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인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죽음과 동시에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잠깐의 세속을 누리고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간 그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 반대로 엘리아의 승천은 고난과 핍박을 견뎠으나, 죽음을 맛보지 않고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의 표상을 나타냅니다.
엘리아 선지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능력을 입고 주의 일을 받들었던 사람.
우리도 엘리야처럼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일하려고 하는 사모함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 나는 연약하지만 능력을 더해주셔서 믿음의 삶과 하나님의 사명을 받드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저의 삶과 인생에 하나님께서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마음으로 기도해봅시다.
무장을 하지 않은 모습과 완전 무장을 한 모습은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열매도 많아집니다. 엘리야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었던 사람입니다. 하늘에서 불과 물이 내렸고, 마차를 가로질러 왕에게 달려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으나, 불가능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 때처럼(사도시대) 영적인 부흥의 시대를 맞이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주님을 온전히 따르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왕하 2:4)
우리가 하나님 앞에 능력을 얻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 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왕상 19:19-21)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겉옷을 던져준 것은, 자신의 직무를 대신하라는 직접적이고 상징적인 전달 방식이었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주저 없이 부르심에 “즉시” 일어나서 엘리야를 쫓으며 수종을 들었습니다. 엘리사가 될 수 있었던 비결 중에 하나는 “즉시” 행동하는 것입니다.
헌신의 의미는…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사용할 시간을 주님이 쓰실 수 있도록 나의 삶과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기도할 시간조차 내지 못한다면, 평생을 세상에 묶여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시간의 분주함은 우리에게 능력을 얻게 하는 기도 시간조차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이 분주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꼭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 여러분은 바쁘십니까?”
하나님을 만나러 오기 위한 시간을 마련해 봅시다. 인생의 결말을 생각하고 과감하게 분주함을 버려봅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시간을 살아봅시다. 삶의 분주함으로 복스러운 주의 일을 놓치지 맙시다.
3. 주께서 복 주신 좋은 것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나오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19)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20)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눅 14:18~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함으로 나올 수 있으신가요?
밭을 사게 해주심에, 소 다섯 겨리를 사게 해주심에, 장가를 가게해 주심에… 주님을 섬기는 헌신의 삶에 감사하지 못하고 살아가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한 번 돌아봅시다.
우리는 어려울 때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제가 이러한 삶을 살겠습니다” 하는 서원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작정 들어달라고 하기 보다,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4. 주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엘리야의 갑절로 은혜를 구했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어서 능력과 은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서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결론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의 맡기신 바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서 부족함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통해 능력을 구해봅시다!
때로는 어려움과 시험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배우게 되었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함께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번 집회에서는 매 예배 전마다 준비된 특송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 돌리는 은혜로운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성도님들이 정성으로 준비한 찬양은 집회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했으며,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예배에 나아가게 했습니다.
[특송 – 교회교육, 드보라회&유니게회, 시온성가대, 아동부, 호렙산]
또한 셋째 날 오후에는 윤정현 형제님의 간증이 함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함께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간증 – 윤정현 형제]
집회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젠밍루이 목자님과 사모님께서 깜짝으로 준비하신 찬양 “예수님의 사랑에”를 통해 큰 은혜를 전해주셨습니다. 목자님의 찬양과 사모님의 반주로 전해지는 아름다운 찬양 속에서 성도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감동과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는 따뜻한 교제의 시간이 되었으며, 3일간의 집회를 감사와 기쁨 가운데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목자님과 사모님의 깜짝 찬양 “예수님의 사랑에”]
이번 봄 영은전도집회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평안을 다시금 누리며,
믿음 안에서 더욱 힘있게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2026 대방교회 봄 영은전도집회 폐회식]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34편8절)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창5:1~5)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라고 말합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지요. 누가복음 12장 16~21절의 말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만 봐도 (영어권에서는 ‘부유한 바보의 비유’라고 합니다) 부자는 재물 축적을 ‘부요’의 기준으로 보지만, 결국 목숨을 잃어 그 재물의 의미가 무의미해지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는 세상에 태어나 세상을 즐기다 가는 것을 지혜로운 생각이라고 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가져 갈 수 없지만 무언가 남길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지막에 무엇을 남기고 왔는가를 가지고 판단 하십니다.
가인도 아담의 아들이지만 족보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가인이 새로운 일가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계보는 단순히 사람의 이름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가문의 중심이 무엇인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창4:16~17)
가인은 도시 성읍, 즉 성을 일구었고 그것을 아들의 이름으로 남겨주었습니다. 그 후손들도 대단합니다.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창4장21~22)을 보면 그 후손들은 문화를 창조 했습니다. 천재라는 뜻입니다.
세상적으로 가인은 얼마나 좋은 부모인가요? 세상 모두가 이런 가정이 되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 가정 안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4장23)을 보면 라멕의 가정에 균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아내가 두 명이었고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을 보면서 하와에게 주신 저주가 생각납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3:16).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편에게 의존적이며 남편은 그 아내를 다스린다고 하였습니다. 그 저주가 라멕의 집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저주가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예는 하나님의 자손들을 말합니다. 아담을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창5장에 나오는 아담은 죄인 아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아담입니다. 즉 아담의 아버지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아담의 계보’가 있고 ‘가인의 계보’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계보에 속해 있나요?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아브라함은 아담의 계보에 속했습니다. 아담의 계보에 아브라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아브라함의 계보에 속해졌습니다.
돈과 능력이 가훈인 가인의 계보와 달리 아담 계보의 가훈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입니다.
모양과 형상은 다른 단어이지만 같게 볼 수 있습니다. 형상은 원어로 ‘쩨렘’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우상이라고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우상은 보이지 않는 신을 보이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아담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이 바로 하나님의 우상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외형을 닮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영이 있고 생명이 있고 사람에게만 볼 수 있는 존귀한 성품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7)
사람이 고귀한 성품을 드러낼 때 하나님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모습을 자식에게 전달 하는 것이 아담의 계보입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골3:9)
옛 사람과 그 행위란 형상의 반대말로써 사람마다 타고난 본능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닮아가는것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을 통해 내가 변화되어 그 형상을 자녀에게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귀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카피‘하는 것을 성경에서 말하는 단 한 가지 라고 축약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2:15)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가정을 지으신 이유 또한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담 계보의 7대손에는 믿음의 에녹(창5:21)이 있지만 가인의 계보 7대손에는 여전히 천재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인의 자손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 변화되고 우리 자녀도 이 안에 들어오도록 애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땅을 가만히 나두면 쌀이 자라나요 잡초가 자라나요? 자유로이 두면 무엇이 자라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을 전달해야 합니까?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6:7)
강론이란 억압이 아닌 충분한 설명입니다. 농부가 애써야 쌀을 얻는 것처럼 부모들도 아이들 양육에 애써야 합니다. 아이들이 가진 죄 성도 처음에는 야들야들한 풀 같지만 순식간에 나무가 되어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 나무를 부러뜨려야 하기 전 우리가 더욱 긴장하며 집중적으로 아이들을 애써 지켜야 합니다. 바른 가치관을 가르치며 아담의 계보에 속해 있도록 아이들을 지켜야 합니다.
욥은 훌륭한 신앙인이고 고난을 통해 신앙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 인물입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욥1: 5)을 보면 욥은 자식들이 마음으로 지었을까 하는 염려로 그것을 위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칭찬 하였습니다. 신앙인은 믿음으로 양육 받아 믿음이 성장하고 그 믿음을 다시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남교회에 다니는 이서진 형제입니다. 저는 대만신앙여행을 지난 5/22에 다녀왔는데요, 지금부터 느낀 점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첫째 날은 단수이 교회에서 저녁을 먹었는데요,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국수). 그리고 단수이 교회엔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는데 국내에선 못 본 거라 신기했습니다. 단수이 교회 성도 분께 감사드립니다.
둘째 날에는 대북 교회에 갔습니다. 그날이 안식일이라 일찍 교회에 갔는데 성도님들이 많이 계셔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밥을 먹는데 한국어를 너무 잘하셔서 신기했습니다. 오후엔 산시아 교회에 방문했는데 숙소도 너무 잘 마련해주시고 간식도 많이 챙겨 주셔서 감동 받았습니다.
셋째 날은 아침을 먹고 박물관에 갔다가 린커우 교회에 방문했습니다. 교류를 하고 밥을 먹는데 너무 한국식 메뉴이고 밀크티까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녁엔 대만총회에서 숙박을 했는데요, 저희를 위해서 서점도 열어주시고 방도 1인 1침대로 주셔서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넷째 날 아침을 먹고 버스를 타고 중식을 먹고 아리산을 올랐습니다. 내려오는데 2시간이나 걸렸는데 올챙이도 보고 개구리도 보고 심심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내려와서 밥을 먹고 숙소에서 자는데 바로 곯아 떨어졌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을 먹고 심계심촌을 구경하고 용푸 교회에 방문했습니다. 특히 이 교회에서는 호텔 점심도 주시고 망고 빙수도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4박 5일이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는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대만에서 받은 사랑을 한국에서도 나누고 싶습니다. 이상입니다.
할렐루야!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봄을 맞아 2026년 5월 22일~24일 동부교회에서 영은회를 은혜 가운데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라인 새벽기도회에 함께하며 기도로 동역해 주신 성도님들, 애찬 준비와 교회 청소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수고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의 헌신 덕분에 더욱 은혜롭고 풍성한 영은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겨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함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 강사로 오신 유바나바 목자님께서는 「우리 구주! 예수님 만나기를 힘쓰라!」라는 주제 말씀을 통해 참석한 성도님들의 믿음이 더욱 굳건해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 주셨습니다.
또한 최근 세례를 받으신 두 형제님께 세례증서를 전달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거듭나신 것을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축하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울러 멀리서 동부교회를 방문해 주신 형제자매님들과 오랜만에 교회를 찾아주신 잃은양 구도자 분들과 함께 교제하며 더욱 풍성하고 은혜로운 영은회가 되었습니다.
영은회의 시작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모든 일정을 안전하고 평안 가운데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앞으로도 주님 안에서 더욱 믿음으로 성장하는 동부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갖길 원합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 간의 원만한 대화와 영적인 대화입니다.
가족 간에 편안한 대화로 시작하여 점점 영적인 대화로 그 대화의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합니다.
아래와 같이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달한 내용을 통해
부모는 자식을 살피고 자녀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루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이야기 합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이라는 꿈을 직접 이루지 못했지만,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솔로몬에게 전했습니다.
이는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에게 물질이나 지위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사명을 잘 남겨 자녀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마음속에 품도록 해야 합니다.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대상 22:7-8)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야기 합니다. 다윗이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솔로몬에 대한 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솔로몬에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자녀들을 위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자녀들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는 부모는 행복한 부모이고, 그 비전을 전달받은 자녀들은 행복한 자녀들입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우리의 자녀들을 향한 비전과 미래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야기 해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잘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대상 22:9)
자녀를 향한 축복을 이야기 합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말해준 5가지 영적 축복처럼 부모는 자녀를 향한 축복의 말을 해주어야 합니다.
※ 솔로몬에 대한 다윗의 5가지 축복 1) 임재와 형통의 축복 (대상 22:11) 2) 성전을 건축하게 되기를 축복 (대상 22:11) 3) 지혜와 총명을 주시기를 축복 (대상 22:12) 4)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 형통하기를 축복 (대상 22:13) 5) 강하고 담대하기를 축복 (역대상 22:13)
부모의 입에서 나오는 마지막 말은 항상 축복이어야 합니다.
혼돈 속에 빠진 자녀들이라도 부모의 입에서는 끝까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부모는 하나님 대신 자녀들에게 보내진 존재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는 말에 자녀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축복은 자녀의 신앙유지와 회복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해 주고,
그 축복이 대대손손 이어져 온 가정에 그 축복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며
네가 형통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대하여 말씀하신대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며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너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더욱 원하노라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율례와 규례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찌어다 (대상 2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