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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소개] 부산교회 전도팀을 소개합니다.

    [기관소개] 부산교회 전도팀을 소개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6~27”

     

    전도팀 구성 및 일정

    부산교회 전도 팀은 목자님, 2명의 전도임원, 및 각 신도회의 신도회장과 전도부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도팀은 매주 목요일 오전10시에 교회에 모여 정기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20분간 기도 이후 목자님 인도하에 성경공부를 진행합니다. 전도팀외에 참석을 희망하는 성도들도 함께하고 있으며 현재 약 19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 이후에 전도팀만 남아 전도회의를 진행하게 됩니다.

    전도팀 주요활동

    전도회의에서는 먼저 지난 주의 신도회별 결석자 및 조치사항에 대한 정보를 공유합니다. 또한 관리신도와 잃은 양, 전도대상자들과의 만남 및 연락 등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며, 목자님, 전도 임원들과 함께 전도 전략을 논의하고 심방 일정을 수립합니다. 회의 후에는 점심식사를 함께하고 심방이 예정되어 있다면 심방을 실시합니다. 또한 매월 셋째 주에는 잃은 양과 전도대상자를 위한 우편 발송을 준비하여 전달합니다. 작년까지는 빛처럼 소책자를 발송했으나 올해는 교회 소개와 간증 등을 담은 전도지를 만들어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주 안식일 주보를 꾸준히 발송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소금처럼 교회 온라인 소식지를 관리하여 신도들과 전도 대상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작업 중에 있습니다.

    전도팀 행사계획

    평일에 참석하지 못하는 전도팀원들을 위하여 네이버밴드를 활용하여 매주 각 신도회별 상황을 공유하고 있으며, 매주 안식일 신도회장 모임시간에 관리신도 및 전도대상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올해부터는 저녁 9시 전성도 zoom기도회를 통해 전도에 힘쓰고, 올바른 기도생활을 세우는 한 몸 교회가 되기 위하여 힘쓰고 있습니다. 해의 첫 전도 행사는 4월 20일에 예정되어 있는 온가족 초청예배입니다. 초청예배를 위하여, 기도 및 초청장 전달과 문고리 활동 등이 진행 중입니다. 이 행사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 많은 잃은 양들의 발걸음을 교회로 이끌어주고, 전도대상자들이 교회로의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도팀 봄나들이

    2024년 봄을 맞아 목요일 전도 & 성경공부팀의 단합을 위한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부산에서 가까운 양산 법기수원지로 봄바람을 느껴 보려 했습니다. 3월 21일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그날은 예상치 못한 추운 날씨였습니다. 수원지 일대를 산책하며 자연을 감상하고 사진도 찍으며 춥지만 밖으로 나온 기분을 즐겼습니다. 깔끔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니 따뜻한 햇살이 다시 봄임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예쁜 꽃들은 구경하지 못했지만, 꽃 같은 우리 팀원들과 함께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최영애 // 편집: 방태식

  • [복음 메세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마 18:21~35)

    [복음 메세지]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 (마 18:21~35)

     

    말씀 제목: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라(마18:21-35)
    설교자:이요셉 목자
    설교일:2024년 2월 17일 안식일 오전

    우리나라에는 과거사 정리 위원회라는 기관이 있다 이 기관은 옛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내는 목적이 있다. 이 기관에 처음 접수된 건이 10860건에 달할 정도로 많이 접수 되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금 당장에 할 일 이 아닌 지난 일에 매여 사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억울함에 있다. 사람의 마음에 억울함이 있으면 매사에 불화가 생기고 의견이 분열되고 또 발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에 과거사 정리 위원회라는 기관이 존재한다.
    신앙생활을 할 때 과거를 정리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사실이 있다면 회개기도를 통해 정리 하여야하고 또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용서를 기억하여 용서를 할 줄 아는 참예수교회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용서란 무엇인가?
    [마18: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원문에서 용서는 풀어주다, 놓아 주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 일에 대하여 잊고 놓아주라는 뜻이다. 용서를 하는데 이유가 필요하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을 했을 때에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보며 우리도 무조건적인 용서를 해야 한다.

    2.용서의 순서(마5:23~26)
    [마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죄의 빚을 한 호리(땡전 한 푼)까지 다 갚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순서이다.
    우리가 사람에게 지은 죄는 그 사람에게 용서를 받는 것이 순서라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할 지라도 용서를 받지 않는다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소용이 없다. 또한 진실한 사과가 있다면 진실한 용서가 뒤 따라야 한다. 믿음 안에서 사과 하는 것도 의무지만 용서 하는 것도 의무이다.

    3.용서해야 하는 이유(마18:23~34)
    [엡4:32] “서로가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본문에 비유에 따라 성도들의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는 것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도 이와 같이 하나님을 본받아 대가가 있는 것이 아닌 이유 없는 용서를 해야 한다.

    4.용서하지 않는 것의 결말 (마18:34~35)
    [시109:7] “저가 판단을 받을 때에 죄를 지고 나오게 하시며 그 기도가 죄로 변케 하시며”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고 계속 기도를 하게 된다면 그 기도는 죄가 되며 그 죄로 인해 우리는 한번 예수님을 통해 용서를 받았지만 하나님의 재림의 심판에서는 용서를 받지 못해 지옥에 형벌을 받게 된다.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일한 것처럼 우리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하여 진실을 밝히고 화해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방법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으로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방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 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납 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 [복음 메세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복음 메세지]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23.10.28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ㄴ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설교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신앙생활은 결국 죄와 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죄와 싸우게 될까? 타락의 가능성이 있을까?

     

    죄 = 하나님에게서 벗어난 것.

     

    실질적으로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피조물은 반드시 그 명령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로봇으로 만든 것이 아닌, 감히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천국에 가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있다.”

    그렇다면 거기에서도 죄를 지어 재타락할 수 있는 걸까? “전혀 없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 관계 (화목하냐, 불화하냐)

     

    하나님과 함께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을 때 그곳(집, 교회, 학교 등)이 천국이 됨.

    (출 19:22) 하나님과 불화하면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돌격을 당하게 됨. (진노를 받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진노를 받아야 했던 대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됨.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됨)

     

    단순히 성경 통독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진 않음. 어떠한 계기를 통해 더 고차원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 (ex. 욥)

     

    ?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부르신 걸까 ?

     

    1. 우리를 단순히 적당히 착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과 같은 존재,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부르심.
    2.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추구하지 않으면 말세의 죄의 유혹을 견디지 못함.
      -> 나중에는 성막만 무사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소와 지성소만 무사함. 그곳을 제외한 나머지도 밟히게 됨.

     

    즉,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면 결국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음.

     

    ? 어떻게 하면 더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

     

    관계의 종류

    1. 원수 같은 아들
    2. 종 같은 아들
    3. 친구 같은 아들 (요 15:15)
    4. 신부 같은 아들 (계 21:2) = 교회의 마지막, 완전한 모습. = 하나님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된 상태.

     

     

    <웬수 같은 아들>

     

    (눅 15:11) 아비에게는 2명의 웬수 같은 아들이 있었으나, 둘째는 재산을 미리 상속받고 떠나 방탕한 생활을 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여도 방탕하게 쾌락을 추구하며 살다보면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밖에 없음.

     

    세상을 사랑해 세상으로 향했다. = (요일 2:15-16) 세상의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다.

    => 웬수 같은 아들.

     

    둘째는 집 나간 웬수라면, 첫째는 집 안의 웬수였다.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첫째는 헤아리지 못함.

    첫째가 웬수인 이유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이고 은혜임에도,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함. (아버지와의 관계가 깊지 못함)

  • [교회소식] 8.15 거제교회 세례식

    [교회소식] 8.15 거제교회 세례식

    지난 8월 15일, 거제교회에 세례식이 있었습니다.

     

    장소는 늘 그랬듯이 거제 옥화마을 바다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수세자는 김도연 자매님, 아들 윤채민, 그리고 지광자 자매님의 모친인 김계순 모친이었습니다.

     

     

    셋 모두 무사히 세례식을 마치고, 세족례까지 마치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세 사람의 신앙 생활을 응원해주시고,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

     

  • [복음메세지] 존귀한 자의 기도

    [복음메세지] 존귀한 자의 기도

    2023.9.16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ㄴ이미지를 클릭하면 해당 설교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존귀하다: 지위나 신분이 높고 귀하다.

    세상에서의 존귀함은 자존감, 학벌, 직업, 명예 등으로 귀하다는 것을 나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존귀한 자.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셨고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주셨기 때문.

     

    “존귀함“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게에서 비롯되어 나에게 덧입혀지는 것.

    존귀함 ≒ 무겁게 여기다. 영광.

     

    (삼상 2:30) “존중히” = 무겁게 여기다.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무겁게 여기신다는 것.

    => 즉, 존귀함은 세상물질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 시인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영광이 됨.

     

    ***

     

    없으면 더 불편한, 덜 불편한 손가락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에게 더 존귀함을 받는 사람이 있다. (ex.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모세, 요셉, 바울…)

     

    ?특별히 존귀함을 받는 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대상 4:10)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심. -> 하나님께서 야베를 더 존귀하게 여기신다는 것.

    야베스처럼 하나님께서 특별히 존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바로 들어주심.

     

    ?야베스는 어떻게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쌓았고, 야베스는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했을까?

    (대상 4:9) 야베스의 어머니는 고통 속에 야베스를 낳음 -> 그 고통과 결핍 속에 야베스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함.

    우리의 인생에 고통이 없는 것도 좋지만, 이 고통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진다면 그 고통도 복이 됨.

    (대상 4:10) 야베스는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

     -“복에 복” -> 히브리어의 문법. 필연적 강조.

     -“지경을 넓히다” -> 자신의 물질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확장.

     -“환난” -> 악한 일.

     -“근심” -> 수고 (대상 4:9) = 고통이 없게 해달라. or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게 해달라.

    => 이 기도들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즉시 허락된 기도.

  • [교회행사] 학생부 친구초청예배

    [교회행사] 학생부 친구초청예배

    지난 6월 3일, 거제교회에서 학생부 친구초청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록, 친구들의 일정이 맞지 않아 새친구들이 한 명도 오지 못했지만, 학생부 친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선생님들이 여기저기 풍선을 달고 꾸미며, 여러가지를 준비하였고, 목자님의 좋은 말씀도 함께 듣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뚜껑 컬링, 입으로 하는 축구 등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마지막에는 준비해주신 재료들로 샌드위치를 직접 만들어먹으며 즐거운 교제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 [교회행사] 아동부 말씀있데이!

    [교회행사] 아동부 말씀있데이!

    지난 6월 10일, 거제교회에서 말씀 있데이(Day)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아동부들은 3개의 조로 나뉘어 각 장소에 도착해, 미션을 클리어하고 총 3개의 도장을 받아오면 되는, 천로역정과 아주 비슷한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찬양 이어부르기, 조각난 말씀 이어붙이기, 문제 맞히기 총 3개의 미션을 수행하였습니다.

    중간중간 옆에 선생님들이 함께하며 어려운 부분을 도와주기도 하셨고, 날이 너무 더워 맛있는 수박을 먹으며 더위를 식히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조가 3개의 도장을 가져왔고, 아동부 모두가 1등을 했다는 의미로 모두에게 초콜릿 금메달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시상은 목자님께서 직접 해주셨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 [복음메세지] 나는 죽으나

    [복음메세지] 나는 죽으나

    2023.4.22. 안식일 오전. 윤석원 목자님 설교

    [나는 죽으나] 창 50:24-26

     

    https://youtube.com/live/LIbgx5QpR5M?feature=share

     

    종교인은 사후세계도 준비하지만, 막상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서 하늘에 있는 금고를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창 5) 하나님께서 데려가 하늘로 승천한 에녹을 제외하곤 사람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죽음은 비통하고 애통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때로는 기쁜 일이기도 하다.

     

    (창 5:1-2) 이 구절은 의미 없이 쓴 구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심을 한 번 더 작성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에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알려준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담이 자신의 형상을 닮은 아들을 낳음)

    =>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간다는 생명의 족보인 것이다.

     

    *이 생명의 족보에서의 죽음: 모든 사명을 마치고, 하나님의 품에 돌아간 것.

    하지만, 창6 이후로 하나님의 백성이 육체가 되어버려 낳는 걸로 하나님의 형상을 계승할 수 없게 됐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

    “한 사람”을 선택해 하나님의 말을 듣고 언약을 지키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있게 하심.

    그 첫 번째 사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그래서, 아브라함이 후처를 두고 많은 자식을 낳아도 ‘아브라함의 자식’은 이삭 1명

     

    (창 25:8) 열조: 백성, 국가. /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고 이어받은 조상에게로 돌아감.

    (창 35:9) 이삭도 그 열조에게로 돌아감.

    => 하나님의 사명을 모두 완수하고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감.

     

    (창 50:25)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약속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음.

    요셉의 이런 죽음에 대한 평온함과 소망은, 야곱에게서 전승된 것. (창 40:21)

    (수 23:14) “온 세상이 가는 길”: ‘나는 죽으나’의 일꾼 ver.

    (왕상 2:1-2) “온 세상이 가는 길” -> 하나님이 모든 일을 완수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말.

     

    여호수아: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정복해 이스라엘 백성이 살 수 있도록 한 사람.

    다윗: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을 완성한 사람. (나일강 ~ 유프라테스강)

     

    이 여호수아와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그 뜻을 완수한 사람들.

  • [복음 메세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복음 메세지]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요 14:27)

    [말씀제목]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설교자] 이요셉 목자

    [설교일] 2023년 2월 18일(토) 안식일 오전 예배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꿀벌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꽃이 피는 봄입니다. 반대로 꿀벌이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장마가 있는 여름입니다. 높은 습도와 병, 부족한 먹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내 일에 집중하고 해야 할 일에 힘을 쓰다보면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든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만 힘들까요?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심지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곤충의 세계에서도 스트레스 받으며 사투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일반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학업, 취업, 결혼, 경제적 문제 등과 같은 문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병원에서도 병명이 없는, 이유가 없는 병이 많이 생겼습니다. 의사들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격적으로 보았을 때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심령의 근심은 스트레스를 말합니다. 스트레스가 많으면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고 많은 노력을 하며 살아갑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마음의 평안함은 매우 중요하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시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이 평안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집니다. 바울사도의 서신에서도 성도들을 축복하는 내용을 보면 예외 없이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라는 표현이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것 이것이 하나님께서도 원하시는 것이고 신앙 안에서도 참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구하는 평안은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평안입니다. 오늘 본문 내용에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현재 예수님의 심적 상태가 평안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안하다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이 임박함을 알고 계셨던 때였습니다.

     

    [요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의 육신적인 입장에서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큰 환란이 오고 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평안하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누리신 마음의 고요함이 우리의 평안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괴로운 것, 성가신 것이 없다면 평안할 텐데 라고 생각하겠지만 예수님의 평안은 세상의 것과 같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생각해 보면 세상에도 평안이 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평안은 어떨까요? 첫째로 세상의 평안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에 나의 평안을 이루기 위해서는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세상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내가 웃으려면 누군가는 울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 세상의 만족과 그것을 인해 찾아오는 평안이 그렇게 고급한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하나를 얻었다고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골고루 갖추어져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얻었다고 하여 전부를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평안하려면 많은 요소가 필요합니다. 비교적 젊은 청년의 시대에는 골고루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있으면 될 줄 알고 그것을 위해서 쫓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하려면 돈, 건강, 가족, 지식 등등 많은 것들이 고루 있어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어떤 하나만 얻었다고 하여 다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었다 한들 그것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셋째로 세상의 평안은 일시적이고 기쁨과 함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만족을 얻기 위해서 타인과 나를 비교합니다.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나은 곳에 있다고 느끼고 만족을 얻고 기쁨을 얻으려고 합니다.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것이 이것입니다. 요즘은 sns을 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찍어서 올린 것을 볼 때에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고 그것을 보면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지고 내 인생이 저급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사람이 누리는 평안은 온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님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건강하고, 걱정이 없다면 그것은 좋은 것이고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평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좋은 것이고 세상의 것은 다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평안을 주실까요? 본문에서는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돈이나 건강을 직접적으로 주신다는 뜻일까요? 이것은 상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내가 맺는 신앙의 열매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평안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화목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안이 있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났고 자라나며 자기의 욕심을 따라 행동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죄에 물들어 있고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할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상태는 마치 고아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보호하심 없이 사는 것에 큰 문제를 느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을 고아처럼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화평해 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것이 없이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님께서 설립하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해졌습니다.

     

    [고후 5:20]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화목한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 안에 있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집 안에 있기 때문에 평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도 속이 상하고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백성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평안하셨던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다 순종하셨고 말씀하신 것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안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임의대로 살아가면 마음이 평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면 불안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은 비교적 형통하게 살아가나 그 삶속에 풍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와중에 풍랑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의 상태가 매우 고요하고 평안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평안할 수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실패는 하나님의 실패가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평안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과 화평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출렁이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평안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너그럽고 평안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럽고 평안하게 대하는 법입니다.

     

    평안에는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요동쳐도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런 평안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도 마음이 요동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조건과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나이가 들수록 많은 문제들이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평안을 배워서 이것으로 믿음을 얻어야합니다.

    (예배링크)

  • [성도간증]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공관택 형제)

    [성도간증]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공관택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간증하겠습니다.

     

    간증을 하기 앞서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부족한 능력을 가졌지만 합격을 하게 해 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저라는 사람을 스스로 돌아보면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은 ‘제가 신학에 합격하게 된 것은 정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늘 간증은 저를 신학 지원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제 인생에 정말 많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있었지만 오늘 간증은 이 신학 지원과 관련된 것 혹은 그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것들 위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원래 신학 지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조금 믿음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사실 신학 지원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굉장히 억압받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신앙을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모태신앙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분들은 공감하실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일예배와 안식일에 교회를 빠지는 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부터 시작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주말에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분위기 속에서 자라다 보니까 교회에서만큼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모범적인 학생으로 보이려 애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른들께서 저를 보시면 밝게 웃으시면서 ‘관택이는 나중에 목자님이 돼야겠구나!’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제 마음의 중심을 알기 때문에, 나름 신앙에 대한 열심을 가진 이후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의 인식이 ‘저 사람은 신학을 하려고 하니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거야’라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절대 신학은 안해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참 신기한 점은 저는 신학을 절대 지원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신학 지원을 준비하면서 제 삶을 돌아본 결과 가장 크게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제 삶을 신학 지원으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아직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제 삶의 어떤 부분을 돌아보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는 첫번째 사건은 제가 5살에서 6살 시절 대방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안식일 오전 말씀을 마치고 기도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한창 탱탱볼을 가지고 노는 걸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이제 옆에 계셨던 어머니를 졸라서 아직 예배가 안 끝났는데 나가서 놀고 싶다고 옆에서 자꾸 찡얼대니까 어머니가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교회 앞 도로에서 탱탱볼을 던지며 놀다가 이 탱탱볼을 쫓아 도로 가운데로 뛰어들었고 트럭에 치여 날아가 머리부터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차에 치인 제 모습을 보시고 제가 바보가 될 거라 생각하셨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10일 정도 입원하고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한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말씀드리면 부모님께서 이 사건을 계기로 예배 시간 엄수와 예배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가르치게 되셨다는 점과 다른 한 가지는 제가 무사히 낫게 되면 꼭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시켜야겠다고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 이후로 제가 자라는 환경이 신앙 안에서 바른 환경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다음은 시간이 조금 지나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성령을 받았던 일입니다. 성령을 받은 기억은 모두가 특별하지만 저에게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성령을 굉장히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장흥진 목자님이 거제교회 목자님으로 부임하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고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특별 기도회를 하셨습니다. 제가 성령을 받은 날도 기도회를 하는 중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을 때 몸에 번개를 맞은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으며 성령을 굉장히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기도가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막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온몸이 떨리는 진동이 없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만하게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두번째는 제가 성령을 받을 당시 눈을 감은 상태에서 딱 한 장면만 계속 반복해서 보였는데 저희 어머니가 얼굴 볼살이 살짝 패인 상태로 피골이 상접한 그 정도까지는 아니기는 하지만 그런 얼굴로 굉장히 힘든데 인자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그 장면이 계속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의 그 모습을 보면서 죄송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사실 이 장면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겪는 일(아버지의 교통사고)을 그때 미리 알려주신 게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중, 고등학생 시절 있었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진로문제와 관련되어 있는데요 중학생때부터 지금까지도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라따뚜이’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한 생쥐가 요리사의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는 영화인데 누구나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와 요리사의 꿈을 이루는 생쥐를 보며 저도 요리사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혼자 요리를 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잘한다고 생각되는 시점에 큰 기대를 가지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는데요 절대 안 된다 반대를 하셨습니다. 이유는 신앙생활을 하기 어려운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한 번쯤은 고민하실 줄 알았는데 바로 단칼에 거절을 당하니까 정말 섭섭했습니다. 이때부터 학교성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니까 공부를 해야 될 의욕도 없어졌고 막바지에는 학생부 영은회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까지 신앙생활에도 공부에도 그렇다고 무언가 다른 진로를 찾는 것에도 의욕이 없이 무의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동시에 이때부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습니다. 자는데 똑바로 누워서 잠을 자려고 하면 진짜 심했을 때는 하룻 밤 사이에도 몇 번씩 눌려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옆으로 누워서 자야 잠들 수 있을 정도로 심했는데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것도 오랜 기간 동안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요셉 목사님이 부임하셨을 때 상담을 받고 제가 겪는 상황이 문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새벽 기도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제 신앙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고 새벽 기도를 하면서 함께 기도한 성도님들과 눈을 감은 상태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적인 세계라는 게 정말로 있구나라는 것을 이 시기에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기도하는 과정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도 찾고 요리에 대한 진로는 취미로 놓고, 제 향후 진로에 대해서도 크게 고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위눌림에 대한 내용은 뒷 내용에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이과에 가야 취업이 잘 된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했고 요셉 목자님과의 상담을 따라서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기계공학과 입학 이후 전공을 듣기 시작하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수업만 듣고 시험기간에 살짝 몰아서 공부하면 반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까지는 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저는 나름대로 공부머리가 있고 공부를 제대로 하면 공부를 잘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역학과 대학수학 쪽의 과목들은 자신감이 완전히 꺾일 정도로 성적이 안 나왔습니다. 저는 이 시간이 제 마음의 교만함을 꺾어주신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을 때 부모님께서 저에게 신학 지원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신학을 지원하면 무조건 붙을 것이고 꼼짝없이 목자님을 해야 되는데 목자님은 하기 싫다 이런 교만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때 공부해도 제 마음대로 안되는 대학 시절을 통해 겸손한 마음을 가르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교통사고-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그리고 군 생활 중에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8년 5월 14일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실려가실 때 한 번 저희 옆을 지나갔는데 얼굴이 너무 퉁퉁 부어있어서 가족 모두가 못 알아봤습니다. 이후 나중에 한 번 더 지나갈 때 그때 보고 아버지인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수술방에 들어가기 직전에 아버지의 몰골을 봤는데요 얼굴에 멍이 없는 곳이 없고 머리가 사람 머리가 이렇게 부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 크게 부어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후부터 보호자 대기실에서 보낸 3일은 저한테 괴로움으로는 가장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국어 문학 작품을 보면 가슴이 메인다라는 표현을 보며 이게 무슨 느낌인지 궁금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때 무슨 느낌인지 알았습니다. 가슴속 한가운데가 걸레처럼 짜이는 듯한 느낌이 나고 뭔가 항상 걸려 있는 것처럼 물을 마셔도 밥을 먹어도 잘 안 넘어갑니다. 눈이 고장 난 것처럼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진짜 이렇게 계속 살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곳을 찾다가 찾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 칸에 들어가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습니다. 처음엔 뭘 구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냥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 감사하게도요 이 기간이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똑같이 화장실 칸에 들어가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아무런 근거도 그냥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을 들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냥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때 저는 즉시 알았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마음이 분명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제 삶을 주관하신다는 것을 크게 깨달았습니다.

     

    전역 이후 하나님께서 제 인생에 계획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지금의 생활을 열심히 살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땠을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죽어가는 모습으로 수술방에 들어가는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고 진심으로 제가 아플 수 있다면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마음이 무엇인지 느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나와 사람들을 보시는 마음과 시선에 대해 깊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쓰임이 신학이라면 신학 지원을 해야겠다고 이때 결심했습니다.

     

    장종규 목자님께서 저에게 2020년도에 신학 지원 권유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신학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목자님이 신학 권유를 해주시기 이전에 신학 권유를 처음으로 해주셨던 분이 어머니였기 때문에 먼저 신학 지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고 어머니는 저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관택아, 너는 눈치가 없고 융통성이 없기 때문에 사회생활을 좀 하고 신학 지원을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이번 19기가 아니라 다음이나 그 다음 지원을 목표로 우선 대학을 먼저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사회생활을 한 뒤 신학을 지원하기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2학기를 넘어가는 중에 아버지가 퇴원을 해서 집에 오셨습니다. 사고 직후와 비교하면 많이 회복되었지만 숨 쉬는 것 이외에는 전부 가족들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이기에 휴학을 하고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 간병과 동시에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결과 휴학 기간 동안 공부를 해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1년 9월부터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책임감과 의지를 굳게 가진 덕분인지 성적이 빠르게 만들어지면서 이대로 유지하면 6월 지방직 시험에 합격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1년 12월에서 22년 1월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 아버지가 결석 때문에 잠깐 입원한 응급실에서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전체적으로 악화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자 지금 제가 하는 일이 맞는 건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때 장종규 목자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목자님은 저희 가정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막힌다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가 제가 19기에 바로 신학 지원을 안 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소에 부드럽게 돌려서 말씀하시던 목자님이 바로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니까 당시 저는 그 말씀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도 지금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게 맞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 신학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와 한 약속이 생각나 한번 어머니의 뒤로 숨었습니다. ‘어머니가 사회생활을 하고 신학 지원 하길 원하셔서 저 혼자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말씀드렸더니 목자님이 바로 어머니께 연락하셔서 저와 함께 부르신 뒤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자님이 아주 강력하게 어머니까지 설득하시고 나서 저는 꼼짝없이 이제 신학 지원을 하게 됐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확신은 없었습니다. 꼭 지금 신학 지원을 해야 될까 정말 지금 신학 지원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 맞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저에게 신학 지원에 대한 믿음을 더하게 해 주셨습니다. 신학 지원을 확정짓고 나서부터 학생때부터 눌리던 가위에 전혀 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평소 저는 가위 때문에 잠자리가 굉장히 예민해서 보통 눈을 감고 잠들 때까지 최소 30분은 정신이 깨어 있는 채로 누워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심 이후로는 누웠다 하면 잠들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새벽기도 생활을 하면서 가위에 눌리는 빈도가 많이 줄었지만 주기적으로 가위는 눌렸었는데 이 이후로는 전혀 눌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을 푹 자기 시작한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다 22년 10월 아버지가 누워 계시기 때문에 법적인 처리를 대신 할 수 있도록 하는 성년후견개시 심판 청구라는 제도를 신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법원에 저를 후견인으로 인정해 아버지의 법적인 의사 표현을 제가 대신하도록 신청하는 서류를 제출했는데 후견인이 되면 주기적으로 법원에 가서 당사자의 재산을 어떻게 썼는지에 대한 보고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상하게 서류를 제출하기 전날이랑 제출하고 온 날 이틀 연속으로 가위에 눌렸습니다. 그래서 그때 알았습니다. 여태까지 내가 가위에 눌리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구나 그렇다면 지금은 왜 가위에 눌렸을지를 생각해본 결과 그때 제가 한창 신학지원서를 작성하는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 아무래도 저를 후견인으로 신청해서 가위에 눌리는 것 같으니 후견인을 바꾸는게 좋겠다 말씀드렸고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뒤로부터 지금까지 전혀 가위에 눌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바램이었던 사회생활도 좋은 기회를 얻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신학지원을 위해 신앙과정을 정리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통해 여기까지 오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믿음의 가정에서 모태 신앙으로 태어나 신앙적으로 바르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고요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할 수조차 없게끔 여러 가지 체험들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학 지원하는 데 있어서 얽매이지 말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지원하도록 두시지 않고 지금 지원해야 된다고 강력하게 알려주셨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것들을 알고 나니까 도저히 신학 지원에 대한 제 뜻이 어떤지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지금 저를 둘러싼 상황들을 고려한다면 저는 신학 지원을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아버지가 집에 여전히 누워 계시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가운데 있습니다. 사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 경제적인 것보다 아버지를 돌보는 간병 일이 굉장히 힘들고 일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신학 지원을 한 이유는 제 인생을 하나님께서 올해 신학 지원으로 이끌어주신 것처럼 저희 가정 또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지원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누워만 계시는 아버지가 계셔서 아직도 가끔씩 의심이 마음에 쌓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때면 기도할 때도 믿음 없는 기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저 신학 못합니다. 꼭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제가 정말 하나님만 믿고 신학을 지원 했으니까 책임져주세요’ 라고요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하나님께서 제 삶을 인도하셔서 신학 지원의 길로 인도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동시에 아직도 제 눈앞의 현실은 막막한 상태입니다. 그래도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서 이 길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간증을 읽는 성도님들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