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tjc-admin

  • [기관소개-아동부] 대방교회 아동부를 소개합니다

    [기관소개-아동부] 대방교회 아동부를 소개합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에베소서 1:22-23)』

     

    할렐루야!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2020년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라는 불청객으로 우리의 예배가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는 답답함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러한 일이 있을 거라는 것을 미리 아셨기에 예배가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예비하여 주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와중에도 유튜브 등을 통하여 예배드릴 수 있도록 예비해 주셨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세상으로 독립할 아이들이 신앙을 곧고 올바르게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가 앞서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아이들과 예배를 계속해서 드릴 수 있을지 막막했었고 예배가 예배답지 않고 TV 시청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예배도 기쁘게 받아 주실까? 라는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거라는 믿음으로 아동부 예배를 한주도 쉬지 않았습니다. 종교시설 인원 제한 등의 제한이 시작되면서 바로 각 가정에서 유튜브를 통해 예배드릴 수 있게 온라인예배로 전환하였고, 분반예배 또한 줌(ZOOM)으로 진행하여 아이들과의 소통을 지속하였습니다.

    [사진1. 대방교회 아동부 전체와 교사]

    [사진1. 대방교회 아동부 전체와 교사]

     

    코로나 정부 방역 지침이 조금 완화되었을 때는 최소인원이 현장 예배를 드리며 온라인예배를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일에 교회사역을 맡은 담당자(부모)의 자녀들이 현장에 나와 대면 예배에 참석하였고 이를 유튜브로 연결하여 현장과 온라인으로 함께 예배할 수 있었습니다. 분반예배 또한 2년 동안 꾸준히 온라인 줌(ZOOM)을 병행하여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고 같은 반 아이들의 소속감을 잃지 않게 노력하였습니다. 매주 함께 나눴던 간식도 코로나로 인해 중단할 수밖에 없었지만, 기프티콘 선물로 대체하는 등 코로나 시기에도 어떠한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온라인 줌(ZOOM)을 통해 예배에 참석하는 아이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현장의 예배를 잊지 않고 기억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지면서는 아이들이 교회로 모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욱 커지게 되었고 방역 지침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점점 교회로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아동부 예배가 한주도 쉬지 않고 상황에 맞게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와 가정에서 힘쓰는 모습들은 아이들이 교회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2. 열매반(6,5학년) / 믿음반(4학년)]

    [사진2. 열매반(6,5학년) / 믿음반(4학년)]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식 무릎을 굻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6:10)』

     

    현재 아동부는 교회와 성도님들의 배려로 안식일 오전 예배를 대예배당 맨 앞자리에서 드리고 있습니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게 된 모습은 달라졌지만 코로나가 있기 전으로 돌아간 듯 돌아와 있습니다. 현재는 아동부의 저녁 예배 출석도 많이 늘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새벽 축구 모임에도 아동부의 1/3 정도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축구가 끝나고 난 후에는 교회에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사진3. 소망반(1,3학년) / 사랑반(유치,유아반)]

    [사진3. 소망반(1,3학년) / 사랑반(유치,유아반)]

     

    코로나로 예배를 드리기 힘든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동부는 아직 어리지만, 하나님께서 어린 마음에도 예배의 갈급함을 허락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코로나는 예배와 신앙을 위협하였지만, 아동부는 믿음 안에서 그만큼 성장하였습니다. 코로나와 같은 위기는 우리에게 또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동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하여 또 극복하리라고 믿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복음메시지] 분노 (마5:21-26)

    [말씀제목] 분노 (마5:21-26)

    [설교자] 김용준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5)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제자들도 이 말씀을 받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살인하면 그 결과는 사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창 9: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살인하면 그 사람이 자기 피를 흘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엄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제자들과 청중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증거 하실 때, 그들은 이것이 엄중한 말씀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는 ‘나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하나님 앞에 살인한 일이 없으니, 하나님 계명을 어긴 일이 없고 의롭게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살인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의 참 뜻을 그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주신 당사자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계명의 참 뜻을 밝혀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 마음은 무엇인가요? 이 계명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어떤 수준의 거룩을 요구하시는가요?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심판이란, 사람을 죽인 자가 받는 사형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에게 노하면 살인자가 받는 벌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형제에게 욕설하는 자는 공회의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 모독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 즉 살인자는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분노’에는 ‘뒤모스(θυμός​​​)’와 ‘오르게(ὀργή​​​)’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뒤모스’란, 금방 붙었다 사그라드는 불입니다. 즉, 일시적으로 타오르는 분노입니다. 욱하다가도 금방 사그라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분노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의 분노는 ‘오르게’입니다.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닙니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이 말씀을 통해, 분과 죄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분노를 품는 것입니다. ‘오르게’는 ‘뒤모스’와는 달리, 지속적인 분노를 가리킵니다. 지속적인 분노를 가지고 악의를 가지고 남을 해치려 하는 미움을 품는 것이 ‘오르게’입니다. 분노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습니다. 해가 지도록까지입니다. 새로운 날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분노를 품고 버리지 못해서는 안됩니다. 즉, 분을 내어도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뒤모스와 같은 분노를 느낄 수는 있으나, 그 분노를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창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아주신 것에 대해 가인이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죄의 소원은 그에게 있으나 그것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노를 죄가 되도록 연결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악의적인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까닭은, 살인이 노하고 미워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살인은 미워하고 분노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러한 분노를 살인죄로 규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분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마음에는 창고가 있습니다. 그 중 분노의 창고가 있습니다. 그 창고에 두고두고 분노를 쌓아갑니다. 이 분노를 쌓아 증오로 발전하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것이 증오로 바뀐 후에는 말이 변합니다. 험악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눈으로 그를 보게 됩니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면 말이 좋게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노는 죄입니다. 분노의 창고에 분노가 쌓이면, 상대가 아무리 작은 잘못을 해도 폭발하게 됩니다. 남편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작은 일에도, 분노를 쌓아 증오를 품게 된 아내는 폭발하게 되는 것입이다. 이러한 분노의 마음이 마귀에게 이용당하는 근거가 됩니다.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미련한 놈’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 말입니다. ‘똥멍청이’, ‘바보같은 놈’, ‘골빈 놈’, ‘머리 빈 깡통’ 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은 마음에 분노가 쌓여 증오를 품고 상대를 깔아뭉개는 것입니다. 분노를 쌓는 사람을 살인자로 규정하시는 말씀 앞에 우리는 두려워 떨어야 합니다. 우리가 삭이지 못하는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살인이기 때문입니다.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러한 분노를 품은 사람이 살인자입니다. 심리학자의 통계에 따르면, 80%의 부부가 마음 속의 분노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사소한 일로 크게 다툰다면, 마음 속에 가만히 숨겨놓은 분노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면 80%가 적중합니다. 문제의 뿌리가 그 분노에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삭이지 못하는 분노가 있습니다. 말씀과 같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면, 우리는 몇 번씩 사랑하는 가족을 몇 번씩 죽이고 있는 것입니까? 문제는, 이 분노는 남뿐 아니라 자기도 죽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형제를 향해 분노하는 자는 예배드릴 자격도 없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마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서로 분노를 안고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면 예배 전에 그 감정을 가져와서는 안됩니다. 그 감정을 먼저 처리하고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으십니다. 분노는 이렇게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분노를 놔둬서는 안됩니다. 잘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처리할 수 있을까요? 네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자기 의를 철저히 배격해야 합니다.

    스스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해석을 듣기 전에는, 우리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 앞에 우리를 비추어보니, 살인자는 바로 나 자신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아직 자기는 남보다 선하고 의롭다고 생각하는 교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의로워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 담긴 계명이 얼마나 높은 수준의 것인지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즉 무지하기 때문에, 혹은 뻔뻔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알면서도 자기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영적 치매에 걸린 것입니다. 자기 의를 버려야 합니다. 계명을 바르게 이해하면, 계명은 살고 우리는 죽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노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분노가 가득 찼다는 것을 인정하고 분석해보아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분노 창고 안에 있는 상처 분노, 시기 분노, 실망 분노, 좌절 분노, 자존심 상처 분노, 애정결핍 분노 등을 확인하여 창고 정리를 해야 합니다. 분노를 확인하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이렇게 많이 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 이것이 얼마나 많은지 보아야 합니다. 그 목적과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시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저주 아래 계셨습니다.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께서 순종하셔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덧입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뒤에 숨어 하나님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님 없이 하나님을 부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옷입고 그 옷에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옷을 입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죄로 얼룩진 옷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나서야 합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될 수 있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 앞에 의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회개하면 된다고 잘못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전부인 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화날 때는 화도 내고, 용서 받기도 하는 식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들을 능력이 없으니, 이런 삶은 애초부터 포기하고 예수님만 믿자, 예수님의 능력만 믿자, 그리고 하루에 열 두 번이라도 형제를 미워해도 어쩔 수 없으니 개의치 말자, 주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면 된다’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로운 자로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중요한 요구가 있으십니다. 주 안에서 살라는 요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거듭나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은, 주 앞에서 예수님처럼 살기를 작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이 목표를 잃으면, 우리는 죄를 짓고 회개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가 있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삶을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반드시 이루려 하는 목표를 놓지 않고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소망을 품을 때 자신의 연약함에 절망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해주셨는데, 왜 나는 분노 가운데서 살아가는지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

    그러므로, 넷째로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철저히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에 대해 잘 몰랐던 구약 시대 사람들은, 형제에 대한 분노를 느껴도 처리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은 도우미입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릅니다. 보혜사는 무엇입니까? 보혜사는 내 곁에서 내 연약한 것을 돕도록 보내심을 받은 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까닭은, 내 속의 연약한 점을 도와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즉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이 일을 하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하시고, 과거에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별 수 없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항상 우리에게 예라고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작은 예수로 살 수 있다고,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향하여 분노를 가질지라도 그 분노가 쌓이지 않도록,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이 있으므로 성령에 의지해야만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에 의지하여 매일 기도하면, 매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까지 용서하게 됩니다. 보기만 해도 화가 나는 일에 대해서도 불쌍히 여기게 됩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잘 관리해서 죄에 이르지 않게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분노가 창고에 쌓이게 되면 결국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분노로 말미암아, 내 인생과 천국의 영원한 삶을 준비하는 내 믿음이 깨지고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의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분노의 창고를 청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여 상처받은 마음이 회복되고 성령께서 주신 참된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게 임하여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유트브 예배링크 

    글쓴이  이혜림

  •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사랑은 ing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사랑은 ing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전 3:5~6)

     할렐루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민들레지역아동센터(이하 민들레센터)가 개소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국에 계신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의 관심과 기도로 민들레센터는 장항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도 돌보아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2019년, 지역사회 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민들레센터의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일 먼저 센터와 교회는 장항 지역 내 센터 아동들과 접촉하고자 힘썼습니다. 2~3개월에 한번 센터 프로그램을 통하여 아동들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매월 2회씩 자원봉사를 통하여 아동들과 접촉 하는 횟수와 시간을 좁혀갔습니다. 교회에 초청도 하며 작년 9월부터는 안식일마다 아동들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7명의 아동들과 교회에서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올해 초에는 17명의 아동들과 교회에서 만나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월 말에 코로나19로 인하여 만남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마비되었고 일상생활 및 종교생활 중단으로 복음전파 사역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진행되어야만 했습니다. 민들레센터 내 아동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멈추지 않고 진행 중입니다. 지금부터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민들레센터를 어떻게 사용하시고 있는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1. 자원봉사활동으로 쓰고 변화라 읽는다. 

    • 현재 민들레센터에는 36명의 아동이 있습니다. 센터의 아동들은 가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결핍이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평소 아동들의 언행이 거칠고 공격적이어 하루가 전쟁 같은 나날의 연속일 때가 있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나서 센터는 긴급 돌봄 체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최소한의 아동들만 수용하여 돌봄이 진행되었습니다. 내부, 외부 활동이 모두 금지되어서 할 수 있는 활동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동안 해오던 것을 다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는 최소한의 인원만 배정하여 상황을 보고 월 1~2회 자원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교회 교사가 아동들과 함께 요리, 만들기, 놀이 활동 등을 하며 아동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전에는 2명의 교사가 15명 또는 20명의 아동들을 접촉하고 활동하다보니 아동들과 대화를 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8~9명의 아동과 함께 하다 보니 아동들의 말을 좀 더 깊이 있게 듣게 되고 아동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아동들도 교회 교사에 대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받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평소에 아동들의 난폭한 언행이 감소되고 집중력이 향상되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노력해도 안 되던 것들이 자원봉사를 통해 교사와 아동들의 짧은 시간의 만남 가운데 말과 행동의 변화를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사들을 통하여 아동들의 마음에 사랑을 느끼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2. 안식일센터특별활동은 코로나19도 막지 못한다. 

    – 자원봉사를 통한 아동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안식일 센터특별활동을 통하여 아동들과의 만남은 지속되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조율을 하고 방역 지침을 지키면서 주 1회 안식일 오후 3시 30분에서 5시에 아동들을 만나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매주 안식일 활동 담당자를 정하여 아동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만들기, 체육활동, 과학놀이, 요리활동 등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아동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구도자교육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점차 확산이 되면서 교회에서 아동들과의 만남이 잠시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대신 주 1회 안식일 활동 담당자들이 아동들을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활동하지 못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서 집에서만 있을 아동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하여 전달하였습니다. 만들기 재료와 함께 때로는 간식을, 때로는 선생님들의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제작하기도 하고 편지를 담은 선물과 다양한 방법으로 아동들에게 줄 것을 준비하여 아동들의 집으로 찾아가 전달하였습니다. 안식일 활동 담당 교사들은 아동들에게 전달할 것을 준비하면서 아동들을 생각하고 마음으로 품는 기회가 되었고, 교사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동들을 기다리고 계시고 사랑하고 계시는 마음을 전달하였습니다. 아동들 또한 교사들이 찾아오는 시간을 기다리고 전달해주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며 교회에 오고 싶어 하는 마음을 비추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 오늘도 우리는 때가 이르면 거둘 것임을 믿는다. 

    • 이런 상황 속에서도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되어 짧지만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축구관람도 하고 1박2일 여름캠프도 다녀오고 뮤지컬관람, 운동회, 문화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추억을 만들었지만 올해는 딱 두 번의 활동을 통하여 아동들과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타 지역으로 가는 것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 교회 마당에 수영장을 대여하였습니다. 대형풀장과 슬라이드를 설치하여 아동들과 하루 종일 교회 마당에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였습니다. 코로나19 속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11월에 잠시 코로나가 주춤하는 상황을 틈타 아동들과 가을을 느끼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함께 숲속체험과 원예치료활동을 하며 아동들이 마음껏 뛰어 놀며 그동안 억압 되었던 감정들을 해소하며 교사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활동은 보호자분들에게도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역사회 내 민들레센터가 하나님의 사랑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루실 계획을 기대하며 아동들과의 연결된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상황 가운데 가장 염려되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든 사회의 시선이 교회로 향했던 때였습니다. 그 시선이 긍정적인게 아니라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그 영향은 우리 교회도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도 활동을 결코 멈출 수 없었습니다. 한 주라도 아동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철저히 방역을 지키며 아동들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호자분들 또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과 관련 없이 만남을 허락하여 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씩이지만 민들레센터는 가랑비 옷 젖듯이 아동들에게 서서히 스며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민들레센터를 통하여 역사하실 일들이 기대가 됩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상황임은 분명하지만 하나님은 전도의 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사랑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날까지 민들레센터의 전도사역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또한 곳곳에서 후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전국의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 21년 동계 대학부 영은회 사역현장보고서

    21년 동계 대학부 영은회 사역현장보고서

    할렐루야~!

    2021년 동계 대학부 영은회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대학부 영은회는 위드코로나의 시행으로, 많은 대학부들이 영은회를 다 함께 모여 대면으로 진행하기를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대학부 영은회는 총회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위드코로나의 여파 때문에 코로나 확진자 수는 급격하게 증가했고, 정부에서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을 다시 시행하는 등 상확이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일주일을 남기고 대학부 영은회는 축소해서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기존 총회에서 3박 4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영은회는 권역별로 세 곳으로 나누어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서울/경기/강원 지역은 대방교회, 충청 지역은 청주교회, 전라/경상 지역은 전주교회에서 영은회가 진행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세 곳으로 나누어져 진행되는 만큼, 더 많은 일꾼과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일주일만에 변경된 일정에 맞춰 준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믿음의 동역자들과 각 교회의 지원으로 부족함 없이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영은회가 축소되어 진행되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줄어들지 않을거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는 ‘성화의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민수기 말씀에 대해 배우게 되었습니다. 강사님께서는 강의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목표는 ‘거룩’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만큼 ‘거룩’은 영은회의 가장 큰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실패의 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민수기는 끊임없는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과연 이 백성들이 거룩해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강사님께서는 거룩은 상태가 아니라 관계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들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의 거룩에 참예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의 긴 광야생활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성화의 여정이었습니다. 여러 실패를 거듭하며 민수기 21장에서 이스라엘은 드디어 불평과 불만이 죄라는 것을 깨닫는 작지만 큰 성장을 하게 됩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불안정한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은 광야에서만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 제약이 걸리고 기독교에 대한 배척이 심해진 이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치 광야에서 사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영은회가 더욱 은혜가 넘치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돌보셨듯이 우리 또한 돌보신다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화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참예수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