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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향기] 세례식

    [신앙의 향기] 세례식

    할렐루야! 

    이번 참예수 동부 교회 소금처럼 8월호에선 지난 6월 23일 세례식을 소개합니다.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기에 앞서 날씨가 좋지 못해 세례식이 한번 연기되었는데요,

    높아진 기온에 계곡물이 메마르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과 달리 세례식 전날 비가 와

    계곡물이 아주 적당히 차올랐습니다.

    세례식에 앞서 화창한 날씨와 계곡물을 채워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수세자님을 도운 동부 형제님들과 세례식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 성도님 덕분에

    더욱 충만한 세례식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영혼이 구원 받길 소망합니다!

     

  • [성도소개] 김도윤 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김도윤 형제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

    A : 6월 24일 군대 가게 된 김도윤입니다.

    Q :나의 학창시절

    A :중학교 시절에 공부가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고등학교 때 미대에 가겠다는 목표가 생겨 열심히 미술도 하고 공부도 했습니다. 어릴 때 할머니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고,  스스로 다닌 것은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다녔고 삶이 힘들 때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였습니다.

    Q :나의 성격/장점,단점

    A :느긋한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침착함을 잘 유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좀 더 맞춰주려고 노력하는 장점이 있는 반면, 하고싶은 것만 하려고 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Q :좋아하는 음식/운동/취미

    A :편식하지 않습니다. (초,중,고)학교급식을 거의 남겨 본적이 없습니다. 미대 다니기 때문에 미술도 하고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보컬 학원도 다녀보고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 운동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Q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게 된 때는?

    A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듣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성경이 남아있고 널리 퍼진 것을 보면 성경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항상 듭니다.

    Q :처음 신앙 생활하게 된 계기

    A :4살 때부터 할머니와 고모부가 데리러 오셔서 교회를 다녔고 본격적으로 다니게 된 때는 아마 중3 이후 부터일 것입니다. 중학교 때 공부가 저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는 때 내가 원하는 것이 뭘까 생각하다가 일단 교회를 잘 다녀보자 생각했고 교회 다니며 영은회도 많이 가고 단기신학도 가면서 믿음이 더 생겨서 저녁 예배까지 계속 드릴수 있었습니다. 교회 선생님들과 목자님과 대화를 계속 했고 영은회와 단기신학을 다니며 더욱 제가 살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 :성령 받은 간증

    A :6학년 여름성경학교 둘째날 마지막 기도 시간에 정말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 때 했던 기도가 어머니의 건강 회복을 위한 기도였기 때문에 하나님! 저에게 성령을 주셔서 저희 가정을 살려주세요!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Q :전도하기 위한 특별한 전략이 있나요?

    A :친구들에게 성경 이야기를 자주 해 줍니다. 시시해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역사 이야기와 관련지어 전하면 조금은 관심있어 했습니다.

    Q :나의 가장 믿음이 좋았을때

    A :이건 진짜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영은회랑 단기 신학 겹쳐있는 그 한 달 동안은 정말 신앙심이 가장 높았었습니다. 제대후 다시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합니다.

    Q :요즘 기도 제목은?

    A :제가 이번에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건강하게 잘 돌아올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Q :은혜받은 성경구절

    A :(사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성경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 생각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로 인해 용기를 주셔서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Q :좋아하는 찬양

    A :너는 내 아들이라.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이 찬양을 들을 때마다 뭔가 안심이 되고 다시 한번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Q :닮고 싶은 성경 인물

    A :바울을 닮고 싶지만 성격상 닮기 힘들 것 같아서  바나바 같은 사람이 되어서 신도분들의 기분을 잘 살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Q :기억나는 교회 친구, 선배, 선생님, 추억

    A :또래 중 가장 친한 친구는 대방교회 유일상 이라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사촌 백종한 형이 있는데 제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게 도와줬습니다. 동부교회 목자님, 선생님, 성도님들이 저를 포기하지 않고 지도하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진짜 제 신앙의 뿌리와 같습니다. 그리고 고3 수련회 진짜 재밌었습니다.

    Q :신앙생활중 믿음이 흔들린 적은? 반대로 큰 기쁨이나 행복을 느낀 적은?

    A :신앙이 흔들렸던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시간 나면 교회에 계속 왔습니다. 큰 행복을 느꼈을 때는 정말 무기력 할 때가 있었는데 항상 하나님은 “내가 있으니 괜찮다”고 해주시는 것 같아서 치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Q :살면서 믿음의 시험이 들거나, 하나님이 안 믿어질때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A :많은 유혹과 시험을 당합니다. 그럴 때마다 질 때도 있고 이길 때도 있는데 하나님이 안 믿겨진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위대하셔서 감히 그런 상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마 믿기지 않을 상황이 온다면 내가 잘 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느낄것입니다.

    Q :기쁘고 감사한 일

    A : 저는 20대이고  또래 친구들은 세상에 녹아들어 살지만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마음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교회를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들과 제가 건강 할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 일이 잘 풀리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Q :나의 믿음 결혼에 대한 생각

    A :아직 어려서 결혼에 대한 실감은 안나지만 당연히 믿음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장래희망/나의 소원/ 삶의 목표

    A :디자이너가 꿈이고,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기지 않도록 해주세요. 좋은 직장 동료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가고 하나님께 더욱 많은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Q :십년(10년) 뒤의 나의 모습

    A : 평범하지만 전도에 힘쓰고 좋은 가정을 꾸려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배도 잘 드릴 수 있게 금요일과 토요일은 시간이 비는 일을 하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목자님 내외분 & 청년부와 함께…

      5월의 어느날에….

     

     

     

  •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성도간증]하나님의 마음을 구하게 해주시는 은혜

    2024. 4. 30. 화요일 밤 간증회(이명철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 한 구절 읽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성도님들께 안부인사

    할렐루야 동부교회 성도님들 평안하신지요. 제가 오늘 교회를 오며 헤아려보니, 오늘이 저희 부부가 동부교회로 전입온 지 2개월이 되는 날이더라구요. 먼저 그간 저희가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많은 은혜와 평안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저희가 동부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는 성도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이번 시간, 제가 드리는 간증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만이 드러나면_ 좋겠습니다.

    제가 동부교회에 출석하면서 받은 몇 가지 첫 인상이 있습니다. 우선 목자님 사모님 인상이 굉장히 좋으시고, 성도님들의 마음이 따뜻하시다는 것 외에, 젊은 청년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큰 향방을 결정하는 순간에 있는 우리 젊은 청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 그리고 참고가 될 수 있는 저의 경험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다

    저는 태어나서부터 목회자의 식구로 교회에 살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세밀하게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꼬마 시절 동부교회에도 있었지만 그 이후 전주교회로 옮겨 신앙생활을 하였는데요, 그 때 교회에 자주 와서 기도를 하는, 교회 전체적인 차원의 기도 운동이 있었습니다. 전주교회 2층 예배당 입구 옆 게시판에 아주 큼지막한 표_ 희망자에 한해, 거기에 자신의 이름을 쓴 다음, 교회에 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이름 칸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나가는 식이었습니다. 너무 예전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각 가정에서 기도를 하여도 표시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히 기억을 하는데요, 그 큰 기도표 맨 위에 ‘주님, 저 왔어요’ 라는 큰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제 이름 칸에 동그라미를 꾸준히 표시해야겠다는 동기 외에도, 다른 친구들은 다 성령을 받았는데 교회에 살고 평일 예배까지 출석하는 제가 성령을 못 받고 있다는 것이 속상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겨울 영은회가 끝나고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가 혼자 기도를 하고 다시 사택으로 내려와 씻고 밥 먹고 학교를 가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초등부 영은회가 보통 며칠이니까, 그것의 스무 배, 그러니까 한 달 정도 이렇게 기도하면 주시겠지.. 그런데 쉽게 안 주시더라구요. 나중에는 오기가 생겨서 두 달, 세 달 계속 그렇게 하였습니다.

    전주교회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교회 예배당이 매우 정겹고 아름답습니다. 새벽 아침에 예배당에 올라가면 한 쪽 창에서 햇살이 빗금치듯이 들어오구요. 그 햇살에 비쳐 흩날리는 입자들이 반짝입니다. 바로 옆 산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오고.. 그 곳에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그 게시판의 팻말처럼, 주님 저 왔어요. 하면, 그래 왔니, 내 아들아. 비록 지금 당장 제게 성령을 주지 않으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하시는 이 순간이 좋습니다. 하며 그 고요한 햇살 속에서 저를 품어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하나님의 사랑를 느끼며 기도를 하다보니, 새벽에 예배당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 오히려 내심 기대까지 되었고, 하루 하루 하나님께서 저의 매일을 깊이 동행해주신다는 느낌을 난생 처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초부터 시작한 기도는, 수개월 더 드린 끝에 그 해 가을, 하나님께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진로를 인도해주시다

    기다리던 끝에 성령이란 선물을 받았으니, 그럼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교회 예배를 잘 드리고, 교회에 봉사를 하고,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뭔가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세상의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제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시 어린 마음에는, 현재 내가 학생이니, 주어진 현재의 활동, 그러니까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방법 중 하나 일 수 있겠다..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니던 학교가 전주에 공부를 열심히 시키던 학교 중 하나라 항상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참 쉽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마침 교회 안에 공부를 잘하시는 형들이 있어서 그 형들을 유심히 관찰하기로 했습니다. 여기 자발적으로 앉아있는 우리 청년들처럼, 그 형들도 평일 예배, 안식일 예배를 온전히 다 드리고, 예배가 끝나고 어디론가 가더라구요. 그래서 집에 갔나보다 하고 근처 독서실에 가보니, 벌써 거기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더라구요. 입시가 치열했던 그 시기에, 서울도 아닌 전주 일반인문고교에서 착실하게 신앙생활, 그리고 공부를 하며 결과적으로 모두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가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그것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 예배를 온전히 드리고 주어진 여건에서 자신의 달란트로 최선을 다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절대 손해는 보게 하시지 않는구나라는 간접적인 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대방교회로 부임하시면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전학간 학교가 OO포 고등학교였습니다. 학교가 공부를 잘 못해서 똥포 고등학교로 불렸는데요, 심지어 첫 해 담임 선생님이 제게 전학을 권유하실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제 어머니가 제게 무언가 가져다 주실 것이 있어서 제게 방해가 될까봐, 제게 말씀하시지 않고 학교에 살짝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교실 뒷 문에서 저 말고 다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상당한 충격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야간 자율 학습도 있었는데, 참여한 학생이 저를 포함해 고등학교 1~3학년까지 전교에서 2명이었고, 끝까지 매일 꾸준히 참여한 학생은 저 1명이었습니다. 분명 저 말고도 각 가정이나 학원에서 성실히 공부를 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학교가 교회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거든요. 텅 빈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불안할 때, 힘이 들 때, 언제든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고 찬양했습니다. 평일 예배도 참석하였습니다. 수능시험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 말씀을 일독하는 게 먼저라는 마음을 갖게 해주셔서, 성경통독도 고3때 처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까이 있게 해주신 은혜에, 저 또한 전주에서 보았던 그 형들과 같은 방식으로 신앙생활과 공부를 성실히 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 같은 일상에 저를 지탱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주변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적성과 형편에 부합하는 학교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교를 지원할 때, 학과도 정하잖아요. 당시 주변에서 세상적으로 유망한 이런 저런 학과들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기도 가운데, 직업을 위해 학과를 택하기보다, 제가 여러모로 부족함에도,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구할 수 있겠다 싶은 전공을 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두에 저희가 읽었던 잠언 말씀구절에 뒤이어 이런 말씀이 있는데요,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잠 8:19)

    오늘날을, 투자 대비 효율을 중시하는 가성비의 시대라고 합니다. 저는 제가 그간 공부한 것에 비해 더 많은 인정과 수익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제 장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인도하시리라는 평안과 담대함을 얻고 싶었습니다. 방금 읽었던 구절처럼, 이 땅의 정금이나 천은보다 하나님 나라에서 주실 상급에 더 큰 의미를 두며 살고 싶었습니다. 임용시험에 합격해야만 하나님 은혜, 불합격이면 무조건 내 부족함이라기보다, 하나님을 구하며 현실의 시험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과정- 돌아보면 그 과정 자체가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군(軍) 복무로 인도해주시다

    그런데 남자는 대학교를 진학해도, 또 군대라는 관문이 있잖아요. 그 때만 해도 군대에서 여러 안전 사고 등 들리는 뉴스들이 있어서 어린 마음에 무언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교회를 잘 다니지 못하는 부분이 제일 우려가 되었습니다. 그 때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루는, 교회에 어떤 분이 군대를 가신다고 교회에서 환송회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회를 또, 그리고 그 다음달에 또, 생각보다 자주 오시더라구요. 그래서 그게 무엇인가 알아보니, 대학교를 다니며 훈련을 받고 이후 임관하는, 학군장교라는 제도가 있더라구요. 아, 이거라면 내가 군복무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겠구나. 하지만 지금보다 제가 그 때 더 체격이 왜소했고 체력이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취업난에 더불어 학군장교 경쟁률도 상당하여 제가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 유년시절, 성령을 구하며 하나님을 찾던 제 마음을 다시 떠오르게 해주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제게 신앙적 동기를 부여해주었습니다. 다시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혼자 공원에 뛰어가 시험 종목들을 연습하는 준비를 1년여 정도 한 끝에 학군장교에 들어갈 수 있게 인도해주셨습니다. 강원도 전방이나 교통이 불편한 산지 부대에 배치받은 동기들과 달리, 오직 저만 인천교회에 대중교통 20분이면 갈 수 있는 부대로 배치받게 해주셨습니다. 장교도 밤을 새우는 평일 근무, 종일 근무하는 주말 근무를 서야하는데요, 군 간부들이 제일 기피하는 근무 요일 중 하나가 토요일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 근무하고 이튿날 일요일을 쉬면 주말이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제 막 들어온 막내 초임 장교임에도, 일요일, 공휴일에 근무를 더 서는 대신,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전역할 때까지 토요일 근무를 제외시켜주시는 상관을 만나게 해주셔서 군 복무 기간 동안 안식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군 복무에 있어서 제가 가장 바라던, 안식일을 지키는 은혜를 허락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미국으로 인도해주시다

    제가 미국에서 몇 년이라도 공부하고자 했던 동기도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 생활을 더 잘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군 전역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 동부에서 열리는 단기 신학을 다녀올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많은 목자님들, 신앙의 선배님들, 청년들을 통해 제 신앙이 더 발전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조금 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신앙과 제 전공에 힘을 써서 하나님 앞에 조금이나마 더 나은 그릇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나 현실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두고 기도를 하며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교원이 휴직을 하고 유학을 가는 것이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휴직을 할 수 있는 규정이 비교적 완화되었고, 그것을 교장 교감 선생님께서 제게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본래 젊은 남자 선생님을 보내는 것을 잘 추천하지 않지만, 그간 학교에서 근무한 태도와 실적을 고려하였을 때 한 해라도 젊었을 때 외국에 나가서 추가적인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믿고 먼저 추천을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교육청의 최종 면접 심사 때도 면접관분들 중, 과거 교육청 주관 행사 때 저를 눈여겨 보셨던 장학사님이 계셨습니다. 인사 규정이 바뀐 후 제가 최초 지원자였음에도,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저를 보내주시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저는 상황적 인도하심 가운데 제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많이 멀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론 가는 길에 교회 형제, 성도님들께서 차를 함께 태워주셨는데, 참 감사하면서도 죄송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교회에 봉사하고 싶었지만 저로 하여금 먼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그 분들과 가까워진 이후 들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한국에서 아무리 신앙생활을 착실히 했다 해도, 그리고 인접 뉴욕 교회에서 지난 한 해 동안 신앙생활을 해서 그간 저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하여도, 출석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과 임원들이 직접 신앙생활을 함께하며 제게 적응할 시간을 주고, 저를 지켜보고 직접 검증하는 시기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 교회 임원 한 분이 제게 다가와, 교회 생활관에 들어와 교회를 위해 봉사해주지 않겠냐고 먼저 물어오셨습니다. 이미 한 명의 형제가 있지만, 교회에 일손이 많이 필요하여 제가 들어와 같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제의하셨습니다. 제가 미국 교회에서 충분히 덕을 끼치며 잘 할 수 있을까, 부모님께서는 학교 기숙사에 그대로 남아 지내는 것이 어떨까_ 하셨지만 저는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감사했습니다. 먼저 교회 임원분들께서 저를 인터뷰하시고, 그 간의 제 신앙생활의 태도와 왜 들어오려 하는 것이며, 어떻게 봉사할지 등의 대답 내용을 가지고 다시 직무임원회의를 통해 가장 가까이에서 교회를 섬길 기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사랑과 신중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각 나라와 교회 실정을 고려하여, 본교 목자님께서도 말씀하신대로, 그리고 현재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들처럼,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성업에 힘쓰는 모습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저는 남은 기간을 교회에 가까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새벽 하나님을 만나고 교회에 봉사하며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과 동역자분들을 통해 신앙의 여러 모습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제가 홀몸에, 휴직을 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 신분이었고, 그것도 교회에 거주하며 봉사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이 참 감사합니다. 마침 제가 출석하던 교회가 대전 총회와 같이 많은 교회 행사가 주최되는 곳이었고 현재는 미국 총회의 교육센터로 다시금 거듭나는 중에 있습니다. 그 교회를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며 미국 청년 및 성도로서 할 수 있는 행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자연스레 참여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전반적인 미국 생활과 학업을 인도해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덤 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기 전 하나님께 가장 바라고 구했던 모든 것을 당신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그 분의 마음을 함께 구할 수 있도록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시다

    그렇게 교회에 머물며 집중적인 신앙의 수련 기간을 거치는 동안, 제 자신의 밑바닥이 더욱 적나라하게 깨달아졌습니다. 말세를 향해 가는 세상 속에, 제 자신은 너무도 연약했고, 제 신앙을 홀로 지킬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간 목자님들께 배운대로, 제가 배우자에 관해 기도한 두어 가지 기도 제목이 있었는데요, 그 중 가장 큰 하나가 하나님의 뜻이라면 저와 함께 어디든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물리적 환경의 변화 뿐 아니라 신앙적 도전도 내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 자신에 비교해보았을 때 훌륭하신 자매님들이 많았습니다. 예의상의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습니다. 누군가와 꼭 비교하기보다, 상대방에게 무얼 바라기 전에, 제 자신부터가 제 기도 제목을 감당할 수 있는 신앙적 성숙과 용기, 그리고 책임감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상대 자매에게도 저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제 현재 현실적 상태에 대해 기대게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스스로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는 한 명의 피조물이자 인간이었기에, 누가 되었든 결혼 전 제가 어떠한 약속을 하거나, 소문을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상황적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제 부족한 신앙적·인품적 됨됨이 때문에, 배우자 기도로 정확히 10년이 채워지는 시점에 지금의 자매를 아내로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신앙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 있어서, 그냥 평상적인 기도가 아닌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보니, 갈수록 아내에 대한 제 사랑이 깊어지는 가운데, 저희를 신부로 사랑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점점 더 체험하고 있음에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변함없이 인도해주시는 은혜

    앞서 저희가 불렀던 찬양 499장(저 장미꽃 위의 이슬)처럼, 미국의 예배당 새벽 아침에도 전주교회와 같이 정확히 같은 방향에서 햇살이 빗금치듯 들어옵니다. 흩날리는 입자들이 햇살에 빛나고, 바로 옆 창문에서 맑은 공기와 지저귀는 새 소리가 불어들어옵니다. 예배당 밖에서 사슴들이 풀을 뜯고 안에서는 하나님과 저만이 있습니다. 20년 전 전주의 예배당에서 한 소년을 안아주시던 당신은, 먼 타국에서도 저와 함께 동행해주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바라던 제 소망과 기도들을 더욱 놀랍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채워주셨습니다. 먼저 당신의 마음을 구할 때에, 제 앞의 현실을 극복할 힘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마침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쯤, 교회 앞 잔디밭에 죽은 나무가 있었는데요, 그간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제 사비로 한 그루- 향기나는 작은 묘목을 심어드릴 수 있게 허락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의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교회 앞 마당에 심어드린 그 작은 나무는 올해 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전 회기동 교회로 돌아와_ 성도님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개인적인 일을 통해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마음을 다시금 배우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당신의 애타는 부르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당신께서 간절히 사랑하시는 자녀임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서두에 읽었던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성도님 여러분,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찾고 사랑하는, 저희에게 훌륭한 신앙의 모범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또한, 하나님 안에서 지금처럼 함께 화목하며,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그 신앙의 여정에 함께 하기를 겸손히 소망합니다. 이 모든 은혜와 감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립니다. 아멘.

    3월에 전입한 이명철 형제 부부

    여기를 눌러 주세요. (간증 영상 보기)

  •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성도간증]하나님을 찾게 된 과정

    저는 동부교회 김동녀라고 합니다. (1936년생) 어릴때 경북 안동 풍산읍에 살았습니다. 문경새재 넘어오면 자그마한 풍북국민학교가 있어요. 그 학교에 입학을 하였어요.

    어릴 적 학업에 대한 열망이 크다

     8살 입학식날 큰 외삼촌이 “동녀야, 학교 가서 나이와 성을 물어보면 일본말로 대답해야 한다. 나이는 핫사이데스, 이름은 가네야마도우조라고 대답해라.”  저는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마음 속으로 가네야마도우조, 핫사이데스를 속으로 계속 되내었어요. 학교에 가서 외운대로 큰 소리로 대답을 잘 했어요. 그런데 1년 다니다 가정 형편이 안좋아서 이사를 하면서 학교를 못다녔어요. 종이도 없고 연필도 딱 한자루 있던걸 아껴 썼고 다 쓰면, 손가락이나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씨도 쓰고 1,2,3,4도 써보았어요. 그러던 중 배를 타고 낙동강을 건너서 풍산국민학교를 다니게 되었어요. 다시 1학년으로 들어갔는데 우리가 세종대왕 한글 1회래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으니 우리글을 배워야 한다고 했어요. 8살, 15살, 20살도 1학년이에요. 장가 간 사람도 2명이나 있었어요. 저는 1년을 공부하다 와서 그런지 공부가 쉬웠어요. 선생님은 “얘는 수학을 잘하네.” 하시며 나중에 2학년은 건너뛰고 3학년으로 올려 주었어요. 그 당시 공부 잘하는 사람은 1반, 중간은 2반, 공부 못하는 사람이 3반이었어요. 저에게 수학은 좀 쉬웠어요. 그런데 저희집은 너무 가난하고 먹을 거리가 없어서 한때는 굶고 한때는 나물밥 먹는 형편이라서 또다시 학교를 못다니게 되었어요. 학교 가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다시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쓰고, 물가에 가서 모래에 쓰고 당시 종이 색깔이 신문보다 까맸어요. 종이에 가갸거겨고교를 쓰며…… 종이가 너널너덜 할때까지 썼어요. 점으로만 표시하는 아래아라는 글자도 있었어요. 공부를 중단해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일제 시대 1년, 세종대왕 한글 나오고 1년! 이렇게 2년은 완전히 다녔어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다

    아버지는 저를 부잣집에 시집 보낸다며 21살에 30리 되는 파평윤씨 집안으로 시집보냈어요. 저희 외가쪽으로 연관이 되는 집안이었어요. 시집 식구가 16명이에요. 시할머니, 시어머니, 맏동서 가정, 시누이 2명, 시동생 3명, 저희 부부까지 7남매에요. 매일 분주히 일하고 베를 짜고 가족이 많다 보니 보리쌀을 가마솥에 거의 차게 넣어도 다 소비가 되었어요. 부자라 해도 쌀은 어른들만 좀 먹고, 여름에는 보리밥을 고봉밥으로 먹었지요. 일을 해야 하니 분가를 못한 채 10년을 살았어요. 어느날 가까운 곳에 빈 집이 나서 남편이 저와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분가를 했어요.  처음 분가하고 살림이 조금 어려워서 낮에는 시댁에 가서 일 해주고 쌀을 받아왔어요. 하루는 시댁가서 밤 10시쯤 설거지 끝내고 오니 남편이 없어요. 동네에 아는 집들을 찾아가 보았어요. 동네가 다 윤씨 일가에요. 점방 뒷집에 가보니 그 집에 사는 분이 남편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돈을 대줄테니 나락을 사서 차에 실어서 정미소에 가서 찧어서 쌀로 팔면 괜찮을거 같다. 다 일가이니 잘 될거다.”  하더라고요. 그 뒤로 남편은 나락 장사를 시작했고 1년을 하니까 너무 잘 되어 그 돈으로 땅을 3마지기를 샀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윤씨 일가다 보니 나락을 높게 달아도 몇 바가지씩 더 넣어주면서 “아지매하고 아재하고는 살아야 된다. 마당에 가마니를 쟁여두면 쥐도 먹고 닭도 먹으니까 축 나는거 보충해야 된다 ” 하며 나락을 많이 퍼넣어 줬어요. 나락이 많아서 길에 길게 쟁여뒀는데도 아무도 훔쳐가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가져가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지만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남편은 8톤짜리 큰 차를 불러서 수십가마니를 실어 나르며 일을 하였어요. 나중에는 논 8마지기 네모 반듯한 걸 샀어요.

    서울에 올라오게 되다.

    시동생이 캐나다에 이민가려고 보유하고 있던 기름집을 처분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했어요. 남편은 급하게 집안 어른에게 전화해서 논 8마지기를 팔고 시동생의 가게를 인수 받아서 우리는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어요. 세월이 흘러 아들이 군대를 갔어요. 군대 간 뒤에 보니 찬송가랑 성경을 많이 사놓고 갔더라고요.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이제는 신학을 한다고 해요. 저는 아들이 사놓은 찬송가를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니까 그냥 읽었어요. 찬송가를 읽으니까 눈물이 자꾸 나왔어요. 나는 속으로 아들 따라서 하나님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들이 목회를 하는데 엄마가 안믿으면 아들이 어디에 가서 전도를 할까 그런 마음도 들었어요. 얼른 하나님을 찾고 싶었어요. 저는 장사가 싫었어요. 장사하면서 아무리 선한 사람도 물건을 팔 때 좋은거 좋다 나쁜거 나쁘다 그렇게 못하잖아요. 좋지 않아도 손님이 물건 좋아요? 하면 네 좋아요 그렇게 말해야 하고….거짓말하는 것이 싫더라고요. 장사 그만두면 얼른 하나님 집부터 찾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부교회 이름을 많이 들어봤기 때문에 어디 있나 찾아봐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하나님께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저 장사하기 싫어요. 장사 좀 안 하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몇 년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시장을 뜯는다 하더라고요. 아주 신기했어요. “아 잘 되었다. 내 기도를 들어주셨나보다!” 장사 치울 생각하니, 속으로 너무 좋아서 남편에게 물었어요. “한집 두집 시장 뜯는다고 가게를 나가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그런데 남편이 말을 안해요. 며칠 후  “누구는 나갔는데 우리는 언제 나가요? 기름가게 고추가게를 고물상에 주면 너무 쌀 것이고 어디 누가 새로 차리는 사람을 찾아보고 주면 돈을 더 받을 건데 한번 찾아보죠!” 해도 남편은 아무 말도 안해요.

    시간이 흘러 다 나가고 3집 정도 남았어요. 마음이 타들어 갔어요. “우리는 마지막으로 나가야 겠네요.” 그때서야 남편은 입을 열었어요. 애들 용돈도 줘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니 가게를 그만 둘순 없고 남편의 복덕방으로 옮긴다는 거에요. 그리고 남편의 복덕방은 차고에다 우선 하겠다는 거에요. 저는 남편에게 복덕방은 상봉터미널 앞이고, 38-2 버스 종점인데 고추가게, 기름가게가 잘 되겠냐며 먼지가 많아 물건도 내놓지도 못할텐데 그만 이번 기회에 치우자고 했지만 남편은 제 말을 듣지 않았어요. 그 사이 아들은 신학을 마친 후 안동 참예수교회에 발령이 났어요.

    가게를 옮기다

    가게를 옮겨놓고 보니 고추 가마니가 한가득이에요. 38-2 종점이니 사람이 버스에서 꾸역꾸역 내려요. 그 당시 상봉터미널에서 강원도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을 때였어요. 사람들은 “고추가게&기름가게가 생겼네? 여기 무슨 장사가 되나?” 하며 다들 무슨 장사가 되겠느냐며 지나가요. 저는 낯이 뜨겁고 부끄러워서 문을 닫아 놓고(문은 유리에요) 돌아앉아서 고추 꽁다리만 땄어요.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울다가 고추 꽁다리 따고….. 내가 이럴때가 아니고 하나님 찾아야 하는데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닌데….. 그러던 어느날 한 남자분이 들어오더니 “아, 여기 고추가게 잘 들어왔네! 기름가게 잘 들어왔네 하시며 “아줌마! 고추를 사고 싶은데 아주 좋은 것도 말고 아주 나쁜 것도 말고 좀 섞어서 20근씩 달아주세요.” 하며 큰 가게를 운영하는데 하루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도 많이 쓰니 대달라고 하더라고요. 하루에 고추 20근씩 쓰고 참기름은 대병으로 2개씩 쓴대요. 그 옆가게도 우리 물건을 써서 두 집이 단골이 되었어요. 조금 작게 하는 가게 4집도 단골이 되어 시장에서 장사할때보다 마진이 나아요. 아주 좋은 물건도 아니고 아주 나쁜 물건도 아니니, 장사하는 제 맘이 편하더라고요. 고추는 꽁다리만 따주면 가져갔어요.

    안동에 내려갈 일이 생기다

    그러던중 시골 큰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시골을 가야하니 단골집에 물건을 많이 갖다주고 내려 갔어요. 3일장을 치르고 친인척들 모두 다 돌아가고 저도 올라가려고 생각하니 그냥 올라가면 내가 언제나 세례를 받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 윤목자가 안동교회 있으니 세례를 받고 가야겠다.’ 남편과 같이 가면 세례를 못 받게 할거 같아서 시어머니에게 “저는 오늘 서울 올라 가야해요.” 했더니 어머니는 갑자기 올라간다는 저의 말에 삼우제나 지내고 올라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올라가야 돼요. 애들 밥도 해줘야 되고 장사도 해야 되고 올라가야 돼요.” 버스가 하루에 두 대밖에 안다니는데 밤 10시여서 저는 다음날 아침 10시에 가방을 싸들고 지금까지 부모 말을 거역해 본적도 없고 거짓말도 안 해봤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어머니 말이 귀에 안 들어 오고 가방 들고 달아나듯 나갔어요. 신작로로 차 타려고 나오니 금방 차가 왔고, 안동 삼거리에서 내려서 안동 참예수교회를 찾으려고 올라갔어요. 예전부터 안동교회는 꼭대기에 있다고 들어왔어요. 그런데 간판이 안 보여요. 지나가는 사람한테 참예수교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니 모른다는 사람들이 많고 또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니 “바로 옆에 있잖아요!” 하더라고요. 교회 간판이 아주 작아서 눈에 안보였어요. 마침 교회는 영은회를 하고 있었고 점심식사를 막 시작하려던 때였어요. 아들 윤목자가 어떻게 오셨냐고 반가워 놀라며 물었어요. 큰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 치르러 내려왔는데 아버지랑 같이 다니면 세례도 못받고 서울 올라갈거 같아서 혼자 교회로 왔다고 하니 “아이고 그래요. 그러면 세례받고 가셔요.” 했어요. 영은회 마지막날 손자랑 같이 받았는데 그 손자가 윤석원 목자에요. 윤석원 목자 아기때 제가 같이 낙동강에 가서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받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다

    열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어찌나 기쁜지 몰라요. 기차 창문 내다보니 산에 나무들이 나를 보고 웃는거 같고 춤을 추며 좋아하는거 같아요. 나도 손을 흔들어 주고 너무 좋았어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며 차를 타고 오는데 왜 그렇게 좋은지 몰라요. 차를 타면 차멀미를 해서 차도 잘 못타는데 그날은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고 차창밖을 내다보니 나무들이 지나가며 나를 보고 방긋방긋 웃는거 같고 세상이 너무 달라보이고 이제는 서울 올라가서 하나님 집만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어요. 가게일을 하면서 손님이 없으면 기도를 하고 싶었어요. 기도도 할 줄도 모르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례를 받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했어요. 밤에도 기도하고 찬송가도 매일 읽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텔레비전에 동물의 세계를 보아도 ‘와! 하나님이 저렇게 만들어 놓고 좋았더라 하신거구나! 참 신기하고도 신기하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넓은 땅에 사는 동물이 정말 신기하고 하나님은 어떻게 저렇게 만드셨을까? 이 동물은 참 사납고 저 동물은 무섭게도 만드셨네! 하나님이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저는 안식일에 가게 문을 닫고 교회를 가야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가까운 교회를 찾다

    안식일이 되었어요. 아침을 일찍 해먹고 단골집에 배달을 해주고 교회를 찾아나섰어요. 전농동 어디에 있다는데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고 사람들에게 물으니 17번을 타면 전농동 사거리에 간대요. 운전수 뒷자리에 탄후 어렵게 내렸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참예수교회 간판이 안 보여요. 이리저리 다니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그때는 전화도 없었어요. 전농동 사거리 근처에 있다는 말만 듣고 찾아간 거지요. 간판이 크질 않았어요. 도착하니 아침 9시였는데 그 당시 허수진 목자님 가정이 시무할때였는데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하시며 아침을 같이 드시자고 하셨는데 저는 먹고 왔다고 했어요. 교회를 처음 찾는거라서 일찍 나섰다고 설명해 드렸어요. 교회오니 하나님 집을 찾은 기쁨에 감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성령을 받다

    저는 가게일을 하면서 고추자루 뒤에서도 기도하고 기름솥 뒤에서도 기도했어요. 항상 기도했어요. 하루는 가게에서 고추 꽁다리 자르다가 기름솥 뒤에 가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며칠후에 교회에서 기도할때 안수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안수를 받았는데 성령을 받았어요. 세례받고 두 달만에 성령을 받게 되었어요. 할렐루야!

    안식일에 문닫고 교회 다니다

    가게 하면서 단골집에만 팔아도 시장에 있을때보다 마진이 나았어요.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께서 그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거 같아요. 단골집에는 안식일 전날 물건을 대주고 안식일엔 문을 닫고 교회 예배하러 갔어요. 월 화 수 목 금은 계속 장사하고 토요일은 가게문 닫고 오전예배 드리고 칼국수 점심 맛있게 먹고 돌아왔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가게를 그만둔지 오래되었어요. 성경을 몰랐을때는 찬송가를 많이 읽고 성경은 시편 1편 정도만 마음에 와 닿았었는데 지금은 성경 암송도 많이 하고 성경이 참 좋아요. 작년에 눈도 아프고 어지럽고 해서 그때 잠깐 성경책을 못 읽어봤고 너무 부끄러워서 올해는 작정하고 읽어보는데 너무 좋아요. 예레미야 51장 15절, 창세기 2장 3절, 요한복음 17장 11절, 빌립보서 2장 6절~8절, 요한복음 14장 26절, 디모데전서 2장 4절, 요한복음 3장 17절, 히브리서 7장 3절, 갈라디아 4장 6절, 사도행전 4장 12절, 로마서 8장 16절 등 성경구절 다 좋아요. 찬송도 492장, 544장, 28장, 253장, 455장, 338장, 405장, 363장, 204장, 460장, 363장, 168장 등 모두 다 좋아요.

    소망이 생기다

    제가 이제는 이렇게 다 늙었는데 꿈이 있다면 육신이 죽어서 낙원에가고, 예수님 재림할때 부활하여 천국가는 것이 꿈이에요. 세상이 얼마 안 남았으니 저의 안 믿는 자녀들이랑 손주들이 내가 살았을 때 믿는 걸 봤으면 너무 좋겠어요. 내가 죽은 뒤에라도 꼭 믿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날 불러주셨듯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였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이 지금은 믿지만 옛날에 믿지 않을 때는 교회를 싫어했어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어릴 때 학교다니며 숫자와 글씨를 알게 해주셔서 찬송가와 성경책을 읽을수 있게 해주셨고 하나님의 집에 오면 늘 사랑이 있고 교회오면 너무나 좋아요. 요한일서 5장 20절 말씀처럼 지각을 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저를 붙들어주신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한일서 5장 20절. 

    아래 사진은 김동녀 모친께서  찬양도 하시고 부군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 [교회행사] 강남,분당 연합, 대학&사청부 수련회

    이 글은 강남교회 청년회장 김종민 형제가 작성해주신 글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인도하심 아래 2024년 강남, 분당, 하남 연합 대학&사청부 수련회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금번 수련회 주제는 교회 목표에 맞게 ‘믿음 위에 세워지는 청년’으로 우리의 신앙이 믿음 위에 단단히 자리 잡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무엇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나누는 목적을 가지고 진행하였습니다.

    주제와 관련하여 말씀을 깊이있게 묵상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믿음 위에 세워지려면 반드시 말씀이 들어가야 하고, 매일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깊게 묵상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며 말씀 묵상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직접 실습까지 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박누가 목자님께서 아버지이신 박헌신 목자님의 간증을 들려주셨습니다. 1세대 믿음의 선배들은 어떻게 믿음을 지켜오셨는지, 안동교회는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세워지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자신의 목숨과 생명을 다해서 믿음을 지키고, 내 생계가 위험하더라도 선택의 갈림길에서는 고민하지 않고 단호하게 믿음의 결단을 내렸던 모습 속에서 정말 우리가 믿음 위에 세워지려면 보여주신 믿음의 결단과 신앙과 관련된 것이라면 타협하지 않는 단호한 태도를 본받아야겠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안동에 있는 여러 명소들을 다니며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름다운 경치와 풍경들을 눈에 담고 바비큐, 레크레이션과 같이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 기쁨의 교제를 누리는 귀한 시간도 가지고 왔습니다.

    특별히 감사했던 것은, 안동교회 성도님들의 사랑이었습니다. 첫째 날 늦은 저녁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님들께서 환대해주셨고 첫째 날에는 다과, 둘째 셋째 날에는 아침식사까지 접대해주셨으며 연휴 기간임에도 저희가 가는 곳곳마다 같이 동행해주시고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는지 계속해서 챙겨주셨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셨고 받은 사랑을 우리 또한 그분들에게, 또 다른 이들에게 흘려보내는 것이 믿음 위에 세워진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도 깨닫고 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섬김을 받으며 찬양교류 시간도 가졌습니다. 비록 지역은 다르지만 영으로 하나된 성도님들과 함께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이 참 귀하고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일정에 함께하여 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앞으로 저희 청년들의 신앙 성장에 많은 관심과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평안!

     

     

  • [성도간증] 기도 중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 글은 2024년 6월 4일 화요일 강남교회 간증 집회 송인성 자매님의 간증입니다. 송인성 자매님이 작성해 주신 글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1.

    정확하게 오후12시8분, 이송요원이 8층 5병동에 있는 나의 병실로 들어왔다. 이름과 생년월일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이송 침대로 옮겨 누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술실이 있는 3층으로 이동했다.

    나는 이 순간까지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이라도 이 침대에서 뛰어내려야만 한다는 생각과 모든 것을 그저 주어지는 대로 맡겨보자는 마음이 뒤엉켜서 어떻게 수술실까지 도착했는지 모른다.

    수술실은 춥고 밝았다. 이송 침대에서 수술 침대로 옮겨졌고 또 다시 이름과 생년월일을 말하고는 기억이 없다. 정확하게 8시간 후 눈을 떴을 때 주변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여러 명의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자기들의 할 일을 하는 중  자꾸만 잠이 와서 눈을 감는 나에게 누군가가 내 뺨을 때리며 외쳤다. “환자 분 눈 뜨세요!심호흡 하세요! 심호흡 안 하시고 주무시면 중환자실 갑니다! 눈 뜨세요!! “

    그리고 이틀 후의 기억이 달아났다.

    어디가 아픈 건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무거운 바위 밑에 온 몸이 깔린 것 처럼. 그 고통은 이 세상에 없는 고통 같았다. 마약 진통제를 연신 눌러 댔지만 너무 아파서 수액으로 된 진통제를 하나 더 달고 살았다. 그제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려보니 6개의 링겔이 내 몸에 주렁 거렸고, 숨을 쉴 수 있는 정도가 되었고 그리고 3일 후에 물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간호 통합 병동을 선택해서 들어갔기 때문에 보호자 없는 병실에 온 것을 처음으로 후회하였다. 왜나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2.

    내가 한 수술은 췌장원외부절제술이다. 췌장 일부와 십이지장, 담낭 그리고 간의 일부를 제거하는 큰 수술이다. 이 병을 안 것은 2013년도 건강 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다행이 암으로 갈 확률이 10%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1년에 한번 MRI나 CT를 번갈아 찍으며 경과를 보면 되는 상황.

    그런데 불행하게도 3년에 한번씩 느닷없이 급성췌장염이 와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되니 췌장이 주는 불안감은 더욱 증폭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1년째 되던 2023년1월11일, 정기 검사를 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모니터를 보는 의사의 표정이 굳어 있는게 느껴졌고 췌장에 있는 혹이 갑자기 1. 4cm나 커져서 불안해 하지 말고 수술을 고려해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정확히 암은 아니란다.

    가슴이 덜컹 했다. 외과 의사들이 가장 기피하는 수술이 이 췌장절제수술인 것을 나는 지난 10년 동안 어찌나 공부를 했는지 아는 만큼 더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확실히 암은 아니라는 말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달까. 그렇게 내과에서 외과로 전원 되었다. 외과의사도 나의 상태를 모니터로 보고는 쉽게 수술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왜? 암은 아닌데..수술 후에 잃을 게 너무 많은 수술 인 것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때 내가 말했다. “교수님, 하라는 대로 할게요.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교수님이 결정 해 주세요”  “….그럼 합시다. 나쁜놈이 숨어 있을까봐..” 그렇게 2023년 4월 수술 결정이 났고 수술 날짜는 5개월 후인 9월로 잡혔다.

     

    3.

    나는 보통 오전 5시30분 쯤 잠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새벽 기도를 가고 오전 7시30분 쯤 아침을 먹고 공원으로 운동을 간다. 집에 돌아오면 대충 11시30분이 되고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왔으니 집안일을 하고 볼일도 보고 심방도 가고 그리고 취미인 꽃 수업도 일주일에 한번 씩 다니며 쉴 새 없이 바쁘다보면 저녁시간. 저녁을 먹고 또 다시 공원으로 한 시간 운동을 하고 오면 밤 9시 30분이 되어 바로 잠자리에 드니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밤 10시를 넘긴 적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 하루를 지내는 동안 하나님 말씀이 너무 좋아서 한시도 말씀이 내 곁에 떠난 적이 없다. 귀에는 늘 이어폰을 끼고 전국에서 올라오는 우리 교회 설교를 거의 섭렵했다. 

    그러니 수술 날짜를 잡아 놓고는 얼마나 더 기도에 매달렸겠는가. ‘하나님 수술 안 하면 안될까요? 수술 안 하게 해주세요. 수술 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잃는 것이 너무 많대요. 예전으로는 절대 돌아가지 못한답니다. 수술 중에 중요 혈관을 잘못 건들어서 사망하는 사례도 있대요. 수술 후에 후유증이 40%나 되고요.’ 기도 하다가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무 응답도 없는 날이 6개월이나 계속 되었다. 평소에는 기도하면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오전 금식만 하기로 작정하면 그 기간이 가기도 전에 얼른 들어주시기도 해서 하나님은 성질 급한 나보다 더 급한 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 할 때도 있었다. 그런 주님이 매일매일 울며불며 속시원히 대답 좀 해 달라는 나의 기도에 묵묵부답이셨다. 그렇게 수술 날짜는 다가왔다.

    4.

    수술 후 퇴원 날짜가 잡혔다. 추석 연휴인 관계로 조직검사결과가 늦어졌고, 병원과 집이 가까우니 차라리 결과는 퇴원 후 외래 진료 와서 들으라는 말에 예상보다 일찍 퇴원을 했다. 조직 검사 결과 보던 날 진료실에 들어간 우리 부부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듣게 되었다.

    상피내암

    제자리암이란다. 털썩 주저앉았다. “교수님, 수술 후에도 암은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암이라니요?” 개복 수술로 육안으로도 확인 할 수 없었던 것이 현미경으로 봤을 때 발견 되었단다. 만약 수술하지 않았다거나 시간이 조금만 더 늦춰졌어도 나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토록 오래 침묵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나는 수술하지 않았다면 살 수 없었던 목숨 이었던 것이다. 췌장의 암도 시간 싸움이라는 말이 있다. 오죽하면 발견 후에 9일 만에 사망했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

    개복을 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도 발견되지 않았을 정도의 암을 하나님은 미리 아셨고 내가 그토록 하기 싫어했지만 수술을 받을 수 밖에 만드신 것이다. 그 은혜를 어찌 몇 마디 말과 몇 글자의 간증으로 대신 하겠는가. 지금도 눈을 감으면 감사가..몰려온다.

    주님 감사합니다. 0기암은 항암이 없고 몇 개월에 한번씩 추적 검사만 하면 되었다.

    5.

    여러분 중에 혹시 나처럼 믿음이 부족해서 하나님께서 응답이 없다고 낙담하는 분이 계신가? 나는 분명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린다. 나에게 은혜로 오셨던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역사 하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확신에 찬 체험으로 아직 믿음 안에 들어오지 않은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전도 할 수 있는 굳음 믿음이 생겼다. 

    이 일을 통해서 기도에 힘을 모아 주었던 목자님을 비롯 여러 성도님들이 계신다. 가족들의 기도와 성도님들의 기도가 너무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몸이 아픈 성도님들과 고난 중에 있는 성도님들을 위해 기도로 조그만 힘을 보탠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며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린다.

  • [교회행사] 대방교회 2023년 송년예배입니다.

    [교회행사] 대방교회 2023년 송년예배입니다.

     2023년 대방교회 송년 예배에 함께 하실까요? 

     2023년 12월 30일 송년 예배에는 세분이 처음 방문을 해 주셨습니다. 세 분께 우리의 송년 예배는 어때 보였을까요? 예수님을 닮은 사랑이 가득했을까요? 예수님에 대한 확신으로 평안해 보였을까요? 그분들의 얼굴에서 새어 나오던 미소와 사랑을 바라보던 눈빛에서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던 사랑을요. 

     목자님께서는 마지막 폐회사에서 큰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고 할머니부터 최고 어린이까지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소외된 사람도 지루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고 싶은 형제·자매님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마음에 품고 함께 하길 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함께하지 못한 형제·자매님들을 위해 우리는 더 합심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꼭 다시 함께 할 수 있기를 더 소망합니다.

     2023년 송년 예배의 뜨거운 감동은 이 글로 전해 드릴게요!

     

     이승재 장로님과 한 해를 되돌아보며 감사함과 은혜로 송년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2023년은 코로나로부터 점차 자유로워지며 교회 행사와 만남도 활발히 재개되고 있습니다. 함께 찬양하며, 예배드리며, 교제할 수 있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순간들입니다. 올해는 더욱 특별했던 대방교회입니다. 최초로 신도회가 분설되어 1개의 신도회가 추가 되었지요. 신설된 드보라회의 찬양부터 만나 보실까요?

     드보라회는 드보라 다웠습니다. 보라색 조끼를 맞춰 입은 드보라회가 등장했습니다. 누가 봐도 드보라회 신도임을 알 수 있었지요. 각자 정들었던 신도회를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인 드보라회입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이렇게 화합되었고, 마음에 깊은 기도 제목도 함께 나누고 있답니다. 

     (드보라회 찬양 ‘하나님의 약속’) 

     

     드보라회 못지않은 율동 찬양을 선보인 한나회도 감동스러웠습니다. 한나회는 빨간색 옷을 맞춰 입고 나오셨지요. 드보라회보다 조금 더 열정적이었습니다. 찬양 PPT도 손수 만들어 오셨답니다. 한나회의 많은 자매님은 수년 전 누군가의 교사로 사역을하셨었습니다. 그때 한나회 자매님들의 제자들이 지금은 또 누군가의 교사로서 섬김을 다하고 있지요. 한나회 자매님들과 같은 믿음의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교사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겁니다. 그나저나 한나회 자매님들의 율동 솜씨는 전혀 녹슬지 않으셨네요. 아동부 찬양 인도는 한나회가 맡아주셔도 되겠습니다. 

    (한나회 찬양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손을 높이 들고’)

     

     찬양 잘하기로 소문난 다니엘회는 역시나 감동이었습니다. 이건 비밀이지만요. 한 사람 한 사람은 완벽함에 조금씩 부족한 것 같은데 이렇게 함께 모이면 못해 내는 게 없는 천하무적 다니엘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비밀이지만 말씀드려 봅니다. 그간의 다니엘회 특송도 참 감동스러웠지만 오늘은 더욱더 그렇습니다. 조금 더 채워진 성도들로 인해 더욱 빛이 났습니다. 다니엘회의 찬양곡은 다니엘회의 신앙과 하나님만을 의지해 가는 삶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었습니다. “주님 나를 부르시니 두려움 없이 배에서 나아 가리라. 주님 나를 보고 계시니 의심치 않고 바다를 걸어가리라. 주님 여기 계시기에”   

    (다니엘회 찬양 ‘물위를 걷는 자’)

     아빠가 찬양하는 모습에 반한 세연이의 ‘손머리 위 하트♡’ 어떠세요?

     

     바나바회와 유니게회는 연합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양과 관련된 성경 구절을 외우기도 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 있네 위로를 받을 것이요. 온유한 자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겠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저희 배 부를것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받겠네.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네.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천국이 저희 것이라. 내게도 주소서 내가 복을 받기 원하네. 오 내 주여 주소서 아멘.” 온유하게 화평케 찬양해 주신 바나바회와 유니게회는 한해 더욱 성숙해진 신앙 같습니다. 아쉽게도 사진이 왜 한 장 뿐인지 의문입니다. 

    (바나바회, 유니게회 찬양 ‘심령이 가난한 자’)

     

     아동부는 멋진 찬양을 준비했어요. ‘주의 택한 그릇’이란 찬양을 영상으로 제작했지요. 영상은 신앙의 향기 편에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교회나 아동부 찬양의 감동을 뛰어넘을 수 없지요? 대방교회 역시 아동부의 찬양은 들어도 또 들어도 감동과 은혜가 최고 일등입니다. 아동부는 어쩜 이리 온 힘을 다해 전심으로 찬양드리는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요.

    (아동부 찬양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가라 가라 세상을 향해’)

     

     바울회도 단독 찬양을 하셨지요. 반주자도 없이 무반주로 연습하셨을 텐데도 파트를 나눠 부르셨답니다. 바울회 찬양은 꾸밈도 없고 기교도 없지만 묵직하고 담대함이 느껴집니다. 지금껏 참신앙을 지켜오시며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이지요. 바울회는 예수를 나의 구주 삼아 살아오신 삶을 찬양합니다. 그 담담한 고백이 우리를 뭉클하게 했습니다.

    (바울회 찬양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학생부는 성극을 준비했습니다. 수년만의 성극이었지요. 허건 형제는 중학교 이후 사청부가 되어서 다시 성극에 도전했습니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을 수 있겠죠? 성극을 통해 학생부는 수없이 쏟아지는 세상의 자극에 서서히 그리고 흠뻑 젖어 들어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멀어지는 세대를 자각했습니다. 나의 지난 시간과 지금의 내 모습을 충분히 바라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참예수교회의 위기를 직시하고 진리의 말씀을 사수하는 우리 교회학교 청년들을 기도로 응원해 주세요. 그나저나 교회학교(학생부, 대학부, 사청부) 친구들도 아동부 못지않게 (나름) 귀여우시죠? 

     

    (교회학교 성극 ‘참예수 교회 위기를 직시하라’)

     

    (교회학교 찬양 ‘우리는 주의 교회’)

     

     마지막 연합 찬양은 안나회와 마리아회 그리고 에스더회가 함께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한 모든 여성 신도가 함께 찬양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에스더회가 함께 해 주었기에 용기 내 나올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안나회와 마리아회 어르신들은 항상 삶으로 주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계시죠. 그 삶을 멀찍이 뒤 쫒아갑니다. 멀게만 그려진 당신들의 예배하는 삶을 저희도 따라갑니다. 당신들께서 뚜벅뚜벅 걸어가신 길이기에 저희의 길잡이가 되어 이끌어 가고 계시지요. 어르신들의 신앙 여정과 예배의 삶을 축복합니다. 내년에도 또 함께 삶으로 찬양 드려요. 사랑합니다. 

      

    (안나회,마리아회,에스더회 연합찬양 ‘할수있다 하신이는’)

     

    (여성합창 ‘주의 은혜라’)

     

     

     함께라서 행복했고 함께라서 힘이 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제와 사랑으로 교제하는 모습이 몹시 보기 좋아하셨을 거라 믿어집니다. 방문해 주신 분들의 마음에도 분명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모습이 담겼을 것입니다. 내년에도 예수님의 사랑을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누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성도소개](2023.10.8)대방교회 수세자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2023.10.8)대방교회 수세자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입어 성도로 새로 거듭난 형제·자매님을 소개해 드립니다. 

     오늘 세례식은(2023.10.8) 조금 더 특별했습니다. 85세 모친과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들이 함께 세례받게 되었지요. 군대 동기처럼 서로가 세례 동기라고 부른답니다.  

    (2023년 10월 8일 대방교회 가을 세례식)

     

     최고령 수세자 마리아회 김수성 모친은 동생 김신자 자매님의 끈질긴 구애 끝에 드디어 죄사함을 받게 되셨지요. 언니인 김수성 모친을 전도하며 세례받기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간증을 통해서 더 상세히 전해 드릴게요! 김수성 모친의 특별한 간증도 기대해 주세요. 세례식에 처음 참석한 가족들은 쌀쌀한 날씨에 혹시 건강에 문제라도 생기진 않을까 마음에 염려가 많았습니다. 김수성 모친은 평생 수면 양말을 신어야 할 정도로 수족냉증이 심하였지만, 차가운 물에 흠뻑 빠졌다가 나왔어도 막상 나오니 아주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가족들도 세례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평온하고 거룩하게 지켜보셨답니다. 

     

    (세례식. 김수성 모친)

     

     한나회의 꽃 김*덕 자매님을 위해서는 한나회 자매님들이 모두 참석해 주셨습니다. 김*덕 자매님을 인도해 주신 친구 박본희 자매님은 손주들 세례식 때와 같이 기뻐하셨지요. 기도하는 한나회는 김인덕 자매님을 마음에 품고 열심과 전심으로 기도 하셨습니다. 한나회의 기도는 끊김이 없습니다. 한나회는 기도 중에 만나고 기도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김*덕 자매님을 위한 한나회 자매님들의 기도가 쌓여 오늘 세례식까지 이어졌습니다. 기도하는 한나회의 김*덕 자매님은 얼마 후 가을 영은회에서 성령도 받으셨답니다. 할렐루야!  

    (세례식. 김*덕 자매님)

     

     다니엘회의 송*훈 형제님은 이번 세례식에 꼭 세례받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서는 매일 늦은 밤까지 교회를 찾아와 세례 교육을 마쳤답니다. 송*훈 형제님은 누구의 전도로 세례받게 되신 것이 아니라, 제 발로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가장 교회다운 교회이고 자녀에게 권할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송*훈 형제를 위해서도 다니엘회의 많은 분이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도 함께했습니다. 남편이, 아빠가 세례받는 모습을 지켜보았죠. 하나님의 은혜가 온 가족에게 더욱 충만히 임하길 소망합니다. 

    (세례식. 송*훈 형제님)

     

     6개월 된 매튜 형제와 죠세핀 자매의 자녀 아이버슨 아기와 이정언 형제와 나지현 자매 자녀인 이설 아기가 세례받았습니다. 특별히 아이버슨의 세례식을 위해서 영국에 거주하시는 할머니·할아버지가 오셔서 새롭게 거듭나는 아이버슨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설 아기를 위해서도 왕할머니를 비롯한 식구들이 참석하여 축복해 주셨지요. 새롭게 거듭난 두 아이가 더욱 사랑스러워 보이시지요? 두 아이는 태어난 날로 인해 친구가 되었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다시금 새롭게 태어나 주님 안에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세례식. 아이버슨 자매)

     

    (세례식. 이설 자매)

     

     우리는 이날도 버스를 대여했습니다. 100명에 가까운 성도들이 거룩하고 은혜로운 세례식에 참석하여 수세자 분들을 축복했습니다. 세상 사는 동안 이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며 기쁨이 넘쳐나는 날이 또 있을까요? 그렇기에 모든 신도회와 교회학교 아동부까지 자발적으로 은혜의 자리에 참예했습니다. 옛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태어난 날이니 이보다 더 큰 축하 거리가 있을까 싶습니다. 세상에서는 생일만 해도 소중한 날인데 말이죠.

    “(요 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새롭게 거듭난 

    김수성 모친! 김*덕 자매님! 송*훈 형제님! 아이버슨 자매님! 이설 자매님! 

    대방교회 모든 성도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다섯 분을 축복합니다. 광야 길에 등불 되시는 예수님께서 밤과 낮으로 그 삶을 동행하시며,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주의 인도하심이 영원하길 소망합니다. 임마누엘!

  •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수성 모친)

    [성도간증]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대방교회 김수성 모친)

    모세보다 늦은 나이에 불러 주신 하나님 (대방교회 김수성 모친)

     

     김신자 내 동생은 적잖이 15년은 나를 아주 귀찮게 굴었을 거랍니다. 끈질기게 자신이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다니자고, 세례받으라고 쫓아다니더란 말입니다. 그런 동생에게 지지 않고 나는 약을 올렸습니다. 참예수교회에 가겠다 했다, 안 가겠다 했다. 생선 굽듯 마음을 숱하게 뒤 짚곤 했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 늙은이가 얼마나 얄밉고 약이 올랐을까 싶은데. 실상은 나이 많은 언니가 세례도 (죄사함) 받지 못하고 떠날까 싶어 어지간히 애간장이 탔다는 것입니다.  

    몇 번의 마음 바꾸기 끝에 참예수교회는 가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을 한 때였습니다. 2023년 봄. 미국에 사는 조카가(동생의 딸. 김상냥 자매) 한국에 방문했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를 찾아온 내용은 끈질긴 내 동생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참예수교회에서 같이 믿음 생활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희한했습니다. 조카의 권유에는 내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천주교의 골수분자인 또 다른 동생마저도 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큰언니가 신자언니 다니는 참예수교회에 같이 나가시면 되겠네요!” 하는 것입니다. 조카의 권면에 나는 무엇에 홀린 듯이 선언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 참예수교회에 나가서 믿음 생활을 해야겠다. 내가 그 참예수교회에 다니려면 너희 동네로 이사부터 가야겠다.”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내 나이 85세에, 눈감고도 다닐 수 있었던, 무려 30년을 살아온 동네에서 낯선 땅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무턱대고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조카는 미국에서 나올 때부터 가족들을 전도하기로 마음을 먹고 나왔더랍니다. 가족들을 하나하나 마음에 품고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했다고 합니다. 조카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으니, 내 마음이 그리 보드랍게 녹아 버렸지 뭡니까. 

     그렇게 강력한 나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고 의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얼른 세례받자고 계속 권유했습니다. 알겠다고 하기 무섭게 어느 날 동생은 교회 목자님을 대동하고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목자님이 오셔서 세례에 관하여 성경 말씀을 알려 주셨고, 찬송도 부르고, 안수 기도도 해주고 가셨습니다. 모두 가고 나서 목자님이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데 도통 성경 어디에 그 말씀이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뒤적이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찾아 주셨던 말씀이 성경 어디에 있는 거니?” 동생은 여기저기 말씀 구절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말했습니다. “언니는 권사 노릇을 수십 년을 하고서도 그 말씀 하나도 못 찾아요?” 네….. 사실 나는 분당의 큰 장로교회를 30년이나 다닌 권사였습니다. 네 그렇지만 못 찾았어요. 동생 말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 말씀을 다시 찾아보니, 읽을수록 참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또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애, 목자님이 오셔서 불렀던 찬송가가 뭐였니? 자녀들과 여행 중이었던 동생은 자녀들을 시켜서 그 찬송가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것은 목자님이 안수하고 가신 그날 밤부터 내가 아주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지금까지도 평안한 잠을 자고 있습니다. 사실 2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나고 나서 매일 밤 시커먼 사람들이 나를 자꾸 찾아왔습니다. 매일 밤 그렇게 찾아와 나를 데려가려 했지요. 그 고통을 듣고서 전에 다니던 큰 교회의 부목사들이 와서 조언해 주고 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참 희한하게도 그날 목자님의 안수를 받고 나서부터 그것들이 말끔히 사라진 거예요! 2년간 매일 밤이 무서웠고 깊은 잠도 이루지 못했는데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도통 신기한 이 교회를 하루빨리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는 마귀를 이기는 교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쉽게 놓아주지 않는 마귀의 권세와 이적을 주신 하나님

     이사 날짜를 잡고서는 하루하루 이사 날 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참예수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자꾸 방해가 생겼습니다. 이사를 하기 전 세례를 먼저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례받는 날 급작스럽게 몸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세례받는 것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랬다간 내 동생 체면이 말이 아닐 것 같았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아프고 힘든 몸을 이끌고 간신히 교회로 갔습니다. 차를 타고 교회로 가는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아이고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하면서 교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 글쎄, 교회로 들어서는 순간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지지 뭐예요. 동생은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마음을 또 바꾸지는 않을까 걱정하면서 말이죠. 동생이 나를 보고서는 방긋했습니다. 세례 터로 출발하기 전까지 동생과 함께 교회 안에 들어가 얼마나 신이 나게 깔깔거렸는지 모르겠네요.

     신기한 경험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평생 수족냉증이 너무도 심해서 두꺼운 수면양말을 벗고 살아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가운 물에 세례받고 나서 수족냉증이 그렇게 좋아졌지 뭐예요. 수면양말 벗어 버렸습니다. 발가락에만 시림이 조금 남아 있는데, 그 정도로는 수면양말 없이도 살겠습니다. 겨울에는 조금 신어야겠지만요. 아주 신기해요 아주!

     사실 저는 파킨슨병을 15년 앓아 왔습니다. 2년 전 돌아가신 남편도 파킨슨병이었습니다. 파킨슨병은 통증이 아주 극심한 병이랍니다. 엉덩이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엉덩이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칼로 마구 베는 것 같은 말도 못 할 통증이에요. 그래서 3개월에 한 번씩 통증 주사를 맞으러 병원에 다닙니다. 통증 주사는 총 7대를 맞는데 그 통증 주사도 아주 고역스러워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지를 정도예요. 세례받고서 얼마 후 병원에 통증 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의례 병원으로 갔지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 앞에 가서 번쩍 생각이 났어요. 

    “선생님 나 엉덩이가 안 아파요! 어어? 엉덩이가 하나도 안 아파요!” 오랫동안 내 병과를 지켜보신 의사 선생님은 너무도 반가워하시면서 “아 그러면 주사를 맞으실 필요가 없지요!” 했습니다. 

     그날 병원까지 가서는 주사를 안 맞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동생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해주었더니, 얼마나 신기해하던지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더 신기해지는 거지뭐예요. 자녀들에게도 이런 일도 다 겪어 본다며 이 신기한 일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아직 제 말을 못 믿는 눈치이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더 있을 텐데. 믿지 않을 재간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말이지만 수족냉증이 아니라 굽은 허리를 펴주셨다면 우리 애들이 단번에 믿었을 건데 아쉽기도 합니다. 

     세례받고 얼마 후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세족례, 성찬례에도 참예 했습니다. 예식이 참 길었습니다. 자꾸 일어서고 앉고 늙은이라 힘이 들었지만, 예배가 너무 좋았습니다. 성령도 빨리 통과(수령) 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아직 통과(수령)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이사를 하기 전이라서 영은회를 마치고 동생네서 며칠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또다시 마귀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새벽녘에 아주 힘이 세진 나는 동생에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고함뿐만 아니라 동생의 목을 조르는 바람에 동생의 목에 상처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소리쳤습니다. “우리 교회 김권사가 그러는데 너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래!” 정말이지 마귀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목자님이 또 오셔서 안수기도해 주셨습니다. 우렁찬 고함이 무색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평안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 세족례)

    무슨 근심 있을까

     이사 날짜를 잡고 이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세월이 그렇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리더니, 교회 가는 날까지 이 잠깐은 왜 이렇게 길고 시간이 안 가는지요. 시간은 느렸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정된 날짜에(23년 11월)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교회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첫 안식일 출석을 기대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갑자기 또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동생 내외가 급히 와서 구급차를 불렀습니다. 밤새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다음날 안식일 교회로 오는 길에 또다시 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교회는 나가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나가야 하는데 도통 교회 가는 길이 이렇게도 열리지를 않으니 서운함이 컸습니다. 그리고 입원한 지 며칠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은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나는 회복이 많이 된 것 같았는데, 의사 선생님은 폐가 많이 안 좋다고 했습니다. 아휴 폐렴이면 어떻고, 더 안 좋으면 어떻겠어요. 늙은 나이에 나를 불러 주셨는데 무엇이 근심입니까. 일단 퇴원하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습니다. 그리고서야 교회에 나올 수 있었지요. 내가 체력이 부족해서 하루 종일 교회에 앉아 있을 수는 없지만,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쁩니다. 성도들 만나는 것도 기쁨이요, 말씀 듣는 것도 기쁨이요, 안수기도도 기쁨이에요. 그저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큰 병원에서 결과를 들었지요. 결과는 아주 깨끗하다고 합니다. 분명 아주 안 좋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 했지만, 결과는 이렇게 평안키만 합니다. 할렐루야!

     

    늙은 종의 마지막 사명

     나는 나이가 많이 들었고, 거동도 힘들고, 병도 든 늙은이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집안의 식구들을 여기 참예수교회 참 진리 안으로 이끌고 나올 생각입니다. 이 늙은 종을 불러주신 이유는 남은 가족을 인도하라는 사명도 함께 주셨을 것 아닙니까? 내가 우리 8남매의 첫째에요. 남매 중에 5번째로 참예수교회 안에 들어왔지요. 이제 남은 3명은 내가 끌고 나와야지요. 그런데 쉽지는 않아요. 천주교 골수분자라서요.

     우리 아들은 세례식 그날이 무슨 영화에(아바타) 나오는 종족 의식 같았다고, 신비롭고 평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참예수교회에 다니는 다른 동생은 내가 세례받고 올라오는 순간에 아주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침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침은 “할렐루야!”였어요. 하나님께서 앞으로 나와 가족들에게 베풀어 주실 섭리가 있지 않겠어요? 

     모세가 늦은 나이 80세에 민족의 수장이 되었다는데, 나도 늦은 나이 85세에 세례받았습니다. 우리 집안의 수장으로서 형제들과 자녀들을 이곳 참예수교회 참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성령을 내려주시고, 성령 충만함과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체력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늙은 종으로서 남은 생에 맡겨진 사명을 다하고 갈렵니다.

    (출애굽기 3장 11-12절) 

    (11)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간증의 당사자인 김수성 모친과 동생 김신자 모친과의 인터뷰를 통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