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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관 소개 ] 수원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 수원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수원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1. 2023년 목표: 선한 일에 솔선수범하는 청년부

     

    • 청년부 구성 현황

    1) 학생부(중/고등부)

    – 수원교회 학생부는 중학생 5명, 고등학생 4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반별로 2명의 선생님들께서 지도해 주십니다.

    – 수원교회 학생부 고정 출석 인원은 약 5~6명입니다.

    2) 대학부

    – 수원교회 대학부는 17명입니다. 이 중 고정 출석 인원은 약 6~7명으로 매우 적은 출석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수원교회 대학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 청년부 일정

    1) 안식일 일정

    – 예배: 안식일 오후 4시 20분~5시 20분

    – 식사: 안식일 오후 5시 30분~6시 30분

    – 친교(보드게임/탁구/특별활동 등): 안식일 오후 6시 30분~

    2) 2023년 연간 일정

    – 월별 생일파티(매월 마지막 주 안식일)

    – 분반 특별활동: 간단한 만들기 활동/새학년 다짐 활동/친구 초청 편지쓰기 등

    – 찬양기도회(매월 마지막 주 안식일)

    – 성경 골든벨(연 2회-7/12월)

    – 성경 읽기의 밤(연 1회-9월)

    – 친구 초청 예배(연 1회-9월)

     

    • 올해의 다짐

    – 2023년 수원교회 청년부는 목표에 맞게 선한 일에 솔선수범하고자 노력 중에 있습니다. 개인의 영성 관리, 교회 내 봉사 등을 통해 더욱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글작성 : 김정기 형제

  • [복음메시지] 성령의 사역 (요16:5-11)

    [복음메시지] 성령의 사역 (요16:5-11)

    말씀제목 : 성령의 사역 (요16:5-11)

    2023년 2월 14일 김용준 목자님 

     

    (요 16: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요 16: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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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하신 예언의 말씀을 생각해보았다. 주님께서는 핍박으로 인해 실족하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셨다. 핍박을 하는 것도, 핍박으로 인해 실족하는 것도 모두 무지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핍박 가운데 실족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해주신 것이다. 우리가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매우 어려울 것이다. 내적으로는 신앙의 혼돈이 있고, 외적으로는 핍박이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어려운 때에 어떻게 해야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는 이를 위해 미리 말씀해주셨다. 또한, 우리가 그런 상황 가운데서 실족하지 않으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 함을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시다. 성령이 핍박을 이기기도 하고, 혼돈 가운데서 바른 신앙을 찾게 해주신다는 말씀인 것이다. 핍박 가운데서도 보혜사 성령이 나와 함께하시고, 혼돈이 와도 내가 믿는 신앙이 바른 신앙이라는 것을 내 안에 거하는 성령이 증거해주신다는 것이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결정적인 시간에 바른 신앙을 지킬 수 없다. 성령이 용기와 지혜를 주셔야만 우리가 일어날 수 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구약 성경이나 바울 서신에서도 그런 내용을 볼 수 있으나, 핵심적으로는 복음서에 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어떻게 말씀하셨는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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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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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4절부터 성령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다.

    첫째로, 기억나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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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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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은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말씀을 생각나게 도와주신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기억난다는 것은 창작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미 들었던 말과 보고 듣고 깨달았던 일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생각나게 하신다는 뜻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미 듣고 본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셔서 죄를 이기게 하시고 핍박을 견디게 하시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것이다. 마치 농사와 같다. 종자를 심었다고 바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적절한 여건에서 일정한 때가 되어야 싹이 난다. 적당한 환경이 조성되어야만 싹이 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의 씨앗이 마음에 뿌려졌다고 해서 말씀이 바로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적당한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그때 은혜의 단비가 내리면 그 비로 인해 씨앗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말씀의 싹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듣고 배워두는 것이다. 듣고 배운 말씀이 없다면 생각나는 말씀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듣고 배워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말씀이 생각나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은 창작이 아니다.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들은 말씀, 깨달은 말씀, 배웠던 말씀을 적절한 상황에서 생각나게 도와주신다는 것이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성령이 오시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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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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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목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사건과 성령 강림을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시지 않으시면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야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는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비둘기 같이 성령이 임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잉태되셨을 때에도 성령으로 잉태되셨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도 성령에 이끌려 가셨다. 이는 모두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이다. 예수님의 중요한 순간마다 모두 성령이 함께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이 일이 일어났다. 또한, 성경의 중요한 일들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구약부터 신약까지 성령의 역사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은 예나 지금이나 역사하고 있다.
    그러면 왜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가야만 성령이 온다고 말씀하셨는가? 이 성령은 무엇인가? 이 성령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령이 아니라 약속의 성령이기 때문이다. 창조 시에도 성령의 역사는 있었고, 선지자들에게도 성령은 역사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복음적 기능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전에는 없었으나,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진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내주이다. 그리고 이렇게 임하는 성령을 약속의 성령이라고 부른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복음의 역사로 나타나는 약속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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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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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약속의 성령은 십자가 사건과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다음에야 약속의 성령의 역사는 시작된다. 주님께서 이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이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 성령은 우리에게 유익하다. 이 약속의 성령의 유익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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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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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망하시리라’는 ‘엘렝크세이’로, ‘엘렝코’의 미래 시제이다. ‘엘렝코’는 ‘밝히 드러내다’, ‘폭로하다’, ‘죄를 깨닫게 하다’, ‘바로잡다’, ‘꾸짖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이를 ‘책망하다’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죄’와는 연결이 되나, ‘의’와 ‘심판’에 대해서는 연결이 부자연스러워보인다. 좀 더 자연스럽게 풀자면, ‘성령은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는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밝히 드러내주고, 이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로잡아주는 일을 우리 안에서 해주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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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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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정죄함을 받는 이유를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에 대한 불신앙을 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달아 알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불신앙 가운데 거하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하시면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규정하는 법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 어떤 죄보다 심각한 죄라고 성경에서는 말씀하신다. 성령이 임하시면 이것이 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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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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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설교가 사도행전 2장이다. 베드로가 죄를 지적했을 때,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의 찔림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말하며 변화되었다. 베드로의 설교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책망한 것은 그들의 방탕함이나 타락, 부패함 때문이 아니었다. 베드로가 지적한 것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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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행 2:23)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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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드로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그들에게 경고하고 깨닫게 하고 있다. 그 결과가 37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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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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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예수님을 못박아 죽인 것은 로마 군병들이었다. 그런데 베드로의 말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그들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말했다. 로마 군병들이 찔러 죽였고, 전에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가 예수님을 못박았다고 판정하는 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 것이다. 십자가는 20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내 죄 때문에, 나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음을 고백하고 나를 책망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2000년 전의 사건이 오늘날 나를 위한 사건이라고 이해할 수 없다. 성령이 내게 역사하셔야만 받아들일 수 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은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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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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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로, 의에 대해 말씀하신다. 성령이 의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주시고 바로잡아주신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의를 사람들이 행하는 도덕적인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을 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러한 의의 기준에 따라, 예수님께서 사회 질서를 교란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신성 모독죄를 저질러서 처형받아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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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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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사람들은 예수님을 새로운 종교 운동을 일으켰다가 유대인과의 힘겨루기에서 실패한 지도자 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 하나님께 올라가셨다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무죄하시고 완전히 의로우신 분임을 증명한다. 죄 있는 자가 다시 살아 예수님께 올라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으시고 하나님께 가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심을 증거한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죄의 문제에 대한 유일하고도 완전한 해답이라는 사실은 의에 대해 증거하는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알 수 없다. 성령이 없는 사람에게 십자가의 도는 미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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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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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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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의 희생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멸망 가운데 처할 수밖에 없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세상은 이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의로우심이 밝히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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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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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로, 성령께서는 심판에 대한 인간의 그릇된 생각을 꾸짖으시고 바로잡아주신다. 그러면 그 그릇된 생각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심판받으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고통 가운데 죽으셨으나, 실제로 심판받은 것은 사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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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일 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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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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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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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이루었다’는 외침은, 죄인을 위한 대속 뿐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사단을 심판하시는 일도 완성되었다고 선포하신 외침이었다. 사단은 죄와 사망, 두 가지 권세로 세상을 지배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죄에 대해 승리하셨고, 부활하심을 통해 죽음에 승리하시고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리는 사단이 심판받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세상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던 사단에 대한 심판이었다. 성령께서 이것을 밝히 드러내 알게 해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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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행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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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할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 어떤 것을 증거하는가? 주님께서 가셔야만 성령이 오시고, 성령이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다.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이 예수님에 대해 무엇을 증거하는가? 첫째로, 약속을 주신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증거한다. 둘째로, 주님께서 사단을 이기셨음을 증거한다. 성령께서 이것을 밝히 드러내셔서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심판 받았다고 생각하나, 예수님께서 다시 사셔서 아버지께로 올라가셨음을 통해 성령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단이 심판받았음을 증거한다.
    성령은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해주셔서, 그리스도의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핍박 중이든, 환난 중이든, 혼돈 가운데서도 성령을 의지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흔들리지 않는다. 죄와 의와 심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귀한 성령의 본질적 역사이다. 우리는 이 성령을 받았다. 그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 위해서는 은혜의 단비가 내리도록,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성령의 역사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해주신 말씀이다.

    (예배링크)

  • [교육부] 2023년 동계 학생부영은회 개최

    [교육부] 2023년 동계 학생부영은회 개최

    할렐루야!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23년 동계 학생부영은회가 1월 28일(토)부터 2월 1일(수)까지 총회교육훈련센터(대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학생부영은회는 총회 교육훈련센터에서 4박 5일로 개최된 첫 통합 영은회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를 주제로, 성경의 큰 틀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는 미수령 학생 31명 중 17명의 학생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구하는 친구들이 성령 받을 수 있도록 서로 기도해주고, 다른 친구들이 성령 받았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참예수교회 학생부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영은회를 인도해주신 주님의 은혜와 더불어 각지교회의 봉사와 관심에 감사드리며, 한국교회의 미래인 학생부가 빛과 같은 주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 수령자 명단 (총 17명)

    중1: 서지후(전주), 고은결(전주), 윤선후(하남), 김산(대방), 최민영(부산)

    중2: 김다은(부산), 엄아린(수원), 홍지산(수원), 천우성(평택), 김승빈(평택)

    중3: 곽성찬(대전), 오재율(전주), 한서희(서부)

    고1: 이솔지(청주), 박효운(강남), 서건우(대전)

    고3: 송우현(대방)

     

       

     

     

  • [신학원] 제 33차 단기신학훈련 개최

    [신학원] 제 33차 단기신학훈련 개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찬양합니다.

    제 33차 단기신학훈련이 2023년 1월 1일(일)부터 1월 12일(목)까지 총회교육훈련센터(대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이번 단기신학훈련은 1년차부터 3년차 과정까지 개설되었습니다. 1~3년차 등록인원은 62명이었으며 그중 56명이 수료하였고, 4명이 부분수업을 수료하였습니다.

    2주 간의 단기신학을 돌아보면, 매일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들 때까지 말씀과 기도, 찬양으로 우리 영혼을 살찌우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모릅니다. 이번 단기신학을 통해 믿음이 견고해지고, 훈련된 일꾼들이 각지교회에서 하나님 일에 쓰임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복음 메시지] 가나안 여인의 간구(마15:21-28)

    [복음 메시지] 가나안 여인의 간구(마15:21-28)

    [말씀 제목] 가나안 여인의 간구 (마15:21-28)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3년 2월 4일(토) 안식일 예배

    이방의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은혜를 받습니다.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흉악한 귀신들려 고통 받는 딸을 고침 받기 위해 나아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고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옵니다. 사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님을 믿게 됩니다. 바울은 살 소망이 끊기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음은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만을 의뢰함이라 말씀하십니다(고후1:8-9).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자기를 의지하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가 만날 것이고(잠8:17)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렘33:3). 그러나 가나안 여인이 주님께 나아와 소리 질러 간구했을 때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여인의 간청에도, 제자들의 언급에도 꿈쩍도 않으시고 냉정하게 거절하십니다.

    간절히 구함에도 응답하지 않으심은 우리의 죄 때문일 수 있습니다(사59:1-2). 또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려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은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케 하심이 본심이 아니라 말씀하십니다(애3:33). 그럼에도 어려운 시험을 주심은 이를 통해 결국 복을 주려 하시기 때문입니다(신8:16). 가나안 여인은 바로 예수님의 믿음의 시험을 잘 인내하여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8:16)”

    그럼, 하나님께서 믿음을 시험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기대하며 기도하는데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문제는 낙심하게 되면 믿음을 잃게 됩니다. 믿음의 기도일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히11:1) 또한 역사하실 수 있기에(약5:15) 우리는 기도하되 낙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외면에 가나안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구함으로 은혜 받게 됨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4)”

    둘째로 끝까지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기뻐하시고 은혜 주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계속 거절을 당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을 낮춥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겸손의 말로 인하여 은혜를 받습니다(막7:29). 주님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막7:28-29)”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를 의도적으로 낮추시어 순종을 시험하십니다. 낮추심으로 우리를 시험하시고 그 가운데 하나님 명령을 지키는지 여부를 보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복을 주시기 위함이십니다(신8:16). 믿음의 시험에 아브라함이 끝까지 순종함으로 복을 받았던 것처럼 주님은 끝까지 겸손하게 순종한 가나안 여자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며 그녀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와 같이 시험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시험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겸손하게 순종한다면 분명 주님으로부터 약속된 복과 은혜를 받을 줄 믿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2)”

    유튜브 예배링크(클릭!)

    글| 백현 자매

  • [기관 소개 – 사회청년부] 청주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 사회청년부] 청주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청주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해가는 청주교회 청년부를 소개합니다.
    청주교회 청년부는 대학생 3명과 군인 1명, 그리고 사회초년생 7명의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인 우리 청년부들은 신앙적으로는 신앙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시기이고 처음 교사 사역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성인이 되어 정신적 및 경제적 독립을 하게 되며 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 놓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는 세상의 가치와 신앙적 가치 사이에서 많은 줄다리기를 하게 됩니다. 신앙적으로 고민할 일들이 많아지고 심지어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 청주교회 청년부는 하나의 신앙 공동체로 형성하여 이런 시기에 처한 청년들이 서로의 신앙 고민, 갈등 등을 공감해주고 답을 찾으며 신앙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청주교회 청년부의 1년 행사와 청년부의 안식일 일정을 소개합니다.

    매해 2월 말 또는 3월 초에 학생부에서 대학부로 올라오는 신입생들을 위해 신입생 환영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입생들이 청년부에 잘 적응하고 구성원들과 친해질 수 있는 행사이며 신입생들이 신앙의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선배들은 신입생들에게 조언해주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매해 다양한 활동을 계획 중이며 작년은 놀이동산을 다녀왔고 올해는 바비큐 파티를 할 예정입니다.

    4월쯤 청주교회 청년부는 북부지역 참예수교회를 선정하여 교류활동을 계획하였습니다. 올해 처음 시작되는 행사이며, 청주교회 청년부들이 북부지역 교회에 방문할 기회가 많지 않았으며 북부지역 참예수교회 청년부들과 교류가 적었기에 이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전국의 참예수교회 청년부는 하나의 참예수교회 교인이기에 서로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이러한 교류활동을 지속하려고 합니다.

    6월쯤 충청지역 참예수교회 청년부들과 함께 찬양기도회를 하고 교류활동을 진행할 계획이 있습니다. 북부교구에서 진행하고 있는 찬양기도회를 통해 청년들이 신앙의 힘을 얻고 은혜 받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획하게 되었고 4개 교회(청주, 천안, 장항서부, 대전)가 연합하여 진행하게 됩니다. 올해는 청주교회에서 진행될 예정이며 함께 연합하는 행사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여름방학에는 물놀이! 더운 여름에 물놀이를 하지 않을 수 없죠!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는 행사입니다. 비록 말씀을 듣고 찬양하는 행사는 아니지만 신앙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기에 매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11월에는 남부지역 교회를 방문해 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부지역 교회 청년들과는 남부 행사들을 하며 많은 신앙적 교류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남부지역 교회들은 거리가 멀기에 방문하기에는 힘들었고 한번도 가보지 못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청주교회 청년부는 남부에 위치한 참예수교회를 모두 방문해볼 계획에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안식일 저녁 형제반들은 학생부와 여호수아 신도회와 함께 풋살 모임을 가집니다. 신앙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육체적 건강도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풋살 활동을 통해 전도의 기회를 삼을 수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풋살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청주교회 청년부 안식일 일정은 아래와 같아요~

    10:30 – 12:00 오전 예배
    12:00 – 12:30 점심 식사
    12:30 – 13:30 티타임
    13:30 – 14:30 신도회 모임(찬양, 말씀 및 신앙 이야기 나눔)
    14:30 – 17:00 교회교육 교사 사역 및 봉사 사역
    17:30 -18:00 저녁식사
    18:00 – 18:30 계단청소
    19:00 – 21:00 성경공부(GBS)

    청년부 신도회 모임 시간은 다 같이 찬양을 부르며 시작하며 오전 예배말씀을 기반하여 서로의 신앙적인 고민과 반성, 결심 등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기도를 합니다. 청년부 신도회는 신앙 공동체로서 신앙적인 고민을 나누고 공감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주교회 청년부들의 대부분이 아동부와 학생부 교사로 봉사하고 있으며, 나머지 청년부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청년 시절 교사로 섬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교회학교 일정이 끝나고 저녁 식사 후 목자님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며 말씀의 양식을 섭취하고 꾸준히 신앙 성장에 힘쓰고 있습니다.

     

    글작성 : 장지훈 형제

  • [복음 메시지] 두 가지 기도(행4:29-31)

    [복음 메시지] 두 가지 기도(행4:29-31)

    예배일: 2023. 1. 14.(안식일)

    장    소: 참예수교회 안동교회

    제    목: 두 가지 기도(행4:29-31), (전도를 위한 기도에 관하여)

    인도자: 박누가 목자님

      사도행전 3장 1절에서 10절까지 읽어봅시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던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그 사람이 걷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들은 늘 기도하러 다니면서 그 앉은뱅이를 보았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사도들이  전도를 위한 기도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전도를 위해 무엇을 기도했으며 전도할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여주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을까요?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일어난 이 놀라운 사건에 관해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시작합니다.(행3:11~4:7) 그리고 이튿날 장로와 서기관들이 사도들에게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는 물음에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해 말하기 시작합니다.(행4:8) 사도들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수많은 백성들과 관원, 장로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할 수 있었던 권능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먼저 전도를 위해 우리는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기 전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행2:4) 그리고 늘 성전에 다니면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충만한 성령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또 성령의 충만을 받아 진리를 기탄없이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4:19-20]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성령의 충만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는 가까운 사람, 가까운 곳부터 전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늘 성전을 왕래하면서 앉은뱅이를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왕래지에서 누구를 보고 있습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성령에 충만을 힘입어 진리에 확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를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합니다. 방에 앉아 기도하고 말씀만 읽는다고 해서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할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도 두루 다니시며 전도하셨음을 기억합시다.(마4:23-25 / 눅4:42-44) 더불어 복음을 전하기 전 나부터 ‘빛과 소금’이 되어 말과 행실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 모든 전도를 위한 준비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 전도를 위해 우리는 주의 이름이 있는 곳에 표적과 기사가 함께 하심을 믿고 전해야 합니다. 혹 전도대상자가 병 중에 있다면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낫게 해주심을 믿고 모두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난 표적이 있다면 앉은뱅이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그 백성들처럼 우리 성도 안의 믿음 역시 성장 시킬 것입니다.

    [막16:15-2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은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제 다시 한 번 사도들의 기도를 상고해 봅시다.

    [행4:29-31]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우리는 전도를 위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고’,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이 두 가지 기도를 잊지 말고 항상 우리의 입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2023년 새해에도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충만으로 전도의 문이 열리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 [복음메세지] 세상의 소금과 빛

    [말씀 제목] 세상의 소금과 빛(마 5:13~16)

    [설교자] 홍영석 목자

    [설교일] 2023년 2월 3일(금) 저녁 예배

    https://www.youtube.com/watch?v=mHvq8umXzsQ

    마태복음 5장13~16절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안타깝게도 이 시대의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종교에 대한 호감도 또한 불교>천주교>기독교 순이다.

    그러면 기독교는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기독교는 노인복지,  아동복지, 무료급식, 구호활동 등 선한 일에 앞장서고 있다.

    기독교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홍보를 많이 한다 해도 세상은 기독교에 호의적이지 않다.

    세상의 권세자가 마귀이고 교회의 권세자가 하나님이기에

    교회와 세상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교회를 싫어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세상을 섬길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가 아닌가 같은 본질을 빗겨간 고민 말고

    하나님인 누구인지를 전파하는 , 세상이 진짜 필요한 것을 전하는 삶이 되어야겠다.

     

    1.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산상수훈의 서론 격인 팔복의 이야기가  끝나고 처음 설교에서 하신 말씀인  “빛과 소금”.

    팔복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성품으로   

    그리스도인이란  분리성향, 즉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르다 ‘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직접적인 예수님의 대답으로써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고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빛과 소금 된 그리스도의 삶이라 하셨다. 

    [팔복; 그리스도인의 내면,  빛과 소금;  외적으로 드러나는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세 가지가 있다

    1. 세상을 배척하는 삶
    2. 세상에 속한 삶
    3. 세상에 존재하나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을 변화 시키는 삶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2.세상의 소금이다

    마5:13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은 부패를 막은 역할과 맛을 내는 역할을 한다

    1. 부패를 막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정하신 국가와 가정 같은 부패를 막는 제도 외에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는 것은 팔복의 성품을 가진 그리스도인 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소금이 맛을 잃는 이유는 불순물이 들어 왔을 때이다.

    불순물이 섞여  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버리워진다.

    세상의 죄, 세상의 가치에 물들여져 맛을 잃은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받지 못함을 깨달아 세속적인 것이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이지 인지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 

     

          2.맛을 냄

    세상의 맛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맛이다. 세상의 맛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성도들과 나누는 교제의 기쁨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참 맛임을 기억하자.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맛을 잃지 않는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도록 살아가자.

     

    작성자|참예수교회 강남교회 김정남

  • [기관소개-대학부]강남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이 글은 대학부 부장, 구종헌 형제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할렐루야~강남교회 대학부를 소개합니다!

    강남교회 대학부는 현재 약 4명이 고정으로 출석하고 있으며, 분당 대학부 4명과 연합하여 성경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학부 고정 출석 인원은 군 입대를 하는 형제를 제외하고 모두 아동부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현재 대학부 인원은 적지만 적은 만큼 서로 협동하여 교회 사역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대학부는 안식일 오후 2시가 되면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아동부 교사로 사역하는 대학부 청년들은 2층 아동부실에서 아동부 예배에 참여한 뒤에 각 분반 교실에서 분반을 진행합니다.
    아동부 교사가 아닌 대학부와 분당 대학부는 2시가 되면 지하예배당에서 학생부설교를 듣고, 설교가 끝난 뒤에는 사청부와 연합하여 말씀묵상, 독서모임 등의 분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2층에 모두 모여 청년반 찬양예배와 헌금을 드리게 됩니다.

    4시30분 부터는 대학부 성경공부가 있습니다. 보통은 대학부와 사청부를 나누어 성경공부를 진행하고, 인원이 적을 경우에는 합반하여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부 인원이 적은 관계로 2023년에는 2022년에 대학부였던 청년들까지 모여 성경공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 이후에는 각 청소구역을 청소하고, 사청부와 저녁을 먹으며 안식일 일정을 마무리 합니다.

    대학생은 이전보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이이며, 동시에 세상의 유혹이 가장 강해지는 시기입니다. 그만큼 많은 잃은양들과 전도대상자들을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른 잃은양들에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심방을 진행하며 전도의 문을 열기위해 노력중입니다. 최근에는 감사하게도 잃은양이었던 대학부 1명이 예배에 자주 참석하거나, 대학부 심방 활동에서 교회 출석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도 하는 등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의 많은 사랑과 기도로 전도의 문을 열어 교회로 돌아오는 잃은양이 많아지기를 소망합니다. 저희 대학부도 전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대학부는 선택의 기로의 서있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대학부, 진학&취업의 문에 서있는 대학부,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대학부들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하기를 소망합니다. 바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힘써 행하는 기특한 대학부들입니다. 앞으로 교회의 기둥이 될 우리 대학부 청년들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청년들의 앞길을 밝히 보이시고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주 🙂

  • [복음 메세지] 극단의 결과를 가져온 불의의 고리들(삿 20:1-23)

    [말씀 제목] 극단의 결과를 가져온 불의의 고리들(삿 20:1-23)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1월 21일(토) 안식일 예배

    1787년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쓴 ‘로마 제국의 몰락’이라는 책에는 로마 제국 멸망의 이유에 대해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멸망의 이유 첫째, 이혼의 급속한 증가로 가정이 파괴된 점, 둘째, 사람들이 스포츠와 매춘 등 쾌락주의에 빠져든 점. 셋째, 세금은 점점 높아진 반면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공짜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는 포퓰리즘에 집중한 점. 넷째는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 지나치게 군비를 확장한 점. 다섯째 종교의 순수성이 무너져 시민들이 건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지 못한 점 등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의 각각의 원인을 보면 대체 이런 정도 이유로 멸망까지 할 수 있나 싶게 대수롭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각각의 원인들이 합해지고 증폭되니까 예상치 못한 심각한 결과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2008년 금융 위기도 그렇다. 여러 계층의 작은 부정, 부패가 합해져 예기치 못한 심각한 결과에 도달했다. 학자들의 그릇된 경제 이론, 금융기관에서 남발한 부실 채권, 신용평가 기관의 부정직한 평가, 일반 대중들의 탐욕이 한 데 어울어지니까 금융 위기라는 암덩어리로 발병했던 것이다. 개인의 건강도 그렇다. 누구나 한 가지 요소로 건강을 잃지는 않는다. 수면 시간 부족, 영양 섭취의 불균형,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 건강을 해치는 음주와 흡연, 이런 모든 악습관이 합해져 종합되니까 암같은 심각한 질병이 발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작은 것이 작은 것이 아니다. 영육 간의 독소는 작은 씨앗이 자랄 때 제거해 주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전 10:1) 『죽은 파리가 향기름으로 악취가 나게 하는 것 같이 적은 우매가 지혜와 존귀로 패하게 하느니라』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생활하느냐가 나 혼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모임,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그 의미는 나 한사람의 신앙과 믿음이 내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한 분의 성도가 자리를 비우면 허전하다. 그분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으면 든든하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의 공동체임을 증거한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건 교회 안에서건 내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어떤 의식과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어떤 의식과 신앙을 가지고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오늘은 레위인의 첩 사건이 불씨가 되어 베냐민 지파의 멸절하게 된 사건을 살펴보고 이런 문제를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레위인의 첩이 베냐민 지파 기브아에 속한 비류들에게 욕보임을 당하고 죽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피해자인 레위인은 마치 짐승의 제물을 각 뜨는 것처럼 여인의 시신을 12조각으로 쪼개어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보낸다. 이스라엘 12지파는 그것을 받고는 이 엽기적인 사건에 대해 경악한다. 그리고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모든 지파가 미스바에 모이게 된다. 그렇게 모여든 지파들 가운데 칼을 빼들고 전쟁하는 정병이 사십 만이나 되었다. 이 모인 규모로 봐서 이것이 이스라엘에 얼마나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레위인은 그렇게 모인 백성의 장로들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레위인의 설명을 들은 장로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이런 일을 행한 자들을 처벌하겠으니 범죄자들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베냐민 지파는 이 요구에 대해 불응한다. 결국 이스라엘 전체 지파 연합군과 베냐민 지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동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난 결과는 어찌되었는가? 베냐민 지파의 장정이 거의 몰살하게 되는 상황에 가서야 전쟁이 끝나게 된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끝에 그 원인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다.

    (삿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참고. 삿 17:6, 삿 18:1 삿 19:1

    동족끼리 칼을 겨누고 베냐민 지파가 멸절당하기까지 죽이고 죽임당한 이 불행한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성경은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있다. 그 원인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이다.

    그런데 근본 원인은 그렇다 치고 우리는 이 불행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불의의 고리들을 발견한다. 그 가운데 하나만 끊어져도 이런 자리에 도달하지 않았을 텐데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다 보니 오늘의 극단적 결과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 고리 중에 첫 번째, 만약 레위인이 첩을 취하지 않았다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레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의 정욕에 끌려 첩을 취하는 악행이 불씨가 되었다. 또 레위인이 음행한 첩을 데려오겠다고 자기 자리를 떠나 장기간 타지에 체류하는 불성실함이 없었다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베냐민 지파가 순순히 기브아 비류들을 이스라엘 족속들 앞에 순순히 내놓았으면 이런 일을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베냐민 자손들이 기브아 비류들을 찾아내서 그들을 징벌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을까? 그런데 베냐민 지파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여러 계층의 부정직과 불의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니까 나중에 전쟁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로마시대 멸망의 이유가 그러했고 또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현상이 그렇고 개인이 암이란 질병이 발병하는 과정이 그러한 것처럼 이 악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은데 원인이 있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사건과 극단적 결과의 이면에는 이렇게 작은 불의, 부정의 요소들이 합해지고 연결되다 보니 최악의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은 작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오늘의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남을 탓하기 전에 너의 흠을 고치라.

    (삿 20:5-6) 『[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이 레위인의 말을 보라.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고 말했다. 레위기에 보면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기생이나 부정한 여인이나 이혼당한 여인을 취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레 21:7, 14). 레위인은 제사장이 임명되는 지파이다. 그런데 레위인이 행음한 첩을 데리고 살려는 그 시도에 대해서 스스로 뉘우치는 모습이 없다. 만약 레위인이 그런 불행을 당했을 때 먼저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았다면 ‘내가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했더니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망령된 사건을 만나게 하셨구나!’라고 뉘우치고 회개했을 것이다. 그런데 회개가 없다. 그리고 오히려 베냐민 지파의 비류들만 고발하고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왕으로 모신 존재이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살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멈춰서야 한다. 그래서 성도들의 마음 속에는 양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 양심이 살아있을 때 자기 합리화라는 우물에 빠지지 않고 남을 탓하는 모순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도 산상보훈에서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려고 하지 말고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또 바울 사도는 디모데 전서에서 ‘남의 죄에 간섭하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는가?

    이 레위인의 우물안 빠진 모습에서 우리는 교훈을 받을 수 있다. 부디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딤전 5:22)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둘째, 인정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공의로 판단해야 한다.

    (삿 20:13-14)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오늘 본문에 베냐민 지파의 이상한 태도를 발견하게 된다. 베냐민 지파는 기브아 지역의 불량배들을 내놓지 않았다. 그들이 먼저 나서서 죄악을 저지른 불량배들을 징벌하고 공동체의 악을 제거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의 연합군과 전쟁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추정하건대 아마도 베냐민 지파 중 유력한 집안의 자제들이 그 불량배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투명한 사회일수록 옳고 그름의 기준보다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관계가 그 사회를 지배한다. 그래서 그런 사회는 배경이 있고 연줄이 있으면 안될 일도 되고 반대로 배경도 없고 연줄도 없으면 될 일도 안된다. 사실은 위험한 사회의 공의가 실종된 사회이다. 베냐민 지파의 행동을 보아 그 시대도 그러했던 것 같다. 공의의 기준으로 판결하고 적용한 것이 아니라 인정과 관계에 의해서 감싸고 죄악을 묵인했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도 이렇게 행동한 것이다.

    오늘날 나나 혹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이런 부패의 길을 걷지 않으려면 어떤 신앙의 길을 가야 할까? 성도 개인이 범죄할 때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상실이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상실임을 알아야 한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공동체가 상처받을 수 있고 그 상처는 또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순서가 왔을 때 그 고리를 끊어낼 결심이 필요하다.

    때로는 공동체에서 고리를 끊어낼 때 깊은 고민이 있다. 관용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관용에는 항상 악을 용납하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의문과 부담이 있다. 만약 무조건의 관용이 이루어져 무제한 악이 용납되면 공동체의 악으로 확대될 때 제재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관용이란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관용이어야 한다. 그래서 사랑과 공의는 함께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존립이 흔들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 전체 지파가 한자리에 모인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서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에게 한 몸 의식, 한 공동체 의식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공동체가 존립하려면 정직과 공의와 공평의 정신이 기초 되어야 한다. 이것이 무너질 때 공동체도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전 이스라엘 지파가 베냐민과 전쟁을 불사한 것이다.

    (고전 12:26-27)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5:6)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셋째, 근시안이 아니라 원시안의 안목을 가져라.

    (삿 20: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일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삿 20:46-47) 『[46]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이니 다 용사더라 [47] 베냐민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 달을 지내었더라』

    민 26:41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무렵 인구수는 45,600명이었다. 그런데 삿20장에서 베냐민 지파의 죽은 자가 50,100명이었고 남은 자가 고작 육백 명에 불과했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베냐민 지파는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아오는 동안 인구가 오천 명이나 늘어나는 복을 받았다. 그런데 이 전쟁을 통해서 전부 죽고 육백 명만 남았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에 대해 이렇게 한탄하고 있다.

    (삿 21:2-3)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 통곡하여 [3]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베냐민 지파 뿐 만이 아니라 사실은 이스라엘의 연합군도 피해가 컸다.

    (삿 20:21,25) 『[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결국 베냐민을 공격했던 이스라엘 지파 연합군도 무려 4만 명이 죽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거의 한 지파의 인구 규모와 같다. 하나님은 마치 광야에서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서로 치게 하셔서 그들을 징계하셨던 것처럼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하고 불신의 길을 걸어간 죄과를 이렇게 징벌하셨던 것이다.

    애초에 레위인이 음행한 첩을 취한 잘못의 회개하고 물러섰다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베냐민 지파가 자기 종족의 악을 근절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스라엘 지파가 베냐민과 더욱 대화하려고 하고 원만히 사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이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이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될 때 수확할 불행의 열매를 분별하는 눈이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열매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고스란히 담당해야 했던 것이다.

    어린 아이는 불장난의 위험성을 모른다. 눈앞에 불의 신기한 능력에만 몰입한다. 그러다가 큰 불이 난 후에야 불은 재미있고 유익한 것이지만 정말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한다. 이처럼 죄악은 마치 눈 앞에는 작은 불씨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확대되고 성장했을 때 엄청난 결과가 있다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분별해야 한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옛날에 어느 왕이 부정부패가 심한 신하들을 연회에 초대했다. 그들을 교훈하기 위해서 왕은 모든 신하들에게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연회에 참석할 때 안주는 왕이 부담하니 술은 신하들이 준비해서 포도주 한 병씩을 꼭 가져오라는 것이다. 모든 신하들의 포도주를 한 항아리에 부어서 함께 연회를 즐기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자 한 신하가 이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신하들이 포도주를 가져오면 내가 가져가는 포도주 한 병은 얼마나 되겠나! 난 포도주 대신 물을 담아 가야지.” 그리고 이윽고 연회가 열리는 날 왕과 신하들은 진수성찬으로 차려놓고 연회장 가운데 술항아리를 놓고 둘러 앉았다. 왕은 신하들에게 명해서 가져온 포도주들을 항아리에 부으라고 했다. 그리고 항아리에서 포도주를 퍼다가 모든 신하들에게 따라주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술잔 속에 담긴 것은 포도주가 아니라 물이었다. 나 하나쯤 하는 신하들의 생각이 모아져 술을 맹물로 만든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사기라는 성경을 통해 성도에게 교훈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을 마음 속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을 산다면 하나님 나라에 해를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죄악의 고리를 끊고 선한 영향력의 고리를 형성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공동체가 되자! 하나님이 천국의 문에서 맞아들이실 그 날까지 하나님을 마음속의 왕으로 모시고 경성하며 살아가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글편집 : 김예영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