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교회소식

  • [성도소개] 광주교회 양하윤 자매를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광주교회 양하윤 자매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지난 아동부영은회 때 하나님의 귀한 선물을 받은 하윤이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참예수교회 광주교회에 다니고 있는 12살, 5학년 양하윤입니다.

     

    Q. 좋아하는 찬양이 있나요?

    A. ‘주 우리 아버지’라는 찬양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 찬양을 부르면 하나님께 신나게 찬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 있나요?

    A. 제가 참예수교회에 다닐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Q. 성령을 받을 때에 어떤 기분이었나요?

    A. 평소 기도할 때보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성령을 꼭 받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았을 때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Q. 앞으로의 다짐이 있나요?

    A. 기도를 열심히 해서 성령충만을 받고 싶어요.

     

    앞으로 하윤이가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길 함께 기도해주세요😊 🙏

     

  • [복음메시지] 기도해야 할 때 (약 5:13-16)

    [복음메시지] 기도해야 할 때 (약 5:13-16)

    [말씀제목] 기도해야 할 때

    [본문말씀] : 약 5:13-16

    [설교자] 정호민 목자님

    [설교일] 2024년 4월 20일 토요일 오전예배

     

     

    ”모든 일이든지 때가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시간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일반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가리키고 카이로스의 시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결정적인 때, 결정적인 기회를 가리킵니다.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여기서 말하는 세월이 카이로스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흘러가는 이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결정적인 때,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꽉 붙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꽉 붙잡아야 할 기도의 때는 언제일까요?

     

    1.  우리는 고난 당할 때 기도해야 합니다. (13)

    ‘너희’는 교회의 성도를 가리킵니다.성도 가운데 고난 당하는 자가 있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당하다’ – 불행한 일을 당하다

    (행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교회의 성도된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고난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1. 죄로 인한 고난 (약 1:14-15)
    2. 연단을 위한 믿음의 시련 (벧전 1:17) (약 1:2-3)
    3.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고난 (벧전 4:13)

    우리가 고난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고난을 받든지 교회의 성도된 내가 고난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고난을 겪든지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살리기 위함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당할 때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해야 한다.

    (롬 12: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2. 즐거워할 때 찬송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13)

    ‘즐거워하다’ – 기뻐하다. (행 27:22,25) ‘안심하다’로 변역

    ‘찬송하다’ –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고 찬송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이 지나갔는데 나의 의로 여기고 지나가 버릴수도 있습니다.

    찬송에 전제되는 마음은 내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시 18:49) (시 57:9) (시 109:30) 하나님께 찬송 = 하나님께 감사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병들 때 기도해야 합니다. (14-16)

    특별히 병에 대해서는 보다 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도의 병은 두가지 차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신체적인 병 : 힘이 없다, 약하다

             – 장로들이 기름을 바른다는 내용이있는데 이는 실제로 병 치료로 쓰입니다.

             – 기름은 통증 완화에 도움을 줍니다.

    1. 영적인 병 : 믿음의 연약함(롬 14:1)

             – 마음에 죄가 있을 때 죄가 영혼을 병들게 해서 약해지게 합니다.

     

    우리 안에서 병든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1.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함께 기도해야 한다.(14)

            –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알리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1. 서로 고하고 서로 기도해주어야 한다. (16)

            – ‘고하다’ – 고백하다, 시인하다

            – 나의 문제를 시인하고 고백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때는 지금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고,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임을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지금 우리가 기도해야 할 때 기도에 집중하여서 기도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 [신앙의 향기] 하늘소리 오카리나

    [신앙의 향기] 하늘소리 오카리나

    오카리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성도들이 모여 ‘하늘소리’라는 기악팀이 되었습니다.

    봄 영은회에 울려퍼지던 아름다운 오카리나 찬송으로 함께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왼쪽부터 김경희, 김연숙, 김영미, 박에스더, 최현숙, 박순희, 김예영 자매님들 )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교회 행사] 봄 영은전도대회 – 충만한 성령으로 강건한 교회

    [교회 행사] 봄 영은전도대회 – 충만한 성령으로 강건한 교회

    2024년, 청주교회에서는 봄을 맞이하여 영은전도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전홍희 목자님께서(現 수원 참예수교회 시무) [충만한 성령으로 강건한 교회]라는 주제로 3일간 설교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이번 영은회 기간에는 귀한 영혼들이 방문해 주셔서 더 뜻깊었는데요, 그동안 청주교회에서 인근 아파트 경로당에 때마다 믹스커피를 보내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노력해 왔었습니다. 9년간 이어진 그 기도에 응답해주시듯 이번 영은회에 경로당의 어르신들이 무려 아홉 분이나 방문해 주셨고 함께 예배를 드리며 보낸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점점 결실을 맺어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예수교회는 인근 주민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교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노력과 하나님의 은혜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길 원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큰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고 계시는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데 더욱 앞장설 것입니다. 참예수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확장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영은회가 마무리되었지만, 우리의 사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모두가 하나님의 큰 가족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결실의 선물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2024 청주교회 봄 영은전도대회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셨습니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가 더 나은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함께 성장하며, 우리의 믿음이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길 소망합니다.

    아멘.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기관 소개 – 루디아 신도회] 주님의 사랑과 평안이 넘치는 신도회

    [기관 소개 – 루디아 신도회] 주님의 사랑과 평안이 넘치는 신도회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 속에서  평안이 넘치는 루디아 신도회를 소개합니다~ ^^

    청주교회 루디아 신도회는 45~55세 사이의 여성 신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성원은 총 8명입니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엄마와 아내로서, 직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여러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특별히 교회 내 여러 사역의 자리에서 성실히 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예배 후 오후에 진행되는 신도회에서는 서로 한 주간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생활 속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신도회 예배를 드리면서 항상 느끼는 점은 “나의 형편을 정말 잘 아시는 하나님~ !!” 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공의로우신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난 풍성한 생활의 간증을 나누며 기쁨의 웃음이 넘치기도, 감사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루디아 신도회에서는 특히 기도에 힘쓰고 있는데 신도회 기도 제목을 두고 매주 목요일 정시 기도를 하고 있고 전도는 은사가 아닌 사명이라는 인식으로 매일 태신자와 전도 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 잃은 양을 위해서 2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문고리 심방을 하고 있습니다. 잃은 양을 생각하며 쓴 엽서에 교회 소식을 알리기도 하고, 말씀을 적기도 하고, 엽서를 읽으면서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먹거리와 함께 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옵니다. 하나님처럼 그 영혼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며 하나님 안에서 같이 동행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음 신도회 소식에서는 잃은 양들이 회복되어 함께 신도회 예배를 드리며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

    그 밖에도 여러 신도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봄에는 벚꽃놀이도 가고, 찬양기도회로 다른 신도회와 연합 신도회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교회를 방문하여 신앙의 교제를 나누는 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는 광주교회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어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 기대가 됩니다.

    이상~!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즐거움으로 하나님이 주신 평안함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루디아 신도회 소개였습니다. 평안, 할렐루야~!!

     

    <2024.6월  루디아 신도회의 광주 참예수교회로 신앙여행 사진>

                

    글작성 : 최영미 자매

  • [복음 메세지] 과부의 두 렙돈 (눅 21:1~4)

    [복음 메세지] 과부의 두 렙돈 (눅 21:1~4)

    제목 : 과부의 두 렙돈
    누가복음 21:1~4

    옛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어리석고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해도, 그들은 늘 예수님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며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시며 다시 마음을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에수님을 걱정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에,

    예수님을 감동시킨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그 여인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왜 과부를 칭찬하셨을까요?

    오늘은 그 이유를 알아보고 우리 모두 그 모습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눅 21:1~2)

    헌금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받은 은혜를 재물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겁니다.

     

    가난한 과부가 아주 적은 금액의 헌금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헌금하는 모습과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그 금액이 크든 작든 하나님께선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옛날의 과부는 오늘날의 과부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의 과부는 절대로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입이 전혀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따라서 굉장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부가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돈의 단위인 렙돈은 ‘가장 적은 단위의 돈’ 입니다.

    이 시대에는 한 렙돈을 절대로 헌금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작 작은 단위의 돈이기 때문에 헌금으로써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한 렙돈이 아닌, 두 렙돈을 헌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도 헌금을 하고, 가난한 과부도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요?

    ‘가난한 과부가 많은 헌금을 하였다’ 고 말씀하셨다.

     

    (3) 심지어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모든 사람들 보다도 많이 헌금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일반적인 생각을 해본다면 상식적이지 않은 말이다.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것이다.

    가난한 과부는 받은 은혜가 적기에 적은 금액을 헌금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잘못 생각하면,

    “아!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만 좋아 하시는 구나” 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적은 헌금을 칭찬 하셨을까?

     

    지금의 가치로 환산해본다면, 이 가난한 과부는 약 1달러가 되지 않는 금액을 헌금한 것이다.

    그런데 왜 칭찬을 받은 것일까?

     

    (4) 예수님께선 두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다른이들은 풍족한 상황에서 헌금을 했고,

    가난한 과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헌금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부가 생활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속에서,

    예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바로 그녀의 믿음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예수님께 복을 구하면 구했지 자신의 전부를 드릴 생각은 못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주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믿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과부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엘리사와 과부가 등장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공급이 중단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엘리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땅으로 가라” 그리고 엘리사는 그곳에서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엘리사는 그 과부에게 먹을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과부는 자기와 자기 아들이 먹을 것 밖에 남지 않았고,

    그것을 먹고 이제 삶을 끝내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하나님을 믿고 자신에게 그 음식을 줄 것을 권했습니다.

    과부는 믿음으로 그렇게 행동했고,

    놀랍게도 그 과부와 자식들이 여러날을 먹을 음식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여러분은 시간이 남아서 교회에 오십니까? 돈이 남아서 하나님께 헌금을 하십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어떤것이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속에서 중요한 시간을 내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을수록,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때로 적은 능력과, 적은 축복을 주실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예수님의 큰 뜻이 있는 것이며, 큰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때마다 믿음으로 신앙생활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정 하실 때, 세상에서 보는 능력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자도 아니었고, 지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고,

    능력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믿음”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셨을때 모든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자세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것을 예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부족한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당시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에게 큰 충격과 가르침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과부는 “전부”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일부”를 헌금했고, 과부는 “전부를” 헌금했습니다.

    즉, 이것은 최선을 다했는가? 나의 온 마음을 하나님꼐 드렸는가? 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과부에게 2개의 동전은 하루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돈이었습니다.

    자신의 하루, 자신의 삶을 전부 드린 것입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은 하나님 앞에 “일부” 를 바치고 있나요? 아니면 “전부”를 바치고 있나요?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돈과 명예에 집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가난한 과부처럼 예수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손가락질 합니다.

    “저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다니!, 저것은 낭비다” 라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을 바라볼 때 결과를 봅니다.

    잘 했는가? 결과물이 훌륭한가? 완벽했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예배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rizeF92ahE

  • [복음메시지]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1-9, 14)

    [복음메시지]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1-9, 14)

    2024년 5월 25일 (토) 오전예배

    설교제목 :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본문말씀 : (요 5:1-9, 14)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베데스다’ : 자비의 집, 긍휼의 집

    당시 의술은 매우 희귀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의사에게 치료받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많은 병자들이 이곳 베데스다에 모인 것이다.

    (3-4)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음. 이는 중요하지 않고 우리는 그대로 믿으면 된다.

    당시에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하면 가장 먼저 못에 들어간 자는 어떤 병이든지 낫게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많은 병자들에게 소문으로 퍼졌다.

    소문의 방식은 사실 선착순 방식이다. 그러나 이 선착순 방식은 매우 가혹한 방식일뿐더러 무자비한 방식이다. 그 이유는 서로 경쟁을 부추기게 하기 때문이다.

    베데스다는 늘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경쟁 속에서 서로를 긍휼히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9) ‘병자’ : 사회적 약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베데스다와 같다. 매일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자비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 5:5-6)

    (5) 30년 된 병자, 네가 낫고자 하느냐 => 예수님은 이미 병자의 형편을 모두 다 알고 계셨다.

    38이란 숫자는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의미하는 숫자이다. (신 2:14) 광야생활 38년

    아무도 그 병자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병자의 형편을 모두 아시고 그 병자를 낫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마 12:20)

    (마 12:20)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이와 같다.

    (8) 경쟁의 자리에서 구할 것은 없다. 오로지 예수님 한분께 나아가야 한다.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마 11:29-30)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주신다. 경제, 가족, 취업, 결혼 등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형편을 이미 다 아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께 나아가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4) 예수님께서 그 병자를 다시 만나셨는데 더 심한 고통을 받지 않도록 죄를 짓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영혼의 구원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다.

    먼저 경쟁의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영혼의 구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튜브 설교링크

  • [복음 메시지]더욱 간절히 주의하라(히 2:1-4)

    [복음 메시지]더욱 간절히 주의하라(히 2:1-4)

    말씀 제목: 더욱 간절히 주의하라 (히 2:1-4)
    설교자 : 이요셉 목자
    설교일 : 2024년 4월 27일 안식일 오전

     

    본래 히브리서의 제목은 ‘히브리인들에게’ 이다. 히브리인은 ‘건너온 자들’이란 뜻이다. 최초로 히브리인이라 불린 사람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강을 건너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히브리인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3절의 ‘우리’는 신앙의 2세대를 말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이 전하는 것을 들은 이들이 ‘우리’인 것이다. 우리는 신앙의 몇 세대인가? 가정에서 몇 세대인가? 이 세대들이 신앙 안에서 건너는 자들이다. 우리가 신앙 안에서 넘어서야 하는 문제들이 있고, 넘어온 문제들도 있다. 어떤 문제에 걸려있으면 신앙이 성숙할 수 없다. 당시 히브리인들은 어떤 문제들을 넘어서야 했는가?

    (1:4, 3:2) 이때의 성도들은 천사를 너무 크게 여겨서 숭배하려 했었다. (계 22:8-9) 요한 사도도 천사를 경배하려 했었다. 경배는 오로지 하나님께만 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때의 히브리인들은 이런 신앙의 문제에서 넘어서지 못했다. 현재 우리는 이런 걸림돌은 없다. 오히려 지금 성도들은 천사를 우습게 보기도 한다.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우리도 넘어서야 할 문제들이 있다. 돈의 문제, 관계의 문제, 성공의 문제, 이성과 정욕의 문제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넘어서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히브리인 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신앙의 2세대들로 보자면, 시대적으로 넘어서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도교회의 시작은 찬란했으나, 끝은 초라하였다. 신앙이 전파되었을 시기에 사단이 틈을 타고 있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로 이를 알 수 있다. 이 일은 아주 작은 씨앗에 불과했다. 교회가 이렇게 된 일이 그저 사도가 잘못했기 때문일까? 사실 교회가 부패한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던 일이다. 개개인 모두에게 넘어서야 하는 숙제가 있다.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도 문제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

    더욱 간절히 주의해야 한다. 신앙에서 서서히 멀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금은 왜 사도교회 같은 일이 없나? 우리가 대단하기 때문이 아니다. 계시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단을 잡아 두셨고, 사도시대처럼 전면적으로 미혹하지 못하게 하셨다. 개인적으로 실족하는 일은 있으나, 전면적으로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다. 그러나 세상에 끝에서는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시대는 이와 같다. 우리가 받은 것은 큰 구원이기에 이를 등한히 여기서는 안 된다. 신앙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22:5) 자신의 상업을 위해 하나님의 초대를 등한히 여기는 부분이 나온다. 우리가 얻은 구원의 은혜가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생업의 중요성은 비교적 작은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창세 전부터 준비하셨다. 내가 얻은 구원의 크기가 얼마나 크고 얼마나 은혜로운 것인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언약을 맺었나? 하나님께서는 죄사함, 구원의 은혜를 내려주셨다. 이 언약을 맺는 것조차도 희귀한 일이다. 우리가 이 언약을 얼마나 귀하게 여겨야 합당할까? (갈 3:19) 구약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율법을 가벼이 여겼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말았다. 천사들을 통해 맺은 이 율법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안다면, 하나님과 직접 맺은 언약은 얼마나 더 중요한지 알 수 있다. (3-4)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성령과 간증, 기적들을 생각해보라. 이는 틀리지 않은 것이다. 

  • [성도소개] 정*순 모친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 정*순 모친을 소개합니다.

    1.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48년에 태어나 3형제를 낳아 기르고 지금은 손주가 8명, 증손주 2명 있습니다. 아들 3명 중 큰 아들은 강남교회 윤*석 집사 내외와 손주, 증손주들, 막내 아들 내외와 손주들은 하남교회를 같이 다니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 내외만 일반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2. 어떻게 교회에 다니게 되셨나요?

     시골에 살 때 어머니께서 장로교회 다니실 때 따라 다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84년도에 이사한 옆집에 황재순 목자님이 살고 계셔서 그 때 당시 은천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참예수교인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형제와 안*선 집사님 아들들이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까워지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3. 세례와 성령은 언제 받으셨나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오충도 목자님께서 오셔서 세례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성령 받았을 때는 혀가 이상하게 내 뜻과 달리 움직이려고 해서 멈춰보려고 노력했는데 계속 방언이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4. 좋아하시는 성경구절과 찬송은?

    찬송가 399장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성경은 야고보서를 좋아해서 예전에는 1장~3장까지 외웠었는데 나이가 들어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설교 말씀을 들을 때 야고보서에 나온 말씀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5. 하나님께 받은 많은 은혜 중 기억나는 간증 짧게 부탁드려요.

     온갖 풍파를 많이 겪었는데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것이 받은 은혜입니다.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잘 자라게 해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6. 신앙의 다짐 한 마디.

     일반 교회 다니는 동생들이 이단교회 다닌다고 이야기하지만 죽는 날까지 하나님 믿으며 믿음 성장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소원이 있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기도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습니다.

     

    찬송가 399장 주의 약속하신 말씀 위에서 듣기

  • [복음메세지] 섬기는 자리와 자기를 낮추는 자리 (마 23:1-12)

    (마 23: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마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마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마 23: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마 23: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마 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시기 헤롯당, 사두개인, 율법사,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마치시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실 때 이제 백성들에게 교훈을 주시는 내용이다.

    성전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 들으라고 유대인의 지도자들을 책망하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이건 굉장히 위험하고, 또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직접 대놓고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하셨을까? 이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야 하는 때가 이른 것이다. 예수님이 항상 ‘화 있을찐저!’ 이렇게 말씀하지는 않으셨다. 대부분 온유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시고 질문에 답도 하시고 비유로 설명하시던 예수님이셨다. 하지만 지금은 십자가 죽음을 며칠 앞둔 때이기에 강하게 심판을 경고해야 하는 시점이다.

    마치 계시록 8장부터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나팔을 주셔서 불게 하시는 것과 같다. 천사가 나팔을 차례로 불 때마다 재앙이 일어난다. 독수리가 나와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화화가 있으리로다.’ 나팔이 엄청 시끄럽다. 하나님이 땅에 주시는 심판이자 경고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큰 소리로 들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는 바로 그들이 앉아있었던 자리에서 찾을 수 있다.

    [마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여러분은 어디에 앉아 계시나? 여러분이 앉아 계신 의자가 어느 의자인지 잘 살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의자에 앉아있어야 할까?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답을 알려주신다.

     

    [마 23:11-12]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본문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교만한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다. 하나 씩 살펴보고 나에게는 이런 모습이 있지 않은지 말씀에 비춰보길 바란다. 사람들의 교만한 모습들을 살펴보자.

     

    1. 언행의 불일치

    [마 23:3-4]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사람의 교만함은, 말로만 하고 정작 스스로는 그 말을 실천하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당시 유대인들의 회당에 ‘모세의 자리’라 불리는 의자가 실제로 있었다고 한다. 어디에 있었을까? 회당 앞쪽, 두루마리 성경, 토라를 보관하는 함 앞에 돌로 만든 의자가 있다. 이 의자에는 누가 앉을까? 율법을 읽고 설명해 줄 사람이 앉는다. 그래서 모세의 자리는 가르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앉는 자리이다.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교만이다. 이것은 마치 다른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놓고 자기는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 부당한 일이다.

     

    1. 허영심

    [마 23:5]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경문은 유대인들이 손목과 이마에 차던 말씀이 담긴 작은 상자이다. 그것을 가죽 끈으로 묶어서 심장 가까이 왼쪽 팔이나, 머리 위인 앞 이마에 달았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또 목숨과 같이 지키려는 다짐 같은 의미이다.

     

    [신 11:18] 이러므로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옷술은 옷의 귀퉁이에 파란 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표이다.

     

    [민 15:38-40]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그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39) 이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40)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앞에 거룩하리라

     

    문제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경건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표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1. 높임 받으려는 태도, 탐욕

    [마 23:6-7] (6)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사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어딜가나 존경을 받고 대접을 받았다.

    마 23:8-10 내용을 보면, 랍비라 칭함 받지 말라, 아비라 하지 말라, 지도자라 칭함 받지 말라. 왜냐면 참 선생, 아버지, 지도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존경하는 마음이나 권위를 부정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직분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또 분명히 존경하라 하셨다.

     

    [딤전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하지만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면 안 된다. 교회 안에서 계급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좋은 자리에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 우리는 모두 세상에서 존귀한 사람들이지만, 이 존귀함은 누가 주신 것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 뒤에 하나님이 계시다. 가장 큰 뒷배이다. 하지만 우리는 겸손하고 서로 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