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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소개] “아빠도 성령 받았다!!!”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아빠도 성령 받았다!!!”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높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청주 참예수교회 장치성 형제님은 22년 5월 세례를 받은 지 3년만인 이번 봄 영은회 마지막 날에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생생함을 담은 장치성 형제님의 간증을 성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저의 가정은 아내(김연숙자매)와 큰 딸(장아영), 둘째 딸(장아윤), 저 순으로 세례를 받고 참예수교회에서 함께 기쁨으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고 말씀을 배울수록 가족이 한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첫째 딸은 올해 아동부 영은회때 먼저 성령을 받았습니다. 주님께 너무 감사했으며 열심히 간구했을 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저에게 아주 살짝 자극이 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제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저에게도 성령을 주실거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더욱더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 드디어 이번 봄영은회에서 성령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단 몇 분이라도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렇게 아침마다 기도를 하면서 가끔 몸이 떨리고 혀가 꼬이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이건 아닐꺼야~~아니야~~기도를 장난식으로하면 안되지~!! ” 부정을 하면서, 더욱더 분명하고 천천히~ “할! 렐! 루! 야!”를 외치고 기도를 멈췄습니다. 저는 제가 아직 성령을 받기에는 부족하다고 느꼈기에,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그냥 저의 생각으로 부정하고 거부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저의 기도 소리를 아내인 연숙자매가 계속 듣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면서 기도 소리가 이상했는지, 이번 영은회 때 목자님께 안수 기도를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오후 예배 후 안수를 받고, 김세한 목자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이 있으니 조금 더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는데요”라고 말씀을 드리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영은회 기간내내 몸살로 몸이 안 좋았고, 마지막 날은 앉아있는것 조차 힘들 정도로 온몸이 쑤시고, 열도 나서 빨리 저녁 예배를 마치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녁 예배를 마쳤을 때, 원래는 계획에 없었던 것 같은데 안수 기도를 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를 위해 기도시간을 마련해 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오후에 목자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조금 더 노력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기에, 몸은 힘들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안수를 받으러 나갔습니다.

    그렇게 앉아있기도 힘들 정도로 아픈 몸이었지만, 무릎을 꿇고 기도 하는데 평안함이 느껴졌습니다. 평안함을 느끼면서 평소에는 몇분만 기도를 해도 다리가 많이 아팠는데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제 입에서는 저의 의지와 상관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예전 집에서 기도할 때처럼 기도를 멈출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에 맡기면서 기도를 마쳤습니다. 눈가에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조금 맺혀 있었고 자리로 돌아와 앉자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선포해주셨습니다. 기쁜 감정도 있었으나, 좀 얼떨떨하고 정말 내가 성령을 받은 건지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숙자매한테 얘기를 했더니 목자님 두 분이 맞다고 하면 틀림없는 거니깐 의심하지 말고 더 열심히 기도하라고 얘기해 주더라고요.

    모든 성도님들이 자기 일들처럼 기뻐해 주시고 환호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의심하기 보다는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에 더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집에 와서 기도 시간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의 일상도 조금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저의 일정에 시간을 조금 내서 기도를 했다면, 이제는 기도 시간에 저의 일정을 맞추고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성령 충만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도 이런 축복과 은혜와 사랑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성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성령 받은 장치성 형제님을 축하하는 여호수아 신도회 형제님들)

     

    글작성 : 장치성 형제

  • [기관소개] 부산교회 예찬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부산교회 예찬부를 소개합니다.

    Q1. 애찬부는 어떻게 구성되어있나요? (몇명의 성도들, 조직도)

    A : 30세 이상 형제(10명) 자매(28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식일 점심애찬은 11개조(3명이 한 조), 안식일 저녁애찬은 12개조(2명이 한 조)이며 설거지는 중학생부터 12개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Q2. 애찬부는 어떤 활동을 하나요?

    A : 주로 매주 안식일 애찬을 준비하고 영은회 및 전도세미나 등 교회 행사시에도 애찬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겨울엔 1년 먹을 김장을 담그는 봉사를 하구요.

     

     

    Q3. 애찬부 사역을 하면서 가장 보람있고 기억에 남았던 일은 무엇인가요?

    A : 처음 애찬부 책임을 맡았을 때는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지만, 모든 애찬부원들이 사랑으로 애찬을 준비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했고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성껏 준비한 애찬을 맛있다 하시면서 드셔주시는 성도님들을 볼 때도 뿌듯했답니다.

     

    Q4. 부산교회 성도님들께 하시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 먼저 사랑과 기쁨으로 애찬을 준비하시고 봉사해주시는 우리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그 수고에 주님께서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앞으로도 성도님들을 사랑하시는 마음만큼 기쁘게 봉사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성도님들은 맛있게 드셔주시면 됩니다!

     

    2024 부산교회 김장

     

     

  • [복음 메세지]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복음 메세지]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말씀 제목]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마6:13-16)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년4월 5일

    스티븐슨이란 작가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한 마을에 천사 같은 마음의 지킬 박사와 난폭한 성품의 하이드씨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그 마을에 무서운 범죄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살인, 방화, 절도, 유괴와 같은 강력 범죄 사건들이었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고 노리는 가운데 어느 날 다시 칼경이라는 유명한 인물이 지팡이에 맞고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은 범행 도구인 지팡이를 단서로 용의자를 추적한 결과 그 지팡이 임자가 바로 지킬 박사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박사의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지킬 박사의 옷을 입은 하이드씨가 자살해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결국 천사같은 지킬 박사와 악마 같은 하이드씨는 다른 인물이 아닌 동일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소설 이야기가 명작으로 세인들에게 찬사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한 인간의 내면에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잘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작가가 지적했듯이 모든 사람은 누구나 그 영혼 안에 지킬 박사같은 선한 모습도 그리고 하이드씨 같은 악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신자건 불신자건 마찬가지이다. 다만 불신자들은 세상 사람들 앞에 자신의 악한 모습은 감추고 선한 모습만 부각시켜서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자신이 꽤 괜찮은 존재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오히려 자기 연약함을 성찰하고 부족함을 발견해서 하나님 앞에 점점 변화해 가는 존재라는 차이점이 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에서 신앙인의 내적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다.

    (롬 7:25-8:2)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도는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으로 발견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찬 자기 모습이 발견되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뉘우치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영혼이 변화되는 축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신을 치장하며 꽤 괜찮은 사람으로 기만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오늘은 산상보훈 가운데 구제에 대한 교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나타내야 하는 참 경건의 길이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산상보훈에서 5장은 율법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해석에 대한 내용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6장부터는 주제가 조금 달라진다. 5장까지의 주제는 율법에 대한 바른 이해를 세우는 것이었다면 6장부터는 그 바른 율법에 따른 경건 생활과 실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즉 5장은 이론에 관한 내용이고 6장부터 7장까지는 실천에 관한 내용이다. 그 실천의 내용 가운데 마태는 가장 먼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경건생활의 세 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 세 가지는 바로 구제, 기도, 금식이다. 오늘은 세 가지 중 첫 번째로 구제에 대한 교훈의 말씀에 대해서 살펴보자.

    구제란 무엇인가? 넉넉한 자가 불우한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행위이다. 그런데 그 구제에 대해서 이렇게 행해야지 저렇게 행하면 안된다고 교훈하시고 있다.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가? 예수님 당시에 유대 사회는 율법에 대한 이해도 문제점이 있었지만 경건생활의 실천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반증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어떻게 바로 잡으시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달하고 있는가? 특별히 구제에 대해서 예수님이 제시하신 바른 실천의 태도는 이런 것이다.

    첫째,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않아야 한다.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하략>』

    구제는 내가 땀 흘려 모은 것을 남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땀 흘려 모으려면 시간을 소모해야 하고 시간을 소모하는만큼 내 생명이 줄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구제란 내 생명을 타인에게 나눠주는 행위이다. 내 생명의 촛불을 태워 남에게 빛을 비춰주는 행위라는 뜻이다. 따라서 구제 자체는 매우 선한 일이요 고귀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고귀한 행동도 잘못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오늘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구제 행위를 지적하시면서 외식하는 자를 언급한다. 외식하는 자란 어떤 자인가? 여기서 ‘외식’ 또는 ‘위선’(hypocrite)이란 단어의 사전적인 뜻은 “가면을 쓴 배우”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자면 무대에 선 어떤 배우가 왕의 복장을 하고 거닐면서 다른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 같은 상황을 바로 외식한다 또는 위선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오해하지 않아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사람을 칭찬하거나 칭찬 받는 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타인을 칭찬할 수 있고 내가 타인에게 칭찬 받을 수도 있다. 칭찬하고 칭찬 받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착한 사람 바나바가 등장하는데 그는 백성들에게 칭찬받았다. 또 사도행전 6장에 식탁 봉사 직분자는 백성들로부터 칭찬 듣는 자라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되었다. 그 조건대로 안립된 스데반 집사는 교회 성도들로부터 칭찬받는 자였다. 어떤 성도는 칭찬에 대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거의 결벽증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분을 칭찬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 사람을 칭찬한다”고 분노를 나타낼 정도이다. 그렇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 성도가 칭찬하거나 칭찬 받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수님이 경계하신 것은 사람의 칭찬과 영광을 받으려는 목적을 가지고 구제를 행하지 말라는 것 뿐이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야고보서 1장 27절의 말씀을 보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언급했다. 그런데 그 경건이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과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즉,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구제 행위가 경건생활과 연관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제 행위가 예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마음에는 사람이 드러날 일이 없다. 구제의 대상은 사람이지만 구제의 정신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4장 하반부와 5장 전반부를 보면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같으나 동기는 상반된 두 부류의 신앙인이 등장한다. 하나는 착한 사람 바나바이고 다른 하나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였다. 두 부류는 재산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는 행위까지는 똑같았다. 그러나 바나바는 가난한 성도들을 사랑하는 착한 뜻으로 행동한 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성도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는 지도자적 위치를 얻으려는 목적에서 행동했다. 만약 이런 부부가 바나바처럼 초대교회 지도자가 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 초대교회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세속 집단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순수한 정기도 사라지고 성령의 역사도 멈추고 교회의 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런 위기 상황을 방관치 않으시고 그 거짓과 위선이 교회를 지배하지 않도록 심판하셨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남을 구제할 때 나는 무슨 동기로 그를 돕고자 하는가 하고 자신의 동기를 물을 필요가 있다. 또 내 안에 예배의 정신이 있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남을 돕는 구제를 실천할 때 항상 선한 동기를 점검하고 그런 선행의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와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저와 성도가 되길 바란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둘째, 자기의 공로에 대해 잊어야 한다.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후견인 제도가 있었다. 그래서 부자인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후견인이 되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피후견인이 된다. 만약 후견인이 피후견인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돌봐주면 그대신 가난한 그 사람은 자기를 돌봐준 부자를 남들 앞에서 칭찬하고 명예를 높여주는 것이 사회의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풍습이 일반화된 사회 속에서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 교훈은 사람들에게 매우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give and take의 세상 이치 속에서는 매우 어리석게 들렸을 것이다.

    예수님이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미루어 보건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가 선행을 할 때 이를 보고 시기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사람의 악한 본성 중 하나다. 그러니 타인에게 상처되는 말을 듣는 것을 경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은 너 자신이 상처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뜻일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스스로 시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처음에는 순수한 동기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동기와 취지가 변질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또 처음에는 아무런 보상과 보답을 생각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내게 주어질 유익에 관심이 돌아가 구제가 구제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구제를 은밀히 할 수 있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나 개인의 명의로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헌납해서 교회의 이름으로 구제케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4장의 바나바는 물질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했다. 이것은 ‘교회에 헌납했다’는 뜻이다. 교회에 헌납해서 교회의 명의로 구제하는 것이 사도교회의 모습이었다. 교회의 이름으로 하면 자기 이름을 사라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신의 공로를 잊고 하나님을 높이는 지혜로운 처신이다. 그런데 교회를 통하지 않고 개인이 하면 시험에 들고 구제가 구제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부디 구제할 때 자신의 이름을 가리고 교회를 통해 구제를 실천해서 구제의 동기도 보호되고 하나님의 이름도 높여지는 지혜로운 저와 성도님들이 되기를 바란다.

    (빌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셋째, 하나님이 주실 상급만 소망해야 한다.

    (마 6:2) 『<상략>–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 6: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사람은 누구나 추구하는 것을 얻게 되어 있다. 건강을 추구하는 사람은 건강을, 돈을 추구하는 사람은 돈을,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 명예를 얻는다. 구제의 목적이 사람의 칭찬과 영광에 있었다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사람으로부터 받으려는 것을 받았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무엇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미 떡을 먹고 배부른 사람이 밥을 찾지 않듯이 사람의 칭찬과 명예에 배부르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 상급은 기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칭찬,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에 대해서 얼마나 사모하고 있는가? 사람은 때로 자신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어두울 때가 많다. 그래서 내 동기가 순수한지 아니면 저 깊은 곳에 다른 뜻이 깔려 있는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자신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만약 선을 행할 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내가 바른 마음으로 구제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가 만족하고 행복한 모습만으로 충분하다면 나는 바른 마음으로 구제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 부디 사람은 알아주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이 알아주실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가장 큰 상이라는 믿음으로 구제를 실천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눅 14:14)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진실 ‘씬서러’(sincere)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이 영어 단어는 ‘시네 세라’(sine cera)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그 라틴어의 본래 뜻은 “밀칠하지 않은”이라는 의미이다. 영어로 직역하면 ‘sun tested’이다. 즉 “햇빛에 시험해 보다”라는 뜻이 라틴어 ‘시네 세라’ ‘밀칠 하지 않은’이라는 뜻이다. 그 의미는 바로 고대 도자기 산업과 관계된다. 도자기(옹기)는 두꺼운 것보다 얇은 것으로 만들기 어렵고 까다로웠다. 도자기를 두껍게 만들면 불에 구워낼 때 금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얇게 만들면 불에 굽다가 금이 잘 가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얇은 도자기가 가볍기 때문에 두꺼운 도자기보다 더 비쌌다. 그런데 만약 도자기 제조 중에 흠이 발견되면 그것은 깨버리는 것이 정상인데 일부 부정직한 도공들은 약한 흠있는 곳에 색소와 밀초를 섞어 틈을 메꾼다. 그리고 다시 유약을 발라 시장에 불량품을 내다 팔았다. 그러나 이런 불량 도자기는 햇빛에 비추어 보면 금방 탄로가 난다. 햇볕에 시험한다는 뜻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래서 정품 고급도자기에는 밑에 ‘sine cera’라는 글을 새겨 넣어서 품질을 보증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영어 단어 씬서러 ‘sincere’가 나온 것이다.

    우리는 구제할 때 어떤 정신으로 실천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정신으로, 변하지 않는 순수한 동기로, 개인의 명의가 아니라 교회의 명의로 실천해야겠다. 이렇게 구제할 때 하나님은 그 구제를 거룩한 산 제사로 흠향하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선행을 천국 책에 기록하시고 영원히 기억해 주실 것이다. 부디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의 그릇에 ‘시네 세라’ 씬서러 sincere 라고 새겨 넣으시는, 그런 축복된 주님의 자녀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

  • [교회 행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

    [교회 행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

    할렐루야~
    지난 일요일 청주교회 봄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좋은 날씨와 모든 상황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날짜 : 2025년 05월 11일(일)
    ▶ 장소 : 충남 공주시 정안면(무두리 펜션)
    ▶ 수세자 : 장한옥

     

    장한옥 자매님께서는 5년전쯤 집 인근 산책로를 오가며 운동하던 중, 송세연 자매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송세연자매님께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전도심방팀원으로서의 교육과 사역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누구에게라도 전할 수 있도록 항상 주위를 살펴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던 터에, 장한옥 자매님을 길에서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건강이 안 좋아 보였고 운동을 같이 하고 싶으면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 했더니, 장한옥 자매님께서 기꺼이 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전도 대상자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오랜 만남의 세월을 보내고, 이제야 하나님의 때가 되어 값진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번 세례식에 두 따님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사실 교회에 가는 줄 알고(세례식을 하는 줄 모르고) 따라와서 처음 모습은 당황스러워 보이기도 하였으나, 세례식이 끝나고 또래 여신도회와 게임도 하고 차도 한잔하며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또 한 번의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장한옥자매님께서는 안수를 받으며 펑펑 우셨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가난해 보였습니다. 이제 막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의 신앙과 평안을 위해(또한 다시 볼 날일 있을 두 따님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이경추 집사

  • [교무부] 사회청년 2부 영은회

    [교무부] 사회청년 2부 영은회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2025.4.26~27 교무부에서는 사회청년 2부(만 36세~45세) 영은회가 총회 교육훈련센터에서 전국에서 73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금번에는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행28:28) 주제로 총회 선교부 사역을 소개하며 사청부의 역할을 성찰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청부가 더욱 총회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세계복음화의 일꾼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각교회에서는 청년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 [복음메세지]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정(창2:7-8)

    [말씀제목]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정 

    [본문말씀]창2:7-8

    [설교자] 홍영석 목자님

    [설교일] 2025. 05. 10. 토. 오전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세기 2장 7~8절)

    세계적으로 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방법들이 개발 되고 시행 되지만 결론적으로 자연 파괴의 진행 속도를 늦출 뿐 결국은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파괴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것은 사회 생태계의 파괴입니다. 사회에 가장 기초가 되는 구성은 가정이고 국가는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펼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만 역부족 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는 무너지고 국가는 무너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이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시작을 가정으로 시작하셨고 신약에서는 교회를 통해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두 가지 기관이 바로 가정과 교회 인 것입니다.그만큼 가정과 교회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른신앙입니다. 세상으로 한번 나간 자녀는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 안에서 성장 할 수 있도록 잘 인도해야 합니다. 자식으로써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이 천국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켜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두셨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가 느껴지시나요?  가정과 교회에서 내 모습이 다르다면 나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1.가정이 파괴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2장 15절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가정을 파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의 역할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써 세상의 죄들이 가정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가정에 죄가 들어오면 가정은 병들어 가고 지옥이 됩니다. 창세기 2장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을 마귀가 공격 하였듯이 여전히 우리 가정을 공격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나타나는 현상 만을 가지고 고민할게 아니라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이유가 바로 가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가정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2. 가정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창세기 3장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마귀의 특징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왜곡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돈을 많이 벌고, 유산을 물려주고, 자녀가 돈은 많이 버는 직업을 갖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 하게 합니다. 이는 잘못된 죄의 결과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정이 행복하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부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가 좋은 관계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8절~21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나님을 경외 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순종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할 수 없으며 세속적 가치관, 물질과 풍요로는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의 행복의 열쇠는 부부에게 있습니다.

    3. 이 가정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집은 언제든지 나의 돈, 나의 명의로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의 주인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 예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5~6절)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는 우상이 없습니다. 야곱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또한 우리 가정에 숨겨져 있는 우상을 제거하여 내 집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가 되게 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길 마다하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진정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길 바랍니다.

     

  • [성도소개]김용범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2025년 강남교회 수세자들을 소개합니다>

    세 분의 수례자 중 유일한 청일점 김용범 형제님께서 세례 받은 후 간증을 전해 주셨습니다. 형제님의 ‘다짐’ 함께 들어보실까요? 

    이름:김용범

    나이:67세

    일반교회인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아내의 권유로 강남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세례 받기 전 인생2막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참 진리 가운데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세례식 날짜 결정된 후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비지니스 관련 큰 행사 일정이 공교롭게도 겹치는 것입니다 .많은 고민 끝에 어떤 결정이 하나님 보시기 좋아하실까 라고 반문한 결과 비지니스 관련 행사를 포기 하는 것 이라고 응답이 왔습니다.
    또 한번 시탄의 방해가 있었습니다. 불과 몇 일 앞두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기도로서 하나님의 선한 인도 하심으로 지혜롭게 잘 극복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 받고 새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례 준비 과정에서 저를 위하여 기도해주신 목자님,장로님,집사님,여러 형제 자매님들,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주신 손길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고,예수 십자가 사랑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저를 사랑으로 품어주시고,진리의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이 감격 평생 잊지 않고 초심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롬~

  • [신앙의 향기] 예향찬양단

    [신앙의 향기] 예향찬양단 <넉넉히 이기느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2025년 5월 22일-24일에 실시한 금번 천안교회 봄 영은전도대회에서 예향찬양단이 부른 특송 ‘넉넉히 이기느니라’입니다. 찬양 가사처럼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 [전국 모금] 헝가리 부다페스트 교회 결과

    [전국 모금] 헝가리 부다페스트 교회 결과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찬송합니다.

    참예수교회 세계연합 총회에서는 동유럽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교회 건축에 필요한 자금마련을 위해 한국총회에 협조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한국총회에서는 지난 3.31까지 전국교회에 모금을 동참해주시도록 지교회에 협조부탁을 하였습니다. 

    전국 모금 결과 총액 45,618,000원이 모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헝가리 교회는 2017년 4월 15일, 세 사람이 모여 처음으로 가정 예배를 드렸습니다. 2018년에는 참예수교회 연합총회에서 두 명의 사역자와 한 명의 종교교육 봉사자를 파송하여 특별 예배를 드렸고, 헝가리 지역을 유럽 연락센터의 체계 안에 포함되었습니다. 약 열 명의 성도들이 함께 예배드리며 교회를 세우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어 주셨고, 2019년 10월 25일 교회가 정부에 공식 등록되었습니다.

    팬데믹 기간에도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기금을 모았고, 2023년 말에는 약 20만 유로를 모았습니다. 그때 시청이 지정한 공익 용지 중 하나에 유일하게 입찰하여, 161,221유로에 땅을 구입하게 되었고, 2024년 4월 정부로부터 부동산 권리증을 받았습니다. 이곳에 교회를 건축하기 위해 준비 중에 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모금한 성금이 회당건축에 도움이 되길바라며, 장차 천국복음이 헝가리에 널리 전해질 수 있도록 기억하시고 기도해주시길 바랍니다. 

     

     

     

     

     

  •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제 삶에 피난처 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피난처 되신 주님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험과 고난 속에서 안전한 도피처로 인도하시는 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에서 어떻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는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일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근무하는 곳이 서울 집에서 멀어서 회사 버스로 출퇴근했습니다. 당시 직장생활 13년 차였고, 누구나 그렇듯 저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회사 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6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하루 시작이 6시에 집에서 나와 일을 하고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9시가 넘었고 야근도 종종 했는데 그럴 때는 자정을 넘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12시 넘어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했습니다. 삶의 중심이 일터였습니다. 저만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주변의 동료들도 주중에는 삶의 중심이 직장이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사는 모습이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주하고 쉼 없는 삶에 지칠 때면 ‘남들도 이렇게 사는데….’ 이런 마음으로 근근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바쁜 삶이 당연한 직장 분위기에 휩싸여 잘못된 열심에 대해 스스로 채근하며 더 힘쓰고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면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서 예배드리고 맡은 사역을 했고, 성경 공부까지 참석하고 밤이 늦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요일은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시간을 주로 썼고, 아주 가끔 저를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니는 대방교회 저는 동부교회 아버지는 천주교에 다녔기 때문에 가족이 3명뿐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점점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삶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내가 바꿀 수도 없고 이런 삶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안식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주어진 교회 일도 하고 성경도 읽고 있으니 부족하지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였습니다.

    회사는 점점 제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고, 그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자 고민하고 달성을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가진 역량이나 리더십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버텨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삶이 반복되는데 뭔가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 믿는 자가 감당해야 할 사회생활이 이런 모습이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삶에 관한 생각과 질문을 한동안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삶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더 힘들고 어려운 삶도 많고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불평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삶에 대해 답답하고 풀리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제가 알 수 있도록 길을 보여달라고 지친 하루를 마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때로는 원망이 되어 ‘하나님 이것이 당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인가요?’ 하고 질문도 했지만, 그래도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생각나 낙심된 마음을 삭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한파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새벽이었습니다. 캄캄한 새벽 거리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고, 회사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약 100미터 전, 건널목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빛이 비쳤고 저는 쓰러졌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운전자는 어두운 길, 저를 보지 못하고, 건널목에서 정지하지 않고 가다가 저는 차량에 치여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차에 치여 의식을 잃었고 119구급차에 실려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드문드문 기억이 있긴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오후 6시 30분이 넘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후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눈을 떴을 때 어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제 몸은 일부는 붕대로 싸여 있었고, 눈마저도 붕대에 감겨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차에 치여서 모든 갈비뼈가 골절되었고, 바닥에 쓰러질 때 몸의 왼쪽 부분으로 넘어지면서 왼쪽 어깨는 골절되었고, 왼쪽 광대뼈는 함몰됐고 얼굴의 찢어진 부분은 이미 응급 봉합 수술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병원에 누워있다니….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몸을 크게 다쳤음에도 정신은 온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저의 뜻밖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교회는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소속 교회를 떠나 저를 알고 있는 성도님들은 제 건강을 걱정하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성경 말씀을 적은 손 편지를 어머니 편에 전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진심 어린 기도와 위로는 저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친척에게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래서 멀리서도 병문안을 와 주시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며 사람들과 멀어진 관계도 자연스럽게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완고해진 마음과 메마른 정서를 하나님 방식으로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사고로 인해 육체의 아픔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사고 전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실망했는데 이 뜻밖의 사고는 저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사랑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안했고, 오히려 저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고를 허락하셨지만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생각과 마음에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응답해 주시고, 크신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병실에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24)

    교통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어 주변이 많이 놀랐지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평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골절된 어깨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던 저는 의연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전신마취를 하고 4시간 소요되는 수술이었습니다. 저녁 10시에 회복실로 옮겨졌는데 전신마취에서 회복하는 것은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마취 가스를 호흡으로 빼야 하는 갈비뼈가 골절된 상태가 숨을 쉴 때마다 통증과 갈증이 심했지만, 물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십자가에 달려 홀로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이 생각났는데 이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겪는 육체의 아픔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몸이 아픈 제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깨 수술을 받고 2주에 후에는 함몰된 왼쪽 광대뼈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마취 후 깨어났을 때 고통이 커서 무서웠고, 체력도 떨어진 상태고 수술 위치가 시신경 옆이라, 잘못 신경을 건드리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다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득 저를 친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다시 약해진 것 같아서 수술을 앞두고 불안함에 요동치는 마음을 하나님께 잡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을 받았고 전신마취 회복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회복 속도는 빨랐습니다.

    3주 동안 수술이 끝났지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병가와 휴직의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특별한 사유 없이 휴가를 줄 수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6개월의 병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피로했던 일과에서 사고를 통해 저의 몸을 돌볼 수 있었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2차 병원으로 옮겨서 회복에 전념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하루에 수면 시간을 절제하며 살았는데 병원에서 충분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저는 성경도 읽고, 설교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고의 고통을 뛰어넘는 제게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제 몸 관리에 소홀했던 점도 깨달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상황에 핑계를 대며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을 알게 하시며 이 기간에 제 육체를 돌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육체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몸을 관리할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주중에 저의 바쁜 직장 일과 주말에도 각자의 시간으로 어려웠지만,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의 간호를 받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족에 소홀했던 제게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아픈 딸을 돌봐 주시는 부모님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 누군가를 챙기는 여유가 없는 시류에 따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굳어지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대화도 잘 못했는데, 이번 일로 서로를 걱정해 주고 위하는 마음을 다시 갖게 해 주셨습니다. 사고를 통해 이렇게 저의 잘못된 삶의 흐름을 멈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이 넉넉해져서 그동안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 주어진 휴식 시간 속에서 스스로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에서 출애굽 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에 감사했습니다.

    다시 직장에 돌아가 시간이 흐르면 원하지 않지만, 다시 바쁜 일상에 매몰되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복직하는 것이 고민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아도 경쟁하며 빠르게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 직장 분위기에 이전 생활이 다시 반복될 것 같아서 그동안 익숙했던 업무나 관계를 내려놓고 새로운 부서로 옮기는 것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타 부서로 옮기는 것도 내가 해 온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내 능력을 알아봐 줘서 허용하는 그 부서의 승인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기에 그 과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몇 달 있는 동안 교회를 나가지 못했는데,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코로나 때 모두 느끼셨겠지만, 안식일 예배에 하나님 전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사역의 기회가 있으면, 감당할 수 있을지 내 상황을 고려해 보고 결정했으나, 하나님과 성도님께 사랑의 빚을 진 것을 저에게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습니다. 저를 회복하신 주님이 부족하면 채워주실 것이고, 도와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삶과 생각과 처지를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어려움에 침묵하시는 것 같아 답답했지만,

    하나님께서 온전한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교통사고를 겪는 것을 불행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셨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6개월을 쉬는 것까지 누렸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베드로전서 5장 10절)

    제 삶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