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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삿 4:1-22)

    [말씀 제목]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삿 4:1-2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구약 성경에서 사사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여러 가지 특징 중에 하나는 사사의 생존하는 동안에는 천하가 태평하다가 사사가 죽으면 고통이 다시 찾아오는 악순환의 시대였다. 이것은 오늘날 홀로서기하지 못하고 타인 의존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연약한 성도들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끌어줄 사사가 있으면 태평하고 사사가 사라지면 평안이 사라지듯이 나를 이끌어 주는 성도가 있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으면 점점 교회도 신앙도 멀어지는 그런 상태의 신앙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사사시대의 백성들이건 오늘날 성도들이건 선민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 하나님의 뜻이란 바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자신이나 교회의 신앙이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된 상태에 있다면 어떻게 그 자리를 벗어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어떤 기적을 경험하고 복의 열매를 수확하는지 오늘은 여자 사사인 드보라와 헤벨의 아내 야엘의 활약상을 통해서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면 약한 자도 승리할 수 있다.

    (삿 4:4-5)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성경을 보면 좋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 중에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승리의 역사가 한 여자 사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일종의 풍자이다. 여자 사사 드보라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면서 선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고통 중에 있더라도 다른 신을 버리고 나만 온전히 의지한다면 이렇게 연약한 여자일지라도 승리하게 해주는데 왜 나를 온전히 의지하지 않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일종의 질책이 담겨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은 바로 가나안 족속이 강하기 때문도 아니요, 군사와 무기가 열등하기 때문도 아니요, 다만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도 물질이 부족해서, 좋은 가정 출신이 아니어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굳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유약하지만 남자보다 강한 경우가 있다. 신앙 안에서 남자 같은 강건한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유약한 여자라도 그를 높이 들어 쓰신다. 그리고 남자들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게 하신다. 이런 측면에서 신앙의 세계는 하나님 앞에 남자나 여자나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영광을 얻게 된다.

    (삿 4:8-9)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드보라의 명령을 들은 바락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일만 명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가라니까 “드보라 당신이 함께 간다면 나도 가고 당신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말한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아이가 부모님이 함께 가면 학교 가고 함께 가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떼 쓰는 모습과 같다.

    우리는 때로 바락처럼 하나님께 조건부 순종을 내걸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해주시면 순종하고 안 해주시면 순종하지 않겠다는 심산을 가진다. 순종의 정신이 사라지고 상거래의 정신이 남는다. 그런 삐딱한 믿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복이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만큼 복 주신다. 믿음으로 행하는만큼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 드보라같이 대장부의 신앙을 나타내면 대장부의 상급을 주시고 바락같이 졸장부 신앙을 나타내면 영광에서 제외된다.

    셋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큰 승리를 경험한다.

    (삿 4:12-13)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철병거 900승을 소유한 야빈의 군대에 대행해서 싸운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소총부대가 탱크부대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만큼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을 믿고 실천했을 때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것 같은 기적은 일어났다. 바락이 드보라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납달리와 스불론의 일만 명을 모아 가나안 족속과 전쟁하려고 다볼산에 올랐던 것이다. 비록 불완전했지만 바락이 그 말씀을 믿었으니까 이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런 정도의 믿음도 하나님은 칭찬해주신다. 그 믿음을 인정하신다는 증거는 히브리서 기자가 바락을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략이 승리를 가져온다. 그래서 여인이 전하든, 어린이가 전하든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바락이 드보라의 말을 여자라고 무시했다면 이 기적은 없었다. 누가 전하든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줄 아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삶의 승리는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는데서 시작된다. 때로 번지점프하는 것처럼 무모해 보이지만 말씀이라는 동아줄을 믿고 뛰어내려야 한다. 실제 번지 점프에서는 때로 끊어지는 사고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에 의지해서 자신을 맡길 줄 아는 성도가 되자. 그러면 인생이 평안하고 기대치 않은 축복의 열매들로 가득할 것이다.

    (시 37:5-6) 『[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졸장부 믿음이 아니라 대장부 믿음으로 무장할 때 내 삶의 장애물인 철병거가 사라지고 영광을 누리는 꽃마차에 올라타게 될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승리하시고 천국의 영광에 참여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글편집 : 박은우 형제

     https://youtu.be/b6rzCKe8Wr0

  • [복음 메세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교회(요한복음 13:1-11)

    [복음 메세지]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교회(요한복음 13:1-11)

    [말씀 제목]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교회(섬김)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18일 안식일 오전 예배

    [설교 말씀] 요한복음 13 : 1 – 11

     

    빌 2: 4 = “각각 자기 일을 돌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하나님의 일에 관심이 없으면, 관심은 자기자신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는 곧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 섬김을 받으려 하는 자세를 지니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다면, 이와 같은 자세를 버리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섬김의 자세는 참된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됩니다.

     

    어떻게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요 13:1)

    유월절 전,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말미암아, 교회를 섬기고 세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2) 섬김의 대상을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요 13:2)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판 가룟유다를 섬기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대상을 가리지 않으셨습니다.

    3) 세상과는 다른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요 13:4-5)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결심을 하고 낮은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섬기셨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종의 모습이셨습니다. 이와 같이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종의 자세를 가진 자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요 12:26)

     

    어떤 목적으로 섬겨야 하나요?

    섬김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목적입니다. 이는 성도를 성장시키고 세상을 섬겨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세상을 섬기는 것은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 20 : 28 =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항상 으뜸을 바라는 제자들 사이에서, 섬김의 모범을 보여 제자들에게 섬김의 메세지를 전달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교회와 성도를 섬기고 나아가 세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 만큼 힘든 일이지만, 이를 통해 세상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교회는 더욱 건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교회” 유튜브 예배 링크

     

     

     

  • [복음 메시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교회 (히브리서 3장 1절)

    [복음 메시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교회 (히브리서 3장 1절)

    [말씀제목]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교회 (히브리서 3장 1절)
     
    [설교자] 유요한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원래 뜻 ‘~~아래에 마음을 두다’ : 깊~이 생각하라
     
    1.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요?
     1)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2) 믿는 도리의 사도로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요 17:3, 18, 20:21)
     3) 대제사장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는 역할을 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 중보자이십니다. (딤전 2:5)
     
    2. 무엇을 깊이 생각해야 하나요?
    1) 예수님의 삶에 대해, 하신 말씀에 대해, 구약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눅 24:32, 행 17:11 )
    2)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빌 2:5-8, 고전 11:1)
    우리 안에 그 마음을 품고 겸손, 희생, 순종,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고 흉내라도 내야 합니다.
    3) 예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히 12:2)
     
    3. 누구에게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하신 말씀인가요? (히 3:1)
     1)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롬 1:6, 롬 8:28-30)
     2) 거룩한 형제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히 2:11-12)
     
    4. 예수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우리를 위해서 깊이 생각하라 말씀하셨습니다. (히 2:18, 엡 3:18-19)
     –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깥으로부터 오는 방해와 핍박, 내 안으로부터 나오는 신앙적인 갈등들을 이겨낼 수 있게 예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2) 충성의 원동력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히 3:2, 빌 2:8, 고전 4:2)
     –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5. 우리 교회 실천 사항!!
    ① 매일매일 예수님에 대해 생각합시다.
    ② 같은 말씀을 반복해서 생각합시다.
     무슨 일을 하던지 ‘우리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고민하고 그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결국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와 같이 되고, 또 모든 산 위에 우뚝 서서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새로운 힘을 주시고,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원합니다.
     

    유튜브 예배링크

  • [복음 메세지] 모자란 인생의 구세주 (요 2:1~11)

    [복음 메세지] 모자란 인생의 구세주 (요 2:1~11)

    [말씀제목] 모자란 인생의 구세주

    [설교자] 이요셉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1일(금) 안식일 저녁 예배

    [요2:1-11]

    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행적입니다.성서 지도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하여 걸으신 거리는 대략 50~60KM 라고 합니다. 이정도 거리를 이틀에 걸쳐 걸으려면 군인들이 행군을 하듯 열심히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혼인 잔치에 참석 하셨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한 가정에 관심을 가지시고 그들을 찾아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가정을 찾았을 때 그 가정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요2: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이 짧은 말로 그 가정이 처한 위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매우 특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맑거나 깨끗하지 않아 포도주를 음료로 많이 대용하고 있습니다. 한 랍비는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이 없다” 라고까지 표현을 하였습니다. 이렇듯이 만약에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매우 큰 실례이며 손님에 대한 모독, 주인에게 아주 큰 수치가 됩니다.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이 표현은 인간의 삶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이야기 한것으로, 인간의 인생이 어떤것인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의 삶은 모든 것이 풍족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풍요의 시대가 끝나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인간이 살게된 인생은 요한복음 에서는 마치 포도주가 모자란 것 같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본질입니다.

    인생의 본질은 하나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공급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부족하기 때문에 경쟁이 생기게 되었고 그로인해 우리는 경쟁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포도주가 모자라다는 사실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눅15:14-17]

    14 다 없이한 후 그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위 말씀속의 탕자는 자신이 궁핍 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부족한 것을 모르거나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다 채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탕자는 자신이 스스로 부족함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나의 스스로 부족함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어야 합니다.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해서 채워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부족함이 있을 때 하나님께 어떻게 요청 드립니까? 마리아는 부족함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요2:3-5]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본문 말씀을 보면 마리아는 포도주의 부족함을 가지고 예수님께 간절히 해결을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만 고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는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 대한 무관심을 표현하신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하시는 일에 인간이 관여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초월자 이십니다, 만약 어느 한 가정에 어려움이 생겼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일에 대해 이미 다 아시고 그 가정에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요청에 따라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때의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일이 있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야 할 일도 있습니다.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분별하여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해결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족함을 예수님께 고하였습니다. 성도는 어려움의 때에 간절히 구해야 할 줄도 알아야하고 잠잠히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일 하시는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2:6-10]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포도주를 채워 주실 때 본래 포도주를 담았던 통이 아니라 유대인의 결례에 사용되는 돌 항아리에 채워주셨습니다, 이것은 손님이 집에 올 때 손 발을 씻는 항아리입니다. 이런 방식을 택한 것 에도 예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먼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을 사단의 회라고 표현 하시며 우리와 분리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결례에 사용되는 항아리에 물을 붇고 그것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은 유대인의 방식으로는 모자란 인생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인간의 삶은 모자란 삶입니다, 인간들은 많은 것이 부족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우리는 부족함 가운데서 간구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마리아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 말은 좋은 방법을 알려주실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라 라는 뜻입니다. 

     내 인생이 무엇이 부족한지 알고 이것을 간구해야 하는것인지, 잠잠히 신뢰하며 믿고 기다려야 하는지 분별하는 지혜가 있는 성도여러분이 되길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유튜브 예배링크

    글쓴이 : 부산교회 김은광

  • [복음 메세지] 성령 받은 증거의 방언과 은사용 방언의 구별 근거(고전12:7~11)

    [말씀제목] 성령받은 증거의 방언과 은사용 방언의 구별근거(고전12:7~11)

    [설교자] 양봉도 목자님

    [설교일] 2022년 6월25일(토) 안식일

    고린도전서 12장 7절~11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4장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베드로전서 4장 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고린도전서 14장 3절~5절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전서 14장 13절~14절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14장 22절~23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글쓴이 김효진

  • [교육부] 2022년 하계 대학부 영은회 개최

    [교육부] 2022년 하계 대학부 영은회 개최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야곱 집과 이스라엘 집 모든 가족아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렘2:2)

    2022년 하계 대학청년부 영은회가 7.2(토)-5(화)까지 대전총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나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라는 주제로 장종규 목자님이 강의해주셨고,  결혼관에 대해서 특강을 듣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처럼 총회에 모여 대면으로 진행된 영은회라서 더욱 소중하고 은혜로왔습니다. 총  90여명이 참석하였으며 수령자도 1명있었습니다. 대학청년부들이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할수있도록 기도와 격려 부탁드립니다.

  • [복음 메시지]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복음 메시지]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말씀제목]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마19:13-15]

    [설교자] 장흥진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유대인들은 관례적으로 아이들이 1살 정도가 되었을 때, 복을 받기 위해 랍비에게 데려왔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이들을 제자들이 책망하자, 예수님께서는 몹시 분히 여기시고 제자들을 꾸짖으시며 ‘어린이’ 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며 어떤 존재인가를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13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

    15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

     

    과연 어린이가 어떤 존재이길래 이처럼 말씀하셨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가?

    먼저, 어린이는 마땅히 환영받고 영접해야할 대상입니다. [마19:14],[막10:14]

    • 어린이는 천국을 얻을 자로서 축복의 대상입니다.
    • 주님께서는 어린이가 주님 앞에 나아오는 것을 크게 기뻐하십니다.
    • 주님께서는 어린이를 존귀한 존재로서 소중히 다루십니다.
      – 어린이를 대하는 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눅9:48]
      – 어린이는 천사들을 통해 섬김을 받고 있는 구원 받을 후사입니다. [히1:14]

    두 번째로, 어린이는 마땅히 보호와 배려(곧 보살핌)를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각별한 사랑과 배려를 통한 보호와 안전을 제공해야 합니다. [민32:16-17]

    세 번째로, 어린이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끌어야 할 대상입니다. [마19:15]

    • 어린이가 주님의 축복 안에 거하도록 주님의 은혜의 자리로 이끌어줘야 합니다. [딤후1:5]
      – 부모는 아이들을 주님 앞에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대하20:13]

    마지막으로, 어린이는 말씀으로 양육해야 할 기회의 시간 안에 있는 대상입니다. [눅18:17]

    • 어린이 시기에는 의심이 적고 그대로 믿는 순수성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므로 이 때 믿음을 잘 심어줘야 합니다. [눅10:21]

     

    2. 어린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첫 번째로,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의 자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 어른들은 어린이가 하나님 안에 끝까지 거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랑과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 어린이는 우리가 섬기고 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 특히 부모가 믿지 않는 가정의 아이에게는 우리 모두가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어른들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에게 감동이 되어 ‘하나님의 품이 내가 머물러야 할 곳’임을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이가 끝까지 믿음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한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믿음의 후계가 끊기지 않도록 사랑을 듬뿍 담아 대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모두가 함께 책임을 분담하여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 예배 시간에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지 않고 큰 마음으로 사랑스럽게 바라봐야 합니다.
    • 부모가 아이를 교회에 데려오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모든 성도들이 사랑으로 함께 돌봐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교회가 성경의 교훈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성숙한 사랑 가운데서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길 원합니다.

     

    ‘어린이를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 유튜브로 시청하기

     

  • [복음 메시지] 생명의 길 (마7:13-14)

    [말씀제목]  생명의 길 (마7:13-14)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18일(토) 안식일 예배

    ♥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4)”

    첫째로 문이 좁습니다. 그래서 찾기도 힘들고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라는 말씀처럼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라고 하심처럼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 교회는 진리로 세워지고(딤전3:15), 성령이 함께 해야 합니다(요일5:7). 그래서 사도들의 진리 위에 성령이 내리는 참교회의 믿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둘째로 길이 협착합니다.

    기독교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 다른 종교에 비해 어렵습니다. 더욱이 안식일 등 교리적인 부분은 물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지키려 하는 참된 신앙의 길은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초기 사도교회도 유대인에게는 이단으로, 이방인들에게는 미움과 거리낌을 받았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길은 문도 좁고 길도 협착하다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길로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7:13)”

    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로,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통치하기를 거부하고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은 성도 이전의 삶이며 사단을 좇는 삶입니다(엡2:2-3). 본성대로가 아닌 말씀을 따라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119:9)”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둘째로 세상 사람들처럼 부를 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부자 되기를 힘쓰나 성경은 그 길이 멸망의 길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관심을 갖고 보다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살려고 애쓰지 말고 가진 바를 만족해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지나치고 불필요한 욕심의 짐을 버리고 가장 귀하고 귀한 생명의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3:5)”

    https://youtu.be/ofPDbS2r6Xc

    글 |  백현 자매

  • [복음메시지] 분노 (마5:21-26)

    [말씀제목] 분노 (마5:21-26)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도 이 말씀을 받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살인하면 그 결과는 사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살인하면 그 사람이 자기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엄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제자들과 청중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증거 하실 때, 그들은 이것이 엄중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는 ‘나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하나님 앞에 살인한 일이 없으니, 하나님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의롭게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의 참 뜻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주신 당사자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계명의 참 뜻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 마음은 무엇인가요? 이 계명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어떤 수준의 거룩을 요구하시는가요?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심판이란, 사람을 죽인 자가 받는 사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게 노하면 살인자가 받는 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형제에게 욕설하는 자는 공회의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모독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 즉 살인자는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분노’에는 ‘뒤모스(θυμός​​​)’와 ‘오르게(ὀργή​​​)’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뒤모스’란, 금방 붙었다 사그라드는 불입니다. 즉, 일시적으로 타오르는 분노입니다. 욱하다가도 금방 사그라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분노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분노는 ‘오르게’입니다.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닙니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을 통해, 분과 죄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분노를 품는 것입니다. ‘오르게’는 ‘뒤모스’와는 달리, 지속적인 분노를 가리킵니다. 지속적인 분노를 가지고 악의를 가지고 남을 해치려 하는 미움을 품는 것이 ‘오르게’입니다. 분노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해가 지도록까지입니다. 새로운 날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분노를 품고 버리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즉, 분을 내어도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뒤모스와 같은 분노를 느낄 수는 있으나, 그 분노를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아주신 것에 대해 가인이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죄의 소원은 그에게 있으나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를 죄가 되도록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악의적인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까닭은, 살인이 노하고 미워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러한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마음에는 창고가 있습니다. 그 중 분노의 창고가 있습니다. 그 창고에 두고두고 분노를 쌓아갑니다. 이 분노를 쌓아 증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것이 증오로 바뀐 후에는 말이 변합니다. 험악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눈으로 그를 보게 됩니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말이 좋게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노는 죄입니다. 분노의 창고에 분노가 쌓이면, 상대가 아무리 작은 잘못을 해도 폭발하게 됩니다. 남편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작은 일에도, 분노를 쌓아 증오를 품게 된 아내는 폭발하게 되는 것입이다. 이러한 분노의 마음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근거가 됩니다.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미련한 놈’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 말입니다. ‘똥멍청이’, ‘바보같은 놈’, ‘골빈 놈’, ‘머리 빈 깡통’ 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쌓여 증오를 품고 상대를 깔아뭉개는 것입니다. 분노를 쌓는 사람을 살인자로 규정하시는 말씀 앞에 우리는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우리가 삭이지 못하는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러한 분노를 품은 사람이 살인자입니다. 심리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80%의 부부가 마음 속의 분노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툰다면, 마음 속에 가만히 숨겨놓은 분노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80%가 적중합니다. 문제의 뿌리가 그 분노에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삭이지 못하는 분노가 있습니다. 말씀과 같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면, 우리는 몇 번씩 사랑하는 가족을 몇 번씩 죽이고 있는 것입니까? 문제는, 이 분노는 남뿐 아니라 자기도 죽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향해 분노하는 자는 예배드릴 자격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서로 분노를 안고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면 예배 전에 그 감정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그 감정을 먼저 처리하고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십니다. 분노는 이렇게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노를 놔둬서는 안됩니다. 잘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처리할 수 있을까요? 네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자기 의를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스스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해석을 듣기 전에는, 우리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비추어보니, 살인자는 바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 자기는 남보다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의로워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담긴 계명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것인지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 무지하기 때문에, 혹은 뻔뻔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도 자기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영적 치매에 걸린 것입니다.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계명을 바르게 이해하면, 계명은 살고 우리는 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분노가 가득 찼다는 것을 인정하고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분노 창고 안에 있는 상처 분노, 시기 분노, 실망 분노, 좌절 분노, 자존심 상처 분노, 애정결핍 분노 등을 확인하여 창고 정리를 해야 합니다. 분노를 확인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렇게 많이 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이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야 합니다. 그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시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저주 아래 계셨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께서 순종하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덧입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뒤에 숨어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 없이 하나님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옷입고 그 옷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옷을 입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죄로 얼룩진 옷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서야 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앞에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회개하면 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 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날 때는 화도 내고, 용서 받기도 하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들을 능력이 없으니, 이런 삶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예수님만 믿자, 예수님의 능력만 믿자, 그리고 하루에 열 두 번이라도 형제를 미워해도 어쩔 수 없으니 개의치 말자, 주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면 된다’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중요한 요구가 있으십니다. 주 안에서 살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주 앞에서 예수님처럼 살기를 작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를 잃으면, 우리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가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반드시 이루려 하는 목표를 놓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품을 때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해주셨는데, 왜 나는 분노 가운데서 살아가는지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넷째로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에 대해 잘 몰랐던 구약 시대 사람들은, 형제에 대한 분노를 느껴도 처리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은 도우미입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보혜사는 무엇입니까? 보혜사는 내 곁에서 내 연약한 것을 돕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까닭은, 내 속의 연약한 점을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즉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하시고, 과거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별 수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작은 예수로 살 수 있다고,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향하여 분노를 가질지라도 그 분노가 쌓이지 않도록,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이 있으므로 성령에 의지해야만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지하여 매일 기도하면,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까지 용서하게 됩니다.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도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잘 관리해서 죄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분노가 창고에 쌓이게 되면 결국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노로 말미암아, 내 인생과 천국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내 믿음이 깨지고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분노의 창고를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여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되고 성령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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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혜림

  • [복음 메시지] 때와 시기에 관하여 (살전 5:1~3)

    [복음 메시지] 때와 시기에 관하여 (살전 5:1~3)

    [말씀제목] 때와 시기에 관하여

    [설교자] 박은진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 (토요일) 안식일 예배

    어떤 청년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고민하는 신앙이 있는 가 반면에 이 세상 청년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고민하고 있다.

    그럼 우리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이 당장 올 것처럼 삶을 다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살전 5:1~2)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여기 본문중에 때와 시기, 주의 날은 바로 재림의 날, 종말의 날, 심판의 날이다.

    똑같은 심판의 날이지만 그날에는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형제들과 저희들 그리고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섬기지 않는 사람, 양과 염소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고 저희는 영벌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때와 시기에 관해서 우리는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종말의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영원하지가 않고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그 끝 날이 바로 심판의 날이 된다는 것이다.

    (히 9:27)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데살로니가 성도는 하루를 살아도 심판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았다.

    우리도 우리의 삶이 끝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

    그 날은 바로 심판의 날이 되고 그 심판의 날을 위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도적같이 온다

    (살전 5:2)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열처녀 비유처럼 기름을 준비한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했지만 기름을 준비 못한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

    성경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고 말씀하셨고 

    멸망의 날이 해산의 고통과 같이 홀연히 온다고 이르고 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에 관심이 많고 투자나 재테크, 보험등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영원하지가 않고  평안과 안전을 얻기 위해서  저희들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롯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소유가 많아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소돔땅을 선택했지만 이 땅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는지 그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우리도 내 생활의 평안과 안전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면 안된다

    소돔땅이 불과 유황으로 타버린것처럼 하나님은 이세상도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세상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세상의 가장 가치있는 것은 평안과 안전이 아니고, 바로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오직 깨어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잉태된 여자처럼 홀연히 도적같이 오기 때문이다.

    종말의 날만 홀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죽음도 홀연히 찾아온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고 예수님도 반드시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광중에 예수님을 맞이해야 한다.

     

    글쓴이 : 김참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