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예수교회 대방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2. 10. 29.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한결같은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22절
(히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일시 : 2022. 10. 29.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한결같은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22절
(히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
![[복음메세지]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https://contents.tjc.or.kr/wp-content/uploads/2022/10/화면-캡처-2023-01-07-125807.png)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마가복음 6장 45~56절 말씀
본문 말씀도 친숙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잠케 하셨던 사건과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던 사건 모두 유명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들을 때 교훈도 함께 들어봤을 것이다.
인생이 마치 항해와 같은데 인생길을 걷다 보면 바람을 만나고 풍랑도 만난다.
이 바람과 풍랑은 고난을 말한다.
고난을 만날 때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고,
예수님을 믿으며 이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적용을 삼는다.
이 본문 말씀을 볼 때는 이 부분만 보는 것이 아닌 이 본문의 앞 뒤 전체적인 배경 흐름을 봐야 한다.
막 6:5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풍랑 (고난)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얘기를 하신다.
맥락적으로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다.
막 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해서 보내신다.
왜 재촉하셨을까?
요 6:14-15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
우리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줄 지도자로 예수님을 삼겠다는 것이다.
임금=정치적 지도자
(오병이어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을 들으면 좋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 인기가 더 많아진다.
먹을 것이 부족하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라 하신다.
예수님이 축사하셔서 떡 5개와 물고기를 나눠 먹는다.
성찬의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함
예수님의 인기가 더 많아지는 중에 제자들을 빨리 보내신다.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고난 가운데로 보내신 것 같다.
왜 제자들에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셨을까?
예수님은 어떤 생각이셨을까?
우리가 부족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생각해보면
막 6:46~47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저물매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았고,
그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황급히 보내고
그 무리를 다시 돌려보냈다.
그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신다.
막 1: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을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4: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공생애 기간에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긴밀한 소통인 기도의 시간을 가지셨다.
마가복음 1장의 말씀과 본문의 말씀에서 언제 기도하러 가셨는지 살펴보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피로에 지쳤을 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다.
십자가를 지기 전에도 기도하신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
혼자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하고 문제에 대해 소통할 때 해결해 나갈 때 믿음이 커지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무슨 생각으로 기도하셨을까?
내적으로 가지셨던 고민
천국복음을 깨닫도록 영적으로 깨닫도록
외부적인 어려움
(전통적 유대인) 바라새인 서기관 대제사장
막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
헤롯 자기의 자리가 위태로워서 예수님을 적대한다.
막3: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니라
막12:13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 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들을 경계하라고 하신다.
막8:15
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외부적인 어려움
민족주의자
로마로부터 압제를 당하는 상황이 속이 상했고
예수님께서 하려는 일들에 민족주의자들이 어려움을 준다.
이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 제자들이 어떻게 될까?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가?
자신이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선택하고 결정하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주변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수천 명이 예수님을 외치면
제자들은 엄청 뿌듯할 것이다.
수천 명 앞에서 박수갈채를 받아본 적 있습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이 낙선되더라도 정치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마약을 하면서까지 무리하면서 음악을 하며 무대를 서려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밑에서 사람들이 이름을 외쳐주고 열광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을 못 끊는다.
많은 사람 앞에 지지를 받는 예수님을 보며 하나님 나라의 일은 깨닫지 못한 채 그들도 예수님을 육신적인 정치적 지도자로 따라가려 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재촉하여 보내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곧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지도자가 되겠구나! 기대했을 것이다.
예수님을 찾는 이가 더 많아졌고
막 6: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단 말을 듣는 대로 병든자를 침상채로 메고 나아오니
온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인다.
막6:56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병 치료가 알려져서 옷 가에 손을대고 성함을 얻는다.
막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막 6: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예수님이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은 밤새 노를 젓는 고생을 한다.
요 6:18~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고난의 자리로 보내셨을까?
제자들이 사람의 환호에 도취되지 않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에 고난을 허락하신다.
우리가 죄를 지어 그 죄를 깨닫게 하는 고난을 주시는 반면
한 성도를 완전하게 하기 위한 연단의 시험이 있다.
막 6:52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생명의 떡을 전하는 사명이 있는 제자들이 그 영광을 누리려고만 했기에 얻은 고난이다.
성경은 제자들의 무지함을 지속적으로 알려준다.
막 7: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막 8:21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풍랑과 같은 고난을 주신다.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이러한 고난을 당할 때 믿음 신뢰가 있어야 한다.
사 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예수님은 이 상황에도 십자가의 길을 걸으셔야 했고, 제자들의 무지함을 사랑으로 포용하고 가르치셔야 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제자들의 생각과 예수님의 생각도 달랐다.
내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훨씬 더 크고 완전하다.
하나님의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
현재 내가 당하는 고난의 무게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무겁고 귀하다.
인간은 지금 현재 살아가고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신다.
그러니 내 삶의 계획을 내가 세우지 말고 내 인생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고난을 달게 받으시면서 살아가는 거제교회 성도님 되시기를 축언합니다.

일시 : 2022. 10. 22.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축복하고 경배하는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21절
(히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복음메시지] 축복을이어가는 믿음 (히11:20)](https://contents.tjc.or.kr/wp-content/uploads/2022/10/KakaoTalk_20221014_111411787.jpg)
[말씀 제목]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히 11:20)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10월 8일(토) 안식일 예배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이삭의 일생은 평범한 삶이었다. 특징적인 믿음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삭에 대해서는 이 짧은 구절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삭은 믿음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삭의 일생 가운데 주목하는 것은 무엇인가? 축복을 후손들에게 이어주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우리가 이삭을 통해서 배워야 할 믿음이 이것이다. 후손을 믿음으로 축복했던 믿음이다. 이삭의 특별한 믿음 세 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믿음이다.
이삭이 자녀들을 축복한 것이 믿음이었는데, 믿음이 있는 사람이 자녀에게 축복할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이런 축복을 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는지에 따라서도 축복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삭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기에 자녀들을 믿음으로 축복할 수 있었는가? 이삭은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기 존재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자녀에게 축복할 수 없다. 이삭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는가?
“(창 22: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창 22: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창 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계시다. 언제 아브라함을 축복하셨는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렸을 때이다. 이삭은 자신의 죽음 직전에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말씀을 체험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가? 하나님의 축복의 말이 이삭의 마음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되고, 그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말씀이다. 즉, ‘씨’에 관한 말씀이다. 이는 이삭을 말한다. 이삭은 이 말씀을 알아들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그 말씀이 이삭에게 매우 강하게 와닿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게 된 것이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복을 계승하였다.
“(창 26: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에게 복 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이 자녀에게 축복한 것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 27:29)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아버지 이삭이 아들 야곱을 축복한 내용이 무엇인가? 그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신 말씀이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말씀과 동일한 것이다. 이것은 이삭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명확히 인식했기 때문에 한 말이었다. 즉,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축복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복의 근원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복받았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출 3:11)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 4: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자기 존재에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누구관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린도 교회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에도 바울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복음을 위해 자신있게 살았던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삭이 야곱을 축복한 것도 자신이 복의 근원임을 알았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이삭과 같이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할 수 있겠는가? 자녀들에게 축복하며 눈을 감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믿음으로 자녀에게 축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후손을 축복하는 일은 특정한 사람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우리는 복의 근원이고, 우리가 이것을 믿으며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삭이 이렇게 자녀를 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고싶은가? 자녀를 믿음으로 축복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을 자녀에게 전달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권세이다. 하나님의 자녀됨을 권세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 권세로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삭에게는 이러한 믿음이 있었다.
둘째로, 이삭의 믿음은 하나님의 뜻 아래 자신의 뜻을 두는 순종의 믿음이었다.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이삭은 자기 뜻을 하나님 뜻 밑으로 두었다. 이삭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결단의 믿음이 있었다.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누구나 에서가 장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에서가 먼저 축복받아야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야곱과 에서’로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삭이 리브가를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셨다. 리브가 뱃속의 아이가 싸울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 25: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지만 이삭은 둘째인 야곱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로 생각하지 않았다. 에서를 더 사랑했다.
“(창 25:28) 이삭은 에서의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그래서 이삭은 에서를 특별히 사랑하여 복주기 원했다. 자기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에서를 사랑하고 축복하기 원했던 것이다. 그래서 에서를 축복하려하는 것을 리브가가 알고 야곱을 변장시켜 대신 축복받도록 종용했다. 이삭은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축복했다. 진짜 에서가 돌아오자 이삭은 이렇게 말했다.
“(창 27: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런즉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너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것을 직역하면 큰 두려움으로 떨었다는 뜻이다. 이 ‘떤다’는 것은 ‘전율했다’는 의미이다. 이삭이 전율하며 떤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큰 뜻을 저버릴 뻔 했다는 것에 대한 전율이다. 아마도 이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을 수도 있다. 에서에게 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하나님 뜻에 순종한 것이다.
살면서 내 뜻과 하나님 뜻이 충돌할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는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다. 만약 하나님 뜻과 내 뜻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 앞에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 결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내 인생에서 이어주신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지경을 넓혀주시리라는 믿음이었다. 이삭의 축복에는 이러한 믿음이 담겨있다.
“(히 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이삭이 바라보던 일은 어떤 것인가? 장차 오는 일이다. 아브라함을 통해 받은 땅의 축복이 있었고, 자손에 대한 축복이 있었다. 그러나 이 축복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자신이 그 축복을 이어받았지만 이 축복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잘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자녀를 축복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자녀를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삭이 믿음의 사람인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한다. 첫 임지에서 교회 성장에 대한 꿈이 있었으나, 현실 속에서 만나는 문제는 쉽지 않다. 그러면 첫 소망을 다시 가질 수 있는가?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가? 우리 현실에도 불구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꿈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꿈은 현실 속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이기 때문이다.
“(학 2:3)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이것’은 현실이다. 현실이 우리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가?
“(학 2: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보잘것없는 현실 앞에 있을지라도 이 꿈을 굳건히 붙잡아야 한다.
“(학 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학 2: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 2:7)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 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꿈을 지금도 계속 가져야 한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하나님께서 보신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계 7: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계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이것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피로 사신 참 교회를 통해 이루실 약속이다.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 약속에 근거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꿈을 꾸어야 한다. 이 소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소망의 근거는 내게 있는 것도, 현실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다. 이삭은 그 믿음이 있었다. 이삭에게 있는 최고의 믿음은 장차 올 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삭은 자기 신분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 뜻 앞에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았으며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 다시 확인하고, 내 뜻을 돌이켜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한다. 축복의 통로로 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앞에 이삭과 같은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보고 선포하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릍 통해 그 약속을 이루어가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귀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 믿음 속에 그 축복을 담아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다.

일시 : 2022. 10. 08.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축복을 이어가는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20절
(히11: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일시 : 2022. 10. 01.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하나님이 자랑하시는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8~19절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9)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히11:10)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히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히11: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히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히11:14)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히11:15)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히11:16)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히11:18)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11: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일시 : 2022. 09. 24.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노아, 하나님을 경외한 사명자
주제성구 : 히브리서11장 7절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일시 : 2022. 09. 17.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이승재 장로
제목 : 너희 구원을 이루라
주제성구 : 빌립보서 2장 12절~14절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2: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일시 : 2022. 09. 10.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초막절, 여호와를 위하여 지키라
주제성구 : 레위기 23장 33절~36절
(레23: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레23:34)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십오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동안 지킬 것이라
(레23:35) 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레23:36) 칠 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일시 : 2022. 08. 27.
장소 : 서울특별시 동작구 알마타길 29 참예수교회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349-3
설교자 : 김용준 목자
제목 : 하늘의 상 받는 믿음
주제성구 : 히브리서 1장 1절~4절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