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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소식] 하나님도 기뻐하신 세례식을 소개합니다

    [교회 소식] 하나님도 기뻐하신 세례식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주 교회에 기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지난 6월 28일(일), 신형섭 형제와 김경희 자매의 셋째 자녀인 신동윤(22년생) 어린이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맑고 화창한 날씨 가운데 세례식이 진행되었고, 많은 성도님들의 축복 속에서 동윤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세례식은 특히 더 특별했습니다. 오랫동안 세례 받기를 소망해 온 동윤이가 드디어 세례를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윤이는 아동부 분반 시간에 세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늘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는 아직 세례 못 받았는데…”라고 말했고, 교회에서 성찬례가 있을 때면 “나는 왜 안 줘? 나도 먹고 싶은데”라고 이야기하며 늘 세례를 받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런 동윤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모든 성도님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날이 반드시 있음을 믿으며 기도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 소망의 날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세례를 받으러 가는 동윤이의 모습은 더욱 사랑스러웠습니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세례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부활함으로 죄 사함을 받으며 새 생명을 얻게 되는 성례입니다.

    세례식 당일날, 물가로 향하는 동윤이의 발걸음은 신난 표정만큼이나 가벼웠습니다. 목자님께 안겨 있을 때에도 계속 싱글벙글 환하게 웃으며, 선언하시는 목자님의 손동작을 따라 하면서 그토록 기다리던 세례를 받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물속에 온몸이 잠겼다가 올라오며 동윤이는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한마디를 외쳤습니다.

    “아이~ 시원하다!”

     

    그 한마디에는 오랫동안 기다려 온 세례를 마침내 받았다는 동윤이의 기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세례의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기쁨으로 가득했던 동윤이의 모습은 함께한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큰 웃음과 감동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후 세족례와 축하식을 통해 온 성도가 함께 기쁨으로 동윤이의 세례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한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첫걸음을 내딛는 귀한 순간을 온 성도가 함께하며 축복할 수 있어 더욱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신동윤 형제가 주 안에서 믿음으로 건강하게 자라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언제 어디서나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동윤이의 가정이 믿음 안에서 더욱 굳건히 세워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이 늘 함께할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랫동안 세례를 소망했던 동윤이의 마음을 아시고 가장 좋은 때에 그 소망을 이루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순간을 인도해 주시고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https://youtu.be/OapY9v4jnn0?si=FR61ATt0tg5I05_H

    글작성 : 이예지 자매

  • [성도 소개] 일곱살 김성연 어린이, 성령을 받다!!!

    [성도 소개] 일곱살 김성연 어린이, 성령을 받다!!!

    [김성연 자매 인터뷰]

     

    1. 몇 살 이신가요?
    2. 7살이요.

     

    1. 성령을 받으셨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2. 잘 모르겠어요.

     

    1. 성령을 받을 때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셨나요?(기도제목은?)
    2. 엄마가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고 아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어요.

     

    1. 어떤 자세로 기도하셨나요?
    2. 무릎 꿇고, 눈 감고, 손 모으고

     

    1. 평소에 아버지께도 기도 자세를 가르쳐 준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알려주나요?
    2. 손 높이 들고! 깎지 끼고! 무릎 꿇고! 엉덩이 들고! 라고 말해요.

     

     

    할렐루야~! 기쁜 소식입니다. 청주교회 7살 김성연 자매가 2026년 7월 31일 금요일 저녁 기도회 시간에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른 시기에 성령을 받은 만큼 주변 성도님들에게도 놀라운 소식이었는데요,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소식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김성연 자매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드리자면 허나겸 자매님과 김진범 형제님의 외동 딸로 올해 7살, 청주교회 소망반에 속해있는 어린이입니다. 평소에 무척 솔직하며 활발하고, 친화력도 좋아 친구들과 선생님, 성도님들에게 많은 이쁨을 받고 있습니다.

     

    김성연 어린이는 이 전부터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목자님과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었습니다. 그러다 금요일 저녁 기도회 시간에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일곱 살이라는 나이가 어떻게 보면 매우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뭘 알까 싶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김성연 어린이는 성령을 구해야 함을 알고 바른 자세로 기도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재밌는 점은 아버지에게도 기도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입니다. (“손 높이 들고! 깎지 끼고! 무릎 꿇고! 엉덩이 들고!” – 인터뷰 참고) 아버지인 김진범 형제님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 하셨고 현재 투석 치료중에 계십니다. 사랑하는 아빠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을 것이고, 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쓰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셨을 줄로 생각합니다.

     

    오늘날 성령을 받은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기도하고 계신가요? 비록 어린 나이에 성령을 받아 아직은 잘 모르는 시기일지 모르지만 분명 하나님의 크신 뜻이 성연이를 통해서도 이루어가실 것을 믿습니다. 바라옵기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모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기를 구하고 바라며 바른 자세로 기도하길 소망합니다. 앞으로 하나님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갈 김성연 어린이와 그 가정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상으로 글 마치겠습니다!

     

    글작성 : 김진표 형제

  • [신앙의 향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헌신

    [신앙의 향기]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헌신

    바쁜 와중에도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2026년 하계 대학부 영은회 점심 식사 봉사입니다.

     

    대학부 영은회가 개최될 때면 영은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하나같이 “밥이 정말 맛있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괜히 맛있는 것이 아니겠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헌신하시는 분들의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7월에 열린 대학부 영은회에 청주교회 성도분들께서 함께해 주셔서 점심 식사 봉사를 해주셨습니다. 요리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봉사에 임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영은회에 참석한 대학생들도 강의를 듣는 것뿐만 아니라, 신앙의 선배들이 섬기고 봉사하는 모습을 직접 보며 신앙이 한층 더 성장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쁨으로 섬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러한 귀한 봉사를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작성 : 이솔진 형제

  • [성도 간증] 하나님을 위한 섬김을 배운 말레이시아 선교 사역_황수영 자매

    말레이시아 선교 간증 – 황수영 자매

     

    때로는 가장 깊은 울림을 주는 여정이 확신에 찬 발걸음이 아니라 작은 망설임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능력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며, 언어의 장벽이나 부족한 전도 경험을 이유로 하나님의 일을 주저하곤 합니다. 말레이시아 선교를 떠나기 전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저는 선교는 언어의 은사가 있고 믿음이 굳건한 사람들이 하는 사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참여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자.’라는 마음으로 선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도 많았고, 중간에는 ‘괜히 간다고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며 하나씩 준비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말레이시아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1. 타파교회에서 돌아본 나의 신앙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다음 날 타파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교회의 환경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신앙을 지키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정성껏 준비해 주신 음식과 따뜻한 환대에서도 큰 사랑을 느꼈습니다.

     

    예배에서는 서로 언어는 달랐지만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특히 아동부 아이들이 진심을 다해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타파교회를 통해 깨달은 것은 환경이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제 안의 부족한 믿음과 욕심이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 원주민 성도님의 가정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계획

     

    셋째 날에는 페락 지역 원주민 성도님의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산길을 오래 달리고 길을 여러 번 헤맨 끝에 작은 산골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며, 먼 곳에 사는 가족들까지 예배를 위해 모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말씀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배 중 함께 부른 찬양 **‘기대’**의 가사가 제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 분만 바라네’라는 고백을 부르며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람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두 알 수 없지만,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심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예배 후에는 정성껏 준비해 주신 전통 음식과 두리안을 함께 나누며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경험했습니다.

     

    1. 미얀마 아동센터에서 품게 된 기도

     

    월요일에는 미얀마 난민 아이들이 있는 아동센터를 방문했습니다. 이전에 이곳을 다녀간 아이들이 다른 나라로 이동한 뒤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처음에는 수줍어하던 아이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마음을 여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제가 특별한 것을 해 준 것은 없었지만, 오히려 아이들을 통해 더 큰 기쁨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참된 진리를 만나 믿음 안에서 자라갈 수 있도록 평생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채워 주신 선교

     

    이번 선교에서 저는 다과 준비를 맡았습니다. 현지 상황과 인원 등을 정확히 알기 어려워 준비하는 과정에서 막막함도 있었습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하나님께 맡기자.’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현지에 도착한 뒤에는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채워 주셨습니다. 부족했던 부분은 현지 사역자들과 함께한 동역자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채워졌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준비하는 순간부터 모든 일정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원하신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1. 선교를 통해 다시 세운 삶의 방향

     

    이번 선교는 제 삶의 방향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현지 사역자분들은 하루 5시간에서 8시간씩 운전하며 저희를 섬기셨고, 자신의 휴가까지 내어 기쁨으로 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위한 섬김이 무엇인지 깊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3월, 제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교를 통해 직업을 선택할 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 선교를 통해 제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임을 다시 새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기억하며,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부족한 저를 사용하시고 모든 과정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할렐루야. 아멘.

     

    글작성 : 황수영 자매

    글편집 : 박은우 형제

  • [복음 메세지] 교회의 일치된 모습(행4:32-37)

    [복음 메세지] 교회의 일치된 모습(행4:32-37)

    [말씀 제목] 교회의 일치된 모습 (행4:32-37)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 날짜] 2026. 7. 11

     

    행4:32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행전 4장 32절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것을 서로 나누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행4:31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이러한 모습은 단순히 함께 모여 생활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했고, 그 결과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자 각자의 생각과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겔11:19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에스겔 11장 19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사야 11장에서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에서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지내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의 본성이나 욕심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사랑이 다스리는 곳임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나타내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갈등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그 하나 됨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시133:1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성령 충만한 기도를 하고 난 뒤 서로를 바라볼 때 더 사랑이 충만하고 하나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는 육적인 가족보다 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생각이 일치해야 합니다.

     

    롬8:27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성령으로 기도할 때 성령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빌4: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되는 비결은 바로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나부터가 하나되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엡4: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장 2~3절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기도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겸손하고 온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교회에 갈등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고, 내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교회도, 가정도, 우리 자신의 마음도 평안을 얻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초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담대하게 증거했습니다. 사도들이 성령으로 권능을 받아 복음을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은혜는 성도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사랑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되어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겼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복음의 은혜를 깊이 경험할 때, 자신의 것을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사랑으로 섬기게 됩니다.

     

    고후8:9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시고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자신을 낮추고 희생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이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내 생각과 내 권리만 주장하기보다 때로는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한 마음과 한 뜻을 이루고, 서로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와 가정과 우리 자신이 이러한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서로를 겸손히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https://youtu.be/CGFvk4SWONQ?si=ii9AsZfEWsPN5k32

    글편집 : 김예영 자매

  • [교회 소식] 하나님이 이어주신 새로운 만남

    [교회 소식] 하나님이 이어주신 새로운 만남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안양에서 청주로 오신 장종규 목자님 가정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청주교회에 참으로 귀한 가정을 보내주셨습니다. 안양에서 청주까지 삶의 자리를 옮겨 새로운 사명을 품고 오신 장종규 목자님 가정입니다. 이번 걸음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기에 더욱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익숙한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온 관계와 정든 교회, 삶의 기반을 내려놓고 새로운 땅으로 향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목자님 가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사람의 계산이 아닌 믿음의 확신으로 한 걸음을 내딛은 모습은 우리에게 큰 도전과 본이 됩니다. 마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순종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1, 4)

    목자님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시는 분이십니다. 설교로만 전하시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선택과 태도를 통해 복음을 보여주십니다. 한 영혼을 향한 진심 어린 관심,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 그리고 조용하지만 흔들림 없는 기도의 자리를 통해 우리는 목회자의 본을 보게 됩니다. 목양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며, 관계는 전략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모님 또한 가정을 든든히 세우는 믿음의 동역자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기도하시며 가정이 먼저 작은 교회가 되도록 힘쓰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한 본이 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세워주는 가정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신앙이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흘러가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자녀들 역시 귀한 순종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예민할 수 있는 시기에 학교를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믿음으로 부모님의 결정을 따르는 모습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 순종의 발걸음 역시 하나님께서 기쁘게 보실 줄 믿습니다.

    청주라는 새로운 환경은 목자님 가정에게 낯설고 조심스러운 자리일 수 있습니다. 문화도, 관계도, 사역의 방식도 하나하나 다시 세워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리라면, 그곳에는 이미 예비하신 사람과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하나님은 결코 헛되이 수고하게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 공동체의 자세입니다. 따뜻한 환영의 한마디, 식사 한 번의 초대, 진심 어린 기도 한 번이 목자님 가정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새로운 사역지는 목자님 가정만의 여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여정입니다. 함께 짐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웃고 울 때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공동체를 새롭게 하십니다. 안양에서 청주로 이어진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습니다. 목자님 가정을 통해 우리 교회가 더 깊이 기도하게 되고, 더 넓게 품게 되며, 더 단단히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렘과 긴장을 함께 안고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라면 그 끝 또한 가장 아름답게 완성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장종규 목자님 가정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학생부, 대학부, 사청부가 함께 찬송으로 환영하는 모습)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간증]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고자 합니다_김연숙 자매

    [성도 간증]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고자 합니다_김연숙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예전에 교회는 그저 가면 먹을 것을 주고 선물을 주는 곳 정도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굳이 그런 곳을 다녀야 하나, 세상에는 할 것도 많고 다닐 곳도 많은데 왜 교회를 가야 하나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교회를 다니기 전 저는 정말 막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흥을 좋아했고 노래방과 나이트도 정말 좋아했습니다. 한 달이면 25일 정도 가위에 눌렸고 귀신을 체험한 적도 있었습니다. 매일 밤 무서움 속에서 잠들었고 집에 혼자 있을 때는 불을 다 켜고 자야 했습니다.

    몸도 많이 아파 병원을 자주 다녔는데, 장치성 형제와 연애할 때 길에서 쓰러진 적도 있어서 간질병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와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때가 아영이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엄마는 참예수교회라는 곳을 다니고 있었고 토요일에 교회에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화를 내며 엄마에게 왜 그런 교회를 다니냐고, 거기 이단 아니냐며 엄마도 그런 교회 가지 말라고 이상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저는 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오창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교회와 멀어져 살고 있던 중 엄마의 연락을 다시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영은회라는 행사가 있는데 와보지 않겠느냐며 엄마가 데리러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싫다고 했고 아직도 그 교회를 다니냐며 오히려 엄마에게 또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도 엄마는 계속 연락하시며 한 번만 나와 보라고, 집에서 아영이와 둘이 있는 것보다 교회에서 놀다가 가라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렇게 심심하기도 하고 약속도 없어서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처음 교회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생각보다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입니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의 인사가 오히려 민망함과 반감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도 예배를 끝까지 드리지 않고 집에 간 적도 많았고, 다시 와도 늦게 오거나 교회 행사 때만 나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엄마와의 연락으로만 교회에 나오다가 다른 분들과도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루디아·에스더 자매님들입니다.

    처음에는 연락만 받고 카톡이나 문자는 거의 답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연락이 귀찮았고 왜 자꾸 연락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면 괜히 미안하고 민망했고, 내가 왜 이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서프라이즈라며 언니들이 집에 찾아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얼굴만 보러 왔다며 오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청주에서 오창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쯤 당시 믿지 않았던 남편 장치성 형제가 교회에서 잘해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분명 돈을 요구할 것이며, 공짜밥이나 공짜로 해주는 것은 나중에 다 갚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지금은 교회를 너무 잘 다니고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담감이 커져갈 때쯤 연락을 안 받으면 이제 안 하겠지 생각하고 연락을 끊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연락을 해주시고 말씀 구절을 보내주시는 자매님들을 보며 처음에는 왜 이러지, 안 다닌다고 했는데 왜 자꾸 연락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도 또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계속 오는 연락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연락만 하며 지내던 중 교회에도 나와 줄 수 있겠느냐는 권면을 받았고, 주말에 할 것도 없으니 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겨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올 때 예배 도중 약속을 잡고 다른 곳으로 간 적도 많았고, 오전 예배가 거의 끝날 때쯤 온 적도 많았습니다. 정말 그냥 놀러 가보자는 마음이었고 점심이나 먹자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교회가 조금 편해질 무렵 교회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고, 교회 오면 낯을 엄청 가리고 교회보다 키즈카페나 다른 곳이 좋다던 아영이가 교회에서 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성경공부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권면을 당시 청주교회를 시무하시던 이요셉 목자님으로부터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교회에 왔을 때 목자님께 저는 배우거나 공부하는 것은 절대 하고 싶지 않고 엄마가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답을 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다시 교회를 멀리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밖에서 언니들만 만나며 지내다가 안식일에는 일이 있다고 말하고 차가 없어서 못 온다고 핑계만 늘어갈 때쯤, 어느 목요일 이요셉 목자님께서 저희 집으로 직접 오셔서 성경공부를 해주시겠다고 꼭 시간을 내 달라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바쁘신 와중에도 와주신 것이었는데 그때는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마냥 귀찮게만 느껴졌습니다. 생각할수록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번의 권면 끝에 성경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는데 제 몸에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주를 미루게 되었고 다음 주도 이상하리만큼 몸이 아팠습니다.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마스크를 쓰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자님께서 안수기도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는데 저는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제 몸을 위해 해주시겠다는 것이었지만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신다는 것이 왠지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성경공부가 시작되었고 제 눈높이에 맞춰 알려주시는 내용들이 마냥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할렐루야를 외치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가위에 자주 눌린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혹시 그런 꿈을 꾸거나 가위에 눌릴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귀야 물러가라”고 외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이후 평소보다 더 심하게 가위에 눌리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목자님이 알려주신 대로 외치자 정말 가위가 풀리고 꿈에서 깰 수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가위에 눌리는 횟수도 줄어들었으며 무서움 속에서 잠드는 날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성경공부를 이어가며 안식일 출석도 다시 하게 되었고 세례를 권면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받을 마음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던 중 주중에 김경희 자매와 최영미 자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던 중 자매님들께서 다시 세례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저는 아직 생각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최영미 자매님께서 시어머니께서 쓰러져 병원에 계신데 세례를 받지 못하고 누워 계신 것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꼭 세례를 받았으면 좋겠다며 펑펑 우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도 갑자기 마음이 너무 아파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세례 공부만 받아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너무 기쁘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시어머니가 쓰러진 순간에도 누군가 세례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울림이었습니다.

    그렇게 세례공부를 시작하고 교회 출석도 열심히 하게 되면서 비로소 교회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 오면 민망하고 낯설기만 했는데, 그때부터는 예배드리는 성도들의 태도와 말씀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와 아영이를 챙겨주시는 성도들과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아이들을 대할 때 나라면 벌써 화를 냈을 텐데 저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대처할 수 있을까 하며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영이가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왜 교회만 오면 착해져?”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회만 오면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았고 마냥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교회 생활과 세례공부를 이어가던 중 다시 세례를 권면받게 되었고 이번에는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너무 반대하고 있었고 뱃속에는 둘째 아윤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뤄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요셉 목자님께서는 너무 겁먹지 말고 기도하면서 이야기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정도 기도한 후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는데 의외로 자기에게까지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다며 허락해 주었습니다.

    세례식 날까지 순탄하면 좋았겠지만 끝난 줄 알았던 입덧이 다시 시작되었고 가위에도 자주 눌렸습니다. 세례식 전날에는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해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힘든데 세례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도 했지만 세례를 받고 나니 피곤함과 힘듦은 사라지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그날의 감동은 정말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교회 생활을 하며 남편도 전도했고 아는 분들에게도 조금씩 교회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은 제가 전도받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들고 감사한 마음도 큽니다.

    제가 참예수교회에 오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세상 속에서 계속 세상의 문화를 즐기며 살았다면 과연 지금 행복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평안과 위로와 기쁨을 느끼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달라진 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감사 위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과 이 교회 안에서 믿음을 지키며 성경 말씀을 믿고 따르며 그 말씀을 전하는 성도가 되고 싶습니다.

    다시 한 번 저를 참예수교회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이끄심을 따라 저를 교회로 인도해 주신 형제자매님들께도 감사드리며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할렐루야!

     

    글작성 : 김연숙 자매

  • [복음 메세지]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1:1-9)

    [복음 메세지]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1:1-9)

    [말씀 제목]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수1:1-9)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설교일] 2026. 2. 6

     

    할렐루야, 성도님들 평안하십니까? 새롭게 발령을 받은 부임지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 ‘새롭다’라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고 설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약간의 두려움도 느끼게 됩니다. 저 또한 기대도 되고요, 한편으로는 ‘아, 제가 잘 감당해야 할 텐데’라는 어떤 그런 걱정 아닌 걱정도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이렇게 새로운 상황들을 만날 수 있고, 또한 생각하지 못했던, 내 힘으로 뭔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내일 어떤 상황이 생길지 알지 못한 채, 우리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런 사명들,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려다 보니 때로는 그런 상황들 속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는 거죠.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해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각 개인, 가정, 교회가 이러한 삶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1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수1:2)”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그들을 광야라고 하는 두렵고 무서운 이곳을 지나게 하신 다음에, 이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 입구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기서 모세는 죽고 그 뒤를 이어서 여호수아로 이 사명을 계속해서 감당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굉장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을 들어간다는 것은, 그 땅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곳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는 훨씬 더 신장도 크고 힘도 강했던 가나안 족속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약 38년 전에 그들의 조상들이 여기 가나안 땅 입구까지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셨는데 그 땅을 정탐해 보니 자기들보다 너무 강해 보이는 족속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마치 메뚜기와 같이 보였습니다. 너무 겁을 먹은 것입니다. 사실은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다시 광야로 돌아가게 하셨고, 8년이 지난 다음에 이제 다시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쉽지 않지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명령이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사명은 사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우리를 위해서 기록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롬15:4). 우리 신약 시대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을 통해 그림자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약속의 땅, 바로 우리가 장차 가야 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씀이자 명령이며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얻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도 있고 또 동시에 사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지금까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침노해야 합니다. 침노라고 하는 것은 싸우는 겁니다. 싸워서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은 이와 같이 싸워서 차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후의 말씀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곳 사람들과 전쟁을 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얻는 과정과 동일합니다. 로마서 14장 17절 말씀 보면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누리게 될 때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누리며, 이제 마지막에 완전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여정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되는 것은 그냥 되는 게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기 위해 믿음의 싸움을 싸워야만 합니다. 이런 삶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들어가 그곳의 족속들과 싸워서 그들을 쫓아내고 땅을 차지했던 바로 그런 과정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나라를 혼자서만 누리면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넓혀 가야 합니다.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처음에 여리고부터 시작해서 점점 가나안 중부, 남부, 북부로 확대해 가지 않습니까?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말합니다. 전도를 통해 그들도 하나님을 믿게 되고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는 은혜를 누리도록 하는 사명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나라를 얻고 확장해야 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굉장히 큰 부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는 길이기도 합니다.

    3절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그 땅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너희 밟는 곳을 다 너희에게 주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실 것이다’가 아니라 이미 다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이란 걸 생각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 말씀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미 얻은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으면 그 말씀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순종하는 것입니다. 정말 믿는다면 순종하겠죠.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면 그 말씀대로 행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모든 성경의 말씀이 다 그와 같이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말씀은 믿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죠. 그렇게 믿음의 본질은 바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다 주었다”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 사람들과 싸운다면 하나님께서 그곳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해서 그 땅에 들어가지 않거나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에베소서 3장 17절 말씀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사실 뒤의 말씀이 바로 그런 내용인데,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고 그 믿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문제가 될 것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훨씬 강한 아낙 족속이나 하더라도 하나님하고 상대가 안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나와 함께하셔서 나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신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내가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만 하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말씀도 사실 그런 의미입니다. 양이 목자와 함께 있다면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 목자가 양이 필요한 것들을 다 제공하고 쉴 만한 곳으로 인도합니다. 심지어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곳을 지난다고 하더라도 목자가 함께 만 있다면 양은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어떻게 함께하십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본질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땅의 지경, 즉 범위가 나옵니다. 이 범위는 사실 굉장히 넓은 지역입니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가나안 지역, 실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곳은 그들이 얻었던 곳보다 훨씬 더 큽니다. 지도를 보면 거의 한 열 배 정도 차이가 날 만큼 굉장히 큰 범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주신 약속은 엄청난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실 때,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에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밭 밑에 어마어마한 보화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좋고 큰 은혜인가를 알게 된다면 내 모든 소유를 다 판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요. 실제로 성경에 보게 되면 이 하나님 나라를 깨닫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고 그동안 정말 중요하게 여겼던 걸 다 배설물로 여겼다고 고백하는 바울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릴 때는 가치를 잘 모릅니다. 막 지폐도 가위로 자르기도 하죠. 그러나 크면 가치를 압니다. 신앙에서 성장하면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신앙이 성장하지 않으면 이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잘 모릅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나 혼자 누리기 너무나 아쉬워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알려 줍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누리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세상의 삶을 마치게 되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삭제?

     

    우리가 믿는 목적은 영혼을 구원받기 위해서, 천국을 가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천국에 왜 가려고 합니까?”라고 물어본다면 “그냥 좋으니까”라고 답할 수 있겠죠. 사실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 삶 속에서 많이 경험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내가 많이 경험해야 “이게 정말 가장 좋은 것이구나”를 알게 되고 더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너희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6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려 한 땅을 얻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능히 당할 자 없게 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며 떠나지 않을 것이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 무슨 말입니까? 믿음을 강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눈에 보이는 건 힘센 가나안 족속들입니다. 사람이 눈으로 그런 것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들겠죠. 하나님께서 왜 마음을 강하게 먹으라고 하셨을까요?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할 테니 내가 준 명령 그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나 그런 생각과 마음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배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통해서 우리 성도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매번 필요한 말씀을 보내십니다. 그러면 성도는 그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가시는 곳은 전쟁터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죄의 유혹과 사탄의 방해뿐이기에 그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믿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믿음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베드로처럼 됩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 무리를 걸어오셨고, 베드로도 용기를 내어 물에 발을 내렸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물 위를 걷게 되었죠. 그런데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빠져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잡으시며 “의심하는 자여 왜 믿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믿음으로 가면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기적이 뭘까요? 병이 낫는 것도 기적이지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기적 아닌가요? 주변에는 평안함이 없어서 늘 불안해하고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아무 걱정이 없어서 평안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평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7절입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함께하시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하기 위해 말씀대로 하라고 하십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이지만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건 모호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따라 행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중심의 신앙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말씀이 중심이 안 되면 그 신앙은 금방 무너집니다.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라고 믿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씀을 늘 가까이해야 합니다.

     

    8절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하고 동행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보셔야 합니다. 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말씀을 암송하시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날마다 추구한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힘듭니다. 당연히 힘듭니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처럼 힘든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내 노력과 정성을 쏟는 만큼 나에게 돌아오게 하십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씀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담되고 행하기 어려운 말씀도 다 지켜 행해야 합니다. 부담되시죠? 하지만 힘들수록 그 안에서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힘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순종하라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입니다. 무리한 요구처럼 보여도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행하기 전에는 피곤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신뢰해서 행하게 되면 그 안에서 보화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원리입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다시 한번 강조하십니다. “내가 명했으니 걱정하지 말라.”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됩니다.

     

    저 역시 오늘 처음으로 청주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고, 주어진 시간 동안 이 곳에서 목회를 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걱정도 되고 불안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많은 성도님을 어떻게 하나님께로 이끌 수 있을까 고민하면 답이 안 나옵니다. 하지만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저도 그 말씀을 믿고 그렇게 하려 합니다. 성도님들도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믿으시고, 그 말씀을 따라 힘써 행하는 삶을 사신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형통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열심히 순종하는 우리 청주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https://youtu.be/ryNq6qEbYX0?si=WsDDc7K9DzgSLdii

    설교자 : 장종규 목자

    글편집 : 김예영 자매

  • [복음 메시지]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복음 메시지]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제목: 성찬례–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새생명으로 사는 성도의 자세(고후5:13~19)
    일시: 2025년 10월 26일 가을 영은회
    설교자: 장종규 목자

    성찬례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거룩한 성례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성찬을 행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 우리 신앙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의식이나 의례적 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살아갈 것인가라는 삶의 방향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성찬의 의미와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는 자리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바울은 사도행전 26장에서 죄가 없음에도 유대인들의 고소로 아그립바왕 앞에 섰습니다. 그는 자신의 억울한 상황을 변호해야 했지만 이때에도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베스도 총독은 바울이 미쳤다고 말했지만, 바울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정신이 온전하여도 교회를 위한 것인데 이러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신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신을 강하게 붙드셨기 때문에 그의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한 삶, 교회를 위한 삶으로 흘러갔다고 고백합니다. 그 사랑이 마음을 감동시키고 이끌어서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이 겪은 수많은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왜 바울은 자신의 온 삶을 바쳐서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사야 5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하며, 그분이 찔리시고 상함을 당하신 이유가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본래 죄로 인해 고난받고 죽어야 할 존재는 우리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습니다.(사 53: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결국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우리도 포함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세상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다고 선언하기 때문입니다.

    14절에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고 부르며, 이것이 첫 사람 아담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신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기에, 그래서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도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므로 에덴동산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죄가 생겼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하며, 죽음은 모든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도 역시 그와 똑같이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죽은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아담이 첫 번째 사람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첫 번째가 되십니다. 예수님께서 첫 열매로 부활하신 것도 이 뜻입니다. 예수님이 첫 생명이 되셔서 우리도 그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의로 인해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모든 사람에게 새 생명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내가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겠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 죽음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신 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 직접 창조된 존재이듯,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사람이 죄에 빠질 것을 아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실 일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준비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으니’라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구속의 사건임을 증거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마련하신 구원이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죽음의 사건은 하나님의 계획이 반영된 우리를 향한 사랑과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해 사는 삶

    그렇다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죽는 것입니까? 성경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고 말합니다. 세례에서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가, 예수님의 부활과 같이 새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세례는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새로운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자기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신 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부르심에 따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위해, 그리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울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새 생명을 얻은 모든 성도에게 해당하는 것인 만큼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은 곧 우리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욕심과 본성을 따라 사는 삶이 것이기 때문에 결코 유익하지 않으며 오히려 죄와 멸망으로 이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우리를 살리셔서 옛 삶 즉 세상 풍속과 육체의 욕망을 따르던 삶에서 돌이키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2:2~3)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대로, 우리도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풍속을 좇는 삶이며, 이런 삶은 결국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을 따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삶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모습이며, 결국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가는 상태라고 말씀합니다. 당연히 그런 삶이 우리에게 유익한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해가 되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삶이기에 우리가 가장 가치 있고 복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은 하나님을 위한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배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우리는 구원만 받고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선한 일은 우리가 가치 있고 도덕적 삶을 살아서 스스로 만들어내는 선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따르는 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옛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 5:17). 이전에는 죄 가운데 있어 그리스도 밖에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놀라운 연합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며,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한 영이 되어, 그리스도의 생명과 마음, 능력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참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도 바로 이 진리를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모두 행할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필요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쫓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내 힘을 합하는 것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려면 그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도 필요하고 실제로 행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지만 그 힘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예수님 안에 있으며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계속 의지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 되었지만,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가 되셨던 예수님 안에서 우리도 하나님과 화목된 관계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기셨습니다.

    즉 아직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지키고 더 깊어지도록 힘쓸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도록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이며, 성경이 말하는 가장 복된 삶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 11:23~27)

    주님의 몸과 피를 분별하며 자신을 살피는 성도

    바울은 성찬이 주님께 직접 받은 것이라고 강조하며, 그만큼 성찬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성찬에서 떡과 잔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과 피에 실제로 참여하여 주님과 더욱 깊이 연합하게 되는 은혜의 자리임을 말합니다. 이 떡과 잔은 ‘너희를 위한 내 몸’,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예수님의 생명이 더욱 충만하게 임하는 효력을 줍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성찬을 받을 때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합당치 않게 성찬을 받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고전11:27)이기 때문에 그래서 성찬에 참여하기 전에 각각 자기를 살피라고 명합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 거룩한 예식이기에, 성도는 그 의미를 분별하고 신중하게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형식적인 성례가 아니라 매우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담긴 주님의 몸과 피를 먹게 되는 참으로 거룩한 성례라는 것입니다. 매번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이것을 귀하게 생각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그렇지 못했다면 그 삶을 살기 위해 다시 결단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찬은 이 결단을 다시 확인하고 새롭게 하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삶을 더욱 힘쓰는 성도님이 되길 바랍니다.

    유튜브 설교 링크

    글: 최재웅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