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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향기] 5주차 특별식 요리사는~?

    [신앙의 향기] 5주차 특별식 요리사는~?

    지난해 2024년부터 참예수교회 청주교회에서는 5주차 마다 특별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어쩌면 땀방울 한스푼도 들어간) 맛있는 특별식을 만드는 요리사는 누구일까요??

    11월 5주차: 김밥 진짜 천국

     

     

    3월 5주차: 아빠손 떡볶이 튀김

     

    8월 5주차: 일본 여행? 메밀국수 오꼬노미야끼

     

    무슨 일에든 발 벗고 섬겨주시는 아빠들 여호수아 신도회의 솜씨랍니다~ 

    5주차 특별식만 손꼽아 기다리는 성도가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소문난 맛집~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기에 참으로 향기로운 신앙의 향기가 아닐까요?

     

    글작성: 김예영 자매 

  •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대학부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고 간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를 준비하면서 받은 은혜와 영은회를 참가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그냥 참석할 때와 달리 저에게 맡겨진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찬양 인도였습니다.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청주 교회에서도 찬양 인도를 할 때는 떨리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대전 교회에서 그리고 청주 교회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 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떨리게 되었습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게 되면 저의 옆에서 함께 찬양할 싱어들과 반주자 그리고 ppt를 넘겨줄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청주 교회 대학부들에게 이 역할을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주 교회 대학부들은 싫다는 말 없이 알겠다는 답변으로 즉각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순종하여 준 청주교회 대학부에게 고마웠습니다. 이제는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해야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를 주제로 성막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제와 관련된 멘트와 찬양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생각 중에 있었습니다. 말할 멘트와 찬양할 곡들이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대학부 영은회에서만 하는 사전 교재를 하며 세한 목자님께서 성막에 대한 설교를 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세한 목자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와 설교를 참고하며 사전교재를 하였고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묵상이 저의 멘트가 되었고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멘트와 곡을 정했다면 이제는 연습할 차례였습니다. 연습을 할 때에 대학부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찬양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한 번 더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찬양 인도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의 또래 친구들이 제가 찬양한다는 것을 듣고 제에게 와서 격려의 말과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들 중에 ‘그냥 하나님께 찬양하면 된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연약한 저는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만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고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들의 기도와 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긴장하기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고 맡았을 때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고 아주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맡겨진 일에 즉각 순종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대학부 영은회는 저의 두 번째 대학부 영은회였습니다. 첫 번째 대학부 영은회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이번 영은회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은회 주제는 거룩이었습니다. 개회 예배 때 거룩은 구별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세상을 쫓는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쫓고 추구해야 거룩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개회 예배를 들음 이번 영은회는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며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목자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변화된 예배에 대한 인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저의 예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인 저희는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인식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의식하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했기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번제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저의 일부만 드리는 것이 아닌 저의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중 하나는 정결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구별하기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며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듣는 것과 보는 것을 구별하여 거룩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심으로써 세상에서 구별하시고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지만 그것에 비해 저는 하나님께 너무 소홀하다고 느꼈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이 특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는 성막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막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성막 가까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하늘나라의 백성인 저희도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천안에 가게 되면서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살고 싶었기에 천안에서 살게 된 것에 아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막에 대해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서는 비슷한 나이에 형제들끼리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는 좋은 점이 있었고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쉽다고 여겨졌던 것이 이렇게 변화하였습니다. 천안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의를 듣고 조별 학습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별 학습 시간에는 서로의 묵상을 나눕니다. 묵상을 나눌 때 고민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말씀으로 답변해 주고 고민을 해결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교제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은회를 갔다 온 후 저녁 예배 설교 때 목자님께서는 영적 장애가 치유되기 위해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배우고 느낀고 다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실 저는 영은회를 갔다 온 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고 게을러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간증을 기회 삼아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다짐함으로써 더욱 성장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김진명 형제 

  • [복음 메세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복음 메세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말씀 제목]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08.16

    간혹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소식에 의하면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들이 있다. 소위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진술을 살펴보면 부활한 후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매우 강렬한 빛을 목격했다고 진술한다. 그 빛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고 한다. 둘째는 죽는 순간 길고 좁은 터널 같은 곳을 빠르게 통과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셋째 부활한 이후 사랑과 용서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며 상처와 과오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넷째,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더욱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적어지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다고 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는 셈법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산수의 기본 전제이다. 그 전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차방정식, 삼차방정식의 수학 문제를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신앙에도 우리가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전제가 있다. 그 신앙의 기본전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세의 존재이다. 즉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내세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앙생활 한다면 그것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미래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오늘 이 자리에 성도님들은 내세에 대해서 어떤 이해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그 미래를 확신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마땅할까? 오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그 교훈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오늘 본문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비유가 전달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세가 있어서 사람이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두가 행복하고 또 그것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이르지만 다른 사람은 지옥에 이르러 영원한 고통의 자리에 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목소리를 변경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성도는 그 상황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것을 알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해서 전달하시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첫째,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듯이 내세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세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천국의 존재도 믿고 지옥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분리할 수 없다. 어떤 불신자들은 내세를 믿지 않는다. 그 심리적인 이유는 천국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 지옥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 갈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지옥에 갈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그래서 죽으면 끝이지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세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듯이 천국과 지옥의 교리에 부인하는 나름의 논리로 반박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이렇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옥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고통에 처하게 하십니까?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지옥의 교리를 대조시키면서 마치 기독교가 모순된 종교라고 반박하며 부정한다. 그러나 이런 반문은 사실 성경에 대해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다.

    지옥은 사실 하나님이 마귀를 벌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 인간을 벌주기 위해서 만든 곳이 아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마귀의 길을 따르면 결국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선택에 대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마귀의 길을 따르기로 선택한 인간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은 어떠한가? 세상에는 선한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악한 사람도 존재한다. 그래서 악인이 때로 선한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도 한다. 이 세상에 그런 악인이 존재하고 선인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상황이 존재기에 우리는 마음속으로 악인에 대해서 뭔가 응징의 조치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선인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마누엘 칸트’라는 철학자가 말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부조리와 불공평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발견할 때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된다. 형통해야 할 사람이 잘못되고 잘못되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형통하는 이런 부조리 때문에라도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한다”라고 말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하나 때문에 수백 만 명의 죄없는 사람이 포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만약 내세가 없다면 이런 악인의 횡포에 대해서,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어떻게 그 억울함과 원통함을 해소할 수 있겠는가?이런 질문이다. 이 철학자의 눈에도 세상은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 찬 곳이며 그 부조리와 모순이 해소되려면 반드시 죽음 이후의 내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라는 철학자뿐만 아니라 성경의 시편 기자의 노래 속에도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해 동일하게 서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 73:3-6)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편 기자는 철학자 ‘칸트’와 마찬가지로 악인이 형통한 현실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이처럼 의인이 악인에게 해를 입는 사례는 이미 창세기부터 있었다. 아담의 장남 가인이 차남 아벨을 살해했다. 그런데 아벨이 죽음 이후 그 억울함이 어떻게 해소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죽음 이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입바른 소리 하다가 헤롯왕에게 참수형 당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에 어찌되었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억울하게 죽었는지 모른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그 무수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억울함을 풀고 그에 대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처럼 세상의 역사를 보아도, 성경의 역사를 보아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악인이 의인을 가해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여러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 만약 내세가 없다면, 만약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이런 상황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지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성경을 믿어야 하고 성경을 믿으면 성경이 말하는 내세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을 소망할 수 있고 또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할 수 있다. 또 다른 영혼들이 그 영원한 형벌에 처하지 않도록 전도할 수 있다. 성도가 천국보다 왜 세상에 몰두하며 살아가는가? 이 기초 신앙이 굳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가 왜 가족 친척 전도하는데 미온적인지 아시는가? 내세에 대한 이 신앙이 약하기 때문이다. 부디 죽음 이후에 이 두 세계가 있다는 성경의 선언을 믿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원한다.

    둘째, 이생과 내세의 삶은 크게 역전될 수 있다.

    (눅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 비유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존재뿐만 아니라 부자와 나사로의 인생이 대조되고 있다. 부자는 이생에서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고 나사로는 상처가 난 곳을 개가 와서 핥을 만큼 생활이 비참했다. 그런데 죽음 이후 이들의 처지가 완전히 역전된다. 부자는 음부의 고통을 당하고 있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생과 내세는 전혀 다른 처지로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않아야 할 점은 부자는 부요하기 때문에 불구덩이 떨어지고 반면 나사로는 가난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이 아니다. 니고데모처럼 물질이 풍족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고 오히려 빈궁해도 마음이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도 있다.

    부자는 음부의 고통에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음부는 어떤 곳인가? 음부는 헬라어로 ‘하데스’라고 하는데 이는 죽은 자가 거하는 임시 거처를 가리킨다. 이 음부에 대기하고 있다가 마지막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음부는 지옥 이전의 임시 체류 장소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옥이란 뜻의 헬라어는 ‘게헨나’라고 하는데 이는 ‘힌놈의 골짜기’란 뜻이다. 음부와 지옥은 어휘상 달리 표현되지만 여기서는 같은 의미로 다루겠다. 지옥으로 번역된 게헨나는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실존 지명이다. 이 장소에 얽힌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과거 구약시대에 우상 숭배자들은 이곳에서 인신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불태워 우상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 후 유대인들은 이 저주스러운 장소에 쓰레기를 가져다 버렸다. 그리고 쓰레기들을 태우기 위해 항상 불을 피워놓았다. 그래서 꺼지지 않고 계속 불이 타오르는 곳이 바로 게헨나이다. 주님은 바로 이 게헨나를 지옥으로 말씀하고 있다.

    (막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래서 한마디로 지옥이란 어떤 곳이냐 바로 꺼지지 않고 항상 불이 붙어 있는 영적 쓰레기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생에서 잠시 동안 아무리 떵떵거리게 산들 저생에서 영원히 고통의 게헨나에 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이생에서 아무리 고통을 받을지라도 저생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이 고통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주목할 점은 그 처지가 한 번 정해지면 바뀔 수 없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부디 여러분들은 잠시 잠깐의 이생의 행복이나 고통보다 영원히 지속되는 내세에서의 행복과 고통에 더 큰 관심을 두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셋째, 기억되는 이름과 망각되는 이름이 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오늘 본문에 부요한 사람은 성도 이름도 기록되지 않고 다만 부자라고 기록했다. 반면에 거지는 ‘나사로’라고 분명히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뜻이다. 그 이름의 뜻으로 미루어 보건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며 살아간 신앙인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처럼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이 있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이름이 있다. 이 사실을 잘 설명하는 성경의 기록이 있다.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성도는 믿고 세례를 받은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하신다.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이름이 주민등록부에 등재되듯이 사람은 세례를 받을 때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이나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의 시민권을 얻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것이 있으면 육신의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천국의 시민권은 이 땅의 어떤 시민권과 비교할 수 없다. 비록 이 땅에서 부자와 같이 호화롭고 평안한 생활은 못해도,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인사는 못돼도,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아도, 질병과 장애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도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잠깐이면 사라질 이 땅에 이름을 새겨지는 것보다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신앙을 갖는 저와 성도님들이 다 되기를 바란다.

    넷째, 이생은 내세를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이다.

    (눅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살려서 돌려보내면 제 아들들이 믿지 않을까요?” 하고 질문한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죽었다 살아난 자가 있어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으로 보건대 이 땅에서의 삶의 기간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를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알 수 있다. 죽으면 그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태평양 어느 섬나라에 오랫동안 내려오는 풍습이 있었다. 그 풍습은 표류한 이방인을 일 년 동안 왕으로 모시다가 그 후 무인도로 추방해서 죽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 표류해서 왕위에 오른 일 년 동안 온갖 보물을 모아서 자기 집에 채우며 행복하게 생활했다. 그러나 일 년 후 보물은 내려놓고 무인도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곧 죽었다. 두 번째 사람이 그 섬에 표류했다. 그도 왕으로 추대되어서 일년 간 섬의 온갖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좋은 의복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자 그도 무인도로 추방되어 죽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그 섬에 표류했다. 그는 도착 후 앞서 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왕이 되자 섬의 백성들에게 명령했다. “저 무인도에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고 밭을 갈고 집을 지어라.” 섬의 백성들은 왕의 명령대로 모두 행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날 무렵 무인도는 비옥한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 이 사람은 무인도에 추방되었지만 잘 가꾸어진 그 무인도에서 계속 행복하게 살았다.

    이처럼 이 땅에서의 삶은 화살과 같고 유수와 같다. 그 짧은 일생 동안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부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의 기초를 확실히 세우자. 죽음 이후 우리에게 임할 그 때를 준비하자. 이 땅을 사는 동안 내가 거할 하늘 집을 위해서 열심히 땀 흘리며 준비할 뿐만 아니라 지옥을 향해 나아가는 다른 영혼을 구원하고 미래에 모두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

  • [성도 간증]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

    [성도 간증]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

    천안교회 김명현 형제가 중3수련회를 갔다 오고 나서 작성한 소감문입니다.

    함께 지어져가는 10또래

    천안교회 김명현(중3)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2025 중3 수련회 소감하겠습니다. 나는 중3 수련회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설렘보다 걱정이 더 컸다. 왜냐면 중3 수련회를 하는 기간과 방학식이 겹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학업보다 교회 행사를 우선으로 하기로 다짐했었기 때문에 중3 수련회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그 후, 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내고 중3 수련회에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도를 먼저 했기 때문에 중3 수련회에 갈수 있었던 것 같다.(감사주😄) 중3 수련회에 참여하기 위해 대전으로 가기 전에 기도를 깜빡하고 갔는데, 모자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어딜 가든 항상 기도를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3수련회때 각자 맡을 역할을 제비뽑기 하고있을때, 우리조 조장님이 내가 안마핑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안마핑이 되어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런 작은 것에도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하였다. 중3 수련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3번째 강의 시간 중 들은 말씀이다. (사실 레프팅을 하고 나서 듣는 강의라 많이 졸렸지만 말씀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뒤로 나가서 들었었다.) 어떤 말씀이었냐면 박필선 목자님의 순교였다. 박필선 목자님은 그 당시 김천세무서의 계장으로 일하시다가 부산으로 과장 승진발령을 받았는데 모든 것을 버리고 자원해서 희생과 헌신의 길을 택하셨고, 빨치산들에게 잡혀가 죽임을 당하시던 그 순간에도 전도하셨다. 그리고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순교를 택하셨다. 그래서 순례의 길을 걸을 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잘 다져진 등산로도 가기 힘든데, 이 거리보다 더 먼 거리를 빨치산들에게 끌려가시며 어떤 생각으로 올라가시고,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의 순교 덕분에 지금 참예수교회가 이렇게 흥왕하고, 발전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말씀은 홍여호수아라는 분이 7년(?)만에 어느 교회에 갔는데 그 교회가 다른 교회로 바뀌어 있었고, “왜 진리를 버렸냐?”라고 물어보셨는데, 대답은 “우리가 버린게 아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버린거다”라고 했다고, 일꾼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일꾼이 없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듣고 나는 ‘내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해야겠다’ 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전도하기, 교회에 처음 오는 친구에게 말 걸어주기, 혼자 있는 친구에게 말 걸어주기 등 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 중3 수련회는 ‘성령과 함께 떠나는 TJC 역사 여행’ 이라는 주제로 참예수교회 역사를 알아가는 수련회였는데 사실 TJC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이유를 몰랐다. 하지만 이번 수련회를 통해 왜 알아가야 하는지, 어떠한 역사가 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서 학업을 포기한게 처음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하나님을 우선으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더더욱 타락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해주고, 믿음의 동역자들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수련회의 마지막 날에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 앞에 나가서 소감을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려져서 당황했고, 정말 내가 맞나? 잘못 읽으신거 아닌가? 내가 잘못 들었나?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잘 말했던 것 같다. 뭐라고 말했냐면 “또래중 1/3이 떨어져 나간다고 말씀을 들었지만 우리 또래는 떨어져 나가는 사람 없이 모두 진리 안에서 자라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말씀 중에서 장바나바가 교만해지고, 자신이 참예수교회 창립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타락하여서 중화 참예수교회를 설립했다는 말씀, 박창환씨를 예를 들면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고, 믿음은 끝까지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과 또래 중 통계적으로 1/3이 떨어져 나간다는 말씀이 그때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폐회 영상을 보는데 영상 마지막에 참예수교회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이런 믿음의 선조의 모습을 닮아가며 믿음을 이어갈 증인이 되어 거룩한 주의 나라를 세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정을 소화하는데 계속 ‘같이 걸어가기’라는 찬양이 떠올랐는데 그 이유는 우리 10또래들이 계속 같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주 가신 그길로 다같이 함께 가는 모습이보이고 ‘주와 함께, 주의 뜻대로’라는 가사처럼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예수님이 알려주신 그 길로 다니는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이 일정에 언제나 함께하시고, 동행하시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장 12절)’ 우리 모두 이 참예수교회 안에서 떠나지 않고 함께 걸어가고, 지어져가는 10또래가 되자!!! 아멘.

  • [교회 행사] 부산교회 청년반 천안 방문

    [교회 행사] 부산교회 청년반 천안 방문

    할렐루야! 지난 8월에 9일(토)부터 10일(일)까지 부산교회 청년부가 천안교회에 방문하였습니다. 찬양 교류와 즐거운 레크레이션, 재미있는 교제 활동 시간을 가지면서 맛있는 간식도 먹으며 천안교회 청년들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함께 사진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복음메시지]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사 53:1-12)

    [복음메시지]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사 53:1-12)

    2025년 8월 2일 (토)

    설교제목: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본문: 사 53:1-12

    설교자: 박은진 목자님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53장은 ‘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외모는 초라했고, 고난을 당할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당할 때 잠잠했습니다. 그가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속건제물로 드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일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아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그는 바로 누구일까요?

    (사 52:13) 바로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 1:41)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7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오실 것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 7:14) (사 9:6) 이사야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42:2-4)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살 어르고 돌봐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1:10-11)

    1. 예수님은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3)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눅 2:7)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또 아이를 죽이라는 헤롯왕의 칙령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애굽으로 피난가기도 했습니다.

    (사 53:2-3) 또한 예수님은 아름다운 것도 없을뿐더러 모든 이들에게 멸시를 받기까지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사람들의 손에 죽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저 고난이었습니다.

    (마 8:20) 그의 길을 따르는 길은 고난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기도 했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요 1:10-11)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는 나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고난을 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우리는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 또한 마치 양처럼 내 일만 생각하고 교회 걱정은 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면서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삶은 존귀한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초라한 삶을 살아가며 고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늘 생각하며 빚진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유튜브에서 설교를 시청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 [성도간증] 김학송 형제

    [성도간증] 김학송 형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계 1:12~15)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주님의 은혜 나누겠습니다. 저는 임실군 삼계의 ‘김씨 가문’의 종손이자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저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대대로 제사를 지내며 유교 사상을 지키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7살 때 숙부님의 손을 잡고 처음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으며, 부모님께서는 제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막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세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세례를 받으면 죄를 씻기게 된다고 하여 그 당시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죄를 깨끗이 씻고 싶어 ‘세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세례’를 받기로 한 저녁에 교회에서 갑자기 몸이 춥고 열이 나기 시작하여 ‘세례’를 받으러 갈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밤이라 무서움을 참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으며, 그 후로도 오래 아팠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교회에 가서 제가 아프게 된 것이라며 숙부님을 나무라시며 교회에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안식일 예배만 참석했으며, 10살 때 서울로 이사 가게 되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회기동 교회에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의 성도”라고 늘 마음에 새기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세례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지 20년 후, 27살 때 세례와 성령을 같이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왜 그때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하셨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저를 단련시키고 세례를 받게 한 후 ‘악속의 성령’을 같이 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계신지도 깨달았습니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 적령기에 참예수교회 안에서 믿음의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상황은 조부모님, 부모님, 6남매의 장남에 형편이 좋지 못했지만, 주님께 기도했고, 감사하게도 현재 저의 아내인 청주교회 신현순 자매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소중한 두 딸을 보내주셔서 믿음의 가정을 이뤘습니다. 결혼 후 20년 넘게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리느라 부족한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편히 쉴 수 있는 집 한 채도 마련하며 경제적으로 조금은 안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저와 함께 한 사랑하는 신현순 자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 또한 모든 것이 주님의 큰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서울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대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기상청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거의 다 아는 문제여서 바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저의 어려운 상황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인도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상청 입사 후 기상청의 꽃이라 불리는 기상예보관 업무를 맡았습니다. 일을 할 때 마치 주님께서 예보를 잘 맞추도록 지시해 주신 것처럼 눈, 비 예보를 하면 눈, 비가 내려서 ‘탁월 예보관’에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일을 하면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포기했던 대학진학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아 대학원에 들어가서 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주님의 보살핌 덕분에 기술서기관(4급) 예보 과장으로 41년의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퇴직 후, 학교에서 지킴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던 중 2024년 9월에 ‘소세포 폐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의정갈등)임에도 수술날짜도 빠르게 잡혀 서울에서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 은혜로운 것은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담임 목자님, 대전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합심 기도 덕분에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 X-Ray, CT 촬영만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간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저와 늘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의 큰 사랑을 다시 깨달았으며, 현재는 교회에서 ‘샤론 성가대’ 의 베이스를 맡아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기쁘게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시고 저의 사정을 모두 아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교회행사] 대전교회 한나회의 제주기도소 방문

    [교회행사] 대전교회 한나회의 제주기도소 방문

     – 일정: 25.6.8(일)~6.11(수)

    – 참석자: 허명도 목자님, 한나회 8명/ 총 9명

    할렐루야, 대전교회 한나회에서 오랫동안 계획했던 행사가 있었는데, 바로 “제주기도소 방문”이었습니다. 올해 초부터 한나회 구도자 및 전도대상자들에게 찾아가 적극적으로 행사 참여를 권한 덕분에 감사하게도 관리성도이신 박순영자매님이 이번 “제주기도소 방문”에 함께하셨습니다. 대전교회 한나회는 6월 8일(일)~6월 11일(수) 기간 동안 제주기도소에 방문하였습니다. 출발 전 6월 초 더워진 날씨와 비 예보로 걱정스러웠으나 주님께서 시원하고 맑은 날씨를 허락해 주셔서 알록달록 수국이 만개한 6월의 제주를 눈과 마음에 담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습니다.

     

     3박 4일 동안 제주 기도소에 머물면서 제주기도소 소천수 교무님과 이에스더 집사님께서 세심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써주신 덕분에 맛있는 식사와 제주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정 중에 제주기도소 세례식 장소에도 다녀오고, 참예수교회 성도가 운영하는 제주시 조천읍에 위치한 카페 “와산 살롱”에 방문하여 시원한 음료와 달콤한 간식을 맛있게 먹으며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화요일 저녁에는 제주기도소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으며, 허명도 목자님께서 귀한 주님의 말씀을 증거 해주셨습니다. 이번 한나회 행사에 함께 참여하신 박순영 자매님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셔서 성령이 떠났었는데 화요일 저녁예배 기도시간에 성령이 다시 임하셔서 성령을 회복하셨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박순영 자매님께 “성령이 다시는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당부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주님의 큰 사랑과 은혜를 느끼며 감사함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박순영 자매님의 성령충만과  신앙회복을 위해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한나회의 3박 4일 동안 행복 가득했던 순간을 담은 사진들을 이곳에 다 공유하지 못해 아쉬울 정도로 다양하고 멋진 사진들이 많았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들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제주기도소와 대전교회 성도님들의 사랑과 기도 덕분에 제주에 머무는 동안 주님이 함께 해주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더불어 감사와 기쁨으로 마음을 충전하고, 잊지 못할 예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좋은 날씨와 모든 일정이 잘 진행될 수 있게 늘 인도해 주신 우리 주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 돌립니다.

     

     

  • [교회소식] 2025년 대전교회 봄 영은회 “더 깊은 곳으로 가라” (눅 5:4)

    [교회소식] 2025년 대전교회 봄 영은회 “더 깊은 곳으로 가라” (눅 5:4)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풍성했던 대전교회의 봄 영은회를 소개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서부교회 장흥진 목자님께서  5월 23일(금) 저녁부터 25일(일) 오전까지 3일 간  “더 깊은 곳으로 가라‘라는 주제로 말씀 증거 해주셨습니다.

         

         

                 

    봄 영은회를 위해 각 신도회 별로 그동안 기도해왔던 전도대상자들에게 영은회 초대장, 참예수교회 전도지, 전도물품을 개별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안식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교회 아래 대전천에서 노방전도가 진행 되었으며, 전도심방팀과 노방전도를 희망하는 성도들께서 교회 인근 주민들에게 영은회 리플렛과 전도물품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로 영은회를 준비했습니다. 이러한 성도님들의 사랑과 간구함을 주님께서 들어주셔 이번 영은회에 구도자 3명과 전도대상자  2명 총 5명이 방문해주셨습니다.

    < 5.23(금) 저녁: 한나회, 마리아회>

     

     < 5.24(토) 오전: 배혜옥 자매 독창, 바울회>

     

    < 5.24(토) 오후: 아동부, 청년부>

    < 5.24(토) 저녁: 마가&다니엘&에스더&유니게 연합 찬양>

     

    < 5.25(일) 오전: 샤론 성가대>

    이번에도 말씀 시작 전 모든 신도회가 참여하여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아름다운 찬양으로 매 시간 은혜로웠습니다. 

         

     또한 둘째 날 저녁 예배 시간에 이O미자매님의 동생이신 이O순 자매님이 대전으로 이사하고 대전교회에 처음 방문해주셨습니다. 이O순 자매님은 어린 시절 부여 참예수교회를 다니실 때 성령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 후 성인이 되어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고, 방언 기도를 한지 오래 되어 성령이 떠났는데, 저녁 예배 말씀을 마치고 기도 시간에 안수를 받으면서 주님의 큰 은혜로 성령을 다시 회복하셨습니다. 큰 울림과 감동으로 가득했던 순간이었으며, 모두가 한마음으로 축하하고 기쁨을 나누면서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다 함께 마음을 모아 각자의 자리에서 기도로 힘쓰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봄 영은회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라”는 장흥진 목자님의 말씀처럼 이번 영은회를 통해 우리가 주님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고, 주님의 풍성한 은혜와 사랑의 능력을 체험하여 주님의 귀한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대전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눅 5:4)

     

  • [성도소개] 25년 대전교회 학생부 수령자 서O빈, 서O우를 소개합니다.

    1. 학생부 서O빈

    Q1.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대전교회 서O빈이고, 17살 올해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Q2. 성령은 언제 받았나요?

     25년 3월 29일 안식일, 청년부 기도회때 안수기도를 받았는데 그 때 목자님께서 성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Q3.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드렸으며, 성령 받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기도할 때마다 항상 ‘제게 성령을 내려주시어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더욱 공고히 하여 주시고, 저의 믿음을 강하게 하여주세요.’라고 기도드렸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청년부 기도회 시간인 만큼 평소보다 더욱 큰 목소리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겠다는 마음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기도회가 끝나고 목자님 말씀으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물론 감사한 마음도 컸지만, 그동안 제가 저질렀던 죄와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나날들이 떠올라 너무나 부끄럽고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점차 이런 약하고 어리석은 저조차 보듬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지고, 더욱 진실 되고 충성스러운 믿음 생활을 보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Q4. 성령을 받고 달라진 점이나 앞으로의 다짐은 무엇인가요?

     더욱 열심히 기도해서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 받은 날 다짐했던 것처럼 착실한 믿음 생활과 신앙을 위해 노력하고 기도할 것입니다. 교회 행사에도 더욱 열심히 참석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주님 말씀 전하며 전도를 위해 힘쓰고 싶습니다.

     

    2. 학생부 서O우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대전교회 학생부 16살, 중학교 3학년 서O우입니다.

    Q2. 성령은 언제 어떻게 받았나요?

    저는 올해 2월 22일 안식일 오전 예배 목자님 말씀 후 기도 시간에 안수를 받으러 나와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Q3.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드렸으며, 성령 받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그 전에도 안수 기도를 받으러 나왔을 때 목자님께서 감동이 있다고 하셨는데, 목자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그 날 더 열심히 집중하여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게 몸이 떨렸습니다. 목자님께서 성령을 받았다고 얘기해주시고 바로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았는데 기쁘면서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후 따로 기도를 하면서 ‘내가 드디어 성령을 받았구나’하고 실감이 났습니다.

    Q4. 성령을 받고 달라진 점과 앞으로의 다짐은 무엇인가요?

    성령 충만을 위해 전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있으며, 하나님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게 신앙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