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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복음 메시지] 히스기야왕의 기도

    제목: 히스기야의 기도(사 37:1~7)

    일시: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예배

    설교자: 장종규 목자

    –히스기야를 통해 본 기도의 참된 자세–

    본문은 남유다의 히스기야 왕 때 아수르 군대가 남유다를 침공했고, 유다의 모든 성을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성의 함락을 앞둔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의 참된 자세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먼저 의지하라(1절)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습니다. 그가 성전으로 간 이유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은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지니라.(약 5:1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즉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기를 맞으면 힘 있는 사람을 찾아가거나 세상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거의 성도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도하라(1절)

    히스기야가 성전에 가서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역대하 7장 11절에 보면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후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이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내가 듣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을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머물러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이 약속을 기억하고 성전에서 기도했고, 성전에 갈 수 없을 때는 성전을 향해 기도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통해 드리는 기도 역시 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곳이기 때문에 귀히 여기시기 때문에 그 교회를 향해 눈과 마음을 두시고, 그곳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겸비하게 기도하라.(1절)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기도하였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경건한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이처럼 겸손한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복종하며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가 기도할 때, 내 뜻이나 내 주장, 내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라.(2절)

    히스기야는 선지자 이사야에게도 기도 부탁을 합니다. 자신도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종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약 5:14)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에게 기도 부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가르치라고 세우신 자들입니다. 사무엘도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했고, 히브리서 13장 말씀에도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들이 결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성도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고, 함께 은혜를 나눌 때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됩니다.

    환난의 이유를 생각해 보라.(3절)

    히스기야가 기도하면서 말합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37:3)

    이 말은 현재 상황을 인정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죄로 인해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가 보는 이 상황은 단순한 위기가 아닌 하나님의 징계로 인한 책벌이라는 인식입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해산할 힘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이 위기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내포합니다. 어떤 위기든지, 어떤 절망이든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하라.(4절)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기도 부탁하며 한 말 중에 하나님께서 랍사게의 말을 들으셨을 것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랍사게는 하나님을 모욕했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향한 모욕이 견딜 수 없었고, 그것이 가장 큰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느냐며 분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더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한다면 두려워하지 말라.(6절)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먼저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곧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설교 링크: 히스기야의 기도(사37:1~7)

     

    글| 최재웅 형제

  • [복음메시지] 변화된 사울 (행9:17~25)

    [복음메시지] 변화된 사울 (행9:17~25)

    1

    제목 : 변화된 사울
    본문 : 행9:17~25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여러분! 여름이 있어야 가을의 풍성한 수확이 있습니다.

    여름의 무더위가 있어야 결실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에도 고난의 시간이 있어야 우리의 신앙이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어야 겠습니다.

    사울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였을까요?

    1. 사울의 몸과 마음이 강건해졌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3. 사울은 자신이 큰 핍박을 받게 됐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는 모습이 있습니다.

    (17~19) 사울이 다메섹 도성에서 눈이 실명되어 3일동안 식음을 전폐하였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의 결과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육신의 상태는 어둠에갇혀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와 같습니다.
    (요한복음 9:39) 보는 자들은 보지 못하게 하시고,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울 역시 지금까지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제대로된 것을 볼 수 있는 상태가 됐습니다.
    사울에게 이제는 제대로된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영적인 눈이 뜨이게 된 것입니다.
    죽었던 나사로를 보며, 사람들은 모든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덤 앞에 서셔서
    “나사로야 나와라” 라고 하니 죽었던 사람도 걸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변화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5:25)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은 반드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변화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이 말씀이 전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해야 합니다.
    한 간증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 형제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지게 되셨습니다.
    MRI검사를 받은 이후, 의사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의미는, 치료가 불가능한 영역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뇌의 1/3이 이미 죽은 상태였습니다.
    이 형제님은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아내가 다니고 있는 인천TJC에 출석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몸이 호전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병원을 다시 찾아가 결과를 보게됐습니다.
    놀랍게도 실제로 호전이 됐습니다. 의사는 다시 한 번 얘기했다고 합니다.
    “환자분!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더욱 잘 믿으세요. 치료가 되었습니다. 기적입니다.”
    그리고 이후로 이 형제님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믿고 있습니다.
    결국 지금은 마라톤까지 할 수 있을정도로 완치됐습니다.
    이후로 이 형제님은 매일 새벽기도를 나오게 됐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이시구나 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간증입니다.

    (20~22) 사울은 은혜를 입은 이후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것이 잘못됐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된 진리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갈1:16) 바울은 생명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다른 사람과 의논하지 않고 진리의 길을 걸은 것입니다.
    사울은 이제 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사울이 전했던 복음은 이러했습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2)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였다.
    간단한것 같지만, 이것은 우리가 전하는 모든것의 핵심입니다.

    사울은 이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3일동안 식음을 전폐한 상태에서 여러 생각과 결론을 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미 핍박하기 위하여 성경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며,
    우리를 구원해주실 유일한 분이시라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울은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변화의 열매를 맺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사는동안 많은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자녀로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역시도 예수님의 말씀의 깨달음에 즉각 반응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23~25) 유대인들은 사울을 살려둬서는 안 되겠다는 공모를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이였는데,
    갑자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이들의 계획을 알아차렸으나 두려워 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실제로 죽는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데에 전력을 다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에는 정말 어려운 일들이 닥치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우리의 진정 해야할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과 깨우치심에 집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말씀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sK597DTtP7s

  • [성도 간증]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신*주 자매)

    [성도 간증]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 (수원교회 신*주 자매)

    (시 139: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 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시 139: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간증합니다.

    저는 이 시간 함께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제목으로 간증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부부는 2015년 6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희수 형제는 그 당시, 직업군인으로 경기도 양주를 첫 복무지로 발령받아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발령받은 후에 동부교회로 교적을 옮겨 한시간을 걸려 지하철을 타고 출석하고 있다고 들었고,

    결혼한 후에는 저도 교적을 옮겨 동부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결혼 전, 저희 둘 모두 각자 항상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다가,

    경기도 양주에서 막히는 서울을 뚫고 한시간을 걸려 교회를 가니 예배드리기도 전에 체력이 방전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6개월 뒤인 12월 초, 신도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5년동안 동부교회에서 비전헌금으로 모았던 금액으로 의정부 교회를 분설한다는 결정이 되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의정부라면 저희 집에서 차로 20분 정도 소요되는 가까운 곳이었기에 저희에게는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인 16년 8월에 의정부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도현이가 딱 100일쯤 되었을 때라 도현이와 생일이 같은 교회가 되어 기억하기도 쉬운 감사한 해였습니다.

    작은 규모의 교회였지만, 너무나 행복하게 사랑 가득 받고,

    연로하신 성도님들의 신앙생활 하시는 모습을 통해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고, 그 곳에서 4년을 보냈습니다.

     

    그 후 저희 가족은 2020년에 희수형제가 군에서 제대를 하고 화성시 병점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군 생활만 해왔던 형제가 자리를 잡는 동안 저희 엄마가 계신 병점에서 지내다가

    저희는 2021년에 동탄2신도시로 이사했습니다.

    그 아파트는 10년을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의 반전세형태로 살 수 있는 신축 아파트였습니다.

    경쟁률이 엄청났는데, 당첨이 되어 설레는 마음만 가지고 입주했습니다.

     

    인프라도 좋았고, 초등학교가 코앞이며, 커다란 호수공원 옆인 아주 좋은 위치의 집이었습니다.

    결혼 후 드디어 지하주차장과 집이 연결되어있는 집이라며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 좋은 그 집은 큰 단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회까지 안막혀서 40분이 걸리는 거리라는 것입니다.

    차를 오래타기 싫어하는 자녀들과 멀미에 취약한 저와 일로 피곤한 희수형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예배 참석하기에 아주 좋지 않은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특히나 저녁예배를 끝나고 집에 가면 10시가 다 되어 굉장히 힘이 들었습니다.

    화요일에 온라인예배를 드릴 때면 도현이가 항상 “오늘 교회가는 날이지?

    그런데 우리는 멀어서 유튜브로 드려야 하는거지?” 라고 말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긍정도 부정도 어떤 말로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영상 수단으로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편리함도 있지만 그 속에서 저의 나태함을 발견하고,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의 교육은 본이 되지 않는 모습이라는 것을 매순간 느꼈습니다.

    2021년 동탄 집에 입주하고 한달쯤 되었을 때,

    저희는 청약에 당첨이 되어 아파트가 지어지는 2년동안을 그 집에 살았습니다.

    그리고나서의 청약으로 이사온 집이 지금의 집입니다.

     

    지금의 집을 잠깐 소개하면, 융건릉 근처 안녕동이라는 곳이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큰 장점은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저희 가족에게는 크게 3가지의 장점이 있는 좋은 집입니다.

    첫째, 초등학교가 코 앞이고, 저희 동이 그마저도 가장 가까워서 등교를 30초면 합니다.

    둘째, 저희 친정 엄마가 같은 동네에 사십니다.

    의도하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는데 항상 자녀들과 가까운 곳이지만

    독립된 공간에서 살고싶어 하시던 엄마의 소망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아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또한 감사합니다.

    셋째, 교회와 15분거리이고 막히지도 않아서 예배 참석이 너무나 편해졌다는 것입니다.

     

    이 아파트는 저희가 많이 알아보지 않고,

    법정 신혼부부기간인 7년 안에 지원해볼 수 있는 마지막 아파트여서 지원했고,

    저희가 가진 청약통장은 정말 당첨되기에 안좋은 조건이었는데 일부 바뀐 정책이 있어 추첨으로 당첨된 곳입니다.

    세상적으로는 가치가 없는 것 같이 보이고 자랑할 것 없는 동네이지만,

    저희는 앞서 말씀드린 세가지 장점이 너무 크기에 살면 살수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주신 집이라는 생각을 하며 감사함으로 살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라는 말이 너무 공감되는 요즘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작은 말투 하나 행동 하나하나 지켜보고 닮아가는 모습은 저를 늘 돌아보게 합니다.

    다현이가 결혼을 앞둔 선규형제 걱정을 하며 제게 말했습니다.

    선규선생님이 대전으로 이사가냐며, 큰 일이라고 참 교회에 있어야 하는데 라며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참교회인 대전교회로 가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세상에 재미난 것이 넘쳐나는 요즘,

    교회에 오는 것을 즐거이 하고 올바른 신앙인의 생각과 행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자녀들의 모습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저희 가정을 이때까지 인도하시고 예배 생활에 소홀해지지 않도록 교회를 늘 가까이 하게 해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간증을 마칩니다.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신앙의 향기] 2025년 수원교회 봄 세례&세족식 영상

    [신앙의 향기] 2025년 수원교회 봄 세례&세족식 영상

    수원교회의 2025년 봄 세례&세족식 영상입니다.

    배경음으로 쓰인 찬송은

    2023년 북부찬양한마당에서 수원교회 전성도가 하나님께 찬양드렸던

    “말씀앞에서” 입니다.

     

  • [교회 행사] 2025년 수원교회 봄 세례&세족식

    [교회 행사] 2025년 수원교회 봄 세례&세족식

    할렐루야!

    수원교회는 하나님의 주관아래

    2025년 봄 세례&세족식을 거행하였습니다.

    날짜 : 2025년 5월 11일 일요일

    장소 : 안양예술공원

    수세자 :

    1. 이병순 (83세)
    2. 최주원(2세)
    3. 김하윤(2세)
    4. 김도하(2세)

     

    이병순 형제님은 수원교회와 가까운 곳에서 20년 넘게 거주했지만

    참예수교회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24년 9월 처음 교회를 방문한 이후 꾸준한 성경공부를 해왔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마침내 세례를 받게 됐습니다.

    최주원, 김하윤, 김도하 세 어린이 모두 부모의 믿음으로 세례를 받게 됐습니다.

    4명의 새생명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참된 기쁨을 누리며 신앙생활 하길 기도합니다.

         

  • [성도소개] 수원교회 이*순 어르신을 소개합니다.

    [성도소개] 수원교회 이*순 어르신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이번 2025년 5월 세례를 받고 거듭나신

    수원교회 이*순 어르신을 소개합니다.

    남*숙 자매님을 통하여 참예수교회에 대해 처음 알게 되셨고,

    2024년 9월 열린예배에 처음으로 교회를 방문하시게 됐습니다.

    처음부터 교회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갖고 계셨고,

    수원교회 전 성도는 이*순 어르신에게 복음이 전해지길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어르신은 12월부터 구도자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하나님에 대하여 조금씩 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갈급함이 생겼고,

    성경 필사까지 하며 성도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2025년 5월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기쁩니다” 라고 외치며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수원교회 근처에 20년 넘게 거주하셨지만

    교회의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님에게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임함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참된 기쁨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하시길 기도합니다.

    월

     

  • [복음메시지]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사도행전 6:8~7:60)

    [복음메시지]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사도행전 6:8~7:60)

    제목 :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

    본문 : 사도행전 6:8~7:60

     

    스데반은 사도교회의 집사(성직자, 교회 일꾼)로 임명되었던 인물입니다.

    (사도행전 6:5) 그는 안수를 받은 이후, 이적기사를 행하였습니다.

    (사도행전 6:8) 바울 역시 사역을 앞둔 디모데에게 안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더욱 큰 은혜를 주셔서 능력과 사랑을 행하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안수는 하나님의 은혜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생각하며 안수를 받아야 합니다.

    (딤후1:6~7) 교회 공동체에서 직분을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을 잘 수행해 낼 때,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이 직분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6:11~12) 스데반은 당시 핍박을 받게 되었는데,

    스데반을 핍박하는 이들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여 스데반이 큰 잘못을 했다고 증언하게 하였습니다.

    그 잘못은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짓 증인과 증언에 의하여 스데반은 궁지에 몰리게 됐습니다.

    그러나 이 악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보니 마치 천사같이 보였습니다.

    (사도행전 6:15)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됐을때,

    불안하고 긴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떳떳하고 당당하고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드러내야 하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하면 부끄러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7:1~53)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가 전파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하시며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스데반을 통하여 유대인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을 완벽하게 하셨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사도행전 7:54, 57~58) 그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고, 분노를 주체 하지 못했습니다.

    큰 소리를 지르고 귀를 막으며 돌로 스데반을 쳤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을 추스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이 악한 모습은 당시 유대인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고 있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죽음을 앞두고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이것은 오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극한의 상황에 처하더라도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장면입니다.

    1. (사도행전 7:55~56)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는 신앙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것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못보는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2. (사도행전 7:60)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죄사함을 주신 것처럼,

    이 악한이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이 임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도 품고 되새겨야 하는 중요한 자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3. (사도행전 7:59)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소망을 품고 살아가야 하며,

    이 세상이 끝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린 어떤 상황에서도 하늘의 소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스데반과 같이 정금같은 믿음과 사랑과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말씀링크]

    https://www.youtube.com/live/uqKxZynEUdg?si=68dTv6o81ASnQ00V

  •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성도 간증]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 김경* 자매님

    고통 가운데 피난처 되신 주님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간증하겠습니다.

    먼저 제 삶에 피난처 되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피난처 되신 주님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위험과 고난 속에서 안전한 도피처로 인도하시는 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에서 어떻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는지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일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에 있는 회사에 취업해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근무하는 곳이 서울 집에서 멀어서 회사 버스로 출퇴근했습니다. 당시 직장생활 13년 차였고, 누구나 그렇듯 저 또한 여느 사람들처럼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회사 버스를 타려면 적어도 6시 이전에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하루 시작이 6시에 집에서 나와 일을 하고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9시가 넘었고 야근도 종종 했는데 그럴 때는 자정을 넘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12시 넘어 집에 들어와서, 잠시 눈을 붙이고 5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했습니다. 삶의 중심이 일터였습니다. 저만 그렇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주변의 동료들도 주중에는 삶의 중심이 직장이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사는 모습이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주하고 쉼 없는 삶에 지칠 때면 ‘남들도 이렇게 사는데….’ 이런 마음으로 근근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바쁜 삶이 당연한 직장 분위기에 휩싸여 잘못된 열심에 대해 스스로 채근하며 더 힘쓰고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되면 아침에 일찍 집을 나서서 예배드리고 맡은 사역을 했고, 성경 공부까지 참석하고 밤이 늦어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요일은 교회 행사에 참여하며 시간을 주로 썼고, 아주 가끔 저를 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머니는 대방교회 저는 동부교회 아버지는 천주교에 다녔기 때문에 가족이 3명뿐이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웠습니다. 점점 이런 생활에 익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삶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내가 바꿀 수도 없고 이런 삶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스스로 채찍질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도 안식일 예배도 빠지지 않고, 주어진 교회 일도 하고 성경도 읽고 있으니 부족하지만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였습니다.

    회사는 점점 제게 더 많은 역할을 요구했고, 그 일을 어떻게든 해내고자 고민하고 달성을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제가 가진 역량이나 리더십으로는 감당이 어려운 일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버텨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동일한 삶이 반복되는데 뭔가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 믿는 자가 감당해야 할 사회생활이 이런 모습이어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이런 삶에 관한 생각과 질문을 한동안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런 삶도 하나님의 은혜인데 더 힘들고 어려운 삶도 많고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불평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삶에 대해 답답하고 풀리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제가 알 수 있도록 길을 보여달라고 지친 하루를 마감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기도 응답은 없었습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때로는 원망이 되어 ‘하나님 이것이 당신이 바라는 삶의 모습인가요?’ 하고 질문도 했지만, 그래도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생각나 낙심된 마음을 삭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한파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새벽이었습니다. 캄캄한 새벽 거리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고, 회사 통근버스를 타기 위해 약 100미터 전, 건널목에 서 있었습니다. 갑자기 불빛이 비쳤고 저는 쓰러졌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운전자는 어두운 길, 저를 보지 못하고, 건널목에서 정지하지 않고 가다가 저는 차량에 치여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저는 차에 치여 의식을 잃었고 119구급차에 실려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드문드문 기억이 있긴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오후 6시 30분이 넘어 있었습니다. 교통사고 후 12시간이 지난 후에야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눈을 떴을 때 어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아무런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제 몸은 일부는 붕대로 싸여 있었고, 눈마저도 붕대에 감겨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차에 치여서 모든 갈비뼈가 골절되었고, 바닥에 쓰러질 때 몸의 왼쪽 부분으로 넘어지면서 왼쪽 어깨는 골절되었고, 왼쪽 광대뼈는 함몰됐고 얼굴의 찢어진 부분은 이미 응급 봉합 수술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회사에 있어야 할 시간에 병원에 누워있다니…. 상황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몸을 크게 다쳤음에도 정신은 온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에 감사드렸습니다.

    저의 뜻밖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은 교회는 저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소속 교회를 떠나 저를 알고 있는 성도님들은 제 건강을 걱정하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성경 말씀을 적은 손 편지를 어머니 편에 전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런 진심 어린 기도와 위로는 저와 가족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친척에게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래서 멀리서도 병문안을 와 주시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며 사람들과 멀어진 관계도 자연스럽게 회복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하신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완고해진 마음과 메마른 정서를 하나님 방식으로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사고로 인해 육체의 아픔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행복했습니다. 사고 전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보여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실망했는데 이 뜻밖의 사고는 저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사랑을 느끼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마음이 평안했고, 오히려 저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고를 허락하셨지만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생각과 마음에 평안함을 주신 하나님께 경외심이 들었습니다.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응답해 주시고, 크신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시는 것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병실에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 37:24)

    교통사고로 심각한 외상을 입어 주변이 많이 놀랐지만,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아주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평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골절된 어깨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느꼈던 저는 의연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전신마취를 하고 4시간 소요되는 수술이었습니다. 저녁 10시에 회복실로 옮겨졌는데 전신마취에서 회복하는 것은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마취 가스를 호흡으로 빼야 하는 갈비뼈가 골절된 상태가 숨을 쉴 때마다 통증과 갈증이 심했지만, 물도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 십자가에 달려 홀로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이 생각났는데 이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겪는 육체의 아픔과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이 몸이 아픈 제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성도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깨 수술을 받고 2주에 후에는 함몰된 왼쪽 광대뼈에 철심을 삽입하는 수술 날짜가 잡혔습니다. 전신마취를 해야 하고 마취 후 깨어났을 때 고통이 커서 무서웠고, 체력도 떨어진 상태고 수술 위치가 시신경 옆이라, 잘못 신경을 건드리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다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문득 저를 친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다시 약해진 것 같아서 수술을 앞두고 불안함에 요동치는 마음을 하나님께 잡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을 받았고 전신마취 회복은 여전히 어려웠지만 회복 속도는 빨랐습니다.

    3주 동안 수술이 끝났지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회사는 병가와 휴직의 인식이 부족했던 터라 특별한 사유 없이 휴가를 줄 수 없었지만, 감사하게도 6개월의 병가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피로했던 일과에서 사고를 통해 저의 몸을 돌볼 수 있었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2차 병원으로 옮겨서 회복에 전념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하루에 수면 시간을 절제하며 살았는데 병원에서 충분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저는 성경도 읽고, 설교도 듣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사고의 고통을 뛰어넘는 제게 주시는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제 몸 관리에 소홀했던 점도 깨달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상황에 핑계를 대며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것을 알게 하시며 이 기간에 제 육체를 돌볼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 육체도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하나님께서 맡기신 몸을 관리할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주중에 저의 바쁜 직장 일과 주말에도 각자의 시간으로 어려웠지만,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부모님의 간호를 받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가족에 소홀했던 제게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아픈 딸을 돌봐 주시는 부모님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36:26)

    바쁘게 돌아가는 일터에서 누군가를 챙기는 여유가 없는 시류에 따라 나도 모르게 마음이 굳어지고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과 대화도 잘 못했는데, 이번 일로 서로를 걱정해 주고 위하는 마음을 다시 갖게 해 주셨습니다. 사고를 통해 이렇게 저의 잘못된 삶의 흐름을 멈추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이 넉넉해져서 그동안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 주어진 휴식 시간 속에서 스스로 세상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삶의 굴레에서 출애굽 시켜 주셨기 때문에 이전과 같은 삶으로 되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에 감사했습니다.

    다시 직장에 돌아가 시간이 흐르면 원하지 않지만, 다시 바쁜 일상에 매몰되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 같아서 복직하는 것이 고민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부서를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원하지 않아도 경쟁하며 빠르게 성과를 달성해야 하는 직장 분위기에 이전 생활이 다시 반복될 것 같아서 그동안 익숙했던 업무나 관계를 내려놓고 새로운 부서로 옮기는 것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타 부서로 옮기는 것도 내가 해 온 업무와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내 능력을 알아봐 줘서 허용하는 그 부서의 승인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예상했지만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했기에 그 과정도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몇 달 있는 동안 교회를 나가지 못했는데, 예배드리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코로나 때 모두 느끼셨겠지만, 안식일 예배에 하나님 전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사역의 기회가 있으면, 감당할 수 있을지 내 상황을 고려해 보고 결정했으나, 하나님과 성도님께 사랑의 빚을 진 것을 저에게는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했습니다. 저를 회복하신 주님이 부족하면 채워주실 것이고, 도와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삶과 생각과 처지를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어려움에 침묵하시는 것 같아 답답했지만,

    하나님께서 온전한 방법으로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비록 교통사고를 겪는 것을 불행이라고 여겨질 수 있으나,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사고를 통해 하나님께서 저의 잘못된 삶의 모습을 깨닫게 해주셨고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심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6개월을 쉬는 것까지 누렸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베드로전서 5장 10절)

    제 삶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아멘

     

  • [성도 소개] 안양교회 조갑* 모친을 소개합니다!

    [성도 소개] 안양교회 조갑* 모친을 소개합니다!

    할렐루야, 안양교회의 조갑 *  모친을 소개합니다!

    1. 전도 과정의 하나님의 인도하심

    올해로 81세가 되신 마리아회 조갑 * 모친을 소개합니다. 한옥 * 자매님의 전도로 교회에 나오신지 벌써 1년 6개월이 되셨습니다. 요양보호사이신 한 자매님이 전에 잠시 돌봐 드렸던 조 모친과 통화가 되면서 전도가 되셨습니다. 원래는 조 모친을 전도하려고 애를 쓰던 친구분이 계셨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셨습니다. 그분 또한 한 자매님이 아시는 분으로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통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한 자매님은 그런 안타까운 기억이 있어 오랜만에 연락이 된 조갑 * 모친을 빨리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하셨습니다.

    관악역에 맛집이 있다고 하시면서 교회로 초대를 하셨고 (사실은 한 자매님도 처음에 이렇게 전도가 되셨답니다^^), 마침 그날은 안양교회에서 김장이 하는 날이었습니다. 조 모친께서는 예배도 잘 드리시고 점심은 물론 김장 김치에 맛있는 저녁 식사까지 하시고 가셨습니다. 교회는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주변의 전도를 강하게 거부하셨던 분이 친구분의 죽음으로 마음이 가난해지셨고 마침 한 자매님의 권면으로 교회를 나오시게 되신 것입니다. 큰 어려움 없이 전도되신 듯 하나 사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2.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심

    모친께서는 작년 9월에 온 성도의 관심과 축복 속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셨습니다. 세례를 받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는데, 모친께서 물을 무서워해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물속에 다 잠기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번의 시도로 물속에 오래 계신 모친께서 많이 힘들어하셨고 이대로 세례를 못 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 많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에 기도 소리가 들리고 목자님께서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하게도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간절히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 후에 모친께서 무사히 세례를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세례식 과정을 통해 모친께서는 자신을 향한 성도들의 사랑에 감동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즐거운 신앙생활

    안식일이면 목자님과 함께 새 신자 성경공부에 참석도 하시고 댁에서 매일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십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신다고 수줍어 말씀하시지만 궁금한 것도 물어보시고 말씀으로 권면하면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조 모친님 옆에서 살뜰히 챙기시는 조명 * 자매님을 비롯해 마리아회 성도님들의 따뜻한 사랑, 안식일이면 차량으로 봉사해 주시는 성도님들의 배려 등으로 모친께서는 교회에 잘 적응하시며 즐겁게 신앙생활하고 계십니다. 바라옵기는 하나님께서 모친에게 성령을 내려 주셔서 확실한 구원의 은혜를 받고 더욱 기쁘게 신앙생활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세례받으신 조모친과 전도하신 한자매님>

    <마리아회의 축하찬양>

    <조 모친의 손발이 되어 주시는 조명 * 자매님과 함께>

    글| 백현 자매

  • [복음메세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성령 (롬 8:15-25)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 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 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육신의 욕심을 따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전부이고, 세상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며 살면, 하나님, 천국, 성령, 신령한 복, 이런 것들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이 미련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진리가 있고, 배우고 깨달아 알고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롬 8:15-16]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성령은 어떤 역할을 하실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한다. 양자는 원래 아들은 아닌데 아들로 삼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은 이후에는 하나님과 단절되었지만 다시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갈 4: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그러나 그런 영광은 고난과 함께 온다고 이야기한다. 고난과 영광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①고난과 영광을 분리할 수 없다. ②고난과 영광의 순서가 정해져 있다. ③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롬 8: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고, 괴로움이 많지만, 하나님께 받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는 현재의 고난을 참고, 장래의 영광을 소망할 수 있다.

    [롬 8:24-25]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성령이 증거가 되어서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을 확인 시켜준다. 그러니까 성령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어디 구석에 처박아 두거나, 가치를 몰라서 먼지 구더기에 방치해서 성령을 근심케 하거나, 심지어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 된다.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기를 소망한다.