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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삼상 1:1~8)

    [복음메시지]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삼상 1:1~8)

    설교제목 : 사무엘의 출생에 얽힌 하나님의 섭리

    본문 : 사무엘상 1장 1절~8절

    설교자 : 박은진 목자님

    성경은 일관된 주제를 우리에게 말해준다 (행1:3) 사무엘상의 주제는 하나님의 구속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지는가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알 필요가 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사무엘 이전시대는 사사시대이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엘리의 뒤를 이은 제사장이기도 했다. 사무엘은 사사이기도 했으며, 제사장, 선지자의 역할을 한 인물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인 암흑기였다. (1:3,2:12)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들이다.

    (1)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 = 사무엘의 아버지

    제사장은 오직 레위지파에서만 나와야 한다. (대상6:27-28) 사무엘의 혈통은 레위지파였으나 에브라임 성읍에 거주하던 것이었다. (민35:7) 레위지파에게 허락된 성읍에 거하던 것이다.

     

    1. 사무엘은 경건한 가정을 통해서 태어났다.

    (3) 이 사람이 매년에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 있었더라

    제사장들이 불량하던 그때에 사무엘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경건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세는 부모님의 믿음으로 태어나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쓰임받았다. (히11:23)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세례요한은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이었으며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다했다.

    하나님은 믿음의 가정을 통해 섭리를 이루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경건한 가정이 되어야 한다.

     

    2. 슬픔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한나는 슬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믿음을 나타냈다.

    (6) 대적 브닌나의 괴로움에 식음을 전폐하기까지 했다.

    (2:6-7)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고난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절한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다.

     

    3. 대적자로 인한 고통을 축복을 받는 기회로 바꾸었다.

    (10-11)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2) 아마 한나가 첫 번째 부인이었으나 자식을 낳지 못해 브닌나를 취했을 것이다.

    한나는 브닌나가 괴롭혀도 치고박고 싸우지 않았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때도 자식을 낳음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소망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드렸다.

    혹시 내 주변에 브닌나와 같은 대적이 있다면 너무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적을 통해 간절한 믿음과 성숙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를 괴롭히는 대적이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이를 연단의 기회로 삼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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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복음메시지] 모세의 피끓는 외침, “너희 하나님이야!” (신7:1~11)

    ♣2023. 2. 18일(토) 안식일오전(오희도 목자)

    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들이시고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9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11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찌니라(신7:1~11)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명칭은 성경에 224회 나오는데 신명기에만 207회 사용되었다.(한글성경 기준) 보통 하나님을 말할 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라고 부르는데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말은 신명기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여 7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한다. 왜 모세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을 했을까? 모세 자신의 하나님은 아닌가?

    네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한 3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첫 번째는,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 중에서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가나안땅에 아무도 못 들어가고, 모세도 못 들어가는 상황에서 출애굽 제2세대들에게 미래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들이 섬기고 따르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임을 강조한 것이다. 두 번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받는 백성으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축복받는 결정적인 요인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절에  “들이시고“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들여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이 말씀을 자세히 묵상해 보면 모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모세의 마음은 가나안에 너무 가고 싶으나 자신은 못 들어가지만 2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복된 백성으로 살으라는 간절한 마음과, 자신은 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어있다. 후배들에 대한 깊은 사랑과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으로, 복 받는 백성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있다.

    “너보다 많고 힘이 있는 일곱 족속을 쫓아 내실 때에”(1절) 일곱족속을 누가 쫓아내시는가? 바로 하나님께서 쫓아내신다.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쫓아지는 것이 아니다. “붙여 치게”(2절)하셨다. 정복 전쟁이라는 의미를 여호수아서에 가면 더 정확히 알 수 있는데, 여호수아서에 가면 중요한 원어 두 가지가 “나탄과 헤렘” 이다. 붙여가 나탄이다. 치다가 헤렘이다. 예를 들면 다윗이 전쟁 때마다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제가 저들을 치러 나갈까요?”  하나님은 나가라는 말 앞에 “그들을 네 손에 붙이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미 승리하도록 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붙이신 전쟁은 이미 승리가 결정되었다. 나탄이 나오면 이미 결정난 전쟁이다. 그 승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것이 바로 헤렘이다. 일곱족속을 네 손에 붙여주실때에 너희들은 헤렘해야 한다. 치는 것은 너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탄해주신 것을 너는 헤렘해야 한다.

    왜 헤렘(진멸)해야 하나?

     1. 죄의 관영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창15:13~16)과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하면 헤렘하시려고 계획하셨다. 일곱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심판의 도구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신다. 반면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는 바벨론이나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2. 하나님의 언약

    (창17:7~8) 언약이 성취되기 위한,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다.

     3. 신앙이란 우리가 세상에 있던 것을 내쫓아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4. 영적 전쟁은 사탄과의 전쟁이다. 진멸하는 것이다. 죄악(사단)과의 전쟁 원칙은 헤렘이다.

    가나안에 가서 백성들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그들과 언약하지 말라. (2절) 언약을 해버리면 진멸하지 못한다. 이 전쟁은 이미 하나님이 나탄해 주셨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 이 말을 보면 사랑의 하나님을 오해하기 쉽다. 하나님은 절대 이유 없이 죽이시지 않으신다. 여리고성을 진멸할 때 다 진멸하셨을까? 라합은 살려주셨다. 비록 그가 여리고성의 여자이지만 진짜 하나님임을 고백했다. 신뢰하고 믿는 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를 살려 주신다. 불쌍히 여기지도 말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침해하는 개념의 단어가 아니다. 철저히 죄악, 음란, 우상숭배, 거역하는 자들을 사탄과의 전쟁에서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3절)이다.

    만일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➀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고, ➁그로 여호와를 떠나게 하고, ➂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다.(4절) 십계명의 첫계명부터 어기게 되는 것이 이방결혼이다. 우상숭배를 가장 쉽게 당하는 것도 이방결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진멸한다. 말씀을 어기면 너희가 헤렘이 되는데 이것이 진노, 저주의 헤렘이다. 

    하나님의 진리는 알고 보면 단순하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수많은 우상들을 좋아하지 말고 부수고 깨뜨리고 찍고 불사르라는 것이다.(5절) 쉽지 않다. 그러나 단순하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수많은 우상들을 영적인 전쟁에서 부수는 것으로 시작하고 부수는 것으로 끝나야 되고 부수는 중에 있어야 한다. 오로지 하나님만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라.

    그래서 모세는 “너는!! “이라고 외친다.(6절) 이스라엘도 아니고 우리도 아닌 “너“라고 외친다. 모세의 피끓는 외침이다. 너희들의 정체성은 우상과 멀고 세상과 떨어져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한사람 한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고 선언한다. 이 외침은 모세가 가슴에서 피를 끓이며 그들이 정말로 깨닫게 하기 위해 해준 말씀이다. 한사람 한사람을 향해 “네가 섬겨야 할 하나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희 한사람 한사람이 성실하게 순종하고 따라야 될 하나님”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이 세대도 마찬가지이다. 너희는 이땅에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라고 예수님이 외치신다. 왜 셰마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 해야 되느냐, 너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민이기 때문이다.

    성민이 되는 중요한 두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선택하셔야 한다.(6절) 하나님이 택하신 이유는 ➀적어서 택하셨다.(7절) 적은 무리를 택하셨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고전1:27) ➁사랑하시기에 선택하셨다.(8절) 선택이 없는 구원은 없다. ➂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기 위함이다.(8절) 성민의 두 번째 조건은 속량이다. 피흘림이 없으면 속량이 없다. 누군가 우리의 죄값을 치러 주셔야 속량이 된다.(8절)

    9절은 너희들이 알아야 할 네 가지를 말씀하시는데 첫째,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오. 이 말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속량해 주신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신실은 믿음이라는 단어이다.(히.에무나, 헬.피스티스)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언약을 반드시 이행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9절) 셋째,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는 헤렘된다.(10절) 넷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한다. 순종(믿음)을 말한다.(11절)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지켜 행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성민의 자격을 굳건히 가질수 있다.

    따라서 성민이 되는 조건은 선택과 속량, 이 두가지인데 한가지 더해서 성민의 세 번째 조건은 순종이라고 말하고 싶다.(헬.피스티스:믿음)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히6:4~6)

    모세의 피끓는 외침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복된 영적인 성민들이 되자. 이 땅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이미 구원의 언약을 붙잡고 살아가는 귀한 백성임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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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11)

    [복음메시지]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살전 5:9~11)

    일시 : 7월 16일 토요일 오전예배

    제목 :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본문 : 살전 5:9~11

     

    (살전 5:9~11)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어떤 일반교회 신도가 항상 하나님께 매를 맞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말로만 매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하나님을 항상 징계의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늘 매를 들고 계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은 잘못 알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 스스로 소개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가 있습니다. 매를 드시는 하나님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고, 직접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한 성경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을 줄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장래에 소망을 줄려고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세상 끝날 종말에 관한 내용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듭니다. 종말은 크고 두려운 날이고 심판의 날이고 심판은 또 두 종류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막연히 두려운 대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노하심의 하나님이 아니요, 구원을 얻게 하실려고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안식일에 성도들을 불러 모으신 것도 오직 구원을 얻게 하실려고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딤후 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바울사도는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을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무슨 근거로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자신 있게 고백을 했을까요?

    딤전 1: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5~16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사도는 자신 스스로를 예수를 대적한 사람이요 믿는 사람을 훼방하고 핍박한 폭력자요 결국 스데반집사까지 죽게 한 죄인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한테 정작 징계를 받아야 할 사람은 자신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런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믿는 사람을 잔멸할 정도로 큰 죄를 지은 죄인중의 괴수인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오래 참으심을 보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으니 하나님은 징계의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기의 경험을 통해 자신있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까요? 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내가 구원을 얻은 이유는 내가 착해서도 아니요 내 노력도 아니요 내 공로도 아닙니다.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8)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십자가의 구속으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안에는 반드시 십자가위에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는 내가 죽어야 할 죄인인데 예수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2000년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안에는 나를 향한 구원이 들어 있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구속의 고마움을 알 때 믿음이 생기고 나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목숨까지 버리면서까지 십자가에 죽으셨을까요? 그 목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바로 사랑하는 우리와 함께 살든지 죽든지 영원히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마지막으로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살전 5: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피차 권면하는 삶을 살으라는 것입니다. 권면은 옆에서 위로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확신하는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40: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럼 어떻게 하면 위로하고 권면을 할까요? 바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피차 덕을 세우라는 것은 믿음의 집이 튼튼히 서갈 수 있도록 서로 돕고 협력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럴 때 종말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종말이 가까울수록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행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살전4:9~10)형제 사라아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데살로니가교회는 믿는 자의 본이 되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앞으로 더 힘쓰고 노력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런 교회가 서로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살전 4:1)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회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더욱 많이 힘쓰라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면 마음에서 기쁨이 샘솟는 행복한 교회였습니다. 이 행복과 기쁨이 성도님들의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길 소망합니다. 또한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아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님이 되시길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소망합니다.

     

  • [복음 메시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삿 4:1-22)

    [말씀 제목]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삿 4:1-22)

    [설교자] 김세한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식일 예배

    구약 성경에서 사사시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여러 가지 특징 중에 하나는 사사의 생존하는 동안에는 천하가 태평하다가 사사가 죽으면 고통이 다시 찾아오는 악순환의 시대였다. 이것은 오늘날 홀로서기하지 못하고 타인 의존적으로 신앙생활하는 연약한 성도들의 모습을 상징한다고 했다. 이끌어줄 사사가 있으면 태평하고 사사가 사라지면 평안이 사라지듯이 나를 이끌어 주는 성도가 있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나를 이끌어 줄 사람이 없으면 점점 교회도 신앙도 멀어지는 그런 상태의 신앙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사사시대의 백성들이건 오늘날 성도들이건 선민을 향한 우리 하나님의 뜻이 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 하나님의 뜻이란 바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자신이나 교회의 신앙이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된 상태에 있다면 어떻게 그 자리를 벗어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어떤 기적을 경험하고 복의 열매를 수확하는지 오늘은 여자 사사인 드보라와 헤벨의 아내 야엘의 활약상을 통해서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첫째, 하나님 능력을 의지하면 약한 자도 승리할 수 있다.

    (삿 4:4-5) 『[4]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5]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성경을 보면 좋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들 중에 여성이 많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의 지배를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승리의 역사가 한 여자 사사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일종의 풍자이다. 여자 사사 드보라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면서 선민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고통 중에 있더라도 다른 신을 버리고 나만 온전히 의지한다면 이렇게 연약한 여자일지라도 승리하게 해주는데 왜 나를 온전히 의지하지 않느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일종의 질책이 담겨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당하는 것은 바로 가나안 족속이 강하기 때문도 아니요, 군사와 무기가 열등하기 때문도 아니요, 다만 우상숭배에 빠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도 물질이 부족해서, 좋은 가정 출신이 아니어서,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굳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편적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유약하지만 남자보다 강한 경우가 있다. 신앙 안에서 남자 같은 강건한 믿음만 있다면 하나님은 유약한 여자라도 그를 높이 들어 쓰신다. 그리고 남자들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이루게 하신다. 이런 측면에서 신앙의 세계는 하나님 앞에 남자나 여자나 평등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영광을 얻게 된다.

    (삿 4:8-9) 『[8]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9]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드보라의 명령을 들은 바락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일만 명을 데리고 다볼산으로 가라니까 “드보라 당신이 함께 간다면 나도 가고 당신이 함께 가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말한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 어린 아이가 부모님이 함께 가면 학교 가고 함께 가지 않으면 안가겠다고 떼 쓰는 모습과 같다.

    우리는 때로 바락처럼 하나님께 조건부 순종을 내걸기도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해주시면 순종하고 안 해주시면 순종하지 않겠다는 심산을 가진다. 순종의 정신이 사라지고 상거래의 정신이 남는다. 그런 삐딱한 믿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복이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만큼 복 주신다. 믿음으로 행하는만큼 영광을 누리게 하신다. 드보라같이 대장부의 신앙을 나타내면 대장부의 상급을 주시고 바락같이 졸장부 신앙을 나타내면 영광에서 제외된다.

    셋째,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큰 승리를 경험한다.

    (삿 4:12-13)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 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철병거 900승을 소유한 야빈의 군대에 대행해서 싸운다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소총부대가 탱크부대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만큼 무모한 짓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을 믿고 실천했을 때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는 것 같은 기적은 일어났다. 바락이 드보라의 명령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납달리와 스불론의 일만 명을 모아 가나안 족속과 전쟁하려고 다볼산에 올랐던 것이다. 비록 불완전했지만 바락이 그 말씀을 믿었으니까 이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런 정도의 믿음도 하나님은 칭찬해주신다. 그 믿음을 인정하신다는 증거는 히브리서 기자가 바락을 칭찬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는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전략이 승리를 가져온다. 그래서 여인이 전하든, 어린이가 전하든 그 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포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만약 바락이 드보라의 말을 여자라고 무시했다면 이 기적은 없었다. 누가 전하든 하나님 말씀으로 받을 줄 아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우리 삶의 승리는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는데서 시작된다. 때로 번지점프하는 것처럼 무모해 보이지만 말씀이라는 동아줄을 믿고 뛰어내려야 한다. 실제 번지 점프에서는 때로 끊어지는 사고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에 의지해서 자신을 맡길 줄 아는 성도가 되자. 그러면 인생이 평안하고 기대치 않은 축복의 열매들로 가득할 것이다.

    (시 37:5-6) 『[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졸장부 믿음이 아니라 대장부 믿음으로 무장할 때 내 삶의 장애물인 철병거가 사라지고 영광을 누리는 꽃마차에 올라타게 될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승리하시고 천국의 영광에 참여하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원한다.

    글작성 : 김세한 목자님

    글편집 : 박은우 형제

     https://youtu.be/b6rzCKe8Wr0

  • [복음 메시지] 때와 시기에 관하여 (살전 5:1~3)

    [복음 메시지] 때와 시기에 관하여 (살전 5:1~3)

    [말씀제목] 때와 시기에 관하여

    [설교자] 박은진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 (토요일) 안식일 예배

    어떤 청년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고민하는 신앙이 있는 가 반면에 이 세상 청년들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고민하고 있다.

    그럼 우리성도들은 어떻게 하면 주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재림이 당장 올 것처럼 삶을 다 포기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살전 5:1~2)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여기 본문중에 때와 시기, 주의 날은 바로 재림의 날, 종말의 날, 심판의 날이다.

    똑같은 심판의 날이지만 그날에는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뉘어진다.

    형제들과 저희들 그리고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섬기지 않는 사람, 양과 염소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의인은 영생에 들어가고 저희는 영벌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때와 시기에 관해서 우리는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종말의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영원하지가 않고 언젠가는 끝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그 끝 날이 바로 심판의 날이 된다는 것이다.

    (히 9:27)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이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데살로니가 성도는 하루를 살아도 심판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았다.

    우리도 우리의 삶이 끝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

    그 날은 바로 심판의 날이 되고 그 심판의 날을 위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도적같이 온다

    (살전 5:2)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열처녀 비유처럼 기름을 준비한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했지만 기름을 준비 못한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

    성경은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른다고 말씀하셨고 

    멸망의 날이 해산의 고통과 같이 홀연히 온다고 이르고 있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한다.

    (살전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에 관심이 많고 투자나 재테크, 보험등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영원하지가 않고  평안과 안전을 얻기 위해서  저희들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롯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소유가 많아 아브라함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평안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 소돔땅을 선택했지만 이 땅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는지 그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

    우리도 내 생활의 평안과 안전을 위해 하나님을 떠나면 안된다

    소돔땅이 불과 유황으로 타버린것처럼 하나님은 이세상도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실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 세상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세상의 가장 가치있는 것은 평안과 안전이 아니고, 바로 영원한 하늘나라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오직 깨어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잉태된 여자처럼 홀연히 도적같이 오기 때문이다.

    종말의 날만 홀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죽음도 홀연히 찾아온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고 예수님도 반드시 오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광중에 예수님을 맞이해야 한다.

     

    글쓴이 : 김참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