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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 간증] 신앙 안에서 바로 서도록 인도하신 하나님(황지예 자매)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여느 모태신앙인이 그렇듯 처음에는 부모님의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제가 어느 교회 출신인지 아시나요? 저는 대부분 아시겠지만 광양교회 출신입니다. 신도 수가 적은 교회 특성상 학생부 예배가 없던 탓에 학창 시절까진 부모님과 모든 신앙생활을 같이 하게 되면서 저 혼자 교회 한번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신앙의 홀로서기는 대학 졸업 후 사회에 나와서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할머니, 큰아버지 댁, 작은아버지 댁이 있던 소재지의 대학에 다니고 있어 대학 시절에도 의지할 곳이 많았던 저는 안산이라는 아무 연고가 없던 도시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연고가 없던 탓에 수원이나 안양 등의 다른 교회 위치도 남몰래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산교회를 안 다닐 수가 없게 된 이유가, 입사한 회사 기숙사의 위치가 교회와 너무 가까운 걸어서 10분 거리였습니다. 후에 일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는데, 기숙사는 직장과 같은 건물의 곳부터 제가 살던 곳보다 더 먼 기숙사까지 4~5곳으로 위치가 다양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교회와 가장 가까운 곳에 배정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아는 이 없는 곳에서 마음을 교회에 붙이도록 안배해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안산에서 2년 즈음 있었을 때, 그 나이 때의 자녀를 둔 부모님이 그렇듯 저희 부모님의 기도 제목은 저의 신앙 안에서의 결혼이었고 저보다 열심히 눈에 불을 켜고 계셨습니다. 어머니께서 70주년 행사에서 연주를 하게 되시면서 부산에 가셨는데, 역시나 주변 비슷한 연배의 자매님들이 모여서 하시는 이야기는 자녀의 결혼이었고 시연 자매님을 통해 정현 형제를 소개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25살로 어렸고 이성 교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현 형제는 공무원 시험 준비로 누구를 만나는 것에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시기였습니다. 그런 두 사람이 소개받아 전화와 카톡으로만 처음 한 달을 만났는데 얼굴을 보기 전부터 많은 대화를 통해 호감을 느끼고 이 사람과는 내가 신앙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에도 공시생 생활과 신앙생활을 병행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저에게 단순 배우자뿐만 아니라 신앙의 동역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 저의 신앙도 견고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안산과 부산 사이 장거리로 만나다가 저는 안산에 있던 직장에서 퇴사하고 결혼 전에 미리 부산에서 정착하기로 했고, 직장 퇴사 전에 중소기업 청년대출을 받아 전세를 받기로 했습니다. 회사에 얘기해 둔 퇴사 날은 다가오는데 그 당시 중소기업 청년대출은 시행한 지 오래되지 않아 생소해서 그 제도를 받아주는 집주인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정현 형제가 집을 보러 다니던 중 우연히 한 여자 중개인을 만났는데 그분이 소개해준 집 중 한 곳이 저희가 지금 사는 집이었습니다. 집 자체도 마음에 들었지만, 당시 정해진 직장이 없던 정현 형제와 제가 집 위치를 정할 기준은 교회였는데, 그보다 더 부합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살고 있던 기숙사도 교회와 이보다 가까울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가까운 집이었습니다. 촉박했던 일정 가운데 일이 정말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도 저의 부산에서의 신앙생활을 응원하고 이끌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부산에서 정착하기에 시기적으로는 좋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시작한 부산에서의 신앙생활은 사회적 거리두기, 예배당이 아닌 식당 방 또는 다른 방에서의 화면을 통한 예배, 교회 안에서 식사가 어려움 등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시기가 더 기억에 남았던 것이 점심에 교회에서 김밥을 받으면 교회 청년들과 함께 저희 집에서 라면을 끓여서 같이 먹고, 차와 다과를 즐기는 것을 거의 매주 하다시피 했습니다. 또, 낯을 가리던 저를 더 챙겨주시는 형제자매님들이 계셔서 제가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도 오히려 저는 성도님들의 사랑과 교제의 기쁨을 더 많이 느끼며 부산교회에 녹아들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2세 계획을 하면서 전에는 장점들만 보이던 “저희 집”의 단점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와 살기엔 평지가 없고 근처의 유흥거리, 호객행위를 하는 이모님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아파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의 집값은 저희가 감당하기엔 너무 높은 현실이 보이면서 저희는 양산시 쪽을 찾다가, 덕계에 24년 2월에 완공되는 작은 아파트에 청약을 넣었습니다. 저렴한 분양가에, 분양권을 팔 수도 있던 이점이 있었고, 아파트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가 연이어 있어 학세권이었습니다. 그리고 울산과 양산, 부산을 잇는 광역철도가 근처에 생길 예정이라는 것도 저희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때는 왜 이리 저희가 혹할만한 조건들만 보이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선악과와 같았습니다. 당시엔 기쁜 마음으로 저와 정현 형제가 각각 청약을 하나씩 넣었고, 그 결과 아파트 2채가 청약에 당첨되었습니다. 아파트가 2채를 갖게 될 것이라는 마음에 저희는 ‘완공될 때까지만 계약금 대출금 이자로 조금 고생하면 이제는 우리가 집주인 될 수 있다’라는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렇게 완공을 기다리면서 종종 제가 살 아파트가 궁금해서 온라인에 검색하다 보니 이상한 기미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청약 당첨된 지 오래 뒤인데도 아직 공사 현장에 삽도 안 팠다는 소식이 보였습니다. 알아보니 그 지대에 큰 암반이 있어 아파트를 짓지 못할 것 같다는 글이 보였습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아차 싶었습니다. 저희가 겉으로 보기 좋은 집, 안정적인 재산을 갖기 위해 신앙적인 고민을 깊게 하지 못했었고, 하나님께서 저희의 잘못된 점을 조금씩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저희가 지금 사는 집을 구했을 때는 분명 교회가 기준이었는데 이 아파트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상적인 조건이 너무 좋아 보여 계약을 했던 것이죠. 그제야 교회 옆에 살면서 받았던 은혜를 잊고 산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의 잘못을 깨닫고 나니 일이 이상하게 저희의 중심으로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시공사 쪽의 설명회를 들으러 간 모델하우스에서 다른 피해자 집단을 만나 단체 소송에 참여하게 되어서, 저희가 소송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도 큰 노력 없이 알아서 소송이 진행되고, 그 사이에 저희는 지효를 출산했습니다. 아이를 낳아 돈이 계속 필요한 시기가 되니 재판이 승소해서 저희는 계약금에 위약금까지 받아 오히려 여윳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고자 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일이 저희 가정에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24년 1월 1일 오전 6시경, 새해맞이 새벽기도를 하러 가는 길에 집 우편함에서 의문의 편지 봉투를 보게 됩니다. 저희 부부는 이 편지를 우스갯소리로 행운의 편지라고 말하는데요. 저희가 받은 편지 봉투에는 ‘임차인에게 임대인 드림’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요약하자면 집주인분의 무리한 사업 진행 중 대출 지연으로 인해 3금융 대출이 연체되어 결국 모든 금융거래가 정지되었다는 일종의 파산예고와 피해복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결국, 우리가 낸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후로 저희 빌라 주민들은 수시로 모이며 진상 파악과 같이 살아갈 방책을 서로 공유했습니다. 저희도 시청에 가서 전세 사기 피해 지원에 대해 알아보고 경찰서에 고발하는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스트레스에 잠을 못 잔다, 눈물이 난다’라고 호소하는 다른 빌라 주민들과 달리 저희는 이상하게도 걱정이 하나도 안됐습니다. 돌배기 아이도 있고 더군다나 한 명이 휴직인 상황이었는데, 정말 희한하게 정현 형제나 저나 무슨 믿는 구석이 있는 건지 ‘우리 돈 다 날아가면 어떡해. 지효도 있는데 내쫓기면 어떡하지?’ 등의 걱정은 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몸은 바빠도 마음은 평안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아니, 사실 믿는 구석이 있는 건 맞았습니다. 저는 평탄치 않은 삶을 산 요셉이 왜 평안하였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재작년에서 작년까지 청약과 재판과정을 겪으며 하나님께선 우리 가정을 내버려 두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어느 날 저희 빌라 대표가 집주인의 대리인을 만났다며 이러한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저희가 못 받게 되는 전세보증금을 제외한 일정 금액을 집주인 측에게 주고 시세보다 저렴하게 집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 매매가가 2억이고 전세보증금이 1억이면 1억을 더 주면 집을 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저희에게 돈을 받아 빚을 일부 해결하고, 저희는 전세보증금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최선은 아니었지만 차선책으로 해볼 수 있는 방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그만큼의 목돈을 준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집의 전세도 속된 말로 전세 대출을 거의 풀로 땡겨서 들어와 있는 터라, 원래는 매매는 말도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저희가 이 집을 담보대출로 구입하는 시도를 해볼 수 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앞선 양산 아파트와의 승소로 받은 계약금과 위약금이 있던 덕이었습니다. 정말 딱 필요한 만큼 미리 채워주신 덕에 저희는 무사히 계약해서 이 집을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예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첫 직장의 기숙사가 교회 근처였고, 저희 어머니가 행사에서 만난 자매님께 정현 형제를 소개받고, 정현형제가 우연히 이 집을 소개받고, 저희 가족이 양산아파트 소송에 참여하게 되었고, 마침 돈이 있어서 이 집을 샀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수많은 우연과 기연이 어쩌다 생긴 일이 아님을 압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땐 우연하게 보이지만 사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계획 속의 섭리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이끄는 신앙에서 벗어나 제 신앙과 저의 가정을 이루는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끄심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때와 방법은 사람이 감히 상상해볼 수도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희 가정을 지켜보고 계시며 사랑하심을 자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성도간증]중3 김현서 자매의 성령 받은 간증

    할렐루야! 동부교회 김현서 자매가 학생부 영은회때 성령을 받은 간증을 인터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이 성도님들에게도 함께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Q. 성령 받기 전에는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아주 어렸을 때는 성령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나도 언젠가는 받겠지’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성령을 받고 싶은 마음도 더욱 커져갔습니다.

    Q. 중3 수련회에 가기 전에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사실 중3 수련회를 갈 때는 4박 5일 동안 집을 떠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수련회를 다녀오니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었고, 뜻깊은 시간이 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Q. 중3 수련회에 다녀온 후 느낀 점이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중3 수련회에서 박필선 목자님의 순교지를 다녀왔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등산이 힘들기는 했지만, 올라가면서 박필선 목자님께서 이 길을 걸어가셨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신기했고 저도 순교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Q. 영은회에 참석하기 전에는 어떤 마음이었나요?

    영은회에 참석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번 영은회에서 성령을 꼭 받고 싶기는 했지만, 저번 영은회처럼 그냥 지나갈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성령을 받을 것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습니다.

    Q. 영은회에서 기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기도했나요?

    처음에는 평소처럼 회개기도도 하고 감사기도도 하며 성령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때마다 ‘내가 진짜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어서 정말로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었습니다. 평소에도 이렇게 기도를 했었는데 이번 영은회때 더욱 진심으로 믿고 싶어서, 이번에 못 받더라도 하나님은 나에게 반드시 성령을 주실것이라고 확신하며 믿고 간절히 기도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성령을 받았습니다.

    Q. 성령을 받은 순간은 언제였고, 그때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들었나요?

    처음 성령을 받은 것을 느꼈을 때는 찬양기도회 시간이었습니다. 딱히 다른 생각은 모르겠고, 그냥 ‘성령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이 떨리면서 방언이 같이 나왔고 마음에 따뜻한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찬양기도회가 끝난 후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이 충만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그 말을 듣고 더 기뻤습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정말 많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기도회 시간에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Q. 성령을 받고 나서 예배나 기도할 때 달라진 점이 있나요?

    성령을 받기 전에는 무엇이든 먼저 내 힘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안 될때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작은 일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께 감사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성령을 받은 후에 방언으로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진짜 존재하시고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은 경험을 통해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야고보서 1:6-7) 성령 받은 후 이 구절을 읽었을 때 제 마음에 더욱 와닿았습니다. 앞으로도 성령 받은 경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진1–중3수련회 참가모습   사진2–영은회 조별모임   사진3–성령받고 폐회식때 모습>

  • [성도간증] 빈자리를 채워주신 하나님 (원주교회 나지현 자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처음 간증을 준비할 때 저는 정말 이 자리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하루하루를 보낼 때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고,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한 생각을 많이 못 했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으니 감사한 일들도 간증할 내용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간증을 준비하다 보니 하나님께 감사한 일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부족한 저를 또 이렇게 쓰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함께하시는지에 대해 간증하려고 합니다. 저는 사랑스러운 아이가 둘이나 있고,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손이 정말 많이 가지만, 남편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 신학원에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일을 해야 하는데 양가 모두 멀리 계셔서 도움을 받을 곳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부터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매일 뛰어다녀야 하고, 잠시라도 엉덩이를 붙이거나 휴대폰을 보거나 쉴 틈이 없이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서 아플 때가 많지만 바쁜 회사 일로 인해 잠시 병원만 들렀다가 아픈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고, 또 회사에서는 야근도 못 하는데 잠시 병원에 들른 걸로 업무를 끝까지 해내지도 못할 때가 많습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을 돌봐주시는 건지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간증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늘 함께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남편을 신학원에 보낼 때부터 저에게는 시험거리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고부터 예배와 멀어지다 보니 믿음이 많이 흔들렸는데, 저를 너무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제가 남편을 신학원에 보내도록 인도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때 믿음이 거의 없었음에도 ‘하나님께 내 남편을 드리니, 남편 자리는 하나님께서 더 크게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만은 확실했습니다.

    남편의 2월 신학원 입학을 앞두고 1월에 전 회사에 복직했습니다. 회사에는 매년 두 번 정기 발령이 있는데, 정기 발령을 맞추지 않고 복직하면 정말 일이 너무 많아 사람이 정말 필요한 곳에 가게 됩니다. 제가 육아휴직 급여가 끝나는 시기에 바로 들어가려니 정기 발령 시기를 맞추지 못했고, 바쁜 부서로 발령받을 각오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발령을 받으니 그 정도로 사람이 필요하다 요청하던 곳도 아니었고, 팀원들도 모두 잘 만나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에 대해 늘 배려를 받게 되었습니다. 종종 밤샘 대기업무나 주말 출근 등의 업무에서는 다 빼주시고 기한이 짧은 업무들도 다 빼주셔서 갑자기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혼자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심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회사에서의 생활을 도와주셨고, 또 아이들의 보육까지 도와주셨습니다. 복직 전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데, 돌 전 아이를 급하게 맡기려다 보니 첫째와 다른 어린이집이었습니다. 사실 혼자 출퇴근하면서 어린이집 두 군데를 등하원시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1, 2월 그렇게 바쁘게 생활했는데, 3월에 회사 어린이집에 두 아이가 함께 입소하게 되면서 회사 바로 옆으로 등하원시키니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땐 그냥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회사 어린이집 경쟁률이 37:1인데, 어떻게 두 아이가 한 번에 됐지’라는 생각에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회사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가 저녁까지 먹고 하원하면서, 기존 퇴근 시간을 4시에서 6시로 바꾸게 되었고, 집에서 아이들 저녁도 안 차리고 급여는 더 받으면서 조금씩 경제적으로도 많이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움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복직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 놀이터를 갔다가 거기서 처음 뵙는 분이 갑자기 ‘아이돌봄’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는데, 정부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선생님 비용을 지원해 주는 서비스였습니다. 그분이 아이돌봄 선생님이셨는데, 저를 처음 봤을 때 그 서비스를 알려주시더니 놀이터에서 만날 때마다 자꾸 신청하라고 재촉했습니다. 애가 둘인데 왜 신청을 안 하느냐며 잘 모르는 분께 혼나기까지 해서 결국 신청했습니다. 그 서비스는 부모의 소득에 따라 정부 지원금이 달라지는데, 마침 남편이 신학원 입학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의 소득으로 계산돼서 정부 지원을 많이 받으며 선생님이 배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 선생님이 남편 역할을 대신해 주시듯 아이들을 정말 잘 돌봐주셔서 제가 집안일도 하고 다음 날 등원, 출근 준비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너무 놀란 사실은 최근에 회사에서 누군가가 저에게 한 질문인데, “과장님은 왜 혼자 다 하는데 한 번도 안 아파요?”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을 듣고 너무 놀란 게, 아이 출산 후 제 체력이 정말 많이 떨어졌고 운동할 시간도 없었는데, 제가 지금까지 아프지 않았단 겁니다. 생각해 보니 제가 아팠던 날은 남편이 신학원 휴가로 집에 있을 때뿐, 남편이 없을 땐 정말 하나님께서 아프지 않게 도와주심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제 생활을 돌아보며 처음 남편이 신학생이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 “하나님께 바친 남편 자리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심”이란 믿음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제게 역사해 주셨고, 혼자 육아도 경제활동도 가사도 모두 할 수 있게 매일 저와 함께해 주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드리며, 이 은혜를 우리 아이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 [성도간증] 천안교회 하늘빛 형제 간증

    <첫 신앙 생활과 잃어버린 믿음>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저는 전라남도 장흥군에 있는 수문교회 출신입니다.

    부모님께서 모두 참예수교회 신도였기 때문에 수문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수문교회는 바닷가에 있는 마을에 작은교회였지만 저는 어린시절에 그곳에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였고 중학교 3학년 무렵에 학생부 영은회에

    참석하여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고향 교회인 수문교회에서 부모님과 더불어 같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무렵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교회를 출석하기가 어려워졌고 그로 인해서 교회와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광주로 진학 하면서 교회를 전혀 출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군대와 사회생활을 20여년 동안 하는 동안에 교회에서는 틈틈이 연락을 해주셨고 교회 출석을 권면 하셨지만 마음이 전혀 열리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또한 자주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하도록 권면 하셨지만 교회보다는 세상살이에 마음을 많이 빼앗겼습니다.

     

    <신앙생활을 향한 마음의 움직임>

    저는 택배업을 시작하기 위해 2017년에 천안에 정착을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천안에도 참예수교회가 있다고 말씀을 하셨지만 저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출석을 중단한지 어느덧 20여년이 흐른 어느 날 천안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는 박은진 목자님께서 연락을 주셨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역시 당시에는 교회출석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25년 초에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는 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 아버지에게 새해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여쭤보았습니다.

    그때 아버께서는 술과 담배 중에 담배는 끊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저는 아버지의 바람을 따라 담배를 끊었습니다. 얼마 후에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엄마에게도 똑같이 저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께서는 저의 건강과 교회출석을 바라셨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서 이제 교회출석을 시작해야겠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화요일도 토요일도 바쁘니 금요일 저녁 예배라도 출석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다짐도 잠시 사실은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신앙 생활 결심>

    그러던 25년 3월경 이었습니다.

    그동안 암투병을 하시던 셋째 이모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참석했는데 거기서 청주교회를 시무하고 계시는 이모부 김세한 목자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김세한 목자님께서 장례식 기간 중에 계속 교회출석을 권면하셨습니다.

    심지어 영상 통화로 천안교회 박은진 목자님과 연결을 해주셨고 그때 저는 교회출석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했던 어머니와의 약속이 다시 생각이 났고 이제는 그 약속을 지켜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다시 돌아오다! 그리고 삶에서의 큰 변화>

    그렇게 올해 3월 14일 금요일에 교회출석을 중단한지 근 20여년만에 천안교회를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천안 교회였지만 교회 성도님들은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제가 천안교회에 잘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맞이해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출석을 시작할 때는 주로 금요일 예배에 참석을 했습니다. 금요일에 제가 교회에 일찍 오는 것을 아신 목자님이 어느 날 부터는 저를 따로
    불러서 “역에 교회 형제들을 차로 데려다 줄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 하셨습니다.

    사실은 교회를 자주 나오지 못하는 제 형편을 아시고 따로 신앙상담을 해주시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목자님은 제가 20년 동안 교회 출석을 하지 못했던 기간에 있었던 세상살이에 대해 하나 하나 묻기도 하시고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돌
    이키고 회개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권면으로 담배를 끊었다고 하자 그럼 하늘 아버지의 권면으로 말씀하신다고 하며 교회 출석을 시작했으니 이참에 술을 끊도록 권면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력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술을 끊는다는 것은 담배보다는 저에게는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감사하게도 저는 술도 완전히 끊게 되었습니다.

    <떠난 성령을 회복하다>

    어느날 교회 출석을 시작한 지 얼마 후에 예배가 끝나고 갑자기 목자님이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목양실로 가서 따로 안수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20년 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던 저에게 성령이 떠난 것을 아시고 따로 안수기도를 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감사하게도 저는 25년 3월 28일 성령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죄악된 길에 살던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기쁨으로 드리는 신앙생활>

    그 후 저는 교회를 가는 발걸음이 너무 가볍고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화요일 예배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고 목자님께서는 수요일 성경 공부도 참석하라고 권면을 하셨습니다. 아쉽게도 성경 공부를 참석한지 불과 몇 번 안되어서 성경 공부가 여름방학을 하게 되지만 때마침 매일저녁마다 기도회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매일 저녁 기도회도 참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교회를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안될만큼 교회 오는 것이 너무나도 즐겁고 행복합니다.

    제 믿음이 회복되도록 도와주신 부모님, 그리고 사랑으로 권면해주신 김세한 목자님, 그리고 천안 교회에 잘 적응하고 정착하도록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박은진 목자님과 모든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산앙의 목표>

    교회 출석을 시작하고부터는 몇가지 기도제목이 생겼습니다.

    첫째는 지나간 과거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목자님이 설교하실 때마다 강조하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 앞에 바른 기도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로마서를 배우면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항상 감사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굳세고 강한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앞에 나서서 하나님을 일을 하기가 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과 성도님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어떤 힘든 일이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안식일을 온전히 준수하고 싶습니다. 제가 믿음이 없을 때 시작한 택배업으로 인해 안식일을 온전히 준수하지 못해 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이외에도 결혼도 믿음 안에서 하고 또 교회 근처로 이사도 오고 싶기도 합니다. 저의 모든 기도제목이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되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
    다.

    감사하게도 교회를 출석하는 날부터 하나님께서는 목자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 하나 깨닫게 하시고 또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제가 천국가는 그날까지 말씀대로 살아가는 이 믿음을 꼭 유지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던 저를 잊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것으로 간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하늘빛 형제 사진>

     

    <하늘빛 형제와 천안교회 형제들>

     

    <하늘빛 형제와 천안교회 대학사청부>

     

    유튜브에서 간증을 시청하시려면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성도 간증]영국에서 동부교회로-세디스 자매의 이야기

    할렐루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사드립니다.

    한국에서의 시간을 형제자매님들과 나눌 수 있는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영국 뉴캐슬 교회에서 온 Mercedes Lai, 세디스라고 불러주셔도 좋습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2개 학기 동안 한국에 머물 예정입니다.

    올해 6월, 저는 뉴캐슬 교회의 자매 4명과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대만에서 열리는 IYF에 참석하기로 이미 계획되어 있었고, 그 전에 한국에서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금요일 밤 예배는 강남교회에서, 안식일은 동부교회에 참석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처음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제가 한국에서 공부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성도님들을 뵐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신앙생활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믿음 안에서 자라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지금 이렇게 낯선 나라에서도 계속 교회를 다니며 신앙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려서부터 매주 RE(종교교육) 수업을 들었고, 매년 열리는 전국 학생 영은회에도 참석했습니다.

    2016년, 처음 참석했던 영은회에서 성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소는 에든버러 교회였고, 뉴캐슬 학생들이 모두 금식을 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뉴캐슬 형제자매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지만, 저와 두 형제는 아직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친구들이 성령을 받는 모습을 직접 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기 때문에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도 후 목자님께서 제가 성령을 받았다고 알려주셨을 때, 저는 너무 큰 기쁨과 감격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매들이 함께 울며 기뻐해주던 따뜻한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제 신앙 여정엔 늘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지만, 그때의 은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와 동역자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았던 그때가 제 신앙이 가장 강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환경 속에서 제 마음은 하나님과 교회를 향해 많이 자랐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을 소중하게 기억합니다.

    청소년기였던 저는 세상도 교회도 잘 알지 못한 순수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로 인해 교회 생활의 일상이 무너지고,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했던 그때, 집중도 안 되고 예배가 점점 형식적으로 느껴지면서 제 믿음은 약해져 갔습니다. 2022년에는 막내 남동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진단부터 임종까지, 저는 제 자신과도 멀어졌고 정작 하나님이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하나님께 나아갈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시기 이후, 저는 제가 믿고 있던 모든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며 마음속엔 설명되지 않은 질문들이 쌓여 ‘구름’처럼 남아 믿음을 막았고, 오랫동안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교회 성도들과도 멀어졌고, 여러 감정이 겹쳐져 신앙은 최저점을 찍었습니다. 교회 가는 것이 힘들어졌고, 의무감 때문에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예전처럼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고, 제 부족한 믿음을 보고 혹시 누가 속으로 비웃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도 저는 ‘가야 하니까 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국에 온 이후에는 제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의무가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찾고, 흐려진 신앙을 회복하고 싶어서 교회에 가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전처럼 불안함 없이 예배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고, 작년보다 마음이 훨씬 평안해졌습니다. 한국에서의 교회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낯선 나라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매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조금 웃기지만요. 그래도 동부교회에서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교회가 제 신앙 여정의 한 부분이 되어서 참 기쁩니다.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에서 지내다가, 한국의 규모가 조금 더 작은 교회에 오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언어 장벽과 통역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성도님들과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저는 성격이 많이 내성적이고, 뉴캐슬 교회와 달리 동부교회에 또래 청년이 적다 보니 처음엔 많이 낯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신 성도님들의 친절과 사랑을 감사히 느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언어는 어렵지만, 같은 믿음 안에서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또 기도 가운데서도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들리는 방언기도의 익숙한 소리는 제 마음에 큰 평안을 줍니다.

    동부교회에서 가장 감사한 기억 중 하나는 성도님들의 넓은 마음뿐 아니라 정말 맛있는 음식입니다. 저는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매주 직접 준비해 주시는 따뜻한 한국 가정식을 먹을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준비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큰 위로가 됩니다.

    한국에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여러 기회를 통해 이곳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참 감사드립니다. 봄 학기에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번 학기가 끝나고 함께했던 친구들이 떠나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래도 봄 학기가 되면 다시 동부교회 성도님들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쁩니다.

    이 간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한국에서 남은 시간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흐려진 제 믿음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길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세디스 드림

    세디스 자매가 6월에 친구들과 동부교회 방문하여 청년부와 찍은 사진.  앞줄 맨 오른쪽에서 네번째 자매가 세디스 자매입니다. 

  • [성도간증]일본 신앙 여행을 마치고

    2025년 4월, 갈렙.바나바와 아비가일 연합은 목자님 포함 21명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7박8일의 일본 신앙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도 식지 않은 열정과 또 자라나야 할 신앙을 위해 계획된 이번 여행에 하나같이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라고 말씀하신 성도들을 대표하여 함께 다녀오신 이종숙 자매님께서 간증해 주셨습니다.

    일본 신앙여행을 마치고
    이종숙

    사랑과 은혜가 가득하신 하나님의 보살핌 속에 일본 신앙여행에 아무런 일 없이 잘 다녀왔음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래전 일본 신앙여행 계획이 알려진 이후 시간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참예수교회라는 교회 안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성도들과 처음으로 신앙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일반적인 여행보다 훨씬 설레고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더욱 가까이 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우리와 아주 다를 것으로 생각한 일본의 참예수교회는 어떤지도 궁금했으며 처음으로 떠나는 신앙여행이어서 더욱 설렜는지도 모릅니다.

    일본 신앙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이 공항에 도착하여 밝은 웃음으로 인사 나누고 수화물을 위탁하고 나서 출국심사장에서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드디어 일본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비교적 작은 비행기라서 조금은 놀라긴 했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무사히 일본까지 데려다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일본에 도착하여 공항 로비로 나오자 곧 우리를 반기는 오사카 교회 성도님들이 나오셨습니다.
    여행 기간 내내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신 조이 아버님과 조이 형제님의 헌신은 가족보다 더 세심한 배려 속에서 일본 신앙여행 일행을 안내하고 도움 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일본 신앙여행의 첫 방문지인 오사카 교회에 도착하자 많은 성도님께서 줄지어 서서 꽃송이를 건네주시고 찬양을 부르면서 우리 일행을 열렬히 반겨주시는 모습도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나같이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신 모든 성도님이 바로 살아 있는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오사카 교회를 비롯하여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도 역시 우리 일행을 가족 같은 마음으로 맞이하여 주시어 큰 감동이었습니다.

    막연하게 우리나라보다 전도가 덜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교회도 작을 것으로 생각하고, 성도 수도 적을 것으로 생각한 일본의 참예수교회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성도 수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오사카 교회,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 세 군데를 다녔지만 하나같이 교회도 크고 시설도 깔끔하니 훌륭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여기에서도 통하는 말이라 생각하면서 신앙여행에 함께한 것을 큰 축복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강남교회가 일본 교회보다 작아 보이고, 시설도 낙후되어 있음을 느끼면서 우리 강남교회도 일본의 교회보다 더 크고 시설이 좋은 교회로 발전되길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다녀온 일본의 모든 교회에서 서로가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품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참예수교회의 성도로써 하나님의 축복 안에서 따뜻한 정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서로 찬양을 나누는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아래 참예수교회 안에서 서로가 국적은 다르지만, 우리는 하나이고 한 가족이라는 찬양이 왜 나왔는지도 몸소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사카 교회에서는 숙식을 제공하여 주어 이틀 밤을 묵었는데 꼭 집에서 자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했습니다.
    음식 또한 너무나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이어서 신앙여행으로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느낌을 잊었었다면 거짓말이라고 할까요?
    멀리에서 교회로 오시어 아침을 준비해 주신 오사카 교회 자매님의 사랑과 은혜에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일본 신앙여행에서 체험한 오사카 교회, 요코하마 교회, 치바 교회는 하나같이 우리를 진심 어린 마음으로 환대해 주었고, 많은 것을 베풀어 주심에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막바지 여행을 안내하고 신앙여행 일행을 살뜰히 챙겨주신 여행사 대표 겸 집사님께서도 우리가 불편한 점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면서 배려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아무 사고 없이 신앙여행을 마치게 됨을 축복으로 생각하며, 신앙여행에 함께 하며 통역과 진행에 헌신해 주신 목자님을 비롯하여 서로 배려하고, 도움이 되고자 했던 모든 형제자매님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성도간증]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부산교회 김정현 형제)

      할렐루야 예수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부족한 저희 가정에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간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번에 저희 가정이 부산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희 가정은 2015년부터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2019년 말에 김해로 이사를 갔습니다. 2019년에 하나님의 은혜로 현재 다니는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김해로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출퇴근 거리가 꽤 멀었지만 다행히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회사 바로 앞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다녀서 방법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출퇴근 경로가 부산에서 교통체증이 가장 심한 곳 중 하나여서 출퇴근 시간이 왕복 최소 2시간에서 오래는 3시간까지 소요되었습니다. 첫 몇 달간은 신입의 자세로 힘들다는 생각 없이 다녔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체력적으로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을 했고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사 가기 전에 부산교회 영은회 강사로 오신 목자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김해로 이사 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목자님께서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며 교회와 먼 곳 으로 이사 가는 것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며 조언해주셨습니다. 부산에서 살 때는 모든 예배에 출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교만한 마음으로 목자님의 조언을 흘려 들었고 잊은 채로 살았습니다.

     그렇게 김해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김해에서의 생활은 모든 면에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부산에서는 30년 이상 된 빌라에서 지내다가 김해에서는 신도시에 있는 신축아파트에서 살게 되었고, 가장 큰 문제였던 출퇴근 시간은 왕복 30분 이내로 줄어들었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첫째 사랑이는 아파트 단지와 바로 연결되어있는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위해 예비해 두신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김해 안에서 한번 더 이사가 있었지만 크게 환경이 바뀌지도 않았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계속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와중에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앙이었습니다.

     김해로 이사 오는 시기에 개인적으로 신앙에 큰 시험을 겪고 있었고 거기에 코로나가 겹치게 되면서 김해에 가서도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겠다는 저의 다짐은 너무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참인 시기에 둘째 온유가 태어났고 종교시설 인원 수 제한으로 온라인 예배가 활성화 되면서 집에서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안식일에만 출석해도 충분하다고 여길 정도로 예배자로서의 삶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온유가 어느 정도 크면서 다시 화요일 저녁, 안식일 저녁 예배도 참석하고자 노력은 하였으나 2년간의 공백기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와 집이 거리가 멀다는 것은 예배에 출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곗거리였기에 이것을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습니다.

     살던 집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와서 이사갈 곳을 알아보던 시기에 ‘내가 김해에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강하게 사로잡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김해로 이사할 때, 그리고 김해 안에서 이사할 때 두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이사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단 한번도 제 계획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의 이사 모두 제가 처음에 계획했던 가장 이상적인 방법대로 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하나님께서 비켜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셔서 큰 탈 없이 이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냥 감사하다고만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님께서 김해로 가지말라고 경고를 주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김해에서 계속 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아내도 지금보다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고 싶다고 얘기를 해줘서 우리 가정의 신앙의 회복을 위해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기도하면서 이사 갈 곳을 찾았습니다.

     제가 첫 번째로 이사 가려고 알아봤던 곳은 부산이 아닌 양산에 있는 신도시였습니다. 교회에 가는 시간도 줄고 대중교통으로도 교회에 갈 수 있고, 시세도 기존에 살던 동네와 비슷하고, 신도시라서 생활여건도 기존에 살던 곳과 비슷 했기에 최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이 자신이 원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가 없게 강하게 개입하셨습니다. 몇 개월째 하락세였던 양산 부동산 시세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르기 시작했고 가격은 저의 결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현실적인 문제였기에 어쩔 수 없이 다른 동네를 찾아보게 되었고 양산보다 훨씬 더 교회와 가까운 부산에 괜찮은 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부터 부산을 알아보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산으로 가게 되면 제가 내려놓아야 할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부산은 항상 후순위였습니다. 부산은 아무래도 김해보다 부동산 시세가 높기 때문에 기존에 살던 집과 비슷한 수준의 집을 구할 수 없었고, 주변 인프라도 신도시에 비해 좋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제가 김해로 이사 가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고통스러운 출퇴근을 다시 겪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부산으로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가락이 부산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 했습니다.

     부산으로 가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내가 내려놓기로 마음 먹었던 부분들에 있어서 이전보다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살던 집보다 상태가 더 좋은 집을 더 좋은 조건으로 구할 수 있었고, 이삿짐 센터를 구하고 이사를 하는 과정, 같이 이사하는 장모님 집 구하는 과정, 첫째 사랑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과정 등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 은혜로 아무런 문제 없이 이사를 마치고 잘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가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모든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는 예배자의 삶을 다시 살고 있습니다. 방황하다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했던 아버지처럼 잘못된 선택을 깨닫고 돌아온 저희 가정에게 질책과 징계가 아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 보다 신앙의 질을 높이는 것이 더 축복된 일임을 깨닫게 해주시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저의 간증이 저와 비슷한 상황에 계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성도간증] 양선* 자매의 간증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988년 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였습니다. 맹인 농아 봉사 서클 선배님의 선한 영향력으로 신앙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부모님이 하시던 사업이 갑자기 망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기까지 당하게 되면서 심근경색이 있으시던 아버지는 가슴 통증이 더욱 빈번해지고, 동생은 학비를 못 내서 고등학교에서 쫓겨날 지경이었고, 저 또한 등록금도 기숙사비도 제대로 내지 못해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스스로 일해서 생활비를 마련하며 근근이 살아가던 형편이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당시 19살의 대학교 1학년이던 저는 혼자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아주 벅찼습니다. 아프신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하고 세상은 공평치 못할까, 아빠는 심근경색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으로 입·퇴원을 반복해야 할까?” 이런 생각 속에서 그 당시 저는 의지할 무언가를 붙들고 싶었던 것 같았어요. 그러던 중 창조론과 진화론 강연을 듣기도 하고, 성 오거스틴의 <참회록> 등 여러 서적을 읽으면서 저의 이성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존재 근거를 찾기 시작했어요. “석가모니나 공자는 부활이 없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니 기독교가 진리이지 않을까?” 이렇게 결론지으면서 선배님을 따라 안식일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성경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1년여가 지난 어느 날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기 시작한 이후, 매일 매일 외롭고 고된 일상 속에 성경 말씀은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달고 요묘한 이 말씀’이란 찬송가 가사처럼 첫사랑의 소녀의 마음인 듯 성경은 제 심장을 뛰게 했고 삶의 유일한 기쁨이 되었습니다. 저는 집회가 있는 곳이면 학교 수업도 빼먹고 어디든지 쫓아가서 성경 말씀을 들었습니다. 교회에선 아동부 교사로 봉사하고, 안식일 오후에는 노방전도를 하며 온전히 안식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식일에는 무릎 아래의 치마를 입어야 하고 안식일 시작 전에는 목욕해야 하고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안식일이 끝나는 시간까지는 교회에 있어야 하는 것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 여겼습니다. 약사고시가 며칠 안 남은 시점까지도 철칙으로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의료 선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드디어 1992년 제 나이 23살에 교회 청년들과 함께 중국에 선교를 하러 갔습니다. 그 당시엔 중국과 수교가 안 된 상태라 포교를 하다 잡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제 마음은 절박했고 의지할 곳이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발작을 자주 일으켰기에 또 쓰러지실까 봐 항상 불안했고 엄마와 동생들 또한 제가 소녀 가장으로서 보살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을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기에 저의 삶은 항상 억눌려 있었고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없는 신앙 생활을 했던 것이죠. 돌이켜 보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정죄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안식일 교회에 몸 담았던 당시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음 한 켠 공허함 속에 늦은 비 성령을 갈구하게 되었는데 사도행전 연구 집회에 참석도 하고 산속에서 밤이 깊도록 두려움도 없이 간절히 기도도 드려 보았지만 결국 성령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병원 휴가 기간에 천연치료원에서 약학과 동기인 현* 언니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저에게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있다”라고 하면서 3~4일의 시간 동안, 사도행전의 예수님의 이름 및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린 구절 등을 일일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그 놀라운 소식을 듣고서 너무도 기쁘고 설레고 흥분된 마음으로 현* 언니를 따라 어느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바로 참예수교회 대방교회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라는 성경 말씀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이듯이”(시42:1)의 말씀처럼 갈급한 심정으로 대방교회 기도실에서 너덧 명의 성도분들과 합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혀가 구부러지고 몸에 진동이 오면서 눈물이 쏟아지고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지금까지 제 가슴 속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리면서 말할 수 없는 감격과 기쁨이 가슴 속에 충만했습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날 임했던 동일한 성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주님 감사합니다. 세례 후 3일째 되던 날, 저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참 교회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성령을 받고 난 후에 저는 너무도 귀한 성령이 떠나갈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근무 중에도 틈만 나면 성령으로 기도했습니다. 새벽 시간에도 무의식 중에 찬송을 불렀는데, 집주인이 시끄럽다고 저를 쫓아냈고, 전철에서도 “찬송 소리가 너무 크다” 고 친구가 말해 주었을 때 그제야 제가 찬송을 부르고 있음을 알아차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제가 성령 받기 전에는 고음이 전혀 올라가지 않고 저음도 못 내는 음치이었는데요, 성령을 받은 후에는 찬송을 부를 때마다 고음이 저절로 올라가고 찬송가의 가사가 저의 간증이 되어 더 깊게 느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목청껏 찬송하라”라고 축복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저희 딸 가*이에게 베푸신 은혜를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임신 34주(9개월)무렵에 산부인과를 찾아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시기에 태아의 정상 체중이 최소 2kg이 넘어야 하는데 아이는 1.5kg가량밖에 되지 않아서 미숙아로 태어날 것이기 때문에 당장 개복수술로 아이를 꺼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매일 통곡하면서 간절히 기도를 드렸고 달포 후 정확히 40주를 채우고 2.7kg의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울면서 부르짖은 저에게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란 찬송가 구절처럼 하나님께서는 고통으로 신음하는 저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이가 5개월 무렵, 하루종일 소변을 못 보는 거예요, 기저귀를 자주 갈았었는데 그날은 한 번도 기저귀가 젖어 있지 않아 응급 상황임을 깨닫고 목자님께 안수기도를 청하여 받았는데 그 이후부터 신기하게도 소변이 잘 나와서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가*이 6세 때, 남편이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차량이 빗길에 미끄러져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차량은 심하게 부서져 폐차하였지만 가*이와 남편은 잠시 의식을 잃은 것 외에는 다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가*이가 앞으로 튕겨져 나갔지만, 에어백에 부딪혀 앞자리 조수석에 앉혀 있었고 차량 내부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뒤따르던 차량의 운전자는 사고를 목격하고 하차하여 2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의 상의를 쉴 새 없이 흔들어 질주해 오는 후속 차량에 위험 신호를 보냈다고 합니다. 저희 가족을 주님께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저희 친정아버지에 대해 간증하겠습니다. 18년 전쯤에 친정 부모님이 저의 권유로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30대 때부터 고혈압과 심근경색으로 병원 응급실을 자주 드나들었고 세례받기 며칠 전에도 심장 발작으로 입원하였습니다. 세례받는 날 아침에도 몸이 좋지 않아 ‘세례를 미루어야 하나?’ 걱정하였는데 아버지가 아프신 중에도 “믿음으로 받겠다.” 하셨습니다. 세례받으신 후 갑자기 아버지가 마이크를 들고 세례 현장에서 간증을 하셨어요. “세례받고 나오니 모든 병이 나은 것 같이 몸이 가뿐해졌다”라면서 기뻐서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세례를 베푸실 때 아버지의 병을 완전히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단 한 번도 입원한 적이 없었습니다. 10여 년이 지나 81세에 아버지는 링거를 맞던 중 갑작스레 팔다리 마비가 왔어요. 병원에 있었음에도 의사의 무지로 인해 빠른 조치를 못 함으로써 좌뇌경색이 심하게 와서 의식조차 없는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광주교회 목자님께서 병원으로 심방을 오셨고 합심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이 다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 속에서 눈물로 기도하는 중에 이런 성경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4:17~18), 저는 이제야 그 말씀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저희 가족이 현재는 고통스럽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깊은 뜻이 있었다는 것을요. 아버지를 서울의 한 유명한 재활병원으로 모셨고 직접 간병하면서 호전되기를 바랐지만 아버지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주 심방 오시는 목자님을 보시면 환호하면서 좋다는 표현을 하셨고, 한 살 아기가 되어서 소리 지르고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하셨지만 예배보고 기도할 때는 소리도 지르지 않았고, 찬송가를 부를 때는 놀랍게도 신나시며 따라 부르셨습니다. 말씀은 전혀 할 줄 모르는데 찬송가와 노래는 할 줄 아셨던 것이죠. ‘우리 아버지도 이제 구원받았구나’ 하는 그런 감동을 받았습니다. 뇌경색과 대장암을 3년간 앓으시고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 엄마가 밤에 집에서 자고 있는데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두건 쓴 사람 2명이 “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세 번을 깨웠는데, 엄마는 “왜요? 나는 졸려서 못 일어나요.”라고 말하면서 가까스로 일어났는데 그때 전화벨이 울렸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려고 하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빠를 이제 천사들이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엄마에게 꿈을 통해 알려 주신 것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2019년 6월 천사의 영접을 받으며 천국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천국에 가셨다고 확신하시며, 장례식 이후로 광양교회에 출석하시며 “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엄마를 구원하시려고 그런 꿈을 꾸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선하신 계획과 은혜는 측량할 길 없도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저의 마음을 지속해서 힘들게 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저는 하나님 외에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연약한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런 나를 사랑하실까?” 라는 의문 속에 한국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2018년도 처음 갔던 이스라엘 여행의 감동이 생각나, 가족들을 설득하여 2019년 12월 꿈에도 그리던 이스라엘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저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베들레헴, 헤브론, 벧엘, 실로, 그리심산 국립공원, 갈릴리, 가버나움, 최북단 텔단을 거쳐 네게브 사막 지역인 브엘세바와 최남단 에일랏 및 텔아비브까지 2주간 여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토요일에 대중교통을 운행하지 않아서 베들레헴 갈 때에 아랍인 버스를 이용하였습니다. 현재도 안식일을 지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텔단 지역의 풍부한 물과 키 큰 나무를 보면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주시겠다” 라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지금도 유월절이면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산에서 구약성경대로 양을 잡아 제사 지내는 의식을 행하고 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년 3~4월이면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많은 순례객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 되심과 더 이상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음을 저에게 다시금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중남부 지역과 네게브 사막은 렌터카로 이동하였는데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막을 지나는 저희를 길 잃지 않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여행 중에 순간순간 지켜주시고, 성지마다 큰 은혜와 감동을 베풀어 주셨고, 성경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정말로 그런 것 같아요, 로마서의 사도바울의 고백이 이스라엘 성지순례 후 확신 있게 깨달은 저의 간증이요, 고백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중략)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아멘, 할렐루야!

  • [성도간증]내게도 이런날이(아이가 성령을 받다)

    할렐루야! 저는 5학년,2학년 그리고 글을 쓰는 2023년 8월 현재 7개월 된 아이까지 삼 형제를 키우는 김정남자매 입니다. 둘째아이의 성령 받은 날의 감동과 기쁨을 나누고자 부족하지만 글을 남깁니다.

    2023년 8월,  아동부 여름성경학교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1박 2일 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이 행사를 위해 준비한 선생님들의 수고와 노력,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시는 많은 손길이 있음을 알기에 그 날도 식사봉사 라는 명목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제일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먼저 일하는 다른 자매들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주방에 들어가는 순간 “언니! 서진이가 성령 감동이 있대” 라는 말은 마치 남 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무엇보다 식사봉사가 중요했고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이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슴 한켠이 두근대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전 날 저녁 어린 막내와의 씨름에 눈꺼풀이 저절로 감길 만큼 몸은 피곤했지만 자매들과 함께 즐겁게 식사준비를 마쳤을 즈음 주방에 울려퍼진 “서진이 성령받았어요!”라는 한 아이의 소리에 다리가 속절 없이 풀렸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속에서 머릿속에서 목자님 선언이 있을때까지는..되뇌이던 제가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멋쩍게 식당으로 올라오는 아이를 보자 기특했고 신기했고 성령 받은 아이보다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주체 없이 흐르는 눈물에 남은 식사봉사도 제대로 못 해 이 글을 빌어 함께한 자매들에게 미안한 마음 전합니다. 

    아이의 수령은 저희 부부에게 기쁨도 크지만 그만큼 부담도 따랐습니다. 아이가 더욱 주 안에서 바르고 지혜로운 청년이 될 수 있도록 양육의 책임이 더 크게 느껴지고 늘 먼저이던 첫째아이의 마음이 어떨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같은 아동반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지 몰라 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다만 아이의 수령 소식에  저를 꼭 안아준 자매들을 기억하면 이렇게 마음 따뜻한 부모를 둔 자녀들이기에 서진이의 수령이 다른 아이들에게 더욱 좋은 영향으로 미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엇보다 막내 핑계로 말씀과 기도 생활에 점점 멀어지던 저희 가정에 당근과 같은 성령을 주신 하나님 덕분에 다시금 신앙을 고쳐매는 중인 우서도가정, 이렇게 간증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7:7~8)

    늦은비 성령으로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 돌립니다.아멘

  • [성도 간증]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나이다(수원교회 유*춘 집사)

    [성도 간증]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나이다(수원교회 유*춘 집사)

    할렐루야!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예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나의 첫 신앙 지인 남원교회는 성 춘향과 이 도령의 이야기가 있는 광한루 옆을 흐르는 요천을 가로지른 다리 건너 동부 노암동이었다.

    요천 옆 산에는 일제 강점기의 신사를 원불교에서 교당으로 쓰고 있었는데 건물 앞 넓은 공터에서 동네 아이들과 놀면서 가끔 집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중학생 때는 장로교회에 다니다 중3 때 그냥 지나치기만 했던 남원교회에 발을 들였다.

    당시 허야곱 목자님이 계셨는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철없는 학생들을 보듬어 주시고 신앙인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시려고 애쓰셨는데-

    영은 전도대회를 앞두고 새벽에 인근 산에서 모기에게 물려가며 기도했던 일, 여름에는 지리산 자락에서 일박하며 기도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당시 특별한 놀 거리가 없는 우리 들은 학교에서 오면 교회로 모여 지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아동반 주보, 전도지 등을 등사기로 밀어 만들면서 재미있게 보냈던 것 같다.

    이제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순수한 마음이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다면 아마도 그때 형성되었기 때문이리라.

    몇 년 후 야곱 목자님 후임으로 오신 이 빌립 목자님은 청년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가까이하는 분이셨다.

    70년대 말, 청년들이 주축이 된 신앙모임 ‘밑거름’ 회가 조직되고 활동 중 하나로 교회당 이전이 논의되고 결정되었다.

    현재의 남원교회는 성도 한 분이 부지를 헌납하고 모든 성도의 건축헌금과 기도와 땀으로 세워졌다.

    직장이나 학업으로 외지에 있던 형제자매들이 휴일에 내려오면 인근 요천 냇가에서 교회 건축자재로 쓰일 돌들을 리어카로 실어 나르곤 했다.

    모래는 신기하게도 교회 건축 터에서 나와 충당되었다.

    1981년에 교회당에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랫동안 기다렸던 발령 소식을 받아 춘천으로 가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듬해에 허*숙 자매와 결혼하여 믿음의 가정을 꾸렸다. 교회와 멀리 떨어져 있어 예배에 참석할 수 없으니 안식일에도 가정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식을 접한 동부교회에서 우리 가정이 춘천을 떠나 수원으로 올 때까지 한 달에 한 번은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목자님들, 성도님들이 심방을 오셨다.

    당시에는 교회에 차가 없어 청량리에서 기차를 이용해 오셨으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지금은 소천하신 오충도 목자님은 아이들을 무척 귀여워해 주셨고, 소천하신 한마리아 집사님은 항상 동행하는 수고를 하셨다.

    우리 가정은 춘천에도 집회소가 세워지기를 소원했으나 이루지 못하고 수원으로 오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진 못했지만, 오늘날까지 함께 해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 살게 하셨다.

    되돌아보면 나의 발이 미끄러져 수렁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붙잡아 주셨다.

    하나님의 베푸신 모든 은혜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