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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조*화 자매)

    [성도 간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조*화 자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 71)

    저는 9살 때부터 오빠를 따라 참예수교회 쌍치기도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부모님께서 생계를 위해 참예수교회 남원교회 근처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시게 되면서 가족 모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을 영은회 때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을 받아 방언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깨워 새벽기도에 데리고 다니시던 기억도 아직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저를 의상실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여성복을 만드는 곳에서 의아하게도 남자 기술자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 옷 만드는 일은 모두 수작업이었고, 맞춤옷 한 벌을 완성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밤샘 작업이 이어지는 날도 많았고, 한 달에 한두 번 쉬기도 어려웠고 토요일에 일하는 것이 다반사였던 상황이라 점점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큰아이가 다섯 살, 둘째가 태어난 뒤에 생활고 속에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녔고 실직의 기간도 많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친정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큰 도시로 가면 살아갈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에 남편을 먼저 서울로 보내고, 자리가 잡히면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울 생활은 역시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월세방 한 칸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어린 둘째를 업고 주인집 포장마차에서 홀서빙과 주방 심부름을 했습니다. 남편은 월급 대신 옷으로 가져오면 제가 그것을 팔아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지만, 월세조차 제때 내지 못할 만큼 형편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한 패션회사를 소개받게 되었고, 안정된 직장이라는 말에 ‘1~2년만 맞벌이를 하며 자리를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큰딸은 여덟 살, 아들은 네 살로 한창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였습니다.

    종암동 집에서 압구정동 회사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매일 출근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점점 늦게 귀가하기 시작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생활의 무게와 외로움 속에서 괴롭고 힘든 일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삶의 돌파구가 안 보이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 낙심해 있을 때 문득 남원교회 영은회에서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을 떠올리며 힘을 내보기도 했지만 제 인생은 꼬인 실타래처럼 점점 더 엉켜 갔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아무런 소망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11월에 안양에 살고 있던 오빠가 안양교회로 나오라고 계속 연락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알겠다며 대답했지만 교회를 나오라는 잦은 연락에 내 형편을 모르고 교회만 나오라고 하는 것 같아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바쁘고 나중에 시간되면 가겠다고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은 건강검진을 받자고 제안했고 이때 받은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 초기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안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죽음 앞에 서게 된 저는 남편에게 교회를 나가야겠다고 말을 하였고 남편도 큰 반대가 없었기에 다시 하나님을 찾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육신의 병까지 생기자 삶의 깊은 회의가 들었고 하나님께 돌아가고 간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안산 고려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시흥 딸 집에서 요양하며 안양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아, 이곳이 내가 와야 할 곳이구나. 이곳이 나의 피난처구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은혜가 넘쳤고, 찬양이 너무 좋아 저도 모르게 계속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지친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위로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딸집에서 2주를 지냈을 무렵 남편이 찾아와 서울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남편과의 불화가 여전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남편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워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으로 가야했습니다.

    서울 집에서 안양교회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안식일 오전 예배만이라도 드리기 위해 교회를 오갔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 집으로 다시 서둘러 돌아가야 했지만,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사람들처럼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셨고, 예배 시간에 들리는 말씀은 꼭 제게만 주시는 말씀처럼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은 계속 교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찬양과 말씀이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붙들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오가던 어느 날, 2008년 설명절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간단히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찬양을 흥얼거리고 있었고, 쇼파에 앉아 있던 남편이 갑자기 조상 제사를 지내자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교회에 다니게 되었으니 앞으로 제사는 지내지 않겠어요.” 평소의 저라면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때는 두렵기보다 이상할 만큼 담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고백은 제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용기와 믿음을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결국 저는 아들과 함께 빈몸으로 집을 나와 안양으로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남편과의 불화는 계속되었고 큰 다툼을 겪으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 아들은 더 이상 집에 들어가지 말자고 하여 결국 안양의 오빠 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수술 후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일을 해야 했지만, 안양에는 제가 할 수 있는 패션 관련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약 6개월 정도 교복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안식일 예배를 지켜야 했기에 늘 시간에 쫓기며 생활했습니다. 교복철이 지나 일이 끊기면 구직 자리를 안내하는 신문을 들고 하루하루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용직 가사도우미, 식당 아르바이트, 입주청소 회사 등 여러 일을 전전하면서도 어떻게든 안식일만은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이후 공공근로에 참여하며 주 5일 근무를 하게 되었고, 국비지원으로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농협 구내식당 조리사로 일하며 조금씩 삶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교회 송년행사인 작은 불꽃 선물을 사기 위해 기독교 백화점에 가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둘러보던 중 작은 액자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액자에는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 말씀 앞에서 저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밀려와 한참을 서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결국 그 액자를 집으로 가져와 매일같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졌고, 세상에서 겪던 고통과 문제들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말씀은 제 인생의 등이 되어 주었습니다. 캄캄했던 길을 비추며 다시 앞으로 걸어갈 힘을 주셨고, 저는 말씀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지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점점 커져 갔습니다. 그래서 예배와 안식일 행사, 성경공부와 기도회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안산 고려대병원으로 정기검진을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혼자 병원에 가는 처량한 상황에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이 찬양이 떠오름과 동시에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저를 꼭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한참을 혼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경청하며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저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이 되어 아무도 없는 빈 방에 홀로 앉아 목놓아 울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미움과 상처도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무렵 전도된 딸도 어려운 고난이 있었지만 가족 모두 세례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딸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2013년 11월쯤이었습니다. 깊이 잠들어 있던 새벽, 갑자기 오른쪽 귀에 마이크를 댄 것처럼 아주 크고 또렷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너무도 생생한 음성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만져보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캄캄한 새벽이었고, 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무지하고 연약한 저에게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찾아와 주셨고, 그 순간 저는 주님의 임재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제 안의 무너진 마음과 연약한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이제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럴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암도 2012년 2월 완치 판정을 받게 되었고, 2014년에는 교회 가까운 곳에 작은 집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늘 마음 졸이며 기도하던 소망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딸네 가족 네 식구 모두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으며, 한때 “엄마는 교회에 미쳤어”라고 말하며 신앙에서 멀어졌던 아들도 최근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절망 속에 있던 제게 소망을 주신 분, 슬픔 가운데 있던 제게 기쁨을 허락하신 분, 상처투성이였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분은 오직 주님이셨습니다. 쓰러져 있던 제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셨고, 메마른 광야 같은 제 삶의 길을 치료하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길지 않은 남은 삶이지만 늘 깨어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저의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어,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비추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인도해 주신 분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 소개] 서동* 형제, 신대* 자매 가족

    [성도 소개] 서동* 형제, 신대* 자매 가족

    하나님의 인도 속에 이루어진 기쁨의 가정, 그리고 함께 동행하는 신앙 여정

    서동* 형제, 신대* 자매 가족

     

    자기소개와 가족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저는 참예수교회 안양교회 성도인 신대* 자매입니다. 저는 어머니, 아버지의 신앙 아래에서 자라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습니다. 어렸을 때는 대전교회를, 대학생 때에는 강남교회를, 그리고 성인이 되어 안양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안양교회에 다닌 지 벌써 9년이 되어 갑니다. 안양교회에 다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님들의 사랑 안에서 신앙이 성장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서동* 형제는 언제나 제가 1순위라고 말해주는 다정한 사람입니다. 저와 함께라면 교회도 다닐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실제로 함께 교회에 나오며 지금까지도 “대*이가 가면 나도 가야지!”라고 하며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웃을 때 눈과 보조개가 참 예쁜 사람이며, 지안이가 태어난 지금도 제 눈에는 지안이 만큼이나 귀엽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4개월 된 지안이는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 우리 가족 사이에서는 ‘스마일 맨’으로 불립니다. 아기는 부모의 표정을 보며 배우고 닮아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늘 따뜻하게 웃어주려 했는데, 이미 지안이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잇몸 미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저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가족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배우자와의 만남과 결혼 과정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는 무엇인가요?

    남편은 저의 첫 전도 대상자였습니다. 결혼은 제 삶에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던 중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만남을 고민했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남편은 하나님을 믿지는 않지만 함께 교회에 다녀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후 저는 처음으로 하나님을 전하게 되었고, 예배와 묵상, 기도를 통해 저의 신앙도 함께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기본 신앙 교육을 받던 중 세례식이 있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남편은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안양교회 성도님들의 축복 속에 결혼하게 되었고, 현재 남편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결혼을 통해 저는 가정의 신앙을 이끄는 역할을 맡게 되었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신앙을 성장시키시고 가정을 이루게 하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귀염둥이 안양교회 막내 지안이 소개와 출산 과정에서 나누고 싶은 은혜는 무엇인가요?

    지안이는 동글동글한 ‘왕감자’ 같은 아이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소한 냄새가 나고 울 때는 찌그러진 감자 같지만 매우 사랑스럽습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지안이를 순한 아기라고 하시지만 집에서는 관심을 주지 않으면 울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습조차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요즘은 뒤집기를 시작해 계속 뒤집다가 힘들어 울기도 하는데, 그 모습 또한 귀엽습니다. 무엇보다 이 없는 잇몸 웃음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지안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주신 선물입니다. 임신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염려를 감사로 바꾸어 주셨고(빌 4:6-7), 건강한 지안이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로 잘 자라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부모가 된 후 신앙의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는 말을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신앙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기도하는 모습과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신앙을 배웠습니다. 이제 지안이가 저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말씀과 기도로 순종하는 삶을 살며 먼저 본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안양교회 성도님들께 한 말씀 해 주세요.

    안양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분들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 13:34-35)는 말씀처럼 서로 사랑하는 모습 속에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연약한 저의 신앙이 성도님들의 사랑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기쁨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남편과 지안이와 함께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도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성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성도 소개] – 원아* 자매 (94세)]

    [성도 소개] – 원아* 자매 (94세)]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올해 94세입니다. 고향은 충청남도 홍성 장곡이고, 평생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지내다가, 아들이 “어머니 혼자 두면 안 된다”며 서울로 모셔 왔습니다. 지금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는 길도 모르고, 문 여는 것도 몰라서 많이 답답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배우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교회에 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었습니다. 시골에서도 교회는 있었지만 저는 큰 관심이 없어서 다니지 않았습니다. 서울에 와서 교회 근처에 정자에 어르신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윤성* 자매님)이 교회에 한번 가보자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매우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습니다. 몇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명* 자매님이 “바람 쐬러 가는 셈 치고 한번 가보자”는 말에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가 지척이어도 노령이라 거동이 불편해서 혼자 갈 자신이 없어서 데리러 오면 가겠다고 말은 했지만 정작 전화번호를 제가 주지 않아서 연락이 닿지 않아 나가지를 못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자에서 별안간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그때는 제가 연락처를 주어 저를 데리러 왔고 매주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여러 자매님들이 손을 잡아주고 함께해 주셔서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에 ‘이 나이에 교회에 오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섭리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례를 받기로 결심하신 이유와 그날의 소감은 어떠셨나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세례에 대해 말씀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마음에 이상하게 끌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받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2025년 9월 27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물에 들어갈 때는 나이가 많아 추울까 걱정했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전혀 춥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속이 따뜻했습니다. 물에 잠겼다가 나왔을 때, 제 마음이 뜨겁고 기뻤습니다. ‘하나님 만세!’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로 제 마음이 풀어지고 따뜻해졌습니다. “아, 이게 내 인생의 말년이구나.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가장 좋고 감사한 일은 무엇인가요?

    교회에 오면 모든 사람들이 너무 잘해 줍니다. 늙은 나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데리러 오고 차에서 내리면 손을 잡아 주며 부축해 주고 모든 성도가 반갑게 인사하며 맞아줍니다. 예쁘지도 않은 다 늙은 외모인데도 마치 어린 딸처럼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을 걸며 진심으로 대해 줍니다. 그게 참 고맙습니다.

    또한 말씀을 들을 때는 다 이해하고 기억하지는 못해도, 제 마음에 해당되는 말씀이 들리면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집에서도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요즘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입버릇처럼 연신 외칩니다. 밥을 먹을 때도 ‘하나님이 밥을 주셨다’는 생각이 들어 항상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기쁘고 떳떳합니다.

    즐겨 부르시는 찬송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찬송 제목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을 부르는 찬송이 좋습니다. 찬송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날 때도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마음이, 나이가 들고 나니 더 깊이 느껴집니다. 성도들이 진심을 다해 부르는 찬양을 듣고 있으면, 그 정성과 믿음이 제 마음에도 그대로 전해집니다.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 찬양할 때 더 큰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찬송을 부르는 시간 또한 제게 가장 귀한 시간이고,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것을 느끼는 소중한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느끼신 적은 언제신가요?

    세례받던 날이 가장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추운 날이었는데도 물이 따뜻했고, 제 마음이 전혀 떨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울로 갑자기 오게 된 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이 교회로 인도하시려고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평생 살던 제가 90이 넘어서 교회에 나오게 된 것이 결코 우발적인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집에서 혼자 기도할 때도 하나님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합니다.

    성도님들께 특별히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저는 93세에 교회에 왔습니다. 젊었을 때는 이런 길을 몰랐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교회는 낯설은 무서운 곳이 아니고, 서로 손 잡아 주고 보듬어 주는 사랑이 넘치는 곳입니다. “하늘나라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저는 지금도 안식일마다 빠짐없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안에서 이 기쁨을 꼭 누리시길 바랍니다.

     

    원아* 모친은 93세의 늦은 시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누리고 계십니다. 평생 시골에서 묵묵히 살아오신 삶의 여정 끝에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때에 교회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세례의 물속에서 따뜻함을 경험하신 그 순간처럼 모친의 남은 날들도 하나님의 따뜻한 은혜 안에서 더욱 평안하고 기쁨을 누리시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원아* 모친의 남은 삶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며 교회로 향하는 그 걸음마다 은혜와 기쁨이 더해지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제목: 히스기야의 기도(사 37:1~7)

    일시: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히스기야를 통해 본 기도의 참된 자세–

    본문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아수르 군대가 남유다를 침공했고, 유다의 모든 성을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성의 함락을 앞둔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참된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의지하라(1절)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가 성전으로 간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지니라.(약 5: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즉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기를 맞으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가거나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거의 성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라(1절)

    히스기야가 성전에 가서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역대하 7장 11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내가 듣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을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머물러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이 약속을 기억하고 성전에서 기도했고, 성전에 갈 수 없을 때는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통해 드리는 기도 역시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곳이기 때문에 귀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 교회를 향해 눈과 마음을 두시고,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겸비하게 기도하라.(1절)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기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경건한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이처럼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복종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 내 뜻이나 내 주장, 내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라.(2절)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도 기도 부탁을 합니다. 자신도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종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약 5:14)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 기도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라고 세우신 자들입니다. 사무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했고, 히브리서 13장 말씀에도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들이 결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도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눌 때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환난의 이유를 생각해 보라.(3절)

    히스기야가 기도하면서 말합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37:3)

    이 말은 현재 상황을 인정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는 이 상황은 단순한 위기가 아닌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책벌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해산할 힘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이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어떤 위기든지, 어떤 절망이든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4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기도 부탁하며 한 말 중에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한 모욕이 견딜 수 없었고, 그것이 가장 큰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며 분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더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한다면 두려워하지 말라.(6절)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먼저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곧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 링크: 히스기야의 기도(사37:1~7)

     

    글| 최재웅 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