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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요한복음 4장 20-24절)

    말씀 제목 :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본문 말씀 : 요한복음 4장 20-24절

    설교자 : 유바나바 목자

    날 짜 : 2026년 2월 21일 (토)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 하겠습니다.

     (요 4:20-24)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제가 신학생 시절, 예배 중 헐레벌떡 들어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취업 준비 중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결국 안식일 오전 근무가 있는 곳에 취업했습니다. 하지만 첫 출근 날, 예배 자리에 있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갈급함에 괴로워하던 중, 기적처럼 이전에 지원했던 안식일 보장 회사로부터 합격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즉시 사직서를 내고 교회로 달려왔고, “내가 네 마음을 안다. 마음껏 예배해라”라는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매주 예배를 드립니다. 때로는 힘 있게 나를 살리는 예배를, 때로는 형식적인 예배를 경험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예배가 어떤 자리인지 다시 세워보고자 합니다.

     

     1. 예배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들을 간절히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기서 ‘찾으신다’라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의지를 뜻합니다. 단순히 찾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군인이 수색하듯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은 하나님의 오랜 준비를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만남은 하나님의 바람이었고 끝없는 열망인 것입니다.

     ◆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끊임없는 찾으심:

    • 에덴동산:죄를 짓고 숨은 아담을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며 부르셨습니다.
    • 출애굽 사건: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에서 해방하신 목적은 단순한 자유가 아니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 (예배)”(출 8:1)이라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 성막과 성전:광야의 성막(출 25:8),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모두 죄로 멀어진 인간을 다시 만나기 위해 하나님이 마련하신 장치였습니다.

     ◆ 십자가와 기다림: 구약 시대부터 이어져 온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만남에 대한 열망은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죄의 장벽을 허무심으로써 절정에 달했습니다.

     ◆ 하나님의 마음: 우리가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하나님은 무심히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자녀를 기다린 부모의 마음(사 49:15)으로 우리를 맞이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가볍게 여기거나 습관적으로 자리에 앉아서는 안 됩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열망’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시간이자, 인간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모든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이요, 마땅히 사모함으로 가야 할 현장입니다.

    • 인간 내면의 영적 갈망:사마리아 여인은 사회적, 도덕적으로 소외된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예배의 장소(요 4:20)를 묻습니다. 이는 죄인일지라도 인간 내면에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본능적인 갈망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 죄 사함의 은혜를 향한 열망: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죄를 씻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성전에 나아와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동물의 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그 죄 사함을 얻습니다. 예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십자가 은혜로 해방되는 자리입니다.
    • 전심으로 찾는 예배:“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예배는 시간이 남아서 오는 자리가 아닙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가 먼저 달려가 목을 안았던 것처럼, 우리가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어 간절함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눅 15: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3. 예배는 하나님의 열망과 인간의 열망이 만나는 기쁨의 자리입니다.

     우리를 만나고자 하는 ‘하나님의 뜨거운 열망’과 은혜를 구하는 ‘우리의 간절한 열망’이 만날 때, 예배는 하늘과 땅이 맞닿는 놀라운 축복의 시간이 됩니다.

    • 은혜의 보좌 앞으로:하나님은 수천 년 전부터 이 예배의 자리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고 회복시킬 준비를 모두 마쳐 두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습관에서 기쁨으로:예배를 향한 열망이 식으면 예배는 지루한 습관이 되지만, 열망이 타오르면 예배는 영혼이 살아나는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어떤 은혜보다 가장 귀한 것으로 하나님의 만남을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도 가장 귀하고 갈망했던 만남으로 우리가 믿고 여긴다면 우리가 앞으로 드려지는 모든 예배가 다 이런 기쁨의 예배 또 은혜가 충만한 예배가 되지 않겠습니까? 마치 처음에 서론에 소개해 드렸던 그 형제처럼 우리가 하나님과의 만남의 자리를 끊임없이 마음 가운데 두고 갈망하고 소망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이 예배의 기준이 되어서 어떤 순간에도 어떤 예배더라도 그 예배가 기쁨의 자리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앞으로 하늘나라 갈 때까지 드려지는 모든 예배가 그런 기쁨의 예배, 은혜가 충만한 예배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복음메시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1~12)

    제목 :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본문 : 사 62:1~12

    날짜 : 2026/02/21 토요일

     

    오늘 본문에서는 쓰라린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새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이사야 62:1)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침묵과 백성들의 불평 속에도 하나님을 위한 중보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도 때로는 그 응답이 지체됨을 통해서 실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라도 깨어있겠다는 각오가 이사야의 마음에 서려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는 길목에 아름다움과 놀라운 선물들로 충만하게 예비하신 분이십니다.

    성도들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실 충만한 선물들을 항상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큰 아름다움으로 채워주실지 기대해 봅시다. 그러면 마음에 희망이 생기고, 그 소망을 따라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심을 통해서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열심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한 구속의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시온의 회복을 위해서 열심을 다하시는 분이십니다. 물욕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뒤엎으시고,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그 일을 담대히 수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온을, 백성들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바쳐가면서 일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열정을 통해서 시온이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고, 목숨을 걸고 미쳐야 열정을 낼 수 있습니다. 큰 업적을 이루려면 열정을 불태워야 하듯이, 기도에 열정을 불태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여리고성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온 세상을 비추게 하심으로 회복하십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교회에 힘이 생겨서 구원의 역사에도 결실이 생깁니다. 거부할 수 없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시온이 완전한 영광과 지위를 회복하게 됩니다.

     

    교회는 어떤 존재일까요?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이사야 62:3)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이런 존재가 됩니다.

    정말 귀한 존재는 구원받은 성도들이고, 완전한 영광 가운데에 있는 성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헵시바, 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는 뜻이고, 쁄라는 결혼한 여자를 뜻합니다. 우리를 큰 기쁨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완전한 영광과, 완벽한 신분과, 완벽한 지위를 회복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교회와 성도가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이사야 62:6~7)

    아무리 좋은 설계도가 있어도 건축을 시작하지 않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위한 구원의 계획과, 우리를 향한 계획과, 많은 선물들을 예비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써 깨어있는 주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도로 움직이고, 그 역사를 움직이게 해서, 모든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온 세상이 하나님을 보고 찬양할 때까지,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릴 위해 예비하신 것은 아주 많습니다!

     

     

     

     

  • [복음메시지] 은혜의 자리로 나아 갑시다 (히브리서 4:14~16)

     

    제목 : 은혜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본문 : 히4:14~16

     

    1.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이 되신 분입니다.

    (14)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레위기 16:23~24)

    우리는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하는데, 구약시대엔 대신 죽을 제물을 바치므로써

    대속의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이 제사를 담당하는 것이 제사장이며, 대제사장은 중요한 역할을 해야합니다.

    (롬5:12) 죄의 결과인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보혈로 인하여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거룩한 신분을 갖게 된 것입니다.

    (히4:14) 사실 우리가 죽어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통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똑같은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흠없는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따라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흠이 없는 죄가 없는 완전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약 이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없어질 이 세상에서 소망 없이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15)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의 여정을 계속 해나갈 때 꽃길만 걷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긍휼히 여겨주시며

    도와주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고난과 시련을 다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가 겪는 고통을 얼마나 위로해줄 수 있을까요?

    아마 제한적일겁니다.

    왜냐면 내가 같은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완전히 이해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과 시련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완전히 이해하실 수 있고, 우리는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히2:18) 하나님께선 말씀을 통하여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예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16)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예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겠지?

    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은혜를 온전히 받기 위해선 그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와 만나기 위하여 늘 만남의 장소를 마련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막을 만들게 하셨고, 은혜의 장소로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도우심을 입고자

    은혜의 자리로 힘써 나아와야 합니다.

    (롬8:26~28)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함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히4:12) 또한 말씀을 가까이 하여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히10:23~25) 또한 예배의 자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유와 상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지켜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kVc06s1mdkc

     

     

  • [복음메시지]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눅15:25-32)

    2026년 1월 31일 (토)

    설교제목: 우리가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본문: 눅15:25-32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15장은 예수님께서 잃은 양을 되찾았을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비유로 말씀하신 장입니다.

    그 중에 25절부터 32절은  탕자의 비유에서 일어난 큰아들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잃은 것을 되찾는것은 크게 기쁜일입니다.

    하지만 잃은 양을 되찾은 중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있는데요 바로 무엇일까요?

    탕자의 비유에선 돌아온 탕자로 크게 기뻐한 아버지는 큰 잔치를 열어 이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밭일을 하고 돌아온 큰아들은 이 모습에 불만을 품게 됩니다.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흥청망청 살다 재산을 모두 잃고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인 반면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왔던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돌아오는 것이 없었다는 이유로 큰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이에 대해 아버지는 나는 너와 항상 함께하지 않았느냐, 나의 것이 이미 다 네 것이다 그러니 죽다 살아난 잃은 아들을 기뻐 반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에선 말하고 있습니다.

    ”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큰아들은 자기의 입장에선 타당한 말을 하였지만 아버지만 기뻐할 일이 아님을 비유에서 가르치고있습니다.

    우리 또한 우리 주변의  잃은 양을 찾은 것은 한나님만 기뻐할 일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또 나의 마음의 상태가 큰아들과 같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겠습니다.

     

    1.복음의 핵심을 깨닫자

    예수님께선 우리 구원을 위해 오셨으며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2‬:‭17)

    하지만 우리를 부르심은 우리가  의인이기에 부르신것이 아닌 죄인을 불러 회개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또한 무엇하나 드러낼 것이 없는 죄인임에도 이자리에 불러주신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죄인이 돌이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을 나도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2. 천국의 속성을 제대로 알자

    이 땅의 천국은 곧 교회입니다. 교회는 돌아온 잃은 양들을 더욱 더 맞이해야 합니다. 잃은 양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새 신도를 위해서도 환영과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위 본문 말씀에서 큰아들의 중심에는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을 품었던 것 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입니다.

    또 천국의 기업은 모두 우리를 위해서 이미 예비 해두셨기 때문에 더 큰 축복과 영광을 하나님께서 돌려주실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겠습니다.

     

    3.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자

    부모님이 자식을 생각하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하나님께선 세상에 모든 죄인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들을 다시 찾기를 간절히 바라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또 앓은 양이 돌아온다면 특히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분들을 한 마음 한 뜻을 모아 진심으로 기뻐하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유튜브에서 설교를 시청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 [복음메시지] 빚 진 자 (롬 1:14~15)

     

    [말씀제목] 빚 진 자

    [본문말씀] 로마서 1:14~15

    [설교자] 윤석원 목자님

    [설교일] 2026/2/14 (토)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14‬-‭15‬ ‭

     

    본문의 말씀은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빚을 진 자라 말합니다. 왜 바울 사도는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이방인들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행전‬ ‭9‬:‭15‬

    바울 사도는 자신의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것임을 나타내지만, 또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 택하신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존재가 자신이 구원받은 이유 중 하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빚을 진 자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이런 귀중한 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신 것일까요?

    그 은혜에는 우리를 사랑하셔서도 있지만,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처럼 세상에 빚 진 자들인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복음을 모르는 세상의 존재로 우리가 구원받았기에, 우리는 반드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우리가 빚을 갚는 길입니다.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선포하며, 우리의 빚을 갚아나가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말씀제목]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9월 6일 안식일 오전 예배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혼인 건수가 10년간 크게 줄었고,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결혼에 대한 여러가지 논점들을 다뤄보겠습니다. 

    • 결혼의 성경적 기초
    창세기 2장 1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이 좋았으나, 아담 하나만 지었을 때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창세기 1장 27-28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4장 1-5절을 보면 후일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겠지만 이것은 ‘믿음에서 떠난 말’이자 ‘미혹케 하는 영의 가르침’이라고 단호히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거룩함은 결혼을 안 하거나 특정 음식을 피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결혼해야 하는 다섯 가지 성경적 이유

    1.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말2:15) : 아담에게 배필을 만들어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만드실 수 있지만 딱 한 명의 하와만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일부일처제 결혼으로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 안에서 맺어진 부부를 통해 경건한 자손을 잇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기 위함(벧전3:7) : 부부는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동반자입니다. 한 겹 줄보다 두 겹 줄이 강하듯이 믿음의 가정은 천국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강력한 두 겹 줄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의 결혼을 통해 이 유업을 함께 받고, 부부가 함께하며 믿음의 자녀를 낳아 생명의 은혜를 이어갑니다.
    3.  음행에 빠지지 않기 위함(고전7:1-2) : 바울 사도는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금욕으로만 거룩해진다는 주장과 여러 이성을 가까이 해도 된다는 의견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을 통해 정욕을 다스리고 음행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기 위함(엡5:31-32) :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많이 비유합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결혼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가정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5. 참된 사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함(시128:1-4) : 수고한 대로 먹고, 밥상에 가족이 둘러앉아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일시적 쾌락이 아닌 참된 사랑의 기쁨을 가정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5-6절처럼 자식의 자식까지 보며 예루살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결혼의 원칙과 교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창2:24)

    하나님의 주례사와 같은 이 말씀을 보면 결혼에 순서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를 떠나(경제적·심리적 독립의 준비가 됨), 둘째 연합하여(사랑의 결합), 셋째 한 몸을 이룹니다(육체적 결합).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먼저 한 몸부터 이루고, 맞으면 연합하고, 나중에 결혼하라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7:7-9) 

    바울은 주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 독신이었습니다. 독신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고, 그 은사를 통해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마음이 굳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못하고, 절제하지 못할 것 같다면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하셨습니다. 태생적 고자나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자(바울처럼)만 독신이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마19:10-12)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3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귀중한 제도입니다. 만약 인간의 욕망 때문에 침소를 더럽히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제도를 통해서 서로를 위하는 돕는 배필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서 행복을 누리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복음메세지]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11월 1일 안식일 오전 예배
    제목 :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본문 : 시 103:1~22

    설교자 : 이요셉 목자님

    ♦ 감사함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감사’라는 단어가 150번 정도 등장하는데 시편에서 제일 많이 나오며, 대략 80번 정도 사용된다. 다른 성경과 달리 시편은 성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이다.
    (시 6: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시편에서 감사가 제일 먼저 나오는 구절로 ‘음부에서는 감사할 수 없으니 살려주세요’라는 기도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없다면 음부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롬 1:29~32을 보면 사람이 죽을 죄를 짓고 있으면서 이를 알고도 이를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는 데까지 타락한다. 롬 1:21을 보면 사람의 타락은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아니하고 감사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마음이 어두워져 점점 변질되고 타락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중요하다. 

    ♦ 다윗은 감사하라고 자신에 명령합니다.

    시 103:1~2. 다윗은 자기를 향해서 명령하고 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왜 이렇게 명령하고 있을까? 사람은 매우 쉽게 잊어버리고, 자기 공로로 돌리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교만하여 자기에게 영광을 돌린다. 큰 은혜를 받으면 오랫동안 기억할 것같은데 그렇지 않다. 큰 은혜를 받았다면 대부분 큰 고난을 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그 고난과 고통에 눌려있기 쉽지, 은혜에 대해 감사하기가 어렵다.

    ♦ 감사를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시 103:4~6. 다윗은 그 때 당했던 고통, 원망들을 쏟아내지 않고 은혜와 감사를 말하고 있다. 입에 담는 말이 정말 중요하다. 힘든 것들을 얘기하면, 결국 그 고통이 증폭되고 억눌려 있기 쉽다. 감사를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감사함이 고통에 억눌려있지 않을 수 있다.

    ♦ 구원함을 감사해야 합니다.

    시 103:8~14. 다윗의 감사 내용으로 자신이 용서받은 것, 구원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육신의 것으로만 감사한다면 우리는 그냥 고깃덩어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부를 때 평안하게 하셨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롬 8:31~32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실 것이다.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시 103:11, 13, 17)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무겁게 듣는 사람. 그래서 말도 행동도 조심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좋은 일이 있지 않아도 감사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감사는 좋은 일에 대한 반응이지만,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믿음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믿음을 갖고 좀 더 편안해진 마음으로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요 6: 11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음식이 매우 모자란 난감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축사(감사)하시고 음식을 나눠주셔서 모두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단 6:10 다니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위험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다니엘은 2번 감사하였는데 두번째 감사는 첫번째와 달리 아무 일도 없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보호하심에 믿음으로 미리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다.
    단 2:23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꿈의 해몽을 알려주셨으니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이를 통해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느부갓네살 왕의 꿈에도 다녀가시고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은혜를 받고 나서 감사했다. 이처럼 한 번 경험한 자는 좋은 것을 주실 줄 알고 믿음으로 감사한다. 이것이 믿는 자의 감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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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제목: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일시: 2025년 10월 26일 가을 영은회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성찬례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거룩한 성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성찬을 행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의식이나 의례적 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방향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성찬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자리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은 사도행전 26장에서 죄가 없음에도 유대인들의 고소로 아그립바왕 앞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변호해야 했지만 이때에도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미쳤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여도 교회를 위한 것인데 이러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하게 붙드셨기 때문에 그의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한 삶, 교회를 위한 삶으로 흘러갔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이 마음을 감동시키고 이끌어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겪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왜 바울은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사야 5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며, 그분이 찔리시고 상함을 당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본래 죄로 인해 고난받고 죽어야 할 존재는 우리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습니다.(사 53: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결국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우리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첫 사람 아담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기에,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죄가 생겼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며, 죽음은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도 역시 그와 똑같이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죽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첫 번째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첫 번째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신 것도 이 뜻입니다. 예수님이 첫 생명이 되셔서 우리도 그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 인해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내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죽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직접 창조된 존재이듯,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사람이 죄에 빠질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실 일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구속의 사건임을 증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신 구원이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의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이 반영된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사는 삶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죽는 것입니까? 성경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고 말합니다. 세례에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가,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례는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신 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부르심에 따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새 생명을 얻은 모든 성도에게 해당하는 것인 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곧 우리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욕심과 본성을 따라 사는 삶이 것이기 때문에 결코 유익하지 않으며 오히려 죄와 멸망으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를 살리셔서 옛 삶 즉 세상 풍속과 육체의 욕망을 따르던 삶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대로, 우리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풍속을 좇는 삶이며, 이런 삶은 결국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이며, 결국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당연히 그런 삶이 우리에게 유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해가 되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삶이기에 우리가 가장 가치 있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은 하나님을 위한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배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는 구원만 받고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선한 일은 우리가 가치 있고 도덕적 삶을 살아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르는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이전에는 죄 가운데 있어 그리스도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놀라운 연합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며,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한 영이 되어, 그리스도의 생명과 마음,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도 바로 이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행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내 힘을 합하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면 그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도 필요하고 실제로 행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 힘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예수님 안에 있으며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되셨던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기셨습니다.

    즉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지키고 더 깊어지도록 힘쓸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도록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며, 성경이 말하는 가장 복된 삶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3~27)

    주님의 몸과 피를 분별하며 자신을 살피는 성도

    바울은 성찬이 주님께 직접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만큼 성찬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성찬에서 떡과 잔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여 주님과 더욱 깊이 연합하게 되는 은혜의 자리임을 말합니다. 이 떡과 잔은 ‘너희를 위한 내 몸’,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예수님의 생명이 더욱 충만하게 임하는 효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찬을 받을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합당치 않게 성찬을 받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고전11:27)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각각 자기를 살피라고 명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 거룩한 예식이기에, 성도는 그 의미를 분별하고 신중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형식적인 성례가 아니라 매우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담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게 되는 참으로 거룩한 성례라는 것입니다. 매번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이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그렇지 못했다면 그 삶을 살기 위해 다시 결단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찬은 이 결단을 다시 확인하고 새롭게 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더욱 힘쓰는 성도님이 되길 바랍니다.

    유튜브 설교 링크

    글: 최재웅 형제

  • [복음메시지] 두려운 날에도 내가 주님을 신뢰하고

    원제: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8월 29일, 이요셉 목자님)
    말씀: 시편 56:1~13

    ■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시작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10)
    두려움은 최초로 아담이 범죄한 이후 생긴 감정입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상실, 죽음, 고난, 고통, 가난,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 등 두려운 상황들이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욕심과 두려움을 잘 다스려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 신앙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다윗의 두려움과 신뢰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을 이겨낸 다윗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시편 56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받던 상황에서 드린 기도문입니다.
    “네가 나가서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을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신 20:1)
    다윗은 바로 이 말씀처럼, 두려운 상황이 닥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확신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떤 확신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을까요? 어떤한 믿음으로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았던 것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다윗이 붙잡은 세 가지 믿음


     1. 하나님의 주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하찮아 보이는 참새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이유 없이 땅에 떨어지게 하시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공의와 위로
    “그들이 악을 행한 까닭에 그들이 쫓겨나리이다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주께서 나의 유리함을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 56:7~8)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자를 억압하는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시며, 자녀의 눈물과 고난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깊이 알았습니다.

     

    3. 찬송의 힘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시 56:3-4)“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두려움을 이겨내었습니다. 찬송은 무너진 마음을 붙잡아 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두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양심을 저버릴 때도 있지만, 반드시 회개함으로 다시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바른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56:11)

  •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제목: 히스기야의 기도(사 37:1~7)

    일시: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히스기야를 통해 본 기도의 참된 자세–

    본문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아수르 군대가 남유다를 침공했고, 유다의 모든 성을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성의 함락을 앞둔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참된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의지하라(1절)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가 성전으로 간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지니라.(약 5: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즉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기를 맞으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가거나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거의 성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라(1절)

    히스기야가 성전에 가서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역대하 7장 11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내가 듣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을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머물러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이 약속을 기억하고 성전에서 기도했고, 성전에 갈 수 없을 때는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통해 드리는 기도 역시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곳이기 때문에 귀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 교회를 향해 눈과 마음을 두시고,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겸비하게 기도하라.(1절)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기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경건한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이처럼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복종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 내 뜻이나 내 주장, 내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라.(2절)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도 기도 부탁을 합니다. 자신도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종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약 5:14)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 기도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라고 세우신 자들입니다. 사무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했고, 히브리서 13장 말씀에도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들이 결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도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눌 때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환난의 이유를 생각해 보라.(3절)

    히스기야가 기도하면서 말합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37:3)

    이 말은 현재 상황을 인정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는 이 상황은 단순한 위기가 아닌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책벌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해산할 힘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이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어떤 위기든지, 어떤 절망이든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4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기도 부탁하며 한 말 중에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한 모욕이 견딜 수 없었고, 그것이 가장 큰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며 분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더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한다면 두려워하지 말라.(6절)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먼저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곧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 링크: 히스기야의 기도(사37:1~7)

     

    글| 최재웅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