이 느껴지고 마음이 너무 기뻤습니다. 그러한 나 자신을 보면서 정말 신기한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제 자신을 발견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목자님께서는 이제부터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 구도자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구도자 교육을 받는 동안에 하나님에 대해서 또 하나님의 구속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속 안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야말로 인생에 가장 큰 행복인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5월 말쯤으로 기억이 납니다. 이남찬 신학생의 권유로 안식일 오전예배 시간에 안수기도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제가 교회에 도착해서 예배 전에 혼자 기도하면서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손떨림이 있는 것을 이남찬 신학생이 보고 안수기도를 권유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손떨림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목자님의 말씀으로도 처음 안수를 받으러 오는 순간부터 손떨림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 세 번 안수기도를 받는 중에 점점 손떨림이 커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세번째 안수기도를 받는 날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듣는 동안에 내가 제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주로 기도할 때는 회개의 기도를 주로 했었고 그로 인해서 눈물을 흘릴뻔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날은 다른 날과 달리 마음이 너무 고요하고 평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나를 지켜주는 정말 든든한 응원군이 생긴 기분도 들었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은 날, 전성도님들은 제가 성령을 받은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셨습니다. 청년반들은 심지어 케잌을 준비해서 축하 이벤트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사실 제가 낯가림이 심해서 모든 성도님들과 청년반들이 축하를 열렬하게 해주셨음에도 제대로 기쁨과 감사의 표현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시고, 이끌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드디어 8월 27일에 제가 전성도님들의 축복 속에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고대하던 세례를 받게 된 날 너무 마음이 설레어 새벽에 일찍 눈을 떴습니다. 세례를 받게 된 기쁨도 컸지만 나이 들어서 늦게서야 세례를 받게 된 것이 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물속에서 올라오는 순간 신기하게도 찬양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몇 초간의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목자님께서 또렷한 소리로 이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내가 믿음의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는 한 말씀이 크게 들렸습니다. 내가 살면서 이보다 더 큰 감동이 없을 정도로 정말 큰 감동을 그 순간 받았습니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실 제가 많이 힘든 중에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경쟁해야 하고 서로 흉보고 때로는 미워하기도 해서 진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참예수교회는 도리어 경쟁하듯이 서로에게 더 잘해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일반교회를 출석할 때는 듣지 못했던 참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된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고요. 특히 일반교회 사람들은 말씀대로 사는 모습이 부족했는데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은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쓰는 모습도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새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앞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세 가지 소망이 생기게 되었고 첫 번째는 제일 먼저 이 귀한 믿음을 어머님에게 전해서 어머님부터 전도하는 일입니다. 지난번에 십계명 설교를 들을 때 부모님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큰 공경이요 효도라는 것을 듣고 제일 먼저 어머님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우리 어머님이 전도될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매일 말씀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생겨나는 것임을 명심하고 늘 말씀을 가까이 하겠습니다. 요즘 특히 밤예배 때 사무엘상을 들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신앙생활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계속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믿음으로 결혼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기 전 세상 뉴스, 또는 인터넷을 통하여 세상은 죄악으로 넘쳐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륜, 이혼, 가정 불화, 자식을 방치하여 죽이거나 보험금을 갖기 위해서 남편과 아내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형제님들과 자매님들의 약혼식과 결혼식 소식을 듣게 되고, 그게 너무 부러웠습니다. 목자님께서 구도자 교육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섯 가지 행복 중에 가정의 행복이란 단어도 생각이 나며, 믿음으로 결혼하기 위해서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해준 이남찬 신학생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저를 사랑으로 대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를 늘 깨우쳐주시는 목자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으로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것으로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장동혁 형제 성령 축하파티>

  •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단기신학을 참석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저는 단기신학을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이번 단기신학때 우리 같이 가볼까 라고 하는 겁니다. 갑자기? 이 사람이 왜그러지? 어디 안 좋은가? 평소에 성경 좀 읽자, 새벽 기도 좀 가자고 해도 졸리다, 힘들다고 하던 사람이 도대체 왜?? 알고 보니 한 형제가 이번 기회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번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당면한 우리의 현실을 봤을 땐 여러 가지가 걱정이 되었지만 난생 처음 먼저 단기신학을 해보자고 말한 남편이 너무 신기하고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결정을 했습니다.

    대전교회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여년 전에 청주 교회를 출석하다가 잃은 양이 되었으나 최근에 다시 돌아온 자매였습니다. 오랜 만에 다시 보게 된 자매와 단기신학 하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사정들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매가 다시 올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많은 교회 자매들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읽은 양과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는데 이 자매와 얘기를 나누며 ‘아! 그래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해야 하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은 지금 루디아에서 잃은 양 문고리 심방을 하고 있는데 그 문고리 심방대상자와 이 자매가 친구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역사 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하시고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단기신학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단기신학의 일정은 새벽6시 찬양과 말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9시까지 성경 강의와 찬양과 기도가 있고 소등 시간은 11시반 입니다. 이 시간들이 몸은 너무 피곤한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세상에 그 어떤 고민 걱정 없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이 시간들이 감사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천국이 이와 같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았습니다.

    “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119편 103절 말씀처럼 정말 달고 달아서 그 속에 빠져 있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에도 퍼즐의 조각 조각이 맞춰지듯이 성경의 내용들이 정리가 되는 기분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는 관점도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약개론을 통해서 배운 부분 중 첫째 선악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정녕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이 명령이 에덴동산을 유지하는 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통해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던 겁니다. 이 선악과 관련된 말씀을 들으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모두 내 것이 아닌데 마치 주인인 것처럼 살아온 제 삶을 돌아보며 반성을 했습니다.

    두 번째 족장 시대에서는 4명의 인물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사람의 삶을 통해 믿음과 순종과 용서와 인내 그리고 승리를 배웠습니다. 이 네 사람의 삶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내 삶이 확실하지 않아 불안하고 온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이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요셉을 배울때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인내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안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요셉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을 살았기에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 하나님 앞에 사는 삶” 이 말을 나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을 배울 때는 신앙 계승이 안되는 부분에서 안타깝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이 정말 바로 섰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남편과 함께 부모로써 자녀들을 위해 새벽 기도도 열심히 참석해야겠다 다짐을 했는데 잘 지질 수 있을까요? 강의 시간에 어느 목자님이 한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살아가는 건 졸리면 자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하고 이렇게 내 맘대로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고 살아내야 하는 건 내 뜻과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본능과 싸워 이겨내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저도 앞으론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아침마다 싸울 겁니다. 누구와 싸울까요? 더 자고 싶어하는 제 자신과 싸울 생각입니다. 때론 질 때도 있겠지만 포기 하지 않으면 거룩한 습관이 길러질 거라 생각합니다.

     

    단기신학 하는 동안 참 신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그 자매와 한방을 쓰면서 삶을 나눌 때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강의 시간이 되면 그 고민하던 부분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고민하던 부분은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살고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고 대략 이런 부분이었는데요. 이 세상이 다가 아니니까 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뭔가 시원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강의 시간에 죄 없으시고  전능하신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기에 예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받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게 납득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죄에서 승리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지금 받는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신앙 성장을 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승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와 진정한 성공은 이 땅에서 정해지지 않는 거라고 죽음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거라고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 진정한 성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울컥하더라구요. 저에게 고난이 왔을 때 수없이 묻곤 했었거든요. 왜 고난이 나에게 올까? 근데 고난이 오는 게 당연한 거고 때론 감사해야하는거란걸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수인 고난이 왔을 때 걱정, 근심, 염려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를 한다면 그 고난에서도 걱정 근심이 아니라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신앙생활이 즐겁고 기쁠 수가 있을까? 그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며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려움은 반드시 많이 있을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2절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사실 올해 새로운 직분을 맡게 되어 걱정이 많던 저에게 힘이 된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자신의 뜻과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고 고난이 올 때 깨어 기도하는 것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 ,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나 아직” 이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구원을 얻었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것 그래서 끝까지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이번 단기신학은 정말 저에게  은혜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말씀들로 위로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 제시를 해주신 것 같아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단기신학을 하는 동안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많은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이파자 모친 간증)

    저는 올해 79세인 이파자입니다. 제 고향은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에요.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고, 저는 무서운 할머니 밑에서 커서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집안 일만 하며 자랐어요. 20세가 되었을 때 동네에 4명의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같이 사는 고모였어요.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다 보니 할머니가 낳은 딸이 저랑 동갑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모에게 “고모, 교회에 한 번 가볼까?” 했어요. “무슨 교회를 가!” “교회에 가면 좋다고 하니 한 번 가보자.” 하고 동갑내기 4명이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 간 교회는 장로교회였어요. 찬송을 부르는데,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바다를~”라는 찬송이 듣기에 너무 좋아서 제가 “한 번 더 부를 수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다시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찬송을 따라서 부르다가 그날 그 찬송을 다 외워버렸어요. 4명중 저만 찬송을 다 외웠습니다.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 바다를 하나님 보좌 앞에 있고 싶어라. 유리 바다 건너편에 믿는 성도들 이것 또한 유리같이 맑고 맑도다.”

    교회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작은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대문 밖까지 들렸어요. “이놈의 계집애들! 오기만 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지! 그래야 이것들이 교회를 안가지.” 하고 막대기를 문 앞에 놓고 말씀하셨어요. ‘몰래 갔는데, 어떻게 아셨지? 다리 부러뜨리면 아무데도 못가고 이걸 어떡하면 좋아.’ 하고 가만가만 들어갔더니, 막대기만 있고 작은 아버지가 안보였어요. ‘옳다 되었다.’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척 했습니다.

    당시 저는 잠업(누에를 치는 일)시험장을 다녔어요. 우리 교회 권정자 자매 계시지요? 그분의 언니인 권정숙 언니가 같이 잠업시험장에 다녔는데, 저를 참 예뻐했어요. 하루는 “파자야, 너 교회 한 번 가볼래?” “네, 언니! 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봐야지요.” 그런데 언니가 다니는 곳은 참예수교회라는 곳이었는데, 그때는 그 교회 평이 안 좋았어요. ‘참예수교회는…날라리 교회라고 그러던데, 팔짝팔짝 뛰면 어쩌지?’ 걱정이 좀 되었어요. 그런데 교회에 갔더니 교회가 조용했어요. 그 언니를 따라서 기도를 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교회라는 그 두 글자를 항상 가슴에 품고 ‘언젠가는 나도 이 길을 가야겠다.’ 하고 다짐했어요.

    25세에 시집을 갔어요. 도시 축에 드는 마을을 떠나, 시골 골짜기 삼계로……. 시집을 가서 생활하던 중에 머리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었어요. 머리에 수건을 묶고, 그래도 안 되면 벽에 머리를 꽉 대고 있었는데, 머리가 안 아프면 이젠 배가 아프고, 배가 안 아프면 허리가 아팠어요. 아픈 것이 그치질 않아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가정 살림과 농삿일을 해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남편이 세심이라는 마을로 민방위를 받으러 다녔어요. 남편은 제가 아픈 것을 안타깝게 보고 마음이 아팠던가 봐요. 제 남편은 교회라는 두 글자의 뜻도 모르고 지내다가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저에게 “교회를 한 번 나가보면 머리가 안 아프고 몸이 건강해진다 하더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또 몇 년이 흘러 자식 다섯을 낳은 후에,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했더니, 어느 교회를 가려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참예수교회에 가자고 했더니 이웃집 아주머니는 장로교회를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따라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남동생이 찾아왔어요. 아침 시간에 잘 안 오는데 일찍 왔더라고요. 동생은 당시에 참예수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현재 전주교회 이정천 형제가 제 남동생이에요.

    “누나 어디 가려고?” “자꾸 아프니까 자형이 교회 나가 보라고 해서 지금 가려고 한다.” 그랬더니 동생이 무릎을 딱 치면서 “어쩐지 누나 집엘 오고 싶더라니……. 참예수교회를 나가야지요.” 했어요. 남동생의 권유로 그날 장로교회를 가지 않고, 일주일을 기다려서 토요일에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제 남동생이 저를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도 참 고마워요. 살다보면 서로 맘이 안 맞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나에게 교회 나가 보라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옆집 아주머니와 참예수교회를 갔는데, 기도소리를 듣고 옆집 아줌마는 계속 키득키득 웃었고, 저도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는 웃음이 너무 나오니까 밖으로 나가버리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설교 말씀을 듣고 앉아 있었어요. 삼계는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예배가 없었어요. 그 다음 주에는 이웃집 아주머니는 가지 않고 저 혼자만 갔어요. 동생도 볼 겸해서…… ‘남편이 교회를 그렇게나 권했는데, 내가 머리 아프다 죽으면 남편이 뭐가 되겠나.’ 하고 결심을 하고 다녔어요. 오전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농사짓고 누에 치고 담배 농사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교회를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로 또 갔는데, 이번엔 남편하고 같이 갔어요. 기도할 때 안수 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날 저는 성령을 받았답니다. 진동이 오고 몸이 떨려서 움직인다는 것이 여기서 저기까지 갔어요. 그 때는 마룻바닥에 방석을 놓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눈물이 많이 나오는지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이 눈물이 기뻐서 나오는 건지, 슬퍼서 나오는 건지 몰라도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 살아나온 과정을 생각해볼 때 모든 뜻을 하나님 앞에 다 풀고 고백을 해야겠구나! 삼계교회가 떠나갈 정도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며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어요. 성령 받는 광경을 남편이 다 봤어요. 울고 싶은 대로 다 울었어요. 누군가 자제를 안 시켰으면 하루 종일 가겠더라고요. 어찌나 충만하게 성령을 받았던지……

    종을 친 지는 오래 되었고, 기도하다 생각하니 너무 이렇게 해서는 문란하겠구나 해서 겨우 제가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더니,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기도 그만 하라고 해.” 그 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어요. 일단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전부 털어놓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웬만한 사람은 부끄러울 텐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냥 담대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개운하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지독히도 저를 괴롭혔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성령을 받고 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눈이 떠지질 않고, 벽에 꽉 기대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데, 성령을 받고 나서 오늘날까지도 그 때 느낀 그 두통은 전혀 없습니다. 가끔 신경 좀 쓰고 감기가 들면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그 때의 두통과는 완전 달라요. 믿음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나님을 알고, 말씀의 뜻을 알고, 이제 교회 안다니고는 제가 도저히 두통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옛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는데,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가방만 흔들거리고 교회만 간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당신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내 인생 남이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매달리면 내 삶이 평탄한데! ’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 우리 아이들한테는 엄마만 살짝 다닐 테니 너희는 나오지 마라. 제가 아직 믿음이 없었을 때다 보니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식 다섯 명이 전부 교회에 나와 있더라고요. 애들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교회차를 타고 다녔어요. 그 개도 교회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예배 끝나면 일어나서 같이 교회차 타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작은 아들이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다보니 교회를 안 나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큰 아들도 신앙에서 멀리 떠나 있어서 저는 현재 자식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또다른 시험거리로는 농사철에 안식일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어요. 보리 농사하던 시절에 교회를 가려고 애들 다 학교 보내고 아침 8시쯤, 안식일이었는데 농사 기계가 들어온대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교회 가야 하는데……. 그냥 가버리면 남편과 싸우게 생겼더라고요. 일단 내 임무는 힘껏 마치고 난 후 교회를 가도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남편이 믿지 않을 때였거든요.

    농사할 때 땅에 거름을 뿌리지요? 우리집 거름은 유달리 무거워요. 비를 자꾸 맞아서…… 안식일 이른 아침에 그 거름을 손으로 들어올렸는데, 그 무거운 거름이 하나도 무겁질 않는 거에요. 내 정신이 아니고 누군가 꼭 지켜주시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거름을 같이 들어주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무거운 거름이 그렇게 뿌려도 무거운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참 신기했습니다. 교회차가 마을을 다니면서 신도들을 실러 오는데, 교회 다니는 모친이 논에 있는 저를 보더니, “아이구 오늘 안식일인데 일해요?” 하시기에  “아니요. 빨리 해놓고 가려고 해요.” 교회차가 멀리 세심을 돌아서 그 모친을 싣고 가는게 보였어요.

    ‘아이고!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빨리 해놓고 교회 가야겠는데…….’

    그런데 교회를 꼭 가려고 마음 먹으면 절대 안 될 것이 없었어요. 그 일을 다 해놓고 맨발로 집에까지 뛰어갔습니다. 세수를 대충 하고 신발 신고 2킬로미터 삼계까지 정신없이 내 정신이 없이 뛰어 갔더니 예배가 시작을 안했어요. 너무 감사하지요.  ‘아!  내가 꼭 교회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가야겠다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구나! 꼭 교회를 가야겠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겠다.’ 하면 그 힘이 나도 모르게 다시 치솟더라고요. 하나님께선 저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힘을 주시는구나. 열심히 말씀을 듣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김없이 다음 안식일이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벼를 훑어야 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밤에 훑으면 안 되요? 탈곡기가 있잖아요. 호롱기 아시지요? 호롱기로 벼를 훑은데, 밤에 그걸 다 훑었어요. 안식일에 할 일을 전날 저녁에 다 끝냈어요. 끝내고 나니 이웃사람들이 무엇이 바빠서 밤에 벼를 훑냐고 하더라구요. 바빠서가 아니라 교회 가려고 밤에 일을 했다고 말하고 넘어갔어요. 일을 꼭 해놓고 가야겠다 맘을 먹으면 밤에라도 그 일을 마치게 해주시더라구요. 안식일에 모를 심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꼭 시험거리가 닥쳐와요. 닥치면 그것을 이겨 나가려고 노력을 했어요. 모를 심는데, 그때는 교회에서 논이 가까웠어요. 남편과 같이 모를 심다가 “어머 어떡해. 나 교회 가야 하는데.” 남편은 “갔다 와. 나 혼자 심을 테니까.” “그래요? 그러면 쉬엄쉬엄해요. 나 바로 빨리 갔다 와서 심을게요.” 갔다 와서 바로 논으로 들어가서 심고 그랬어요.

    남편도 교회를 나가라고는 했어도 농사일로 바쁠 때는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요. 교회를 괜히 나가라고 했다며 말도 했지만, 그때는 제가 말했어요. “머리가 안 아파서 건강해서 일을 잘하고 있잖아요. 당신이 교회 가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가라고 해서 간 것이니 앞으로 당신도 교회에 다녀야 해요.” 그러면 남편은 “그래. 당신이 가는 길은 언젠가 나도 간다.” 저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그 후로 20년이 더 지나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때가 1997년 10월이었어요. 그 뒤로 13년이 지난 2010년에 성령을 받았어요. 요즘은 몸이 불편해서 교회를 잘 못 나오는데, 제가 그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약하니까 그런가 봐요. 열심히 하나님께 구하면 낫지 못하더라도 고통은 없을 텐데, 기도 열심히 해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세요?”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열심히 믿어야 하나님도 그것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저는 이왕 교회에 몸담고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회 갈 때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치고 열심히 신앙을 지키며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만 살다 보면 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열심히 믿고 삽시다. 저도 앞으로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믿고 살겠습니다. 아멘!

    교회에서 나들이 가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모친은 남편이 교회나오실 때가 가장 행복하시답니다. 

  • [성도간증] 남편은 미끼, 나는 대어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성도간증] 남편은 미끼, 나는 대어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천안에는 남편인 소만수형제님과 결혼하면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참예수교회를 알게 된 건 원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였는데요. 형님부부로부터 교회에 볼일이 있다고 천안에 온 김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형님부부의 부탁이라서 거절하지 못하고 그냥 인사나 하자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긴장을 많이 하고 갔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혹시 사이비교회가 아닌가는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형님이 다니는 교회이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김미영 자매님 집에도 몇 번 가서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친정엄마에게 육아의 도움을 받고자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모임이 있을 때 전주에 있는 형님이 저에게 교회 다녔으면 좋겠다고 몇 번 권면하셨지만 저는 그때마다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교회를 싫어하는 이유도 말씀드리고 저희 친정집이 외할머니 때부터 성당을 다녔고 저도 어렸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다닐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천안으로 이사를 온 후에 교회가 쌍용동으로 이사를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형님부부께서 교회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천안에 오게 되었는데 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이번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차 갔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난 후 교회가 큰 규모의 건물을 사서 이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봄 영은회 때 형님부부께서 천안에 방문한다고 교회에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하셨지만 저는 약속이 있어서 가지 못하고 남편과 막내딸 연서만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번에도 인사차 갔다 오는 거겠지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매주 교회에 가는걸 보고 앞으로 계속 교회에 다닐 거냐고 물어 봤는데 뜻밖에도 한번 다녀보고 싶다는 말에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남편이 교회에 다닌다고 할 때 많이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알았다고는 했지만 나는 싫으니 혼자 다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연서가 교회 가는 것도 싫었지만 연서가 가고 싶다고 해서 그냥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편과 연서가 교회에 가는 게 너무 싫어졌습니다. 하루 종일 교회에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싫다고 했는데도 저 몰래 연서를 청주교회 여름성경학교에 보낸 것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그렇게 됐겠지 하고 이해를 하려고 많이 노력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교회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지만 듣지 않고 계속 교회에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연초부터 약속되었던 것이라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부부를 만나는 게 너무나도 불편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너무나도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걱정보다 즐거운 휴가를 보냈고 저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려서 천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지옥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휴가를 다녀온 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저는 2주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밤낮으로 울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완강했던 남편을 보니 교회를 못 가게 하면 나처럼 힘들겠다라는 생각에 교회에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저 또한 남편이 교회 가는 게 너무나도 싫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만 하다가 결국에는 차라리 내가 힘든게 낫겠다는 생각에 토요일에 교회 가면 그냥 인정해주자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인데도 남편이 일어나질 않고 계속 잠만 자고 있길래 아 교회에 안 가려나보다 하고 안심을 하였는데 힘없이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위로해주려고 말을 거는 순간 갑자기 남편이 울기 시작한 겁니다. 전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나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교회에 가고 싶으면 혼자라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다시 교회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는지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마음에 선입견이 많이 남아 있어서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금요일 아침에 남편에게 조심스레 방언기도에 대해서 물어보니 이미 7월 15일에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세상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집에 케익을 가져온 날이더라구요 남편이 방언기도 하는걸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에 그 이상한 걸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하게 될 줄이야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전에 왜 형님이 남편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아주버님이랑 형님이 너무나도 미웠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 그치면서 내가 왜 울고 있지? 교회 가는 게 이렇게 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교회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집에서 힘든 것보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나도 토요일에 같이 교회를 가겠다고 남편에게 얘기했고 형님과 아주버님도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니 어차피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어서 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 성령을 받아 방언기도를 하는 것과 또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다는 걸 제가 교회 오기 전날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싫어할까봐 얘기를 안 한건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나중에 아니까 모든 것들이 많이 서운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제가 안쓰럽기도 하고 다음 주에 남편 세례식이 있으니 정신 차리라고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오게 되었지만 계속 다닐 생각이 없었던 저는 표정이 굳은 채로 교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얼굴들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특히 김미영 자매님은 정말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풀리니 원래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배려로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연서가 앞에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는 것이 꼭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고 다음에는 연서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제 질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집에 와서 싸웠습니다. 정말 아마 이번 일이 저희 부부의 첫 부부싸움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주에 있는 형님 부부에게 다음 날인 일요일에 만나자고 연락을 해서 형님부부랑 만나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도 하고 또 이야기하다가 울기도 하고 그동안 쌓였던 오해도 풀고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세례식 날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참석하려 했으나 생각해보니 평생에 한번 뿐인 세례식인데 아이들이 축하해주면 남편이 기뻐할 것 같아서 아이들도 같이 가자고 설득하여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게 많아서인지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식을 쭉 보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저희 가족들끼리 단촐하게 다시 한 번 축하자리를 마련해서 남편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형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저도 교회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하였습니다. 형님은 너무도 기뻐하셨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다음 주 안식일부터는 온 가족이 교회를 출석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 달만이라도 출석을 해보자고 권면을 했고 아이들도 감사하게도 따라 주었습니다. 그 발걸음이 결국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교회 오는 것을 마냥 좋게 생각하지는 않아서 교회 데리고 오면서도 항상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선생님들이 교회 오면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자주 연락도 하고 또 가끔씩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도 사주시고 해서 아이들도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세례식 다음 주에도 형님 부부께서는 천안에 오셔서 제가 좀 더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셨고 형님의 권면으로 처음으로 안수기도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뒤부터 사실은 마음속에 한 가지 숙제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남편처럼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걱정이 많다 보니 한 번은 안식일 오전 예배가 끝나고 조용히 혼자 남아서 기도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쉽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구도자 교육 시간에 목자님께서는 남편은 정말 쉽게 성령을 받으신 경우에 해당이 되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였고 누구나 성령을 금방 받는 것은 아니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반드시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믿고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나도 나 자신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성도님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기뻤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들이 마냥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세례를 받기로 하면서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밤예배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요일, 금요일 저녁예배를 나와서 예배를 드리니 마음에 더욱 확신이 왔습니다. 사실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마음이 열려서 그런지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어지고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도를 하고 안수를 받으면 조금씩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치채신 성도님도 계시고 목자님께서도 눈치를 채시고 남편에게 기도할 때 좀 어땠느냐고 묻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혼자만 고민하다가 어느 날 몇몇 분들과 광덕산 등산을 다녀온 후에 차를 마시면서 목자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목자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 이런 감동의 과정이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믿고 맡기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0월 10일 화요일 예배 후 합심기도회 시간에 김참운 자매님께서 안수기도를 권했습니다. 아마도 며칠 전에 제가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권면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토록 고대하고 받고 싶었던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보니 너무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온 성도님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시고 심지어 급히 케익을 준비하셔서 축하파티도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축하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니 훨씬 더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이 남편도 성령을 받고 이렇게 기쁘고 행복했을 텐데 내가 힘들게 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한편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습니다.

    드디어 10월 15일에 저와 서현이, 경완이, 연서 이렇게 4식구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큰딸 서현이는 같은 날 한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동년배가 되었다고 장난 섞인 말을 하더군요. 사실 전에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었습니다. 물론 행복했던 일도 많았지만 자꾸 과거의 잘못들이 생각나서 힘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례식이 다가오면서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들 경완이가 세례는 받겠다고 했지만 마지못해서 엄마가 원하니까 세례를 받게 된 것이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세례식 날 경완이가 세례를 받고 마음이 변화되기를 위해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경완이가 세례를 받은 후에 소감을 말할 때 지금까지는 안식일에 교회 가기가 싫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싫고 했는데 물에서 올라오면서 그런 마음이 다 사라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이제는 서현이와 경완이 그리고 연서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하루빨리 주셔서 아이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저와 남편처럼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온가족을 믿음으로 이끌어주시기 위해서 애써주신 전주 형님과 아주버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또 마음이 닫혔던 저를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이끌어준 남편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아이들도 낯선 교회환경에 잘 적응해주고 같이 세례를 받게 되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또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들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신 모든 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나라 가는 그날 하나님께 칭찬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임민경 자매 간증 유튜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