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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향기] 대방교회 신앙 여행_(안나회.마리아회.바울회)

     

     어르신들과 함께 한 신앙 여행은 오늘날 세대에게 깊은 여운을 남겨줍니다.

    그 삶으로 주님과 동행해 오신 숱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르신들의 만남에는 반가운 얼굴과 맞잡은 두 손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뜨거운 격려와 깊은 사랑이 말없이도 전해집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없음을 우리의 삶으로 고백합니다.

    삶에 고단함 속에서도 영원히 변치 않을 내 주와의 언약을 붙들었습니다.

    그제야 십자가 밑에 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전날의 한 숨은 비로소 노래가 되었습니다.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 [기관소개] 대방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학생부 단체사진]

     

    할렐루야, 대방교회 학생부를 소개합니다!

    대방교회 학생부는 중·고등학생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배우고 신앙 안에서 성장하는 공동체입니다.

    현재 학생부는 총 22명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말씀반(총 8명, 꾸준히 출석 6명)과 기도반(총 14명, 꾸준히 출석 8~10명)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또한 학생부장 1명과 교사 5명(말씀반3명, 기도반2명)이 함께 섬기며 학생들이 믿음 안에서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학생부에는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진행되는 특별한 행사인 ‘성경캠프’가 있습니다.

     

    성경캠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

    성경캠프는 사실 처음부터 계획된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작년 성경공부가 끝난 어느 일요일, 학생들이 교회에 남아 보드게임을 하던 중 릴레이 그림 퀴즈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파도를 가른 성경 인물”의 답으로 “뭐였지, 모세였나?”라고 적었고, 그 사진이 학생부 단체방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선생님들은 “성경공부 다시 해야겠다^^”, “성경캠프 추진할게~”라며 농담처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예상과 달리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습니다.

    학생들의 기대와 교사들의 열정이 모여 계획에 없던 성경캠프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학생부 성경캠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캠프의 시작점]

     

    성경캠프의 목적과 진행

    성경캠프는 학생들이 말씀을 더 깊이 배우고 하나님 안에서 서로 교제하며 하나 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집중 성경공부 형태로 진행할지, 수련회를 대신하는 행사로 준비할지 고민도 많았지만, 학생부 영은회 주제 말씀을 중심으로 사전 학습을 진행하고 1박 2일 동안 함께 생활하며 말씀과 교제를 나누는 방향으로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학생들이 세례식이라는 귀하고 은혜로운 시간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둘째 날 오전 일정을 세례식과 연계하여 계획하였고, 지금까지 진행된 세 번의 성경캠프 모두 세례식이 있는 주에 진행되었습니다.

    성경캠프에서는 말씀 강의와 찬양, 기도회, 조별 활동, 발표와 나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모든 일정은 학생부 교사들이 직접 준비하고 인도하고 있습니다.

     

    [학생부 성경캠프 속 다양한 활동]

     

    성경캠프의 다양한 활동 영상을 아래 링크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캠프 다양한 에피소드

     

    세례식에 참여하며

    학생들에게 세례식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입니다.

    믿음의 자녀로 거듭나는 성도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신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도 돌아보게 됩니다.

    학생들은 세례식을 통해 신앙의 결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배우게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 더욱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회차를 거듭하며 변화된 모습

    갑작스럽게 시작된 성경캠프였지만 이제는 학생부를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부 내에서 자급자족하는 행사로 시작했기 때문에 교사들의 많은 수고와 헌신이 있었음에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아쉬운 부분들도 있었지만, 매 회차 피드백을 통해 개선하고 교회의 관심과 응원이 더해지면서 더욱 풍성한 행사로 발전해 왔습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아졌고, 서로를 알아가고 말씀을 나누는 모습도 더욱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총회 학생부 영은회에 참석한 학생들 가운데는 성경캠프를 통해 미리 배운 말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학생부 성경캠프 일정표]

     

    학생부가 기대하는 성경캠프

    비록 안식일 일정 후 곧바로 시작되어 월요일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쉽지 않은 일정이지만, 학생들은 “1박 2일이 너무 짧다”고 말할 정도로 성경캠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시간만큼이나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교제하는 시간이 학생들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학생부 성경캠프를 통해 더 많은 학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믿음 안에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성도님들의 많은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학생부 성경캠프 단체사진 – 세례식 장소에서]

     

    [글. 참예수교회 대방 강유경 자매]

  • [교회행사] 대방교회 2026년 봄 영은전도집회

    [2026 대방교회 봄 영은전도집회 단체사진]

     

    할렐루야, 2026 대방교회 봄 영은전도집회를 소개합니다!

    대방교회에서는 지난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주제로 2026 봄 영은전도집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집회에는 대만 총회장이신 젠밍루이 목자님께서 강사로 섬겨주셨으며,

    최혜선 자매님께서 통역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집회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5월 14일 목요일

    • 첫째날 저녁예배: 신앙의 가치대로 살아가는 것 (빌 2:15-16)

     

    5월 15일 금요일

    • 둘째날 새벽예배: 믿음의 정의 (히 11:1)
    • 둘째날 저녁예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것 (시 40:8)

     

    5월 16일 토요일

    • 셋째날 새벽예배: 믿음의 시험 (벧전 1:6-7)
    • 셋째날 오전성례: 세족례, 성찬례
    • 셋째날 오후전도집회: 간증 – 윤정현 형제 / 예배 – 평안의 은혜 (욥 22:21)
    • 셋째날 저녁예배: 생명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 (시 16:8,11)

     

     이번 집회를 통해 성도님들은 말씀 가운데 큰 은혜를 받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때로는 어려움과 시험 가운데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배우게 되었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함께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번 집회에서는 매 예배 전마다 준비된 특송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 돌리는 은혜로운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성도님들이 정성으로 준비한 찬양은 집회의 분위기를 더욱 풍성하게 했으며,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예배에 나아가게 했습니다.

    [특송 – 교회교육, 드보라회&유니게회, 시온성가대, 아동부, 호렙산]

     

     또한 셋째 날 오후에는 윤정현 형제님의 간증이 함께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삶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함께 나누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간증 – 윤정현 형제]

     

    집회의 마지막 순서에서는

    젠밍루이 목자님과 사모님께서 깜짝으로 준비하신 찬양 “예수님의 사랑에”를 통해 큰 은혜를 전해주셨습니다. 목자님의 찬양과 사모님의 반주로 전해지는 아름다운 찬양 속에서 성도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감동과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모두가 하나 되는 따뜻한 교제의 시간이 되었으며, 3일간의 집회를 감사와 기쁨 가운데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목자님과 사모님의 깜짝 찬양 “예수님의 사랑에”]

     

    이번 봄 영은전도집회를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평안을 다시금 누리며,

    믿음 안에서 더욱 힘있게 나아갈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2026 대방교회 봄 영은전도집회 폐회식]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34편8절)

    [글.  참예수교회 대방 강유경 자매]

  • [성도간증] 일생일대의 기회, 세례를 통한 영혼의 구원 (대방교회 장명훈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지금까지 참예수교회 대방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신앙 안에서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훈육하셨고, 덕분에 교회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 일에 순종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아내는 대학교 4학년에 그룹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다른 학교 출신의 멤버였습니다. 단아한 외모와 차분한 성격에 첫 만남부터 호감이 생겼습니다. 우연히 보게 된 아내의 수첩에는 옛 격언과 철학자들의 문구가 손으로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아내의 진지한 삶의 모습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태신자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함

     어느 날 아내는 집 근처 교회에 한번 가보겠다고 했습니다. 평소 저를 모범적으로 느꼈던 아내는 안식일마다 교회를 가는 모습을 눈여겨봤던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내의 수첩이 기억나며 그런 삶의 진지한 태도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내가 다니는 참예수교회를 가보자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오희도 목자님께서 하나님과 성경말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고 함께 교회에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한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은 시간을 비롯해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 아내와의 결혼을 고민하던 저에게 아무것도 필요 없고 참예수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을 믿겠다는 약속만 하면 믿음 안에서의 결혼으로 승낙하겠다고 하셨고 그 말씀이 아내의 신앙을 다시 한번 붙들어 주었습니다. 곧 세례와 성령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남매 쌍둥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다시 태신자를 품으며 

     쌍둥이를 출산하면서 장인, 장모님이 우리동네로 이사를 오시게 되었습니다. 두 분께 쌍둥이 육아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속으로는 두 분의 전도도 생각하며 기도해 왔습니다. 저희 가정의 신앙생활을 지켜보시던 장모님은 계속된 권면에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셨습니다. 지금은 대방교회 한나회에서 너무나 큰 사랑을 나누며 믿음 생활 잘 이어오고 계십니다. 

     그러나 장인어른께서는 다르셨습니다. 함께 교회에 가자는 권면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쌍둥이 손주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저의 계획도 빗나갔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할아버지도 함께 교회 가요”라고 직접 얘기했지만, 따라나서지 않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병을 주신 하나님

     2024년 여름 어느 날 장인어른께서는 잦은 소화불량으로 병원에 가셨는데, 검진 결과 위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가족 모두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너무나 놀랐고, 하나님께서 병을 이겨내게 하시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장인어른께 함께 교회에 가시길 더 권면했습니다. 그렇지만 장인어른께서는 평소 건강했을 때 가지 않았는데, 병 나음을 받기 위해 교회에 나가는 것이 부담되셨던 것 같습니다.

     얼마 후 수술을 받으셨는데 안타깝게도 식도에도 암이 발견되어 위절개술을 하지 못하고 수술을 마쳐야 했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신앙을 통해 받을 구원보다는 세상의 의술을 통한 완치를 기대하셨기에 실망이 매우 크셨습니다.

     그리고 재수술을 위해서 항암치료를 받으시며 투병 생활을 이어 나가셨습니다. 1시간이 넘도록 어렵게 식사를 하셨습니다. 먹는 양이 줄어들며 몸무게는 20킬로나 빠지셨고, 근육이 줄어들어 누워 계시면 등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장인어른의 병세가 악화될수록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거의 매일 볼 수 있었습니다. 쌍둥이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안수를 받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가족 모두가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가족들과 아내의 간절한 기도

     어느 날 아내는 심각한 얼굴로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가 세례받지 못하고 돌아가신다면 신앙생활을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세례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구원의 역사를 이뤄주실 것이라는 강한 믿음과 함께 반대로 세례받지 않고 돌아가시면 자신의 신앙도 포기할 것이라는 벼랑 끝 마음도 함께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의 간절함이 커지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믿음도 함께 더 커져만 갔습니다. 장인어른께서는 댁에서 온라인(유튜브)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듣게 되셨고, 마음을 조금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그렇지만 가족들의 기도와 소망과는 다르게 교회에 가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수차례 지속된 항암치료의 결과는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몸과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며 항암치료까지도 중단하고 집에서 지내시던 어느 안식일 오후였습니다.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신 성도님을 위해 장로님과 임원분들과 성도님들이 심방을 오셨습니다. 요양병원 심방에 함께 참석하셨던 장모님은 안수기도를 받으시는 성도님의 모습을 보시며 “우리 남편도 안수기도 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갑자기 집에 요양 중인 남편을 위해서 심방과 안수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마음을 열게 하시는 하나님

     계획에는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교회 성도님들 흔쾌히 방문해 주셨습니다. 장모님은 교회 성도님들이 오신다는 얘기를 장인어른께 미리 하지 못하셨습니다. 환자로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만나지 않겠다고 하실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집에 오신 성도님들은 그런 이유로 모두 숨죽여 기다리셨고, 장모님도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저지른 심방인지라 마음이 긴장되며 떨렸다고 합니다. 

     투병 중이셨기에 외부 사람과의 접촉에 거부감도 다소 있으셨던 장인어른은 심방 오신 분 중에 의사 선생님(장로님)이 좋은 말씀과 안수기도도 해주시려고 오셨다는 장모님의 말에 거부감을 덜고 집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 안에 기다리고 계셨던 성도님들의 표정과 환대에 마음이 많이 달라지신 것 같았습니다. 장인어른은 함께 예배드리고 처음으로 안수기도를 받으셨습니다. 마음에 평안과 위로를 받으셨는지 표정이 많이 편안해지셨고 멀리까지 와주신 성도님들께 너무나 감사해하셨습니다. 성도님들께서 심방이 끝나고 가실 때는 문밖 복도까지 나와 인사를 하셨고, 눈에 살짝 눈물이 고여 있으셨다고 장모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생일대의 기회, 세례를 통한 영혼의 구원

     이후에 목자님께서 한 차례 더 심방을 오셨고, 하나님께서 마음을 많이 열어주셨습니다. 목자님께서는 말씀 중에 인생의 기회를 언급하시며, 이번이 세례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목자님의 말씀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은 장인어른은 세례받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셨습니다. 그런데 목자님께서 읽어보고 작성하라고 주신 세례 신청서에 ‘세례받고 나서는 안식일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겠다’라는 내용을 보고 많이 부담스러워하셨습니다.

     가족들은 가을 영은회를 앞두고 세례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간절해졌습니다. 봄 영은회 때도 세례받자고 말씀드렸지만 받아들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뒤늦게 알았던 사실은 물에 들어갈 때 상의를 벗게 되면 수술 부위가 보일 것과 마른 모습을 많은 성도님들에게 보이기가 부담스러워하셨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탈의하지 않고 세례복을 입고 물에 들어간다는 것과 세례에 대해 다시 설명해 드렸고, 가을에 세례받으시기를 다시 권면 드렸습니다. 사위인 제가 여러 차례 권면 드렸지만 완전히 마음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딸인 아내가 진심으로 세례받고 아빠가 하늘나라에 갔으면 좋겠다고 하니 눈물을 보이시며 알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의심 많고 믿음이 부족함을 깨달음 

     기도 중에 세례식 이전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장인어른을 교회로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자님께 세례 교육을 받아야겠다고 아내와 계획하고 교회 임원분들과 목자님께 말씀드려 일정을 맞췄습니다. 김용준 목자님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시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지만 위중하셨던 장인어른은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하셨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런 모습을 본 저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장인어른이 하나님 말씀에 거의 집중하지 못하신다고 판단했고, 중간에 목자님께 말씀을 짧게 해주시면 안 될지 말씀드리려다가 참았습니다. 

     교육이 끝나고 세례 신청서를 다시 받으셨을 때 저는 또 인간적인 생각으로 장인어른께서 지난번처럼 부담이 되니 신청서는 작성하지 않으신다고 하고, 이틀 뒤 있을 세례식도 참석 안 하신다고 할까 봐 많이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걱정과 염려는 기도가 부족했던 저만의 기우였습니다. 기도가 충분했던 아내는 망설임 없이 처가에 도착하자마자 세례 신청서를 장인어른께 드렸고, 거침없이 작성하시는 장인어른의 모습을 보고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의심했던 제가 많이 부끄러웠고 회개했습니다. 청력도 안 좋으셨던 장인어른은 세례 교육을 저보다도 집중해서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례식 당일까지 저의 걱정은 이어졌습니다. 특히 오전 시간에는 더욱 기력이 없어서 누워계실 적이 많았던 장인어른께서 일어나지 못해서 세례식 장소까지 못 간다고 하실까 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이런 염려와 달리 하나님께서는 장인어른께 세례식 아침에 좋은 컨디션과 기운을 내주셨습니다. 세례식 장소에 도착했을 때, 백여 명이 넘는 성도님들이 오신 것을 보고 장인어른은 많이 놀라시며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성도님들의 축하를 받으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할렐루야!

     

     

    산 소망이 있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세례받은 이후로 혼자 기도하시고, 찬양하시는 모습을 장모님이 보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여 가을 영은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하신 장인어른을 위하여 목자님과 장로님께서 집으로 오셔서 세족례와 성찬례를 행해 주셨습니다. 참예수교회의 3대 성례를 모두 받으시고 다시 입원하신 장인어른께서는 퇴원하지 못하셨고 작년 12월 30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병원에 계신 동안 성도님들의 방문에 진심으로 반가워하셨고, 특히 김용준 목자님께서 오셨을 때는 섬망 증세가 심하셨는데도 갑자기 정신을 차리기도 하셨습니다. 웃음을 되찾으시고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도 하실 정도로 호전되신 적도 있습니다. 새 신자에 대한 성도님들과 목자님의 관심과 사랑이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간증을 준비하며 지난 1년여 기간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인어른을 통하여 우리 가족들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천국에서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하신 것과, 투병 생활 중에 세례받아 구원 받는 과정을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아내와 저에게는 이제 새로운 신앙의 숙제와 목표가 생겼습니다. 장인어른의 세례부터 장례까지 하나님의 돌보심과 성도님들의 사랑을 지켜본 처남과 처남댁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어느덧 5월 봄 세례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작년(2025년) 10월에 장인어른께서 세례식 장소에서 많은 성도님의 축하를 받으신 후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나도 내년에는 이 세례식에 꼭 참석해서 세례받으시는 분들을 똑같이 축하해주고 싶네.”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세례 받는 분들께 특별히 장인어른의 몫까지 축복해 줘야 하므로 은혜가 더욱 충만할 듯합니다.

     

     

     아랫글은 저희 장인어른(故 박성남 성도)께서 암 투병 중이셨던 24년 12월 초 1차 항암치료 중에 직접 작성한 기도 글입니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사막의 골짜기에서 헤매고 있는 저를 햇볕 쏟아지는 초원으로 인도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병원에서 퇴원해 오던 날 우리 사위가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딸이 아빠 완쾌를 위해 날마다 기도했다고 말입니다. 

     아빠 빨리 죽기만 기다리는 줄 알았던 딸의 속마음이 그거였다니 속 좁은 자신이 미웠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위 딸 항상 건강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회생활 회사 생활 속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잘 참아내고 버텨주는 사위 딸에게 항상 용기 잃지 않도록 은혜 베풀어 주십시오. 

     특히 학수고대하던 손자·손녀를 정말로 잘생긴 놈들로 골라 보내주시고 잘 키워주셔서 무한 감사드립니다.

     이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리고 미국에 있는 며느리 아들 가정에도 항상 아버지 하나님의 은총 부어주셔서 혈혈단신 이역만리 타국에서 고생하는 아들 가족에 건강 지켜갈 수 있도록 보듬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제 처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오로지 아버지 하나님만 기도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제 처에게도 항상 용기 잃지 않도록 보살펴주셔서 주님 속에서 희망 잃지 않도록 북돋워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를 아는 제 주위 분들 모두에게도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한량없이 베풀어주시길 바라오며 저의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꺼이 응답해 주시리라 믿고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여기까지 장인어른의 기도문이었습니다. 

     아내와 한 가정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발걸음을 되돌아보며 간증을 마칩니다. 할렐루야 아멘

  • [교회행사] 천안수원 전도 교류

    할렐루야!

    2026년 4월 11일 토요일 저녁 19:00~21:00 까지

    천안교회에서 전도 교류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원교회 전도임원 및 신도회전도책임자와

    천안교회 임원 및 직분자가 모여 전도의 발전을 위한 정보를 교류 했습니다.

     

    천안에서 교회가 세워지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전도를 위한 노력들에 대해 전해들으며 앞으로 복음전파를 위해 어떻게 해나가야 할 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천국 복음이 널리 퍼져 하나님의 성업에 쓰임받는 천안수원 성도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 [교회 행사] 여름 세례식 – 새로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다

    [교회 행사] 여름 세례식 – 새로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다

     

    여름 세례식 – 새로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다

     

     뜨거운 여름의 한가운데, 우리 청주 교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바로 김우람(부), 조연교(모), 김재윤(첫째 아들), 김연지(둘째 딸) 가족이 같은 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한 날에 이루어진 특별한 예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예비하신 은혜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세례를 통해 죄사함을 받았음을 확증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성례입니다. 이날 한 가족이 함께 세례를 받는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우리 눈앞에 생생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기도하며 전도해 온 성도들의 눈시울과 가슴 속이 뜨거워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이 가족은 결코 하루아침에 교회의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인내 어린 기도와 정성, 지속적인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화려한 말이나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친 교회의 섬김, 성도들의 따뜻한 교제,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결국 그 은혜가 이 가족을 주님의 품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세례식 후에는 각 신도회별로 함께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세례를 받은 가족을 축복하며, 신앙의 길에 함께 서겠다는 격려와 환영의 인사가 교회 안에 넘쳐났습니다. 함께 준비한 음식과 따뜻한 나눔 속에서, 교회가 단지 예배만 드리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지해 주는 공동체임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여름 세례식은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초심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때 우리도 주님 앞에서 세례를 받고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했음을 기억하고 이제 막 그 길을 걷기 시작한 새 가족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의 신앙 여정에 든든한 동행자가 되기를 다짐합니다.

     

     이 가족의 세례는 교회 전체의 기쁨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의 소중한 사건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과 기도가 누군가의 영혼을 주님께로 이끌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 여름의 은혜로운 순간을 마음에 깊이 새겨봅니다.

     

    글작성: 박은우 형제 

  • [신앙의 향기] 5주차 특별식 요리사는~?

    [신앙의 향기] 5주차 특별식 요리사는~?

    지난해 2024년부터 참예수교회 청주교회에서는 5주차 마다 특별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어쩌면 땀방울 한스푼도 들어간) 맛있는 특별식을 만드는 요리사는 누구일까요??

    11월 5주차: 김밥 진짜 천국

     

     

    3월 5주차: 아빠손 떡볶이 튀김

     

    8월 5주차: 일본 여행? 메밀국수 오꼬노미야끼

     

    무슨 일에든 발 벗고 섬겨주시는 아빠들 여호수아 신도회의 솜씨랍니다~ 

    5주차 특별식만 손꼽아 기다리는 성도가 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소문난 맛집~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기에 참으로 향기로운 신앙의 향기가 아닐까요?

     

    글작성: 김예영 자매 

  •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성도 간증]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길_김진명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대학부 영은회를 무사히 마치게 해 주시고 간증을 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영은회를 준비하면서 받은 은혜와 영은회를 참가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영은회는 그냥 참석할 때와 달리 저에게 맡겨진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찬양 인도였습니다. 제가 편안하게 느끼는 청주 교회에서도 찬양 인도를 할 때는 떨리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대전 교회에서 그리고 청주 교회에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선 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떨리게 되었습니다. 찬양 인도를 준비하게 되면 저의 옆에서 함께 찬양할 싱어들과 반주자 그리고 ppt를 넘겨줄 사람을 구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하고 청주 교회 대학부들에게 이 역할을 맡아줄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청주 교회 대학부들은 싫다는 말 없이 알겠다는 답변으로 즉각 순종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고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순종하여 준 청주교회 대학부에게 고마웠습니다. 이제는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해야 하는 순서였습니다. 이번 영은회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를 주제로 성막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에 대한 말씀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제와 관련된 멘트와 찬양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를 하고 생각 중에 있었습니다. 말할 멘트와 찬양할 곡들이 바로바로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대학부 영은회에서만 하는 사전 교재를 하며 세한 목자님께서 성막에 대한 설교를 하신 것이 생각났습니다. 세한 목자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와 설교를 참고하며 사전교재를 하였고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묵상이 저의 멘트가 되었고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멘트와 찬양할 곡들을 정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멘트와 곡을 정했다면 이제는 연습할 차례였습니다. 연습을 할 때에 대학부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찬양 연습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동역자들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한 번 더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찬양 인도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의 또래 친구들이 제가 찬양한다는 것을 듣고 제에게 와서 격려의 말과 긴장을 풀어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들 중에 ‘그냥 하나님께 찬양하면 된다’ 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연약한 저는 하나님께 찬양드린다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에 더 집중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만을 찬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를 하고 찬양 인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동역자들의 기도와 저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제가 긴장하기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고 맡았을 때 부족한 저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고 아주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맡겨진 일에 즉각 순종하는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대학부 영은회는 저의 두 번째 대학부 영은회였습니다. 첫 번째 대학부 영은회는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만 이번 영은회는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영은회 주제는 거룩이었습니다. 개회 예배 때 거룩은 구별된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며 세상을 쫓는 것이 아닌 하나님 말씀을 쫓고 추구해야 거룩을 지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개회 예배를 들음 이번 영은회는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실 것이라 생각을 하며 열심히 들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목자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예배에 대한 인식의 변화였습니다. 그렇기에 저의 변화된 예배에 대한 인식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원래 저의 예배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 말씀을 듣는 시간이라고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참된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는 변화되고 새로워져서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시간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 않았다면 인간인 저희는 세상 사람들이 우상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대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화된 인식은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평소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만 의식하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경배하지 못했기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번제는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저의 일부만 드리는 것이 아닌 저의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 제사장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역할 중 하나는 정결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에서 구별하기보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며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제가 듣는 것과 보는 것을 구별하여 거룩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는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불러주심으로써 세상에서 구별하시고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까지 알려주셨지만 그것에 비해 저는 하나님께 너무 소홀하다고 느꼈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이 특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으로는 성막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는 집을 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듯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성막은 다들 아시는 것처럼 거룩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성막 가까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하늘나라의 백성인 저희도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천안에 가게 되면서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살고 싶었기에 천안에서 살게 된 것에 아쉬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막에 대해 배우고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천안 교회 생활관에서 사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관에서는 비슷한 나이에 형제들끼리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는 좋은 점이 있었고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아쉽다고 여겨졌던 것이 이렇게 변화하였습니다. 천안으로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한 예배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의를 듣고 조별 학습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조별 학습 시간에는 서로의 묵상을 나눕니다. 묵상을 나눌 때 고민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때 말씀으로 답변해 주고 고민을 해결하며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서로 교제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은회를 갔다 온 후 저녁 예배 설교 때 목자님께서는 영적 장애가 치유되기 위해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영은회를 통해 배우고 느낀고 다짐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변화와 성장의 의지를 품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사실 저는 영은회를 갔다 온 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잠을 자는 시간이 늘었고 게을러지게 된 것 같습니다. 이번 간증을 기회 삼아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다짐함으로써 더욱 성장하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며 간증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김진명 형제 

  • [복음 메세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복음 메세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말씀 제목]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눅 16:19-31)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5.08.16

    간혹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소식에 의하면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들이 있다. 소위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진술을 살펴보면 부활한 후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매우 강렬한 빛을 목격했다고 진술한다. 그 빛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고 한다. 둘째는 죽는 순간 길고 좁은 터널 같은 곳을 빠르게 통과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셋째 부활한 이후 사랑과 용서에 대한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며 상처와 과오에 대해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넷째,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가지게 된다고 한다. 더욱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적어지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다고 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라는 셈법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산수의 기본 전제이다. 그 전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이차방정식, 삼차방정식의 수학 문제를 다루는 것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신앙에도 우리가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전제가 있다. 그 신앙의 기본전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내세의 존재이다. 즉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내세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만약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앙생활 한다면 그것은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미래 언젠가는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오늘 이 자리에 성도님들은 내세에 대해서 어떤 이해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그 미래를 확신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마땅할까? 오늘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서 그 교훈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오늘 본문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비유가 전달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내세가 있어서 사람이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모두가 행복하고 또 그것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의 목소리는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이르지만 다른 사람은 지옥에 이르러 영원한 고통의 자리에 속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목소리를 변경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성도는 그 상황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것을 알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이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해서 전달하시는 교훈은 이런 것이다.

    첫째,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듯이 내세의 존재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세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천국의 존재도 믿고 지옥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분리할 수 없다. 어떤 불신자들은 내세를 믿지 않는다. 그 심리적인 이유는 천국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 지옥의 존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천국 갈 자신은 없다. 그렇다고 지옥에 갈 것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그래서 죽으면 끝이지 천국과 지옥 같은 것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세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듯이 천국과 지옥의 교리에 부인하는 나름의 논리로 반박한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이렇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지옥을 만들어서 사람들이 고통에 처하게 하십니까?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표현과 지옥의 교리를 대조시키면서 마치 기독교가 모순된 종교라고 반박하며 부정한다. 그러나 이런 반문은 사실 성경에 대해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생각이다.

    지옥은 사실 하나님이 마귀를 벌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지 인간을 벌주기 위해서 만든 곳이 아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마귀의 길을 따르면 결국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이 선택에 대해서는 결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다. 마귀의 길을 따르기로 선택한 인간 자신의 책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현실은 어떠한가? 세상에는 선한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악한 사람도 존재한다. 그래서 악인이 때로 선한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도 한다. 이 세상에 그런 악인이 존재하고 선인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상황이 존재기에 우리는 마음속으로 악인에 대해서 뭔가 응징의 조치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선인에 대해서도 무엇인가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마누엘 칸트’라는 철학자가 말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부조리와 불공평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을 발견할 때마다 이것을 생각하게 된다. 형통해야 할 사람이 잘못되고 잘못되어야 할 사람이 오히려 형통하는 이런 부조리 때문에라도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어야한다”라고 말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하나 때문에 수백 만 명의 죄없는 사람이 포로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다. 만약 내세가 없다면 이런 악인의 횡포에 대해서, 세상의 불의에 대해서 어떻게 그 억울함과 원통함을 해소할 수 있겠는가?이런 질문이다. 이 철학자의 눈에도 세상은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 찬 곳이며 그 부조리와 모순이 해소되려면 반드시 죽음 이후의 내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라는 철학자뿐만 아니라 성경의 시편 기자의 노래 속에도 이 세상의 현실에 대해 동일하게 서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 73:3-6)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5]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시편 기자는 철학자 ‘칸트’와 마찬가지로 악인이 형통한 현실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이처럼 의인이 악인에게 해를 입는 사례는 이미 창세기부터 있었다. 아담의 장남 가인이 차남 아벨을 살해했다. 그런데 아벨이 죽음 이후 그 억울함이 어떻게 해소되었다는 기록이 없다. 성경은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죽음 이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세례 요한은 입바른 소리 하다가 헤롯왕에게 참수형 당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에 어찌되었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억울하게 죽었는지 모른다. 만약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그 무수한 피해자들은 어떻게 억울함을 풀고 그에 대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이처럼 세상의 역사를 보아도, 성경의 역사를 보아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악인이 의인을 가해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여러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 만약 내세가 없다면, 만약 천국과 지옥이 없다면 이런 상황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지옥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면 성경을 믿어야 하고 성경을 믿으면 성경이 말하는 내세의 존재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천국을 소망할 수 있고 또 지옥의 형벌을 두려워할 수 있다. 또 다른 영혼들이 그 영원한 형벌에 처하지 않도록 전도할 수 있다. 성도가 천국보다 왜 세상에 몰두하며 살아가는가? 이 기초 신앙이 굳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가 왜 가족 친척 전도하는데 미온적인지 아시는가? 내세에 대한 이 신앙이 약하기 때문이다. 부디 죽음 이후에 이 두 세계가 있다는 성경의 선언을 믿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길 원한다.

    둘째, 이생과 내세의 삶은 크게 역전될 수 있다.

    (눅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이 비유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존재뿐만 아니라 부자와 나사로의 인생이 대조되고 있다. 부자는 이생에서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했고 나사로는 상처가 난 곳을 개가 와서 핥을 만큼 생활이 비참했다. 그런데 죽음 이후 이들의 처지가 완전히 역전된다. 부자는 음부의 고통을 당하고 있고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이생과 내세는 전혀 다른 처지로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해하지 않아야 할 점은 부자는 부요하기 때문에 불구덩이 떨어지고 반면 나사로는 가난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것이 아니다. 니고데모처럼 물질이 풍족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있고 오히려 빈궁해도 마음이 교만하고 탐욕스러운 사람도 있다.

    부자는 음부의 고통에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음부는 어떤 곳인가? 음부는 헬라어로 ‘하데스’라고 하는데 이는 죽은 자가 거하는 임시 거처를 가리킨다. 이 음부에 대기하고 있다가 마지막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음부는 지옥 이전의 임시 체류 장소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옥이란 뜻의 헬라어는 ‘게헨나’라고 하는데 이는 ‘힌놈의 골짜기’란 뜻이다. 음부와 지옥은 어휘상 달리 표현되지만 여기서는 같은 의미로 다루겠다. 지옥으로 번역된 게헨나는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실존 지명이다. 이 장소에 얽힌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과거 구약시대에 우상 숭배자들은 이곳에서 인신 제사를 드렸다. 그래서 어린 아이를 불태워 우상에게 바쳤던 것이다. 그 후 유대인들은 이 저주스러운 장소에 쓰레기를 가져다 버렸다. 그리고 쓰레기들을 태우기 위해 항상 불을 피워놓았다. 그래서 꺼지지 않고 계속 불이 타오르는 곳이 바로 게헨나이다. 주님은 바로 이 게헨나를 지옥으로 말씀하고 있다.

    (막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래서 한마디로 지옥이란 어떤 곳이냐 바로 꺼지지 않고 항상 불이 붙어 있는 영적 쓰레기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생에서 잠시 동안 아무리 떵떵거리게 산들 저생에서 영원히 고통의 게헨나에 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이생에서 아무리 고통을 받을지라도 저생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이 고통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이겠는가? 주목할 점은 그 처지가 한 번 정해지면 바뀔 수 없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이다.

    부디 여러분들은 잠시 잠깐의 이생의 행복이나 고통보다 영원히 지속되는 내세에서의 행복과 고통에 더 큰 관심을 두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기원한다.

    셋째, 기억되는 이름과 망각되는 이름이 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오늘 본문에 부요한 사람은 성도 이름도 기록되지 않고 다만 부자라고 기록했다. 반면에 거지는 ‘나사로’라고 분명히 그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나사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란 뜻이다. 그 이름의 뜻으로 미루어 보건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소망하며 살아간 신앙인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처럼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이름이 있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이름이 있다. 이 사실을 잘 설명하는 성경의 기록이 있다.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성도는 믿고 세례를 받은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하신다. 말하자면 한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이름이 주민등록부에 등재되듯이 사람은 세례를 받을 때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 이름이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이나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의 시민권을 얻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것이 있으면 육신의 혜택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천국의 시민권은 이 땅의 어떤 시민권과 비교할 수 없다. 비록 이 땅에서 부자와 같이 호화롭고 평안한 생활은 못해도,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인사는 못돼도, 가난하고 불편하게 살아도, 질병과 장애를 안고 힘겹게 살아가도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기억하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잠깐이면 사라질 이 땅에 이름을 새겨지는 것보다 하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신앙을 갖는 저와 성도님들이 다 되기를 바란다.

    넷째, 이생은 내세를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이다.

    (눅 16: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살려서 돌려보내면 제 아들들이 믿지 않을까요?” 하고 질문한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죽었다 살아난 자가 있어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으로 보건대 이 땅에서의 삶의 기간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를 준비하는 유일한 기회임을 알 수 있다. 죽으면 그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태평양 어느 섬나라에 오랫동안 내려오는 풍습이 있었다. 그 풍습은 표류한 이방인을 일 년 동안 왕으로 모시다가 그 후 무인도로 추방해서 죽게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 표류해서 왕위에 오른 일 년 동안 온갖 보물을 모아서 자기 집에 채우며 행복하게 생활했다. 그러나 일 년 후 보물은 내려놓고 무인도로 추방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곧 죽었다. 두 번째 사람이 그 섬에 표류했다. 그도 왕으로 추대되어서 일년 간 섬의 온갖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좋은 의복을 만들어 입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자 그도 무인도로 추방되어 죽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이 그 섬에 표류했다. 그는 도착 후 앞서 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왕이 되자 섬의 백성들에게 명령했다. “저 무인도에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고 밭을 갈고 집을 지어라.” 섬의 백성들은 왕의 명령대로 모두 행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날 무렵 무인도는 비옥한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 이 사람은 무인도에 추방되었지만 잘 가꾸어진 그 무인도에서 계속 행복하게 살았다.

    이처럼 이 땅에서의 삶은 화살과 같고 유수와 같다. 그 짧은 일생 동안 죽음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 부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의 기초를 확실히 세우자. 죽음 이후 우리에게 임할 그 때를 준비하자. 이 땅을 사는 동안 내가 거할 하늘 집을 위해서 열심히 땀 흘리며 준비할 뿐만 아니라 지옥을 향해 나아가는 다른 영혼을 구원하고 미래에 모두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

  • [복음메시지] 두려운 날에도 내가 주님을 신뢰하고

    [복음메시지] 두려운 날에도 내가 주님을 신뢰하고

    원제: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8월 29일, 이요셉 목자님)
    말씀: 시편 56:1~13

    ■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시작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 3:10)
    두려움은 최초로 아담이 범죄한 이후 생긴 감정입니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지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두려움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상실, 죽음, 고난, 고통, 가난,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 등 두려운 상황들이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욕심과 두려움을 잘 다스려야 하며, 그렇지 못할 때 신앙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다윗의 두려움과 신뢰
    극한의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을 이겨낸 다윗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됩니다. 시편 56편은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며,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받던 상황에서 드린 기도문입니다.
    “네가 나가서 대적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을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신 20:1)
    다윗은 바로 이 말씀처럼, 두려운 상황이 닥치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심을 확신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떤 확신으로 두려움을 이겨냈을까요? 어떤한 믿음으로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았던 것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 다윗이 붙잡은 세 가지 믿음


     1. 하나님의 주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
    하찮아 보이는 참새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사화복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이유 없이 땅에 떨어지게 하시지 않습니다.

     2. 하나님의 공의와 위로
    “그들이 악을 행한 까닭에 그들이 쫓겨나리이다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주께서 나의 유리함을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 56:7~8)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자를 억압하는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시며, 자녀의 눈물과 고난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깊이 알았습니다.

     

    3. 찬송의 힘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시 56:3-4)“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두려움을 이겨내었습니다. 찬송은 무너진 마음을 붙잡아 주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두려운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잘못된 선택으로 양심을 저버릴 때도 있지만, 반드시 회개함으로 다시 바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아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바른 믿음으로 두려움을 이겨내어,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편 5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