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옥 자매님께서는 5년전쯤 집 인근 산책로를 오가며 운동하던 중, 송세연 자매님을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송세연자매님께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전도심방팀원으로서의 교육과 사역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누구에게라도 전할 수 있도록 항상 주위를 살펴야 한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던 터에, 장한옥 자매님을 길에서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건강이 안 좋아 보였고 운동을 같이 하고 싶으면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 했더니, 장한옥 자매님께서 기꺼이 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전도 대상자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며 오랜 만남의 세월을 보내고, 이제야 하나님의 때가 되어 값진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이번 세례식에 두 따님이 참석을 하였습니다.
사실 교회에 가는 줄 알고(세례식을 하는 줄 모르고) 따라와서 처음 모습은 당황스러워 보이기도 하였으나, 세례식이 끝나고 또래 여신도회와 게임도 하고 차도 한잔하며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또 한 번의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장한옥자매님께서는 안수를 받으며 펑펑 우셨습니다. 마음이 무척이나 가난해 보였습니다. 이제 막 주님의 자녀로 거듭난 장한옥 자매님의 신앙과 평안을 위해(또한 다시 볼 날일 있을 두 따님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이번 영은회에선 깨닫고 느낀 것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가기 전 많은 생각과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영은회를 통해 제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선 하나님께서 이끄신 믿음의 길을 간 믿음의 조상들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배울 때, 저는 아브라함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만 하며 순탄한 길을 걸어왔을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도 실수를 하고 죄를 지으며 점점더 믿음이 견고해졌고,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연약한 모습에서 후에는 하나 뿐인 아들 이삭을 바치는 견고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저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며 종종 엇나가지만 교회 안에서 더 열심히 배우고 깨달으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쁜 신앙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번째로 이삭과 요셉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맞게 항상 순종하고 불평하지 않았으며 성실하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정말 이게 가능한가.?’ 라는 생각도 들고 힘들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삭과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좋은 완전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이런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에 대해서 배울 때, 야곱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장자로 만들 것이라고 하셨는데 믿지 못하고 스스로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에서 벗어나 마음대로 가고 있진 않을까 하며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번 영은회에서 들은 강의를 통해 하나님께서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도 깨달음을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사랑이 정말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선 정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계획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쓰임 받고 싶었습니다.
끝으로 이번 영은회에서 배운 것들을 다짐하며 쓴 기도문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이번 영은회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음의 길을 걸은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 배웠습니다.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과 유혹이 있었지만 점점 더 견고해지는 믿음을 보며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길을 가는 저 이지만 항상 하나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고 저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요. 하나님과 더 가까이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앞으로 하나님께서 주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살아갈게요. 세상에서 구별되는 빛과 소금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게요. 세상의 즐거움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나님 저를 도우셔서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담담히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세요.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칠 믿음과 이삭의 조건 없는 순종, 야곱의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아는 깨달음, 요셉처럼 유혹을 뿌리치는 힘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실을 본받아 믿음의 길을 걷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계획의 끝에서 모두가 믿음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자녀되길 소망합니다. 이상으로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 드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엄마의 믿음을 따라 참예수교회를 다니던 때부터 고사리 손을 모으고 성령받기를 기도해 왔던 아영이의 짧은 간증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참예수교회 12살 장아영입니다.
교회는 4살때부터 엄마를 따라 다녔고 세례는 7살때 엄마와 함께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성령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빠가 교회에 오시고 세례를 받으시면서 아빠보다 빨리 성령을 받고 싶어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나고 아동부 영은회에 참석하여 간절히 성령을 구하며 큰 소리로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때 내 몸이 내가 떨고 싶지 않아도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방언 소리와 내 몸이 저절로 떨리는 것이 무서워서 할렐루야를 더 크게 외쳤습니다. 그렇게 기도를 20분 정도 하고 마쳤을 때 목자님께서 나와 친구 한 명을 부르셨고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 기도 시간 부터는 방언이 나오고 몸이 저절로 떨려도 열심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영은회 마지막 날 성령을 받았다고 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아영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아빠도 성령을 받을 수 있게 기도하겠습니다.
마리아신도회는 70~80대(평균연령 75세)의 자매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자체적 신앙 활동에 다소 어려움이 있으나, 교회 지원으로 일년에 한 두 차례 ‘효 여행’과 ‘식사 모임’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운전을 할 수가 없어 활동에 제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버스 및 도보로 전도와 심방 활동에 어느 신도회 보다도 열심을 내고 계십니다.
오랜 시간 비와 바람을 이겨내고 따스한 햇살을 받아, 이제 막 따기 직전의 농부가 매우 아끼고 있는 사과나무의 무르익은 열매처럼, 인생의 모진 풍파를 신앙의 힘으로 이겨내시고, 그 무르익은 신앙의 모습이 많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16:31)
신도회 예배 시간이면 오랜 인생의 깊이에서 묻어나오는 신앙적 삶의 이야기가 많은 은혜가 됩니다. 이것은 여느 신도회에서 느끼는 바와는 조금 다른, 오랜 신앙적 경륜의 마리아신도회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어른이 많습니다. 청년과 젊은 신도회가 신앙의 힘으로 우리 청주교회를 이끌어 오셨던 교회 어른을 공경하며 그 바른 신앙을 계승하고자 합니다.
2020년은 인류사에서 잊지 못할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로 인해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낳았다. 그로 인해 팬데믹이라는 생소한 용어도 알게 되었고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인지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비록 해제된 지 2년이 지났지만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사건은 오늘 날 세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세계의 학자들은 21세기를 코로나 이전 시대와 코로나 이후 시대로 양분한다. 이 사건이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결과의 원인이 매우 놀랍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매우 단순한 구조의 바이러스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팬데믹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익이 있다. 첫째는 미래를 예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또 순식간에 멸망에 이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우리는 경성해야 한다. 둘째 유익은 우리 교회의 가치와 영향력에 대한 낙관이다. 작은 바이러스가 이렇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군소 교단인 우리 교회도 상상할 수 없었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미래가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현재 다수냐 소수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미래에는 소수가 다수도 될 수 있고 다수가 소수로 전락할 수 있다. 설사 소수의 규모에 머문다 할지라도 그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규모 때문에 위축될 필요가 없다. 또 이런 말씀도 있기 때문이다.
(눅 12: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산상보훈 가운데 팔복 설교를 살펴보았다. ‘복이 있나니’라는 주님의 선언의 내용이 여덟 개의 주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팔복이라고 했다. 이 여덟 개의 주제는 천국 백성의 속성에 대해 말한다. “천국 백성은 이러한 성품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품을 가진 자에게 이런 복이 있습니다.”라는 것이 그 내용이다. 거기에 이어서 오늘 말씀이 주어지고 있다. 이러한 성품의 천국 백성은 결국 “세상에 이런 영향력을 미칩니다.” “천국 백성은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실 때 예수님이 비유를 사용하시고 있다. 바로 소금과 빛이다.
먼저 발견되는 점은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는 빛’이다. 라고 표현되지 않고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세상의’라는 수식이 붙는 것은 성도란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들어가 은둔하면서 살면 안된다는 뜻이다.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타인과 함께 생활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전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그러면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고 그런 존재가 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뜻인가? 그 교훈을 얻기 위해 우리는 소금과 빛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소금과 빛의 공통점을 주목하면 그 의미와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가늠할 수 있다. 둘의 공통점은 이렇다.
첫째, 소금과 빛은 부패와 오염을 방지한다.
(엡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소금은 살균력이 있어서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그래서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음식물 오래 보관하는 방법은 바로 소금에 절여 놓는 것이다. 안동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하는 음식 중에 간고등어가 있다. 바닷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경북 안동 지방 사람들이 생선을 먹으려면 운송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부패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상하지 않게 하려고 고등어를 소금으로 절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명물이 되었다.
애굽에서는 죽은 시체를 미이라로 만들 때 소금물에 넣어두었었다.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가 하면 집안 살림 용품 중에 찌든 때를 제거하고 소독 청소하는 ‘락스’라는 제품이 있다. 이 ‘락스’는 화학상의 원료가 바로 소금이다. 이처럼 소금에는 부패와 오염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빛도 마찬가지로 부패를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 지하실 같은 어두운 장소에는 세균이 득실거린다. 그러나 그곳에 햇볕이 내리쬐거나 그곳의 물건들을 햇볕에 내놓으면 태양광 자외선에 의해서 깨끗이 살균된다.
병원에서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일에 사용하는 장비가 있다. 방사선을 사용하는 장비이다. 이런 장비는 빛을 고 에너지로 농축시킨다. 그래서 암환자의 환부에 쪼이면 암세포가 사멸하게 된다. 이처럼 빛에는 병을 치료하는 기능이 있다.
그런가하면 어두운 밤거리를 비추는 방범등이 있다. 방범등은 청색이 많은데 이는 흰색등보다 더 멀리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색등을 방범용으로 활용하면 범죄율이 감소한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빛과 소금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부패와 오염을 방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성도를 일컬어 “너희가 바로 그런 존재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소금이 그런 속성을 가지도록 만드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빛 안에 그런 속성을 넣어두신 것처럼 천국 백성 안에 그런 성향을 가지게 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키라는 뜻이다. 그 정체성에 충실하면 세상 속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골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세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들려오는 말에는 냄새나 향기가 있다. 비방의 말, 원망의 말, 남을 깍아내리는 말, 자기 신분에 걸맞지 않은 말은 마치 부패하는 음식 냄새와 같다. 역겨워서 그 자리를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반면 칭찬의 말, 감사의 말, 은혜를 끼치는 말, 자기 신분에 합당한 말은 방향제를 뿌린 것처럼 향기롭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 곁에는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이처럼 내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신분에 맞는 언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불신자들은 자신들의 무리 속에 경건한 성도가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긴장한다. 그래서 함부로 상스런 말도 못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부디 썩어져 가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은혜로운 언어를 통해 부패를 막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란다.
둘째, 소량이지만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바다에서 염분의 양은 3.4%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게 작은 비율의 염분 때문에 바다물은 썩지 않는다. 염분은 바다를 썩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도 필수적인 광물이다. 염분은 사람의 혈관 벽에 붙어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혈관이 딱딱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또 장내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장의 움직임을 원활하게 해서 장내 음식물이 부패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처럼 아주 작은 양이지만 소금이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빛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밤중 망망대해에 떠있는 배들은 항구를 찾아오기 위해서 수많은 조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몇 십 개 몇 백 개의 등대가 필요하지 않다. 불이 켜진 한 개의 등대만 있어도 배들이 악천후에도 안전하게 항구로 되돌아오기에 충분하다.
가로등도 없는 시골길에서 행인이 보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빛을 필요할까? 작은 손전등 하나만 있어도 밤길을 가기에는 충분하다. 그것으로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다.
작은 빛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소금이 아무리 그 분량이 적을지라도, 또 빛이 광도가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필요한 때에 필요한 곳에서는 그 영향력은 충분하다. 주님은 바로 천국 백성인 성도를 그런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부디 그런 사실을 이해하고 세상 속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자.
(빌 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셋째, 자기 희생을 통해 유익을 준다.
팔레스틴의 소금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소금과는 많이 다르다. 당시 그 사람들은 바다에서 소금을 취한 것이 아니라 육지에서 소금을 취했다. 이것을 암염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돌과 소금이 섞여 있는 것이다. 사해 주변에는 암염이 많이 있다. 이 암염으로부터 소금을 체취하는 과정은 이렇다. 암염을 물에 넣으면 염분 성분은 녹고 돌 성분만 남는다. 그렇게 물로 녹여낸 염분을 다시 증발시키면 소금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물로 염분을 녹이는 일을 반복하면 나중에는 염분이 다 빠지고 돌 성분만 남게 된다. 이렇게 염분이 다 빠졌으니 이제 소금을 얻을 수 없고 그런 암염은 길바닥에 내다버렸던 것이다. 그러면 그 맛잃은 암염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혔던 것이다. 본문 말씀에 맛 잃은 소금이 발에 밟힌다는 뜻은 이런 배경아래 나온 표현이다. 이처럼 암염이 맛을 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물에 자기를 녹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바로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이다.
빛도 유사한 특징이 있다. 예수님 공생애 시대에 이스라엘의 가옥 구조는 단순했다. 오늘날처럼 채광이 잘되는 구조가 아니다. 출입문이 하나요 창문은 작았다. 그래서 대낮에도 실내는 매우 어두웠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주간에도 항상 등잔불을 켜고 생활해야만 했다. 따라서 전기도 없던 그 시절에 등잔은 모든 가정이 구비하는 필수품이었다. 그 등잔에 불을 밝히려면 기름이 필요했는데 그 기름의 원료는 바로 감람유, 올리브유였다. 올리브유는 정제해서 가장 먼저 추출되는 것을 엑스트라 버진이라고 해서 식료품으로 사용한다. 보통 네 차례정도 추출하는데 가장 나중에 추출되는 질이 낮은 올리브 오일을 등불용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실내에 빛을 비추려면 등불을 밝혀야 했고 등불을 밝히려면 기름이 태워져야 했다. 즉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과정이 필요했다.
이렇듯 소금을 보아도 등잔불을 보아도 녹아지고 태워져야 한다. 녹아지고 태워지는 희생의 과정이 없으면 존재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다. 이처럼 성도가 천국 백성이라는 존재로서 의미가 있으려면, 자기 사명을 완수하려면 반드시 자기희생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그런데 그 희생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첫째는 내가 세상 속에서 신앙인이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소위 커밍 아웃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다운 말과 행동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고 대화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는 참 성도의 모습이다. 만약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마치 염분이 다 빠진 암염과 같다. 그것은 마치 등잔불에 소쿠리를 덮어 놓은 것과 같다. 부디 자기 정체와 자기 신앙을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밝히고 드러내는 성도가 되자.
예)참예수교회의 초기의 발전에 자기희생의 목자님들이 있었다. 세무서 공무원의 안정적인 신분도 마다하고 나아가 순교도 불사하고 목회의 길을 나선 박필선 목자님 같은 분들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분 한 분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에 사회로 나가지 않고 한 달에 쌀 한 포대 정도의 노임만 받고 희생한 원로 목자님들이 있었다. 이렇게 자기를 내어주는 목자님들이 있었기 때문에 참예수교회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 희생의 전통은 끊어지지 않고 대물림 되었다. 어떤 목자님은 사회 속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위해서 목회의 길을 선택했다. 자기를 내어주는 희생의 정신은 앞으로도 그 전통이 되어 이어질 것이다.
그런 현실을 볼 때 저는 비록 우리 교회가 소수지만 미래가 매우 밝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금과 빛의 역할이 살아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살아있으면 우리 교회는 미래에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결과를 나타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성도님들은 어떻게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모두 목회자가 되어야할까? 박필선 목자님처럼 다른 원로 목자님들처럼 그렇게 목회자의 길을 가라는 것인가? 순교라도 하라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성도님들은 최전선에서 세상과 접촉하며 영적인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소속한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면 소금과 빛의 사명을 완수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그리고 그 자기 정체에 일치하는 삶을 살자. 세상으로부터 저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칭찬을 듣자. 여기까지 가면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고전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세상의 사람들은 소유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우리는 소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지 않았다. 세상을 위해 내어주기 위해서 왔다. 주님이 먼저 십자가에서 그 모범을 보여주셨다. 부디 주님이 남기신 모범대로 빛과 소금의 본분을 다하는 성도가 되자. 나를 통해 세상이 변화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 그 사명을 감당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천국의 기업을 상속하시는 저와 성도가 다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한다.
할렐루야! 이번 청주교회 성도 소개로 김복순 자매님을 소개하려 합니다. 2019년 10월에 세례를 받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고, 올해 2월에 성령을 받으신 김복순 자매님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김복순 자매님은 청주교회 박성호 집사님의 장모님이자, 저(박은우 형제)의 외할머님 되십니다. 저희 어머님은 가정에서 혼자 참예수교회를 나오셔서 신앙생활을 한 순간부터 가정을 전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시고 자녀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신앙을 가지시기 전까지 김복순 자매님은 세상의 미신이나 세상의 말을 믿으셨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들으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고, 저희 어머님과 저희 가정의 기도를 들어주셨고 교회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시다가 마침내 2019년 10월 6일에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이후에도 신앙의 어려움이 있으셨지만, 마리아 성도분들과 교회 성도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점점 그 마음을 여셨고 스스로 성경도 읽으시고 기도도 하시고 주기도문을 외우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받기를 간절히 원하셨고, 기도 중 2024년 2월 3일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신 날 저희 가족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었지만, 성령을 받으신 이 날의 기쁨은 더욱 배가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 뿐 아니라 교회의 모든 성도분들이 기뻐해주셨고 함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응답하시는 때를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시기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응답해주십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포기하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A.청주교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인사에 감동을 받아 우리 모두가 정말 주 안에서 한 가족인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청주교회는 아동과 학생부들의 예배 참석이 꾸준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또 성도님들께서 전도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이신 것 같아서 본받고 싶습니다. 최근에 제가 교회에서 교사 사역을 맡기 시작했는데 기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께서 저를 이곳 청주로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Q.대학 생활 중 어려운 점이 있다면?
A.크게 어려운 점은 없는 것 같아요.
Q.이루고 싶은 목표와 앞으로 신앙생활의 목표가 있다면?
A.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나중에 외국으로 나가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마지막 날에 영생을 얻는 것이 제 신앙생활의 목표입니다.
Q.다른 사람들에게 참예수교회를 소개한다면?
A.참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교회, 참 진리가 있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교회라고 소개할 것 같아요.
대학 진학을 위해 자신이 살고 있던 정든 고향을 떠나 타 지역으로 가는 많은 청년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고향을 떠나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으로 간 아브라함이 생각납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살았고 믿음의 조상이 된 것처럼, 자신의 집을 떠나 타 지역에서 대학생활을 하는 모든 참예수교회 청년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에서 떠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세워지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저희 가족은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마음이 뜨거워져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가족에게 알리고 전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영은전도대회에도 초대하고 설교 말씀도 보내드리고 만날 때마다 권면도 하였지만 그럴수록 부모님들은 더욱더 거리를 두셨습니다.
저희들의 권면이 부담스러우셨는지 한동안 얼굴도 뵙지 못하고서야 너무 성급하게 마음이 앞섰던 게 아니었나 반성이 되었습니다. 이후로는 전략을 바꿔(?) 아예 교회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역으로 질문도 하시는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그래도 여전히 ‘너희 교회에서 잘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다 옳다고는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움직여 주신다는 생각에 감사했고 가족 전도는 장기전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화면으로 너희들 잘 지내는 것 보고 있다고 하셔서 무슨 말인가 했더니 청주 교회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설교며 특별 찬양 발표며 간증이며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싫으면 그림자도 꼴보기 싫다는데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신다니 저에겐 긍정적인 반응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는 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대만 참예수교회 방문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출발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대만에 가는데, 부모님도 언젠가 꼭 같이 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다녀오고 나서도 대만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곳의 성도님들께 받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드렸는데 굉장히 귀 기울여 들어주셨습니다. 분위기가 좋아지자 주님이 주시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으로 기도하며 권면했습니다. “마침 오늘 저녁(금요일)에 예배가 있는데 장항서부교회로 함께 가서 예배 드리면 안 될까요?”하고 말이죠~ 저는 무뚝뚝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애교 섞인 코맹맹이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순간 당황하시다가 “그러지 뭐~”라고 응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감사주!!
저는 어린아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기뻐했고 뒤늦게 무슨 일이냐며 어머님이 오셨지만 이미 아버지가 약속하셨으니 무르시면 안 된다고 우겼습니다. 어머님도 웃으시며 그러자고 하셨고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뒤 장항서부교회로 향했습니다. 군산인 아버지 댁에서 장항서부교회는 차로 20분 정도 되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또 마침 그 때 윤석원 목자님께서 장항으로 이사를 오신 날이었고 첫 설교를 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0:35 주는 것이 복이다> 라는 말씀이었고 이미 ‘복’이신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우리 자체가 복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니 믿는 성도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가 아닌 “새해 복이 되십시오”라고 인사하자고 하셨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옆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께서 저에게 “새해에도 복이 되렴.” 하고 인사해 주셨고 저도 화답했습니다. 예배가 어떠셨냐는 질문에 “젊은 목자님께서 말씀을 명료하게 잘 하신다.”라며 칭찬하셨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부모님과 함께 예배드린 기념사진을 깜박했어요, 기념으로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라고 하니 아버지께서 못 이기는 척 “그럼 돌아가서 찍든가.” 하시더군요, 어머니는 웃으시며 너 이거 너희 교회 월말 발자취 영상에 올릴 거지? 하셨고요. 진정 구독자가 맞으시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일이 이렇게 빨리 올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물론 부모님이 당장 참예수교회에 오시겠다고 하신 것도 아니고 세례를 받으신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내가 잊고 있을 때에도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일하고 계셨다는 생각에 너무나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 손을 꼭 잡으며 우리 더 열심히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성도님들께서도 함께 기도 부탁드리고 저처럼 전도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들이 언젠가 이뤄질 기도 응답의 소망을 품고 열심히 전진하시길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영광 감사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