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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소개] 25년 대전교회 아동부 수령자 김O윤을 소개합니다.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12살  5학년 대전교회 아동부 김O윤입니다.

    Q2. 성령은 언제 어떻게 받았나요?

     올해 2월 3일, 전주에서 열린 겨울 아동부 영은회 마지막 날 기도 시간에 성령을 받았었어요.

    Q3.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 드렸으며, 성령 받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계속 하긴 했지만 그 동안에는 성령에 대한 간절함이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작년 아동부 영은회 때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서 조금 초조해지긴 했어요. 영은회 첫째날 기도할 때 만 해도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그냥 열심히 기도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기도를 했어요. “성령을 주시면 감사하지만, 주시지 않으면 어쩔수 없지”의 마음이었어요.

     그러던 중 “우리는 이렇게 살아요”라는 주제로 목자님께서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강조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지 않는다면, 구원 받을 수 없다라는 두려움’이 밀려왔어요. 그래서 이번에 꼭 성령을 받아야겠다는 간절함이 생겼어요.  그 날 자기전에 같은 조 친구들이랑 성령을 위한 기도를 따로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저희 조별 선생님께 말씀드려 선생님과 같이 성령을 위한 기도를 드렸어요. 기도를 하는데 발음이 살짝 뭉개지긴 했는데, ‘할렐루야’를 많이 해서라고 생각했어요. 그 후 같은 조 친구 2명이 저보다 먼저 성령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얼른 성령을 받아 다 같이 구원받고 싶은 마음이 말씀을 들었을 때 보다 더 커졌어요. 영은회 마지막날 첫번째 기도시간에 “저는 이번에 꼭 성령을 받아야 하고, 구원 받고 싶어요” 계속 구했어요. 그때 성령의 감동이 있다고 목자님께서 이야기해주셨고, 어제보다 발음이 더 흐트러졌으며 떨리기도 해서 이게 “성령의 감동이구나”를 알 수 있었어요.

     마지막 기도회를 마치고 목자님께서 아무런 말씀이 없으셔서 ‘성령을 받지 못했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서 마지막 조별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선생님께서 노크를 하시며, 초가 켜진 케이크를 들고 축하해주셔서 그 때 성령을 받은 줄 알게 되었어요. 영은회 마칠 때 시상식을 하는데, 성령 받은 사람들 이름이 화면에 나오면서 제 이름이 불러졌는데 그때 확실하게 성령을 받은게 실감이 났으며, 정말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Q4. 성령을 받고 달라진 점과 앞으로의 다짐은 무엇인가요?

     영은회 중 성령에 관한 말씀을 듣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제가 ‘빈 병’이고 이 ‘빈 병’ 안에 ‘쓰레기’가 가득 차 있는데, 이 ‘쓰레기’가 제가 그동안 지은 죄인데 이 ‘쓰레기(죄)’를 꼭 빼내기 위해서는 ‘성령’ 만이 이 ‘쓰레기(죄)’를 빼낼 수 있다 생각했어요. 성령을 받고 제가 지은 죄에 대해 회개 기도를 했으며,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위한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어 기도할 때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주변에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다 성령을 받아 같이 꼭 구원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전에 제일 친한 친구를 전도 하려 했는데 거절을 당해 그 이후 다시 전도하는데 망설여졌어요.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 제일 친한 친구가 구원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두렵고 속상해서 기회가 되면 용기를 내어 다시 친구를 전도 하고 싶어요.

  • [복음메세지] 문안과 축복  (엡 6:21-24)

    [복음메세지] 문안과 축복 (엡 6:21-24)

     [제    목] 문안과 축복 (엡 6:21-24)

     [설교자] 허명도 목자   

     [설교일] 2025년 6월 7일 안식일 오전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에베소서 6장 21절-24절 말씀인 “문안과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이 시간에는 에베소서 마지막 부분인 6장 21절부터 24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문안’과 ‘축복’이라는 두 가지 큰 주제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1. 문안: 사랑의 전령사 두기고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엡 6:21-22]

      바울사도 서신에는 보통 많은 사람들의 문안 인사가 나오는데, 에베소서 마지막에는 유독 ‘두기고’라는 한 사람만 언급이 됩니다. 두기고는 아시아 사람이며 바울사도가 마지막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 동행했습니다.골로새서, 에베소서, 디모데 후서를 전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행 20:4]

     1) 바울사도의 모든 사정을 다 아는 두기고

      – 두기고는 바울사도와 동행하면서 바울사도의 모든 사정을 알았기에 성도들에게 바울사도와 동행하면서 알게 된 사역의 내용과 상황을 전달 할 수 있었습니다. (골 4:7-8)

    2) 사랑을 받은 형제 두기고

      – 바울사도에게 사랑 받는 믿음직한 동역자였으며, 두기고의 진실된 인격은 교회 안팎으로 인정받았습니다.(엡 6:21, 골 4:7)

    3) 주 안에서 진실한 두기고

     – 두기고는 주 안에서 신실하고 변함없이 헌신하며 겸손한 일꾼으로 섬겼습니다. 두기고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서 디모데를 부르기 위해 에베소로 보내졌으며, 디도에게도 보냈습니다. (딤후 4:12, 딛 3:12)

     4) 사랑의 위로자 두기고

     – 두기고는 감옥에 있는 바울사도를 대신하여 그의 사정을 교회에 알리고 성도들에게 마음의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엡 6:22, 골 4:8)

      교회에는 두기고 같은 동역자가 꼭 필요합니다. 두기고 같이 모든 사정을 알고, 교회에서 사랑과 섬김으로 성도들을 위로하고,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바램과 축복: 에베소성도들을 위한 바울 사도의 3가지 축복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찌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 [엡 6:23-24]

    1) 평안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 평안은 그리스도인들 간의 사랑을 통해 실현됩니다.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성령 안에서 하나 될 때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하나가 될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평안이기에 그 평안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기도해야합니다. (엡 4:2-3)

    2) 믿음을 겸한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 사랑은 살아있는 믿음을 전제로 하며, 주 예수 안에서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이 중요합니다. (엡 1:15, 4:5)

    3) 주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전하기 위해 ‘썩지 않음, 불멸’을 뜻하는 헬라어 ἀϕθαρσία  ‘아프달시아’를 언급했습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으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님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이 있을 때 풍성한 은혜가 넘칠 수 있습니다. (요 21:15-16)

     바울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 되어 평안을 누리고, 믿음과 사랑으로 굳건히 서서,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주의 풍성한 은혜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축복했습니다. 우리 믿음이 주님 앞에서 진실하고 천국과 영생의 소망이 마음속에 가득 차게 되어 믿음의 확신이 생길 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은혜의 복음 전파의 일을 마치기 위해선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는 고백이 나오게 될 때 진정으로 사랑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가운데 주의 풍성한 은혜가 넘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될 수 있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바랍니다

    ‘문안과 축복 유튜브로 보기’

  • [신앙의 향기]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교회교육 선생님들

    [신앙의 향기]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교회교육 선생님들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교회교육에서 열심으로 애써주시는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내기 대학생인 예비 교사를 포함한 열 분의 선생님들과 교회교육 시간에 방송을 담당해 주시는 김성민형제님까지

    모두 그간의 노고와 앞으로의 사역을 위해 감사하며 축하했습니다.

    아이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자신들의 시간을 기꺼이 내어 쓰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은 우리 선생님들 정말 멋있죠?  

    참예수교회의 아이들은 우리 신앙의 미래이며 선생님들은 그 미래들의 안내자입니다. 

    말씀 속에서 아이들을 잘 인도할 수 있도록 우리 성도님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성도 간증] 순종의 예스맨_배태준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단기신학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단기신학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단기신학은 총 3년차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이번에 1년차 과정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제가 1년차를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려보니 5년 전 202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때는 단기 신학에서 제일 막내였는데, 어느덧 단기신학에서 나이가 많은 OB쪽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단기신학을 통해서 받는 은혜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것 같습니다.

     

    단기신학에서 받은 은혜와 기쁨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교제의 기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단기신학은 약 2주간의 시간 동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2주 동안 함께 단기신학을 하는 단기신학생님들 모두의 얼굴을 계속해서 보면서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서 2주 동안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기쁨과 위로와 은혜가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단기신학생님들께서 하나님 말씀 배우기에 열심을 내고, 온몸과 마음으로 찬양드리고, 힘을 내어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제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단기신학에 모인 신학생님들의 모습에서 제자도를 정말 충실히 걷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과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제 스스로가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면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단기신학에 가는 목적은 결국에 무엇이지요? 물론 다른 신학생님들과 교제하는 시간도 좋고 빼놓을 수 없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말씀의 은혜와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로 간증하고자 하는 것은 말씀을 통한 기쁨과 은혜입니다. 1년 차 때 배우는 과목들은, 3년차도 물론 정규와 비교한다고 하면 개론서의 개론의 개론도 안되겠지만, 특히나 1년차는 더욱 개론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핑계를 대자면 5년 전에 들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평소에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묵상할 때도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제가 하나님 말씀에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는데 제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말 무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학생부 영은회 교사를 준비하다보니 자연스레 족장시대 인물들에 대한 말씀이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족장 시대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요.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모두 미숙한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신앙의 길을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셨고, 히브리서를 살펴보면 미숙한 모습이 아니라 이런 성숙한 모습을 기억하여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제 부족함과 미성숙함에 자꾸만 눈길이 가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많은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도록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개성 넘치는 족장시대 인물들의 신앙의 길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찾아가는 행복의 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너무나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신약개론, 구약개론, 사복음서, 민수기, 여호수아, 레위기, 창세기 등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단기신학 중에 목자님께서 “단기 신학생들이 올해는 예스맨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제가 단기신학을 마치고 본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동교회에 가니까 어머니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태준아, 오늘 기도회다.” 그래서 저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냥 오늘 어떤 예배를 드리는지 말씀해주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그래서 오늘 네가 기도회를 인도해야 한다.” 제가 무엇이라 답했을까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단기신학 때 배웠던 말씀들을 떠올리면서 기도하고, 비록 재탕이지만 단기신학 때 했던 기도회 인도 내용을 가지고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회가 끝나자 어머니가 또 말씀하시더군요. “태준아, 내일 찬양 인도할 사람이 없다. 오전과 오후 둘 다 준비해 놓아라” 제가 또 무엇이라 답했을까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순종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단기신학을 통해서 정말 많은 기쁨과 은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부족함 많은 이런 저를 사랑해주시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돌리며 이상으로 간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작성 : 배태준 형제

  • [교회 행사] 2025 봄 영은회를 마치며

    [교회 행사] 2025 봄 영은회를 마치며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눅 6:19)”

    이번 청주교회에서는 5월 22일(목)부터 24일(토)까지 봄 영은전도대회가 열렸습니다. 강사님으로는 현재 전주교회에 목회를 맡고 계신 유바나바 목자님께서 ‘우리 구주! 예수님 만나기를 힘쓰라!’라는 주제로 말씀을 증거해 주셨습니다.

     

    예수님 만나 평안을 찾은 사람(마5:25-34), 예수님 만나 만족을 얻은 사람(요4:5-18), 예수님 만나 두려움을 극복한 사람(막4:35-41), 예수님 만나 칭찬받은 사람(마8:5-13)이란 제목의 말씀을 들었고 깨달음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은회 마지막 날은 성찬례와 세족례가 있었습니다. 지난 5월 11일에 세례를 받으신 장한옥 자매님의 세족례가 진행되었는데 모든 성도님들의 축복 속에서 한 영혼이 예수님과 상관을 맺는 은혜를 함께 누렸습니다. 또 성찬례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예하여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후 진행된 오후 예배와 저녁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지막 기도를 하던 중 한 형제님이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형제님을 다 함께 축하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며 주님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

    또한, 이번 영은회에도 하나님께서는 귀한 영혼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 속에 심어진 하나님의 씨앗이 자라 언젠가 그 발걸음이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올 수 있길 소망합니다. 영은회는 마무리가 되었지만 주신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한다면 우리 속에 은혜와 감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영은회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소개] “아빠도 성령 받았다!!!”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아빠도 성령 받았다!!!”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청주 참예수교회 장치성 형제님은 22년 5월 세례를 받은 지 3년만인 이번 봄 영은회 마지막 날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생생함을 담은 장치성 형제님의 간증을 성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저의 가정은 아내(김연숙자매)와 큰 딸(장아영), 둘째 딸(장아윤), 저 순으로 세례를 받고 참예수교회에서 함께 기쁨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말씀을 배울수록 가족이 한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첫째 딸은 올해 아동부 영은회때 먼저 성령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너무 감사했으며 열심히 간구했을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저에게 아주 살짝 자극이 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제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저에게도 성령을 주실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더욱더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드디어 이번 봄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단 몇 분이라도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아침마다 기도를 하면서 가끔 몸이 떨리고 혀가 꼬이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이건 아닐꺼야~~아니야~~기도를 장난식으로하면 안되지~!! ” 부정을 하면서, 더욱더 분명하고 천천히~ “할! 렐! 루! 야!”를 외치고 기도를 멈췄습니다. 저는 제가 아직 성령을 받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그냥 저의 생각으로 부정하고 거부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저의 기도 소리를 아내인 연숙자매가 계속 듣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면서 기도 소리가 이상했는지, 이번 영은회 때 목자님께 안수 기도를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오후 예배 후 안수를 받고, 김세한 목자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이 있으니 조금 더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은회 기간내내 몸살로 몸이 안 좋았고, 마지막 날은 앉아있는것 조차 힘들 정도로 온몸이 쑤시고, 열도 나서 빨리 저녁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녁 예배를 마쳤을 때, 원래는 계획에 없었던 것 같은데 안수 기도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를 위해 기도시간을 마련해 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오후에 목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조금 더 노력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안수를 받으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아픈 몸이었지만, 무릎을 꿇고 기도 하는데 평안함이 느껴졌습니다. 평안함을 느끼면서 평소에는 몇분만 기도를 해도 다리가 많이 아팠는데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제 입에서는 저의 의지와 상관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예전 집에서 기도할 때처럼 기도를 멈출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맡기면서 기도를 마쳤습니다. 눈가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고 자리로 돌아와 앉자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선포해주셨습니다. 기쁜 감정도 있었으나, 좀 얼떨떨하고 정말 내가 성령을 받은 건지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숙자매한테 얘기를 했더니 목자님 두 분이 맞다고 하면 틀림없는 거니깐 의심하지 말고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모든 성도님들이 자기 일들처럼 기뻐해 주시고 환호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의심하기 보다는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에 더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집에 와서 기도 시간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의 일상도 조금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저의 일정에 시간을 조금 내서 기도를 했다면, 이제는 기도 시간에 저의 일정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도 이런 축복과 은혜와 사랑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성령 받은 장치성 형제님을 축하하는 여호수아 신도회 형제님들)

     

    글작성 : 장치성 형제

  • [복음 메세지]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복음 메세지]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말씀 제목]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년4월 5일

    스티븐슨이란 작가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한 마을에 천사 같은 마음의 지킬 박사와 난폭한 성품의 하이드씨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그 마을에 무서운 범죄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살인, 방화, 절도, 유괴와 같은 강력 범죄 사건들이었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고 노리는 가운데 어느 날 다시 칼경이라는 유명한 인물이 지팡이에 맞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범행 도구인 지팡이를 단서로 용의자를 추적한 결과 그 지팡이 임자가 바로 지킬 박사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박사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지킬 박사의 옷을 입은 하이드씨가 자살해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결국 천사같은 지킬 박사와 악마 같은 하이드씨는 다른 인물이 아닌 동일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소설 이야기가 명작으로 세인들에게 찬사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한 인간의 내면에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잘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작가가 지적했듯이 모든 사람은 누구나 그 영혼 안에 지킬 박사같은 선한 모습도 그리고 하이드씨 같은 악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자건 불신자건 마찬가지이다. 다만 불신자들은 세상 사람들 앞에 자신의 악한 모습은 감추고 선한 모습만 부각시켜서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이 꽤 괜찮은 존재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오히려 자기 연약함을 성찰하고 부족함을 발견해서 하나님 앞에 점점 변화해 가는 존재라는 차이점이 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신앙인의 내적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롬 7:25-8:2)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으로 발견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찬 자기 모습이 발견되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뉘우치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영혼이 변화되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을 치장하며 꽤 괜찮은 사람으로 기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은 산상보훈 가운데 구제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나타내야 하는 참 경건의 길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산상보훈에서 5장은 율법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해석에 대한 내용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6장부터는 주제가 조금 달라진다. 5장까지의 주제는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세우는 것이었다면 6장부터는 그 바른 율법에 따른 경건 생활과 실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즉 5장은 이론에 관한 내용이고 6장부터 7장까지는 실천에 관한 내용이다. 그 실천의 내용 가운데 마태는 가장 먼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경건생활의 세 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구제, 기도, 금식이다. 오늘은 세 가지 중 첫 번째로 구제에 대한 교훈의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자.

    구제란 무엇인가? 넉넉한 자가 불우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위이다. 그런데 그 구제에 대해서 이렇게 행해야지 저렇게 행하면 안된다고 교훈하시고 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예수님 당시에 유대 사회는 율법에 대한 이해도 문제점이 있었지만 경건생활의 실천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반증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어떻게 바로 잡으시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가? 특별히 구제에 대해서 예수님이 제시하신 바른 실천의 태도는 이런 것이다.

    첫째,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아야 한다.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하략>』

    구제는 내가 땀 흘려 모은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땀 흘려 모으려면 시간을 소모해야 하고 시간을 소모하는만큼 내 생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구제란 내 생명을 타인에게 나눠주는 행위이다. 내 생명의 촛불을 태워 남에게 빛을 비춰주는 행위라는 뜻이다. 따라서 구제 자체는 매우 선한 일이요 고귀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고귀한 행동도 잘못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오늘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구제 행위를 지적하시면서 외식하는 자를 언급한다. 외식하는 자란 어떤 자인가? 여기서 ‘외식’ 또는 ‘위선’(hypocrite)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가면을 쓴 배우”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무대에 선 어떤 배우가 왕의 복장을 하고 거닐면서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 같은 상황을 바로 외식한다 또는 위선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오해하지 않아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사람을 칭찬하거나 칭찬 받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타인을 칭찬할 수 있고 내가 타인에게 칭찬 받을 수도 있다. 칭찬하고 칭찬 받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착한 사람 바나바가 등장하는데 그는 백성들에게 칭찬받았다. 또 사도행전 6장에 식탁 봉사 직분자는 백성들로부터 칭찬 듣는 자라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 조건대로 안립된 스데반 집사는 교회 성도들로부터 칭찬받는 자였다. 어떤 성도는 칭찬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거의 결벽증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분을 칭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사람을 칭찬한다”고 분노를 나타낼 정도이다. 그렇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성도가 칭찬하거나 칭찬 받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이 경계하신 것은 사람의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구제를 행하지 말라는 것 뿐이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야고보서 1장 27절의 말씀을 보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 경건이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즉,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구제 행위가 경건생활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제 행위가 예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마음에는 사람이 드러날 일이 없다. 구제의 대상은 사람이지만 구제의 정신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4장 하반부와 5장 전반부를 보면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같으나 동기는 상반된 두 부류의 신앙인이 등장한다. 하나는 착한 사람 바나바이고 다른 하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다. 두 부류는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는 행위까지는 똑같았다. 그러나 바나바는 가난한 성도들을 사랑하는 착한 뜻으로 행동한 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도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는 지도자적 위치를 얻으려는 목적에서 행동했다. 만약 이런 부부가 바나바처럼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 초대교회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세속 집단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순수한 정기도 사라지고 성령의 역사도 멈추고 교회의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위기 상황을 방관치 않으시고 그 거짓과 위선이 교회를 지배하지 않도록 심판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을 구제할 때 나는 무슨 동기로 그를 돕고자 하는가 하고 자신의 동기를 물을 필요가 있다. 또 내 안에 예배의 정신이 있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남을 돕는 구제를 실천할 때 항상 선한 동기를 점검하고 그런 선행의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저와 성도가 되길 바란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둘째, 자기의 공로에 대해 잊어야 한다.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후견인 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후견인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피후견인이 된다. 만약 후견인이 피후견인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돌봐주면 그대신 가난한 그 사람은 자기를 돌봐준 부자를 남들 앞에서 칭찬하고 명예를 높여주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풍습이 일반화된 사회 속에서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 교훈은 사람들에게 매우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give and take의 세상 이치 속에서는 매우 어리석게 들렸을 것이다.

    예수님이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미루어 보건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가 선행을 할 때 이를 보고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사람의 악한 본성 중 하나다. 그러니 타인에게 상처되는 말을 듣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너 자신이 상처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뜻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스스로 시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에는 순수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동기와 취지가 변질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또 처음에는 아무런 보상과 보답을 생각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내게 주어질 유익에 관심이 돌아가 구제가 구제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구제를 은밀히 할 수 있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 개인의 명의로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헌납해서 교회의 이름으로 구제케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4장의 바나바는 물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했다. 이것은 ‘교회에 헌납했다’는 뜻이다. 교회에 헌납해서 교회의 명의로 구제하는 것이 사도교회의 모습이었다. 교회의 이름으로 하면 자기 이름을 사라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신의 공로를 잊고 하나님을 높이는 지혜로운 처신이다. 그런데 교회를 통하지 않고 개인이 하면 시험에 들고 구제가 구제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부디 구제할 때 자신의 이름을 가리고 교회를 통해 구제를 실천해서 구제의 동기도 보호되고 하나님의 이름도 높여지는 지혜로운 저와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란다.

    (빌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셋째, 하나님이 주실 상급만 소망해야 한다.

    (마 6:2) 『<상략>–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사람은 누구나 추구하는 것을 얻게 되어 있다.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은 건강을, 돈을 추구하는 사람은 돈을,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명예를 얻는다. 구제의 목적이 사람의 칭찬과 영광에 있었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사람으로부터 받으려는 것을 받았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무엇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미 떡을 먹고 배부른 사람이 밥을 찾지 않듯이 사람의 칭찬과 명예에 배부르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 상급은 기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칭찬,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에 대해서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가? 사람은 때로 자신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어두울 때가 많다. 그래서 내 동기가 순수한지 아니면 저 깊은 곳에 다른 뜻이 깔려 있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자신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만약 선을 행할 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바른 마음으로 구제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가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만으로 충분하다면 나는 바른 마음으로 구제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 부디 사람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 알아주실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가장 큰 상이라는 믿음으로 구제를 실천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눅 14:14)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진실 ‘씬서러’(sincere)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이 영어 단어는 ‘시네 세라’(sine cer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 라틴어의 본래 뜻은 “밀칠하지 않은”이라는 의미이다. 영어로 직역하면 ‘sun tested’이다. 즉 “햇빛에 시험해 보다”라는 뜻이 라틴어 ‘시네 세라’ ‘밀칠 하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그 의미는 바로 고대 도자기 산업과 관계된다. 도자기(옹기)는 두꺼운 것보다 얇은 것으로 만들기 어렵고 까다로웠다. 도자기를 두껍게 만들면 불에 구워낼 때 금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얇게 만들면 불에 굽다가 금이 잘 가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얇은 도자기가 가볍기 때문에 두꺼운 도자기보다 더 비쌌다. 그런데 만약 도자기 제조 중에 흠이 발견되면 그것은 깨버리는 것이 정상인데 일부 부정직한 도공들은 약한 흠있는 곳에 색소와 밀초를 섞어 틈을 메꾼다. 그리고 다시 유약을 발라 시장에 불량품을 내다 팔았다. 그러나 이런 불량 도자기는 햇빛에 비추어 보면 금방 탄로가 난다. 햇볕에 시험한다는 뜻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정품 고급도자기에는 밑에 ‘sine cera’라는 글을 새겨 넣어서 품질을 보증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영어 단어 씬서러 ‘sincere’가 나온 것이다.

    우리는 구제할 때 어떤 정신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정신으로, 변하지 않는 순수한 동기로, 개인의 명의가 아니라 교회의 명의로 실천해야겠다. 이렇게 구제할 때 하나님은 그 구제를 거룩한 산 제사로 흠향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행을 천국 책에 기록하시고 영원히 기억해 주실 것이다. 부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의 그릇에 ‘시네 세라’ 씬서러 sincere 라고 새겨 넣으시는, 그런 축복된 주님의 자녀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

  • [교회 행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

    [교회 행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

    할렐루야~
    지난 일요일 청주교회 봄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좋은 날씨와 모든 상황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날짜 : 2025년 05월 11일(일)
    ▶ 장소 : 충남 공주시 정안면(무두리 펜션)
    ▶ 수세자 : 장한옥

     

    장한옥 자매님께서는 5년전쯤 집 인근 산책로를 오가며 운동하던 중, 송세연 자매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송세연자매님께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전도심방팀원으로서의 교육과 사역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누구에게라도 전할 수 있도록 항상 주위를 살펴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던 터에, 장한옥 자매님을 길에서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건강이 안 좋아 보였고 운동을 같이 하고 싶으면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 했더니, 장한옥 자매님께서 기꺼이 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전도 대상자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오랜 만남의 세월을 보내고, 이제야 하나님의 때가 되어 값진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번 세례식에 두 따님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사실 교회에 가는 줄 알고(세례식을 하는 줄 모르고) 따라와서 처음 모습은 당황스러워 보이기도 하였으나, 세례식이 끝나고 또래 여신도회와 게임도 하고 차도 한잔하며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또 한 번의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장한옥자매님께서는 안수를 받으며 펑펑 우셨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가난해 보였습니다. 이제 막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의 신앙과 평안을 위해(또한 다시 볼 날일 있을 두 따님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이경추 집사

  • [신앙의 향기] 예향찬양단

    [신앙의 향기] 예향찬양단 <넉넉히 이기느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2025년 5월 22일-24일에 실시한 금번 천안교회 봄 영은전도대회에서 예향찬양단이 부른 특송 ‘넉넉히 이기느니라’입니다. 찬양 가사처럼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 [성도 간증]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천안교회 최병덕 형제)

    [성도 간증]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천안교회 최병덕 형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천안교회 최병덕 형제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할렐루야!

    저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2009년 5월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은 특별한 체험이나 이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제 인생에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제 삶에 있어서 가장 특별하고 가장 귀한 일이다 라고 생각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를 나오기 이전부터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제가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나눌 간증은 제 삶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인도하셨는지와 성령 받는 것 그리고 이후에 저희 어머니와 가족의 전도됨을 간증하려고 합니다.

    < 이전의 모습 >

    16년 전인 2009년, 제가 성령 받기 이전의 나이는 딱 40세였습니다. 신앙생활 이전의 삶의 중심, 마음의 중심은 회사일이었습니다. 제가 기계설계 쪽의 일을 하였는데 업무가 항상 늦게 끝났습니다. 그 당시 일이 끝나는 시간이 대부분 10시 정도가 보통이였고, 나를 진단하면 약간의 일 중독 상태였습니다. 그 늦은 시간에 끝나고도 술을 좋아해 동료들과 함께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며 지내는 것이 낙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언제 집을 사고, 언제 결혼하고 이런 내일에 대한 막연한 걱정들을 하며 사는 생활이었는데, 어찌보면 세상의 눈으로 보면 지극히 평범한 고민과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었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세상의 많은 것에 욕심을 두고 어두움에 길을 잃고 헤매이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종교에 대한 저의 생각은 신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종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종교는 바보같은 것이고, 사람이 죽으면 끝이다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중에 기독교는 더 믿을 수 없고 교회 다니는 사람의 성품이 제가 느끼기에 특별히 더 나아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한다” 라는 것을 뉴스를 통해 또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제 주변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한심해 보였습니다. 나에게 교회 이야기는 허용할 수 없는 것이었고, 종교에 대해서는 나에게는 이야기도 하지마! 딱 잘라 말했습니다.

    참으로 오만한 생각과 세상의 많은 것에 욕심을 두고 살아가는 어리석고도 어두움 속에 헤매이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가 길인지 모르고 어두움 속에서 속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어둠 속에 헤매는 저를 빛 가운데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 어린시절 >

    제가 태어난 곳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입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저수지 솔밭 언덕에 위치했고, 내부는 나무 바닥으로 되어 있었고, 안동교회에 있는 풍금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부여 참예수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저희 가족 부모님, 형, 누나들과 외가댁 식구들이 제가 학교 입학할 때까지 다녔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 양손을 잡고 고스롬타면서 그리고 하얀 눈길을 걸으며 다녔던 기억이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찬송이 ‘내게 강같은 평화’, ‘금과 은 나없어도’… 가 기억이 납니다.

    < 믿음을 잃어버림 >

    그러나 부여 참예수교회가 안타깝게도 지금은 없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입학할 즈음 없어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저와 우리 가정도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부여 시골에서 정미소를 하였는데 교회가 없어지고 나서 몇 년 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망하였습니다. 빚쟁이들이 계속 찾아왔고 결국 정미소를 팔고 1979년 10살 때 큰아버지가 계시는 서울로 이사와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부모님은 정말 힘든 생활을 하였습니다. 79년에 서울에 올라와서 오랜기간을 시장에서 닭장사를 2007년까지 28년간 계속 하셨습니다. 시장에서 닭장사 새벽에 시작하여 저녁이 아주 늦어야 끝이 났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또한 뜨문뜨문 할머니와 사촌들을 따라서 대방교회에 다니다가 안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차가 있지만 가족 모두 신앙을 잃게 되었고, 막내누나만 더 다니다 결국 모두 떠나게 되었습니다.

    < 청년생활 >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이 없으니 잊는 것은 너무 쉬웠습니다. 오히려 커가면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더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으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싫어하게 될 수많은 이유가 생겼는데 그중에 살아가면서 만난 기독교인 대한 경험입니다. 대학교 때에 첫 아르바이트를 강남 버스터미널 앞 기독교 백화점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의 사장님이 교회를 다니시며 장사를 하시는데 그곳에 직원들에게 심하게 화를 잘 내고 성격이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또 첫 직장 사장님이 기독교인이였는데 정말 거짓말을 잘하였습니다. 또 기독교를 싫어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제가 가지고 있는 얇은 성경 지식도 그 하나였습니다. 욥의 시험과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시험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음으로 하나님을 정말 많이 비난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녀들에게 행하고 시험할 수 있는가 교회 다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하나님을 많이 비난하였습니다. 신문 방송에서 교회의 목사들이 세상 사람보다 더한 잘못을 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기에 교회를 더 많이 비난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하고는 담을 쌓고 정말 완전히 잊었고 제가 교회 다녔던 기억조차도 잊었습니다.

    < 사회생활 >

    대학졸업 후 군대를 갔다 제대한 후 사회생활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처럼 직장생활을 하였고, 주 6일 동안 일하고 저녁은 술 마시고, 간혹 시간 나면 주말에 낚시도 가고, 또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집을 살까? 서울과 안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9년 직장 때문에 천안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천안에 와서 더 일에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천안에 큰누나가 살았는데 같은 곳에 살았음에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찾아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일속에 또 세상 욕심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지냈지만 지금에서 그때의 저를 생각하면 타인에게 사랑을 혹은 관심을 주지도 않았고, 또 받는 것도 싫어하는 아주 메마르고 건조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정에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35:1) 광야과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라!

    < 은혜의 시작 >

    어머니(이순복 모매님)가 오랫동안 닭장사를 하셨는데 장사가 점점 더 계속 안 돼서 너무 힘들어하셨습니다. 생닭과 치킨을 팔았는데 한집 걸러 한집이 치킨집이 생기고 또 슈퍼나 마트에서 생닭을 파니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지도 어려운 상황이 몇 년 간 계속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집 채소가게는 정말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채소가게가 너무 잘되니 채소가게에서 확장을 하려고 권리금을 주고 팔으라고 하여 그렇지 않아도 유지가 안돼 그만두려해도 시장에 보증금이 거의 없이 월세를 내고 있어 이것 저것 정산할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권리금을 준다니 바로 넘기고 26년간 하시던 장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이것 저것 정산하고 반지하라도 방도 얻고 생활을 터전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원 청소 일을 시작하셨는데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이유는 닭 장사는 하루종일 자정까지 매여 있어야 하는데 병원일은 새벽에 나가지만 일찍 끝나 본인의 시간이 최소한이라도 있고 또 장사할 때는 본전도 안되었는데 병원 일은 월급도 최저임금이지만 월급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병원에 가니 매 아픈 사람 뿐인데 본인은 건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격주로 토요일에 쉬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장사를 그만두고 나서 수십 년간 못 나갔던 하나님께 나가야겠다 생각을 하였는데 그때 마침 교회에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때마침 대방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자님(오희도 목자님)이 교적부를 보고 잃은 양들에게 연락을 한 것입니다. 교회에 나가려는 딱 그때 연락이 와서 다음주부터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면서도 믿음생활을 못한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어머님이 약 30년만인 2007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지금 생각하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그때는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는 뭐하시러 그런 곳에 다니실까? 시간 아깝게—라고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일이 은혜와 축복의 시작이었습니다.

    < 하나님의 인도자와 만남 >

    2008년 봄에 이종사촌 결혼식에 참석하여 친척을 만났는데 이종동생과 그 신랑을 만나 인사 했습니다. <김하늘(김참운) 집사, 김지용>. 천안에 10년 가까이 살았는데 이종동생이 천안에 사는 것을 몰랐습니다. 천안에서 식사 한번 하기로 인사하고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도로과 공무원이니 좋은 회사 땅도 알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얼마 뒤 사촌 동생인 참운 자매로부터 밥 한번 먹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장소가 이학돌솥밥이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부 내외만 있을 줄 알았는데 여러 사람이 앉아 있어 엄청 당황했습니다. (홍영석 목자님, 김한길 목자님 내외… 등)

    그리고 조금 뒤 아 예수쟁이들이구나! 을 알고 나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나왔습니다. 나오면서 다음에는 절대 만나지 말아야지 하면서 나왔습니다. 연락을 끊고 지내던 중 영은회였던것 같은데 참운 자매 어머님이(이모님) 천안에 왔는데 와봐라 하셔서 할 수 없이

    나가 교회 다니라는 권면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래서 나갈 마음이 있었냐? 절대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마음도 없었지만 당시 전 굉장히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서두에 밝힌 것과 같이 하루를 일로 보냈습니다. 갈비탕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해 8월에 청주 천안 연합 래프팅을 가게 되었는데 왜 거기를 간다고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됩니다. 저는 바쁘고 내가 낄자리가 아닌데 래프팅을 함께 갔다 오고 나서 저의 마음은 “이 사람들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나쁜 사람들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교회에 다닐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바쁜 사람이고 교회에 다니려면 제가 그것에 매인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래프팅 후 참운 자매의 강권도 있고, 래프팅 간 것도 있고 해서 몇 번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예배의 참석하여 김한길 목자님 설교가 말씀이 때마침 저에게 맞는 말씀이었는지. 제 마음을 열어 주신 것인지.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 내용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신앙생활, 교회, 신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아주 세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생각해도 올무이고 저처럼 바쁜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였습니다.

    < 신앙을 할 수 있는 결정적 변화 >

    2008년 9월 리먼 사태가 미국에서 발생하였습니다. 부동산 모기지에 투자한 은행들이 파산한 사건인데 그 사건이 있은 후 두달 만에 거짓말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한국의 기업들이 투자를 중단하여 저희 회사에 모든 일이 끊겼습니다. 직원들은 휴직을 하고 저도 오전에 잠깐 나갔다가 오는 정도였습니다. 정말 바쁜 사람이었었는데 몇 개월을 직원들과 함께 놀게 되었습니다. 그때를 맞추어 참운 자매가 교회에 출석하라고 전화가 왔고, 예전에는 교회오라면 나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일 때문에 못간다고 했는데 그 일후로는 핑계 거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예배와 교회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11월에 대둔산도 다녀오고 저녁예배 안식일도 나와서 말씀도 듣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과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친밀감이 생겼고 그즈음 저와 같은 구도자인 서민선 형제님도 같이 활동하고 예배 참석도 하였습니다. 다음해 목자님이 바뀌어서 윤득도 목자님이 부임하셨는데 저는 그때까지도 제가 계속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새로 부임하신 윤득도 목자님을 약간 경계하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계속 다닌다는 것은 내가 어떤 것에 매인다고 족쇄가 된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윤득도 목자님이 부임하신 후 얼마 뒤에 서민선 형제님이 성령을 받으셨는데 저는 그때까지 성령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고 성령에 대한 지식도 없었습니다. 다만 성령 기도는 어렸을때부터 들었던 것이기에 이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어렸을때에는 “나는 왜 저런 기도가 안되지?” 하는 정도였습니다.

    < 성령을 받음 >

    그해 2009년 5월 30일 영은회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2~3주 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마음이 울렁거리며 눈물이 흘렀고, 기도하면 또 그렇게 눈물이 났습니다. 청주 영은회가 천안보다 1주일 전에 있었는데 거기서도 엄청 울었습니다. 이상하게 눈물 콧물 흘리면서 울게 되니 창피해서 기도할 때 휴지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청주 영은회에 가서도 많이 울었고, 천안 영은회가 시작되어서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안식일날에 어머님이 오셨는데

    청주 이모님과 지금은 돌아가신 부산 감사 집사님이 오셔서 서로 반가워하며 기도하시는데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얼마나 슬프던지 …. 본인의 인생을 돌아보신 것인지 나를 위한 기도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슬펐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때가 처음 어머니와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는데 “내가 어떻게 어머니랑 예배를 드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안식일날 제천으로 돌아가시고 안식일 마지막날 마음이 평온한데 너무 속이 울렁울렁하였습니다. 그래서 점심도 금식하게 되고 오후 예배 후 기도시간에 엄청 울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큰 기쁨과 눈물과 회개 등등 너무 감사하고 희한한 느낌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저를 바라보면 악하게 해꼬지는 안하지만 굉장히 메마른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을 받지도 주지도 않는 메마른 사람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자녀삼아 주시려 성령을 통해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비를 내리어 촉촉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고 나서 굴곡은 있었지만 믿음생활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 어머니의 이야기 >

    그리고 저의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머니는 2007년 대방교회에 다니시다가 아버지가 제천 조그만 여관을 사면서 제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여관은 허름했기에 주로 일하시는분들이 한달에 얼마주고 사용하는 달방으로 사용하는 숙소였습니다. 그곳에서 기차타고 버스타고 해서 청주로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서 오전 예배드리고 오후에 오시곤 하였습니다. 아버지도 제가 교회 나가고 나서 1년 정도 후부터 교회에 나가셨지만 잘 다니시지는 못하고 간간히 다니셨습니다. 10년 정도 그렇게 생활하셨는데 이제 힘이 많이 부치시고 해서 그곳을 팔려고 어머니와 생각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출이 크지 않아 여관을 내어놓아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장사도 점점 안되었습니다. 2년 정도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가 못 걸으신다는 연락을 받고 급한 마음에 병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못 걸으시니 큰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청소 빨래 아버지 돌보는 것 까지 해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한두달 후 아버지는 걸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이제 정말 부모님이 여관일을 그만두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나서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요즘 장사가 잘된다. 방이 다 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몇 달 지나지 않아 매매가 되어 천안으로 이사 오게 되어 천안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안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게 하셨고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런 와중에 천안에 살고 있는 큰누나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저희 형제는 2남 3녀 중 제가 막내이고, 천안에는 제 큰누나가 살고 있었습니다. 큰누나는 많은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렸을때 부터 뼈에서 고름이 나오는 골수염을 앓아 다리를 절단하기 전까지 갔었고, 이후에도 나았던 다리가 또 재발 그리고 암으로 병원 신세를 많이 지고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마다 참운 자매와 제가 병문안 가서 위로하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면하였지만 그때마다 하는 말이 내 꼴을 봐라 내가 지금 교회 갈 때니? 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안와사가 와서 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또 병문안을 가서 권면했습니다. “이제 교회 나와” 라고 했는데 또 말합니다. “야, 내꼴 봐라.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러면 제천여관 팔고 엄마가 내려오시면 그때나 다닐께!” 라고 했습니다. 몇 년 동안 내놓아 팔리지 않았기에 천안에 오신다는 생각은 못한 것이지요. 그런데 언제 팔렸을까요? 그 말을 한 다음날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부모님이 제천을 정리하시고 천안으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안에 오신 어머니를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천안에 와서 잠깐 쉬다가 하신 일은 노인 일자리를 다니시게 되었는데요 일하신 후 얼마 뒤 거기서 함께 일하시는 어르신 3명을 전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조에 같이 일하는 2분이 있었는데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분은 장로교, 한 분은 침례교에 다녔고, 모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어서 너무 좋다고 생각하였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교회 이야기를 하였고, 같이 일하시는 분에게 성령을 받아야 하고 성령 받은 증거가 방언이라 이야기 하자 그렇게 말하니 한분이 “그럼 날날라 하는 교회여유?” 하며 질문하고 “그렇다” 하니 가보고 싶다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그 옆에 한분은 가만히 있길래 “자네는 안가남” 하니 “저는 다녀유” 하니 어머님이 그럼 “구경도 못가남?” 하니 “구경이야 가쥬” 하면서 두 분이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 그 옆에 조에 있던 한 분도 호박죽 먹으러 오라 하는 말로 시작하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뒤에는 그 남편분까지 전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누나의 전도를 위해 기도를 하며 애를 썼습니다. 편지도 유언처럼 써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22년도에 교회 송년식사가 있었고 누나와 매형을 부르게 되었고 그 계기를 통해 매형과 큰누나 그리고 큰누나의 손자, 손녀들가 다음해 1월부터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고, 매형과 손자, 손녀들도 성령을 받고 믿음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전에 있는 이모님까지 전도되고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너무나 크고 놀랍습니다. 그리고 크신 은혜를 또다시 우리에게 주심을 알기에 어머니는 나머지 자녀들의 구원과 믿음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정에 주신 은혜와 주실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감사주!

    <최병덕 형제 가족사진>

    (뒷줄 우측에서 2번째가 최병덕 형제, 앞줄 가운데 계신 분이 이순복 모매(어머니), 그 오른쪽이 최귀미 자매(누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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