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충청

  •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삶을 살아내는 거룩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_박은정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단기신학을 참석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해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저는 단기신학을 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이번 단기신학때 우리 같이 가볼까 라고 하는 겁니다. 갑자기? 이 사람이 왜그러지? 어디 안 좋은가? 평소에 성경 좀 읽자, 새벽 기도 좀 가자고 해도 졸리다, 힘들다고 하던 사람이 도대체 왜?? 알고 보니 한 형제가 이번 기회에 가보는 건 어떠냐고 권유를 했는데 생각해보니 이번이 아니면 안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당면한 우리의 현실을 봤을 땐 여러 가지가 걱정이 되었지만 난생 처음 먼저 단기신학을 해보자고 말한 남편이 너무 신기하고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결정을 했습니다.

    대전교회 도착했을 때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 뜻밖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여년 전에 청주 교회를 출석하다가 잃은 양이 되었으나 최근에 다시 돌아온 자매였습니다. 오랜 만에 다시 보게 된 자매와 단기신학 하는 동안 같은 방을 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사정들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매가 다시 올 수 있었던 건 하나님의 큰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많은 교회 자매들 덕분이라고 했습니다.

    읽은 양과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은 맘이 들기도 했는데 이 자매와 얘기를 나누며 ‘아! 그래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전해야 하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것은 지금 루디아에서 잃은 양 문고리 심방을 하고 있는데 그 문고리 심방대상자와 이 자매가 친구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역사 하실지 모르겠지만 기억하시고 함께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단기신학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단기신학의 일정은 새벽6시 찬양과 말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9시까지 성경 강의와 찬양과 기도가 있고 소등 시간은 11시반 입니다. 이 시간들이 몸은 너무 피곤한데 신기하게도 마음은 너무나 평온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루 종일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세상에 그 어떤 고민 걱정 없이 온전히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이 시간들이 감사하고 기쁨이 넘쳤습니다. 천국이 이와 같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참 좋았습니다.

    “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119편 103절 말씀처럼 정말 달고 달아서 그 속에 빠져 있다 보면 시간 가는 것도 잊을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알고 있던 내용에도 퍼즐의 조각 조각이 맞춰지듯이 성경의 내용들이 정리가 되는 기분도 느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는 관점도 달라짐을 느꼈습니다. 많은 내용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약개론을 통해서 배운 부분 중 첫째 선악과에 대한 내용입니다. 왜 하나님은 선악과를 만드셨을까?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확실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정녕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 이 명령이 에덴동산을 유지하는 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통해 우리는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던 겁니다. 이 선악과 관련된 말씀을 들으면서 내게 주어진 시간도 건강도 물질도 모두 내 것이 아닌데 마치 주인인 것처럼 살아온 제 삶을 돌아보며 반성을 했습니다.

    두 번째 족장 시대에서는 4명의 인물을 설명해주셨는데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 네 사람의 삶을 통해 믿음과 순종과 용서와 인내 그리고 승리를 배웠습니다. 이 네 사람의 삶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내 삶이 확실하지 않아 불안하고 온전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이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배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요셉을 배울때 하나님과 함께 하면 인내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용서할 줄 안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한 요셉은 항상 “하나님 앞에 사는 삶”을 살았기에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았다고 했는데 “ 하나님 앞에 사는 삶” 이 말을 나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사무엘과 엘리 제사장을 배울 때는 신앙 계승이 안되는 부분에서 안타깝기도 하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의 신앙이 정말 바로 섰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남편과 함께 부모로써 자녀들을 위해 새벽 기도도 열심히 참석해야겠다 다짐을 했는데 잘 지질 수 있을까요? 강의 시간에 어느 목자님이 한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우리 그리스도 인은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했습니다. 살아가는 건 졸리면 자고 게임을 하고 싶으면 하고 이렇게 내 맘대로 본능에 따라 사는 것이고 살아내야 하는 건 내 뜻과 내 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본능과 싸워 이겨내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저도 앞으론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아침마다 싸울 겁니다. 누구와 싸울까요? 더 자고 싶어하는 제 자신과 싸울 생각입니다. 때론 질 때도 있겠지만 포기 하지 않으면 거룩한 습관이 길러질 거라 생각합니다.

     

    단기신학 하는 동안 참 신기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그 자매와 한방을 쓰면서 삶을 나눌 때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날 강의 시간이 되면 그 고민하던 부분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우리가 고민하던 부분은 안 믿는 사람들이 더 잘살고 믿는 사람들은 고난을 받고 대략 이런 부분이었는데요. 이 세상이 다가 아니니까 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뭔가 시원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강의 시간에 죄 없으시고  전능하신 예수님도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기에 예수님의 자녀 된 우리가 받는 고난은 당연한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 그 모든 게 납득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통해 죄에서 승리하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지금 받는 그 고난을 통해 더욱 신앙 성장을 할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승리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승리와 진정한 성공은 이 땅에서 정해지지 않는 거라고 죽음 앞에 섰을 때 나타나는 거라고 마지막에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 진정한 성공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울컥하더라구요. 저에게 고난이 왔을 때 수없이 묻곤 했었거든요. 왜 고난이 나에게 올까? 근데 고난이 오는 게 당연한 거고 때론 감사해야하는거란걸 깨닫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수인 고난이 왔을 때 걱정, 근심, 염려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를 한다면 그 고난에서도 걱정 근심이 아니라 기쁨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신앙생활이 즐겁고 기쁠 수가 있을까? 그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하며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어려움은 반드시 많이 있을것이라고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서 일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2절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사실 올해 새로운 직분을 맡게 되어 걱정이 많던 저에게 힘이 된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제자는 자신의 뜻과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고 고난이 올 때 깨어 기도하는 것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것 , 그리스도인임을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그러나 아직” 이 말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구원을 얻었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않은 것 그래서 끝까지 구원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이번 단기신학은 정말 저에게  은혜로운 시간들이었습니다. 말씀들로 위로해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향 제시를 해주신 것 같아서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단기신학을 하는 동안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도움을 주신 많은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며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복음 메세지]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복음 메세지]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말씀 제목]  듣고 말하는 것은 인격입니다 (삼상 25:2-13, 23-35)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2월 3일

    2024년 대만 방문 기간 중 낙야 교회에 방문했을 때의 일. 지난 2017년에 수원교회 성도님들과 방문했었는데 그 때도 건축을 위해서 대지를 마련하고 모금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건물이 세워지지는 않았고 모금 중에 있었다. 속으로 ‘7백 평 넘는 땅에 건축이란 시골교회의 능력으로 버거운 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담임 목자인 백목자가 연합 교류 집회를 가질 때 교회 소개 시간 중 조감도 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다 “낙야교회는 교회를 건축하려고 합니다. 방문단 여러분도 헌금하세요. 한국 돈도 받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간접적으로 조심스럽게 헌금을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헌금 요청에 폭소를 터뜨렸다. 이윽고 청주교회를 소개하는 차례가 되었다.  “청주교회는 회당 수용이 93석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108명이 출석했습니다. 회당이 비좁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건축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금해야 합니다. 대만 돈도 받습니다.” 우리는 다시 폭소를 터뜨렸다. 전혀 모르는 남이 헌금하라는 말을 하면 매우 무례하고 상식적이지 않다고 여겼을 텐데 주 안에서 한 몸, 한 형제 자매라는 의식 때문에 오히려 박장대소가 나왔다. 우리가 주 안에서 한 성령을 받은 가족이라는 의식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인간관계에서 말하고 듣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말 잘해서 생명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잘못해서 생명이 위경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들어야 할 말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고 듣지 않아야 하는 말을 들어서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잘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 잘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듣고 말하는 일은 마음 속에 인격이 결부된 일이기 때문이다. 인격이란 것이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듣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이 한 순간에 변화하지 못한다. 오랜 세월동안 신앙 안에서 성숙한 인격은 남의 말을 듣되 오해하지 않고 듣고 상대의 선의대로 듣는다. 반면 인격이 성숙하지 못하면 좋은 뜻으로 한 말도 악의적으로 받아들인다. 성숙한 인격은 말을 건네되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반면 성숙하지 않은 인격은 거칠게 말해서 좋은 말도 오해하게 만들고 부정적 감정을 가지게 말한다. 그래서 잘 듣고 잘 말하기 위해서 신앙의 좋은 인격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잠 12:13)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인하여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들으며 살고 있는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잘 듣고 잘 말해서 우리 속사람이 갖춘 인격을 나타내고 있는가? 오늘은 다윗과 관련된 한 기사 속에 등장하는 세 인물을 통해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다윗이 동굴에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에도 그의 겉 옷자락만 베고 살려준 기사를 살펴보았다. 사울왕은 눈물을 흘리며 다윗의 의로움을 인정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그러나 사실 완전히 회개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다윗이 사울 왕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가지는 않았고 계속 방랑하는 생활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울왕이 완전히 변화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사울과 헤어지고 다시 길을 떠난 다윗 일행은 어느 날 갈멜이란 곳에 머물게 되었다. 갈멜은 아시다시피 열왕국 시대에 이르러 엘리야 선지자가 우상의 선지자들과 상대하게 될 바로 그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에 나발이라는 이름의 목축인이 있었다. 그는 수천마리의 양과 염소를 치는 부자였다. 그 시대는 치안이 미흡한 지라 대규모 목축업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이란 도적들이 나타나 가축들을 약탈하고 심지어 목동들까지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런 가운데 다윗과 그의 수하에 육백 명이 나발의 양떼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은 그의 재산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당시 목축업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는 양털을 깎는 시기는 농부에게 추수하는 시기와 같았다. 그래서 이 시기에 목자는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수확의 기쁨을 누렸다. 바로 양털 깍는 그 잔치의 시기에 일이다. 다윗은 나발에게 소년들을 보내어 축복하면서 잔치의 음식을 좀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런데 나발은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다윗을 향한 심한 모욕과 경멸의 말을 전한다. 이에 다윗은 분노하게 되고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과 그 가족들을 몰살시키고자 출정한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이란 여인이 다윗의 소년들에게 음식을 건네고 다윗 앞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지혜로운 말로 다윗은 칼을 거두고 되돌아갔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세 인물을 주목해 볼 수 있다. 바로 나발과 아비가일과 다윗이다. 이 세 인물의 말하고 듣고 칼을 거두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소중한 신앙의 교훈을 받게 된다. 그러면 그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나발과 같은 우매한 말을 삼가라.

    (삼상 25:6) 『이같이 그 부하게 사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평강하라 네 집도 평강하라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

    다윗은 소년 열 명을 나발에게 보내면서 잔치의 음식을 좀 나누어 줄 것을 요구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풍습으로나, 율법의 가르침으로나 매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6절에서처럼 다윗은 ‘너는 네 집도 네 소유의 모든 것도 평강하라.’는 축복의 말을 건넨다. 다윗이 매우 정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요청했음을 알 수 있다. 또 8절에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다윗이 나발에게 아들 뻘이란 뜻이 아니라 그만큼 자기를 낮춰 예의를 갖춘 표현이다. 이렇듯 정중한 인사와 겸손한 태도로 자선과 호의를 구했건만 나발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삼상 25:10-11) 『[10]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근일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율법에는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생각한다면 다윗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이 마땅했다. 더욱이 곁에서 경비원처럼 양떼를 지켜준 노고를 생각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 마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발은 다윗에게 면박을 주는 말과 더불어 음식을 건네주기를 거절한다.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은 다윗이 무슨 조직 폭력의 보스같이 위협하고 강압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대기업을 압박하면서 정치헌금 강요하듯이 요구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호의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발의 이러한 발언은 웃는 낮에 침뱉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나발은 ‘다윗이 누구냐?’라고 말했지만 사실 다윗을 모를 리 없었다. 골리앗을 물리친 용사로 이방인들에게까지 명성이 높았고 왕의 사위가 된 자요, 사울 밑에서 천부장직을 수행한 인물이니 잘 아는 인물이다. 다윗이 분개한 이유는 음식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발이 ‘주인에게 반역하는 못된 종’이라고 모욕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발은 정치적으로 사울을 추종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떠나 사울의 편에서 다윗을 경멸했던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사울을 반역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사울이 자신을 무고하게 죽이려고 하니까 생존을 위해서 왕의 곁을 떠난 것이었다. 사실 나발은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의 입술을 놀렸던 것이다. 사람은 언제 가장 분노하는지 아는가? 자기의 진실이 거짓으로 오해받을 때가 가장 분노하는 순간 중 하나이다. 결국 나발의 이 망언은 다윗의 노를 격동시켰고 목숨이 위태롭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잠 12:18)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의 대부분은 잘못된 언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눅 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다. ‘말’이라는 단어는 ‘마음의 알갱이’라는 뜻이다. 즉 말은 마음에 쌓인 것을 밖으로 드러나는 도구라는 것이다. 마음에 좋은 감정, 좋은 생각, 좋은 뜻을 채우면 좋은 말이 나오고, 나쁜 감정, 나쁜 생각, 나쁜 뜻이 채워지면 나쁜 말이 나온다. 성숙한 인격이란 바로 이것을 잘 통제해서 때로는 삼가고 때로는 말하는 것을 잘 분별하는 사람이다.

    부디 나발과 같은 우매한 입술에서 벗어나는 성도님들이 되자.

    (잠 13:3)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둘째,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입술의 사람이 되라.

    다윗은 나발의 모욕에 참지 못하고 그와 그 일가를 죽이겠다고 칼을 빼어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격노한 다윗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한 여인이 있었는데 바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었다. 이 여인의 언행은 도대체 어떠했기에 다윗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는가?그녀는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급하게 종들을 시켜 양식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모욕을 말을 건네받은 열 명의 소년들에게 양식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어진 그녀의 일변은 무엇이었는가?(삼상 25:28-31) 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아비가일이 이야기한 내용의 핵심은 이것이다. “다윗 당신은 지금껏 악을 행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하나님이 생명 싸개에 싸서 보호하십니다. 당신은 장차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오늘 무죄한 피를 흘리면 장래에 왕이 되었을 경우 괴로워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뜻이다. 아비가일의 말을 통해 발견되는 그녀의 지혜는 이런 것이다. 그녀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현재의 상황을 잘 알았다. 또 다윗의 의로움, 정직함에 대한 분별력이 있었다. 또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섬세히 보호하고 계신다는 영적인 혜안도 있었다. 게다가 다윗의 미래를 예측하는 안목도 있었다. 그리고 만약 다윗이 칼로 살육하는 실수를 저지르면 그 일이 미래에 어떤 악영향을 가져올지에 대해서 내다볼 줄 알았다. 아비가일은 이런 모든 미래사를 꿰뚫어 보고 다윗에게 그것들을 말했던 것이다.

    (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 대화의 핵심을 벗어나서 헤매는 경우가 있다. 상대의 문제점과 본질을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기울여도 깨닫는 지혜가 없으니 상황 전달이 안된다. 그래서 대화는 겉돌고 핵심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오해하게 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없게 된다. 대화에는 이해하려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없으면 감정에 이끌려 말하게 되고 무례하게 말하게 되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아비가일을 보라. 다윗의 마음을 정확하게 헤아리고 상황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미래사도 읽어낼 줄 아니까 그런 지혜로운 말이 나오고 그 말로 인해 치켜올린 다윗의 칼이 점점 내려졌다.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혀가 다윗의 뻣뻣한 감정을 꺾었던 것이다.

    (잠 25:15)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오늘날 우리도 사랑과 배려가 녹아있는 말 한마디가 사람의 생명까지 살릴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그래서 생각하고 말하고, 배려해서 말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연습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셋째, 다윗과 같은 열린 귀를 가진 사람이 되라.

    다윗이 나발에 대해 분개한 모습은 사울을 대할 때와는 대조적이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직접 보복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심판을 맡겼다. 그런데 오늘은 나발의 모욕을 참지 못하고 자제력을 잃었다. 그래서 즉시 칼을 차고 벌떡 일어선다. 만약 다윗이 사울 왕과의 관계에서 잘 인내해 왔는데 나발이라는 인물을 죽인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다윗을 보건대 인간은 이처럼 연약한 존재이다. 만약 다윗이 분노의 감정에만 사로잡혀서 아비가일의 말에 “하찮은 일개 여인이 누구 앞에서 감히 입을 놀리느냐?”고 듣기를 거절했다면 나발과 그 일가는 몰살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타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귀가 있었다.

    다윗은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 싸움이 의로움의 기초가 아니라 죄악의 기초 위에 세워지면 그 나라가 길지 못함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다윗은 칼과 피로 세워지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뜻으로 나라를 세워야할 사명이 있었다. 그래서 온 백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기뻐하고 환영하는 가운데 등극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아비가일이 그것을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발언에 호응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다윗의 인격을 발견한다. 아무리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도 이치에 맞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분노를 누그러 뜨리고 자기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다. 마음을 추스린 다윗이 이렇게 말한다.

    (삼상 25:32-33)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33]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다윗은 이 여인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했다. 이렇게 잘 말하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도 있었지만 그 말에 담긴 진실과 혜안을 분별하는 다윗의 귀가 있었기에 그는 분노의 감정으로 일가를 몰살시키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

    (잠 29:11)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

    강경화 장관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퍼스트 레이디.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에도 3년 간 그분의 곁에서 보좌한 경력도 있었다. 그녀는 코비드 19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체계를 외국에 홍보해서 국위선양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앵커들의 까다로운 질문에도 투명하고 정직하고 정확한 발언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인 바로 유명하다. 독일의 앵커가 ‘한국은 봉쇄령으로 인해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집요하고 까다로운 질문도 모두 잘 설명했다. 인텨뷰 내용에는 구구절절히 그녀의 겸손함이 한국 사람의 겸손함을 대변했다. 그래서 그분의 활약으로 한국의 명예가 매우 드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높은 위상은 단지 한류의 가수나 탤런트 때문 뿐만 아니라 이런 외교부 장관의 노고와 활약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성도와의 관계에서 혹은 이 세상의 불신자와의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들으며 살고 있는가? 나발과 같이 우매한 말로 문제를 일으키고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아비가일과 같이 지혜의 말로 죄의 싹은 잘라내고 의의 열매가 맺히게 만드는 길을 가시기 바란다. 다윗처럼 타인의 입술을 통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가 되자. 이런 아름다운 인격, 이런 향기로운 입술을 가지는 참교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mtIwD-qjRZ0?si=HOvdPGM8-U9QzQXv

     

  • [신양의 향기] 제18기 이남찬 신학생 졸업식

    [신양의 향기] 제18기 이남찬 신학생 졸업식

    할렐루야! 지난 2023년 12월 25일에 제18기 신영길 신학생과 이남찬 신학생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이남찬 신학생은 천안교회의 시작부터 함께 자라고 성장한 신학생이기에 천안교회로서는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또 이남찬 신학생을 뒤이어 그 동생인 이찬우 형제가 제19기 신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목회의 일선에 서게 될

    신영길 신학생, 이남찬 신학생과 더불어 모든 신학생들을 위해 많은 성도님들께서 끊임없는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18기 신학생 졸업식 유튜브 영상

  • [교회행사] 대학사청부 소풍

    [교회행사] 대학사청부 소풍

    할렐루야!

    천안교회 대학사청부는 지난 10월에 아산 신정호로 소풍을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화창한 날씨를 허락하신데다가 새로운 친구들이 3명이나 와서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특히나 유학생들의 새친구들도 오게 되어 정말 값지고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조별로 나누어 사진미션도 하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재미있는 레크레이션도 하였습니다. 다함께 예수님 안에서 하나되어 잊지 못할 추억을 쌓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다함께 그 현장의 열기를 느끼러 가보실까요!?

    천안교회 대학사청부가 하나님 안에서 날로날로 더욱 훈련되어 신앙적으로 성장하는 하나님의 일꾼 되기를 소망합니다!

  • [성도소개] 천안교회 유학생들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천안교회 유학생들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천안교회는 2022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 자매 2명과 대만 자매 1명, 총 3명이 천안 인근에 있는 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3명의 귀한 자매를 천안교회에 보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신앙생활하며 교제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외국에서 온 자매분들 한분한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 나디야 자매 (2000년생)

    안녕하세요! 저는 자카르타 Samanhudi(사만후디)교회에서 온 나디야라고 합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멋진 기회이며 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처음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믿음도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믿음이 매우 약했습니다. 안식일마다 교회에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가족 때문에 교회에 갔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빼먹으면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게다가 십계명에서 말씀하셨기에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제 몸은 교회에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몇 시간씩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앉아 있는 것보다는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오전예배를 보러 갈 생각 없이 늦게 일어나곤 했습니다. 보통 오후 예배만 드리고, 끝나고 나면 성가대 연습에 잠깐 참석하거나 그 외에는 직접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렵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연구원이고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해야합니다. 이런 피곤함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정말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가 이러한 경험을 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여기서 견뎌야 할 고난이 저를 하나님과 더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기도를 더 자주, 더 오래 했습니다. 전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식일에 교회에 가는 것을 싫어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연구실에서 일하는 것은 안식일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단순한 의무가 아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은혜이기 때문에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는 교회에 더 오래 있고 싶지만 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저는 이전의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천안교회는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저를 너무 아껴주십니다. 저는 한국말도 못하는 데다가 저의 존재는 성도님들이 영어를 해야하기 때문에 부담만 줄 뿐이라 여겼습니다. 또한 저는 설교내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 통역을 해주는 다른 성도님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이라 외롭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도님들을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저에게 음식도 주시고, 안전하게 집에도 데려다주시고, 겨울에 입을 따뜻한 옷도 주시고, 교회에 있는 동안 저와 함께 해주시고, 이를 통해 저는 사랑을 많이 느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에게 또 다른 가족을 주신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온 것은 정말 축복이고, 천안교회 성도님들은 저에게 정말 큰 축복입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나디야 자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 키티 자매 (2001년생)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키티 이치와(Kitty Ichiwa)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키티라고 부르곤 해요.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고, 2001년생으로 현재 22살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아 석사 학위를 따기 위해 순천향대학교에 와있습니다. 이 장학금으로 한국에서 한해 동안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 전공은 의료생명공학(바이오메디컬)이며, 내년에 석사과정을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순천향대학교에서 5개월간 교환학생으로 활동했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히 천안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많은 즐거운 경험을 했고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하나님께서는 이 장학금을 제게 주셨습니다.

    이전에 말한 대로 저는 천안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 성도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새로운 가족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언어와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성도님들은 항상 우리 모두 가족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고, 새로운 가족을 보내주셨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다가, 예배도 인도네시아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찬송가는 이전에 듣지 못한 노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튜브에서 한국 찬양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 찬양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노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한국 찬양들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중에 최근에 특별한 찬양, “날 지켜주신 – 웨이홈”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찬양을 무작위로 재생했고, 뜻을 모르는 채로 찬양에 반해버렸습니다. 그 가사의 뜻을 찾아보니 이 찬양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이었고, 제 삶의 울림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나 저를 돌보고 계시며, 항상 제 곁에 계시고, 제가 가진 최고의 친구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천안교회 유튜브 채널에 제 간증영상 2개가 올라와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거기서 확인해보세요! ✌🏻✌🏻)

    남은 2년 6개월 동안, 제가 믿음을 더욱 키우고, 이곳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여기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훈련시키려고 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키티 자매>

    대만 잉거

    3. 주정후 자매 (2002년생) │번역: 대방교회 김연주 자매

    할렐루야!

    저는 주정후로, 올해 22살이며 원 소속은 대만의 앵가교회(잉거교회, 鶯歌教會)입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에서 1년간의 교환학생으로 와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천안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오기 전에 제 삶과 신앙은 슬럼프였고, 살아있는 동력이 없었으며, 교회에 가고 기도할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 역시 매우 이러한 삶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제가 교환학생에 대해 알고 계획할 때 주저하지 않고 신청했습니다. 그때 저는 단지 대만을 떠나고 싶었고 하나님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나라든 상관없이 다 좋다고 말입니다. 한국을 선택한 것은 단국대학이 유일하게 제 자격과 전공에 모두 부합한 학교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저는 이미, 대만의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지어 천안교회에 연락하지도 않았고, 열심히 교통수단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름 방학에 교회에 활동에 참여하여 시편 139편 7절의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를 펼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제가 어디로 가든지 결국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저는 비로소 더는 도망가지 않고 하나님의 앞에 무릎 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천안교회에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모든 연락은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일찍이 예비하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기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천안교회의 따뜻한 관심은 제가 아직 대만에 있었을 때부터 끊어진 적이 없었고, 목자님과 형제 자매는 항상 연락하여 저를 챙겨주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온지 3일째에 저는 예정대로 천안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날 제게 인상 깊은 것은, 제가 문을 밟는 그때, 형제 자매들이 매우 따뜻하게 저를 접대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제게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온 교회가 모두 접대하는 일을 준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제가 더욱 놀란 것은, 천안교회는 뜻밖에 즉시 영어 설교 통역을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저는 처음에는 제 영어 실력으로는 절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줄곧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알아듣게 해주셨고, 심지어 형제 자매들이 말하는 한국어도 대부분 알아듣게 해주셨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걸음을 인도해주셔서 이렇게 사랑과 은사가 충만한 교회로 오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생각지 못한 언어적 은사를 주셔서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에 장애가 없게 해주심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정후 자매>

     

    <생활관 간담회>

    천안교회에서는 생활관 형제들과 더불어 외국 및 타지에서 온 형제 자매들을 위해 달마다 정기적으로 간담회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유학생들의 생활적인 불편함과 문제들을 해소시키기 위해 많은 성도님들이 관심가져주시고 계십니다.

    <대학사청부 나들이>

    가족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이 학생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이 기회가 신앙적으로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디야 자매, 키티 자매, 정후 자매가 앞으로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영육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성도님들께서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 [성도간증] 남편은 미끼, 나는 대어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성도간증] 남편은 미끼, 나는 대어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천안에는 남편인 소만수형제님과 결혼하면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참예수교회를 알게 된 건 원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였는데요. 형님부부로부터 교회에 볼일이 있다고 천안에 온 김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형님부부의 부탁이라서 거절하지 못하고 그냥 인사나 하자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긴장을 많이 하고 갔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혹시 사이비교회가 아닌가는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형님이 다니는 교회이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김미영 자매님 집에도 몇 번 가서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친정엄마에게 육아의 도움을 받고자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모임이 있을 때 전주에 있는 형님이 저에게 교회 다녔으면 좋겠다고 몇 번 권면하셨지만 저는 그때마다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교회를 싫어하는 이유도 말씀드리고 저희 친정집이 외할머니 때부터 성당을 다녔고 저도 어렸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다닐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천안으로 이사를 온 후에 교회가 쌍용동으로 이사를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형님부부께서 교회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천안에 오게 되었는데 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이번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차 갔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난 후 교회가 큰 규모의 건물을 사서 이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봄 영은회 때 형님부부께서 천안에 방문한다고 교회에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하셨지만 저는 약속이 있어서 가지 못하고 남편과 막내딸 연서만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번에도 인사차 갔다 오는 거겠지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매주 교회에 가는걸 보고 앞으로 계속 교회에 다닐 거냐고 물어 봤는데 뜻밖에도 한번 다녀보고 싶다는 말에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남편이 교회에 다닌다고 할 때 많이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알았다고는 했지만 나는 싫으니 혼자 다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연서가 교회 가는 것도 싫었지만 연서가 가고 싶다고 해서 그냥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편과 연서가 교회에 가는 게 너무 싫어졌습니다. 하루 종일 교회에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싫다고 했는데도 저 몰래 연서를 청주교회 여름성경학교에 보낸 것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그렇게 됐겠지 하고 이해를 하려고 많이 노력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교회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지만 듣지 않고 계속 교회에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연초부터 약속되었던 것이라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부부를 만나는 게 너무나도 불편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너무나도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걱정보다 즐거운 휴가를 보냈고 저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려서 천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지옥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휴가를 다녀온 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저는 2주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밤낮으로 울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완강했던 남편을 보니 교회를 못 가게 하면 나처럼 힘들겠다라는 생각에 교회에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저 또한 남편이 교회 가는 게 너무나도 싫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만 하다가 결국에는 차라리 내가 힘든게 낫겠다는 생각에 토요일에 교회 가면 그냥 인정해주자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인데도 남편이 일어나질 않고 계속 잠만 자고 있길래 아 교회에 안 가려나보다 하고 안심을 하였는데 힘없이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위로해주려고 말을 거는 순간 갑자기 남편이 울기 시작한 겁니다. 전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나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교회에 가고 싶으면 혼자라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다시 교회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는지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마음에 선입견이 많이 남아 있어서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금요일 아침에 남편에게 조심스레 방언기도에 대해서 물어보니 이미 7월 15일에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세상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집에 케익을 가져온 날이더라구요 남편이 방언기도 하는걸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에 그 이상한 걸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하게 될 줄이야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전에 왜 형님이 남편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아주버님이랑 형님이 너무나도 미웠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 그치면서 내가 왜 울고 있지? 교회 가는 게 이렇게 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교회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집에서 힘든 것보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나도 토요일에 같이 교회를 가겠다고 남편에게 얘기했고 형님과 아주버님도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니 어차피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어서 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 성령을 받아 방언기도를 하는 것과 또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다는 걸 제가 교회 오기 전날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싫어할까봐 얘기를 안 한건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나중에 아니까 모든 것들이 많이 서운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제가 안쓰럽기도 하고 다음 주에 남편 세례식이 있으니 정신 차리라고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오게 되었지만 계속 다닐 생각이 없었던 저는 표정이 굳은 채로 교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얼굴들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특히 김미영 자매님은 정말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풀리니 원래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배려로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연서가 앞에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는 것이 꼭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고 다음에는 연서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제 질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집에 와서 싸웠습니다. 정말 아마 이번 일이 저희 부부의 첫 부부싸움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주에 있는 형님 부부에게 다음 날인 일요일에 만나자고 연락을 해서 형님부부랑 만나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도 하고 또 이야기하다가 울기도 하고 그동안 쌓였던 오해도 풀고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세례식 날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참석하려 했으나 생각해보니 평생에 한번 뿐인 세례식인데 아이들이 축하해주면 남편이 기뻐할 것 같아서 아이들도 같이 가자고 설득하여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게 많아서인지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식을 쭉 보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저희 가족들끼리 단촐하게 다시 한 번 축하자리를 마련해서 남편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형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저도 교회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하였습니다. 형님은 너무도 기뻐하셨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다음 주 안식일부터는 온 가족이 교회를 출석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 달만이라도 출석을 해보자고 권면을 했고 아이들도 감사하게도 따라 주었습니다. 그 발걸음이 결국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교회 오는 것을 마냥 좋게 생각하지는 않아서 교회 데리고 오면서도 항상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선생님들이 교회 오면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자주 연락도 하고 또 가끔씩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도 사주시고 해서 아이들도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세례식 다음 주에도 형님 부부께서는 천안에 오셔서 제가 좀 더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셨고 형님의 권면으로 처음으로 안수기도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뒤부터 사실은 마음속에 한 가지 숙제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남편처럼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걱정이 많다 보니 한 번은 안식일 오전 예배가 끝나고 조용히 혼자 남아서 기도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쉽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구도자 교육 시간에 목자님께서는 남편은 정말 쉽게 성령을 받으신 경우에 해당이 되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였고 누구나 성령을 금방 받는 것은 아니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반드시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믿고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나도 나 자신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성도님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기뻤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들이 마냥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세례를 받기로 하면서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밤예배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요일, 금요일 저녁예배를 나와서 예배를 드리니 마음에 더욱 확신이 왔습니다. 사실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마음이 열려서 그런지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어지고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도를 하고 안수를 받으면 조금씩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치채신 성도님도 계시고 목자님께서도 눈치를 채시고 남편에게 기도할 때 좀 어땠느냐고 묻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혼자만 고민하다가 어느 날 몇몇 분들과 광덕산 등산을 다녀온 후에 차를 마시면서 목자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목자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 이런 감동의 과정이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믿고 맡기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0월 10일 화요일 예배 후 합심기도회 시간에 김참운 자매님께서 안수기도를 권했습니다. 아마도 며칠 전에 제가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권면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토록 고대하고 받고 싶었던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보니 너무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온 성도님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시고 심지어 급히 케익을 준비하셔서 축하파티도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축하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니 훨씬 더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이 남편도 성령을 받고 이렇게 기쁘고 행복했을 텐데 내가 힘들게 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한편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습니다.

    드디어 10월 15일에 저와 서현이, 경완이, 연서 이렇게 4식구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큰딸 서현이는 같은 날 한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동년배가 되었다고 장난 섞인 말을 하더군요. 사실 전에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었습니다. 물론 행복했던 일도 많았지만 자꾸 과거의 잘못들이 생각나서 힘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례식이 다가오면서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들 경완이가 세례는 받겠다고 했지만 마지못해서 엄마가 원하니까 세례를 받게 된 것이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세례식 날 경완이가 세례를 받고 마음이 변화되기를 위해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경완이가 세례를 받은 후에 소감을 말할 때 지금까지는 안식일에 교회 가기가 싫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싫고 했는데 물에서 올라오면서 그런 마음이 다 사라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이제는 서현이와 경완이 그리고 연서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하루빨리 주셔서 아이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저와 남편처럼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온가족을 믿음으로 이끌어주시기 위해서 애써주신 전주 형님과 아주버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또 마음이 닫혔던 저를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이끌어준 남편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아이들도 낯선 교회환경에 잘 적응해주고 같이 세례를 받게 되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또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들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신 모든 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나라 가는 그날 하나님께 칭찬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임민경 자매 간증 유튜브 영상

  • [복음메시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복음메시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2023년 11월 18일 안식일 오전예배

    설교제목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본문말씀 : 빌 1:27-30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합당” : ‘값에 알맞게 지불하고 사다’

    우리의 삶은 복음과 알맞은 값의 삶을 살아야 한다. (27)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주신 존재이다. (고전 6:20) (고전 7:23)

    “자기 피로 사신”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존재이다. (행 20:28)

    나는 주의 보혈에 감사하며 찬양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시 119:164)

     

    (27)“생활하라” = ‘시민답게 살다’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29) 나는 하늘의 시민권을 사기 위해 얼마를 지불하였는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다.

    부스러기의 은혜와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한다. (마 15:27)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의 행실을 자랑할 것이 없다. (엡 2:8-10)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려면?

    1. 협력해야 한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7)

    교회 일은 혼자서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협력해야 한다.

    기독교는 경쟁의 종교가 아니다. 협력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빨리 가는 곳이 아닌 함께 가는 가는 곳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협력이다.

      1) 일심으로 :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2) 서서 : 적극적인 태도

      3) 한뜻으로 : 같은 방향

     

    2. 아무 일이든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8)

    “대적” : 안티케이마이 = ‘반대하다, 대적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대적들이 있다한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눅 13:17) (마 10:28)

    (빌 4:13)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에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행 1:8)

    하나님 안에서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사 41:10)

     

    3.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한다. (29-30)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29-30)

    하나님의 나라는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 16:24)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롬 8:17) 그리스도를 따라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받아야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길에 고난이 있어도 그 끝에는 영광과 축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유튜브 예배링크

  • [신앙의 향기] 십자가로 가까이_호산나 플룻

    [신앙의 향기] 십자가로 가까이_호산나 플룻

    https://youtu.be/7738qeQI5r8?si=fhxglP03PyRXMH3V

    플룻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청주교회 ‘호산나’ 플룻팀의 연주입니다~^^

     

    플룻 : 최영미 자매, 이순우 자매, 김정민 자매, 김선미 자매, 유성희 자매 

    피아노 : 이원일  자매

  • [성도 간증]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_이원일 자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전에 간증했던 내용과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들을 추려내고, 추가적인 내용을 더하여, 제 삶을 통해서, 저를 부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큰 사랑으로 저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자리에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다만 북한에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남으로 오신 외할아버지와 기도를 많이 길게 하시던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나마 알고는 지냈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떤 연유에서인지 동네 교회의 성경 학교도 가보고, 친구 따라서 성당도 몇 년 다녔습니다. 그 뒤에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 일로 인하여 부모님께서 의견 차이를 보이시며 저의 성당 출석은 깔끔히 끝나게 되었지요. 말 잘 듣는 큰 딸이었던 저는 ‘최악만 아니면 되지 ’라는 신념으로 10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명확한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보통의 학생들과 다름없는 상태로, 꾸준히 학교만 다녔습니다. 주변에서 보이는 사건 사고 없이 평안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항상 돌보아 주시고 계셨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가까운 사람이 삶을 한탄하면서 저에게 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나는 지저분한 물에서 사는데 당신은 1급수 아니 생수에서 살고 있다’ 라고 말이죠.

     

    대학 2학년 여름,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 사람이 지금의 남편입니다. 알게 된 지 한 달 즈음이 지났을 때,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게 어떻겠냐 하면서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하더라구요..^_^(과연 그 약속은 어찌 되었을까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면서 그 순간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얼마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도서관의 종교서적 서가에서 여러 가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은 인터넷 보다는 책이 정보검색의 1순위였지요) 안식일 관련된 책들과 기독교의 역사관련 서적들을 보면서 ‘안식일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정도의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에 삼육대학교 근처에 살면서 들었던 제7일 안식일교라는 이름도 기억해 냈고, 주일 개념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 졌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적립하고 드디어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눠 보려는데, 흔히들 말하는 안식교도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참예수교회라고 알려주더라고요… 이건 뭐지?? 하면서 다시 뒤져보았습니다. 성과는 없었습니다. 2002년 말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에 여러 가지가 올라오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엘리사 목자님의 설교 몇 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영상들이 저에게는 예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엉터리는 아니다’ 하는 마음으로 참예수교회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2003년 7월 어느 안식일 오전, 제일 가까웠던 동부교회로 무작정 전화하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젊은 아가씨가 알지도 못하는 곳을 제 발로 혼자 찾아 갔네요.

     

    통화하신 분이 예배당 앞에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보통의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진형제는 저에게 방언기도에 대해 한 번도 언급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 시작 전의 기도시간에 저는 어찌 해야할 지 모르고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말씀이 끝나고 나서 찬양 한 뒤에 다시 기도가 시작되자, 저는 예배당을 빠져나와서 건물 1층 문을 나서야만 출입 할 수 있는, 외부로 출입문이 나있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신기한 일은 화장실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2층의 기도소리가 저에게는 악기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영롱한 핸드벨이나 큰 실로폰의 높은음을 쉬지 않고 울리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이 내용을 간증하며 ‘천상의 음악’이라고 감히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부러움과 신기함으로 교회에 출석했고, 다음 해에는 양봉도 목자님의 세례관련 설교를 주의 깊게 듣게 되었습니다. 출석이 거듭되면서 입술이 움직임을 느끼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례가 먼저라는 지식이 저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주의 어느 날 수업 후 빈 강의실에서 교회에 전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세례 받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주 안식일 예배 후에 봉고차를 타고 밀리는 길을 다녀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이어리를 찾아보면 2004년 4월 3일 16시 20분이라고 시간까지 쓰여 있었는데, 그날인 것 같습니다. 날짜와 시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뀐 저의 기도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예수님께서 피 한방울의 일부라도 저를 위해 흘려 주셨습니까?’라는 물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세례 후 예배당 앞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저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생각과 ‘저를 위해 피 흘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라는 기도가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인공조명의 위치가 절묘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이마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환한 빛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남자친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세례성령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기본적인 새신자 신앙교육이나 세례 전 교육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부족한 지식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꽉 차여있지 않아도 자녀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세례를 받고서 얼마 지났을 때인지 기억은 못하지만, 아마도 오래지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낮잠이었는지 밤잠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누군가가 벽과 붙어 있는 옷장 윗부분의 구석진 곳에서 저를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오싹하다기 보다는 그냥 무서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를 알지도 못했던 때였지요. 자세를 바꾸어 보아도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을 뜨면 눈앞에서 엄청난 얼굴이 저를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기에 눈도 감은채로 마음을 굳게 먹고 주기도문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성당에서도 노래로 외웠고, 빈칸 채우기 시험을 봐가면서 외웠고요, 동네 교회 성경학교 다닐 때도 외웠고, 동부교회 출석하면서도 매번 읊었던 주기도문이었지요. 그런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그 무언가가 저의 기도를 따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런 기도쯤은 나도 알고 있다’는 조롱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동시에 너무나 두려웠구요. 그래서 누운자세 그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선언하고, 방언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만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기도하다가 잠들고 말았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외워서 읊기만 했던 저에게,,, 진정성이 없는 기도문의 암송은 그 어떤 의미도 없음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셨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 초, 저희는 약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출가 외인이라며,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이제 그집 식구이니 교회 따라 나갈 생각을 해라!! 마음 편히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저희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2006년 3월에 식을 올리고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이었지만 저는 바다구경으로 두 번 가본 게 전부였던 지역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걱정과는 다르게 바로 옆 동네에도 성도님들이 계셨고, 가족처럼 살뜰히 돌봐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가 아버지 따라 신랑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이사하면서 울어본 적은 두 번뿐인데요(한번은 초3가을부터 초5 6월까지 살던 수원을 떠날 때였고) 그중 한번이, 겨우 1년 출석한 부산교회를 떠나던 날이었지요.

     

    [전국 유람 시작합니다] 그렇게 부산을 떠나 (성남으로 이사가서)분당 3년, (충주에서 살면서)원주교회로 1년, 다시 (성남기지 안으로 이사가서) 분당 1년, (송파구에 살며)강남 2년, (일산초입에 살면서)대방 2년, (계룡으로 이사하여)대전교회 2년, 그리고 다시 대방 1년, 이렇게 돌고 돌면서 가사와 육아에 매인 삶을 살아가며 2019년도에 도착한 곳이 안양교회였습니다. 신도회 시간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 참여 해본 첫 해였습니다. 수많은 세상의 이야기를 하며 경쟁하듯 대화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감사를 나누고 평안을 구하며 같이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임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속상함도 나누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저는 ‘최악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불행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하며 살았었죠. ‘기도를 통해 고통이 줄어들고 기도하는 와중에 고난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며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져버렸답니다.) 그런데 2019년 어느 날 혼자 집에서 찬송을 드리다말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물을 감추지 않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왜 우냐’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판단하기 전에, 주님께서 저를 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답을 해보았습니다. ‘감사해서요.’ …..불행하지 않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고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행복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도], 코로나로 온 나라가 힘들기 시작했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불안 속에서 요동하지 않으며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많은 노력을 했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6월 9일, 그 불안의 상황이 저희 집에 들어왔습니다. 저녁에 신랑이 확진을 받고난 뒤에, 저는 집안에서 몇 걸음 걷다가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나머지 세 식구가 집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효원형제를 데리고 가야할 구급차는 오지 않았고, 저희 세 명의 검사 결과는 아주 빠르게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음성이고 저만 양성이 나왔기에 새로운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이들만 남겨야 하는데 어찌 하면 좋으냐’ 보건소에 물어보았는데요, 아침마다 도시락을 문 앞에 갖다 놓을테니 데워 먹게 하라고 하는 전화기 너머의 말이 어찌나 야속하게만 들리던지요. 음성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집에 올 수 없으며, 입고 간 옷도 다 폐기 할 것이고 들고 간 것도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제외하고는 들고 나올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당장은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기고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에 입을 옷은 병원에서 택배로 받으라는 이야기와, 돌아올 때는 택시를 비롯한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니 가족들이 데리러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걱정에 걱정을 더해주기만 하던 그들의 이야기로 머리가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증상도 없었는데 말이죠. 계속 무너지며 무릎을 꿇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함께 퇴원 할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그게 쉽겠느냐며 절망이 튀어나올 정도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 이모가 바로 와줄 수 있다고 했고 저희 부부는 아이들 이모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저희가 나선 뒤에 방역팀이 집 구석구석에 소독액을 뿌리고 갔고, 3학년과 1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용감히 이모를 기다렸습니다.

     

    안양에서 파주병원까지 저와 효원형제는 같은 구급차에 실려서 이송되었습니다. 병실이 남은 곳은 거기뿐이고, 구급차는 많이 남지 않으니 한번에 이동시키려는 그들의 계산덕분에 저희는 꽁꽁 싸여서 실려다니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목자님과 사모님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님들은 단순히 위로만 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고 나올 옷을 싸놓으면 가지고 가겠다, 택배로 보내주겠다, 차몰고 데리러 갈꺼니 걱정마라. 거기 자주 가는 동네라서 다 안다 등등, 그 많은 이야기들은 구체적이었고 현실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를 안정시킨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키울 테니 어서 낫고 퇴원해라’ 여기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들 걱정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었구나 하고 말이죠.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은 성도의 손을 통해 자녀들을 보살피시는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었죠. 안양에서 살던 두 번째 집은 창문 밖으로 임시검사소에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사람마다 일정 개수 씩 구매할 수 있게 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집이었습니다. 또한 감사하게도, 뛰어 놀기에 적합한 넓직한 공원이 바로 옆에 있었고,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하여 산길에 걸어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에 보이는 장점들을 하나하나 나열해가며 감사하면서 무너지지 말아야겠다며 스스로를 애써 붙들어 매던 제 마음은, 확진과 동시에 그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쉴 새 없이 크게 요동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굳게 붙들어주셨습니다.

     

    [병원 이야기 해드릴께요] 입원실은 3인실로 개조한 5인 입원실이었습니다. 링거하나 없이 두 명의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이 전부였지요. 음식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겨 묶인 봉지채로 각 자리에 놓아졌고, 2일에 한 번 씩 보호장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소독액을 눈앞에서 뿌리며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음압기계의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두통이 생길 정도였고, 창문의 모든 틈은 테이프로 막아져 있어서 산소가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남성 입원실로, 저는 여성 입원실로. 구급차에서 내려서 줄을 따라 걸어가며 저희는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졌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화로 통화해야 했습니다. 동선에 대한 확인과 보고를 반복하며 보건소 직원들과 통화하느라 하루 이상 꼬박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상태가 안 좋으면 병실 전화기나 핸드폰의 카톡을 통해 간호사실에 알릴 수 있었고 며칠 간격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의사가 들어와서 문진을 하고 상태(?상황?)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자꾸만 가빠지는 호흡을 가라앉히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저는 집안일로부터 해방되어 길어져버린 하루를 보내기 위한 나름의 계획을 짜야 했습니다. 3회의 식사 전에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적고 사진 찍어서 간호사에게 알려주기, 식사 후 양치 꼭하기, 땀나게 맨손체조, 이어폰으로 소리 최고로 해놓고 말씀듣기, 성경읽기, 음압기 소리에 묻혀서 기도하기, 중간중간 마다 아이들이랑 통화하기 등등,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밀려있던 통독은 욥기를 읽을 차례였고 시편까지 읽고 퇴원했습니다. 저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배웠습니다. 아무 방해 없이 말씀을 읽고 듣고 할 수 있게 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계시록도 처음부터 하나씩 듣기 시작했고, 다 끝내지는 못했으나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때 드디어 저는 참예수교회가 늦은 비 성령으로 세워진 참교회임을, 말씀으로 온전히 집중하여 배울 수 있는 첫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를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찬양합니다. 입원한지 며칠 지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밤중에 침대 위에서 창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위에 커다란 검은 물체가 저를 노려보며 저를 향해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준비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적으로 요동하거나 하는 전단계가 없었기에 맥락없이 갑자기 보이는 형상이었지요. 시커멓고 뿔이 두 개 달린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무릎꿇고 성령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지요. 잠시 후에 보니 그 형상은 사라지고 그냥 물탱크만 보이더라구요…

     

    당시, 전국의 교회가 모두 함께 저희 가족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셨습니다. 청주도 함께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6월 23일, 아이들은 격리해제를 위한 검사를 받았고 초조한 하루가 지난 뒤,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24일), 정부는 입퇴원에 관련해서 지침을 변경했습니다. 큰 증상이 없으면, 양성판정후 재검사 없이 14일 이후에는 퇴원 조치하는 내용이 생긴거죠. 저희는 그 병원에서 첫 대상자가 되어 26일 오전에 퇴원 통보를 받았습니다. 감염력이 없는 정도이니 일상생활은 해도 되지만 사람 많은 곳은 당분간 가지 말라는 이해가 안되는 보건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퇴원을 시켜주는 의사도 두 달은 자가격리 상태로 살라고 하더라구요. 의사간호사들의 우려를 뒷통수로 느끼며 병원을 나선 저희는 같은 택시를 타고 같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입원 날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지요. 게다가 양성판정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둘 다 음성판정을 받았지요. 그래서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저희 아이들도 돌보아 주셨습니다. 반찬과 반찬 재료는 물론 간식과 놀 거리와 손편지까지,,, 저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받으면 꼭 갚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저는, 이런 사랑들을 어찌 갚을까 고민하며 몇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퇴원하면 떡 내면 된다’ ‘우리한테 갚지말아라 하늘에 보물 좀 쌓아보자’ ‘앞으로 잘 살면 되는거다’ ‘교회에 봉사하면 되는거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또 사랑을 적립 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봐주시는 이유를 모르던 저는,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직전 날이 되어서야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으시고 택하신 사람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돌봐 주시고 계셨던 것이었지요.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냈었습니다. ‘제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의 주권자이심을,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이죠…. 이때의 제 고백은 시작에 불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눈으로 보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거든요..

     

    코로나 입퇴원을 마무리 하고는 [다시 전국유람 시작합니다] 몇 달 후 원주로 이동했습니다. 예배출석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안양교회 소속으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신도회 모임도 줌으로 유지 했습니다. 멀리 있어도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지침들이 바뀌었죠… 2021년 가을영은회 즈음해서부터 원주교회에 출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으로만 뵙던 김세한 목자님을 직접 뵈니 참으로 반가웠지요) 그해 연말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다시 계룡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약 2달, 출석 예배에 목말라 있던 저희는 예배가 아니어도 종종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정~말 많이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가 함께 기도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본 기억도 있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구요. 천사였을까요? 다른 성도님 이셨을까요? 누구였든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일이잖아요. 교회는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자녀들과 교제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귀중한 두 달여의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도 12월 부터는 대전교회를 출석했습니다. (대전으로 나간 초기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간청했지요. ‘내 양을 먹이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양이요?’라고 했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교회가 건축 중이었기에 총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가 알지 못하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자금의 투명한 흐름과 목회자의 발령시스템을 꼭 이야기하고, 그것을 원활하게 하는 총회 조직이 있음을 자랑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대전을 언급했었지만, 사실 저는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총회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총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저는 신학원의 존재를 볼 수 있었고 여러 목자님들과 외국에서 오시는 강사님들이 열심으로 교육하심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목자님들도 연수를 받으시고 (목자장로)회의를 통해 굵직한 이야기도 오가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음…… 목자 연수회 때는 화요일 예배에서 목자님들의 특별찬송이 있곤 했는데요. ‘행복’이라는 곡을 다 같이 부르실 때는 그 수고와 감동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구요 ‘십자가 군병되어서’를 부르실 때는 마블 어벤저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어휴~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또 여러 종류의 영은회와 세미나를 통해 일반 성도들도 배움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임원들도 모여서 함께 배우고 익혀서 하나의 모습으로 각 지교회가 달려 나가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많은 봉사와 노력과 기도가 있음 또한 보았습니다. 여러 헌신을 통해 한 세대 한 세대 전해져 내려가는 우리의 신앙을 보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적재적소에서 많은 성도들을 사용하시며 그 귀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12월 27일, 새로 지은 대전교회에서는 대학 영은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마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도 여기 계실텐데요, 그날은 화요일 이었고, 저는 연합예배의 찬양인도를 해야 했기에 부담이 컸지요. 기존에는 검정색 찬송가에서만 찬양을 골랐었는데 그 날은 새찬양에서 ‘기대’라는 곡을 살짝 끼워 넣었습니다. 대전교회 성도님들의 절반이상이 모르시는 곡일 수도 있었으나, 저는 대학부의 절반이 그 곡을 알고 있기를 바랬지요. 모르더라도 함께 불러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이 ‘주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가리’ 하며 찬양을 하는 상황이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감!!!동!!!이었어요. 여러 지역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수님 한분만 바란다고 고백을 하는데, 각 지역에서 각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의 지교회들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달 후, 2023년도 2월 말, 저희는 이곳 청주로 이사 왔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경북지역으로 가게 되면 약 40분을 달려서 안동교회로 가야했습니다. 계룡에서 대전교회를 오가는 길보다는 편하지 않아 보였기에 저녁예배 참석이 가능한 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지요. 만약 서해안 쪽으로 가게 되면 100km를 달려서 장항서부로 가야 했는데, 진형제는 이정도 거리의 교회에 휴가를 내지 않고서는 갈 수 없었고 저 역시도 혼자 그 길을 오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디로 보내 주실지는 모르지만,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곳에 순종하며 가기로 하고 쓰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교회와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청주로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해야 할 주님의 일이 있기에 보내셨다고도 생각합니다. 새로운 간증 내용이 추가되어 또 다른 교회에 가면, 지금 보다 더욱 풍성한 간증시간을 갖게 하시려고 이곳에 보내셨음을 확신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고 명령하신 것을 각 위치에서 전심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할 수 있음을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효원형제는 성경을 무척 열심히 읽었고 그 전과 비교했을 때 기도를 아주 많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심하고 체중조절을 하여 성공했고, 교회가야 하니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진형제는 각 교회별로 올라와있는 예배동영상을 통하여 말씀듣기를 지속했고 어느 순간이 지나고 보니 저희 두 사람은 성경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도 그런 모습은 지속되었고 목자님들께 질문하기도 하면서 하나님께로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추석 명절에 남원 할머니를 뵈면서 남쪽의 교회들의 일부를 방문 했었습니다. 남원 서도 삼계 전주… 각 교회를 방문하고 몇 가정과 계획 없던 만남을 갖게 되니 마음이 또 어찌나 꽉 차던지요.. 함께 눈물로 기도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성장하는 남편의 모습과 남편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저를 가르치시고 기르시는 중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10대 동안에 교회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20대에 교회를 나오긴 했지만 대학부 영은회 조차도 참여하지 않았기에 배움이 짧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성장기 동안에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과 사랑과 선행으로 교제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면서 지내온, 지내고 있는, 지내게 될 성도님들이 참 부럽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천천히 가르쳐 주시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저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구나’ 생각하지요. 그곳에서 제가 듣고 보며 배울 일이 있을 것이고,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어디로 보내시든지 절대 외롭게 지내도록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정신없이 이사 다니면서도 가까운 교회에서 하나 된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매번 감사드립니다. 영적으로 의지할 분이 계심과 동시에 이 나라 어딜 가든, 친정식구들보다도 빨리 닿을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 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어디에 간다 해도, 신랑보다 교회식구들을 더 의지할 것 같습니다. 성도 중 누군가가,, 혹여나,, 우주인이 되어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면 좀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죠?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 공간에도 세계 성도들 중의 한 명을 주님께서 꼭 보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된 복음을 전파하고 그 진리를 더욱 연구하고 굳건히 유지하며 전승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에서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하기 때문임을 고백하며 저의 긴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성장기에 있는, 저희 가족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이원일 자매

  • [성도 소개] 하늘의 축복을 그대 삶 속에_이향순 자매, 안유강 형제

    [성도 소개] 하늘의 축복을 그대 삶 속에_이향순 자매, 안유강 형제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로 이번 가을 세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신 이향순 자매님과 안유강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이향순 자매님은 청주교회 성도님이신 이순자 자매님의 전도로 교회에 발걸음을 시작하신 분입니다. 두 분은 시장에서 만나 친분을 가지게 되셨고, 이순자 자매님의 인도로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고 세례를 받기 위해 교육을 받으셨지만, 세례를 받기 전에 극심한 허리 통증을 앓으셨고, 세례 당일까지 이번에 세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점점 좋아지셨고, 감사하게도 세례를 받으실 수 있으실 정도로 호전되었습니다. 물론, 세례를 받는 그 순간에도 통증이 있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시며 두 손을 높게 들고 소리치는 모습은 마치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의 외침처럼 간절함과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다음으로 안유강 형제는 원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던 안의생 집사님의 손자입니다. 올해 청주교회로 재적을 옮기시면서 유강이와 함께 나오기 시작하셨는데, 9살이라는 어린 나이의 유강이에게는 처음 접하는 환경이 어색한지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유강이가 관심을 가지고 질문한 것이 바로 ‘세례’와 ‘성령’이었습니다. 목자님과 선생님들께 ‘세례’에 대해 질문하며 관심을 가졌던 유강이가 세례를 받고 나서 소감으로 한 말이 ‘오늘 세례를 받고 저의 죄사함을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이향순 자매님과 안유강 형제는 이제 참교회인 참예수교회의 성도로 저희와 함께 천국의 소망을 품고 나아가는 한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추워지는 날씨 속에 이런 따뜻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시고 두 영혼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두 성도님의 앞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길 소망합니다. 또한, 지금 신앙생활을 시작하셨거나, 신앙의 길을 걷는 모든 성도님들의 걸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길 기도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