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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성도 간증] 한나회 권정자 모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참예수교회로 개종하다

    서도교회 고 장달순(영명: 장안나) 집사님이 저희 친정 작은 어머니에요. 저를 임신했을때까지 장로교회를 다니셨고 제가 태어나서 몇 살때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예수교회로 개종을 하셨어요. 제가 살던 곳이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이라는 곳인데 작은 어머니 계실때 교회가 세워졌어요. 돌아가신 허야곱 장로님이  시댁 작은 아버지인데 작은 어머니랑 교회에서 심방 다니셨던 것이 생각이 나요.

    아버지는 제가 7세쯤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도 아마 교회를 다니셨을 거에요.

    저의 친언니는 고 권묘남씨인데 어릴 때 저랑 같이 믿었어요. 교회 다니다 보니 제사라든지 그런 걸 몰랐어요. 항상 어머니가 교회 가시니까 어려서부터 열심히 다녔고 엄마 옆에 앉아서 예배 드렸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다

    그때는 영은회를 1년에 한 번씩 한게 아니라 여러 교회가 함께 모여 3년에 한 번씩 했어요. 전체 영은회였어요. 14살 영은회때 세례를 받았어요. 세례 받고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았어요. 제 친구들은 저보다 일찍 성령을 받아서 다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저는 그날 한꺼번에 다 받았어요. 세례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 늦게 받았어요. 교회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시집 간 언니집에서 많이 지냈거든요. 형부가 군대 가 계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영은회 참석을 못할 때도 있었어요. 제 친구 황남옥 자매라고 지금 강남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아주 친한 친구였는데 그날 같이 세례를 받았어요. 성령도 같이 받고요.  세례를 주신 목자님은 누군지 생각이 안나요.

    교회 앞에 물이 있는데 세례받기가 좋았어요.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면서 바로 성령을 받고 방언이 나오더라고요. 그당시 우리 또래들이 상당히 많았었어요. 지금 서도교회 이정을 장로님이 나보다 한 살 어려요. 같이 컸어요. 근데 저보다 성령을 미리 받았어요. 세례식 끝나고 교회로 와서 다 함께 또 기도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막 눈물이 나고 그치지를 않았어요.  방언이 나오면서 좋은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구요.

    성령 받은 후 황남옥이라는 친구집이 노봉 교회에서 오리쯤 되는데 밤에 그 친구랑 산길을 둘이 손잡고 찬송 부르면서 가고 새벽에 또 기도하러 노봉 교회까지 오고 그랬어요. 어떤 찬송인지는 기억 안나는데 그 친구랑 그렇게 찬송부르며 새벽기도하러 갔던 일이 생각이 나요. 교회 다니면 성경도 순서대로 노래로 배우잖아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그걸 외워놓으니까 성경 찾기가 좀 쉬웠어요

    ♣작은어머니에 대한 추억

    제 기억으로는 노봉교회(서도교회 전신)에는 저희 작은어머니가 유필순 집사님과 사택에서 살고 우리집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어요. 우리 집에 가마솥이 있으니까 교인들 밥도 우리 집에서 하기도 했어요.

    저희 작은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우리 강아지 강아지!” 그랬어요. 제가 성령 받았을 때도 “아이고 내 강아지 성령 받았네!”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지요. 작은 어머니는 저를 데리고 자주 함께 잤어요. 교회 와서 자면 새벽에 작은 어머니가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다 큰 저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하시며 “내 새끼 일어나! 일어나! 기도하자. 엄마랑 기도하자.” 하셨어요. 새벽에 일어난 저는 작은 어머니처럼 기도를 오래 하진 못했어요. 작은어머니는 하루 2시간씩 아침에 일어나시면 성령으로 기도하셔요. 아무것도 모르는 저는 내일이 토요일이면 오늘 금요일 아침에 밥 먹고 나면 토요일 오전 예배 끝날 때까지 금식기도를 했어요. 그때는 오전 예배만 드렸잖아요.

    금식 기도도 작은어머니 따라서 하게 되는 거에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기도 오래 하시고 기도 시작하기 전에 “너는 조금만 하고 가서 자라.” 그러면 저는 “그래 나 조금만 하고 잘게!” 작은엄마는 보통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셔서 저를 깨워요. 교회에 괘종시계가 딩딩 치잖아요. 작은 어머니는 6시 될 때까지 기도하셔요. 그러고 기도 끝나면 “성경 읽자! 몇구절만 성경 읽자.” 그러면 또 같이 성경 읽고…

    저는 작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했어요. 작은 어머니가 자손이 없어요. 그래서 조카딸들한테 엄청 잘했어요. 저는 오빠 하나에 딸 다섯으로 6남매에요. 근데 작은 어머니가 다 그렇게 예뻐했어요. 어딜 다녀 오시면 신발도 사다 주시고 옷도 사다 주시고 ….

    작은아버지가 일본에 가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작은엄마는 34세쯤 혼자 되셨대요. 과부로 사시면서 조카들에게 사랑을 쏟으시고 교회 열심히 봉사하신 분이죠. 세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불쌍하지요. 시집 와서 남편 여의고 자식도 하나 없고 그렇게 혼자 사셨잖아요. 나중에 돌아가실 무렵에는 저희오빠집에 와서 지내시다가 소천하셨어요. 영석이와 영근이가 오빠의 자녀들이에요. 제 조카들도 지금 교회를 안나오고 있어서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서울로 이사하다

    15살 되던 11월 무렵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오빠가 서울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장동으로 이사했어요. 고 고정희 모친이 저희 오빠의 아내이니까 올케에요. 옛날에는 차편도 불편하니까 마장동에서 철둑가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 다녔죠. 제가 저희 어머니 손잡고 모시고 다녔어요. 어머니가 앞을 잘 못보셨어요. 살다가 중간에 눈이 어두워지셨어요. 그런데 안식일마다 교회를 열심히 못 간 것 같아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마다 못 갔던 것 같아요. 그무렵 큰언니가 퇴계원으로 이사를 왔어요. 저는 언니랑 나이 차이가 10년이에요. 저는 조카들을 돌봐주면서 언니 집에서 지냈어요. 조카들이 어리니까 언니도 저도 교회를 자주 못갔어요. 회기동 교회 정은진 목자님이 가끔 심방을 오셨어요. 그리고 교회를 한 번씩 갈때는 조카를 업고 다녔어요. 이강분 자매 동생 이명숙 조카를 포대기로 업고 갔어요. 어떨때는 오빠네 집에서 하루 저녁 자고 토요일 날 명숙이를 업고 교회를 갔어요.

    ♣믿음결혼을 하다

    시골에 형부가 계시는데 저에게 시골 가서 뭐 좀 배우라고 내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서울에 산지 얼마 안되어 작은 어머니한테로 가서 작은집에 가서 지냈어요. 우리집 아저씨가 총각때 객지 생활을 하다가 군대 가고 제대후 집으로 좀 와 있어서 전주교회를 다녔나봐요. 그때 작은어머니와 안면이 있었는데, 어느날 대구를 갔는데 대구 기차 역전에서 우리 집 아저씨를 알아 봤대요. 어려서 봤으니까 얼굴이 남아있으니 알아본 거예요. 그때 인연이 되어 저를 소개시켜 주었어요. 그렇게 저는 믿음 결혼을 하게 된 거지요. 결혼식은 서도교회에서 했어요. 김디모데 목자님이 주례를 보셨어요. 그 당시는 나이가 어리니까 아무 생각 없었던거 같아요. 신혼 살림은 전주에서 시작했어요.

    ♣시댁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마음 내려놓기

    남편의 어머니는 계모였고 남편과 잦은 갈등이 있었어요. 시어머니랑 남편이 싸우는걸 보면 저는 자리를 피했어요. 이런 일들이 스트레스가 되었는지 한동안 소화를 못시켰어요. 시어머니랑 같이 살 수가 없어서 서울로 올라 왔어요. 오빠네 집으로 와서 3개월 살았을 거예요. 방을 얻어서 나갈 때까지 교회를 못나갔어요. 항상 하나님을 믿는 그 마음은 있었지만 결혼후 현실적인 생활이 신앙생활을 가로막았어요.

    저는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라고 늘 생활신조처럼 생각하고 살았어요. 교회를 다닐때도 ‘이 사람 때문에 나 교회 못 나가.’ 그런 마음이 전혀 없고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잘해야 된다. 저 사람이 나한테 불쾌한 말을 해도 내가 안 들은 것 같이 생각하면 되지.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저렇게 말을 해?’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남하고 말다툼을 해 본적이 거의 없어요. 내가 배려를 해서 그런지, 받아들여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신 왜 그래?”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는거 같아요. 우리 집 아저씨와도 싸울 일이 있으면 말을 안했어요.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싸움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말 안하고 그걸 속으로 다 삭히느라 그런지 소화가 어느 날부터 안 되고 밥을 먹으면 체해서 구토하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증상이 없어졌어요. 속이 편해졌어요. 자녀들이 다 장성하고 신경 쓸일이 적어지니 괜찮아진거 같아요. 교회는 결혼하고 3년 정도 못나간거 같아요.

    ♣자녀를 낳다

    제가 딸을 22살에 낳았는데 딸 낳기 전쯤 다시 교회를 나갔어요. 두 달된 딸을 세례를 바쳤어요. 제가 교회를 어려서 다녔던 믿음이 있어서인지 교회를 항상 가야겠다는 생각은 갖고 살았어요. 어렵게 살면서도 딸을 정월 초에 낳았는데 낳은지 20일쯤 되어서 세례를 바쳤어요. 굉장히 작은 갓난아기 핏덩어리를 세례를 바쳤어요. 세례바치고 아기를 안고 물에서 나오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둘째 용환이는 조금 커서 3살쯤 돼서 세례 받았어요. 셋째 정환이가 못 받았어요. 정환이를 29세에 낳았는데 그때 살기는 어렵지는 않았었는데 무슨일 때문인지 교회를 좀 못 다녔어요.  교회를 다녔으면 세례 바쳤을 거에요.

    큰딸 은순이가 시집을 갔는데 시댁이 워낙 불교가 심하니까 신앙생활을 못했어요. 어릴 때 중학교 다닐 때까지 교회 다녔을 거에요. 혜영 사모님이랑 잘 알아요. 같이 교회 다녔어요. 제가 집에서 조금씩 부업을 했는데 셋이 학교 다니니까, 직장을 나갔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를 못나간거 같아요.

    ♣신앙을 회복하다

    몸은 못가도 마음은 항상 교회에 있었어요. 부천에 살았는데 양봉도 목자님이 거기까지 심방을 와주셨어요. 두내외분이 오셨어요. 그날 직장 쉬는 날 오셨더라고요. 심방 예배때 405장을 부르는데 마음이 많이 움직이더라고요.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이 찬양은 제가 좋아하는 찬양이 되었어요. 교회를 갈 수가 없었는데 제 쉬는 날 심방 오시고 전화를 자주 해주셨어요. 그러다보니 제 신앙이 점차 회복되어 간 거 같아요.

    목자님이 전화도 자주 하시고 어려서부터 우리 작은어머니 밑에서 커서 믿음이 있어서인지, 항상 ‘내가 교회를 가야지, 나 교회 안 나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살기 어렵고 입는것도 여의치 않아서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던거 같아요. 언니가 교회를 더 잘 다니면서 교회 소식을 저한테 많이 전해줬어요. 언니는 저보다 열심히 더 다니셨어요.

    ♣친정어머니에 대한 추억

    저의 성격은 친정어머니 닮은거 같아요. 모든 걸 다 삭히고 참고 인내했던거 같아요. 어머니랑 저녁에 자려고 누우면 어머니는 옛날 얘기 같은 걸 잘해 주셨어요. 누가 집에 뭐 팔러 오면 어머니는우리 올케한테 “그 아지매~ 물에 밥 한 숟가락 말아서 먹여서 보내라. 내 집에 온 사람 그냥 보내는 거 아니다.” 하셨어요. 밥 꼭 챙겨주라 하고 시골에 살 때도 장사하러 오는 사람 있으면 우리 집에 다 재워줬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다 자고 갈 줄 알았어요.

    ♣서도교회 나들이

    한 3년 전쯤에 동부교회에서 목자님과  한나반, 다니엘반이 서도교회, 남원교회, 전주교회로 나들이 간적 있었는데 한가지 후회되는게 있더라고요. 옛날 서도교회를 뜯었더라고요. (우리 작은어머니 당시 지은 노봉교회) 옛날에는 흙집이었잖아요. 그게 흙집인데 그걸 다 뜯었더라고요. 건물 지을때 상량 올린다고 그러잖아요. 가운데 나무에 교회 지은 년도가 아마 써 있었을텐데 나무 뜯은 걸 쌓아놨는데 상량을 보고 왔더라면 몇 년도에 지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아쉬움이 좀 남더라고요. 그때는 볼 생각을 못 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후회되더라고요.

    ♣나의 신앙생활

    예전에는 교회를 못 갈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를 안 가면 마음이 답답하고 교회 안가서 어떡하나? 다음에 교회가면 기도를 뭐라고 하나? 이런 마음이 있었으나 요즘은 몸이 아프니까 안수기도를 좀 받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안수기도 받으면 눈물이 너무 나와서 받을 수가 없어요. 눈물이 왜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나와요. 눈물 나오면 좀 힘드니까, 마음이 울컥하고 기도하면 눈물이 나고 내가 믿음이 약해서 그러는 거겠지! 믿음이 강하면 그러지 않겠지! 하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요.

    제가 어릴 때 외운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인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그 구절이 항상 머릿속에 담아있어요. 어렸을 때는 한 4~5번만 외우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그래요. 올해 내가 81살이잖아요. 저는 앞으로 교회 열심히 다니다가 그냥 많이 안 아프고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어요.  많이 아프면 애들도 고생하고 나도 고생하고 저녁에 잘 때 안 아프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너무 많이 아팠으니까……  제가 7개월을 교회를 못 나갔을 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유튜브로 예배는 드렸어요. 아들이 아이패드를 사주어서 저녁에는 유튜브로 예배하고 있답니다.

    ♣큰딸 은순이

    제가 요즘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걸음이 제대로 안 걸어 지거든요. 예전에는 계단 80개는 손도 안 잡고 올라갔는데 지금 1개도 못 올라가요. 제가 딸과 함께 걷다가 딸에게  “니가 교회를 다니면서 나 이렇게 니 손잡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냐.” 그랬더니 딸이  “엄마 희망사항이지 뭐.” 하길래 “그렇게 말하지마! 그렇게 될른지 몰라. 그렇게 얘기해야지.” 했어요. 우리 딸도 참예수교회에서 학생때까지 신앙생활 했기때문에 항상 마음은 있더라고요. 참예수교회가 참 좋았는데…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큰아들 용환이

    가끔 용환이한테 “어떻게 내가 죽을 때 유언을 해야 교회로 올 건가?” 그렇게 얘길하면 “엄마는 참~ 내가 가게 되면 가는데 뭐 그렇게 말을 해.” 영은회가 돌아오는데 용환이가 이달 말일까지 엄청 바빠서 엄마집도 못온다고 하네요. 건강 지켜가면서 일을 해야 할텐데……교회 동욱형제와 같은 나이면서 생일도 똑같은데 우리 아들은 신앙생활을 못하고 있어서 가끔 애가 타서 아들에게 “나 살아있을 때 교회 가는것을 좀 볼 수 있을라나, 없을라나.” 하며 말을 붙이곤 하지요.

    ♣작은아들 정환이

    작은 아들은 내 성격을 좀 닮았나 싶은 생각이 들고 나는 좀 뭐든지 다독이고 누르는 성격이거든요. 정환이한테 신앙적인 말을 하면서 “너는 내 말 듣냐? 내 말 한 번에 들어본 적이 있냐?” 그러면 아들은 “ 내가 엄마 말 안 듣고 누구 말 듣고 컸어요? 엄마 말 듣고 여태 크고 장가 가고 아들 낳고 딸 낳고 했지. 엄마 말 잘 들었지. 어디다 써놓질 않아서 보여주질 못하겠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저는 우리 아들딸에게 “내가 좋으면 다 좋은 거다. 내가 나쁘면 다 나쁜 거야. 형제를 잘 챙기고 형제 의좋게 살아라.” 라고 해서 그런지 의좋은 모습 보면 감사해요. 아이들 어릴때 맘대로 못 먹이고 항상 안쓰럽기도 했지만 야단치지 않고 기를 정도로 착했어요. 자녀들이 착하게 커줘서 사춘기라는 걸 모르고 컸어요. 부모 속을 안썩이고 말 잘 듣고 순순하게 잘 커준 자식들이 고마워요.  지금도  3남매가 의좋게 사는 모습이 감사해요.

    지금 자녀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신앙생활 할 날이 오기를 바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부군 살아생전 함께 찍은 사진*아드님이 사 주신 아이패드로 성경도 보시고 유튜브 설교도 들으신다고 하심 *교회 활동 모습 / 해마다 성경 통독 하시고 사진 찍으신 모습 

  • [성도 간증] 순종의 예스맨_배태준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단기신학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단기신학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단기신학은 총 3년차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는 이번에 1년차 과정을 신청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제가 1년차를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려보니 5년 전 202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때는 단기 신학에서 제일 막내였는데, 어느덧 단기신학에서 나이가 많은 OB쪽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어도 단기신학을 통해서 받는 은혜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것 같습니다.

     

    단기신학에서 받은 은혜와 기쁨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교제의 기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단기신학은 약 2주간의 시간 동안 이루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2주 동안 함께 단기신학을 하는 단기신학생님들 모두의 얼굴을 계속해서 보면서 함께 말씀을 듣고, 함께 찬양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는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에서 2주 동안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기쁨과 위로와 은혜가 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단기신학생님들께서 하나님 말씀 배우기에 열심을 내고, 온몸과 마음으로 찬양드리고, 힘을 내어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제 스스로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단기신학에 모인 신학생님들의 모습에서 제자도를 정말 충실히 걷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과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제 스스로가 부끄럽게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조금이라도 더 성장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면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단기신학에 가는 목적은 결국에 무엇이지요? 물론 다른 신학생님들과 교제하는 시간도 좋고 빼놓을 수 없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말씀의 은혜와 기쁨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로 간증하고자 하는 것은 말씀을 통한 기쁨과 은혜입니다. 1년 차 때 배우는 과목들은, 3년차도 물론 정규와 비교한다고 하면 개론서의 개론의 개론도 안되겠지만, 특히나 1년차는 더욱 개론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핑계를 대자면 5년 전에 들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평소에 설교를 듣거나 말씀을 묵상할 때도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제가 하나님 말씀에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했는데 제 스스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말 무지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제가 학생부 영은회 교사를 준비하다보니 자연스레 족장시대 인물들에 대한 말씀이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족장 시대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요.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모두 미숙한 모습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신앙의 길을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셨고, 히브리서를 살펴보면 미숙한 모습이 아니라 이런 성숙한 모습을 기억하여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제 부족함과 미성숙함에 자꾸만 눈길이 가서 신앙의 길을 걸어갈 때 많은 두려움과 주저함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도록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개성 넘치는 족장시대 인물들의 신앙의 길이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찾아가는 행복의 길임을 알게 되었을 때,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너무나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신약개론, 구약개론, 사복음서, 민수기, 여호수아, 레위기, 창세기 등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기쁨을 나누고자 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실천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단기신학 중에 목자님께서 “단기 신학생들이 올해는 예스맨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제가 단기신학을 마치고 본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안동교회에 가니까 어머니께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태준아, 오늘 기도회다.” 그래서 저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냥 오늘 어떤 예배를 드리는지 말씀해주시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그래서 오늘 네가 기도회를 인도해야 한다.” 제가 무엇이라 답했을까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단기신학 때 배웠던 말씀들을 떠올리면서 기도하고, 비록 재탕이지만 단기신학 때 했던 기도회 인도 내용을 가지고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회가 끝나자 어머니가 또 말씀하시더군요. “태준아, 내일 찬양 인도할 사람이 없다. 오전과 오후 둘 다 준비해 놓아라” 제가 또 무엇이라 답했을까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순종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단기신학을 통해서 정말 많은 기쁨과 은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부족함 많은 이런 저를 사랑해주시고,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돌리며 이상으로 간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글작성 : 배태준 형제

  • [성도 간증]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어요_변려원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3박4일 동안 무사히 영은회를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깨닫고 느낀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영은회를 통해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하나님께서 이끄신 믿음의 길을 간 믿음의 조상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배울 때, 저는 아브라함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만 하며 순탄한 길을 걸어왔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실수를 하고 죄를 지으며 점점더 믿음이 견고해졌고,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연약한 모습에서 후에는 하나 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저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며 종종 엇나가지만 교회 안에서 더 열심히 배우고 깨달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번째로 이삭과 요셉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항상 순종하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말 이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들고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삭과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좋은 완전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이런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에 대해서 배울 때,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장자로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믿지 못하고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가고 있진 않을까 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번 영은회에서 들은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도 깨달음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선 정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끝으로 이번 영은회에서 배운 것들을 다짐하며 쓴 기도문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번 영은회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의 길을 걸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과 유혹이 있었지만 점점 더 견고해지는 믿음을 보며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저 이지만 항상 하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고 저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요.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살아갈게요. 세상에서 구별되는 빛과 소금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게요.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 저를 도우셔서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담담히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칠 믿음과 이삭의 조건 없는 순종, 야곱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깨달음, 요셉처럼 유혹을 뿌리치는 힘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실을 본받아 믿음의 길을 걷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의 끝에서 모두가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되길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변려원 자매

  • [성도 간증] 잃은 양을 찾으신 하나님_김정민 자매

    [성도 간증] 잃은 양을 찾으신 하나님_김정민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교회에서 간증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에, 선뜻 순종하지 못하고 며칠 간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도회에서 저의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이렇게 모든 성도님들 앞에서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 좀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를 내가 말하지 않으면 다른 분들은 알 수 없다’ 였습니다. 잃은 양이었던 제가 어떻게 교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 받은 크고 작은 은혜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처음 하나님과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데요. 제가 5살 무렵이었습니다. 이미 참예수교회에 다니시던 외할머니가 참예수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며 다른 교회에 다니시던 엄마에게 참예수교회에 나오기를 여러차례 권면하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전혀 믿지 않는 분이셨구요. 당시 우체국에 근무하시던 아빠는 여러 곳을 전근 다니시다가 청주에 정착하게 되었고 부모님은 그 때 처음으로 집을 짓게 되셨습니다. 당시 대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인데 저희 집은 교회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걸어서 교회에 갈 수 있는 것은 축복입니다. 엄마가 그 전에 다니셨던 (교회를 A교회라 한다면) A교회에 건축헌금을 하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갑자기 이사오게 되는 바람에 마무리 짓지 못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아빠는 전혀 믿지 않고 계셨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잘 모르셨는데 건축 헌금을 받아내려고  A교회 분들이 (이사 간 집 주소를 모르니) 아빠의 직장으로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엄마는 엄청 당황하셨고 화도 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 같은 하나님이지 나는 하나님께 약속한 것은 지킨다. 참예수교회에 헌금하겠다”고 하셨고 참예수교회를 받아들이시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부부간의 엄청난 불화가 될 수 있는 사건을 통해 참 하나님을 만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아빠를 제외한 엄마, 오빠, 언니(지금은 잃은 양), 저 이렇게 네 식구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잃은 양인 언니가 저처럼 다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저희 식구는 교회에 들어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부끄럼이 있었지만 찬양도 하고 율동하는게 좋아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교회보다는 학교생활이 재밌어졌고 특히 컴퓨터 담당 선생님이던 담임선생님이 토요일 오후에 컴퓨터실을 온전히 개방해 주셨기 때문에 점점 방과 후 시간이 재밌어졌습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교회를 멀리하려는 마음이 더 생겼고 제 안에는 성령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가지 유혹에 쉽게 넘어갔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면서도 나름 잘 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도 형제 자매님들이 찾아오셔서 기도도 해 주셨지만 ‘조금 더 이따가 지금 아니야.’ 하는 등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더 미뤘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약 10년간 살게 되었고, 강남교회에 있는 오빠가 교회에 오기를 권면해서 3~4번 예배에 참석을 했는데요. 지금처럼 전도 초청 예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곳에서 강남교회까지는 대중교통으로 한시간 반 이상 되는 거리였고 오빠가 매번 데리러 오기에도 꽤 먼 거리였습니다. 더 가까운 거리의 참예수교회도 있었지만 혼자서 가 볼 생각은 못 했던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멀어져 있던 교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 문을 나서기만 해도 크고 작은 교회가 아주 많이 있었는데요.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면 가까이에 이렇게 많은 교회가 있는데, 그냥 가까운 교회에 가도 되는 것이 아닐까?  어떤 설교를 하시든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들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혼자 있는 저를 염려해서 엄마가 가끔 저희 집에 오셨는데요. 그 때 이런 생각을 엄마에게 전했고 외할머니가 하셨던 것처럼 저에게 참예수교회에 가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우리 교회의 교리, 10대 신앙 등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목자님께서 구원이 교리에 담겨있기 때문에 교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설교를 하셨는데요. 그 말씀을 들으며 참 하나님께로 이끌어 주심을 다시 한 번 감사드렸습니다.  그렇게 또 한 걸음 교회로부터 멀어졌지만 내가 교회에 간다면 참예수교회에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에 남편을 만났는데 남편도 청주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해서 청주에서 살기로 했고 신혼집을 알아보던 중이었습니다. 최종 후보에 오른 두 집 중 남편이 저에게 고르도록 선택권을 주었고 두 집을 차례로 가 보았는데요. 두 집 중에서 사이즈가 더 작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는 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한 채 제가 고른 집은 다시 교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습니다. 그 때는 이전 교회에서 지금 교회로 이전하려고 건축 중일 때였지만 청주로 와서 엄마의 권면으로 안식일 오전 예배 정도만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건축 중인 교회 소식에 깜깜이었습니다. 

    그 날도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려는데 아는 분을 보았습느다. 저희가 신혼집을 얻을 때 도와주신 공인중개사 분이셨습니다. 복비를 조금이라도 아껴보려고 교차로에서 집을 구했고 그 때 중개사님은 친구의 집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친밀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 분은 전도되어서 교회생활을 하고 계신 문자매님이셨습니다. 문자매님을 만나고 돌아서 나오는데 또 마주친 분은 저희 집 1층에서 떡집을 하시는 떡집 사장님이셨습니다. 이미 전부터 우리 교회에 떡을 납품하고 계셨다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교회에서 집으로 가시며 주셨던 떡이 1층집 떡이었습니다. 그 떡을 보면서 ‘하나님께 바로 돌아올 수 있는데 나도 이 떡처럼 돌아 돌아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의 위치며 나와 관련이 있는 두 분을 교회 안에서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구나 라는 생각은 한참 뒤에 들었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나를 너무 속속들이 알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하니님께 무조건 항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 온전히 교회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토요일은 교회에 나가겠다고 했고 가족 간에 모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시댁 어른들은 감사하게도 가족 모임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꿔주셔서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저도 늦은 나이의 결혼이었는데 별 어려움 없이 임신하고 큰 아이를 낳고 두 살 터울로 작은 아이도 낳았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지 못한 채 교회를 떠났기 때문에 기도할 때면 성령을 간구했습니다. 2011년 5월에 봄 영은회가 있었고 이번 영은회는 새벽 예배까지 꼭 참석해보자 하는 마음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 기도 때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목자님이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 같다며 더 기도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 때 부산교회에서 소감사 집사님이 영은회 참석하시려고 와 계셨는데 집사님께서도 성령기도 소리를 들었다며 저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에 기도하는데 마음이 뜨거워졌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고 내가 돌아온 것을 정말 기뻐하시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교회로 돌아온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때였고, 복 중에는 큰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두 배로 축복 받은 것 같았습니다. 큰 아이가 6살 무렵 엄마는 언제 어떻게 성령을 받았는지 궁금해 했었는데 “하나님께 저도 성령받고 싶어요~하고 기도 드렸더니 성령을 선물로 주셨어. 그리고 의윤이가 뱃속에 있을 때 성령을 받아서 더 기뻤어.”했더니 “그럼 엄마는 성령을 상품권으로 받았어?” 해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장 38절)

     

    어릴 때 자녀를 낳는다면 2명 큰 아이는 딸, 작은 아이는 아들을 낳고 싶어라고 얘기했는데 철 없이 한 얘기도 하나님이 들어주셨습니다. 남편도 같이 신앙 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아이들이 어릴 때 영은회에 초청해서 교회에 오기도 했지만 아직 제 태신자로 남아있습니다. 

     

    큰 아이가 어린이집 가고 둘째만 집에서 보고 있을 때 자매들은 그 이전부터 플룻 배우기가 한창이었습니다. 저한테도 같이 해보자고 했고 계이름은 읽을 수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권면 끝에 배우기로 했고 작은 아이를 엄마가 봐주기로 하셔서 편한 마음으로 점심까지 먹고 올 수 있었습니다. 연주를 하려면 이미 알고 있는 노래나 찬양을 하는 편이 훨씬 쉽기 때문에 곡을 배우면서 찬양도 많이 들었고, 찬양을 들으면서 노랫말에 집중하니 찬양이 주는 은혜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플룻을 배우기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다과도 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자매님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고 자녀에 대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어떻게 기도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어떨 때는 플룻을 배우는 시간보다 교제하고 점심 먹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의 내 모습과 일상 생활에서의 내 모습 간에 간극이 있다고 생각할 즈음이었는데 삶 속에서 신앙인으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컸고 일을 해봐도 될 것 같아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적응하게 되었고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눈치보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믿지 않는 남편에게 남편의 수입에서 십일조를 하자고 하는 것은 아직은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항상 신앙 양심이 찔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번 돈이니 떳떳하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은 돈이었지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1년 정도가 지났고 사정이 생겨서 일하던 곳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1년이 되었기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 있었고 급여가 나온 뒤 얼마간 있다가 퇴직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당연스레 급여에서 십일조를 했지만 뒤이어 나온 퇴직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있다가 십일조를 해야지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급여를 받지 못한다고 하니까 십일조 하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부끄럽지만 한 달 이상을 미루다가 퇴직금에 대한 십일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제가 토요일마다 교회 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저에게 전해 주고 싶은 것이 있을 때면 가기 전에 집에 들러서 가져가라고 메세지를 보내곤 하셨습니다. 그 날도 교회를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집에 들르라고 하셨고 어머님이 애들에게 용돈을 주셨습니다. 큰 아이에겐 더 많이 주시고 작은 아이에겐 좀 더 적은 금액을 주셨는데 그 금액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날 낸 십일조는 몇 천원 단위로 끝나는 금액이었는데 지갑에서 돈을 꺼내시곤 정리하실 때 그 몇 천원까지 같이 흘러나와서 “이것도 가질랴?” 하시면서 작은 아이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참 속속들이 알고 계셨습니다. 부끄러운 가운데 하나님은 제가 깨달아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로부터 간간이 제 오빠의 건강이 안 좋아서 걱정이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오빠도 이제 나이를 먹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엄마를 위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각하고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신장이었는데요. 2017년 말 경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애진 자매가 병문안 때 오빠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곧 신장투석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투석을 하면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투석은 되도록 늦게 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편의 건강에 대한 염려, 생활에 대한 염려를 하고 있을 언니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가족 중에 이식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뒷바라지가 필요한 중학생 자녀를 둔 언니보다는 아이들이 어린 제가 해 주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조카는 이미 국악으로 진로를 정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엄마에게 내가 이식을 해주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엄마는 안타까워하셨지만 마음먹은 대로 진행했습니다. 마음을 정하고 기도를 하고 남편에게 동의를 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에게도 시댁 어른들에게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결혼 초에는 시댁도 낯설고 아이들이 어린데도 불구하고 2주에 한 번씩 어떨 때는 1주에 한 번씩 가는 것이 조금 버거울 때도 있었는데 이번 허락으로 그 동안의 수고가 보상 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시댁에 갑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고 만일 누구라도 안 된다 했으면 마음이 상했을텐데 승낙을 받고 하나님께는 물론 허락해주신 시댁어른들께도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서울을 오르며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기본적인 건강 검진, 신장에 대한 정밀한 체크, 지능에 대한 검사도 있었습니다. 걱정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위로해 주셨는데요. 한번은 무심코 쳐다본 병원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성경 구절을 통해서도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리(사 41장 10절)

     

    다행히 수술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받게 되었고 수술 후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그 동안 저희 아이들은 언니가 맡아주었고 제 간호는 엄마가 맡아주셨습니다. 마침 수술 날짜가 둘째 아이의 생일이었는데 이모와 함께 처음으로 서울랜드도 가고 재밌는 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저는 순조롭게 회복되고 있었고, 4일 째 되던 날 자매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청주에서 병문안을 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오빠는 수술 후 무균실로 들어갔기에 병원에 오셔도 만나실 수가 없었고 저는 아파서 수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회복중이라고 말씀드렸지만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시기로 한 날에 하필 비가 장마처럼 내렸고 오시기도 힘드셨을텐데 송집사님 허집사님을 포함 여러분이 오셨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애진자매를 위로하러 마침 강남교회에서도 자매님들이 오셨습니다. 이 자매님들은 저와 잘 알지 못했지만 목자님을 비롯해 청주교회의 자매들과는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천국에 가면 알지 못하는 우리 성도들과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저는 교회를 일찍 떠나서 학생이나 청년때 영은회를 참석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다른 지역의 우리 교회 성도님들을 만난 경험도 적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은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수술을 준비할 때부터 중환자실에 있을 때, 퇴원할 때까지 오빠를 위해 기도 해주시고 혈소판 헌혈까지 마다하지 않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함께 기도해주신 성도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비록 오빠의 수술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이 때 깨달은 것이 있는데요. 이 순간에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입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께 결과가 좋게 해주세요나 살려주세요라는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뜻대로 해주세요 라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중에도 기도해야 하고 또 같이 하는 중보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지 않는 저희 남편과 나눌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도 있는데요. 제가 목요일에 전도심방팀회의에 참석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회의에 참석하고 엄마도 뵙는 날로 정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에 가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니, 저만 시간에 늦지 않도록 준비하면 되는 날인데 갑자기 남편이 제 차 키를 찾으면서 본인 차는 회사에 두고 왔으니 제 차를 타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는 남편의 직장이 천안이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전날 미리 얘기를 해주던지 시간이 촉박해서 다른 선택도 할 수 없게 한 남편이 얄미웠습니다. 엄마께 전화를 드려서 상황을 설명드리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용담동에 있는 구옥을 가끔 살피러 가시곤 했는데, “네가 오지 않으면 난 용담동 가서 있다 올거야.”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오후 4시경, 오랫만에 아는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엄마가 괜찮으시냐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안부를 묻는 것인 줄 알고 건강히 잘 계시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엄마가 계신 건물에 화재가 났다는 것입니다. 그 언니는 엄마가 사시는 건물 맨 뒷 동에 살고 있었습니다. 급한 마음에 엄마께 전화를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엄마는 아직 용담동에 계셨습니다. 건물의 구조가 1층은 필로티이고 주차장으로 사용했는데 거기에 주차 해 놓았던 차에서 화재가 시작되었고 차량 2대가 전소될 만큼 많이 위험했습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화재는 왼 편에서 났고 엄마의 집은 오른편이어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지만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보니 집안에도 검은 그을음이 있었고 공기가 탁해서 숨쉬기가 불편했다고 하셨습니다. 당장 집에 들어 가셔서 생활하기에 불편하셨는데 상황이 더 안 좋았던 분들은 주민센터에서 임시거처를 마련해주기도 하셨습니다. 엄마는 용담동 집이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한동안 생활하셨고 건강에도 문제가 없으셨습니다. 그날 위험이 있을 것을 알고 하나님이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피하게 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나눌 수 있는 간증이어서 더욱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교회에 대한 편견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처음엔 좋게 대화를 시작했다가 결국 기분이 안 좋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 번은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대화하게 되었는데요. 남편은 애들을 위해 트리도 해주고 싶어하고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싶어했습니다. 성경에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라고 되어 있지도 않고 심지어 예수님은 그 날 태어나지도 않으셨다고 했더니 성경에 있는 것을 찾아보라고 해서 싸움하던 중에 성경을 펴고 둘이서 읽는 일도 있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아이들을 포함해서 저는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남편은 집에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새 밥을 지어 놓고 나오는데 그 날은 밥이 너무 잘 됐다고 얘기하니까 할렐루야! 라면서 남편이 농담을 했습니다. 남편은 할렐루야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깜짝 놀랐습니다. 저녁 식사 당번 때 저희 조 단골 메뉴가 돼지고기 김치찌개인데 너무 맛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싸다 주곤 했는데 그 날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남편에게 김치찌개가 생겼고 “어제 내가 당번이었는데 우리도 김치찌개를 하잖아. 어제는 싸오지 못했는데 너무 잘 됐다.”하니 “그럼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냐?” 하는데 이상하게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남편 입을 통해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이 남편에게 조금씩 부드러운 마음을 주고 계신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의 말을 듣는 제 마음도 달라지게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남편을 통해 저를 세워주고 계신다는 생각도 듭니다. 

    찬양 중에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이라는 찬양을 할 때마다 우리집은 아니야에서 우리집은 아직 아니야로 아직 아니야에서 우리집도 그렇게 이끌어 주시겠지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남편을 포함해서 저희 가족도 온전히 하나님만 섬기는 믿음의 가정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눈높이에 맞는 필요한 말씀을 주시고 제 옆에 동역자를 주셔서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남편과 함께 신앙생활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준비하는 이가 더 은혜를 받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가 그런 것 같습니다.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을 마칩니다.

     

    글작성 : 김정민 자매

  • [성도간증]여기가 얼마나 귀한 곳인지요!

    [성도간증]여기가 얼마나 귀한 곳인지요!

    할렐루야!

    인천교회 한은애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함께 은혜 받으시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저를 선택하시고 참 진리 안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립니다.

    저는 인천교회 한은애 자매입니다. 참예수교회 모태신앙입니다. 아버지는 소천하신 삼계교회 한상욱 집사님이시고, 어머니는 현재 삼계교회에서 믿음을 이어 가고 계신 권정임 모친이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주 5일제가 아니었습니다. 토요일에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순창군 동계면 주월리″라는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저는 차로 15분 정도 소요되는 삼계교회에 부모님을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영은회 때 일요일 예배를 드려보는 정도로 참예수교회를 갔습니다. 그 당시 부모님의 믿음은 농사를 지어 1남 7녀의 줄줄이 이어지는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느라 삶에 찌들어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에 전념하시지 못해 자식들에게도 신앙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셨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에 주일교회가 생겨 일요일마다 그 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도 가지 말라고 하시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인천에서 직장취업 후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저는 일요일 교회를 다녔습니다. 제법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 단원으로 봉사하면서 열심인 신앙인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998년 어느 날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있었던 친언니로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언니에게 같이 예배를 한번 드려보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평소에 언니를 신뢰하고 있던 터라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서울 회기동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방문해서 예배도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심도 있게 성경을 공부해본 적이 없던 저에게 하나님의 교회에서 들려주는 세계 역사와 다니엘서 비교해석, 잘못된 주일성수, 성탄절의 진실 등 놀라운 성경의 비밀들을 들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교리 안에서 헛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출석하고 있던 인천의 한 장로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인천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등록하여 한 달 남짓 다니며 교리 공부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서울 언니도 회기동에 있던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성경의 어느 구절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안상홍 하나님이 인간으로 다시 와야만 했던 이유와 성경에 기록된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의심이 생겼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 발길을 우선 끊었는데 그렇다고 잘못된 주일교회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무렵 제가 장로교회에 다닐 때는 그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던 친정 아버지도 하나님의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으시고 잠도 못 주무시고 걱정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다  그 당시 인천교회 담임 목자님이셨던 양봉도 목자님께 전화를 하셔서 저를 좀 구해 달라고 부탁하셨었나 봅니다. 그 당시 인천교회에서 믿음생활을 하고 계셨고 지금은 대방교회에 계시는 유영무 형제님께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양봉도 목자님을 한번 만나보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옳은 교리가 무엇인지, 성경대로 가르치고 지키는 교회가 어디인지 찾고 싶었던 저는 유영무 형제님의 제안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양봉도 목자님을 만나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가지고 있던 다양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들을 양봉도 목자님께 들었습니다. 세례, 성령과 방언에 대한 진리, 성부성자성령의 세 하나님의 이름들이 아닌 예수그리스도 하나이신 그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 안식일의 중요성 등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 다니시는 삼계교회와 그 당시 방문했던 인천 간석동의 교회에서 저는  화려하지도 고급지지도 않은 교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옷차림도 한없이 소박하고 허름함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너무나도 빛나고 값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았던 참 진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과 외할머니께 들었던 새벽기도 소리와 들려 주신 말씀들 속에 녹아 있었다는 사실에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블레셋 민족이 살고 있는 짧은 길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지 않으시고 40년 긴 광야 길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진리의 거룩한 곳에 모태신앙으로 그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쉽게 들어오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저를 이곳 저곳 일반교회, 하나님의 교회를 떠돌고 돌아 돌아 어렵게 찾게 하셨고 어렵게 찾은 그것이 참 진리였음을 깨닫게 하시고 비로소 그 안으로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저를 향한 그런 하나님의 계획과 놀라운 은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후로 참 진리를 절대 떠나지도 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후 믿지 않던 남편을 만나 참 진리 안에 있으며 시어머님과 22살인 아들과 함께 인천교회에서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서울에 있는 언니도 하나님의 교회를 나와 현재 강남교회에서 믿음 생활하고 있습니다. 소천하신 친정 아버지도 제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을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현재 삼계교회에 다니시는 친정 어머니도 저희 남편과 저를 매우 기쁘게 바라보십니다. 남편은 올 해 집사 안립을 받아서 집사님이 되었습니다. 안식일 봉사로 시골 친정 어머니를 거의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하시고 주님 일 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인천교회에서 믿음 생활한 지도 이제 25년이 훌쩍 넘어섰습니다. 너무나도 믿음이 연약했던 제가 그 동안 교회 임원,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어 하고, 최근 인천교회 성도수가 많이 감소해서 하나님 앞에 죄스럽고 낙심될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럴 때 열심히 진리를 찾았던 25살의 저 자신을 소환합니다. 어떻게 만난 귀한 곳인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던 저에서 살 소망을 준 이 곳, 그리고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다시 그 감격을 떠올립니다. 어쩌면 평생 멸망의 길에서 헛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던 저를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로 인도해 주심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를 참예수교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친정 아버지, 양봉도 목자님, 유영무 형제님, 김명애 자매님께 감사합니다. 지금은 교회를 떠나 있지만 저와 제 남편의 믿음이 연약할 때 우리 세 식구를 안식일 마다 차 태워 교회로 인도해 주셨던 김기환 형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언젠가 꼭 돌아오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너무나 많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장 17절

  • [성도간증]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성도간증]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보호하시는 성령

    천안교회 김하늘 집사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청주교회의 모태인 운암교회가 있었던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운암리에서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모태 신앙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종교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모님이 무조건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때 당시 부모님은 자녀의 신앙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로 바쁘셨고 피곤한 육체를 이끌고 힘들게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집안의 형편도 어렵고, 청주교회의 상황도 너무 힘들다 보니 학생부 영은회에 참석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성령을 못 받았습니다. 교회에서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먼저 성령을 받는 모습을 보고 샘도 나기도 하고, ‘나는 왜 성령을 못 받을까?’라는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 교회도 안식일교회나 여호와 증인처럼 혹시 이단이 아닐까? 그러면 우리 가족들이 다 이단에 빠진 것일 수도 있어’라는 의문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한번은 화요일 예배시간에 허야곱 목자님이 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예배가 다 끝나고 나서 갑자기 목자님이 성령 못 받은 사람은 앞에 나와서 같이 성령받기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하셨습니다. 5명 정도의 학생이 강대상 앞에 나와서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성령을 못 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는데 그날 드디어 저는 뜨겁게 성령을 받았습니다. 부러워서 보기만 했던 성령을 막상 받으니

    너무 신기했습니다. 그날은 구름위에 떠 있는 것처럼 붕 뜬 기분이었고, 집에 오자마자 방언기도 소리가 진짜로 나오는지 이불속에서 수시로 기도하던 적이 생각이 납니다. 성령을 받고 나자 우리 교회는 정말 성령이 역사하는 유일한 참 교회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이후로 한 번도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말씀처럼 성령은 저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요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또 성령은 내가 위험한 순간에서도 나를 지켜 주셨습니다. 제가 20대 중반 때의 일입니다. 저희 집은 방이 두 칸에다 자그마한 거실이 있는 18평짜리 2층 빌라에서 살았습니다. 거기에서 큰방은 부모님이 쓰시고, 작은 방 하나는 자연스럽게 제가 사용을 했습니다. 딸 하나라는 이유로 침대까지 들여 주셨습니다. 남동생 2명은 사람 한명도 자지 못할 정도의 작은 거실이 있었는데 그 좁은 거실에서 지냈습니다. 어느 날 밤에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참운아” 하고 저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깊은 잠에 빠져서 듣긴 들었는데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시 한 번 “참운아” 하고 큰소리로 나를 깨웠습니다. 저는 그때도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참운아”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급하게 나를 깨웠습니다. 나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떴더니 내 눈앞에 커다란 남자가 자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자고 있는 틈을 타서 창문으로 도둑이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방안이 캄캄했는데 생생하게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고, 내 비명소리에 주무시고 계셨던 부모님이 놀라서 잠에서 깼습니다. 하지만 그 도둑은 아무도 못 들어오게 안에서 문을 잠궜기 때문에 부모님은 방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문만 쾅쾅 두드렸습니다. 문이 안 열리자 갑자기 아버지가 베란다에 가서 도끼를 가져 오셨습니다. 도끼로 잠긴 문을 부수려고 하는 찰나에 나는 순간 용기를 내서 내 스스로 문을 열고 뛰쳐나왔습니다. 도둑은 내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창문을 통해 급히 도망쳐 갔습니다. 정말 큰일 날 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습니다. 육적인 아버지가 ‘참운아’ 하고 나를 깨웠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아버지의 음성을 통해서 나를 깨워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위험한 순간에서 하나님은 나를 건져 주시기도 했지만 나의 몸까지도 하나님은 치료해 주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임신이 잘 되지 않았던 나에게 하나님은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간절한 기도 끝에 하나님은 첫 아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기쁨도 잠시 임신을 하고 산부인과로 갔더니 의사는 내 얼굴과 몸을 보더니 여기로 올게 아니라 빨리 내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내과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갑상선 수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사실 평소에도 조금만 일을 해도 피곤해서 서너 시간씩 꼭 누워 있어야만 했는데 그 원인이 갑상선 수치가 높아서 그런 현상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병에 대해 무지한 나는 그저 내가 몸이 약해서 그런가 하고 무심하게 지나갔던 것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임신기간이긴 하지만 약을 꼭 먹어야 한다고 하고, 어쩌면 평생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께 가장 간절하게 기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태아에게는 영향을 안 미친다고 하지만 임신한 상태에서 약을 먹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하루치를 먹고 그 다음날부터 약봉지를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몇 달 후 다시 검사하러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신을 믿고 있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했더니 호르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정말 신기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위험한 순간을 모면해 주시고 나의 약한 부분까지도 치료해 주신 하나님은 나의 삶 곳곳에 살아 역사하시고 계셨습니다. 결혼하기 전부터 시아버님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만드시는 일을 하셨는데 결국은 시부모님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해 주셨고, 사십 몇 년 동안 교회를 등지고 살면서 저희 친정엄마를 무던히도 핍박했던 저희 친정아버지도 기적적으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자녀 문제로 인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더 큰 축복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죄에서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감사한데 하나님은 물질의 만족까지 얻게 해주시고 매일의 삶을 기쁨과 축복의 삶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은 감히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순간조차도 하나님은 내 안에 들어와 역사하심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유일한 삶의 이유입니다. 하늘나라 갈 때까지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삶을 드리고자 오늘도 난 기쁘게 찬송하며 기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김하늘 집사>

  •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하나님과 함께한 삶.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모든 성도님께 인사드리며, 저는 영국에서 온 바네사 자매입니다. 제 삶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간증에 앞서, 목자님이 저에게 간증하면 어떻겠냐고 처음 말씀해 주셨을 때 저는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때는 제가 올해 동부로 돌아온 지 첫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부의 많은 성도님들이 간증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간증하는 것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8월까지 휴가를 온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휴가에도 하나님께서 제게 정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한국 성도님들을 통해 사랑과 헌신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늘 있으며 이번 간증을 통해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정한 성경 구절은 시편 96장 8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시편 96장 8절)”

    지난 온라인 교사 세미나에서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제가 신앙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함을 경험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저에 대한 약간의 소개를 하자면, 저는 23살이고 작년에 법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개인 과외 선생님으로서 온라인으로 법을 가르치며 영국 대학교 입학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휴가 중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참예수교회에서 왔으며 참예수 뉴캐슬 교회는 1976년도에 처음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생긴 첫 참예수교회이며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영국에는 총 9개의 참예수교회가 있고 이 사진은 40주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사실 모태신앙이 아닌데요, 이것은 저의 간증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목자님이 제게 주신 간증의 주제는 제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과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간증을 통해 제가 나눌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제 학업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제게 은혜를 주셨는지 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교회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0년도에 홍콩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사실 이전에 세례를 받으셨고 조부모님과 어머니 쪽 가족들은 교회를 다니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참예수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성도님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제 아버지도 홍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저희는 아버지 여동생의 가족이 있는 더블린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참예수교회가 아닌 이방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고 어렸을 때 저는 교회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찬양하고 하나님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흰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했고 매주 교회에 다녔습니다.

    2004년 8월 저희 가족은 뉴캐슬 영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많은 친인척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었고 대부분이 참예수교회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제 부모님은 당시 중국식 포장 전문 식당에서 일하시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부모님 세대에겐 매우 흔한 직업이었습니다.

    이땐 일요일마다 중국 구세군 교회를 다녔는데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작은 수영장이 있어 제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교회는 제가 18살이 될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제 어머니의 여동생분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저를 데리러 와주었습니다. 이 사진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제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보여주시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이방교회에 나갔습니다.

    2005년 5월, 아빠는 일을 하시다  바닥에 넘어지시게 됩니다. 이 낙상사고는 매우 심각했고 한 달간의 혼수상태에서 몇 달간의 입원 그리고 몇 년의 병원 방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빠의 혼수상태 기간동안 의사 선생님은 저희 엄마에게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가족분이 홍콩에서 영국으로 아빠의 마지막을 지키러 오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참예수교회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던 엄마와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많은 친척분의 도움으로 아빠의 상태를 교회에 알렸고 뉴캐슬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은 진실로 기적적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많은 기도 덕분에, 매우 기적적이게도, 아빠는 깨어나셨습니다.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도 이는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다시 일어난 뒤에도 다시 걷는 방법을 배워야 했지만 저는 어렸을 때 병원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빠가 혼수상태였던 때와 깨어나셨을 때 둘 다요. 저는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 오늘까지도 살아계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하시길,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어났더라도 아직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아빠 같은 환자는 금방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상태는 점진적으로 호전되었고, 이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간호사도 말하길 아빠가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생활하십니다.

    이후 교회는 아빠를 전도했고 목자님이 성경의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빠는 믿게 되었고 저와 제 남동생과 함께 2009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참예수교회로 데려와 주신 것과 오늘날에도 저를 교회에 마련해 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물질적인 것에 복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가장 큰 선물은 구원입니다.

    사도행전 17:26-28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하나님은 저희가 있어야 할 곳에 두시며 이는 하나님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참 교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를 받은 후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믿음은 저의 것이 되었고 진리에 대해 배웠으며 그 진리를 통해 왜 18살이 되기 전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녀봤던 저는 우리교회가 얼마나성경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지 우리 교회의 진리가 얼마나  올바른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간증의 두 번째 부분은 제 학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 영국에서의 삶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2009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이때 제가 배운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때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때 저는 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시간을 다시 돌려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 결심은 제게 많은 축복을 경험하게 해주셨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잘 볼 수 있었고 저희가 안식일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려 노력한다면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공하기 위해 안식일 날 일을 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또한 케임브리지 기도소 성도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도소는 작지만, 그들의 마음은 큽니다. 영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의 학업 생활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절 어떻게 축복해 주셨는지 생각하면 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저를 돌봐주시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여름, 저의 첫 번째 법과 대학교 시험 기간 때, 손에 어떤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따끔거림, 마비, 그리고 많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 증상을 무시했습니다.

    2020년 10월, 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제 손의 통증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2월이 끝날 무렵 저는 매일 밤 울면서 잠들었고 하루 종일 고통을 느꼈습니다. 접시를 들거나, 문을 열고, 머리를 말리는 일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제 손은 약해졌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빨리 일어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작은 일들을 이행하기 어렵게 느껴졌고 저는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매우 바빴고 저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겐 희망이 없었고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더욱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과 제 정신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자비로우시고 저는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2021년 1월 많은 기도를 통해 제 마음엔 안식이 찾아왔고 의사의 조언을 통해 1년간 학업을 쉬기로 했습니다. 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또는 건강을 다시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기도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가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제 건강에 대한 것입니다. 믿음을 우선시하는 것은 건강을 우선에 두는 것과 같고, 저는 이를 몹시 어려운 방법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통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게 많이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바로 1년간의 휴식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아주 큰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2021년, 저는 제가 필요한지 몰랐던 시간을 받았고 그 시간 동안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손의 상태가 육체와 정신이 결합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 두 개의 문제를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2022년 1월 저는 대학교로 돌아갔고 손의 문제는 장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로 복귀하기 무서웠지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전처럼 공부할 수 없고 제 뇌가 손보다 빨리 움직였고 타자를 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대학교 2학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놀랍게도 2023년 저는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께 기대면 모든 것이 다 형통할 것이라는 간증입니다. 그날은 정말 기쁜 날이었고 제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졸업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손은 전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저는 더 이상 매일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나누고 싶은 구절입니다.

    시편 96장 8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왼쪽 파란 옷 입은 분이 바네사 자매이고, 옆에서  최하은 자매님이 통역하는 모습이며,  청년들과 함께한 모습도 담아보았습니다.

     

  • [성도간증]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성도간증]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들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이유진 자매님은 미국 LA Glendale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계십니다. 인천교회 우정 자매님 친정 어머니이십니다. 우정 자매님의 아이들인 율이와 민이의 육아를 도와 주시기 위해 한국에 오셨습니다. 감사하게도 우정 자매님 가족과 함께 인천교회에  출석하고 계십니다. 미국 가시기 전에 인천교회와도 인연이 깊으셔서 많은 애정과 사랑을 주고 계십니다.  오실 때 마다 교회 이곳 저곳, 구석 구석  쓸고 닦고 하십니다. 교회 봉사에 거룩한 시샘을 내실 정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깊으심에 감동이 됩니다. 이유진 자매님의 간증을 듣고 싶어 간증을 요청 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응해주셔서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은혜 되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TJC LA Glendale교회 이유진입니다. 처음으로 간증을 부탁 받고 기쁘면서도 부담이 되는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시편90:10) 라는 모세의 고백처럼 제 나이도 신속히 날아 칠십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수고는 상급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는 행운을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27세가 되던 해 주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내가 긍휼히 여기는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9:15),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1:4),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있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55:1)
    위의 말씀처럼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경글자가 크게 확대되며 ′이 성경이 내가 찾던 진리다′ 라는 확신과 함께 예수님이 제 마음에 훅 들어오셨습니다. 10대 부터 풀리지 않던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있지 않고 제 마음에서 살아 움직이셨습니다. 제 마음과 의식에 쌓여 있던 모든 죄와 죄 의식, 열등 의식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로 제 마음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해결되는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허물과 죄의 그 많던 옥쇄가 풀어지는 자유함,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모든 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열쇠까지 쥐는 행운을 가진 예수님의 신부, 친구, 종이 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께서 함께 해주시는 행운 중의 행운을 얻는 기운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말 무언가 굴레가 벗어진 느낌, 화가 난 마귀가 저를 탁 치고 나감을 생활 곳곳에서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라는 말 그대로 저에게 이루어졌습니다. 그 많던 죽음의 공포, 저의 죄와 허물을 해결해주시고,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는 시편50편15절 말씀으로 어려움을 해결했던 기억, 말씀 모두가 저에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어려움이 진행 중이지만 삶의 숙제를 해나가는 인생의 과정이지 결코 기도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또한 움직이지도 않으시고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니라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거대한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느낍니다. 다양한 자연을 바라볼 때 저도 그 중의 하나로 하모니를 이루기를 원합니다. 어느 풍진 세상의 귀퉁이에서 밝은 햇살 아래 하늘거리는 이름 없는 들풀처럼 하나님을 찬미하기를 원합니다.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지음 받아 가는 존재 중의 하나로 택하여 주신 은혜에 무한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다같이 함께 손잡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함께 웃으며 기쁨의 교제를 나누는, 그 가운데 말씀이 이루어지는 천국의 삶을 소망합니다.  또한 작게는 제 마음에서 부터 출발하여 교회에서 교회로 이어져 세상이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영원까지 생명의 보물이신 예수님을 꼭 껴안은 하나님의 전 참예수교회 일원으로 사명을 다하기를 다짐해봅니다. 예수님의 얘기를 다 기록하려면 바닷물이 다하고 종이가 다해도 부족하다는 말씀처럼 저에게도 지면이 부족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훨훨 날아 쓰고 또 쓰고 마르지 않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말씀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저희와 함께 하시기를 (고후13:13) 간구하며 감사로 간증의 제사를 올려드립니다.

  • [성도 간증] 새 집 증후군 아토피를 낫게 하신 하나님 -부산교회 김원경자매-

    [성도 간증] 새 집 증후군 아토피를 낫게 하신 하나님 -부산교회 김원경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오늘 나눌 간증은 둘째 아들 태영이를 돌보시고 치료하신 주님의 사랑을 성도님들과 나누려고 합니다. 이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 받으시고 성도님들께 은혜가 되시길 간구합니다.

    <이사 및발병>
    2005년, 남편은 싸게 나온 집을 사서 리모델링하며 첫째와 새로 태어날 둘째와 함께 할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몇 달간의 수고가 마무리 되며 2005년 4월 5일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예정일은 4.16일 이였으나 이사를 하고 정리하는 게 몸에 무리가 갔는지 4.9일에 주님의 은혜로 건강한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3일 정도 병원에서 보내고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리모델링을 해서인지 눈이 따가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10일 정도 후부터 작은 아이 태영이 눈 주변이 빨갛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병원에 갔습니다. 역시나 새집증후군으로 생긴 아토피라고 하였습니다. 처방해 준 약들이 큰 효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교회 출석과 예배의 자리에 나가 기도하였지만 기도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기 보다 주변에서 민간요법을 얘기 해 주면 솔깃해했습니다. 시어머님께서 목초액을 보내주셔서 사용해 보기도 하고 친정 엄마가 보내주신 황토로 목욕을 시켜 보기도 하고 시중에서 나온 아토피용 로션을 사서 발라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였으나 큰 효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잘 웃지 않고 가려울 때마다 보챘습니다. 너무도 마음이 아팠지만 해 줄 수 있는 것이 딱히 없었습니다.

    어느날, 친정 오빠가 방송에서 아토피에 미역귀 목욕하는 것을 보았는데 태영이가 생각이 났다며 전화를 해 주셨습니다. 그날 부산 교회 혜영 자매님께서도 예린이가 방송을 봤는데 미역귀 목욕을 태영이가 해 보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영이에게 맞는 방법을 알려 주셨는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남편과 함께 시장에 가서 미역귀를 구입하여 목욕 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도님들께서 기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마음 덕분에 태영이가 미역귀 목욕을 아주 좋아하며 효과가 있어 보였습니다. 1년 정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목욕을 시켜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라졌다가 다시 생기기를 반복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찾아 오심 >
    남편은 학교 일과 교회 일로 늘 분주했습니다. 안식일 예배를 마치고 에덴 장학회 회의가 있어서 대전으로 가고 저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 날따라 태영이가 심하게 보채고 힘들어했습니다. 미역귀 목욕을 시키고 재우려고 하는데 자지도 않고 계속 울어 댔습니다. 저도 너무 힘들어서 눈물이 났습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있었습니다.아이를 안고 저랑 둘째가 울고 있는데 3살 된 큰 아이가 눈물을 닦아주며 저를 위로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절 말씀이 마음에 가득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아는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입술로만 주님을 인정하고 마음으로 주님을 의지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세요! 회개 기도가 나오면서 태영이를 안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개 기도와 하나님을 인정하는 기도로 몇 시간을 하고 나니 두 아이가 자고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마음이 너무도 기뻐서 날아 갈 것 같았습니다. 또한 너무도 편안하게 자고 있는 태영이를 보니 더욱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태영이 얼굴에서 빨간색이 아닌 환한 빛이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태영이 아토피는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전지 전능하신 주님을 찬양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혹시 또 발병이 나면 어떡하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주님께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라고 책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주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세요! 의심하지 않고 범사에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허락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아토피를 치료해 주신 전능한 사랑의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 (계1:8) 아멘

    원고 : 부산교회 김원경 

    작성 : 부산교회 김은광 

  •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성도 간증]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 찬양_김예영 자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합니다.

    얼마 전 제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성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가족은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마음이 뜨거워져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알리고 전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영은전도대회에도 초대하고 설교 말씀도 보내드리고 만날 때마다 권면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부모님들은 더욱더 거리를 두셨습니다.

    저희들의 권면이 부담스러우셨는지 한동안 얼굴도 뵙지 못하고서야 너무 성급하게 마음이 앞섰던 게 아니었나 반성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전략을 바꿔(?) 아예 교회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역으로 질문도 하시는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너희 교회에서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 옳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고 가족 전도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화면으로 너희들 잘 지내는 것 보고 있다고 하셔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청주 교회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설교며 특별 찬양 발표며 간증이며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싫으면 그림자도 꼴보기 싫다는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신다니 저에겐 긍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는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대만 참예수교회 방문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대만에 가는데, 부모님도 언젠가 꼭 같이 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다녀오고 나서도 대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곳의 성도님들께 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 굉장히 귀 기울여 들어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했습니다. “마침 오늘 저녁(금요일)에 예배가 있는데 장항서부교회로 함께 가서 예배 드리면 안 될까요?”하고 말이죠~ 저는 무뚝뚝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순간 당황하시다가 “그러지 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감사주!!

    저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고 뒤늦게 무슨 일이냐며 어머님이 오셨지만 이미 아버지가 약속하셨으니 무르시면 안 된다고 우겼습니다. 어머님도 웃으시며 그러자고 하셨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뒤 장항서부교회로 향했습니다. 군산인 아버지 댁에서 장항서부교회는 차로 20분 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또 마침 그 때 윤석원 목자님께서 장항으로 이사를 오신 날이었고 첫 설교를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복이다> 라는 말씀이었고 이미 ‘복’이신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우리 자체가 복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니 믿는 성도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닌 “새해 복이 되십시오”라고 인사하자고 하셨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께서 저에게 “새해에도 복이 되렴.” 하고 인사해 주셨고 저도 화답했습니다. 예배가 어떠셨냐는 질문에 “젊은 목자님께서 말씀을 명료하게 잘 하신다.”라며 칭찬하셨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린 기념사진을 깜박했어요, 기념으로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라고 하니 아버지께서 못 이기는 척 “그럼 돌아가서 찍든가.”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너 이거 너희 교회 월말 발자취 영상에 올릴 거지? 하셨고요. 진정 구독자가 맞으시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당장 참예수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으신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내가 잊고 있을 때에도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셨다는 생각에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 손을 꼭 잡으며 우리 더 열심히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성도님들께서도 함께 기도 부탁드리고 저처럼 전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언젠가 이뤄질 기도 응답의 소망을 품고 열심히 전진하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감사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글작성 : 김예영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