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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행사] 낮아짐으로 시작하는 한해_교회교육 세족식

    [교회 행사] 낮아짐으로 시작하는 한해_교회교육 세족식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때 우리는 늘 다짐합니다. 더 잘 가르치고, 더 열심히 배우며, 더 성숙해지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청주교회의 교회교육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발을 씻겨 주는 세족식으로 조금 다른 방식의 시작을 합니다. 바로 ‘낮아짐’으로 한 해를 여는 것입니다.

    이 행사는 단순한 행사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그 마음을 오늘 우리의 교회교육 현장에 옮겨 놓는 시간입니다.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구분이 잠시 사라지고, 교사는 학생 앞에 무릎을 꿇으며, 학생은 교사 앞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어놓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습니다. 교육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서로를 섬기는 관계 위에서 세워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4-15)

    아동부의 작은 손이 선생님의 발을 닦아 줄 때, 학생부의 청소년이 교사의 발을 씻겨 줄 때, 대학부 청년이 교사와 학생들의 발을 씻기며 기도할 때, 교회 안에는 묘한 긴장과 감동이 함께 흐릅니다. 평소에는 장난기 많던 아이도, 표현에 서툴던 학생도 이 시간만큼은 진지해집니다. 누군가의 발을 씻기는 일은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것은 “나는 너를 존중한다”는 고백이자, “나는 너를 위해 낮아지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에게도 이 시간은 도전입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위치에 서 있지만, 사실은 아이들을 통해 더 많이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인내를 배우고, 순수함을 배우며, 솔직함을 배웁니다. 세족식은 그 사실을 다시 되새기는 자리입니다. “내가 너를 섬기겠다”는 다짐은 동시에 “나도 배움의 자리로 내려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도 이 경험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누군가를 섬겨 본 기억, 그리고 나 역시 섬김을 받아 본 기억은 관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경쟁과 비교가 익숙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먼저 섬기는 법을 가르칩니다. 성적보다 태도가, 능력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게 합니다.

     

    청주교회는 해마다 이 세족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섬김은 한 번의 감동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쉽게 높아지려 하고, 쉽게 판단하며, 쉽게 자기중심적으로 돌아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다시 무릎을 꿇습니다. 다시 손에 물을 붓고, 다시 발을 씻깁니다. 낮아짐을 연습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금세 메말라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교회교육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더 크고 화려한 행사를 추구하기보다 더 깊은 사랑을 선택합니다. 결과보다 더 진실한 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세족식은 바로 그 고백이 담긴 시간입니다.

    올해도 우리는 서로의 발을 씻기며 고백합니다.

    “나는 너를 섬기겠습니다.”

    “나는 너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우리는 함께 자라가겠습니다.”

    겸손의 자리에서 시작한 한 해가 결국 가장 높은 가치인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기를 소망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교회 소식] 하나님이 이어주신 새로운 만남

    [교회 소식] 하나님이 이어주신 새로운 만남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안양에서 청주로 오신 장종규 목자님 가정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청주교회에 참으로 귀한 가정을 보내주셨습니다. 안양에서 청주까지 삶의 자리를 옮겨 새로운 사명을 품고 오신 장종규 목자님 가정입니다. 이번 걸음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기에 더욱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익숙한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온 관계와 정든 교회, 삶의 기반을 내려놓고 새로운 땅으로 향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목자님 가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사람의 계산이 아닌 믿음의 확신으로 한 걸음을 내딛은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과 본이 됩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순종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1, 4)

    목자님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시는 분이십니다. 설교로만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선택과 태도를 통해 복음을 보여주십니다. 한 영혼을 향한 진심 어린 관심,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 그리고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는 기도의 자리를 통해 우리는 목회자의 본을 보게 됩니다. 목양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며, 관계는 전략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모님 또한 가정을 든든히 세우는 믿음의 동역자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기도하시며 가정이 먼저 작은 교회가 되도록 힘쓰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한 본이 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세워주는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신앙이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흘러가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자녀들 역시 귀한 순종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예민할 수 있는 시기에 학교를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믿음으로 부모님의 결정을 따르는 모습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 순종의 발걸음 역시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실 줄 믿습니다.

    청주라는 새로운 환경은 목자님 가정에게 낯설고 조심스러운 자리일 수 있습니다. 문화도, 관계도, 사역의 방식도 하나하나 다시 세워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리라면, 그곳에는 이미 예비하신 사람과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은 결코 헛되이 수고하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 공동체의 자세입니다. 따뜻한 환영의 한마디, 식사 한 번의 초대, 진심 어린 기도 한 번이 목자님 가정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새로운 사역지는 목자님 가정만의 여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여정입니다. 함께 짐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웃고 울 때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공동체를 새롭게 하십니다. 안양에서 청주로 이어진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습니다. 목자님 가정을 통해 우리 교회가 더 깊이 기도하게 되고, 더 넓게 품게 되며, 더 단단히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렘과 긴장을 함께 안고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라면 그 끝 또한 가장 아름답게 완성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장종규 목자님 가정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학생부, 대학부, 사청부가 함께 찬송으로 환영하는 모습)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간증]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고자 합니다_김연숙 자매

    [성도 간증]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고자 합니다_김연숙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교회는 그저 가면 먹을 것을 주고 선물을 주는 곳 정도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굳이 그런 곳을 다녀야 하나, 세상에는 할 것도 많고 다닐 곳도 많은데 왜 교회를 가야 하나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 저는 정말 막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흥을 좋아했고 노래방과 나이트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한 달이면 25일 정도 가위에 눌렸고 귀신을 체험한 적도 있었습니다. 매일 밤 무서움 속에서 잠들었고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불을 다 켜고 자야 했습니다.

    몸도 많이 아파 병원을 자주 다녔는데, 장치성 형제와 연애할 때 길에서 쓰러진 적도 있어서 간질병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와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가 아영이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참예수교회라는 곳을 다니고 있었고 토요일에 교회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화를 내며 엄마에게 왜 그런 교회를 다니냐고, 거기 이단 아니냐며 엄마도 그런 교회 가지 말라고 이상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저는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오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와 멀어져 살고 있던 중 엄마의 연락을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영은회라는 행사가 있는데 와보지 않겠느냐며 엄마가 데리러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싫다고 했고 아직도 그 교회를 다니냐며 오히려 엄마에게 또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계속 연락하시며 한 번만 나와 보라고, 집에서 아영이와 둘이 있는 것보다 교회에서 놀다가 가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렇게 심심하기도 하고 약속도 없어서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처음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입니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의 인사가 오히려 민망함과 반감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도 예배를 끝까지 드리지 않고 집에 간 적도 많았고, 다시 와도 늦게 오거나 교회 행사 때만 나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와의 연락으로만 교회에 나오다가 다른 분들과도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루디아·에스더 자매님들입니다.

    처음에는 연락만 받고 카톡이나 문자는 거의 답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연락이 귀찮았고 왜 자꾸 연락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면 괜히 미안하고 민망했고, 내가 왜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서프라이즈라며 언니들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얼굴만 보러 왔다며 오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청주에서 오창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쯤 당시 믿지 않았던 남편 장치성 형제가 교회에서 잘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분명 돈을 요구할 것이며, 공짜밥이나 공짜로 해주는 것은 나중에 다 갚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지금은 교회를 너무 잘 다니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담감이 커져갈 때쯤 연락을 안 받으면 이제 안 하겠지 생각하고 연락을 끊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연락을 해주시고 말씀 구절을 보내주시는 자매님들을 보며 처음에는 왜 이러지, 안 다닌다고 했는데 왜 자꾸 연락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또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계속 오는 연락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연락만 하며 지내던 중 교회에도 나와 줄 수 있겠느냐는 권면을 받았고, 주말에 할 것도 없으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 예배 도중 약속을 잡고 다른 곳으로 간 적도 많았고, 오전 예배가 거의 끝날 때쯤 온 적도 많았습니다. 정말 그냥 놀러 가보자는 마음이었고 점심이나 먹자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가 조금 편해질 무렵 교회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교회 오면 낯을 엄청 가리고 교회보다 키즈카페나 다른 곳이 좋다던 아영이가 교회에서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성경공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면을 당시 청주교회를 시무하시던 이요셉 목자님으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목자님께 저는 배우거나 공부하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고 엄마가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답을 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교회를 멀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밖에서 언니들만 만나며 지내다가 안식일에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 차가 없어서 못 온다고 핑계만 늘어갈 때쯤, 어느 목요일 이요셉 목자님께서 저희 집으로 직접 오셔서 성경공부를 해주시겠다고 꼭 시간을 내 달라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바쁘신 와중에도 와주신 것이었는데 그때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마냥 귀찮게만 느껴졌습니다. 생각할수록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번의 권면 끝에 성경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제 몸에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주를 미루게 되었고 다음 주도 이상하리만큼 몸이 아팠습니다.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마스크를 쓰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 안수기도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 몸을 위해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지만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신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경공부가 시작되었고 제 눈높이에 맞춰 알려주시는 내용들이 마냥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할렐루야를 외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가위에 자주 눌린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혹시 그런 꿈을 꾸거나 가위에 눌릴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야 물러가라”고 외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평소보다 더 심하게 가위에 눌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이 알려주신 대로 외치자 정말 가위가 풀리고 꿈에서 깰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가위에 눌리는 횟수도 줄어들었으며 무서움 속에서 잠드는 날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성경공부를 이어가며 안식일 출석도 다시 하게 되었고 세례를 권면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받을 마음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주중에 김경희 자매와 최영미 자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던 중 자매님들께서 다시 세례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저는 아직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최영미 자매님께서 시어머니께서 쓰러져 병원에 계신데 세례를 받지 못하고 누워 계신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꼭 세례를 받았으면 좋겠다며 펑펑 우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갑자기 마음이 너무 아파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세례 공부만 받아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시어머니가 쓰러진 순간에도 누군가 세례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세례공부를 시작하고 교회 출석도 열심히 하게 되면서 비로소 교회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오면 민망하고 낯설기만 했는데, 그때부터는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태도와 말씀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아영이를 챙겨주시는 성도들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대할 때 나라면 벌써 화를 냈을 텐데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며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영이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왜 교회만 오면 착해져?”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만 오면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았고 마냥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교회 생활과 세례공부를 이어가던 중 다시 세례를 권면받게 되었고 이번에는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반대하고 있었고 뱃속에는 둘째 아윤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뤄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요셉 목자님께서는 너무 겁먹지 말고 기도하면서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정도 기도한 후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의외로 자기에게까지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다며 허락해 주었습니다.

    세례식 날까지 순탄하면 좋았겠지만 끝난 줄 알았던 입덧이 다시 시작되었고 가위에도 자주 눌렸습니다. 세례식 전날에는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해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세례를 받고 나니 피곤함과 힘듦은 사라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날의 감동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며 남편도 전도했고 아는 분들에게도 조금씩 교회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제가 전도받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감사한 마음도 큽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속에서 계속 세상의 문화를 즐기며 살았다면 과연 지금 행복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느끼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라진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감사 위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이 교회 안에서 믿음을 지키며 성경 말씀을 믿고 따르며 그 말씀을 전하는 성도가 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저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저를 교회로 인도해 주신 형제자매님들께도 감사드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김연숙 자매

  • [복음 메세지]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1:1-9)

    [복음 메세지]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1:1-9)

    [말씀 제목]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1:1-9)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6. 2. 6

     

    할렐루야, 성도님들 평안하십니까? 새롭게 발령을 받은 부임지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새롭다’라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고 설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약간의 두려움도 느끼게 됩니다. 저 또한 기대도 되고요, 한편으로는 ‘아, 제가 잘 감당해야 할 텐데’라는 어떤 그런 걱정 아닌 걱정도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새로운 상황들을 만날 수 있고, 또한 생각하지 못했던, 내 힘으로 뭔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내일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알지 못한 채, 우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사명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려다 보니 때로는 그런 상황들 속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는 거죠.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 개인, 가정, 교회가 이러한 삶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1:2)”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그들을 광야라고 하는 두렵고 무서운 이곳을 지나게 하신 다음에,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입구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서 모세는 죽고 그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로 이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굉장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을 들어간다는 것은, 그 땅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곳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는 훨씬 더 신장도 크고 힘도 강했던 가나안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약 38년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여기 가나안 땅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셨는데 그 땅을 정탐해 보니 자기들보다 너무 강해 보이는 족속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마치 메뚜기와 같이 보였습니다. 너무 겁을 먹은 것입니다. 사실은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다시 광야로 돌아가게 하셨고, 8년이 지난 다음에 이제 다시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쉽지 않지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명령이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사명은 사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를 위해서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롬15:4). 우리 신약 시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을 통해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 바로 우리가 장차 가야 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이자 명령이며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도 있고 또 동시에 사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지금까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침노해야 합니다. 침노라고 하는 것은 싸우는 겁니다. 싸워서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은 이와 같이 싸워서 차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후의 말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과 전쟁을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얻는 과정과 동일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 말씀 보면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리며, 이제 마지막에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여정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기 위해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만 합니다. 이런 삶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 그곳의 족속들과 싸워서 그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했던 바로 그런 과정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혼자서만 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넓혀 가야 합니다.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처음에 여리고부터 시작해서 점점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로 확대해 가지 않습니까?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말합니다. 전도를 통해 그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고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는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를 얻고 확장해야 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3절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그 땅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너희 밟는 곳을 다 너희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실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이란 걸 생각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미 얻은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으면 그 말씀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정말 믿는다면 순종하겠죠.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대로 행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모든 성경의 말씀이 다 그와 같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말씀은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죠. 그렇게 믿음의 본질은 바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주었다”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싸운다면 하나님께서 그곳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해서 그 땅에 들어가지 않거나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 말씀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사실 뒤의 말씀이 바로 그런 내용인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고 그 믿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문제가 될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훨씬 강한 아낙 족속이나 하더라도 하나님하고 상대가 안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나와 함께하셔서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신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내가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만 하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도 사실 그런 의미입니다. 양이 목자와 함께 있다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가 양이 필요한 것들을 다 제공하고 쉴 만한 곳으로 인도합니다. 심지어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곳을 지난다고 하더라도 목자가 함께 만 있다면 양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어떻게 함께하십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의 지경, 즉 범위가 나옵니다. 이 범위는 사실 굉장히 넓은 지역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가나안 지역, 실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은 그들이 얻었던 곳보다 훨씬 더 큽니다. 지도를 보면 거의 한 열 배 정도 차이가 날 만큼 굉장히 큰 범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신 약속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밭 밑에 어마어마한 보화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좋고 큰 은혜인가를 알게 된다면 내 모든 소유를 다 판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요. 실제로 성경에 보게 되면 이 하나님 나라를 깨닫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동안 정말 중요하게 여겼던 걸 다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는 바울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릴 때는 가치를 잘 모릅니다. 막 지폐도 가위로 자르기도 하죠. 그러나 크면 가치를 압니다. 신앙에서 성장하면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앙이 성장하지 않으면 이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잘 모릅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나 혼자 누리기 너무나 아쉬워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 줍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누리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세상의 삶을 마치게 되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삭제?

     

    우리가 믿는 목적은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천국을 가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천국에 왜 가려고 합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냥 좋으니까”라고 답할 수 있겠죠.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 삶 속에서 많이 경험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내가 많이 경험해야 “이게 정말 가장 좋은 것이구나”를 알게 되고 더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려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능히 당할 자 없게 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떠나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 무슨 말입니까? 믿음을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눈에 보이는 건 힘센 가나안 족속들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그런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들겠죠. 하나님께서 왜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하셨을까요?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테니 내가 준 명령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나 그런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통해서 우리 성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매번 필요한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러면 성도는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가시는 곳은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죄의 유혹과 사탄의 방해뿐이기에 그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믿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됩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 무리를 걸어오셨고, 베드로도 용기를 내어 물에 발을 내렸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물 위를 걷게 되었죠. 그런데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빠져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잡으시며 “의심하는 자여 왜 믿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가면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기적이 뭘까요? 병이 낫는 것도 기적이지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기적 아닌가요? 주변에는 평안함이 없어서 늘 불안해하고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아무 걱정이 없어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평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7절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함께하시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말씀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지만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건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 행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중심의 신앙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말씀이 중심이 안 되면 그 신앙은 금방 무너집니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라고 믿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씀을 늘 가까이해야 합니다.

     

    8절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동행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말씀을 암송하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날마다 추구한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힘듭니다. 당연히 힘듭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처럼 힘든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내 노력과 정성을 쏟는 만큼 나에게 돌아오게 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담되고 행하기 어려운 말씀도 다 지켜 행해야 합니다. 부담되시죠? 하지만 힘들수록 그 안에서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힘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순종하라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입니다. 무리한 요구처럼 보여도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행하기 전에는 피곤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해서 행하게 되면 그 안에서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내가 명했으니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저 역시 오늘 처음으로 청주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주어진 시간 동안 이 곳에서 목회를 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걱정도 되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많은 성도님을 어떻게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을까 고민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저도 그 말씀을 믿고 그렇게 하려 합니다. 성도님들도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믿으시고, 그 말씀을 따라 힘써 행하는 삶을 사신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열심히 순종하는 우리 청주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ryNq6qEbYX0?si=WsDDc7K9DzgSLdii

    설교자 : 장종규 목자

    글편집 : 김예영 자매

  • [교회 행사] 서부교회 천안교회 방문

    [교회 행사] 서부교회 천안교회 방문

    할렐루야!
    2026년 1월 18일, 저희 천안교회에 귀한 손님들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바로 서부교회 성도님들 입니다. 구도자와 새신자분들을 포함해 서부교회에서 46명, 천안교회 성도 44명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총 90명의 성도님들이 예배당을 가득 메우니, 그 어느 때보다 찬양 소리가 힘차고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서로의 교회를 소개하고 찬양으로 화답하며, 간증을 나누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 성령 안의 형제자매임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진 신도회 교류 시간 또한 웃음과 기쁨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풍성한 만남과 교제를 허락하시고, 귀한 시간 기쁘게 보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간증1. 천안교회 소만수 형제님

    간증2. 서부교회 윤관석 형제님

    간증3. 서부교회 박달순 자매님

    간증4. 서부교회 김현숙 자매님

     

    <각 신도회별 교류 사진>

     

  • [복음메시지]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눅15:25-32)

    [복음메시지]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눅15:25-32)

    2026년 1월 31일 (토)

    설교제목: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본문: 눅15:25-32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15장은 예수님께서 잃은 양을 되찾았을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비유로 말씀하신 장입니다.

    그 중에 25절부터 32절은  탕자의 비유에서 일어난 큰아들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잃은 것을 되찾는것은 크게 기쁜일입니다.

    하지만 잃은 양을 되찾은 중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있는데요 바로 무엇일까요?

    탕자의 비유에선 돌아온 탕자로 크게 기뻐한 아버지는 큰 잔치를 열어 이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밭일을 하고 돌아온 큰아들은 이 모습에 불만을 품게 됩니다.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흥청망청 살다 재산을 모두 잃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인 반면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왔던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는 이유로 큰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이에 대해 아버지는 나는 너와 항상 함께하지 않았느냐, 나의 것이 이미 다 네 것이다 그러니 죽다 살아난 잃은 아들을 기뻐 반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에선 말하고 있습니다.

    ”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큰아들은 자기의 입장에선 타당한 말을 하였지만 아버지만 기뻐할 일이 아님을 비유에서 가르치고있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 주변의  잃은 양을 찾은 것은 한나님만 기뻐할 일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또 나의 마음의 상태가 큰아들과 같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겠습니다.

     

    1.복음의 핵심을 깨닫자

    예수님께선 우리 구원을 위해 오셨으며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2‬:‭17)

    하지만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가  의인이기에 부르신것이 아닌 죄인을 불러 회개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또한 무엇하나 드러낼 것이 없는 죄인임에도 이자리에 불러주신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죄인이 돌이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나도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2. 천국의 속성을 제대로 알자

    이 땅의 천국은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돌아온 잃은 양들을 더욱 더 맞이해야 합니다. 잃은 양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새 신도를 위해서도 환영과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위 본문 말씀에서 큰아들의 중심에는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품었던 것 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입니다.

    또 천국의 기업은 모두 우리를 위해서 이미 예비 해두셨기 때문에 더 큰 축복과 영광을 하나님께서 돌려주실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겠습니다.

     

    3.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자

    부모님이 자식을 생각하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하나님께선 세상에 모든 죄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들을 다시 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앓은 양이 돌아온다면 특히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분들을 한 마음 한 뜻을 모아 진심으로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유튜브에서 설교를 시청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 [성도간증] 천안교회 하늘빛 형제 간증

    [성도간증] 천안교회 하늘빛 형제 간증

    <첫 신앙 생활과 잃어버린 믿음>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는 수문교회 출신입니다.

    부모님께서 모두 참예수교회 신도였기 때문에 수문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수문교회는 바닷가에 있는 마을에 작은교회였지만 저는 어린시절에 그곳에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였고 중학교 3학년 무렵에 학생부 영은회에

    참석하여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고향 교회인 수문교회에서 부모님과 더불어 같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무렵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교회를 출석하기가 어려워졌고 그로 인해서 교회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광주로 진학 하면서 교회를 전혀 출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군대와 사회생활을 20여년 동안 하는 동안에 교회에서는 틈틈이 연락을 해주셨고 교회 출석을 권면 하셨지만 마음이 전혀 열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또한 자주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하도록 권면 하셨지만 교회보다는 세상살이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습니다.

     

    <신앙생활을 향한 마음의 움직임>

    저는 택배업을 시작하기 위해 2017년에 천안에 정착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천안에도 참예수교회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저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출석을 중단한지 어느덧 20여년이 흐른 어느 날 천안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는 박은진 목자님께서 연락을 주셨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역시 당시에는 교회출석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25년 초에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 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 아버지에게 새해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쭤보았습니다.

    그때 아버께서는 술과 담배 중에 담배는 끊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저는 아버지의 바람을 따라 담배를 끊었습니다. 얼마 후에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엄마에게도 똑같이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저의 건강과 교회출석을 바라셨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서 이제 교회출석을 시작해야겠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화요일도 토요일도 바쁘니 금요일 저녁 예배라도 출석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다짐도 잠시 사실은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신앙 생활 결심>

    그러던 25년 3월경 이었습니다.

    그동안 암투병을 하시던 셋째 이모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참석했는데 거기서 청주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는 이모부 김세한 목자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김세한 목자님께서 장례식 기간 중에 계속 교회출석을 권면하셨습니다.

    심지어 영상 통화로 천안교회 박은진 목자님과 연결을 해주셨고 그때 저는 교회출석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이 다시 생각이 났고 이제는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다! 그리고 삶에서의 큰 변화>

    그렇게 올해 3월 14일 금요일에 교회출석을 중단한지 근 20여년만에 천안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천안 교회였지만 교회 성도님들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제가 천안교회에 잘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맞이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출석을 시작할 때는 주로 금요일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금요일에 제가 교회에 일찍 오는 것을 아신 목자님이 어느 날 부터는 저를 따로
    불러서 “역에 교회 형제들을 차로 데려다 줄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 하셨습니다.

    사실은 교회를 자주 나오지 못하는 제 형편을 아시고 따로 신앙상담을 해주시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목자님은 제가 20년 동안 교회 출석을 하지 못했던 기간에 있었던 세상살이에 대해 하나 하나 묻기도 하시고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돌
    이키고 회개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권면으로 담배를 끊었다고 하자 그럼 하늘 아버지의 권면으로 말씀하신다고 하며 교회 출석을 시작했으니 이참에 술을 끊도록 권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력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술을 끊는다는 것은 담배보다는 저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감사하게도 저는 술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떠난 성령을 회복하다>

    어느날 교회 출석을 시작한 지 얼마 후에 예배가 끝나고 갑자기 목자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목양실로 가서 따로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년 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던 저에게 성령이 떠난 것을 아시고 따로 안수기도를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저는 25년 3월 28일 성령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악된 길에 살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기쁨으로 드리는 신앙생활>

    그 후 저는 교회를 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볍고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화요일 예배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고 목자님께서는 수요일 성경 공부도 참석하라고 권면을 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성경 공부를 참석한지 불과 몇 번 안되어서 성경 공부가 여름방학을 하게 되지만 때마침 매일저녁마다 기도회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매일 저녁 기도회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교회를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안될만큼 교회 오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제 믿음이 회복되도록 도와주신 부모님, 그리고 사랑으로 권면해주신 김세한 목자님, 그리고 천안 교회에 잘 적응하고 정착하도록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박은진 목자님과 모든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산앙의 목표>

    교회 출석을 시작하고부터는 몇가지 기도제목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지나간 과거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목자님이 설교하실 때마다 강조하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 앞에 바른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로마서를 배우면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항상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세고 강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앞에 나서서 하나님을 일을 하기가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과 성도님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어떤 힘든 일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안식일을 온전히 준수하고 싶습니다. 제가 믿음이 없을 때 시작한 택배업으로 인해 안식일을 온전히 준수하지 못해 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외에도 결혼도 믿음 안에서 하고 또 교회 근처로 이사도 오고 싶기도 합니다. 저의 모든 기도제목이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되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
    다.

    감사하게도 교회를 출석하는 날부터 하나님께서는 목자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 하나 깨닫게 하시고 또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제가 천국가는 그날까지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 믿음을 꼭 유지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저를 잊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으로 간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빛 형제 사진>

     

    <하늘빛 형제와 천안교회 형제들>

     

    <하늘빛 형제와 천안교회 대학사청부>

     

    유튜브에서 간증을 시청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 [교회행사] 2025년 송년예배 “친교의 시간“

    [교회행사] 2025년 송년예배 “친교의 시간“

     

       할렐루야~! 2025년의 마지막 안식일 12월 27일, 특별한 은혜가 가득했던 대전교회 소식 전합니다~! 오전 송년 예배로 한 해를 감사하게 마무리한 후, 오후에는 ‘송년 예배 2부 친교의 시간’을 통해 우리 모든 성도님이 주안에서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각 신도회별로 준비한 찬양 발표가 아름답게 울려 퍼졌고, 김언수 형제&김혜은 자매 가정의 진심 가득한 가족 찬양으로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특히, 신도회 찬양 발표 중간에는 대전교회의 연례행사였던 행운권 추첨 대신, 24년부터 시작된 ‘전 성도 사랑의 선물 교환’ 시간이 마련되어 큰 기쁨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님이 서로를 생각하며 정성껏 준비해 오신 선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도회별로 나와 교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어떤 선물을 받게 될지 설레는 마음, 선물을 받고 환하게 피어나는 웃음꽃, 웃음과 사랑이 넘쳐흐르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통해 서로에게 큰 기쁨과 감사를 전하는 아름다운 교제의 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랑과나눔을 기억하며, 2026년 새해에도 우리 대전교회가 주님의 크신 은혜 안에서 서로를 향한 깊은 사랑으로 빛나는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 [복음메시지] 하나님의 택하신 자처럼 살자 (골 3:12-17)

    [복음메시지] 하나님의 택하신 자처럼 살자 (골 3:12-17)

    [말씀제목] 하나님의 택하신 자처럼 살자

    [본문말씀] 골 3:12-17

    [설교자] 허명도 목자

    [설교일] 2025년 12월 20일 안식일 오전

     할렐루야! 오늘 이 시간 골로새서 3장 12절-17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택하신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 3:12-13)

    1. 하나님의 택하신 자로서의 정체성 확립 (골3:12)

    – 우리가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신앙인의 삶에 가장 중요한 시작점임.

    1) 택하심의 목적

    –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 (막 13:27)

    2) 택하심의 은혜

    – 우리는 거룩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며, 그 안에서 인도와 보호를 받음. (눅 18:7)

    3) 택하심의 목표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임. (엡 1:4)

    4) 택하심의 변화

    –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처럼’ 살아가야  함. 이는 곧 우리의 정체성에 합당 한 삶을 의미하기에 과거의 어 두움을 벗어나 빛의 자녀답게 행해야 함.(엡 5:8)

     

    2. 영적 성숙을 이루는 삶 (골 3:12-15)

    – 하나님이 택하신 자로서 우리는 영적인 성숙을 통해 그 정체성을 드러내야 함.  이는 다음과  같은 덕목들을 ‘옷 입는 것’으로 표현함.

    1) 긍휼

    –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동정심을 의미함.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 이 있으며 긍휼을 받을 것임. (마 5:7)

    2) 자비

    – 친절하고 베풀며 나누는 마음을 뜻함.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우리도 자비해야 함.(눅 6:36).

    3) 겸손

    – 자신을 낮추는 태도.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높이심.

    (벧전 5:5-6)

    4) 온유

    –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을 말하며, 온유한 자는 복이 있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 (마 5:5)

    5) 오래 참음

    –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태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려 야 함. (롬 8:25)

    6) 용서

    –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하는 마음.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함. (엡 4:32)

    7) 사랑

    –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는 것은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음. (골 3:14)

    8) 평강

    –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함. (골 3:15)

    9) 감사

    –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함. 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살전 5:18)

     

    3. 풍성한 은혜 가운데 교제하는 삶=모임,예배 (골3:16-17)

    –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공동체 안에서 말씀, 지혜, 찬양, 섬김, 그리고 감사를 통 해 은혜가 풍성한 교제를 이루어야 함.

    1) 말씀

    –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여야 함. (골 3:16)

    2) 지혜

    –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며 권면해야 함. (골 3:16)

    3) 찬양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 (골 3:16)

    4) 섬김

    –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해야 함. (골 3:17)

    5) 감사

    – 예수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살아야 함. (골 3:17)

     

    [유튜브 설교보기] https://www.youtube.com/live/kZLfKoOurPU?si=y1_stz9JJUHQ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