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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회개하라 (눅13:1~9)

    [복음메시지] 회개하라 (눅13:1~9)

    2023. 08. 05 안식일 오전 (전홍희 목자)

     

    제목 : 회개하라 눅13:1~9

     

    예수님께서는 망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지만 시대를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은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됩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이켜 바른 길을 향해야합니다.

    우리 성도들 또한 회개에 대하여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의 결국을 살펴봅시다.

    눅13:1~3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1. 불행한 일들은 회개를 촉구합니다.

    로마 왕의 대리인이었던 빌라도가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로마 황제를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일제강점기에 항일정신을 발휘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하고자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대에 대항하는데 있어,

    제대로된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 안에서의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에게 ‘회개하지 아니하면 이처럼 망하리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인 즉슨, 그리스도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변화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던 것입니다.

    시대를 잘 구분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들은 지혜로우며,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늦은비 성령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나의 죄를 고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늦은비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하여 그들도 그리스도를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도록 해야합니다.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나아가야겠습니다.

    이런 복된 소식을 전하라고 우리를 먼저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임을 믿어야겠습니다.

    눅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2. 세상의 재해는 회개를 촉구합니다.

    명이 다하기 전에 죽는 것, 불치의 병이나 과부가 되는 것,

    기타 세상의 불행을 당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사람에게 임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불행한 이들이 너희보다 죄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이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 역시 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불행한 일들이 언제든 우리에게도 임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불의한 사고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을 보고, 한 청년이 깨달아 울부짖으며 성령을 구했습니다.

    이러한 것처럼 각종 재난과 사고를 목격하며,

    나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예수님께 나아가고자 노력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회개 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눅13:6~9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3. 예수님은 지금도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선 과원지로 오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도록 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성한 나뭇잎만 있고, 과실이 없는 상태와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에 빠져 회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리스도 시대의,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알아보고 대접하여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무지함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도록 먼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이 함께한다는 것에 그쳐,

    세상 사람과 같이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곤 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감 없이,

    이스라엘백성과 같이 선민의식에 빠져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지금의 잘못된 나의 모습이 있다면,

    깨달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돼야겠습니다.

     

    말씀링크

  •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복음메시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전7:1~10)

    ♣ 2023. 7. 22.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절)”  

    성경은 이상한  말을 하지요?  이해가 잘 안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의 문맥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실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갑니다. 안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음은 죽음 이후를 생각하고 준비하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전도서 6:12의 답변으로, 죽음 이후를 고민하게 만듭니다.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 누가 알며 그 신후에 해 아래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 (전 6:12)

    신후의 일을 깨닫게 되면 죽는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훨씬 좋은 날임을 알게 됩니다.

    *신후(身後) : 죽음 이후.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은 하늘나라입니다. 또다른 시작입니다. 신후사를 알게 되면 태어난 날보다 죽는날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신후사(身後事) : 죽음 이후의 일.

    사람은 미래보다는 과거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신후사를 향해 갑니다. 죽음 이후의 일을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죽음 이후를 알면 출생한 날보다 하늘나라 가는 날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압니다. 1절은 이 땅에서 부자로 사는 것(보배로운 기름)보다 하늘나라의 생명책에 녹명된 아름다운 내 이름이 더 귀하다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7:1)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2절) 장례식장에 가면 인생의 실존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본질을 묵상하게 됩니다. 인간은 한줌의 재로 변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신후사를 고민하고, 생각하고 준비하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나도 결국 죽습니다. 산자는 이것에 유심해야 합니다.

    *유심(留心) : 마음에 담는것.

    성경은 죽음 자체를 예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무주의도 아닙니다. 죽음 이후의 일(신후사)을 정확히 알아서, 신후사가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자가 지혜롭게 살게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죽음에 대해 유심한다면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이 귀해지고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길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내 이름을 아름답게 남기는 날들로 채워지길 원합니다.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슬픔(3절)은 인생의 본질을 깨닫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죽음 이후의 천국을 생각한다면 슬픔속에서도 마음이 좋게 됩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전 7:3)

    성도의 죽음은 하늘나라에 보내드리는 천국 환송식입니다. 육신의 이별이 슬프지만,  알고 보면 천국 보내드리는 환송예배입니다. 나중에 그 자리에 나도 누워있게 됩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마음을 둡니다.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잔치하는 집에 있고, 그들의 목표도 잘먹고 잘사는 것에 있습니다.(4절)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전 7:4)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가시나무 타는 소리 같습니다.(6절) 박자를 잘 맞게 탑니다. 전세계 문화의 코드는 웃음입니다. 재미주의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희화되고 신후사의 일에 대해 유심하기를 싫어하는 성향으로 변해갑니다. 웃음이 나쁜 것은 아니나 신후사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왕년은 지나간 것입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10절) 앞으로의 일이 훨신 더 좋은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믿는 성도들에게는 신후사의 일이 훨씬 더 인생의 하이라이트입니다.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는  위에 있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링크 바로가기)

  • [복음메세지] 나는 죽으나

    [복음메세지] 나는 죽으나

    2023.4.22.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나는 죽으나] 창 50:24-26

     

    https://youtube.com/live/LIbgx5QpR5M?feature=share

     

    종교인은 사후세계도 준비하지만, 막상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서 하늘에 있는 금고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창 5) 하나님께서 데려가 하늘로 승천한 에녹을 제외하곤 사람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죽음은 비통하고 애통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기쁜 일이기도 하다.

     

    (창 5:1-2) 이 구절은 의미 없이 쓴 구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심을 한 번 더 작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담이 자신의 형상을 닮은 아들을 낳음)

    =>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간다는 생명의 족보인 것이다.

     

    *이 생명의 족보에서의 죽음: 모든 사명을 마치고, 하나님의 품에 돌아간 것.

    하지만, 창6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이 육체가 되어버려 낳는 걸로 하나님의 형상을 계승할 수 없게 됐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

    “한 사람”을 선택해 하나님의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게 하심.

    그 첫 번째 사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래서, 아브라함이 후처를 두고 많은 자식을 낳아도 ‘아브라함의 자식’은 이삭 1명

     

    (창 25:8) 열조: 백성, 국가. /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이어받은 조상에게로 돌아감.

    (창 35:9) 이삭도 그 열조에게로 돌아감.

    => 하나님의 사명을 모두 완수하고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감.

     

    (창 50:25)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

    요셉의 이런 죽음에 대한 평온함과 소망은, 야곱에게서 전승된 것. (창 40:21)

    (수 23:14) “온 세상이 가는 길”: ‘나는 죽으나’의 일꾼 ver.

    (왕상 2:1-2) “온 세상이 가는 길” -> 하나님이 모든 일을 완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

     

    여호수아: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정복해 이스라엘 백성이 살 수 있도록 한 사람.

    다윗: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완성한 사람. (나일강 ~ 유프라테스강)

     

    이 여호수아와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그 뜻을 완수한 사람들.

  • [복음 메시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마21:18-22)

    [복음 메시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마21:18-22)

    [말씀 제목]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년 6월 3일 (토) 안식일 오전예배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마21:18-19)”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책망하신 것은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책망하시며 교훈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열매는 하나님 백성으로 나타나는 삶의 행실, 곧 순종입니다. ‘의의 나무’인 하나님 백성이 의를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바라십니다(사61:3). 그러나 무화과나무가 잎사귀 밖에 없었던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을 통해 나타나는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사1:2~15).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2)”

    두 번째, 열매가 없으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하심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포도원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세심히 가꾸어 좋은 열매 맺기를 바라였으나 들포도를 맺힘을 보시고 한탄하심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의 열매 없음에 진노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열매에 대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고 하시며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마7:17)”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없는 자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마21:43).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사5:7)”

    세 번째, 예수님은 열매 맺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훼파되고 멸망당한 것은 이러한 경고 후 40년 뒤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서 3년 동안 열매가 없어 베어 버릴 처지에 놓인 무화과나무를 과원지기는 금년에 한 번 더 기회를 달라 말합니다(눅13:8-9). 그러나 그 기회가 무한정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신다 말씀하시며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 하심은 심판이 임박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아 하나님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뜻밖의 재앙으로 망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5)”

    그러나 하나님은 끊임없이 열매 맺도록 도우십니다. 말씀을 통해, 상황을 통해, 사람을 통해 깨닫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이 좋은 밭에 심겨졌을 때 얻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밭처럼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열매를 얻게 됩니다. 또한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자는 결국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로서 시험이 와도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평소에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시험과 환난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는 환난이 오면 받는 해가 크게 됩니다.

    열매라는 것은 신앙이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으로 시간이 갈수록 분명하고 많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대충해서는 안 됩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는 말씀처럼 열매를 맺는 과정은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야 가능합니다. 우리가 열매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첫째는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을 때, 둘째는 마음을 다하지 않을 때입니다. 신앙의 모습 속에는 반드시 힘이 드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의심하지 않는 믿음과 인내로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어 가는 안양교회 되기를 소망합니다.

    유튜브 설교영상 (클릭!)

     

    글| 백현 자매

  • [복음메세지]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33:29)

    [복음메세지]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33:29)

    [말씀제목] 나는 행복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명기 33장 29절)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3년 5월 6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 33:29)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가장 축복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집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는 날입니다.

    세상에 머물러 있는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귀한 날이 바로 세례를 받는 날입니다.

    우리는 행복자입니다. 왜 행복자일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자라고 말해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나 같이 구원을 얻은 사람이 없다는 것

    • 애굽은 나일강을 끼고 있는 나라여서 풍족한 양식이 나오는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애굽의 왕의 말에 복종하며 살아갔습니다. (육적–>풍족 / 영적–>황폐)

     

    • 하나님께서 애굽에 열가지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죽음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됐습니다.

     

     

         2. 하나님께서 나를 돕는 방패시오 나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 세례를 받음으로 얻어지는 가장 큰 축복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후견인이 되어 도와주십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너는 두려워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사 43:1-2)

     

    • 세례를 받고 나선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임할 수 있습니다.

     

     

          3. 인생의 끝은 결국 우리가 승리합니다.

    •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반드시 심판하실 때가 옵니다. 그 때 똑같은 육신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다른 결말을 맞이합니다.

    ex) <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 16:22-23)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니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7-8)

     

    우리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이 모든 은혜가 우리에게 주워졌습니다.

    하루하루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 [복음메시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하라

    [복음메시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하라

    ♣ 2023. 5. 6.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   3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1~3)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눈물을 안흘리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서 철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  부모가 되어보고 자녀를 키우다 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눈물을 기억하게 된다. 성도가 철들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신앙의 경지가 상당히 많이 올라간 것이다. 인간의 눈물은 말할수 없는 특별한 감정이 들어있다. 눈물은 98%가 물이고 2%는 나트륨, 칼륨, 단백질, 전해질…등등 여러 혼합물이다.  부모님의 눈물은 화학적으로 설명할수 없는 자식을 향한  깊은 애정이 들어있는 것이다. 인간은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어려움,  삶의 곡절,  깊은 후회,  회개,  용서,  진실의 감정…인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눈물이다. 눈동자로 말하는 고결한 언어이다.

    오늘 에베소서 본문은 출애굽기20장 12절의 신약판이다. 십계명의 제5계명과 같다. 하나님께서 제5계명을 주신 것은 부모님들의 고결한  눈물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계명중 가장 첫번째 계명으로 주신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한다. 어릴때는 한없이 안기고 싶은 품이요, 고향이다. 그런데 커서는 슬슬 도망다닌다.  벗어나고 싶은 질곡이 부모의 품일때가 있다. 그러다가 철 들면 다시 부모의 품이 그리워진다. 어버이날이 성경적이지 않으면서 성경적이기도 한 이유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람 관계의 계명! 첫번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기 때문이다. 온 마음을 다해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눈물을 이해하는 자녀가 되기 바란다.

    신약판에는 조건이 하나 더 들어갔다.  주안에서 순종하라(1절).  “주안에서”의 순종은 믿음 밖에서 순종할수는 없다는 말이다. 어머니는 불교인데 4월 초파일에 절에 가자고 하신다면 순종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부모를 단절하고 떠나면 안된다. 신앙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나머지는 부모님과의 단절이 아닌  공경하고 이해시키고 설득해 나가야 한다. 믿음을 지키면서 공경하라. 성경은 이것이 옳다고 말한다(1절). 옳다는 말은 굉장히 무게있는 말이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이유도, 조건도 없는 당연한 것이다. 부모라는 자체만으로 공경받을 이유이다. 이것이 인간의 옳고 당연하다는 것이다. 철들기 바란다. 어버이날은 매일 이어야한다.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2절).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성도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약속있는 첫계명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20:12에는 부모라고 되어 있으나 원어는 아버지와 어머니 따로 되어 있다. 공경하라의 원어는 카바드이다. 

    ※카바드 :  무겁게 여기다, 비중있게 여기다. 

    카바드라는 말은 하나님에게 쓰인다. “하나님을 카바드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다른 대상에는 안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땅의 사람에게 유일하게 사용하셨는데 부모에게 사용하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카바드하라. 이 땅에 있는 성도라면 하나님을 카바드하듯 너를 낳아준 부모를 영화롭게 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계명에 넣어주셨다. 부모에 대해서 엄중하게 생각하는가? 귀찮게 생각하는가? 네 부모를 영화롭고, 항상  엄중하게 생각하라. 찾아뵙고 부모님이 필요한 부분을 들어주라. 자녀들이 열심히 살아가는것!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신앙생활 잘하는 것! 부모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네 부모를 카바드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큰 의도가 들어있는 계명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담긴 계명이다. 2절의 축복은 하늘나라의 상급이고  3절은 이땅에서의 축복이다.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3절)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이다. 자녀는 부모 공경하기를 잊어버리고 자기 자녀를 사랑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관계 첫번째 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넣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네 부모를 잘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네 부모를 공경하기 바란다. 철이 들면 부모의 품이 그리운 것처럼 우리 모두는 부모의 품을 그리워하고 공경하기 바란다. 하나님을 카바드하듯 부모님을 카바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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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행복한 가정의 비결(엡5:28~6:4)

    [말씀제목] 행복한 가정의 비결(엡5:28~6:4)

    [설교자] 홍영석 목자님

    [설교일] 2023년 5월 5일(토) 오전예배

     

    톨스토이는 사람이 가정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어디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가정을 대체할 곳이 어디 있는가?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세운 신 천국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천국 같은 가정을 가꾸는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는가 되돌아보자.

    우리의 수고는 가정에 필요한 것을 위해 수고해야 한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기관은 교회와 가정 두 개 뿐이다.

    바울사도는 에베소교회에게 교회와 가정의 비밀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비밀인지 말해준다.

    신앙 생활이 구원과 관련 있다면 가정 생활은 행복과 관련 있다.

    구원의 행복을 바로 교회와 가정에 숨겨두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교회가 세워졌듯이 아담을 잠재우시고 갈비뼈를 취하여 가정을 만드셨다.

    교회와 가정의 공통점은 희생과 헌신,죽음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가정의 행복을 위해 수고와 헌신이 있을 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리스도의 가정은 이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경청하는 가정임을 잊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가정이 되길 바란다.

     

    1.부부의 관계 (엡6:24-25)

    [엡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 가정의 행복이다. 그 비결은 바로 긍휼의 눈이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의 눈으로 바라봐 주신 것처럼 우리도 남편을, 아내를 긍휼의 눈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창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수치가 있더라도 사랑으로 허물을 감싸주고 긍휼의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이 부부 사이의 첫걸음이다.

    남편의 수치나 아내의 부족함을 드러내지 말아라. 오직 서로 경외하고 사랑하라 .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헌신과 수고가 필요한 법이다.

    긍휼의 마음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실천해야 될 말 3가지가 있다.

    “고미사“

    ‘고’: 고마워요. ‘미’:미안해요. ‘사’:사랑해요.

    2.부모와 자녀의 관계(엡6:1~4)

    1)자녀는 부모를 공경,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한다.

    철이 드는 순간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가 우리를 사랑한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사랑 받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사랑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어느 자녀든지 부모를 공경. 존중.사랑하시길 축원 드린다.

    2)[엡 6: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소망을 품고, 희망을 품어 대해야 한다.

    눈물의 기도로 키운 자녀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3.하나님과의 관계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교회가 거룩하길 원하는 것 같이 가정이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가정에 부모를 세운 것은 신앙을 잘 지켜서 다음 세대에 전승 하라는 것이 다.

    우리는 신앙의 가치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세속적인 교육이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죽이고 있다.

    세속과 교회 사이에 있는 가정에서 아이들을 붙들고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충만”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자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오직  성령충만 할 때이다.

    늘 기도로 성령충만하기를 간구하는 삶이 되길 바란다.

    성령이 충만해졌을때, 긍휼의 눈이 회복되어 부부-부모가 행복한 가정이 완성된다.

     

  • 두 종류의 시험 (약 1:12-15)

    두 종류의 시험 (약 1:12-15)

    https://youtube.com/QDNL5Lb67FI?feature=share

    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3. 3. 18.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이승재 장로

    제목 : 두 종류의 시험

    주제성구 : 야고보서 1장 12~15절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2023. 2. 18일(토) 안식일오전(오희도 목자)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11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찌니라(신7:1~11)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명칭은 성경에 224회 나오는데 신명기에만 207회 사용되었다.(한글성경 기준) 보통 하나님을 말할 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은 신명기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여 7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을 했을까? 모세 자신의 하나님은 아닌가?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한 3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땅에 아무도 못 들어가고, 모세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출애굽 제2세대들에게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섬기고 따르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임을 강조한 것이다. 두 번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받는 백성으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받는 결정적인 요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절에  “들이시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들여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모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모세의 마음은 가나안에 너무 가고 싶으나 자신은 못 들어가지만 2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복된 백성으로 살으라는 간절한 마음과, 자신은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있다. 후배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으로, 복 받는 백성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있다.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 내실 때에”(1절) 일곱족속을 누가 쫓아내시는가? 바로 하나님께서 쫓아내신다.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쫓아지는 것이 아니다. “붙여 치게”(2절)하셨다. 정복 전쟁이라는 의미를 여호수아서에 가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여호수아서에 가면 중요한 원어 두 가지가 “나탄과 헤렘” 이다. 붙여가 나탄이다. 치다가 헤렘이다. 예를 들면 다윗이 전쟁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제가 저들을 치러 나갈까요?”  하나님은 나가라는 말 앞에 “그들을 네 손에 붙이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도록 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붙이신 전쟁은 이미 승리가 결정되었다. 나탄이 나오면 이미 결정난 전쟁이다. 그 승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것이 바로 헤렘이다. 일곱족속을 네 손에 붙여주실때에 너희들은 헤렘해야 한다. 치는 것은 너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탄해주신 것을 너는 헤렘해야 한다.

    왜 헤렘(진멸)해야 하나?

     1. 죄의 관영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창15:13~16)과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하면 헤렘하시려고 계획하셨다. 일곱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심판의 도구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신다. 반면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는 바벨론이나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2. 하나님의 언약

    (창17:7~8) 언약이 성취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다.

     3. 신앙이란 우리가 세상에 있던 것을 내쫓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4. 영적 전쟁은 사탄과의 전쟁이다. 진멸하는 것이다. 죄악(사단)과의 전쟁 원칙은 헤렘이다.

    가나안에 가서 백성들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들과 언약하지 말라. (2절) 언약을 해버리면 진멸하지 못한다. 이 전쟁은 이미 하나님이 나탄해 주셨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이 말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을 오해하기 쉽다. 하나님은 절대 이유 없이 죽이시지 않으신다. 여리고성을 진멸할 때 다 진멸하셨을까? 라합은 살려주셨다. 비록 그가 여리고성의 여자이지만 진짜 하나님임을 고백했다. 신뢰하고 믿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를 살려 주신다.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침해하는 개념의 단어가 아니다. 철저히 죄악, 음란, 우상숭배, 거역하는 자들을 사탄과의 전쟁에서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3절)이다.

    만일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➀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고, ➁그로 여호와를 떠나게 하고, ➂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다.(4절) 십계명의 첫계명부터 어기게 되는 것이 이방결혼이다. 우상숭배를 가장 쉽게 당하는 것도 이방결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진멸한다. 말씀을 어기면 너희가 헤렘이 되는데 이것이 진노, 저주의 헤렘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알고 보면 단순하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수많은 우상들을 좋아하지 말고 부수고 깨뜨리고 찍고 불사르라는 것이다.(5절) 쉽지 않다. 그러나 단순하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수많은 우상들을 영적인 전쟁에서 부수는 것으로 시작하고 부수는 것으로 끝나야 되고 부수는 중에 있어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라.

    그래서 모세는 “너는!! “이라고 외친다.(6절) 이스라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너“라고 외친다. 모세의 피끓는 외침이다. 너희들의 정체성은 우상과 멀고 세상과 떨어져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언한다. 이 외침은 모세가 가슴에서 피를 끓이며 그들이 정말로 깨닫게 하기 위해 해준 말씀이다.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 “네가 섬겨야 할 하나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 한사람 한사람이 성실하게 순종하고 따라야 될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이땅에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라고 예수님이 외치신다. 왜 셰마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 해야 되느냐, 너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민이기 때문이다.

    성민이 되는 중요한 두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선택하셔야 한다.(6절)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는 ➀적어서 택하셨다.(7절) 적은 무리를 택하셨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고전1:27) ➁사랑하시기에 선택하셨다.(8절) 선택이 없는 구원은 없다. ➂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다.(8절) 성민의 두 번째 조건은 속량이다. 피흘림이 없으면 속량이 없다. 누군가 우리의 죄값을 치러 주셔야 속량이 된다.(8절)

    9절은 너희들이 알아야 할 네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째,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이 말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속량해 주신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신실은 믿음이라는 단어이다.(히.에무나, 헬.피스티스)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을 반드시 이행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9절) 셋째,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헤렘된다.(10절) 넷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한다. 순종(믿음)을 말한다.(11절)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지켜 행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성민의 자격을 굳건히 가질수 있다.

    따라서 성민이 되는 조건은 선택과 속량, 이 두가지인데 한가지 더해서 성민의 세 번째 조건은 순종이라고 말하고 싶다.(헬.피스티스:믿음)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히6:4~6)

    모세의 피끓는 외침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복된 영적인 성민들이 되자. 이 땅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이미 구원의 언약을 붙잡고 살아가는 귀한 백성임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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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가나안 여인의 간구(마15:21-28)

    [복음 메시지] 가나안 여인의 간구(마15:21-28)

    [말씀 제목] 가나안 여인의 간구 (마15:21-28)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년 2월 4일(토) 안식일 예배

    이방의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은혜를 받습니다.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흉악한 귀신들려 고통 받는 딸을 고침 받기 위해 나아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고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됩니다. 바울은 살 소망이 끊기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음은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을 의뢰함이라 말씀하십니다(고후1:8-9).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날 것이고(잠8:17)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렘33:3). 그러나 가나안 여인이 주님께 나아와 소리 질러 간구했을 때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여인의 간청에도, 제자들의 언급에도 꿈쩍도 않으시고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간절히 구함에도 응답하지 않으심은 우리의 죄 때문일 수 있습니다(사59:1-2). 또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려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케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 말씀하십니다(애3:33). 그럼에도 어려운 시험을 주심은 이를 통해 결국 복을 주려 하시기 때문입니다(신8:16). 가나안 여인은 바로 예수님의 믿음의 시험을 잘 인내하여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8:16)”

    그럼, 하나님께서 믿음을 시험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문제는 낙심하게 되면 믿음을 잃게 됩니다. 믿음의 기도일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히11:1) 또한 역사하실 수 있기에(약5:15) 우리는 기도하되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외면에 가나안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구함으로 은혜 받게 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4)”

    둘째로 끝까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고 은혜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계속 거절을 당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낮춥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겸손의 말로 인하여 은혜를 받습니다(막7:29). 주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막7:28-29)”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를 의도적으로 낮추시어 순종을 시험하십니다. 낮추심으로 우리를 시험하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 명령을 지키는지 여부를 보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복을 주시기 위함이십니다(신8:16). 믿음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끝까지 순종함으로 복을 받았던 것처럼 주님은 끝까지 겸손하게 순종한 가나안 여자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며 그녀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이 시험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시험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겸손하게 순종한다면 분명 주님으로부터 약속된 복과 은혜를 받을 줄 믿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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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백현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