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청주교회소식

  • [교회 행사] 마리아 신도회와 함께

    [교회 행사] 마리아 신도회와 함께

    할렐루야! 우리 중에 함께 하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올해 청주 교회는 서로 다른 신도회와의 교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연세가 많으신 마리아 신도회와 3~50대 자매들로 구성된 에스더, 루디아 신도회가 함께 식사 교재하기, 신도회 예배 드리기를 했습니다.

    먼저 루디아 신도회는 마리아 모매님들이 차량 이동이 불편하여 신도회 회식을 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대해 듣고 일부러 날짜를 맞추고 같은 식당으로 가서 함께 회식을 했습니다.

    루디아회의 따듯한 배려로 오랜만의 식사 교재를 나눈 마리아회 자매님들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복날에도 루디아 신도회 자매님들은 마리아 신도회 및 어르신들을 모셔 삼계탕을 끓여드렸습니다.

     

    또 에스더 신도회는 함께 신도회 예배를 드리며 함께 찬양하고 간증도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색다른 연합 신도회 예배가 즐거우셨는지 이후 한 번 더 함께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신앙 안에서 나이는 무색했고 하나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신도회와의 교류를 통해 서로 더 친밀한 교재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어 가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복음 메세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삼상5:1-12)

    [복음 메세지] 살아계시는 하나님(삼상5:1-12)

    [말씀 제목] 살아계시는 하나님 (삼상 5:1-1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8월 5일(토) 안식일 예배

    야구 선수들이 타자 역할을 할 때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배트로 공을 맞출 때 ‘손이 울리는 현상’이다. 타자가 때 야구 방망이를 꽉 움켜 잡고 휘둘러 맞추어야 하는데 좀 느슨하게 잡은 채 공을 맞추게 되면 손목이 쩌릿하고 울리게 된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심한 경우는 한 시즌 내내 출전을 못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른다. 그래서 코치들은 타 자에게 “배트를 아주 꽉 잡든지 아니면 맞는 순간 배트를 놓아 버려라!”라고 주문하기도 한다. 꽉 잡으려면 잡고 놓으려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확실히 붙들고 따라야지 어정쩡하게 오히려 좋지 않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성도는 이 세상에 공의가 시행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의인이 잘되고 악인이 망해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때로는 의인이 망하고 악인이 흥하는 것 같은 상황을 만난다. 그러면 우리는 분노하고 절망하게 된다. 또 그런 감정이 깊어지면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심에 빠지고 그런 상태가 오래되면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고민의 상황에 봉착 할 때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신앙인다운 것일까?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의 애가에서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는 현장을 목격하고 절망했던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애 3:26)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바벨론에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져 내린 폐허 앞에서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바라라고 한다. 또 잠잠히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 의 살아계심을 의심하는 초보 신앙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의 자리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상황의 좋고 나쁨에 흔들리지 않고 평강의 마음을 지키며 인내할 수 있을까? 오늘은 블레셋의 진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에 나타난 재앙의 사건들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궤가 적국에 넘어갔다. 블레셋은 빼앗은 언약궤를 아스돗이라는 곳에 있는 다곤 신전 안에 놓아둔다. 고대 시대에 두 나라가 전쟁할 경우 그것은 곧 한 나라의 신이 다른 나라의 신에게 패배한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블레셋이 이기고 이스라엘이 졌으니까 다곤 신이 여호와를 이긴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블레셋이 언약궤를 다곤 신전 안에 두었다는 것은 다소 의도적이다. 곧 다곤 신 앞에 이스라엘의 신을 무릎 꿇게하는 굴욕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약궤를 신전에 둔 이후 이상한 사건들이 블레셋 땅 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언약궤를 다곤 신전에 넣어 둔 다음 날 살펴보니까 신전의 우상이 언약궤 앞에 절하듯이 거꾸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다곤 신 우상을 일으켜 세웠다. 또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아침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언약궤 앞에 다곤 신이 넘어져 있는데 이번에는 아예 머리와 손목까지 끊어져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 게다가 이상한 일은 다곤 신전에서만 벌어지고 있지 않았다. 언약궤가 있는 아스돗이란 성읍에 갑자기 독종이 발생하더니 많은 사람이 죽고 아예 도시가 멸망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성읍 사람들은 언약궤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궤를 가드라는 곳으로 옮겨간다. 그런데 가드에서도 역시 독종이 발생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다시 언약궤를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옮기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에그론 사람들이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언약궤가 옮겨지는 곳마다 재앙이 임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니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는 블레셋에 임한 재앙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하나님은 왜 언약궤가 빼앗기기 전 이런 기적을 통해 블레셋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빼앗긴 후에야 재앙의 기적을 나타내셨는가 하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블레셋의 이방 성읍에서 재앙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본문을 통해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것이다.

    • 첫째, 우연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라.

    (삼상 5:3-4) 『[3] 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 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4]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남았더라』

    다곤 신전 안에 다곤의 머리와 손목이 끊어져 나뒹군 일, 그리고 아스돗, 가드의 여러 성읍들로 옮겼더니 옮겨진 성읍마다 독종의 재앙이 임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일,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인가? 이에 대해서 블레셋 사람들은 이렇게 의논했다.

    (삼상 6:9) 『보아서 궤가 그 본 지경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 손이 아니요 우연히 만난 것인 줄 알리라』

    언약궤를 실은 수레의 소가 만약 벧세메스로 향하면 궤가 내린 재앙이지만 만약 다른 방향으로 가면 우연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 블레셋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의 태도는 전형적인 불신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곤 신상이 두 번이나 넘어지는 경험을 해도 독종으로 여러 도시에 반복해서 재앙이 임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애써 부인하고 싶었다. 이처럼 세상의 불신자들은 자신에게 임한 곤란한 일들이 우연이라고 믿고자 한다.

    신앙인과 불신자의 두 세계관이 있다. 전자는 창조론이고 후 자는 진화론이다. 창조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세상의 모든 것이 가치가 있고 목적이 있다 는 것이다. 또 그 만물에 하나님이 여전히 섭리하신다는 것이다. 반면 진화론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그저 우연히 생겨났기에 자연 만물에는 특별히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존재의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을 믿는 신앙이라면 진실을 분별해야 한다.

    가끔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연을 믿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안된다. 내가 당한 행복과 불행에 대해서 우연으로 여기면 안된다. 만약 우연으로 여기면 그 사람은 자신이 만난 상황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에도 감사하지 못하게 된다. 모든 것을 우연으로 여기는데 감사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자기 잘못을 돌아보고 고치려는 노력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오해하지 말라. 길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때 항상 죄라는 원인으로 연결 지으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내가 만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삼하 6: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의 잘못함을 인하여 진노하사 저를 그곳에서 치시니 저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다윗을 보라. 그는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민감했다. 자신의 취임식 때 언약궤를 모셔와 명실상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왕으로 추대 받고자 했다. 그런데 웃사란 신하 가 율법에 어긋나게 몰고 오더니 하나님이 그를 죽이셨다. 취임식에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불미스러운가? 그러나 다윗은 무리하게 언약궤 모셔 오는 것을 강행하지 않았다.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놓아두게 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때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이러한 낮아지는 태도가 바로 믿음이요 겸손이다.

    바울 사도도 상황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했다.

    (행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 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하나님의 음성이 뚜렷하게 임하기도 하지만 민감하게 분별해야 할 만큼 모호한 경우도 있다. 마게도냐 선교 전의 상황이 그랬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환상의 의미를 분별했고 판단대로 행동했다. 모호한 하나님의 음성조차 바울 사도도 민감하게 분별했다. 그 분별이 있었기 때문에 빌립보 데살로니가 등 유럽 교회를 세우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좋은 신앙인들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메시지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오늘날 성도도 그러해야 한다. 하나님이 채찍을 대실 때 나의 허물을 돌아보고 그분의 뜻을 찾아야 한다. 또 하나님이 복으로 채워주실 때 그분의 손길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한다. 신앙인에게 우연은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알고 경외할 줄 아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잠 14:16)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 둘째, 인간은 망해도 하나님은 망하시지 않는다.

    (삼상 5:6-7) 『[6]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 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경을 쳐서 망하게 하니 [7] 아스돗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와 함께 있게 못할지라 그 손이 우리와 우리 신 다곤을 친다 하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했지만 하나님은 블레셋의 땅에서 당신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 언약궤가 있는 블레셋 성읍들에 여러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재앙들이 나라가 망할 정도로 심 각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발치에서 이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이 뉴스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시려는 음성은 분명했다. “이스라엘아! 내가 무능해서 너희가 전쟁에서 패하고 궤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범죄 때문에 내가 너희를 떠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살아 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패하지도 망하지도 않는다. 잠시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것 뿐이다.

    (시 78:58-60) 『[58]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59]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60] 실로의 성막 곧 인 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불신자들은 성도들이 환난과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의심한다. 성도가 실패하면 하나님이 실패한 것처럼 여긴다. 성도가 망하면 하나님이 망한 것처럼 여긴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은 죽거나 망하거나 실패할지라도 하나님은 죽거나 망하거나 실패하지 않으신다. 다만 하나님이 연단의 목적으로 경외함을 회복케 하시려고 성도들에게 시련을 주시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절망을 과장하거나 확대 해석하면 안된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스다롯 우상 숭배자 팔백 오십명과 대결해서 승리했다. 그런데 백성들은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이세벨을 살기 등등하게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니 엘리야는 얼마나 놀라고 절망했을까? 결국 이세벨을 피해서 도망간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나만 남았는데 내가 살아서 뭐하냐고. 거짓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왕상 19: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 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성도가 분별이 없어서 불신에 빠지면 함부로 절망과 멸망을 선언한다. 그런 마음에는 염려와 불안만 있고 사명과 소망도 사라지게 된다. 엘리야처럼 말이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는 오래지 않아 이스라엘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처럼 하나님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환난의 처지에 있는 우리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부디 영적인 눈을 뜨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시 37:17)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 셋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라.

    (삼상 5:11-12) 『[11] 이에 보내어 블레셋 모든 방백을 모으고 가로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 하니 이는 온 성이 사망의 환난을 당함이라 거기서 하나님의 손이 엄중하시므로 [12]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종으로 치심을 받아 성읍의 부르짖음 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블레셋의 땅에 임한 재앙들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던지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기록했다. 마치 아이티에 일어났던 지진처럼,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처럼, 수마트라 섬에 임했던 해일처럼, 그 피해는 크고 치명적이었다. 재앙을 면하고자 언약궤를 아스돗에서 ‘가드’로 다시 가드에서 ‘에그론’으로 보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언약궤가 ‘에그론’에 이르렀을 때 일종의 님비 현상이 발생했다.

    님비현상(not in my back yard)이란 핵발전소 같은 위험시설, 쓰레기장 화장터 같은 혐오시설이 자기 거주지에 들어오게 될 때 지역 주민들이 거부하는 사회적 현상을 일컫는다.

    언약궤가 가는 곳마다 파괴와 질병과 사망의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니 에그론 사람이 바보가 아닌 그 궤를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악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바로 재앙과 저주와 심판을 통해서이다. 반면 선민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은 긍휼과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일을 통해서이다.

    오늘날 나는 어떤 신분의 사람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죽으신 분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나는 죽어도 하나님은 죽지 않으신다. 인간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도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실패하지 않는다. 망하지 않는다. 언약궤가 다시 돌아왔듯이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신다. 이것을 믿고 소망을 가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시 37:9-10)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1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에 다윗의 시대에 바울의 시대에 성경의 역사 속에서 살아계셨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살아계신다. 그 동일한 하나님이 오늘 내 삶에도 동행하신다. 내가 만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발견하시고 분별하시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간증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길 바란다.

  • [교회 행사] 하남교회와 청주교회의 교류회

    어느덧 1년의 절반인 6월이 지나가고 그 마지막을 장식할 행사가 청주교회에서 열렸습니다.

    하남교회 성도분들이 청주교회를 방문하여 함께 교제를 나누며 주 안에서 하나 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2023.06.24.-25) 서로 다른 지역에 자리하고 있지만 같은 참예수교회 성도이자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교류 시간에는 각 교회에 대해 소개 하고 준비한 찬양을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각 교회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며 서로의 교회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었고 그동안 북부지역의 교회의 사정이나 현황에 대해 알 기회가 적었는데 다른 지역 교회에 대해 알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각 교회가 준비한 찬양을 나누는 시간, 비록 한 곡이지만 함께 부르니 더욱 기쁘고 은혜롭게 느껴졌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지을 때의 기쁨이 이랬을까요? 아동부가 그 작은 입술과 몸짓으로 찬양할 때, 성도들이 함께 입을 모으고 마음을 합하여 찬송할 때 하나님도 이를 지켜보시고 분명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보니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진을 찍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시간 또한 감사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진행하며 느낀 것은 더욱 많은 한국의 참예수교회가 서로 교류를 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몸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욱 중요하듯 서로 마음을 가까이하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 모두 참예수교회 성도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참예수교회 안에서 더욱 많은 교류와 활동이 활발해지고 교제하는 장이 많이 열리길 소망하며, 더욱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 마음이 실천으로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소개] 하나님 말씀 아래 하나 된 가족_장치성 형제를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청주교회에서 22년 5월 1일 세례를 받은 장치성형제 입니다.

    저는 올해 마흔살로 “유년기부터 학창시절 – 군대 – 직장생활 – 결혼 – 출산 – 양육까지” 살아온 과정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는 게 가장 큰 일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저를 포함한 저희 부모님도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 어릴 적 학창 시절에는 종교에 대해 무관심으로 살아왔고, 성인이 된 후 시사나 다큐프로그램 등을 즐겨 시청하며 보다 보니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부분을 많이 알게 되면서 종교 자체에 대한 불신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에 제가 종교를 갖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를 가장 불신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들 엄마(김연숙 자매)와 아이들(장아영, 장아윤)이 먼저 세례를 받고 참예수교회를 다니며, 즐겁고 행복해 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으며, 가끔씩 아주 조심스럽게 저에게 “참예수교회”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는데 이때부터 약간의 호기심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인터넷으로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단이다!! 아니다!!” 라는 말들이 많이 있어 혼란스러웠으나, 해당 문구를 보고 판단은 내가 하면 되는구나! 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단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이단이다, 아니다를 논하는 사람 또한 자기가 속한 집단을 정당화 하고 남을 배척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자기의 믿음이 중요하다]

     

    또한, 여호수아 신도회 형제님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기존에 저의 마음속에 있던 불신들이 조금씩 불식되었고, 울타리 밖에서 지켜보는게 아닌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중에 세례에 대해 권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믿음도 없고, 의심이 많은 상태에서 세례를 받는게 맞나?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 형제님들한테 저의 이런 생각과 상황을 설명드렸는데, 마음만 있다면 세례를 먼저 받고 성경 공부도 하면서 믿음을 키워 나가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는 조언들이 세례를 받기로 결심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희 가정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 많은 관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 부분 또한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고, 믿음을 견고히 하라는 가르침으로 생각하고, 기도를 더욱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대해서 누구에게 소개해 본적은 없지만, 만약 소개할 기회가 생긴다면 하나님의 말씀 아래 하나 된 교회 / 하나 된 가족 이라고 소개를 하고 싶습니다.

    매스컴에서 볼 수 있는 교회와는 다른, 미움이 없고 서로에게… 하나님에게.. 진심인 교회!!

     

    글작성 : 장치성 형제

  • [성도 간증] 하나님 주신 최고의 선물_이솔지 자매, 변지율 형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8)

     

    성령은 참예수교회의 10대 신앙에도 ‘천국기업을 얻는 보증’이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는 성령을 받기 위해 간구해야 하고 성령 충만을 위해 항상 말씀과 기도로 채우고 성령을 힘입어야 합니다.

     

    이번 2023년도에 그런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이자 선물인 성령을 받은 두 친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성령’을 받은 두 친구의 간증을 통해 모든 성도님들과 은혜를 나누려합니다.

    이솔지 자매(18세)

    Q1. 성령을 받은 소감은?

    항상 상상으로만 성령 받는 것을 생각했는데 성령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뭔가 얼떨떨하면서 믿기지 않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Q2.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했나요? (기도과정 또는 기도제목)

    학생부 영은회에서 받았는데, 당시 기도회가 한번 남아있던 상황이라 더욱 간절하게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제가 최고의 선물을 받고 갈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Q3.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

    성령을 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성령을 의지해서 살아가야겠고, 더욱 기도에 힘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변지율 형제(17세)

    Q1. 성령을 받은 소감은?

    ‘너무 기쁘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쁩니다. 성령을 받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기도를 하면 할수록 제가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 실감나고 믿겨졌습니다.

     

    Q2. 성령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했나요? (기도과정 또는 기도제목)

    학생부 영은회에서 아침에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간절히 기도하고 제가 낼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큰 소리로 기도했고 다른 생각하지 않으려고 오직 성령을 받을 생각만 가지고 눈을 뜨지 않으려 노력하며 기도했습니다.

     

    Q3. 앞으로의 다짐이 있다면?

    성령을 받았으니까 앞으로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매일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실천해서 성령을 힘입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하지 않고 주시기만 바라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음으로 끝이 아니라 아직 남은 구원의 여정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런 여정을 걸어갈 때 힘을 주고 도움을 줍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면 포기하지 말고 더욱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때에 맞게 주시기 위해 예비하고 계십니다.

    성령을 받았다면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에 게으르지 않고 말씀을 읽는 영성관리에 힘을 쓰고, 성령을 힘입어 세상을 살아갈 때 내 기준이 아닌 성령이 기준이 되는,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교회 방문기] 제주집회소 성도님들의 충청지역 교회 신앙여행

    [교회 방문기] 제주집회소 성도님들의 충청지역 교회 신앙여행

    할렐루야~

    청주교회와 연합교회인 제주집회소 성도님들께서 (이에스더. 이송애. 이해주) 구도자이신 박영란님과 함께 신앙여행으로 청주를 비롯한 충청권 참예수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청주교회에서 3박 4일 머무시면서 천안교회도 방문하시고 담임 목자님과 청주교회 성도들과 함께 인근의 아름다운 곳으로 경치도 구경하고 일정의 마지막 날에는 대전교회& 총회 헌당식까지 알찬 시간을 보냈습니다.

    실시간 영상 예배로만 만났던 청주교회 성도들과 제주집회소 성도들이 서로 만나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함께 동행하신 구도자 박영란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시길 늘 생각하면 기도하겠습니다.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복음메세지] 십자가 주변의 인물(6)-예수와 동행한 여인들(눅8:1-3, 마27:55-56, 막15:40-41)

    [말씀 제목] 십자가 주변의 인물(6)-예수와 동행한 여인들(눅8:1-3, 마27:55-56, 막15:40-41)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4월8일

    우리는 구약 성경 속에 등장하는 믿음의 인물들 가운데 가끔 여인들의 이름을 발견하곤 한다.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 사사 시대를 이끌었던 여자 사사 드보라, 서원 기도를 통해 사무엘을 낳은 여인 한나, 시어머니를 위해 희생한 모압 여인 룻, 민족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목숨을 걸었던 황후 에스더 등 믿음의 여인들이 있다. 그리고 평범하지만 신앙인들에게 잔잔한 교훈을 전달하는 소박한 믿음의 여인들도 있다. 엘리야 선지자를 접대한 사르밧 과부, 엘리사 선지자를 위해 섬세히 배려한 수넴 여인,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 병이 낫게 만든 한 이름 없는 소녀 등 이렇게 성경에서는 믿음을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여인들이 발견된다.

    십자가 사건이 있었던 그 때 그 현장에도 여인들이 있었다. 오늘은 십자가 현장의 인물 가운데 주님을 따르고 섬겼고 동행했던 여인들의 족적을 살펴보고 그녀들의 신앙이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하는 바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사시는 기간 동안 그 분 곁에서 섬기는 여인들이 있었다. 누가는 당시 사회적 약자이지만 믿음의 주역인 여인들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그래서 마태나 마가와는 달리 여인들의 이름을 나열할 정도로 그 여인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다.

    (눅 8:1-3)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3)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를 섬기더라』

    예수님의 곁에는 열 두 제자 뿐만 아니라 섬기는 여인들도 있었다. 그 여인들 중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여인은 바로 일곱 귀신이 들렸다 나간 자 막달라 마리아였다. 그리고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라는 여인도 있다. 이외에도 다른 여자들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른 여자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막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우리는 마가복음 16장에서 또 다른 여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야고보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살로메라는 여인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주변에는 상당히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고 있었다. 섬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그러면 이 여인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신앙의 모범을 교훈하고 있는가?

    첫째,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모범.  

    (막 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누가복음 8장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 16장에도 막달라 마리아가 첫 이름으로 등장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신 사람이었다. 그녀는 본래 일곱 귀신이 들렸었고, 예수님이 그녀를 치료해 주셨다.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어서 그녀는 주를 섬겼고 그 섬김은 주님이 죽으신 이후에도 지속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 외에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여인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 일행을 섬기기 시작한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바로 이 여인들의 봉사와 섬김의 이유는 주님께 은혜를 입었고, 그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고, 감사했고 봉사와 섬김의 열매로 나타냈던 것이다. 이것은 주님이 관심을 두시는 열매이기도 하다.

    (눅 17:17-18)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언젠가 예수님이 열 명의 문둥병자를 치유해 주었을 때 그 중 한 사마리아 사람만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다고 말했다. 또한, 귀신을 쫓아내어준 사람은 여럿 있었다.이렇게 여러 사람이 은혜를 입었지만 지속적으로 주님 곁에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실천한 인물이 막달라 마리아였던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감사하는 일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혜 입으면 주님께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교회 중에 손님 접대로 섬김의 믿음을 실천하는 장로님 내외 분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남편인 장로님은 젊었을 때 아내가 대만 손님을 지극히 섬기는 모습을 못 마땅히 여겼다. 또 회당 건축할 때 거금의 헌금을 한 것을 알고 더욱 못마땅해 했다. 그런데 장로님 부부가 대만을 방문해서 귀빈 대접을 받고는 그들의 섬김에 매우 감동했다. 그 섬김의 모습에 감동해서 장로님도 사모님처럼 손님 접대에 섬김을 다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만에서는 한국에 가면 모 장로님을 꼭 찾으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다.

    섬기는 일에는 돈, 체력, 시간이 소모된다. 모든 수고와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감사와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

    오늘날 성도님들은 예수님이 내게 주신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지?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이 어떻게 나타나고 계신지?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수행하는 여러 봉사의 모습을 통해서도 나타낼 수 있다. 형태는 어찌되었건 항상 주님께 구원에 대한 감사의 열매를 나타내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자.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둘째, 주님의 십자가에 동행하는 모범.

    (요 19: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님의 곁에서 가장 가까운 자로 자처했던 12 제자들은 정작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모두 그분을 떠나갔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울며 골고다의 현장까지 동행한 여인들이 있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백성들의 주목을 받는 순간에도 십자가에서 가장 비참한 일을 당하는 순간에도 이 여인들은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성경은 그 상황에서 여인들이 나타낸 슬픔의 표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눅 23:27-28)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수난의 길을 좇아간 자들은 남자들이 아닌 여자들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자 이동하신 길에도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에도 그 곁을 떠나지 않고 동행한 여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신앙의 모범을 전달하고 있는가? 일반적인 사람들은 밝고 기쁘고 행복한 일에는 동행하길 원한다. 그러나 어둡고 슬프고 불행한 일에는 동행하길 원하지 않는다. 마음이 슬퍼지고 어둡고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신앙의 길은 바로 십자가와 동행하는 길이다. 그래서 성도가 슬픈 자들의 슬픔에 동참하고 아픈 자들의 아픔에 동참할 줄 알기를 원하신다. 이 여인들이 십자가와 동행한 모습은 바로 그런 믿음의 모범을 남기고 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부디 주님의 기쁨과 희락 뿐만 아니라 주님의 슬픔과 아픔에도  동참할 줄 아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란다.

    (롬 12:15-16) 『[15]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셋째, 복음 전파 사역에 참여하는 모범. 

    (요 20:18-19) 『[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셔서 최초로 모습을 나타낸 사람이 누구였는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이었다. 주님이 주신 그 은혜에 너무 감사해서 항상 주님을 따라다니며 섬겼던 여인, 그랬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은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가장 먼저 나타내셨고, 마리아는 그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파했다.

    누군가 내게 베풀어준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그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어서 눈앞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기리고 감사한다면 더 아름다운 일이다. 다윗 왕은 죽은 친구 요나단에게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그 아들 므비보셋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가?

    하나님은 이런 성품의 사람을 사랑하신다. 또 성도가 모두 그런 신앙을 나타내기를 기대하신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십자가 사건은 이미 이천년 전 사건이고 내가 세례 받은 사건도 이미 수년 전 사건이지만 감사의 마음을 잃지 않고 항상 그 은혜의 감동 속에서 사는 것 이 또한,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구원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감사에 합당한 믿음을 나타내야 하는 것이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후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 더불어 성령을 구하고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복음 전파자의 삶을 살게 된다.

    (행 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사도행전에는 이름은 없고 그저 여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던 그 여자들 안에 주님을 섬기던 여인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여인들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 강림을 준비하며 복음 전파의 사명에도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십자가의 현장에 있었던 여인들에 대한 기록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다. 구원에 은혜에 대해 섬김의 삶으로 화답할 줄 아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길 바란다. 고통과 슬픔과 아픔의 처지에 있는 성도들과 동행해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은사와 형편대로 복음 전파의 사역에 참여하고 협력하고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란다. 십자가 현장까지 동행했던 그 여인들의 믿음의 길을 좇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BGpIMX0VsMs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 [교회 행사] 진로 특강

    [교회 행사] 진로 특강

    할렐루야~

    청주 교회 학생부에서 올해 새롭게 시작한 ‘진로 특강’에 대해 소개합니다.

    ‘진로 특강’은 다양한 전공과 직업을 가진 성도들의 특강을 통해 학생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람직한 직업관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의 진로 선택을 돕기 위해 마련된 프로그램입니다. 단순히 다양한 직업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직업에 대해 감사한 점과 어려운 점들을 나누며 직업이나 전공을 선택할 때 신앙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점들에 대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진로 특강을 해주시는 성도님들이 대부분 학부모님들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부모님께서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학생부를 대상으로 시작된 특강이었지만 첫 시간부터 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특강을 들으며 자녀의 진로를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2월에는 ‘초등학교 교사 진로 특강’, 3월에는 ‘신학생 진로 특강’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특히 이번 3월 특강은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신학생’이라는 주제였기에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글을 통해 더 많은 성도님들과 이번 강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직업’에 대한 짧은 생각

    어떤 직업이든 준비하는 사람은 좋은 경력과 전문성을 갖추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직업을 고민하고 선택할 때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른 점이 있는데, 직업으로 인해 신앙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체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지든 정체성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업에서 정체성을 찾거나 본래의 정체성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배웠고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어떤 직업을 갖든 그런 모습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학생은 무슨 일을 할까?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성경을 읽고 성경에 대해 공부하는 것입니다. 물론 신학생이 아니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하지만, 다만 전문성을 더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기 중에는 배우는 데 치중하고, 학교처럼 주 5일제로 진행됩니다. 다만, 금요일은 오전까지 합니다. 평일 강의는 6교시까지 하며, 수요일 오후는 체육활동을 합니다. 휴가는 격주로, 설교 실습도 격주로 진행합니다, 실습지는 주로 김천, 안동, 평택, 분당과 같은 교회로 갑니다.

    그리고 하루 일과는 기도로 시작해서 수업 듣고 보통은 과제나 설교 준비, 개인 공부로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방학에는 실습을 하는데 짧게는 4주, 길게는 8주로 실습 교회에서 숙식하면서 설교, 강의, 성경공부 인도, 심방 등 목자님 가까이에서 목회자의 역할을 배웁니다.

     

    신학생의 어려운 점..

    다 어렵지만 현재까지 학기를 보내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면 성경에 대한 이해와 해석입니다. 신학 서적을 보는 것도, 설교를 준비하고 하는 것도, 과제를 해결하는 것도 다 어렵지만, 성경에는 난제도 많고 지금 저로서는 답이 보이지 않는 것도 많아 보입니다.

    처음에 저는 신학을 하면 다는 아니어도 성경이 훤히 보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들을수록 3년간 성경에 대한 모든 것을 공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사님이 모든 걸 알려주시지 않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목자님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목회하면서 계속 채워나가는 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게다가 신학생은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르치기 위해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교사와 비슷한 점이기도 한데 내가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학문적 측면에서의 어려운 점도 있지만 영적인 측면에서는 더 어렵습니다. 책으로든 강의로든 어려운 내용도 반복하면 나아지는 법인데 영적인 부분은 그런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라는 것은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줄 뿐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보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고 치유하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영혼의 의사’라고 비유하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설교하고 성경공부 인도하고 이런저런 회의에 참석하고 행정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이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차원의 일에 대한 부담이 큰 게 사실입니다.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훈련하는 직업, 그래서 갈수록 기도가 많이 필요한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신학생을 선택했나?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 받은 은혜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은 것도 성령을 받은 것도 그래서 믿음이 생긴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목자님이 권하신 것이지만 늦은 나이였고 신앙의 연수도 짧아 성경에 대해 아는 것도 부족해서 망설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은 것도, 환상을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걸 소명의식이라고 하는데 그런 게 없어서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받은 은혜가 적다고 생각했다면 그 자리에 부르셨을 때 답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받은 은혜가 많아서, 갚을 수 없는 은혜여서 그런 부담스러운 자리지만 순종하는 것이 은혜받은 자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했기에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습니다.

    신학을 시작한 후 후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건 나라는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여전히 잘 고쳐지지 않는 옛사람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것조차 아시는 하나님이심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감사한 것

    신학생이 되어 성경에 대해 더 깊히 배운다는 생각에 강의시간이 정말 좋았습니다. 아무리 목회자가 되기 위해 배우는 거지만 먼저 내가 성경에 대해, 하나님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만 아니라 신학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체험들이 제 신앙을 더 성장시켰습니다.

    이런 신학의 과정이 내 신앙을 더욱 잘 지켜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만약 신학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습관적인 신앙의 상태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하는 일에 치어서 더 식어진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감사합니다.

     

    또 신학으로 인해 감사한 것은 가족들의 신앙입니다. 처음에는 신학은 나 혼자 하는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가장의 역할을 잘 못하니까 더 훈련시키시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정에서 저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기도하면서 가정의 신앙도 더 좋아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저의 아버지도 신학생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전도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신학생이 부모도 전도를 안해서 되겠느냐는 제 안의 목소리로 인해 아버지께 참예수교회의 진리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한 전화로 초청을 했는데 너무도 쉽게 답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 모든 일들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버지는 너무나 순탄하게 작년(2022년)에 세례까지 받으셨습니다. 저로서는 손 안대고 코 푼 격이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넌 전화만 해라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 라고 하신 것 같았습니다.

     

    또 감사한 것은 청주교회 성도들의 기도와 사랑과 관심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신학생이라는 이유로 많은 기도와 분에 넘치는 사랑과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청주에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신학을 지원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청주에서의 신앙생활은 내게 훌륭한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런 좋은 교회에서 앞으로 신학을 지원하는 분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신앙의 향기] 말씀 앞에서_에셀트리

    [신앙의 향기] 말씀 앞에서_에셀트리

    에셀트리는 

    청주교회 학생부 자매들로 구성된 기악팀입니다. 

    틈틈히 모여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에셀트리의 아름다운 연주를 함께 들어보실까요?

     

    피아노 – 이솔지/ 플룻 – 변려원/ 바이올린 – 신민정/ 첼로 – 이예지

    캘리그라피 -박은우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