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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간증]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원주교회 이지선 자매)

    [성도간증]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원주교회 이지선 자매)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 원주교회 이지선 자매 간증 (2024.11.2)

    할렐루야!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사실 저는 성도님들 앞에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간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변화된 신앙을 아직 갖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크기 때문에 간증에 대한 거부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이번 간증을 준비하면서 그동안의 신앙을 되돌아볼 수 있었고 제 마음을 변화시키고 순종을 심어주시며,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성경구절 읽겠습니다.

    에베소서 3:17~21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번에 나눌 저의 간증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위대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된 간증입니다.

    모태신앙인 저는 결혼 전까지 원주교회만 다니던 내향적인 성도였습니다. 교회 성도들 간의 교류도 좋아하지 않았고 폐쇄적인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학생 때 영은회를 가면 모르는 사람도 많고 모르는 찬양과 율동이 다반사였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사춘기 때는 그것이 얼마나 부끄럽던지 항상 영은회를 가기 싫었던 학생이었습니다. 영은회를 다녀오면 만족하고 은혜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매번 영은회 가기까지가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영은회 가면 생각나는 감정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다니는 교회가 참예수교회가 맞나?”, “나랑 같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 맞나?”였습니다. 그만큼 동질감보다 이질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교회만 다닐 뿐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열망과 간구가 뜨겁게 차오르지 않았습니다. 타지로 멀리 직장을 다녔기에 오전 7시쯤 집에서 나와 저녁 8시 돼서야 돌아오는 피곤한 생활이 지속되다보니 신앙에 집중할 수 없었고 좀처럼 믿음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교회활동 보다는 세상 친구들과 회사동료들과 더욱더 친밀히 어울리며 지냈습니다. 30대가 되고 결혼 적령기가 올 때에도 믿음결혼에 대한 확신과 자신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에게 순종보다는 불순종의 모습을 더 보여드렸고, 그동안의 부모님의 신앙믿음만 의지하고 내 자신의 신앙적 독립을 이루지 않은 채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 당시 제 기도가 믿음이 많은 형제는 부담스러우니 믿음은 적어도 교회만큼은 안 빠지고 다닐 형제를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성령 충만을 이루지 못한 어리석었던 기도를 했던 것 입니다. 수없이 많은 기도를 했지만 다른 기도는 안 들어 주셨는데 이 기도만큼은 들어 주신 것 같아 아직도 반성하며 살고 있는 중입니다.

    찰떡같이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남편인 정영석 형제를 보내주셨습니다. 2019년도 3월에 남편을 만나 그해 11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과 동시에 근 1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라도 영광으로 내려가면서 원주교회를 떠나게 됐습니다. 평생 원주에서만 살다가 가족들과 떨어지게 되고 원주교회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두렵던지 영광 내려가는 내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영광에서 1시간 거리인 광주교회를 나가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많은 변화를 주셨습니다. 처음엔 광주교회에 낯선 분위기와 코로나로 인한 교회활동 축소로 적응하기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지만, 걱정도 잠시, 광주교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느끼며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 왜 이렇게까지 분에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주실까? 매번 드는 생각이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을 수 있었고 우리 참예수교회 성도들은 한 가족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신앙도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영광에서 지내면서 믿음에 집중하며 충실할 수 있었고, Zoom으로 광주교회 성도님들과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낮에는 성경공부와 기도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귀중한 환경과 시간이었습니다.

    2021년 임신을 하고 출산 시기에 맞춰 2년 만에 다시 원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시기를 맞춰주시고 원주교회에 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남편도 원주교회로 오면서 믿음의 성장과 교회 사역에 충실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항상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멀리까지 보내셨던 이유가 잠시 원주를 떠나 쉬면서 너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배우고 성도들과 교류하는 신앙을 가르쳐 주심으로 원주에 돌아가서도 교회에 헌신하라는 뜻이였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이끌어 주심에 항상 놀랍고 감사하며 순종으로 겸손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건 소그룹 예배를 통해 제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를 낳고부터는 예배를 온전히 드리기가 힘들었고, 기도도 예전같이 집중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올해도 한 차례 믿음이 흔들렸었는데 어느 순간 삶의 우울감과 나이에 비례하는 믿음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나에 대한 연약함, 실망감, 교회 사역에 대한 부담감이 한번에 몰려왔습니다.

    설교말씀 중에 여호와만 섬길 것인가? 혹 여호와도 섬길 것인가? 란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적인 탐욕과 쾌락을 섬기고 있었고, 신앙적 변화를 꿈꾸지만 주님께 집중하지 못했기에 어떤 변화도 느낄 수 없었고, 그것이 매번 반복됨으로 저의 연약함에 지치고 실망함에 믿음의 나태함이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기도할 때 두려움이 없었질 것인데 기도도 많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자님의 설교말씀으로 차츰 저의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고, 소그룹 시간에 설교말씀을 다시 묵상하고 서로 나눠볼 수 있음에 더 마음에 새겨지고 서로의 신앙을 교류하며, 성도님들과 진솔한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경험과 위로를 받아 빨리 되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또 그동안 예배시간에 썼던 설교노트도 보면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이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입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저의 믿음을 앞으로는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 행하는 믿음으로 변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모든 삶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께로 온 것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긍정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행복으로 채워질 것임을 믿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임을 잊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성령 안에서 평안, 희락이 충만된 삶을 되시길 바랍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이상으로 간증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도간증] 서유니게 집사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전도부에서 간증을 권유받고 주님이 제게 주신 은혜를 세어보라는 말씀이구나 싶어서 유년기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최초 간증은 중학교 수학여행입니다. 수학여행 버스를 타고 전주로 출발을 했는데 버스 뒷자리에 타고 있던 저는 역한 냄새를 맡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잘 모르겠다는데 저는 참을 수가 없어서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버스를 세우고 보니 타이어 쪽에 심각한 결함이 발견되어 새로운 버스로 갈아타고 수학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흔한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노후 된 버스로 인한 사고들이 잦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수학여행 담을 나누는 중에 말씀드렸더니 박은도 목자님께서 제게 이것이 간증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저로 인해 반 친구들을 위험에서 보호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간증을 준비하면서 목자님 말씀이 생각나고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와 역사가 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신앙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우연 같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제게는 제 삶의 여정 하나하나가 주님의 역사하심이고 보호하심이었음을 고백하며 감사드립니다.

      대전교회는 최근 총회훈련센터로 역할을 겸하게 되어 많은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중 영은회 참석을 위해 각지 교회에서 모인 젊은 형제자매들을 보면 생각나는 간증이 있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 대학부 영은회가 대전교회에서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대전교회에서 전국구 영은회 개최가 거의 없었던 시기였는데 대학부 영은회가 대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장거리를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주최 측 장점도 있으니 기뻐야 했는데 제 마음은 그렇게 반갑지 않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목포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왔는데 당시 목포교회에는 제 또래의 형제자매가 없었습니다. 2살 위에 언니·오빠들을 따라서 학생부 영은회에 몇 번 참석한 것이 전부라 교회 안에서 친하게 사귄 친구들도 없었는데 이사 온 대전교회에는 제 또래의 형제만 3명 있었습니다. 대학입학을 하고 대학 생활의 즐거움에 한창 빠져 있었던 시기였기 에 영은회를 위한 기도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대전에서 하는 영은회에 빠질 수는 없어서 억지로 영은회에 참석했습니다. 의지할만한 친구도 없는데 분반 시간은 믿음의 고백과 간증들이 넘치는 은혜로운 시간이긴 했지만, 사실 은혜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시간은 남의 집에 와서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집에 다녀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교회를 빠져나와 집에 가는 버스에 도망치듯 올라탔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앞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었고 라디오 소리와 버스 소음만 생생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냥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마치 커튼을 조금씩 열 듯이 중앙에서부터 아주 천천히 희미하게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달리는 버스에서는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심히 내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더니 차츰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내리고 보니 대전역을 한참 지나 있었습니다. 언제 다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서 안방에 계시던 부모님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펑펑 울었더니 부모님은 저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줄 아시고 대학병원에 건강검진을 하게 하셨습니다. 건강검진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당시 갑자기 보이지 않는 순간 느꼈던 공포와 두려움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고 두렵습니다. 영은회 때 집에 다녀오겠다는 행동이 이렇게나 잘못된 것일까, 하나님은 왜 이토록 강하게 직접적으로 역사하셔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지 못한 마음 상태에서 은혜가 넘치는 신앙의 간증들을 들었을 때 현재의 믿음의 상태에 대하여 회개의 시간이 필요한 거였는데, 저는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은혜의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위태한 상태였고 극약처방을 필요할 만큼 위험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것은 시력을 잃는 경험을 하게 하신 시간이 아주 짧고 그러나 강렬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청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 중 하나입니다. 청년기에 평생의 진로를 결정하고 배우자를 만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동기에서 벗어난 것 같지만 성숙한 신체만큼 정신적으로 발달하고 성장했다고 보기 힘든 20대에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인생의 큰 흐름에서 정말 중요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긍정적인 경험을 쌓기를 권합니다. 저는 영은회에서 도망쳐 오던 그 날 오후에 다시 교회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아마도 집에 가서는 이런저런 스스로 핑계를 만들어서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을 향한 빠른 발걸음을 저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먼저 알아보시고 붙들어 주셨습니다. 영은회 중간에 도망 나온 위태한 믿음이 어디까지 나빠졌을지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다시스로 도망하던 요나가 풍랑을 만난 것처럼 이대로 가다가는 세상에 빠져서 결국 죽게 된다는 것을 강하게 역사하심으로 경고해 주셨고 주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주안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교회에 친한 친구가 없다고 아쉬워했지만, 친자매처럼 가까운 신앙의 선·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아시고 살펴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기에 부담스러웠던 믿음의 간증들이 지금은 너무나 은혜롭고 감사하며 저 또한 은혜 아래서 믿음의 간증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혹시 영은회나 교회의 행사가 부담스러운 생각이 드신다면 스스로를 돌아보시길 제안합니다. 저처럼 세상에서 손짓하는 유혹들에 귀와 눈이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고 주님이 채찍을 들기 전에 빨리 깨닫고 돌아오시길 소망합니다. 모든 영광 주님 홀로 받으시길 원합니다. 아멘!

     

    하나님이요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편16:1~2]

     

  • [성도간증]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이*주 자매)

    [성도간증]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이*주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간증하고자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27:1)

    저는 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참예수교회로 전도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충청남도에서 1남 4녀중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생계로 바쁜 부모님이셨기에, 교회를 자주 나갔습니다.

    이유는 간식도 주고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중, 할머니가 참예수교회 성도였기에,

    허수진 목자님이 저희 집에 심방을 오시게 됐습니다.

    처음 들었던 방언기도 소리는 너무나 놀라웠습니다.

    장로교회를 다니는 언니들은 그때도, 지금까지도 참예수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어 부모님의 소개로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됐는데,

    여기 계신 분은 참예수교회 성도님이셨습니다.

    하루 종일 성경 공부를 시켜주시고, 참예수교회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거부감이 많았던 저는 점점 귀가 열리고, 진리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교회를 나가게 됐고, 새벽 기도도 나가게 됐습니다.

    기도를 하던중 저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어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2001년 7월 세례를 받게 됐고, 그 이후 저의 모든 삶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과 행동이 바뀌게 되었고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고, 불교 신자인 시어머니와 크고작은 마찰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어 원만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 기도제목은 제 가족들 모두를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제가 되기까지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립니다.

    제게 참예수교회 자매님을 보내주셔서, 참 진리를 알게 하시고 인도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립니다. 아멘.

  • [성도간증] 부산교회 이재근형제

     <엡 1: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안녕하세요. 저는 참예수교회 부산교회에 다니고 있는 37살 이재근입니다.
     저의 부모님은 불교 집안이시고 어릴 때부터 절도 자주 따라 다녔고 아침마다 모닝 콜로 관세음보살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교회를 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셨고, 항상 저에게 가면 안된다고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절이든 교회를 다닐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처음교회를 오게된 계기

     제가 처음 교회를 다닌 것은 고등학교때였습니다.  고등학교때 동아리 활동으로 악대부를 활동했었고 플룻을 불게되었습니다.
    너무 재밌었고 꿈이 생겨 계속 하고 싶었던 마음에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반대를 강력하게 하셨고 매일 밤까지 연습하다보니 학교 매점에서 저녁을 사먹는 일이 많아지면서 매점 아줌마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매점 아줌마는 대한장로회 교회의 장로직은 맡고 계셨었고, 교회에 대구 교향악단의 플룻 선생님이 계시다고 저를 너무 안타까워 하셔서 말씀드려놓을테니 주말에 배우러 와라 라고 하셔서 주말마다 나가서 레슨을 받으면서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 없어졌고, 졸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안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장항교회에 다니던 나소연 자매와 연이 닿으면서 만나게 되었고, 나소연 자매는 장항교회의 교무라는 직책을 맡고 열심히 교회에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부산에 있었고 장항에 거주하고 있다보니 주말에만 만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었고, 그마저도 주말에 교회 행사가 많으면 길게 1달정도도 얼굴을 못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항교회에서 거제교회로 사청부 MT를 온다고 놀러오라고 놀러가게 되었는데 다들 많이 챙겨주시고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이때 아마 마음이 열리게 된 계기였던거 같습니다.
     그래서 장항을 가는 날이면 안식일에 나소연 자매랑 교회를 조금씩 가게되었고, 성령으로 기도하는 것을 많이 놀라긴 했지만 성령을 받으면 알게 될거라고 주위에서 얘기를 많이했지만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다니다보니 전부 비슷한 모습으로 기도하는 것이 신기했고, 호기심이 생겼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나소연 자매와 결혼까지 생각했기 때문에 어쨌든 같이 다니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구도자 교육을 받아보는 건 어떠냐? 라고 하셔서 한번 들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임성열 목자님께 구도자 교육을 받았고, 죄를 씻는 세례 부분도 듣게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

     구도자 교육을 받다보니 하나님이 계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교육을 받았고 여러 간증들을 들으면서 아, 나도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어봐야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거리도 멀었고, 생업도 바빠서 주말에도 일하게 되는 날도 생기면서 구도자 교육을 중간에 못받았고, 결혼식 날짜는 점점 다가와서 세례교육부터 하고 믿음안에서 결혼을 해야된다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세례 교육부터 시작했고, 12/3일 결혼식이었는데 급하게 세례 교육을 하고 11/25일 세례를 받자 하셔서 날짜를 잡았습니다.
    세례교육 기간중 교통사고가 나서 2주동안 입원도 하고 여러가지 악재기 겹쳐지면서 세례교육도 매주 못받게 되면서 급하게 교육도 받게 되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교육은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세례 받은 후 소감

     11월 중 계속 따뜻한 날이어서 걱정 안했는데 세례 당일은 굉장히 추웠습니다. 한번에 끝내야겠다 라는 생각밖에 없었고 침수를 하고 난 후에는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제 죄사함을 얻고 새 인생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고나서 제일 처음 드는 생각은 난 언제 성령을 받고 방언 기도를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성령을 주실까? 였습니다.
    장항교회에서 부산교회로 출석하며 이요셉 목자님의 말씀을 매주 안식일에는 안수 기도도 나가서 받으면서 성령을 구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 저에게 성령을 주세요 라고 기도드렸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느낌이 없어서 뭐가 문제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 간절하게 기도도 해 보았지만 안 주셨습니다. 그러는 중에 인생을 돌아보면서 세례 받으면서 죄사함은 얻었지만 인생의 조금이라도 잘못한 부분을 회개드리기 시작하고는 얼마지나지 않아 감동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봄 영은회가 시작되기전 이요셉 목자님이 안식일 때 성령을 간절히 구해보자 라고 해주셨고, 안식일때 정말 열심히 기도드렸습니다.
    기도 드리는 와중에 갑자기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안수 기도를 받던 중 저도 모르게 방언 기도를 하게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 정말 계시는구나’ 라고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성령받은 이후 변화,다짐

     출근길이든 무슨 일이 있든 없든지 마음 속으로도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오늘도 저와 우리 가정을 잘 지켜달라는 마음 속으로도 늘 기도를 드립니다. 저희를 지켜주시는 여러가지 일도 많았고 일하는 중에 크게 다칠 수도 있을만한 일에도 다 피해가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상 경쟁으로만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성령을 받고는 하나님의 가정안에서 평안히 살 수 있게 해주신거에 대한 감사함을 느낍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게되니 마음의 안정감이 생겼고 기도의 힘도 요즘은 많이 느끼고 살게 해주신 하나님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된 부분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끝으로 세례와 성령을 받으면 끝인 줄 알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성경의 말씀을 공부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올바른 자녀가 되어야겠다고 많이 느낍니다.
    많은 배움 속에서 올바르게 성장하는 성도가 되겠습니다. 

     

     

  • [성도간증] 내게도 이런날이-김경라 자매님

     2024 봄 영은회에는 하나님의 선물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선물인 성령을 받으신 분들이 네 분이나 탄생하여 강남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간증은 2024 봄 영은회에서 두번째로 성령을 받으신 신판용 형제님을 대신하여 신판용 형제님의 부인 김경라 자매님께서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성령 받기까지의 여정을 나누어주심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그날의 감동이 전해지길 바랍니다.

    제 남편 신판용씨의 간증을 옆에서 지켜 본 제가 간증을 하겠습니다. 남편은 쓸 말이 없다고 하네요.

    2022년 12월 24인가? 부터 교회에 첫 발을 들였습니다. 별 탈없이 순하게 담배도 끊고 저와 잘 교회에 출석은 하고 있지만 세례식이 가까이 오자 절대 세례는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2023년 7월 2일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해 10월 쯤엔가 세례를 받아도 성령도 못 받고 1년이 되어가도 성령 받지 않으면 딱 1년 채우고 교회에 나가지 않겠노라고 했던 신판용씨가 또 우여곡절 끝에 교회 출석은 다행히 하고 있었습니다. 

    올 봄에 천안교회에 영은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주일 후에 강남교회 영은회가 있었습니다. 전 친구와 약속이 돼 있어서 천안교회 영은회에 1박 2일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에스더 집사와 남편인 소형제님, 그리고 허진숙 사모님, 박은진 목자님께서 신판용씨 꼭 오시라고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자고 초대를 해주셨습니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천안교회를 와주었고 저녁 식사가 끝나니 집에 가자고 하네요. 어이 없었습니다. 여기 오자고 했던 건 성령 받기 위해서 였거든요. 그때 소형제님께서 어르고 달래고 힘써 주시면서 기도 시간에 함께 동행해서 앞에도 나가주시고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끝나고 박은진 목자님께서 그러시더라구요.성령의 감동이 크다고? 그날 밤 그 교회에서 1박 하고 새벽 기도 시간에 꼭 성령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근데 아이처럼 집에만 가자고 하더라구요. 아쉽지만 그곳에 계신분들도 모두 아쉬워 하시더라구요.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얘기 하더라구요 성령을 받을 것만 같아서 기도 했다네요. 저는 꼭 강남교회에서 성령 받고 싶으니 오늘은 성령 주시지 말라고-.옆에서 듣던 저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성령 안 주면 교회도 그만 다니겠다고 하던 사람이 주시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넙죽 감사히 받아야지! 순수한 건지, 귀여운 건지, 웃기는 건지? 그 다음 주 강남교회 영은회에 목,토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안식일에 영은회 마지막날에 성령을 드디어 받았습니다. 제 남편과 사진을 일부러 찍어주신 조명양 목자님. 그 사진을 보면서 신판용씨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후에 알고보니 저희 목자님과 또 여러분들께서도 금식 기도까지 하셨다고 하더라구요. 제 남편 성령 받기까지 기도해주신 아비가일 자매님들 감사드리며 에스더 집사님 부부, 허진숙 사모님과 박은진 목자님, 정미숙 친구님.

    주 예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합니다.

  •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성도간증]하나님과 함께한 삶 (영국 바네사 자매)

    하나님과 함께한 삶.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모든 성도님께 인사드리며, 저는 영국에서 온 바네사 자매입니다. 제 삶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간증에 앞서, 목자님이 저에게 간증하면 어떻겠냐고 처음 말씀해 주셨을 때 저는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이때는 제가 올해 동부로 돌아온 지 첫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부의 많은 성도님들이 간증하실 거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간증하는 것이 굉장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8월까지 휴가를 온 것이지만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휴가에도 하나님께서 제게 정말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한국 성도님들을 통해 사랑과 헌신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늘 있으며 이번 간증을 통해 무언가 얻어가는 것이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선정한 성경 구절은 시편 96장 8절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시편 96장 8절)”

    지난 온라인 교사 세미나에서 이 성경 구절을 통해 제가 신앙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함을 경험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저에 대한 약간의 소개를 하자면, 저는 23살이고 작년에 법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개인 과외 선생님으로서 온라인으로 법을 가르치며 영국 대학교 입학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휴가 중에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참예수교회에서 왔으며 참예수 뉴캐슬 교회는 1976년도에 처음 설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생긴 첫 참예수교회이며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입니다. 영국에는 총 9개의 참예수교회가 있고 이 사진은 40주년 때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사실 모태신앙이 아닌데요, 이것은 저의 간증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목자님이 제게 주신 간증의 주제는 제 삶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과 제가 어떻게 자랐는지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간증을 통해 제가 나눌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인데요,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제 학업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제게 은혜를 주셨는지 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저는 교회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2000년도에 홍콩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어머니는 사실 이전에 세례를 받으셨고 조부모님과 어머니 쪽 가족들은 교회를 다니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도 참예수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성도님들이 영국으로 이민을 가셨는데 제 아버지도 홍콩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저희는 아버지 여동생의 가족이 있는 더블린 아일랜드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참예수교회가 아닌 이방 교회에 다녔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갔고 어렸을 때 저는 교회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찬양하고 하나님이 진짜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저흰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했고 매주 교회에 다녔습니다.

    2004년 8월 저희 가족은 뉴캐슬 영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많은 친인척이 그곳에 이미 살고 있었고 대부분이 참예수교회에 다니고 계셨습니다. 제 부모님은 당시 중국식 포장 전문 식당에서 일하시고 있었는데,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부모님 세대에겐 매우 흔한 직업이었습니다.

    이땐 일요일마다 중국 구세군 교회를 다녔는데 성경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작은 수영장이 있어 제가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교회는 제가 18살이 될 때까지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혼란스러웠고,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제 어머니의 여동생분이 함께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저를 데리러 와주었습니다. 이 사진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제 모습입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보여주시기 전까지 일요일마다 이방교회에 나갔습니다.

    2005년 5월, 아빠는 일을 하시다  바닥에 넘어지시게 됩니다. 이 낙상사고는 매우 심각했고 한 달간의 혼수상태에서 몇 달간의 입원 그리고 몇 년의 병원 방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빠의 혼수상태 기간동안 의사 선생님은 저희 엄마에게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많은 가족분이 홍콩에서 영국으로 아빠의 마지막을 지키러 오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아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동안 참예수교회에서 이미 세례를 받았던 엄마와 참예수교회를 다니시던 많은 친척분의 도움으로 아빠의 상태를 교회에 알렸고 뉴캐슬 참예수교회 성도님들께 기도해 주시길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힘은 진실로 기적적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많은 기도 덕분에, 매우 기적적이게도, 아빠는 깨어나셨습니다.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도 이는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아빠가 다시 일어난 뒤에도 다시 걷는 방법을 배워야 했지만 저는 어렸을 때 병원을 방문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빠가 혼수상태였던 때와 깨어나셨을 때 둘 다요. 저는 아빠를 정말 사랑하고 오늘까지도 살아계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말하시길,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일어났더라도 아직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아빠 같은 환자는 금방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의 상태는 점진적으로 호전되었고, 이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간호사도 말하길 아빠가 일어나더라도 제대로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힘들 것이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완전히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생활하십니다.

    이후 교회는 아빠를 전도했고 목자님이 성경의 진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빠는 믿게 되었고 저와 제 남동생과 함께 2009년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참예수교회로 데려와 주신 것과 오늘날에도 저를 교회에 마련해 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물질적인 것에 복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가장 큰 선물은 구원입니다.

    사도행전 17:26-28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하나님은 저희가 있어야 할 곳에 두시며 이는 하나님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제가 참 교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음에 큰 감사를 드립니다. 세례를 받은 후부터, 교회에서 자라면서, 믿음은 저의 것이 되었고 진리에 대해 배웠으며 그 진리를 통해 왜 18살이 되기 전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녀봤던 저는 우리교회가 얼마나성경을 바르게 따르고 있는지 우리 교회의 진리가 얼마나  올바른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간증의 두 번째 부분은 제 학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어린 시절 영국에서의 삶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2009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저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제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이때 제가 배운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중요함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 때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 공부를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이때 저는 제 시간을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은 그 모든 시간을 다시 돌려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둔 결심은 제게 많은 축복을 경험하게 해주셨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잘 볼 수 있었고 저희가 안식일을 지키고 계명을 지키려 노력한다면 절대로 뒤처지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성공하기 위해 안식일 날 일을 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또한 케임브리지 기도소 성도님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기도소는 작지만, 그들의 마음은 큽니다. 영국 교회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저의 학업 생활을 돌아볼 때 하나님이 절 어떻게 축복해 주셨는지 생각하면 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채워집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를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 저를 돌봐주시는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여름, 저의 첫 번째 법과 대학교 시험 기간 때, 손에 어떤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약간의 따끔거림, 마비, 그리고 많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이 증상을 무시했습니다.

    2020년 10월, 저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2학년이 되었고 제 손의 통증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2월이 끝날 무렵 저는 매일 밤 울면서 잠들었고 하루 종일 고통을 느꼈습니다. 접시를 들거나, 문을 열고, 머리를 말리는 일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제 손은 약해졌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이 일은 너무나 빨리 일어나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저희에게 주신 작은 일들을 이행하기 어렵게 느껴졌고 저는 아주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매우 바빴고 저는 정신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겨울 방학 동안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제겐 희망이 없었고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저의 잘못으로 인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더욱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제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과 제 정신적인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게 도와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자비로우시고 저는 정말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2021년 1월 많은 기도를 통해 제 마음엔 안식이 찾아왔고 의사의 조언을 통해 1년간 학업을 쉬기로 했습니다. 내가 뒤처지면 어떡하지 또는 건강을 다시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은 기도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제가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제 건강에 대한 것입니다. 믿음을 우선시하는 것은 건강을 우선에 두는 것과 같고, 저는 이를 몹시 어려운 방법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저를 고통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게 많이 기도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곧바로 1년간의 휴식이 하나님이 제게 주신 아주 큰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2: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은혜는 충분합니다. 2021년, 저는 제가 필요한지 몰랐던 시간을 받았고 그 시간 동안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제 손의 상태가 육체와 정신이 결합한 문제임을 알게 되었고 저는 이 두 개의 문제를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2022년 1월 저는 대학교로 돌아갔고 손의 문제는 장기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저는 학교로 복귀하기 무서웠지만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희망을 품었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전처럼 공부할 수 없고 제 뇌가 손보다 빨리 움직였고 타자를 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대학교 2학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고 놀랍게도 2023년 저는 수석으로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것은 진실로 하나님께 기대면 모든 것이 다 형통할 것이라는 간증입니다. 그날은 정말 기쁜 날이었고 제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에서 졸업한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었습니다.

    이제 저의 손은 전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저는 더 이상 매일 고통 속에 있지 않으며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나누고 싶은 구절입니다.

    시편 96장 8절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찌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찌어다”

    고린도전서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왼쪽 파란 옷 입은 분이 바네사 자매이고, 옆에서  최하은 자매님이 통역하는 모습이며,  청년들과 함께한 모습도 담아보았습니다.

     

  • [성도소개] 손인섭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이번 2024 강남교회 세례식에서 세례를 받으신 분들께 인터뷰 요청을 드렸습니다. 그 중 두번째로 세례를 받으시고 강남교회와 인연이 가장 오래되신 손인섭 형제님을 소개합니다. 

    1. 자기소개 
    * 나이 : 1960년생(만 63세)
    * 성명 : 손인섭
    * 교회 오게 된 동기 : 가족의 권유

    2. 교회의 첫 인상과 세례를 받기 까지의 마음의 변화
    * 모든 교회 성도께서 하나 같은 마음으로 함께 환영해 주시고, 반겨주심에 가족적인 분위기를 느꼈고, 이로 인한 마음으로 큰 거부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었으며, 세례를 받기까지 마음의 동요 없이 교회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 위한 세례를 받으므로 해서 강남교회의 한 일원으로 책임감과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3. 세례를 받은 후 달라진 점
    * 크게 달라진 점은 없으나 세례를 받았기에 조금 더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읽는 시간도 갖게 되고 사무실에서 근무 중에도, 또 출, 퇴근길이나 장거리 운전 중에도 늘 유튜브를 통해 찬송을 듣는 기회를 얻게 되고, 강남교회의 구성원 안에 녹아들어 진정한 참 성도가 되려는 변화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4. 강남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
    * 늘 따듯하게 맞이해 주시고 환영해 주심에 항상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드리며 강남교회 구성원으로 누가 되지 않는 성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5)

    손입섭 형제님의 신앙이 올바로 성장하고 믿음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강남교회가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할렐루야 예수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희 가정에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저희 가정이 부산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 가정은 2015년부터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2019년 말에 김해로 이사를 갔습니다. 2019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 다니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김해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출퇴근 거리가 꽤 멀었지만 다행히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회사 바로 앞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다녀서 방법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출퇴근 경로가 부산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 중 하나여서 출퇴근 시간이 왕복 최소 2시간에서 오래는 3시간까지 소요되었습니다. 첫 몇 달간은 신입의 자세로 힘들다는 생각 없이 다녔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을 했고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 가기 전에 부산교회 영은회 강사로 오신 목자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김해로 이사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목자님께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교회와 먼 곳 으로 이사 가는 것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며 조언해주셨습니다. 부산에서 살 때는 모든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교만한 마음으로 목자님의 조언을 흘려 들었고 잊은 채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김해에서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부산에서는 30년 이상 된 빌라에서 지내다가 김해에서는 신도시에 있는 신축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가장 큰 문제였던 출퇴근 시간은 왕복 30분 이내로 줄어들었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사랑이는 아파트 단지와 바로 연결되어있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해 예비해 두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김해 안에서 한번 더 이사가 있었지만 크게 환경이 바뀌지도 않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계속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와중에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김해로 이사 오는 시기에 개인적으로 신앙에 큰 시험을 겪고 있었고 거기에 코로나가 겹치게 되면서 김해에 가서도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겠다는 저의 다짐은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참인 시기에 둘째 온유가 태어났고 종교시설 인원 수 제한으로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 되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안식일에만 출석해도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로 예배자로서의 삶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온유가 어느 정도 크면서 다시 화요일 저녁, 안식일 저녁 예배도 참석하고자 노력은 하였으나 2년간의 공백기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집이 거리가 멀다는 것은 예배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곗거리였기에 이것을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살던 집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와서 이사갈 곳을 알아보던 시기에 ‘내가 김해에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김해로 이사할 때, 그리고 김해 안에서 이사할 때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이사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단 한번도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의 이사 모두 제가 처음에 계획했던 가장 이상적인 방법대로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하나님께서 비켜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셔서 큰 탈 없이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냥 감사하다고만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김해로 가지말라고 경고를 주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김해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내도 지금보다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해줘서 우리 가정의 신앙의 회복을 위해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기도하면서 이사 갈 곳을 찾았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이사 가려고 알아봤던 곳은 부산이 아닌 양산에 있는 신도시였습니다. 교회에 가는 시간도 줄고 대중교통으로도 교회에 갈 수 있고, 시세도 기존에 살던 동네와 비슷하고, 신도시라서 생활여건도 기존에 살던 곳과 비슷 했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이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게 강하게 개입하셨습니다. 몇 개월째 하락세였던 양산 부동산 시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르기 시작했고 가격은 저의 결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적인 문제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네를 찾아보게 되었고 양산보다 훨씬 더 교회와 가까운 부산에 괜찮은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부산을 알아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가게 되면 제가 내려놓아야 할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산은 항상 후순위였습니다. 부산은 아무래도 김해보다 부동산 시세가 높기 때문에 기존에 살던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었고, 주변 인프라도 신도시에 비해 좋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제가 김해로 이사 가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고통스러운 출퇴근을 다시 겪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부산으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가락이 부산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 했습니다.

     부산으로 가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던 부분들에 있어서 이전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살던 집보다 상태가 더 좋은 집을 더 좋은 조건으로 구할 수 있었고, 이삿짐 센터를 구하고 이사를 하는 과정, 같이 이사하는 장모님 집 구하는 과정, 첫째 사랑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 은혜로 아무런 문제 없이 이사를 마치고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모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예배자의 삶을 다시 살고 있습니다. 방황하다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했던 아버지처럼 잘못된 선택을 깨닫고 돌아온 저희 가정에게 질책과 징계가 아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 보다 신앙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축복된 일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저의 간증이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8년 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맹인 농아 봉사 서클 선배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신앙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이 갑자기 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하게 되면서 심근경색이 있으시던 아버지는 가슴 통증이 더욱 빈번해지고, 동생은 학비를 못 내서 고등학교에서 쫓겨날 지경이었고, 저 또한 등록금도 기숙사비도 제대로 내지 못해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형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시 19살의 대학교 1학년이던 저는 혼자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아주 벅찼습니다. 아프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세상은 공평치 못할까, 아빠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해야 할까?” 이런 생각 속에서 그 당시 저는 의지할 무언가를 붙들고 싶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던 중 창조론과 진화론 강연을 듣기도 하고, 성 오거스틴의 <참회록> 등 여러 서적을 읽으면서 저의 이성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존재 근거를 찾기 시작했어요. “석가모니나 공자는 부활이 없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니 기독교가 진리이지 않을까?” 이렇게 결론지으면서 선배님을 따라 안식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성경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한 이후, 매일 매일 외롭고 고된 일상 속에 성경 말씀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고 요묘한 이 말씀’이란 찬송가 가사처럼 첫사랑의 소녀의 마음인 듯 성경은 제 심장을 뛰게 했고 삶의 유일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회가 있는 곳이면 학교 수업도 빼먹고 어디든지 쫓아가서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선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안식일 오후에는 노방전도를 하며 온전히 안식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식일에는 무릎 아래의 치마를 입어야 하고 안식일 시작 전에는 목욕해야 하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까지는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 여겼습니다. 약사고시가 며칠 안 남은 시점까지도 철칙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의료 선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드디어 1992년 제 나이 23살에 교회 청년들과 함께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엔 중국과 수교가 안 된 상태라 포교를 하다 잡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은 절박했고 의지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발작을 자주 일으켰기에 또 쓰러지실까 봐 항상 불안했고 엄마와 동생들 또한 제가 소녀 가장으로서 보살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저의 삶은 항상 억눌려 있었고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 생활을 했던 것이죠. 돌이켜 보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죄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안식일 교회에 몸 담았던 당시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 한 켠 공허함 속에 늦은 비 성령을 갈구하게 되었는데 사도행전 연구 집회에 참석도 하고 산속에서 밤이 깊도록 두려움도 없이 간절히 기도도 드려 보았지만 결국 성령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병원 휴가 기간에 천연치료원에서 약학과 동기인 현* 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저에게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라고 하면서 3~4일의 시간 동안, 사도행전의 예수님의 이름 및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린 구절 등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 너무도 기쁘고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현* 언니를 따라 어느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바로 참예수교회 대방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는 성경 말씀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시42:1)의 말씀처럼 갈급한 심정으로 대방교회 기도실에서 너덧 명의 성도분들과 합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혀가 구부러지고 몸에 진동이 오면서 눈물이 쏟아지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제 가슴 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가슴 속에 충만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날 임했던 동일한 성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주님 감사합니다. 세례 후 3일째 되던 날,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참 교회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저는 너무도 귀한 성령이 떠나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근무 중에도 틈만 나면 성령으로 기도했습니다. 새벽 시간에도 무의식 중에 찬송을 불렀는데, 집주인이 시끄럽다고 저를 쫓아냈고, 전철에서도 “찬송 소리가 너무 크다” 고 친구가 말해 주었을 때 그제야 제가 찬송을 부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제가 성령 받기 전에는 고음이 전혀 올라가지 않고 저음도 못 내는 음치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은 후에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고음이 저절로 올라가고 찬송가의 가사가 저의 간증이 되어 더 깊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목청껏 찬송하라”라고 축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희 딸 가*이에게 베푸신 은혜를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34주(9개월)무렵에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시기에 태아의 정상 체중이 최소 2kg이 넘어야 하는데 아이는 1.5kg가량밖에 되지 않아서 미숙아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당장 개복수술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통곡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달포 후 정확히 40주를 채우고 2.7kg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울면서 부르짖은 저에게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란 찬송가 구절처럼 하나님께서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저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이가 5개월 무렵, 하루종일 소변을 못 보는 거예요, 기저귀를 자주 갈았었는데 그날은 한 번도 기저귀가 젖어 있지 않아 응급 상황임을 깨닫고 목자님께 안수기도를 청하여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 신기하게도 소변이 잘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가*이 6세 때,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차량은 심하게 부서져 폐차하였지만 가*이와 남편은 잠시 의식을 잃은 것 외에는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가*이가 앞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에어백에 부딪혀 앞자리 조수석에 앉혀 있었고 차량 내부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뒤따르던 차량의 운전자는 사고를 목격하고 하차하여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상의를 쉴 새 없이 흔들어 질주해 오는 후속 차량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을 주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저희 친정아버지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18년 전쯤에 친정 부모님이 저의 권유로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30대 때부터 고혈압과 심근경색으로 병원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세례받기 며칠 전에도 심장 발작으로 입원하였습니다. 세례받는 날 아침에도 몸이 좋지 않아 ‘세례를 미루어야 하나?’ 걱정하였는데 아버지가 아프신 중에도 “믿음으로 받겠다.” 하셨습니다. 세례받으신 후 갑자기 아버지가 마이크를 들고 세례 현장에서 간증을 하셨어요. “세례받고 나오니 모든 병이 나은 것 같이 몸이 가뿐해졌다”라면서 기뻐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푸실 때 아버지의 병을 완전히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단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나 81세에 아버지는 링거를 맞던 중 갑작스레 팔다리 마비가 왔어요. 병원에 있었음에도 의사의 무지로 인해 빠른 조치를 못 함으로써 좌뇌경색이 심하게 와서 의식조차 없는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광주교회 목자님께서 병원으로 심방을 오셨고 합심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18), 저는 이제야 그 말씀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현재는 고통스럽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요. 아버지를 서울의 한 유명한 재활병원으로 모셨고 직접 간병하면서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주 심방 오시는 목자님을 보시면 환호하면서 좋다는 표현을 하셨고, 한 살 아기가 되어서 소리 지르고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셨지만 예배보고 기도할 때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찬송가를 부를 때는 놀랍게도 신나시며 따라 부르셨습니다. 말씀은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찬송가와 노래는 할 줄 아셨던 것이죠. ‘우리 아버지도 이제 구원받았구나’ 하는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뇌경색과 대장암을 3년간 앓으시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엄마가 밤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두건 쓴 사람 2명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 번을 깨웠는데, 엄마는 “왜요? 나는 졸려서 못 일어나요.”라고 말하면서 가까스로 일어났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려고 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빠를 이제 천사들이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엄마에게 꿈을 통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2019년 6월 천사의 영접을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고 확신하시며, 장례식 이후로 광양교회에 출석하시며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엄마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선하신 계획과 은혜는 측량할 길 없도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저의 마음을 지속해서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저는 하나님 외에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연약한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런 나를 사랑하실까?” 라는 의문 속에 한국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2018년도 처음 갔던 이스라엘 여행의 감동이 생각나, 가족들을 설득하여 2019년 12월 꿈에도 그리던 이스라엘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저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베들레헴, 헤브론, 벧엘, 실로, 그리심산 국립공원, 갈릴리, 가버나움, 최북단 텔단을 거쳐 네게브 사막 지역인 브엘세바와 최남단 에일랏 및 텔아비브까지 2주간 여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토요일에 대중교통을 운행하지 않아서 베들레헴 갈 때에 아랍인 버스를 이용하였습니다. 현재도 안식일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텔단 지역의 풍부한 물과 키 큰 나무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겠다” 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지금도 유월절이면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구약성경대로 양을 잡아 제사 지내는 의식을 행하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년 3~4월이면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순례객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 되심과 더 이상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음을 저에게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중남부 지역과 네게브 사막은 렌터카로 이동하였는데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막을 지나는 저희를 길 잃지 않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여행 중에 순간순간 지켜주시고, 성지마다 큰 은혜와 감동을 베풀어 주셨고,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로마서의 사도바울의 고백이 이스라엘 성지순례 후 확신 있게 깨달은 저의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중략)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아멘, 할렐루야!

  • [성도간증]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윤봉 형제님)

    [성도간증]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윤봉 형제님)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대방교회 이윤봉 형제님)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8일의 결과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혼자 온 제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오랜 침묵 후 의사 선생님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가족은 안 오셨습니까?” “네” “혼자 사세요?” “아니요.” 그리고 보험은 들었냐고까지도 물었습니다. “내가 본인이니 나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얼마나 더 살 수 있습니까?” 다시 침묵이 흘렀고 이윽고 어려운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전립선암 4기 말기입니다.” 생존율은 고작 30퍼센트 이내로 희박 하다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은 바쁜 일정으로 환자 한 명당 배정된 시간이 몇 분 되지 않지만 일어나 나가지 못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나에게 줄 약은 없나요?” “없습니다.” “진통제라도 없나요?”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일어나기를 주저하는 제게 의사 선생님은 진료를 위해 잠시 나가 있으라 했습니다. 환자 대기실에 앉아 하염없이 대기 했습니다. 두 시간쯤 지나 의사 선생님께서 옆방으로 다시 불렀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다시 한번 말했습니다. “그렇게 심하더라도 뭐라도 해봐야 하지 않습니까?” “집에 가서 그냥 죽으라는 말입니까?” 의사 선생님은 눈을 감으셨습니다. 한참 후 최선을 다해 보자고 하더군요. 그리고 검사를 정밀히 더 해 보자 했습니다. 검사는 한 달여 지속되었고, 그때부터 제게 세상의 모든 사물이 그림자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10월 말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사우나를 즐겼습니다. 저는 아픈 곳이 없던 사람이었고 건강하게 잘만 지내 왔었죠. 그런데 아무 전조 증상도 없이,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사우나를 즐기던 중 엄청난 피를 쏟고 말았습니다. 놀란 나머지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동네 병원에서는 암인 것 같으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보라 했습니다. 11월부터 한 달여 동안 암 검사만 받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정말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고파도 간절히 기도가 잘 안되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11월 말이 되면서부터는 기도를 전혀 못 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교회에 와서 앉기만 하면 전혀 이유를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눈물을 전혀 참을 수도 없어서 교회 밖으로 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울다 들어오기도 수 없이 해 봤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통증도 시작되었습니다. 앉아 있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불현듯 확신이 들었습니다. 올해 12월 말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쏟아지는 눈물처럼 이 확신의 이유도 알 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70년 내 삶에 하나님 앞에 나는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전혀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목표가 뚜렷해졌습니다. 매일 딱 한 가지를 위해 잠자는 시간마저도 매일 눈물을 펑펑 쏟으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런 기도를 드리기도 너무 염치없지만, 제 육신의 삶이 다하기 전에 깨끗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병 낫기를 위해서나 수명 연장을 위한 기도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죄사함과 회개의 기도만이 전부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물이 그림자처럼 보이던 그때부터 더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그저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죄를 사해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랐습니다. 단 한 가지 목표는 바로 죄사함이었습니다.

     

     2023년 12월 말이 다 되었는데도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보여주실 일이 있으셨을까요? 놀랍게도 오히려 몸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2024년 1월 초. 또 놀랍게도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2024년 1월 18일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실에는 비슷한 환자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2기나 3기 환자들의 수술은 1시간 반에서 2시간 이내 수술이 끝난다고들 하였습니다. 회진을 오신 의사 선생님께 수술 시간을 물으니 3시간 정도 예상된다고 했습니다. “아! 나는 좀 더 심하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정확히 아침 7시 30분 수술실로 들여갔습니다. 그리고 오후 12시 30분이 되어서야 수술이 끝이 났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무려 5시간이나 걸려 수술이 끝난 것이지요. 생각보다 큰 수술이었고 아주 많은 범위에서 암 덩어리를 제거해 냈습니다. 

     

     수술 중이었습니다. 마취 상태였을 때였지요. 눈을 뜬 것처럼 눈이 부시게 환하고, 제 앞에는 아름다운 초원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술 하기 전 저의 일과는 기도와 성경 읽기의 반복이었습니다. 집에는 성경을 읽을 때 사용하는 작은 책상이 있는데 환상 속 초원에서 그 작은 책상이 보였습니다. 평상시처럼 초원 위에 작은 책상을 두었고, 책상 위에는 성경책을 펼쳐두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성경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평상시 집처럼 말이죠. 그리고 제 옆에는 흰옷을 입으신 분이 함께 성경을 읽어주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책에서는 아주 강한 빛이 쏟아져 올라왔습니다. 그 빛이 너무 강해서 성경책의 글자 하나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 적이 아닌 영적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었지요. 흰옷을 입은 분과 함께 한참 성경을 읽었습니다. 기억으로는 누가복음 5장에서 8장까지를 읽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8장 마지막 말씀을 읽을 때쯤 그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00은 죄사함이 되었느니라”, “00은 죄사함이 되느니라”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캄캄해졌습니다. 실려 갔던 침대가 흔들렸습니다. 회복실에서 저를 마구 흔들어 깨웠습니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여기가 어디예요?” 다급한 소리와 정신없는 불빛과 주렁주렁 매달린 주삿바늘과 계속해서 잠들지 못하게 막는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혼미함 그 자체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간호사 선생님께 “나한테 왜 이렇습니까?” 물었습니다. 수술 시간이 너무 길어서 출혈이 너무 심했다고 했습니다. 집중 관리 중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교대하신 간호사 선생님께 내 상태가 어느 정도냐고 다시 물었습니다. 혈액이 2리터 이상 출혈이 있었고, 혈압과 맥박이 불규칙하다고 메모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문득 수술 중 보았던 환상이 떠올랐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그때 그 순간은 분명 듣고 기억했던 “OO”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에서 8장을 얼마나 읽어봤겠습니까. 수십 번도 더 읽었습니다. 그런데도 도무지 그 단어를 알지 못하겠어요. 하나님께서 비밀처럼 기억에서 지워버리신 것 같아요. 마치 남은 시간의 숙제 같습니다. 다시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서 그 답을 찾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 답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은 숙제 말이에요.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다”

     

     저희 부부의 생활은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형식의 신앙에서 진심의 신앙으로, 삶의 우선순위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의 구별됨 등 퇴원 후 많은 것이 저절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의 삶을 직접적으로 많이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퇴원 후 또 한 번의 수술이 있었고 통증이 있기도 하고 아직 환자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통증이 있고 몸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병원에서도 가족들도 요양병원에서의 몸조리를 권유했습니다. 끝내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죽었으면 그때 죽었을 거라는 믿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지! 당신들도 하나님께서 움직여 주셨으니 나를 살렸지! 당신들 기술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봤기 때문이에요. 주님께서 주신 그 환상을요. 수술이 끝날 때까지 지켜 주셨던 그 손길과 기도의 응답과 권능을 보았잖아요! 이 정도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 뭐가 되겠어요. 사실 아파도 아프다고 못했습니다. 이런 성미를 잘 알아서인지 아내가 참 잘 챙겨주어요. 지극정성으로 건강식도 챙겨주어서 서서히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회복하여 다시 교회에 나와 예배할 수 있음도 기쁨입니다. 

     

     참. 쉽지는 않은데 고백해 볼까요? 말만 참예수교인이었어요. 모태신앙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워요. 성인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잘 안 나왔어요. 어쩌다 한 번씩이나 나왔을 거예요. 70년 살아오면서 큰 죄인이었어요. 70년 인생의 삶 이것까지 다 말하기는 참 부끄럽네요. 그냥 큰 죄인이었어요. 곧 죽게 된다니 마지막으로 기도한다는 것도 죄스럽고 염치가 없었어요.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염치가 없던지요. 매를 맞은 것도 인정해요. 사실 한번 맞은 것도 아니에요. 한번 맞아서 안 되니 더 세게 때리셨을 거예요. 70년 살았더니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았어요. 자녀들도 성장했고 말이에요. 올바른 신앙생활을 못 하고 살아왔기에 죄사함의 문제는 마지막 순간에 두려움에 떨게 했습니다. 이유 모를 눈물도 죄사함의 두려움과 죄사함의 유일한 권능자 앞에 간구이었지 않겠습니까. 

     

     사실 간증을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부끄럽고 말주변도 부족하고 자랑거리도 아니라서요. 제가 하나님 앞에 남은 삶 동안 무엇이라도 바치고 싶은데 나이가 들고 보니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용기 내 고백(간증)하는 것이 혹시나 저와 같은 처지의 성도님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일이라 해서, 미약하지만 용기 냈습니다. 남은 생에 하나님 앞에 무엇이라도 바칠 수 있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내가 어떻게 염치없이,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라고 생각하신다면 

    그럼에도 함께 해주신 저의 하나님을 이번에는 여러분이 경험해 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믿고 기도해 봅시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