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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나지선자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간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간증하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 한 구절을 읽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장 28절)

     이번 간증을 준비하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별다른 의미 없이 지나쳤던 일들, 뜻대로 되지 않아 아쉬워했던 일들,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시간 속에서 저를 지켜주시고, 말씀과 사람을 통해 만나주시며,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조금씩 준비시키고 계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초등학교 6학년 때 학원차에서 내리던 순간 배달 오토바이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곧바로 병원에 갔지만 감사하게도 큰 부상은 아니었고, 며칠 동안 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구약과 신약의 이야기가 담긴 두꺼운 성경 이야기책 한 권을 건네주셨고, 저는 쉬는 동안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당시에는 사고로 며칠 쉬었다고만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제가 크게 다치지 않도록 지켜주셨을 뿐 아니라 뜻하지 않게 멈추어 선 시간까지도 말씀을 가까이하는 기회로 사용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동부 시절을 서천교회에서 보냈습니다. 그때 부모님과 아동부 선생님들께서는 감사기도와 회개기도, 중보기도를 반복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가족과 친척, 교회 성도들의 이름을 한 명씩 떠올리며 기도했습니다. 어린 제가 스스로 그런 기도를 생각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님과 루디아 집사님, 한나 집사님, 이정우 선생님을 비롯한 교사들이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부모님과 교사들을 통해 제 마음에 기도의 씨앗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영은회에 참석해 성령을 구했지만 몇 년 동안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 전주교회에서 열린 아동부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저희 조 선생님은 지금 유바나바 목자님의 사모님이신 이은초 사모님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해주셨고, 식사 후 쉬는 시간에도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전주교회 예배당 뒤편 유아실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울고 땀 흘리며 기도해 유리창이 뿌옇게 성에로 가득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영은회 둘째 날, 같이 영은회에 참석한 교회 동생이 먼저 성령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부러워 하나님께 저에게도 성령을 달라고 떼를 쓰듯 기도했고, 그날 저녁 저도 성령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정말 성령을 받은 것인지 잘 몰라 하나님께 “제가 정말 성령을 받은 것이 맞나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제 의지로 멈추려고 해도 방언과 진동이 이어지는 것을 경험하며 하나님께서 정말 제게 성령을 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은회가 끝난 뒤에도 이은초 사모님께서는 제 신앙을 위해 집으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따뜻한 칭찬과 격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그 편지는 어린 저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한 명의 교사를 통해 제 마음을 따뜻하게 돌보아주셨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교사의 작은 관심과 말 한마디, 한 번의 기도도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세우는 귀한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은 뒤에는 기도가 너무 하고 싶어 베란다의 작은 창고에 들어가 혼자 기도하곤 했습니다. 학교에 걸어가는 길에도 작은 소리로 방언기도를 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화장실에 가서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기 전의 기다림까지도 사용하셨습니다. 곧바로 응답해주시지는 않았지만 그 기다림 속에서 기도를 배우게 하시고, 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해주는 교사와 공동체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중학교 1학년 무렵에는 서천교회에서 장항교회로 분가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성도들의 가정을 돌아가며 예배를 드렸고, 얼마 후에는 상가건물에서 어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장항교회가 건축되었고 김한길 목자님께서 부임하셨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젊은 성도들이 자녀를 키우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참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했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에도 교회에 들러 청소하고 곳곳을 살피셨고, 심재금 사모님과 어머니들은 평일 오후에 중학교 앞에서 노방전도를 하셨습니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과 라벨리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구피자에서 피자를 먹으며 교제하셨습니다. 그때 전도되어 지금까지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애진 자매와 혜진 자매, 혜연 자매도 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뜨겁고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던 청소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목자님, 사모님, 성도들이 하나님과 한 영혼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내어놓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며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분이구나. 신앙은 참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제 마음에 자리 잡았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저는 진로와 대학 진학을 두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 무렵 아버지께서 학교 학생들을 전도하고 돌보시는 모습을 보며 교사의 꿈을 품게 되었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선생님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 제가 교사가 된다면 평생 세 명을 전도하여 세례를 받고 성실하게 믿음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3명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린 마음으로 드린 기도였지만, 당시에는 교사가 되고 싶은 소망과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진지하게 드린 약속이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학교에서 복음을 전할 학생들을 만나게 하셨고, 몇몇 학생은 교회에 나와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가운데 전주교회 임채규 형제가 지금까지 믿음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하지만 고3 때 드린 약속은 지금도 이어가야 할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능장으로 가기 전날 저녁, 김용준 담임 목자님께서 제게 엽서 한 장을 주셨습니다.  그 안에 적힌 여러 성경구절 가운데 여호수아 1장 9절 말씀이 제 마음에 깊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수능을 앞두고 참 두렵고 떨렸지만, 이 말씀을 읽는 순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고 지켜주신다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수능 당일 가장 자신 있었던 국어 시험에서 시간 배분을 잘못하여 여섯 문제를 풀지 못한 채 모두 3번으로 찍었습니다. 결국 평소보다 한 등급 낮은 점수를 받았고, 제가 원했던 대학에는 가지 못하고 하향 지원했던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많이 아쉽고 속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길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수능을 마친 뒤 겨울방학 동안 고3 수련회, 학생부 영은회, 단기신학, 대학부 영은회에 연이어 참석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말씀과 기도와 찬양에 젖어 지내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2주 동안의 단기신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윤득도 목자님의 강의를 듣던 중에는 말씀을 통해 제 부족한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부족한 저까지도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져 눈물이 계속 흘렀습니다. 그 겨울방학은 제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겠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이 있구나.’

    이 사실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대전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4년 동안 대전교회에서 허성복 목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제 마음에 깊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배 때마다 깨닫고 느끼고 다짐하며 돌아왔고,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달다는 것을 그 시기에 경험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제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가 원했던 학교가 아니라, 제게 말씀이 들리기 시작할 곳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수능에서의 실수와 낮아진 점수만 보았지만, 지금 돌아보니 하나님께서는 제가 원했던 길보다 제 영혼에 필요한 길을 먼저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대학생활을 마치고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제 삶에 여러 어려움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어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셨고, 아버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동생은 군대에 가 있었고 장항교회도 군산교회 사건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신앙생활을 해왔던 사람들과 열심히 헌신하셨던 어른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마음도 많이 흔들렸습니다. 가정과 교회, 제 진로까지 어느 것 하나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매일 장항교회 유아실에서 임용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책이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어두운 터널은 언제쯤 끝날까.’
    ‘왜 내게는 매일매일 기쁨이 없을까.’

    저는 책을 덮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이 모든 일을 해결해주실 계획이시라면, 그때까지 이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제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힘을 주세요.”

    그런데 “하나님, 제게 평안을 주세요.”라고 구하는 순간, 제가 구했던 평안이 순식간에 제 마음에 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복잡하고 슬펐던 마음이 갑자기 평안해졌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정말 평안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성경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하신 말씀이 글로만 기록된 말씀이 아니라 실제로 제 삶 가운데 이루어질 수 있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상황이 바로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의 건강도, 교회의 어려움도, 시험의 부담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제 마음을 붙들어주셨습니다. 그 후로 저는 날마다 교회에서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 평안이 찾아왔고, 기도하지 않으면 근심과 걱정이 다시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어려운 시간을 통해 제게 다시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하게 하셨고, 고3 겨울에는 말씀을 통해 사명을 깨닫게 하셨으며,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혹시 오늘 이 순간 힘든 시간을 지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제가 경험한 하나님의 평안이 그 마음에도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상황이 바로 달라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고 견딜 힘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저는 그때 경험했습니다.

     처음 간증을 준비할 때에는 제 삶이 너무 평범해서 무엇을 간증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지나온 시간을 하나씩 떠올려보니 제 삶에는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 참 많았습니다.어린 시절 위험에서 지켜주신 일, 성령을 사모하게 하시고 기도를 배우게 하신 일, 믿음의 어른들을 통해 신앙의 중요성을 마음에 심어주신 일, 말씀을 통해 삶의 사명을 깨닫게 하신 일, 제가 원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듣게 하신 일, 그리고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기도를 통해 평안을 주신 일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해주신 은혜였습니다. 오늘은 어린 시절부터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20대 중반까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20대 중반부터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의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참 많았습니다. 그 모든 이야기를 시간 관계상 다 말씀드리지는 못하지만, 앞으로 하나님께서 제 삶을 어떻게 지키시고 인도해주셨는지 하나씩 돌아보며 글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간증을 준비하는 과정은 저에게도 제 삶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발견하고 깨닫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힘으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를 지키시고, 말씀과 사람을 통해 가르치시며, 뜻대로 되지 않은 일과 고난의 시간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는 저를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글쓴이 | 나지선 자매

  • [성도 간증] 하나님을 위한 섬김을 배운 말레이시아 선교 사역_황수영 자매

    말레이시아 선교 간증 – 황수영 자매

     

    때로는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여정이 확신에 찬 발걸음이 아니라 작은 망설임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능력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며, 언어의 장벽이나 부족한 전도 경험을 이유로 하나님의 일을 주저하곤 합니다. 말레이시아 선교를 떠나기 전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선교는 언어의 은사가 있고 믿음이 굳건한 사람들이 하는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참여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자.’라는 마음으로 선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고, 중간에는 ‘괜히 간다고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씩 준비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말레이시아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1. 타파교회에서 돌아본 나의 신앙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다음 날 타파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교회의 환경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신앙을 지키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정성껏 준비해 주신 음식과 따뜻한 환대에서도 큰 사랑을 느꼈습니다.

     

    예배에서는 서로 언어는 달랐지만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특히 아동부 아이들이 진심을 다해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타파교회를 통해 깨달은 것은 환경이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 안의 부족한 믿음과 욕심이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 원주민 성도님의 가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계획

     

    셋째 날에는 페락 지역 원주민 성도님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산길을 오래 달리고 길을 여러 번 헤맨 끝에 작은 산골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며, 먼 곳에 사는 가족들까지 예배를 위해 모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배 중 함께 부른 찬양 **‘기대’**의 가사가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 분만 바라네’라는 고백을 부르며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람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두 알 수 없지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심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예배 후에는 정성껏 준비해 주신 전통 음식과 두리안을 함께 나누며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경험했습니다.

     

    1. 미얀마 아동센터에서 품게 된 기도

     

    월요일에는 미얀마 난민 아이들이 있는 아동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이전에 이곳을 다녀간 아이들이 다른 나라로 이동한 뒤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처음에는 수줍어하던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제가 특별한 것을 해 준 것은 없었지만, 오히려 아이들을 통해 더 큰 기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참된 진리를 만나 믿음 안에서 자라갈 수 있도록 평생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 선교

     

    이번 선교에서 저는 다과 준비를 맡았습니다. 현지 상황과 인원 등을 정확히 알기 어려워 준비하는 과정에서 막막함도 있었습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하나님께 맡기자.’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현지에 도착한 뒤에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 주셨습니다. 부족했던 부분은 현지 사역자들과 함께한 동역자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채워졌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준비하는 순간부터 모든 일정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원하신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1. 선교를 통해 다시 세운 삶의 방향

     

    이번 선교는 제 삶의 방향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현지 사역자분들은 하루 5시간에서 8시간씩 운전하며 저희를 섬기셨고, 자신의 휴가까지 내어 기쁨으로 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위한 섬김이 무엇인지 깊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3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교를 통해 직업을 선택할 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선교를 통해 제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임을 다시 새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기억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부족한 저를 사용하시고 모든 과정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글작성 : 황수영 자매

    글편집 : 박은우 형제

  • [성도 간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조*화 자매)

    [성도 간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조*화 자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 71)

    저는 9살 때부터 오빠를 따라 참예수교회 쌍치기도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부모님께서 생계를 위해 참예수교회 남원교회 근처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시게 되면서 가족 모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을 영은회 때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을 받아 방언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깨워 새벽기도에 데리고 다니시던 기억도 아직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저를 의상실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여성복을 만드는 곳에서 의아하게도 남자 기술자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 옷 만드는 일은 모두 수작업이었고, 맞춤옷 한 벌을 완성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밤샘 작업이 이어지는 날도 많았고, 한 달에 한두 번 쉬기도 어려웠고 토요일에 일하는 것이 다반사였던 상황이라 점점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큰아이가 다섯 살, 둘째가 태어난 뒤에 생활고 속에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녔고 실직의 기간도 많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친정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큰 도시로 가면 살아갈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에 남편을 먼저 서울로 보내고, 자리가 잡히면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울 생활은 역시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월세방 한 칸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어린 둘째를 업고 주인집 포장마차에서 홀서빙과 주방 심부름을 했습니다. 남편은 월급 대신 옷으로 가져오면 제가 그것을 팔아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지만, 월세조차 제때 내지 못할 만큼 형편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한 패션회사를 소개받게 되었고, 안정된 직장이라는 말에 ‘1~2년만 맞벌이를 하며 자리를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큰딸은 여덟 살, 아들은 네 살로 한창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였습니다.

    종암동 집에서 압구정동 회사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매일 출근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점점 늦게 귀가하기 시작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생활의 무게와 외로움 속에서 괴롭고 힘든 일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삶의 돌파구가 안 보이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 낙심해 있을 때 문득 남원교회 영은회에서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을 떠올리며 힘을 내보기도 했지만 제 인생은 꼬인 실타래처럼 점점 더 엉켜 갔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아무런 소망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11월에 안양에 살고 있던 오빠가 안양교회로 나오라고 계속 연락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알겠다며 대답했지만 교회를 나오라는 잦은 연락에 내 형편을 모르고 교회만 나오라고 하는 것 같아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바쁘고 나중에 시간되면 가겠다고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은 건강검진을 받자고 제안했고 이때 받은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 초기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안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죽음 앞에 서게 된 저는 남편에게 교회를 나가야겠다고 말을 하였고 남편도 큰 반대가 없었기에 다시 하나님을 찾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육신의 병까지 생기자 삶의 깊은 회의가 들었고 하나님께 돌아가고 간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안산 고려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시흥 딸 집에서 요양하며 안양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아, 이곳이 내가 와야 할 곳이구나. 이곳이 나의 피난처구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은혜가 넘쳤고, 찬양이 너무 좋아 저도 모르게 계속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지친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위로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딸집에서 2주를 지냈을 무렵 남편이 찾아와 서울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남편과의 불화가 여전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남편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워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으로 가야했습니다.

    서울 집에서 안양교회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안식일 오전 예배만이라도 드리기 위해 교회를 오갔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 집으로 다시 서둘러 돌아가야 했지만,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사람들처럼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셨고, 예배 시간에 들리는 말씀은 꼭 제게만 주시는 말씀처럼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은 계속 교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찬양과 말씀이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붙들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오가던 어느 날, 2008년 설명절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간단히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찬양을 흥얼거리고 있었고, 쇼파에 앉아 있던 남편이 갑자기 조상 제사를 지내자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교회에 다니게 되었으니 앞으로 제사는 지내지 않겠어요.” 평소의 저라면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때는 두렵기보다 이상할 만큼 담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고백은 제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용기와 믿음을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결국 저는 아들과 함께 빈몸으로 집을 나와 안양으로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남편과의 불화는 계속되었고 큰 다툼을 겪으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 아들은 더 이상 집에 들어가지 말자고 하여 결국 안양의 오빠 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수술 후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일을 해야 했지만, 안양에는 제가 할 수 있는 패션 관련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약 6개월 정도 교복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안식일 예배를 지켜야 했기에 늘 시간에 쫓기며 생활했습니다. 교복철이 지나 일이 끊기면 구직 자리를 안내하는 신문을 들고 하루하루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용직 가사도우미, 식당 아르바이트, 입주청소 회사 등 여러 일을 전전하면서도 어떻게든 안식일만은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이후 공공근로에 참여하며 주 5일 근무를 하게 되었고, 국비지원으로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농협 구내식당 조리사로 일하며 조금씩 삶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교회 송년행사인 작은 불꽃 선물을 사기 위해 기독교 백화점에 가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둘러보던 중 작은 액자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액자에는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 말씀 앞에서 저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밀려와 한참을 서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결국 그 액자를 집으로 가져와 매일같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졌고, 세상에서 겪던 고통과 문제들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말씀은 제 인생의 등이 되어 주었습니다. 캄캄했던 길을 비추며 다시 앞으로 걸어갈 힘을 주셨고, 저는 말씀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지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점점 커져 갔습니다. 그래서 예배와 안식일 행사, 성경공부와 기도회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안산 고려대병원으로 정기검진을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혼자 병원에 가는 처량한 상황에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이 찬양이 떠오름과 동시에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저를 꼭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한참을 혼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경청하며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저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이 되어 아무도 없는 빈 방에 홀로 앉아 목놓아 울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미움과 상처도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무렵 전도된 딸도 어려운 고난이 있었지만 가족 모두 세례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딸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2013년 11월쯤이었습니다. 깊이 잠들어 있던 새벽, 갑자기 오른쪽 귀에 마이크를 댄 것처럼 아주 크고 또렷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너무도 생생한 음성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만져보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캄캄한 새벽이었고, 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무지하고 연약한 저에게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찾아와 주셨고, 그 순간 저는 주님의 임재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제 안의 무너진 마음과 연약한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이제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럴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암도 2012년 2월 완치 판정을 받게 되었고, 2014년에는 교회 가까운 곳에 작은 집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늘 마음 졸이며 기도하던 소망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딸네 가족 네 식구 모두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으며, 한때 “엄마는 교회에 미쳤어”라고 말하며 신앙에서 멀어졌던 아들도 최근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절망 속에 있던 제게 소망을 주신 분, 슬픔 가운데 있던 제게 기쁨을 허락하신 분, 상처투성이였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분은 오직 주님이셨습니다. 쓰러져 있던 제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셨고, 메마른 광야 같은 제 삶의 길을 치료하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길지 않은 남은 삶이지만 늘 깨어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저의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어,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비추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인도해 주신 분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 간증]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고자 합니다_김연숙 자매

    [성도 간증]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고자 합니다_김연숙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교회는 그저 가면 먹을 것을 주고 선물을 주는 곳 정도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굳이 그런 곳을 다녀야 하나, 세상에는 할 것도 많고 다닐 곳도 많은데 왜 교회를 가야 하나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 저는 정말 막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흥을 좋아했고 노래방과 나이트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한 달이면 25일 정도 가위에 눌렸고 귀신을 체험한 적도 있었습니다. 매일 밤 무서움 속에서 잠들었고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불을 다 켜고 자야 했습니다.

    몸도 많이 아파 병원을 자주 다녔는데, 장치성 형제와 연애할 때 길에서 쓰러진 적도 있어서 간질병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와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가 아영이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참예수교회라는 곳을 다니고 있었고 토요일에 교회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화를 내며 엄마에게 왜 그런 교회를 다니냐고, 거기 이단 아니냐며 엄마도 그런 교회 가지 말라고 이상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저는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오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와 멀어져 살고 있던 중 엄마의 연락을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영은회라는 행사가 있는데 와보지 않겠느냐며 엄마가 데리러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싫다고 했고 아직도 그 교회를 다니냐며 오히려 엄마에게 또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계속 연락하시며 한 번만 나와 보라고, 집에서 아영이와 둘이 있는 것보다 교회에서 놀다가 가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렇게 심심하기도 하고 약속도 없어서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처음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입니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의 인사가 오히려 민망함과 반감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도 예배를 끝까지 드리지 않고 집에 간 적도 많았고, 다시 와도 늦게 오거나 교회 행사 때만 나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와의 연락으로만 교회에 나오다가 다른 분들과도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루디아·에스더 자매님들입니다.

    처음에는 연락만 받고 카톡이나 문자는 거의 답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연락이 귀찮았고 왜 자꾸 연락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면 괜히 미안하고 민망했고, 내가 왜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서프라이즈라며 언니들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얼굴만 보러 왔다며 오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청주에서 오창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쯤 당시 믿지 않았던 남편 장치성 형제가 교회에서 잘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분명 돈을 요구할 것이며, 공짜밥이나 공짜로 해주는 것은 나중에 다 갚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지금은 교회를 너무 잘 다니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담감이 커져갈 때쯤 연락을 안 받으면 이제 안 하겠지 생각하고 연락을 끊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연락을 해주시고 말씀 구절을 보내주시는 자매님들을 보며 처음에는 왜 이러지, 안 다닌다고 했는데 왜 자꾸 연락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또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계속 오는 연락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연락만 하며 지내던 중 교회에도 나와 줄 수 있겠느냐는 권면을 받았고, 주말에 할 것도 없으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 예배 도중 약속을 잡고 다른 곳으로 간 적도 많았고, 오전 예배가 거의 끝날 때쯤 온 적도 많았습니다. 정말 그냥 놀러 가보자는 마음이었고 점심이나 먹자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가 조금 편해질 무렵 교회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교회 오면 낯을 엄청 가리고 교회보다 키즈카페나 다른 곳이 좋다던 아영이가 교회에서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성경공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면을 당시 청주교회를 시무하시던 이요셉 목자님으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목자님께 저는 배우거나 공부하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고 엄마가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답을 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교회를 멀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밖에서 언니들만 만나며 지내다가 안식일에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 차가 없어서 못 온다고 핑계만 늘어갈 때쯤, 어느 목요일 이요셉 목자님께서 저희 집으로 직접 오셔서 성경공부를 해주시겠다고 꼭 시간을 내 달라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바쁘신 와중에도 와주신 것이었는데 그때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마냥 귀찮게만 느껴졌습니다. 생각할수록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번의 권면 끝에 성경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제 몸에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주를 미루게 되었고 다음 주도 이상하리만큼 몸이 아팠습니다.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마스크를 쓰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 안수기도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 몸을 위해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지만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신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경공부가 시작되었고 제 눈높이에 맞춰 알려주시는 내용들이 마냥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할렐루야를 외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가위에 자주 눌린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혹시 그런 꿈을 꾸거나 가위에 눌릴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야 물러가라”고 외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평소보다 더 심하게 가위에 눌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이 알려주신 대로 외치자 정말 가위가 풀리고 꿈에서 깰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가위에 눌리는 횟수도 줄어들었으며 무서움 속에서 잠드는 날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성경공부를 이어가며 안식일 출석도 다시 하게 되었고 세례를 권면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받을 마음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주중에 김경희 자매와 최영미 자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던 중 자매님들께서 다시 세례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저는 아직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최영미 자매님께서 시어머니께서 쓰러져 병원에 계신데 세례를 받지 못하고 누워 계신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꼭 세례를 받았으면 좋겠다며 펑펑 우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갑자기 마음이 너무 아파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세례 공부만 받아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시어머니가 쓰러진 순간에도 누군가 세례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세례공부를 시작하고 교회 출석도 열심히 하게 되면서 비로소 교회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오면 민망하고 낯설기만 했는데, 그때부터는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태도와 말씀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아영이를 챙겨주시는 성도들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대할 때 나라면 벌써 화를 냈을 텐데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며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영이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왜 교회만 오면 착해져?”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만 오면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았고 마냥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교회 생활과 세례공부를 이어가던 중 다시 세례를 권면받게 되었고 이번에는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반대하고 있었고 뱃속에는 둘째 아윤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뤄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요셉 목자님께서는 너무 겁먹지 말고 기도하면서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정도 기도한 후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의외로 자기에게까지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다며 허락해 주었습니다.

    세례식 날까지 순탄하면 좋았겠지만 끝난 줄 알았던 입덧이 다시 시작되었고 가위에도 자주 눌렸습니다. 세례식 전날에는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해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세례를 받고 나니 피곤함과 힘듦은 사라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날의 감동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며 남편도 전도했고 아는 분들에게도 조금씩 교회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제가 전도받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감사한 마음도 큽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속에서 계속 세상의 문화를 즐기며 살았다면 과연 지금 행복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느끼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라진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감사 위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이 교회 안에서 믿음을 지키며 성경 말씀을 믿고 따르며 그 말씀을 전하는 성도가 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저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저를 교회로 인도해 주신 형제자매님들께도 감사드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김연숙 자매

  • [성도 간증]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오다* 자매)

    [성도 간증]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오다*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길 원합니다.

     

    #경고하시는 하나님

    저는 고등학교 1학년 후반부터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인해 잘 먹지 못했고 이로 인해 1년 간 약  20kg이 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고, 이 상태는 고등학교 2학년 기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시에 사단이 넣은 악한 생각에 얽매여 스스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상황들로 경고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화요일 저녁 예배 시간에 받은 이사야 말씀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이사야 말씀에는 죄를 범하여 고통 받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그들이 돌아오길 원하시는 하나님이 자주 나오는데, 다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꼭 저를 책망하시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화요일 저녁에는 완악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저를 놓으실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지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일상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심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저는 건강할 때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밤마다 몸이 눌린 듯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이 계속 찾아온 것입니다. 이런 순간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이렇게 죽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말씀 듣고 순종하며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몸이 풀리면 짧게 기도하고 다시 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순간의 위기를 면하려는 기도에 지나지 않았고, 이런 순간이 지나면 다시 제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 갑자기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것을 느낀 일이 있었는데, 이 일 후에 비로소 현재 생활을 지속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목자님과의 면담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저의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였는지 목자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셔서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말씀으로 권면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말씀은 지금 제 생활의 기반이 되는 생각들이 사단이 준 것인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분별하라는 말씀(약3:15-18: 15)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 생각을 하나님께로 복종하여야 한다는 말씀(고후10:3-4: 3)입니다. 제 삶을 얽매고 있는 제 생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돌아보고, 하나님 아래 복종해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도록 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약3:15-18)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고후10:3-4)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시면서 계속 저의 마음을 돌리도록 일하셨고, 그 은혜로 제 완악한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2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에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먼저 건강을 회복하고 이후 공부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대학 입학이 걱정되면서 강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보니 부모님과 집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면 많은 부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불만이 거부감의 이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욕심대로 살고 싶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책망 받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 또한 이런 상태로 학교생활을 지속해선 안 된다고 판단하여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때 목자님께서 오후에 교회에서 같이 기도하고 안수기도를 받을 것을 제안하셨고, 엄마도 매일 잠언 말씀을 1장씩 배우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저는 매일 교회에 가서 말씀 영상 1개를 보고 기도했습니다.

    이후 저에게 가장 먼저 변화된 점은 불안함, 답답함, 죄책감과 우울함으로 혼란스러웠던 제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비록 제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으나 그 가운데 다시 웃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더 먹을 수 있었고 살이 붙으며 체중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병원 치료도 병행하면서 정상 체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환난을 통해 연단하시는 하나님 

    정상 체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저는 다시 시험에 들었습니다. 단기간에 몸무게가 많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몸은 계속 붓고 땀이 많이 나서 힘들었으며, 급작스레 살이 찐 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식욕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힘든 마음은 하나님 앞에 울면서 말하고 위로를 얻었으며, 그를 통해 환난 중에 도리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은혜는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느낀 것입니다. 몸이 계속 부어서 기도할 때 무릎을 꿇기 힘들어지자, 가정예배 기도 시간에 하나님께 제 어려움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싶은데 몸이 부어 다리가 아파서 기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주 수요일 목자님께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기도 의자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듣고 계시며 응답하심을 강하게 느꼈고 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하던 중이었음에도 여전히 그 결과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에서는 환난을 겪으면 성장한다고 했는데, 환난을 겪고도 변화가 없는 제 모습을 보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와 관련하여 언니와 대화를 한 후 기도를 했는데, 기도 중 갑자기 말씀(롬5:3-4: 3)이 떠올랐습니다.

    (롬5:3-4: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저는 환난과 연단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모든 환난은 저를 연단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씀에 제시된 순서와 달리 환난-연단-인내-소망의 과정이 아닌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이 의문과 걱정은 해결되었습니다. 연단은 환난 속에서 인내할 때, 즉 믿음을 갖고 기다릴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환난-인내-연단-소망이라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제가 믿음으로 인내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성장의 경험을 통해 지금은 부족한 모습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연단을 통해 저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드셔서 그 나라를 누리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비록 제 연약함으로 인한 환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저는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리고 저는 고3 3월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공부 시작이 늦었다는 불안함과 혼자 공부해야 한다는 막막함이 있었으나, 건강을 회복하는 가운데 경험했던 하나님 은혜를 붙잡으니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니 큰 은혜를 받고도 점점 감사를 잃고 살아가는 제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감사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 [성도간증] 말씀의 중요성을 깨달은 군생활(김도윤 형제)

    [성도간증] 말씀의 중요성을 깨달은 군생활(김도윤 형제)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건강하게 전역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과,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기다려주신 목자님 이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길고 긴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했습니다. 한편으론 후련하지만 전우들과 헤어져야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군생활을 돌아보니 힘들었던 시간도 모두 좋은 기억으로 남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군대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입대전, 두려움 대신 주신 평안

    입대 당시 훈련병 관련 사건 사고로 뉴스가 떠들썩했습니다. 나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요셉과 같은 성경 인물들을 말해주시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디서든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언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어느 순간 불안함 없이 평안한 마음으로 입대를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말씀들이 군생활 전체를 지탱해 준 큰 힘이었습니다.

    2. 훈련소와 철원 전방 부대에서 경험한 보호하심

    입대날부터 철원 신교대로 가는 날까지도 긴장은 되었지만 비교적 안정된 마음으로 갔고 훈련소에서 부모님이 떠나는 순간까지 걱정 끼치고 싶지않아 좋은 마음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생활관에 배치받아 조용히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얼음 상태였는데 그 어색함과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반대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중학교 때부터 지내온 동반입대 친구였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친구 한 명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었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적응할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많은 형들이 팔굽혀펴기와 달리기 정도 해두면 좋을 거라고 해서 평소 맨몸운동을 열심히 해놓아서 그런지, 훈련때 좋은 성적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훈련병에 관한 사고 뉴스 영향인지 얼차려도 없었고 수류탄도 연습용만 사용했습니다. 시설도 좋았고 조교와 간부님도 훈련병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처음엔 담당 조교 얼굴을 보고 무서울거 같았는데 오히려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고 칭찬도 많이 해주고 웃어주시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좋은 지도자를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3. 사람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신다

    저희 부대는 부조리가 거의 없었습니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인정받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훈련은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니 끝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대충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생각으로 임했고 간부들 눈에 열심히 하는 병사로 기억돼 포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선임이 된 저는 솔선수범하려 했고 말년엔 소대에서 가장 우수한 군인으로 불렸습니다. 그때마다 교회의 많은 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구나를 느꼈습니다. 휴가 때 교회에 꼭 출석하는 것으로 보답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고 감사하게 휴가도 많이 받아서 교회에 많이 갈 수 있었습니다.

    4.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다

    그런데 항상 잘한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원망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말년이 되자 자유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게을러지고 신앙도 느슨해졌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으니 하나님과도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한 후임이 있었는데 나는 저렇게 되지말아야지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하나님 앞에서 제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분대장으로 있을때 신병으로 들어온 또 다른 후임이 있었는데 간부는 나에게 그 후임이 행군 하다가 뒤처지면 네가 잘 챙겨줘야 한다고 말했고 저는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괜찮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후임이 뒤처지는 상황이 계속 일어났습니다. 처음엔 그럴 수 있지 하면서도 계속 뒤처지니 점점 답답하고 걱정까지 되었습니다. 힘든 훈련이 앞으로도 많은데 벌써부터 뒤처지면 어떡하나 하며 간부에게 얘기했더니 간부님은 “너도 처음엔 못하지 않았냐. 분대장은 그런 후임을 감당하는 자리다”고 하시는 말에 크게 깨달았습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신앙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나 자신을 보며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 나 자신의 신앙도 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5. 생활 속에서 깨달은 말씀의 중요성

    군교회에 가보니  찬양은 열심히 하지만 말씀이 시작되자  바로 핸드폰을 하며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들도 보았습니다. 저역시 말년이 되면서 전도의 열정이 식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군 생활 초중반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근무를 설 때나 생활관에서 잠깐이라도 성경 말씀 들려주며 전도를 하려고 노력했는데  세상에 물들어 가는 제 모습을 보며 말씀과 멀어져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말씀이 없으니 점점 하나님과 멀어졌고 결국 제 힘으로는 신앙을 지킬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6. 마무리 고백

    군생활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입니다. 사람들에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말씀이 없는 삶은 온전할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군대에서 경험한 감사한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기억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할렐루야.

  • [성도 간증]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_박은정 자매

    [성도 간증]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_박은정 자매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

    이 한 문장은 이 간증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입니다.

    이 글은 믿음 안에서의 결혼을 소망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흔들렸던 한 사람이, 오랜 시간 기도와 눈물로 하나님께 매달리며 결국 한 가정이 믿음 위에 세워지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변화는 빠르지 않았고, 고난은 반복되었지만 간증자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함께하고 계셨다고.

     

    사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었던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길을 여셨고, 결국 기도의 제목이었던 남편은 믿음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무너짐의 시간조차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음을 돌아보며, 이 간증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늦지 않으시며,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길 위에서

    끝까지 동행하시는 분이시라고.

     

    이 짧지만 깊은 고백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삶에도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바라며, 간증을 소개합니다.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할수 있게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증을 하기로 결정한 일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간증에 대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는 데 어느날 간증동영상을 보게 되고 그 간증을 보면서 아 그래 옛날에 우리 남편도 교회 가는것 보 다 세상에서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때가 있었지 라고 생각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정말 감사하다라고 생각한 날이 있었는데 그날 저녁에 경추집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번 영은회때 간증을 해보는 건 어떨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하든 제가 하든 상의해서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참 신기했습니다. 간증을 보게 하시고 그 간증을 통해 우리 남편이 우리 가정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될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건 아닐까? 란 생각이 들면서 집사님께 간증을 해보겠다고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간증을 준비하려 하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함께 나눠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남편을 전도하게 된 일은 예전에 청주교회 50주년 기념호에 있는데 또 얘기를 하는게 맞나? 고민도 되었지만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오랜시간이 흘러 다시 한번 나누고자 합니다.

    남편을 처음 알게 된 건 고3때입니다 당시 같은 학교였고 전혀 모르고 지내다가 하루는 전교생이 강당에서 조회를 하는데 그날 저와 친구 한명이 당번이어서 교실을 지키고 있었고 한참을 교실에 있다가 대체 언제 끝나나 싶어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강당에서 우르르 학생들이 나오고 있었고 그 수많은 사람중에 딱 한 사람 지금의 남편만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 사람이 누구인지 물어봤는데 자기랑 친하다며 이름과 몇 반인지 성격이 어떤지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듣기만 하고 시간이 흘렀는데 가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어떻게 그 사람만 보였을까? 그것도 무슨 아우라가 비췬것 처럼 그렇게 그 사람만 왜 보였을까? 참 신기한 일이다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게 아니었을까 란 생각도 해봅니다. 시간이 흘러 학교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반의 대표로 제가 나가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보고 지금의 남편이 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저에게 친구하고 싶다며 편지를 보내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과인 남편과 문과인 제가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저에게 사귀자고 했고 그 당시에 저는 신앙인이 누군가를 사귄다는 건 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하늘이 무너지는 큰 죄라고 생각을 해서 거절을 했는데 그 일이 상처가 되었는지 그날 이후로 저와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를 잃었단 생각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앙이 우선이었던 제게 그 일은 후회되지 않았고 대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구원하기를 바라신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게 하실 거죠? 강당에서 나올 때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몇 년이 지난 후 아주 우연히 길에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시 보게 될까?

    이 사람을 전도하라는 걸까? 란 생각이 들었고 다시 만나게 되면서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시켰습니다. 이방 결혼은 절대 안 된다, 믿음 안에서 결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부모님은 나중에 안 사실 이지만 처음 만나는 날 반대를 하려고 맘먹고 식당에서 우리를 기다렸는데 식당 문을 열고 둘이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너무 닮아서 왠지 반대를 하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지…

    저희 엄마는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나와야 하고 세례를 받아야 하고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그리고 저에게는 이방 결혼은 정말 믿음 지키기 힘들다는 얘기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이사람을 구원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방 결혼을 해도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처음 교회를 함께 갈 때 걱정도 많았습니다. 아직 결혼 전이어서 다른 성도님들이 어떻게 생각을 할까?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거부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걱정들이 몰려올 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교회에 가야 하는데 이런저런 걱정들 때문에 자꾸만 망설여지는데 어떡하죠?” 기도를 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란 생각이 더 우선이 되었고 남편에게도 교회에 대한 방언에 대한얘기를 미리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교회와 다르다. 우리 교회는 성경에 나온 그대로 행하는 교회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으면 방언을 한다. 방언 소리가 처음 듣는 사람은 놀랄 수도 있지만 이건 결코 이상한 게 아님을 얘기를 했고 또한 나는 교회가 제일 우선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얘기를 했습니다. 처음 교회 가게 된 남편은 많이 어색해하긴 했지만, 다행히 놀라거나 거부하지는 않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토요일이 되면 자꾸만 친구들 만나러 가려하고 여행을 가는 등 핑계를 대며 때론 저도 교회를 갈 수 없는 상황도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 제 머릿속에 ‘신앙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을 해선 안 된다는“ 어느 목자님의 설교 말씀이 기억이 났고 나는 안식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교회를 가야 한다. 라고 계속 얘기를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신랑은 세례를 받게 되었고 그 후에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해서는 서울로 가서 살게 되었는데 세례는 받았지만, 아직 신앙이 연약했고 세상의 즐거움을 더 좋아했던 신랑은 안식 일이 되면 교회를 가야 하는데 자꾸 핑계되며 안 가려 하고 세상 친구들 직장동료들과의 모임 등을 중시했고 이런 문제들로 자꾸만 다투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인맥도 중요하고 그러려면 술자리만큼 친해지기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신랑의 고정관념을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을까? 최대의 고민거리였습니다.

    믿음 안에 있는 형제들은 술을 마시지 않고도 오히려 더 사회에서 인정받는 다는 것을 어떡하면 알게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다 인도해주신 다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는 남편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닌데 천국이 분명히 있는데 그걸 아직 모르는 남편이 너무나 불쌍했습니다. 신랑과 신앙의 문제로 부딪힐 때마다 이방 결혼은 이래서 힘들구나 뼈저리게 느꼈고 나중에 우리 자녀는 꼭 믿음의 가정과 결혼시켜야지 란 생각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또한, 아직 신앙이 연약한 남편을 위해 때론 금식기도도 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교회 가는 것부터 가 먼저라는 생각에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이나 과자로 달래듯 저는 남편이 갖고 싶어하는 것을 안식일 예배 빠지지 않고 가면 사줄께~ 라고 달래서 교회를 가곤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교회 갔다 오는 길엔 꼭 이 말들을 했습니다. “ 당신이랑 이렇게 교회 갔다 오니 너무 좋고 행복하다고.“

    그리고 평소 집에서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장 17절 말씀에 의지하여 억지로라도 말씀을, 찬양을 듣게 하려고 청소할 때나 설거지할 때 말씀을 틀어놓거나 찬양을 틀어놓곤 했습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드는 것처럼 언젠가는 남편도 서서히 바뀔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의 바람은 내 믿음이 흔들릴 때 나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동역자가 남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였습니다. 내가 믿음 안에서 결혼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서울에 살때 신랑은 세상에 더 많이 속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혼자 울기도 많이 하고 그때 하나님만이 저의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정말 그때 하나님이 함께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우울증이 심하게 오지 않았을까? 란 생각도 해봅니다.

    시간은 흘러 둘째가 태어날 때쯤 제가 청주로 내려가자고 신랑을 졸랐습니다. 서울에서 저는 아는 사람도 없는데 남편은 매일 야근에 회식에 늦게 들어오고 혼자 만삭에 큰아이까지 보는게 너무 힘들었고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남편은 세상에 더 빠져버리고 신앙은 멀어지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신앙도 흔들릴 것 같았습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청주에 직장도 없이 무작정 내려와 시댁 어른들과 함께 살게 되었는데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을 지키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이때 또다시 왜 이방 결혼은 안 되는건지 왜 그렇게 믿음 안에서 결혼을 하라고 했는지 친정 부모님의 말이 많이 떠올라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건 내가 짊어져야 하는 내 십자가란 생각으로 정말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믿지 않는 가정이라 저녁때면 일 마치고 오신 시댁 어른들과 신랑은 술자리를 즐겼는데 그 모습을 어린 우리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게 저는 참으로 싫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수 있는건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 어른들과 술을 마시던 신랑이 잠깐 화장실에 갔는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있었고 그날 이후로 ”앞으로 너는 술 마시지 마라“ 라고 하셨고 다시는 술자리를 갖더라고 신랑에겐 술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역시 멋진 우리 하나님!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 아뢸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체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많은 고민이 되는 부분이었습니다. 결혼하고도 십일조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신랑은 탐탁지 않아 했습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굳이 십일조를 해야하느냐, 이런 부분으로 투닥거릴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 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일을 할 수 있었겠어? 당신이 벌 수 있는 것은 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서 벌 수 있는거야. 그 전부를 드리는 것도 아니고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이고 이렇게 감사하며 십 일조를 할 때 하나님께서 더 축복해주신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신랑은 탐탁치 않아 했지만, 청주에서 십일조의 기적을 여러 번 체험하면서 신랑의 마음은 바뀌게 됩니다. 청주로 이사 오고 신랑이 직장을 구하고 첫 월급은 수습이라서 너무나도 금액이 적었습니다. 너무 적은 금액을 십일조 내기 창피한 마음에 십일조보다 더 많은 금액을 냈는데 신기하게도 그 다음 달 십일조 낸 금액만큼 월급이 올랐습니다. 창피하게 생각해서 더 내긴 했지만 이렇게 축복해주신 게 너무 감사해서 두 번째 달은 감사한 마음에 십일조보다 더 냈는데 신기하게 더 낸 만큼의 월급이 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을 신랑에게 얘기하면서 신랑도 신기해했고 그 후로는 십일조 하는 것에 더 이상 반감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 말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을 삶에서 직접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청주로 이사하고 교회를 가는 데 그때 당시 교회는 용정동에 있었습니다. 신랑과 애들을 데리고 교회에 가는데 지금은 안 그래 보이지만 그때 당시 신랑은 낯을 많이 가렸습니다. 그래서 교회 가자마자 한 형제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우리 신랑이 낯을 많이 가리는데 옆에서 꼭 붙어서 좀 챙겨줄 수 있겠냐고, 적응할 수 있도록 좀 도와 달라고 부탁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그 형제님은 알겠다며 흔쾌히 대답을 하고 그때부터 밀착케어에 들어갑니다. 무엇을 하든 같이하자고 하고 어딜 가든 같이 가자고 하고 절대 혼자 있는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절친?이 되었지만, 그 당시 그렇게 매사에 챙긴다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면 힘든 일이겠지요.

    그리고 교회에서도 무슨 행사를 할때면 신랑이 좋아하는 요리경연대회라든가 탁구 등 모든 초점을 신랑에게 맞춰주는 배려와 성도님들의 사랑에 신랑도 서서히 세상 친구들 모임보다 교회 안에서의 활동들, 성도 간의 교제가 주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울에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청주로 내려와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신랑이 조금씩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모습이 보여서 좋았고 청주에 내려온 지 1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신랑도 성령을 받아서 더없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드디어 우리 가정이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된건 같아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간증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성장시키기 위해 참 많은 일들을 하셨구나 란 생각이 듭니다. 최근 들어 때때로 제가 믿음 없는 말을 할 때면 신랑은 오히려 저를 깨우쳐 주는 동역자가 되어있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내 믿음이 흔들릴 때 잡아줄 수 있는 동역자가 남편이길 바랐던 저의 바람을 하나님께선 기억하시고 이뤄주셨다는 게 참 신기하고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가게를 운영하다가 폐업하게 된 일, 우유 판촉 일을 하면서 비바람을 맞았던 일, 사기를 당해서 돈을 날렸던 일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가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려합니다.

    신랑과 함께 죽 가게를 했었는데 병원 검진 손님들을 상대로 운영을 하다 보니 안식일 오전 예배 참석을 할 수 없었고 안식일을 못 지키는 것에 계속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꿈에서 우리 가게 앞 도로에 큰 회오리바람이 불면서 모든 가게들이 무너지고 우리 가게도 무너지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너진 잔해 속에 작은 빛이 보이고 그 빛이 보호막처럼 신랑과 제가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있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 꿈이 대체 무슨 꿈일까? 꿈이 너무나도 생생해서 계속 그 꿈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이 꿈을 꾸고 얼마 되지 않아 저희 가게는 병원 검진 손님들이 전혀 오지 않았습니다. 알고보니 병원에서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 식당까지 운영을 하게 되고 더 이상 검진 손님을 우리 가게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몇 년을 함께 했었는데 아무런 말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어버리니 저희 가게는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큰 피해를 입게 되었고 가게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가게 권리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많은 피해를 입으며 정리를하게 되는데 그 당시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담임 목자님께 기도 부탁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전에 꾸었던 그 꿈이 다시 생각이 났습니다. 다 무너졌지만, 우리를 보호하던 그 빛이 생각 이 나면서 빛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실 거란 확신이 들면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함께 기도해주고 도움의 손길을 주는 믿음의 동역자들을 예비하신 하나님께 참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부부가 깨달은 것은 안식일을 우리가 온전히 지키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을 지켜야겠단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에 직장을 구할 땐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지가 제일 일 순위가 되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며 기도했더니 신기하게도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고난이 오거나 할때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다 알고 계시고 내가 생각지 못하는 방법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완벽한 때에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고난이 있어야 신앙이 성장을 하는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수많은 날들 속에 평안한 삶만 있었다면 과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할 수 있었을까? 란 생각이 듭니다. 고난을 통해 남편은 옛사람의 모습들을 버리고 세상의 가치관들을 버릴 수 있게 되고 오직 하나님만이 제일이란 생각을 갖게 했으므로 지금은 그 고난이 감사하단 생각이듭니다.

    내가 걸어온 길 길고도 짧은 길

    내 힘으로 걸어온 줄 알았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주가 동행함이라

    주님 나와 동행하심이라며

    때론 험한 길에서 폭풍우를 만나고

    때론 가시밭길에서 고난을 당하나

    주님 동행하시니 나는 두려움 없네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동행이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내 삶에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이 계셨기에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고 남편이 구원을 받았고 신앙이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자녀 또한 믿음 안에서 자라나는 온전한 믿음의 가정이 될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천국 가는 그날까지 온전한 신앙의 집을 잘 세우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드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작성 : 박은정 자매

  • [성도 간증] 장막을 떠나 예비하신 본향을 향하여(장정* 자매)

    [성도 간증] 장막을 떠나 예비하신 본향을 향하여(장정* 자매)

    성도님들과 간증을 나눌 수 있어 살아계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오늘은 80년 전 1946년 6월 4일(음력)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더욱 뜻깊고 저를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제가 태어난 함경북도 온성군은 백두산 물줄기가 두만강으로 흐르는 북한과 중국을 마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두만강을 경계로 함경북도와 중국이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제가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6·25전쟁이 일어났고, 저는 엄마 등에 업혀 중국 연변에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45년 정도를 살다가 1995년 7월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고 과연 내가 굶어 죽지 않고 80살까지 살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감격스럽고 오직 감사할 분입니다.

    강산이 8번 변한 80년 동안의 이 세상에서 삶의 길은 험하고 고난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자녀로 택하셔서 세례와 성령을 주셔서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으로 저를 이끌어 주셔서 여러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이렇게 말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모르고 내 마음대로 살 때는 살면서 겪는 여러 우여곡절과 고난이 내 운명이고 팔자라는 비신앙적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은 후 부터는 북한, 중국, 한국을 거쳐 오면서 하나님이 인도가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결코 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가고 싶어 가고, 오고 싶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향에 따라 사는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 행복한 가정과 교회를 주신 것이 무척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들어와서 참 하나님을 믿은 16년의 시간 동안 저를 성령으로 인도하시고, 그동안 많은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았다면 결코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 은혜 아래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셔서 무척 행복하고 이 또한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감사하게 느끼며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이 빚을 어떻게 갚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80이 되어 버렸기에 무언가 하고 싶어도 그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저 나쁜 짓을 안 하고 토요일마다 교회 와서 예배에 정성껏 참여하고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이 이 땅의 장막은 이제 곧 무너질 때가 되었고, 그래서 새로운 집인 하나님의 집에 갈 때가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는 노력을 하면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최근에는 건강에 대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예전보다 숨이 더 찼는데 나이 들어 세월이 가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제가 20년 동안 다닌 병원에 가서 사정을 얘기하니 그러면 검사를 해 보자고 하셨고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나니 심장에 흰색 선이 보인다고 말을 하며 잘 모르겠으니 큰 병원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순간 큰 긴장이 되면서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동안 건강에 큰 문제없이 살아오다가 갑자기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는다고 하면 딸이 얼마나 놀라겠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또 되었지만 어차피 혼자는 병원에 갈 수 없으니 고민 끝에 딸인 연*자매에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병원에 함께 가자며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식욕도 사라지고 그저 걱정만 앞섰습니다. 대학 병원에 진료를 보러 오라는 열흘의 시간 동안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들고 잠도 안 오고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 가지 검사를 제안함과 동시에 수술을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 큰 금액이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또 걱정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하니 80이 넘은 늙은 나이에 수술을 하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많은 수술비에 대한 염려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자녀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딸은 경제적인 것을 고려하지 말고 제일 마음이 편한 대로 결정하라고 하였습니다.

    딸은 수술에 대해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뒤로 몇 번 병원을 간 끝에 결국 의사선생님에게 수술을 안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의사는 수술을 하지 않을 거면 석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사를 하며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병원에 검사를 갈 때마다 특별한 징후가 없어서 석 달에 병원에 가던 것도 두 차례 정도 갔다가 더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크게 아픈 것 없이 멀쩡합니다. 그 사이에 저와 제 딸은 정말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지만은 때로는 기도 생활이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일을 할 때 그것이 곧 잘 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IMF를 만나서 어려움이 생겼는데 그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내지 않아도 나랑 한 식구들이 내면 된 거지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랬는데 딸이 십일조는 꼭 해야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좋은 것만 달라고 하지 말고 내가 가진 무엇이라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권면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내 잘못된 생각으로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않아서 때로는 시련과 고난을 주셔서 깨닫게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제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은혜를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고 있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특히 제 건강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제게 준 생명과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더 나은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이제 남은 삶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사랑을 굳건히 지키며, 장막이 무너지고 주님과 함께하는 새 집을 얻을 때까지 그 길을 따르겠습니다. 이 모든 은혜와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하나님께서 저를 끝까지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장정*자매 가족 사진(왼쪽에서 두 번째 장정*자매) 

  •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대학부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고 간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를 준비하면서 받은 은혜와 영은회를 참가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그냥 참석할 때와 달리 저에게 맡겨진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찬양 인도였습니다.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청주 교회에서도 찬양 인도를 할 때는 떨리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대전 교회에서 그리고 청주 교회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 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떨리게 되었습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게 되면 저의 옆에서 함께 찬양할 싱어들과 반주자 그리고 ppt를 넘겨줄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청주 교회 대학부들에게 이 역할을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주 교회 대학부들은 싫다는 말 없이 알겠다는 답변으로 즉각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순종하여 준 청주교회 대학부에게 고마웠습니다. 이제는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해야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를 주제로 성막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제와 관련된 멘트와 찬양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생각 중에 있었습니다. 말할 멘트와 찬양할 곡들이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대학부 영은회에서만 하는 사전 교재를 하며 세한 목자님께서 성막에 대한 설교를 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세한 목자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와 설교를 참고하며 사전교재를 하였고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묵상이 저의 멘트가 되었고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멘트와 곡을 정했다면 이제는 연습할 차례였습니다. 연습을 할 때에 대학부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찬양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한 번 더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찬양 인도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의 또래 친구들이 제가 찬양한다는 것을 듣고 제에게 와서 격려의 말과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들 중에 ‘그냥 하나님께 찬양하면 된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연약한 저는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만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고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들의 기도와 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긴장하기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고 맡았을 때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고 아주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맡겨진 일에 즉각 순종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대학부 영은회는 저의 두 번째 대학부 영은회였습니다. 첫 번째 대학부 영은회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이번 영은회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은회 주제는 거룩이었습니다. 개회 예배 때 거룩은 구별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세상을 쫓는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쫓고 추구해야 거룩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개회 예배를 들음 이번 영은회는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며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목자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변화된 예배에 대한 인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저의 예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인 저희는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인식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의식하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했기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번제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저의 일부만 드리는 것이 아닌 저의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중 하나는 정결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구별하기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며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듣는 것과 보는 것을 구별하여 거룩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심으로써 세상에서 구별하시고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지만 그것에 비해 저는 하나님께 너무 소홀하다고 느꼈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이 특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는 성막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막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성막 가까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하늘나라의 백성인 저희도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천안에 가게 되면서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살고 싶었기에 천안에서 살게 된 것에 아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막에 대해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서는 비슷한 나이에 형제들끼리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는 좋은 점이 있었고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쉽다고 여겨졌던 것이 이렇게 변화하였습니다. 천안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의를 듣고 조별 학습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별 학습 시간에는 서로의 묵상을 나눕니다. 묵상을 나눌 때 고민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말씀으로 답변해 주고 고민을 해결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교제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은회를 갔다 온 후 저녁 예배 설교 때 목자님께서는 영적 장애가 치유되기 위해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배우고 느낀고 다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실 저는 영은회를 갔다 온 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고 게을러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간증을 기회 삼아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다짐함으로써 더욱 성장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김진명 형제 

  • [성도간증] 대학부 영은회 다녀와서

    [성도간증] 대학부 영은회 다녀와서

    *영은회 소감발표 

    [김현영 자매님]

    할렐루야!  3박 4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화요일 예배도 드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 주제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였고 거룩이라는 키워드로 제사와 성막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강조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그동안의 예배 자세를 되돌아보았습니다.  평소 저는 예배와 하나님의 일이 세상 그 어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막상 예배 시간을 귀히 사용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 많고 실수 투성이인 저의 모습들이 더 드러나는것 같아서 회개의 기도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레위기를 그냥 읽기만 했을 때는 제사와 절기가 복잡하고 되게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이라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강의를 들으니까 절기와 제사들이 모두 하나님 자신을 높이기 위함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거였더라고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항상 계실 수 있도록,  삶 속에서 예배하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민준 형제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학부 영은회 소감 발표하겠습니다. 교재를 이렇게 들고 나왔는데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라는 주제로 영은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말씀이 레위기 20장 26절인데 레위기하면 항상 가지고 있던 인식은 성경 공부를 할 때마다 제일 기피하고 싶었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참 복잡하게 많은 구절들이 있고 한 법을 읽는 것 같은 어려움이 들어서 기피하게 됐던 것 같은데, 감사하게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었고, 느낀 것은  참 많지만  짧게  3가지로 간추려 보았습니다.

    첫 번째, 예배는 하나님이 사람한테 주신 너무나도 귀한 은혜다라는 것입니다. 레위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제사를 드렸잖아요. 만약 이 제사가 없었다면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어도 하나님을 만나러 갈 수 없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는지도 모른 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됐을 거다 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예배가 없었다면 과연 내가 지금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고 아찔하더라구요. 그래서 예배라는 방식을 주신것이 굉장히 감사하게 느껴졌고 예배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거룩이라는 속성을 받아서 비로소 거룩해질 수 있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또한 거룩함을 가지고 있어야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사람은 거룩이라는 걸 원래 가질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서 거룩함을 얻을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오늘 저녁예배 주제와 겹치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라는 것입니다. 영은회를 갔을 때 이제부터 다시 영성 관리 열심히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 읽기를 다시 시작을 했는데 그때 읽은 말씀이 시편 144편 이었거든요.  1절에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이런 구절이 있는데, 확실히 하나님께서 저의 피난처가 되어주신다라는 것을 공감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영적인 전쟁터잖아요. 많은 악들과 싸워야 되는데 계속 싸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지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고 두려움에 떨게 되는데 영은회를 통해 하나님과 계속 가까이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다시 회복시켜 주시고 치유시켜 주신다는 것을 느끼게 돼서 감사했습니다.

    세 번째, 우리 모두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다라는 한 가지의 목적만 생각하고 임해서 그런지, 어떤 날은 달갑지 않게 다가올 때도 있었는데, 예배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은혜라는 걸 깨닫게 되어 감사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대속하심으로써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 거잖아요. 또 말세에는 성전 밖마당에 있는 자들은 모두 세상에게 짓밟히게 된다라는 말씀도 기억나고,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주신 은혜라는것!  제사장이라는 이 직분을 성막과 제사를 완성을 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완수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정리해보면 영은회나 행사를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메시지는 네 주변에 하나님을 같이 섬기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라는 것,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을 여러 직간접적인 기적들을 통해서 보여주셨는데 이번 영은회때 주신 가르침은 사뭇 다르더라구요. 네가 앞으로 이런 일들을 해야 된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구원의 길로 점점 나아가야 된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 같아서 이제는 받기만 할 게 아니고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일을 해야 되는지를 확실하게 깨닫고 고민하고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하은 자매님]

    할렐루야! 사실 저는 올해 2월에 대학교를 졸업을 해서 대학부 영은회 가는 게 조금 부끄러웠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되나 그런 마음으로 갔는데 제가  학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저의 담당 아이들을 그날 일을 못하게 되면 다른 선생님이 대신 제 담당 아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써줘야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내가 영은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많았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원장님이 다른 선생님께 주시지 않고 바로 학원에 오지 않게 해서 제가 따로 신경을 써야 되지 않고 온전히 영은회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셔서 그것도 하나님께 참 감사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에서 우리 민준이랑 현영이가 강의 내용을 너무 잘 발표해 주어서 저는 좀 더 짧게 말씀드리자면 레위기는 항상 창세기나  민수기처럼 앞에 있기 때문에 성경통독을 매 해 새해 시작하면 쉽게 읽히는데 그만큼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양질의 강의를 통해서 이건 이런 뜻이다. 이건 이런 상징을 갖고 있다라는 걸 배우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육체적으론 피로할지라도 정신은 말똥말똥하게 열심히 노트를 받아 적었던 것 같아요. 옆에 저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도 너무 열심히 강의에 타자를 치고 펜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더 자극도 됐던 것 같고, 또 영적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잃지 않아야 된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사실 성인이 된 이후 제 신앙은 저의 몫인데 이전까지 부모님 땜에 손에 밀려 교회를 왔다지만은 이제는 제 몫으로 제가 스스로 내 신앙을 갈고 닦아서 꼭 그 천국에 가야 되는구나. 이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게 중요하구나를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성령이나 세례는 중요하게 많이 언급이 되는데 예배는 좀 소홀하게 제가 생각했던 부분도 있던 것 같아요. 특히 예배때 항상 제가 늦죠.  어떻게 보면 예배는 목자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설교를 하시니까…… 그런데 예배는 내가 드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정말 잘못 생각했었네 하면서 반성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하다”라는 말은 구별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제가 살면서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거룩하고 구별된 사람!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참예수교회 대학부로서 사람들에게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양원 형제님]

    최하은 자매님처럼 저도 나이 때문에 마지막 대학부 영은회가 될 것 같은데, 이번 주제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라는 주제를 보고 과연 내가 다른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 반성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번제는 가장 흠이 없고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저에게 가장 귀한 것! 시간, 공간 그리고 질적으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생활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구별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예배에 참석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