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tjc-admin

  • 성찬례는 주님의 살과 피에 참예하여 주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성찬례는 교파와 교단에 따라 그 교리에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천주교의 견해로 ‘화체설’(化體說)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즙을 축사하면 실제로 예수님의 피와 몸으로 변한다는 견해입니다. 둘째는 일반 개신교의 견해로 ‘상징설’(象徵說)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할 뿐 축사 기도를 하더라도 떡과 포도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견해입니다. 마지막으로 참예수교회의 ‘영화설’(靈化說)이 있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성령을 받은 성도의 축사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피와 살로 ‘영적인 변화’(영화)가 일어난다고 믿는 견해입니다. 마치 세례받을 때 물이 실제 피로 변하지는 않지만 성령 받은 자가 예수 이름으로 선언하고 시행했을 때 ‘물’이 ‘피’로 영적인 변화를 일으키듯이 성령 받은 자의 축사 기도를 통해 성찬례의 떡과 포도즙이 영적인 변화가 일어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딤전 4:4-5)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이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가 유월절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기 위해서 그 나라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 열 개의 재앙 가운데 마지막으로 내려진 재앙은 바로 사람과 짐승을 막론하고 초태생은 죽음을 당하는 끔직한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애굽의 모든 사람과 짐승에게는 그 재앙이 임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임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재앙이 닥치기 전에 미리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명령했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대로 실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백성들과는 달리 그 재앙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열 번째 재앙은 유대인들이 애굽을 나올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하나님은 애굽 사람에게는 심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 임한 이 재앙을 기념하여 유월절이라는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절기에는 무교병과 양고기와 같은 특별한 의미의 음식을 먹으며 기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출 12:22)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구약 시대 장자 죽음의 재앙을 통해 시작된 유월절 절기는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건을 예표합니다. 즉, 애굽과 같은 죄악 세상에서 사망의 노예처럼 매여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흘려 그 값으로 죽음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신약 시대의 우리는 예수님께서 새롭게 설립하신 새로운 유월절로서 성찬례를 시행해야 합니다. 성찬례는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친히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면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명령에 근거하여 세워졌습니다. 예수님은 이 성찬례를 일컬어‘유월절 먹기를 원하였노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성찬례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 즉 신약 시대 성도들이 지켜야 하는 새로운 유월절 식사입니다.

     

    (눅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 22: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성찬례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 사이에서만 명령하시고 준행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 세워진 초대교회는 그것을 하나의 성례로 받아들여서 시행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관련된 문헌에서도 발견되지만 성경의 내적 증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저술인 고린도 전서에서 예수께서 설립하신 성찬례의 정확한 절차와 그 의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직계 제자가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만찬에 참여한 인물이 아닙니다. 마지막 만찬에 참여하지 않은 그가 그 때의 대화와 성찬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고린도 교회를 포함한 초대 교회가 성찬례를 하나의 예전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입니다.

    (고전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 제7항 성찬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축약본

    성찬례는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며 주의 살과 피에 동참하여 주와 연합하고 영생을 받으며 마지막 날에 부활하는 성례임을 믿는다. 이 성례는 필요할 때마다 거행하며 반드시 한 개의 누룩 없는 떡과 포도즙으로 거행한다.

    성찬례는 구약 출애굽 시대에 시작된 유월절 절기에 유대인들이 가지는 특별한 식사가 신약 시대에 개혁되어 나타난 기독교의 성례입니다. 이 성례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1)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고전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2)주님의 살과 피에 참예하여 주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딤전 4:4-5)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3)마지막 날에 부활하여 영생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요6:53-5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라

     

    4)힘을 합해서 주님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고전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5)성찬례는 성경적 절차와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세례라는 성례와 마찬가지로 성찬례도 그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도록 성경적 절차와 방법대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 절차와 방법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해야만 그 성찬례에 담긴 온전한 정신과 영적인 의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고전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 세족례 시행은 성경적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 즉, 물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 세족례를 시행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물세례를 먼저 받은 성도라야 세족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는 주님과의 관계를 맺는 의미에서 반드시 성령이 임재하시는 교회의 성직자로부터 한 차례 세족례를 받아야 하고 또 성도 상호간에 갈등과 불화의 경우 상호 합의가 이루어진 가운데 세족례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족례를 통해서 불화와 갈등을 해소하는 것보다 먼저 대화와 상호 이해를 통해서 해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때로는 세족례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불화하고 분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세족례를 성례로 주신 주님께 오히려 매우 송구스러운 일이며 세족례 시행하여 화목을 시도한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세족례를 시행하는 것보다 세족례의 정신을 더 높여서 평소 타인과 불화하지 않고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도 상호간에 세족례를 시행하는 것은 대화와 이해로도 해결되지 않고 상호간의 관계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상호 발을 씻겨주는 기회를 갖는 것이 옳습니다.

  • 세족례는 예수님과 상관을 맺게 만듭니다.

    세족례가 교회에서 하나의 성례로 성립되는 근거 중에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중에 나타난 ‘상관’이란 단어 때문입니다.

    (요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기서 ‘상관’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메로스’(μέρος)로써 ‘부분’ ‘조각’ ‘몫’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상관을 맺는다’는 뜻은 예수께서 주시는 ‘몫을 받는다’ 또는 ‘분깃을 받는다’는 상속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선언은 천국의 기업, 천국의 몫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 말씀이 이렇게 엄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태도가 정반대로 돌변합니다. 조금 전까지 ‘절대로 발을 씻기지 못한다’고 거절하더니 이제는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렇게 태도가 바뀐 이유가 예수님의 말씀이 구원과 관련된 엄중한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13:10-11)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또 다른 근거는 예수님이 베드로의 거절에 대해 답변하시는 내용 가운데 들어있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에서 ‘목욕하는 것’은 무엇이며 ‘발씻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석가들은 ‘목욕하는 것’이란 ‘물세례’를 가리킨다고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발 씻는 것’은 분명 ‘세족’을 가리킵니다. 주목할 점은 목욕하는 것이 발씻는 것과 병행하여 서술된 점입니다. 그런데 병렬 관계는 곧 성례와 성례의 관계여야 그러한 서술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이 물세례가 하나의 성례인 것처럼 세족례도 하나의 성례라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 세 번째 근거는 요 13:15에서 예수님이 ‘내가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신 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긴 행위가 제자들도 장차 실천해야 하는 일이라고 밝히십니다. 예수님이 먼저 본을 보이신 것처럼 제자들은 장래에 발씻기는 일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와 같은 여러 가지 근거로 최후 만찬이 있던 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행하신 사건은 일회적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교회가 마땅히 성례로 수용해야 하는 것임을 반영합니다. 본회에서는 예수님이 세우신대로 세족례를 성례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 제6항 세족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축약

    세족례는 주님과 상관을 맺고 서로 사랑하고 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을 가르치는 성례이며 세례(침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족례를 일차 행하며 신자들 상호간의 세족례는 필요시에 시행할 수 있음을 믿는다.

    교회가 담고 있는 교리에는 공통된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어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완전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들입니다. 참예수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 가지 성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세례, 성찬례, 세족례입니다. 그 가운데 세족례는 발을 씻기는 성례로 십자가 사건 직전 유월절 만찬에서 주님이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본회에서는 이를 하나의 성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족례가 하나의 성례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우리를 그 안에 담고 있는 구원으로 인도할 귀중한 교훈들은 무엇일까요?

     

    1)세족례는 예수님과 상관을 맺게 만듭니다.

    세족례가 교회에서 하나의 성례로 성립되는 근거 중에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중에 나타난 ‘상관’이란 단어 때문입니다.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선언은 천국의 기업, 천국의 몫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요13:8)

    2)세족례에는 사랑,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이 있습니다.

    세족례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세족례 시행은 성경적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 즉, 물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 세족례를 시행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물세례를 먼저 받은 성도라야 세족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제6항 세족례에 대한 우리의 믿음 축약본

    세족례는 주님과 상관을 맺고 서로 사랑하고 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을 가르치는 성례이며 세례(침례)를 받은 모든 신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족례를 일차 행하며 신자들 상호간의 세족례는 필요시에 시행할 수 있음을 믿는다.

    교회가 담고 있는 교리에는 공통된 지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어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완전한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들입니다. 참예수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세 가지 성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세례, 성찬례, 세족례입니다. 그 가운데 세족례는 발을 씻기는 성례로 십자가 사건 직전 유월절 만찬에서 주님이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본회에서는 이를 하나의 성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족례가 하나의 성례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이며 우리를 그 안에 담고 있는 구원으로 인도할 귀중한 교훈들은 무엇일까요?

     

    1)세족례는 예수님과 상관을 맺게 만듭니다.

    세족례가 교회에서 하나의 성례로 성립되는 근거 중에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중에 나타난 ‘상관’이란 단어 때문입니다.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는 선언은 천국의 기업, 천국의 몫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요13:8)

    2)세족례에는 사랑,성결, 겸손, 봉사, 용서의 교훈이 있습니다.

    세족례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려는 교훈이 들어있습니다.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세족례 시행은 성경적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자 즉, 물세례를 받은 제자들에게 세족례를 시행하셨듯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물세례를 먼저 받은 성도라야 세족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참예수교회 연혁

    ∘ 1945년 1월. 오사카시에 있는 참예수교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성령을 받고(1945.7.30.) 거듭난 배상용(고 배영도 장로)씨가 귀국함으로써 한국에 참예수교회가 최초로 설립되었다.그후에 각지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 김천교회 설립

    – 배상용씨가 귀국하여 김천에서 지내던 바 일본에서부터 안면이 있는 박창환씨를 만나 전도하여 1947.6월에 박창환씨가 거듭나고 그가 목회하던 장로교회의 교인 다수가 성령을 받게 되어 장로교회로부터 분리하여 박창환씨 집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 삼계교회 설립

    – 1948.8월 임실군 삼계면 홍곡리에 있는 장로교회 전도사 윤석주씨가 김천 근처의 용문산 집회에 참석중 김천 시내의 참예수교회 박필선,홍종배 양 집사의 전도를 받고 성령을 받은후 홍곡 장로교회에 돌아와 허병암(고 허야곱 장로), 허상(허수진 목자)을 비롯한 다수의 신도에게 전도하여 성령을 받게 하였다.

    – 1949.2월에 영은회를 개최하고 교회 전체가 참예수교회로 완전히 개종하였다.

    ∘ 서도교회 설립

    – 1948.9.26. 홍곡교회(삼계교회 전신) 허병암형제의 전도를 받은 둔덕 장로교회 여전도사 장달순씨가 김천교회에서 파견된 박창환 전도사가 삼계면 홍곡리에서 개최한 전도집회에 참석하여 성령을 받고 둔덕장로교회에 진리를 전하게 되었다.

    – 1949.5에 서도리에 박창환 장로,허병암 형제,장달순 집사가 중심이 되어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 전주교회 설립

    – 전주 고려고등성경학원을 수료한 김영상씨는 1949.2월에 개척전도중 삼계면 홍록리의 참예수교회를 방문한 바 그 당시 전도차 김천교회에서 온 박창환 장로와 우영택 형제를 만나게 되어 동창인 허상 형제집에서 진리를 연구한 결과 중생하게 되었다.

    – 1949. 2월 하순에 중생한 김영상 형제는 허상 형제와 같이 전주에 와서 진리를 전파하여 그 모친과 부인이 성령을 받았고, 그 후 장로교회 여집사였던 김영제씨와 가족 및 전주사범학교 학생 이명주 자매등이 전도되어 김영상 형제집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

    ∘서울 동부교회 설립

    – 1949.5월 김학순씨가 안식교 신학 동창이던 김천교회 우영택 형제(우요한 목자)를 방문하여 전도를 받은후 서울에서 신모씨,이모씨 2명을 데려와 중생하게 하였던 바, 종로5가에 있는 신씨 집에서 집회를 가졌으나 6.25사변으로 중단되었다.

    – 1.4후퇴 당시에 김천에 온 김선웅씨 부부가 우영택 형제 집에 거주하던 중 전도를 받고 중생하였다. 서울이 수복되자 상경하여 1952.11월에 서울 근교 망우리에서 몇몇 신도와 함께 가정집회를 시작하였다.

    ∘ 대구교회 설립

    – 1955.3월에 대구에 전근간 서울기도소 신자인 차철남 형제가 전도한 결과 10여명이 집회를 갖게 되었다. 또한 1955.9월에 노관영,김세갑 형제가 대구에 와서 노관공 목사가 인도하는 교회에 가서 전도한 결과 임정순,박효남씨 등이 전도되어 이수남씨 집회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

    ∘ 부산교회 설립

    – 1954.4월 서도교회에 와서 15일 가량 머물면서 중생한 이기원 형제가 직장 관계로 부산시 한약방 점원으로 있을 때 군복무를 마치고 다리관절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조규형(고 조인성 장로)가 병치료차 이 한약방에 왔다가 이기원 형제로부터 참예수교회에서는 믿음으로 병을 낫게 할수 있다는 말을 듣고 진리를 갈망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장달순 집사와 김영상 형제가 1955.4월에 부산에 파견되어 조규형씨에게 안수하여 성령과 세례를 받음으로써 조규형 형제 가정을 중심으로 집회를 갖기 시작하였다.

    ∘ 대전교회 설립

    – 1956.7.24. 전주에서 중생한 이채홍 형제가 대전시에 거주하였는데 우영택(우 요한 목자)집사를 만나 가정집회를 가졌다. 그 후 삼계교회의 허병암(고 허야곱 장로)집사도 대전으로 이주하여 1959.9.24.에 집회가 시작되었다.

    ∘ 대방교회 설립

    – 육사 교수였던 조광덕(고 조득진 목자)씨는 과거 감리교,그리스도교,장로교,침례교등의 신앙경력을 가지고 가정집회를 갖고 있던 중에 동료교수인 차철남,정대현 형제의 전도를 받았고, 부인과 함께 가정에서 성령을 받는 기도를 하던중 같이 성령을 받고, 그후 가정 집회에 참석하던 신도 약30명이 성령을 받게 되었다.

    – 그후 정식으로 참예수교회 간판을 달라는 권고가 있은 후 1개월간 신도간에 의견 대립이 있었으나 어느 자매를 통하여 참예수교회 간판을 달라는 방언통역이 있어서 1957년 전 교인의 동의하에 참예수교회 간판을 달고 집회를 갖기 시작했다.

    ∘ 남원교회 설립

    – 1952.12 전주교회의 자매를 통하여 남원에 거주하던 강향원씨 등 수명이 전도되어 가정집회가 시작되었다.

    ∘ 서천교회 설립

    – 1958.1월초 호남지방교회 영은회를 마치고 우요한,조득진 집사가 귀가 도중에 서천에 들러 조득진 집사의 인척되는 김우근 씨에게 전도차 방문하여 10여명에게 전도를 한 바 삼각산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하는 박팔순씨와 김갑현씨가 전도되었다. 그후 1월 중순경에 배영도 장로와 이빌립 집사가 심방하여 박팔순씨 집에서 집회를 갖게 되어 기도소가 설립되었다.

    ∘ 수문교회 설립

    – 서천교회 신도인 김정자 자매가 경찰로 있던 남편의 직장을 따라 수문에 와서 거하면서 신금례 씨와 신광호 씨에게 진리를 전하고, 서천교회의 이빌립 목자를 청하였던 바 1963.4.25.에 이 두 사람이 중생하게 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 안동교회 설립

    – 1957.6월 안식교 문서 전도자인 박주락씨가 대구에 가서 사진업을 하던 참예수교회 신도 김세갑씨를 만나 성령을 받는 비결을 빌려 읽고 진리를 갈망하게 되었던 바, 총회에서는 1957.8.27. 우요한 집사를 파견하여 1960.8.28.에 중생하게 되었다. 박형제는 1년 정도 성경을 연구한 후에 배영도 장로와 우요한 집사를 안내하여 안동,점촌,영주 등지를 순회하며 전도한 바, 안동에서 강수성,박인순,점촌에서 조순기,영주에서 김옥련 씨등이 개종하여 집회가 시작되었다.

    ∘ 서울 서부교회 설립

    – 회기동 교회(현 동부교회) 손양금 자매와 신길동 교회(현 대방교회) 홍춘식 형제가 서대문 시립병원에 있을 때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병원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 총회에서는 그 실정을 참작하여 퇴원환자와 입원환자들의 거처와 집회를 위하여 기도소를 설립하였다.

    ∘ 청주교회 설립

    – 1969.2 김명석 형제가 청주시에 와서 그리스도교회 신자였던 송영애 씨에게 진리를 전한 뒤 운암교회에서 시무중인 오충도 목자가 와서 전도한 결과 송영애,고영희,조옥순,심옥자 씨등이 개종하고 운암교회 영은회에 참석하여 중생하게 됨으로써 청주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

    ∘ 강진교회 설립

    – 그리스도교회 신자였던 김명석씨가 전도를 받고 개종한 후 강진에 거주하던 그리스도교회 목회자인 이재우씨에게 진리를 전한바, 개종할 의사가 있다고 하므로 1966년 9월 23일 배영도, 권순도, 김명석 3인이 이재우씨를 심방하여 진리를 전한 바 이재우씨와 그 교회 전 신도 13명 가량이 개종하게 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 화산교회 설립

    – 1966년 9월 26일에서 1967년 2월 19일간에 김명석 형제의 인도로 화산지구에 배영도, 권순도 목자의 순회방문과 수문 교회의 영은회로 인하여 신도가 증가하여 1967년 1월까지 약 7명이 세례받고 6명이 성령을 받아 김행남형제의 집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

    ∘ 여우치 교회 설립

    – 1971년 이래 태아순자매가 여우치에 있는 친정을 자주 왕래하며 전도하였던 바, 박순용씨 가정이 전도되어 집회가 시작됨

    ∘ 목포교회 설립

    – 1975년 경 당시 전남 무안군 삼향면 옥암리(부주두 부락)에 거주하던 장로교회 목사 이준호씨가 강진교회 영은회에 참석하여 진리를 깨닫고 세례를 받았다.  총회에서는 배영도, 우요한 목자를 파송하여 이준호씨와 함께 부주두 회관에서 전도집회를 하던 중 동네사람 수십명이 참석하여 10명 이상이 성령을 받았다.  당시 성결교회 집사였던 김동례(현 김안나 집사)씨 및 정연순(현 장유진 집사 모친)씨가 들어와 중생하였다.

    처음에 진리를 전했던 이준호씨가 재정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이유 뿐 아니라 기타 문제로 불만을 품고 교회를 떠났고 교회에 대해 생소했던 주민들도 거의 다 나오지 않았으나 김동례, 정연순씨 두 분이 중심이 되어 김동례씨 집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 쌍치 기도소 설립

    – 1949년 2월 홍곡교회에서 중생하여 믿음을 지켜 오던 최경님 자매가 1956년 6월에 쌍치로 이사한 후에도 가정예배를 보았다.  그 후 홍송자씨를 전도하게 되었는데 홍 자매와 결혼하게 된 삼계교회 허인수 형제도 쌍치로 오게되어 두 가정이 중심이 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 광주 교회 설립

    – 1965년 3월에 기도소로 인정되어 집회를 갖다가 1970년에 폐지되었다.  1983년부터 광주 부근의 영광기도소에서 목회하던 양봉도 목자가 1985년 1월 1일부터 당시에 전주에서 이주해 온 강향원 형제, 학생이던 김원길 형제, 김신자 자매를 중심으로 그리스도교회에서 전도되어 개종한 황경하 형제 가정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 인천교회 설립

    – 1982년 4월 1일 부천과 인천지역의 대방교회 출석 신도들을 중심으로 부천에 집회소를 설치하고 김혁도 목자를 파견하였으나 집회가 여의치 않아 철수하였다.  이 후 1986년 4월 15일에 인천지역의 개척전도를 위해 우현도 목자가 파견 되고 인천시 남구 주안동에 교회당이 조성되어 집회가 시작되었다.

    ∘ 오산교회 설립

    – 1980년 초에 신길동교회(현 대방교회)의 신도인 최낙성 형제(현 최성진 집사?)가 오산으로 이주해 옴으로 말미암아 근처에 있는 신도들과 함께 집회가 시작되었다.

    ∘ 안산교회 설립

    – 1957년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고잔리에 거주하던 민형기, 이호정, 두 학생이 서울에 와서 공부하던 중 신길동교회(현 대방교회)에서 중생하게 되어 고향인 고잔리에 전도를 요청하므로 1960년 11월에 조득진 집사가 방문하여 민형기 형제 가정이 전도되었다. 1961년 12웖 말(음력11월 24일)에는 민형기 형제 당질인 경문군이 세례를 받고 다리의 감각이 살아나고 소아마비가 낫는 기적이 일어났다.

    1968년 3월 14일 이호정형제의 친 형인 이호경씨의 아들 신한군이 이 세례를 받고 보지도 듣지도 울지도 못하던 것이 낫게 되어 그 가정이 다 믿게 되었고 이호정씨 가정에서 집회를 갖게 되었다.

    ∘ 광양교회 설립

    – 1980년 8월 서도교회 출신 이정상 형제 심방예배(남원교회 지도)로 시작되었고 1993년 2월 전남 순천시 임성래 형제 가정에서 매주 정기 예배가 있게 되었다.

    ∘ 거제교회 설립

    – 1983년 초  박영옥 자매 집에서 집회가 시작(이빌립 목자 지도)되다가 1987년 장승포읍에 집회소가 마련되고 이후 1991년에 교회로 승격됨

    ∘ 원주교회 설립

    – 1986.1월 이중진 형제집 가정집회로부터 시작됨.

    ∘ 수원교회 설립

    – 1988.5.우요한 목자 집(수원시 장안구 율전동 소재 천록아파트)에서 김마리아, 최순근, 이송애 등 3가정이 함께 집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 강남교회 설립

    – 1989.3월 대방교회에서 분가하여 설립됨

    ∘ 장항서부교회 설립

    – 1993년 장항 거주 신도 가정순회 성경공부 모임으로 시작되어 11월 집회소가 마련되고 이후 교회 건물 건축 후 1998년 1월 22일에 개척교회로 지정되었다.

    ∘ 천안교회 설립

    – 1993년 2월 신학생 김미영자매가 천안으로 이사 온 후 동생 김자영 형제와 오산, 수원에서 예배를 보게 됨, 이 후 김미영 자매 가족 4명이 전도되고 1998년 10월 19일 오산교회와 분리하여 집회소가 설립되었다.

    ∘ 분당교회 설립

    – 성남 시내의 교인들이 강남, 대방, 서부교회에 출석하였으나 불편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강남교회에서 수년 전부터 구역예배로 성남에 있는 가정을 인도했다가 강남교회에서 1998년 6월 24일 성남 집회소를 설립하여 정기적인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 하남교회 설립

    – 일반 교회에서 개종한 황재순 전도사가 시무하던 교회에서 집회가 시작되었다.

    ∘ 안양교회 설립

    – 2003.6월 수원교회에서 안양구역을 지정하여 월1회 구역예배로 시작됨.

    ∘ 해운대교회 설립

    – 2011.5월 해운대기도소로 시작됨

    ∘ 의정부기도소 설립

    – 서울 동부교회에서 분가하여 2016.8월에 시작함.

  • 참예수교회 소개

    참예수교회는 늦은 비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1917년 중국의 북경에 처음으로 설립되었고, 후에 전세계로 전파 되어 현재 60여 나라에 분포되어 있다. 한국에는 30여 곳에 교회가 세워져있다.
    참예수교회는 다른 기독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다. 우리는 예수가 천지의 창조자이시고, 또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육으로 세상에 오신 참 하나님이시며, 끝날에 모든 이를 심판하실자이심을 믿는다.(딤전3:16,고전 15:3·4, 행 4;12) 아울러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으로 진리를 전하는 유일한 경전임을 믿는다(딤후3:16)
    참예수교회는 그러나 다른 교회들과 분명한 차이점을 갖고 있다.

    본교회는 사도교회를 모델로 삼고 있으며, 사람들에 의하여 왜곡되지 않은 사도교회의 정확한 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이 죄사함을 얻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고 세례를 받아야 하며, 그것도 자연상태에서 전신이 물에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세례가 단순한 의식이나 상징적 행위가 아니라 이를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성스러운 절차임을 믿는다(행2:38)
    참예수교회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자는 반드시 그의 보내신 성령을 받아야 하며, 방언 말함을 성령을 받은 확실한 증거로 믿는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천국을 향해 가는 동안 항상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는 조력자 (보혜사)이자 위로자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음도 믿는다(롬 8:16,엡 1;13 -14)
    참예수교회는 예수께서 본을 보이시고 명하신 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성도의 발을 씻어줌으로써 주님과 상관을 맺게 하고, 거룩함과 겸손과 봉사와 용서의 교훈을 배운다고 믿는다. (요13:1~17)

    참예수교회는 성찬례를 통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 큰 뜻을 기념하고 그의 피와 살에 참여함으로써 그와 하나가 되며, 이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부활과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됨을 믿는다. 모든 회중이 누룩을 넣지 않은 단 하나의 떡과 순수한 포도즙을 나누며 먹고 마심으로 예수가 하나이며 우리가 그와 하나됨을 기념한다.(고전 10:17, 11:26,요6:53~56)
    참예수교회는 주의 일곱째날 곧 토요일(금요일 저녁부 터 토요일 저녁까지)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거룩케 하신 안식일임을 믿는다. 이날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기억하고 구원과 영원한 안식을 바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창2:2~3,히4:9~11)

  • 제10항 재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제10항 재림에 대한 우리의 믿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세상 끝 날에 하늘로부터 강림하셔서 만민을 심판하시되 의인은 영생을 얻게 하시고 악인은 영벌을 받게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

    인간은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죽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성경은 하늘과 땅이 창조되어 시작한 날을 기록하고 있고 또 멸망할 날이 있을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37-39) 

     

    1)이 세상이  멸망하는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자원 중 석유, 석탄, 천연가스의 매장량은 현재와 같은 양을 소모한다고 하면 앞으로 각각 40년, 170년, 65년 정도 사용할 양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2008년 현재 기준). 분명한 사실은 인간의 수명이 한정되어 있듯이 지구가 인류에게 공급할 총체적인 자원의 양도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가 병들어가는 심상치 않은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사라지는 가운데 있고, 그로 인해 해수의 온도 변화로 기상 이변을 일으키는 엘리뇨(El Niño) 라니냐(La Nina)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현상과 더불어 근래에 처처에 지진과 해일 같은 천재지변이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게다가 과거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바이러스, 병균들이 창궐해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또 폭발적인 인구 증가에 비해 필요로 하는 수자원이 모자라 물부족으로 고통하는 미래가 인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물부족으로 인해 수자원이 새로운 분쟁의 원인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만 보아도 인류는 원하지 않지만 지구의 멸망과 인류의 종말은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의 멸망에 대해서 분명히 선언하셨고 그 때의 징조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신실하신 주님이 그런 미래를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벧후3:10-13)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딤후 3:1-5) 『[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성경이 이야기하는 마지막 날의 징조는 이렇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징조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사람의 지혜가 발달합니다.

    오늘날 인류가 형성한 문화와 문명은 놀랍습니다. 과거에는 몇 달 걸려서 도달하는 거리를 현대의 교통수단을 통해 불과 몇 시간에 도달합니다. 작은 이동 전화기로 수천 리 떨어진 곳에서 마치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듯이 의사소통합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 그물망을 통해 전 세계를 국경의 제한 없이 넘나들며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수천 명을 동원해서 해야 되는 일을 기계적인 장치와 첨단 장비를 통해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해치웁니다. 계절과 장소에 관계없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첨단 가전제품은 인간에게 무한한 여가시간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화와 문명은 사람의 지혜가 과거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도로 발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살전 5: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단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둘째,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대적합니다.

    전쟁은 인간 사이의 분열과 분쟁의 가장 극단적인 적대 상황입니다. 말세가 다가오면 이런 전쟁과 분쟁의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더욱 확대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살펴본대로 인간의 문명은 눈부시게 진보하고 있는 반면 인간의 영성은 점점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역사가 시작점부터 인류는 셀 수 없는 많은 전쟁들을 치렀습니다. 자원 때문에 분쟁하고 사상과 문화와 인종의 차이 때문에 분쟁해왔습니다. 그런데 과거는 단순한 사회여서 집단과 집단 간의 분열의 양상도 상대적으로 단순했지만 미래는 더욱 복잡한 다변화 사회여서 분열과 갈등의 내용이 더욱 복잡해지고 그 정도도 점점 깊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마 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막 13: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셋째, 대환란이 있습니다.

    미래에는 이런 분열의 양상이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물 사이에서 그리고 육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이야기하는 대환란이란 바로 그런 총체적인 분열을 가리킵니다. 이 대환란의 기간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큰 핍박의 시기가 될 것입니다. 성경은 그 대환란에 대해서 유사 이래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큰 환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계 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넷째, 거짓선지자가 출현합니다.

    미래에는 전쟁, 기아, 분란 같은 외부 세계에서의 혼란뿐만 아니라 영적 내부 세계에도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불신자들은 더욱 악하게 타락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도 신앙에서 멀어져 실족하게 되는 애석한 미래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하여 택하신 성도조차 거짓 교훈으로 미혹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상의 인본주의적 사상들이 신앙의 정신을 훼손시키고, 물질주의 쾌락주의의 풍조로 성도가 세상에 취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접하는 소식 가운데 자칭 예수라 하는 자들, 시한부 종말론자들, 극단적 열광주의자들, 종교 통합을 꾀하는 자들의 출현은 모두 이런 영적인 내부 세계의 측면에서 나타나는 말세 징조에 대한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습니다.

    (마 24: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인 줄 아노라』

     

    (마 24:11-12)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2)말일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벌에 들어가도록 심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때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본 그대로 지상으로 재림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서 재림하실까요? 성경은 이에 대해 의인에 대한 구원과 악인에 대한 심판을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구원과 심판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만 심판이라는 단어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심판은 없고 구원만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약 악인에 대한 심판이 없다면 의인에 대한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의인에 대한 구원이 없다면 악인에 대한 심판이 필요 없습니다. 구원과 심판, 이 둘은 상호 연결된 사건으로 주님이 재림하실 때 동시에 일어날 것입니다.

    (마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의인에 대한 구원과 악인에 대한 심판은 세상 끝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만약 의인의 구원이 없다면 성도가 의를 추구하고 선을 좇으며 살아갈 이유가 없어집니다. 만약 심판이 없다면 악인에 대한 보응도 없으므로 세상에서 악인들은 더욱 악을 행하며 살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은 받드시 있어야 하며 재림 시 심판대 앞에서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심판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창세 이후로 발생한 인류사의 모든 부조리와 불의의 문제가 해결되고 우주적인 공의가 실현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살해당한 아벨, 사가랴 선지자에 대해서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세상의 종말은 분명히 다가올 일이지만 성도는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자라면 마땅히 종말에 있을 환난과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라는 시간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을 추구하며 내세를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가치가 영원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삶의 구체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가장 큰 계명을 성취하기 위해서 땀흘리며 노력하는 것입니다.

    (벧전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