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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성도간증]성령을 받고 두통이 사라지다!

    (이파자 모친 간증)

    저는 올해 79세인 이파자입니다. 제 고향은 남원군 사매면 서도리에요.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고, 저는 무서운 할머니 밑에서 커서 밖에 잘 나가지 못하고 집안 일만 하며 자랐어요. 20세가 되었을 때 동네에 4명의 동갑내기가 있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같이 사는 고모였어요. 옛날에는 아이를 많이 낳다 보니 할머니가 낳은 딸이 저랑 동갑이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모에게 “고모, 교회에 한 번 가볼까?” 했어요. “무슨 교회를 가!” “교회에 가면 좋다고 하니 한 번 가보자.” 하고 동갑내기 4명이 같이 갔습니다. 처음에 간 교회는 장로교회였어요. 찬송을 부르는데,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바다를~”라는 찬송이 듣기에 너무 좋아서 제가 “한 번 더 부를 수 없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다시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찬송을 따라서 부르다가 그날 그 찬송을 다 외워버렸어요. 4명중 저만 찬송을 다 외웠습니다.

    “수정같이 맑고 맑은 유리 바다를 하나님 보좌 앞에 있고 싶어라. 유리 바다 건너편에 믿는 성도들 이것 또한 유리같이 맑고 맑도다.”

    교회가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작은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대문 밖까지 들렸어요. “이놈의 계집애들! 오기만 오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지! 그래야 이것들이 교회를 안가지.” 하고 막대기를 문 앞에 놓고 말씀하셨어요. ‘몰래 갔는데, 어떻게 아셨지? 다리 부러뜨리면 아무데도 못가고 이걸 어떡하면 좋아.’ 하고 가만가만 들어갔더니, 막대기만 있고 작은 아버지가 안보였어요. ‘옳다 되었다.’ 하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자는 척 했습니다.

    당시 저는 잠업(누에를 치는 일)시험장을 다녔어요. 우리 교회 권정자 자매 계시지요? 그분의 언니인 권정숙 언니가 같이 잠업시험장에 다녔는데, 저를 참 예뻐했어요. 하루는 “파자야, 너 교회 한 번 가볼래?” “네, 언니! 언니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봐야지요.” 그런데 언니가 다니는 곳은 참예수교회라는 곳이었는데, 그때는 그 교회 평이 안 좋았어요. ‘참예수교회는…날라리 교회라고 그러던데, 팔짝팔짝 뛰면 어쩌지?’ 걱정이 좀 되었어요. 그런데 교회에 갔더니 교회가 조용했어요. 그 언니를 따라서 기도를 하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저는 교회라는 그 두 글자를 항상 가슴에 품고 ‘언젠가는 나도 이 길을 가야겠다.’ 하고 다짐했어요.

    25세에 시집을 갔어요. 도시 축에 드는 마을을 떠나, 시골 골짜기 삼계로……. 시집을 가서 생활하던 중에 머리가 너무나 아팠습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통증이었어요. 머리에 수건을 묶고, 그래도 안 되면 벽에 머리를 꽉 대고 있었는데, 머리가 안 아프면 이젠 배가 아프고, 배가 안 아프면 허리가 아팠어요. 아픈 것이 그치질 않아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가정 살림과 농삿일을 해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던 차에 남편이 세심이라는 마을로 민방위를 받으러 다녔어요. 남편은 제가 아픈 것을 안타깝게 보고 마음이 아팠던가 봐요. 제 남편은 교회라는 두 글자의 뜻도 모르고 지내다가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저에게 “교회를 한 번 나가보면 머리가 안 아프고 몸이 건강해진다 하더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 또 몇 년이 흘러 자식 다섯을 낳은 후에,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교회에 나가자고 했더니, 어느 교회를 가려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참예수교회에 가자고 했더니 이웃집 아주머니는 장로교회를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따라가려고 신발을 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남동생이 찾아왔어요. 아침 시간에 잘 안 오는데 일찍 왔더라고요. 동생은 당시에 참예수교회를 다니고 있었어요. 현재 전주교회 이정천 형제가 제 남동생이에요.

    “누나 어디 가려고?” “자꾸 아프니까 자형이 교회 나가 보라고 해서 지금 가려고 한다.” 그랬더니 동생이 무릎을 딱 치면서 “어쩐지 누나 집엘 오고 싶더라니……. 참예수교회를 나가야지요.” 했어요. 남동생의 권유로 그날 장로교회를 가지 않고, 일주일을 기다려서 토요일에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어요. 그렇게 제 남동생이 저를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제 남편도 참 고마워요. 살다보면 서로 맘이 안 맞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두통에 시달릴 때마다 나에게 교회 나가 보라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옆집 아주머니와 참예수교회를 갔는데, 기도소리를 듣고 옆집 아줌마는 계속 키득키득 웃었고, 저도 웃음을 겨우 참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는 웃음이 너무 나오니까 밖으로 나가버리더라고요. 저는 끝까지 설교 말씀을 듣고 앉아 있었어요. 삼계는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예배가 없었어요. 그 다음 주에는 이웃집 아주머니는 가지 않고 저 혼자만 갔어요. 동생도 볼 겸해서…… ‘남편이 교회를 그렇게나 권했는데, 내가 머리 아프다 죽으면 남편이 뭐가 되겠나.’ 하고 결심을 하고 다녔어요. 오전 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왜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농사짓고 누에 치고 담배 농사하고, 그런 가운데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교회를 가야겠다.’ 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세 번째로 또 갔는데, 이번엔 남편하고 같이 갔어요. 기도할 때 안수 받을 사람 나오라고 해서 나갔습니다. 그날 저는 성령을 받았답니다. 진동이 오고 몸이 떨려서 움직인다는 것이 여기서 저기까지 갔어요. 그 때는 마룻바닥에 방석을 놓고 기도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어찌나 눈물이 많이 나오는지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이 눈물이 기뻐서 나오는 건지, 슬퍼서 나오는 건지 몰라도 정말 펑펑 울었어요. 아! 살아나온 과정을 생각해볼 때 모든 뜻을 하나님 앞에 다 풀고 고백을 해야겠구나! 삼계교회가 떠나갈 정도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며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어요. 성령 받는 광경을 남편이 다 봤어요. 울고 싶은 대로 다 울었어요. 누군가 자제를 안 시켰으면 하루 종일 가겠더라고요. 어찌나 충만하게 성령을 받았던지……

    종을 친 지는 오래 되었고, 기도하다 생각하니 너무 이렇게 해서는 문란하겠구나 해서 겨우 제가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더니,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기도 그만 하라고 해.” 그 소리가 귀에 들렸지만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어요. 일단 제 마음을 하나님 앞에 전부 털어놓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마음을 가다듬었는데 웬만한 사람은 부끄러울 텐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어요. 그냥 담대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하고 개운하고 부끄러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지독히도 저를 괴롭혔던 두통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성령을 받고 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눈이 떠지질 않고, 벽에 꽉 기대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는데, 성령을 받고 나서 오늘날까지도 그 때 느낀 그 두통은 전혀 없습니다. 가끔 신경 좀 쓰고 감기가 들면 머리가 조금 아프지만 그 때의 두통과는 완전 달라요. 믿음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하나님을 알고, 말씀의 뜻을 알고, 이제 교회 안다니고는 제가 도저히 두통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세상의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옛것은 다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만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니 믿음의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은 저 혼자뿐이었는데, 아이 다섯을 키우면서 가방만 흔들거리고 교회만 간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그럴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당신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내 인생 남이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매달리면 내 삶이 평탄한데! ’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동네에 안 좋은 소문이 날까봐 우리 아이들한테는 엄마만 살짝 다닐 테니 너희는 나오지 마라. 제가 아직 믿음이 없었을 때다 보니 그렇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자식 다섯 명이 전부 교회에 나와 있더라고요. 애들뿐만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교회차를 타고 다녔어요. 그 개도 교회 문 앞에 앉아 있다가 예배 끝나면 일어나서 같이 교회차 타고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작은 아들이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다보니 교회를 안 나오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네요. 큰 아들도 신앙에서 멀리 떠나 있어서 저는 현재 자식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당시 또다른 시험거리로는 농사철에 안식일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어요. 보리 농사하던 시절에 교회를 가려고 애들 다 학교 보내고 아침 8시쯤, 안식일이었는데 농사 기계가 들어온대요.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교회 가야 하는데……. 그냥 가버리면 남편과 싸우게 생겼더라고요. 일단 내 임무는 힘껏 마치고 난 후 교회를 가도 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남편이 믿지 않을 때였거든요.

    농사할 때 땅에 거름을 뿌리지요? 우리집 거름은 유달리 무거워요. 비를 자꾸 맞아서…… 안식일 이른 아침에 그 거름을 손으로 들어올렸는데, 그 무거운 거름이 하나도 무겁질 않는 거에요. 내 정신이 아니고 누군가 꼭 지켜주시는 것 같았고, 하나님이 거름을 같이 들어주신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무거운 거름이 그렇게 뿌려도 무거운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참 신기했습니다. 교회차가 마을을 다니면서 신도들을 실러 오는데, 교회 다니는 모친이 논에 있는 저를 보더니, “아이구 오늘 안식일인데 일해요?” 하시기에  “아니요. 빨리 해놓고 가려고 해요.” 교회차가 멀리 세심을 돌아서 그 모친을 싣고 가는게 보였어요.

    ‘아이고! 이 일을 어떡하면 좋아! 빨리 해놓고 교회 가야겠는데…….’

    그런데 교회를 꼭 가려고 마음 먹으면 절대 안 될 것이 없었어요. 그 일을 다 해놓고 맨발로 집에까지 뛰어갔습니다. 세수를 대충 하고 신발 신고 2킬로미터 삼계까지 정신없이 내 정신이 없이 뛰어 갔더니 예배가 시작을 안했어요. 너무 감사하지요.  ‘아!  내가 꼭 교회를 가려고 마음을 먹고 나가야겠다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구나! 꼭 교회를 가야겠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겠다.’ 하면 그 힘이 나도 모르게 다시 치솟더라고요. 하나님께선 저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힘을 주시는구나. 열심히 말씀을 듣고 그렇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김없이 다음 안식일이 다가오는데, 이번에는 벼를 훑어야 했습니다. 제가 남편에게, 밤에 훑으면 안 되요? 탈곡기가 있잖아요. 호롱기 아시지요? 호롱기로 벼를 훑은데, 밤에 그걸 다 훑었어요. 안식일에 할 일을 전날 저녁에 다 끝냈어요. 끝내고 나니 이웃사람들이 무엇이 바빠서 밤에 벼를 훑냐고 하더라구요. 바빠서가 아니라 교회 가려고 밤에 일을 했다고 말하고 넘어갔어요. 일을 꼭 해놓고 가야겠다 맘을 먹으면 밤에라도 그 일을 마치게 해주시더라구요. 안식일에 모를 심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꼭 시험거리가 닥쳐와요. 닥치면 그것을 이겨 나가려고 노력을 했어요. 모를 심는데, 그때는 교회에서 논이 가까웠어요. 남편과 같이 모를 심다가 “어머 어떡해. 나 교회 가야 하는데.” 남편은 “갔다 와. 나 혼자 심을 테니까.” “그래요? 그러면 쉬엄쉬엄해요. 나 바로 빨리 갔다 와서 심을게요.” 갔다 와서 바로 논으로 들어가서 심고 그랬어요.

    남편도 교회를 나가라고는 했어도 농사일로 바쁠 때는 기분이 좋지 않더라구요. 교회를 괜히 나가라고 했다며 말도 했지만, 그때는 제가 말했어요. “머리가 안 아파서 건강해서 일을 잘하고 있잖아요. 당신이 교회 가라고 했잖아요. 당신이 가라고 해서 간 것이니 앞으로 당신도 교회에 다녀야 해요.” 그러면 남편은 “그래. 당신이 가는 길은 언젠가 나도 간다.” 저는 남편의 그 말 한마디를 믿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습니다. 제 남편은 그 후로 20년이 더 지나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그때가 1997년 10월이었어요. 그 뒤로 13년이 지난 2010년에 성령을 받았어요. 요즘은 몸이 불편해서 교회를 잘 못 나오는데, 제가 그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약하니까 그런가 봐요. 열심히 하나님께 구하면 낫지 못하더라도 고통은 없을 텐데, 기도 열심히 해요. 내가 당신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아세요?”

    신앙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열심히 믿어야 하나님도 그것을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이세요. 저는 이왕 교회에 몸담고 하나님을 믿기로 했으면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교회 갈 때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마치고 열심히 신앙을 지키며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만 살다 보면 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열심히 믿고 삽시다. 저도 앞으로 이 몸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믿고 살겠습니다. 아멘!

    교회에서 나들이 가서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모친은 남편이 교회나오실 때가 가장 행복하시답니다. 

  • [성도소개] 천안교회 유학생들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천안교회 유학생들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천안교회는 2022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도네시아 자매 2명과 대만 자매 1명, 총 3명이 천안 인근에 있는 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3명의 귀한 자매를 천안교회에 보내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신앙생활하며 교제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외국에서 온 자매분들 한분한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1. 나디야 자매 (2000년생)

    안녕하세요! 저는 자카르타 Samanhudi(사만후디)교회에서 온 나디야라고 합니다. 작년부터 한국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멋진 기회이며 그 기억을 영원히 간직할 것입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면서 처음으로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믿음도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믿음이 매우 약했습니다. 안식일마다 교회에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가족 때문에 교회에 갔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빼먹으면 부모님, 특히 아버지가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게다가 십계명에서 말씀하셨기에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제 몸은 교회에 있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몇 시간씩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앉아 있는 것보다는 친구와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오전예배를 보러 갈 생각 없이 늦게 일어나곤 했습니다. 보통 오후 예배만 드리고, 끝나고 나면 성가대 연습에 잠깐 참석하거나 그 외에는 직접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렵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연구원이고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을 해야합니다. 이런 피곤함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서 정말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가 이러한 경험을 하도록 허락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여기서 견뎌야 할 고난이 저를 하나님과 더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기도를 더 자주, 더 오래 했습니다. 전에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런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식일에 교회에 가는 것을 싫어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연구실에서 일하는 것은 안식일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단순한 의무가 아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한 은혜이기 때문에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제는 교회에 더 오래 있고 싶지만 일 때문에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때 저는 이전의 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천안교회는 제가 아무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저를 너무 아껴주십니다. 저는 한국말도 못하는 데다가 저의 존재는 성도님들이 영어를 해야하기 때문에 부담만 줄 뿐이라 여겼습니다. 또한 저는 설교내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친절하게 통역을 해주는 다른 성도님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이라 외롭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저에게 성도님들을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저에게 음식도 주시고, 안전하게 집에도 데려다주시고, 겨울에 입을 따뜻한 옷도 주시고, 교회에 있는 동안 저와 함께 해주시고, 이를 통해 저는 사랑을 많이 느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저에게 또 다른 가족을 주신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온 것은 정말 축복이고, 천안교회 성도님들은 저에게 정말 큰 축복입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나디야 자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 키티 자매 (2001년생)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키티 이치와(Kitty Ichiwa)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키티라고 부르곤 해요.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태어났고, 2001년생으로 현재 22살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장학금을 받아 석사 학위를 따기 위해 순천향대학교에 와있습니다. 이 장학금으로 한국에서 한해 동안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 전공은 의료생명공학(바이오메디컬)이며, 내년에 석사과정을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순천향대학교에서 5개월간 교환학생으로 활동했었습니다. 그때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히 천안교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생활해야 했지만, 많은 즐거운 경험을 했고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학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했고, 하나님께서는 이 장학금을 제게 주셨습니다.

    이전에 말한 대로 저는 천안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 성도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새로운 가족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언어와 국적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성도님들은 항상 우리 모두 가족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고, 새로운 가족을 보내주셨다고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습니다. 아무도 모르는데다가, 예배도 인도네시아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찬송가는 이전에 듣지 못한 노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튜브에서 한국 찬양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한국 찬양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노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한국 찬양들을 사랑하고 있지만 그중에 최근에 특별한 찬양, “날 지켜주신 – 웨이홈”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오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찬양을 무작위로 재생했고, 뜻을 모르는 채로 찬양에 반해버렸습니다. 그 가사의 뜻을 찾아보니 이 찬양은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것이었고, 제 삶의 울림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에서나 저를 돌보고 계시며, 항상 제 곁에 계시고, 제가 가진 최고의 친구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시고,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천안교회 유튜브 채널에 제 간증영상 2개가 올라와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거기서 확인해보세요! ✌🏻✌🏻)

    남은 2년 6개월 동안, 제가 믿음을 더욱 키우고, 이곳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받은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여기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훈련시키려고 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키티 자매>

    대만 잉거

    3. 주정후 자매 (2002년생) │번역: 대방교회 김연주 자매

    할렐루야!

    저는 주정후로, 올해 22살이며 원 소속은 대만의 앵가교회(잉거교회, 鶯歌教會)입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에서 1년간의 교환학생으로 와있습니다. 그래서 가까운 천안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오기 전에 제 삶과 신앙은 슬럼프였고, 살아있는 동력이 없었으며, 교회에 가고 기도할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 역시 매우 이러한 삶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제가 교환학생에 대해 알고 계획할 때 주저하지 않고 신청했습니다. 그때 저는 단지 대만을 떠나고 싶었고 하나님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나라든 상관없이 다 좋다고 말입니다. 한국을 선택한 것은 단국대학이 유일하게 제 자격과 전공에 모두 부합한 학교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저는 이미, 대만의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 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심지어 천안교회에 연락하지도 않았고, 열심히 교통수단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여름 방학에 교회에 활동에 참여하여 시편 139편 7절의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를 펼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제가 어디로 가든지 결국 하나님의 권능 아래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고, 저는 비로소 더는 도망가지 않고 하나님의 앞에 무릎 꿇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천안교회에 연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모든 연락은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일찍이 예비하신 것 같았습니다. 제가 움직이기를 기다리기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천안교회의 따뜻한 관심은 제가 아직 대만에 있었을 때부터 끊어진 적이 없었고, 목자님과 형제 자매는 항상 연락하여 저를 챙겨주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온지 3일째에 저는 예정대로 천안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날 제게 인상 깊은 것은, 제가 문을 밟는 그때, 형제 자매들이 매우 따뜻하게 저를 접대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제게 누구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온 교회가 모두 접대하는 일을 준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제가 더욱 놀란 것은, 천안교회는 뜻밖에 즉시 영어 설교 통역을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저는 처음에는 제 영어 실력으로는 절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줄곧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가 알아듣게 해주셨고, 심지어 형제 자매들이 말하는 한국어도 대부분 알아듣게 해주셨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제 걸음을 인도해주셔서 이렇게 사랑과 은사가 충만한 교회로 오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게 생각지 못한 언어적 은사를 주셔서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에 장애가 없게 해주심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정후 자매>

     

    <생활관 간담회>

    천안교회에서는 생활관 형제들과 더불어 외국 및 타지에서 온 형제 자매들을 위해 달마다 정기적으로 간담회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유학생들의 생활적인 불편함과 문제들을 해소시키기 위해 많은 성도님들이 관심가져주시고 계십니다.

    <대학사청부 나들이>

    가족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이 학생들에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이 기회가 신앙적으로 의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디야 자매, 키티 자매, 정후 자매가 앞으로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영육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성도님들께서 함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 [복음메시지]그리스도의 심판대 (고후5:1-10)

    [복음메시지]그리스도의 심판대 (고후5:1-10)

    ♣ 2023. 11. 25. 안식일 오전 (오희도 목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후 5:1)

    1절 말씀을 보면 두 개의 집이 나온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 &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장막집은 임시 거하는 처소이다.(고후4:18) 내가 살았던 집도 나의 몸도 결국 무너진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집이 있다.(요14:2) 하나님의 백성이 내집 마련의 꿈을 어떻게 이룰수 있는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하나님께서 지으신다.  사람의 손으로 짓는 것이 아니다.  손으로 짓는 것은 실수가 많고, 엉망으로 짓기도 한다. 그러나 영원하고 완전한 집이 우리에게 있다. 이 땅에 집이 없어도 소망을 가질수 있고  살아가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인생의 중요한 결론이다.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고후 5:2)

    우리는 땅에 있으면서 탄식한다.  부정적인 탄식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처소를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탄식이다. 또한  삶의 고단함과 정욕과 욕심으로 인해 나약한 자기의 모습을 보며 탄식한다.  하늘의 처소는  이 땅의 장막집이 무너져야 들어간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하늘의 영원한 처소를 이 땅에 살아갈때 덧입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덧입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은 두 구조가 있다. 하늘나라에 가서 거하는 처소도 있지만  이 땅에 살아갈 때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을 영적으로 덧입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3)

    벗은 자들로 발견되는 시점은 죽었을 때이다. 하나님 믿지 않고 죽으면 마치 벗은자들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영원한 처소를 사모하고 믿었던 자들은 영원한 처소가  덧입혀져 있다.

    우리는 이 장막에 살면서 무거운 인생의 짐에 눌려 지게를 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헬라적인 사고는 육신과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했다. 이원론적인 사고이다. 극단적으로는 영혼은 이미 하늘나라에 가 있기 때문에 육신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을 했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육신을 갖고 있을때 무슨 일을 했는지에 따라 그것을 근거로 구원이 결정된다. 육과 영이 분리되어 있는것이 아니다.  육신의 행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것이다.

    죽을 몸이 생명에게 삼킨자 된자들은 영원한 처소를 덧입는 자가 된다. 세례받으면 주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되었고 물에서 올라오는 순간 새생명 가운데 살게 된다.(롬6:4) 이 일을 하나님이 이루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다.(5절) 성령을 받은 우리는 속으로 탄식하며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롬8:18~23) 성령은 영원한 삶을 보증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서 담대하게 살 수 있다.(6절)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 본질임을 깨달을 때 담대해진다. 세례받고 올라올때 이미 내집 마련이 되었다.  우리는 주님과 살기 위해 빨리 떠나기를 바라지만(8절) 이 땅에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게 하기를 힘써야 한다.(9절)  고린도 성도들은 자신을 기쁘게 하기에 바빴다.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9~10)

    우리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날 것이다.(10절) 벗어날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회의 수많은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심판대가 있음을 생각지 못해서이다.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서야 할 곳이 심판대이다. 그때에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날마다 주를 기쁘게 하는 자가 되고 담대히 주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주안에서 날마다 행복한 신앙 생활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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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남편은 미끼, 나는 대어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성도간증] 남편은 미끼, 나는 대어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천안교회 임민경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북도 전주에서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천안에는 남편인 소만수형제님과 결혼하면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 참예수교회를 알게 된 건 원성동에 교회가 있을 때였는데요. 형님부부로부터 교회에 볼일이 있다고 천안에 온 김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형님부부의 부탁이라서 거절하지 못하고 그냥 인사나 하자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많아서 한편으로는 긴장을 많이 하고 갔는데 방언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속으로 혹시 사이비교회가 아닌가는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형님이 다니는 교회이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김미영 자매님 집에도 몇 번 가서 식사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친정엄마에게 육아의 도움을 받고자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가족모임이 있을 때 전주에 있는 형님이 저에게 교회 다녔으면 좋겠다고 몇 번 권면하셨지만 저는 그때마다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교회를 싫어하는 이유도 말씀드리고 저희 친정집이 외할머니 때부터 성당을 다녔고 저도 어렸을 때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다닐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천안으로 이사를 온 후에 교회가 쌍용동으로 이사를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형님부부께서 교회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천안에 오게 되었는데 또 같이 갔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고 이번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차 갔었습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난 후 교회가 큰 규모의 건물을 사서 이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지난 봄 영은회 때 형님부부께서 천안에 방문한다고 교회에 같이 가자고 연락을 하셨지만 저는 약속이 있어서 가지 못하고 남편과 막내딸 연서만 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번에도 인사차 갔다 오는 거겠지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매주 교회에 가는걸 보고 앞으로 계속 교회에 다닐 거냐고 물어 봤는데 뜻밖에도 한번 다녀보고 싶다는 말에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보니 남편이 교회에 다닌다고 할 때 많이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남편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알았다고는 했지만 나는 싫으니 혼자 다니라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연서가 교회 가는 것도 싫었지만 연서가 가고 싶다고 해서 그냥 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편과 연서가 교회에 가는 게 너무 싫어졌습니다. 하루 종일 교회에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지만 결정적으로 제가 싫다고 했는데도 저 몰래 연서를 청주교회 여름성경학교에 보낸 것이 너무나도 실망스러웠고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도 상황이 그렇게 됐겠지 하고 이해를 하려고 많이 노력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교회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지만 듣지 않고 계속 교회에 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족휴가를 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연초부터 약속되었던 것이라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형님부부를 만나는 게 너무나도 불편했기 때문에 많은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너무나도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걱정보다 즐거운 휴가를 보냈고 저도 어느 정도 기분이 풀려서 천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지옥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라구요. 휴가를 다녀온 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고 저는 2주 동안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밤낮으로 울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나도 완강했던 남편을 보니 교회를 못 가게 하면 나처럼 힘들겠다라는 생각에 교회에 가라고 하고 싶었지만 저 또한 남편이 교회 가는 게 너무나도 싫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고민만 하다가 결국에는 차라리 내가 힘든게 낫겠다는 생각에 토요일에 교회 가면 그냥 인정해주자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인데도 남편이 일어나질 않고 계속 잠만 자고 있길래 아 교회에 안 가려나보다 하고 안심을 하였는데 힘없이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위로해주려고 말을 거는 순간 갑자기 남편이 울기 시작한 겁니다. 전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드라이브를 나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렇게 교회에 가고 싶으면 혼자라도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다시 교회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는지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직 마음에 선입견이 많이 남아 있어서 얼굴은 웃고 있어도 마음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금요일 아침에 남편에게 조심스레 방언기도에 대해서 물어보니 이미 7월 15일에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세상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집에 케익을 가져온 날이더라구요 남편이 방언기도 하는걸 상상도 해보지 못했기에 그 이상한 걸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하게 될 줄이야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그때서야 전에 왜 형님이 남편에게 전화해서 고맙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아주버님이랑 형님이 너무나도 미웠습니다. 그날은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염없이 울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뚝 그치면서 내가 왜 울고 있지? 교회 가는 게 이렇게 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교회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집에서 힘든 것보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나도 토요일에 같이 교회를 가겠다고 남편에게 얘기했고 형님과 아주버님도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하니 어차피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어서 오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이 성령을 받아 방언기도를 하는 것과 또 다음 주에 세례식이 있다는 걸 제가 교회 오기 전날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싫어할까봐 얘기를 안 한건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나중에 아니까 모든 것들이 많이 서운하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제가 안쓰럽기도 하고 다음 주에 남편 세례식이 있으니 정신 차리라고 알려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회에 오게 되었지만 계속 다닐 생각이 없었던 저는 표정이 굳은 채로 교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얼굴들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특히 김미영 자매님은 정말 너무 반가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풀리니 원래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자연스럽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배려로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궁금한 것을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고요.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연서가 앞에 나가서 안수기도를 받는 것이 꼭 누가 강제로 시켜서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고 다음에는 연서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도 제 질문에 기분이 나빴는지 집에 와서 싸웠습니다. 정말 아마 이번 일이 저희 부부의 첫 부부싸움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주에 있는 형님 부부에게 다음 날인 일요일에 만나자고 연락을 해서 형님부부랑 만나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서로 얘기도 하고 또 이야기하다가 울기도 하고 그동안 쌓였던 오해도 풀고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세례식 날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참석하려 했으나 생각해보니 평생에 한번 뿐인 세례식인데 아이들이 축하해주면 남편이 기뻐할 것 같아서 아이들도 같이 가자고 설득하여 데려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게 많아서인지 기분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식을 쭉 보면서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저희 가족들끼리 단촐하게 다시 한 번 축하자리를 마련해서 남편을 축하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형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저도 교회를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전하였습니다. 형님은 너무도 기뻐하셨고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 다음 주 안식일부터는 온 가족이 교회를 출석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 달만이라도 출석을 해보자고 권면을 했고 아이들도 감사하게도 따라 주었습니다. 그 발걸음이 결국 온 가족이 세례를 받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교회 오는 것을 마냥 좋게 생각하지는 않아서 교회 데리고 오면서도 항상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회 선생님들이 교회 오면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자주 연락도 하고 또 가끔씩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이도 사주시고 해서 아이들도 조금씩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세례식 다음 주에도 형님 부부께서는 천안에 오셔서 제가 좀 더 교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셨고 형님의 권면으로 처음으로 안수기도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뒤부터 사실은 마음속에 한 가지 숙제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도 남편처럼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걱정이 많다 보니 한 번은 안식일 오전 예배가 끝나고 조용히 혼자 남아서 기도를 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쉽게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구도자 교육 시간에 목자님께서는 남편은 정말 쉽게 성령을 받으신 경우에 해당이 되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였고 누구나 성령을 금방 받는 것은 아니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반드시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믿고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이후에는 나도 나 자신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성도님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기뻤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들이 마냥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세례를 받기로 하면서 정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밤예배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요일, 금요일 저녁예배를 나와서 예배를 드리니 마음에 더욱 확신이 왔습니다. 사실 성경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마음이 열려서 그런지 말씀을 들을 때 그대로 믿어지고 말씀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도를 하고 안수를 받으면 조금씩 이상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눈치채신 성도님도 계시고 목자님께서도 눈치를 채시고 남편에게 기도할 때 좀 어땠느냐고 묻기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혼자만 고민하다가 어느 날 몇몇 분들과 광덕산 등산을 다녀온 후에 차를 마시면서 목자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목자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실 때 이런 감동의 과정이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믿고 맡기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10월 10일 화요일 예배 후 합심기도회 시간에 김참운 자매님께서 안수기도를 권했습니다. 아마도 며칠 전에 제가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권면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토록 고대하고 받고 싶었던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고 보니 너무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온 성도님들이 진심으로 축하해주시고 심지어 급히 케익을 준비하셔서 축하파티도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축하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성령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니 훨씬 더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드는 생각이 남편도 성령을 받고 이렇게 기쁘고 행복했을 텐데 내가 힘들게 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한편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습니다.

    드디어 10월 15일에 저와 서현이, 경완이, 연서 이렇게 4식구가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큰딸 서현이는 같은 날 한시에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동년배가 되었다고 장난 섞인 말을 하더군요. 사실 전에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었습니다. 물론 행복했던 일도 많았지만 자꾸 과거의 잘못들이 생각나서 힘들었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례식이 다가오면서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아들 경완이가 세례는 받겠다고 했지만 마지못해서 엄마가 원하니까 세례를 받게 된 것이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세례식 날 경완이가 세례를 받고 마음이 변화되기를 위해서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경완이가 세례를 받은 후에 소감을 말할 때 지금까지는 안식일에 교회 가기가 싫고 일찍 일어나는 것도 싫고 했는데 물에서 올라오면서 그런 마음이 다 사라졌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나 감격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이제는 서현이와 경완이 그리고 연서에게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하루빨리 주셔서 아이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저와 남편처럼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온가족을 믿음으로 이끌어주시기 위해서 애써주신 전주 형님과 아주버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또 마음이 닫혔던 저를 기다려주고 사랑으로 이끌어준 남편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더불어 아이들도 낯선 교회환경에 잘 적응해주고 같이 세례를 받게 되어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또 부족한 저와 저희 가족들을 사랑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신 모든 교회 성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나라 가는 그날 하나님께 칭찬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임민경 자매 간증 유튜브 영상

  • [성도간증] 믿음의 가정을 통해 축복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김*현 자매)

    [성도간증] 믿음의 가정을 통해 축복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김*현 자매)

    1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시 112:1~3)

     

    저는 김*정 집사님과 하*순 자매님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이 가정을 꾸리실 당시에 어머니는 비신앙이었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세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참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 속한다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큰 자비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교회 출석에 대한 기억이 참 많습니다.

    당시 주 6일제여서 토요일에도 등교하고 출근을 하셨지만 저녁 예배, 안식일 예배를 꼭 참석했습니다.

    1) 성균관대역 근처 4층 건물에 교회가 세워졌던 것

    2) 저희 아버지 첫 차가 르망이었는데 미선이네 가정 혹은 세* 집사님 가정을 카풀해서 교회 다녔던 것

    3) 어린 나이이지만 저녁 예배 꼭 참석하고 떠들면 혼났던 것

    4) 당시 북부 찬양 한마당 비슷한 행사가 있었는데 드레스 입고 나가서 상을 탔던 것

    5) 송년의 밤 때 앞에 나와서 암송 성구들 외웠던 것

    6) 옥상에 아동부를 위해 가건물을 지어주셔서 실컷 놀았던 것

    7) 예배 끝나고 교회 앞 슈퍼에서 게임하거나 한나 언니네 집 놀러가서 같이 놀았던 것

    8) 사촌 동생들을 교회로 데려오기 위해 안식일 점심에 항상 추가로 차량 운행을 맡아 하셨던 것 등이 있는데요.

    이런 어린 시절 교회 출석에 대한 많은 기억들은 저로 하여금 예배 참석은 참 소중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교회 출석이 형식적이고 맹목적인 스케줄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린 시절 예배 참석에 대한 이러한 부모님의 노력들 덕분에 언제 어느 곳에 있든 시간이 되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신앙을 갖게 되어 참 다행이고 감사하는 바입니다.

     

    또한 부모님께서는 삶의 터전은 교회와 가까워야한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셨습니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고 기존의 집이 너무 좁아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인데

    당시 저희는 세상적으로 살기 아주 좋은 인계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사 장소를 고민하던 중 부모님께서는 교회가 오목천동임을 고려하여

    다른 후보지보다 교회에서 더 가까웠던 호매실동으로 이사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지금은 호매실동 역시 많이 발전하였지만, 당시에는 정말 논과 밭뿐이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 때 이런 촌동네로 갑자기 이사온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고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인계동에 계속 거주하는 것, 혹은 집값 상승 기대지, 학군지로 이사하는 것이 더 좋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교회를 가까이 두고 살겠다는 부모님의 결단으로 인해

    저는 신앙을 지키면서도 학생의 본분인 학업에 더욱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음악에 대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회 반주 봉사에 대한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를 반주 봉사자로 육성하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저에게,

    매일 2~3장씩 통합찬송가 1장에서 끝장까지 악보 그대로 치는 연습을 시키셨습니다.

    만약에 178장 찬송가가 4절까지 있으면 악보 그대로 4번을 쳐야 인정입니다. 이 연습을 몇 바퀴를 돌리셨습니다.

    뭐든 연습은 생각보다 지루합니다. 하기 싫어서 피아노를 쾅쾅 내리친 적도 있고, 피아노 뚜껑을 세게 닫아버린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시키시니까 했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어렸음에도,

    실력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교회에서 반주 봉사를 권하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방법이 너무 싫었는데, 돌이켜보면 적어도 저에게는 그것이 정답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다른 악기도 운지법만 배우면 바로 원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고,

    교회에서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제가 따로 음악 전공을 하지 않았는데도

    음악적 소양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다방면에서 유용하게 작용했습니다.

    초등학교 4~5학년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이렇다 할 대회 한번 나간 적 없고 체르니,

    소나타 이런거 친거 기억 하나도 안 납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음악적 재능을 칭찬하고 어떻게 해냈냐고 물어본다면

    저는 하나님 뜻에 맞는 부모님의 소망 덕분에 귀한 달란트를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참 감사드립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학업 성적에 대한 욕심이 남 못지 않게 많습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공부량도 많았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많은 시간 동안 공부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제가 원하는 진로는 법대에 입학하여 사법고시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권하셨습니다.

    교사 중에서도 초등교사가 되기를 권하셨고 고 2 직전까지 의견에 분분하다가 결국 교대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당시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기가 많아, 교대에 입학하기 위해선 공부를 정말 많이 해야만 했습니다.

    상위 1%의 성적을 낼만큼 열심히 했지만, 결국 수능에서 처음 받아보는 점수로 고배를 마셔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청주교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공부를 해서 대학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제가 2학년 2학기 때 학점을 최고점으로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나라에서 지방대 인문계열 인재를 육성한다며 새로운 장학제도를 신설하였습니다.

    지방교대 문과 계열도 이에 해당하였고 학교당 1명만 해당했기에 1등만 주는 제도였습니다.

    사실 제가 그동안에는 그렇게까지 성적이 좋진 않았는데

    학생처에서 이런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 줄 알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그 장학제도의 수혜자가 되어 저는 남은 2년의 대학 학비 전액을 면제받게 되었습니다.

    그 해에는 정기가 대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교대 학비가 타 대학에 비해 크게 비싸진 않지만

    이런 모든게 맞아 떨어지는 과정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큰 축복을 주신다고 느끼며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가정은 어려울 때 함께 기도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엄마 아빠의 기도 소리가 저의 모닝콜이었습니다.

    임용 준비 시절에는 아침, 점심, 저녁 식사 후 20분씩 매일 1시간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 구성원간의 대화도 많고 더욱 소통하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공무원 외벌이로 자녀 셋을 키우시면서 많이 어려우셨겠지만 저는 커가면서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오히려 조금 부족할 수 있으나 각 자리에서 열심히 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꼭 갚아주시고 인도해주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믿음을 원하시고, 그 속에서 개개인에게 역사하신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내리신 이런 축복들은 비단 저 혼자의 기도와 노력이 아니라

    믿음 하나로 살아가려는 가족 구성원 전체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구성원간의 믿음과 소망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끌어주고 성장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분명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제가 올해 결혼 5년차인데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도 매일 저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입니다.

    제 평생의 큰 기도 제목이 될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면서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라는 걱정과 두려움도 많지만

    매일 맞닥드리는 사소한 성장에 감사하기도, 부족한 실수에 회개도 하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디 저희 가정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며 오늘 저의 간증이 여기 계신 모든 성도님들께 은혜로운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편집 : 안*수 형제

  • [복음메시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복음메시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7-30)

    2023년 11월 18일 안식일 오전예배

    설교제목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본문말씀 : 빌 1:27-30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합당” : ‘값에 알맞게 지불하고 사다’

    우리의 삶은 복음과 알맞은 값의 삶을 살아야 한다. (27)

    우리는 하나님께서 값으로 사주신 존재이다. (고전 6:20) (고전 7:23)

    “자기 피로 사신”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존재이다. (행 20:28)

    나는 주의 보혈에 감사하며 찬양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시 119:164)

     

    (27)“생활하라” = ‘시민답게 살다’ =>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29) 나는 하늘의 시민권을 사기 위해 얼마를 지불하였는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다.

    부스러기의 은혜와도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늘 기억해야 한다. (마 15:27)

    우리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에 우리의 행실을 자랑할 것이 없다. (엡 2:8-10)

     

    ◆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려면?

    1. 협력해야 한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7)

    교회 일은 혼자서 한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협력해야 한다.

    기독교는 경쟁의 종교가 아니다. 협력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빨리 가는 곳이 아닌 함께 가는 가는 곳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협력이다.

      1) 일심으로 :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2) 서서 : 적극적인 태도

      3) 한뜻으로 : 같은 방향

     

    2. 아무 일이든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28)

    “대적” : 안티케이마이 = ‘반대하다, 대적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대적들이 있다한들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눅 13:17) (마 10:28)

    (빌 4:13)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에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행 1:8)

    하나님 안에서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 (사 41:10)

     

    3. 고난을 달게 받아야 한다. (29-30)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29-30)

    하나님의 나라는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

    (마 16:24)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

    (롬 8:17) 그리스도를 따라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받아야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죽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 길에 고난이 있어도 그 끝에는 영광과 축복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유튜브 예배링크

  • [복음메시지] 맏아들은 누구인가?

    [복음메시지] 맏아들은 누구인가?

    [말씀제목] 맏아들은 누구인가? (누가복음 15:25~32절)

    [설교자] 전홍희 목자

    [설교일] 2023년 11월 4일 안식일 오전

     자녀들이 철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자녀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성숙한 신앙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뤄가는 자녀들이 돼야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 속에 등장인물을 보면, 맏아들과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을 보게 됩니다.

    맏아들은 어떤 잘못을 했으며,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고 은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1. 화를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을 나갔던 동생이 돌아왔고, 그를 위해 잔치가 베풀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맏아들의 첫 반응은 어땠나요?

    (눅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맏아들은 ‘노하여’ 집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둘째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와는 상반되는 모습입니다.

    즉, 맏아들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뜻하고 있습니다. 돌이킬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고,

    부족한 현실에 만족하고 있는 잘못된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눅15: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하나님의 큰 은혜로 먼저 진리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 성도 들은 자칫 잘못하면 ‘잘못된 맏아들’의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아들과 같은 이들을 아버지의 마음과 같이 반겨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택하신 영혼 들을 모두 사랑으로 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불평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눅15:29)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를 섬겨 왔지만, 맏아들인 자신에게는 아무런 대가를 주지 않았다며 불평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고용주와 노동자의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며, 마땅히 섬김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명을 어김이 없이’ 라는 표현을 비춰봤을 때, 맹목적인 복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대가를 받지 못해 불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직 자기 일신을 위해 살아온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봉사하며 맡은 일을 해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랑으로 섬겨야 함을 믿습니다.

     

    3.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눅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가 주최한 기쁜 잔치였습니다. 많은 손님들이 잔치에 참여했을 것이며, 맏아들은 마땅히 아버지를 대신하여

    손님을 영접 하고 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잔치에 참여하지 않으려 했고, 이 모습은 아버지와 이 가정을

    부끄러워 보이게 했습니다. 죄인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어느 때보다도 기쁜 잔치의 날이 틀림 없었습니다.

    그런 날에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선  안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큰 빚을 진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따라 그 큰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것이 맏아들로써 마땅히 해야 하는 진정한 아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맏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눅15:31~32)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내 것은 다 네 것이며,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게 됐다. 그러니 기뻐하라’ 라고 말입니다.

    아버지는 동생이 아버지에게 어떤 존재 인지를 알려주었으며,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말했습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마음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이 예수님의 품으로

    돌아온다고 하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역시 세상의 죄인들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거듭날 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뻐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겠습니다.

     

    예배링크

  • [신앙의 향기] 십자가로 가까이_호산나 플룻

    [신앙의 향기] 십자가로 가까이_호산나 플룻

    https://youtu.be/7738qeQI5r8?si=fhxglP03PyRXMH3V

    플룻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청주교회 ‘호산나’ 플룻팀의 연주입니다~^^

     

    플룻 : 최영미 자매, 이순우 자매, 김정민 자매, 김선미 자매, 유성희 자매 

    피아노 : 이원일  자매

  • [성도 간증]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_이원일 자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전에 간증했던 내용과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들을 추려내고, 추가적인 내용을 더하여, 제 삶을 통해서, 저를 부르시고 기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고자 합니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큰 사랑으로 저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자리에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는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다만 북한에서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남으로 오신 외할아버지와 기도를 많이 길게 하시던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의 존재를 어렴풋하게 나마 알고는 지냈습니다. 초등학생 때 어떤 연유에서인지 동네 교회의 성경 학교도 가보고, 친구 따라서 성당도 몇 년 다녔습니다. 그 뒤에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이 일로 인하여 부모님께서 의견 차이를 보이시며 저의 성당 출석은 깔끔히 끝나게 되었지요. 말 잘 듣는 큰 딸이었던 저는 ‘최악만 아니면 되지 ’라는 신념으로 10대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명확한 목표도 없이 방황하는 보통의 학생들과 다름없는 상태로, 꾸준히 학교만 다녔습니다. 주변에서 보이는 사건 사고 없이 평안하게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항상 돌보아 주시고 계셨던 것으로 이해합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가까운 사람이 삶을 한탄하면서 저에게 한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나는 지저분한 물에서 사는데 당신은 1급수 아니 생수에서 살고 있다’ 라고 말이죠.

     

    대학 2학년 여름, 친구의 소개로 만나게 된 사람이 지금의 남편입니다. 알게 된 지 한 달 즈음이 지났을 때,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게 어떻겠냐 하면서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들어주겠다고 하더라구요..^_^(과연 그 약속은 어찌 되었을까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하면서 그 순간은 지나쳤던 것 같습니다. 얼마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저는 도서관의 종교서적 서가에서 여러 가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은 인터넷 보다는 책이 정보검색의 1순위였지요) 안식일 관련된 책들과 기독교의 역사관련 서적들을 보면서 ‘안식일이 틀린 것은 아니다’ 정도의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어린 시절에 삼육대학교 근처에 살면서 들었던 제7일 안식일교라는 이름도 기억해 냈고, 주일 개념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 졌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지식을 적립하고 드디어 남자친구와 이야기를 나눠 보려는데, 흔히들 말하는 안식교도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참예수교회라고 알려주더라고요… 이건 뭐지?? 하면서 다시 뒤져보았습니다. 성과는 없었습니다. 2002년 말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에 여러 가지가 올라오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교회 홈페이지를 통해서 엘리사 목자님의 설교 몇 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영상들이 저에게는 예배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야말로 참된 진리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엉터리는 아니다’ 하는 마음으로 참예수교회에 대해 알아보았던 것 같습니다. 2003년 7월 어느 안식일 오전, 제일 가까웠던 동부교회로 무작정 전화하고 찾아가 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도 없이 젊은 아가씨가 알지도 못하는 곳을 제 발로 혼자 찾아 갔네요.

     

    통화하신 분이 예배당 앞에서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보통의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진형제는 저에게 방언기도에 대해 한 번도 언급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 시작 전의 기도시간에 저는 어찌 해야할 지 모르고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말씀이 끝나고 나서 찬양 한 뒤에 다시 기도가 시작되자, 저는 예배당을 빠져나와서 건물 1층 문을 나서야만 출입 할 수 있는, 외부로 출입문이 나있는, 화장실로 갔습니다. 신기한 일은 화장실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2층의 기도소리가 저에게는 악기 소리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영롱한 핸드벨이나 큰 실로폰의 높은음을 쉬지 않고 울리는 그런 느낌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 이 내용을 간증하며 ‘천상의 음악’이라고 감히 이름을 붙여 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부러움과 신기함으로 교회에 출석했고, 다음 해에는 양봉도 목자님의 세례관련 설교를 주의 깊게 듣게 되었습니다. 출석이 거듭되면서 입술이 움직임을 느끼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세례가 먼저라는 지식이 저를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들은 주의 어느 날 수업 후 빈 강의실에서 교회에 전화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세례 받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지요. 그 주 안식일 예배 후에 봉고차를 타고 밀리는 길을 다녀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이어리를 찾아보면 2004년 4월 3일 16시 20분이라고 시간까지 쓰여 있었는데, 그날인 것 같습니다. 날짜와 시간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바뀐 저의 기도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연 예수님께서 피 한방울의 일부라도 저를 위해 흘려 주셨습니까?’라는 물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세례 후 예배당 앞에서 눈물 콧물 다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 저의 마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생각과 ‘저를 위해 피 흘려주셔서 감사 합니다’ 라는 기도가 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인공조명의 위치가 절묘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제 이마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환한 빛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남자친구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혼자 세례성령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기본적인 새신자 신앙교육이나 세례 전 교육이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부족한 지식을 하나씩 쌓아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꽉 차여있지 않아도 자녀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세례를 받고서 얼마 지났을 때인지 기억은 못하지만, 아마도 오래지난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낮잠이었는지 밤잠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누군가가 벽과 붙어 있는 옷장 윗부분의 구석진 곳에서 저를 바라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오싹하다기 보다는 그냥 무서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를 알지도 못했던 때였지요. 자세를 바꾸어 보아도 그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고, 눈을 뜨면 눈앞에서 엄청난 얼굴이 저를 노려보고 있을 것 같았기에 눈도 감은채로 마음을 굳게 먹고 주기도문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 성당에서도 노래로 외웠고, 빈칸 채우기 시험을 봐가면서 외웠고요, 동네 교회 성경학교 다닐 때도 외웠고, 동부교회 출석하면서도 매번 읊었던 주기도문이었지요. 그런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그 무언가가 저의 기도를 따라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그런 기도쯤은 나도 알고 있다’는 조롱을 받는 느낌이었어요. 동시에 너무나 두려웠구요. 그래서 누운자세 그대로 눈도 뜨지 못한 채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다고 선언하고, 방언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만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기도하다가 잠들고 말았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고 외워서 읊기만 했던 저에게,,, 진정성이 없는 기도문의 암송은 그 어떤 의미도 없음을 일깨워 주신 하나님의 계획이셨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 초, 저희는 약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딸은 출가 외인이라며,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이제 그집 식구이니 교회 따라 나갈 생각을 해라!! 마음 편히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해 가을 저희는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2006년 3월에 식을 올리고는 부산으로 내려가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이었지만 저는 바다구경으로 두 번 가본 게 전부였던 지역이었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다는 걱정과는 다르게 바로 옆 동네에도 성도님들이 계셨고, 가족처럼 살뜰히 돌봐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가 아버지 따라 신랑 따라 이사를 많이 다녔지만, 이사하면서 울어본 적은 두 번뿐인데요(한번은 초3가을부터 초5 6월까지 살던 수원을 떠날 때였고) 그중 한번이, 겨우 1년 출석한 부산교회를 떠나던 날이었지요.

     

    [전국 유람 시작합니다] 그렇게 부산을 떠나 (성남으로 이사가서)분당 3년, (충주에서 살면서)원주교회로 1년, 다시 (성남기지 안으로 이사가서) 분당 1년, (송파구에 살며)강남 2년, (일산초입에 살면서)대방 2년, (계룡으로 이사하여)대전교회 2년, 그리고 다시 대방 1년, 이렇게 돌고 돌면서 가사와 육아에 매인 삶을 살아가며 2019년도에 도착한 곳이 안양교회였습니다. 신도회 시간도 거의 빠지지 않았고,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 참여 해본 첫 해였습니다. 수많은 세상의 이야기를 하며 경쟁하듯 대화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 감사를 나누고 평안을 구하며 같이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임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모임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기쁨도 나누고 속상함도 나누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저는 ‘최악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불행이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하며 살았었죠. ‘기도를 통해 고통이 줄어들고 기도하는 와중에 고난이 해결되는’ 경험을 하며 이런 생각이 더욱 굳어져버렸답니다.) 그런데 2019년 어느 날 혼자 집에서 찬송을 드리다말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눈물을 감추지 않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귀로는 들리지 않지만 ‘왜 우냐’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지 판단하기 전에, 주님께서 저를 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답을 해보았습니다. ‘감사해서요.’ …..불행하지 않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고 그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행복한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2020년도], 코로나로 온 나라가 힘들기 시작했던 시기가 되었습니다. 불안 속에서 요동하지 않으며 평안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많은 노력을 했던 시기였지요. 그러나 6월 9일, 그 불안의 상황이 저희 집에 들어왔습니다. 저녁에 신랑이 확진을 받고난 뒤에, 저는 집안에서 몇 걸음 걷다가 무릎 꿇고 기도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지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나머지 세 식구가 집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효원형제를 데리고 가야할 구급차는 오지 않았고, 저희 세 명의 검사 결과는 아주 빠르게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음성이고 저만 양성이 나왔기에 새로운 고민에 빠져 버렸습니다. ‘아이들만 남겨야 하는데 어찌 하면 좋으냐’ 보건소에 물어보았는데요, 아침마다 도시락을 문 앞에 갖다 놓을테니 데워 먹게 하라고 하는 전화기 너머의 말이 어찌나 야속하게만 들리던지요. 음성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집에 올 수 없으며, 입고 간 옷도 다 폐기 할 것이고 들고 간 것도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를 제외하고는 들고 나올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당장은 꼭 필요한 물건들만 챙기고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에 입을 옷은 병원에서 택배로 받으라는 이야기와, 돌아올 때는 택시를 비롯한 대중 교통을 이용할 수 없으니 가족들이 데리러 병원으로 와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어떤 이야기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걱정에 걱정을 더해주기만 하던 그들의 이야기로 머리가 아픈 것을 제외하고는 증상도 없었는데 말이죠. 계속 무너지며 무릎을 꿇고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함께 퇴원 할 것이라는 남편의 말에, 그게 쉽겠느냐며 절망이 튀어나올 정도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아이들 이모가 바로 와줄 수 있다고 했고 저희 부부는 아이들 이모가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저희가 나선 뒤에 방역팀이 집 구석구석에 소독액을 뿌리고 갔고, 3학년과 1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용감히 이모를 기다렸습니다.

     

    안양에서 파주병원까지 저와 효원형제는 같은 구급차에 실려서 이송되었습니다. 병실이 남은 곳은 거기뿐이고, 구급차는 많이 남지 않으니 한번에 이동시키려는 그들의 계산덕분에 저희는 꽁꽁 싸여서 실려다니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목자님과 사모님을 비롯하여 많은 성도님들은 단순히 위로만 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입고 나올 옷을 싸놓으면 가지고 가겠다, 택배로 보내주겠다, 차몰고 데리러 갈꺼니 걱정마라. 거기 자주 가는 동네라서 다 안다 등등, 그 많은 이야기들은 구체적이었고 현실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를 안정시킨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키울 테니 어서 낫고 퇴원해라’ 여기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아이들 걱정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었구나 하고 말이죠.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은 성도의 손을 통해 자녀들을 보살피시는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었죠. 안양에서 살던 두 번째 집은 창문 밖으로 임시검사소에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사람마다 일정 개수 씩 구매할 수 있게 한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집이었습니다. 또한 감사하게도, 뛰어 놀기에 적합한 넓직한 공원이 바로 옆에 있었고, 관악산 끝자락에 위치하여 산길에 걸어서 갈 수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국내에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눈에 보이는 장점들을 하나하나 나열해가며 감사하면서 무너지지 말아야겠다며 스스로를 애써 붙들어 매던 제 마음은, 확진과 동시에 그간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쉴 새 없이 크게 요동쳤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굳게 붙들어주셨습니다.

     

    [병원 이야기 해드릴께요] 입원실은 3인실로 개조한 5인 입원실이었습니다. 링거하나 없이 두 명의 다른 사람과 함께 방을 쓰는 것이 전부였지요. 음식은 모두 일회용 플라스틱에 담겨 묶인 봉지채로 각 자리에 놓아졌고, 2일에 한 번 씩 보호장구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소독액을 눈앞에서 뿌리며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음압기계의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두통이 생길 정도였고, 창문의 모든 틈은 테이프로 막아져 있어서 산소가 부족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남편은 남성 입원실로, 저는 여성 입원실로. 구급차에서 내려서 줄을 따라 걸어가며 저희는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헤어졌습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화로 통화해야 했습니다. 동선에 대한 확인과 보고를 반복하며 보건소 직원들과 통화하느라 하루 이상 꼬박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상태가 안 좋으면 병실 전화기나 핸드폰의 카톡을 통해 간호사실에 알릴 수 있었고 며칠 간격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의사가 들어와서 문진을 하고 상태(?상황?)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자꾸만 가빠지는 호흡을 가라앉히는데 3일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저는 집안일로부터 해방되어 길어져버린 하루를 보내기 위한 나름의 계획을 짜야 했습니다. 3회의 식사 전에 혈압 체온 산소포화도 적고 사진 찍어서 간호사에게 알려주기, 식사 후 양치 꼭하기, 땀나게 맨손체조, 이어폰으로 소리 최고로 해놓고 말씀듣기, 성경읽기, 음압기 소리에 묻혀서 기도하기, 중간중간 마다 아이들이랑 통화하기 등등,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밀려있던 통독은 욥기를 읽을 차례였고 시편까지 읽고 퇴원했습니다. 저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배웠습니다. 아무 방해 없이 말씀을 읽고 듣고 할 수 있게 해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계시록도 처음부터 하나씩 듣기 시작했고, 다 끝내지는 못했으나 하나하나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이때 드디어 저는 참예수교회가 늦은 비 성령으로 세워진 참교회임을, 말씀으로 온전히 집중하여 배울 수 있는 첫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를 가르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찬양합니다. 입원한지 며칠 지났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밤중에 침대 위에서 창밖을 내다 보았을 때 건너편 건물위에 커다란 검은 물체가 저를 노려보며 저를 향해 스프링처럼 튀어오를 준비를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적으로 요동하거나 하는 전단계가 없었기에 맥락없이 갑자기 보이는 형상이었지요. 시커멓고 뿔이 두 개 달린 느낌이었습니다. 바로 무릎꿇고 성령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지요. 잠시 후에 보니 그 형상은 사라지고 그냥 물탱크만 보이더라구요…

     

    당시, 전국의 교회가 모두 함께 저희 가족을 위해 계속 기도해주셨습니다. 청주도 함께였음을 알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6월 23일, 아이들은 격리해제를 위한 검사를 받았고 초조한 하루가 지난 뒤,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날(24일), 정부는 입퇴원에 관련해서 지침을 변경했습니다. 큰 증상이 없으면, 양성판정후 재검사 없이 14일 이후에는 퇴원 조치하는 내용이 생긴거죠. 저희는 그 병원에서 첫 대상자가 되어 26일 오전에 퇴원 통보를 받았습니다. 감염력이 없는 정도이니 일상생활은 해도 되지만 사람 많은 곳은 당분간 가지 말라는 이해가 안되는 보건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퇴원을 시켜주는 의사도 두 달은 자가격리 상태로 살라고 하더라구요. 의사간호사들의 우려를 뒷통수로 느끼며 병원을 나선 저희는 같은 택시를 타고 같은 시각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입원 날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셨지요. 게다가 양성판정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둘 다 음성판정을 받았지요. 그래서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저희 아이들도 돌보아 주셨습니다. 반찬과 반찬 재료는 물론 간식과 놀 거리와 손편지까지,,, 저는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받으면 꼭 갚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저는, 이런 사랑들을 어찌 갚을까 고민하며 몇 성도님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퇴원하면 떡 내면 된다’ ‘우리한테 갚지말아라 하늘에 보물 좀 쌓아보자’ ‘앞으로 잘 살면 되는거다’ ‘교회에 봉사하면 되는거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또 사랑을 적립 받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저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돌봐주시는 이유를 모르던 저는, 현장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직전 날이 되어서야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지으시고 택하신 사람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돌봐 주시고 계셨던 것이었지요. 빛처럼에 내었던 원고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냈었습니다. ‘제가 드디어, 하나님께서 저의 주권자이심을,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이죠…. 이때의 제 고백은 시작에 불과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눈으로 보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거든요..

     

    코로나 입퇴원을 마무리 하고는 [다시 전국유람 시작합니다] 몇 달 후 원주로 이동했습니다. 예배출석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안양교회 소속으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신도회 모임도 줌으로 유지 했습니다. 멀리 있어도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지침들이 바뀌었죠… 2021년 가을영은회 즈음해서부터 원주교회에 출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으로만 뵙던 김세한 목자님을 직접 뵈니 참으로 반가웠지요) 그해 연말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다시 계룡으로 이사를 하기까지 약 2달, 출석 예배에 목말라 있던 저희는 예배가 아니어도 종종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정~말 많이 행복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누가 함께 기도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본 기억도 있습니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구요. 천사였을까요? 다른 성도님 이셨을까요? 누구였든 상관없습니다. 누군가 함께 기도하고, 때로는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일이잖아요. 교회는 주님께 예배드리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자녀들과 교제하는 곳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되는 귀중한 두 달여의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도 12월 부터는 대전교회를 출석했습니다. (대전으로 나간 초기에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이곳에서 제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달라고 간청했지요. ‘내 양을 먹이라’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양이요?’라고 했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습니다.) 교회가 건축 중이었기에 총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가 알지 못하던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저는 우리교회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자금의 투명한 흐름과 목회자의 발령시스템을 꼭 이야기하고, 그것을 원활하게 하는 총회 조직이 있음을 자랑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대전을 언급했었지만, 사실 저는 잘 알지도 못했습니다. 총회에는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총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저는 신학원의 존재를 볼 수 있었고 여러 목자님들과 외국에서 오시는 강사님들이 열심으로 교육하심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목자님들도 연수를 받으시고 (목자장로)회의를 통해 굵직한 이야기도 오가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음…… 목자 연수회 때는 화요일 예배에서 목자님들의 특별찬송이 있곤 했는데요. ‘행복’이라는 곡을 다 같이 부르실 때는 그 수고와 감동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구요 ‘십자가 군병되어서’를 부르실 때는 마블 어벤저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어휴~ 뭐라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또 여러 종류의 영은회와 세미나를 통해 일반 성도들도 배움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국 각지의 임원들도 모여서 함께 배우고 익혀서 하나의 모습으로 각 지교회가 달려 나가고 있다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많은 봉사와 노력과 기도가 있음 또한 보았습니다. 여러 헌신을 통해 한 세대 한 세대 전해져 내려가는 우리의 신앙을 보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적재적소에서 많은 성도들을 사용하시며 그 귀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겨울 12월 27일, 새로 지은 대전교회에서는 대학 영은회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아마 그 자리에 계셨던 분들도 여기 계실텐데요, 그날은 화요일 이었고, 저는 연합예배의 찬양인도를 해야 했기에 부담이 컸지요. 기존에는 검정색 찬송가에서만 찬양을 골랐었는데 그 날은 새찬양에서 ‘기대’라는 곡을 살짝 끼워 넣었습니다. 대전교회 성도님들의 절반이상이 모르시는 곡일 수도 있었으나, 저는 대학부의 절반이 그 곡을 알고 있기를 바랬지요. 모르더라도 함께 불러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청년들이 ‘주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분만 바라네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격려해 따스함으로 보듬어가리’ 하며 찬양을 하는 상황이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감!!!동!!!이었어요. 여러 지역에서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예수님 한분만 바란다고 고백을 하는데, 각 지역에서 각자의 위치에 존재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의 지교회들이 예수님만 바라보며, 앞으로 나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달 후, 2023년도 2월 말, 저희는 이곳 청주로 이사 왔습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경북지역으로 가게 되면 약 40분을 달려서 안동교회로 가야했습니다. 계룡에서 대전교회를 오가는 길보다는 편하지 않아 보였기에 저녁예배 참석이 가능한 건지 확실히 말할 수 없었지요. 만약 서해안 쪽으로 가게 되면 100km를 달려서 장항서부로 가야 했는데, 진형제는 이정도 거리의 교회에 휴가를 내지 않고서는 갈 수 없었고 저 역시도 혼자 그 길을 오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디로 보내 주실지는 모르지만,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곳에 순종하며 가기로 하고 쓰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가 교회와 가까운 거리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청주로 보내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해야 할 주님의 일이 있기에 보내셨다고도 생각합니다. 새로운 간증 내용이 추가되어 또 다른 교회에 가면, 지금 보다 더욱 풍성한 간증시간을 갖게 하시려고 이곳에 보내셨음을 확신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고 명령하신 것을 각 위치에서 전심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할 수 있음을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효원형제는 성경을 무척 열심히 읽었고 그 전과 비교했을 때 기도를 아주 많이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심하고 체중조절을 하여 성공했고, 교회가야 하니 회식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진형제는 각 교회별로 올라와있는 예배동영상을 통하여 말씀듣기를 지속했고 어느 순간이 지나고 보니 저희 두 사람은 성경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도 그런 모습은 지속되었고 목자님들께 질문하기도 하면서 하나님께로 한걸음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또한 추석 명절에 남원 할머니를 뵈면서 남쪽의 교회들의 일부를 방문 했었습니다. 남원 서도 삼계 전주… 각 교회를 방문하고 몇 가정과 계획 없던 만남을 갖게 되니 마음이 또 어찌나 꽉 차던지요.. 함께 눈물로 기도하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성장하는 남편의 모습과 남편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도 저를 가르치시고 기르시는 중입니다

     

    저는 모태신앙이 아닙니다. 10대 동안에 교회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20대에 교회를 나오긴 했지만 대학부 영은회 조차도 참여하지 않았기에 배움이 짧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성장기 동안에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과 사랑과 선행으로 교제하며 서로 돌보고 격려하면서 지내온, 지내고 있는, 지내게 될 성도님들이 참 부럽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천천히 가르쳐 주시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어디로 가든지, ‘저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구나’ 생각하지요. 그곳에서 제가 듣고 보며 배울 일이 있을 것이고,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어디로 보내시든지 절대 외롭게 지내도록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정신없이 이사 다니면서도 가까운 교회에서 하나 된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을 매번 감사드립니다. 영적으로 의지할 분이 계심과 동시에 이 나라 어딜 가든, 친정식구들보다도 빨리 닿을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 저는 불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 어디에 간다 해도, 신랑보다 교회식구들을 더 의지할 것 같습니다. 성도 중 누군가가,, 혹여나,, 우주인이 되어 우주정거장에서 일하면 좀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죠? 그러나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그 공간에도 세계 성도들 중의 한 명을 주님께서 꼭 보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된 복음을 전파하고 그 진리를 더욱 연구하고 굳건히 유지하며 전승하는 우리 참예수교회에서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저는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하기 때문임을 고백하며 저의 긴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성장기에 있는, 저희 가족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이원일 자매

  • [성도 소개] 하늘의 축복을 그대 삶 속에_이향순 자매, 안유강 형제

    [성도 소개] 하늘의 축복을 그대 삶 속에_이향순 자매, 안유강 형제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로 이번 가을 세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신 이향순 자매님과 안유강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이향순 자매님은 청주교회 성도님이신 이순자 자매님의 전도로 교회에 발걸음을 시작하신 분입니다. 두 분은 시장에서 만나 친분을 가지게 되셨고, 이순자 자매님의 인도로 교회를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고 세례를 받기 위해 교육을 받으셨지만, 세례를 받기 전에 극심한 허리 통증을 앓으셨고, 세례 당일까지 이번에 세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점점 좋아지셨고, 감사하게도 세례를 받으실 수 있으실 정도로 호전되었습니다. 물론, 세례를 받는 그 순간에도 통증이 있어 어려움이 있었지만,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시며 두 손을 높게 들고 소리치는 모습은 마치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의 외침처럼 간절함과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다음으로 안유강 형제는 원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시던 안의생 집사님의 손자입니다. 올해 청주교회로 재적을 옮기시면서 유강이와 함께 나오기 시작하셨는데, 9살이라는 어린 나이의 유강이에게는 처음 접하는 환경이 어색한지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럼에도 유강이가 관심을 가지고 질문한 것이 바로 ‘세례’와 ‘성령’이었습니다. 목자님과 선생님들께 ‘세례’에 대해 질문하며 관심을 가졌던 유강이가 세례를 받고 나서 소감으로 한 말이 ‘오늘 세례를 받고 저의 죄사함을 얻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이향순 자매님과 안유강 형제는 이제 참교회인 참예수교회의 성도로 저희와 함께 천국의 소망을 품고 나아가는 한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추워지는 날씨 속에 이런 따뜻한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해주시고 두 영혼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이 두 성도님의 앞에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길 소망합니다. 또한, 지금 신앙생활을 시작하셨거나, 신앙의 길을 걷는 모든 성도님들의 걸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길 기도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