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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성도간증]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청주교회의 모태인 운암교회가 있었던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에서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모태 신앙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종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모님이 무조건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때 당시 부모님은 자녀의 신앙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로 바쁘셨고 피곤한 육체를 이끌고 힘들게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집안의 형편도 어렵고, 청주교회의 상황도 너무 힘들다 보니 학생부 영은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성령을 못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먼저 성령을 받는 모습을 보고 샘도 나기도 하고, ‘나는 왜 성령을 못 받을까?’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 교회도 안식일교회나 여호와 증인처럼 혹시 이단이 아닐까? 그러면 우리 가족들이 다 이단에 빠진 것일 수도 있어’라는 의문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화요일 예배시간에 허야곱 목자님이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예배가 다 끝나고 나서 갑자기 목자님이 성령 못 받은 사람은 앞에 나와서 같이 성령받기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5명 정도의 학생이 강대상 앞에 나와서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을 못 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그날 드디어 저는 뜨겁게 성령을 받았습니다. 부러워서 보기만 했던 성령을 막상 받으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날은 구름위에 떠 있는 것처럼 붕 뜬 기분이었고, 집에 오자마자 방언기도 소리가 진짜로 나오는지 이불속에서 수시로 기도하던 적이 생각이 납니다. 성령을 받고 나자 우리 교회는 정말 성령이 역사하는 유일한 참 교회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이후로 한 번도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말씀처럼 성령은 저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또 성령은 내가 위험한 순간에서도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 제가 20대 중반 때의 일입니다. 저희 집은 방이 두 칸에다 자그마한 거실이 있는 18평짜리 2층 빌라에서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큰방은 부모님이 쓰시고, 작은 방 하나는 자연스럽게 제가 사용을 했습니다. 딸 하나라는 이유로 침대까지 들여 주셨습니다. 남동생 2명은 사람 한명도 자지 못할 정도의 작은 거실이 있었는데 그 좁은 거실에서 지냈습니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참운아” 하고 저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깊은 잠에 빠져서 듣긴 들었는데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한 번 “참운아” 하고 큰소리로 나를 깨웠습니다. 저는 그때도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참운아”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급하게 나를 깨웠습니다. 나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떴더니 내 눈앞에 커다란 남자가 자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방안이 캄캄했는데 생생하게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내 비명소리에 주무시고 계셨던 부모님이 놀라서 잠에서 깼습니다. 하지만 그 도둑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안에서 문을 잠궜기 때문에 부모님은 방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만 쾅쾅 두드렸습니다. 문이 안 열리자 갑자기 아버지가 베란다에 가서 도끼를 가져 오셨습니다. 도끼로 잠긴 문을 부수려고 하는 찰나에 나는 순간 용기를 내서 내 스스로 문을 열고 뛰쳐나왔습니다. 도둑은 내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창문을 통해 급히 도망쳐 갔습니다. 정말 큰일 날 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육적인 아버지가 ‘참운아’ 하고 나를 깨웠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아버지의 음성을 통해서 나를 깨워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위험한 순간에서 하나님은 나를 건져 주시기도 했지만 나의 몸까지도 하나님은 치료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임신이 잘 되지 않았던 나에게 하나님은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간절한 기도 끝에 하나님은 첫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임신을 하고 산부인과로 갔더니 의사는 내 얼굴과 몸을 보더니 여기로 올게 아니라 빨리 내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내과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갑상선 수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조금만 일을 해도 피곤해서 서너 시간씩 꼭 누워 있어야만 했는데 그 원인이 갑상선 수치가 높아서 그런 현상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병에 대해 무지한 나는 그저 내가 몸이 약해서 그런가 하고 무심하게 지나갔던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임신기간이긴 하지만 약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하고, 어쩌면 평생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 가장 간절하게 기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태아에게는 영향을 안 미친다고 하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약을 먹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하루치를 먹고 그 다음날부터 약봉지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몇 달 후 다시 검사하러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신을 믿고 있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했더니 호르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정말 신기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해 주시고 나의 약한 부분까지도 치료해 주신 하나님은 나의 삶 곳곳에 살아 역사하시고 계셨습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시아버님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드시는 일을 하셨는데 결국은 시부모님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주셨고, 사십 몇 년 동안 교회를 등지고 살면서 저희 친정엄마를 무던히도 핍박했던 저희 친정아버지도 기적적으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자녀 문제로 인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더 큰 축복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감사한데 하나님은 물질의 만족까지 얻게 해주시고 매일의 삶을 기쁨과 축복의 삶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은 감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순간조차도 하나님은 내 안에 들어와 역사하심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삶의 이유입니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삶을 드리고자 오늘도 난 기쁘게 찬송하며 기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김하늘 집사>

  • [성도 간증]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라_이경추 집사

    [성도 간증]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라_이경추 집사

    할렐루야∼

    우리 삶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친히 인도하심으로 지난 7월21일에 있었던 저희 어머니(최여임 자매님)의 세례식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하신 바에 따라, 매 순간 순간, 모든 상황들을 친히 이끌어 주셨죠. 세례식의 모든 과정이 마쳐지고 제가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소원이 실제가 됨을 알았을 때, 그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에, 그 넘치는 복에 겨워서 너무나 기쁘고 또 기뻤습니다. 정말 꿈만 같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죠.

     

    하나님께서 어떻게 친히 역사하셨는지, 얼마나 세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 속에서 이번 세례식이 진행 되었는지, 정말 놀라운 그 사실을 아주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간증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 만이 홀로 영광 받으시길 원합니다.

     

    “환자 상태”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세례를 받으시는 저희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인데요, 과거 저희 어머니께서 연중 한두 차례 정도 초청되어 교회를 나오시고 또, 교회에서 심방도 다녀가시고 하다가, 2019.04.02.일에 갑작스런 낙상 사고를 당하셔서 뇌 손상으로 인한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몸의 마비와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그저 눈만 깜박이며 5년 넘게 누워만 계셨습니다. 속칭 식물인간 이셨던 것이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콧줄을 통해서 액체로 된 식사를 하셨으며, 무엇보다도 뇌수술을 받으시고 처음엔 스스로 호흡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관 절개하여 목에 구멍을 뚫어 폐와 목구멍을 통해 숨을 쉬게 되어있는 상태이셨죠.

     

    문제는 이런 상태에서 혹여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목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가게 된다면, 폐 부종으로 매우 위험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번 세례식은 저희 어머니의 목숨을 걸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기관 절개 외에도 자가 호흡의 정도나 5년 동안 병상에서 굳어버린 몸과 전날 토하셨던 몸의 상태 등등 걸리는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중 문제였습니다. 사실 세례식 날짜를 잡아 놓고도 제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신앙(세례)과 현실(어머니의 목숨)이라는 이 괴리감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죠. 그만큼 이번 세례식은 하나님의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례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성도의 합력”

    제가 이번 세례의 과정을 통해서 느꼈던 2가지가 있는데요, 그 첫째는,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신다’ 입니다.

    ‘15 성 역사가 오십이 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6:15∼16)

     

    100년 넘게 무너진 채로 방치되었던 예루살렘 성벽이 적대 세력의 위협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불과 52일이라는 짧은 공사기간 내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이번 세례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일’입니다. 제가 이것을 명확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밀하시고 주도 면밀 하신지 빠짐없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또, 제가 이번 세례의 과정을 통해서 두 번째 느낀 것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자 하는 성도들의 하나 된 마음과 합력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어머니의 세례를 받치겠다고 제가 마음으로 결정은 했지만 이후에도 순간순간의 난관과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여러 성도님들의 조언과 하나 된 마음으로 함께 애써주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 일이 진행 된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이것을 이루어 가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죠. 온 성도가 이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 해주시고, 하나님의 선을 이루고자 온갖 수고의 헌신을 해주셨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 너무나 감사를 드립니다.

     

    “희망의 빛(성령)”

    2019년 4월 2일에 저희 어머니께서 뇌출혈 수술을 받으시고 이에 대한 가족들의 상심이 매우 컸으며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멀쩡하시던 분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제 마음의 상심이 너무나 컸으며 그저 침통하고 암담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4일 후인 4월 6일 안식일에 저희 아버지께서 지난 주에 이어 두 번째 교회를 나오셨는데,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니로 인한 충격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께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아버지를 제쳐 두고, 아무래도 좀 더 애착이 가는 어머니를 전도 대상자로 삼아, 어머니께서 1년에 몇 차례씩 교회에 나오셨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어머니보다도 교회를 전혀 나오시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먼저 선택하셨죠. 어머니는 쓰러지셨고 아버지는 세례를 받지도 않으셨는데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어머니의 일로 제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져 있었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제게 희망의 빛을 보여주셨던 것이죠. ‘어떻게 생전 교회를 나오시지 않던 아버지께서 성령을 받으실 수 있을까?’ 아버지를 생각할 때면 너무나 감사했지만 또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고 하나님께서 제게 보여주신 희망의 빛을 제가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해 두었죠.

    ‘내게 보여주신 메시지 대로라면 분명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비해서, 또 때로는 아버지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더 안타깝고 고된 삶을 사셨던 어머니께서, 혹여 세례를 받지 못하고 이대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이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분명 희망의 빛을 보여 주셨는데, 그렇게 된다는 것은 저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이시지요.

     

    더더욱 그런 것은, 아버지께서 성령을 받으시고 이후 어머니가 쓰러지심으로 인해, 아버지께서 더 신앙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때문이라도 더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쓰러진 어머니께서 혹여라도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면, 오히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통해 성령과 세례를 받으셨는데 이에 대한 하나님의 그 뜻은 과연 무엇일까? 혹여 어머니께서 세례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는 것은, 저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제게 보여주셨던 희망의 빛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이번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그 뜻대로, 제게 보여주신 희망의 메시지 대로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죠. 주님의 크신 은혜에 너무나 감사 드립니다.

     

    “기도”

    어머니는 뇌수술 이후에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는데 그곳에는 누워 계신 분들마다 말을 못해 눈만 깜박이시거나 콧줄로 식사를 하시는 분들, 기관 절개를 하신 분들, 어떤 분은 뇌가 반쪽이 없으셨고 또 어떤 분은 저희 어머니처럼 욕창이 있으셨는데 그런 와중에 저를 더욱 심란하게 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 뵈러 면회를 갈 때마다 침대가 하나 둘 비워져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분씩 한 분씩 이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제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고 조급했습니다.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쓰러지시고 제가 한 달 동안 저녁 금식기도를 했는데 그럼에도 어머니께서는 큰 차도가 없으셨습니다. 당시에는 당장 눈앞에 어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낙담이 될 때도 있었지만 역시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는 인내를 가지고 소망을 잃지 않고 기도해야 하더라구요, 왜냐면 하나님의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회복이 더뎌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이 때를 위해서 저희 어머니를 5년 동안 큰 어려움 없이 견디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심했던 욕창도 말끔히 낫게 해주셨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3년의 코로나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저희 어머니를 큰 어려움 없이 잘 보살펴 주셨죠.

     

    시간이 지나면서 제 스스로의 긴장감도 떨어지고,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조금씩 일상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5년 동안 제가 기도를 많이 했을까요? 기도는 턱없이 부족했죠. 그럼에도 기도에 대해 제가 느낀 바는 ‘하나님 앞에 그 선한 마음이 진실되고 절실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귀를 기울이신다’ 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도의 힘이 약해지면서 제가 안되겠다 싶어서 ‘그래, 퇴근 길 운전하면서 울자, 그렇게 기도하자’ 그래서 퇴근 시 운전을 하면서 간혹 울 때가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면 내가 이렇게 울겠구나’ 라고 할 정도로, 눈물 콧물 대성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하나님 진심으로 제발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수많은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번만 이번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 너무나 불쌍합니다. 제발 저희 어머니 살려주세요. 이대로는 안됩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가 울면서 때로는 입으로 하나님께 정말 호소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당연히 많이 해야 하겠지만, 혹여, 기도가 턱없이 부족할지라도 그 기도가 진심 어린 절실한 기도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분명 보십니다. 제 자신이 그렇게 많이 기도하진 못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기도가 있었다는 것이죠.

     

    저히 어머니께서 5년 동안 대단한 특혜를 받고 있으셨는데요, 그것은 전도대상자의 신분이면서도 5년 동안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합심 기도 제목에 그 이름이 올려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기도 제목에 올라오는 분들은 세례를 받은 성도분들이셨지만 저희 어머니는 성도가 아님에도 올려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특혜였고 이방인으로서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다 보니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던 것이죠. 오늘날 이 기적의 원인은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때(하나님의 준비)”

    제가 어머니께서 쓰러지시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희망의 빛(아버지의 성령)을 마음에 간직해 두고 ‘어머니 세례에 대한 하나님의 때가 언제일까?’ 를 늘 마음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매년 봄 교회 세례식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저의 관심사였고, 또, 매년 여름을 기다려 왔죠. 왜냐면,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를 볼 때, 물이 차가운 가을이나 겨울보다는, 봄이나 이왕이면 여름이 적기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었을까?’ 그러던 터에 세례식 두 달 전인 5월 19일에 저희 작은 형이 이사를 해서 형 내외분과 함께 식사하는데 저희 형수님이 어머니의 세례에 대한 언급을 하신 것이었죠. 예전에 잠간 얘기를 했었지만 코로나 기간이 있었고 한참 동안 다시 제대로 말씀을 드리지 못했었는데, 형수님께서 먼저 언급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세례 때문에 마음 아프시죠. 받으신다면 서방님 마음이 한결 가벼울 텐데요.” 그 말에 비추어 볼 때 형수님의 마음은 이미 허락한 것이었죠. 문제는 형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지 않던 형수님의 이 말을 듣고,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일까?’를 또 생각하면서 그 날 이후 세례에 대한 마음으로 여름 날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6월이 지나고 이제 7월로 넘어가는데도 아무 기별이 없자, 제 마음은 아직 여름이 다 지나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때가 아닌가 보다’라고 잊혀 있었죠. 그러던 중에 요양원으로부터 어머니의 위독에 대한 전화를 받은 형이,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제게 전화를 했던 것입니다.

     

    세례식 전에 있었던 또 다른 특이사항이 있는데요, 그것은 교회가 저희 어머니를 거의 5년 만에 심방을 했다는 것이죠. 세례식 한 달 전인 6월 5일에, 그간 코로나도 있고 해서 5년 동안 못하다가 심방을 다녀간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 심방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가 잊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먼저 심방을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세례식 한 달 전에 심방을 해서 목자님께서 안수를 해주셨죠. 세례식 전에 특이사항이 또 있는데요, 몇 년 동안 어머니 요양을 도맡아 해주시던 담당 팀장을 세례식 한 달 전쯤에 하나님께서 바꾸셨습니다. 물론 기존 팀장님도 잘 하셨는데 사람마다 일에 대한 판단과 스타일이 다르죠.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저희 어머니께서 토하셨는데, 5년이 넘게 누워만 계시니 이제 장기의 기능이 다 되었는지 위에서 소화를 못하고 역으로 토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 오신 팀장님이 이것이 위독할 수 있음을 직감하고 선제적으로 대응을 한 것이죠. ‘어머니께서 위독할 수 있으니 가족분들께서 면회를 왔으면 좋겠다’라고 저희 형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날 저녁 5시에 형이 바로 면회를 했고, 저녁 7시에 제게 전화를 해서 내일 어머니 면회를 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신 새로 오신 팀장님의 판단과 선제적 대응으로 인해서, 그날 저희 가족들의 마음은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 였습니다. 당장 오늘내일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정말 하나님의 때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아주 세밀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는데요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세례식 4일 전인 7월 17일에 형이 면회를 하고 나서,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니 내일 면회를 가라고 제게 전화했습니다. 제가 퇴근하고 청주에 오면 저녁 7시가 넘는데 면회를 할 수 있을까요? 이미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아예 이틀을 쉴 수 있게 예비하셨습니다. 저의 근무지인 학교가 1년에 한 번씩 전기 검사로 인한 전기 사용 불가로 하루를 강제적으로 쉬게 합니다. 그래서 당초 7월 19일 금요일이 쉬는 날 이었죠. 그런데 쉬기 10일 전에 알았는데 방학 기간이고 해서 쉬는 김에 직원들 하루를 더 쉬라고 7월 18일까지 쉬게 했던 것이죠. 이미 이틀이 쉬는 날 이기 때문에 어려움 없이 다음 날 어머니 면회를 갈 수 있었습니다. 사실 면회 뿐만 아니라 세례식을 앞둔 이 이틀은 제게 아주 중요하게 사용된 날이었죠. 하나님께서 미리 이 날을 예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이틀 동안 요양원에 가서 외출에 대한 쉽지 않은 승인을 받고 또 집사님과 세례 장소 답사를 하고 휠체어를 빌리고, 구급차 예약을 하고 또 관련 성도님들과 통화하며 각종 물품을 사고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예비 해 놓으신 이틀이라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원만히 준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이미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세밀하게 예비 해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의 조언”

    어머님의 세례식을 준비할때 많은 성도님들의 조언이 있었는데 한 자매님께서 해주신 조언의 말씀은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였습니다. 이따가 다시 말씀을 드리겠지만, 세례 결정을 하고서 순간 순간의 난관과 넘어야 할 산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말이 자꾸 생각 났습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사실 우리 신앙이 그런 것이죠. 신앙은 단순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입을 통해 제게 주시는 말씀이었던 것이죠.

     

    “형의 승낙을 받아냄”

    외출이 가능하다는 얘길 듣고 먼저 세례에 대한 형의 결단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형이 승낙을 하면 내일 아침에 요양원에 가서 외출을 얘기하려 했는데. 형은 아무래도 어머니의 현 건강 상태가 걱정이 된다며 고민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뇌 수술을 하시고 머리 뼈 조각을 붙이지 않은 상태여서, 머리 한쪽이 말랑말랑 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물에 닿았을 때를 걱정하는 것이었죠. 제가 괜찮다고 설명을 했지만 형은 자꾸 어렵지 않겠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하려고 하다가, 순간 감정에 북받쳐서 형 앞에서 저도 모르게 울며 속 마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형∼ 제발, 제가 한이 맺혔습니다.” 

    동생이 울며 호소하자 형은 동생을 달래는 마음으로 승락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형 앞에서 울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까지도 주신 것 같습니다. 

     

    “세례식 준비”

    세례식을 위한 중요한 결정인 형의 허락과 요양원의 외출 승인을 받아냈기 때문에, 이제 다음은 세례식 진행에 대한 실질적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오전에 박집사님과 함께 서둘러 청천으로 세례 장소 답사를 다녀왔고, 오후에는 휠체어를 빌리고 김ㅇㅇ 자매님과 통화하여 방수 밴드와 의료 물품을 챙겼습니다. 수세에 대한 방법에 대한 고민을 목자님과 박집사님과 함께 나누었죠. 어머니께서 5년 동안 몸이 굳어있는 현 상태에서 업고 세례를 받쳐야 할지, 아니면 휠체어에 태운 채 받쳐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들것으로 옮겨 받쳐야 할지, 그 어느 것 하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어떤 방법이더라도 여러 명이 동원되어 각자의 역할이 필요했고 어머니의 호흡과 날씨로 인한 감기 등의 건강 상태를 생각할 때, 최단 시간 내에 모든 것이 재빠르게 진행 되야만 했습니다.

     

    “세례식 거행”

    구급차가 도착하자 먼저 오신 분들이 다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움직이셨는데요, 결코 실수 없이 세례식을 무사히 마쳐야 했기 때문에 휠체어에 또 들것에 다른 분을 태워서 예행 연습도 해보고 혹여 호흡 곤란이 올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물가 가까이로 가서 목 부분에 방수 테이핑을 했으며 무려 4명이 사각에서 들것을 들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뜨거운 물을 데워서 나오자마자 간단히 목욕을 시켰습니다. 아침에 간간이 비가 조금 왔고 장마철이라 하늘은 먹구름이 여전하였으며, 세례식 전날 밤에는 비가 장대같이 쏟아진 상태에서 물이 차갑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청주에서 출발할 때부터 하늘이 먹구름으로 날씨가 오락가락했는데 구급차가 세례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날씨가 급변하여 쨍쨍 찌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날씨 속에서 물에 들어가니 차갑지 않았고, 약간의 시원함이 있는 최적의 물 온도의 상태였으며 물이 너무나 깨끗한 것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눈에 보였습니다.

    “극도의 긴장감”

    이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 다가왔는데요, 세례를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는 성도님들의 마음속에는 다들 이 순간을 위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죠.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혹여, 단 한 방울의 물이라도 목구멍을 통해 폐로 들어가게 된다면, 폐 부종으로 매우 위험하게 될 수 있는 상황임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극도의 긴장감 속에 있었던 한 분이 있는데요, 누굴까요? 김ㅇㅇ 자매님께서 요양원에서부터 구급차를 함께 타고 오면서 저희 어머니의 환자로서의 상태를 살폈죠. 호흡의 정도, 산소 포화도 측정, 석션 진행. 이제 가장 중요한, 정말 위험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목자님의 선언과 함께 드디어 들것에 실린 어머니께서 물속에 잠기게 됩니다. 재빠르게 들어 올리자마자 모두가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물 밖으로 막 옮기려는 순간, 김ㅇㅇ 자매님께서 소리칩니다. “멈춰!”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다들 움찔한 상태로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자매님께서 급히 어머니의 목 방수 테이핑 부분을 떼어내어 한 방울의 물이라도 들어갔을까 노심초사, 긴장감으로 살핀 후 전혀 젖지 않고 아무 이상이 없자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죠. “됐어요, 물 안 들어갔어요.”

    세례 집례 전 가족사진인데요, 세례식이 기쁨의 날이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세례 집례 전 가족사진을 찍을 때면 기쁨의 미소를 짓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면 저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얼굴에 긴장감이 보여지죠.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니고 사실 웃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성취”

    ‘일을 계획 하시는 여호와, 일을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에게 부르짖어라. 그러면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전에 알지 못하던 놀라운 일들과 비밀들을 일러 주겠다.’

    (렘33:2∼3)

     

    예레미야가 왕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하나님께서 유다의 회복에 대한 위대한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멸망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몸이 갇혀 있는 상황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바꾸실 수 있죠. 인간의 상식으로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저희 어머니, 최여임 자매님의 세례식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으로 불과 2∼3일 만에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고민하고 또 애를 써봐도 근본적으로 이 일이 하나님의 뜻하신 바라면, 그 모든 것들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한마음으로 기도해주시고, 온갖 수고의 헌신을 아끼지 않으신 모든 성도님들 한 분 한 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모든 상황 순간 순간을 친히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글작성 : 이경추 집사

     

     

     

     

  • [교회 행사] 청주, 천안, 대전, 장항교회 남녀노소 모두의 축구!

    [교회 행사] 청주, 천안, 대전, 장항교회 남녀노소 모두의 축구!

    2024. 8.31 안식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하나 둘 청주 용정 죽구장으로 모였습니다. 

    오랜만에 대전, 천안, 장항, 청주교회 형제님들이 모여 축구를 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날을 손꼽아 기다린 어린이들도 한자리 차지하고 축구 경기를 펼쳤습니다.

    최연소 3살 유아부터 50대까지 모두가 축구로 하나되었던 그날의 기록을 나누고자 합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기관 소개] 매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한나 신도회

    [기관 소개] 매일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한나 신도회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청주교회 한나 신도회를 소개하겠습니다.^^

     

    청주교회에는 총 4개의 여신도회가 있는데 높은 연령순으로 마리아회, 한나회, 루디아회, 에스더회가 있습니다.

    한나회는 56~64세의 자매들 11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녁 예배 출석 평균 7명, 안식일예배 출석은 평균 9명으로 안식일 오후 신도회 시간에는 예배를 통해 받은 은혜와 깨달은 바를 나누고, 한 주 동안 특별히 하나님께 받은 은혜로운 간증도 나누는 복된 시간을 가집니다.

    연 2회 생일 축하 모임이 있는데 이날엔 근사한 곳에서 맛난 음식을 먹으면서 영육간에 더욱더 강건하기를 함께 축복합니다.

    안식일 식사 준비와 설거지 봉사, 안내 봉사 등에 동참하며 총회에서 지원요청을 받는 식사 봉사에도 젊은 자매들과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나 신도회는 매일 새벽기도회에도 40%정도의 참석율을 보이고, 매주 수요일에는 예배당 2층을 맡아 청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5주 안식일 신도회 시간에는 <여신도회 연합 찬양예배>를 가지는데 어르신 마리아회부터 막내 에스더회까지 모두가 즐겁게 찬양을 나누면서 특별한 감동과 은혜의 시간을 누리고 있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난 시절보다 더 큰 열심과 전심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후배 자매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애쓰면서, 한편으론 믿음의 선배이신 마리아 신도회 자매님들의 신앙을 본받아 후배 자매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나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가운데 교제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면서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허락해주시는 주님께 감사의 기도와 찬양을 올리는 한나 신도회 소개였습니다.^^

     

    임마누엘~~♡

  • [성도 소개] 동반 입대하여 군 복무 중인 형제들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동반 입대하여 군 복무 중인 형제들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군대’에서 열심히 군 복무 중인 멋진 두 형제를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두 형제의 이름은 김진표, 이솔진 형제로 청주교회에서도 열심히 사역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형제들입니다. 함께 두 형제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김진표-

    1. 소속된 부대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2. 저는 6사단 수색중대에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1. 소속된 부대에서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2. 장비를 통해 적의 활동을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1. 전역일은 언제인가요?
    2. 9월 10일입니다.

     

    1. 기도제목이 있다면?
    2. 교회와 단절되어 있는 것 같은 군대 내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이솔진-

    1. 소속된 부대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2. 6사단 수색중대에서 복무하고 있습니다.

     

    1. 소속된 부대에서의 역할이 무엇인가요?
    2. 자동소총수로 기관총 사수하고 있습니다.

     

    1. 전역일은 언제인가요?
    2. 9월 10일입니다,

     

    1. 기도제목이 있다면?
    2. 군대를 하나님 안에서 보낼 수 있도록

     

    보시는 것처럼 두 형제는 함께 군대에 들어가는 동반 입대를 했는데, 그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군대에 가자던 약속도 있지만, 둘이 함께 가능한 빠르게 교회 사역으로 돌아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감사하게도 휴가 날짜가 맞아 학생부와 청년부가 연합해 진행된 ‘신앙여행’에 함께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군대는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의무로 가야 하는 곳이지만, 그곳은 세상은 물론 신앙과도 단절되는 곳입니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 고된 훈련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신앙을 지키기는 매우 어려운데요, 마치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던 고립된 광야 생활과 닮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고, 의지해야만 했던 것처럼, 군대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많은 청년들이 군대를 다녀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간증하는데 머지않아 우리 김진표, 이솔진 형제도 무사히 군대를 다녀와 그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그 은혜로 지켜진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오길 소망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복음 메세지]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복음 메세지]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말씀 제목]  무엇을 뿌리고 계십니까? (삼하14:1-23)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7월 20일

    어떤 퇴임 목자님의 간증이다. 스무 살이 되어 직장을 구하고 생각했다. ‘이제 월급을 받고 집안도 안정될 테니 담배도 좀 피우고 술도 좀 배우고 노래도 좀 배워야겠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에 친근하신 할머니가 “아무개야! 이제는 교회 나가야지?” 권유하시더란다. 그래서 “예”라고 대답하고 그분을 좇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담배도 술도 유행가도 모두 끊고 교회 생활에 빠져든 것이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어찌나 즐겁던지 나중에는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고 총회로부터 권유 받아 목회자가 되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의 일꾼으로 섬기다가 정년 퇴임하셨다. 과거를 돌아볼 때 동네 할머니의 한 마디. “아무개야! 이제는 교회 나가야지?” 그 한 마디의 말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런 간증을 듣노라면 우리의 말과 행동의 영향력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은 말과 행동이었겠지만 그것이 세월이 흘러 먼 미래에 열매를 맺는다. 그것은 선한 길에도 악한 길에도 다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인생은 어쩌면 정원을 가꾸는 일과도 같다. 하나님이 울타리 쳐주신 정원에 씨를 뿌리고 물주고 가꾸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씨를 뿌리고 어떤 관리의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꽃밭이 되기도 하고 쑥밭이 되기도 하고 텃밭이 되기도 한다. 성도는 내가 현재 내 말과 행동의 씨앗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성경은 그런 경성함에 대해서 교훈한다.

    (잠 14:15) 『(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우리는 인생의 정원에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그리고 장래에 그것이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가? 오늘은 다윗이 드고아 여인의 비유를 통해 압살롬의 귀환이 허락된 사건에서 그 관련된 인물들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함께 생각하고 교훈을 받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압살롬은 맏형 암논을 살해하고 그술 땅으로 도망했다. 그런데 모든 부모의 마음이 그렇듯이 비록 범죄자였지만 다윗 왕은 압살롬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있었다. 자식이 악하고 못나도 미워할 수만은 없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 않는가? 또 다윗은 아마도 압살롬 모습 속에서 과거 범죄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향한 아버지로서의 마음이 더 애틋했을 것이다. 그런데 군대 장관 요압이 그런 다윗의 마음을 눈치챘다. 그래서 압살롬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할 계략을 꾸미게 된다. 요압은 드고아 출신의 한 여인의 입안에 비유를 넣어주고 다윗 왕 앞에 나가 말하게 한다. 드고아 여인은 마치 자신의 가정 문제를 왕께 호소하는 것처럼 가장해서 이런 비유를 베푼다. “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서로 싸우다가 한 아들이 다른 아들을 죽였습니다. 율법대로라면 살인한 아들은 사형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저희 집안에 대가 끊기니 한 아들만이라도 살 수 있게 임금님이 특별 조치를 해주십시오”라는 간청이었다. 다윗 왕이 그 청을 들어주겠노라고 대답하니까 비로소 드고아 여인은 자기 정체를 드러낸다. “왕께서 사실은 그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습니까?” 지혜로운 다윗왕은 단번에 이 여인이 요압 장군의 사주로 나온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에 다윗 왕은 압살롬 왕자를 귀환시키라고 수락하게 된다. 요압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꾸몄을까? 그가 한 일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또 다윗왕은 여인의 비유 한 마디에 아무런 훈육의 과정 없이 압살롬을 귀환시킨 것은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압살롬은 과거 자신의 과오에 대해 아무런 가책이나 반성 없이 그냥 지나친 것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성경에는 많은 사건과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명확하게 이것이다 저것이다 밝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는 독자가 성경 안에서 판단하도록 맡겨진 것이다. 그래서 하나 하나의 사건을 추적하다 보면 말씀 안에서 자연스러운 답을 얻게 되고 ‘아 그 때 뿌려진 것이 좋은 씨였구나! 악한 씨였구나!’ 를 판단하게 된다. 과연 요압과 다윗과 압살롬이 자기 인생에서 뿌린 씨앗은 어떤 씨앗이었고 그로 인해 미래에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는 무엇인가? 세 인물을 통해 발견하는 교훈은 이렇다.

    첫째, 요압은 ‘야망’의 씨앗을 뿌려 ‘상실’의 열매를 맺었다.

    (삼하 14:1-2) 『[1]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로 향하는줄 알고 [2] 드고아에 보내어 거기서 슬기있는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이르되 청컨대 너는 상제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요압 장군은 드고아라는 곳에 있는 한 여인을 통해 압살롬의 귀환을 도모한다. 요압은 왜 압살롬 왕자가 귀환하는 일을 추진하고자 했는가? 왕을 향한 충성심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었는가? 요압과 관련된 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요압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다.

    요압은 전쟁에서 아우 아사헬이 전사한 것을 이유로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죽였다(삼하 3:28-29). 다윗 왕의 입장과 명령보다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 앞섰다. 요압은 행동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로 인해 백성들은 혹시 다윗 왕이 사주해서 죽인 것 아닌가 하는 오해의 상황이 발생했다.

    또 요압은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모반을 피해 도망갔다가 복직되었을 때 다윗은 압살롬을 생포하고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어명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주저 없이 압살롬을 죽였다.

    (삼하 18:14)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만약 요압이 다윗 왕을 생각하는 순수한 뜻만 있었다면 어명을 어기고 왜 압살롬을 죽이겠는가? 요압은 압살롬을 아끼는 마음도 없었고 왕명을 준수할 충성심에도 결함이 있었다.

    또 요압은 다윗의 사후 솔로몬을 세우고자 하는 다윗 왕의 뜻과 다르게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이런 몇 가지 사실을 종합해 보면 요압은 장차 왕이 바뀌더라도 군장이라는 자기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려는 욕망에 있었기 압살롬의 귀환을 추진한 것도 그 이유임을 추정하게 한다. 그 의도는 드고아 여인의 비유 안에서도 발견된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에서 죽은 아들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산 아들이 죽지 않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요점이다. 여기서 죽은 아들은 암논을 상징하고 살아야 할 아들은 압살롬을 상징한다. 요압이 이 비유를 통해 다윗 왕에게 전달하는 뜻은 하나님의 산업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즉 다윗의 왕통을 이어가려면 압살롬을 귀환시켜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다. 즉 요압은 압살롬을 왕통 계승자로 여겼던 것이다. 이처럼 요압은 장래 왕 후보자의 은인이 되어 자기 입지를 굳게하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욕심에 의해 행동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삼하 17:25) 『압살롬이 아마사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장을 삼으니라 아마사는 이스라엘 사람 이드라라 하는 자의 아들이라 이드라가 나하스의 딸 아비갈과 동침하여 저를 낳았으며 아비갈은 요압의 어미 스루야의 동생이더라』

    압살롬은 나중에 모반의 과정에서 요압이 아닌 아마사를 군장으로 삼았다. 소위 토사구팽 당한 것이다. 이렇게 요압은 압살롬의 귀환에 직접적인 공로자였지만 그의 야망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결국 솔로몬 왕 즉위 후 최후를 맞이한다.

    (왕상 2: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 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그래서 잠언 5:22에 말하기를 ‘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인다’했다. 이처럼 요압은 자기 욕망을 위해서 씨앗을 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 상실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오늘날 성도님들은 어떤 씨앗을 뿌리고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우리 인생의 정원에 삐뚤어진 욕망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중에 가시가 되어서 나를 찌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울타리 쳐주신 우리 인생의 정원을 가시밭이 아니라 아름다운 꽃밭이 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 공의, 감사, 희락, 선하고 아름답고 좋은 씨앗들로만 뿌리길 바란다. 머지않은 미래에 천국의 향기가 가득한 정원을 가꾸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둘째, 다윗은 ‘방관’의 씨앗을 뿌려 ‘해악’의 열매를 맺었다.

    (삼하 14:14)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모으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어쫓긴 자로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않게 하시나이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나단 선지자의 비유와 비교할 수 있다. 나단 선지자의 비유는 다윗을 책망해서 그 양심과 신앙을 바로 잡았지만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다윗의 판단을 혼미케 해서 공의를 보지 못하게 했다. 즉, 다윗의 부성애와 왕통 계승의 대의명분을 앞세워 압살롬을 귀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살인에 대한 책임과 처벌의 과정을 아주 조치 없이 덮어버리게 만들었다.

    드고아 여인의 비유에는 현실과 다른 맹점이 숨어 있다. 비유 속 살인한 아들은 우발범이지만 현실의 압살롬은 치밀하게 계획 살인한 자였다. 또 그 아들마저 죽으면 집안의 대가 끊긴다고 했는데 현실의 압살롬은 독자는 아니었다. 압살롬 외에도 다른 왕자가 많다. 아도니야도 있고 솔로몬도 있다. 만약 압살롬이 왕위 계승자로 마땅치 않으면 다른 합당한 아들을 세우면 된다. 즉 압살롬이 유일한 옵션은 아니었다. 이처럼 드고아 여인의 비유는 다윗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다윗은 범죄한 압살롬을 아무런 조치 없이 귀환하게 명령한 행동은 공의로 나라를 통치해야 하는 왕으로서 매우 적절치 못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잠 16:12) 『악을 행하는 것은 왕의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왕통 계승이라는 대의 명분에 하나님의 공의를 등지는 선택을 한 다윗은 결국 제 발등을 찍게 된다. 귀환한 압살롬이 오래지 않아 왕이 되겠다고 모반을 일으킨다. 어제 형제를 죽이더니 오늘은 아버지를 죽이겠단다. 아버지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겠다고 하는 패륜의 길을 걷는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 주변에는 나단이 주는 비유가 있고 드고아 여인의 비유도 들려질 수 있다. 우리는 어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우리는 나를 아프게 할지라도 양심과 신앙을 바로 세우는 음성인가 아니면 꿀같이 달고 명분도 세워주는, 그러나 공의와 정의는 무너뜨리는 악한 음성인가? 부디 선한 것에 기울이고 악한 것은 귀를 막고 거절할 줄 아는 분별력이 있어야겠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정원에 가시와 독초가 자리지 않고 향기롭고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이 가득하게 하는 비결임을 깨닫는 저와 성도가 되자.

    (욥 34:3-4) 『[3]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 [4]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셋째, 압살롬은 ‘분노’의 씨앗을 뿌려 ‘파멸’의 열매를 맺었다.

    압살롬은 사람이 범죄 했을 때 적절한 징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성경은 압살롬의 외모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고 했다.

    (삼하 14:25) 『(25)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외모가 이렇게 출중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압살롬은 처음에는 그의 영혼의 정원에 ‘분노’의 씨앗이 심겼다.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이 뿌려졌다. 왕위에 대한 ‘욕망’이란 씨앗이 뿌려진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혐오’의 씨앗도 뿌려졌다. 이런저런 씨앗이 뿌려졌더니 나중에 시간이 지나니까 영혼의 정원 안에 독초와 가시가 가득했다. 이처럼 형제를 죽인 그 행동이 잘 처리되지 않은 결과 이제는 아버지까지 죽이고 왕이 되려는 패륜아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암논을 죽인 책임을 지우고 잘 처리했다면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압살롬은 외모는 훌륭했으나 그의 영혼은 분노와 욕망과 혐오의 감정으로 일그러진 프랑켄슈타인 괴물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 괴물은 다윗 왕 측근의 모반 진압 작전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분노와 욕망과 혐오의 씨앗이 심겨진 그의 인생의 정원은 결국 독초와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 타인의 손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갈 6:8)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오늘날 우리는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는가? 또 나중에 언제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내다보는가? 인생의 정원에 뿌려지는 말의 씨앗, 행동의 씨앗, 생각의 씨앗을 잘 관리해야겠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사람의 음성은 걸러내고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고 받아들여야겠다. 반대로 내가 뿌리는 말과 행동의 씨앗이 타인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겠다.

     

    롱펠로우 시인의 ‘화살과 노래’라는 시.

    내가 쏜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한순간에 저 너머로 사라진 그 화살을

    바라본들 볼 수 있을까?

    /내가 부른 노래는 어디로 울려 퍼졌을까?

    한순간에 저 머너로 울려 퍼진 그 노래를

    귀 기울인들 들을 수 있을까?

    /먼 훗날 세월이 흘러 흘러 흐른 뒤에야

    나는 다시 보았네, 떡갈나무 밑동에

    그대로 박혀 있는 옛 모습 그 화살을

    /먼 뒷날 시간이 가고 가고 간 뒤에야

    나는 다시 들었네, 친구의 가슴에서

    그대로 울리고 있는 그 시절 그 노래를

     

    오늘 내가 쏜 화살이 타인의 가슴에 박힌다. 오늘 내가 부른 노래가 타인의 가슴에 남는다. 주님이 공급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항상 지혜롭게 분별하고 바르게 행동하고 신중히 선택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 [복음메시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막 5:25-34)

    [복음메시지]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막 5:25-34)

    2024년 8월 10일 (토) 오전예배

    설교제목 :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본문말씀 : (막 5:25-34)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5-26)

    (25) 본문의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하혈)을 앓고 있었다. 이는 극심한 인생의 고통을 겪고 있던 것이다. 많은 의사를 찾아갔음에도 그 누구도 병을 고칠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의사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시기였기에 여인은 경제적으로도 큰 손실을 입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 와중 여인의 병세는 더욱 심각해지기까지 했다.

    그때 여인은 하나의 소문을 듣는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문이었다. 어떻게 여인은 그 소문을 들을 수 있었을까? 누군가가 그 소문을 냈기 때문에 여인에게까지 소문이 전해질 수 있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문을 내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 작은 소문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본문의 여인처럼 수많은 고난이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그때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당시 유출병 있는 자가 손을 대는 것은 율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레 15:11)

    유출병 있는 자가 물로 손을 씻지 아니하고 아무든지 만지면 그 자는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레 5:11)

    그럼에도 여인은 자신이 들은 소문대로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고 믿은 것이다. 여인은 믿음대로 병이 낫게 되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2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신다. 당시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당황을 금할 수 없었다. 여인은 예수님의 허락을 받지 않고 옷에 손을 대었지만 사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둘러보시니 여인은 결국 두려움에 떨며 자신이 옷에 손을 대었음을 자백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책망하시지 않고 축복해주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4)

    “ 딸아 ” -> 사랑이 담긴 단어이다. 사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면서 ‘딸,아들’이라고 부른 적이 본문 외에는 없다. 더불어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구원과 평안, 건강까지 주셔서 축복을 주신다.

    사실 예수님의 질문에는 그분의 뜻이 담겨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여인의 믿음을 소개시켜주시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구원을 허락해주시겠다는 메시지를 전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인을 기어이 찾아 축복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뜻이 담겨있었다.

    우리도 인생의 고통 속에 있을 때 절망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나아와 그 분의 옷에 손을 대는 믿음으로 구원을 갈구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유튜브 설교 영상

  •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8년 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맹인 농아 봉사 서클 선배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신앙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이 갑자기 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하게 되면서 심근경색이 있으시던 아버지는 가슴 통증이 더욱 빈번해지고, 동생은 학비를 못 내서 고등학교에서 쫓겨날 지경이었고, 저 또한 등록금도 기숙사비도 제대로 내지 못해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형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시 19살의 대학교 1학년이던 저는 혼자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아주 벅찼습니다. 아프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세상은 공평치 못할까, 아빠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해야 할까?” 이런 생각 속에서 그 당시 저는 의지할 무언가를 붙들고 싶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던 중 창조론과 진화론 강연을 듣기도 하고, 성 오거스틴의 <참회록> 등 여러 서적을 읽으면서 저의 이성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존재 근거를 찾기 시작했어요. “석가모니나 공자는 부활이 없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니 기독교가 진리이지 않을까?” 이렇게 결론지으면서 선배님을 따라 안식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성경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한 이후, 매일 매일 외롭고 고된 일상 속에 성경 말씀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고 요묘한 이 말씀’이란 찬송가 가사처럼 첫사랑의 소녀의 마음인 듯 성경은 제 심장을 뛰게 했고 삶의 유일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회가 있는 곳이면 학교 수업도 빼먹고 어디든지 쫓아가서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선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안식일 오후에는 노방전도를 하며 온전히 안식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식일에는 무릎 아래의 치마를 입어야 하고 안식일 시작 전에는 목욕해야 하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까지는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 여겼습니다. 약사고시가 며칠 안 남은 시점까지도 철칙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의료 선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드디어 1992년 제 나이 23살에 교회 청년들과 함께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엔 중국과 수교가 안 된 상태라 포교를 하다 잡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은 절박했고 의지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발작을 자주 일으켰기에 또 쓰러지실까 봐 항상 불안했고 엄마와 동생들 또한 제가 소녀 가장으로서 보살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저의 삶은 항상 억눌려 있었고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 생활을 했던 것이죠. 돌이켜 보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죄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안식일 교회에 몸 담았던 당시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 한 켠 공허함 속에 늦은 비 성령을 갈구하게 되었는데 사도행전 연구 집회에 참석도 하고 산속에서 밤이 깊도록 두려움도 없이 간절히 기도도 드려 보았지만 결국 성령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병원 휴가 기간에 천연치료원에서 약학과 동기인 현* 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저에게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라고 하면서 3~4일의 시간 동안, 사도행전의 예수님의 이름 및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린 구절 등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 너무도 기쁘고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현* 언니를 따라 어느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바로 참예수교회 대방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는 성경 말씀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시42:1)의 말씀처럼 갈급한 심정으로 대방교회 기도실에서 너덧 명의 성도분들과 합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혀가 구부러지고 몸에 진동이 오면서 눈물이 쏟아지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제 가슴 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가슴 속에 충만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날 임했던 동일한 성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주님 감사합니다. 세례 후 3일째 되던 날,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참 교회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저는 너무도 귀한 성령이 떠나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근무 중에도 틈만 나면 성령으로 기도했습니다. 새벽 시간에도 무의식 중에 찬송을 불렀는데, 집주인이 시끄럽다고 저를 쫓아냈고, 전철에서도 “찬송 소리가 너무 크다” 고 친구가 말해 주었을 때 그제야 제가 찬송을 부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제가 성령 받기 전에는 고음이 전혀 올라가지 않고 저음도 못 내는 음치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은 후에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고음이 저절로 올라가고 찬송가의 가사가 저의 간증이 되어 더 깊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목청껏 찬송하라”라고 축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희 딸 가*이에게 베푸신 은혜를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34주(9개월)무렵에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시기에 태아의 정상 체중이 최소 2kg이 넘어야 하는데 아이는 1.5kg가량밖에 되지 않아서 미숙아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당장 개복수술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통곡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달포 후 정확히 40주를 채우고 2.7kg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울면서 부르짖은 저에게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란 찬송가 구절처럼 하나님께서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저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이가 5개월 무렵, 하루종일 소변을 못 보는 거예요, 기저귀를 자주 갈았었는데 그날은 한 번도 기저귀가 젖어 있지 않아 응급 상황임을 깨닫고 목자님께 안수기도를 청하여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 신기하게도 소변이 잘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가*이 6세 때,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차량은 심하게 부서져 폐차하였지만 가*이와 남편은 잠시 의식을 잃은 것 외에는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가*이가 앞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에어백에 부딪혀 앞자리 조수석에 앉혀 있었고 차량 내부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뒤따르던 차량의 운전자는 사고를 목격하고 하차하여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상의를 쉴 새 없이 흔들어 질주해 오는 후속 차량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을 주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저희 친정아버지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18년 전쯤에 친정 부모님이 저의 권유로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30대 때부터 고혈압과 심근경색으로 병원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세례받기 며칠 전에도 심장 발작으로 입원하였습니다. 세례받는 날 아침에도 몸이 좋지 않아 ‘세례를 미루어야 하나?’ 걱정하였는데 아버지가 아프신 중에도 “믿음으로 받겠다.” 하셨습니다. 세례받으신 후 갑자기 아버지가 마이크를 들고 세례 현장에서 간증을 하셨어요. “세례받고 나오니 모든 병이 나은 것 같이 몸이 가뿐해졌다”라면서 기뻐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푸실 때 아버지의 병을 완전히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단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나 81세에 아버지는 링거를 맞던 중 갑작스레 팔다리 마비가 왔어요. 병원에 있었음에도 의사의 무지로 인해 빠른 조치를 못 함으로써 좌뇌경색이 심하게 와서 의식조차 없는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광주교회 목자님께서 병원으로 심방을 오셨고 합심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18), 저는 이제야 그 말씀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현재는 고통스럽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요. 아버지를 서울의 한 유명한 재활병원으로 모셨고 직접 간병하면서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주 심방 오시는 목자님을 보시면 환호하면서 좋다는 표현을 하셨고, 한 살 아기가 되어서 소리 지르고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셨지만 예배보고 기도할 때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찬송가를 부를 때는 놀랍게도 신나시며 따라 부르셨습니다. 말씀은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찬송가와 노래는 할 줄 아셨던 것이죠. ‘우리 아버지도 이제 구원받았구나’ 하는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뇌경색과 대장암을 3년간 앓으시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엄마가 밤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두건 쓴 사람 2명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 번을 깨웠는데, 엄마는 “왜요? 나는 졸려서 못 일어나요.”라고 말하면서 가까스로 일어났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려고 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빠를 이제 천사들이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엄마에게 꿈을 통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2019년 6월 천사의 영접을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고 확신하시며, 장례식 이후로 광양교회에 출석하시며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엄마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선하신 계획과 은혜는 측량할 길 없도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저의 마음을 지속해서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저는 하나님 외에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연약한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런 나를 사랑하실까?” 라는 의문 속에 한국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2018년도 처음 갔던 이스라엘 여행의 감동이 생각나, 가족들을 설득하여 2019년 12월 꿈에도 그리던 이스라엘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저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베들레헴, 헤브론, 벧엘, 실로, 그리심산 국립공원, 갈릴리, 가버나움, 최북단 텔단을 거쳐 네게브 사막 지역인 브엘세바와 최남단 에일랏 및 텔아비브까지 2주간 여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토요일에 대중교통을 운행하지 않아서 베들레헴 갈 때에 아랍인 버스를 이용하였습니다. 현재도 안식일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텔단 지역의 풍부한 물과 키 큰 나무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겠다” 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지금도 유월절이면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구약성경대로 양을 잡아 제사 지내는 의식을 행하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년 3~4월이면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순례객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 되심과 더 이상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음을 저에게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중남부 지역과 네게브 사막은 렌터카로 이동하였는데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막을 지나는 저희를 길 잃지 않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여행 중에 순간순간 지켜주시고, 성지마다 큰 은혜와 감동을 베풀어 주셨고,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로마서의 사도바울의 고백이 이스라엘 성지순례 후 확신 있게 깨달은 저의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중략)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아멘, 할렐루야!

  • [복음메시지] 제사장 위임식 / 레8:1-36

    [복음메시지] 제사장 위임식 / 레8:1-36

    [말씀제목] 제사장 위임식 (레8:1-36)

    [설교자] 허명도 목자

    [설교일] 2024년 6월 1일(토) 안식일 오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과 그 의복과 관유와 속죄제의 수송아지와 수양 둘과 무교병 한 광주리를 이끌고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으라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매 회중이 회막문에 모인지라 (레 8:1~4)  

     

    오늘 이 시간에는 “제사장 위임식”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가지고 은혜 나누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 위임식은 모세가 명한대로 시행을 하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처럼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리는 것도 아닌데 물론 신약 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고 말을 하는데 우리가 2년마다 임원을 세울 때 신년 예배를 드리면서 임원들을 초대를 합니다. 구약 시대에 제사장 위임식을 하면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위임식을 했느냐? 하는 부분을 우리가 정신적으로 교훈을 받을 부분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에서 직분을 맡아 봉사를 하는 모든 성도들이 이 내용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1. 위임식 준비)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이라 (레 8:1~4) 

     첫째, 제사장 위임식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것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으라  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온 회중이면 약 200만 명 정도인데, 온 회중이 회막 문에 다 모일 수가 없기에 회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각 3지파씩 모입니다. 그래서 온 회중을 다 회막 문에 모으셨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예배와 관련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나의 성도를 내 앞에 모으라.’ 무엇으로 언약을 했다고 합니까? 제사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약속이기에 하나님께서 기억을 하고 기록을 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앞에 모으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모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임은 어떤 모임입니까? 계시록을 보면 흰옷 입은 무리고, 구원을 받은 백성들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소홀히 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바빠도 결혼식에 참석을 하고 장례식에도 가지 않습니까? 바로 예배는 결혼식 보다 장례식 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얼마나 존귀하고 거룩하게 여기느냐 하는 마음이 표현이 바로 그것으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힘쓰라고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열외 없이 온 회중이 회막문에 모였습니다. (시 50:5, 행 2:46, 행 11:26, 히 10:25) 

    (레 8:4)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하매 회중이 회막 문에 모인지라. 

     

    2. 제사장 정결 (레 8:5~13) 

     둘째, 제사장 위임식을 하면서 제사장의 정결을 말합니다 

    제사장의 정결을 위해서 몇 가지를 합니다.  

    ➀ 물로 씻김 (레 8:5~6) 

    ➁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힘. (레 8:7~9) 

    제사장의 이 옷을 재료까지 말씀을 하시면서 만들라고 명령을 하셨으며, 속옷을 입히고 겉옷을 입히고 흉패를 붙이고 머리에 관을 씌우는데 이 관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쓰여 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이 성결이며, 거룩한 옷을 두 번째로 이렇게 입히는 것입니다. 

    ➂ 관유를 바르고 뿌림-섬기는 장소와 기구 (레 8:10~12) 

    ➃ 아론의 아들들에게 옷을 입힘 (레 8:13) 

     ‘관유를 취하여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그 때 당시에 그 회막 안에 있는 것이 다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관유를 취하여 장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그들에게도 제사장의 옷을 입힙니다. 이 옷은 구원의 옷이면서 의의 옷이면서 거룩한 옷입니다. ‘제사장들에게 구원으로 입히리니’ 그러면서 우리 성도들은 즐거움으로 무엇을 할까요? 찬양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제사장들이 구원을 받는데 자연스럽게 그 구원이 우리들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어서 그런 상태로 성도들도 기뻐서 하나님께 즐거이 외친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시 132:9, 시 132:16)  

     

    3. 속죄제의 수송아지 (레 8:14~17) 

     셋째, 제사장들의 속죄를 위해 수송아지를 드립니다. 바로 피와 기름을 온전히 하나님 께 드리고 피를 뿌림을 통해 제사장을 위해서 속죄를 합니다.  

     

    4. 번제의 수양 (레 8:18~21) 

     넷째, 그 다음에 번제의 수양을 드립니다. 이 번제라는 것은 온전한 헌신을 말을 합니다. 제사장이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을 받고 온전하게 주를 위해서 헌신을 하겠다고 하는 고백으로 믿음의 결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양을 드릴새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수양의 머리에 안수하매’ ‘그 수양의 각을 뜨고’ 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인간들의 모든 욕망들,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 머리와 각 뜬 것과 기름을 불사르고’ ‘물로 내장과 정강이 들을 씻고’ 내장은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도 다 씻어내고 ‘정강이 들을 씻고 그 수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니 이는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 드리는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더라.’ 

     

    이것은 바로 이 제물을 하나님께 드림 같이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며, 내 마음이 온전히 거룩해야 하기에 불순물이 섞이면 안 됩니다. 우리 인간의 모든 욕망과 마치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라고 말을 한 것처럼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로 번제를 드립니다. 

     

    5. 위임식의 수양 (레 8:22~29) 

     그 다음에는 위임식의 수양을 드립니다. 이 위임식의 수양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내가 위임을 받아서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직분을 하나님께서 이 직분을 나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양을 드릴새 모세가 잡아 그 피를’ 모세가 세 번째 제사장들을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첫째가 물, 두 번째가 기름(관유), 세 번째가 피입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진행이 되는 가운데 바로 이 모든 것이 피로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나중에 세례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지만 그 물에 물이고 예수님의피가 있고 성령이 거기에 역사하심을 통해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또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세 가지로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30절부터 시작을 해서 위임식이 완료가 되는 것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6. 위임식 완료 (레 8:30~36) 

     마지막으로 위임식이 완료가 되는 것을 보겠습니다. 

     ➀ 거룩하게 함 (레 8:30, 요일 5:5~8, 갈 3:27) 

      사람을 거룩하게 하고 마지막에 옷까지 거룩하게 하는 것은 피 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모든 물건이 거룩하게 정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에  피로 모든 것이 사함 받고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의 정결을 신약 시대에는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바로 이것을 우리를 위해서 다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제일 먼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으로 옷을 입혀 주시고 나중에 제사장들에게 거룩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계시록에서 이것이 다양하게 설명이 되는데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있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들이 있고 빛나고 깨끗한 새마포 옷을 입은 사람도 있고 마지막으로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까지 연결이 됩니다. 우리 눈에는 분명히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하얀 옷, 거룩한 옷으로 입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구약 시대에 제사장들이 위임 식을 받은 것처럼 모든 성도들이 이 위임식에 참여한 것처럼 이런 거룩한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거룩이라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➁ 회막문에서 먹으라 (레 8:31~32, 신 12:1~7)  

    나머지 떡과 고기를 어디서 먹을까요? 성막 안에 제사장들은 들어와 있습니다. 그 안에서만 먹으라는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그 고기를 삶아 위임식 광주리 안의 떡과 아울러 그 곳에서 먹고’ 여호와 앞에서 먹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과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하나님 앞에서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과  회막 앞, 하나님 앞에서 이 일을 하는 것이라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있는 순간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고 우리는 오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니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이곳에 나와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깨지는 순간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마귀의 손안에 틈을 내어 줄 수밖에 없기에 회막에서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사역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➂ 회막문에 나가지 말라 (레 8:33~36, 민 6:1~8,딤후 2:19~22) 

      ‘위임식은 칠 일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7일 동안입니다. 우리 위임식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먹고 즐거워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서 사역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꼭 가져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지 다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하든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위임식은 칠 일 동안 행하나니 위임식이 마치는 날까지 칠 일 동안은 회막 문에 나가지 말라.’ 이 성막 안에 있는 것입니다. 성막에 문이 있고 그 문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번제 단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물두멍이 있고 그 안에 휘장이 있고 그 안에 또 성소가 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성막 안에 지성소에 들어가지 말고 그 안에 다 머무르면서 거기서 먹으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0장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죽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드렸다는 이유로 대제사장의 직계 자녀 둘이 죽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곳에서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하는 것이 사역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며 오늘 날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위임식은 이렇게 완료가 됩니다. 앞으로 우리가 이런 정신으로 주님의 일에 임할 때 크신 능력과 은총이 역사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사장의 위임식 유튜브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