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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눅15:11~24)

    제목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본문 : 눅15:11~24

    “되찾은 아들의 비유” 에 나오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기 나오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지 생각해 봅시다.

    1. 세상으로 떠나는 아들에 대한 슬픈 마음
    (11~12) 재산의 상속이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선 둘째 아들이 먼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며,
    목적이 선하지 않습니다. 이 재산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왜 이 아들을 혼내지 않고 아들의 요구를 받아주었을까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비유들의 공통점은, “사랑”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크기 때문에, 그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들의 선택을 허용해주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볼 수 있듯, 하나님을 떠난 삶은 비참한 삶입니다.

    2. 아들을 긍휼히 여기며 기다리는 마음
    (17)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살다가 결국 후회하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습니다.
    (18~19) 아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20)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아들을 외면하고 혼내는 모습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언제 돌아올까 매일같이 기다렸으며,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맞이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창3:21) (사30:18) 우리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꺼려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써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올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마침내 돌아온 아들에 대해 크게 기뻐하는 마음
    (21~23) 아들은 스스로를 책망했으나, 아버지는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24)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이 오히려 이제는 살아 돌아왔다고 여기며 즐거워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사람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소멸’ 이 아니라 ‘분리’ 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분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죽음이며,
    고통받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32) 오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죄인이 회복되었을 때
    가장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스스로 돌아 보았을때,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시며
    돌아왔을 때 기쁨으로 맞이해주심을 알아야겠습니다.

     

    설교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YExQW55xDAY

  • [신앙의 향기] 악기 찬양팀 찬양 발표 – 내 진정 사모하는

     할렐루야!

     지난 봄, 안양교회 소식지에서 안양교회 악기 찬양팀을 소개했습니다. 글만으로는 찬양팀의 모습을 모두 담을 수 없어서 악기 찬양팀이 연주해 주신 찬양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찬양의 제목은 ‘내 진정 사모하는’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보다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고 의지하길 바라는 마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참 평안과 위로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곡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바쁘신 일상 중에 찬양을 통해서 평안과 쉼을 얻으시기를 소망합니다!

    글|김준희 형제

  • [복음 메시지]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의 섭리(막 15:16~23)

    제목: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의 섭리(막 15:16~23)

    일시: 2026년 2월 14일 안식일 오전 예배

    설교자: 김세한 목자

     

    뜻하지 않은 일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섭리

    우리의 신앙 여정을 돌아보면 처음에는 뜻하지 않은 일처럼 보였던 사건들이 시간이 지나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단순한 만남이나 운명적인 연결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믿는 자의 고백은 다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며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대학 시절 한 여학생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려 애썼지만 당시에는 아무런 열매가 보이지 않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나는 장차 남편의 신앙을 따르겠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남편이 천주교인이면 천주교로, 불교인이면 절로, 기독교인이면 교회로 가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더 이상 권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 학생은 교회에 다니는 가정과 연결되어 결혼하게 되었고, 결국 교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일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과정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예상하지 못한 흐름이었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이미 준비된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계획이었고,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창세 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선택

    우리의 신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이는 모태신앙으로 자라났고, 어떤 이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교회를 선택하여 들어왔습니다. 시작의 모양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부르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의 극적인 회심만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이전,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선택이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더 나아가 에베소서에서는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즉흥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 속에 있습니다.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사람 시몬

    이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인물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관정에서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한 사람이 억지로 그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도 아니었고, 자원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로마 군병의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밤새 심문을 받고 채찍질과 조롱을 당하며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 무거운 가로대를 대신 지게 된 사람이 바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억지로’라는 표현 속에는 저항과 불쾌함이 담겨 있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피 묻은 십자가를 만졌으니 율법적으로 부정해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계획이 망가졌다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억지의 순간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를 단순히 구레네 사람 시몬이라고 하지 않고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그의 아들들이 초대교회 안에서 알려진 인물이었다는 뜻입니다. 로마서에는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정이 신앙 안으로 들어왔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잠시 억지로 감당했던 십자가가 한 가정의 구원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억지로의 신앙이 주는 세 가지 교훈

    여기서 중요한 교훈이 드러납니다. 첫째, 억지로의 신앙에도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언제나 자발적인 결단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권면으로, 배우자의 요청으로, 친구의 인도로 교회에 나오기도 합니다. 상황에 끌려온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동적인 참여 속에도 하나님이 의도하신 은혜가 있습니다. 둘째, 억지로의 참여는 시간이 지나 기쁨으로 바뀝니다. 처음에는 부담이었고 불쾌였지만,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그것은 영광이 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길에 함께한 기억은 결코 수치가 아니라 은혜의 표지가 됩니다. 셋째, 억지로의 신앙에도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짧은 만남, 잠깐의 순종이 한 가정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던 자리 속의 하나님의 계획

    이와 같은 원리는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서울에서 오랫동안 신앙과 멀리 지냈던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사업이 기울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인천으로 내려왔고, 다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의 기초도 부족했고 성경책도 없던 상태였지만 교무 임원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는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를 쓰시려면 성경책 한 권만 사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님이 두고 간 지갑을 정직하게 돌려주었고, 감사의 표시로 받은 돈으로 가족 수에 맞게 성경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그는 교무로서 교회 안의 갈등을 중재하고 화합을 이루는 데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이었고 억지처럼 느껴졌지만, 그 자리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위기 속에 숨겨진 은혜

    또 한 형제는 결혼을 통해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완전한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고, 신앙도 아직 깊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경제 위기로 실직을 당했습니다.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시간을 단기신학에 참여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을 받았고, 삶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되었습니다. 실직은 실패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신앙을 깊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억지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일하시는 하나님

    이 모든 사례가 공통적으로 말해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억지로 시작된 신앙일지라도, 억지로 맡은 직분일지라도, 억지로 맞이한 위기일지라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의 억지의 참여는 한 가정의 구원으로 이어졌고, 감당할 수 없던 직분은 교회를 세우는 통로가 되었으며, 실직이라는 위기는 성령 체험과 새로운 시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눈앞의 상황이 억지처럼 보일지라도, 그 너머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이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참된 신앙의 길입니다.

    유튜브 설교 링크

    글:  최재웅 형제

  • [복음메시지] 지혜자의 경제생활(잠6:1–11)

    [말씀제목] 지혜자의 경제생활(잠6: 1–11)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5. 7.12 안식일 오전 예배

    1. 보증과 담보를 피하라 (1–5)

    지혜자는 남의 재산에 욕심을 품지 않고, 자기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보증을 서주는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성경은 보증을 요구하는 그 자체가 욕심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유대 전통에서는 많은 사람 앞에서 손바닥을 마주치는 행동(하이파이브)이 보증을 서겠다는 표시였습니다. 보증을 요구하는 자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남의 능력을 빌리고, 보증해 주는 사람은 체면이나 허세를 위해 무리하게 책임을 떠안는 경우도 많죠. 이로 인해 경제생활이 흔들리고 관계도 파괴됩니다.

    오늘날 신용카드, 카드깡 같은 보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가정의 사례처럼, 홈쇼핑으로 물건을 쌓아놓고 카드값이 남편의 월급을 초과해 이혼 위기까지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은 명확히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네 이웃의 손에서 스스로 구원하라.” (잠 6:3)

    지혜자는 보증을 서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자족하며 살고 자기 형편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경제의 지혜입니다.

    2.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히 일하라 (6–11)

    지혜자의 경제생활 두 번째 핵심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개미를 보라고 합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지만 스스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여름 동안 양식을 예비합니다. 개미굴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뜨거운 쇳물을 개미굴에 부어 굳힌 뒤 꺼내어 엄청나게 정교한 구조를 확인했습니다. 양식 저장소, 번식 공간, 거주 공간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개미에게서 두 가지를 배우라고 합니다. ➀예비함, 즉 미리 준비하는 삶을 지혜라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자녀들에게 먼저 가르치는 것도 돈 쓰는 것이 아니라 모으는 것을 가르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필요할 때 쓰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자입니다.

    개미는 ➁스스로 부지런합니다. 게으름은 가난을 부릅니다. 게으른 자는 자기 마음대로 자고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습관을 연구한 결과 그들의 공통점이 부지런한 생활 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서양 사회가 성공한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도 그들의 부지런함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내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 6:10~11)

    가난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강하게 우리 삶을 덮칩니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움직일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살아야 합니다. 지혜자의 삶은 부지런함의 삶입니다.

    삶의 간증: 카드 없이 산 30년

    저도 대학교때 신용카드에 빠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을 데리고 나가면 제가 늘 카드를 긁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가 카드값을 보더니 저에게 조용히 “카드 좀 잠깐 주세요.” 하더니 잠시 뒤 가위로 싹둑싹둑  카드 잘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후로 카드 없이 살았습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점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없는 대로, 형편껏 사는 삶이 훨씬 자유롭고 평안했습니다.

    이제는 허락받아 카드를 다시 갖게 되었지만, 예전처럼 함부로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적 교훈을 넘어서,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경제 원칙을 가르칩니다.

    1. 보증을 피하고,

    2. 부지런히 일하며, 미리 준비하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지혜자의 경제생활입니다.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거룩하게 지키되, 평일에는 부지런하게 일하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된 경제생활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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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좋은 무화과, 극히 악한 무화과(렘24: 1~10)

    [복음메시지] 좋은 무화과, 극히 악한 무화과(렘24: 1~10)

     

    [말씀제목] 좋은 무화과, 극히 악한 무화과(렘24:1~10)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4년 8월 24일(토) 안식일 오전 예배

    예레미야서를 자세히 읽으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마지막 날의 모습, 그리고 그때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유다 왕 여호야긴이 재위에 있을 때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칩입하여 유다 왕, 방백들, 목공들과 철공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갔습니다. 이는 바벨론에 건물을 지을 사람들과 바벨론의 전쟁에 동원할 사람을 보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왕하 24:10~16)

    2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3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이다

    그렇게 유다의 많은 사람들이 사로잡혀간 이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성전 앞의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여주십니다. 한 광주리에는 극히 좋은 무화과, 다른 광주리에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에 극히 좋은 무화과도 있고, 극히 악한 무화과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마지막 날, 오늘날 교회 안에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으며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좋은 무화과가 되어야겠다는 소망을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 모두가 좋은 무화과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갈대아인의 땅에 처참히 끌려간 유다 포로를 좋은 무화과 같이 보기에 좋게 할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좋은 무화과와 같은 백성들을 왜 포로로 끌려가게 하신 것일까요?

    (창15:6-7)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로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죄 가운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우상이 창궐한,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곳에서조차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께서는 결국 다시 그들을 갈대아 땅으로 돌려보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정탐을 한 후, 하나님을 원망하자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다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자 다시 죄악의 땅으로 돌려보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나오게 구원해 주셨지만,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죄악된 세상을 계속 좇는다면 우리 또한 죄의 근본인 지옥으로 갈 수 있습니다.

    (벧후 2:22)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 사도는, 죄 가운데 구원받았으나 다시 죄악 가운데로 돌아가는 이들을 도로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돼지로 빗대어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극히 악한 무화과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동부 교회 성도님들 또한 더러운 죄악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6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7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오늘 본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이 확정된 이들입니다. 이들은 죗값을 치르기 위해 갈대아인의 땅에서 70년이라는 시간을 채워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잘 돌보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과 같은 국무총리, 에스더와 같은 왕비, 느헤미야와 같은 비서실장을 세우셨듯,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성공하며 살 수 있도록 잘 돌보아주셨습니다. 비록 죗값을 치르게 하셨지만, 그들이 회개하여 좋은 무화과가 되면 그들을 잘 돌보아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8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같이 버리되

    9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로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10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악한 무화과 즉,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생각으로 예루살렘에 남은 자, 애굽 땅으로 도망간 자들을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지 않고 성전 그 자체만을 중시하여 자만에 빠진 자, 죄값을 치르지 않고 도망하는 자들을 버리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를 멸절하겠다고 하십니다. 우리 또한 우리 신앙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예언은 실제로 이루어졌을까요. 나쁜 무화과 즉,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자들은 바벨론 군대에 3년 동안 포위당하며 혹독한 기근 가운데 죽게됩니다. 시드기야 왕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자녀들이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두 눈이 뽑혀 짐승같이 살아가는 비참한 말로를 맞이합니다. (왕하 25:1-7) 

    (렘52:31-34)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월 이십 오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선히 말하고 그의 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의 쓸 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한편 유다 왕 여호야긴은 포로로 사로잡혀간지 37년만에 왕의 의복을 입고, 왕의 정수를 받으며 살게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유다 왕 여호야긴을 회복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망을 품게 하셨습니다. (왕하25:27-30)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지막까지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 동부교회 성도님들 또한 어떠한 상황이 와도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여기를 눌러주세요. (유튜브 설교 바로가기)

     

  • [복음메시지] 예수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막5:25~34)

    [복음메시지] 예수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막5:25~34)

    [말씀제목] 예수님 손잡고 일어서세요(막5:25~34)

    [설교자] 오희도 목자

    [설교일] 2024년 4월 20일(토) 안식일 오전 예배

         온 가족 초청전도 집회를 맞이하여 성경에 나온 어려운 환경에서 예수님의 초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손을 붙잡은 한 여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인간의 삶 가운데 많은 힘듦이 있지요. 경제적인 가난 때문에 힘들게 살아가기도 하고, 인간관계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도 계시지만, 마음과 정신까지 무너뜨리는 것은 몸의 병입니다. 몸의 병이 깊이 들었을 때 사람은 점점 희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경에 이 여인은 혈루증(만성자궁출혈)을 12년 동안 앓았다고 나와 있습니다. 당시에도 전염병이 많아서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유출병을 앓으면 부정하다고 레위기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염 때문에 유출병을 앓는 자는 공동체와 마을에서 떨어져서 살아야 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여인은 치료를 위해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고칠 수 없어서 점점 병으로 시들어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여인은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다른 많은 사람들 또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겠지만, 이 여인에게는 ‘정말 만나야겠다.’라는 결단을 내리게 하는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12년간의 만성유출병으로 부정하게 여겨져 온 여인이 공동체에 나타나게 된 것이 드러나면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사람들 사이에 몰래 섞여서 온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 여인으로서는 예수님을 만나거나 대화할 방법이 없으니,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잡겠다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댑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것 또한 죽을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부정한 사람이 고의로 남을 만지면 똑같은 병에 걸리게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은 목숨을 두 번 건 것이지요. 무리에 섞일 때 한 번, 예수님의 옷을 잡을 때에 또 한 번.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 예수님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 외엔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참예수교회에 다니시는 많은 분들이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초청받으신 분들에게도 예수님을 붙잡겠다는 마음을 주님께서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다 잘 사는 것 같아도 저마다 아픔이 있습니다. 좌절이 있습니다. 절망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께 향하고 예수님의 손을 붙잡기 위해서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혈루병이 나은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인이 깨달았다는 것은 즉각 나았다는 것이지요. 스스로 즉각 깨달을 정도로 몸이 나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을 붙잡으시고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목숨을 걸고 내민 믿음의 손 때문에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평안히 가라고 하시고 건강의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만난 혈루증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여인은 결심을 하고 예수님 뒤에 가서 옷을 붙잡은 것밖에 없지만, 12년 동안 고통의 병 속에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건강한 몸으로, 구원받은 예수님의 딸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께 손을 내미는 작은 동작으로 여러분의 인생이 놀랍게 변하는, 인생 가운데 예수님의 축복이 임하는 귀한 오늘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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