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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세지] 성령 받은 증거의 방언과 은사용 방언의 구별 근거(고전12:7~11)

    [말씀제목] 성령받은 증거의 방언과 은사용 방언의 구별근거(고전12:7~11)

    [설교자] 양봉도 목자님

    [설교일] 2022년 6월25일(토) 안식일

    고린도전서 12장 7절~11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4장 2절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

     

    베드로전서 4장 10절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고린도전서 14장 3절~5절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만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전서 14장 13절~14절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14장 22절~23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글쓴이 김효진

  • [복음 메시지] 생명의 길 (마7:13-14)

    [말씀제목]  생명의 길 (마7:13-14)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18일(토) 안식일 예배

    ♥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4)”

    첫째로 문이 좁습니다. 그래서 찾기도 힘들고 들어가기도 어렵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라는 말씀처럼 오직 예수님만을 통해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16:18)” 라고 하심처럼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만이 사망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 교회는 진리로 세워지고(딤전3:15), 성령이 함께 해야 합니다(요일5:7). 그래서 사도들의 진리 위에 성령이 내리는 참교회의 믿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둘째로 길이 협착합니다.

    기독교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 다른 종교에 비해 어렵습니다. 더욱이 안식일 등 교리적인 부분은 물론 하나님 말씀 그대로 지키려 하는 참된 신앙의 길은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초기 사도교회도 유대인에게는 이단으로, 이방인들에게는 미움과 거리낌을 받았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길은 문도 좁고 길도 협착하다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길로 가야 한다고 하십니다.

    ♥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7:13)”

    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가야 합니다.

    그것은 첫째로,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을 통치하기를 거부하고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은 성도 이전의 삶이며 사단을 좇는 삶입니다(엡2:2-3). 본성대로가 아닌 말씀을 따라 세상을 거슬러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119:9)”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둘째로 세상 사람들처럼 부를 추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부자 되기를 힘쓰나 성경은 그 길이 멸망의 길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땅에 관심을 갖고 보다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살려고 애쓰지 말고 가진 바를 만족해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지나치고 불필요한 욕심의 짐을 버리고 가장 귀하고 귀한 생명의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13:5)”

    https://youtu.be/ofPDbS2r6Xc

    글 |  백현 자매

  • [복음 메시지]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복음 메시지]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말씀제목] 주(主)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17)

    [설교자] 이엘리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시편 90편의 표제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구약 시대에 영성이 높은 사람에게 주어졌던 칭호입니다. 모세가 그중 한 사람이며 특별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한 사람입니다.

    오늘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그가 인생이 무엇인지 깨달은 데에서 나온 것입니다.(시90:3-11) 그 깨달음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된 것에서 부터 입니다.

    누구든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인생에 대해 바르게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사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정확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올바른 데서 벗어나 제각각이 됩니다.

    시편 90편 1절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는 모세가 인생에 대해 내린 결론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자유를 매우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훗날 창업해 사장이 되는 걸 꿈꾸고 자녀들은 장성하면 집에서 나가 독립하려 합니다. 현대인들은 자기 삶에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걸 좋아합니다. 이러한 관념이 확장되면 신앙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신자(信者)가 되면 자유를 잃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보다 훨씬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면 자기 일생이 그의 속박 아래 놓여 마음껏 죄를 지으면서 살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기에 말이나 행사에 모두 능했습니다.(행7:22) 요즘 말로 표현하면 자기 삶에서 성취한 이력이 더할 나위 없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그는 40세까지 왕궁에서 살았습니다. 그 후 40년은 양을 쳤고 그의 마지막 생애 40년은 광야 길을 걸었습니다. 실로 인생의 단 맛과 쓴 맛을 모두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에 대해 내린 최후 결론이 있는데 사람에겐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셔서 우리를 주관하며 관리하셔야 하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 ‘하나님은 나의 주(主)이십니다.’

    “주는 대대에” –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일회성으로 짧게 끝난 게 아니라 대대로 계속 이어져 온 것입니다.’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핵심 근거가 되시는 분입니다.’

    “주는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그렇습니다. 일평생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의 부모, 배우자,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모세의 이 기도는 우리의 일생이 ‘하나님을 나의 거처로 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은 완전히 나의 주재(主宰, 주인)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인생이야말로 가장 의의가 있고 최고로 가치 있는 인생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90:2後)

    영원 전에도, 영원 후에도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비하면 사람의 삶은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버릴 정도로 매우 짧고 지극히 미세합니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는 말입니다.(약4:14)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시90:2前)

    천지만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 창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는 세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① 무소불능(無所不能) –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② 무소부지(無所不知)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③ 무소부재(無所不在) – 하나님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지혜와 능력이 무궁무진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자신의 주재(主宰)로 삼는 것은 은혜이며 복입니다.

    시편 90편 3-11절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관계가 있다는 걸 알려줍니다. 우리 육안(肉眼)으로는 볼 수 없더라도 하나님은 우리 매일의 생활 중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든지 하나님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설령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主, Lord)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의 모든 단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목(眼目)으로 본

    인생의 실상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시90:3)

    하나님은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이는 결국 사람의 가치가 티끌과 같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느 날엔가 티끌로 돌아갑니다. 사람마다 육신을 갖고 세상을 사는 동안 아무리 자기 몸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핀다 할지라도 그 몸은 끝내 티끌로 돌아가고 맙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4)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지난밤의 한 순간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생은 그렇게 짧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시90:5前)

    폭포수의 물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쏟아져 내린 물, 한번 지나가 버린 물은 다시 돌아가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지나가 버리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는 사실상 두 번째 기회란 없는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때 그때 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살다 갈 뿐입니다. 세상 삶의 종착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세월이 지나갈수록 남아있는 삶의 시간은 점점 더 짧아져 갑니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시90:5後)

    잠은 자는 것은 밤에 꿈을 꾸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어느 때 우리가 잠을 자면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면 그게 단지 꿈이었다는 걸 알고 허탈감을 느낍니다. 사람은 청소년 시절엔 나름 높은 이상(理想)을 갖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지난날을 돌아 보면 그게 한낱 꿈에 불과했음을 깨닫습니다.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사람이 몇 사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는 대단히 큰 괴리가 있습니다. 우리 삶이 잠깐 자는 것과 같다는 건 그래서입니다.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시90:5後)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시90:6)

    꽃이 왕성하게 피어난 때에는 최고로 가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든 사람이 감탄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꽃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지는 시기가 있습니다. 전성기에 있을 때가 실은 쇠락기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아무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 풀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크고 귀한 것을 성취했을지라도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점차 떨어져갑니다. 결국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라져버립니다. 누구든 절대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시편 90편 7-9절은 매우 두려운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걸 대다수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시90:8)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살아가는데,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은밀한 죄”란 우리가 죄를 지었음에도 그 죄를 깨닫지 못하는 걸 말합니다. 어둠 속에서 지은 죄이기에 그걸 다른 사람이 알아채질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어떤 죄라도 밝은 빛 가운데 모두 드러내십니다.

    사람의 죄가 가져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분노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시90:7)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시90:9)

    이것은 대단히 두려운 일입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최고로 두려운 날을 맞이합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날이며, 하나님의 분노를 대면하는 날입니다.(고후5:10, 계6:15-17)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시90:10前)

    인생의 년수가 70, 80에 불과하다면 자랑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는 수고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육체가 매우 고생합니다.

    둘째는 슬픔입니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문제로 마음에 많은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살아서 70, 80년이 지나면 최후엔 무엇을 얻을까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0後)

    이게 바로 우리 인생의 실제 모습입니다. 누구도 그걸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할 6가지 사항

    이렇게 인생의 실상을 똑바로 깨닫는다면 우리가 인생에서 마땅히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모세는 시편 90편 12-17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6가지를 알려줍니다.

    1.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라고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혜는 ‘우리 날 계수함을 깨닫는 지혜’입니다.

    세상에서 거리는 보통 km, 마일(mile) 등으로 나타냅니다. 그에 비해 인생의 거리는 년수로 계산합니다. 50년, 70년, 100년 등으로 사람의 일생 여정을 표시합니다. 공통점은 그 여정마다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 인생의 종착지,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바로 천국입니다. 중요한 건 그 목적지까지 성공적으로 가려면 반드시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길로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처,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 천국(天國)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그 지혜는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과 ‘성령 기도’입니다.

    이 지혜는 GPS처럼 대단히 중요합니다.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참 지혜가 목적지를 향한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수시로 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끝까지 가다 보면 하나님의 거처, 우리 목적지 천국(天國)에 들어갑니다.

    1.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시90:13)

    둘째는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돌아오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대면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근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1.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시90:14)

    사람마다 일평생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하길 원합니다. 그런데 삶의 기쁨과 즐거움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그에 대한 방향을 잘못 잡습니다. 물질적 조건의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 그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만족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아닙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주의 인자(仁慈),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들어와 계셔야 만족할 수 있습니다.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 평생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1.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시90:15)

    이는 우리 인생이 직면하는 현실을 말씀한 것입니다. 모세는 우리가 곤고를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 120년의 세월 중에 80년 동안 고난을 겪었습니다. 고난에는 죄로 인해 겪는 것이 있고 의로 인해 겪는 고난도 있습니다.(벧전2:20) 그 어느 것이든 모두 자신이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왕궁을 떠났을까요? 그것은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무슨 이유로 광야 길을 걸었을까요? 당대에 그가 사명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보시기에 최고로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히11:24-26) 이것이 그가 80년 동안 고난의 삶을 산 이유입니다.

    시편 90편 15절에서 모세가 기도한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를 곤고케 한 날수 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년수 대로 기쁘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면 고난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은 감옥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삶의 기쁨은 이렇듯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면 고난은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면 고난도 겪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인생은 모세의 인생과 같습니다. 훗날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에게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함께 있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눅9:30-31)

    모세는 우리에게 고난이 없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게 아닙니다. 기쁨을 주셔서 어떤 고난이든 잘 대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1.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본 절에서 대상자는 둘입니다.

    첫째는 “주의 종들에게”입니다. 현세대를 가리킵니다.

    둘째는 “저의 자손에게”입니다.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를 말합니다.

    그럼 모세의 기도는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주의 행사를 현세대에게 나타내시옵소서’입니다.

    하나님의 행사는 우리의 신앙에 귀한 체험이 됩니다. 그 체험을 현세대가 분명하게 갖게 해달라고 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든 사람의 삶에 최고의 보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각자 직업으로 버는 돈은 사실 살아가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시간을 많이 써야 할 곳은 돈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신앙을 돌보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에게 진정 가치 있는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최고로 보배로운 것을 그들에게 남겨주는 것입니다.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 나타내소서.”(시90:16)

    이는 우리의 신앙에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체험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재능이 많습니다. 모두가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두각을 나타내길 원합니다. 이것도 물론 영광입니다. 다들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면 달라집니다. 세상에서의 성취나 성공으로 영광을 얻는다는 게 분토(糞土)와 같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최대의 영광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바로 그분’입니다.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우리 자손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있게 해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럼 우리 하나님은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이것을 신앙의 전승(傳承)이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다음 세대의 하나님도 되시길 희망했습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산업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그걸 향해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단지 건강, 학업, 직업만을 위해 구할 게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지 세상에서 잠시 잠깐만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하면서 그들의 영혼의 눈이 떠져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길 위해 구해야 합니다. 뜻을 세워 하나님을 위해 일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인생의 목표를 추구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 된 우리가 꼭 해야 할 중요한 기도입니다.

    1.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시90:17)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설령 문제가 있더라도 무거운 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자기의 총명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삶에 많은 스트레스가 따릅니다.

    맺는 말

    모세는 인생의 실상에 대해 정확히 깨달았습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그 깨달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여섯 가지의 소원을 아룁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유트브 예배링크

  •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복음 메시지]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말씀제목]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 (눅4:14~30)

    [설교자] 전*희 목자

    [설교일] 2022년 6월 25일(토) 안식일 예배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예수님은 이사야에 있는 예언을 통해서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이유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앞서서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아야하고, 복음을 경험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진정으로 누릴 수 있는 기쁜 소식은 과연 무엇일까요? 본문에서는 세 가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이사야 6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점령당해 살아 있는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된 상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복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포로된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소원도 빨리 전쟁이 끝나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함을 얻게 되는 때가 있음을 알려주셨던 것입니다.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상태에 처해져 있던 것처럼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임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서 속하여 마귀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 죽음에 이르도록합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귀의 권세 아래서 불쌍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형벌받을 죄인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당신의 보혈로 죄인의 죄 값을 치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본을 받아 세례를 받는 사람은 죄로부터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분을 회복하게 됩니다.(마3:15~17,행2:38)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이후에 잠시 죄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겠지만 마침내 사단이 성도의 발아래 놓이게 되어 죄악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롬16:20) 주님의 주신 진리로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2.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됨이 복음입니다.(18)

    앞을 볼 수 없는 자를 소경이라고 합니다. 소경이 앞을 본다면 얼마나 기쁜 소식일까요? 예수님은 공생애를 사시며 실제로 여러 명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뿐만아니라 여러 질병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복음이었습니다.

     

    (요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죄 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져 영적인 소경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해서 당신의 성품과 능력을 풍성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소경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보면서도 알아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시 보게 하시고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자신 창조한 자와 자신을 구원할 자를 알게 하시고 자신이 가게 될 곳도 알려주십니다. 이제는 눈을 뜨고 두려움없이 살아가게 하십니다.

     

    3. 눌린 자가 자유를 얻음이 복음입니다.(18)

    눌려있다는 말은 자유롭지 못한 상태를 만합니다. 육신적으로든 심령적으로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에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지혜와 능력의 한계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근심과 걱정으로 얽매어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은 바로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해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가난한 자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그래서 예수님의 소식을 들을 때에 가난에 처한 자신을 구원해주시는 분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나사렛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끌렸지만 하찮은 목수의 신분과 빈곤한 외적인 상황을 보고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배척했습니다. 반대로 이방인들이었지만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처럼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를 믿고 순종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복음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복음을 맛보고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길 원합니다.

     

    유튜브 예배 링크

    글쓴이   남*숙

  • 코로나 시기에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에게 – 수원교회 안희수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모두가 코로나로 힘들고 고통 받는 이 시기에,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체험하며

    최고로 기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간증을 통해, 이 시기에 신앙인으로 여러 고민을 하는 청년과 성도들께 제가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코로나 확진입니다. 부대를 전체 폐쇄하고 신속히 대응하십시오’ 2020년 2월, 대한민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는 고작 100명이었습니다. 이마저도 특정 종교단체로 인해 대구지역에 한정됐던 시기였습니다. 군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온 그 날, 저는 육군의 2번 확진자가 발생한 부대의 책임자인 당직 근무자였습니다.

    4일의 혹한기 훈련 후, 잠도 자지 못한 저는, 당직근무 교대를 2시간 앞두고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검사 의뢰를 했던 병사는 확진입니다.’ 저는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60만의 장병들 중에 왜 하필 우리 부대의 병사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어떻게 이런 시련이 있을 수 있는 거지?’ 평소 같으면 하나님께 원망을 했겠지만, 전역을 앞두고 매일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기도하던 때였기에 ‘이 또한 주의 뜻이 분명히 있고, 저와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청와대와 국방부를 비롯한 수십 개의 관련 기관으로부터 수백 통의 전화가 몰아쳤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추가 확진자는 4명이 나왔고 해당 확진 병사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저는 3주간 격리됐습니다. 이때는 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때라, 모든 것이 미흡했습니다. 허름한 독방에 전투식량 4일치와 생수 등 몇 가지만으로 격리됐습니다(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된 식사를 제공 받았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저는 유튜브를 통해 예배하고, 매일 기도했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해서 코로나를 비롯한 세상의 어떤 어려움이든지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 때 깨달았습니다. (이 내용을 다 다루기엔 내용이 너무 많아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간증하겠습니다.)

    그렇게 저는 코로나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을 때, 6년의 군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오게 됐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직업군인이 되는게 꿈이었습니다. 때문에 대학시절부터 군의 장학금을 받고, 임관성적도 상위 10%안에 들어갈 만큼 꿈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러나 저는 자대배치를 받고 수개월 만에 전역을 결심했습니다. 이유는 직업군인(장교)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기에 결코 적합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군 안에서의 장래가 밝았기에, 제 동료들은 전역을 결심하는 저를 걱정하면서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저 역시 막상 전역이 다가올 때,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경제가 더 어려워져 얼어붙은 취업시장이 불안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아내와 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신앙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선택에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시리라 믿었습니다.

    사실 전역을 앞뒀을 때, 저의 군 생활을 좋게 봐주셨던 분께 좋은 자리를 추천받았습니다. 누구나 아는 대기업의 언론대응 경력직의 면접제안이었습니다. 사전 전화인터뷰에서 순조롭게 대답했고, 대면면접만 문제없이 해내면 취업이 확정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주량’이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노골적으로 술을 잘 마시냐는 질문이 있었고, 저는 망설임 없이 지금까지 먹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먹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전화면접이 끝나고 저를 추천했던 고위 간부에게는 욕을 먹었습니다. 왜 굴러 들어온 복을 차 버리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미련하게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은 점점 줄어갔고, 불안감이 커져 갔습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 있어 신앙생활에 지장이 없는 직장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워라밸이 지켜질 수 있는 직장은 많지도 않을뿐더러, 어김없이 경쟁률은 치열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2개월 동안 80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매번 돌아오는 건 불합격이었습니다.

    전역후 반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고,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했습니다. 퇴직금과 모아놓은 돈은 계속 줄어갔고, 아내와 어린 두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이 더해져 갈수록 하나님을 찾고 의지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저는 아내와 매일밤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날로 떨어지는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이윽고 조심스레 예비역 간부 재임용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딱 3년만 군 생활을 더 하면서 취업시장이 나아지길 기다릴까?’ 세상의 편함을 위해 신앙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스스로 두려웠습니다.

    그러다가 2021년 1월, 구직사이트를 통해, 헤드헌터로부터 면접제의가 왔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의 제안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단순 영업직이었기에 제가 무시했는데, 이곳은 달랐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회사였고, 군 경력도 인정해주어 대우가 좋다는 사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회사가 아니면 재입대를 한다는 각오로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면접을 본 그날로 저는 채용이 확정되어 출근을 하게 됐습니다. 건실한 모기업이 있는 자회사로, 신사업을 키우는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근무여건이 좋아 앞으로도 신앙생활 하는데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1년이 되지 않아, 사업이 어려워졌고 결국 제가 속한 사업부는 폐지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업철수를 앞두고, 경영진은 저만 따로 불러냈습니다. 매출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모기업에서 경영진의 핵심 보좌진으로 계속 근무할 것을 제안한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했지만, 남들보다 사회경력이나 스펙도 부족한 저를 높게 인정해주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후에 대표로부터 알게 된 선택 이유는 제가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고, 우리 교회의 청년들에게 꼭 간증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술과 담배를 안 하는 것은 물론, 정직하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남들은 가지지 못한 제 강점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스카웃의 핵심이었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장래가 밝은 직장을 갖게 된 것과 더불어, 지인들로부터 대기업 부럽지 않은 워라밸이 있는 직장이라는 칭찬을 한 몸에 받게 됐습니다. 취업의 걱정을 덜고 좋은 회사에서 일해서 기쁜 게 아닙니다. 제가 믿고 의지하는 신앙의 선한 가치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술과 담배를 비롯하여 신앙인으로서 하면 안 될 수만 가지 일들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어려움으로 다가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린 신앙의 올바른 선택에 대해 배우지만, 막상 현실을 마주하면 결코 쉬운 결정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구합니다. 이미 성경에 담긴 말씀으로 늘 우리 곁에 계신데도 말입니다. 자기의 노력과 능력을 믿고 세상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어려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노력과 더불어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구할 때,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실 주께 이 모든 영광과 찬양을 올립니다. 아멘.

  • 병영일기 – 오태명 형제

    병영일기 – 오태명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군 생활 동안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시간 군 복무 동안 느꼈던 은혜를 간증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훈련소에 입대하다>

    저는 2020년 11월 16일 나라의 부름으로 9사단 신병교육대대(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군 생활에 대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라는 생각도 하며, 걱정하면서도 든든한 복잡한 마음으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하게 될 군 생활 중 가장 큰 걱정은 인간관계였습니다. 세상 친구보다 교회 성도들과 가까이 지내던 제가 ‘세상 사람들 밖에 없는 군대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처음엔 훈련소 교관들의 눈치를 보느라 동기들과 어색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동기들과 굉장히 마음이 잘 맞게 되었습니다. 나이, 직업, 살던 지역 등 정말 많은 것들이 달랐던 동기들이지만 훈련소 기간 동안 서로를 잘 챙기고 배려하는 동기들이었습니다. 입대 전, 군 생활 동안의 인간관계에 대해 정말 많이 기도했었는데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훈련소 생활을 하면서 여러 훈련과 무리한 운동, 제설 작업 때문에 몸살에 2번 정도 걸리는 등 여러 일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아무리 주위 동기들이 배려하고 챙기더라도 가장 의지가 되고 찾게 된 분은 결국 하나님이셨습니다. 동기들의 배려 속에서도 홀로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는 외로움을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의 감각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았습니다. 훈련과 훈련 사이 쉬는 시간이나 일과 후 개인정비 시간에는 거의 항상 성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홀로 하나님을 찾는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제가 읽는 말씀을 통해 정말 많은 위로와 격려를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저의 훈련소 기간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고 겪게 된 광야 생활과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매주 당연하게 보았던 형제자매들 없이 외로운 곳에서 말씀, 기도라는 불기둥, 구름 기둥을 의지하며 훈련소 생활을 잘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대배치를 받다>

    훈련병들은 5주 정도의 훈련을 마치고 마지막 주에 자신이 앞으로 군 생활을 하게 될 자대에 배치를 받게 됩니다. 그때, 각자의 보직이 정해지는데 저는 저의 1,2,3지망과 전혀 관계없는 포병이 되었습니다. 안양교회 대학부 형제 중 표병 출신의 형제가 있었는데 그 형제는 포병이 되어 굉장히 힘들게 군 생활을 했다고 하여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걱정되는 마음으로 자대에 도착하였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 오히려 훈련소 생활보다 편하고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제 군 생활의 가장 큰 걱정은 인간관계였습니다. 훈련소에서는 좋은 동기들을 만났어도 길어봐야 6주이고 자대에서는 1년 5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생활해야 합니다. 훈련소 보다는 오히려 자대에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많이 기도하고 자대에 갔습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자대에서도 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대에도 배려심이 있는 동기와 크게 모나지 않는 선임들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저는 차츰 자대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혹의 자대 생활>

    훈련소 기간이 고난의 시간이었다면 자대 생활은 유혹이 시간이었습니다. 힘들었던 훈련소 기간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찾았지만, 오히려 편하고 비교적 자유로운 자대에서는 그런 마음이 풀어지게 되었습니다. 훈련소 기간동안 성경을 읽으며 군 생활 동안 성경 통독하기라는 목표를 세우게 되었지만 자대에는 그런 마음이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자대에 배치된 기간은 코로나로 인해 모든 훈련이 취소되고 부대 일과가 굉장히 편안했던 기간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하나님을 찾던 마음은 약해졌습니다. 처음 자대 도착했을 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해서 하나님을 찾았지만, 점차 적응하고 몸과 마음이 편해지자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또 개인 정비 시간에 휴대폰을 나눠주어 부모, 성도들과 연락을 하게 되자 훈련소 기간에 비해 외로운 마음이 풀어졌던 것도 한 몫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열심이 조금씩 조금씩 유혹에 넘어가기와 다시 바로 마음을 잡기를 반복하면서 시간은 흘러갔습니다.

     

    <첫 휴가>

    그렇게 자대 생활을 중 첫 휴가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2020년 11월 중순에 입대하고 2021년 3월 하순에 휴가를 얻었으니 약 5개월 만이었습니다. 그렇게 나온 첫 휴가 중 한 번의 안식일을 교회에서 지낼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방문한 교회에서 성도들께서 굉장히 따뜻하게 저를 맞이해 주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기쁜 마음으로 저에게 안부를 묻고 제 군 생활에 대해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렇게 안식일을 보내던 중 한 성도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태명이가 없으니 빈자리가 너무 큰 것 같다. 빨리 전역해서 일꾼의 자리를 채웠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웃으면서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라고 답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이 제 마음속에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점점 ‘성도들은 내가 군대에서 더욱 성숙한 일꾼이 되어 되돌아오길 바라실 텐데 내가 이런 생활을 계속 하는게 옳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군대에 보내시어 내게 뜻하신 것이 있을텐데 내가 과연 그 뜻에 잘 부응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문을 품고 저는 그렇게 첫 휴가를 지내고 부대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목표>

    그렇게 휴가를 보내고 부대로 돌아온 저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바로 ‘전역 후 교회에 돌아갔을 때 나 자신과 성도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신앙인으로서 잘해왔다고 말할 수 있는 군 생활을 하는 것’ 이였습니다. 제가 입대하기 전 운동해서 체력기르기, 자격증 공부하기, 독서 많이 하기 등 여러 가지 목표를 세웠었습니다. 하지만 이 목표가 다른 모든 목표보다 우선시 되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은연 중으로 생각했던 것을 이번 기회에 명확한 목표로 삼고 노력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0년 같이 느껴지는 1년이 조금 넘는 군 생활 동안 이 목표를 이루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힘을 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부대생활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잠시 주춤했던 훈련은 백신 접종 이후에 다시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지금까지 못 했던 훈련을 보충하겠다는 건지 더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지친 중간에 나가게 된 휴가, 다시 훈련, 잠깐의 휴식기간 등을 반복하는 군 생활을 보내었습니다. 그 와중에 있었던 크고 작은 부상, 위험 등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지켜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도 크고 작은 유혹과 고난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제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간증으로 되돌아보게 된 저의 군 생활은 마치 인생의 축소판 같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다가도 연약하여 넘어지면 하나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는 삶의 반복이 마치 천국을 위해 달려가는 성도의 인생을 압축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기 싫었던 군대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이렇게 군대를 왔기 때문에 신앙인으로서의 자립심, 독립심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조금 남은 군 생활 그리고 전역 이후에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앞으로 군 복무를 하게 될 믿음의 후배들, 그리고 군 복무가 아니더라도 이 간증을 읽으시는 모든 성도들께서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하심과 늘 보호하심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 성경 인물 탐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성경 인물 탐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

    다윗은 이새의 8명의 아들 중 막내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영광스러운 시대를 만든 이상적인 왕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으며, 계시록에서 직접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들은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한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던 다윗에 대해 잘 알고 또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다윗에 대해서는 삼상16-왕상2장, 대상11-29장에 걸쳐 상세히 나타나 있으며, 시편 150편 중 73편이 다윗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윗의 일생을 중요한 사건으로 나누어 본다면 1)사무엘의 기름부음, 2)골리앗을 물리침, 3)사울의 핍박으로부터 도피, 4)사울의 죽음과 왕으로 즉위, 5)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약속, 6)밧세바 사건과 하나님의 징계, 용서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6가지 사건을 기준으로 다윗의 일생을 살펴보고,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1) 사무엘의 기름부음

    소년 다윗은 평범한 목동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이 성경 역사에 등장하게 된 사건은 바로 선지자 사무엘의 기름부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외모가 아닌 중심이었습니다(삼상16:7). ‘중심’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레바브’(남성명사)는 내부 인간, 마음, 정신, 이해력, 의지를 의미합니다.

    행13:22에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는 말씀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 선택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떤 마음을 가졌기에 하나님께 선택받을 수 있었을까요? 다윗의 이후 행적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2) 골리앗을 물리침

    젊은 다윗에게는 용맹함과 전투 경험이 있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우는 것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는 양들을 곰과 사자에게서 건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긴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삼상17:34-36). 또 그는 전쟁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삼상17:45-47). 그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살면서 우리도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다윗의 믿음과 용기를 본받아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3) 사울의 핍박으로부터 도피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는 여인들의 노래로 말미암아 다윗이 사울에게 핍박을 받게 되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시40:17 말씀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치 마소서.”, 시25:4~5 말씀은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바라나이다.” 라 기록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광야의 시련을 거치면서 다윗에게 확립된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특히 사울을 죽일 기회가 2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았다는 이유로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고 있으며, 신뢰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특히 삼상26:9-10 말씀을 보면 사울이 어떻게 될 것인지 거의 정확하게 예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삼상26:23-24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다윗이 과연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죽이지 않고 놓아 보낼 수 있었는지 분명하게 나옵니다.

    성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신뢰하는 것이야 말로 핵심적인 덕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광야의 시련을 받으며 가난한 심령으로 주의 도, 길, 진리를 앙망하므로 성장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여러 시련을 거치며 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시련 앞에서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힘입어 견디며 믿음 안에 거하는 성도되기를 원합니다.

     

    4)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즉위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이 블레셋과의 전면전 중에 길보아 산에서 죽임을 당할 때, 다윗도 큰 위기를 당합니다. 시글락이 아말렉에게 침략당하여 모든 처자식과 재물을 약탈당한 것입니다. 다윗은 분노한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하였으나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함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도리어 아말렉을 찾아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두고 어마어마한 전리품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전후 논공행상 할 때에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고 브솔 시내에 남아 있던 200명에게도 전리품을 동등하게 분배하면서 전쟁의 승리를 자신의 공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합니다. 이로써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있음을 하나님께 증명합니다.

    이를 보면 성도들도 주와 함께 왕 노릇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순종으로 인생 가운데 주어지는 시험에서 승리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승리가 사람의 재능이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임을 분명히 깨닫고 그 은혜를 구하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5) 성전 건축과 하나님의 약속

    다윗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과의 내전을 끝내고 침략해 오는 블레셋을 물리치고 안정을 얻게 되자,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모셨습니다(삼하6장).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성전 짓는 것을 계획합니다(삼하7:1-3).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 호렙산에서 언약을 맺으며 처음 명하신 것도 바로 성막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도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다윗은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성전 건축을 원하였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은 막으셨지만, 다윗에게 놀라운 복을 내리십니다.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고, 이스라엘을 지키실 것이며,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시며, 다윗이 수한이 차서 잘 때 다윗의 자식이 왕이 될 것이며, 다윗의 집과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견고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전 건축을 얼마나 기뻐하시며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엡2:20-22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였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구원을 얻는 말세 성도들의 가장 큰 사명도 영적 성전 건축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영적 성전인 새 예루살렘을 온전히 이루기 소망합니다.

     

    6) 밧세바 사건과 하나님의 징계, 용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주위의 모든 나라를 복속시키며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다윗은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됩니다. 충동을 다스리지 못한 다윗은 밧세바와 동침하여 임신하자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불러내었으나, 우리야의 충성스런 마음 때문에 자신의 범죄를 숨기지 못하게 되자 암몬 사람과의 전쟁을 이용하여 우리야를 죽입니다.

    이 사건은 그 이후 다윗의 삶을 규정하는 사건이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 사울처럼 버림받거나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다윗은 남은 일생동안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며 살게 됩니다(삼하12:9~14).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지만, 이 사건을 통해 다윗은 영적으로 더욱 깊은 자기 통찰을 하게 됩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51:5),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다.”(시51:16-17),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시32:1)

    가장 형통할 때에 방심함으로 평생의 큰 화를 불러들인 다윗은 이후로 근신하는 가운데 주의 뜻을 행하며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데 힘쓰게 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이 말씀을 항상 가슴에 새기며, 근신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비록 다윗이 하나님의 징계로 많은 시련을 당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다윗에게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언약을 온전히 이루어 다윗 왕가는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이어졌으며, 예수께서도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시게 됩니다.

    예수께서도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왕이 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었습니다. 다윗의 발자취를 좇아, 예수를 따르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기를 원합니다.

  • 꿈에 그리던 단기신학

    꿈에 그리던 단기신학

    수원교회 허애숙 자매

      할렐루야! 오래 전부터 참여해 보고 싶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단기 신학이 뜻하지 않게 ‘코로나19의 선물(?)’로 인해서 온라인 강의로 변경되어 신청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 길에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교회를 다니는 분이셨다. 참예수교회에 대한 소개와 내가 알고 있는 만큼 구원의 진리를 전하면서, 모태신앙이고 오랜 신앙생활을 해왔음에도 말씀을 전하는 동안 나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게 되어 단기신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해마다 청년들이 단기신학에 참여함을 부러움으로만 바라보았는데 이번이 아주 좋은 기회라 여기며 용기를 내보았다. 비록 방금 들은 것도 뒤돌아서면 잊어 먹을 정도의 나이지만 직진해 보기로 했다.

      개강식을 통해 단기 신학의 필요성과 목적을 새기면서 구약개론을 들었다. 배움의 설렘으로 시작했지만 저녁때가 되니 모니터를 보는 눈은 침침해지고 어른거렸다. 강사님의 열정적인 강의를 쫓아가기도 바쁜데 시험까지 본다고 하니 부담감은 백배! 갑자기 다음날이 걱정되어 하마터면 포기할 뻔도 했는데 우리 조장의 친절하고 자세한 도움으로 힘을 얻고, 강의 시간 내내 곁에서 감독관처럼 지켜보면서 동참해준 남편이 있어 매시간 지속할 수 있었다. 

      해마다 성경 통독에 동참하고 있는 나에게 신약개론과 공관복음 강의는 어떤 눈으로 말씀을 보아야 하는지 알게 해주는 기쁨이 있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 레위기 강의는 각종 자료를 통해 각 연대와 출애굽 과정, 광야 생활을 확인하면서 익혀나갔다. 민수기와 여호수아 시간에는 각 장의 주제를 기억하기 쉽게 알려주셔서 인상이 깊었다.

      최근에 교회에서 1년차 수료증과 단체 사진을 받으니 2년차, 3년차까지 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자신은 없지만 욕심으로 끝나지 않기를 마음으로 다짐해 본다.

      강사님들의 열정적인 강의에 감사하며,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에벤에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 믿음의 종류 (히 11:4~12)

    믿음의 종류 (히 11:4~12)

    https://youtu.be/jf9upZfASGE

    참예수교회 하남교회 안식일 오전예배

    일시 : 2020. 9. 5. 

    장소 : 경기도 하남시 덕풍1동 558-27 한솔빌딩 6층

    설교자 : 김승도 목자

    제목 : 믿음의 종류

    주제성구 : 히브리서 11장 4~12절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경건(약1:21~27)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경건(약1:21~27)

    참예수교회 수원교회 안식일 예배

    일시 : 2018. 7. 14. 

    장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매송고색로533번길 7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363

    설교자 : 이엘리사 목자

    제목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경건(약1:21~27)

    주제성구 : 야고보서 1장 21~27절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 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