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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소개]인천교회 임미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인천교회 임미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인천교회 임미향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처음에 자매님은 한국어를 전혀 못하셨습니다.  당시 인천교회 담임 목자님이시고 두 분의 결혼에 큰 역할을 해주신 김세한 목자님의 통역으로 겨우 겨우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그런데 자매님은 작년까지 아동부장을 하셨고 지금도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찬양인도 뿐만 아니라 ppt를 제작해서 설교도 하십니다. 한국에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하셔서 한식 요리도 수준급이십니다. 인천교회 식사당번으로도 봉사하고 계십니다. 남편 되시는 김기웅 형제님은 교회 임원으로 봉사하시고 두 자녀인 김주은, 김효은 학생은 어린 나이임에도 예배 반주자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참예수교회 성도라는 귀한 인연을 하나님께서 맺어 주셨습니다. 그 인연으로  한국에서 인천교회 성도로, 교사로, 찬양 인도자로 그리고 한국 며느리, 아내, 엄마의 역할을 너무나 성실하고 아름답게 잘 하고 계심을 봅니다. 임미향 자매님은 인천교회 보배이십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든지 덥든지 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안식일은 물론이고 밤 예배조차 빠진 적이 없습니다. 가족을 떠나 홀로 타국에서의 삶이 순간 순간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매님의 간절한 기도 모습 속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매님의 마음을 쏟아 놓고 계심이 느껴집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모습은 인천교회 또래 학부모님들께 많은 귀감이 됩니다. 자매님이 인천교회 보배이신 또 하나의 이유는 대만이나 중국에서 참예수교회 성도가 방문하셨을 때 통역자가 되어 주십니다. 이런 자매님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실거라 믿습니다.  자매님 가정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매님께 기도제목을 여쭈었더니 첫째는 큰 아이 주은이가 성령받기를 소망한다고 합니다. 주은이가 성령의 감동은 있는데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도님들께서 기억하시고 꼭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위해서 기도하신다고 합니다. 같이 기도해 주세요. 자매님의 기도를 꼭 들어주길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마누엘♥  

  • [복음메시지] 병을 고치시는 주님 (요 4:46-54)

    [복음메시지] 병을 고치시는 주님 (요 4:46-54)

    [말씀제목] 병을 고치시는 주님 (요 4:46-54)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4년 6월 1일(토) 안식일오전예배

     

    『46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54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는 내용입니다.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이 병을 고쳤다는 것은 ‘놀라운 이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 이적을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이라고 말씀합니다. ‘표적’이라고 하는 뜻은 ‘싸인’이란 뜻입니다. ‘싸인’은 ‘어떤 증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메시야’라고 하는 증거가 바로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 되신다’라고 하는 것은 ‘이적을 행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 아들의 병을 고쳐주심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바로 구원자 되신다’라고 하는 것을 ‘이렇게 증거 하셨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구원자 되신다’라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더욱더 갖기를 원합니다.

     

    1. 심령의 낙이 없다고 생각할 때 빨리 하나님을 생각하라!

    46절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예수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셨다는 것은 그전에 45절을 말씀하게 되면 예루살렘에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 예루살렘에 계셨다가 지금 갈릴리 가나라고 하는 곳에 이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가나를 가리켜 ‘예수님께서 전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을 행하신 내용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그런 놀라운 이적을 행하셨던 것처럼 또 무엇인가 놀라운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누구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까?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왕의 신하라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을 미리 암시하고 미리 보여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기 왕의 신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왕의 말 그대로 왕의 신하인데 왕의 신하를 정확히 보면 왕에 속한 사람입니다. 왕의 신하는 여러 명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왕의 신하는 왕에 속한 사람입니다.

    (야 2:8)『…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것을 최고의 법이라고 말씀합니다. ‘최고’라고 하는 단어는 ‘왕의 신하’라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왕의 신하는 그냥 웬만한 신하가 아니라 굉장히 높은 관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 관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어린 아들’이라는 것을 뒤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아들이 ‘병들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병들어서 죽어가고 있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왕의 신하는 고위 관리입니다. 그러면 돈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위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병들어서 지금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왕의 신하는 어떤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마음이 평안과 마음의 즐거움은 없었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다른 것을 다 가졌다 하더라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 이렇게 병들어서 죽어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왕의 신하는 결코 ‘마음의 즐거움이나 또한 평안이 없었다’라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걸 가리켜 ‘낙이 없다’라고 표현합니다. (전 6:3)『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찌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무슨 말씀인지 아실 것입니다. 옛날 고대 신은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을 굉장한 큰 복이라고 여겼습니다. 자녀를 100명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장수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심령에 낙이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낙태된 자보다 못하다’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무엇보다 ‘심령의 낙’, ‘제 마음의 평안과 마음의 즐거움’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마음의 즐거움과 평안이 없다면, 아무리 다른 걸 다 가졌다 하더래도 여기 말씀하는 것처럼 ‘낙태된 자보다 내가 못 하다’라고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이 물질적인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중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심령의 낙’이라고 하는 것 ‘마음의 즐거움’과 ‘마음의 평안함’이라고 하는 것이 내가 얻고 싶다고 해서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성경은 ‘마음의 낙’, ‘마음의 즐거움’, ‘마음의 평안함’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난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왕의 신하를 보시면 아들이 건강만 하면 심령의 낙을 누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무리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능력을 초월하는 상황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낙이 없다고 생각할 때 내가 어떤 일로 인해 마음의 평안과 즐거움이 없고 그래서 정말로 소망이 없는 그런 삶을 느낀다고 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심령의 낙’이라고 하는 것이 누구 손에서 나는 거라고 언급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심령의 낙이 없다고 생각하실 때 빨리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왜 나는 이러지 나는 평안도 즐거움도 없고 나는 굉장히 다른 사람보다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거든 빨리 하나님을 생각하시라는 것입니다.

     

    2. 절망적인 상황이 처했을 때 주님께 의지하라!

    본문 47절입니다.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왕인 신하가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에 있던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만나러 가나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왕의 신하는 그 당시 사회에서 굉장히 고위층이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수님께 갈 일이 있었을까요? 없었을 것입니다. 뭐가 아쉽겠습니까? 그런데 왕의 신하가 지금 예수님께 가서 간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자기 아들이 병들었고 죽어가고 있다 보니까 왕의 신하를 예수님께 나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왕의 신하 모습을 보면 구약시대 생각나는 한 인물이 연상됩니다. 혹시 생각나는 사람 있습니까? ‘나아만’입니다. 성경은 나아만을 가리켜 ‘아람왕의 군대 장관’이요. 그리고 그의 주인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다’라고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큰 용사나 그는 ‘문둥병자였다’라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람 나라에서 아람 왕 그다음으로 가장 높은 그러한 지위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 나아만입니다.

    그런데 문둥병자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린 나아만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이 나아만이 나중에 어디로 갔습니까? 이스라엘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가게 됩니다. 왜? 찾아갔을까요? 자기가 문둥병에 걸렸으니까! 그런데 성경에서 보면 나아만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게 됩니까? 자기 집에 아내를 수종드는 여종이 있었습니다. 이 여종은 이스라엘에서 잡혀 온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계집아이가 자기 주모에게 “우리 이스라엘에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선지자에 가면 우리 주인이 낫게 될 거다”라는 말을 합니다.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얘기를 듣고 자기 왕에게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군대장관은 오늘날 국방부 장관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집 아주 비천한 작은 여자아이의 말을 귀담아듣습니다. 평소에는 그럴 상황이 없을 것입니다. 여자아이의 말을 귀담아듣고 자기가 섬기는 왕에게 직접 전달합니다. 결국 나중에 거기 가서 자신의 문둥병이 낫게 되었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절망적인 상황들 특별히 몸의 질병들 그런 것들이 하나님께로 그 사람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고 계기가 된다’라고 말씀합니다. (고전 1:8-9)『…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 아니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 허락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마음의 사형 선고를 받는 것 같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을 허락하신다는 건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도록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상황을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가 절망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되는데 몸의 질병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그런 상황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까? 성경은 이 여자를 가리켜 자신이 병을 고치려고 많은 의원에게 갔는데 오히려 더 고통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있는 것도 다 허비했고 아무 효용도 없고 도리어 더 상태가 중하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는 ‘그의 병이 고침을 받았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자신의 병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아가서 고침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처했을 때 특별히 어떤 몸의 질병이라고 하는 상황이 되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일단 주님을 의지하는 겁니다.

    우리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금 말했던 이 열두 해에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자도 예수의 소문을 듣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예수님께 나아가게 됐고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상황들로 인해서 낙심하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말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로 인해 심령의 낙이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인생들이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영혼들 에게는 바로 하나님 대신 예수그리스도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을 알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을 내가 안다면 우린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서 의지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것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져라!

    본문 48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내 아들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합니다. 아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간절히 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때 하셨던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너희는’이란 왕의 신하를 포함한 당시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가리키면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라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아야만 믿게 되고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신앙의 모습을 예수님께서는 책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마 16:4)『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계속 표적을 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 된다는 그런 표적을 계속 구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은 게 아닙니다. 계속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그걸 요구하더라는 것입니다. 소위 ‘표적 주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들 ‘표적을 통해서 그걸 보고 예수님을 믿고 믿음을 갖는 신앙’은 결국 예수님께서 원하는 신앙 즉 예수님께서 기뻐하는 신앙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표적을 보면 안 믿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그것을 보고 안 믿을 사람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렇게 믿었을 때 그 믿음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놀랍고, 기쁘고 해서 믿고 무엇인가 그의 삶이 변화될 것 같이 보이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게 되면 다시 도로 원위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광야에서 이스라엘 모습을 보시면 40년 동안에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매일 같이 봅니다. 근데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 완악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어떤 놀라운 이적을 보고 그것을 통해서 갖는 믿음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을 추구하는 믿음은 예수님께서 결코 원하시는 신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은 무엇일까요? 표적을 보고 믿는 믿음 즉 뭔가를 보고 믿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믿는 것입니까? 말씀을 듣고 믿는 겁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게 되면 백부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백부장 자신의 종이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종의 병을 고쳐 달라고 했더니, 예수님께서 내가 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주여 내 집에 오시는 것을 내가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말씀으로만 족하다’라고 말합니다. 말씀으로만 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이만한 믿음을 내가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면서 그 백 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믿음이 어떤 거라는 걸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믿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주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을 보아야만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믿는 겁니다. 이걸 원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롬 10:17)『…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우리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성장하는 것’ 주인께서는 이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 대부분은 표적과 기사를 보아야만 믿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경계하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말씀대로 행하고 순종하라!

    본문 49절 50절 말씀입니다. “신하가 가로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신하가 예수님께 우리 집에 와달라고 간청합니다.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 달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라! 내 아들이 살았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 신하는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예수님이 자기와 함께 집에 가면 아들이 병 고침을 받을 거라는 그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내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했을 때 왕의 신하가 그 말씀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갔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왕의 신하는 예수님과 함께 자기의 집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자기 아들의 병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혼자 간 것입니다. 왜요?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내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을 듣고 정말 그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 갔습니다. 성경은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갔다고 돼 있습니다. 그래서 왕의 신하는 그 말씀대로 간 것입니다. 믿으면 무엇으로 연결되는 것입니까? 믿으면 순종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한다면 그 말씀을 따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내가 가령 어떤 사람의 말을 정말 믿는다면 누군가와 어떤 말을 했는데 그 말을 정말 믿는다고 한다면, 그 말씀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정말 믿는다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믿음이고 이것이 예수님께서 정말 바라시는 그런 믿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51절 말씀입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왕의 신하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자기 집 종들을 만납니다. 그는 그 종들을 통해서 ‘아들이 살았다’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된 것입니다. ‘가라 내 아들이 살았다’라는 그 말씀이 ‘그대로 됐다’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은 그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건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는가를 자신에게 물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내가 믿고 있는가?’ 내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보면서 ‘하나의 말씀을 정말 믿고 있구나’라는 것을 내가 알 수가 있습니다. 내 삶 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행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왜 그런 것입니까? 못 믿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그런 삶 속에서 어떤 부분들은 그 말씀대로 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일은 분명합니다.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당연히 그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었을 때 그 말씀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가라 내 아들이 나았다. 이 말씀을 ‘왕의 신하가 믿으니까’ 그의 말씀 그대로 되더라는 것입니다. (살전 2:13)『…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말씀이 믿는 자리에서 역사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믿을 때 그 말씀 그대로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내가 정말 그 말씀을 믿으면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다”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말을 내뱉고 그 말을 도로 입속에 넣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했지만, 내가 그 말씀대로 내가 했던 말을 내가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입에서 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 말씀대로 행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대로 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 말씀대로 되려면 그 말씀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역사하지 못하고 말씀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유는 우리가 말씀을 믿지 않아서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아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반드시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이 깨끗하게 날 거라고 깨끗해질 거라고 우여곡절 있었지만 나아만은 그 말씀을 듣고 갔습니다.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씩 씻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말씀대로 아이의 살 같이 깨끗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온통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 그대로 역사 했다’라는 말씀으로 구약부터 신약까지 다 채워 있습니다.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오늘날 마찬가지로 말씀을 믿었을 때 말씀대로 역사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5. 체험을 통해 믿음이 견고해지도록 순종에 힘쓰라!

    본문 51절 52절 말씀입니다.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제 칠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왕의 신하가 종들에게 물어봅니다. 아이가 언제 낫는지 그 시간이 보니까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에게 말씀했던 바로 그때였다는 것입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는 말씀했던 시간하고 실제 아들이 나았던 시간하고 같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됐을 때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 놀라운 일을 왕의 신하가 알게 되었을 때 왕의 신하도 믿고 그 온 집도 다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때 그 일을 통해서 믿음을 갖게 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체험했을 때 그의 신앙 즉 믿음이 더 견고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던 그의 온 집은 이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면 사람들은 믿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것도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믿음이 어떤 것입니까?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러면 체험을 통한 믿음은 어떻습니까? 이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온전해지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믿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이유는 그런 일들을 통해서 더 분명히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는 이러한 믿음도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과 믿음의 본질은 아니나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제자들이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즉 사도와 제자들이 전하는 그 말씀이 정말 맞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통해 보여주심으로써 그 말씀을 더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두 가지가 같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보게 되면 초대교회가 한편으로는 이적과 기사를 행하고 그런 가운데서 복음을 전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건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참예수교회도 두 가지가 같이 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믿는 그 믿음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체험을 통한 믿음을 갖게 한 다음 현 상태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이적을 보고 기적을 보고 뭔가 하나를 믿지 않습니까? 이 상태에서 머무르는 신앙은 변질해 버립니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바른 믿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해서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었다’라고 말씀합니다.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결국 그들이 믿었다는 건 무엇입니까? ‘믿음은 결국 영원의 구원을 받음’이라 말씀합니다. 저와 그 어른들이 다 믿게 되었다고 한다는 것은 결국은 ‘그들이 다 이제 구원받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집이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이건 하나님 뜻입니다. 하나님 한 개인만 믿고 구원받는 게 아니라 그 온 집이 다 구원받기를 바라신다는 겁니다. (창 7:1)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노아에게 “너와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하나님께서 노아의 방주를 만드신 것은 그를 구원시키려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뿐 아니라 노아와 그의 온 집이 이 방주를 통해서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히 11:7)『믿음으로 노아는 …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 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이런 말씀들은 하나님은 내게 속한 온 집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의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씀도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런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나 혼자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나의 집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그 사람을 통해서 온 가족을 다 구원받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성도들은 나와 내 집이 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고, 힘써야 된다’라는 것을 또한 우리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6.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고 동행하라!

    본문 54절 말씀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표적’이라고 하는 것은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아에 대한 ‘싸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왕의 신하의 병을 고쳐주심으로 인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 된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신 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마 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병자를 다 고쳐주셨는데 성경은 이 상황을 가리켜 ‘이것은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하신 거였다’라고 말씀합니다. 선지사 이사야로 하신 말씀을 이루었다는 것은 선지사 이사야를 통해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에 관한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걸 통해서 그가 바로 메시아라고 하는 것을 증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는 이런 자고, 이런 분이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는’ 바로 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이 메시아 즉, 구원자는 ‘병을 고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병으로부터 자유한 사람 있나요? 병으로부터 오늘 내가 건강했다고 하더라도 내일 병들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병은 육체의 병만 있는 게 아닙니다. 마음의 병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살아가는 모든 사람 중에 이런 병으로부터 자유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는 병을 고치시는 분이시기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 모든 병을 다 고치십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의 병을 고쳐주시는 경우가 있고 병을 고쳐주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병을 고쳐주시는 것은 알겠는데 병을 고쳐주지 않은 것에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오늘 말씀을 보면 메시아가 어떻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까? ‘병을 짊어지셨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11:28)『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병을 짊어지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때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우리의 병을 짊어지셔서 우리를 쉬게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비록 우리의 육체적인 병을 고쳐주지 않더라도 우리 마음에 평안과 안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병을 다 고쳐주지 않으십니다. 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바울사도가 육체의 가시를 다 제거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그의 병을 고쳐주지 않습니다. 왜? 그가 받은 가시가 너무 많아 자고할까 싶어 예수님께서는 그의 병을 고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바울이 누구입니까? 바울은 나의 연약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든 걸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유익을 위해서 때로 우리 병을 고쳐주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병을 고쳐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병을 고쳐주지 않으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과정을 위해서 때론 우리의 병을 허락하시고 우리 병을 고치지 않으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 하더래도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우리 쉼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걸 능히 감당케 하신다는 겁니다. 우리 마음의 평안과 우리 마음의 즐거움을 허락하셔서 비록 내가 질병 가운데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마음이 평안할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쉬게 하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쉬는 겁니까?

    (마 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은 그 쉼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내 멍에를 매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멍에를 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처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두 마리 소가 같이 멍에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멍에를 매자’라고 제안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처럼 이렇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을 얻는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행한다는 게 뭡니까?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진 짐도 있는데, 예수님의 멍에를 또 맨다! 더 무거워질 것 같은데, 사실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멍에를 매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인생의 멍에를 맬 때, 인생에 짐을 지고 갈 때, 특히 내가 어떤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내가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매게 되면 예수님께서 내 멍에의 짐을 짊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시 68:19)『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 가지 문제, 특별히 우리가 어떤 질병의 문제로 인해 내가 짐을 지고 있을 때, 고통받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 짐을 대신 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쉬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과 멍에를 매게 될 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능히 그걸 감당할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런 가운데서 내가 마음이 평안하고 마음이 즐거울 수 있도록 놀라운 그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그런 삶을 살면서 점점 예수님과 같은 삶이 되도록, 예수님을 닮아가는 그러한 삶을 되도록, 더욱더 배우고 그런 삶을 살아가다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짐을 더 많이 져주시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생의 짐이 다 해당하는 것으로 질병뿐 아니라 내가 겪고 있는 모든 인생의 문제들 인생의 멍에들 짐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예수님을 배우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내가 병이 있을 때 예수님을 통해 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병을 고쳐주셔서 쉬게 할 수도 있고, 내 육신의 병을 고치지 않으시지만 내 마음에 놀라운 예수그리스도의 평안을 허락하셔서 능히 감당할 수 있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는 그런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실 수 있는 바로 ‘우리 구원자 되신다’라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구원자 되신다는 것을 믿으시고 실제 삶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예수님이 우리와 동행해 주셔서 비록 우리가 가는 이 과정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예수님을 통해 평안과 즐거움을 얻고 능히 우리가 걸어가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데까지 큰 은혜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예배링크]

  • [교회 행사] 수원 교회 학생부 친구 초청 잔치

    [교회 행사] 수원 교회 학생부 친구 초청 잔치

    할렐루야!

    지난 5월 25일 하나님의 인도하심 아래 수원교회 친구 초청 예배가 열렸습니다.

    친구 초청 예배가 있기 전, 학생부는 분반 시간에 미리 초대장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기가 초대할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성경 말씀을 적어서 정성스레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초청 예배 당일날, 4명의 친구가 수원교회를 찾았습니다! 할렐루야!

    친구 초청 예배에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 라는 제목으로 전홍희 목자님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새로온 친구들에게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능력이 많으신 친구이자, 따뜻한 친구,

    항상 동행하는 친구이고 가장 좋은 친구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다가가는 친구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번에 새로온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교 1학년 친구들이었습니다.

    우리 학생부의 친구도 있었고, 친척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교회에서 자주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레크레이션을 준비하며, 새로운 친구들이 잘 어울려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친구들이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새로온 친구들과 학생부들이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며,

    이 잔치를 준비하고 진행하는데 있어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이후 목자님과 간단한 담소를 나누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새로온 친구들이 진리를 깨닫고 교회로 발걸음 하길 소망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립니다!

     

    글 : 전진명 형제

  • [성도 간증] 늘 동행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구보* 형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리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시편 46:11”

     

    1.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해주신 하나님

    저는 초등학교 3학년 학기 초, 교통사고를 당했었습니다. 공부방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 맞은편에서

    공부방 차에서 하차를 했습니다. 횡단보도로 건너 자니 돌아가야 했기에 저는 겁 없이 무단 횡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도로는 차들이 빠르게 다니는 큰 도로였습니다. 도로 옆에 주차 되어있는 화물차 사이에서

    저는 겁 없이 도로로 뛰었습니다. 결국 빠르게 지나가던 트럭과 부딪혀 몸이 날아갔습니다.

    순간의 충격으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단 몇 초 만에 정신이 들었고, 약간의 골절 외에는 무사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하나님께서 왜 나를 살려주셨을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이고, 저를 사용하시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수원 교회에서 아동부 교사로 섬기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더욱 확신이 듭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  대학 생활의 방황으로부터 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

    저는 부끄럽게도 대학교 1학년 시절 방황을 하였습니다. 대학교 친구들은 술을 매우 좋아했는데,

    자연스레 저에게도 여러번 권유하였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거절했지만, 신앙의 찔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갈등이 됐습니다. 그러던 중 학교에 늦게 까지 있게 된 날이 있었습니다.

    이 날도 술자리에 참석하게 됐고, 계속된 권유에 1잔은 괜찮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1잔이 여러 잔이 됐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방황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2학기에 신앙의 찔림으로 다시 한 번 제 신앙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세상 사람으로 살아가는 제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그날 부로 회개하여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이후로 친구들은 계속해서 술을 권했지만,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친구들과 멀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술만 먹지 않을뿐 전혀 교우관계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저는 불의한 일에 있어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학생시절을 무사히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복음메시지]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복음메시지]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제목: 목마르지 않는 물 (요4:3-18)

    일시: 2024년 4월 13일 안식일 오전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을 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 물은 어떤 것이며 또 어떻게 해야 먹을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얻도록 하겠습니다.

    # 예수님이 사마리아로 가시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로 통과하려 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사마리아 땅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우회해서 갑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본래 사마리아는 구약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그러나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이곳에 이방인들을 거주하게 됨으로 혈통적으로 섞이게 됩니다. 혈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신의 동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꺼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마리아로 가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가시려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에게는 멸시받고 천대받는 자들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사복음서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자주 식사를 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2:17)”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영적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기 위해서, 즉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는 소외 받는 사마리아인들 가운데서도 가장 소외받는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사마리아 여자를 일부러 만나 복음을 전하려 하십니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자시니라(약5:11)”

    # 행로에서 곤하신 예수님을 살펴보다

    6절에 보면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한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여정이 힘드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힘든 길을 기꺼이 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들을 건져낼지라(겔34:11)”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목자가 자신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서 찾고 찾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때로는 양이 골짜기나 절벽 위, 혹은 아주 위험한 곳에 있을지라도 목자는 그 양을 찾기 위해서 기꺼이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애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공통적인 것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주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들을 찾으시되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일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계속해서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하심으로 우리가 이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여 우물곁에 앉으신 모습은 또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능력을 내려놓으시고 낮아지신 예수님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사40:28)”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아니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피곤을 느끼시며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서 계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육신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불완전한 우리를 완전케 하고 연약한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가난하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전8:9)”

    # 예수님이 전도하시다

    9절에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심을 듣고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냐면서 핀잔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을 건넸을 때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짐작하셨겠지만 이렇게 말한 것은 그녀를 전도하려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때 상대방은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라(딤후4:5)”는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는 과정 속에 고난은 불가피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후의 내용을 보게 되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마리아 여자가 기뻐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10절)”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의 선물, 성령을 말씀하시다

    그럼 여기서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선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후 베드로 사도가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본 시몬이 돈으로 이러한 권세를 사려하자 베드로 사도가 “내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행8:20)”라며 책망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 성령을 가리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하나님의 선물도 바로 성령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기에 너무나도 좋은 것임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시면서 또한 생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생수는 살아있는 물, 곧 생명수를 의미합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 우리 영혼의 갈증을 해결해 주는 그런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6-8)”

    여기 말씀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 즉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은혜를 받는 사람과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물가에 심긴 나무는 언제든지 물을 공급받아 더위가 올지라도 두렵지 않고 잎이 청청하며 가을에도 걱정이 없습니다. 마치 더위가 오더라도 그 뿌리를 강변에 뻗쳐 물을 공급받는 것처럼 우리 삶에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은혜를 성령을 통해 주십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있으면서 이러한 물과 같은 은혜를 공급해 주십니다.

    11-12절 말씀을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영적인 진리를 잘 못 알아듣습니다.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생수를 얻느냐”고 말하며 예수님에게 야곱보다 큰 자인가를 묻습니다. 니고데모 또한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거듭남의 진리를 말했을 때 “어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느냐” 물으며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에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뜻을 지극히 낮은 우리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직접 세상에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셨습니다. 그 진리를 듣고 깨달은 자들이 다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전도이고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샘물 같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

    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자에게 보다 더 분명하고 더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우물을 통해 물을 먹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려니와 예수님이 주는 물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샘이 되고 그 샘을 통해 끊임없이 생명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수를 마시기 위해 먼저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이것을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8)”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다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증인이 되도록 성령을 주셨고(행1:8) 우리가 그러한 삶을 살게 될 때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요3:34). 그럼 예수님의 증인 된다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믿는 자 안에 성령으로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고 왜 끊임없이 성령을 부어주시는가 그 이유를 분명히 안다면 오늘 우리 삶 속에서 샘솟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게 바로 성령의 은혜요, 성령의 능력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상시에 우리의 작은 삶의 습관들이 결국은 우리 삶에 영향을 줍니다. 평상시에 내 생각대로 내 감정대로 내 마음대로 행하는 삶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행하는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삶을 살게 될 때 우리 삶이 계속적인 성령의 은혜 가운데 있게 되고 성령의 충만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라는 말씀처럼 내 안에는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내 마음과 뜻과 감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성령을 충만히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끊임없이 성령의 은혜를 공급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힘쓰는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 안에 끊임없이 성령이 샘솟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글| 백현 자매

  • [교회행사] 2024년 하남교회 봄영은회

    할렐루야!

    2024년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진행한 하남교회 봄영은회를 돌아봅니다.

    이번 영은회의 강사님은 전주교회 시무하고 계시는 유바나바 목자님이셨습니다.

    영은회 주제는 “영원한 행복으로 초대하는 구원의 길”로, 매 말씀마다 은혜로운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첫번째 시간에는 ‘구원, 전적인 은혜로 누리는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특별한 구원을 얻었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나를 돌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두번째 시간에는 ‘위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평안’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함을,

    세번째 시간에는 ‘안식일, 하나님과 나 사이의 표징’이라는 제목으로

    안식일에 영혼의 양식을 채움으로 평안하는 것이 징표임을,

    네번째 시간에는 ‘세례, 예수님과 연합하여 새로워진 삶’이라는 제목으로

    세례는 나의 옛사람이 주는 것이며 예수님과 함께 태어나는 것임을,

    다섯번째 시간에는 ‘성령, 영원한 동행의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신앙을 가지고 가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함임을,

    여섯번째 시간에는 ‘은혜, 일꾼이 가진 능력의 근원’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군사 같은 좋은 일꾼임을,

    마지막 일곱번째 시간에는 ‘세족례, 예수님과 사랑의 상관을 맺는 삶’이라는 제목으로

    두 세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예수님도 함께 계심을 증거하셨습니다.

    말씀뿐만 아니라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은혜로운 시간과

     인근 교회 성도님들과 교류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번 봄영은회는 전도대상자이신 이*희자매 어머니께서도 참석하셔서

    더욱 은혜롭고 서로 사랑을 나누는 영은회였습니다.

  • [복음메세지]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마 23:25-28)

    (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 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마 23:25-26]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선포하시며 외식, 위선, 가식이라는 표현에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두 가지 비유로 들어서 말씀하신다.

     

    1. 잔과 대접의 겉만 씻는 것(25-26)

    ‘외식’이라는 단어는 극장의 무대에서 연기한다는 의미에서 왔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말과 행동과 겉모습을 꾸미는 것이다. 그들은 잔과 대접의 겉을 깨끗이 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 사실 음식이 담기는 부분은 바로 안이다. 안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것은 위생관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깨끗하고 더럽고, 거룩하고 부정하고 이런 구분이 아주 엄격했다. 사실 여기서 씻는다는 것도 장로들의 유전에 따라 씻는 것을 의미한다.

    [막 7:3-4]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 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그런데 이것은 비유일 뿐이고 예수님 보시기에 더 더러운 것은 그들이 겉으로는 율법의 조항들을 열심히 지키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을 들여다보니 뭐로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거룩해보이고, 하나님께 열심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마음 속은 욕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눅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눅 20:47]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바리새인과 다르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 안에 있는 마음 상태를 깨끗이 하도록 해야한다. 외식적으로 기도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신앙인인 것처럼 하지만 마음 안에 믿음이 없이 살고 있지는 않은가?

     

    1. 회칠한 무덤(27-28)

     

    [마 23:27-28]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민 19:11-12] (11)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 (12) 그는 제 삼일과 제 칠일에 이 잿물로 스스로 정결케 할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려니와 제 삼일과 제 칠일에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그냥 부정하니

    유대인들은 시체를 만지거나 무덤을 만지거나 혹은 무덤이나 시체를 만진 사람을 만지거나 하면 다 부정해졌다. 왜냐하면 죄의 최종 결과가 죽음이기 때문에 죄의 마지막 결과물과 가까이하면 같이 부정해진다. 그런데 부정해졌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성전에 들어가거나 제사를 드리거나 절기를 지키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특별히 명절 때가 되면 유대인들은 관습적으로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 주위에 석회 가루를 뿌리거나 석회를 발라서 희게 했다. 왜냐면 그래서 눈에 띄어야 사람들이 보고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로라도 닿지 않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은 굴이나 제대로된 매장지를 구하지 못하고 그냥 땅에 시신을 묻었는데,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이 모르고 밟아서 부정해지는 일이 있었다.

    [눅 11: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실수로 사람이 무덤을 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시작된 석회 바르는 관습이, 시간이 지나다보니까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는 방향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속에는 뭐가 들어있나?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 얼마나 고약한 냄새가 날까? 시체가 자연 부패하면서 더러운 것들로 가득차 있는 무덤의 겉만 깨끗하게 한다고 그것이 깨끗할까?

     

    이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이 해결책을 주신다.

    [마 23: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그릇의 비유에서는 사람의 마음 먼저 깨끗이 하라는 의미이다. 탐욕과 방탕함을 비우라는 것!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정돈되면, 겉도 깨끗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한 열매가 밖으로 드러나게 됨을 의미한다.

    [잠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물론 궁극적으로 죄 씻음과 성화를 위해서는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의 노력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 복음이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 감사하며, 겉을 꾸미는 일보다 우리의 속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는 정결한 모습으로 가꿔가길 원한다.

    [잠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 [신앙의향기] 봄 교회행사

    할렐루야!

    하남교회 봄 행사를 소개합니다.

     

    3월에는 아동학생부 음식만들기 활동으로 만두를 만들었습니다.

    설에 있었던 일도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만든 만두는 바로 익혀서 어른들과 나누며 교제 시간도 가졌습니다.

       

     

    4월에는 교회 근처에 있는 덕풍천에 핀 벚꽃을 구경하러 다같이 나들이를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세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모든 성도가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주 안에서 하나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에는 모든 성도가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 [교회행사] 광주교회 방문

    할렐루야!

    2024년 4월 13일-14일,

    하남교회에서 광주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교회 입구에서부터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맛있는 예찬도 준비해주셨습니다.

    서로 주 안에서 하나 되어 찬양하며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고,

    광주교회와 하남교회 소개를 통해 하나인 참예수교회를 더욱 알아가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기념 촬영으로 소중한 순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사직 빛의 숲’으로 가서 광주 일대 야경을 구경했습니다.

     

    .

    다음 날, 14일 아침에는 풋살을 했고,

    교회 앞에서 기념 촬영 후

    ‘펭귄마을’과 담양에 있는 ‘죽녹원’으로 나들이를 갔습니다.

             

            

    나들이 후에는 점심을 먹고 하남으로 돌아왔습니다.

    300km 떨어진 곳에서 온 하남교회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사랑해주신 광주교회 성도분들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배울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 [성도 소개] 안양교회 전도임원 조유*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안양교회 전도임원 조유*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안양교회의 전도임원으로서 다양한 전도활동을 세심히 챙기고 구도자들을 사랑으로 살뜰히 섬기는 조유* 전도임원을 소개합니다. 교회와 성도를 위해 수고하시는 손길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있으시길 바라며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Q1.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저는 안양교회에서 중등부 교사와 전도임원의 사역을 맡고 있는 조유진자매입니다.

    Q2. 안양교회 전도임원으로서 어떤 일을 맡고 계시나요?

    목자님과 교회에서 계획한 전도 사역이 한마음으로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쓰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첫째, 신도들이 전도 대상자를 품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둘째, 전도 활동에 필요한 초대장, 전도지 및 각종 전도물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셋째, 교회에 방문한 구도자들이 교회에 적응하고 구도자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며 함께 참여하고, 이후에 믿음을 갖고 거듭나면 교회 생활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넷째, 각 신도회 전도팀과 전도활동과 기도내용을 공유하며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전도 행사를 통해 전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전반적인 사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Q3. 전도임원 직분을 수행하면서 신앙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2015년부터 10년째 안양교회에서 전도 임원의 직분을 맡으며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려는 생각보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그릇이 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나 자신부터 예수님의 뜻을 잘 알기 위해 말씀을 가까이 하고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것은 저에게 기쁨이 되었고 힘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도하는 일은 세상의 일처럼 계획하는 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도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며 더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살도록 하신 것 같습니다.

    Q4. 전도임원 직분을 하는데 어려운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을 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요?

    코로나19상황으로 지금까지 해 왔던 전도활동을 할 수 없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교회에 잘 나오던 구도자나 새 신자가 갑자기 교회를 나오지 않거나, 전도의 열매가 없을 때가 힘들었습니다. 마음속에서 조바심이 나고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를 생각하며 머릿속이 복잡해지곤 했습니다. 이럴 때면 반성도 하고 고민도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분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고 선한 일이니 주님께서 가장 합당한 때에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Q5. 전도임원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느낀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성도가 힘을 다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힘쓸 때 하나님께서 대상자들을 교회로 보내주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전도 대상자로 삼고 기도하고 관심 가졌던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통로를 통해 교회를 오게 하시고 성령 받는 과정을 보면 전도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느낄 수 있었고 은혜가 되었습니다.

    Q6. 안양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길 바라시며 성도들에게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민14:8) 이 말씀은 안양교회 2024년 교회 목표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자라고, 말씀에 힘을 다해 순종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힘씀으로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