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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소개] 대방교회 수세자(*윤, *주)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대방교회 수세자(*윤, *주)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성도로 거듭난  *윤, *주를 소개합니다. 

    지난 5월 7일. 대방교회 2023년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이번 세례식은 정*택 형제·김*진 자매 부부의 쌍둥이 자녀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날 죄사함을 받아 새로 거듭나는 *윤, *주를 축복하기 위해 60여 명의 성도님이 참석하셨습니다. 

    세례식 전날까지는 비가 내려서 꽤 쌀쌀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산 속의 기온은 더욱 쌀쌀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세례식 아침에는 흐린 날씨이긴 했지만 다행이도 비가 그쳤지요. 매번 세례식 당일에는 비를 그쳐주시니 참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감사함으로 시작된 발걸음이었습니다. 세례식터에 도착했을 때도 저희의 발걸음은 감사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세례식 장소는 전날 내린 비로 인해 물이 조금 불어나 있었습니다. 세례 터로 이동하는 다리는 물이 찰랑찰랑 넘치고 있었지요. 일찍 도착한 힘이 세고 젊은 부부는 성도님들의 신발이 젖을세라 징검다리를 놓아두었습니다. 또 본인 승용차를 끌고와서 다리를 건너는 셔틀로 운행하여 주기도 하였지요.  선발대와 답사팀의 노련미 또한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지요.  해가 거듭될수록 우리의 교제는 사랑과 헌신으로 성장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감사주 

    (로마서 6장 3절-7절)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이날 세례식의 주인공은 대방교회 성도님들께 아주 특별하답니다. *윤이와 *주는 이란성 쌍둥이 자매입니다. 동생 *주는 태어나면서 인큐베이터에서 잠시 지내기도 했었죠. *주의 탄생과 *주의 건강 회복을 위해 많은 성도님이 합심하여 기도 하셨습니다. 최근 두 자매는 건강한 모습으로 영은회와 안식일 예배에 참석하고 있답니다. 성도님들의 기도와 응원으로 사랑을 듬뿍 받은 두 자매이기에 우리 모두에게 아주 특별한 세례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윤, *주는 태어난 지 88일 만에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지금껏 세례식 중 최고 어린아이들을 만났다고 하셨습니다. 아직 100일도 안 된 아가들을 믿음으로 세례를 바친 젊은 부모가 대단하지요. 합심 기도로 마음을 모았던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도 감동과 감격으로 넘실거렸습니다. *윤, *주 자매가 더욱 건강하고 씩씩하기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대학 사청부는 축복송으로 두 자매를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의 축복) 너는 담장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 열매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날 거야 .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언제나 함께 하시니.  

    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하며 네 길을 축복할 거야.

    너는 하나님의 선물 사랑스런 하나님의 열매. 주의 품에 꽃 피운 나무가 되어줘.

    이날 세례식은 조금 특별하게 2부 행사가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세례식을 마치고 나면 항상 돗자리를 펴고 함께 도시락 식사를 하였습니다. 이날 세례식에도 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주문해 두었지요. 예상보다 세례식이 조금 빨리 끝나게 되어 우리는 도시락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이 시간은 우리에게 행복한 찬양시간이 되었습니다. 기타 반주에 맞춰 다함께 찬양을 하였습니다. 이 기쁜 날 성도들이 하나 되어 교제를 나누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서로를 축복하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죄사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서로의 손을 잡고 손뼉을 치며 크게 찬양을 불렀습니다. 이날 우리 성도님들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을지 사진만으로도 고스란히 느껴지시죠?   

    그리고 이날 세례식에는 한국 참예수교회의 세례식을 처음 참석하는 두 형제가 있었습니다. 싱가폴에서 방문한 ‘나다니엘 형제와 조슈아 형제’입니다. 두분 형제님들은 이날의 소감을 감격스러웠다고 표현 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되어 하나님 안에 기쁨을 누렸고 모든 성도가 수세자를 위해 찬송과 기쁨으로 축복하는 광경이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했습니다. 싱가폴의 세례식도 동일한 과정으로 진행되고 모든 성도가 기쁘고 행복하게 진행되지만 세례식 중에 성도님들이 찬송을 부르진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특히나 세례식 중 찬송하는 성도님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행복한 소풍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소풍 같은 곳의 도시락 맛은 아주 꿀맛이었죠. (배도 고팠다고 했지요. ^ ^)

     

    끝으로 *윤.*주 엄마인 수진자매의 소감을 전해 드립니다.

    (김수진자매) 먼저 두 자녀의 세례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00일도 채 되지 않은 아기들의 세례 소식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 주시고, 사랑 주셔서 또한 감사드립니다. *윤, *주 자매가 받은 사랑과 축복을 베풀고 살 수 있도록 기도와 사랑으로 키우겠습니다. 

     

    “*윤이와 *주의 건강을 허락해 주심과 성도님들의 축복과 예수그리스도의 죄사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 (신앙의향기)대방교회 2023년 경로여행을 바라보며

    (신앙의향기)대방교회 2023년 경로여행을 바라보며

    “2023년 경로여행을 바라보며”

    [대방교회 2023년 경로여행. 안나회]

     

    세대 간의 교감은 참 어려운 일 이었습니다. 이번 경로여행을 통해 세대 간에 교감 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평소 어르신들의 모임은 참 적막하고 외롭겠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은 훗날 저희의 미래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은 항상 고독하고 외롭겠지요. 어르신들의 신앙은 저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고 느끼게 해 주십니다.  광야 길에서 만나는 환난과 기근과 갈등 속에서도 오로지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그 신앙 하나만은 끝내 지켜오셨지요. 

    어르신들의 신앙은 저희에게 신앙의 방향을 가르쳐 주셨고, 저희는 그 신앙을 지켜보며 참신앙을 전승해 가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산증인 되시는 어르신들과 함께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안에서 존경하고 감사하는 저희의 이 마음을 꼭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주께 드릴 열매 가득 안고 하나님 품으로 가까이 나아가심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젊은 세대도 어르신들의 그 참신앙을 본받아 이 광야 길을 끝까지 완주 하겠습니다.

    임마누엘!  

  • (성도간증)뒤돌아 보니 모두 주님의 “은혜” (대방교회 유니게회 정효선자매)

    (성도간증)뒤돌아 보니 모두 주님의 “은혜” (대방교회 유니게회 정효선자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말하랴”

    저는 이 찬송을 들을 때마다 지난날이 스치며 그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저를 돌보아 주고 계셨던 것이 느껴져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유년 시절 저는 숫기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탓에 지방에서 서울 도심으로 전학을 오게 되었을 때 친구들에게 다가서기가 어려웠고 늘 외로움을 느끼며 지냈습니다. 시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고 저는 미션스쿨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토요일 1교시는 항상 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찬양 부르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때 배웠던 찬양들이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등) 여전히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때 그 찬양들은 숫기 없던 저의 외로움을 늘 위로 해 주었습니다. 찬양을 좋아하고 그에 위로를 얻고 있었지만 그래도 저는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방학 때는 고향인 시골에 가서 그 곳의 교회를 다녔지만 방학중 잠시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을 잘 몰랐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신앙에는 무관심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참예수교회를 접하게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언니가(정효정 자매)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형부(김용주 집사)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참예수교회(대방)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의 인생에 참신앙을 만나게 된 사건이었지만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교회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이 지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 또한 결혼의 시기가 다가왔고 청첩장의 문구를 고르던 중 이유는 모르겠지만 “믿음으로 만나”라는 문구가 너무 좋아 보여 청첩장의 문구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주례 선생님께서 저에게 교회에 다니냐고 물으셨지만 그때도 저는 하나님을 여전히 몰랐었습니다. 그동안에 언니는 저에게 계속해서 함께 교회 나가기를 수없이 권면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흔히들 얘기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토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과 그 교회를 권면하는 언니조차도 이상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때의 저는 참 곤고 하였습니다. 마치 벼랑 끝을 걷는 듯 위태롭고, 버거움에  지쳐있었습니다.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여유가 전혀 없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맏며느리로 맞벌이 하며 두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모두 힘든 시기이겠지만 저 또한 그 시간이 너무 고되고 힘이 들었습니다. 믿기지 않았지만, 그때 하나님께서는 10년 만에 또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때도 저는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늦둥이 막내를 낳고서도 맞벌이는 계속되었습니다. 여전히 여유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저는 토요일도 출근을 했고 맞벌이를 하는 부모덕에 큰애들은 주말마다 육아를 도왔습니다. 큰애들도 점점 지쳐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언니가 토요일이면 막내를 교회에 데리고 가서 돌봐 주었습니다. 그때 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와 큰애들을 비롯해 모두에게 잠시 평화로운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교회로 향하는 저의 발걸음이라고는 토요일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얼마 후,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친정아버지께서 암에 걸려 투병하고 계실 때 언니와 형부는 매일 저녁 퇴근길에 아버지께 들려 기도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두 사람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버지께 찾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 너희 다니는 교회 갈란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믿기로 하셨지만, 그때에도 저는 여전히 감흥이 없었습니다. 점차 병세가 깊어져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보게 되었고 입원(2015.5.6) 날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연휴를(5.1/근로자의날) 이용해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고향을 다녀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건강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모두가 안타까움으로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언니가 “아버지 세례를 받으셔야 하겠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언니의 말을 듣고서 아버지가 너무 걱정되며 언니에게 화가 났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4월이라도 계곡물은 얼음같이 차가웠지만 세례식 일정은 잡혔고(4.26) 저의 염려와 화나는 마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척척 진행되었습니다. 제 마음은 몹시 불편하였고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세례식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례식 당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감격스러웠습니다. 아버지가 세례받으시던 그 순간 바로 옆에 있던 복숭아나무 꽃잎이 바람에 날리며 아버지께 꽃비가 펄펄 내렸습니다. 광경을 지켜보던 저는 마음에 걱정이 있었나 싶도록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세례를 받았고 거듭났으니 더욱이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세례를 받으시고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실 때만 해도 아버지는 기력이 많이 쇄약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신 후에도 매번 예배에 출석하셨습니다. 때마다 감사와 회개의 기도를 하셨고, 감사와 회개의 기도는 아버지를 눈물 나게 하였고, 눈물 흘리게 하였지요. 눈가가 헐어 진물이 나기까지 참회하셨고 어머니께도 그동안의 고생을 감사하시며 화해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종갓집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이제 제사 지내지 마라! 모두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저희에게 매우 어려운 숙제가 될 큰일을 순조롭게 잘 정리 해 주셨지요. 아버지는 그렇게 1년 쯤 잘 보내셨고 이듬해 (2016.6.6)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 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형제들보다 힘겹게 사는 저를 보시며 아버지는 “뭐가 걱정이냐!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계시다는 것을요.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에 남은 시간이 고작 3개월이라고 선고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선고와는 달리 1년 동안을 더 지내셨습니다. 아버지가 더 지내신 1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게 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충분히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소천하시고 두 달 후(8월) 아버지가 보여주신 믿음대로 저와 막내아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함이 한없이 부끄러우나 얼마 후 제게 뜨거운 성령까지 내려 주셨습니다. 마음이 뜨거운 것이 매우 기쁘고 자꾸 감사가 넘쳐 눈물이 흘렀습니다. 보잘것 없는 저를 나의 존재를 하나님의 영을 통해 귀하게 됨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나의 자녀! 너는 귀하다.” 하시며 뜨겁게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이것으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3년 후였습니다. 둘째 아들이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며 구원파의 분파로 알려진 새생명 말씀선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저는 “엄마가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다녀야 하지 않겠냐?”고 권면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목자님 말씀을 들어보고 판단해서 결정하겠다”고 하며 순순히 응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참예수교회 진리를 공부하게 된 둘째 아들은 마침내(10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성령도 받았습니다. 두 아들들과 성도님들 앞에 나와 찬양하던 그 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허락 해 주신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드립니다. 현재는 안타깝지만 둘째 아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늘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올해 2월에는 막내아들이 아동부로는 마지막 초등부 영은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영은회 기간 3일 중에 이틀만이라도 참석할 수 있게 되어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중학생 되면 교회 못 간다”며 남편은 아주 단호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말에 불만이 많았지만 싸우고 싶지 않아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영은회 이틀째 되는 날 감사하게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더욱더 하나님께 의지할 순간이 많아지게 될거라 생각했지만 믿음이 없는 아빠는 저와 생각이 달랐습니다. 아빠의 반대에 의해 아이는 지금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미처 모르는 것 들을 다 예비해 두셨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아멘!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가족들은 어려움 앞에 하나님께 매달려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남동생이(43살) 혈액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은 다시 하나 되어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기도의 능력과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매달렸습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성도님이 함께 기도해 주셨습니다. 동생은 현재까지(만 4년째) 잘 이겨냈고 병세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부터 인도해 오신 것처럼 남동생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허락해 주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해야 할 순간에 기도로 매달리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능력과 은혜는 진행중 입니다. 저는 직장 때문에 안식일 오전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언니는 고민의 여지가 없는 권면을 했습니다. “기도해. 오전예배 드릴 수 있는 곳에서 일하게 해 주시라고”라고 했지요. 저는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저의 형편에 따라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그 직장에서 주 5일 근무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니가 저 보다 더 열심을 다해 기도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일들도 많았지만 잘 된 것 인지 잘못된 것인지 모르는 부분도 있었지만, 분명한 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순간을 이끌어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뒤늦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지만, 여전히 삶은 힘들고 고단한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힘들고 지쳐서 기도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희 신도회(유니게회)를 통해 저를 위한 기도를 허락하셨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숫기가 없어 친구도 사귀기 어려워했던 저에게 교회 공동체 안에 진정 귀한 저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많은 일들에 기억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10장 19~20절)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어버지의 영이시다.” 

    하나님의 영은 제 소견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게 해 주신 경험들이 있습니다. 평소 저는 남편과 데면데면하여 얘기도 잘 못하곤 합니다. 어떤 상황에 남편이 제게 뭐라 이야기했을 때, 제가 남편의 어깨를 지그시 만지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 제 말과 행동에 저조차 깜짝 놀랐습니다. 또 한번은 시어머니께서 일하시던 직장에서 불이익을 당해 허리에 병이 생겨 일을 할 수 없게 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산재 신청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 스스로가 느껴졌습니다. 쉽지 않은 이 과정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이끌어 주심을요. 이어서 시어머님은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을 지갑에 넣어두셨는데 시장에서 잃어버렸다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그 큰돈을 왜 한 번에 들고 나가셨을까 잠시 원망이 되었습니다. 사실 일이 바빠서 어찌할지 걱정할 틈도 없었던 하루였습니다. 시어머님께서는 이미 포기하시고 병이 나 계셨습니다. 그런데 퇴근 무렵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허락하셨지요. 퇴근길에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 분실신고를 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분실 접수된 시어머님의 지갑이 있었습니다. 다음날 시어머니께서 방문하여 찾아오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산재 신청에 이어 하루 만에 지갑까지 찾아준 제게 고맙다며 “네 덕분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께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어머니 형편을 아시고 찾아주신 거에요. 하나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지 않았다면 저는 전혀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입니다. 오랜 시간 가족으로 살아 왔으니, 저 스스로의 느낌이 틀리지 않았겠지요.

    믿음이 없는 남편과 시어머니께도 하나님을 통한 은혜를 전할 수 있게 해주심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도 큰일에도 제가 힘없이 낙망하던 모든 순간이 돌아보니, 은혜였습니다. 모든 순간순간 지켜보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십자가의 그 사랑 능력 아니면 나 서지 못하네” 

     

  • [복음메시지] 남겨두심과 지키심(요 17:15)

    [복음메시지] 남겨두심과 지키심(요 17:15)

    [말씀제목]  남겨두심과 지키심(요 17:15)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3년 4월 21일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주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다른 것을 구하시지 않으셨다.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기도하셨다. 이 ‘보전함’은 주님께 중요한 문제였다. ​

    (요 17:12)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

    보전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보호하다, 간수하다, 지키다’ 라는 의미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온전하게 잘 지키는 것이다. 변질되지 않도록, 상하지 않도록, 흠이 생기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이것을 기도하셨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 그들을 지켜달라고 요청하셨다.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는 다르다. 세상에 속해있지 않다. 정신 구조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며, 사고방식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미워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살아가야 할 세상의 삶이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구하셨다. 어떤 악이 나타나더라도 우리가 거기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하시는가?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구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남겨달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보전해달라는 간구와 모순된 것이 아닌가? 악한 자에게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는 것보다 세상에서 저희를 데려가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째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될 때 하늘에 들림받지 않는 것인가? 왜 완벽해지지 않는 것인가? 왜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받게 하시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다.

     

    *우리를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

    1. 우리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도 데려가주시기를 간구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세, 엘리야, 요나 같은 사람이다. 세 사람 모두 하나님께 데려가주시기를 구했다. 

    ​(욘 4:3)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욘 4: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민 11:15)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다. 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셨는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안전만을 생각한다면, 그들을 데려가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데려가시지 않으신 이유는 그들이 이땅에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세상을 떠난다면 누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는가?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으시다. 이땅에서 할 일이 있다. 제자들이 가버리면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상에서 어떤 메세지를 전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예수님을 드러내야 함을 알려주신 것이다. 즉, 우리는 주님께서 이땅에 남겨주신 자들이다.

    ​

    2. 삶은 우리가 완전해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온전해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완전해져야 한다. 우리에게 점진적 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완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 남겨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실패와 고난으로 겸손하게 하신다.

    ​​(고후 12: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언제든지 교만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느끼게 하신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인정했다.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연단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보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으로 만들고자 하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발전 과정 중 일부이다.

    ​

    *교훈

    1. 우리를 세상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계획과 다르다. 자살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 백성은 절대 이런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 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는 큰 허무함 속에 사로잡혔다. 자기의 삶이 부정당하는 일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것들이 부정당하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래도 엘리야는 스스로 죽지 않았다. 하나님께 데려가주시기를 간구했다. 설령 자살 생각이 들 때에도, 스스로 생명을 거두어가는 선택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으심을 기억해야 한다. 자살은 어떤 방식에서라도 잘못된 것이다. 차라리 엘리야처럼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이 좋다. 자살은 성도의 선택에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자살뿐 아니라, 세상에서 떠나려는 모든 시도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자연인처럼 속세에서 떠나거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주님의 기도와 의미적으로 반대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배운 진리를 회피하려는 시도인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견디는 것이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자기를 지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은둔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 일을 하면서, 우리를 세상에 물들지 않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땅에 남겨두신 이유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이다. 우리가 세상 안에 있어도 우리는 세상에 물들지 않게 우리를 지킬 수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세상에 물들지 않게 지켜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떠나려 해서는 안 된다.

    ​

    2.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절대 불평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보이지 않아도 시련 속에 목적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위해 우리에게 이것을 허락하셨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를 그 상황에 넣으셨음을 믿어야 한다. 제자들도 그것을 위해 남기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내가 만나는 환경, 상황에 대해 어린아이처럼 불평해서는 안 된다. 왜 이런 상황을 만나게 하셨냐고 불평한다면,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해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불평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만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상황 속에 나를 넣어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

    3. 항상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남겨두시는 이유는, 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만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상황 속에서 불평하거나 불만을 품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게 살다가 무너지더라도, 우리 삶은 실패한 삶은 아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만 한다. 감사하며 살아야만 한다.

    ​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이것을 세상에서 받은 가장 큰 특권처럼 기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예수님의 대변자로 삼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을 완수하라고 이 땅에 자신을 남겨주셨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이다.

    ​

    (요 17:15)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확신하신다. 우리를 보존하여 지키시는 아버지의 능력에 대해 확신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주님께 우리를 부족함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시기를, 주님의 영광을 항상 드러내게 하시기를 기도드려야 한다.

     

    (예배링크)

     

  • [신앙의향기] 나의하나님은?(2탄) 대방교회 바울회와 함께

    [신앙의향기] 나의하나님은?(2탄) 대방교회 바울회와 함께

    할렐루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대방교회 신도회 ‘바울회’와 함께하는 ‘신앙의 향기’ 글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의미인지 5글자로 말해봐요! 2탄입니다. ^^

     

    여러분은 지난번 ‘한나회의 나의 하나님’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나에게, 혹은 나에게 하나님은’ 어떤 의미가 되시는지 고민하여 보셨는지요?

    이번에는 ‘바울회’와 함께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여 보았습니다. 

    (저절로 다음 차례가 기대 되시지요?)

     

    (사진. 신도회 분반예배  ‘바울회’)

     

    나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은 나에게?

    우요한 목자님  나에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나에게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김*진 장로님  하나님은  ‘나의 은혜다’ 

     은혜 아니면 구원도 없다

     

    김*휘 장로님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

     악한 세상에서 피할 곳을 주신 분

     

    엄*식 집사님  하나님은 ‘나의 인도자’

      나의 앞길을 예비하여 주신 분

     

    고*수 형제님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

     영과 육을 구원해 주신 분

     

    김*열 형제님  나에게 하나님은 ‘영혼의 반석’

      무너지지 않은 영원한 반석

     

    나*드온 집사님  하나님은 ‘나의 생명임’

     영육 간의 생명의 주인 

     

    진*춘 집사님  하나님은 ‘나의 목자다’

     항상 지켜 주시는 분 

     

    이*재 장로님  하나님은 나의  ‘평강의 샘터’

     화평의 주님

     

    김*훈 집사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유일하신 신

     

    장*열 형제님  나의 하나님은 ‘응답의 주님’

     기도에 응답 주시는 분

     

    김*환 형제님  나의 하나님은 ‘임마누엘’

     마음 판에 말씀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주님 앞에 섰을 때 나 이렇게 고백하리.

    아멘! ”

     

    뒤돌아보면 녹록치 않았던 우리의 삶이었습니다. 유혹과 핍박이 무성했던 모든 시간을 그리스도인으로의 삶을 살아내며 끝내 이신앙 하나만은 꿋꿋이 지켜오신 바울회 성도님들을 존경하며 배워갑니다. 믿음의 선배 되시는 ‘바울회’의 고백이 저희 마음 깊이 울려집니다.  

     

    (신8:2-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 [성도소개] 대방교회 수령자(7명)를 소개 합니다.

    [성도소개] 대방교회 수령자(7명)를 소개 합니다.

    대방교회 수령자(7명)를 소개 합니다.

    2023년 대방교회에는 성령의 단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습니다.

    오랜시간 성령의 가뭄으로 인해 성령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초조하고 간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성령의 내주 하심은 포기하거나 지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간구하고 또 간구하여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성도님들을 소개합니다.

    2023년 현재까지 총 6명의 성도님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이 있는 성도들도 몇몇이 더 있답니다.  (금번 소개에는 며칠 차이로 전년도에 수령한 1명도 포함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아래는 2023년 수령자 명단입니다.  

    ○대학부(1명) : 송*현(2월1일 학생부영은회)

    ○학생부(1명) : 김 * (1월31일 학생부영은회), 최*혁(2월5일 아동부영은회)

    ○아동부(4명) : 고*주(2월5일 아동부영은회), 양*인(3월4일 대예배),  허윤서(3월4일 대예배), 김 *(22년 12월 24일 대예배)

    ○ 성령의 감동이 있는 대상자(3명)  : 오*민(고3), 양*성(초6), 고*성(초4)

     

    [수령자. 왼쪽부터 최*혁 형제(중1), 김* 형제(중2)]

    [수령자. 왼쪽부터 양*인(초4), 허*서(초4), 고*주(초6), 김*(초6) 자매들]

     

    이번 성도 소개는 질문지를 통해서 인터뷰를 진행 해 보았습니다.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수령자분들을 더 자세히 소개해 드리고 그 은혜를 나눠드리겠습니다.

     [질문 9가지]

    1. 언제부터 성령이 받고 싶었나요? 
    2. 성령 받기 위해 얼마 동안 기도 했나요?
    3. 왜 성령을 받고 싶었나요?
    4. 성령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5.  본인이 성령을 받았다고 느껴졌나요? 성령을 받았다고 선언하실 때 본인을 성령 받은 것을 알고 있었나요?
    6. 성령을 받고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7. 성령을 받고 나서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나요?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고 있나요?
    8. 성령을 받은 소감을 이야기해 주세요.
    9. 성령을 받아서 앞으로 변화할 부분이 있나요?

        

    설문지에 대한 답변입니다.

    1), 2) 언제부터 성령이 받고 싶었나요? 성령 받기 위해 얼마 동안 기도 했나요?

    대부분 영은회를 계기로 성령을 간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님들께서는 이점을 주목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녀가 성령에 대한 간구가 부족하다면 영은회 참석은 필수이겠지요? 

    허*서 자매(초4)는 무려 4살부터 성령이 받고 싶었다고 합니다. 성령 받기까지 8년을 기도해 왔고, 김* 자매(초6)도 1학년부터  약 6년을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긴 시간을 멈추지 않고 간구하고 ‘아이테오’(매달리며 요청하는 기도) 해 온 수령자들의 기도가 저희의 자세를 꾸짖는 것 같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매달려야 한다는 교훈을 받으셨지요? 

     

    3) 왜 성령을 받고 싶었나요?

    성령을 받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통으로 “천국에 가고 싶어서”였습니다. 그중 김윤 자매(초6)는  “하나님이 실제로 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증거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고 답변했습니다. 여러분은 왜 성령을 받고 싶으셨나요? 

     

    4) 성령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성령은 “하나님의 영,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공통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신다는 것을 우리 아동부, 학생부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간절히 간구하였겠지요? 

     

    5) 본인이 성령을 받았다고 느껴졌나요? 성령을 받았다고 선언하실 때 본인이 성령 받은 것을 알고 있었나요?

    최*혁 형제(중1)는 본인이 성령을 받았다는 것을 너무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이 질문에 답변은 “네!” 단 한 글자였습니다. 그만큼 확실하였기 때문이겠지요. 목자님께서도 최*혁 형제는 아주 충만하게 성령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목자님께서 그때의 느낌을 물었을 때 최수혁 형제는 “Very Good! (베리굿!)” 이라고 표현했답니다. 

    김* 형제(중2)도 본인이 성령 받았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으로 울고 있는 바람에 김* 형제는 선언조차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날의 큰 감동을 형제님들께 직접 듣고 느껴 보시길 권유하여 드립니다!

     

    6)  성령을 받고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모두가 다른 답변을 적어 준 질문이었습니다. 

    기도할 때 집중이 잘된다. 회개와 찬양을 하게 되었다. 방언과 떨림이 느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조금 더 노력하는 것 같다. 방언이 나온다. 마음이 더 성장한 느낌이다. 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7)  성령을 받고 나서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나요?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고 있나요?

    허*서 자매(초4)와 김* 자매(초6)는 매일 5-10분씩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수령자들도 매일은 아니지만 매일 기도하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김* 자매는 계속해서 기도 하면서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던 떨림을 지금은 느낀다고 했습니다. 성령충만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 해야겠지요?  

     

    8)  성령을 받은 소감을 이야기해 주세요.

    성령을 받은 소감 중 김* 형제(중2)의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성령은 꼭 필요한 때에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참 아름다워요!”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감동이 깊었던 김산 형제는 스스로 ‘빛처럼’(참예수교회 정기 간행물)에 원고를 접수하기도 했습니다.  

    ‘빛처럼’ 원고를 살짝 스포일러 해드립니다. (빛처럼 책자에 실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학생부 영은회를 억지스럽게 참석했고 4박 5일 중 4일이 지나도록 부적응한 상태였답니다. 물론 색다른 느낌도 있었습니다. 전국의 학생부가 모였다 보니 남부교구의 열정적인 찬양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고 감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까지 적극적으로 변화되진 못했습니다. 성령을 수령하지 못한 학생들만 따로 모여 기도 했을 때 목자님께서는 저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으니 더욱 열심히 기도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내 마음대로만 살아왔는데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그때 제 마음은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저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셨기에 더욱 매달리며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소망이 저의 태도를 바꾸어 주었습니다.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듯 하나님께서는 우리 누구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저를 기억하시고 성령 받기 위한 간구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김* 형제는 스스로 작성한 원고에 이렇게 권면하였답니다. 

    아직 성령을 수령하지 못한 성도 여러분 포기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김* 형제의 경험이기도 합니다. 필요한 때에 반드시 주신답니다!  

     

    9) 성령을 받아서 앞으로 변화할 부분이 있나요?

    김* 형제, 김* 자매 두 남매는 성령을 받은 후 자주 찬양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혁 형제는 앞으로 변화 되는 점은 바쁘지만 않다면 무조건! 교회에 온다!는 것입니다. (*혁아! 꼭! 지켜줬으면 해 ^^)

     

    진리의 성령이 임하시면 저희에게 세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는 알게하십니다.

      (요 16:13-15)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고전 2:9-12)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 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둘째는 감당케하십니다.

      (요 16: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히 5:12,14)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셋째는 인도하십니다. 

      (요 16:13상, 1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알게 하시고, 신령한 소리를 내게 하시고, 비전을 꿈꾸게 하시고, 천국 소망을 품게 하십니다. 만약 성령을 받았는데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 말씀이 지식이 아니라 믿어지게 하시고 깨달아지게 하십니다. 그 속에서 통찰력이 생기게 하셔서 되어지는 일들을 알게 하십니다. 

    수령자분들께서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더 깊은 고민과 간구가 있길 소망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당케 하심과, 알게 하심을 구하며 성령 충만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또 오랜 시간 성령을 간구하는 형제·자매님을 기도로써 응원합니다. 임마누엘!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성도간증] 멕시코의 첫 열매 (대방교회 우*실자매)

    [성도간증] 멕시코의 첫 열매 (대방교회 우*실자매)

    할렐루야! 주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저에게 간증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몇 번의 경험과 긴 여정으로 저의 신앙을 다시 회복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멕시코에서 잠시 한국행을 결정 

    저의 자녀가 세 살 되던 해, 남편이 회사에서 멕시코 법인지사 법인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그렇게 참예수교회도, 참예수교회 성도도 한 명 없는 나라(멕시코)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멕시코에서의 시간은 5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쑥스럽지만 지난 5년 동안 저희는 예배다운 예배를 드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남편과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정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저 혼자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어린 딸과 함께 시도를 해보긴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린아이는 예배가 무엇인지 기도가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였고 무릎 꿇는 것도 집중하는 것도 힘들어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이는 카톨릭 학교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는 가톨릭 학교답게 매주 미사가 있었고 부활절, 성탄절 등등 때마다 각종 가톨릭 행사를 지켰습니다. 기도를 할 때는 삼위일체 성자·성부·성모 성호를 그으면서 기도를 가르쳐 주기 때문에 엄마가 기도하는 방법을 다시 알려주어야 했습니다. “*희야 너는 성호를 긋고 기도 하는 거 하면 안 돼! 우리는 주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나름대로 참예수교회의 진리를 가르쳐 주곤 했지만 가르침에 부족함이 있었고, 아이도 귀로는 엄마의 가르침을 듣지만, 머리로는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아이의 신앙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더욱 두려운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코로나였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코로나로 사망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를 직면하면서 두려웠었고 남편의 비즈니스, 아이의 학업, 저의 일터인 대학강의 와 공연 등 모든 일상이 바뀌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외부 출타가 제한되었고 모든 일상을 집에서 온라인(Zoom)을 통해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활은 일 년 반 동안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집이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모든 일상이 이뤄지면서 가족들은 수없이 부딪히기 시작했고 정신과 육체적으로 힘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그리고 저도 저대로 스트레스와 예민함이 극에 달하였습니다. 잦은 부딪힘으로 부부 사이에도 위기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때 저희에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믿음이 부족했으므로 오랜 팬데믹 속에 두려움과 우울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고민 끝에 잠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제 판단에 코로나 시국에 가장 안전한 나라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K-방역으로 이슈가 되고 있을 때였습니다. 평소 걱정되었던 자녀의 신앙교육과 한국어교육을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부부 사이의 위기의식을 느꼈던 저희 부부는 잠시 떨어져 서로 차분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느꼈고 잠시 한국행에 대하여 합의 하였습니다. 그렇게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통해 오랜 문제를 해결 

    저와 아이가 한국에서 지낼 곳을 찾는 과정에서 미국에 계신 부모님(우요한 목자님, 故 이명주  사모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을 모셔 와서 함께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에게 할아버지·할머니의 정도 느끼게 해주고, 할아버지로부터 신앙교육도 받고, 가족들이 함께 교회에 나가서 예배도 드리고, 한국 이곳저곳을 여행도 다니며 한국이라는 나라와 문화도 경험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모님께 늘 사랑과 지원을 받기만 했기 때문에 보답할 기회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런 상상에 마음이 설레 있었습니다. 형제들과 의논 끝에 부모님은 십여 년 만에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상상은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상상과 현실은 극명하게 다르다는 것을 한 달도 안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미국에 계실 때부터 치매를 앓고 계셨습니다. 모시기 전까지 큰 염려는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부모님은 흔히들 말하는 착한 치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모님이시니까 부모와 자식 간이기에 충분히 잘 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치매라는 병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육체적으로 굉장히 고단했습니다. 눈을 뗄 수도 없었고 잠시라도 잊을 수 없었고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잠드셨을 때도 모든 신경을 쏟아야 했습니다. 간혹 부모님의 치매 증상으로 의도치 않게 폐를 끼치는 당황스러운 일들을 겪기도 했습니다. 때마다 과도한 신경 씀으로 인해 혈압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저는 급성 고혈압으로 응급실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에 저뿐 아니라 아이도 무척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해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힘든 와중에도 신앙교육과 한국어교육, 한국 문화에 대한 교육을 잘 흡수하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미쳐 세심히 돌보지 못했던 아이를 인도해 주셨음을 깨닫습니다.

    엄마로서 또 자녀로서 힘을 내야만 했습니다.  

    나 자신이 그다지 훌륭한 효녀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는 동안이라도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습니다. 치매라는 병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치매 요양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하였고, 치매 노인을 보살피는 노하우도 습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양사로서의 형편과 내 부모를 대하는 형편은 참 달랐습니다. 마음이 온전히 비워지지 않았습니다. 참 답이 없다는 심정으로 동동거릴 때쯤에 이 시간을 보상해 주는 듯 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 가정은 남편의 실수로 인해 경제적인 파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치매 걸린 두 부모님을 혼자 모시고 있다는 이유가 반영되어 판결이 아주 쉽게 진행되었고 파산 문제가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몇 년을 힘들고 고단했던 문제가 부모님으로 인해 쉽게 해결이 된 것이지요. 생각해 보면 매일같이 힘들다고 뱉어 내기만 했는데 말이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며 끙끙대는 저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주셨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겪으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 효도할 기회이며 하나님께서 부모님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회복시켜 주심

    다시 한국에서의 신앙생활은 지난 5년간 멕시코에서의 생활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먼저는 교회에 나와서 예배의 자리에 참예할 수 있었고, 설교 말씀을 마음에 새겨들을 수 있었고, 성도님들과 함께 부르는 찬양과 성도님들과 함께 영으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 은혜였고 감격스러웠습니다. 저희 모녀는 몸으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많은 성도님의 배려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우리 유니게회(소속 신도회) 자매님들의 사랑은 저의 영혼을  다시 촉촉하게 적시는 치료와도 같았습니다. 마치 딱딱하게 메말라 굳어 있던 저의 심장과 영혼이 재충전 되는 것 같았습니다. 믿음 안에서 자매님들과 교제를 나누며 진정한 신앙고백을 뱉을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만남을 허락해 주셨고, 이렇게 저를 다시 단단하게 또 바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평안을 주셨을 때 비로소 남편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남편은 고혈압이 있었고 그 때문에 종종 힘들어하곤 했었습니다. 그때 저는 남편의 고통과 그 강도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역지사지라는 말과 같이 제가 급성 고혈압으로 고통을 경험하게 되면서 평소 남편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육체적 고통과 남편의 입장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할 기회를 허락 해 주신 것입니다. 다시 남편과의 갈등을 직면하게 된다면 유니게회 자매들에게 받은 사랑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남편의 마음을 더욱 헤아리며 이겨낼 힘이 생겼습니다. 감사주!

     

    믿음의 동역자로 세워주신 자녀

    *희(자녀/4학년)는 정말 많은 변화를 받아들였습니다. 신앙이 무엇인지, 참예수교회의 진리가 무엇인지, 성령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 주시는지를 배우고 깨닫고 있습니다. 

    한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희가 학교에서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비둘기 이미지에 대한 내용으로 생각을 나눌 때였습니다. 아마도 다른 아이들은 평화라든지, 공원이라든지 라고 말했을테지요. 그러나 다희는 당당히 “비둘기는 성령!”이라고 답했고, 아이들의 놀림에도 그 생각은 전혀 꺾이지 않았고 오히려 씩씩거리며 하교 했습니다. *희는 결국 아동부 소풍에 새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이런 당당함이 나왔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겠지요? 

    저희 모녀는 행복하고 감사가 가득한 2년의 시간을 보냈고, 다시 멕시코에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이젠 더 이상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모녀의 신앙을 회복시켜 주셨고 저와 아이는 서로에게 든든한 동역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우리가 어느 곳에 지내며, 어떤 어려움에 부닥치게 된다고 하더라고 저와 아이는 함께 손잡고 기도하며 예배할 수 있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도망치듯 떠나온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2년의 시간 동안 저를 회복시키신 것도 모자라 자녀를 믿음의 동역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예비 하심과 인도하심은 항상 제 생각을 뛰어넘었습니다. 임마누엘! 

     

    어머니의 소천

    얼마 전(3월 10일) 어머니(故 이명주 사모님)는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심장 판막 문제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으셨습니다. 늘 다리저 림으로 힘들어하셨지요. 

    어머니는 기력이 쇠하여지면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중이었습니다. 당연히 고령의 나이다 보니 여러 곳의 기능이 떨어진 상태로 쉽게 호전되지는  않았습니다. 

    멕시코로 다시 돌아갈 날은(4월 18일) 정해졌지만 이런 어머니를 뒤로하고 다시 멕시코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아주 괴로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의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생전에 막내딸을 항상 애정 해 주시던 어머니는 제가 멕시코로 다시 돌아가기 전 소천 하셨습니다. 가족 모두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가족 모두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죠) 모든 장례도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무거웠던 제 발걸음의 무게를 그렇게 덜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소천은 저의 신앙을 한 번 더 다잡게 했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더욱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신앙을 꼭 전승해야겠다 다짐하게 하셨지요.

    엄마!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물려주신 이 믿음 끝까지 잘 지키며 굳건히 살아가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유니게회.  2022년 하늘공원 나들이]

  • [교회행사] 2023년 대방교회 아동부 소풍을 다녀왔어요!

    [교회행사] 2023년 대방교회 아동부 소풍을 다녀왔어요!

    지난 3월 26일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대방교회 아동부가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도 이제는 일상에서 감기처럼 적응이 되어가고, 봄을 알리는 날씨가 우리 아동부의 마음을 온종일 들썩이게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부모님들은 코끼리와 사자와 토끼 이야기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고대하던 소풍날은 아동부(30명)와 교사(11명)와  학부모까지 모두 64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중에는 3명의 새친구도 함께했고, 새 친구 중에는 엄마·아빠까지 온 식구가 참석한 가정이 있었답니다. 우리 아동부가 오늘을 기억하여 하나님께로 친구를 초청하고 참예수교회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용기 내 주길 소망합니다.

    소풍날은 하나님께서 어찌나 귀하고 참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셨는지.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동물원의 이곳저곳 돌아다니기에 딱 알맞은 날씨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동물원에 도착해 일정을 시작할 때는 미세먼지도 사라져 마치 좋은 공기였답니다. 우리 아동부가 이날 소풍과 날씨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 했을까요? 아무래도 아동부의 기도가 굉장히 간절했을 거라 생각되어요.  

    목자님께서는 이런 아동부의 마음을 참 잘 알고 계셨는지 넓은 공간에서 우리 아동부들이 자유롭게 맘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참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심에 감사함으로 기도 하셨습니다. 또 우리 아동부를 맞이해 주었던 호랑이에게도 감사! 곰에게도 감사! 하셨지요. 

    그리고 귀한 사실도 알려주셨어요. 소풍은 사라질 ‘소’, 바람 ‘풍’의 조합을 이루는데 무엇이 사라질까요? 마음속의 스트레스와 근심 걱정 등이 사라지겠죠. 이렇게 밖에 나와서 모든 스트레스와 걱정, 근심을 바람에 날려 보내면 참 좋은데 우리는 매번 소풍을 나올 수는 없지요. 성령의 원어 ‘루아흐(xW; r)’에도 ‘바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일상에서의 스트레스와 근심과 걱정을 날려 보낼 수 있답니다. 우리 아동부가 이를 기억하고 성령을 구하고 성령에 의지해 기도해 보려 합니다. 

    아동부 소풍은 하나님 앞에 2가지 목적을 가지고 진행하였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을 보며 형제, 자매와 교제의 기쁨을 나눈다. 

     둘째, 친구를 초대하여 전도의 기회를 가진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목적에 맞게 우리 아동부들은 그간의 긴장된 마음을 풀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맘껏 관찰하고 느꼈습니다. 얼굴만 보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만끽하며 기쁘고 즐거워함이 보이시지요?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열매반 / 5-6학년)

     

    (소망반/ 1-2학년,  믿음반 / 4학년)

     

    (사랑반 / 6-7세)

    유아반(초등학교 미만)은 아동부와 교사와 학부모가 한 그룹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아빠들은 모든 아동부의 아빠가 되어 들고, 업고, 태우고 하였지요. 사랑반은 삼단분리는 기본이랍니다.

     

     

    (새싹반 / 4-5세)

    새싹반은 삼단분리를 떠나 함께 모을 수가 없었다지요? 가장 신나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요?  

     

    체력이 고갈되었을 법한 교사들의 피드백은 당연하고도 의외였습니다. 자유로운 공간에서 아동부 개개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고, 많은 인파 속에서 아이들의 손을 놓치거나 잃어버리지 않을까 노심초사 너무 긴장된 시간이었다는 겁니다. 이에 아동부장은 하나님께서 자녀를 잃어버리지 않으시려 찾으시는 마음이 오늘 교사들의 마음과 같았을 것이라 교훈했습니다. 교사들은 오늘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화려했던 하루의 여정을 마친 아동부장의 피드백은 감사!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모든 순간을 예비해 주신 느낌이었습니다. 꼭 맞는 날씨를 허락해 주셨고, 전날 밤 갑작스럽게 합류 해준 대학부 청년들은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맡아 주었고, 그 덕분에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던 집결 장소를 쉽게 활용할 수 있었답니다. 선발과 후발대의 헌신도 감사했습니다. 미리 도착해서 집결 장소를 물색하여 맡아 두어 예배(목자님 말씀)도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해산 때에도 후발대로 남아 다 빠져나간 자리를 깨끗이 정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획자가 미쳐 신경 쓰지 못하고 예비하지 못한 순간순간까지 모든 사람을 알맞게 예비해 주셨지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은혜 속에 행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주! 

    너무 함께하고 싶었던 *현아! *수야! *아야! *율아! *호야! *채야! 

    다음 소풍 때는 모두 함께하자♥  

     

  • [기관소개] 대방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대방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주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대방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대방교회 대학부는 누구누구가 있나요?

    대방교회는 총 35명(남 21, 여 14)의 학생이 교사 이정언 형제와 대학부장 장*나 자매를 중심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방교회 대학부는 수시로 인원수가 변경되어요. 국내 지방교회의 유학생들과 외국의 형제·자매들의 방문이 많은 도심교회의 특성이랍니다. 덕분에 대방교회 대학부는 정말 많은 지역과 국가의 형제·자매들과 교류하고 있답니다.

    거의 매달 환영회와 송별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습니다. 부족한 사역의 자리를 채워 주시는 각지의 형제·자매님들이 대학부 모두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답니다.

    (분당. 백*한 형제 송별회/  대만. 진*혜 자매 송별회/  미국. 구*나 자매 송별회)

     

    올해 대학부 신입생은 ‘송*현, 유*상, 이*한’ 세명의 형제들 입니다. 신입생의 소감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율동과 찬양(나는 걸작품)도 시켰다죠? 짓궂기도 하지만 애정도 각별한 대학부입니다.  신입생과 대학부를 위한 선물을(5천원 미만)을 미리 준비하고 함께 나누기도 했답니다.

    (신입생 환영회. 대학부의 애정이 느껴지시나요? ^^)

     

    3월에는 엄*준 형제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아쉽지만, 대학부와 잠시 이별을 했답니다. 엄*준 형제의 군대 생활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기도하며… 머리도 대학부가 직접 밀어주었답니다. 엄*준 형제의 건강하고 무탈한 군대 생활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 대방교회 대학부와 함께 잠시 활동했던 하*재 형제도 다시 호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돌아가는 발걸음과 그곳에서의 또 다른 시작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엄*준 형제, 하*재 형제 송별회)

     

    아쉬운 이별도 있지만 새로운 만남도 있답니다. 싱가폴에서 교환학생으로 오게 된 나다니엘 형제, 분당교회의 백*영 자매가 생활관에 입소하여 대학부와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대학부는 어떤 내용을 배우고 있나요?

    교회교육은 총회 교육부와 동일한 비전과 운영목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전과 운영목표를 기준 하여 각부(아동부, 학생부, 대학부, 사청부)에서 한 해 목표를 설정하는데 대학부는 기준 목표를 그대로 수용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부는 안식일을 온전히 교회에서 보내고 있답니다. 오전 대예배를 시작으로 오후 교회교육 예배를 마치면 바로 대학부 분반이 시작됩니다. 일부 대학부는 오후 교회교육 예배시간에는 아동부 교사사역을, 오후 분반시간에는 학생부 교사사역을 하고 있답니다. 오후 분반시간에 저희가 배우는 말씀은 총회의 교육과정 중 ‘영혼의 양식 1권’입니다.

    따로 또 같이 활동 할 수밖에 없는 대학부이기에 이외의 활동에서는 아주 똘똘 뭉친답니다.

    이렇게 온전히 안식일을 보내고, 일요일은 김용준목자님과 성경공부 (매주 일요일 오전 10:30)를 한답니다. 목자님과는 ‘제자훈련용 성경공부시리즈 제5권 로마서’를 배우고 있습니다. 성경공부 후에는 점심식사도 함께하면서 교제하고 있습니다. 밖에 나가 놀 틈이 없는 대학부이지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야외분반 / 한강 벚꽃구경 나들이 / 소풍 / 최*진자매 세례식)

     

    대학부만의 특별한 활동이 있나요?

    대학부 모두 함께 참여하는 비전과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서로 신앙 동역자로서 항상 서로를 위해 사랑으로 기도하고 있답니다. 매일 영성관리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자유롭지만 함께 하므로 더욱더 열심을 내고 있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불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3)

     

    [1. 대학부 비전과 기도 제목]

     “믿음과 사랑 안에서 하나 되는 대학부”

     “믿음과 신앙의 성장을 이루는 대학부”

     “성령 충만한 대학부”

     그리고 미수령자를 위한 합심기도

     

    [2. 대학부 영성관리]

    1) 매일 기도하기

    매일 저녁 10시 온라인(ZOOM)에 접속

    대방교회 전성도와 함께 10분 동안 합심기도

    2) 매일 성경읽기

    매일 성경읽기표에 맞춰 성경통독.

    대방교회 성경통독 목표 100명! 에 동참

    온라인(네이버 밴드)에서 나누기

    (각자의 묵상내용/ 성경구절 등 자유롭게)

     

     

    (함께하는 성경통독 / 함께 나누는 말씀묵상)

     

    마지막으로 대학부 교사로서 대학부에 소망하는 점 있나요? (이*언 형제)

    저희 대학부가 참예수교회 정체성을 확립하여 참 그리스도인 상을 정립하길 바랍니다. 그에 따라 주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실 헌신자로 나서는 대학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 (시 110: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음 세대를 세우는 대방교회의 대학부를 만나봤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꾼들인 대학부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 [복음메시지] 성령의 사역 (요16:5-11)

    [복음메시지] 성령의 사역 (요16:5-11)

    말씀제목 : 성령의 사역 (요16:5-11)

    2023년 2월 14일 김용준 목자님 

     

    (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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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생각해보았다. 주님께서는 핍박으로 인해 실족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핍박을 하는 것도, 핍박으로 인해 실족하는 것도 모두 무지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핍박 가운데 실족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해주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내적으로는 신앙의 혼돈이 있고, 외적으로는 핍박이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어려운 때에 어떻게 해야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는 이를 위해 미리 말씀해주셨다. 또한, 우리가 그런 상황 가운데서 실족하지 않으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함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시다. 성령이 핍박을 이기기도 하고, 혼돈 가운데서 바른 신앙을 찾게 해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핍박 가운데서도 보혜사 성령이 나와 함께하시고, 혼돈이 와도 내가 믿는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는 것을 내 안에 거하는 성령이 증거해주신다는 것이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결정적인 시간에 바른 신앙을 지킬 수 없다. 성령이 용기와 지혜를 주셔야만 우리가 일어날 수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구약 성경이나 바울 서신에서도 그런 내용을 볼 수 있으나, 핵심적으로는 복음서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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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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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4절부터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

    첫째로, 기억나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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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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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도와주신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억난다는 것은 창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미 들었던 말과 보고 듣고 깨달았던 일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생각나게 하신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미 듣고 본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셔서 죄를 이기게 하시고 핍박을 견디게 하시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마치 농사와 같다. 종자를 심었다고 바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여건에서 일정한 때가 되어야 싹이 난다.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싹이 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의 씨앗이 마음에 뿌려졌다고 해서 말씀이 바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그때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그 비로 인해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말씀의 싹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듣고 배워두는 것이다. 듣고 배운 말씀이 없다면 생각나는 말씀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듣고 배워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말씀이 생각나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은 창작이 아니다.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들은 말씀, 깨달은 말씀, 배웠던 말씀을 적절한 상황에서 생각나게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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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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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건과 성령 강림을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시지 않으시면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야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비둘기 같이 성령이 임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잉태되셨을 때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도 성령에 이끌려 가셨다. 이는 모두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이다. 예수님의 중요한 순간마다 모두 성령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이 일이 일어났다. 또한, 성경의 중요한 일들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구약부터 신약까지 성령의 역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가야만 성령이 온다고 말씀하셨는가? 이 성령은 무엇인가? 이 성령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령이 아니라 약속의 성령이기 때문이다. 창조 시에도 성령의 역사는 있었고, 선지자들에게도 성령은 역사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복음적 기능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었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이다. 그리고 이렇게 임하는 성령을 약속의 성령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복음의 역사로 나타나는 약속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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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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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약속의 성령은 십자가 사건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다음에야 약속의 성령의 역사는 시작된다. 주님께서 이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이 약속의 성령의 유익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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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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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망하시리라’는 ‘엘렝크세이’로, ‘엘렝코’의 미래 시제이다. ‘엘렝코’는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죄를 깨닫게 하다’, ‘바로잡다’, ‘꾸짖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책망하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죄’와는 연결이 되나, ‘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연결이 부자연스러워보인다. 좀 더 자연스럽게 풀자면, ‘성령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밝히 드러내주고, 이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주는 일을 우리 안에서 해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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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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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정죄함을 받는 이유를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을 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아 알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거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규정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죄보다 심각한 죄라고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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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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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설교가 사도행전 2장이다. 베드로가 죄를 지적했을 때,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의 찔림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말하며 변화되었다. 베드로의 설교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책망한 것은 그들의 방탕함이나 타락, 부패함 때문이 아니었다. 베드로가 지적한 것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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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행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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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그들에게 경고하고 깨닫게 하고 있다. 그 결과가 37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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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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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것은 로마 군병들이었다. 그런데 베드로의 말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말했다. 로마 군병들이 찔러 죽였고,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가 예수님을 못박았다고 판정하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다. 십자가는 20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고백하고 나를 책망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2000년 전의 사건이 오늘날 나를 위한 사건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 성령이 내게 역사하셔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은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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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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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로, 의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령이 의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주시고 바로잡아주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의를 사람들이 행하는 도덕적인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을 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의의 기준에 따라, 예수님께서 사회 질서를 교란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신성 모독죄를 저질러서 처형받아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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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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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사람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종교 운동을 일으켰다가 유대인과의 힘겨루기에서 실패한 지도자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 올라가셨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무죄하시고 완전히 의로우신 분임을 증명한다. 죄 있는 자가 다시 살아 예수님께 올라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으시고 하나님께 가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심을 증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죄의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도 완전한 해답이라는 사실은 의에 대해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성령이 없는 사람에게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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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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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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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희생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멸망 가운데 처할 수밖에 없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이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의로우심이 밝히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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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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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로, 성령께서는 심판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으시고 바로잡아주신다. 그러면 그 그릇된 생각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심판받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통 가운데 죽으셨으나, 실제로 심판받은 것은 사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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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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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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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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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이루었다’는 외침은, 죄인을 위한 대속 뿐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사단을 심판하시는 일도 완성되었다고 선포하신 외침이었다. 사단은 죄와 사망, 두 가지 권세로 세상을 지배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죄에 대해 승리하셨고, 부활하심을 통해 죽음에 승리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리는 사단이 심판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세상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던 사단에 대한 심판이었다. 성령께서 이것을 밝히 드러내 알게 해주시는 것이다.
    ​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
    성령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할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어떤 것을 증거하는가? 주님께서 가셔야만 성령이 오시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이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증거하는가? 첫째로, 약속을 주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둘째로, 주님께서 사단을 이기셨음을 증거한다. 성령께서 이것을 밝히 드러내셔서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심판 받았다고 생각하나, 예수님께서 다시 사셔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음을 통해 성령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단이 심판받았음을 증거한다.
    성령은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해주셔서,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핍박 중이든, 환난 중이든, 혼돈 가운데서도 성령을 의지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흔들리지 않는다.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귀한 성령의 본질적 역사이다. 우리는 이 성령을 받았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단비가 내리도록,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성령의 역사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해주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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