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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조*화 자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 71)

    저는 9살 때부터 오빠를 따라 참예수교회 쌍치기도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후 부모님께서 생계를 위해 참예수교회 남원교회 근처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시게 되면서 가족 모두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을 영은회 때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령을 받아 방언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저를 깨워 새벽기도에 데리고 다니시던 기억도 아직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며 저를 의상실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여성복을 만드는 곳에서 의아하게도 남자 기술자 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당시 옷 만드는 일은 모두 수작업이었고, 맞춤옷 한 벌을 완성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밤샘 작업이 이어지는 날도 많았고, 한 달에 한두 번 쉬기도 어려웠고 토요일에 일하는 것이 다반사였던 상황이라 점점 교회와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큰아이가 다섯 살, 둘째가 태어난 뒤에 생활고 속에서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녔고 실직의 기간도 많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친정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더 큰 도시로 가면 살아갈 길이 열릴 것이라는 생각에 남편을 먼저 서울로 보내고, 자리가 잡히면 올라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울 생활은 역시 결코 녹록지 않았습니다. 월세방 한 칸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야 했고, 먹고살기 위해 어린 둘째를 업고 주인집 포장마차에서 홀서빙과 주방 심부름을 했습니다. 남편은 월급 대신 옷으로 가져오면 제가 그것을 팔아 생활비에 보태기도 했지만, 월세조차 제때 내지 못할 만큼 형편은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을 통해 한 패션회사를 소개받게 되었고, 안정된 직장이라는 말에 ‘1~2년만 맞벌이를 하며 자리를 잡아보자’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큰딸은 여덟 살, 아들은 네 살로 한창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나이였습니다.

    종암동 집에서 압구정동 회사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남겨둔 채 매일 출근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점점 늦게 귀가하기 시작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생활의 무게와 외로움 속에서 괴롭고 힘든 일상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삶의 돌파구가 안 보이고 깊은 절망감에 빠져 낙심해 있을 때 문득 남원교회 영은회에서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을 떠올리며 힘을 내보기도 했지만 제 인생은 꼬인 실타래처럼 점점 더 엉켜 갔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갇혀 아무런 소망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2007년 11월에 안양에 살고 있던 오빠가 안양교회로 나오라고 계속 연락을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알겠다며 대답했지만 교회를 나오라는 잦은 연락에 내 형편을 모르고 교회만 나오라고 하는 것 같아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바쁘고 나중에 시간되면 가겠다고 미루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은 건강검진을 받자고 제안했고 이때 받은 건강검진에서 자궁경부암 초기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안산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했습니다. 죽음 앞에 서게 된 저는 남편에게 교회를 나가야겠다고 말을 하였고 남편도 큰 반대가 없었기에 다시 하나님을 찾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육신의 병까지 생기자 삶의 깊은 회의가 들었고 하나님께 돌아가고 간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안산 고려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시흥 딸 집에서 요양하며 안양교회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평안과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아, 이곳이 내가 와야 할 곳이구나. 이곳이 나의 피난처구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은혜가 넘쳤고, 찬양이 너무 좋아 저도 모르게 계속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지친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위로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딸집에서 2주를 지냈을 무렵 남편이 찾아와 서울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남편과의 불화가 여전했고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남편이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워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으로 가야했습니다.

    서울 집에서 안양교회까지는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렸지만 저는 안식일 오전 예배만이라도 드리기 위해 교회를 오갔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 집으로 다시 서둘러 돌아가야 했지만,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형제자매님들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가족을 만난 사람들처럼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셨고, 예배 시간에 들리는 말씀은 꼭 제게만 주시는 말씀처럼 마음 깊이 다가왔습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마음은 계속 교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찬양과 말씀이 가득했고,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붙들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교회를 오가던 어느 날, 2008년 설명절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간단히 명절 음식을 준비하며 찬양을 흥얼거리고 있었고, 쇼파에 앉아 있던 남편이 갑자기 조상 제사를 지내자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교회에 다니게 되었으니 앞으로 제사는 지내지 않겠어요.” 평소의 저라면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었지만, 그때는 두렵기보다 이상할 만큼 담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고백은 제 힘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 마음에 용기와 믿음을 주셨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결국 저는 아들과 함께 빈몸으로 집을 나와 안양으로 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남편과의 불화는 계속되었고 큰 다툼을 겪으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던 아들은 더 이상 집에 들어가지 말자고 하여 결국 안양의 오빠 집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역시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수술 후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일을 해야 했지만, 안양에는 제가 할 수 있는 패션 관련 일이 많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약 6개월 정도 교복집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안식일 예배를 지켜야 했기에 늘 시간에 쫓기며 생활했습니다. 교복철이 지나 일이 끊기면 구직 자리를 안내하는 신문을 들고 하루하루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했습니다.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용직 가사도우미, 식당 아르바이트, 입주청소 회사 등 여러 일을 전전하면서도 어떻게든 안식일만은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이후 공공근로에 참여하며 주 5일 근무를 하게 되었고, 국비지원으로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농협 구내식당 조리사로 일하며 조금씩 삶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교회 송년행사인 작은 불꽃 선물을 사기 위해 기독교 백화점에 가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둘러보던 중 작은 액자 하나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액자에는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그 말씀 앞에서 저는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밀려와 한참을 서서 눈물을 삼켰습니다. 결국 그 액자를 집으로 가져와 매일같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해졌고, 세상에서 겪던 고통과 문제들을 멀리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말씀은 제 인생의 등이 되어 주었습니다. 캄캄했던 길을 비추며 다시 앞으로 걸어갈 힘을 주셨고, 저는 말씀 안에서 위로와 소망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지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점점 커져 갔습니다. 그래서 예배와 안식일 행사, 성경공부와 기도회에도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안산 고려대병원으로 정기검진을 다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혼자 병원에 가는 처량한 상황에 우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이 찬양이 떠오름과 동시에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저를 꼭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고 계시는구나.’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한참을 혼자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선포되는 말씀을 경청하며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저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셨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이 되어 아무도 없는 빈 방에 홀로 앉아 목놓아 울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미움과 상처도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 무렵 전도된 딸도 어려운 고난이 있었지만 가족 모두 세례를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심하였고 딸은 성령을 받았습니다.

    2013년 11월쯤이었습니다. 깊이 잠들어 있던 새벽, 갑자기 오른쪽 귀에 마이크를 댄 것처럼 아주 크고 또렷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너무도 생생한 음성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귀를 만져보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캄캄한 새벽이었고, 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무지하고 연약한 저에게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찾아와 주셨고, 그 순간 저는 주님의 임재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제 안의 무너진 마음과 연약한 영혼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이제는 ‘내 힘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럴수록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암도 2012년 2월 완치 판정을 받게 되었고, 2014년에는 교회 가까운 곳에 작은 집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 늘 마음 졸이며 기도하던 소망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지금은 딸네 가족 네 식구 모두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으며, 한때 “엄마는 교회에 미쳤어”라고 말하며 신앙에서 멀어졌던 아들도 최근 다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절망 속에 있던 제게 소망을 주신 분, 슬픔 가운데 있던 제게 기쁨을 허락하신 분, 상처투성이였던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신 분은 오직 주님이셨습니다. 쓰러져 있던 제 손을 붙잡아 일으켜 주셨고, 메마른 광야 같은 제 삶의 길을 치료하시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길지 않은 남은 삶이지만 늘 깨어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며,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저의 삶이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어,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을 비추는 통로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금까지 저를 인도해 주신 분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 간증]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오다*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길 원합니다.

     

    #경고하시는 하나님

    저는 고등학교 1학년 후반부터 입시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인해 잘 먹지 못했고 이로 인해 1년 간 약  20kg이 빠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건강이 매우 악화되었고, 이 상태는 고등학교 2학년 기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회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동시에 사단이 넣은 악한 생각에 얽매여 스스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 상황들로 경고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화요일 저녁 예배 시간에 받은 이사야 말씀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이사야 말씀에는 죄를 범하여 고통 받는 이스라엘의 모습과 그들이 돌아오길 원하시는 하나님이 자주 나오는데, 다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꼭 저를 책망하시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화요일 저녁에는 완악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하는 저를 놓으실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지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일상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심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저는 건강할 때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밤마다 몸이 눌린 듯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이 계속 찾아온 것입니다. 이런 순간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으며, 이렇게 죽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죄송하다고, 말씀 듣고 순종하며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몸이 풀리면 짧게 기도하고 다시 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도는 순간의 위기를 면하려는 기도에 지나지 않았고, 이런 순간이 지나면 다시 제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 갑자기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 것을 느낀 일이 있었는데, 이 일 후에 비로소 현재 생활을 지속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목자님과의 면담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저의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보였는지 목자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셔서 제 이야기를 들으시고 말씀으로 권면하셨습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말씀은 지금 제 생활의 기반이 되는 생각들이 사단이 준 것인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 분별하라는 말씀(약3:15-18: 15)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제 생각을 하나님께로 복종하여야 한다는 말씀(고후10:3-4: 3)입니다. 제 삶을 얽매고 있는 제 생각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돌아보고, 하나님 아래 복종해야겠다고 다짐할 수 있도록 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약3:15-18)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고후10:3-4)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내하시면서 계속 저의 마음을 돌리도록 일하셨고, 그 은혜로 제 완악한 마음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2학년 1학기가 끝난 여름방학에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먼저 건강을 회복하고 이후 공부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대학 입학이 걱정되면서 강한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보니 부모님과 집에서 하루 종일 생활하면 많은 부분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불만이 거부감의 이유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욕심대로 살고 싶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책망 받았던 것과 똑같은 모습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저 또한 이런 상태로 학교생활을 지속해선 안 된다고 판단하여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이때 목자님께서 오후에 교회에서 같이 기도하고 안수기도를 받을 것을 제안하셨고, 엄마도 매일 잠언 말씀을 1장씩 배우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저는 매일 교회에 가서 말씀 영상 1개를 보고 기도했습니다.

    이후 저에게 가장 먼저 변화된 점은 불안함, 답답함, 죄책감과 우울함으로 혼란스러웠던 제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비록 제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으나 그 가운데 다시 웃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더 먹을 수 있었고 살이 붙으며 체중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는 병원 치료도 병행하면서 정상 체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환난을 통해 연단하시는 하나님 

    정상 체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저는 다시 시험에 들었습니다. 단기간에 몸무게가 많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몸은 계속 붓고 땀이 많이 나서 힘들었으며, 급작스레 살이 찐 저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식욕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기에 힘든 마음은 하나님 앞에 울면서 말하고 위로를 얻었으며, 그를 통해 환난 중에 도리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은혜는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느낀 것입니다. 몸이 계속 부어서 기도할 때 무릎을 꿇기 힘들어지자, 가정예배 기도 시간에 하나님께 제 어려움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싶은데 몸이 부어 다리가 아파서 기도에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주 수요일 목자님께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받으라고 말씀하시며 기도 의자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듣고 계시며 응답하심을 강하게 느꼈고 저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말씀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을 회복하던 중이었음에도 여전히 그 결과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성경에서는 환난을 겪으면 성장한다고 했는데, 환난을 겪고도 변화가 없는 제 모습을 보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이와 관련하여 언니와 대화를 한 후 기도를 했는데, 기도 중 갑자기 말씀(롬5:3-4: 3)이 떠올랐습니다.

    (롬5:3-4: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저는 환난과 연단을 잘 구별하지 못하고 모든 환난은 저를 연단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씀에 제시된 순서와 달리 환난-연단-인내-소망의 과정이 아닌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이 의문과 걱정은 해결되었습니다. 연단은 환난 속에서 인내할 때, 즉 믿음을 갖고 기다릴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환난-인내-연단-소망이라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고,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제가 믿음으로 인내한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성장의 경험을 통해 지금은 부족한 모습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연단을 통해 저를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드셔서 그 나라를 누리게 하실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비록 제 연약함으로 인한 환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운데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저는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롬8: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리고 저는 고3 3월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비록 공부 시작이 늦었다는 불안함과 혼자 공부해야 한다는 막막함이 있었으나, 건강을 회복하는 가운데 경험했던 하나님 은혜를 붙잡으니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리하니 큰 은혜를 받고도 점점 감사를 잃고 살아가는 제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집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감사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 [성도간증]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조영민 집사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 106: 1-5)

    1.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

     과거의 삶을 돌아보면 저는 아주 연약하고 서글픈 유소년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그 시절, 다른 아이들처럼 마냥 유쾌하고 재미있게 뛰어놀기보다는 늘 어딘가 아파하면서 하루하루를 쓸쓸히 지낸 것만 현재 저의 기억 속에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갑자기 몸이 아팠는데 어떤 분이 저를 업어서 동네 입구에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저는 길거리에 누워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괴로워해야 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십대 중반에 들면서는 항상 허리가 아팠습니다. 그러면서 십대 후반이 되자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그것이 저의 부모님에게는 언제나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러다가, 매일매일 적지 않은 육신의 고통을 겪으며 집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아신 제  큰고모님은 매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어느 날 그 고모님이 우리 집을 일부러 찾아오셨는데, 어떤 분을 특별히 대동하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당시 청주교회를 시무하시던 허충진 목자님이십니다. 그날 목자님은 저를 앞에 앉혀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후에 그분은 뜻밖에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네, 우리 집으로 가세!” 그 말씀에 저와 부모님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지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느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언가 강력한 힘에 붙잡힌 것처럼 그날 곧장 목자님을 따라갔습니다. 그 이후 여러 날을 청주교회 목자님 사택에서 숙식을 함께하며 지냈습니다. 당시 청주교회는 일반 주택의 방 두 개가 전부인 아주 협소한 공간이었습니다. 그중 작은 방은 목자님 내외와 두 딸이 거처했습니다. 그보다 더 큰 방은 예배 날에는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목자님 아들 삼형제와 제가 거주했습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 알아들을 수 없는 기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전 14:2)

      그 무렵 목자님 가족은 매일 아침, 당시 저로선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기도를 했습니다. 방언 기도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언젠가부터는 저도 그 방언 기도를 그들과 똑같이 함께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바로 목자님께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럴 용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저들과 함께 여러 날 기도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나 보다!’라고 막연히 추측했기 때문입니다. 훗날 목자님께 그런 사실을 고백했더니 목자님은 그때 제가 성령을 받은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고 새 신자로 바뀐 제가 우리 참교회에서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하루는 목자님께서 저에게 이런 권고를 하셨습니다. “대전교회에서 영은회가 있으니 자네, 대전으로 가서 세례를 받고 오게나.” 사실 그때 저는 세례에 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요즘 같은 체계적인 세례 교육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목자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단순한 마음만 갖고서 어떤 준비도 없이 대전교회로 갔습니다. 그 시절엔 대전교회에 차량도 없었습니다. 교회 앞의 길은 포장이 되지 않아 일반 자동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 주위 사방에 뿌연 먼지가 하늘 높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그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수용했습니다. 그리하여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유등천까지의 길을 반은 버스를 타고 반은 걸어가서 세례를 받고 왔습니다.

    3. 요추 3, 4번 수술을 받다.

     그렇게 신앙행활을 하던 중 총회 사무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는 총회가 서울 녹번교회(현 서부교회)와 함께 있었는데 어떤 분이 저에게 총회로 가서 사무원으로 일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저는 먼저 부모님과 상의한 후 총회 사무원으로 일하겠다고 결심하고 상경했습니다.  총회에서 공식 채용되어 사무원으로 일한 지 2~3개월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다리에 통증이 극심해서 걷는 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청주로 내려왔고 시내에 있는 어느 병원으로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이미 저의 병이 많이 진행되어 심각한 상태이므로 당장 입원하여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저는 어머님과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목자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목자님은 저에게 다른 병원에도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따라 다른 병원으로 가서 또 검사하니 동일한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제 저로선 더 지체하면 몸 상태가 더 위험해지는 게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청주 어느 병원에 입원하여 요추 3, 4번을 하나로 묶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에는 약 한 달간 약물과 주사 치료가 있었습니다. 무릎에서 명치까지 석고로 깁스한 상태였습니다. 그 상태로 적어도 6개월은 지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저는 퇴원하게 되었고 들것에 실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병원의 입원실을 벗어나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니 무엇보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런 몸으로 매일 24시간 누워서 6개월을 지낸다는 것은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일이 도래하여 그 거대한 깁스를 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저의 몸이 깁스한 상태로 오랫동안 한쪽으로 치우쳐 누워만 있다 보니 이제는 옆으로 눕는 것이나 일어서는 것조차 매우 어렵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세를 조금만 바꾸면 저를 둘러싼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너무나도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조금씩 적응해 겨우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여섯 달이나 누워만 있었기에 발바닥에서 굳은살이 다 풀어져 버렸습니다. 마치 갓난아기의 발처럼 매우 연약한 발이 되어서, 간신히 일어선다 해도 발바닥 통증이 극심해 잠시도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저는 두께가 약 5cm인 스펀지 매트를 방바닥에 깔았습니다. 그 매트에 발을 얹으니 겨우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몸의 중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워 손으로 벽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벽을 따라 방에서 걷는 연습을 했습니다. 수술을 받고 나니 저의 몸이 그처럼 쇠약해지고 기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 6~7년간은 그야말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몸은 점차 정상으로 회복되어 갔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저를 불쌍히 보시고 제 몸을 굳세게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의 몸 된 교회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4. 주 안에서 결혼, 사랑하는 자녀를 하나님이 주심

      그러다가 제 나이 28세가 되었을 때 별안간 저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 부모님의 부탁을 받은 목자님께서 저의 결혼을 주선하신 것입니다. 그때까지 제가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교육받은 결혼관은 결혼도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해야 하고 그래야 진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하여, 신앙 안에서 주시는 목자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한다는 게 저의 소신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난생처음 맞선을 보게 되었고 다른 건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날 맞선 상대인 바로 그 사람, 지금의 아내와의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그즈음 저로서는 사실, 결혼과 관련하여 무엇을 주장하고 무슨 조건을 내세울 수 있는 처지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결혼할 만한 여건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은 달랐습니다. 일단 저를 무조건 결혼시키겠다는 것입니다. 집 안의 논이라도 팔아서 저에게 가게라도 하나 장만해 주면 그럭저럭 먹고는 살지 않을까 해서 제 결혼을 추진하셨다고 합니다.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과 부모님의 사랑을 힘입어 저는 1984년 6월 3일 청주교회에서 결혼식을 했습니다.

      결혼 후 2~3개월 무렵이 되자 아내가 첫 임신을 하였습니다. 그 소식에 부모님은 물론 온 교회 성도님들이 함께 기뻐하며 축하해 주셨습니다. 결혼하고서 이듬해 4월 29일, 사랑하는 첫딸이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귀한 선물로 믿고 처음에는 딸의 이름을 ‘은혜’로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청주교회에 이미 은혜라는 이름을 가진 자매가 있기에 <인혜>로 지었습니다. 이제 어엿이 부모가 된 저로선 하나님이 맡기신 소중한 딸이므로 잘 키워야 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가장(家長)의 책임도 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에겐 변변한 직업이 없었습니다. 새 식구가 늘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지만, 여전히 부모님께 기대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제 마음엔 무척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저는 여러 날 고민하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무심코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거기서 흘러나오는 뉴스 하나가 저의 귀에 또렷하게 들려왔습니다. 충청북도에서 지방 공무원을 뽑는다는 것입니다. 며칠 후에 저는 아내에게 “도청에서 공무원을 뽑는다고 한대.”라며, 지나가는 말 하듯이 그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반색하면서 그 시험에 자기가 한번 응시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의 부탁을 받고 동네 여러 집을 찾아다니면서 고등학생들 책 몇 권을 빌려왔습니다. 그 일에 어머니도 선뜻 동참하여 그 시험 관련 책들을 빌려다 주셨습니다. 아내는 그 책들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마침내 시험 치르는 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자전거에 태워서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시험을 다 치른 후엔 또 자전거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합격자 발표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집으로 오는 중에 사뭇 기대하는 마음으로 도청 게시판을 훑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거기 게시된 합격자 명단에 아내의 이름이 아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아내는 공무원 연수원에서 일정 기간 소양교육을 받았고 86년 3월 1일 옥천군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전과 달리 제 가족이 평소처럼 청주교회를 다닐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 옥천에서 청주로 가려면 직행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해도 편도로 1시간이나 걸렸습니다. 그럼, 당시 저희로서는 토요일 안식일 예배 참석도 상당히 힘들어질 뿐 아니라 밤 예배 참석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맙니다.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대전교회 쪽 교통편을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대전교회는 예배가 끝난 후까지도 시내버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가족 모두 소속 교회를 대전교회로 변경하기로 하고 그때부터 대전교회로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하나님은 저희 부부에게 또 하나의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딸과 23개월 차이 나는 둘째 딸입니다. 차녀(次女)의 이름은 원래 첫딸의 이름으로 하려고 생각했던 <은혜>로 지었습니다. 저의 딸들과 관련하여 지금도 제가 하나님께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 있습니다. 옥천에서 살던 시절 두 아이 모두 질병으로 인해 병원을 찾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르고 난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가정이 대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한 지가 올해로 40년이 되었습니다.

    5. 아버지를 전도함

     제 가족이 옥천으로 이사 오면서부터 자연히 청주 본가와 분가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거리가 상당히 멀어지자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종종 기회가 닿는 대로 부모님을 뵈러 갔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버지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질 것을 권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도 저희와 함께 교회에 다니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줄곧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나 잘 다녀라!”그러던 어느 날, 제가 큰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말했습니다. “다음 안식일부터는 청주로 올 테니 아버지, 저랑 함께 교회 갈 준비하고 계세요!” 하지만 교회에 대한 아버지의 거부감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나는 교회에 가지 않으련다!” 그래도 제가 물러서지 않고 다음 주에 청주로 꼭 오겠다고 말하면서 그 주 안식일에 청주 본가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새 아버지가 단정히 옷을 차려입고 교회 갈 준비를 다 마치고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날부터 일정 기간 저는 아버지 전도를 위해 안식일마다 아버지와 함께 청주교회로 출석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세례를 받으셨고 그로부터 얼마 후엔 성령까지 받으셨습니다. 오랫동안 세상 백성으로 살아오신 아버지가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신 것입니다. 이전에 저는 아버지 구원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여겼는데 예상보다 매우 순조롭게 성취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6. 아내의 뇌종양 수술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아내의 걸음걸이가 갑자기 이상해졌습니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어 보이는데 평소와 다르게 비틀거리며 걷는 것입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병원에 가서 정밀 진찰해 보자고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제 말에 대해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기는 그냥 하나님께 기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전 동구청 인사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의 배우자이자 보호자인 저를 부른 것입니다. 그 인사담당 공무원은 저에게 아내가 건강이 좋지 않으니 얼른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든지 아니면 사직(辭職)하라고 통보했습니다. 느닷없이 던져진 그 말에 저희 부부는 상당히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갈 것을 말하니까 한의원을 다니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차도는 없었다. 그래서 다니던 한의원 3층에 일반 내과 의원에 가서 상담 후 CT 촬영을 해보았습니다. 머리에 직경 5~6cm 정도의 종양이 있는 게 발견되었습니다. 무척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게 과연 확실한 것인가를 알기 위해 저는 다시 그 CT 촬영 자료를 제가 다니던 병원에 제출하여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 자료를 본 병원 의사는 놀란 표정으로 저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이 사람이 아직도 살아 있습니까?’ 그 말에 저는 ‘아내가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초조한 마음에 곧바로 경기도 고양시에 거주하는 형님에게 전화를 걸어 아내의 병세를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형님은 저에게 형수님이 다음날 서울대병원에 가서 외래 진료를 받을 예정이니, 그 전에 속히 아내의 그 CT 촬영 자료를 보내달라고 당부했고 보내 드렸습니다.급기야 아내는 구청에 병가를 내었고 서울대병원으로 가서 1주간 입원하고 정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병원의 권고를 따라 6개월에 한 번씩 세 차례나 머리 수술을 받았습니다. 대단히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저희 부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부디 무사히 수술받게 하시고 건강한 몸으로 치료해 주세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예정된 첫 번째 수술을 받았습니다. 아내의 이마 위를 10cm 이상 절개하고서 시행한, 12시간이 넘게 걸린 대수술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귀 뒤쪽으로 10cm 이상 머리를 절개하고 받은 수술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일반 수술과는 다른 감마나이프 시술, 즉 방사선 치료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아내가 병원 수술과 치료를 잘 받았고 뇌종양은 성공적으로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시술에서 방사선 노출량이 많아 그런지 아내의 체력이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함께하심으로 그 모든 어려운 치료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년퇴임 때까지 성실하게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찬양합니다. 뜻밖의 위중한 병으로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여 그렇게 큰 수술과 치료를 받았는데 사실 그 시기는 큰 딸 인혜가 고등학생, 작은 딸 은혜는 중학생이어서 부모의 보살핌과 뒷바라지가 한창 필요한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두 아이는 아무런 불평이나 원망도 없이 오로지 엄마의 수술 성공과 무사 회복만을 기도하면서 스스로 알아서 밥해 먹고 학교를 잘 다녀 주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딸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손길로 저희 아이들을 붙드시고 인도해 주신 것 또한 대단히 감사합니다.

    7. 두 딸의 국공립학교 교사 임용

     두 딸 모두 하나님의 은총으로 특별한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교회 생활은 물론 학교생활도 충실히 하면서 학업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매년 경쟁률이 너무나 높아서 요즘도 합격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국공립학교 교원 임용시험에 비교적 수월하게 합격하여 중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착실하게 하면서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안에서 본인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압니다. 이 지면을 빌어 부모로서 새삼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길 원합니다.

    8. 큰딸의 결혼과 손녀 출생

     어느 날 큰딸 인혜가 부모인 저희 부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교회 신도가 아닌 같은 대학교 선배라는 겁니다. 미리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저희 부부는 신앙의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믿음 안에서 짝을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도록 가르치고 인도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그 결혼 문제가 저희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저와 아내는 잠시 놀라고 당황한 마음을 가다듬고 큰 딸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최소한 그가 우리 교회를 다녀야 한다.” 주님 은혜 감사합니다. 인혜 역시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을 가진 아이였기에 부모의 말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감동과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빨리 그 청년이 우리 교회 예배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얼마 후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 후 매주 안식일마다 아무 거리낌 없이 교회에서 서로 반갑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저와 아내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인혜와 그 청년이 정식으로 함께 저희 부부를 찾아와 인사를 했습니다. 자기들, 이제 결혼하고 싶으니 결혼을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허락했고 결혼과 관련한 모든 일을 본인들에게 맡겨서 결혼하게 했습니다.

     이윽고 큰딸에게서 손녀가 태어났고 저는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사랑스러운 손녀를 돌보는 일은 그전엔 전혀 알 수 없었던 크나큰 기쁨과 즐거움을 저에게 듬뿍 안겨주었습니다. 그 아이가 점점 자라서 한참 동안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 같더니 지금은 어느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또 올해 초에 있었던 아동부 영은회에서 귀한 성령까지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손녀는 여태껏 말썽을 부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라도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그 이유를 찬찬히 설명해 주면 순순히 잘 받아들입니다. 정말 착하고 총명한 아이입니다.

    9.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신다.

     저는 평소에 나름대로 교회 일에 봉사하는 가운데 틈틈이 사회봉사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장애인들의 외출 이동 봉사를 했는데 매월 한 차례, 그들의 외출을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 사귀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 중에는 대전 오류동 모 교회의 부목사 ㅇㅇㅇ씨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저에게 한 가지 사업을 제의했습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대전지소를 설립하자는 겁니다. 저는 그 사업 동기가 선하다고 생각하여 선뜻 동의하고 그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도 그 사람도 처음부터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기에 최소한의 돈으로 그 사업체를 운영해야 했습니다. 비품 중에 가구나 컴퓨터는 폐기물에 가까운 것들을 기부받아 사무실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주변 많은 사람에게 매월 5천 원 ~ 1만 원의 금액을 기부받으며 운영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대전 동구청으로부터 장애인 바우처 일을 제안받고 그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거기에서 나오는 잉여금이 있기에 최소한의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해졌습니다. 후에는 직원도 2사람을 모집 채용하여 외견상으로도 사업이 점차 자리를 잡은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모집을 한 직원들은 다른 단체의 직원들과 비슷하게 월급을 주면서도 저와 그 사람은 급여를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고심 끝에 저희는 이것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편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것은 저를 포함해 3명의 장애인을 직원으로 등록하고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매월 3명분에 해당하는 180만원씩의 장애인고용지원금을 받는 것입니다. 그 돈을 저를 비롯한 직원의 월급으로 지출하고 그 돈을 다시 익명의 이름으로 입금하면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됩니다. 그날 그 사람과 저는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고 퇴근했습니다. 귀가 길에 대전역 앞 횡단보도를 지날 때였습니다. 마침 교통신호는 횡단 신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고 멀리서 한 차량이 오는 게 보였습니다. 저는 당장 그 횡단보도를 건너도 될 것 같아서 힘껏 패달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그 차량은 바뀐 신호인데도 불구하고 그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을 보지도 않고서 그냥 냅다 달렸습니다. 저는 그 차에 치여 도로 위에 쓰러졌고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119구급차에 의해 제가 성모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나서야 간신히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저는 그 교통사고의 발생 경위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무지 사고가 날 상황이 아닌데 대체 왜 내가 그런 사고를 당했을까?’ 믿음 없는 말이긴 하지만 그땐 정말로 재수가 없어서 그런가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교통사고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이었습니다. 누워도, 앉아도, 일어서도, 머리가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환자로 계속 입원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거의 1달이 지날 무렵, 하나님은 저의 잘못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아아~ 그날 내가 이방인과 함께 협잡하고 편법으로 세상일을 하려고 꾀한 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잘못이었구나.’ 저는 자책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연락하여 그 직장에서 퇴사하였습니다. 그 직장 일과 관련하여 제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무실에 잉여금이 생기니까 정상적인 회의도 없이, 적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서 개인적으로 공금을 착복한 죄를 지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저도 경찰서에서 3번이나 출석하여 참고인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결국 공금 횡령으로 처벌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과 엮여 곤혹을 당했을 수도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구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생긴 어지럼증은 그 후 3~4년 정도 계속되었습니다. 어지럼증 떄문에 등산용 스틱을 양손에 잡고 걸어야 했습니다. 저는 그 증세의 치유를 위해 계속 회개하며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 어지럼증이 점차 나아지더니 현재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혀 어지럼증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때 일을 돌아볼 때마다 저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귀한 깨우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세상 사람과 짝하여 세상 죄악의 길로 흘러가 헛된 삶을 살기보다는 그 노력으로 차라리 하나님의 집에서 충성스럽게 봉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저를 큰 사랑과 큰 권능으로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와 감사와 찬양을 돌립니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시 116:12-14)

     지금까지 제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너무나도 크고 풍성합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저같이 보잘것없는 세상 죄인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려고 저의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육신에 힘겨운 병도 주셔서 한동안 고생하게 하셨지만, 그로 인해 결국은 물과 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착하고 충성된 일군으로 겸손하게 봉사하라고 저에게 귀한 ‘집사(執事)’ 직분까지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부족하나마 저의 가정이 늘 하나님을 의지하며 참교회 안에서, 성령과 진리 안에서 믿음으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요즘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경 읽기에 힘쓰고 있습니다. 예전의 예배 말씀도 시간을 내어 다시 듣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에게도 그 보배로운 하나님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 저의 마지막 최대의 소망은 저의 가정이 모두 하나님의 집, 교회를 떠나지 않고 이 참 신앙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나라에 꼭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성령과 진리로 저희를 굳게 붙드시고 저희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병상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 (원주교회 김싱글 자매)

    병상에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 – 원주교회 김싱글 자매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원주교회 김싱글입니다.

    2017년 1월 3일, 신우신염으로 입원했었고 퇴원 후에 했었던 간증을 나누겠습니다.

    입원 전에 고열이 있어서 감기에 걸린 줄 알고 개인병원에 갔습니다. 혈압이 너무 낮았고 고열 때문에 기운이 너무 없었습니다.
    혈액, 소변, X-Ray등 기본검사를 했고, 원장님이 양쪽 옆구리를 두드리는데 제가 통증 호소를 하니
    “콩팥에 염증인 것 같다. 얼른 입원 준비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신우신염 소견서를 주셨습니다.

    세브란스기독병원 신장내과에 갔지만 입원실이 없었습니다.
    입원실이 나오게 되면 연락해준다는 얘길 듣고 집으로 갔습니다.
    혹시, 밤중에 열이 나면 응급실로 오라고 하셨으나, 그날 밤 집에서는 열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다음날 연락이 와서 오후에 입원할 수 있었습니다.
    입원한 첫날 고열과 오한이 밤 10시 경에 있었어요.
    집에서도 열이 있었지만 오한은 없었고, 입원한 첫날 오한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오한 때문에 추워서 이불 하나를 더 달라고 해서 덮었지만 그럼에도 추웠어요.
    이불 두 개를 뒤집어 쓰고 엎드려 한참을 떨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한이 멈췄어요.
    오한이 올 때 긴 시간 동안 움츠리고 힘을 줘서 그런지 몸살처럼 근육통이 약간 있었어요. 천장을 보고 바로 누웠습니다.
    이게 마지막 고열이었어요. 미열로 약간의 두통이 있었고, 잠들지 못했어요.

    누운 상태에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다가 남편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입원할 때 교회에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편에게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새해 초부터 교회 분들을 병원으로 오시게 하는게 죄송해서 치료하고 조용히 퇴원하려고 했습니다.

    교회, 부모님, 언니들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고 남편에게 말했었습니다.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구나…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자님에게 기도 부탁을 드려야겠다.. 그런 마음으로 누워 있었어요.

    그 때 갑자기 눈앞에 가로로 긴 직사각형이 나타났습니다.
    마치 영화관의 스크린처럼요. 극장의 스크린은 한 장면이잖아요.
    하나의 장면이 아니고, 바둑판처럼 작은 네모들이 큰 직사각형 안에 채워져 있었어요.

    작은 네모 한 칸 한 칸마다 다른 장면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빠른 속도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장면들이 재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너무 빠르다보니 정신이 없을 정도였어요.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이상한 상황에 얼굴, 팔을 만져보기도 했습니다.
    장면이 주마등처럼 막 지나가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마지막 밤인가? 이런 생각을 하니 무서웠어요.
    혹시 저 장면들이 내 일생인가? 그래서 사람이 있는 장면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따라가며 주시했는데… 저는 아니었고 모르는 얼굴이었어요.

    각 각 네모 속에 그림이 동영상인지 사진인지, 빠르다 보니 구별하기 어려웠어요.
    퇴원 후에, 간증하기 위해 썼었던 작은 노트를 다행히 보관하고 있어서 이번 간증을 준비할 때 읽어봤어요.
    그때도 다 기억할 수 없어서.. 기억에 남은 장면을 썼더라구요.

    자연과 사람들이 보였고, 컬러화면과 흑백화면이 보였어요.
    산과 하늘, 나무, 넓은 벌판에 노랗게 익은 벼. 밝은 노란색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네모마다 컬러, 흑백, 자연, 사람의 모습이 섞여있었어요.

    흑백화면에 남녀노소가 함께 있는 장면이 보였고
    또, 한 사람만 있는 장면도 있었는데 빠르다 보니 일 하는 모습인지 그냥 있는 모습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없었어요.
    정신없이 빠른 화면을 보고 있는데, 큰 소리가 들려왔어요.
    누가 텔레비전을 켜놨나..해서 커튼을 제치고 둘러보니 텔레비전은 꺼져 있고, 커튼 밖은 조용했습니다.

    환자가 8명 쯤 있는 입원실인데 커튼이 다 펼쳐져 있어서 환자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양쪽 귀 가까이에 마이크를 대고 부르는 것처럼 아주 크게 들렸어요.
    어리둥절한 상황에 양쪽 귀를 세게 막아봤어요.

    귀를 막아도 노랫소리는 똑같이 크게 들렸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을 감고 들었어요.
    처음에는 우리말인 줄 알고, 무슨 가사인지 들어보려고 집중했는데 알아 듣지를 못했어요.
    우리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말이 아니면 외국어인가? 들어봤어요.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외국어를 들으면 영어인지 불어인지 짐작을 하잖아요.
    근데 외국어도 아닌 것 같고..

    확실히 어떤 곡인지는 모르지만 계속 들어보니 멜로디는 찬송가처럼 들렸어요.
    불러봤거나 들어봤던 찬송가는 아니었습니다. 약간 빠른 곡이었어요.
    노랫소리가 크고 웅장하게 들려서 처음에는 합창처럼 들렸었는데 합창은 아니었고
    만약, 사람이 부른다고 한다면.. 두 세 명 정도가 부르는 것 같았어요.

    눈을 감고 찬송 소리를 듣는 중에 주님을 찬송하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며
    온전히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해봤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나와 함께하시고, 항상 지켜주신다는 주님을 생각하니 울음이 터졌어요.
    베개에 깔아 놨던 수건으로 눈물 콧물을 닦았습니다.

    침대에서 무릎을 꿇고 낮은 소리로 방언 기도를 했습니다.
    한참을 기도를 하고나니, 피곤해져서 누웠어요.
    기도를 멈추고 나니 찬송 소리와 눈 앞에 펼쳐있던 영상이 사라졌습니다.

    베개 왼쪽에 넣어 둔 핸드폰을 보니 시간이 새벽 4시 30분이었어요.
    입원하기 전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깊은 잠을 못 잤어요.
    간호사가 혈압과 체온을 재러 올 때까지 단잠을 잤습니다.

    수요일 점심 쯤에 목자님에게 전화를 드려서 제가 입원을 했고,
    기도 부탁을 드렸더니
    오늘은 일정이 있어서 내일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날인 목요일 목자님, 장로님, 집사님이 오셔서 기도해 주셨어요.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7일에서 길어지면 14일 정도 입원하는데

    저는 콩팥 양쪽이 다 염증이었는데 4박5일 입원하고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해주셔서..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설 명절에 시댁가서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예전에 들은 얘긴데, 들리는 찬송 소리는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부른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사람의 생각이 아닌 말씀을 먼저 생각하고 또,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병상에서 깨달았습니다.
    부족한 저를 깨닫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말씀 읽고 마치겠습니다.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 ]

    생의 마지막까지 가야하는 믿음의 길이기에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겠습니다.

    부족한 자녀를 언제나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립니다.

     

  • [성도 간증] 나를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

    안양교회 김세* 형제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간 ‘나의 인생의 목자이시며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주제로 간증하고자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시편 105:1~2)

    7년 만의 간증을 저는 기쁨 가득한 시간으로, 아무런 걱정 하나 없이 기도로만 준비했습니다. 한 달 동안 은혜와 평강이 날마다 새롭게 느껴졌고, 지금 저는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손가락질해도 감사하고, 모함을 해도, 짜증을 내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루를 회개로 시작하고, 회개로 마무리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인생의 목자이신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두려움 없이 은혜 가운데 거하며,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확신이 깊어진 건 불과 2년 전의 일입니다. 이제 저의 나이 오십이 되었지만, 저는 이제 두살 인 것 같습니다. 2년 전에도 저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두려움에 직면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떤 때는 미래를 걱정하며 마음이 무너질 듯했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저를 인도하시는 목자로서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찬양의 기쁨과 얇은 믿음만 있었던 나의 신앙, 참예수교회에서 하나님께 충만한 순종

    저는 9살 때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과자를 준다는 친구의 초대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갔지만, 그곳에서 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복음은 어린 제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재미있는 TV 만화를 포기하고 매주 교회에 나가 말씀을 듣고 찬양을 배우는 것이 점점 기쁨이 되었고,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찬양과 전도 활동에 많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했고, 교회 활동에도 더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친구들과 교회에 나가 함께 예배드리는 시간이 제게는 큰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 믿음을 더 굳건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제게 용기와 사랑을 주셨고, 그 사랑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대학교 때는 유치부 교사와 주보 편집부로 사역하였는데, 어린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때로는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글쓰기, 시 작성과 그림을 잘 그리게 하신 달란트로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결혼 후 35살에 참예수교회에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이 전의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말씀과 순종, 회개와 기도, 감사와 사랑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하셨고, 섬김의 기쁨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 믿음의 여정을 계속 걸어가며,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감사하며 힘을 다하여 섬기는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고통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 하나님의 인도하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1)

    깊은 고민과 두려움 속에서 이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저의 목자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늘 채워주시며, 안전한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이 제 삶 가운데 진짜 고백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여정엔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저는 사랑하는 자녀를 먼저 하나님 품에 보내야 했습니다. 부모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이었고, 이해할 수 없는 질문들이 매일 제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눈물로 성경을 붙잡고 있을 때, 마치 조용히 제 곁에 오셔서 말씀하시는 듯한 위로가 있었습니다.

    “내가 네 아픔을 안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그 음성은 제 영혼에 숨을 불어넣었고, 깊은 상실 속에서도 살아갈 힘을 주셨습니다. 자녀를 잃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안에서도 하나님은 저를 붙들고 계셨고, 무너지지 않도록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옆의 가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생사의 경계에서 또 한 번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의사는 빠른 응급조치 덕분이라 했지만,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 확신합니다.

    쓰러진 3일 동안은 기억이 없었기에 병실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런 아픔을 제게 계속 주시나요?”

    그러자 응답하셨습니다.

    “너를 사랑하기에, 너를 쓰기 위해 내가 너를 단련하고 있다….”

    그때부터 제 시선은 고통에서 은혜로, 상처에서 사명으로 옮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때 새 삶을 얻었습니다.

    지금 저는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저의 목자이시고, 저는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양입니다.

    감사와 순종, 그리고 전심전력

    이후로 저는 두려움이 올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광야 같았던 이전의 삶은 직장, 경제, 환경 문제 등으로 걱정과 불만이 반복되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거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평강이 저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저는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며, 담대함과 지혜를 주시는 주님께 더욱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전심전력으로 믿고 순종하며, 온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22:37)

    나를 변화시키신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은 안전하고 평안하며, 은혜 가운데 거하는 기쁨이 넘칩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며, 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늘 부족하지만 항상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그 인도하심의 기쁨을 모든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늘 사진 밖에 있었습니다. 아빠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제 방식의 사랑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가정을 사랑과 평안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처럼, 저 역시 아빠로서 믿음과 순종을 함께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너를 강하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이사야 41:10)

    지금까지 저의 목자이시며 저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간증하였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아멘.

     

    <잠잠한 동행 _ 감사의 기도>

     

    상처 많았던

    나의 시간과 모습들에 기도의 평안을 주심을

    늘 감사

     

    굴곡 많았던

    나의 원망과 눈물들에 섬김의 은혜를 주심을

    늘 감사

     

    유혹 많았던

    나의 육신과 거울에 힘을 다하는 순종을 주심을

    늘 감사

     

    기도와 섬김과 순종으로

    소박해도 아름다운 들꽃과 같은 향기를 주심을

    늘 감사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으로 꽃피운 작은 나의 새 생명에

    늘 감사

     

    잠잠하게 행하면

    나의 목마름에 아낌없이 다 보여주시고

    생명수 샘물로 한없이 은혜와 사랑 주시는 주님께

    늘 감사합니다.

  • [성도간증] 김학송 형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계 1:12~15)

      할렐루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은 주님의 은혜 나누겠습니다. 저는 임실군 삼계의 ‘김씨 가문’의 종손이자 장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저의 집안은 가난했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대대로 제사를 지내며 유교 사상을 지키며 살아오셨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7살 때 숙부님의 손을 잡고 처음 참예수교회를 가게 되었으며, 부모님께서는 제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막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세례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세례를 받으면 죄를 씻기게 된다고 하여 그 당시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죄를 깨끗이 씻고 싶어 ‘세례’를 받기로 했습니다. ‘세례’를 받기로 한 저녁에 교회에서 갑자기 몸이 춥고 열이 나기 시작하여 ‘세례’를 받으러 갈 상황이 되지 못했습니다. 밤이라 무서움을 참고 혼자 집으로 돌아왔으며, 그 후로도 오래 아팠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저를 버리지 않으셨고, 건강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교회에 가서 제가 아프게 된 것이라며 숙부님을 나무라시며 교회에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안식일 예배만 참석했으며, 10살 때 서울로 이사 가게 되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회기동 교회에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나는 참 진리가 있는 참예수교회의 성도”라고 늘 마음에 새기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며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 세례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지 20년 후, 27살 때 세례와 성령을 같이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왜 그때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하셨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저를 단련시키고 세례를 받게 한 후 ‘악속의 성령’을 같이 주시기 위함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계신지도 깨달았습니다.

      직장을 구하고 결혼 적령기에 참예수교회 안에서 믿음의 결혼을 하고 싶었습니다. 저의 상황은 조부모님, 부모님, 6남매의 장남에 형편이 좋지 못했지만, 주님께 기도했고, 감사하게도 현재 저의 아내인 청주교회 신현순 자매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소중한 두 딸을 보내주셔서 믿음의 가정을 이뤘습니다. 결혼 후 20년 넘게 부모님께 생활비를 보내드리느라 부족한 생활을 했지만, 지금은 편히 쉴 수 있는 집 한 채도 마련하며 경제적으로 조금은 안정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저와 함께 한 사랑하는 신현순 자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 또한 모든 것이 주님의 큰 축복이고 은혜입니다.

      서울생활을 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대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기상청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습니다. 시험지를 받아보니 거의 다 아는 문제여서 바로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저의 어려운 상황을 다 아시는 주님께서 인도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상청 입사 후 기상청의 꽃이라 불리는 기상예보관 업무를 맡았습니다. 일을 할 때 마치 주님께서 예보를 잘 맞추도록 지시해 주신 것처럼 눈, 비 예보를 하면 눈, 비가 내려서 ‘탁월 예보관’에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일을 하면서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포기했던 대학진학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아 대학원에 들어가서 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주님의 보살핌 덕분에 기술서기관(4급) 예보 과장으로 41년의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퇴직 후, 학교에서 지킴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내던 중 2024년 9월에 ‘소세포 폐암’이 발견되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의정갈등)임에도 수술날짜도 빠르게 잡혀 서울에서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더욱 은혜로운 것은 항암치료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입니다. 담임 목자님, 대전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합심 기도 덕분에 지금은 6개월에 한 번씩 혈액검사, X-Ray, CT 촬영만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고 있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간증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저와 늘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의 큰 사랑을 다시 깨달았으며, 현재는 교회에서 ‘샤론 성가대’ 의 베이스를 맡아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기쁘게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시고 저의 사정을 모두 아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성도 소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신 김명*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나신 김명*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올해 세례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신 안양교회 김명*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자매님은 동생 김윤*  자매님의 인도로 2024년 봄 영은회에 참석하신 후 성령을 받으셨고 이후 9월 22일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인도하심에 감사를 드리며 자매님과의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Q1 참예수교회에 오시기 전에도 신앙생활을 하셨었나요?

    네, 신앙생활 한지는 15년 정도 되었고 그동안 교회를 4곳을 다녔어요. 목사님 설교가 말씀 한 줄 읽고 세상 이야기가 많았어요. 말씀보다는 찬양과 기도를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말씀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죠. 말씀이 없다 보니 제 주변에 넘어지는 사람이 많았어요. 권사 직분까지 받고 열심히 교회 다니던 분이 갑자기 신천지에 빠지기도 하더라고요.

    Q2 참예수교회에 처음 오셨을 때 첫인상은 어떠셨나요?

    그전에도 몇 번 행사 때에 참예수교회에 오긴 했었어요. 예배 시간이 저는 너무 지루하고 졸리고 하품이 났었어요. 웃고 재밌는 것은 하나 없고 성경 말씀 대로만 하시니까요.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정말 그랬어요. 하루는 동생이 저한테 목자님이 이번 영은회 때에 언니를 꼭 모셔 오라고 했다는 거예요. 저는 전에 교회 다닐 때도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은 다 순종했었거든요. 또 동생들과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라 평상시 거부감은 없었어요.

    Q3성령 받게 된 과정을 이야기해 주세요

    영은회 첫날에 기도하는데 눈물이 그렇게 나더라고요. 두 번째 날 기도할 때는 세상에 눈물이 그렇게 쏟아진 것은 처음 봤어요. 빗물처럼 쏟아져서 옷이 다 젖을 정도였으니까요. 가족들과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을 생각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목자님이 안수를 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런 것은 처음 느껴 봐요. 제 머리에 불덩이를 확 얹어 놓은 것 같았어요. 너무 뜨거워서 엉덩이를 들썩이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혀가 갑자기 뻣뻣해지는 거예요. 순간 저는 ‘수술 후 발에 가끔 마비도 오고 하더니 이제는 입과 혀까지 마비가 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큰일 났구나 생각하고 기도를 멈췄어요. 그런데 목자님이 제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가까이 오셔서 무릎을 꿇고 계속 안수를 해 주시는 거예요. 저에게 계속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것이 성령인지 방언인지 전혀 몰랐어요. 잘 모르니까 그냥 안 하려고 했는데 목자님이 계속 안수하며 기도하시니 저도 모르게 혀가 돌아가며 방언이 나왔어요. 이후에 목자님께서 성령 받은 것을 확인하시고 선언해 주셨고 저도 그제서야 성령을 받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Q4 성령 받은 후 사단의 방해가 많았다고 들었어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성령을 받으니까 기분도 좋고 교회에 꼭 가야겠다는 책임감도 생기더라고요. 옥상에서 고추에 물을 줄 때도 저도 모르게 몸이 흥겨워지고 찬양이 저절로 나왔어요. 그런데 이런 기쁨과 함께 사단의 방해도 많았어요. 교회만 나오려 하면 넘어지고 부러지고 허리가 아프고 별일이 다 생기는 거예요. 한번은 안식일에 다 준비를 하고 시간이 남아 잠깐 쉬고 있는데 허리가 뚝 하더니 꼼짝도 못 하겠다는 거예요. 결국 옆집 할머니 아들이 저를 업고 병원에 갔어요. 전에 교회 다닐 때는 전혀 그런 것은 없었거든요. 너무너무 힘들어서 동생 아니었으면 아마 포기했을 거예요. 목자님께도 왜 저는 안식일에 예배만 드리고 가면 사고가 나냐고 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목자님께서는 세례를 못 받게 하려고 사단이 방해하는 것이니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한번은 심장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급하게 112 경찰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심장 스탠스를 박는 수술을 했어요. 한쪽은 이미 스탠스를 한 상태고 다른 한쪽이 또 막힌 거예요. 목요일에 가서 금요일에 수술을 했는데 병원에서는 입원했다가 월요일에 퇴원을 하라는 거예요. 저는 교회를 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 퇴원을 하겠다고 말했어요. 의사는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하냐면서 반대했지만 제가 그 당시 은혜를 얼마나 받았는지 의사에게 “저는 성령을 받아서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어요. 의사는 혹시 문제가 생기면 자기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주더라고요. 그 정도로 토요일에 교회에 가고 싶었죠.

    Q5 세례받고 많은 은혜가 있으셨죠?

    세례 받기 전에는 멀쩡하다가도 아침에 일어나면 열이 38도, 40도까지 오르고 혈당이 500까지 오르는 날도 있었어요. 금요일부터 고통이 시작되고 안식일 아침까지 안 좋다가 교회에 오면 또 멀쩡해요. 그러다가 집에 가서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또 몸이 안 좋은 거예요. 그런데 세례를 받고 이런 것이 싹 없어졌어요.

    또 은혜를 받은 것은 성경이 재미있고 머리에 쏙쏙 들어와요. 전에는 성경책을 한쪽에 미뤄 놓고 보지도 않았어요. 그동안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본 적도 없고요. 지금은 안식일에 배운 것을 집에 가서 찾아 보고 형광펜으로 표시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정말 감사한 것은 세례를 받고 허리가 나은 것이에요. 저는 허리가 많이 쑤셨어요. 사진을 찍으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할 정도로 아팠거든요. 그런데 세례를 받은 후 세족례를 하는데 제가 옆에 앉으신 조갑순 모친을 불끈 세워서 나가시도록 돕고 있는 거예요. 그 순간 제가 허리가 안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너무 놀랍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려요.

    Q6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해 주세요.

    먼저는 목자님께 감사해요. 동생을 통해 저를 꼭 교회에 오라고 초대해 주셔서 이렇게 교회에 오게 되었으니까요. 또 저를 전도하고 인도해 준 동생 부부에게도 너무 감사하고요. 또한 저를 위해 그동안 눈물로 기도해 준 형제들과 어머니에게도 감사드리죠. 하나님께서 세례도 받지 않은 저를 정말 바쁘시게 성령을 먼저 주신 것 같아요. 저는 이제야 성경 말씀이 들어오기 시작해요. 이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요. 저는 많은 사람과 대인관계가 좋은 것 같아요. 또 전도의 사명이 제게 있는 것 같고요. 주변 가족과 지인들을 전도하는데 앞으로 올인하며 살고 싶어요.

    자매님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풍성한 전도의 열매가 맺어지길 기도하며 모든 영광과 감사를 주님께 드립니다. 할렐루야.

    <동생과 함께~^^>

    <세례식에 와서 축하해 준 아들들과 동생부부>

     

  • [성도 간증] 수원교회 죠셉 까빌레도 형제

    [성도 간증] 수원교회 죠셉 까빌레도 형제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간증 – 죠셉 까빌레도 형제(필리핀)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하나님과 성도님들께 평안과 사랑의 인사를 전합니다.

     

    1. 누이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위로해주신 하나님의 은혜

    두 달 전 제 누이가 소천한 이후로 저는 정말 힘든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를 결코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이 자릴 통하여, 한국에 있는 모든 TJC 성도님들과 수원 교회 성도님들의

    기도와 경제적 도움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은 매우 짧습니다. 제 누이는 겨우 43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우리는 이를 거절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일을 통하여, 하나님 없이는 우리의 삶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재산과 부를 소유하더라도,

    구원이 없는 죽음 앞에선 모두 무의미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인해 행복했습니다.

    나의 누이가 죽기 두 시간 전 한 목자님이 함께 성령으로 기도했고,

    그녀는 여전히 성령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자님이 안수를 할 때, 성령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는 딸의 죽음으로 인해 큰 슬픔에 빠졌었습니다.

    먹지도 못했고,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필리핀 세부(누이가 출석하던 교회)에서 영은회가 열렸고,

    제 어머니도 영은회에 참석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환상을 보게 됐고, 하얀 옷을 입고 미소짓고 있는 딸을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 누이는 어머니에게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천국에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이 순간 이후로 슬픔이 사라지고 평안함이 생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안은 정말 놀랍습니다.

     

    2. 치유하심을 통해 알게된 하나님의 은혜

    저는 2010년에 ‘삼차신경통’이라는 병을 앓게 됐었습니다.

    이 질병은 얼굴의 감각과 씹기를 담당하는 신경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적인 통증 장애 입니다.

    의사는 저에게 이것이 평생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고,

    저는 진통제를 평생 먹어야 할 것이라고 진단 하였습니다.

    문제는 이 고통이 너무나 컸고, 말을 하거나 먹을 때 마다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진통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약의 내성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약 없이 살 수 없게된 저에겐 하나님의 치유하심의 은혜가 간절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금식 기도를 함께 하자고 말씀 드렸고,

    3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체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약을 끊었습니다.

    엄청난 고통이 계속됐지만,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를 완전히 치료해주셨습니다.

    의사는 나에게 평생 가져야 할 고통이라고 진단했지만, 그는 틀렸습니다.

    제게는 완전하신 치료자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를 주님께 드립니다. 아멘. 

  • [성도 간증] 병고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 (2편)

    [성도 간증] 병고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 (2편)

    * 이 간증은 2024년 4월 20일 열린예배시 신수덕 모친께서 간증한 내용을 편집하여 올린 글입니다. 지난 호(8호)에 이어 병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신 박 집사님과 신 모친의 간증 2편입니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지난 간증에 말씀을 다 못 드린 간증을 이어서 말씀드립니다.

    집사님께서 장 수술하시고 4년간을 지내셨습니다. 또 다발성 골수종으로 9년간을 치료받으시면서 총 십삼년간을 잘 지내셨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일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느 상황에서도 집사님한테 마음의 평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병원 통원 치료하시면서도 하늘에 소망을 두고 의욕적으로 잘 지내셨습니다.

    ♦ 입원 전에 저의 건강을 예비하신 은혜

    집사님이 마지막으로 입원하시기 두 달 전, 제 손목에 통증이 있었습니다. 또 고개가 아프면서 목부터 어깨까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있었어요.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손목은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 수술하고, 목에는 목 디스크가 두 군데가 있으니 시술을 받으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술이랑 시술 받고 두 달이 지나니 괜찮아졌습니다.

    그런데 두 달 지나고 보니까 허리가 안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척추에 협착증이 왔으니까 시술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1주일간 약을 먹어야 하는 시술인데, 집에 와서 집사님이랑 이야기해보니 수술을 빨리 받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다음 날 아침 일찍 병원에 가서 시술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다음날은 성찬례가 있는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아침에 집사님 몸이 안 좋다는 연락을 받아서 집사님이 성찬례에 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한참 하고 집으로 전화를 했더니 아들이 말하기를 집사님이 일어나기도 힘드시고 걷기도 힘드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사님께 전화를 바꿔보라고 하니까 전화를 못 받을 정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걱정되고 마음이 급해져서 의료진에게 빨리 퇴원시켜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의원이 어제 시술 받았는데 안 아프냐고 물어봤습니다. 보통 하루 더 입원해 있는 시술인데, 저는 아프지 않아서 안 아프다고 대답하고 퇴원해서 집에 왔습니다.

    ♦ 말씀과 기도를 준비하심으로 평안함 주신 은혜

    집에 도착해 방에 들어가 보니 집사님께서 아침도 안 잡수시고 누워 계셨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힘을 내셔서 아침도 먹고, 감사하게도 성찬례까지 잘 참여하시고 점심 저녁도 잘 잡수셨습니다.

    그런데 저녁쯤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0분 간격으로 계속 열을 쟀는데 38도에서 열이 내리지를 않더라고요. 지난번에 서울대학병원에서 열이 38도 나면 즉시 응급실로 오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갔습니다.

    가서 검사를 하더니 폐렴기가 있으니까 항암제를 끊고 다른 병원에 입원해서 통원 치료받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몇 주간 치료를 받으니 다 거의 완치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서울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이제 치료되었으니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와서 팔일간을 항암제를 드셨습니다. 항암제를 복용하니까 열이 오르고 출혈이 나는 아주 안 좋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빈혈이 온 거라는데, 수혈을 하고 또 다른 치료를 며칠 받으면 잠깐 괜찮아 지셨습니다. 근데 며칠 지나면 다시 열이 오르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상황을 이야기하니까 의사 선생님이 입원해서 여기서 제대로 치료를 받으셔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입원실이 없으니 입원실이 나오면 알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내려와서 계속 치료를 받았습니다.

    계속 며칠에 한 번 나빴다가 또 괜찮다가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저녁 때가 되니까 고열이 났습니다. 삼십구도 고열이 나고 혈압이 높고 심장 박동이 나쁜 위독한 상태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의료진이 오늘밤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자녀들 다 부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의원한테 사실은 서울대학병원에 입원 예약을 한 상태고 한 열흘 됐다니까 여기서는 의료진도 퇴근하고 장비도 없어서 아무 조치도 못한다고, 혹시 모르니 서울대학병원에 가시는 게 낫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한테는 서울대학교로 오라고 하고, 구급차에 전화를 했습니다.

    구급차에 전화를 해서 빨리 오시라 했더니 갈 필요가 없다고, 예약날짜가 안 돼서 도로 보낼 텐데 뭐 하러 가냐고, 자기가 여러 번 갔지만 갑작스럽게 간 건은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갈 필요 없으니 거기 계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위독하다고, 대기시간에 드는 비용은 신경 쓰지 마시고 빨리 오라고 제가 엄청 사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급차가 왔어요.

    와서 응급 조치를 하면서도 가시다가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서울대학병원에 도착하니까 열이 내리고 혈압이 정상화되고 괜찮아졌습니다. 할렐루야! 병원에서 얘들을 보고 집사님이 아들 왔냐, 은경이 왔냐, 수경이 왔냐, 이 서방 왔냐 하고 아주 반가워하셨습니다. 놀라서 정신없이 와봤더니 아버지가 괜찮으시니 얘들이 안도하더라고요.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서로 반갑고 기쁘게 만나는 시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서울대학교 병원에서는 집사님이 응급환자가 아니니까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미 위독하셔서 절대 못 돌아간다고 했는데, 병원에서는 앞에 더 심각한 환자가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야 입원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앞에 있는 차들이 다 돌아간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로 입원하게 됐습니다.

    집사님께서 다음날 저녁에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몽롱해서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게 되셨습니다. 주치의가 절 부르더니 이대로 평안히 가시게 할 건지, 아니면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넣어서 한두 달 더 사시게 할 건지 결정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대로 가시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 걸 아는데도 제 심정이 그랬습니다. 자녀들이랑 상의하니 중환자실로 보내드리지는 말고 가시는 날까지 평안히 모시자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중환자실로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에는 의식이 더 없으셨습니다. 전혀 움직이질 못하시고 눈도 못 뜨는 상황이 됐습니다. 오일 뒤에 한밤중이었어요. 갑자기 호흡곤란이 오고 혈압이 높은 위급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의료진들이 산소 호흡기를 갖다 놓고 그렇게 장비를 총동원해서 응급처리 하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한밤중인데 목자님한테 전화를 드렸습니다. 집사님께서 위독하시니까 기도해달라고요. 목사님께서 기도하겠다고 그러시더라고요. 저도 옆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몇 시간쯤 되니까 할렐루야! 금방 돌아가실 것 같은 증상이 가라앉더라고요.

    그리고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신 지 총 열흘이 된 날 새벽에 집사님이 의식이 돌아오셨습니다. 눈도 못 뜨셨던 분이 눈을 탁 뜨시더니 물이 먹고 싶다는 거예요. 정신이 돌아와서 제가 딱 쳐다봤습니다. 그리고는 밥을 먹고 있던 저더러 아침 밥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그 표정이 굉장히 밝고 환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상태 몸 상태가 어떠세요? 하고 물어봤더니 힘들고 답답하고 내 몸을 전혀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고, 불편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냥 기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손을 붙잡고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마음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내 손을 붙들고 기도할 때 내 마음이 그렇게 좋다, 그러니 당신은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기도만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부족하지만 눈만 뜨면 집사님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눈만 뜨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그렇게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부족한 저를 통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목자님께서는 핸드폰으로 말씀과 기도해 주셨습니다. 목자님이 전화해서 기도해주시면 울기도 하지만 참 편안해지더라고요. 옆에 있는 환자분이 목자님 말씀이 너무 좋다고 자기도 이 목자님한테 전화하고 싶다고 하실 정도였습니다. 또 온라인 예배를 통해 드리고 싶어하시던 찬양 예배도 들려드리고, 말씀이랑 방언 기도까지 들려드렸습니다. 그렇게 예배하실 때 집사님께서 아주 좋아하시고, 표정이 편안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렇게 좋아지니까 주치의가 급한 불을 껐으니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해야 하니까, 집사님께서 나흘간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항암 약이 독하니까 다시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입안이 헤지면서 출혈이 나더라고요. 치료를 해도 며칠 뒤엔 다시 헤지는 게 반복됐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안양교회 가서 예배 드리고 쉬던지 아니면 평안히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가시는 날도 가실 줄 몰랐습니다. 의료진들이 급하단 말을 전혀 안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머리랑 몸을 씻겨 드렸죠. 그리고 제가 밥 먹으러 갔다 오겠다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런데 밥을 먹고 돌아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절 기다려 주셨습니다. 갔다 와서 누워 계신 집사님 얼굴을 보니까 눈을 감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입을 닦아드리려고 거즈를 입에 대니까 눈을 뜨시고 저를 쳐다보셨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으시면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평안히 천국으로 인도하시라고 기도했더니 그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처음에 입원할 때는 그날 밤에 돌아가신다고 했습니다. 근데 거기서 치료받은 날수를 세 보니 47일이 됐더라고요. 할렐루야! 집사님을 위해 47일이라는 기간을 말씀과 기도로 준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제가 집사님 입원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 예정에 따라 손목이랑 목, 허리 아픈 걸 잘 치료해주셔서 집사님이 가실 때까지 기도해 드리고 잘 돌볼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건 우연이 아니잖아요. 할렐루야! 하나님 은혜 사랑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우리 집사님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3개월이라는 기간을 기도와 말씀으로 사시면서 모든 성도님들과 목자님의 기도와 사랑을 받고, 축복 가운데 부르심을 받아 천국으로 인도하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그리고 그간 기도와 말씀으로 사랑해주신 목자님과 여러 성도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으로 간증 마치겠습니다.

  •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하나님과 함께한 삶.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모든 성도님께 인사드리며, 저는 영국에서 온 바네사 자매입니다. 제 삶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간증에 앞서, 목자님이 저에게 간증하면 어떻겠냐고 처음 말씀해 주셨을 때 저는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때는 제가 올해 동부로 돌아온 지 첫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부의 많은 성도님들이 간증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간증하는 것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8월까지 휴가를 온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휴가에도 하나님께서 제게 정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한국 성도님들을 통해 사랑과 헌신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늘 있으며 이번 간증을 통해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정한 성경 구절은 시편 96장 8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시편 96장 8절)”

    지난 온라인 교사 세미나에서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제가 신앙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함을 경험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저에 대한 약간의 소개를 하자면, 저는 23살이고 작년에 법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개인 과외 선생님으로서 온라인으로 법을 가르치며 영국 대학교 입학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휴가 중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참예수교회에서 왔으며 참예수 뉴캐슬 교회는 1976년도에 처음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생긴 첫 참예수교회이며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영국에는 총 9개의 참예수교회가 있고 이 사진은 40주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사실 모태신앙이 아닌데요, 이것은 저의 간증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목자님이 제게 주신 간증의 주제는 제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과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간증을 통해 제가 나눌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제 학업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제게 은혜를 주셨는지 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교회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0년도에 홍콩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사실 이전에 세례를 받으셨고 조부모님과 어머니 쪽 가족들은 교회를 다니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참예수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성도님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제 아버지도 홍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저희는 아버지 여동생의 가족이 있는 더블린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참예수교회가 아닌 이방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고 어렸을 때 저는 교회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찬양하고 하나님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흰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했고 매주 교회에 다녔습니다.

    2004년 8월 저희 가족은 뉴캐슬 영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많은 친인척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었고 대부분이 참예수교회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제 부모님은 당시 중국식 포장 전문 식당에서 일하시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부모님 세대에겐 매우 흔한 직업이었습니다.

    이땐 일요일마다 중국 구세군 교회를 다녔는데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작은 수영장이 있어 제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교회는 제가 18살이 될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제 어머니의 여동생분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저를 데리러 와주었습니다. 이 사진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제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보여주시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이방교회에 나갔습니다.

    2005년 5월, 아빠는 일을 하시다  바닥에 넘어지시게 됩니다. 이 낙상사고는 매우 심각했고 한 달간의 혼수상태에서 몇 달간의 입원 그리고 몇 년의 병원 방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빠의 혼수상태 기간동안 의사 선생님은 저희 엄마에게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가족분이 홍콩에서 영국으로 아빠의 마지막을 지키러 오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참예수교회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던 엄마와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많은 친척분의 도움으로 아빠의 상태를 교회에 알렸고 뉴캐슬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은 진실로 기적적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많은 기도 덕분에, 매우 기적적이게도, 아빠는 깨어나셨습니다.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도 이는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다시 일어난 뒤에도 다시 걷는 방법을 배워야 했지만 저는 어렸을 때 병원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빠가 혼수상태였던 때와 깨어나셨을 때 둘 다요. 저는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 오늘까지도 살아계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하시길,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어났더라도 아직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아빠 같은 환자는 금방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상태는 점진적으로 호전되었고, 이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간호사도 말하길 아빠가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생활하십니다.

    이후 교회는 아빠를 전도했고 목자님이 성경의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빠는 믿게 되었고 저와 제 남동생과 함께 2009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참예수교회로 데려와 주신 것과 오늘날에도 저를 교회에 마련해 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물질적인 것에 복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가장 큰 선물은 구원입니다.

    사도행전 17:26-28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하나님은 저희가 있어야 할 곳에 두시며 이는 하나님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참 교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를 받은 후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믿음은 저의 것이 되었고 진리에 대해 배웠으며 그 진리를 통해 왜 18살이 되기 전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녀봤던 저는 우리교회가 얼마나성경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지 우리 교회의 진리가 얼마나  올바른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간증의 두 번째 부분은 제 학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 영국에서의 삶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2009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이때 제가 배운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때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때 저는 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시간을 다시 돌려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 결심은 제게 많은 축복을 경험하게 해주셨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잘 볼 수 있었고 저희가 안식일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려 노력한다면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공하기 위해 안식일 날 일을 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또한 케임브리지 기도소 성도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도소는 작지만, 그들의 마음은 큽니다. 영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의 학업 생활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절 어떻게 축복해 주셨는지 생각하면 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저를 돌봐주시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여름, 저의 첫 번째 법과 대학교 시험 기간 때, 손에 어떤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따끔거림, 마비, 그리고 많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 증상을 무시했습니다.

    2020년 10월, 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제 손의 통증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2월이 끝날 무렵 저는 매일 밤 울면서 잠들었고 하루 종일 고통을 느꼈습니다. 접시를 들거나, 문을 열고, 머리를 말리는 일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제 손은 약해졌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빨리 일어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작은 일들을 이행하기 어렵게 느껴졌고 저는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매우 바빴고 저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겐 희망이 없었고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더욱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과 제 정신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자비로우시고 저는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2021년 1월 많은 기도를 통해 제 마음엔 안식이 찾아왔고 의사의 조언을 통해 1년간 학업을 쉬기로 했습니다. 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또는 건강을 다시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기도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가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제 건강에 대한 것입니다. 믿음을 우선시하는 것은 건강을 우선에 두는 것과 같고, 저는 이를 몹시 어려운 방법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통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게 많이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바로 1년간의 휴식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아주 큰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2021년, 저는 제가 필요한지 몰랐던 시간을 받았고 그 시간 동안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손의 상태가 육체와 정신이 결합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 두 개의 문제를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2022년 1월 저는 대학교로 돌아갔고 손의 문제는 장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로 복귀하기 무서웠지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전처럼 공부할 수 없고 제 뇌가 손보다 빨리 움직였고 타자를 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대학교 2학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놀랍게도 2023년 저는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께 기대면 모든 것이 다 형통할 것이라는 간증입니다. 그날은 정말 기쁜 날이었고 제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졸업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손은 전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저는 더 이상 매일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나누고 싶은 구절입니다.

    시편 96장 8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왼쪽 파란 옷 입은 분이 바네사 자매이고, 옆에서  최하은 자매님이 통역하는 모습이며,  청년들과 함께한 모습도 담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