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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메시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눅15:11~24)

    [복음메시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눅15:11~24)

    제목 :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본문 : 눅15:11~24

    “되찾은 아들의 비유” 에 나오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여기 나오는 아버지는 하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지 생각해 봅시다.

    1. 세상으로 떠나는 아들에 대한 슬픈 마음
    (11~12) 재산의 상속이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선 둘째 아들이 먼저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며,
    목적이 선하지 않습니다. 이 재산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마음껏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왜 이 아들을 혼내지 않고 아들의 요구를 받아주었을까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비유들의 공통점은, “사랑”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크기 때문에, 그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아들의 선택을 허용해주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볼 수 있듯, 하나님을 떠난 삶은 비참한 삶입니다.

    2. 아들을 긍휼히 여기며 기다리는 마음
    (17)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살다가 결국 후회하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습니다.
    (18~19) 아들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고 있습니다.
    (20)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아들을 외면하고 혼내는 모습이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언제 돌아올까 매일같이 기다렸으며,
    불쌍히 여기고 사랑으로 맞이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창3:21) (사30:18) 우리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기를 꺼려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죄인으로써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올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선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마침내 돌아온 아들에 대해 크게 기뻐하는 마음
    (21~23) 아들은 스스로를 책망했으나, 아버지는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습니다.
    더 나아가 많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24) 죽었다고 생각한 아들이 오히려 이제는 살아 돌아왔다고 여기며 즐거워 하였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사람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소멸’ 이 아니라 ‘분리’ 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분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죽음이며,
    고통받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32) 오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죄인이 회복되었을 때
    가장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스스로 돌아 보았을때,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고 연약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기다리고 계시며
    돌아왔을 때 기쁨으로 맞이해주심을 알아야겠습니다.

     

    설교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YExQW55xDAY

  • [복음메시지] 은혜의 자리로 나아 갑시다 (히브리서 4:14~16)

    [복음메시지] 은혜의 자리로 나아 갑시다 (히브리서 4:14~16)

     

    제목 : 은혜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본문 : 히4:14~16

     

    1.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이 되신 분입니다.

    (14) 제사장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레위기 16:23~24)

    우리는 죄를 지으면 죽어야 하는데, 구약시대엔 대신 죽을 제물을 바치므로써

    대속의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이 제사를 담당하는 것이 제사장이며, 대제사장은 중요한 역할을 해야합니다.

    (롬5:12) 죄의 결과인 사망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몸으로 오셨고,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보혈로 인하여 우리는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거룩한 신분을 갖게 된 것입니다.

    (히4:14) 사실 우리가 죽어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통이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똑같은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속죄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흠없는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따라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흠이 없는 죄가 없는 완전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만약 이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없어질 이 세상에서 소망 없이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15)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의 여정을 계속 해나갈 때 꽃길만 걷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긍휼히 여겨주시며

    도와주시는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고난과 시련을 다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가 겪는 고통을 얼마나 위로해줄 수 있을까요?

    아마 제한적일겁니다.

    왜냐면 내가 같은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완전히 이해해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선 이미 세상에서 가장 큰 고난과 시련을 겪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완전히 이해하실 수 있고, 우리는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히2:18) 하나님께선 말씀을 통하여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예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16)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예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겠지?

    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 은혜를 온전히 받기 위해선 그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와 만나기 위하여 늘 만남의 장소를 마련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성막을 만들게 하셨고, 은혜의 장소로 나아오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도우심을 입고자

    은혜의 자리로 힘써 나아와야 합니다.

    (롬8:26~28)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함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히4:12) 또한 말씀을 가까이 하여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히10:23~25) 또한 예배의 자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이유와 상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을 지켜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배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kVc06s1mdkc

     

     

  • [복음메시지]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행1:12~26)

    [복음메시지]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행1:12~26)

    제목 :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들
    본문 : 행1:12~26

    성경의 각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적절하게 일꾼들을 사용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홍수의 시대엔 노아, 정복의 시대엔 여호수아 등.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요?

    지금은 늦은비 성령의 시대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일꾼들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기도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기도하며 약속의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이때 기도하기 위해 모인 숫자는 120명 이었습니다. 120명이라는 숫자는,
    예수님께서 3년 넘게 복음을 전하신 결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예루살렘의 평상시 인구는 약 5만명 정도 됐다고 합니다.
    또한 절기를 지키기 위해 모였을 땐 약 30만명 정도 됐다고 하죠.
    120명이라는 숫자는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숫자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작 할 때의 물리적 숫자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에 전념해야 합니다.
    이때 제자들은 10일동안 오롯이 기도에 힘썼고, 그 결과 약속의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이후에도 우리는 기도에 힘써, 하나님의 능력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성결함을 지키며 준비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설교의 한 부분은 가룟 유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제자였지만,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은 것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을 때, 비웃음 거리가 될 수도 있는 부끄러운 이야기 입니다.
    가룟 유다는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요?
    (요12:6) 하나님의 돈 까지도 탐하는 가룟유다의 평소 행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세상의 가치를 더 사랑하셨던 가룟유다는 결국 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써 성결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자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를 쫓아 가는 삶을 계속해서 살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지 못하고 죄를 짓게 됩니다.
    우리의 잘못된 과거가 떠오를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의 죄를 자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딤후2:20~22)

    3. 일꾼을 세워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을 쫓아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치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변하는 존재입니다. 충성된 제자여도 어느순간 세상을 향해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분 자체는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변하여도,
    그 직분은 계속해서 누군가가 감당해야 합니다.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성경에 따라 맛디아를 선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사바와 맛디아를 후보자로 올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택함을 구합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가 세워지게 됐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때를 준비하며 이렇게 일꾼을 세워나가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준비된 사람을 통해 이뤄집니다.

    <결론>
    예수님의 제자들은 3가지의 모습으로 성령의 시대를 준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성도들은 성령을 간구해야 겠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성령 충만함을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성결을 지키며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뤄지도록 준비해야합니다.

     

    말씀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TFMXqZF6dcg

  • [복음메시지] 동행하시는 예수님 (눅24:13~35)

    [복음메시지] 동행하시는 예수님 (눅24:13~35)

    동행하시는 예수님

    제목 : 동행하시는 예수님

    성경 : 눅24:13~35

     

     믿음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다는 것은 믿음 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믿음 생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제자와 함께 걸어가셨고, 두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24:16)

    성경에선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앞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눈이 가리워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13:13)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가 어찌 예수님의 축복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눈이 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들의 눈을 가리게 한 것일까요?

     

    1. 미련하여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라사대 미렪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24:25)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도 나와 있고, 분명히 보여주고 계십니다.

    또한 부활하신 이후엔,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닫지도, 알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그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만 보였던 것입니다.

     

    2. 더디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1:19)

    하나님의 말씀은 속히 듣고, 속히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디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앞에 계심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뵙기 위해선,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올바른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것에서 시작합니다.

     

    2) 예수님을 강권하여 예수님을 모셨습니다.

    예수님을 강권하여 모셔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할 때엔 이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와 함께 거하시길 강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 되심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마치 많은 무리들 속에서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소리 질렀던 것처럼 말입니다.

     

    3) 예수님께서 축사의 떡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보는 것은, 우리의 능력만으론 안 됩니다.

    예수님의 축복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성찬은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일입니다.

    우리에겐 실로 너무나 큰 은혜입니다.

    성찬을 할 때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라”

    (눅24:31)

     

    예수님인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예수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경험을 했던 제자들은 그 즉시 다른 제자들을 찾아 떠났습니다.

    이미 제자들에게 도착했을 땐,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오늘날 부활하신 예수님은 직접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 교회는 참예수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전하는 우리가 돼야 합니다.

  • [복음 메시지] 이것까지 참으라 (눅22:47~53)

    [복음 메시지] 이것까지 참으라 (눅22:47~53)

    제목 : 이것까지 참으라

    본문 : 누가복음 22장 47 ~ 53 절

     

    세상에서 나의 신앙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연약한 우리 인간은, 그것을 잊고  마귀에게 미혹 당하곤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키는 일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미혹합니다.

     

    누가복음 22장 49~50절 말씀을 보면,

    무장을 한 이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옵니다. 이에 한 제자는 예수님께 다급히 묻습니다.

    “주님! 우리가 검으로 저 사람을 칠까요?”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이 있기도 전에 그 제자는 검으로 군사의 귀를 쳤습니다.

    당연히 그 제자는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악인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우리의 신앙을 해하고자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계십니다.

    “이것까지 참으라!” (눅22:51)

    너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어도 참아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참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잡으러 온 군인을 치료해주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태복음 26장 52절)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힘과 권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악행에 대하여 힘으로 보복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마음에 미움이 가득해질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악한 마음으로 채워지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성도들입니다.

    모든 상황속에서 우리는 인내할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일지라도

    그것까지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내하는 힘에서 우리는 신앙이 점점 더 성숙해져 갈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키고 감정이 악해지도록 미혹합니다.

    그리고 늘 우리 마음에 보복의 마음을 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린 참을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실천해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한 마음을 해결해주시고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17~21)

     

    예수님을 잡으러 온 이들은 마치 강도를 잡으러 오는것과 같이 온갖 무장을 하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강도인가요? 그들의 마음엔 악한 마음이 충만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낮이 아닌 밤에 찾아왔습니다.

    악행은 음지 즉, 어두운 곳에서 벌어집니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늘 밝은 곳에서 거하고자 해야 합니다. 선행을 행함으로 빛을 내시기 바랍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계 13:8~10)

     

    성도 여러분!

    말세엔 우리가 인내해야 하는 상황들이 더 많아집니다. 우리는 인내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간구하십시오.

    주님! 우리 성도들이 모든 상황에서 인내하고 참고 견딜 수 있도록 지켜주시길 원합니다.

     

    말씀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NJ57uLYylCE

  • [복음 메세지] 과부의 두 렙돈 (눅 21:1~4)

    [복음 메세지] 과부의 두 렙돈 (눅 21:1~4)

    제목 : 과부의 두 렙돈
    누가복음 21:1~4

    옛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어리석고 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해도, 그들은 늘 예수님을 죽일 생각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며 안타까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시며 다시 마음을 돌이킬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에수님을 걱정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에,

    예수님을 감동시킨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그 여인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격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왜 과부를 칭찬하셨을까요?

    오늘은 그 이유를 알아보고 우리 모두 그 모습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한 과부가 헌금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눅 21:1~2)

    헌금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받은 은혜를 재물로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겁니다.

     

    가난한 과부가 아주 적은 금액의 헌금을 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헌금하는 모습과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그 금액이 크든 작든 하나님께선 항상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옛날의 과부는 오늘날의 과부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의 과부는 절대로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입이 전혀 없는 신분이었습니다.

    따라서 굉장히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부가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돈의 단위인 렙돈은 ‘가장 적은 단위의 돈’ 입니다.

    이 시대에는 한 렙돈을 절대로 헌금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가작 작은 단위의 돈이기 때문에 헌금으로써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한 렙돈이 아닌, 두 렙돈을 헌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자도 헌금을 하고, 가난한 과부도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가요?

    ‘가난한 과부가 많은 헌금을 하였다’ 고 말씀하셨다.

     

    (3) 심지어 이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모든 사람들 보다도 많이 헌금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일반적인 생각을 해본다면 상식적이지 않은 말이다. 받은 만큼 돌려드리는 것이다.

    가난한 과부는 받은 은혜가 적기에 적은 금액을 헌금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을 잘못 생각하면,

    “아!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만 좋아 하시는 구나” 라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의 적은 헌금을 칭찬 하셨을까?

     

    지금의 가치로 환산해본다면, 이 가난한 과부는 약 1달러가 되지 않는 금액을 헌금한 것이다.

    그런데 왜 칭찬을 받은 것일까?

     

    (4) 예수님께선 두 가지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다른이들은 풍족한 상황에서 헌금을 했고,

    가난한 과부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헌금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부가 생활하기에도 부족한 상황속에서,

    예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린 것입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바로 그녀의 믿음이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예수님께 복을 구하면 구했지 자신의 전부를 드릴 생각은 못할 것입니다.

    그만큼 그녀는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주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믿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모든 상황을 인도하십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도 과부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에 엘리사와 과부가 등장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의 공급이 중단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엘리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의 땅으로 가라” 그리고 엘리사는 그곳에서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엘리사는 그 과부에게 먹을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 과부는 자기와 자기 아들이 먹을 것 밖에 남지 않았고,

    그것을 먹고 이제 삶을 끝내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하나님을 믿고 자신에게 그 음식을 줄 것을 권했습니다.

    과부는 믿음으로 그렇게 행동했고,

    놀랍게도 그 과부와 자식들이 여러날을 먹을 음식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여러분은 시간이 남아서 교회에 오십니까? 돈이 남아서 하나님께 헌금을 하십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어떤것이 중요한지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속에서 중요한 시간을 내어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려움 속에 있을수록,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때로 적은 능력과, 적은 축복을 주실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를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예수님의 큰 뜻이 있는 것이며, 큰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때마다 믿음으로 신앙생활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정 하실 때, 세상에서 보는 능력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자도 아니었고, 지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고,

    능력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믿음”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셨을때 모든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자세로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스스로 똑똑하고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것을 예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부족한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당시 어리석은 바리새인들에게 큰 충격과 가르침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과부는 “전부”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일부”를 헌금했고, 과부는 “전부를” 헌금했습니다.

    즉, 이것은 최선을 다했는가? 나의 온 마음을 하나님꼐 드렸는가? 를 보고 계신 것입니다.

    과부에게 2개의 동전은 하루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돈이었습니다.

    자신의 하루, 자신의 삶을 전부 드린 것입니다.

    여기 계신 성도님들은 하나님 앞에 “일부” 를 바치고 있나요? 아니면 “전부”를 바치고 있나요?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합니다.

    부자들은 자신의 돈과 명예에 집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가난한 과부처럼 예수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갈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손가락질 합니다.

    “저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하다니!, 저것은 낭비다” 라고 말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일까요?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을 바라볼 때 결과를 봅니다.

    잘 했는가? 결과물이 훌륭한가? 완벽했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예배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rizeF92ahE

  • [복음메시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 (누가복음 18:15~17)

    [복음메시지]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 (누가복음 18:15~17)

    [말씀 제목]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 (누가복음 18:15~17)

    [설교자] 전홍희 목자

    [설교일] 2024년 2월 17일 안식일 오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보여주십니다.

    스스로 잘난체 하고,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에겐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선 제자들에게 “과부처럼 기도하라”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

    “겸손하게 기도하라” 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눅18: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당시 이스라엘엔 유명한 랍비들에게 자녀들을 데려가 축복기도를 요청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대에 유명한 랍비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께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런 이들을 꾸짖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이들이 모이면 시끄럽고 정신이 없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예수님께

    닥치지 않도록 사람들을 꾸짖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행동이었을 뿐입니다.

     

    (눅18: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오늘 본문에 나오는 “어린아이”는 7세 미만의 아이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보다 지식도 많고,

    가진것도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가진것이 많을 수록 예수님을 가까이 두기 어렵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것들이 예수님을 가까이 하는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선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하셨습니다.

    7세 이하의 어린이들 보십시오. 이 아이들은 온전히 자기 부모님께 의지합니다. 그리고 매순간 부모님만 찾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 하지요.

    우리도 이런 아이들처럼 예수님을 항상 의지하고 바라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아이 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받느는 것” 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 3가지 의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1.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창12:1~4)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땅으로 가라는 말씀에 주저함 없이 순종하였습니다.

    전혀 모르는 땅임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모든 식구를 데리고 이사를 갔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그 미음이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아주 단순합니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그렇지만 신앙안에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나의 걱정과 나의 생각이 첨가됩니다.

    성도님들은 천국이 있다고 믿으십니까? 천국은 분명히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마음과 같이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2.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민수기14:6~8)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방인들의 모습을 보고 전혀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정탐꾼들은 겁을 먹고 말았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이 말씀을 순수하게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생각으로는 이 모든 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불가능한 일이 있을까요?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히, 온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베드로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유능한 어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베드로에게,

    아무런 어업관련 경험이 없는 예수님께서 깊은곳에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깊은곳에 가서 그물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예수님의 은혜와 축복은 순수한 믿음을 가진 자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천국이 가까이 있는 것을 믿습니다.

     

    3.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라 (요3:5~6, 9~10)

    본문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당시 최고의회인 산헤드린의 의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꾸짖었을 때, 니고데모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높은 직책에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떠나 산다면 낙오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말씀처럼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져서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공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말씀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viUbGkdFJ6A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경건(약1:21~27)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경건(약1:21~27)

    참예수교회 수원교회 안식일 예배

    일시 : 2018. 7. 14. 

    장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매송고색로533번길 7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363

    설교자 : 이엘리사 목자

    제목 :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참 경건(약1:21~27)

    주제성구 : 야고보서 1장 21~27절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 버리거니와
    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 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 믿음의 시험에 대한 자세 (약1:16~21)

    믿음의 시험에 대한 자세 (약1:16~21)

    참예수교회 수원교회 안식일 예배

    일시 : 2018. 7. 7. 

    장소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매송고색로533번길 7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363

    설교자 : 이엘리사 목자

    제목 : 믿음의 시험에 대한 자세

    주제성구 : 야고보서 1장 16~21절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말라
    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