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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의 향기] 우리 하나님은 크시다네_아동부 찬양

    [신앙의 향기] 우리 하나님은 크시다네_아동부 찬양

    저 높은 산과 넓은 바다 끝없는 하늘도

    우리 하나님 앞에 작게 반짝이네

    매일매일 이어지는 긴긴 시간들도

    우리 하나님 앞에 하루와 같네

    우리 하나님은 크시다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네

    우리 하나님은 크시다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네

     

    지난 봄 영은전도대회, 무대 위로 옹기종기 모여든 우리 아동반의 찬양의 향기를 전합니다. 다소 긴장한 듯하면서도 설렘으로 반짝이던 눈망울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서 있던 그 작은 존재들이 입을 열어 찬양을 시작했을 때,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잔잔하지만 아주 깊은 감동의 파도가 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들이 부르는, 세상에서 가장 크신 분의 이야기

     

    아이들의 시선에서 세상은 얼마나 넓고 거대할까요? 까치발을 아무리 들어도 닿지 않는 높은 산, 끝을 알 수 없는 넓은 바다, 그리고 고개를 한껏 젖혀야만 시야에 담기는 하늘까지. 그 모든 것들은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크고 경외로운 풍경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거대한 자연조차도 ‘우리 하나님 앞에서는 작게 반짝이는’ 것들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보는 가장 큰 것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더 크시다는 이 순전한 고백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며 때로는 눈앞의 문제들을 산처럼, 바다처럼 거대하게 느끼던 어른들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두드렸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크시다네, 우리 하나님은 영원하시다네.” 후렴구가 반복될 때, 아이들의 목소리에 담긴 확신과 기쁨은 무대라는 공간을 넘어 성도 모두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크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 아이들의 미래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작지만 티 없이 눈부시게 크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이들을 통해 보았습니다. 찬양의 메아리가 귓가에 맴도는 오늘, 우리 삶에 놓인 문제들보다 더 크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아이들의 마음으로 다시 한번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맑은 찬양이 우리 삶의 매일매일 속에서 작고 예쁘게 반짝이기를 소망합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간증] 전도팀의 차 전도 후 성도들의 소감

    [성도 간증] 전도팀의 차 전도 후 성도들의 소감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청주교회의 전도팀 성도님들께서 차 전도 후 소감을 남겨 주셨습니다. 

    전도활동을 통해 느낀 유익한 점과 은혜의 소감들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을 높이길 원합니다. 

     

    할렐루야~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대상자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차와 전도지를 드리면서 대화할 때에 상대방에 대한 내 마음과 태도가 보다 더 진솔해지고 말씀을 나눌수록 영혼 구원에 대한 바람이 간절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활동 후 피드백 시간에는 다른 분들의 사례를 통해 나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전도의 가장 큰 무기는 언제나 ‘온전한 기도’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나의 확신’이라는 걸 더욱 더 깨닫습니다. (정현순 자매님)

     

    할렐루야~

    불특정 다수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담대함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교회의 존재와 위치를 자연스러게 알릴 수 있어 유익합니다. (박에스더 집사님)

     

    할렐루야

    처음 만나는 분에게 전도지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서 하나님을 전하는 시간이 참 귀하고 소중합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배우게 되어 저에게도 큰 유익이 있습니다 감사주 (김경희 자매님)

     

    할렐루야~~

    의와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

    복음을 전하는 일을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전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를 알리고 이웃에 구원의 통로가 되길 소망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전하는 이 유익한 시간을 주심에 주님께 감사합니다. (송세연 자매님)

     

    할렐루야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한 영혼이 전도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가 알게 됩니다. 또한 힘 있게 전하려면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 성령 충만해야 하고 주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있어야 함을 느낍니다. 무엇보다도 여럿이 함께 하니 힘이 나고 때론 즐겁기까지 하니 감사하네요. (백현 사모님)

     

    우리 모두가 영혼 구원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고 기도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청주교회에 새롭게 부는 바람 전도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 [교회 행사] 한 영혼을 위해 마음을 모아_봄 영은회

    [교회 행사] 한 영혼을 위해 마음을 모아_봄 영은회

    지난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청주 교회에서는 영은전도대회가 진행되었습니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리는 영은전도대회는 성도들이 마음에 품고 기도해 온 전도대상자들을 초청하여 함께 예배드리고 교제하는 뜻깊은 행사입니다.

    이번 영은전도대회를 향한 우리의 여정은, 눈에 보이는 화려한 행사를 넘어 보이지 않는 한 영혼을 향한 깊은 사랑에서 출발했습니다. 행사의 막이 오르기 전부터 모든 성도들은 기도의 자리에 모여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영적인 호흡을 맞추었습니다. 그 시간은 단순히 행사의 순서를 점검하는 형식적인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굳게 닫힌 마음을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시기를, 그리하여 그들이 마침내 빛으로 나아오기를 눈물과 믿음으로 그려보는 애틋하고도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모두가 같은 공간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지만, 우리의 간절함을 가로막을 수 있는 물리적 장벽은 없었습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화상 어플이라는 작은 창을 켠 성도들의 얼굴에는, 예배당에 모인 이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랑이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어두운 방안을 밝히는 화면 불빛 아래 간절히 모아진 두 손과, 공간을 뛰어넘어 하나로 포개진 떨리는 기도 소리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한 영적 연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듯,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가 한마음으로 빚어낸 기도의 향기는 결코 허공에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메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가 되어, 이번 영은전도대회가 피워낼 아름다운 생명의 꽃을 위한 가장 다정하고도 단단한 밑거름으로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영은전도대회 기간 동안 많은 전도대상자들이 교회를 찾아주었습니다. 지난 행사 때 방문한 분들도 있었고, 오랜 시간 성도들의 권면과 기도를 통해 발걸음을 내디딘 이들도 있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삶을 나누는 가운데 교회 곳곳에는 따뜻한 환대와 감사의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강사로 초청된 장흥진목자님(현 광주교회)은 ‘생명의 길을 걷는 자들의 행로’라는 주제로 말씀을 통해 복음의 소중함과 복음을 전하는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해 주셨습니다. 참석한 성도들과 전도대상자들은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전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행사 마지막 날에는 저녁 9시까지 행사가 이어졌음에도 많은 이들이 자리를 지키며 말씀과 예배에 집중했습니다. 긴 시간이었지만 누구 하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말씀에 대한 간절함으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모습은 이번 영은전도대회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마음들이 모인 은혜의 시간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전도는 한 번의 초청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 그리고 꾸준한 기도로 이어지는 믿음의 여정입니다. 이번 영은전도대회를 통해 뿌려진 복음의 씨앗들이 각 사람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자라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을 향한 우리의 기도와 사랑이 계속 이어져 더욱 풍성한 열매로 맺어지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글작성 :  박은우 형제

  • [성도 소개] 1+1=4? 김은미 자매님 가정을 소개해요

    [성도 소개] 1+1=4? 김은미 자매님 가정을 소개해요

    할렐루야! 청주교회로 돌아오신 김은미 자매님과 그 가정을 소개합니다!

    김은미 자매님은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수도권에서 살게되었다가 5년 만에 다시 청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떠날 때는 혼자였는데 남편과 아들 둘, 단란한 가족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가족을 환영하고 축복해 주시고 청주에서 신앙의 뿌리를 잘 내리고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빠 박형욱 형제님, 엄마 김은미 자매님, 첫째 박서진(5), 둘째 박서윤(4)

     

    글작성 : 김예영 자매

  • [기관 소개] 청주교회 전도팀을 소개합니다

    [기관 소개] 청주교회 전도팀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주교회 전도팀을 소개합니다.

     

    청주교회 전도팀은

    “너희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품고 전도에 힘쓰는 하나님의 팀입니다.

     

    올해 3월까지는 주중 하루인 목요일 오전 10시 30분 전도팀 모임을 전도활동 보고와 심방 중심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4월부터는 주중 전도활동 보고를 안식일에 진행하고, 목요일 전도팀 모임은 ‘차 전도활동’ 중심으로 전면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약 12년 전 청주교회가 차 전도활동을 진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장종규 목자님과 백현 사모님의 노방전도 노하우를 배우며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차 전도활동의 구성원을 소개합니다.>

     

    장종규 목자님과 백현 사모님, 허애은 집사님, 박에스더 집사님, 정현순 자매님, 송세연 자매님, 김지현 자매님, 최영미 자매님, 이순우 자매님,김경희 자매님과 차 전도활동이 끝난 후 매주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 주시는 위태순 모친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차 전도활동 일정>

     

    매주 목요일 오전

    오전 10:00 ~ 10:20 기도

    10:20 ~ 10:30 전도 물품 준비

    10:30 ~ 11:30 전도활동

    11:30 ~ 12:30 피드백

    12:30 ~ 점심식사 및 마무리

     

    차 전도활동은 먼저 기도로 시작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 12:12)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보면 정말 하나님께서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야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차 전도활동에서는 따뜻하게 끓인 보이차와 보온병에 준비한 뜨거운 물에 커피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차를 원하시는 분들께 전도지와 간식을 함께 드리며 참예수교회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오미자차로 준비할 예정입니다.

     

    보통 노방전도라고 하면 전도지를 전달하고 교회를 소개하는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차 전도활동은 차를 권하며 자연스럽게 전도지와 간단한 간식을 전달하고, “안녕하세요, 참예수교회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며 시작됩니다. 이어서 “차가 구수하네요.”, “감사합니다.” 등의 반응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분들이 차와 전도지를 기쁘게 받아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반응은 매우 다양합니다. 전혀 받지 않으시는 분도 계시고, 차와 간식만 받으시는 분도 계시며, 교회 소개와 하나님의 말씀까지 귀 기울여 들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 다양함 속에서도 말씀을 진지하게 듣는 분들이 계십니다. 비율로 보면 10명 중 2~3명 정도는 말씀을 들어 주시며, 그중에는 불면증과 우울증, 각종 질병과 삶의 어려움 속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32)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약 1시간가량 노방전도를 진행한 후 교회로 돌아와 전했던 말씀들을 함께 피드백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 시간이 참 은혜롭습니다. 각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전한 말씀들을 나누며, 영혼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더욱 깊어짐을 느끼게 됩니다.

    비가 오는 경우에는 차 전도활동 대신 전도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도 교육 시간에는 실제 전도활동 가운데 자주 받게 되는 질문들과 그에 대한 답변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특별히 지금까지는 가장 많이 보이는 반응 중 하나인 “관심 없어요”라는 반응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또 어떤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보았습니다.

    영혼과 내세,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해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분들이 많기 때문에, 삶과 죽음, 영혼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질문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도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을 향한 사랑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지상 명령을 따라 복음 전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많은 기도 부탁 드립니다!

     

    글작성 : 이순우 자매

  • [복음 메세지] 안식일에 대한 믿음(기본신앙8)

    [복음 메세지] 안식일에 대한 믿음(기본신앙8)

    참예수교회 기본 신앙 전문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신 거룩한 날임을 믿는다. 이 날을 은혜 아래 창조와 구속의 은혜를 기념하고 내세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지킨다.”

    지난 시간에 안식일이 언제인지 말씀드렸습니다. 안식일은 일곱째 날이며, 오늘날로 치면 토요일입니다. 이 안식일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로서 변한 적이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안식일을 준수할 것을 명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이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의미와 방법에 대해 성경적으로 살펴보고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안식일 준수의 의미: 구별되는 표징
    출애굽기 31장 12절부터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표징’입니다. 즉,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세상 속에서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별하는 표가 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대대로 지킬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언약 관계가 유지되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언약의 증표입니다.

    이러한 구별은 곧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안식일을 지킬 때도 하나님의 구별된 보호와 은혜를 받습니다. 성경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 중 하나가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합니다. 느헤미야 역시 안식일을 범하여 멸망당했던 과거를 교훈 삼아 철저히 안식일을 지킬 것을 강조했습니다.

    2. 안식일 준수의 의미: 창조주와 구속주를 기억함
    출애굽기 20장 8절부터 11절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입니다. 즉, 안식일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인정하고, 우리는 그분이 만드신 ‘피조물’임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또한 신명기 5장 14절부터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켜야 할 또 다른 이유로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속(구원)’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창조 사역과 구원 사역이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 가고 계십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창조 사역입니다. 안식일은 바로 그 은혜 안에서 우리가 새 힘을 얻고 재충전되는 복된 날입니다.

    나아가 히브리서 4장 9절은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이 남아 있다고 말씀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지키는 안식일은 장차 들어갈 영원한 천국 안식을 맛보고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안식일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영적인 맛을 보아야,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며 그곳에 들어가기를 힘쓰게 됩니다.

    3.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구별하여 지킨다’는 뜻입니다. 6일 동안은 우리의 일을 힘써 하되, 일곱째 날만큼은 하나님 중심의 날로 구별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13절부터 14절은 안식일에 자기의 길로 행하지 말고, 오락을 구하지 않으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뜻입니다. 느헤미야가 안식일에 성문을 닫아 왕래를 통제했듯이, 우리도 안식일에는 세속적인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바쁜 날이어야 합니다. 영적인 제사장으로서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성도를 돌보는 일에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 중심으로 하루를 보낼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즐거움과 영적인 성장을 얻게 됩니다.

    4. 안식일은 율법이 아닌 은혜로
    간혹 안식일에 불을 피우지 말라거나 일을 하지 말라는 구약의 율법적인 문구 때문에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안식일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형식과 비판으로 안식일을 지켰지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생명을 구하는 선을 행하셨습니다. 우리도 안식일을 율법적으로 형식에 치우쳐 지키면 안 됩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 안식일의 참된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복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이를 소홀히 여기면 믿음이 퇴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안식일을 거룩하고 사랑으로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통해 우리는 더욱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안식일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전히 지키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CYH4pGeM0

    설교자 : 장종규 목자

    글편집 : 김예영 자매

  • [복음 메시지] 구원의 핵심진리, 안식일

    [복음 메시지] 구원의 핵심진리, 안식일

    제목: 구원의 핵심 진리, 안식일

    일시: 2024년 10월 25일 안식일 저녁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1. 안식일이란?

    성경에 등장하는 ‘안식일’은 무슨 날일까요? “안식”은 ‘자신이 하던 일을 끝내고 쉰다’라는 의미입니다. 안식이라는 단어가 가장 처음 등장하는 성경은 창세기입니다.

    (창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는 내용뿐 아니라 창조하신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라는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안식일의 기원이 사람의 명령이 아닌 창세 때의 하나님의 명령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음을 기록하는데, 성경이 기록하는 안식일은 일곱째 날, 곧 토요일입니다. 정확히는 저녁부터 하루를 세는 성경의 기준으로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에 해당합니다.

     

    2.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

    성경은 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에 어떤 의미가 있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출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20장의 내용은 십계명에 관한 내용입니다. 네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11절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가운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둘째,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신5:12~15)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에서는 앞서 살펴본 출애굽기와 비슷한 내용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과거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을 자유민이 되도록 하신 구원을 기억하며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합니다. 이렇게 안식일에 대한 동일한 두 말씀에서 각자 창조와 구원을 말하시는 것을 통해, 구원은 곧 창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애굽(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뜻인데, 이러한 신분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됨을 의미합니다. (사43:21).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그 백성을 지키신다고 말씀하십니다(시121:4). 전능하신 하나님이 지키시니 하나님 백성보다 안전한 상태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삼아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찬양하길 바라십니다.

    셋째, 안식일을 지킴으로 영육 간에 복을 받습니다.

    (창2: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이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안식일을 복되게 하셨다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복은 영육 간에 주시는 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안식일을 지킬 때 만나와 메추리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특별히 병 고침의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모여서 예배할 때 성도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셔서 영의 양식을 채우십니다. 실제로 많은 성도님이 한 주 동안 힘들었다가 안식일에 말씀을 듣고 힘을 얻거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넷째, 안식일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출31: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나의’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표징, 곧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 곧 하나님의 날을 지키는 것이므로, 이를 하나님 백성인 증거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출31:14).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므로 하나님 안에 거하려면 거룩해야 하는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점 거룩함을 잃어서 결국에는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하게 됩니다. 생명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죽음을 맞게 됩니다. 즉 안식일은 거룩함을 유지하게 해주는 날로 이를 지키면 구원에 이르게 되지만, 반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면 점점 구원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안식일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이란 하나님 나라에 가서 누리게 되는 진정한 안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 전 세상에 살 동안에 안식일을 통해 그 안식을 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히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일에는 성도가 같이 모여 예배드리고 교제하면서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힘들었던 부분이 하나님 안에서 해결됨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안식을 통해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고, 더욱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3. 안식일에 대한 오해

    그렇다면 왜 오늘날 많은 사람은 아직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을까요?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일요일, 즉 주일을 지킵니다.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으므로 율법의 일부인 안식일을 지킬 필요도 없고, 도리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이 의미 있으므로 주일(일요일)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주장이 사실일까요?

    (갈3:15-17)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갈라디아서 말씀은 율법을 주시기 430년 전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언약을 나중에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안식일에 동일하게 적용해 보면, 안식일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주신 율법에 속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물론 율법 속에는 안식일에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방법에 대한 규례가 있고, 이러한 것은 율법에 속한 것이므로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 오늘날은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안식일 그 자체는 율법의 속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에 직접 주신 다른 말씀들도 오늘날까지 지켜야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안식일도 동일하게 오늘까지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라는 주장도 명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고, 단지 사람들이 일요일 새벽에 갔더니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설사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했다고 하더라도 성경 전반에서 아주 중요한 안식일이 다른 날로 변경되는 것이라면 반드시 성경에 언급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했으므로 안식일을 대신해 일요일을 지킨다는 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막7:6-8)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되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겉으로는 섬기는 것처럼 보여도,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데, 오늘날 성탄절, 부활절 등 성경에 없는 절기를 지키면서 성경에 있는 말씀은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사람의 계명을 우선하는 교만함에 진노하십니다.

     

    마무리하며

    (사58:13,14)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날인 안식일을 내 중심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 위와 같은 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이와 같이 안식일을 지키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안식일을 힘써 지킴으로 하나님 주신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유튜브 설교방송 링크

    글| 오다은 자매

  • [복음 메세지]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8:1-14)

    [복음 메세지]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8:1-14)

    [말씀 제목]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셨더라 (삼하8:1-14)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4년 5월 18일

    제국주의 시대를 논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가 있다. 바로 현재의 영국이다. 현재는 유럽 서쪽의 섬나라이지만 소위 대영제국이라 일컫던 황금시대가 있었다. 1607년, 북아메리카의 버지니아주 제임스 타운을 시작으로 전 세계 약소국을 대상으로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아갔다. 그래서 1815년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이 기간이 무려 백년이나 지속되었다. 1920년에 이르러 대영제국은 지구상의 모든 식민지를 합하면 면적이 무려 3,550만 제곱미터가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의 355배 되는 면적이고 현재 러시아 땅보다 2배 이상 큰 면적이다. 그래서 가장 잘나가던 때에 세계 육지 면적의 4분의 1이 바로 영국의 것이었다. 그래서 소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이다. 그런 대영제국도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빚을 지는 바람에 국력이 쇠퇴해지고 미국에 그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1997년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면서 대영제국주의의 잔재는 완전히 정리가 되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착취하려는 모습은 작게는 사회 곳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인간관계 속에도 있고, 기업과 기업 사이에도 있고, 단체와 단체 사이에도 갑을 관계가 있다. 이런 일면을 보면 소위 양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강자의 법칙이 지배하는 것이 이 세상의 원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나라는 그런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도, 사회도, 개인도 아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않은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 절대 공의와 사랑을 품으신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그런 나라였다. 그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셨고 그를 말씀으로 지도하셨다.

    (시 119:101-102) 『(101)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102)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세움 받은 성도들은 오늘날 어떤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가? 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내가 어떤 길을 가고 있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 성도들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시고, 형통한 길을 열어주시고, 땀 흘린 대가로 단 열매를 수확하게 하시기를 원한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발견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영적인 눈을 뜨고 가려진 본질을 보고 있는가? 오늘은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이기게 해주셨다는 승리 기사를 통해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다윗이 왕이 되어 처음 하고자 한 일은 언약궤를 자신의 성으로 모셔 오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웃사가 죽는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지만 그것은 곧 다윗의 겸손한 영성과 신앙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언약궤 앞에서 어린 아이처럼 낮아져 춤을 추는 다윗에게 하나님은 소위 ‘다윗 언약’이라고 하는 중요한 언약을 주신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서 집을 짓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하나님이 다윗에게 내가 너의 집을 지어주마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 주셨던 것이 바로 ‘다윗 언약’이었던 것이다. 그 다윗 언약은 단순히 육적인 면에서 다윗의 혈통에서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적인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후손 가운데 오실 것이라는 축복의 언약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 언약을 받은 다윗은 그 언약에 대한 믿음을 품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출정한다. 그리고 블레셋의 도시를 쳐서 항복을 받아낸다. 뿐만 아니라 그 외에 모압과 소바, 아람과 아말렉, 하맛과 에돔 족속까지 굴복시킨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명실공히 팔레스틴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다윗의 이러한 전과에 대해 성경은 6절과 14절에서 두 번씩이나 동일하게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시니라” 또 다른 반복구가 있는데 “조공을 드리니라.”(2) “조공을 바치니라.”(6)이다. 이것은 다윗의 이스라엘이 대영제국처럼 다른 나라를 정복해서 착취하고 압제하는 제국주의의 길을 갔다는 뜻이 아니다. 다윗이 이룬 육적 승리를 통해 성도와 교회가 경험해야 할 영적 승리를 표상하고 있다. 다윗을 통해 성도가 신앙의 길을 걸을 때 하나님은 이런 복을 주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그런 복을 받는 자의 태도는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그 메시지는 어떤 것인가?

    첫째, 약속을 믿으면 부끄러운 과거를 만회케 하신다.

    (삼하 8:1) 『(1)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메덱 암마’는 블레셋의 수도였던 가드와 그에 종속되었던 네 성읍, 곧 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대상 18:1에서는 그래서 메덱 암마를 ‘가드와 그 동네’라고 기록했다. 이 기록으로 보아 다윗은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했다. 비유하자면 과거에는 블레셋을 다운시켰는데 이제는 블레셋을 아예 K.O시켜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블레셋이 점유하던 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런 승리가 값진 이유는 다윗이 블레셋 가드에서 경험한 뼈아픈 과거 때문이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도망자 생활할 때 그는 블레셋의 도시 가드 땅에서 아기스 왕을 만나게 된다. 그때 침을 흘리며 미친 척하면서 위기 상황을 넘겼던 치욕의 과거가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그 가드에 항복을 받아냈다. 쉽지 않은 결과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과거의 상처는 현재 극복 못하는 핸디캡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나갔을 때 그 치욕의 역사를 만회한 것이다.

    이처럼 다윗이 블레셋의 도시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근원적 힘은 바로 그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삼하 7:27-28) 『(2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8)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 약속의 말씀이 주어진 직후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을 쳤다. 그래서 8장 1절에 ‘그 후에’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곧 다윗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가니까 블레셋의 도시들이 줄줄이 정복하게 되었고 그 결과 가드 땅에서의 부끄러운 과거를 씻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신앙의 길을 가고 있는가? 성도님들 삶 속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영적인 전쟁을 수행한 결과 나의 ‘메덱 암마’를 정복케 하시고 부끄러운 과거를 씻는 은혜를 주신다. 이런 복이 저와 성도들의 것이 되시기를 바란다.

    둘째,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승리의 열매를 주신다.

    (삼하 8:4) 『(4) 그 마병 일천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다윗은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탈취한 말 가운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발의 힘줄을 끊었다. 똑같은 사건을 기록한 다른 성경을 보자. 역대상 18:3-4을 보면 그때 노획한 병거와 군사와 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대상 18:3-4) 『(3) 소바 왕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 가에서 자기 권세를 펴고자 하매 다윗이 저를 쳐서 하막까지 이르고 (4) 그 병거 일천 승과 기병 칠천과 보병 이만을 빼앗고 그 병거 일백 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다윗은 병거 일천 승, 기병 칠천, 보병 이만을 빼앗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다윗은 빼앗은 병거 일천 승 가운데 일백 승의 말, 즉 10%만 남기고는 다 발의 힘줄을 끊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가? 왜냐하면 모세오경 가운데 한 권인 신명기에 이러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신 17:16) 『왕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모세의 율법에 이스라엘의 왕이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다. 말을 많이 두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해야지 자기 육신의 능력을 신뢰하지 말라는 뜻이다. 다윗은 신명기의 이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실천하고자 말 발목의 힘줄을 끊었던 것이다. 이런 다윗의 행동은 과거 사울왕의 행동과 비교하면 그가 얼마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지 뚜렷해진다. 사울 왕은 어떠했는가?

    (삼상 15:18-19) 『[18] 또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이처럼 사울왕의 마음은 탈취하는 일에 모아져 있고 말씀을 순종하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반면 다윗은 말의 발목 힘줄을 끊는 행위로 순종의 모습을 보였기에 하나님은 ‘다윗 언약’에 충실하셨던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다윗만큼 형통한 다른 한 사람이 있다. 여호수아 선지자이다. 그런데 형통만 같은 것이 아니라 형통의 이유도 똑같다. 그가 항상 승리한 비결이 어디에 있었는가?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수 11:15)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여호수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대로 모든 것을 행했을 때 항상 승리하고 이길 수 있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리는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가 항상 승리의 열매와 직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2007년 3월 18일 서울국제마라톤 남자부 42.195㎞ 레이스에서 막판 1500여m를 남기고 대역전극을 펼치며 1위로 골인한 마라토너가 있다. 바로 이봉주 선수이다. 생애 35번째 풀코스를 완주이고 한국 역대 4위 기록이었다. 그런데 더 의미가 깊은 것은 그가 최근 3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한물갔다’는 평가를 받던 터였고 38세의 나이는 마라톤 선수로는 환갑에 해당하던 때였다. 그런데 화려한 부활을 알리는 우승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봉주 선수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코치의 엄격한 지도를 순종했기 때문이다. 코치는 선수에게 시합이 가까워 오면 탄수화물을 피하고 고기만 먹인다. 한동안 고기만 먹이다가 시합 3,4일 전에 탄수화물을 같이 섭취시킨다. 그러면 몸에 축적되는 탄수화물의 양이 많아져서 레이스의 막판 스퍼트까지 끄떡 없이 달리게 된다고 한다. 이봉주 선수는 그 식사가 훈련보다 더 고통스럽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을 인내하고 코치의 지도를 따랐기 때문에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운동 선수가 코치의 엄격한 지도를 따라야 승리가 보장되듯이 신앙인은 인생의 코치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영적인 승리가 보장된다. 사울 왕처럼 세상의 것들을 취하려는 욕망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는데 마음을 모으시는 성도가 되자. 거기에 축복의 열쇠가 있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셋째, 감사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신다.

    (삼하 8:11-12) 『(11)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저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다윗은 정복한 나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그것은 금 은 놋과 같은 귀금속들이었다. 다윗은 그것을 자기 사욕을 채우고자 받았는가? 그렇지 않다. 사울 왕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탈취물로 자기의 기념비를 세우고 자랑거리로 삼는데 활용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다. 그 물질을 여호와께 봉헌했다. 그래서 이렇게 드려진 금과 은과 놋이 나중에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재원으로 소용되었던 것이다.

    (대상 22:14-16) 『[14]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금 십만 달란트와 은 일백만 달란트와 놋과 철을 그 중수를 셀 수 없을만큼 심히 많이 예비하였고 또 재목과 돌을 예비하였으나 너는 더할 것이며 [15] 또 공장이 네게 많이 있나니 곧 석수와 목수와 온갖 일에 익숙한 모든 사람이니라 [16] 금과 은과 놋과 철이 무수하니 너는 일어나 일하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실지로다』

    다윗은 이처럼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하나님께 봉헌했다. 그는 자기의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봉헌은 바로 그러한 믿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의 그런 믿음에 대해 큰 복으로 다윗에게 내려주셨다. 곧 그 복의 후광이 아들 솔로몬에게까지 계승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흔들리지 않는 복이 있다. 바로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이보다 값진 유산은 없다. 부디 이러한 복이 저와 성도들의 것이 되시기를 바란다.

    다윗 왕처럼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언약을 믿고 나가서 과거의 부끄러움을 씻으시고, 말씀에 순종해서 승리의 열매를 수확하고, 감사함으로 복이 계승되게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 사랑과 공의의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는 기적의 목격자가 되시는 저와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한다.

     

  • [복음메세지] 하나님과 나 사이의 표징, 안식일 (출 31:12-18)

    [복음메세지] 하나님과 나 사이의 표징, 안식일 (출 3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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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제목] 하나님과 나 사이의 표징, 안식일 (출 31:12-18)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4년 2월 3일(토) 안식일 오전예배

    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3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14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15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일하는 자를 반드시 줄일찌니라 16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18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을까요? 바로 성경 속에서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식일을 지킵니다. 도대체 이 증표 안에 어떤 뜻과 권한, 축복들이 담겨져 있을까요?

     

    1.하나님께서 창조주라는 증표입니다.

    • (창 2:1-3)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 (창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세계에 정복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계에 있는 것을 다스리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 (마 6:25-26)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풀을 먹이실 수 있는 이유는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사람은 본인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닌 그치는 날입니다. 6일동안 육신을 위해 했던 염려와 근심을 그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2.나를 구별하셨다는 증표입니다.

    •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및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세례와 성령을 받은 구별된 자녀입니다. 구원의 증표가 이미 우리에게 찍혀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안식일을 지키며 살아야합니다.

     

    3.하나님께서 누리셨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증표입니다.

    • (출 31: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하나님께서 먼저 제 칠일에 쉬어 평안을 누리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 동물과 달리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육신의 일을 쉴 때 영혼이 쉴 수 있습니다.

    • 그렇다면 안식일에 일을 하는 목자님은 안식일을 범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안식일에 하고 있는 일은 영혼을 위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영혼을 채우는 일을 노력해야합니다.

    • (출 31:14-15)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일하는 자를 반드시 줄일찌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나의 영혼을 살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온전히 지켜야합니다. 

     

    안식일을 지킬 수 있는 믿음을 위해 기도합시다!

  • [복음 메세지]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삼상 17:32-50)

    [복음 메세지]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삼상 17:32-50)

    [말씀 제목]  영적 전쟁의 승리 비결 (삼상 17:32-50)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3년 10월 28일

    1943년 세계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모 항공대가 매우 특별한 임무를 받게 된다. 그 임무는 ‘모느’라는 댐을 폭파해서 인근 계곡을 침수시키는 것이었어. 그러나 고작 18대에 불과한 비행기로 수행해야 할 작전은 난이도가 매우 높았다. 작전은 구체적으로 비행기들이 시속 380km의 일정한 속도로 유지하다가 정확히 600m를 급강하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수면 위 20m 높이를 유지하며 공중어뢰를 발사해 댐을 명중시키고 와야하는, 마치 서커스와도 같은 그런 작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작전은 성공했고 그 결과 연합군은 전쟁에서 유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 작전을 이끈 깁슨 중령은 훈장을 받는 날 기자가 그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까?” 그는 대답하기를 “그것은 바로 철저한 훈련과 모험정신이었습니다. 저희는 준비 기간만 2개월이 걸렸고 2,000시간 동안 연습을 했고 연습하는데만 2,500개의 폭탄을 소모했습니다. 그리고 연습한대로 용감히 실전에 임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을 성취하려면 모험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호랑이굴에 들어갈 용기가 있어도 호랑이를 잡을 능력이 없다면 역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호랑이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더라도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역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다. 이처럼 능력 없는 모험은 만용에 불과하고 반대로 모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으면 아무리 큰 능력도 무용지물이다. 공부도 사업도 세상사도 신앙의 길에도 이 원리는 마찬가지이다.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바울사도는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했다. 성도의 삶을 믿음의 싸움이라는 관점에서 보고 있다. 전쟁같은 긴급 상황이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이 재물을 모으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더 좋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전쟁한다. 그러나 성도는 다른 차원의 전쟁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사느냐 죽느냐! 마귀의 지배를 받느냐 하나님의 지배를 받느냐! 성도가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느냐 세속의 가치관에 정복당하느냐의 전쟁이 있다. 성도는 영혼의 눈을 뜨고 이런 전쟁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도님들은 이 세상 속의 불신자들처럼 밥먹고 사는데만 매달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영적인 전쟁이 있음을 알고 승리하기 위해서 땀흘리고 있는가? 만약 실상이 그러하다면 나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오늘은 다윗이 골리앗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기사를 통해 그가 면대한 영적 전쟁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어느 날 블레셋의 군대와 이스라엘의 군대가 전쟁을 위해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쟁터에 매우 위협적인 적군이 나타났으니 바로 키가 3m나 되는 거인 골리앗이었다.

    (삼상 17:4-7) 『[4]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 신장은 여섯 규빗 한 뼘이요 [5]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중수가 놋 오천 세겔이며 [6] 그 다리에는 놋경갑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단창을 메었으니 [7] 그 창자루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는 앞서 행하더라』

    놋 오천 세겔의 갑옷의 무게 환산하면 57kg이다. 창날만 육백세겔의 무게는 7kg이다. 갑옷과 창날의 무게만 합산해서 64kg이니 평균적 성인 남자 몸무게에 이른다. 게다가 다리에 놋 각반을 찼고 머리에 놋투구까지 썼으니 그 위용이 가히 로보캅 수준이다. 이러한 골리앗의 모습을 본 이스라엘은 아마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감히 누가 나서서 맞설 엄두도 못내고 있을 때 붉은 얼굴의 미소년 다윗이 나타났다. 그리고 물매로 돌을 날려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유재석이 강호동과 씨름해서 이겼다는 것이다. 도대체 다윗의 승리 비결은 무엇이며 오늘날 성도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첫째,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쌓아야 한다.

    (삼상 17:34-35) 『[34] 다윗이 사울에게 고하되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전쟁 영웅 사울 왕도 골리앗 앞에 감히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개 어린 소년이 나서서 그와 대결하겠노라고 요청한다. 그는 사울왕에게 연이어 이렇게 말한다.

    (삼상 17: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골리앗을 상대하겠다는 이 미소년의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로 과거에 곰과 사자와 대결해서 승리했던 경험들에서 나왔다. 다윗은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처럼 성도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평소 작은 승리의 경험들을 쌓아나가야 한다. 여호수아를 보라. 그는 모세의 뒤를 이은 후계자가 되었고 가나안 정복의 과업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그 땅의 일곱 족속과 전쟁해서 몰아내고 정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일은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어려운 과업을 완수했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가나안 정복의 임무를 완수한 배경에는 그가 과거 작은 승리의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가나안 족속과의 전쟁 전에 이미 광야에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실전 경험이 있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은 기도하고 있었고 칼을 들고 전쟁을 수행한 인물이 바로 여호수아였던 것이다.

    또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하체 장애자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한다. 이것은 베드로가 어느 날 우연히 일으킨 기적이 아니다. 과거 승리의 경험들이 쌓인 결과였다.

    (마 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믿음도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과거의 작은 열매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모여서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과거에는 믿음의 열매가 전혀 없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큰 일꾼이 되어 믿음의 열매를 맺는 일은 없다. 기도의 응답을 경험한 성도가 더 큰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고 기도하게 된다. 희생의 경험이 있는 성도가 더 큰 희생의 자리에 헌신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개인이나 교회나 다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첫 번째 조건 바로 현재의 작은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의 경험을 쌓는 것이다.

    (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둘째, 멸시를 감내하는 겸손한 인격이 있었다.

    (삼상 17:28) 『장형 엘리압이 다윗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은지라 그가 다윗에게 노를 발하여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몇 양을 뉘게 맡겼느냐 나는 네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서 전쟁터에 왔는데 그의 큰 형 엘리압이 다윗을 나무라고 꾸짖는다. 다윗은 순수한 믿음과 담대한 마음으로 왔는데 형은 교만하고 완악하다고 오해하고 멸시했다. 다윗은 그 멸시의 말을 들었지만 엘리압 형과 다투지 않았다. 의기소침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왕 앞에 섰을 때 이번에도 다윗은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삼상 17: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큰 형 엘리압 뿐만 아니라 다윗은 사울왕에게도 멸시를 당한다. 이처럼 계속 멸시를 받았지만 다윗은 결코 분노의 감정을 품거나 다투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다윗에게는 골리앗을 상대하기 전에 이미 영적 전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멸시를 감내하는 겸손한 인격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는 이 내적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골리앗을 상대할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007 영화로 잘 알려진 숀코네리란 배우가 있다. 금세기 최고의 흥행작이란 불리는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 역을 해달라고 의뢰받았다. 그러나 그는 거만하게도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런데 아뿔사! 이 영화를 거절하는 바람에 무려 사천 억 달러의 수입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처럼 겸손이라는 인격이 받쳐주지 않으면 임하는 복도 제 발로 차버리는 것이 인생이다. 만약 형 엘리압이 멸시의 말을 할 때 형과 싸우거나 사울왕의 말을 듣고 마음속에 자존심 상해서 토라져 떠나갔다면 아마 골리앗과의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알았다. 그 대상은 내부의 친형이나 사울왕이 아니라 블레셋의 골리앗임을 알았다.

    세상사에서 신앙 안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인격이 받쳐준다는 사실이다. 인격의 결함이 있는 사람은 싸움의 대상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엉뚱한 대상과 싸우다가 힘 다 빼고 정작 자기 사명을 그르친다. 그러나 멸시와 조롱을 인내할 인격이 있는 자는 힘써야할 것을 분별해서 승리의 기회를 경험하게 된다. 사울왕은 그런 차원에서 실패한 인물이다. 왜 실패했는가? 자기가 상대할 적들은 블레셋이고 아말렉 족속인데 허구헛날 다윗 죽이려고 추격한다. 그렇게 다윗 추격하는데 있는 힘 다 빼고는 나중에 기습한 적군에 의해 전사하고 만다. 그래서 어찌보면 능력보다는 인격이 먼저다. 능력이 있으면 무엇하는가? 엉뚱한데서 기운 다 빼는데. 돈 있으면 뭐하는가? 돈 제대로 활용할 인격이 없는데.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기를 원하시는가? 그렇다면 승리를 보장할 바른 인격으로 무장하시는 성도가 되자.

    (잠 12:16)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에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

     

    셋째, 적합한 무기를 선택하는 분별력이 있었다.

    (삼상 17:38-40)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그 머리에 씌우고 또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치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고하되 익숙치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로보캅 중무장을 한 골리앗을 상대로 다윗이 갖추고 나가려는 군장과 무기는 무엇이었는가? 아마 사울왕은 골리앗만큼은 아니지만 이 작은 미소년에게 최소한의 군장과 무기는 건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울의 군장을 입어본 다윗은 말한다. 익숙하지 못하니 입고 가지 않겠단다. 그리고 다윗이 선택한 무기는 무엇이었는가?

    [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다윗의 군장에는 갑옷도 투구도 검도 방패도 없었다. 오로지 막대기와 돌멩이와 물매였다. 이것이 다윗이 선택한 군장이었다. 사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가장 허술한 선택인 것처럼 보이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다윗은 가장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 그는 평소 자기에게 가장 익숙한 무기를 선택한 것이다. 군장의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몸을 보호해주고 적을 공격하는 도구지만 무게가 문제가 된다. 너무 가벼우면 견고성이 떨어져 몸을 보호하지 못하고 너무 무거우면 싸움을 하지 못한다. 즉,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저는 군대 있을 때 항상 고민한 것이 20kg의 완전군장하고 어떻게 전쟁을 수행하느냐?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윗은 군장을 아예 벗어버린다. 그는 자신의 장단점을 알고 가장 적합한 무기를 분별하는 지혜가 있었다. 이것이 다윗의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지혜가 있는가? 남들이 입어 아름답다고 내가 그 옷 입어서 아름다울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내게 어울리는 옷은 따로 있다. 그 가정이 이런 저런 것 소유해서 행복해 보인다고 “나도 그것 소유하면 행복하겠지?”하고 착각하지 말라. 우리 가정에 맞는 행복의 조건은 따로 있다. 다른 교회에서 그 방법으로 교회가 발전한다고 우리 교회도 똑같이 하면 발전할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우리에게 어울리는 적합한 길은 따로 있다. 나를 정확히 알고, 내 가정을 정확히 알고, 내 교회를 정확히 알 때 그에 어울리는 행복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소위 균형감각! 내게 적합한 것을 분별하는 능력! 이것이 승리하는 신앙인의 세 번째 열쇠이다. 다윗처럼 이것을 분별하시는 저와 성도가 되자.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넷째, 하나님 이름을 높이려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다.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사울왕이 골리앗을 이긴 자에게 내건 포상이 있었다. 포상의 내용은 만약 승리하면 왕의 사위라는 특별한 신분을 주고, 많은 재물을 주고, 세금 면제의 특혜를 주겠단다. 그런데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한 동기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골리앗을 상대한 동기는 포상의 내용이 아니라 가슴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 때문이었다.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욕하는 할례 없는 이방인을 죽여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증거하려는 순수한 신앙이 있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영적 전쟁은 어떤 차원에서 하나님이 계시고 안계시고의 문제이다. 불신자들은 성도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우리 신앙을 저울질 한다. 나아가 우리의 형통과 불행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느냐 죽었느냐를 가름하려고 한다. 이것이 영적 전쟁이다. 그런 도전의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이렇게 살아계신다고 증거할 수 있어야 한다.

    에스더라는 여인은 민족적인 멸절의 위기 앞에서 말한다. “내가 왕 앞에 나가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이렇게 믿음의 모험을 감수하는 모습이 있었기에 민족의 몰살 위기를 면하고 민족의 구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붙들고 모험해야 한다. 모험하지 않으면 승리도 없다. 하나님은 모험하는 자에게 승리도 주시기 때문이다.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이처럼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해서도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과거 승리의 경험을 통한 확신, 멸시함을 참는 인격, 내게 맞는 무기를 분별하는 안목,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도님들은 오늘날 내 삶이 어떤 영적 전쟁의 상황에 있음을 발견하시고 있는가? 다윗과 같은 믿음과 인격과 담대함으로 마귀의 도전을 물리치고 승리하시는 성도가 되시길 바란다. 이와 같이 축복이 항상 함께하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https://youtu.be/3RrubN1vL80?si=Cw4dZPEe8vyA-MA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