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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지혜자의 경제생활(잠6:1–11)

    [말씀제목] 지혜자의 경제생활(잠6: 1–11)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5. 7.12 안식일 오전 예배

    1. 보증과 담보를 피하라 (1–5)

    지혜자는 남의 재산에 욕심을 품지 않고, 자기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보증을 서주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성경은 보증을 요구하는 그 자체가 욕심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많은 사람 앞에서 손바닥을 마주치는 행동(하이파이브)이 보증을 서겠다는 표시였습니다. 보증을 요구하는 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능력을 빌리고, 보증해 주는 사람은 체면이나 허세를 위해 무리하게 책임을 떠안는 경우도 많죠. 이로 인해 경제생활이 흔들리고 관계도 파괴됩니다.

    오늘날 신용카드, 카드깡 같은 보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가정의 사례처럼, 홈쇼핑으로 물건을 쌓아놓고 카드값이 남편의 월급을 초과해 이혼 위기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은 명확히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네 이웃의 손에서 스스로 구원하라.” (잠 6:3)

    지혜자는 보증을 서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자족하며 살고 자기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경제의 지혜입니다.

    2.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히 일하라 (6–11)

    지혜자의 경제생활 두 번째 핵심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개미를 보라고 합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지만 스스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여름 동안 양식을 예비합니다. 개미굴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뜨거운 쇳물을 개미굴에 부어 굳힌 뒤 꺼내어 엄청나게 정교한 구조를 확인했습니다. 양식 저장소, 번식 공간, 거주 공간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개미에게서 두 가지를 배우라고 합니다. ➀예비함, 즉 미리 준비하는 삶을 지혜라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자녀들에게 먼저 가르치는 것도 돈 쓰는 것이 아니라 모으는 것을 가르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필요할 때 쓰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자입니다.

    개미는 ➁스스로 부지런합니다. 게으름은 가난을 부릅니다. 게으른 자는 자기 마음대로 자고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이 부지런한 생활 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양 사회가 성공한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들의 부지런함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내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 6:10~11)

    가난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강하게 우리 삶을 덮칩니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움직일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살아야 합니다. 지혜자의 삶은 부지런함의 삶입니다.

    삶의 간증: 카드 없이 산 30년

    저도 대학교때 신용카드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데리고 나가면 제가 늘 카드를 긁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가 카드값을 보더니 저에게 조용히 “카드 좀 잠깐 주세요.” 하더니 잠시 뒤 가위로 싹둑싹둑  카드 잘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후로 카드 없이 살았습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점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없는 대로, 형편껏 사는 삶이 훨씬 자유롭고 평안했습니다.

    이제는 허락받아 카드를 다시 갖게 되었지만, 예전처럼 함부로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교훈을 넘어서,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경제 원칙을 가르칩니다.

    1. 보증을 피하고,

    2. 부지런히 일하며, 미리 준비하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지혜자의 경제생활입니다.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거룩하게 지키되, 평일에는 부지런하게 일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된 경제생활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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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욥이여,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욥37:1~14)

    [말씀제목] 욥이여,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욥37:1~14)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5월 24일 안식일 오전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욥기 37장 1절에서 14절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고난의 의미와 그 속에서 우리가 궁구해야 할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이 욥기의 주제를 ‘고난’이라 여기지만, 욥기의 진정한 주제는 고난 자체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가’ 이것이 욥기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욥기 1장을 보면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을 보호해주시고, 부유하게 해주시기 때문에 욥이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모든 것을 거두어가시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날 것이라 말합니다.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어떤 이는 가족 때문에, 어떤 이는 습관처럼, 또 어떤 이는 삶의 평안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각자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닥쳤을 때,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는가, 욥기서는 그 신앙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고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자신의 잘못으로 받는 고난 :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로 겪는 어려움입니다.
    • 애매한 고난 : 욥의 경우처럼, 자신의 잘못 없음에도 당하는 고난입니다.
    • 자발적 고난 :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고난입니다.

    욥기는 두 번째, ‘애매한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몰랐지만,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욥이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바로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30년동안 목회하면서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고난 없는 가정은 지구상에 단 한 가정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에게만 고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난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고난도 있고, 물질적인 고난도 있고, 영적이고 신앙적인 고난도 있습니다. 그 고난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는 동안 찾아온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 이 세 친구는 서로 주장과 변론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네 번째 인물 엘리후가 등장하여 앞선 친구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엘리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들으라 들으라’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때, 인생의 문제 앞에서 인간생각과 세상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민감한 영성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며, 의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의인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쇠사슬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힐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허물과 교만을 알게 하시고,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고난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과 회복의 과정임을 보여줍니다.(요36:5~11)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14절 앞에서 엘리후는 눈, 비, 광풍, 얼음 등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기묘한 일들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난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징벌을 위해서, 토지(축복)를 위해서,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 비를 내리시듯,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목적과 뜻을 두고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 땅에 알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중인 다른 성도를 쉽게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고난을 통해서 정금같이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만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영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도님들이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아, 내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지, 왜 하나님을 믿는지 돌아보며,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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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복음메시지]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

    성경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바로 ‘무리’와 ‘제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던 많은 사람들, 즉 ‘무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고 계속해서 그분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에 자신을 찾는다고 말씀하셨지요 (요 6:26). 그분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지만, 결국 그 무리 중 많은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에 반해 ‘제자’는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먼저 중심에 두고 나의 삶을 그분께 맞춰가는 것이죠. 때로는 불편함이 따를 수도 있지만, 그 믿음 안에 진정한 제자의 길이 있습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다”는 생각보다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기 때문에 천국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는 것이 진짜 믿음 아닐까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길에는 몇 가지 중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1. 먼저 배워야 합니다.

    디모데는 많은 증인들과 함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 증인들은 디모데가 배운 말씀이 살아 있고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존재였습니다.

    2. 배움은 머리에만 머물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70명의 제자를 전도하러 보내셨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귀신들이 항복하는 것을 경험하며 기뻐 돌아왔습니다 (눅 10:17).
    배운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짜 살아있는 배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죠.

    3. 충성된 사람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할 때, 그것을 귀히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눅 16:10).
    작은 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4. 생명력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세우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8~9절 말씀처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강해지고, 그 생명이 흘러넘쳐 또 다른 제자를 세우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가요?
    그저 무리로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제자로 살아갈 것인지.
    오늘 하루, 그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 속에 예수님의 생명과 말씀이 깊이 뿌리내리기를 기도합니다.

  • [복음메세지]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정(창2:7-8)

    [말씀제목]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정 

    [본문말씀]창2:7-8

    [설교자] 홍영석 목자님

    [설교일] 2025. 05. 10. 토. 오전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세기 2장 7~8절)

    세계적으로 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방법들이 개발 되고 시행 되지만 결론적으로 자연 파괴의 진행 속도를 늦출 뿐 결국은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파괴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것은 사회 생태계의 파괴입니다. 사회에 가장 기초가 되는 구성은 가정이고 국가는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펼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만 역부족 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는 무너지고 국가는 무너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이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시작을 가정으로 시작하셨고 신약에서는 교회를 통해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두 가지 기관이 바로 가정과 교회 인 것입니다.그만큼 가정과 교회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른신앙입니다. 세상으로 한번 나간 자녀는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 안에서 성장 할 수 있도록 잘 인도해야 합니다. 자식으로써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이 천국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켜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두셨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가 느껴지시나요?  가정과 교회에서 내 모습이 다르다면 나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1.가정이 파괴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2장 15절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가정을 파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의 역할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써 세상의 죄들이 가정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가정에 죄가 들어오면 가정은 병들어 가고 지옥이 됩니다. 창세기 2장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을 마귀가 공격 하였듯이 여전히 우리 가정을 공격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나타나는 현상 만을 가지고 고민할게 아니라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이유가 바로 가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가정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2. 가정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창세기 3장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마귀의 특징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왜곡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돈을 많이 벌고, 유산을 물려주고, 자녀가 돈은 많이 버는 직업을 갖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 하게 합니다. 이는 잘못된 죄의 결과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정이 행복하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부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가 좋은 관계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8절~21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나님을 경외 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순종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할 수 없으며 세속적 가치관, 물질과 풍요로는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의 행복의 열쇠는 부부에게 있습니다.

    3. 이 가정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집은 언제든지 나의 돈, 나의 명의로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의 주인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 예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5~6절)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는 우상이 없습니다. 야곱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또한 우리 가정에 숨겨져 있는 우상을 제거하여 내 집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가 되게 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길 마다하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진정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길 바랍니다.

     

  • [복음 메시지]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복음 메시지]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제목: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고전 2:10-16)

    일시: 2025년 4월 25일 금요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성령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지혜가 비밀하다 말하며, 사람의 지혜나 이성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깊고 감추어진 것으로 묘사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절 말씀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여기서 ‘보이셨다.’는 것은 드러내셨다, 곧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나타내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본래 우리에게 감추어진 채로 존재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것을 우리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는 분이시기에, 성령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에베소서 3장에서도 동일하게 증거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말하며, 에베소서 3장 5절에서는 그 비밀이 “다른 세대에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나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 곧 이방인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며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이 복음의 신비는,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26절도 이 내용을 더욱 분명히 해 줍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골1:26)

    하나님께서는 이 비밀을 만세 전부터 감추어두셨으나, 이제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이 복음을 전하며, 자신이 깨달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다른 성도들도 함께 깨달을 수 있다고 증거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아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았다고도 말하고 있는데 사람의 일반적인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즉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이성이나 연구, 철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성령의 절대적인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말씀과 교회를 통해 깨닫게 하신다

    또한 에베소서 3장 10절 말씀에 따르면, ‘이 교회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시편 107편 20절에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시고 위경에서 건지셨도다”라고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셔서 치유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시편 73편에서 시편 기자는 악인이 형통하는 모습을 보고 믿음을 잃을 뻔한 사실을 ‘자신이 거의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실족하려고 했지만 실족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의 결국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실족할 뻔했던 상황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때로는 세상의 불의를 보며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공의와 뜻을 올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뜻을 알지 못하면 실족할 수 있으며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도 예수님의 죽음의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이해하지 못해 넘어질 뻔했습니다. 어려운 상황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면 성령을 통해 주시는 말씀, 그리고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고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교회로 나가야 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더 열심히 기도할 때 우리는 넘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없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은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정,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은 오직 하나님의 영, 곧 성령으로만 알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마치 사람의 속 사정을 그 사람의 영 외에는 알 수 없듯이, 하나님의 뜻도 성령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정, 즉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이 담긴 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뜻을 성경에 기록하셨지만, 이 말씀의 깊은 의미와 구원에 이르는 하나님의 참된 의도는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문자적 표현 즉 글의 표면적인 의미는 알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과 구원에 관한 하나님은 알 수가 없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있고 많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중에는 성경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우리 참예수교회의 진리의 말씀과 구원에 관한 복음을 전하면 그런게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 또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상식과 지혜가 아닌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그 말씀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령은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베드로후서 2장 21절에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에 의해서 기록됐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독을 받아서 기록된 책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성령의 성령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성령으로만 깨달을 수 있다

    고린도전서 2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닫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많은 것들이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주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영적인 눈을 밝혀주셔야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구원의 영광을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엡 1:17~18)

    이미 성령을 받은 에베소 교인들을 위해 바울은 더 깊은 지혜와 계시의 영, 그리고 마음의 눈을 밝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성령을 받았어도 성령이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지 않으면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깨닫지 못할 수 있고, 반대로 영적인 눈이 밝아져서 신앙에 대한 소중함과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가르침으로만 말씀을 바로 분별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2장 13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에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성령이 인도를 해 주셔야만 비로소 우리가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자로 말씀을 가르치거나 전도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 반드시 성령이 역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이 그 안에 역사하셔서 말씀을 전할 때도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말씀을 증거할 수 있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성도들도 성령의 감동을 통해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으로 기록되었기에 성령의 가르침으로만 올바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6절은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른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사람의 생각이나 기준으로 해석하려는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우리 참예수교회는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해석하기 때문에 오류가 없는데 일반 교회 같은 경우는 이렇게 하지 않다 보니까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후서 3장 10절 말씀에 주의 날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한 주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주의 날’ 하면 일반교회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게 주일입니다. 계시록 1장 10절에도 ‘주의 날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계시록이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말씀인 만큼 이것을 근거로 마지막 때에도 ‘주의 날’, 즉 주일을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주의 날’은 하나님의 심판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지로 말씀을 푼 결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잘못 이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자 對 신령한 자

    고린도전서 2장 14절은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미련하게 여기며 깨닫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고린도전서 1장 18절 말씀에 십자가에 도를 미련하다고 여기는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 혹은 성령 없이 세상의 가치관으로만 살아가는 사람인 이방인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지만 육에 속한 이방인처럼 살아가게 되면 점점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신령한 자는 육에 속한 자와 반대가 되어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모든 것을 영적으로 분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지,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고전 2:15)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삶이 됩니다. 결국, 이는 곧 성령 충만한 삶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

    고린도전서 2장 16절 마지막 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수도와 같은 삶,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 말씀에서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며,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사모하며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우리는 점점 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설교링크: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

    글: 최재웅 형제

  • [복음메시지] 시내산 이후, 첫 원망(민11:1~9)

    [복음메시지] 시내산 이후, 첫 원망(민11:1~9)

    [말씀제목] 시내산 이후, 첫 원망(민11:1~9)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2월 8일 안식일 오전 예배

    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출애굽 후에 시내산 아래에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나 광야 길을 걸은 지 3일 만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11장 1절에서는 그들이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를 들으시고 진노하셨다고 나옵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후, 성막을 짓고 제사와 절기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출발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불평과 불만이 터져나왔고, 하나님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을 떠나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몇 번이나 원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 출애굽기 15장: 홍해를 건넌 후 3일 동안 마실 물을 찾지 못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 물에 나무를 던지게 하여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22~27절).
    • 출애굽기 16장: 배고픔을 호소하며 애굽에서 먹던 음식(고기, 빵 등)을 그리워하며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1~36절).
    • 출애굽기 17장: 마실 물이 없어 또다시 불평하며 다툼을 벌이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바위를 치게하여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1~7절).

    이처럼 시내산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해도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을 떠난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할 때마다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어느 때에는 원망을 참아주시고, 어느 때에는 진노하셨을까요? 그 시기는 시내산 도착 전과 후로 나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씀으로 훈련받기 전이므로(오늘날의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 아직 믿음이 자라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믿음의 훈련을 받은 후(초신자 외의 신도)에도 원망을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에서 영적인 훈련을 받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굽(세상)을 그리워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고 원망했기 때문에 진노하시고 불로 진 끝을 사르셨습니다. 이는 큰 심판이 아닌 경고로 시내산을 나와서 처음 한 원망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깨우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중보기도를 하자 불이 꺼졌고, 그곳을 ‘다베라’(불에 탄 곳)라 불렀습니다.

    4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그런데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나온 이방인들이 만나에 대해 불평을 하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자손도 울며 또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4절을 보면 이 원망은 탐욕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10번째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라고 했습니다(출20:17). 탐낸다는 것은 마음에서 시작하고 이 탐심이 과해지기 전에 내 안에서 탐심이 힘을 못 쓰도록 해야합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성경에서는 탐심이 아니라 자족하기를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출애굽 시키고, 홍해를 건너게 하고, 바로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히려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렇게 탐욕은 받은 은혜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감사함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고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셨습니다.

    광야에 만나밖에 없다는 시각이 아니라, 원래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지낼 수 있도록 만나를 내려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신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면 탐욕이 되고 원망이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보배로운 믿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풍성한 마음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5년 한 해에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자족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복음의 메시지]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복음의 메시지]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때가 다가옴에 따라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한 길을 가실 때 예수님을 따르는 세 사람이 등장 합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이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께 어디를 가시든지 자신도 따라가겠다고 말합니다.

    길 가실 때에 혹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눅 9;57~58]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면서 늘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고, 기적으로 치유해 주시니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이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 말씀을 듣고,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며,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꼭 따라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공격했고,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공격하는 자들 때문에 힘들고,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 때문에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걸림돌이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주 힘든 길을 걸어가셨기에,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눅 9:59]

    이 사람은 예수님께 먼저 나아가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먼저 말씀하실 때까지 숨어 있었습니다. 마침 그때,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받아,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야겠다’라고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를 기다려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가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버려야 할 습관 중 하나가 바로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결단하지 못하고 계속 미루는 것입니다. 머뭇거리는 사람은 늘 머뭇거립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본질은 세상과 역행하는 것이며, 우리의 육신적 욕망과 본성에 반하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장벽을 넘어서면 또 다른 장벽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십시오. 머뭇거림은 습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믿음으로 이를 극복하기로 다짐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9장 6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머뭇거리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눅 9:60]

    여기서 ‘죽은 자들’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 즉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세속적인 일과 육신적인 삶을 좇다 보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머뭇거리지 말고 결단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생을 붙잡아야 합니다. 또한 장례를 치르는 것과 같은 세속적인 일에 지체하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야합니다. 우리가 생명을 얻는 일은 미룰 수 없는 가장 긴급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복음메시지] 은혜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 1:26-38)

    [복음메시지] 은혜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 1:26-38)

     

    은혜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눅 1:26-38)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1]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_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단순히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한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일을 받드는 것은 의무감에서만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헌신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만이 자연스럽게 주님의 일을 향한 열정을 품게 됩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귀한 도구로 쓰임 받았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신다는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모든 삶을 다하여 주의 일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영원한 상급과 영광이 면류관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주의 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충성된 자로 여기시고 사용하기로 결정하시고 그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는 증거입니다.

     

     본문 말씀의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선택받았으며, 성령으로 임하실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그 사명을 충성스럽게 완수할 자격이 있다고 인정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귀한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늘 함께하시며, 평생 동안 마음에 감동을 주십니다. 주의 일을 받드는 것은 단순한 노력이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힘을 주시고 격려하며 위로하시며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존재로서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오신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소식이었지만, 동시에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는 자들은 참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은 사람이며 이것이 은혜입니다. 영화로운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쓰시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충성된 자로 여기시고 그들과 동행하십니다.

     

    [2] 쓰임받는 일꾼_ 주의 영광이 예비되어 있는 자

    * 좋은 소식을 전한 천사 가브리엘

     천사들은 하나님과 가까운 위치에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영화로운 일꾼들입니다. 주님의 일꾼으로 서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는 일입니다. 주님의 일꾼들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마리아

     마리아는 주어진 사명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녀의 이러한 순종과 헌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자격이었습니다. 희생과 각오로 주의 일을 받들었던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는 그분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 성령 충만 받은 엘리사벳

     마리아가 태아를 임신한 후 엘리사벳에게 방문했을 때,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마리아의 인사를 듣자 엘리사벳은 성령 충만을 받았고, 그녀의 태중에 있던 세례 요한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엘리사벳에서 아기에게로 옮겨 가며, 엘리사벳은 곧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졌습니다. 인지할 능력이 없는 태아조차 성령의 임재 앞에서 반응한 것이었습니다. 성령 충만은 주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게 하며, 삶을 기쁨과 은혜로 깨닫게 하십니다.

     

    [2] (1) 성령 충만

    * 격려와 믿음의 확신

     아이와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눈이 밝아져 예수님과 마리아를 즉시 알아보았습니다. 성령 충만은 믿음을 굳게 하며,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멈추지 말고 계속 믿음을 가지고 감당해 가시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세우고 사명을 귀히 여기며 함께 완수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엘리사벳에게 임했던 성령 충만의 역사입니다.

    * 영적인 깊은 교제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그 후 석 달간 함께 지냈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마치며

     가브리엘과 같이 외부인들이 우리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사역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명령 앞에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성령 충만을 통한 주의 협력자가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배 영상] https://www.youtube.com/live/bOEBg9OC-5U?si=02HtHA3x9GESAA7n

  • [복음메시지]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행1:12~26)

    [복음메시지]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행1:12~26)

    제목 :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본문 : 행1:12~26

    성경의 각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일꾼들을 사용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홍수의 시대엔 노아, 정복의 시대엔 여호수아 등.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요?

    지금은 늦은비 성령의 시대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꾼들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며 약속의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이때 기도하기 위해 모인 숫자는 120명 이었습니다. 120명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께서 3년 넘게 복음을 전하신 결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예루살렘의 평상시 인구는 약 5만명 정도 됐다고 합니다.
    또한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모였을 땐 약 30만명 정도 됐다고 하죠.
    120명이라는 숫자는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작 할 때의 물리적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이때 제자들은 10일동안 오롯이 기도에 힘썼고, 그 결과 약속의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기도에 힘써,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성결함을 지키며 준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설교의 한 부분은 가룟 유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제자였지만,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은 것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을 때, 비웃음 거리가 될 수도 있는 부끄러운 이야기 입니다.
    가룟 유다는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요12:6) 하나님의 돈 까지도 탐하는 가룟유다의 평소 행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세상의 가치를 더 사랑하셨던 가룟유다는 결국 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써 성결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를 쫓아 가는 삶을 계속해서 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의 잘못된 과거가 떠오를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의 죄를 자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딤후2:20~22)

    3. 일꾼을 세워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쫓아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치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변하는 존재입니다. 충성된 제자여도 어느순간 세상을 향해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분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변하여도,
    그 직분은 계속해서 누군가가 감당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성경에 따라 맛디아를 선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사바와 맛디아를 후보자로 올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택함을 구합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가 세워지게 됐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때를 준비하며 이렇게 일꾼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준비된 사람을 통해 이뤄집니다.

    <결론>
    예수님의 제자들은 3가지의 모습으로 성령의 시대를 준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성도들은 성령을 간구해야 겠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성령 충만함을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결을 지키며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도록 준비해야합니다.

     

    말씀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FMXqZF6dcg

  • [복음 메시지] 경배와 성화 (요 4:23~24, 롬 12:1)

    [복음 메시지] 경배와 성화 (요 4:23~24, 롬 12:1)

     

    [말씀제목] 경배(敬拜)와 성화(聖化)

    [본문말씀] 요 4:23~24, 롬 12:1

    [설교자] 장병용 목자님

    [설교일]  2024/11/9 (토)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3~24)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위 두 구절은 신약성경시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예루살렘 물질성전시대와는 달리 영적성전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 영적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는 어떠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약시대에는 진리와 성령의 충만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禮拜)를 드려야 합니다. 영적 지성소에서 예배를 통하여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경배(敬拜)를,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역사로 성화(聖化)가 이루어져 갑니다.

    1. 경배의 대상
    하나님은 영이시고 거룩한 분으로(레19:2), 절대적인 거룩함 앞에서 우리가 영적 방법으로 경배하여야 합니다.

    2. 경배의 조건
    1) 경건(敬虔)과 경외(敬畏)
    경건은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함 앞에 나아가기 전에 삼가 자신을 돌아보고 세속적인 것이 있나 없나를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경외는 절대적 거룩함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것으로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세속화되지 않은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 속에서 드리는 경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진실한 마음(Fact)과 온전한 마음(Full) (삼상 12:24, 수 24:14, 대하 19:9, 히10:22)
    나에게 있는 사실 그대로의 마음(진실한 마음)과 나의 심령에 존재하는 모든 것(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가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 앞에서 회개하여 깨끗함을 회복한 후에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의미입니다.

    3) 진리 충만과 성령 충만
    진리와 성령 충만은 나에게 거룩함을 덧입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하나님의 법을 나의 마음판에 새기는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렘 31:33~34, 겔 36:24~28).

    ⓵ 오순절 보편적 성령시대(요7:37~39, 행 1:4, 행2:1~4)에 있어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자들은 진리와 성령 안에서 해야 합니다.
    세상의 누룩이 없는 순수한 진리 가운데 충만하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입니다.

    ⓶ 진리(말씀)의 충만
    무교절 1주일 동안 누룩없는 떡을 먹으라 함은 오늘날 평소에 항상 순수한 하나님 말씀(레마)을 상고해서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성소에 진설병이 있고 지성소에 만나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안식일에 영적인 성소에 들어올 때 우리 각자는 영적인 제사장이니, 회개기도로 거룩한 예복을 입고 누룩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여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⓷ 성령의 충만
    성령 안에서 기도함으로(엡6:18, 유1:20) 자기 덕을 세우는 것은 원문상 영적 집을 짓는다는 뜻입니다(고전 14:4~5).
    항상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덧입고 성령의 인도로 영적 성전(지성소)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내 모습 그대로를 자백(회개기도)하고 성령 충만 속에 잠기면 하나님께서는 흠이 많은 내 모습에 거룩한 옷을 회복해 주시고 거룩한 영적 지성소로 인도하십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처럼 하나님 말씀인 레마는 하나님의 역사로 로고스가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우리 육신 안에 말씀이 충만하게 됩니다.
    성소 안의 촛대(등대)처럼 나의 신앙 삶이 변화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완벽하게 닮아가는 성화에 다가가고 영적 지성소에서 보다 깊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3. 속죄(贖罪)와 성화(聖化)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를 짓지 않을까?’ 하고 죄를 의식하며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은 인본주의적 사고 때문입니다.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물침례를 예시(豫示)합니다. 할례로 선민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의로워졌을까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번제단에 가져온 동물의 피로 속죄 제사를 드렸고 거룩한 옷을 입은 대제사장만이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물침례와 성령으로 거듭난 우리는 죄에서 자유로울까요? 거듭났으니 그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1) 은혜의 속죄법
    물침례의 죄사함으로 우리는 거룩한 옷을 입는 은혜를 받았으나 사탄이 뿌린 죄를 잉태하는 씨앗(죄성)으로 인해 거룩한 옷이 다시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한없이 연약하고 빈번히 넘어지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은혜의 속죄법을 만드셨습니다. 더러워진 옷을 입은 채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고전 3:16, 6:19~20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고 하셨으니 성전을 더럽히면 안됩니다. 또한 엡 2:20~22을 보면 성령 안에서 내 안의 하나님의 성전이 완벽을 향해서 예수 안에서 지어져 간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내 안에서 완벽하게 지어지도록 계속적으로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습관처럼 기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마음의 간절한 회개 기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도덕적인 노력만으로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을 계속적으로 유지할 때 그리스도의 피가 역사하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심을 깨닫게 되며, 기쁨과 감사의 기도가 나오고 거룩한 영적 지성소에 거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3) 믿음과 순종
    성경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신 경우를 찾아봅시다. 창세기에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지시한 그대로 순종을 하였고, 출애굽 이후 시내산에서 성막을 만들 때에도 모세가 하나님의 뜻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대로 믿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비록 이해가 되지 않아도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4) 죄성(罪性)과 불침례
    하나님은 사탄이 뿌린 우리의 죄성(罪性)을 해결하려고 사탄에게 우리를 보내십니다. 사탄은 죄의 유혹과 고난으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신약시대의 불침례와 같습니다. 그 불 속을 온전히 잠겨 통과함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정금으로 만드십니다.

    5) 신성(神性)과 성전
    신성의 미성숙함을 완전한 성숙함으로 자라가게 하려고 성전을 예비하셨습니다. 매 안식일에 듣고 보았던 말씀(레마)을 준비하여 성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약 시대 번제단에서 선민의 죄를 해결하듯이, 우리는 회개기도(영적 제사장의 사역)로 흠이 있는 거룩한 옷을 빨아야 합니다. 거룩한 옷을 유지하며 성령의 충만과 인도로 영적 지성소에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한 성화를 향하여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의 속죄(贖罪)도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성화(聖化)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4. 결어
    1) 안식일은 우리의 성화를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기억합시다.
    2) 안식일에는 반드시 성전에 나와야 합니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예배드려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안식일에는 성전을 사모하고 나아가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3) 충분한 기도시간을 확보하도록 하여 1주일 동안의 감사기도와 회개기도로 영적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거룩한 옷의 예비)를 합시다. 충분한 기도를 통해 성령이 함께하심을 깨닫고 성령의 도우심이 역사하게 됩니다.
    4) 세상의 지혜나 자랑은 교회 안에서 분열을 이룰 수 있고, 그 가운데 사탄의 역사로 사람의 생각이 가미되어 하나님보다 사람을 자랑할 수 있게 되니 안식일에는 세상적인 것이나 자랑은 삼가해야 합니다.
    5) 1주일 동안 읽은 하나님 말씀(레마)이 내 마음에 새겨져 로고스화되는 역사를 이루기 위해 경건함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합시다. 믿음과 순종으로 내 안의 하나님의 성전이 튼튼한 반석 위에 지어져 가도록 성령 충만을 유지하도록 합시다.
    6)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삶(성화)은 의와 평안과 희락이 이루어져 나의 삶이 형통함(토브)을 보여 주고 그러한 변화된 삶은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의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