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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세지]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12:1-2)

    [복음메세지]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12:1-2)

     

    [말씀 제목] 예수를 바라보자(히브리서12:1-2)

    [설교자] 전홍희 목자

    [설교 날짜] 2026. 7. 7

     

     

    📖 본문 말씀

    (히브리서 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 왜 우리는 예수를 바라보아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님이시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우리는 늘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우리 믿음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마음으로 찬양하고,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조금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주님이 우리를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안내하셔서 온전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신앙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구약의 사사기 시대를 보면, 하나님의 큰 기적을 체험했던 세대가 지나간 후, 다음 세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다가 결국 하나님을 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이방 민족들에게 어려움과 환난을 겪게 되었고, 괴로움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사사를 보내 구원해 주셨지만, 살아가면서 또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안타까운 모습이 반복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눈에는 예수님이 당장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예수를 바라보자!” 결코 주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매일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2.우리가 지금 바라보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 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본문 2절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현재 모습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 (시편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 다윗은 이미 계시를 통해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마가복음의 증언 (마가복음 16: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스데반 집사의 증언 (사도행전 7:55-56):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 스데반 집사님도 순교 직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바울 사도의 권면 (골로새서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베드로 사도의 증언 (베드로전서 3: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우리는 2천 년 전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모습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하나님의 보좌와 오늘날의 교회

    예수님이 앉아 계신 ‘하나님의 보좌’는 어디에 있을까요?

    구약 시대의 보좌:

    하나님께서는 성막을 만들라 하시고, 그 성막 안 속죄소 위 두 그룹 사이에 영광으로 좌정하셨습니다(출 25:22, 시 99:1).

    거룩하게 구별된 성소에서 백성들을 만나주셨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보좌:

    요한계시록 21장 10-11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습니다.

    그 성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영적으로 이 거룩한 성은 바로 예수님의 신부 된 ‘교회’를 의미합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1장 20절에서 예수님은 일곱 촛대가 ‘일곱 교회’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교회는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교회 가운데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 가운데 함께 계시며, 우리의 찬양을 들으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며, 성도들을 위해 친히 거닐고 계십니다.

    현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대제사장의 역할로, 왕의 역할을 하며 성도들을 돕고, 세우고 계십니다.

     

     

    💡 정리하며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2천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일을 이루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 왕의 역할로 우리를 돕고 세우고 계시며, 그리고 교회 가운데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바로 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예수님이 빛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임과 예배 가운데 예수님이 빛나시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 가까이 계셔서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늘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글쓴이 | 나애진 자매

  • [복음메시지] 인내로써 경주하며 (히 12:1~3)

    [복음메시지] 인내로써 경주하며 (히 12:1~3)

    [말씀제목] 인내로써 경주하며

    [본문말씀] 히 12:1~3

    [설교자] 윤석원 목자님

    [설교일] 2026/7/18 (토)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사람이 구원으로 가는 길에는 거룩이라는 요소가 중요하다. 거룩하게 되는 것, 즉 성화가 곧 구원받는 길이다. 본문은 그 성화의 여정을 우리가 인내로써 달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성화의 길을 인내하며 가야 하는 이유는 그 길에 많은 어려움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내할 수 있을까?

    본문에는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 증인들은 성경 속의 많은 인물들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의 옆에서 함께하는 형제자매들도 가리킨다. 이들은 모두 각자 자신의 성화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삶으로 성화의 여정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증인들을 바라봄으로써 우리 자신의 성화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성화의 길은 나 혼자 가는 것이 아닌 성도 모두가 다같이 가는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또한 이 길의 끝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본문에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한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달려가는 이유는 그곳에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맞아주시고 인정하여 주시는 것이 우리의 인내의 이유이며 목적이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향해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맞이해 주실 것이다.

  • [복음메시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형통한 사람 (왕하 18:1-8)

    [복음메시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형통한 사람 (왕하 18:1-8)

     

     

    [말씀제목]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형통한 사람
    [본문말씀] 왕하 18:1-8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님
    [설교일] 2026.07.18

     

    할렐루야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하겠습니다.

     

    (열왕기하 18:1~8)
    [1]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2]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 구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3]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8] 블레셋 사람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한 인물이 등장하고 있고 그 인물을 평가하기를 그는 참 형통한 인생을 살았다 라고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라는 사람입니다.

     

    [왕하 18:7]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하심에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는 어떻게 형통하게 되었는가? 성경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히스기야와 함께하셨을까? 우리도 형통을 원하고 형통한 삶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과 함께 하시느냐에 대해 우리가 되돌아봐야 합니다.

     

    1.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3절에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다. 바로 정직이라는 이 신앙의 가치를 다윗과 비교해서 같은 신앙을 가졌다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우리는 거짓된 삶을 살지 않는 것, 거짓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노인이 고향에 가기 위해서 깊은 산속을 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숲속에서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게 됩니다. 강도 가운데 한 사람이 노인에게 “이것이 가진 것의 전부냐?”라고 물었어요. 노인은 “그렇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강도가 지나간 후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금화 하나가 손에 또 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노인은 이 금화를 들고 곧바로 강도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말하길 나중에 보니 주머니에 있어서 가져왔으니 더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전부인가? 물었을 때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또 있었던 거죠. 양심을 속이지 않고 그 양심 앞에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 심지어 강도 앞에서도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인 거죠.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십니다. 나는 정직한 것처럼, 거짓말하지 않는 것처럼 살아갈 때가 있는데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돌아봐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직한 삶을 살아가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여러 걸림돌이 있습니다.

    첫째는 욕심입니다.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려고 거짓을 저지르죠. 물건의 함량도 속이고 또 요즘은 수입 농산물도 국산으로 바꾸고 가짜가 판을 치는 이런 세상 아닙니까?

    둘째는 습관을 끊어야 합니다. 거짓말은 한 번이 두 번 되고 두 번이 세 번 되어 익숙해집니다. 무서운 건 거짓말이 습관이 되는 거예요. 내 입에서 거짓을 몰아내는 일이 정말 중요합니다.

    셋째는 체면을 버려야 됩니다. 우리 선조들의 말 가운데 물 마시고도 이를 쑤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체면은 문화에서 온 것이기도 하지만 버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넷째 관계 유지의 유혹을 벗어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려고 보니 거짓말을 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아첨이라는 말로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 일들도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어떤 경우에도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안에 성령이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믿고 그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더욱더 내 삶을 지배함으로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2. 하나님과 동행을 방해하는 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왕하 18:4]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함으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사람들이 선지자였던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여전히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이 나중에 우상이 돼버립니다. 히스기야 왕은 유대인들이 숭배했던 여러 산당들을 파괴하고 우상을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도 이런 일들이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도저히 곁에 둘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안에 있다면 이걸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경건이 능력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깨끗한 사람을 쓰시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더럽게 여기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돌아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 삶에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제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왕하 18:5]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히스기야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실패한 후 하나님의 도우심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 방법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 후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의 18만 5천의 군대를 한 번에 징벌하는 일과 산헤립이라는 왕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께서 형통한 삶으로 이끄시길 원한다면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기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 풍성한 능력을 우리 삶에 반드시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역사하시는 그 은혜를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합니다.

    [왕하 18:6]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고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9절 이하에 보면 북이스라엘이 앗수르로 인해서 망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북이스라엘은 멸망했을까요? 앗수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반대로 여호수아 1장 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고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를 어지럽히고, 우리 시야를 가리는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또한 세상 풍조와 많은 가치관들이 우리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죠. 그래서 안식일에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이 말씀대로 살아야지 생각하다가도 세상에 마음이 흔들려 그것이 내 삶의 기준인 것처럼 그것을 향해 가는 일들이 많습니다. 이런 갈등 중에 하나님 말씀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히스기야가 형통했던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와 함께하신 이유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고 하나님과 동행하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대로 살았던 히스기야의 삶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복음메시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시편 37:1-9)

    [복음메시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시편 37:1-9)

     

     

     

    [말씀제목]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본문말씀] 시편 37:1-9
    [설교날짜] 2026.06.06
    [본문 말씀] 시편 37:1-9

     

    시편 37편에 대한 이해

    시편은 몇가지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찬양시, 탄원시, 감사시, 등이 있는데 시편 37편은 탄원시에 해당한다.

    예수를 믿으면 잘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정작 현실을 보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예를 들면 불교 신자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만 잘 믿으면 재산이 불어나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 생각하다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하면 그 마음이 불평으로 바뀌고 시기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시편 37편의 “행악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이 잘되어 가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나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 나가는 것을 보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불의를 행하는 자가 형통한 것을 보고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시편 37: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편 2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평탄하게 살아도 결국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 참예수교회 성도들 가운데에도 부에 대한 갈망을 가진 형제자매들이 있다. 그러나 돈을 물 쓰듯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뿐이다.

    한국에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행악자들과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보며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은 결국 그들에게 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힌트는 로마서 12장 21절에 있다.

    [로마서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성경 말씀을 보면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선으로” 이기라고 한다. 여기서 “선”이란 바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을 의미한다.

     

    네 가지 처방

    그렇다면 우리가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시편 37편을 에서는 네 가지 처방을 제시한다.

     

    1) 첫 번째 처방

    [시편 37: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첫 번째 처방은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는 것이다. 우선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계심을 확신해야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을 행해야 한다.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은 좋은 아파트에 살고, 주식이 오르고, 타인의 선망을 받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은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여기서 “식물을 삼는다”는 것은 동식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먹을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음식물처럼 영적인 양식으로 삼아 위로를 받고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2) 두 번째 처방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두 번째는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이다. 즉, 기쁨을 오직 여호와께 두어야 한다.

    타인의 재산이 늘어나고, 자녀가 형통하고, 물질적인 것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쁨을 두어야 시기와 질투를 극복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에 집착하고 거기에서 기쁨을 찾다 보면 불평이 생기고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거두어 가시는 날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마음속에 불평이 쌓이고 힘들어지면 남이 기뻐하는 것마저 시기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이 있는 사람은 자신도 기쁘고, 다른 사람의 기쁨도 함께 기뻐할 수 있다.

    물질적인 것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하다.

     

    3) 세 번째 처방

    [시편 37:5-6]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세 번째는 자신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쓰여있다. 자기 욕망대로 길을 선택해 놓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하기 쉽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4) 네 번째 처방

    [시편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네 번째는 잠잠히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그렇게 해야 한다. 악한 자들이 자기 뜻대로 하여 형통해진다 하더라도 그들을 시기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잠잠히 기다리라는 말씀이다.

     

    결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형통은 세상에서 말하는 가치와 다르고 그렇기에 우리는 때때로 시험에 든다. 시험에 드는 것도 모잘라 성경에 적혀있는 처방 또한 우리가 따르기 쉬운 것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네 가지 처방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고, 왜 네 가지 처방을 주시는지에 대한 해답은 8절에 있다.

    [시편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분노를 그치지 못하고 불평하기만 하면 결국 본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죄악에 빠지게 될 뿐이라고 말씀한다.

    [시편 37: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이어서 9절에는 행악하는 자는 결국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라는 구절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이 한 구절만 떼어 놓고 볼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차지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야라쉬”는 “상속받다”, “유업을 받다”, “기업으로 이어받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는 시편 37편 11절, 22절, 29절, 34절에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시편 37: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시편 37:22] 주의 복을 받은 자는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는 끊어지리로다.

    [시편 37: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시편 37:34]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

     

    그리고 마태복음에 보면 시편 37편 11절을 인용한 구절이 등장한다.

    [마태복음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성경에서 우리가 유업으로 받게 된다는 땅은 무엇인가? 물질적인 땅, 부동산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 말하는 “땅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개념은 구약시대의 기준에서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들과 선택하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땅”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삶의 터전, 하나님의 나라를 뜻한다. 구약에서는 가나안 땅이 그 상징이었고,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의 기업이다.

    즉, 시편 37편에서 말하는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물질적인 땅을 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상속받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시편 37편 9절을 바르게 해석하면, 시기하는 마음과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에 빠지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고,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만이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는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유업을 상속받기 위해 우리가 행악자들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불평 불만하지 않고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을 행하고, 하나님을 기뻐하고, 여호와께 길을 맏기고, 잠잠히 참고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님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 [복음메시지] 심령에 매임을 받아 (행 20:22~24)

    [복음메시지] 심령에 매임을 받아 (행 20:22~24)

     

    [말씀제목] 심령에 매임을 받아

    [본문말씀] 행 20:22~24

    [설교자] 윤석원 목자님

    [설교일] 2026/5/9 (토)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영적인 성장의 최고점은 무엇일까? 육적인 성장의 최고점이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듯이, 영적인 성장의 최고점은 전도이다.

    나의 신앙을 챙기는 데에서 벗어나 남의 신앙을 돌보아주는 것, 그것이 영적인 성장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이 육신의 자녀를 돌보는 일도 쉽지 않지만, 영적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을 길러주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동기부여가 있다면 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며 하는 노력엔 모두 동기가 있듯이, 우리의 전도하는 일도 동기부여를 받는다면 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본문의 바울 사도는 어떤 동기부여를 받았던 것일까?

    바울 사도는 전도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에베소 교회 장로들에게 자신이 심령에 매임을 받았다 증거한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성령이 충만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마음이 바울의 앞에 놓여진 결박과 환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던져가며 전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바울 사도는 마음 속에 의무감과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방인의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러주셨고, 그러므로 자신은 복음을 듣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빚을 진 자이므로 반드시 복음을 전해야한다는 의무감과 그리고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믿고 천국이 어서 오기를 소망하며 전도한 것이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 사도는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성령 충만, 그리고 자신의 의무감과 자신의 소망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전도는 선한 이기심으로도 행해질 수 있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므로,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것이다.

    즉 남을 위하는 것이 또한 나를 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바울 또한 느꼈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서 전도에 힘쓰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란다.

  • [복음메시지] 기도와 통곡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 (사무엘상 1:1~20)

    [복음메시지] 기도와 통곡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 (사무엘상 1:1~20)

     

     

     

    [말씀제목] 기도와 통곡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

    [본문말씀] 사무엘상 1:1~20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6/03/14 (토)

     

    사무엘서는 한 개인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특히 한나, 사무엘, 사울, 다윗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한 사람을 세우시고, 그를 통해 민족의 역사를 움직이시는지를 드러낸다.
    사무엘상은 다윗이 세워지는 과정의 시작을 보여주며, 사무엘하는 다윗 왕의 통치와 삶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엘가나와 지파에 대한 이해

    [사무엘상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자가 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사무엘상 1장 1절에는 엘가나가 에브라임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단순한 지리적 표현일 뿐 실제 지파는 레위 지파이다. 레위 지파는 기업의 땅을 따로 받지 않고 다른 지파의 땅에 거주하였으며, 엘가나의 가문은 에브라임 지역에 정착한 레위인의 한 계열이다. 따라서 사무엘 역시 레위 지파에 속한 인물이다.

    * 엘가나와 사무엘의 족보 관련한 참고 말씀: 여호수아 20:21-23, 역대상 6:22-27

     

    엘가나의 가정과 한나의 고통

    [사무엘상 1: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엘가나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고, 한나는 자식이 없었으며 브닌나는 자식이 있었다.
    한나의 고통은 단순히 아이가 없는 문제를 넘어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이유에서 비롯된다.

    •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닫으셨다는 영적 이유 (사무엘상 1:5)
    • 다른 아내로부터 받는 지속적인 괴롭힘 (사무엘상 1:6)
    • 남편의 편애와 이해 부족 (사무엘상 1:7)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하여 두 배의 몫을 주었지만, 이것은 한 가정안에서 오히려 한나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들었다.겉으로는 배려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한나의 기도

    [사무엘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사무엘상 첫 출발이 어두운 인간의 역사 속에 한 여인의 기도로 사무엘상이 시작된다. 한나는 사람에게 호소하지 않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통곡하며 기도하였고,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한다. 지금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한 시초가 된다.

     

    한나의 기도의 특징

    한나의 기도는 단순한 소원 기도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아픔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점 하나님과 깊이 연결되는 기도로 변화된다. 그리하여 자식이 간절히 필요했던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아픔을 이해하게 되자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면 그 자식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게 된다.

    • 감정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쏟아내는 기도 (사무엘상 1:10)
    •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기도 (사무엘상 1:15)
    • 자신의 필요를 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 (사무엘상 1:11)

    이 기도를 통해 한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아픔을 보는 기도

    한나의 기도는 “아들을 달라”는 요청에서 시작되었지만, 점차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기도로 변화된다. 이 과정 속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자신의 고통만 보던 시선에서, 심령을 통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한나의 그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 통하는 그 기도, 통곡하는 그 기도를 통해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기도는 한 가정을 살릴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 민족을 살리는 기도의 출발이었던 것이었다.

     

    결론

    [사무엘상 1:18-20]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그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름에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하셨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한 여인의 태를 닫으시고 하나님이 그 여인의 고통을 생각해 주셔서 그 태를 열어주실 때에 이 가정에 놀라운 은혜가 임했고, 서원한 대로 하나님께 바친 그 아들 사무엘을 통해서 이스라엘 전체를 이끌어 가시는 놀라운 소망찬 은혜의 출발이 시작되는 것이 삼상 1장 인것이다.

     

    우리는 사무엘상을 읽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한나를 통해서 다시 믿음의 사람이 교회 안에서 격동하고 이렇게 힘들게 할 때 어떻게 해야되는지에 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의 경건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 [복음메시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1~12)

    [복음메시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이사야 62:1~12)

    제목 :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본문 : 사 62:1~12

    날짜 : 2026/02/21 토요일

     

    오늘 본문에서는 쓰라린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새 희망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이사야 62:1)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침묵과 백성들의 불평 속에도 하나님을 위한 중보사역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도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면서도 때로는 그 응답이 지체됨을 통해서 실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라도 깨어있겠다는 각오가 이사야의 마음에 서려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나아가는 길목에 아름다움과 놀라운 선물들로 충만하게 예비하신 분이십니다.

    성도들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실 충만한 선물들을 항상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큰 아름다움으로 채워주실지 기대해 봅시다. 그러면 마음에 희망이 생기고, 그 소망을 따라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심을 통해서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시는, 열심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위한 구속의 사역을 계속하십니다. 시온의 회복을 위해서 열심을 다하시는 분이십니다. 물욕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뒤엎으시고,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그 일을 담대히 수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온을, 백성들을 정말 사랑하셨습니다.

    (엡 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바쳐가면서 일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열정을 통해서 시온이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열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고, 목숨을 걸고 미쳐야 열정을 낼 수 있습니다. 큰 업적을 이루려면 열정을 불태워야 하듯이, 기도에 열정을 불태워야 합니다. 우리들의 여리고성을 주님의 도우심으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같이 온 세상을 비추게 하심으로 회복하십니다.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성령이 역사하면 교회에 힘이 생겨서 구원의 역사에도 결실이 생깁니다. 거부할 수 없는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시온이 완전한 영광과 지위를 회복하게 됩니다.

     

    교회는 어떤 존재일까요?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이사야 62:3)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습이,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이런 존재가 됩니다.

    정말 귀한 존재는 구원받은 성도들이고, 완전한 영광 가운데에 있는 성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헵시바, 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는 뜻이고, 쁄라는 결혼한 여자를 뜻합니다. 우리를 큰 기쁨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완전한 영광과, 완벽한 신분과, 완벽한 지위를 회복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교회와 성도가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6)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이사야 62:6~7)

    아무리 좋은 설계도가 있어도 건축을 시작하지 않으면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위한 구원의 계획과, 우리를 향한 계획과, 많은 선물들을 예비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써 깨어있는 주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도로 움직이고, 그 역사를 움직이게 해서, 모든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온 세상이 하나님을 보고 찬양할 때까지, 우리를 회복시켜주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릴 위해 예비하신 것은 아주 많습니다!

     

     

     

     

  • [복음메시지] 빚 진 자 (롬 1:14~15)

    [복음메시지] 빚 진 자 (롬 1:14~15)

     

    [말씀제목] 빚 진 자

    [본문말씀] 로마서 1:14~15

    [설교자] 윤석원 목자님

    [설교일] 2026/2/14 (토)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14‬-‭15‬ ‭

     

    본문의 말씀은 바울 사도가 로마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빚을 진 자라 말합니다. 왜 바울 사도는 본 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는 이방인들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린도전서‬ ‭15‬:‭10‬ ‭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사도행전‬ ‭9‬:‭15‬

    바울 사도는 자신의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것임을 나타내지만, 또한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 택하신 것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모르는 이방인들의 존재가 자신이 구원받은 이유 중 하나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바울 사도는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빚을 진 자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이런 귀중한 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신 것일까요?

    그 은혜에는 우리를 사랑하셔서도 있지만, 우리가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처럼 세상에 빚 진 자들인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복음을 모르는 세상의 존재로 우리가 구원받았기에, 우리는 반드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이고 우리가 빚을 갚는 길입니다.

    전도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선포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선포하며, 우리의 빚을 갚아나가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복음메시지]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말씀제목] 꼭 결혼해야 되나요?(딤전 4:1~3)

    [설교자] 오희도 목자님

    [설교일] 2025년 9월 6일 안식일 오전 예배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혼인 건수가 10년간 크게 줄었고, 결혼을 왜 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을 근거로 결혼에 대한 여러가지 논점들을 다뤄보겠습니다. 

    • 결혼의 성경적 기초
    창세기 2장 18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모든 것이 좋았으나, 아담 하나만 지었을 때는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창세기 1장 27-28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디모데전서 4장 1-5절을 보면 후일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겠지만 이것은 ‘믿음에서 떠난 말’이자 ‘미혹케 하는 영의 가르침’이라고 단호히 경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거룩함은 결혼을 안 하거나 특정 음식을 피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결혼해야 하는 다섯 가지 성경적 이유

    1.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말2:15) : 아담에게 배필을 만들어주실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만드실 수 있지만 딱 한 명의 하와만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일부일처제 결혼으로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믿음 안에서 맺어진 부부를 통해 경건한 자손을 잇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2.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기 위함(벧전3:7) : 부부는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유업으로 받을 동반자입니다. 한 겹 줄보다 두 겹 줄이 강하듯이 믿음의 가정은 천국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강력한 두 겹 줄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 안의 결혼을 통해 이 유업을 함께 받고, 부부가 함께하며 믿음의 자녀를 낳아 생명의 은혜를 이어갑니다.
    3.  음행에 빠지지 않기 위함(고전7:1-2) : 바울 사도는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금욕으로만 거룩해진다는 주장과 여러 이성을 가까이 해도 된다는 의견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결혼을 통해 정욕을 다스리고 음행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4.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기 위함(엡5:31-32) :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많이 비유합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결혼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가정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5. 참된 사랑의 기쁨을 맛보기 위함(시128:1-4) : 수고한 대로 먹고, 밥상에 가족이 둘러앉아 누리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일시적 쾌락이 아닌 참된 사랑의 기쁨을 가정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5-6절처럼 자식의 자식까지 보며 예루살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 결혼의 원칙과 교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몸을 이룰지로다(창2:24)

    하나님의 주례사와 같은 이 말씀을 보면 결혼에 순서가 있습니다. 첫째 부모를 떠나(경제적·심리적 독립의 준비가 됨), 둘째 연합하여(사랑의 결합), 셋째 한 몸을 이룹니다(육체적 결합).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먼저 한 몸부터 이루고, 맞으면 연합하고, 나중에 결혼하라고 유혹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순서를 지켜야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고전7:7-9) 

    바울은 주님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 독신이었습니다. 독신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고, 그 은사를 통해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마음이 굳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못하고, 절제하지 못할 것 같다면 결혼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하셨습니다. 태생적 고자나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자(바울처럼)만 독신이 좋다고 하신 것입니다.(마19:10-12)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마지막으로 히브리서 13장 4절을 보시겠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귀중한 제도입니다. 만약 인간의 욕망 때문에 침소를 더럽히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혼이라는 하나님의 제도를 통해서 서로를 위하는 돕는 배필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서 행복을 누리는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기를 눌러주세요.(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복음 메시지] 지혜로운 건축자 (고전 3:10-15)

    [복음 메시지] 지혜로운 건축자 (고전 3:10-15)

    2025년 11월 22일 (토)

    설교제목: 지혜로운 건축자

    본문: 고전 3:10-15

    설교자: 박은진 목자님

     

    세상에는 많은 집이 있습니다. 또 사람들은 이 땅의 집을 잘 짓기를 바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의 집 뿐만 아니라 하늘에도 하늘의 집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 땅의 집이 아니라 하늘의 집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의 집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지혜롭게 건축을 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늘의 집을 지혜롭게 건축할 수 있을까요?

    *지혜로운 건축의 비결

    1. 좋은 터를 마련해야 합니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고전 3:10)

    건축에는 기초가 가장 중요합니다. 믿음의 건축도 마찬가지로 기초가 가장 중요합니다.

    (마 13:20-21)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도 뿌리, 즉 기초가 없는 믿음의 사람들은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곤 합니다. 우리는 이 믿음의 뿌리를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의 뿌리를 무엇으로 세워야 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의 뿌리, 즉 기초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마 7:24-25) 반석 위에 집을 지어놓으면 아무리 풍파가 몰아쳐도 튼튼하게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마 7:24-25)

    구원은 오직 믿음의 터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믿음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아 믿음을 튼튼히 세워나가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 좋은 믿음의 재료로 지어야 한다. (12-13)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전 3:12-13)

    1) 금, 은, 보석 : 변하지 않는다.

    2) 나무, 풀, 짚 : 변하고, 불에 취약하다.

    불에 취약한 재료로 집을 지으면 곧잘 불에 타버리고 무너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금, 은, 보석으로 집을 지어야 할까요?

    (약 3:13-18) 보석과 같은 위로부터 난 지혜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

    이러한 좋은 믿음의 재료로 건축을 할 때 지혜로운 건축이 될 수 있습니다.

     

    3. 공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14-15)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고전 3:14-15)

    ‘공력’은 ‘수고’를 의미합니다.

    집을 지을 때 정성을 다해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건축한 믿음의 집을 시험하시고, 검사하십니다. (고후 5:10)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기억해주십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살전 1:3) 

    믿음의 공력은 각각 다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공력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공력을 다하는 것이 지혜롭게 하늘의 집을 짓는 방법입니다.

    모든 성도님들께서 이 땅이 아닌 하늘을 소망하며, 하늘의 집을 지혜롭게 건축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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