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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롬 1:16)

    [말씀제목]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롬 1:16)

    [설교자] 정호민 전도자

    [설교일] 2022년 4월 1일 (금) 안식일 저녁 예배

     

    [본문말씀 : 롬 1 :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입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있지만, 처음 예수님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와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자라신 나사렛은 갈릴리 중에서도 정말 별 볼 일 없는, 작고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예수’란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고, 아버지는 평범한 목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된 구세주로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우리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인 구원자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았고, 주의 제자들과 교회까지 핍박합니다. 이때 사도 바울도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만나 회심했고, 예수를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로 변화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 한 사람이 변한다고 해서 사회의 관념까지 모두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때 사회의 관념은 어땠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멸시하고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은 비천한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했다고 표현합니다(고전4:10-13).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복음을 위하여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여기고 있나요? 혹시 복음을,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진 않았나요? 하지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당당히 외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왜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면서 담대히 나아갔을까요?

     

    (롬1:16) …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은 어떤 의미의 구원일까요?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바로 죄로부터 건져주시는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왜 죄에 속하게 되었을까요?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성경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그의 자손인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죄인 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육신의 사망이 끝이 아닙니다. 사람의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전 12:14).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별에 들어갑니다(마 25:4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생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저 착하게 살기만 하면 의인으로 인정받고 구원 얻을 수 있는 걸까요?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지만 이미 죄인인 사람은 어떤 노력으로도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실까요?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림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우리가 부끄러워할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며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얻는 기쁜 소식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심으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까지, 즉 모든 믿는 사람이 복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라옵기는 우리에게 복음이 부끄러운 소식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이 되길 원합니다. 이 복음에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능력이 있음을 믿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으로 전하는 우리 되길 이 시간 간절히 소망합니다.

     

    글쓴이  :  황채연

  • [복음 메시지] 창세기(5) 에덴동산 (창2:8-17)

    [말씀제목]창세기(5) 에덴동산(창2:8-17)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2022년 6월14일 (화)저녁예배

     

    에덴동산’ 일까, ‘에덴의 동산’일까?

    정확히는 에덴지역에 있는 동산으로  하나님이 특별히 만드신 ‘에덴의 동산’이다

     

    1.왜 에덴 동산을 만드셨을까?

    1. 1)에덴의 뜻

     첫 번째로 에덴의 뜻을 살펴보면 기쁨이라는 히브리 원어의 뜻과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뜻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동산은 특별히 울타리가 쳐진 구분된  곳이었다. 

     

    1. 2)하나님이 인간과 교제를 나누실 목적

    출25: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1. 3)온 세상에 하나님의 생명(축복)이 흘러가기 위함

    창 2: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4대 강이라 알고 있는 비손,기혼,힛데겔, 유브라데강이  세상으로 흘러 하나님의 기쁨이 땅 끝까지 넘쳐나길 바랐던 하나님의 계획으로

    즉 에덴동산은 지성소,에덴은 성소,온 땅은 세상을 말한다

     

    1. 4)인간에게 다스리며 지키게 하심

    창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두었다: 라는 뜻은 ‘사람을 지위에 임명하다’ 이고  다스리며: 뜻은 ‘섬기다’, ‘경작하다’ 이다 

     

    1. 5)성막과 성전의 원형

    창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의 제사장으로 만드시고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임명을 주셨다

     

    1. 6)교회를 세우신 목적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교회의 회복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죄 가운데 불러주셔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시고

    이 성전에 두신 뜻, 즉 

    우리가 제사장되어

    거룩한 교회에 세속적인 죄가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히 지키고

    하나님을 만남과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땅끝까지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유튜브 예배 링크

    글쓴이|  김정남 

  • [복음 메시지]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복음 메시지]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말씀제목]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설교자] 이엘리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시편 90편의 표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구약 시대에 영성이 높은 사람에게 주어졌던 칭호입니다. 모세가 그중 한 사람이며 특별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 사람입니다.

    오늘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그가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은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시90:3-11)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 것에서 부터 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인생에 대해 바르게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올바른 데서 벗어나 제각각이 됩니다.

    시편 90편 1절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는 모세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유를 매우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훗날 창업해 사장이 되는 걸 꿈꾸고 자녀들은 장성하면 집에서 나가 독립하려 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삶에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걸 좋아합니다. 이러한 관념이 확장되면 신앙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자(信者)가 되면 자유를 잃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훨씬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면 자기 일생이 그의 속박 아래 놓여 마음껏 죄를 지으면서 살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기에 말이나 행사에 모두 능했습니다.(행7:22)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자기 삶에서 성취한 이력이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40세까지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40년은 양을 쳤고 그의 마지막 생애 40년은 광야 길을 걸었습니다. 실로 인생의 단 맛과 쓴 맛을 모두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에 대해 내린 최후 결론이 있는데 사람에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셔서 우리를 주관하며 관리하셔야 하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 ‘하나님은 나의 주(主)이십니다.’

    “주는 대대에”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회성으로 짧게 끝난 게 아니라 대대로 계속 이어져 온 것입니다.’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핵심 근거가 되시는 분입니다.’

    “주는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의 부모, 배우자,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모세의 이 기도는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을 나의 거처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은 완전히 나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인생이야말로 가장 의의가 있고 최고로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後)

    영원 전에도, 영원 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비하면 사람의 삶은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릴 정도로 매우 짧고 지극히 미세합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는 말입니다.(약4:14)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시90:2前)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창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① 무소불능(無所不能) –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② 무소부지(無所不知)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③ 무소부재(無所不在) –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지혜와 능력이 무궁무진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자신의 주재(主宰)로 삼는 것은 은혜이며 복입니다.

    시편 90편 3-11절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우리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매일의 생활 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主, Lord)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의 모든 단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목(眼目)으로 본

    인생의 실상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90:3)

    하나님은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결국 사람의 가치가 티끌과 같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느 날엔가 티끌로 돌아갑니다. 사람마다 육신을 갖고 세상을 사는 동안 아무리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핀다 할지라도 그 몸은 끝내 티끌로 돌아가고 맙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지난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생은 그렇게 짧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시90:5前)

    폭포수의 물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쏟아져 내린 물, 한번 지나가 버린 물은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나가 버리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사실상 두 번째 기회란 없는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때 그때 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다 갈 뿐입니다. 세상 삶의 종착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월이 지나갈수록 남아있는 삶의 시간은 점점 더 짧아져 갑니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시90:5後)

    잠은 자는 것은 밤에 꿈을 꾸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때 우리가 잠을 자면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면 그게 단지 꿈이었다는 걸 알고 허탈감을 느낍니다. 사람은 청소년 시절엔 나름 높은 이상(理想)을 갖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지난날을 돌아 보면 그게 한낱 꿈에 불과했음을 깨닫습니다.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몇 사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는 대단히 큰 괴리가 있습니다. 우리 삶이 잠깐 자는 것과 같다는 건 그래서입니다.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90:5後)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시90:6)

    꽃이 왕성하게 피어난 때에는 최고로 가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감탄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꽃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전성기에 있을 때가 실은 쇠락기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 풀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크고 귀한 것을 성취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떨어져갑니다.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져버립니다. 누구든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시편 90편 7-9절은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걸 대다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시90:8)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아가는데,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란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그 죄를 깨닫지 못하는 걸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지은 죄이기에 그걸 다른 사람이 알아채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어떤 죄라도 밝은 빛 가운데 모두 드러내십니다.

    사람의 죄가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시90:7)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시90:9)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일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최고로 두려운 날을 맞이합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이며, 하나님의 분노를 대면하는 날입니다.(고후5:10, 계6:15-17)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시90:10前)

    인생의 년수가 70, 80에 불과하다면 자랑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는 수고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체가 매우 고생합니다.

    둘째는 슬픔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에 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서 70, 80년이 지나면 최후엔 무엇을 얻을까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後)

    이게 바로 우리 인생의 실제 모습입니다. 누구도 그걸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할 6가지 사항

    이렇게 인생의 실상을 똑바로 깨닫는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모세는 시편 90편 12-17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6가지를 알려줍니다.

    1.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라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는 ‘우리 날 계수함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거리는 보통 km, 마일(mile) 등으로 나타냅니다. 그에 비해 인생의 거리는 년수로 계산합니다. 50년, 70년, 100년 등으로 사람의 일생 여정을 표시합니다. 공통점은 그 여정마다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인생의 종착지,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바로 천국입니다. 중요한 건 그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처,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천국(天國)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지혜는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과 ‘성령 기도’입니다.

    이 지혜는 GPS처럼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참 지혜가 목적지를 향한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수시로 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끝까지 가다 보면 하나님의 거처, 우리 목적지 천국(天國)에 들어갑니다.

    1.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시90:13)

    둘째는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대면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1.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4)

    사람마다 일평생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삶의 기쁨과 즐거움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그에 대한 방향을 잘못 잡습니다. 물질적 조건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그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만족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아닙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주의 인자(仁慈),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셔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 평생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1.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시90:15)

    이는 우리 인생이 직면하는 현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가 곤고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 120년의 세월 중에 80년 동안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에는 죄로 인해 겪는 것이 있고 의로 인해 겪는 고난도 있습니다.(벧전2:20) 그 어느 것이든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왕궁을 떠났을까요?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무슨 이유로 광야 길을 걸었을까요? 당대에 그가 사명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히11:24-26) 이것이 그가 80년 동안 고난의 삶을 산 이유입니다.

    시편 90편 15절에서 모세가 기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곤고케 한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면 고난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삶의 기쁨은 이렇듯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면 고난은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면 고난도 겪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인생은 모세의 인생과 같습니다. 훗날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에게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함께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눅9:30-31)

    모세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게 아닙니다. 기쁨을 주셔서 어떤 고난이든 잘 대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1.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본 절에서 대상자는 둘입니다.

    첫째는 “주의 종들에게”입니다. 현세대를 가리킵니다.

    둘째는 “저의 자손에게”입니다.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를 말합니다.

    그럼 모세의 기도는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주의 행사를 현세대에게 나타내시옵소서’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우리의 신앙에 귀한 체험이 됩니다. 그 체험을 현세대가 분명하게 갖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삶에 최고의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 직업으로 버는 돈은 사실 살아가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간을 많이 써야 할 곳은 돈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신앙을 돌보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게 진정 가치 있는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최고로 보배로운 것을 그들에게 남겨주는 것입니다.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이는 우리의 신앙에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체험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재능이 많습니다. 모두가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두각을 나타내길 원합니다. 이것도 물론 영광입니다. 다들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달라집니다. 세상에서의 성취나 성공으로 영광을 얻는다는 게 분토(糞土)와 같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최대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우리 자손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럼 우리 하나님은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이것을 신앙의 전승(傳承)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시길 희망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산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그걸 향해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단지 건강, 학업, 직업만을 위해 구할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세상에서 잠시 잠깐만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의 영혼의 눈이 떠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길 위해 구해야 합니다. 뜻을 세워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 된 우리가 꼭 해야 할 중요한 기도입니다.

    1.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시90:17)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자기의 총명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에 많은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맺는 말

    모세는 인생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그 깨달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여섯 가지의 소원을 아룁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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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말씀제목]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설교자] 전*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사야에 있는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이유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앞서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고, 복음을 경험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쁜 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세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이사야 6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점령당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된 상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로된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소원도 빨리 전쟁이 끝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함을 얻게 되는 때가 있음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상태에 처해져 있던 것처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서 속하여 마귀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 죽음에 이르도록합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권세 아래서 불쌍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형벌받을 죄인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당신의 보혈로 죄인의 죄 값을 치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로부터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을 회복하게 됩니다.(마3:15~17,행2:38)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이후에 잠시 죄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겠지만 마침내 사단이 성도의 발아래 놓이게 되어 죄악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롬16:20) 주님의 주신 진리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2.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됨이 복음입니다.(18)

    앞을 볼 수 없는 자를 소경이라고 합니다. 소경이 앞을 본다면 얼마나 기쁜 소식일까요?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며 실제로 여러 명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여러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었습니다.

     

    (요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죄 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영적인 소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해서 당신의 성품과 능력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소경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보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자신 창조한 자와 자신을 구원할 자를 알게 하시고 자신이 가게 될 곳도 알려주십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두려움없이 살아가게 하십니다.

     

    3. 눌린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눌려있다는 말은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만합니다. 육신적으로든 심령적으로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에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지혜와 능력의 한계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얽매어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바로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그래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을 때에 가난에 처한 자신을 구원해주시는 분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끌렸지만 하찮은 목수의 신분과 빈곤한 외적인 상황을 보고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이었지만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처럼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를 믿고 순종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복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음을 맛보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길 원합니다.

     

    유튜브 예배 링크

    글쓴이   남*숙

  • [복음 메시지] 장성한 사람(고전14장)

    [말씀제목] 장성한 사람(고전14)

    [설교자]  박누가 목자님

    [설교일]  2022, 6, 2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까닭은 마귀와 대적하기 위함이며, 우리를 장성시키는 것이 곧 성령의 역할이다

    1. 우리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자가 되자

    나로 인해 교회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2. 악한 일을 멀리하자

    사악함을 버리고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한다

    선한 일에 지혜롭고 악한 일에 미련할 정도로 일체의 사악함을 버려야 한다

    3. 은사를 선하게 사용하자

    각종 은사는 교회의 질서를 위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글쓴이 강경혜

     

  • [복음 메시지] 절망속에서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라 (시 62:1~12)

    [복음 메시지] 절망속에서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라 (시 62:1~12)

    [말씀제목] 절망속에서 조용히 예수님께  나아가라(시62:1~12)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14일(토) 화요일 저녁 예배

     

    다윗은 수많은 믿음의 갈등 속에서 잠잠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묵상합니다.

    엄청난  갈등 속에서, 하나님 앞에 따지고 대들고 싶은 상황이지만

    다윗은 역경과 절망의 나락속에서 오로지 하나님 한분만 바라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볼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1.나의 구원이 하나님을 통해서 나기 때문입니다. (1절)

    이는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구원해 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믿음…

    아픔, 역경, 어려움 속에 있을 때 눈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의 짐을 내려놓는 신앙이 됩시다.

    구원이 주님에게 있기에..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박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엄청난 고통속에 흔들리는 울타리 같은 자기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들 앞에서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5절)

    이렇게  자기 영혼을 향해 결단을 선언합니다.

    다윗이 또다시 하나님만 바라볼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2.나의 참된 소망이 하나님으로 좇아 나기 때문입니다. (5절)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흔들리는 신앙속에서 결단코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진실로 천한자도 헛되고 높은 자도 거짓되다고 고백합니다.

    의지할만한 자가 없습니다. 인간의 연약함, 인간의 죄악성을 이야기 합니다.

    사람은 높은 사람에게 힘을 빌려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주권, 모든 권세는 하나님이 쥐고 계십니다. 

    다윗은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사랑해 주세요.

    인자함도 하나님께 속했잖아요. 나에게 사랑으로 갚아주세요.

    다윗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있기에  어떤 세상의 절망과 고통과 아픔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랍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아픔, 절망, 좌절, 어려움 삶의 현장속에서

    사람을 바라보면 화나고 원망되고, 미움이 생기고 어쩔줄 몰라합니다.

    그럴때 하나님만 바라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링크 바로가기)

  • 낮도 밤도 아름다운 우리교회로 오세요

    낮도 밤도 아름다운 우리교회로 오세요

    살다보면 큰 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나 버린거 같은

    절망의 순간도 온단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나의 약점 때문에 

    잠 못 드는 시간도 있단다.

    나의 가는길

    혼자 가기엔…. 벅찬……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더디고 힘들때~

    때론 부끄러워 숨고 싶을때

    힘겨운  삶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을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11:28)

    안전하고 확실한 영혼의 닻같이

    견고한 소망을 갖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자~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히브리서 6:17)

     

    예배의 시간

    화 / 금  저녁  19:40

    안식일 (토)   10:40

    안식일 아동 14:00

    안식일 청년 14:00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 23가길12

    02-966-4294

    담임목자 오희도

  • 거제교회 루디아회 야유회

    거제교회 루디아회 야유회

      할렐루야! 거제교회 루디아회 야유회를 다녀왔습니다!

     

    거제 매미성과 옥포대첩 기념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 이후 처음으로 다녀온 야유회였습니다. 오랜만의 나들이라서인지 다들 들뜬 얼굴이었습니다.

    맛있는 것도 잔뜩 싸가서 즐거운 야유회를 보내고 오셨습니다 🙂

    즐거운 야유회를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성도 소개] 청주교회 세례 3형제를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청주교회 세례 3형제를 소개합니다!

    2022년 5월 1일.
    청주교회에 새로운 세 명의 새 생명이 하나님 안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김성용, 김진범, 장치성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세 형제님 모두 한 가정의 멋지고 듬직한 가장이신데요, 정말 신기한 건 이 세 분 모두 배우자 분들과 자녀들이 먼저 세례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는 거에요. 먼저 거듭난 가족들과 청주교회 성도님들의 사랑과 기도로 하나님께서 이 세 분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인도해주셔서 세례를 받겠다 다짐하게 되었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는 시간과 동시에 청주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쁜 시간이지만, 이제 신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세 형제님들이 걸어가는 신앙의 길에 분명 시험과 고난이 있겠지만, 이제 세 형제님들과 함께 해주실 하나님이 계시기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세 분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성령을 받고 더욱 믿음 안에서 굳건해져서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을 섬기길 소망합니다.

     

    글쓴이 : 박은우 형제

  •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사랑은 ing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사랑은 ing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5~6)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민들레지역아동센터(이하 민들레센터)가 개소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국에 계신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로 민들레센터는 장항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돌보아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2019년, 지역사회 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민들레센터의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센터와 교회는 장항 지역 내 센터 아동들과 접촉하고자 힘썼습니다. 2~3개월에 한번 센터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동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매월 2회씩 자원봉사를 통하여 아동들과 접촉 하는 횟수와 시간을 좁혀갔습니다. 교회에 초청도 하며 작년 9월부터는 안식일마다 아동들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7명의 아동들과 교회에서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올해 초에는 17명의 아동들과 교회에서 만나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월 말에 코로나19로 인하여 만남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마비되었고 일상생활 및 종교생활 중단으로 복음전파 사역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되어야만 했습니다. 민들레센터 내 아동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지금부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민들레센터를 어떻게 사용하시고 있는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1. 자원봉사활동으로 쓰고 변화라 읽는다. 

    • 현재 민들레센터에는 36명의 아동이 있습니다. 센터의 아동들은 가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결핍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평소 아동들의 언행이 거칠고 공격적이어 하루가 전쟁 같은 나날의 연속일 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나서 센터는 긴급 돌봄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아동들만 수용하여 돌봄이 진행되었습니다. 내부, 외부 활동이 모두 금지되어서 할 수 있는 활동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해오던 것을 다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최소한의 인원만 배정하여 상황을 보고 월 1~2회 자원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교회 교사가 아동들과 함께 요리, 만들기, 놀이 활동 등을 하며 아동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전에는 2명의 교사가 15명 또는 20명의 아동들을 접촉하고 활동하다보니 아동들과 대화를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8~9명의 아동과 함께 하다 보니 아동들의 말을 좀 더 깊이 있게 듣게 되고 아동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동들도 교회 교사에 대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아동들의 난폭한 언행이 감소되고 집중력이 향상되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노력해도 안 되던 것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교사와 아동들의 짧은 시간의 만남 가운데 말과 행동의 변화를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사들을 통하여 아동들의 마음에 사랑을 느끼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 안식일센터특별활동은 코로나19도 막지 못한다. 

    – 자원봉사를 통한 아동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안식일 센터특별활동을 통하여 아동들과의 만남은 지속되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조율을 하고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주 1회 안식일 오후 3시 30분에서 5시에 아동들을 만나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매주 안식일 활동 담당자를 정하여 아동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만들기, 체육활동, 과학놀이, 요리활동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아동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구도자교육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점차 확산이 되면서 교회에서 아동들과의 만남이 잠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주 1회 안식일 활동 담당자들이 아동들을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활동하지 못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서 집에서만 있을 아동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여 전달하였습니다. 만들기 재료와 함께 때로는 간식을, 때로는 선생님들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편지를 담은 선물과 다양한 방법으로 아동들에게 줄 것을 준비하여 아동들의 집으로 찾아가 전달하였습니다. 안식일 활동 담당 교사들은 아동들에게 전달할 것을 준비하면서 아동들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품는 기회가 되었고, 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동들을 기다리고 계시고 사랑하고 계시는 마음을 전달하였습니다. 아동들 또한 교사들이 찾아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전달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며 교회에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추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 오늘도 우리는 때가 이르면 거둘 것임을 믿는다. 

    • 이런 상황 속에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되어 짧지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축구관람도 하고 1박2일 여름캠프도 다녀오고 뮤지컬관람, 운동회, 문화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추억을 만들었지만 올해는 딱 두 번의 활동을 통하여 아동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 교회 마당에 수영장을 대여하였습니다. 대형풀장과 슬라이드를 설치하여 아동들과 하루 종일 교회 마당에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11월에 잠시 코로나가 주춤하는 상황을 틈타 아동들과 가을을 느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함께 숲속체험과 원예치료활동을 하며 아동들이 마음껏 뛰어 놀며 그동안 억압 되었던 감정들을 해소하며 교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활동은 보호자분들에게도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역사회 내 민들레센터가 하나님의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을 기대하며 아동들과의 연결된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가운데 가장 염려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든 사회의 시선이 교회로 향했던 때였습니다. 그 시선이 긍정적인게 아니라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그 영향은 우리 교회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도 활동을 결코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한 주라도 아동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철저히 방역을 지키며 아동들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분들 또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관련 없이 만남을 허락하여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씩이지만 민들레센터는 가랑비 옷 젖듯이 아동들에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민들레센터를 통하여 역사하실 일들이 기대가 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전도의 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민들레센터의 전도사역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또한 곳곳에서 후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전국의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