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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사 53:1-12)

    [복음메시지]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사 53:1-12)

    2025년 8월 2일 (토)

    설교제목: 그가 찔림은, 그가 상함은

    본문: 사 53:1-12

    설교자: 박은진 목자님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이사야 53장은 ‘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외모는 초라했고, 고난을 당할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당할 때 잠잠했습니다. 그가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속건제물로 드려지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그는 일평생을 자신을 위해 살아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그는 바로 누구일까요?

    (사 52:13) 바로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요 1:41)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메시야, 즉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7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오실 것을 예언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알려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사 7:14) (사 9:6) 이사야서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이 여럿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42:2-4)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살 어르고 돌봐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1:10-11)

    1. 예수님은 초라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1-3)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눅 2:7)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또 아이를 죽이라는 헤롯왕의 칙령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협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애굽으로 피난가기도 했습니다.

    (사 53:2-3) 또한 예수님은 아름다운 것도 없을뿐더러 모든 이들에게 멸시를 받기까지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사람들의 손에 죽게 됩니다. 예수님의 삶은 그저 고난이었습니다.

    (마 8:20) 그의 길을 따르는 길은 고난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기도 했고, 제자들에게 버림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요 1:10-11)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우리는 나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고난을 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 1:21)

    우리는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6) 또한 마치 양처럼 내 일만 생각하고 교회 걱정은 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당하시면서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삶은 존귀한 삶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초라한 삶을 살아가며 고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늘 생각하며 빚진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유튜브에서 설교를 시청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 [복음메시지] 욥이여,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욥37:1~14)

    [복음메시지] 욥이여,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욥37:1~14)

    [말씀제목] 욥이여,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욥37:1~14)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5월 24일 안식일 오전 예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욥기 37장 1절에서 14절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고난의 의미와 그 속에서 우리가 궁구해야 할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이들이 욥기의 주제를 ‘고난’이라 여기지만, 욥기의 진정한 주제는 고난 자체가 아닙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가’ 이것이 욥기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욥기 1장을 보면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께서 욥을 보호해주시고, 부유하게 해주시기 때문에 욥이 믿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신 모든 것을 거두어가시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떠날 것이라 말합니다.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어떤 이는 가족 때문에, 어떤 이는 습관처럼, 또 어떤 이는 삶의 평안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유는 각자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닥쳤을 때,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는가, 욥기서는 그 신앙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고난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자신의 잘못으로 받는 고난 :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로 겪는 어려움입니다.
    • 애매한 고난 : 욥의 경우처럼, 자신의 잘못 없음에도 당하는 고난입니다.
    • 자발적 고난 :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스스로 선택하는 고난입니다.

    욥기는 두 번째, ‘애매한 고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를 몰랐지만, 결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는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욥이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바로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제가 30년동안 목회하면서 발견한 한 가지 사실은 고난 없는 가정은 지구상에 단 한 가정도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에게만 고난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고난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고난도 있고, 물질적인 고난도 있고, 영적이고 신앙적인 고난도 있습니다. 그 고난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우리는 욥기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는 동안 찾아온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 이 세 친구는 서로 주장과 변론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네 번째 인물 엘리후가 등장하여 앞선 친구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2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

    엘리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들으라 들으라’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있을 때, 인생의 문제 앞에서 인간생각과 세상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민감한 영성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며, 의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의인이라 할지라도 때로는 쇠사슬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힐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허물과 교만을 알게 하시고,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고난은 단순한 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훈과 회복의 과정임을 보여줍니다.(요36:5~11)

    14 욥이여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14절 앞에서 엘리후는 눈, 비, 광풍, 얼음 등 자연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기묘한 일들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자연현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난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깊이 생각해보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징벌을 위해서, 토지(축복)를 위해서, 긍휼을 베푸시기 위해서 비를 내리시듯, 우리의 삶에도 다양한 목적과 뜻을 두고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 땅에 알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앞에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중인 다른 성도를 쉽게 판단하거나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고난을 통해서 정금같이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통해, 우리 인생이 이 땅에서만의 삶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영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성도님들이 고난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아, 내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지, 왜 하나님을 믿는지 돌아보며,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자랑스러워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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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정(창2:7-8)

    [말씀제목]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가정 

    [본문말씀]창2:7-8

    [설교자] 홍영석 목자님

    [설교일] 2025. 05. 10. 토. 오전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세기 2장 7~8절)

    세계적으로 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방법들이 개발 되고 시행 되지만 결론적으로 자연 파괴의 진행 속도를 늦출 뿐 결국은 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파괴보다 더 심각하고 무서운 것은 사회 생태계의 파괴입니다. 사회에 가장 기초가 되는 구성은 가정이고 국가는 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펼치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만 역부족 입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는 무너지고 국가는 무너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이 흔들리면 교회가 흔들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시작을 가정으로 시작하셨고 신약에서는 교회를 통해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두 가지 기관이 바로 가정과 교회 인 것입니다.그만큼 가정과 교회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른신앙입니다. 세상으로 한번 나간 자녀는 돌아오기가 힘듭니다. 세상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 안에서 성장 할 수 있도록 잘 인도해야 합니다. 자식으로써 부모님께 할 수 있는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이 천국 소망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켜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 안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두셨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 나라가 느껴지시나요?  가정과 교회에서 내 모습이 다르다면 나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는 것입니다.

    1.가정이 파괴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창세기 2장 15절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가정을 파괴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장의 역할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써 세상의 죄들이 가정에 들어오지 않도록 가정을 지키는 것입니다. 가정에 죄가 들어오면 가정은 병들어 가고 지옥이 됩니다. 창세기 2장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을 마귀가 공격 하였듯이 여전히 우리 가정을 공격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나타나는 현상 만을 가지고 고민할게 아니라 그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이유가 바로 가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가정에 들어오지 않게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2. 가정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창세기 3장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성경에서 말하는 마귀의 특징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을 왜곡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합니다. 가정의 행복은 돈을 많이 벌고, 유산을 물려주고, 자녀가 돈은 많이 버는 직업을 갖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 하게 합니다. 이는 잘못된 죄의 결과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정이 행복하면 이겨 낼 수 있습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부부의 관계 -자녀와의 관계가 좋은 관계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18절~21절)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하나님을 경외 하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복종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순종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할 수 없으며 세속적 가치관, 물질과 풍요로는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가정의 행복의 열쇠는 부부에게 있습니다.

    3. 이 가정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집은 언제든지 나의 돈, 나의 명의로 살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정의 주인이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가정에서 예수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9장 5~6절)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는 우상이 없습니다. 야곱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또한 우리 가정에 숨겨져 있는 우상을 제거하여 내 집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가 되게 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길 마다하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가정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않으면 가정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진정한 우리 가정의 주인 되시길 바랍니다.

     

  • [복음메시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 (왕상 3:4-15)

    [복음메시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 (왕상 3:4-15)

    2025년 3월 29일 (토)

    설교제목: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

    본문: 왕상 3:4-15

    설교자: 박은진 목자님

    솔로몬은 흔히 지혜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 속에서도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이방 나라에서 솔로몬을 찾아올 정도로 그 지혜가 매우 뛰어났었다. (4:30) (10:7-8)

    솔로몬이 기록한 잠언은 ‘지혜’에 관한 책이며 더불어 전도서에는 ‘지혜’라는 단어가 약 40회 이상 등장한다.

    다음을 통해 솔로몬은 매우 부요한 삶을 살아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하루 양식에는 매일 많은 양의 음식들이 준비되었다. (4:22-23)
    • 세입금은 666금 달란트로 지금으로 환산하면 약 3조 3천억이었다. (10:14)
    • 방패의 가치는 큰 방패 2천억, 작은 방패 700억의 가치이다. (10:16-17)
    • 그릇은 모두 금으로 만들어졌다. (10:21)
    • 예수님께서도 솔로몬을 언급하시면서 그의 부귀영화를 말씀하셨다. (마 6:29)

    그렇다면 그의 지혜, 부와 영광은 모두 어디서 온 것일까?

    그 모든 것들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4:29)

    솔로몬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 지혜와 부를 받을 수 있던 것일까?

    그는 하나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었다.

    ▣ 하나님 마음에 맞는 기도

     1. 정성껏 예배를 드렸다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4)

    • 일천번제에 관한 주장

    1) 1천일 제사

    2) 1천마리 제사

    (대상 27:20-21) 다윗은 이미 수많은 제물을 드려 제사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솔로몬도 1천마리 제사를 충분히 드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롬 12:1)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신다. (5)

    2. 겸손히 나아갔다. (6-7)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6-7)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구하라고 할 때 자신을 작은 아이라며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시 147:6)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3. 지혜를 구해야 한다.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9)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할 때 자신의 욕심에 따라 구하지 않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한 지혜를 구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하나님 마음에 맞는 지혜를 구한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신다.

    지금껏 어떤 기도를 드려왔습니까? 이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회복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혜를 구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유튜브 설교 링크

  • [복음메시지] 시내산 이후, 첫 원망(민11:1~9)

    [복음메시지] 시내산 이후, 첫 원망(민11:1~9)

    [말씀제목] 시내산 이후, 첫 원망(민11:1~9)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2월 8일 안식일 오전 예배

    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출애굽 후에 시내산 아래에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을 떠나 광야 길을 걸은 지 3일 만에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11장 1절에서는 그들이 ‘악한 말로’ 원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를 들으시고 진노하셨다고 나옵니다. 시내 산에서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후, 성막을 짓고 제사와 절기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본격적으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출발한 지 불과 며칠 만에 불평과 불만이 터져나왔고, 하나님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응하셨습니다. 그런데 시내산을 떠나기 전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몇 번이나 원망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요?

    • 출애굽기 15장: 홍해를 건넌 후 3일 동안 마실 물을 찾지 못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원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 물에 나무를 던지게 하여 물을 마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22~27절).
    • 출애굽기 16장: 배고픔을 호소하며 애굽에서 먹던 음식(고기, 빵 등)을 그리워하며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습니다(1~36절).
    • 출애굽기 17장: 마실 물이 없어 또다시 불평하며 다툼을 벌이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바위를 치게하여 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1~7절).

    이처럼 시내산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해도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시고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을 떠난 이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할 때마다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어느 때에는 원망을 참아주시고, 어느 때에는 진노하셨을까요? 그 시기는 시내산 도착 전과 후로 나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말씀으로 훈련받기 전이므로(오늘날의 세례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 아직 믿음이 자라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믿음의 훈련을 받은 후(초신자 외의 신도)에도 원망을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에서 영적인 훈련을 받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애굽(세상)을 그리워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고 원망했기 때문에 진노하시고 불로 진 끝을 사르셨습니다. 이는 큰 심판이 아닌 경고로 시내산을 나와서 처음 한 원망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깨우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중보기도를 하자 불이 꺼졌고, 그곳을 ‘다베라’(불에 탄 곳)라 불렀습니다.

    4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

    그런데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나온 이방인들이 만나에 대해 불평을 하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자손도 울며 또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4절을 보면 이 원망은 탐욕에서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10번째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라고 했습니다(출20:17). 탐낸다는 것은 마음에서 시작하고 이 탐심이 과해지기 전에 내 안에서 탐심이 힘을 못 쓰도록 해야합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4:11~12)

     

    성경에서는 탐심이 아니라 자족하기를 배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것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출애굽 시키고, 홍해를 건너게 하고, 바로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오히려 애굽을 그리워했습니다.

    이렇게 탐욕은 받은 은혜를 망각하게 만듭니다.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감사함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고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광야에서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다 채워주셨습니다.

    광야에 만나밖에 없다는 시각이 아니라, 원래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지낼 수 있도록 만나를 내려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신 은혜에 만족하지 못하면 탐욕이 되고 원망이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보배로운 믿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풍성한 마음과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5년 한 해에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자족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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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내가 확신하노니 (롬 8:31~39)

    [복음 메시지] 내가 확신하노니 (롬 8:31~39)

     

     

    [말씀제목] 내가 확신하노니 

    [본문말씀] 롬 8:31~39

    [설교자] 유요한 목자님

    [설교일]  2025/02/21 (금)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설명한 후,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지 감사하며 선언한다. 바울사도의 고백을 함께 살펴보고, 우리도 이런 확신을 갖게 되길 바란다.

     

    1)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우리를 대적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우리 대적 마귀(벧전5:8)’이다. 하지만 능히 우리의 대적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편인데, 누가 감히 우리와 싸울 수 있을까? 물론 우리는 마귀의 공격에 항상 깨어서 경계해야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감히 사탄도 우리의 구원을 어떻게 할 수 없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 때문이다.

     

    2) 누가 능히 송사하리요?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송사한다는 것은 고소한다는 것. 우리를 송사하는 자가 없을까? 있다.

    [계 12: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

    우리를 밤낮 참소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밤낮 참소하던 자(계 12:10)’이다. 우리가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지 부정할 수 없다. 마귀가 송사하지만, 재판장이신 하나님 ‘의롭다’ 하신다(딤후 4:8).

     

    3) ‘누가 정죄하리요’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우리는 죄에 대해 정죄(유죄판결)을 받지도 않는다.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우리 대신 죄값을 지불하셨다.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대가가 이미 지불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에 대해서 정죄(유죄판결) 받지 않는다(롬 8:1).

     

    4)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아무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끊지 못한다는 확신에 찬 고백이자 찬송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려는 것들이 있다. 환난, 곤고, 핍박, 기근, 적신, 위험, 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이다. 현실적으로 고통스럽고 괴롭고 힘든 일들이 실제로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나 그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어떤 어려움이 찾아와도 불안하지 않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도우시기 때문에 넉넉히 승리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확신하며 고백한다.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하나님의 사랑이 절대로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탄을 쏟아낸다.

     

    누구도 흔들지 못하고, 빼앗지 못하는 바울사도의 감동이 우리에게도 있길 바란다. 우리도 세상 가운데서 바울과 같은 확신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며 담대히 살아가는 성도 되길 바란다.

     

     

     

  • [복음메시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딤전 2:1-7)

    [복음메시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딤전 2:1-7)

    2025년 2월 7일 (금)

    설교제목: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

    본문: 딤전 2:1-7

    설교자: 박은진 목자님

     

    기도는 사람이 숨쉬듯 영혼이 호흡을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기도는 결코 없어서는 안된다.

    바울 사도는 본문말씀에서 성숙한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1) ‘첫째로’ => 무엇보다도…

     

    ■ 성숙한 기도

    -> 기도의 의미를 알고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1)

    1. 기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속사정을 모두 얘기하는 것

    2. 간구: 간절히 구하는 것 (기도의 태도)

    3. 도고: 중보기도 (롬 8:27,34)

    4. 감사: 감사함을 전제로 구해야 한다. (빌 4:6)

     

    ■ 누구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하는가?

    1.  모든 사람 (1,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6)

    우리는 기도할 때 ‘나’만을 위한 기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엡 6:18) 모든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

    2. 임금,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2)

    당시 높은 지위의 사람들은 바울과 기독교를 핍박했다.

    그러나 감정을 떠나 그들을 지지하건, 안하건 국가의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마 5:44) 원수를 위해 기도해줄 수 있는 것이 기독교의 태도이다.

    (2)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평안과 연관이 있다.

    (3) 그러한 기도가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기도가 된다.

    심지어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까지도 기도해야 한다.

    (4) 하나님의 본심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4)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벧후 3:9)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아주시는 인내의 하나님이시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있는가?

    (5) 우리는 하나님 한분만을 믿고 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다니엘은 왕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전에 행하던대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물러서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도 이러한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6) 하나님은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리시기까지 우리를 구원하셨다.

    (7)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사명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방인의 사도로 불러주셨다. (행 1:8)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심을 깨닫고, 이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유튜브 설교링크

  • [복음메시지]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37:1~14)

    [복음메시지]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37:1~14)

    [말씀제목]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겔37:1~14)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4년 9월 14일 안식일 오전 예배

    오늘 말씀의 내용은 에스겔이 하나님께 받은 9가지의 비유 중에 마지막 환상의 비유인 마른 뼈 골짜기 비유입니다.

    1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2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하나님의 영(그 신)이 에스겔을 뼈가 가득한 골짜기 가운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실제 에스겔의 몸은 바벨론에 있었지만, 환상 중에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 골짜기에는 심히 많은 뼈가 있었는데 아주 말랐다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 아주 마른 뼈는 사망을 상징하는 그림 언어입니다. 살아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망의 그늘에 오래 빠져있는 해골들을 말하는데, 이것은 영적인 사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시는 이 영적 환상을 통해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 죄를 지은 자들이 많고,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많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뼈들은 육신은 살아있지만 하나님을 떠나서 영적으로는 죽어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11절)

    3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5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6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 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마른 뼈들을 살리겠다고 하시고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명령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러자 뼈들이 소리가 나며 움직이더니 서로  결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뼈에 힘줄과 살과 가죽이 생겼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능하시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신다는 것을 모두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뼈는 누가 살린 것일까요? 말을 한 사람은 에스겔이지만,  ‘살리라’고 하신 이는 바로 주 여호와입니다(5절). 에스겔은 그저 대언한 것 뿐입니다.  때때로 치유나 이적기사가 일어날 때, 그것을 행한 사람의 능력으로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자나 어떤 사람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일임을 아시고, 마른 뼈들을 살린 이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이치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능력이 있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세상에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

    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11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위 구절들은 성령을 간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을 불어넣어서 살아나게 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성령을 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모든 성도들이 다시 살아나는 회복과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2:2-4)

    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3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14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무덤을 열고 백성들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부활이라는 단어가 나와 있지 않지만 부활에 대한 개념은 있습니다. 세 곳에 나와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이 대표적인 구절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덤을 열어 백성들을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다시 에덴으로 돌아가는 것, 즉 에덴의 회복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하나님께서 ‘내 백성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마른 뼈’에 생기가 넣어져 무덤에서 나오니 그들이 ‘내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영적인 사망으로부터 부활까지 이르러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룰 줄’이 아니라 ‘이룬 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14절)

    그러면 이 환상과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을까요?

    먼저 이스라엘의 역사적으로 보면 첫 번째로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지 70년 뒤에 풀려나 다시 돌아와서 성전을 건축하고 성벽을 재건하고 율법을 다시 세웠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2500년이나 지난 뒤에 다시 건국되었습니다. 본문에는 이 뼈들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말씀하셨고, 이것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이스라엘이 회복된 결과를 보며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적으로 보면 성령을 받은 후에 초대교회가 생기고 성장하였지만, 중세시대에 들어서 종교에 정치가 개입되며 교회가 변질되었습니다. 중세 교회의 타락을 통해 성령의 역사가 떠났습니다. 그런데 1917년에 다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 마른 뼈가 생기로 살아나듯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사도시대 이후 죽어있던 교회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늦은비 성령)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을 통해서 무덤을 열어주심을 예표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나온 이후로 어떤 누구도 사망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셔서 음부의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들에게 에덴의 회복을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목전에 숨으리라 (호13:14)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5)

    태어났을 때 이미 마른 뼈인 우리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마른뼈들이 일어나듯이 사망의 무덤을 열고 부활해서 하늘나라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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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이것까지 참으라 (눅 22:47-53)

    [복음메시지] 이것까지 참으라 (눅 22:47-53)

    2024년 10월 26일 (토) 오전예배

    설교제목 : 이것까지 참으라

    본문말씀 : 눅 22:47-53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고쳐주셨다. 그는 자신을 체포하러 온 핍박자였다.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에게까지 호의를 베풀 필요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마땅한 형벌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께서는 교훈을 주시고 계신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눅 22:44)

    (44-45) 먼저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앞두시고 기도하셨다. 십자가 고난을 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피할 수 있길,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길 기도하셨다. (42)

    (47-48) 기도를 하자마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다.

    그는 예수님이 처음 부르신 12제자로서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자였다. 그러나 그랬던 그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려고 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심해야 한다.

    (고전 10:2) 마귀에게 틈을 주는 순간 넘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47) 체포하러 온 사람들을 본 제자들은 검으로 무장하였다.

    검으로 치다 = 파라소(헬)

    매우 살벌한 단어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호해야겠다는 충성심에 칼을 무장한 것이다. 그 중에 성격이 가장 급한 자는 베드로였다. (요 18;10)

    말고는 왜 오른편 귀가 떨어졌을까? 말고는 검을 피하다가 귀가 떨어진 것이다. 만약 반대로 피했으면 목이 잘렸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책망하셨다. (요 18:11) 예수님은 검을 가진 자는 망한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 입장에서는 서운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하나만 알아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하시던 말씀을 귀담아 들었더라면 어떻게 대처할지 알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늘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마 5:44)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안된다.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있었다.

    베드로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훼방꾼이 될 뻔 했다.

    사실 칼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도 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한다.

    베드로의 충동적인 행동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눅 22:51)

    (51) 이것까지 참으라

    참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고전 13장)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예수님께서 참으라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전도하는 과정에서 조롱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참아야 한다.

    만약 참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참는 것에 영혼구원이 달려있다.

    예수님께서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신 것은 사랑으로 했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관심이 하나님의 뜻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에 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업이다.

    제자들 입장에서는 허망했을 것이다. 베드로는 참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마지막까지 참으셨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참는 자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말을 할 때도 조심히 해야 한다. 참지 못하고 한 말이 누군가의 목을 베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영혼을 위해서라면 끝까지 참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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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1-36)

    [복음메시지]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1-36)

    [말씀제목] 참으로 자유하리라 (요 8:31-36)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4년 8월 31일(토) 안식일오전예배

    『31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32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3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오늘 말씀은 자유에 대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역사 이래로 사람들이 자유를 얻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에게 있어 자유라는 것은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없는 삶을 우리가 상상해 본다면 그야말로 지옥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람에게 있어서 자유라고 하는 것은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런 자유에 대하여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은 참 자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참 자유가 필요하고 참 자유를 우리가 누려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참 자유’, ‘참으로 자유하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참된 자유를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1.예수님 말씀에 거하여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라!

    31절 말씀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성경은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라는 것에 대하여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런 유대인들에게 바로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은 단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시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씀은 ‘예수님을 믿어도 참 제자가 아닐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는 어떤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라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 안에 거하는 자’가 바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거한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예수님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거한다’는 ‘산다는 것’입니다. 즉 거주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 속에 거주하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우리 삶이 ‘말씀을 따라가는 삶’ 이것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참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예수님께서는 인정하신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따라서 실제 살아가는 삶이 예수님의 참된 제자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이고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을 보시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 있고 죽어 있는 믿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죽은 믿음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만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고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질 때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은혜에 거하게 되고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믿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난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까’라고 만족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제자 그리고 ‘살아있는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것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겠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 말씀에 거하여 진리를 알아라!

    본문 32절입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예수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진리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삶을 살 때 진리를 알게 된다는 말씀에 진리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적용한다면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살아갈 때 누구를 알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표면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 그냥 표면적으로 아는 경우가 있고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정말 잘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런 것들을 다 알 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우리가 알아갈 때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2절 말씀에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아갈 때 은혜와 평강이 더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은혜와 평강이 더욱 더 많아진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을 우리가 알면 `아! 예수님이 참 좋으신 분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예수님을 우리가 더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 믿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따라갑니다. 내가 그 사람을 믿는다고 한다면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 더욱 더 예수님을 신뢰하게 되고 예수님을 우리가 믿음으로써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더욱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통한 은혜와 평강이 더 많아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따라 행할 때 예수님을 더욱 알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는’, ‘말씀에 순종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예수님을 알고 이런 은혜와 평강이 우리에게 더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 말씀을 따라간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그 말씀을 다 따라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을 보면 비록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하더라도 예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그런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고 있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따라 살아 가는게 쉬워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힘들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과 함께 행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에 따라 사는 그런 삶을 살아갔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멘다는 것은 우리가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멍에라고 하는 건 뭐지요? 두 마리 소가 함께 뭔가 무거운 것을 지고 그걸 끌고 가는 것이 멍에지 않습니까? 표면적으로 보면 무거워 보여 저렇게 가게 되면 힘들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행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실제적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게 되면 그래서 말씀에 따라 행한 삶을 살게 되면 사실은 그렇게 무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실제로 그렇게 메다 보면 그렇게 무겁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함께 멍에를 메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멍에를 메 봐야 어! 별로 어렵지 않네! 별로 무겁지 않네! 그리고 그런 것에서 뭔가 쉼을 그리고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될 때 비로서 그 가운데서 마음의 쉼과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지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이런 평안과 쉼은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진리’ 즉 예수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바로 하나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 거하고 따라가는 삶을 살 때 그 가운데서 우리가 예수님을 알게 되고 그 말씀을 우리가 진짜로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로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으면 우리는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믿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대충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정말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평안과 은혜를 주는 말씀인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정말로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험을 해 봐야만 비로소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많은 하나님 말씀을 들었지만 그들이 아무리 들어도 이 말씀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그런 가운데에서 내가 믿는 예수님을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깨닫게 되고 그 말씀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말씀을 따라서, 더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2절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말씀은 굉장히 유명한 말씀이지 않습니까? 어떤 대학에서는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네 교명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굉장히 유명한 말씀 중 하나가 바로 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 있는 말씀을 인용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이 언제 이렇게 된다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가운데 있을 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 예수님께서 혹은 그 말씀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어떤 자유를 말하는 걸까요?

     

    3. 모든 사람은 죄의 종이라!

    33절, 34절 입니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니까 유대인들이 아니 우리가 누구에게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이렇게 말하느냐고 했을 때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실 때는 그 말씀이 진짜 그렇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말씀이 진짜죠, 진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이 표현을 쓰신 것은 그만큼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 말씀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성경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죄를 짓는,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다 죄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의 종이면 자유가 있습니까?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죄의 종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 ‘자신이’ 종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종이다’, ‘당신은 종입니다.’ ‘당신은 죄의 종입니다’라고 말하게 될 때 그것을 바로 이해하는 사람 또는 바로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보면 그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종은 자유가 없습니다. 자유라고 한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지 않습니까? 성경은 우리가 이런 자유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죄로부터 자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그래서 로마서 7장에 보게 되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내가 정말 이런 죄 가운데서 자유하다면, 내가 죄를 짓고 싶지 않다면 죄를 안 지어야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지어야지’라고 죄를 짓는게 아니라 내가 죄를 범하지 말아야지 하는데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의 종이고 죄에 대해서 자유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자유는 바로 죄로부터의 자유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라는 말씀을 보게 되면 우리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이렇게 되는 이유가 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않고 악은 행하는 것, 내가 그 죄로부터 자유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속에 거하는 죄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여기 해당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결국 다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은 다시 말하면 노예입니다. 그럼 노예의 삶이 어떨까요? 실제 노예의 삶을 살아보진 않았지만 노예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노예의 삶 자체가 어떤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모든 삶이 다 죄 가운데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그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스스로가 내가 죄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매일 매일 죄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평상시는 모르다가 내가 이거 해야 되는데, 내가 선을 행해야 되는데 그렇게 할 때 못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음에 원하는 어떤 선한 일, 하나님께서 보시기 기뻐하는 그런 일을 하려고 할 때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자유가 없이 죄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는 그 죄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죄의 종의 모습입니다.

    그럼 그럴 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괴롭지 않습니까? 평상시 우리가 어떤 선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는 가운데서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정작 내가 선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고 내가 더 많은 선을 따라 행하는 하나님이 더 기뻐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죄의 종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죄의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유하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 때 일까요? “내 말에 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겠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 즉 예수님께서 혹은 말씀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겠다`라는 것입니다. 내 말에 거하면, 말씀을 따라 행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면 진리가 그 죄 가운데 살아가는 그 사람을 여기서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죄에서 벗어나 선하게 살아가려는 우리 믿는 사람들, 더 하나님의 그런 뜻을 따라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셨던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을 따라서 오늘 우리들은 죄로부터 자유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 어디도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진리만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잘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럼 분명히 이 말씀대로 여러분 삶 속에서 진리가 여러분들을 그 가운데서 자유하게 하실 것입니다.

     

    4.  생명의 성령의 법을 너희 안에 기록하라!

    자 그러면 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왜 죄에서 자유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죄의 종이 되는 걸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죄에 지니까 그런 것이지 않습니까?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은 진리가 죄를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혹은 하나님 말씀이죠, 그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죄,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1절 말씀을 보면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 자기 마음에 두었다고 증거합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나님 말씀을 내 마음에 둘 때 그 말씀이 나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죄의 소욕, 즉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죄의 소욕을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무엇으로 비유합니까? 칼, 검이라고 비유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말씀을 통해서 쪼개는 것입니다. 쪼개고 죽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우리 안에 기록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고, 죄의 소욕을 죽이고 결국은 죄를 이기게 해서 죄를 짓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과 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기 때문에 어떤 말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한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날 해방한다는 것은 이 성령이 죄의 힘, 죄의 권세로 부터 우리를 이기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지지 않게 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거듭나서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이 어떤 삶이라는 것이냐 하면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요한 8장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게될 때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그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그런 가운데 우리가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실질적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럴 때 성령이 우리 안에서 이렇게 역사하시게 되서 우리가 죄의 소욕을 이기게 하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이고 그럴 때 성령이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는데 에스겔 11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에스겔 11장 17절에서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는 또 말하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열방 가운데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그리로 가서 그 가운데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제하여 버릴찌라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목요일 기도회 시간에 말씀드렸던 본문의 말씀인데요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된 이들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내가 너희를 다시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돌아올 때 18절 말씀을 보게되면 그들이 다시금 돌아와서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을 다 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미운 물건과 가증한 것은 바로 우상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다 제하여 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이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이 우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고 우상을 섬기는 가운데 있을 때 결국은 그 우상숭배 때문에 이들이 나라가 망하게 되고, 바벨론이라는 이방 나라에 사로잡혀 가서 그곳에서 종으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종과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그곳에서 나오게 하겠다고 하시는데 나오게 하겠다는 건 바로 종에서 나오게 하겠다는 것이고 이는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신을, 새 영을 그들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을 주시겠다는 것이고 영을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거기서 나오게 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나올 때 우상을 재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게 된 그들이 그곳에서 종으로, 노예의 삶을 살게 된 근본적 이유가 우상을 숭배하였기 때문이고 그 우상을 제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비로소 그들이 우상을 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 스스로는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던 우상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힘이 너무나 크니까 상대적으로 그들은 너무나 힘이 약하다 보니까 그 우상숭배라고 하는 죄로부터 스스로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이 영을 주셔서 그들을 그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상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8장을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성전으로 데리고 오십니다. 그리고 성전 뜰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에 에스겔 선지자로 하여금 담을 헐라고 하십니다. 담을 헐었더니 그 안에 문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 안에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또 들어가서 보라고 말씀합니다. 들어가서 보니까 뭐가 보입니까? 각종 우상들이 즐비하고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는 모습이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 표면적으로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실제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백성들 삶 가운데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벗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거기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은 그 죄 가운데서 나오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에서 사로잡혀 있던 가운데서 벗어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고 한다면 오늘 우리 성도들도 표면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지만 실제로 내 깊은 곳에서 내가 섬기는 건 하나님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상을 섬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우상이 뭐라는 것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말하는데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나로 하여금 하나님께 계속해서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나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그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명예든 혹은 내 자녀든, 좀 더 들어가서 보면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것, 근본적인 것이 무엇일까요? 내 욕심입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결국 내 욕심을 추구하는 것이라 말씀드렸고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지 않고 내 욕심을 죽이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게 우리 스스로 할 수 있습니까?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뭘 약속하신 것이냐면 바로 성령을 약속하신 것이고 근본적으로 이 죄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영적인 우상숭배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도록 그래서 우리가 참으로 자유하도록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 백성 되도록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이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 죄로부터 그리고 큰 유혹의 권세로부터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성령이 언제 우리를 도우시고 언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게 하라라”는 말씀을 따라서 우리 하나님께 순종할 때입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이 이 안에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는 성도들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려고 하고, 순종하도록 힘쓰는 가운데서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전 로마서 8장 1절, 2절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에 힘을 쓰면 힘을 쓸수록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는 말씀을 더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되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라 것입니다. 이걸 위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결국 우리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이유입니다.

    요한 8장 35절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보시면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죄의 종 되고 죄를 범하면 범할수록 거기에 매이게 되서 우리 성도들이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정말 노력하셔야 됩니다. 죄와 싸워야 됩니다. 물론 내 힘으로 된게 아니라 성령의 능력을 입어야 되죠. 치열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에게 집니다. 그러면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 받고 성령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면 죄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5.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

    35절을 보시면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종이 주인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까? 잠깐 잠깐 들어올 수 있지만 말 그대 그냥 종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그 집에 계속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신 말씀은 아들이 되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되어야만 그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주인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그 집이 그 아들의 집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종은 그 주인의 집이지 이 종의 집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걸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게 뭘까요? 우리가 종으로 살아가면 영원히 하나님 집에 거하지못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우리가 죄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이 아니라 아들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바로 예수님의 참된 제자들, 참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 되고 그런 아들이 영원히 하나님 집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으로 살아 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받았지만 여기에 만족하시면 안됩니다. 실제 우리 삶이 하나님 아들의 삶,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 아들의 삶,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따라가는 그런 삶을 실적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아들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그럴 때 말씀처럼 영원히 하나님이 집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6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한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오 오셨으니까 예수님만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이런 죄로부터 자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하게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고 또한 부족하다 보니 완전히 죄로부터 자유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죄 의 종된 삶에서는 벗어나고 죄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삶, 바로 영원한 천국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는 말씀이십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말씀이 각자에게 큰 깨달음이 되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죄로부터 자유하는 진정한 은혜와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유튜브 예배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