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tjc-admin

  • 성찬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성찬례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주의 살과 피에 동참하여 주와 연합하고 영생을 받으며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성례임을 믿는다. 이 성례는 필요할 때마다 거행하며 반드시 한 개의 누룩 없는 떡과 포도즙으로 거행한다.

    성찬례는 구약 출애굽 시대에 시작된 유월절 절기에 유대인들이 가지는 특별한 식사가 신약 시대에 개혁되어 나타난 기독교의 성례입니다.

    이 성례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1)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전 5:7)

     

    2)주님의 살과 피에 참예하여 주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 4:4-5)

     

    3)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영생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요6:53-54)

     

    4)힘을 합해서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11:26)

     

    5)성찬례는 성경적 절차와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세례라는 성례와 마찬가지로 성찬례도 그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도록 성경적 절차와 방법대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 절차와 방법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해야만 그 성찬례에 담긴 온전한 정신과 영적인 의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10:17)

     

     

     

  • 세족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족례는 주님과 상관을 맺고 서로 사랑하고 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을 가르치는 성례이며 세례(침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족례를 일차 행하며 신자들 상호간의 세족례는 필요시에 시행할 수 있음을 믿는다.

    교회가 담고 있는 교리에는 공통된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어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완전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들입니다.
    참예수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 가지 성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세례, 성찬례, 세족례입니다.
    그 가운데 세족례는 발을 씻기는 성례로 십자가 사건 직전 유월절 만찬에서 주님이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본회에서는 이를 하나의 성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족례가 하나의 성례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우리를 그 안에 담고 있는 구원으로 인도할 귀중한 교훈들은 무엇일까요?

    1) 세족례는 예수님과 상관을 맺게 만듭니다.

    세족례가 교회에서 하나의 성례로 성립되는 근거 중에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중에 나타난 ‘상관’이란 단어 때문입니다.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선언은 천국의 기업, 천국의 몫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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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족례에는 사랑,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이 있습니다.

    세족례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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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족례 시행은 성경적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 즉, 물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 세족례를 시행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물세례를 먼저 받은 성도라야 세족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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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령에 대한 우리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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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을 받는 것은 천국의 기업을 얻는 보증이며 방언(영언)을 말하는 것은 성령을 받은 증거가 됨을 믿는다.
     

    오순절에 내린 성령은 구약 시대에도 존재한 성령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별됩니다.

    첫째, 이 성령은 구약 시대의 것과 구별되는 ‘약속의 성령’입니다.

    성령이 이미 존재하셨던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은 여러 예언자들을 통해 이 특별한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7)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2:33)

    둘째, 이 성령은 십자가 사건의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바로 이 ‘약속의 성령’을 부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이후에야 ‘약속의 성령’이 이 땅에 임하셨습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부활, 승천의 결과로 주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약속의 성령’도 인간에게 주어질 수 없었습니다.
    신약 시대 성도의 구원을 위해 ‘약속의 성령’이 꼭 필요했고 주님은 그것을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오시리니 (요 16:7)

    셋째, 이 성령은 거듭남의 한 요소인 ‘성령세례’입니다.

    요한복음 3장을 살펴보면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라는 인물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중생)의 중요함에 대해서 밝히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하는데 그 의미는 물과 성령으로 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여기서 물은 ‘물세례’를 가리키고 성령이란 ‘성령세례’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오순절에 내린 ‘약속의 성령’ 즉 ‘성령세례’는 매우 중요한 구원의 요소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받아야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앙인이 ‘성령세례’ 또는 ‘약속의 성령’을 받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1)성령을 받는 것은 천국 기업을 상속하는 증거가 됩니다.

    성경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비유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재산 상속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가치의 유산을 영원히 상속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 약속을 확실히 지키겠다는 뜻으로 인(印 도장)을 찍어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 인을 찍어 보증하신 일이 바로 ‘약속의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종종 이 일에 대해 ‘성령으로 인쳤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3-14)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고후 5:5)

    2)성령은 성도의 신앙생활의  [보혜사]가 되십니다.

    성령은 천국 기업의 보증으로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천국을 소망하며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성도에게 여러 가지 실제적인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비록 성도는 천국의 약속은 받은 존재지만 이 땅에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거듭난 성도에게도 역시 고난과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불신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을 통해‘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얻었기에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마치 부모는 타인의 자녀가 아니라 내 자녀에게 온갖 관심을 쏟고 필요를 공급하며 보살피듯이 성령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별한 보살핌을 받습니다.
    그래서 비록 이 땅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우리 안에 성령께서 위로하시고 상담해주시며 감당하는 능력과 은혜를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을 일컬어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보혜사란 상담자, 조력자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8: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3)방언이 성령을 받은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내주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승천 직후 오순절 절기에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령이 내리실 때처럼 방언(또는 영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방언을 성령 받은 증거로 삼아야 할까요?

    첫째, 믿는 것이 곧 성령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믿으면 곧 성령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내용들을 살펴 볼 때 믿는다고 곧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성령의 내주는 별개의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19장 2절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만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그 질문을 받은 제자들은 대답하기를 아직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 후 안수하자 성령을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행 19:2)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행 19:6-7)

    둘째, 세례를 받은 것이 곧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에서 빌립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다시 베드로와 요한이 내려가서 성령받기 위해 안수 기도했습니다.
    만약 예수를 믿었거나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충분했다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성령을 구하며 안수한 것은 너무도 이상한 행동이 됩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마리아의 제자들이 세례 받은 것으로 불충분하고 성령을 받게 하기 위해서 안수받아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본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 8:16)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셋째, 선행을 한다고 성령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이 그의 기도와 구제를 기억하실 만큼 신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성령은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시고 그를 지시하셔서 베드로를 만난 후에야 비로소 그 가족들이 성령세례와 물세례를 받게 됩니다.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 10: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4)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행 11:15)

    넷째,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다고 성령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언젠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은 성령이 아니면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고전 12:3). 그러나 베드로가 그 때 약속의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 절기에야 비로소 성령을 받았습니다.
    오순절  만약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것만으로 구원이 보장되었다면 오순절에 다시 ‘성령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만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

     

    4)사도행전에서 성령을 받을 때는 방언을 말했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까? 
    첫째, 오순절 날의 사도들의 체험에서(행 2:1-4) 둘째, 고넬료 가정에서의 체험에서(행 10:44-48) 셋째, 에베소 교인들의 체험에서(행 19:1-5) 그 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되는 성령세례의 공통적 현상은 방언을 말하는 것입니다.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3-4)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 10:45-46)

    [5]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6]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7]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행 19:5-7)

     

    위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보아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임했던 성령 강림은 구약의 성령의 역사와는 뚜렷이 구별됩니다. 그리고 성령세례의 구체적인 증거는 방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을 때 방언을 말하는 현상은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 사도교회를 계승하는 본 교회 안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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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례(침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생의 성례이며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베풀며 세례를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이고 전신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함을 믿는다.
     

    세례(침례)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중생(거듭남)합니다.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대속(대신 값을 치름)하려면 인간의 몸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흠없이 창조하신 것처럼 아무 흠이 없는 존재가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이 조건을 만족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19)

    우리가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우리가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7)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5)

    세례는 이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20:22-23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면서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20:22-23)

    세례는 성경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받아야 합니다.

    성경적 올바른 세례는 무엇일까요?

    첫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마28:19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란 사실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해야 옳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 곧 예수. 아들의 이름, 곧 예수. 성령의 이름, 곧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여러 곳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인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10:48)

    둘째, 흐르는 물에서 전신이 물에 잠겨야 합니다.

    본래 세례는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례였고, 세례의 문자적인 의미도 또한 ‘물에 잠기다’라는 헬라어 동사 ‘밥티조’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이디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을 때, ‘물에서 올라왔다’는 표현은 이런 침례가 시행된 사실을 증명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3:16)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8:39)

    셋째,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죄인의 마땅한 태도이며 그분의 죽음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하시는 장면에서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9:30). 세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성례라면 마땅히 그분의 죽으심의 모양을 본받는 형태여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머리를 숙이고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19:30)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5)

  • 제4항 세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세례(침례)는 죄사함을 받는 중생의 성례이며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흐르는 물에서 베풀며 세례를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이고 전신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함을 믿는다.

    세례(침례)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중생(거듭남)합니다.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을 대속(대신 값을 치름)하려면 인간의 몸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흠없이 창조하신 것처럼 아무 흠이 없는 존재가 제물로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습니다. 이 조건을 만족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 1:18-19)

    우리가 물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같이 죄에 대해서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우리가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7)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5)

    세례는 이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 20:22-23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면서,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22-23)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는 성경이 제시하는 방법대로 받아야 합니다.

    성경적 올바른 세례는 무엇일까요?

    첫째, 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합니다.

    마 28:19의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란 사실 ‘예수’라는 하나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석해야 옳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 곧 예수. 아들의 이름, 곧 예수. 성령의 이름, 곧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의 여러 곳에서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인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 10:48)

    둘째, 흐르는 물에서 전신이 물에 잠겨야 합니다.

    본래 세례는 온몸이 물에 잠기는 침례였고, 세례의 문자적인 의미도 또한 ‘물에 잠기다’라는 헬라어 동사 ‘밥티조’에서 유래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이디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을 때, ‘물에서 올라왔다’는 표현은 이런 침례가 시행된 사실을 증명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마 3:16)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행 8:39)

    셋째, 머리를 숙여야 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은 죄인의 마땅한 태도이며 그분의 죽음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마지막 운명하시는 장면에서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 19:30). 세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하는 성례라면 마땅히 그분의 죽으심의 모양을 본받는 형태여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때 머리를 숙이고 받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 19:30)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5)

  • 교회에 대한 우리의 믿음

    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늦은 비 성령으로 세우신 교회로서 사도교회의 부흥된 참교회임을 믿는다.

    헬라어 ‘에클레시아’(ekklēsia)로 발음하는 교회라는 단어의 의미는 ‘부르심을 받아 나온 회중’이란 뜻입니다.
    이 어휘적 의미를 살펴볼 때 교회는 유형의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무형의 모임 자체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

    본 교회는 예수님께서 늦은비 성령으로 세우신 교회입니다.

    초대교회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독교 신앙 공동체에 유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약 삼백년이 지날 무렵 순수한 초대교회의 신앙은 이교도의 우상숭배의 문화와 결합하면서 점점 변질되어갔습니다.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행 20:30)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 15:9)

    완전하신 하나님이 위로부터 완전한 개혁을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위로부터 시작된 신앙 개혁의 과정 속에서 초대 교회와 동일한 구원의 교리를 갖춘 교회가 나타납니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비와 늦은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욜 2:23)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겔 34:26)

    이스라엘에서는 농사에 있어서 중요한 비가 두 차례 내리는데 그것은 이른비(가을비)와 봄비(늦은비)입니다.밀이나 보리 파종 전에 반드시 이른비(가을비)가 내려야 파종할 수 있고 추수 전에는 반드시 늦은비(봄비)가 내려야 추수할 수 있습니다.
    즉, 이른비란 사도교회의 오순절 성령을 상징하고, 늦은비는 말세에 다시 회복된 참교회에 내릴 성령 강림을 상징합니다.
    이 말세에 내리신 늦은비 성령 강림으로 설립된 교회가 바로 참예수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개혁하시고 회복시키신 본 교회는 다른 교회와 비교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첫째, 교회에 성령이 계십니다.

    사죄의 권세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바로 성령이 임재하시는 교회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요 20:22-23)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처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고 뒤이어 죄사함의 권세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내주’가 ‘죄사함의 권세’와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의 내주가 없으면 사죄의 권세도 없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참 교회라면 초대 교회처럼 먼저 오순절과 같은 성령이 임재하셔야 합니다.

    둘째, 성경적인 기적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라고 성도에게 그런 기적이 따를 것을 언급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요 14:12)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막 16:17-18)

    셋째, 전하는 진리가 성경과 일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의 진리를 자신의 몸인 교회 안에 담아 두셨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교회를 통해 거듭나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이는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 계획이 교회를 통해서 구현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딤전 3:15)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 성경에 대한 우리의 믿음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로 된 것임을 믿으며 참 진리의 유일한 근거가 됨과 동시에 신도생활의 기준이 됨을 믿는다.

    성경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마치 한 사람의 저자가 그 내용을 구성하고 기록한 것처럼 일관된 주제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습니다. 그 일관된 주제란 바로 인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입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1:20-2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성경은 진리를 증명하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성경의 목적대로 그 주제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어떻게 영생을 주시고 어떤 과정을 통해 천국으로 인도하시는지 그 계획과 성취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춰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5:39)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사 8:20)

    성경은 신도생활의 기준입니다.

    천국의 법에서 가장 근본적인 핵심의 법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어주신 구원의 과정
    즉,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고, 성령을 내려주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 모든 과정에 대해서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란 주님이 우리에게 그와 같은 모든 구원의 과정을 마련해 주셨으니 그 사랑과 은혜를 입은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마땅히 나타낼 성결하고 의로운 삶을 가리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17)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8)

    성경은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는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실천할 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 3:3)

  •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죄인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신 것을 믿으며 그분은 인류의 유일하신 구주시며 천지의 주재시고 홀로 하나이신 참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실 때 인간을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피조물(조물주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만물 가운데 가장 존귀한 피조물로 만들어진 인간은 결국 죽음 이후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비록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셔서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일찍이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셔서 인간을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치르시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그러면 이 성육신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을 여전히 사랑하시고 그가 구원받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사망의 그늘에 놓인 인간의 상황을 해결하시고자 ‘조물주’이신 그분이 ‘피조물’의 형상을 입고 기꺼이 이 땅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육신하신 일은 인간이 비록 범죄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신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둘째,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신 사건은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사망의 그늘에 놓인 인간이 그 굴레에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성육신은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셋째, 하나님이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4:9)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일은 그분의 겸손과 사랑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인간의 몸이 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높고 높은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아지신 것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7)

    넷째, 인간을 사랑하시되 조건 없이 베풀어 주시는 아가페의 사랑을 나타냅니다.
    1)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구약 시대 유대인들의 동물 제사 제도는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셔서 인간이 처한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2)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언대로 죽으실 뿐만 아니라 예언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뿐만 아니라 부활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7-1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3)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실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오로지 우리가 믿는 예수님만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에 대한 사랑과 구원의 능력을 증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구원하실 유일한 구세주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1:21)

  • MANNA 80: SUMMER

    MANNA 80: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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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ble of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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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예수교회 역사

    • 1945
      • 1월 한국에 참예수교회 전파됨

        ▶︎
        오사카시에 있는 참예수교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성령을 받고(1945.7.30.) 거듭난 배상용(고 배영도 장로)씨가 귀국함으로써 한국에 참예수교회가 최초로 설립되었다.그후에 각지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 1947
      • 6월 김천교회 설립

        ▶︎
        배상용씨가 귀국하여 김천에서 지내던 바 일본에서부터 안면이 있는 박창환씨를 만나 전도하여 1947.6월에 박창환씨가 거듭나고 그가 목회하던 장로교회의 교인 다수가 성령을 받게 되어 장로교회로부터 분리하여 박창환씨 집에서 집회가 시작하였습니다.
    • 1949
      • 2월 삼계교회 설립

        ▶︎
        1948.8월 임실군 삼계면 홍곡리에 있는 장로교회 전도사 윤석주씨가 김천 근처의 용문산 집회에 참석중 김천 시내의 참예수교회 박필선,홍종배 양 집사의 전도를 받고 성령을 받은후 홍곡 장로교회에 돌아와 허병암(고 허야곱 장로), 허상(허수진 목자)을 비롯한 다수의 신도에게 전도하여 성령을 받게 하였다. 1949.2월에 영은회를 개최하고 교회 전체가 참예수교회로 완전히 개종하였다.
      • 2월 쌍치 기도소 설립

        ▶︎
        1949년 2월 홍곡교회에서 중생하여 믿음을 지켜 오던 최경님 자매가 1956년 6월에 쌍치로 이사한 후에도 가정예배를 보았다.  그 후 홍송자씨를 전도하게 되었는데 홍 자매와 결혼하게 된 삼계교회 허인수 형제도 쌍치로 오게되어 두 가정이 중심이 되어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 2월 전주교회 설립

        ▶︎
        전주 고려고등성경학원을 수료한 김영상씨는 1949.2월에 개척전도중 삼계면 홍록리의 참예수교회를 방문한 바 그 당시 전도차 김천교회에서 온 박창환 장로와 우영택 형제를 만나게 되어 동창인 허상 형제집에서 진리를 연구한 결과 중생하게 되었습니다. 1949. 2월 하순에 중생한 김영상 형제는 허상 형제와 같이 전주에 와서 진리를 전파하여 그 모친과 부인이 성령을 받았고, 그 후 장로교회 여집사였던 김영제씨와 가족 및 전주사범학교 학생 이명주 자매등이 전도되어 김영상 형제집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 5월 서도교회 설립

        ▶︎
        1948.9.26. 홍곡교회(삼계교회 전신) 허병암형제의 전도를 받은 둔덕 장로교회 여전도사 장달순씨가 김천교회에서 파견된 박창환 전도사가 삼계면 홍곡리에서 개최한 전도집회에 참석하여 성령을 받고 둔덕장로교회에 진리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1949.5에 서도리에 박창환 장로,허병암 형제,장달순 집사가 중심이 되어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 5월 서울 동부교회 설립

        ▶︎
        1949.5월 김학순씨가 안식교 신학 동창이던 김천교회 우영택 형제(우요한 목자)를 방문하여 전도를 받은후 서울에서 신모씨,이모씨 2명을 데려와 중생하게 하였던 바, 종로5가에 있는 신씨 집에서 집회를 가졌으나 6.25사변으로 중단되었다. 1.4후퇴 당시에 김천에 온 김선웅씨 부부가 우영택 형제 집에 거주하던 중 전도를 받고 중생하였다. 서울이 수복되자 상경하여 1952.11월에 서울 근교 망우리에서 몇몇 신도와 함께 가정집회를 시작하였다.
    • 1952
      • 12월 남원교회 설립

        ▶︎
        1952.12 전주교회의 자매를 통하여 남원에 거주하던 강향원씨 등 수명이 전도되어 가정집회가 시작되었다.
    • 1954
      • 4월 부산교회 설립

        ▶︎
        1954.4월 서도교회에 와서 15일 가량 머물면서 중생한 이기원 형제가 직장 관계로 부산시 한약방 점원으로 있을 때 군복무를 마치고 다리관절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조규형(고 조인성 장로)가 병치료차 이 한약방에 왔다가 이기원 형제로부터 참예수교회에서는 믿음으로 병을 낫게 할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진리를 갈망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장달순 집사와 김영상 형제가 1955.4월에 부산에 파견되어 조규형씨에게 안수하여 성령과 세례를 받음으로써 조규형 형제 가정을 중심으로 집회를 하기 시작하였다.
    • 1955
      • 3월 대구교회 설립

        ▶︎
        1955.3월에 대구에 전근간 서울기도소 신자인 차철남 형제가 전도한 결과 10여명이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1955.9월에 노관영,김세갑 형제가 대구에 와서 노관공 목사가 인도하는 교회에 가서 전도한 결과 임정순,박효남씨 등이 전도되어 이수남씨 집회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 1956
      • 7월 대전교회 설립

        ▶︎
        1956. 7. 24. 전주에서 중생한 이채홍 형제가 대전시에 거주하였는데 우영택(우 요한 목자)집사를 만나 가정집회를 가졌다. 그 후 삼계교회의 허병암(고 허야곱 장로)집사도 대전으로 이주하여 1959.9.24.에 집회가 시작되었다.
    • 1957
      • 1월 대방교회 설립

        ▶︎
        육사 교수였던 조광덕(고 조득진 목자)씨는 과거 감리교,그리스도교,장로교,침례교등의 신앙경력을 가지고 가정집회를 갖고 있던 중에 동료교수인 차철남,정대현 형제의 전도를 받았고, 부인과 함께 가정에서 성령을 받는 기도를 하던중 같이 성령을 받고, 그후 가정 집회에 참석하던 신도 약30명이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후 정식으로 참예수교회 간판을 달라는 권고가 있은 후 1개월간 신도간에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어느 자매를 통하여 참예수교회 간판을 달라는 방언통역이 있어서 1957년 전 교인의 동의하에 참예수교회 간판을 달고 집회를 하기 시작했다.
    • 1958
      • 1월 서천교회 설립

        ▶︎
        1958.1월초 호남지방교회 영은회를 마치고 우요한,조득진 집사가 귀가 도중에 서천에 들러 조득진 집사의 인척되는 김우근 씨에게 전도차 방문하여 10여명에게 전도를 한 바 삼각산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박팔순씨와 김갑현씨가 전도되었다. 그후 1월 중순경에 배영도 장로와 이빌립 집사가 심방하여 박팔순씨 집에서 집회를 하게 되어 기도소가 설립되었다.
    • 1960
      • 8월 안동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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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7.6월 안식교 문서 전도자인 박주락씨가 대구에 가서 사진업을 하던 참예수교회 신도 김세갑씨를 만나 성령을 받는 비결을 빌려 읽고 진리를 갈망하게 되었던 바, 총회에서는 1957.8.27. 우요한 집사를 파견하여 1960.8.28.에 중생하게 되었습니다. 박형제는 1년 정도 성경을 연구한 후에 배영도 장로와 우요한 집사를 안내하여 안동,점촌,영주 등지를 순회하며 전도한 바, 안동에서 강수성,박인순,점촌에서 조순기,영주에서 김옥련 씨등이 개종하여 집회가 시작되었다.
    • 1963
      • 4월 수문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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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천교회 신도인 김정자 자매가 경찰로 있던 남편의 직장을 따라 수문에 와서 거하면서 신금례 씨와 신광호 씨에게 진리를 전하고, 서천교회의 이빌립 목자를 청하였던 바 1963.4.25.에 이 두 사람이 중생하게 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 5월서울 서부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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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기동 교회(현 동부교회) 손양금 자매와 신길동 교회(현 대방교회) 홍춘식 형제가 서대문 시립병원에 있을 때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병원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총회에서는 그 실정을 참작하여 퇴원환자와 입원환자들의 거처와 집회를 위하여 기도소를 설립하였다.
    • 1969
      • 2월 청주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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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2 김명석 형제가 청주시에 와서 그리스도교회 신자였던 송영애 씨에게 진리를 전한 뒤 운암교회에서 시무중인 오충도 목자가 와서 전도한 결과 송영애,고영희,조옥순,심옥자 씨등이 개종하고 운암교회 영은회에 참석하여 중생하게 됨으로써 청주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 1966
      • 9월 강진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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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도교회 신자였던 김명석씨가 전도를 받고 개종한 후 강진에 거주하던 그리스도교회 목회자인 이재우씨에게 진리를 전한바, 개종할 의사가 있다고 하므로 1966년 9월 23일 배영도, 권순도, 김명석 3인이 이재우씨를 심방하여 진리를 전한 바 이재우씨와 그 교회 전 신도 13명 가량이 개종하게 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 1967
      • 2월 화산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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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6. 9. 26.에서 1967년 2월 19일간에 김명석 형제의 인도로 화산지구에 배영도, 권순도 목자의 순회방문과 수문 교회의 영은회로 인하여 신도가 증가하여 1967년 1월까지 약 7명이 세례받고 6명이 성령을 받아 김행남형제의 집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 1968
      • 3월 안산교회 설립

        ▶︎
        1957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고잔리에 거주하던 민형기, 이호정 두 학생이 서울에 와서 공부하던 중 신길동교회(현 대방교회)에서 중생하게 되어 고향인 고잔리에 전도를 요청하므로 1960년 11월에 조득진 집사가 방문하여 민형기 형제 가정이 전도되었다. 1961년 12월 말(음력11월 24일)에는 민형기 형제 당질인 경문군이 세례를 받고 다리의 감각이 살아나고 소아마비가 낫는 기적이 일어났다. 1968년 3월 14일 이호정형제의 친 형인 이호경씨의 아들 신한군이 이 세례를 받고 보지도 듣지도 울지도 못하던 것이 낫게 되어 그 가정이 다 믿게 되었고 이호정씨 가정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 1971
      • 1월 여우치 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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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이래 태아순자매가 여우치에 있는 친정을 자주 왕래하며 전도하였던 바, 박순용씨 가정이 전도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 1975
      • 1월 목포교회 설립

        ▶︎
        1975년 경 당시 전남 무안군 삼향면 옥암리(부주두 부락)에 거주하던 장로교회 목사 이준호 씨가 강진교회 영은회에 참석하여 진리를 깨닫고 세례를 받았다.  총회에서는 배영도, 우요한 목자를 파송하여 이준호 씨와 함께 부주두 회관에서 전도집회를 하던 중 동네사람 수십 명이 참석하여 10명 이상이 성령을 받았다.  당시 성결교회 집사였던 김동례(현 김안나 집사) 씨 및 정연순(현 장유진 집사 모친) 씨가 들어와 중생하였다. 처음에 진리를 전했던 이준호 씨가 재정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이유 뿐 아니라 기타 문제로 불만을 품고 교회를 떠났고 교회에 대해 생소했던 주민들도 거의 다 나오지 않았으나 김동례, 정연순 씨 두 분이 중심이 되어 김동례 씨 집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 1965
      • 3월 광주 교회 설립

        ▶︎
        1965년 3월에 기도소로 인정되어 집회를 하다가 1970년에 폐지되었다.  1983년부터 광주 부근의 영광기도소에서 목회하던 양봉도 목자가 1985년 1월 1일부터 당시에 전주에서 이주해 온 강향원 형제, 학생이던 김원길 형제, 김신자 자매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회에서 전도되어 개종한 황경하 형제 가정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 1982
      • 4월 인천교회 설립

        ▶︎
        1982년 4월 1일 부천과 인천지역의 대방교회 출석 신도들을 중심으로 부천에 집회소를 설치하고 김혁도 목자를 파견하였으나 집회가 여의치 않아 철수하였다.  이 후 1986년 4월 15일에 인천지역의 개척전도를 위해 우현도 목자가 파견 되고 인천시 남구 주안동에 교회당이 조성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 1980
      • 1월 오산교회 설립

        ▶︎
        1980년 초에 신길동교회(현 대방교회)의 신도인 최낙성 형제(현 최성진 집사?)가 오산으로 이주해 옴으로 말미암아 근처에 있는 신도들과 함께 집회가 시작되었다.
      • 8월 광양교회 설립

        ▶︎
        1980년 8월 서도교회 출신 이정상 형제 심방예배(남원교회 지도)로 시작되었고 1993년 2월 전남 순천시 임성래 형제 가정에서 매주 정기 예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 1983
      • 1월 거제교회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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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3년 초  박영옥 자매 집에서 집회가 시작(이빌립 목자 지도)되다가 1987년 장승포읍에 집회소가 마련되고 이후 1991년에 교회로 승격되었다.
    • 1986
      • 1월 원주교회 설립

        ▶︎
        1986.1월 이중진 형제집 가정집회로부터 시작되었다.
    • 1988
      • 5월 수원교회 설립

        ▶︎
        1988.5.우요한 목자 집(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소재 천록아파트)에서 김마리아, 최순근, 이송애 등 3가정이 함께 집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1989
      • 3월 강남교회 설립

        ▶︎
        1989.3월 대방교회에서 분가하여 설립됨
    • 1993
      • 1월 장항서부교회 설립

        ▶︎
        1993년 장항 거주 신도 가정순회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되어 11월 집회소가 마련되고 이후 교회 건물 건축 후 1998년 1월 22일에 개척교회로 지정되었다.
    • 1998
      • 6월 분당교회 설립

        ▶︎
        성남 시내의 교인들이 강남, 대방, 서부교회에 출석하였으나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강남교회에서 수년 전부터 구역예배로 성남에 있는 가정을 인도했다가 강남교회에서 1998년 6월 24일 성남 집회소를 설립하여 정기적인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 10월 천안교회 설립

        ▶︎
        1993년 2월 신학생 김미영자매가 천안으로 이사 온 후 동생 김지영 형제와 오산, 수원에서 예배를 보게 됨, 이 후 김미영 자매 가족 4명이 전도되고 1998년 10월 19일 오산교회와 분리하여 집회소가 설립되었다.
    • 2003
      • 6월 안양교회 설립

        ▶︎
        2003.6월 수원교회에서 안양구역을 지정하여 월1회 구역예배로 다.
    • 2010
      • 9월 하남교회 설립

        ▶︎
        일반 교회에서 개종한 황재순 전도사가 시무하던 교회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 2011
      • 5월 해운대교회 설립

        ▶︎
        2011.5월 해운대기도소로 시작되었다.
    • 2016
      • 8월 의정부기도소 설립

        ▶︎
        서울 동부교회에서 분가하여 2016.8월에 시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