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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세지] 우리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에 (창 13:5-13)

    [복음 메세지] 우리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에 (창 13:5-13)

    [말씀제목] 우리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에 (창세기 13장 5-13절)

    [설교자] 유바나바 목자

    [설교일] 2022년 7월 2일(토) 안실일 오전예배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 네 앞에 온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 화평함과 거룩함에 힘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12:1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인간의 연약함으로 때론 우리의 삶, 가정, 직장 심지어 신앙공동체에서도 여러 갈등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본문에서 아브람의 종들과 롯의 종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들의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창13:6)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그 소유가 많아서… 다시 말해서 그들은 물질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런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1.  갈등보다도 더 중요한 가치에 초첨을 맞춰야합니다.

    갈등만을 바라보는 것보다 갈등을 넘어선 가치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브람은 어떤 가치를 발견했을까요?

    1)돈보다 골육이 더 중요합니다.

    (창 13: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아브람은 조카 롯과 어떤 관계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다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한 아버지를 둔 형제 관계입니다. 형제 관계를 보전할 수 있도록 믿음의 가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갈등의 현장에 주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창 13: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다툼의 현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교회와 성도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2.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반대로 비현실적인 대안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입니다. 모든 갈등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갈등에 있어서 각자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갈등의 상황에서 아브람이 선택한 방법은 ‘양보하는 것’ 이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갈등을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불화가 생겼을 때, 예수님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어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희생의 방법입니다.

    3. 믿음에 근거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아브람의 선택과 롯의 선택을 비교해볼까요?

    롯의 선택: 눈에 보기 좋은 것

    (창 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아브람의 선택: 산지로서 양을 키우기에 어려운 곳

    (창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하나님께서는 땅을 선택하지 않은 아브람에게 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 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갈등이 생겼을 때 갈등만을 생각하지 않고 믿음으로 바라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유투브 예배 링크

    글쓴이: 서경희

  • [복음메시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롬 1:16)

    [말씀제목]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롬 1:16)

    [설교자] 정호민 전도자

    [설교일] 2022년 4월 1일 (금) 안식일 저녁 예배

     

    [본문말씀 : 롬 1 :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자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입었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소식입니다.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있지만, 처음 예수님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실 때,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모세와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만났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자라신 나사렛은 갈릴리 중에서도 정말 별 볼 일 없는, 작고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게다가 당시 ‘예수’란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고, 아버지는 평범한 목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참된 구세주로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우리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해줄 정치적인 구원자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죽음으로 내몰았고, 주의 제자들과 교회까지 핍박합니다. 이때 사도 바울도 교회를 핍박하는 자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만나 회심했고, 예수를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를 전하는 자로 변화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 한 사람이 변한다고 해서 사회의 관념까지 모두 바뀌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던 때 사회의 관념은 어땠을까요? 당시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멸시하고 사도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은 비천한 모습으로 복음을 증거했다고 표현합니다(고전4:10-13).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복음을 위하여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분명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어떻게 여기고 있나요? 혹시 복음을, 복음 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진 않았나요? 하지만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당당히 외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을까요? 왜 복음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면서 담대히 나아갔을까요?

     

    (롬1:16) …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

    복음에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원은 어떤 의미의 구원일까요?

     

    (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바로 죄로부터 건져주시는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은 왜 죄에 속하게 되었을까요?

     

    (롬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성경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가 그의 자손인 모든 사람에게 전가된 것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대가는 사망입니다. 그래서 죄인 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육신의 사망이 끝이 아닙니다. 사람의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십니다(전 12:14).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의인은 영생에, 악인은 영별에 들어갑니다(마 25:4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영생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저 착하게 살기만 하면 의인으로 인정받고 구원 얻을 수 있는 걸까요?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지만 이미 죄인인 사람은 어떤 노력으로도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떻게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실까요?

     

    (히9: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림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은 우리가 부끄러워할 소식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며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얻는 기쁜 소식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심으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과 같은 이방인까지, 즉 모든 믿는 사람이 복음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딤전 2:4).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사람입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라옵기는 우리에게 복음이 부끄러운 소식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이 되길 원합니다. 이 복음에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능력이 있음을 믿고, 모든 사람에게 기쁨으로 전하는 우리 되길 이 시간 간절히 소망합니다.

     

    글쓴이  :  황채연

  • 코로나 시대, 전주교회 학생부

    코로나 시대, 전주교회 학생부

    2020년 2월 마지막 주부터 급격한 코로나 확산으로 갑작스럽게 예배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코로나 종식을 기다리기에는 아이들의 신앙생활을 이어나가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든 예배가 이루어져야한다는 마음으로 온라인 예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밴드 라이브를 통해 말씀예배를 진행하고 줌을 통해 분반예배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밴드로 이루어지는 말씀시간에 아이들과 소통이 안되고 아이들이 잘 듣고 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여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게 되었고 말씀예배 또한 줌으로 진행하여 그러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하시는 분들이 아이들에게 질문할 수도 있고 함께 성경을 읽을 수도 있었습니다. 찬양예배도 함께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아이들을 볼 수 있고, 아이들도 서로를 볼 수 있었기에 좀 더 태도와 자세를 바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집합금지명령이 떨어진 상황에서 이렇게라도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말씀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또한, 금요일 예배 후 이루어지던 교사회의를 줌을 통해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럽게 맞게 된 코로나로 인해 아무런 대책이 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집합금지로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레 교사회의도 못하게 되고 단톡방 공지로만 소통했었습니다. 그러한 채로 몇 달이 지나자 학생들의 변화를 교사들이 느끼기 시작했고 이렇게 손 놓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이루어지던 것들을 코로나 때문에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제 이 상황에 맞추어 변화하여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먼저 교사회의를 줌으로 시작하였고 그 전에 이루어지던 심방을 어떻게 대체할지 고민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학생부 사역에 활력이 붙었고 지금은 여러 가지 안전한 방법으로 아이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아이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비대면예배를 함께 하면 할수록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줌’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적응해가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 어려움과 문제점들도 존재했습니다. 학생 관리가 어렵고 연락이 안되면 예배참석을 독려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이들과 아이들 사이, 아이들과 교사들 사이가 어색해지고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줌으로 이루어지는 분반은 활동방법이 제한적이었고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고, 혼자 방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여 깊은 묵상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나태해지고 편하게 집에서 예배드리는 것에 길들어감을 느낀다고 고백했습니다. 교회에 나가지 못하니 안식일이 안식일 같지 않다며 교회가면 안되냐고 묻는 아이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예전에는 당연해서 잘 몰랐던 안식일에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 친구들과의 교제와 나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이 문제를 두고 함께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지금 전주교회는 5월 15일 이후로 대면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거리두기를 하고 마스크를 모두 착용하며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예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소모임이 금지라 대예배당에서 반끼리 흩어져서 분반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교회에 나올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좋아하지만 한 편으로는 아직까지 어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면예배가 회복되었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색함도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저희 학생부와 교사들을 돌아보시고 지켜주시며 이렇게 다시 안식일에 모일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하나님의 도우심과 나의 노력- 드러냄과 조심, 구별

    하나님의 도우심과 나의 노력- 드러냄과 조심, 구별

    사회 초년생의 시각에서

    전주교회 이정규

     

    할렐루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부족하고 보잘 것 없는 저를 택하여 불러주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시고 또 오늘날까지 제 연약함을 보듬어주시고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에 대한 주제로 간증을 부탁 받았을 때 사회에서 저보다 더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으며 신앙생활의 모범이 되시는 많은 분들이 계시는데 제가 감히 어떤 간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제 신앙과 별개로 제 삶 속에서 보호해주시고 붙들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첫째로 사회생활 중에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둘째로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온 것,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간증하겠습니다.

     

    현재 저는 18년도 하반기에 건설업 관련 공기업에 취업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회사에 합격하고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어린 마음에 앞으로의 삶에는 장밋빛만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에서 전공했던 과에서는 더 나은 곳을 찾기 힘들만한 좋은 직장이었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허락하셔서 비교적 어린 나이에 취업했기에 이제는 크게 힘들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제가 처음 마주한 세상은 가혹했습니다. 첫 발령지에서 만난 선배는 저와는 서른 살 차이가 나는데다 회사 내에서 직속 후배를 괴롭히기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아래에서 일하면서 하루에 2~3시간 이상 욕설이 담긴 폭언과 인격모독의 말을 들으며 견뎌야 했습니다. 괴롭힘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 신앙이었습니다. 독실한 장로교회 신자였던 그 선배는 어느 날 저와 대화를 하던 중에 제가 안식일에 예배하는 것과 세례와 성령을 통한 구원에 대한 제 믿음을 듣자 사이비, 이단이라 말하며 격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 이후로 괴롭힘의 강도는 더욱 심해져 주변의 동료들조차 제가 혹시나 나쁜 생각 즉, 자살이나 남을 해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걱정하며 정신과 진료를 권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가 한순간도 절망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면 나쁜 마음을 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손을 내밀어 붙들어 주셨습니다. 제 첫 발령지는 천안이었습니다. 회사와 가까운 거리에 교회를 예비해주신 덕분에 매주 수요일마다 천안교회의 저녁예배에 참예하고 또 천안교회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의 관심으로 주중의 괴로운 일들에 대한 위로를 받곤 하였습니다. 그중 한 집사님은 가정에서 구역예배도 참예하게 하시고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저를 마치 조카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그 위로에 남몰래 눈물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렇게 위로 속에서 일 년을 견디고 난 후 하나님께서는 저를 장항으로 그 다음은 지금의 대전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인도하심이 놀랍고 신비할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저를 항상 교회가 가까이에 있는 곳으로만 보내셨습니다. 보내신 그 곳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회사에서의 노력도 인정받아 작은 표창을 받기까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저를 교만하지 않게 해주셨고, 제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할 때 분명히 함께하시어 도우실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는 입사 후 지금까지 제 모든 삶 속에서 함께하시고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하지만 모든 순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제가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할 부분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하여 많이 부족하지만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제가 노력했던 것들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첫째, 하나님 믿는 신앙을 드러내는 것에 주저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과거의 저에겐 하나님 믿는 신앙을 드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말씀대로 살고자할 때 공격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들도 있었지만 낙담할 만큼 힘든 순간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기의 사건들을 통해 그동안의 핍박과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되며 처음으로 제가 참교회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힘겨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살후1:4-5)”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위의 구절들은 제가 믿는 참된 진리로 인하여 세상에서 괴로울 때 묵상했던 구절입니다. 세상은 악하여 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모습을 보면 견디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괴롭힘은 단순히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는 공의로운 심판의 표라는 말씀을 통해 제게 주신 힘든 순간들과 기간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또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그 바른 심지를 견고히 지키는 자를 하나님은 평강에 평강으로 지켜주심은 글로만 적혀진 기록이 아니라 오늘 제 삶 속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통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부터 어디에서든 참교회에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제가 드러낸 신앙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사회에서 생활하다보니 참 이상하게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본인은 믿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은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남을 도울 줄 알고, 다투지 않는 온유한 성품을 가졌을 것이라는 등 기대하는 부분이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만일 제가 신앙에는 열심이나 회사의 업무나 사회의 책무를 해태하고, 남을 속이고, 화를 참을 줄 모르는 모습들을 보인다면 그들이 저를 욕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가 드러낸 제 신앙, 제 하나님도 욕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첫 발령지에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제 언행이 하나님을 욕보이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하루를 다른 동료보다 한두 시간 먼저 시작함으로 제 업무에 실수가 없도록 부지런히 노력하였고 거짓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았으며 업체들과 협업이 잘 되지 않을 때도 분내지 않으려 참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술 마시기 싫어서 교회 다닌다고 말하는 거 아니냐며 비웃곤 하던 주변 선배들도 점점 제 신앙을 인정해주고 제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번째는 구별되어 살아가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건설업 특성 상 잦은 회식과 술을 강요하는 문화가 자리 잡은 회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을 거부하는 것은 과거 대학에서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식사자리마다 마시지 않는 이유를 물으며 한 잔만 받으라고, 나도 장로교회 집사라며 술을 권하는 상사, 장로들이 술을 더 잘 마신다며 네가 뭐라고 안마시냐며 권하는 상사에게도 끝까지 거절하는 제 모습을 사람들은 밉게 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앞서 신앙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과 마찬가지로 구별되어 살아가지 않는 제 모습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역시 신앙인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다 똑같은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더하는 법이라고 하며 저를 욕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을 모욕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하였고, 그래서 단지 술뿐만 아니라 방탕과 향락을 추구하는 것 등에서 끝까지 구별되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과, 제 모습을 지켜봐온 선배들은 얘는 그냥 말로만 믿는 게 아니다, 좀 다르다고 말하며 처음 만난 사람들이 술을 권할 때 제 대신 막아주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 말씀대로 구별되어 살고자 끝까지 노력하면 하나님이 이렇게도 도우신다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이렇게 제가 지금까지의 짧은 사회생활 중에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나가는 부분을 간증했습니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부족하기에 신앙의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본받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않는 것, 하나님께 받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 삶의 목표와 방향을 굽어짐 없이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하는 것 등 아직 많은 부분에서 배우고 노력해야할 부분이 많습니다만, 배우고 노력하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가르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신앙의 후배들에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증을 마치겠습니다. 샬롬!

     

  • 3년의 은혜, 취업준비생의 시각에서 – 목포교회 김수용 형제

    3년의 은혜, 취업준비생의 시각에서 – 목포교회 김수용 형제

    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간 공부를 하며 취직을 준비했습니다. 그 시간들이 달콤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붙잡고 연단하신 귀한 시간이었기에 글을 통해 그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대학교 4학년에 취직준비의 시작과 동시에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신 일입니다. 그때 제 마음이 어땠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아버지는 큰 숙제였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빚을 안겨주었던 아버지가 야속하고 미웠지만 나의 아버지이기에 실패를 거듭하는 아버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떠나가시자 오랜 시간의 숙제가 끝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 큰 문제들이 저희 가정을 흔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고 엄마는 홀로 가장으로서의 부담감과 외로움 속에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고 위로해드렸다면 참 좋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미 제 마음속에 누군가를 위로할 여유가 없었고 이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하루 빨리 취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며 공부하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정말 괴로웠습니다.

    서서히 저의 마음에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났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따지며 직접 원망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신 하나님께 무릎 꿇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를 붙들어주신 하나님의 첫 방법은 낙방이었습니다. 자격증 실기 시험이었는데 똑같은 시험을 연달아 3번을 떨어뜨리셨습니다. 몰론 공부를 완벽하게 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시험을 거듭하면서 책 어떤 문제를 봐도 문제를 다 읽기 전에 풀이와 답까지 기억이 날 정도로 공부했었기에 60점만 넘으면 되는 그 시험에 떨어진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채점에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달라는 이의신청을 남기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결과는 변함이 없었지만요. 저는 그제서야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실패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을까? 거의 반 년 만에 저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스스로를 의지하였던 나의 미련과 교만을 자복하고 회개하였을 때 마음속에 감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붙잡으신 그 사랑을 생각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은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통해 살아감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깨달음과 감사를 통해 다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기쁜 마음으로 사역을 감당하였다면 좋았겠지만 여전히 저의 마음속에는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공부량을 생각했고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마음과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역들 사이에서의 갈등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을 믿지만 지금 내 할 일도 중요하니까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공부하던 그때에 수험생이라면 더없이 허무한 일이 일어났는데, 제가 준비하던 시험을 없애버리신 것입니다. 코로나가 발생하면서 시험을 일단 연기한다더니 결국 시험은 없어지고 7개월의 공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다한들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이구나! 크신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신데 현실을 바라보고 타협하는 저를 돌아보게 하시기 위하여 저를 다시 한 번 붙잡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 것은 그렇게 깨달음을 얻고 나서 얼마 후에 집사님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교사 사역을 같이 할 수 있겠냐는 연락이었습니다. 제가 어떤 말로 집사님께 대답을 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교사 사역을 하며 공부한 2021년 하반기에 저는 드디어 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3년의 시간은 그 당시 저에게 참 길었고 지금 생각해봐도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달정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3년이 제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은 시험 끝에 이어지는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 타협하지 않는 것. 세상이 말하는 방법과 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우선에 두는 것을 3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을 3년의 은혜라고 생각을 합니다. 깐시에주!

     

    사실 처음에는 조금 망설여졌지만 글을 쓰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끝이 없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취업준비를 하시는 분들, 사회생활을 하며 영적 전쟁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안에 굳건히 세워져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